2022/06/25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오마이뉴스 시리즈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오마이뉴스 시리즈: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그의 부음 기사는 “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 끝내 변절 오명 벗지 못한 채…”(한겨레), “독재정권과 싸운 ‘저항 시인’, 김지하 별세, 1990년 이후엔 ‘변절’ 논란도”(경향신문) 신문 제목이 요약했듯이, ‘저항’과 ‘변절’이라는 양면성을 보인 영욕의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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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오마이뉴스 시리즈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오마이뉴스 시리즈:

그의 부음 기사는 “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 끝내 변절 오명 벗지 못한 채…”(한겨레), “독재정권과 싸운 ‘저항 시인’, 김지하 별세, 1990년 이후엔 ‘변절’ 논란도”(경향신문) 신문 제목이 요약했듯이, ‘저항’과 ‘변절’이라는 양면성을 보인 영욕의 생애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오마이뉴스 시리즈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 오마이뉴스 시리즈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그의 부음 기사는 “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 끝내 변절 오명 벗지 못한 채…”(한겨레), “독재정권과 싸운 ‘저항 시인’, 김지하 별세, 1990년 이후엔 ‘변절’ 논란도”(경향신문) 신문 제목이 요약했듯이, ‘저항’과 ‘변절’이라는 양면성을 보인 영욕의 생애였다.
정치
기사15

과거순
1화저항과 변절의 양면성 함께 보여준 영욕의 생애

[김삼웅의 인물열전-시인 김지하 평전 1] 시대의 파고 넘어서지 못한 그의 삶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지하 시인이 작고하였다. 2022년 5월 9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빈소가 마련된 강원도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정치인ㆍ문인 등 각계 인사들이 찾아와 유족을 위로하며 함께 아픔...
22.06.11 11:25 ㅣ 김삼웅(solwar)


2화방대한 작품 남겨, 평가는 양극단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2] 장르도 다양하고 주제도 하늘과 땅, 단군과 현대인을 넘나든다
김지하는 문학인생 반세기 동안 다량의 작품을 남겼다.장르도 다양하고 주제도 하늘과 땅, 단군과 현대인을 넘나든다. 작품뿐만 아니라 활동 영역도 다양했다. 아직 한창 활동하던 시기(2002)에 한 평론가의 글이다.<황토(黃...
22.06.12 16:06 ㅣ 김삼웅(solwar)


3화목포에서 태어나고 원주로 이사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3] 김지하의 고난에 찬 생애는 어쩌면 운명적이었는지 모른다
김지하(본명 金英一)는 1941년 3월(음력 2월 4일) 아버지 김맹모(金孟模)와 어머니 정금성(鄭琴星)의 외아들로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김해김씨 목경파(牧卿派)다."나는 1941년 음력으로 2월 4일, 먼동 트...
22.06.13 15:33 ㅣ 김삼웅(solwar)


4화유년시절 이모저모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4] 김지하는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릴 때 내 별명이 '징게 멍게 들'이다. 징게 멍게는 김제ㆍ만경의 그쪽 사투리, 두 눈 사이가 한참 멀고 펑퍼짐, 콧대까지 푹 꺼진 게 영락없이 둔덕 하나 없는 김제ㆍ만경 그 넓으나 넓은 들판 같다는 놀림이었다. 요컨대 못났다는 얘...
22.06.14 15:27 ㅣ 김삼웅(solwar)


5화낯설음과 방황의 원주중학시절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5] 전라도 사투리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김지하의 어린 시절, 나라는 전쟁시기여서 극도로 혼란스럽고 여기에 흉년이 거듭되면서 국민들의 생활은 심히 피폐해졌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원주에서 중학을 다닌 그는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무진 애를 썼다. 전라도 사투리...
22.06.15 15:48 ㅣ 김삼웅(solwar)


6화중동고등학교 거쳐 서울대 미학과 입학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 이 시기 한국은 이승만 독재의 절정기였다
김지하는 서울로 유학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956년 1차로 서울에 있는 배제고등학교를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2차로 중동고등학교에 합격하였다. 이 시기 한국은 이승만 독재의 절정기였다.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
22.06.16 15:46 ㅣ 김삼웅(solwar)


7화'민족적 민주주의 조사' 짓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 그의 첫 대 사회문건으로, 학생운동사에 길이 남을 문건이다
박정희는 민주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권력을 찬탈하면서, 일본군 출신인 자신의 전과를 캄플라지하고자 '민족적 민주주의'를 지도이념으로 내걸었다. 그와 '민족'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치되는 가치였다. 더욱이 쿠데타...
22.06.17 16:17 ㅣ 김삼웅(solwar)


8화체포 투옥되고 '최루탄가' 지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8] 학생시위 선동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
김지하의 '조사'는 학생들에게 화제가 되고 일반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때까지 박정희에게 쏘아 댄 각계의 비판 중에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이었을 것이다. 그는 뒷날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지금 생각해도 〈5.20 민족적 민주주...
22.06.18 16:01 ㅣ 김삼웅(solwar)


9화시대고와 질병에 시달리며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9] 대학원 진학과 교수의 꿈을 포기하고
그의 대학시절은 시국과 관련 편안한 학기가 별로 없었다.박정희의 권력강화를 위한 외교정책과 폭압통치에 학생들이 저항하면서 정국은 경색되고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학원은 꽁꽁 얼어붙었다. 이 시기 그는 학생운...
22.06.19 18:01 ㅣ 김삼웅(solwar)


10화'오적'이 나오게 된 정치사회상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10] 박정희가 가장 경계한 것이 대학생들이었다
박정희는 이승만이 영구집권을 기도하다가 1960년 4월혁명으로 쫓겨난 지 9년 만에 다시 장기집권을 위한 3선 개헌을 강행했다. 정치학자 새뮤얼 버틀러는 '권력은 마주(魔酒)'라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임자가 국민의 봉기...
22.06.20 15:32 ㅣ 김삼웅(solwar)


11화독재 대 반독재 투쟁의 서곡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11] '오적'... 유신에 반대하는 반체제 전선 최초의 불꽃이었다
<사상계> 1970년 5월호에 발표한 담시 '오적'은 박정희 정권과 민주세력 간에 목숨을 건 대투쟁의 발화점이자 철권통치에 저항하는 실천정신의 상징이었다.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ㆍ차관, 장성 등 당대의 지배...
22.06.21 15:52 ㅣ 김삼웅(solwar)


12화'민주전선' 필화의 배경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12] 독재자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통치수법이 교활해진다
독재자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통치수법이 교활해진다.<오적>시는 독재자와 이른바 '오적들'의 속이 부글부글 타올랐겠지만 비교적 '조용히' 처리했다. <사상계>를 더 이상 시판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했다. 사건이 널...
22.06.22 15:27 ㅣ 김삼웅(solwar)


13화중정의 혹독한 수사와 회유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13] '오적'들과 여권 제도언론이 김지하와 신민당을 싸잡아 매도해
정부는 시대의 부패상을 풍자하는 담시를 '북괴 주장에 동조'했다는, 위반혐의로 시인과 관계자들을 구속하고, 국회에서는 연일 정치공방이 벌어졌다. '오적'들과 여권 제도언론이 김지하와 신민당을 싸잡아 매도했다. 광인의 광시(狂詩)...
22.06.23 15:31 ㅣ 김삼웅(solwar)


14화필화 겪으며 작품 쏟아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14] 29세이던 1970년은 김지하의 생애에 가장 극적이고 활력이 넘쳐
29세이던 1970년은 김지하의 생애에 가장 극적이고 활력이 넘쳐 그의 군학인생이 두고두고 남을 작품을 쏟아 낸 기록적인 연대였다.<오적>에 이어 5월에 집필하여 직접 연줄을 맡았던 희곡 <나폴레옹 꼬냑>은 그의 구속...
22.06.24 15:17 ㅣ 김삼웅(solwar)


15화'앵적가' 등 담시 쏟아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15] 그의 생애에서 가장 급박하고 처절하던 고통의 시기
누구나 '전성기'라는 게 있을 것이다.김지하에게 1970년대 초반 그러니까 29세에서 32세까지 4년간은 담시의 전성기다. 1970년의 <오적>에 이어 1971년에는 일본의 경제침략과 기생관광 등을 비판 풍자하는 담시 <앵적가(櫻...
22.06.25 16:39 ㅣ 김삼웅(solwar)

Toward a philosophy of Zen Buddhism : Izutsu, Toshihiko, 1914-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Toward a philosophy of Zen Buddhism : Izutsu, Toshihiko, 1914-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1991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 김지하

 -노겸 김영일시인 49재에/


오늘은 이 땅에 민족상잔의 참혹한 비극이 일어난지 72주년의 날이자 우리시대의 위대한 혼이었던 노겸 김영일시인이 돌아가신 지 49일째 되는 날이다. 

흔히 49재라고도 하는 이 날은 고인이 중음 상태에 있다가 49일을 지나면 그 업에 따라 다시 다음 세계로 태어난다는(生有) 대승불교의 관점에 따라 마지막으로 고인의 바른 길을 인도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김시인의 49재를 맞아 고인을 추모하며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는 '김시인 추모문화제'가 서울에서 열린다. 

우리 시대에서 아마도 김시인만큼 생전에 찬양과 비난을 극단적으로 받은 인물은 없으리라 싶다. 

그런 점에서도 오늘 49재를 맞아 행하는 이 추모행사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 행사가 생전의 오해와 아픔을 화해상생의 대동 굿판으로 풀어내어 망자와 생혼을 함께 위로하고 치유하는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까닭이다. 

몸을 지닌 존재는 모두 장단점과 그 행위에 따른 공과가 있다. 이것이 한정된 존재의 의미이기도 하다.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이란 그래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하겠다. 

문제는 한 사람, 한 존재에 대한 평가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생전에 김시인에 대한 평가 또한 그러하다.

최근 김시인을 추모하는 글이나 언사에서 김시인을 위한 '변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1991년의 이른바 조선일보 "죽음의 굿판’ 필화사건이다. 이 칼럼의 제목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다. 그러나 당시 소위 민주 진보진영에선 김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의는 외면한 체 그 칼럼의  소제목이었던 ‘죽음의 굿판 걷어치워라’는 것을 과장하여 그를 민주화의 위대한 투사에서 변절자로 끌어내리기에 급급했다. 그들의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김시인은 그 칼럼에서 '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어야하는가'를 분명하게 천명하고 생명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문건은 생명운동, 아니 이 땅의 사상적 전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김시인을 위한 변명 등에서 그의 이 칼럼을 김시인이 고문 후유증 등으로 정신이상 상태에서 쓴 글, 또는 섬망(譫妄) 중에 저지른 위악적 행위의 자해적 결과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의도가 '김시인을 위한 변명''이란 것에서 보듯 생전의 김시인을 존경하고 따르며 사후에도 김시인이 이 시대의 위대한 혼이었음을 이어가기 위한 선의의 의도임을 모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김시인의 글과 그 의미를 이렇게 하는 것은 김시인을 다시 모독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도 오늘 김시인 추모문화제 추진위원으로 이름은 올렸지만 오늘 서울에서 열리는 추모제엔 참석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DMZ 평화생명 동산에서 젊은 벗들과 함께 '지리산정치학교' 1,2,3기가 함께 하는 연찬에 참여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 추모제에 참여하여 또다른 변명에 함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겸 김영일시인, 생전에 나의 사형이기도 한 선생의 49재, 그 마직막 날에 형님의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위해 다시 두 손을 모은다. 

이 땅의 생명사상가로 앞서 제시한 그 깊은 뜻을 잘 살피고 새겨 전환의 세상을 여는 일에 조금이라도 거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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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김지하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

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젊은 당신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여기저기서 자제요청이 빗발쳐 당연히 그쯤에서 조촐한 자세로 돌아올 줄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정권보다 큰 생명

생명이 신성하다는 금과옥조를 새삼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근본을 말살하자는 것인가? 신외무물이 무슨 뜻인가? 당신들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도 가벼운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이것이 모든 참된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당신들은 민중을 위해서! 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방향이다. 당신들은 민중에게 배우자! 라고 외친다.

그것이 당신들의 공부이다. 민중의 무엇을 위해서인가? 민중이 생명의 보위, 그 해방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 해방의 전망은 확고한가? 

목적에 대한 신념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만약 그것이 기존의 사회주의라면 그 전망은 이미 끝이 났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민족이 패망하는 극한 상황도 아닌 터에 생명포기를 요구할 정도의 목적의 인프레션 따위는 있을수도 없으며 다만 뼈를 깎는 기다림과 겸허한 모색이 있을 뿐이다. 모색하는 자가 매일 매일 북 치고 장구 칠 수 있는가? 

도대체 그 긴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왜 덤비는가?

모색과정에도 위기에 대한 긴급한 행동은 있을수 있다. 하나 그때의 행동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당신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당신들은 민중에게서 무엇을 배우자고 외쳤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존중,삶의 지혜를 놔두고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고 하는가?

어느 민중이 당신들처럼 그리도 경박스럽게 목숨을 버리던가? 

당신들은 흔히 지도라는 말을 쓴다. 또 선동이란 말도 즐겨쓴다.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환상적 전망을 가지고 감히 누구를 지도하고 누구를 선동하려 하는가? 

더욱이 죽음을 찬양하고 요구하는가? 제 정신인가, 아닌가? 과학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이 과학인가? 그보다도 더 자주 정치라는 말을 쓴다.

그것이 정치인가? 분명히 못박아 말하지만 정치란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다.

-자살 전염 부채질

당신들에겐 분명 그것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학생운동 본연의 순결한 정의감, 그리고 대안적 정열이 요구하는 바대로, 그리고 혼란한 전환기에 대응하는 확률적인 모색의 태도로 전시민적인 요청에 대답하는 합당한 행동을 선택하라.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전환기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수하기 안성맞춤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 지금 당신들은 조심성이 있고 없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사파의 스테레오타입마저 이미 이탈했다.

철부지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당신들은 지금 극히 위태롭다. 생명은 자기 목숨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인데 하물며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아래 이용할수 있단 말인가? 그럴수 있다고 대답하는 모양인데, 그렇다. 바로 그 대답에 당신들의 병의 뿌리가 있고 문제의 초점이 있다.

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히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을 분명히 말한다.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 자살특공대, 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이미 당신들의 화염병은 방어용 몰로토프 칵테일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파괴력에서가 아니라 상황과의 관계상실과 거기에 실린 당신들의 거의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말살 충동에서다. 당신들의 그 숱한 죽음을 찬미하는 국적불명의 괴기한 노래들, 당신들이 즐기는 군화와 군복,집회와 시위때마다 노출되는 군사적 편제 선호 속에 그 유령이 이미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즐기며 반미를 외치고 전사를 자처하면서 반파쇼를 역설했다. 당신들의 구호와 몸짓은 이미 순발적 정열을 이탈하여 의식화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오래전에 일본 전학연의 몰락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모순을 어찌할 셈인가? 

그런데 한술 더 떠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생명말살에 환각적 명성을 들씌워 주고 있다. 컴컴하고 기괴한 심리적 원형이 난무한다.

-종교냐 유물이냐

삶의 행진이 아니라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그것이 해방의 몸짓인가? 무엇을 해방할 작정인가? 귀신인가?

절정은 당신들의 그 혼을 분리하는 굿에 있다. 시체가 당신들 것인가? 왜 탈취하려 하는가? 그 시체의 주인공이 조선시대의 사대부집안의 그 가족도 없는 종인가? 왜 가족을 무시하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신들의 그 기괴한 이원론이다. 당신들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결정적 파탄의 증거다. 묻겠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육신을 경멸하고 영혼의 찬란한 해방을 광신하는 고대종교인가? 육신의 물질성만을 주장하는 속류 유물주의인가? 도대체 어느쪽인가?

도대체 그놈의 굿판에 사제노릇을 하고 있는 중과 신부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악령인가? 성령인가? 저는 살길을 찾으면서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선비인가? 악당인가? 당신들은 지금 굿에서의 이른바 불림 을 행하는 모양인데, 불림에는 조건이 있는 법이다.

영매는 자기목적이 없어야 하고 불림의 대상은 귀신이 아니라 신명이어야 한다. 검은 귀신이 아니라 밝은 신명이라고 주장하겠지. 그러나 젊은 벗들! 귀신은 영육분리의 형상이지만 신명은 영육합일, 몸과 함께만 현상한다네! 그래서 신명은 곧 생명이라네. 당신들의 귀신숭배는 더욱이 급진적 폭력을 동반함으로써 바로 네차예프사건과 인민사원의 집단학살, 그리고 연합적군 모리(삼)그룹의 산장에서의 피의 인민재판을 예고하고 있다. 죽음숭배, 귀신숭배의 결과는 풍수의 표현으로 당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비수터, 울부짖는 터, 갈기갈기 찢어지는 참혹한 종말이다. 어찌할 작정인가?

-운동은 이제 끝장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의사굿을 당장 걷어 치워라. 영육이 합일된 당신들 자신의 신명, 곧 생명을 공경하며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끈질기고 슬기로운 창조적인 저항행동을 선택하라.

나는 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좋다. 할 대로 해보라.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 그래도 지성인이라면, 최소한 내말을 접수라도 한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자신의 신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대답이 다행히 창조적 통일로 끝났을 때, 그때 우리는 현정권에 대한 효력있는 저항을 참색할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자중자애 하라. 부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폭력과 죽음, 그리고 종말의 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