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5

교보문고 김태창 공공철학 문헌 목록

교보문고





==

2023/04/24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부록[권말부록 | 환단고기의 진실]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입력 2007.09.14 / 576호(p611~627) 신동아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환단고기를 전한 이유립 선생.

일본 요코하마 출생으로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1925년생)씨가 번역한 것으로 돼 있는 양장본 ‘환단고기(桓檀古記)’를 국회도서관에서 접한 순간 기자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실크로드 흥망사’란 부제가 붙은 이 ‘환단고기’는 서기 1982년인 쇼와(昭和) 57년, ‘역사와 현대사(歷史と現代社)’를 발행인으로, ‘(주)신국민사(新國民社)’를 발매인으로 해서 도쿄에서 출간된 일본어 책이기 때문이었다.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

기자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밝혀놓은 ‘환단고기’에 관심을 가져왔다. 위서(僞書) 시비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 때문이다.

한글은 1443년 세종 때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문자는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에 의해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정설이다. 한자(漢字)만 해도 갑골문에서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해왔고 알파벳도 북셈문자와 페니키아문자를 거쳐 발전해왔다. 일본의 가나(假名)는 한자 초서 등에서 유래했지만, 일본에는 가나 이전에 고대 문자가 있었고 그것이 가나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조선 세종대에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 ‘원시 한글’이라 할 문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원시 한글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놀랍게도 환단고기는 그 해답을 제시한다.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라는 사람이 ‘삼성기’와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란 네 책을 한데 묶어 편찬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녹도문과 가림토 문자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편에는 환웅이 신지 혁덕이라는 사람에게 명하여 천부경을 ‘녹도문(鹿圖文)’으로 적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환단고기를 연구해온 사람들은 “녹도문은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만든 글자이고, 갑골문에 앞서 한자의 근원이 된 문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녹도문이 어떻게 생긴 문자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녹도문은 표의(表意)문자일 가능성이 높고, 환단고기는 그 모양을 그려놓지 못했으므로 녹도문을 원시 한글로 추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환단고기 단군세기는 세 번째 단군인 가륵(嘉勒) 2년, 가륵 단군이 삼랑 을보륵이라는 사람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로 된 지금의 한글과 아주 비슷한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그 문자의 모양을 보여준다. 또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편은 단군세기를 인용해 삼랑 을보륵이 정음 38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가리켜 ‘가림다(加臨多) 문자’라고 한다며 앞의 가림토와 같은 모양의 문자를 보여준다.

단군세기에는 ‘가림토’로, 태백일사에는 ‘가림다’로 한 글자가 다르게 표기돼 있지만, 환단고기는 원시 한글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세종 때의 집현전 학자들은 이 문자를 보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 아닐까.

학자들은 다 알고 있지만 국민은 모르는 아주 이상한 사실 하나가 있다. 삼척동자를 붙잡고 “고구려를 세운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으면 열이면 열 “고주몽”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의 이름이 과연 고주몽일까?

‘고구려를 세운 인물은 고주몽이다’라고 밝혀놓은, 우리 민족이 펴낸 가장 오랜 사서는 ‘삼국사기’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시조 동명성왕의 성은 고씨요, 이름은 주몽이다’라고 기록하고, 바로 다음에 ‘추모 또는 중해라고도 한다’라는 주를 달아놓았다. 주몽은 추모로도 불릴 수 있고 중해로도 불릴 수 있다고 삼국사기는 분명히 밝혀놓은 것이다(원문 : 始祖東明聖王姓高氏諱朱蒙云鄒牟云衆解).

고구려 시조는 주몽인가, 추모인가

‘주몽’과 ‘추모’와 ‘중해’는 발음이 비슷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말은 중국어와 다르다. 신라시대 우리말을 한자로 적기 위해 ‘이두’와 ‘향찰’를 썼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에서도 유사한 방법으로고구려 말을 한자로 적었을 것인데, 어떤 이는 동명성왕을 주몽으로 적고, 어떤 이는 추모로, 또 어떤 이는 중해로 적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구려인들이 세 이름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했느냐는 점이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조 때인 서기 1145년 김부식이 편찬했다. 고구려가 멸망한 것이 서기 668년이니, 삼국사기는 고구려가 패망한 때로부터 477년이 지나 만들어진 것이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또 하나를 살펴보자. 중국 길림성 집안에는 고구려 당대인 서기 414년,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태왕릉비가 우뚝 서 있는데, 이 비문은 ‘옛날 시조 추모왕은 북부여에서 나와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라고 되어 있다.

고구려 당대에 세워진, 삼국사기보다 731년 앞선 광개토태왕릉비에는 고구려 시조의 이름이 ‘추모’로 기록된 것이다.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이름을 ‘추모’로 밝히고 있는 광개토태왕릉비.

지금 전해지는 삼국사기는 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 바로 그 책이 아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삼국사기는 조선 태조 3년인 서기 1394년 김거두란 사람이 그때까지 전해진 삼국사기를 토대로 새로 목판을 만들어 찍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 삼국사기는 빠진 글자가 있어 완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조선 중종 때인 1512년 이계복이 김거두의 삼국사기를 개판(改版)해서 새로 찍어냈으며 이것이 오늘날 한글로 번역되고 있는 삼국사기다.

1512년에 인쇄된 삼국사기가 고구려의 사실을 더 많이 담고 있을까, 고구려 당대에 세운 광개토태왕릉비가 사실에 가까운 진실을 더 많이 담고 있을까. ‘사실(史實)’은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조작될 수 있지만, 사람의 이름을 조작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더구나 광개토태왕릉비는 아들이 아버지를 자랑하기 위해 세운 것인만큼 시조의 이름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시조 이름을 ‘추모’로 부르는 것이 옳은데, 현대에 나온 모든 사서는 동명성왕을 주몽으로 부르고 있다. TV 드라마까지 주몽으로 불러, ‘고구려 시조는 주몽’이란 인식이 고착화된 상태다.

한글의 뿌리를 연구해야

추모 이야기를 거론한 것은 첫째, ‘고구려 시조 이름을 당대 이름에 가깝게 바로잡자’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고대 우리 민족이 쓰던 말을 한자로 옮기다 보면 다르게 적힐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삼국사기에 ‘북부여 속담은 활을 잘 쏘는 아이를 주몽이라고 하였다’는 대목이 있으므로 추모와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아이를 뜻하는 고구려 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고구려 말 발음을 한자로 옮길 때 추모로 적을 수 있고 주몽, 중해로도 적을 수도 있다. 추모와 주몽, 중해가 발음이 비슷하듯 원시 한글을 뜻하는 ‘가림토’와 ‘가림다’도 발음이 흡사하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는 고려 말의 이암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고려 말 우리 민족은 가림토와 발음이 비슷한 원시 한글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자가 조선 세종조의 집현전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쳐 훈민정음이 탄생했을 수도 있다.

위서 시비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가 주목받는 것은 정확성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기록을 남기지 못한 옛날의 사실(史實)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추적해볼 수 있는데, 요즘 실시된 고고학적 발굴로 새로이 밝혀지는 사실 중에 환단고기의 내용과 일치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렇다면 가림토와 가림다 문자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집현전의 학자들이 아무리 위대해도 사람이 입과 목을 이용해 발음하는 것을 보고 수년 사이에 훈민정음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자는 쉽게 창안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위대한 학자들도 무엇인가로부터 힌트를 얻어야 역사적인 창조를 할 수 있다. 한글을 사랑하는 학자라면 한번쯤 환단고기의 진위부터 한글의 시원(始原)까지 모든 것을 연구해봐야 하지 않을까. 집현전 학자들이 환단고기에 제시된 가림토(가림다) 문자를 발굴해 그것을 토대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그 가정이 옳은지를 추적해보는 연구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치우 등장시킨 환단고기

사실 환단고기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축구대표팀 응원단인 ‘붉은악마’는 치우천왕이 그려진 엠블럼을 들고 나왔다.

언제부터 우리는 치우를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게 됐는가. 치우를 단군보다 앞선 우리의 조상으로 인식하게 해준 것은 바로 환단고기다.

물론 1911년에 편찬된 환단고기에 앞서 치우를 우리 선조로 규정한 책이 있었다. 1675년(조선 숙종 1년) ‘북애노인’이라는 호를 쓴 사람이 펴낸 ‘규원사화(揆園史話)’가 그것이다. 그런데 규원사화는 사서(史書)가 아닌 사화, 즉 ‘역사 이야기책’이란 이유로 역사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규원사화에 담긴 내용이 100% 허구일 가능성은 매우 작다. 일부는 분명 진실일 텐데 우리의 사학자들은 이를 위서로 단정짓고 아예 연구조차 하지 않았다.

규원사화가 살려내지 못한 치우를 환단고기가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그것도 단군에 앞선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치우는 중국인의 조상?

그런데 치우가 우리 조상이 아니라 중국인의 선조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사실이 중국 학자들에 의해 밝혀진다면 치우를 앞세우며 좋아했던 한국인은 정말 우스운 존재가 된다. 문제는 치우를 중국의 선조로 만들려는 작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인들은 황제, 염제와 더불어 치우를 중국인의 3대 시조로 꾸미고 있다.

중국인을 가리켜 자칭, 타칭 ‘한족(漢族)’이라고 한다. 한족은 진시황에 이어 한(漢)고조 유방이 두 번째로 중원을 통일하고 난 다음에 생겨난 이름이다. 한나라가 등장하기 전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은 ‘하화족(夏華族)’이었다.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하화족은 중국을 이룬 전설상의 인물인 3황5제 가운데 5제의 첫 번째 인물인 황제를 시조로 여긴다. 한민족 하면 단군의 후예를 지칭하듯, 하화족은 황제의 후손을 의미한다. 하나라는 5제 중 한 명인 우(禹)가 세웠다고 한다.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이름을 ‘추모’로 밝히고 있는 광개토태왕릉비.

중국인은 황제가 이끄는 황제족과 경쟁을 하다 황제족과 하나가 된 종족을 3황 가운데 마지막인 염제(신농)가 이끈 염제족으로 보고 있다. 염제가 이끄는 염제족을 황제족이 제압함으로써 거대한 황제족이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거대한 황제족을 중국인들은 ‘염황족’으로 부르거나 아니면 이들이 하나라를 세웠다고 하여 ‘하화족’으로 부른다. 황제족과 염황족 하화족을 거론할 때 치우가 이끄는 치우족은 배제된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사서는 황제(헌원)가 탁록이라는 지역에서 치우와 싸워 이김으로써 패권을 장악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탁록 전투에서 치우가 이끄는 종족이 황제가 이끄는 종족을 이겼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승패의 결과가 다르긴 하지만 중국 사서와 환단고기 모두 황제족과 치우족이 싸운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로부터 수천년이 흐른 지금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치우가 황제, 염제와 더불어 그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995년, 중국인들은 치우와 황제가 역사적인 결전을 벌인 탁록에 ‘귀근원(歸根苑)’이란 이름의 사당을 만들고 그 안에 황제와 염제, 치우를 모신 ‘삼조당(三祖堂)’을 세웠다. 그리고 치우가 황제, 염제와 함께 중국 민족을 만들었다며 이들을 ‘중화3조(中華三祖)’로 통칭하기 시작했다. 만일 치우가 중국인의 조상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우리는 중국인의 조상을 우리 조상이라고 주장한 ‘바보 같은’ 민족이 된다. 물론 환단고기도 쓰레기 같은 잡서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환단고기가 위서(僞書)라면…

그러나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일컫는 ‘동이족’의 선조가 치우라는 주장은 점점 힘을 받고 있다. 환단고기가 없었으면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치우를 우리 조상으로 내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환단고기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것이 환단고기가 등장한 후 초·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단군이 실존인물, 단군조선이 실재한 나라로 적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환단고기는 ‘환웅과 단군 시대에 관한 옛 기록’이라는 뜻인데, 이 책은 단군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대통령과 같은 ‘자리 이름’이라며 47대 단군 이름을 밝혔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단군조선을 적시한 우리 교과서도 위서 시비에 빠질 수 있다. 환단고기의 위력은 비단 역사와 문화현상에 한정되지 않는다. 종교계와 학계에 두루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림다 문자가 나오는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는 ‘소도경전본훈’편이 있는데, 여기에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가 실려 있다.

천부경은, 환단고기와 별도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천부경의 등장으로 한국철학사와 한국종교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철학은 중국에서 생겨난 유학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고 삼국시대에 이 땅에 전래된 불교는 한국화한 종교로 여겨져왔다. 우리 민족이 외래 사상과 종교를 받아들여 ‘우리화’했다는 것이 한국철학과 한국 종교의 큰 줄기였는데, 환단고기와 함께 천부경이 등장하자 천부경이야말로 외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우리 조상이 만든 철학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양오행론과 다른 천부경적 세계관

천부경과 삼일신고, 그리고 환단고기에 실린 또 하나의 경전인 참전계경은 유학이나 불교와 다른 우주관을 제시하고 있다. 유교적, 또는 중국적 세계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음양오행론이다. 음양오행론은 다르게 발전해온 ‘음양론’과 ‘오행론’이 중국 전국시대에 합쳐짐으로써 생겨났다.

음양론은 전기의 플러스(+)와 같은 양(陽)과 마이너스(-)와 같은 음(陰)으로 만물의 변화 원리를 설명한다. 음양을 6개로 한정해 모아보면, 6개가 모두 양인 것에서부터 6개 모두가 음인 것까지 모두 64개가 만들어진다(2×2×2×2×2×2=64). 이러한 64괘 가운데 ‘반쪽짜리’ 4괘가 바로 태극기에 들어 있는 ‘건·곤·감·리’다.

주(周)나라 시절 중국인들은 자연변화를 64괘로 압축했다. 그리고 미래를 살피는 점을 치면서 64괘 가운데 어느 하나를 뽑게 했는데, 이때 뽑아낸 괘를 보면서 거꾸로 미래 상황을 펼쳐 보였다.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한자로는 ‘역(易)’으로 표현하니, 주나라 때 만들어진 이 인식체계는 ‘주역(周易)’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오행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에너지 원소를 수·화·목·금·토 다섯 가지로 본다. 이 다섯 가지 기운 가운데 물(수)과 불(화)처럼 충돌하는 관계도 있지만, 물(수)이 나무(목)를 잘 자라게 하듯 도와주는 관계도 있다. 물은 불을 꺼버리므로 물은 불과 상극관계이고, 물이 있어야 나무가 잘 자라므로 물과 나무는 상생관계라고 본다.

그러나 상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최악은 아니다. 물과 불이 ‘솥’이라는 매체로 분리돼 있다고 가정해보자. 물은 솥에 담겨 있고 솥 밑에 이글거리는 불이 있다면, 불은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해 탈 수 있고, 물은 설설 끓어 음식을 익힐 수 있게 된다. 솥으로 분리된 물과 불은 자기 성질을 극대화함으로써 음식을 익히는 새로움을 창출하니 이때의 물·불은 상극관계가 아니다.천·지·인의 3수론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 등에 실려 있는 가림토 문자. 원시 한글일 것으로 추정된다.

오행론은 수화목금토 사이에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놓고, 어느 것과 어느 것이 어떤 조건으로 만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음양론과 오행론이 공자를 태두로 한 유교에 흡수됐고, 그러한 유학이 한반도로 유입됐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퇴계와 율곡에 이르러 성리학이 꽃을 피우는데, 퇴계의 성리학이 정유재란 때 일본에 잡혀간 강항(姜沆·1567~1618)에 의해 일본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1561~1619) 등에게 전파됐다. 그 영향으로 500여 년에 걸친 내전(전국시대)을 종식한 일본의 ‘도쿠가와(德川) 막부’는 퇴계의 성리학을 토대로 한 문(文)의 시대로 들어간다.

이러한 흐름이 있는 만큼 음양오행론은 한·중·일의 공통된 사유체계로 이해돼왔다. 이러한 사유체계를 거부하는 것이 천부경이다. 음양론이 음과 양 두 개의 수로 만물 변화를 설명한다면, 천부경적 사유체계는 천(天)·지(地)·인(人) 세 개의 수로 만물의 변화 원리를 설명한다. 음양론은 두 개로 설명을 하니 대립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천부경적 사고는 변증법의 ‘정-반-합(正反合)’ 이론처럼, 제3의 방안을 제시해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 특징이다.

천부경의 우주관은 불교의 우주관과도 다르다. 주목할 것은 천부경이 환단고기에만 실려 있을 뿐 중국이나 인도에서 나온 서적에는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천부경적 사유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학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천부경’을 입력하면 김백호 최민자 수월제 이중철 김현두 김백룡 최동환 문재현 유정수 권태훈 조하선 윤범하 등 수많은 학자가 주해한 천부경 관련 서적이 뜬다.

현재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는 천부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다. 대종교는 1909년 나철이 개창한 ‘단군교’에서 비롯됐다. 단군교는 1910년 대종교로 개칭했는데, 이때 나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단군교’라는 이름을 유지하며 떨어져 나갔다. 앞에서 밝혔듯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에 의해 처음 편찬됐으니 천부경은 그때 세상에 알려진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대종교와 단군교는 천부경을 경전으로 삼지 않았다. 대종교를 이끈 나철은 1916년 자살하고, 이듬해인 1917년 계연수는 대종교에서 떨어져 나간 단군교에 천부경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1920년 일제가 단군교를 없앰으로써 단군을 모시는 종교는 대종교만 남게 됐다. 이때 단군교를 따르던 많은 신자가 대종교로 넘어왔지만 대종교는 천부경을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종교가 천부경을 경전으로 채택한 것은 55년이 흐른 1975년에 이르러서다.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환단고기의 천부경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민족종교인 대종교가 천부경을 경전으로 채택한 것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환단고기가 특정인이 지어낸 위서로 밝혀진다면 이 책에 실린 천부경을 경전으로 채택한 대종교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천부경이 환단고기에만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편에 천부경을 찾아낸 최초의 인물이 신라의 최치원(857~?)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최치원은 ‘문창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최치원의 후손인 최국술은 최치원 사후 1000년 이상이 지난 1925년, 집안에 전해오던 최치원의 글을 모아 ‘최문창후전집’을 펴냈다. 이 ‘최문창후전집’에도 천부경이 실려 있다고 한다. 천부경은 81개의 한자로 구성돼 있는데, 최문창후전집에 실린 천부경은 환단고기에 실린 천부경과 74자는 같고 7자가 다르다.

그러나 7자는 의미가 달라질 정도로 다른 한자가 아니라 거의 유사하게 해석되는 한자다. 이 때문에 천부경이 환단고기 쪽으로 전해지는 과정과 최치원 집안에서 전해지는 과정에서 7자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조선 말의 기정진(奇正鎭·1798~1879)도 그때까지 구전되는 것을 전해 듣고 천부경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천부경은 기정진 선생의 제자의 제자인 김형택씨가 ‘단군철학석의(1957)’란 책에 남겨놓았다. 이 책에 실린 천부경은 환단고기에 실린 것과 1자가 다르나, 역시 해석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 세 가지 천부경 가운데 정본으로 여겨지는 것이 환단고기의 천부경이다. 대종교도 환단고기에 실린 것과 같은 글자의 천부경을 경전으로 인정한다.

세 책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것이 환단고기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최문창후전집에 나오는 천부경과 단군철학석의에 나오는 천부경은 환단고기를 참고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따라서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천부경도 위서가 될 수 있다. 천부경을 경전으로 채택한 대종교와 천부경을 민족철학으로 여겨 해석한 학자들도 매우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그런 상황인데도 한국 지식인들은 환단고기의 실체를 제대로 추적하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1911년 계연수가 단군세기 등 4권의 책을 묶어 펴낸 환단고기는 지금 전하는 것이 없다.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편찬했다는 것은 간접적으로만 확인될 뿐이다. 1920년 중국 도교 전문가인 전병훈(全秉薰·1857~1927)은 ‘정신철학통편’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는 이 책 서문에 천부경 전문을 싣고 해석을 달아놓았다.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치우를 엠블럼으로 한 대형 깃발을 내세운 붉은악마 응원단.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은 지금 전하고 있으므로 이 책은 천부경을 실은채 인쇄된 가장 오래된 책이다. 계연수는 1911년 환단고기 필사본 30부를 만들었다고 하므로 전병훈은 이를 보고 출간을 앞둔 ‘정신철학통편’에 실었을 가능성이 있다.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는 세력 가운데 일부는 “환단고기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출판됐다”고 주장했다. 계연수가 만든 환단고기는 없고 그의 제자라는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출판사를 통해 인쇄해 내놓기 전에 일본에서 환단고기가 나왔다면 이유립은 거꾸로 일본판 환단고기를 베껴 한국에서 출판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한국 출판사에서 출간된 환단고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85년 김은수씨의 ‘주해 환단고기’(가나출판사)와 임승국씨가 1986년 5월 정신세계사에서 내놓은 ‘겨레를 밝히는 책들-한단고기’이다. 임씨는 이유립씨와 함게 국사찾기 운동을 한 사람인데, 그는 ‘환단고기’가 아니라 ‘한단고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일본인 가지마 노보루가 쓴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가 붙은 ‘환단고기’가 1982년 ‘역사와 현대사’에서 출간된 것으로 확인됐으니 기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가지마 노보루가 출판한 환단고기가 일본인들이 창작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환단고기를 ‘민족의 시원을 밝혀주는 역사서’ ‘민족의 철학을 밝혀주는 지침서’로 흠모했다면 정말 어리석은 민족이 될 것이다. 다급해진 기자는 환단고기를 출간한 국내 출판사를 하나씩 접촉하며 어떤 경위로 이 책을 내게 됐는지 알아봤다.

환단고기는 참으로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앞에서 언급한 임승국씨의 한단고기(정신세계사) 외에도, 1987년 고려가라는 출판사가 다섯 권으로 펴낸 ‘대배달민족사’ 제1권에 실린 환단고기, 1989년 김은수씨가 주해해서 기린원이 펴낸 환단고기, 1994년 민족문화사 편집부가 출간한 환단고기, 1996년 계연수를 편자로 해서 한뿌리출판사에서 내놓은 환단고기, 1998년 코리언북스출판사가 단학회연구부를 엮은이로 해서 출간한 환단고기, 2000년 바로보인출판사가 문재현씨의 풀이로 내놓은 환단고기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와 국내에서 출간된 환단고기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 원문(한자)과 국내에서 출간된 환단고기의 원문이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한편으로는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 해석을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했다는 오해를 나을 수도 있으므로 기자의 마음은 다급해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위서 시비가 있는 책인데….

조급함은 곧 불안감으로 증폭됐다. 놀랍게도 가지마는 환단고기를 일본 신도(神道)에 접목시켜놓았기 때문이었다. 가지마는 일본 신도의 원류를 찾는 작업의 일환으로 환단고기를 번역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서기는 모략위서(謀略僞書)다’라는 제목을 단 머리글에서 위서 시비가 있는 일본서기의 일부 내용을 부인하며 환단고기 내용을 토대로 새로운 신도 이론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反유교 反조선 기치 내건 개화기 일본

가지마는 어떤 생각을 했기에 일본 신도의 정통성을 바로 세운다며 환단고기를 출간한 것일까. 그 답을 찾아준 이는 서울 청운동에 있는 ‘국학연구소’의 김동환 연구원이다. 일본 신도를 연구하는 김 연구원은 가지마를 ‘의식 있는 일본의 재야사학자’로 정의했다. 김 연구원으로부터 일본 신도의 역사와 가지마 노보루의 역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불교의 절과 신도의 신사(神社)가 함께 있는 것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일본의 근대화는 조선 퇴계에서 비롯된 성리학적 세계관과의 결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의 일본이 친(親)유교(성리학), 친(親)조선이었다면,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의 일본은 반(反)유교 반(反)조선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를 위해서는 봉건제에서 벗어나야 하므로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문화가 들어왔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일본에도 고유한 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줘야 했고, 메이지(明治)시절 일본의 엘리트들은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 등 일본의 고유 자료를 강조했다. 이런 움직임은 성리학을 수용한 막부를 날려버리고 일본적인 것을 상징하는 천황 중심으로 뭉치자는 주장으로 이어져, 천황 숭배가 강화됐다. 일본 천황의 위패는 대개 신궁에 모시니 신도를 부흥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본은 불교가 들어온 7세기부터 신사와 절을 공존, 융합시키는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전통을 이어왔다. 신사와 절이 함께 있고, 가정에는 신도의 제단인 ‘가미다나(神棚)’와 불교의 제단인 ‘불단(佛壇)’이 함께 놓인 것이 바로 신불습합의 전통이다.

신도를 부흥하려 한 일본의 엘리트들은 불교도 봉건적이고 외래적인 것으로 보고 불상과 불경을 훼손하고 거부하는 ‘폐불훼석(廢佛毁釋)’ 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불교는 신도만큼 민중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라 척결할 수 없었다. 그러자 엘리트들은 불교 탄압을 중단하고 신불습합을 인정하며 신도 부흥에 매진했다.

이 시기 일본은 총리대신 밑에 전국의 신궁과 신사를 관리하는 ‘신기국(神機局)’을 뒀다. 신기국은 일본서기와 고서기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일을 진두지휘했다. 일본을 한국보다 오래된 전통문화를 가진 나라로 바꾼 것이다. 신기국을 통해 일본은 조선에도 일본의 토속신을 모시는 신궁과 신사를 만들게 했다.“신국민과 만선사관을 위해 번역”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가지마 노보루가 1982년 일본어로 번역 출판한 환단고기와 서문. 표지에는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러한 운동이 일기 전, 일본 신도를 부흥시킨 인물로 꼽히는 ‘고사기전(古事記傳)’의 저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1730~1801)가 일본 국학 부흥을 부르짖었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국민(國民)’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국민은 국가가 결정한 것을 그대로 따르는 민중이다. 이 때문에 군국주의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일본인들은 이를 비판 없이 수용했다. 가지마 노보루는 비판 없는 맹종이 일본인에게 패전과 피폭(被爆)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가져왔다고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할 때까지 일본 헌법에는 신기국을 둔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을 패망시키고 군정을 실시한 미국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킨다’는 원칙에 따라 새로 만든 헌법(평화헌법)에는 신기국을 둔다는 조항을 넣지 않았다. 이로써 일본 신도는 메이지 시대 이전처럼 자력으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시절로 되돌아갔다.

이때 ‘신도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한 일본인들은 ‘신도의 위기는 비판 없는 일본인의 근성에서 비롯됐다’고 보았다. 이들은 ‘국민’이란 단어에는 ‘무비판’과 ‘무조건 수용’의 뉘앙스가 담겨 있으니 이제 일본인은 국민이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국가의 인민임은 부정할 수 없어 ‘신국민’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일본의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 가지마 노보루다. 다음은 이유립에게 환단고기를 배운 창해출판사 전형배 사장의 의견이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일본은 동북아를 무대로 한 역사 주체 가운데 방계에 해당한다. 일본은 동북아 역사 무대의 중심이 아니었지만 지금부터는 중심이 되자는 것이 신국민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다.

이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와 비슷하다. 미국은 영국에서 갈려나온 방계이지만 지금은 영국을 제치고 세계의 중심이 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본인도 동북아의 주무대에서 갈려 나온 방계이지만 지금부터는 동북아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그 일을 할 주체세력으로 신국민을 설정했다. 한반도와 만주에 살던 형님이 못한 일을 섬에 살던 일본인이 대신해서 하자며, 신국민을 그 일의 중추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중국에 문화적으로 편입돼 있는 조선은 물론이고 아예 중국의 영토가 된 만주를 중국에서 떼어내 일본과 같은 역사를 만들어온 공간으로 삼자는 ‘만선(滿鮮)사관’과 궤를 같이한다. 만주와 조선에 있는 형님이 잃어버린 정신을 일본에 살던 동생이 대신 세우겠다는 것이 만선사관과 신국민에 담긴 의지다. 가지마는 그들의 뿌리를 찾기 위해 환단고기를 번역한 측면이 있다.”

“미국이 영국 대신하듯 일본이 한국을 대신한다”

제1부 - 환단고기, 위서인가  진서인가

이유립 선생이 타계한 후인 1987년에 출간된‘대배달민족사’(전5권).

신국민은 비판능력이 있어 나라가 결정한 것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신국민은 메이지 시절의 엘리트가 조작한 일본 고대사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 바로 가지마 노보루의 책을 출간한 ‘신국민사’다.

신국민사는 신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본 재야 사학자와 재야 국학자들의 모임이 됐다. 가지마는 이 모임의 핵심이기에 ‘환단고기’ 서문에 ‘일본서기와 고서기는 모략위서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가지마 노보루는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기 전 한반도와 일본에는 고유한 종교가 있다고 봤다. 일본에서는 이를 신도라 하고 한국에서는 선도(仙道)라 하는데, 가지마는 일본의 신도와 한국의 선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여겼다. 중국에서는 유교 외에 신도나 선도와 비슷한 도교(道敎)가 생겼는데, 이 셋이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게 가지마의 생각이다.

‘鬼道 檀君敎’

가지마는 한·중·일 3국의 토속 종교 간의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일본 신도의 이론을 세우고 발전시키는 초석이라고 여겨 한국인보다 먼저 환단고기를 번역 출판한 것이다. 그 후 가지마는 역시 신국민사를 통해 ‘신도이론대계(神道理論大系)’라는 신도 교과서를 펴냈는데, 여기에서 그는 한국의 선도를 연구한 속셈을 분명히 밝혔다.

‘신도이론대계’의 제5장은 ‘신교오천년사(神敎五千年史)’란 제목인데 여기에 ‘귀도 단군교(鬼道 檀君敎)’란 문구가 있다. 가지마는 홍암 나철이 만든 민족종교인 단군교를 귀신 숭배하는 종교로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 단군교는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고도 규정했다.

고대에는 일본의 신도가 한반도의 선도나 중국의 도교로부터 영향을 받았겠지만 근대에는 거꾸로 일본의 신도가 한국과 중국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 가지마 노보루의 주장이다. 만주와 조선은 일본인의 역사공간이라는 만선사관으로 무장한 일본의 우익을 우리는 어떤 논리로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은 또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생명학 연구 3부작 완결한 최민자 성신여대 교수 "정치·생태 등 인류의 위기, 생명에 무지한 탓"

생명학 연구 3부작 완결한 최민자 성신여대 교수 "정치·생태 등 인류의 위기, 생명에 무지한 탓"

생명학 연구 3부작 완결한 최민자 성신여대 교수 "정치·생태 등 인류의 위기, 생명에 무지한 탓"
입력 2008.06.26 

“진리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진리는 종교, 학문, 정치, 우리의 삶에 용해되어야 합니다.”

동서양의 여러 사상과 종교,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의 문제를 천착해온 최민자(53) 성신여대(정치학) 교수가 생명학 연구 3부작을 완결했다. <천부경>(2006년), <생태정치학>(2007년)에 이어 최근 펴낸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모시는사람들 발행)는 각권 모두 800~90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스님이나 신부 등 종교인이나, 과학자들이 다루는 ‘생명’이라는 주제를 왜 정치학자가 파고들었을까.

“생태 위기나 정치, 종교적 충돌 같은 인류의 총체적인 난국은 우주의 본질인 생명에 대한 참 지식의 빈곤 때문입니다.” 24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최 교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한 예수의 말처럼 유사이래 모든 종교의 핵심이 생명이며 그 점에서 도덕경, 성경, 불경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유교의 태극, 불교의 일심이 곧 생명을 가리킨다는 것이 최 교수의 해석이다.

최 교수는 책에서 물리학 생물학 정치학 등 다양한 학문과 유불선(儒佛仙), 민족종교 등을 종횡무진하며 생명이라는 주제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시도하고 있다. 최 교수는 “요즘 생명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지만 대부분 당위론에 그치고 있다”면서 “생명 문제에 관한 교과서를 내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먼저 물리학 이론을 동원해 “생명의 본질은 파동체”라고 설명했다. “양자물리학이 생명의 본질을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으로 파악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학문 풍토가 이공계와 인문사회계를 분리해 자연과학에서 발견된 진리를 인문사회과학이 흡수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 교수는 이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물질의 궁극적 본질이 비물질과 다르지 않다, 즉 ‘정신과 물질은 하나다’라는 것을 말해준다면서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말도 이와 같은 뜻이라고 했다. “생명은 파동인데 그것이 모여 일정한 조건 하에서 다양한 물질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장자가 ‘일기(一氣)에서 우주만물이 나온다’고 한 것과 같은 소리다.

최 교수는 생명에 대한 양자물리학의 관점은 신과 인간을 하나로 본 우리 상고(上古)시대의 패러다임과 일치한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생명의 본체는 신, 하늘, 도, 태극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그 본체의 자기복제의 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사람과 우주 만물입니다. 따라서 형상은 다르지만 본체는 하나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도 이와 같은 말입니다.”

그는 “생명의 본체와 작용은 하나이고 그 실체는 의식이며 이 우주는 의식이 지어낸 것”라면서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성서의 ‘그림자’라는 말이 이를 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을 두루 회통하는 최 교수의 생명 풀이에서는 오랫동안 닦아온 깊은 학문적, 정신적 내공이 느껴진다. 종교사상에 해박하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물리학 책이 술술 읽히고, 오히려 사회과학자들이 쓴 글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요즘 해외의 베스트셀러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의식을 다룬 것이라는 점입니다. 작가들이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의식의 문제를 쉽게 풀이해서 쓰고 있는데, 학자는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는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도 진리를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리를 모르고도 산골에서 착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도시로 나오면 평생 착하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확실하게 진리를 자각한 사람은 ‘군자는 평상심을 갖는다’는 말처럼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최 교수는 “생명 문제에 관해 몇 십년 동안 가졌던 의문이 <천부경(天符經)>을 읽으면서 다 풀려버렸다”면서 책을 81개 테제로 나눈 것은 천부경 81자, 도덕경 81장의 구조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의 정수가 빠진 공부를 했습니다. 정치학의 경우도 ‘지배와 복종’, ‘권력과 자유’ 같은 이분법적 패러다임에 길들여져 있어서는 궁극적 진리와 통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국가나 인류집단도 개인처럼 자아가 죽는 체험을 해야 하는데, 촛불시위가 없었으면 대통령이 반성을 했겠는가”라며 “촛불시위가 우리 집단의식의 현주소”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진리의 정수는 여러 종교의 경전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고 요즘은 자연과학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데 인문사회과학도 열린 사고를 통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주목, 이사람] 통합 학문시대 주창 최민자 교수 "진리는 하나… 종교도 학문도 벽 없애야" | 세계일보

[주목, 이사람] 통합 학문시대 주창 최민자 교수 "진리는 하나… 종교도 학문도 벽 없애야" | 세계일보

[주목, 이사람] 통합 학문시대 주창 최민자 교수 "진리는 하나… 종교도 학문도 벽 없애야"
기사입력 2008-06-26 16:52:29


◇최민자 교수는 “우리의 상고시대 정치사상인 ‘천지인’ 합일사상은 양자물리학에서 이미 증명한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제 인류 사회는 종교 간 벽도, 학문 간 벽도 없어지고 오직 생명과 평화에 대한 자각으로 소통돼야 합니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최민자(53) 교수는 종교를 포함한 모든 학문이 생명의 본체이자 진리 그 자체를 공유하는 통합학문의 시대를 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을 넓혀 우주 본질인 생명에 대한 올바른 자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최 교수는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최근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방대한 분량의 사상서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총 832쪽)를 펴냈다.

이 책은 생명경(生命經)으로서의 정치대전(政治大全)이라 할 수 있는 ‘천부경’, 서구적 근대를 초극하는 생명의 세기를 제시했다고 평가받은 ‘생태정치학’에 이은 최 교수의 생명에 관한 3부작 완결편이기도 하다.


“이들 3부작은 ‘물질과 정신은 하나’라는 양자물리학의 전일적(全一的) 실재관과 일치하는 패러다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핵심은 ‘(생명의) 본체·작용·본체와 작용의 합일’이라는 ‘생명의 3화음적 구조’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기서 ‘본체’는 신(신성), 하늘, 태극, 도(道), 우주의 근본 질료, 지기(至氣) 등으로 다양하게 명명되는 궁극적 실재로서 우주의 본원을 일컫는다. ‘작용’은 본체의 자기복제로서 나타난 우주만물이다. ‘본체와 작용의 합일’은 이들 양 세계를 관통하는 원리가 내재된 일심의 경계를 말한다.

“이미 양자물리학에서 물질의 근원을 탐구하다가 밝힌 것이, 물질의 궁극적 본질이 비물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이 바로 그것이지요. 정신과 물질, 유심과 유물, 신과 인간 등의 이분법은 실재성이 없으며 진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구미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중국 강단에도 서는 등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을 두루 익힌 그는 천부경을 연구하다가 의문이 풀리면서 불교의 삼신불(법신·화신·보신)이나 기독교의 삼위일체(성부·성자·성신), 동학의 내유신령(內有神靈)·외유기화(外有氣化)·각지불이(各知不移)가 모두 생명의 3화음적 구조를 나타낸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즉, 우리가 분리의식에서 벗어나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면 본체와 작용이 하나임을, 이 우주가 ‘한생명’임을 자연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중세적 인간이나 근대적 인간, 그 어느 쪽도 내재적 본성인 신성과 이성의 ‘불가분성(不可分性)’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성적 힘의 원천이 참본성인 신성에 있음을 이해한다면 진정한 문명의 개창은 신성과 이성의 합일, 즉 천인합일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물질과 정신 어느 한쪽만 알아서는 관념적일 수밖에 없으며, 두 세계를 모두 알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여 새로운 계몽의 필요성을 논하고자 한다면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유심론이냐 유물론이냐’ 식의 이분법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생명의 3화음적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만물을 떠나 따로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리에 대한 명료한 인식이 없이는 새로운 계몽시대를 열 수 없습니다. 만유의 중심에 내려와 있는 신성이 바로 신의 실체이자 우리의 참본성임을 직시함으로써 천·지·인 삼재의 융화에 기초한 생명과 평화의 문명을 여는 것이 문명의 대전환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입니다.”

최 교수는 오늘의 인류가 처한 딜레마가 다양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생명 문제와 관련돼 있으며 또한 거기서 파생된 것이라고 본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은 생명, 곧 진리가 종교의 틀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진리가 종교 밖으로 나와 모든 학문에 녹아들고, 삶 속에서 구현될 때 진정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생명에 관한 진지(眞知)의 구축을 통해 삶과 학문, 삶과 종교, 학문과 종교, 종교와 종교가 화해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천부경 81자, 도덕경 81장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그의 저서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의 특징은 물리와 성리,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통섭하는 보편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생명의 3화음 구조’에 입각해 전일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생명학과 생명정치의 기본틀을 제시하고 있다. 또 인간사회 제 현상을 홀로무브먼트(holomovement)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경계선 없는 통합학문의 단면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식혁명입니다. 인류 문명사로 보나, 자연계 현상으로 보나 임계치에 도달해 있음인지 2000년 이후 급속히 인류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의식의 창조력을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한 증좌가 되겠죠.”

과연 인류가 의식을 확장시켜 자기 종교, 자기 학문을 뛰어넘어 생명과 진리, 평화를 위해 집단적으로 손잡는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가히 제2의 르네상스요 종교개혁이 될 것이다. 최 교수는 “실물이 바뀌면 그림자가 바뀌듯, 의식이 바뀌면 의식의 투사체인 이 세상은 자연히 바뀌게 된다”며 “복합적 여건의 성숙으로 의식혁명은 의외로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글·사진=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segye.com

동학학회 최민자 회장 신간 [무엇이 21세기를 지배하는가> 출간

동학학회

최민자 회장 신간 <무엇이 21세기를 지배하는가> 출간


작성자 : 동학학회 등록일시 : 2019-04-17 15:41

첨부파일 :


동학학회 최민자 회장(성신여대 교수)의 신간 '무엇이 21세기를 지배하는가'가 출간되었습니다.




문명의 대전환을 이끌 8가지 대안… 최민자 교수 새 책 ‘무엇이 21세기를 지배하는가’
기사입력 2019-04-16
 

최민자 성신여대 교수는 학문적 영역의 넓이와 깊이가 남다른 인물이다. 정치학자로 오랫동안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며 궁구해 왔을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사상과 문명사를 가로지르며 수많은 저서를 펴내 주목을 받았다. 저서의 제목만 봐도 그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인류 문명사를 조망해왔는지 알 수 있다. ‘스피노자의 사상과 그 현대적 부활’(2015), ‘새로운 문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반도發 21세기 과학혁명과 존재혁명’(2013), ‘동서양의 사상에 나타난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2011), ‘통섭의 기술’(2010), ‘삶의 지문’(2008),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 생명정치의 구현을 위한 眞知로의 접근’(2008), ‘생태정치학: 근대의 초극을 위한 생태정치학적 대응’(2007),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2006), ‘동학사상과 신문명’(2005), ‘세계인 장보고와 지구촌 경영’(2003), ‘새벽이 오는 소리’(2002), ‘직접시대’(2001), ‘길(道)을 찾아서’(1997) 등.

최 교수가 작년에 펴낸 ‘빅히스토리’는 우주의 탄생, 생물의 진화 과정을 파헤치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다루는 시간은 우주 빅뱅에서 포스트휴먼까지, 영역은 정치학을 넘어 역사·철학·과학·종교·인문·사회를 아우른다. 거대한 우주와 인간의 역사를 ‘생명’이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살핀, 808쪽의 대작이다.

그가 이번에 새롭게 펴낸 책 ‘무엇이 21세기를 지배하는가’(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사진)도 544쪽으로,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문명과 자연이 함께 대전환하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사상과 기술을 ‘정신’과 ‘물적 토대’, 그 둘을 상호 전환하는 프로그램의 3원 구조로 제시한다.
 
최 교수에 따르면, 현재 인류는 4차·5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얽히고설킨 세계시장과 통제 불능의 ‘기후’라는 복잡계가 빚어내는 문명과 자연의 대순환 주기에 와 있다. 이에 관한 백가쟁명의 대안과 해결책이 제시되지만, 현재 상태로 보면 인류 문명은 그저 얼굴과 몸집을 달리한 자본 논리에 따라 증식을 계속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처럼 보인다. 그 끝이 공멸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욕망에 비해 대안을 모색하는 지혜와 의지의 크기가 초라하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해소하고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그랜드 디자인으로서 문명사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또 이를 위해서는 동서남북 고금왕래의 철학사상과 과학을 접목하고 통섭하여 인류 문명의 미래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문명사적인 요구에 대해 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8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정신’과 ‘물적 토대’, 그 둘을 상호 전환하는 시범 프로젝트(pilot project)로 도식화할 수 있다. 우선, 정신의 측면에서 ① 생명이 곧 영성임을 갈파한 ‘한’ 사상, ②과학과 의식의 심오한 접합을 함축한 신과학, ③ 윈윈 협력체계의 ‘동북아 그랜드 디자인’으로 보여줄 수 있다. 이 책은 신 유라시아 시대의 도래와 세계 질서의 문화적 재편을 예견한다.

다음으로, 이를 실현할 물적 토대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① 화폐제도의 개혁, 즉 금본위제에서 구리본위제로의 전환 ② 자원 및 에너지 문제의 해결 방안 ③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 해결 방안 등을 통해 근원적이고도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이 둘 사이를 매개하고 상호 전환하는 측면에서 유엔세계평화센터 구상을 제안한다.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를 동북아의 역학 구도 및 경제 문화적 지형 변화를 예기(豫期)하고 촉발하는 중심으로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8가지 대안을 좀 더 살피면, 첫째로 21세기의 정신적 토대로서 ‘한’ 사상을 들 수 있다. 이는 한민족 재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생명이 곧 영성임을 갈파한 생명사상이다. 그 체제하에서 공공성과 소통성, 자율성과 평등성이라는, 근대 이념(이데올로기)으로 형해(形骸)화한 가치들이 역사에 실현된다. ‘한’ 사상은 천부경에 나타나는 일즉삼(一卽三)·삼즉일(三卽一)의 논리 구조에 기초한 천인합일의 개천(開天) 사상이다. 또 ‘한’ 사상은 현대 물리학-양자역학의 전일적 실재관의 원형(prototype)으로서 개벽사상이다. ‘한’의 우주관은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이 폐기된 양자역학적 실험 결과나, 산일구조(dissipative structure)의 자기조직화 원리와 마찬가지로 이 우주를 자기생성적 네트워크 체제로 인식한다. ‘한’ 사상은 에코토피아(ecotopia)를 지향하는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사상이다.
 

둘째, ‘한’ 사상 전개의 물적인 토대로서 구리본위제의 정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본위제가 대공황을 촉발했듯이, 현재의 달러본위제 역시 세계적인 경제 불균형과 주기적인 경제위기를 자초하는 근본 요인이다. 최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구리, 즉 디지털 코퍼(digital copper)를 기축통화로 삼아 달러를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신기술을 이용하여 고순도의 구리(銅)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화폐의 4대 기능의 조화, 적극적인 경제 활성화(통화) 정책을 통해 세계 경제의 균형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친환경 디지털 코퍼 기반 화폐로써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구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다. 기축통화국의 시뇨리지 효과(seigniorage effect, 鑄造差益)를 제거하고 노동성과를 충분히, 고르게 분배할 수도 있다.  

셋째, 미래의 연금술이라 할 원소 변성 기술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발된 액티바 신소재와 원천기술은 인공적으로 원자핵의 구성을 바꿔 고순도의 구리 추출이 가능하다. 이는 근대 사회의 ‘현자의 돌’(중세 연금술이 추구하는 궁극 원리)이라고 할 E=mc2 원리와 원자(양자) 발견 이후의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 양성 수소 핵자가 양성자수 26인 철 원소 핵자들을 포격, 철 원소 핵자들에 의해 수소 양성자 3개가 포획돼 새로운 원소, 즉 양성자수 29인 구리 원소로 변성하는 액티바 신기술로써, 안정적인 통화 공급은 물론 미래 세계를 추동하고 견인할 물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넷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기술이다.

방사성 핵종 폐기물을 흡착 유리고화(琉璃固化, vitrification)해 영구 처리하는 무기이온 교환체 액티바 신소재와 원천기술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고준위 핵폐기물과 악성 산업폐기물 등을 안전하고 완벽하게 영구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된다. 이 기술은 고준위 핵폐기물 등을 무결정(無結晶)의 최첨단 유리고화 공법으로 영구 처리하므로 방폐장 문제를 해결하고, 플루토늄의 핵무기 전용을 원천 봉쇄한다. 특히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연료로 재활용하므로 경제성도 충분하다. 이 기술이 에너지·환경·생명과학 분야에서 활용되면 지구촌 각국에서 에너지난 해소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책으로 각광받게 될 것이다.

다섯째는, 한국이 선도하는 수소에너지와 핵융합에너지의 역할이다.

미래 수소 문명의 관건은 수소 생산에 필요한 무공해하고 저렴한 에너지 확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에너지 민주화의 길이 열린다. 특히 분산 에너지 인프라는 에너지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사회 구조는 근본적으로 개편된다. 또한 수소 에너지는 탈화석연료 시대의 대체에너지원으로서 이 우주에 무한대로 존재한다. 현재 세계 선진국들이 모두 매달리고 있는 핵융합에너지는 온실가스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에너지이며, 여타의 신재생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 발전이 가능하다. 또한 산출 장소(바다)가 널리 분포해 있으므로 에너지 민주화, 에너지 분쟁 방지 등의 부대 효과가 생긴다.

여섯째, 5G 이동통신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세상이다.

미래 세계는 5G 이동통신이 만들어 갈 ‘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세상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이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5G 기반의 정보통신기술(ICT)이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우선 제품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고객 가치를 구현하는 고객 중심 사고 방식으로 혁신해야 한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성공하려면 플랫폼 자체의 가치 극대화에 집중해 참여자들의 역할과 니즈(needs)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교류와 참여를 유도하는 수요 중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특히 이때 지속 가능한 전략은 공익에 대한 공감 능력을 확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일곱째, 디지털 패브리케이션과 3D 바이오패브리케이션의 변혁이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의 핵심은 PC와 결합하는 개인화와 인터넷과 연결되는 분산화다.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제조업의 관점을 벗어나 정보통신과 정보화 사회의 관점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기술과 사회를 통합하는 사회변혁의 모델을 창출하는 팹랩의 정신을 커뮤니티 내 참여자들이 공유해야 한다. 바이오패브리케이션 기술은 복잡한 기능을 하는 살아 있는 조직으로 3D 프린팅을 하는 4D 프린팅으로 발전, 증강휴먼(augmented human)을 가능케 할 것이다. 나아가 머지않아 컴퓨터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세상 자체가 인터페이스가 되는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여덟째, 유엔세계평화센터(UNWPC)의 역할이다.

UNWPC는 한·북·중·러·일 접경지역인 동북 3성에 플랫폼을 구축하여 환동해경제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북방 실크로드의 발원지로 기획된 것이다. 아태지역의 거대 경제권 통합을 이루며 동북아를 일원화함으로써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 정착 및 동아시아 공동체, 나아가 유라시아 공동체 구축을 통해 21세기 문명의 표준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체제론의 관점에서 볼 때 UNWPC는 초국적 실체에 대한 인식 및 협력의 다층적 성격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초국적 발전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특히 이는 통일 한반도의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틀을 제공한다. 21세기 환경·문화의 시대를 선도함과 동시에 동아시아 나아가 지구촌의 문화예술·경제활동의 중심지이자 환경문화교육센터로서 지역 통합과 세계평화의 기반이 될 것이다.


최 교수는 “새 시대의 진정한 힘은 생명을 살리는 정신문화와 신과학기술과 경제력에서 나온다”며 유라시아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늘날 광범하게 사용되고 있는 리오리엔트(ReOrient)란 용어는 근대 서구사회가 종언을 고하고 세계 질서의 문화적 재편(cultural reconfiguration)이 일어남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신유라시아 시대의 신문명을 건설하는 그랜드 디자인으로서 앞에 언급한 8가지 대안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인 최 교수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rizona State University)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고, 영국 켄트대(University of Kent at Canterbury)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중국 베이징(北京)대학교 객원교수와 옌볜(延邊)대학교 객좌교수(客座敎授)를 지낸 바 있다. 1994년 중국 산둥성(山東省) 장보고기념탑 건립위원장을 맡았으며, 1999년엔 훈춘(琿春)에서 유엔 측 대표, 중국 훈춘시 인민정부 시장, 러시아 하산구정부 행정장관 등과 중국·북한·러시아 3국 접경지역 약 2억 평 부지에 UNWPC 건립을 위한 조인식을 이끌었다.

장재선 기자 jeij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