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3
알라딘: 마음 농사 짓기
마음 농사 짓기 -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
전희식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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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서재 18호(인문/사회/역사/과학/예술/청소년 분야 도서 2만원 이상)
8.7 100자평(0)리뷰(6)
책소개
글쓰는 농부 전희식이 그의 시골집에서 동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읍내를 넘어 버스를 타고 오가는 도시의 아스팔트, 마침내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중국과 남미에 이르는 해외까지 삶의 현장에서 농작물을 기르고, 사람과 더불어 일하고, 세상을 살리는 ‘농사 너머의 농사’를 통해 내 마음의 행방을 알아채고, 내 마음 농사를 짓는 이야기들을 담아낸 책이다.
목차
제1부 ………… 농부, 마실을 나가다
나를 알아채는 시간 / 30년 저 너머에 / 황금 개띠라고 하는데 / 나에 대한 믿음의 과잉 사태 / 단순하게 살기와 잡동사니 / 술과 헤어진 뒤 / 야단스럽게 반기기 / 백중 풀베기 / 오늘도 역시나 피난 보따리 / 난방비 제로와 노동의 다양성 / 상류 사람의 도덕적 의무 / 개장수 노릇 / 내가 만든 송곳 하나 / 들깨와 참새 그리고 가로등 / 산과 들판은 겨울 채비로 바쁘다 / 내 식으로 차레 지내기 / 우리 동네 순애 씨 / 밥상 앞에서의 신미란다 원칙 / 믿음의 조건과 유효기간 / 밑그림이 없는 사람
제2부 ………… 농부, 더불어 살다
막상막하 연극놀이 / 할머니와의 약속 / ‘노인의 날’은 언제인가? / 눈 오는 날의 우편배달부 /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 빛나는 졸업장 / 동북아시아 농민들 / 자연농법과 한울살림 / 잘 먹는다는 게 뭘까 / 고속도로 공짜 뒷담화 / 참 스승의 길을 간 김인봉 교장선생님 / 소농을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 / ‘소농’을 ‘혁명’이라 부르게 된 현실 / 동학으로 새로 짜는 모심의 삶
제3부 ………… 농부, 세상 속으로 가다
촛불광장에 서서 / 동학농민군과 세월호 참사 / 잠들지 못하는 영혼 / 영덕의 핵전 막기 / ‘진보’의 신개념 / 꿈같은 상상 / 재생에너지는 영원한가? / 자제된 힘 / 농촌 도로에는 왜 인도가 없을까? / 정의로운 음식과 정의로운 사람 / 공동체에서 조화롭게 살기 / 경고? 부탁? 협박? 고백의 언어 / 사람이면 다야? / 밥상을 점령한 유전자조작식품 / 나도 가해자다 / 살충제 달걀, 육식 문화가 문제다 / ‘혁명’과 ‘깨달음’ / 북핵 운전석 앉으려면 미국 움직여야 / “동물복지농장에 대한 살처분을 중단해 주십시오” / 상업성 친절의 뿌리, 공짜 점심은 없다 / 농민기본소득, 또 말하기 입 아프다 / ‘가빠 농법’으로 풀 관리하기
책속에서
P. 14~16 명상을 마치고 열이틀 만에 내 휴대전화와 책, 필기도구를 돌려받고 든 생각은, 평소에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참 많이 하며 산다는 것이었다. (중략) 감각에 매이지 않고 단지 바라볼 수 있는 힘, 그 힘을 기르는 일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닥친 일을 바르고 조화롭게 처리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P. 37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곳에서 일하는 그 후배는 늘 긴장이 연속되는 상황에 있었고 긴장은 사건과 사고를 유발했다. 악순환이었다.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오르내렸다. 그에게 ‘요란스럽게 반겨 주는 놀이’를 제안했다. 사소한 일들에도 한꺼번에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는 ‘놀이 시간’을 가져 보라고 했다. 특별한 조건이 없이 해 보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접기
P. 44~45 지난겨울은 추위가 유난히 심해서 난방비가 많이 들었다고들 하는데, 가만히 돌이켜보니 우리 집 난방비는 거의 제로(0)에 가까웠다. (중략) 보일러가 없다. 전기장판도 안 쓴다. 대신 아궁이에 불을 때 방을 덥힌다. 그래서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 스위치만 건드리면 난방이 되는 게 아니고, 몸 노동이 필요하다. 나무를 해 와야 하고 (중략)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지냈던 친구는 이를 두고 ‘참으로 신성한 일용할 노동’이라고 찬탄을 했다. 접기
P. 68 (겨울나무는) 추위가 몰려오는데도 껴입지 않고 도리어 한 꺼풀씩 벗는다. 엄한 겨울을 견뎌야 할 자연의 겨울 채비는 실은 봄 채비다. 꽃 피울 새봄을 위해 벗고 버리는 것이다. 비상시국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자연의 가르침이다.
P. 74~75 도리깨질은 칼질 노련한 외과의사 못지않은 정교한 타격이 요구된다. 한 마당만 두드려 주고 가리라 했는데 순애 씨의 입꼬리가 양 귀에 걸린 모습을 보고 한 마당만 더 인심을 쓴다는 게 들깨 다발이 한마당 거리만 남게 되었다. (중략) 내가 도리깨를 내려놓았을 때는 타작마당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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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질 때가 많다. 그것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일상의 생생한 체험과 실천으로부터 우러나온 살아있는 글이기 때문일 게다.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에서부터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긴 ‘리얼 다큐 수필’들을 한 편씩 시청하다 보면 따뜻한 된장 국물처럼 위로를 얻을 때도, 혹은 겨울산 약수처럼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을 것이다.
- 윤덕현
그의 발길 따라 글맛이 다르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를 닮은 입담이 세태를 밝히기도 하고, 질긴 실사구시의 쓴소리가 영성 회복을 일구기도 한다. 줄기차게 자기성찰하며 발품 파는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의 땀내가 향기로 퍼지기를 바란다. 틈날 때마다 맨발걸음하는 그가 맘 편히 디딜 곳이 많도록.
- 김유경 (예술평론가, 자유기고가)
온전한 존재로 성장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한울님을 ‘모시고 살리는’ 일상의 삶을 엮은 선생의 글은 읽는 재미와 독서하며 얻는 성찰도 크다. 삶을 수행처럼, 수행을 삶으로 행하며 얻은 통찰 덕분에 하루하루가 신비의 연속이고 매 순간이 신성함을 깨달으니 어찌 感於物 謝於心(감사)하지 않으리. 행함은 부족하고 말만 많은 시대. 行으로 마음 길 내는 힘을 선생에게서 받아 모신다.
- 최현미 (중학교 교사,『나는 오늘도 교사이고 싶다』공동 저자)
저자는 묻는다. 먹고살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그만큼 벌면 나는 행복할 것인가. 내 돈벌이는 생태윤리적으로 당당한가.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하는 이야기를 엮었다. 나도 살고, 농사도 살고, 땅도 살고 그래서 지구도 살 수 있는,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의 지혜가 아름답고 즐겁다.
- 강성미 (사단법인 유기농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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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9년 4월 10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전희식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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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농부이자 생태영성운동가다. 1994년부터 완주에서, 2006년부터 장수에서 농사짓고 산다. 천부부모를모시는사람들 대표로 있다. 치매 어머니를 모신 이야기를 담은 《똥꽃》,《엄마하고 나하고》를 비롯해 농사 생활의 생태적 각성과 우리 농업 문제에 대한 통찰을 담은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 먹다》, 《시골집 고쳐 살기》,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아름다운 후퇴》, 《소농은 혁명이다》, 《하늘이의 시골일기》을 썼다. 최근 《어쩌면 지금 필요한 옛 농사 이야기》를 펴냈다.
최근작 : <지구별 생태사상가>,<개벽의 징후 2020>,<마음 농사 짓기> … 총 2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글 쓰는 농부, 마음 농사를 짓다!!
농사, 농업, 농부, 농촌
한때 ‘아스팔트농사’가 유행이었다. 쌀이나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위해, 농민들이 서울로 몰려와 아스팔트를 점거(?)하고 투쟁을 벌인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쌀농사가 오래되었다지만, 그에 못지않은 건 ‘자식농사’다. 전통적인 의미야 어쨌건 간에, 지금으로서는 자식들이 정의롭고 자주적이며 행복한 삶을 산다면,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겠다. ‘도시농업’이라는 말이 생긴 지도 오래 되었으니, 도시농부가 있는 건 당연하다. 초기에는 ‘텃밭’ 등에 한정되었으나, 이제 생물 다양성 보전, 기후조절, 대기정화, 토양보전, 공동체문화, 정서함양, 여가지원, 교육, 복지 등의 다원적 가치를 도시에서 구현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 농업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전반적인 활동을 일컫는 말로 확장되었다.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
이러저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농사란 단지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농촌에 사는 농민들이 도시로 올라오고, 도시 삶에 찌든 사람들이 귀농하는 것만이 농사 문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어느 경우든 농사란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를 가리키는 속 깊은 뜻을 가진 단어임을 알 수 있다. 결론을 말하면, 농사란 기르는 일이다. 씨앗을 심고서 기다리는 일이다. 비를 기다리고, 햇빛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며 그것들을 모시는 일이다. 기르는 것, 기다리는 것이 시간을 따라 흘러가되, 그것에 정성을 들이는 일이 농사다. 그 정성들임을 일컬어 ‘살림’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모두가 농부, 농부가 하는 일이 모두가 농사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가 된다. 그러므로 농부는 도시에도 있고 농촌에도 있다. 학교에도 있고 병원에도 있고, 촛불광장이나 공장, 바닷바람 드센 배 위에도 농부는 있다. 기르는 사람, 살리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정성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농사가 된다. 먹을 것을 기르는 일, 입을 것을 만드는 일, 살 집을 만들고 가꾸는 일, 함께사는 세상, 더불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이 모두 농사가 된다.
세상에는 ‘20모작+’을 하는 농부도 있다
오직 내 한 몸으로 지탱하고 경작할 수 있는 농사에 충실한 농부도 있지만, 세상의 심어서 기르고 살리는 정성이 필요한 온갖 일들에 두루 손품과 발품, 하다못해 말품이라도 파는 농부도 적지 않다. 『마음 농사 짓기 –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의 저자 ‘글쓰는 농부 전희식’이 바로 그런 경우다. 『똥꽃』을 위시해서 『소농은 혁명이다』에 이르기까지 이미 여러 권의 저서를 낸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는 ‘글쓰기’와 ‘(작물)농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전국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품앗이에 여념이 없다. 그가 간여하는 농사일들을 헤아려 보면, 20모작은 너끈히 되고도 남는다.
도리깨질에서 지구의 미래 걱정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그의 농사 너머의 농사일을 눈에 띄는 대로만 언급해 봐도 이는 금방 드러난다; “마음(영성)수행, 민주화운동 역사증언, 이웃 할머니와 어울리기, 마실 다니기, 농촌 체험 단체손님 안내, 해외 명상 유적 탐방, 귀농과 마음수양 강연, 동네 쓰레기 청소, 환경 친화적 난방(땔감나무), 강아지 분양, 농사 용품 재활용, 친환경 생활여건 조성 공공신고 활동, 촛불시위 참여, 동네 어른들 봉양, 동네사람들, 농부의 시각으로 세상 바라기, 농업 관련 국제행사 참가, 귀농 강연, 시민사회활동, 한울살림 활동, 한울농법 보급, 사회장 장례 치르기, ‘\소농혁명운동, 핵전반대 활동, 동학 활동….”
모든 농사는 마음 농사로 통한다
개인적인 활동이든, 긴급한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활동이든 그는 모든 ‘농사현장’에서 단지 당면한 농사일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거리감을 잃지 않고 반성과 조심을 거듭한다. 그 하나하나가 마음 농사짓기이다. 백남기 농부 또는 의로운 한 교장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 지나가던 마을에서 우연히 일손을 거들게 된 도리깨 타작마당에 이르기까지, 서울 광화문에서 중국의 한 농촌 마을에 이르기까지 그의 마음 농사짓기는 계속된다. 분명히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에서도 그는 관성적으로 사람과 사건을 대한 태도를 스스로 경계한다. 뿐만 아니라 사물 하나하나에도 그의 마음은 소홀하지 않는다. 동학의 경물(敬物) 사상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체화(體化)되고 심화(心化)되고, 의식화(意識化)되어 있다. 그 눈으로 사람과 만물을 바라보고 그 마음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그 마음을 따라 실천하고 살아간다.
성내지 않는 그 마음이 살리는 마음
일이 많다고 바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늘 챙긴다고 긴장된 삶의 연속은 더더욱 아니다. 저자가 스스로 “어떤 조건에서도 긴장 없이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일상. 시골에 살면서 겪는 여러 일화들 중심으로 정리한 글들”(9쪽)을 모았다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농촌의 삶’이 선사하는 평화와 행복을 만끽하며 산다. 이제는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평소에 그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성을 안 내는 기 고마워. 늘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205쪽)라고 말한 그대로 그는 치열한 전투 현장이든, 해학과 풍자 넘치는 마을에서든 웃는 표정과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기다려주고, 함께해주고, 살리고, 기른다. 그 갈피, 순간마다 그는 ‘나를 알아챈다.’
이야기를 만들다, 기록하다, 노래하다
그러고 보면 농사 중에서도 제일은 마음농사다. 마음농사는 쌀농사나 다른 농사를 뒷자리에 놓는 농사가 아니라, 그것을 모시는 농사다! 마음농사는 그 자체로 살리는 일이다. 마음으로 짓는 농사요, 마음을 짓는 농사다. 농사를 짓되 마음에 거리낌을 남기지 않는 농사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음을 기르는 농사다. 글쓰는 농부 전희식은 그 갈피와 순간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노래한다. 스스로 정의하기를, 그 마음 농사짓기는 모두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마음 농사의 시간은 소중하다. 이야기를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들이 소중한 것은 그곳에 공감이 담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담은 다시 시간을 따라 그 공간(마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야기텃밭이다, 생각의 텃밭이다, 마음의 텃밭이다.
지금 왜 다시 마음 농사인가?
귀농귀촌은 이제 ‘하면 좋은 것’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나는 자연인인다!’ 같은 프로그램이 장년층에게 인기 프로그램으로 고정되는 현실이다. 무엇 때문일까? 1인당 소득 1000불일 때도, 자식 둘셋은 대학을 다녔는데, 소득 3만 불이 되어서는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들고 50, 60대는 일할 곳이 없는 데 산업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하고, 5000만이 넘는 인구에도 ‘출산율’이 안 오른다고 아우성인가. 무엇 때문일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숙고하기보다 여전히 외형의 크기와 성장 신화에 매여 있는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마침 3.1운동 100주년이지 않은가.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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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우리 몸과 마음을 살리는 길
귀농해서 살고 있는 전희식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몇 년에 걸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일들을 겪어가는 농부의 일상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나오고, 우리나라 정치의 모습도 나오고, 농사에 관한 전희식의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원하는 것은 농사는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 어떤 존재 하나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 하나만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과 공생이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 바로 농사라는 것.
그런 농사의 바탕은 바로 마음이고, 그러므로 농사는 곧 마음 농사이기도 하다는 것. 우리가 마음 농사를 잘 짓는다면 사회가 어지러워질 이유가 없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있는데 어떻게 혼란한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겠는가.
그가 촛불을 보면서 한 생각도 바로 이것이다. 특정 권력자를 쫓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삶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촛불이 지닌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촛불이 권력자들의 모습만 바꿔놓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농사에 대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우리 삶에 기본이 되는데, 그 먹을거리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회는 암울한 미래로 나아갈 뿐인데...
농사를 짓지 않으면 오히려 잘한다고 장려금을 주는 나라, 농민들이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나는 사회에서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고 하면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되받아치는 사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수만 잘 사는 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농사를 무시하고 어떻게 성장이 지속될 수 있단 말인가. 전희식은 그점을 답답해 한다. 그래서 그는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먼저 소득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최고임금상한제... 아니면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과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의 차이가 20배를 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내야 한다고... 그 차익은 다른 사람에게 써야 한다는 것. 만약 돈을 더 벌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임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고...
차액으로 남은 이익들은 복지나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귀농해서 살아간다고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귀농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함께 살아감이 중요함을 농사를 지으면서 매순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희식의 글은 농사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농사에 대해서, 어떤 농사가 바람직한지, 또 농사를 통해서 우리는 공생의 의미를 깨우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교육에 대해서 지금 말들이 많다. 공정을 추구하는 정권에서 공정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입시의 공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대학입시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교육에서 농사를 다뤄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농사에 대해서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그렇게 흙을 만지고 다른 생명을 기르고, 그 생명으로 인해 살아감을 깨우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냥 지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농사를 통해서 공정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데,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지니게 할 수 있는데, 또 인간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게 할 수 있는데, 미세먼지, 기후변화 이런 것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교육개혁에서 농사는 다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학생들은 삶에서 농사를 저 먼 우주, 우리가 알 수 없는, 가지도 못하는 우주 이야기로 인식하게 된다. 아마도 전희식이 강연을 거절하지 않고 다니는 이유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못한 이런 농사에 대해서 학생들이 조금이라고 알려주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에게도 농사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고 있으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즐겨본다는데, 그들 자신이 바로 그런 자연인이 아니더라도 자연인처럼 자연과 동화되어 살 수 있음을, 농사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 운운하는 이때,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농사가 시대를 이끄는 길임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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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9-09-27 공감(1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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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농사 짓기] 농부 전희식이 들려주는 ‘리얼 다큐 수필‘
농부 전희식이 들려주는 '마음 농사 짓기'라는 제목만 보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 책이 나의 마음에 이렇게 울림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것은 일단 읽고 보니 안 읽었으면 후회했을 법한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들려주는 이야기『마음 농사 짓기』는 다양한 주제로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전희식. 글 쓰는 농부이자 생태영성운동가다. 도시에 살다가 1994년부터 전라북도 완주, 2006년부터 장수에서 농사짓고 산다. 농민단체와 생명평화단체, 채식과 명상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마음 농사 짓기-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도 결국은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라는, 그런 시간을 살자는, 마음의 심층을 꿰뚫어보자는 권유라고 할 수 있다. (5쪽_머리말 中)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농부, 마실을 나가다', 2부 '농부, 더불어 살다', 3부 '농부, 세상 속으로 가다'로 나누니다. 나를 알아채는 시간, 30년 저 너머에, 단순하게 살기와 잡동사니, 백중 풀베기, 막상막하 연극놀이, 자연농법과 한울살림, 잘 먹는다는 게 뭘까, 촛불광장에 서서, 동학농민군과 세월호 참가, 영덕의 핵전 막기, '진보'의 신개념, 재생에너지는 영원한가?, 농촌 도로에는 왜 인도가 없을까?, 밥상을 점령한 유전자조작식품, 나도 가해자다, 동물복지농장에 대한 살처분을 중단해주십시오, '가빠 농법'으로 풀 관리하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머리말부터 공감하며 읽어나가게 되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세상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농부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명상도 하러 다니고, 자동차를 없애고 자전거를 타거나, 집에 냉방기와 선풍기는 안 들이는 고집도 있다. 세상 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에는 높일 줄 아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농촌에서의 삶이 궁금해서 읽어나갔지만 그곳에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여행을 가거나 명상 혹은 연수를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기대 이상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질 때가 많다. 그것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일상의 생생한 체험과 실천으로부터 우러나온 살아있는 글이기 때문일 게다.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에서부터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긴 '리얼 다큐 수필'들을 한 편씩 시청하다보면 따뜻한 된장 국물처럼 위로를 얻을 때도, 혹은 겨울산 약수처럼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을 것이다.
_윤덕현 (다큐멘터리 감독,『가슴의 대화』저자)
이 책은 읽기 전보다 읽으면서 글의 힘을 느낀 책이다. 각각의 글이 <경남도민일보>에 실렸거나 <불교신문>, <오마이뉴스> 등에 썼던 글을 묶는 등 이미 발표한 글이기에 완성도가 더 높은 글을 엄선해서 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느낌으로 책을 접하든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줄 책이라 생각된다. 그야말로 '리얼 다큐 수필'의 진수를 볼 수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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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2019-04-12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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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갈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책..
마음 농사 짓기 조금 생소한 책 제목 때문에 책을 선택해서 읽게 되었다.
친환경농사 관련 도서인가? 아님 시골로 내려간 도시사람 얘기인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농사 관련도서가 아닌 읽는 사람들에게 시골의 따뜻한 모습과
감성을 전달해주는 책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정도로 농사관련 내용보다는 저자 자신이
시골 생활에서 겪고 느끼는 삶의 한부분을 표현한 책으로 보는것이 맞을듯 싶다.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농사에 전념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시골이 좋아서 도시생활하다가
시골로 내려가서 시골생활 이야기과 채식, 명상 관련 책을 쓰고 여기저기 바쁘게 강의도 하면서 살아가는
농부 보다는 농부의 마음을 가진 전형적인 마음이 시골인 사람으로 생각해볼수 있다.
책의 내용은 3부분으로 1부는 자신의 시골생활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다면 2부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생활 모습에 대한 궁금한 내용을 다루는 시골생활의 궁금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였고 3부에서의 내용은 우리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하는 사회문제까지
커져가는 먹거리 문제에 대한 내용으로 많은 의견과 생각이 필요한 책으로 시작은 궁금함으로 책을 읽었다면
마지막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말고 어서빨리 고치고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중요한
사항에 대한 내용까지 다루어서 사회적 이슈 문제로 크게 생각해봐야 되는 내용으로 1부에서는 작은 개인적인 사실 내용을
다루고 2부에서는 우리라는 생각으로 좀더 커다란 내용을 만들어 갔다면 3부에서는 모두의 문제로 아주 커다란 사회문제까지
그냥 농부가 아니라 책 내용 그대로 세상속으로 가는 농부를 심도있게 이끌어 보인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예전에 있던 시골 인심도 사라져가고 먹거리 농산물로 기업에서 장난으로 인해서 우리가 가정의 식탁의 의험해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의 모든 시작이 땅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끝나는 것인데 사회가 너무 이익을 보기위해서 어서빨리 달라져야 함을
이책 곳곳에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촛불광장 이야기..
세월호 참사 이야기..
살충제 달걀 이야기.. 등등 이제는 달라지지 않으면 모두가 함께 사라져버리는 위기의 단계까지 왔음을 인지하고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고 이제라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밝은 미래가 없음을 저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알리고자 강연회와 세계 여러곳을 다니며 알리고 있다.
지금은 저자 하나의 작은 소리로 생각 되지만 모두 함께 외친다면 커다란 소리가 될수 있음을 인지하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저자의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므로해서 나부터도 아주 작은것부터라도 실천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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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mhanmail 2019-04-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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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주장도 아니‘고 ‘특별하지도 않은‘ ? - [마음 농사 짓기]
'별난 주장도 아니'고 '특별하지도 않은' ? - [마음 농사 짓기]
'글 쓰는 농부'이자' 생태영성 운동가' 의 글을 만난다. 요란 떨지 않고 말 그대로 차분하고 소소하고 마땅한 이야기들이다. 쉬 읽히고 쉽게 다가온다. 책장을 넘기는 게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하다. 물론 적극적?으로 자극적인 글을 찾아 만나는 내게는 참 많이도 심심하고 담백한 그러 이야기들이다.
오늘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라 ( ~ ) 오늘의 나는 오늘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과거 모든 순간들의 총합이라는 ( ~ ) 과거 어느 한 부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두는 한 덩어리로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 ( ~ ) 별난 주장도 아니요 특별하지도 않은 진리다 (19)
세상은 뭐가 바뀌어야 달라졌다고 할 수 있는가. 세상은 ㅜㅁ엇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거기에서 나는 무엇인가. 어디쯤에 위치하는가. (20)
살아가며 문득 던져 보았거나 생각해보았던 질문들이 곳곳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농부의 발길을 따라가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있구나, 그렇지 나는 도시생활을 하는 '생태'도 '영성'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그러다가 늘 알고 있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눈길이 멈춘다.
"정리정돈의 핵심은 제자리에 놓기가 아니라 버리기" (30)
조건을 따지지 않고 수용하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박수와 환호로 상대를 반기는 것, 자연의 속성이 그러할 것이다. (37)
그래서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이리라. 너덜너덜해지는 일상 속에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평소 지나치던 순간을, 뻔한 이야기를, 다른 눈으로 다른 소리로 들려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가 아니라 '차레'라는 말과 '저를 드린다'는 '절'의 어원까지, 신선하고 설득력 있는 얘기들이다.
차례가 아니고 차레하는 것이다. 차례(茶禮)는 한자말의 훈에 있듯이 차를 올려 제사를 지낸다는 것으로 물이 탁해서 늘 차를 달여 마셨던 중국 얘기이고, 앞뒷산에 약수가 철철 흐르는 우리나라는 차례가 아니라 차레를 했다는 것이다. 차레는 채우고 비운다는 뜻이다. 모든 재례는 결국 채우고 비우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워 내고 나서 채우는 게 아니라 맑고 밝은 사랑과 용서와 포옹으로 채워 나가면 탁하고 어리석은 욕심스런 것들이 그냥 비워진다는 얘기다. (69)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일러 주었다. "절을 드린다."는 "저를 드린다."가 어원이라고 (203)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바라보게 될 다양하고 넓은 시선, 몸과 마음의 이분법을 넘어 도달하는 지점, 밖과 안에서 동시에 싸워야만 이룰 수 있는 그 '어떤 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어떤 혁명도 개인의 버릇과 삶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면 실패하는 법이다. 한 개인이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바뀌고 그 변화가 사회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고 본다. (113)
내용과 형식, 안과 밖이 하나 되는 삶이란 지루하고 길고 힘든 시간을 거쳐야만 다다를 수 있는 곳이리라. 그렇게 분투하고 채우고 버리며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고민해야겠다. 그러니까 심심하고 담백하게 보이던 책 속에서 이처럼 여러 생각의 뿌리들이 쏟아져 나오니 지루할 틈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글 쓰는 농부'이자' 생태영성 운동가' 의 소소한 일상이.
먹고살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그만큼 벌면 나는 행복할 것인가. 꼭 그렇게 벌고 쓰고 살아야 하는가. 내가 쓰는 돈이 다 나를 살리는 지출인가. 나를 도리어 지치게 하는 지출인가. 내 돈별이는 생태윤리적으로 당당한가. 전 세계인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써도 괜찮은가 (186)
내 대답은
"뜨끔"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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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2019-04-2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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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농사 짓기
마음농사짓기
1998년 12월 6일 우리 부부가 결혼한 날이다. 햇수로 20년이 되었다. 성격이 많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이런 싸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경상도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과 큰 목소리가 꼭 싸우자는 듯하다. 게다가 성격이 느긋한 것 같은데 급하다. 그래서 버럭 거리기 일수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버럭이 아빠라고 부를까? 매년 신년 계획을 세울 때 1차 목표가 다정다감으로 삼는다. 물론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세상살이가 만만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가족에게 주는 고통이 작은 것이 아니다.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 [마음 농사짓기] 와의 만남은 7년 대한에 만난 한줄기 단비와 같다.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날 좋은 날을 가려 씨앗을 심어서 온 정성을 드려 보듬어 주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랑을 나누며 기다려 주는 것, 그렇게 결실을 맺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꼭 결실을 거둬야겠다. 는 마음 또한 욕심이다. 그것조차 내려놓고 편안함으로 만나는 것이다. 책에는 그런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 더욱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두려워한다. 혼밥, 혼술, 혼영등 혼자서 즐기기를 원한다. 이것이 단지 혼자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혹시 누군가와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닐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마음 농사짓기] 이럴 때 이 책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생태농부 전희식이 일상에서 펼치는 다양한 마음씀씀이가 두려워하는 당신을 잘 감싸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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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학 2019-04-1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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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화병의 인문학 : 근현대편
알라딘: [전자책] 소농은 혁명이다: ‘똥꽃’농부 전희식이 꿈꾸는 희망농촌
알라딘: 길을 찾아서 최민자 (지은이) 1997
길을 찾아서
최민자 (지은이)까치199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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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쪽
책소개
실재와는 유리된 지적 희론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저자 및 역자소개
최민자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 現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 정치학 석사
● 영국 켄트대학교(University of Kent at Canterbury) 정치학 박사
● 중국 북경대학교 객원교수
● 중국 연변대학교 객좌교수(客座敎授)
● 1994년 장보고 대사의 해외거점이었던 중국 산동성에 장보고기념탑 건립(건립위원장, 현지 문물보호단위로 지정)
● 1999년 중국 훈춘에서 유엔측 대표, 중국 훈... 더보기
최근작 : <동학과 현대 과학의 생명사상>,<호모커넥투스>,<전라도 전주 동학농민혁명> … 총 21종 (모두보기)
최민자(지은이)의 말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나룻배가 필요하나, 언덕에 오르기 위해서는 배를 버려야 한다. 그런 까닭에 원효대사는 손가락에 의지하여 손가락을 여읜 달을 보여주는 것과 같인 언설에 의지하여 언어가 끊어진 법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른바 "무리지지리 불연지대연(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의 경계를 보여줌이다.
도리 아닌 지극한 도리, 긍정 아닌 대긍정, 실로 상대적 차별성을 떠난 여실한 대긍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존재와 비존재, 주체와 객체, 사유와 실재, 속제와 진제의 이분법이 완전히 폐기된 경계, 이 보편의식이야말로 인류구원의 의힉이요 생명수다.
동서양 사상을 넘나든 현대의 구도자의 모습.
서양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정치외교학 교수가 우리의 道(도)를 깨우치기 위해 행한 구도 자세가 무척 흥미롭고 대담함에 놀랍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세상에 드러난 모든 物像(물상)은 끊임없이 영원이라는 심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했듯이 이 책은 언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실제와 지적 戱論(희론: 말장난)의 위험성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감히 나의 짧은 경험에서 도출하는 형식으로 써 보았다.'라고 밝혔듯이 학문과 인생을 공부해 오며 체험한 바를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것이다.
조용하게 공부하기 위해 암자와 수녀원에서 지냈듯이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진리는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롭게 인용하고 설명하고 있는 점이 시원스럽다.
미국과 영국에 유학해 학위를 취득하면서 체험했던 이야기들. 귀국해서 교수가 된 다음 스승에게서 들은 왕진인이라는 전설 속의 인물을 찾아 나선 구도 여행(모험) 등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되면서 동서양의 사상들을 묵상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일 것이다.
특히 낮에는 학교에서 강의하고 밤에 산 속 동굴에 들어가 修道(수도)를 더욱이 여자로서 三七日씩 여러 번이나 했다는 것이 범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선뜻 가지 않지만, 그런 구도 정신이 부럽기만 하다.
또한 재야사학과 만나게 되면서 역사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도 중요한 대목이다.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이란 사회적 상황 속에서 태어났고 역사적 변천을 거치면서 발전되어 왔기에 역사에 대한 안목이 정립되어 있어야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적인 서양의 정치 사상을 연구하면서도 학문과 일상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동양의 道(도)를 공부하기 위해 정진했기에 깊은 주제를 담담한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쉽게 살아가기만 하려는 세태 속에서 끊임없이 보다 근본적인 것을 발견하고 추구하려는 저자의 자세가 귀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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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삶 2000-06-09 공감(0) 댓글(0)
알라딘: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
최민자 現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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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동학과 현대 과학의 생명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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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말
최민자
● 現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 정치학 석사
● 영국 켄트대학교(University of Kent at Canterbury) 정치학 박사
● 중국 북경대학교 객원교수
● 중국 연변대학교 객좌교수(客座敎授)
● 1994년 장보고 대사의 해외거점이었던 중국 산동성에 장보고기념탑 건립(건립위원장, 현지 문물보호단위로 지정)
● 1999년 중국 훈춘에서 유엔측 대표, 중국 훈춘시 인민정부 시장, 러시아 하산구정부 행정장관 등과 중국·북한·러시아??3국접경지역 약 2억평 부지에 유엔세계평화센터(UNWPC) 건립을 위한 조인식(UNWPC 건립위원장)
● 저서로는
- <천부경>(2006년),
- <생태정치학>(2007년)에 이어 최근 펴낸
-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모시는사람들 발행)는
★ History Salon/History 16. 2. 1
성신여대 최민자 교수님과 관련된 유투브 영상 몇 개 담아봅니다.
이 분은.. 최태영 선생님 특집 프로그램을 나눠놓은것으로 추측되는 유투브를 통해 알았었구요.
찾아보니 강의영상도 있고... 이력이 화려하시더군요.
최근에는 역사나 통섭적 관점에서 여러 작업을 하고 계신거 같습니다.
교수님 학교 홈페이지 : http://web.sungshin.ac.kr/~mzchoi/profile.htm
프로파일 : http://web.sungshin.ac.kr/~mzchoi/profile.htm
정치학 교수를 하시면서 새로움이나 도전 이런 부분을 느끼지 못하셨던거 같습니다.
그 당시 명상을 하시면서 정신적인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하시고, 그러다가 역사를 접하시면서 삶이 많이 변화되신거 같네요.
제 막연한 추측에는... 아마도 "단월드"쪽에서 명상을 배웠던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단월드에 대해 특별히 아는바는 없지만, 좋은 느낌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총장인가 하는 이00 분 얼굴만 봐도 느낌이 오죠... 저는 그냥 수련에 관심이 있어 단월드 방문을 해본적이 있는데...
비치된 행사관련 리플릿 같은거 보곤... 종교냄새가 많이 풍겨서 그날 바로 맘 접었었던 기억이 있네요.
나의 스승 최태영을 말한다
유익하고 최태영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전해들을수 있어서 좋네요
최태영 선생님이 겪으신... 국내 사학계의 만행도 언급이 좀 됩니다...
일본 극우와 다를바 없죠...
https://www.youtube.com/watch?v=eh7Sa3noHos
마지막 발언 부분 멋있네요....
양자 역학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상고시대 천부경과의 연관성.... 언급을 하시고
상고사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시원을 연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류의 시원을 연구하는 것이고,
바로 21세기 전일적 패러다임 원형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 상고사를 복원해야 되는 것이다.
천부경과 국학
천부경 강의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저런 강의들이... 신뢰할만한 분들이 쓴 건... 다들 옛분들이라... 요즘 사람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느낌이고
나머지들도 다.. 글로만 접해서 그런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말로 설명하는 강의를 들으니 아주 잘 이해가 되네요.
설명의 방식은 이 분과 비슷한 류도 본적이 있는거 같고, 다른식의 해석들도 본거 같습니다.
뭐가 더 나은 해석인지 결국 다 한 길로 가는건지 그런거까진 잘 모릅니다.
최교수님 천부경 책도 시중에 있습니다. 좀 두껍긴 한데... 책도 괜찮아 보였어요. 구입 예정^^
아흔에 만난 늦둥이 제자 최민자 교수님
특집 프로그램의 일부분인거 같습니다. 이 특집 방송이.. 유투브에 여러편으로 나눠져 있는데... 제가 다 봤는지 일부만 봤는지는 모르겠네요. 담에 따로 이 프로그램 유투브를 한 게시물에 모아둘께요.
출처: https://blog.tastegod.co.kr/657 [TasteGod's 'Epic 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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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을 국학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전은경 기자
ekjeon@ikoreanspirit.com
승인 2011.02.09 10:00
제 92회 국민강좌 최민자 성신여대 교수 '천부경과 국학' 강연
사단법인 국학원은 제 92회 국민강좌를 2월 15일 대한출판문화협회(서울 종로구)에서 개최한다.
이번 강좌에는 성신여대 교수와 동학학회 회장인 최민자 교수를 초청했다.
최민자 교수는 영국 켄트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였으며 한민족 전통사상의 핵심 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900쪽 분량의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주해집을 출판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동학학회의 근세 민족 자주운동의 큰 획을 그은 동학혁명의 정신과 사상을 연구하고 활동하는 동학학회의 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민자 교수의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 주해>, <동학사상과 신문명>, <길을 찾아서>, <천부사상과 신문명>, <단군조선의 건국이념과 한민족의 연합방안>, <남북 화해를 위한 제언>, <동학의 현대과학과 생명사상> 등 다수가 있다.
이번 강의 주제는 '천부경과 국학'으로 한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을 국학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해 보는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국민강좌는 2002년 7월 이후 매월 둘째 주 화요일에 개최되며, 누구나 참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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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자연·문명의 조화를 위한 '생태정치학'
김정미 기자
승인 2007.03.27
성신여대 최민자 교수
국가주의와 성장주의의 한계에 갇혀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반생태적이며 반생명적인 현실을 해소할 상생의 대안이 제시됐다.
자연과 인간,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패러다임 이름은 곧 생태정치학. 성신여대 최민자 교수는 '근대의 초극을 위한 생태정치학적 대응'을 부제로 단 '생태정치학'(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을 펴냈다.
생태 위기를 동양적 지혜로 풀어낸 이 책은 우선 생명 현상이 개별 유기체의 속성이 아니라 거대 우주 시스템의 속성임을 강조한다.
동양의 천부사상과 힌두사상, 유·불·도, 동학사상과 현대 과학의 접합을 통해 서구 중심의 생태 이론을 극복하고 '대안적 생태정치학'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밝힌다. "오늘의 인류가 겪고 있는 반 생태적, 반생명적 삶은 허위의식에서 비롯된 존재와 의식의 괴리에 기인한다. 본체와 작용의 유기적 통일성을 인식하는 바로 거기에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다."
최 교수는 한국 생태정치학의 과제로 패러다임의 전환, 존재론 및 인식론의 재정립, 생태정치학과 현대 물리학, 동양사상과의 학제적 접근을 꼽았다.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이 생태정치학적 논의의 기본 틀을 형성하고 서구 생태론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시사점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700페이지 분량의 책 속에서 중심을 이루는 주제는 명료하다. 지금까지의 생태론이 국가를 극복 대상으로 여기는 아나키즘적 성격이 짙었다면 세계화 시대를 맞은 지금은 국가를 생태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 이슈라는 것이다. 또한 대안을 제시하는 주체는 생태론자들이 아닌 바로 정부라는 것.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선 의식의 변화와 더불어 제도적 차원의 조정을 통한 생태적 가치 활성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대 관료주의를 배격하기 위한 공동체성 회복과 생태적 리더십, 지속가능한 녹색 거버넌스 실현은 이제 국가론과 시민사회론을 넘어, 국가적 공공성과 지방적 자치권의 조화가 필수라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부산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영국 켄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북경대학교와 연변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김정미
*생태정치학이란
인간 사회의 핵심이 되는 생명 근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상호의존성, 통합성에 의거한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서 생명계와 정치, 경제,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지금까지 정치학이 지배와 복종의 이원화된 구조에 입각해 생명을 죽이는 권력정치에 천착해 왔다면 생태정치학은 전 우주권으로의 의식 확장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김정미 기자 warm@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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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본질은 생명…정신·물질 이원론서 벗어나야"
송고시간2018-01-03
박상현 기자기자 페이지
최민자 교수의 신간 '빅 히스토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우주의 본질 자체가 생명이고 생명의 전일적 흐름과 연결되지 못한 것은 결국 허구다. 생명 차원의 통섭을 배제한 거대사(빅 히스토리)란 시간의 파편들의 단순한 집적(集積)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사상을 전공한 최민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또다시 '생명'이란 화두로 돌아왔다. 그는 최근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한 두툼한 학술서 '빅 히스토리'를 출간했다.
최 교수는 정치학으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석사학위, 영국 켄트대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스피노자 사상을 고찰한 연구서를 펴내기도 했지만, '생태정치학'이나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 등 생명을 다룬 책을 더 많이 썼다. 교수가 된 뒤에는 한국정치학회와 동학학회에서 모두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가 내놓은 신간의 제목은 친숙하다. 2013년 국내에 번역·출간된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밥 베인의 저작과 동일하다. 두 사람은 이 책에서 빅뱅 이후 현재까지 137억 년이라는 시간을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 다양한 학문으로 분석했다.
최 교수의 '빅 히스토리' 역시 집필 의도는 다르지 않다. 그도 학문의 통섭을 통해 우주의 탄생, 생물의 진화 과정을 파헤치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시도한다.
다만 저자가 거대사에서 가장 중시하는 개념은 생명이다. 그는 크리스천이 생명을 간과했다고 비판하면서 "빅뱅으로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한다면 '애초에 무엇이 빅뱅을 일으켰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상충하는 이론인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창조적 진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이처럼 근대적 이분법을 거부하면서 "정신·물질 이원론에 입각한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현상계와 본체계의 상관관계를 조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생명을 물(物)로 귀속시키는 철학, 단선적 사회발전 이론도 부정하는 저자는 "새로운 문명을 열기 위해 우리가 처음 대면하는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며 "세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각종 문제의 해결책도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시는사람들. 808쪽. 3만5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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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은 모든 종교와 진리의 모체가 되는 원리를 담고 있다.
물병자리
2009-06-23 16:38:48 │ 조회 1475
천부경은 모든 진리의 모체
천부경은 수천년 동안 국가 통치 엘리트 집단의 정치교본이자 민초들의 삶의 교본으로서 전 세계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꽃피우게 했지요. 현재 문명 충돌의 중핵을 이루는 유일신 논쟁,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 유물론과 유심론 논쟁, 신·인간 이원론 등에 대해 그 어떤 종교적 교의나 언어적 미망에 빠지지 않고 단 81자로 명쾌하게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신여대 최민자(51·정치외교학) 교수가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을 주해한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모시는 사람들)을 펴내 주목된다. 그동안 이들 경전은 국학이나 재야 사학의 연구 대상으로만 다뤄졌으며, 주류 학계에 속한 학자의 주해서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 교수는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국내 강단에서 오랫동안 정치학을 가르쳐 왔지만, 주변에서 ‘평화주의자’ 내지 ‘생태환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장보고 대사의 해외 거점이었던 중국 산둥성에 ‘장보고 기념탑’을 건립하는가 하면, 민간인 신분으로 유엔평화센터(UNWPC) 건립 위원장을 맡아 북한·중국·러시아 3국의 접경지역인 두만강 하구 일원 2억여평을 환경생태지역으로 묶어 동북아시대의 세계평화 중심지로 탈바꿈시킬 초대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마디로 여걸이다.
천부경에 주해를 달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 9월. 총 904쪽짜리 방대한 ‘천부경…’ 주해서는 5개월여 만에 완결됐다. 그럼에도 구절구절마다 독창적 번역 솜씨를 보이는 데다 학제적으로 펼쳐내는 해설이 명징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천부경은 우리 민족을 교화하기 위해 9000여년 전 상고시대에 나온 교훈 경전으로서 내용이 81자로 압축돼 있으며, 태백산에 있는 단군전비를 통일신라시대 석학인 최치원(857∼?)이 당시 한문으로 옮겨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집일함삼(執一含三)’과 ‘회삼귀일(會三歸一)’을 뜻하는 일즉삼(一卽多)·삼즉일(多卽一)의 원리에 기초한 천부경의 천·지·인 삼신일체 사상이 유일신 논쟁을 해소할 만한 난공불락의 논리구조와 ‘천지본음(天地本音)’을 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불교의 삼신불이나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의 중핵을 이루는 천·지·인 삼신 일체의 가르침과 그 내용이 같은 것이지요.”
최 교수는 정치, 사회, 과학, 역경, 양자역학, 천문지리, 각 종교 경전 등 수백권의 문헌을 참고하며 주해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원문을 번역하고 자신이 이해한 방식으로 이를 해설했으며, 원문 번역에 주해를 붙이고 각주에서 해당 경전들과 비교 분석해 놓았다.
천부경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 의인화해 놓은 것이 360자의 ‘삼일신고’요 ‘참전계경’인데, 최 교수는 ‘삼일신고’의 중핵을 이루는 구절도 정치하게 해석해 놓고 있다.
“천부경은 단순히 우리 민족 고유 경전이 아니라 모든 종교와 진리의 모체가 되는 인류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 교수는 지구과학도 3차원, 4차원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도 천부경에서 그 비밀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리는 모두 하나로 통한다”는 그는 전 세계 종교 통합의 열쇠가 천부경의 논리 구조에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으나, 다시 ‘이름 없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는 구태여 이름을 달자면 ‘하나’라고 강조했다. “지구상의 위기는 인식의 위기입니다. 이 위기를 청산하려면 인식의 확장과 전환이 필요합니다.”
조만간 현재 초빙교수를 맡고 있는 중국 옌볜대로 돌아가 유엔세계평화센터를 건립하는 일에 박차를 가할 예정인 최 교수는 “제 책을 보고 논쟁이나 공개토론을 벌이자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고 잘라말했다.
[창간특집Ⅱ] 창간 20주년기념 특별대담 - 최민자 교수
https://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38
민족의학신문
승인 2009.07.10
한의계 희망주기 프로젝트 - 한의학에 날개를 달아주자II
“동양적가치 존중되는 시대 곧 도래할 것”
생명에 관한 眞知의 빈곤이 실존위기 초래
順天者의 역할 선도하는 한의사 기대
한의학이 생명과 연결돼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생명사상은 양자역학이 출현한 이후 과학계에서도 깊은 논의가 이뤄졌다. 한국에서는 온생명론을 제기한 장회익 교수가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인문사회학계에서도 생명을 주제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심에 최민자 성신여대 정치학과 교수가 있다.
본지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생명을 매개로 한의학의 학문적 외연을 인문사회학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미래 한의학에 희망을 탐색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생명정치론의 주창자인 최민자 교수와 지난 4일 서울 수운회관 그의 연구실에서 대담을 나눴다. <편집자 주>
대담 = 김승진 민족의학신문 편집국장
▲정치학자이신 교수님은 생명정치를 주창하고 계십니다.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오늘의 인류가 처한 딜레마는 다양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생명에 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거기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자원과 에너지의 과잉소비, 지구경제의 남북 간 분배불균형, 인구증가와 환경악화 및 자연재해에 따른 빈곤과 실업의 악순환, 민족간·종교간·지역간·국가간 대립과 분쟁의 격화, 군사비 지출 증대와 같은 현상은 생명위기가 발생하는 배경과 긴밀한 연계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러한 경고음을 무시한 채 지구라고 하는 이 우주선에 비축된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진해가며 무한경쟁이라는 반(反)생명적인 놀이에 빠져 있습니다. 생명경시 풍조에 편승한 인간의 정치 경제활동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지구의 지속가능한 능력이 한계에 이르러 지구 문명은 머지않아 붕괴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의 인류가 직면한 총체적인 인간 실존의 위기는 바로 생명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러한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까닭에 생명이라는 주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학문과 삶의 궤적은 우리 상고사 내지 사상과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 상고사상은 ‘가장 오래된 새것’입니다. 그 속에는 동서고금의 모든 사상과 종교와 철학의 정수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현대 과학의 진보라고 하는 것은 상고시대에 현자들이 직관으로 이해했던 바를 실험적으로 입증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일적 패러다임을 기용하여 혼돈 속의 질서를 찾아내려 하는 복잡계 과학 또한 그 당시에 정립되어 실생활에서도 활용되었던 것으로 드러납니다.
1부터 10까지 숫자들의 순열 조합으로써 삼라만상의 천변만화에 질서를 부여하는 천부경의 3和音(triad)적 구조(본체-작용-본체와 작용의 합일) 자체가 복잡계인 생명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정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은 모두 간 것은 다시 돌아오고 돌아온 것은 다시 돌아간다는 자연의 이법(無往不復之理)은 일체가 초양자장에서 나와 다시 초양자장으로 환원한다는 양자이론과 조응합니다.
이렇듯 상생상극(相生相剋)하는 천지운행의 현묘한 이치는 양자역학의 비국소성의 원리, 복잡계의 특성인 프랙털 구조, 자기조직화, 비평형, 비가역성, 비선형성, 초기조건에의 민감성, 분기(bifurcation), 피드백 과정, 요동(fluctuation)현상, 창발현상을 함축하고 있어 생명의 기원과 세상사의 신비를 연구하는 오늘날의 복잡계 과학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줍니다.
▲교수님의 저서인 『생명에 관한 테제를 81개조』에서 밝혔듯이 생명의 관점에서 봐야 문명의 위기를 제대로 통찰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요?
=그렇습니다. 정치사회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생명에 관한 논의가 배제되어 있어 문제의 본질에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장하고 변하여 돌아가는 현상적인 측면만 논하는 것은 마치 물은 논하지 않고 파도만 논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신에 맞서는 인간 이성의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졌음에도 근대는 진정한 인간학[생명학]을 수립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는 사실 그대로의 존재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왜곡된 인식에 기초한 학문적 불구의 산물로서 자연 억압과 인간 억압을 추동하는 원리로 작용해왔습니다. 오늘의 인류가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전 지구적 차원의 생태 재앙과 정치적·종교적 충돌, 나아가 인간 실존의 위기와 같은 총체적인 난국에 처하게 된 것은 우주의 본질인 생명에 관한 진지(眞知)의 빈곤 때문입니다.
이 우주는 분리 자체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거대한 파동의 대양[氣海]이며, 우주만물은 그 파동의 세계가 벌이는 우주적 무도(舞蹈)에 동등한 참여자로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주만물은 생명의 본체인 하늘(기운)[우주의 창조적 에너지, 一氣]의 자기복제로서의 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니 일즉다(一卽多)요, 다시 그 하나인 기운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다즉일(多卽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생명의 본질은 전체성[一]인 동시에 개체성[多]이며, 초월성인 동시에 내재성이며, 우주의 본원인 동시에 현상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양 차원을 소통하는 생명의 순환을, 생명의 근원적 평등성과 유기적 통합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문명의 위기에 대한 그 어떤 본질적인 해결책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우주의 실체는 의식이며, 지구는 의식의 성장을 위한 학습의 장으로서 생명의 정원이고 인류는 그 정원사이며 물질계의 모든 제도와 조직은 의식의 성장을 위한 학습여건 창출에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평화는 현실적인 것이 됩니다. 의식계[본체계]와 물질계[현상계]가, 본체와 작용이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물질일변도의 사고를 하지 않게 되므로 문명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길도 보이게 됩니다.
▲생명의 전일성과 유기적 통합성을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요?
=자연은 외재적인 동시에 내재적입니다. 무수한 사상(事象)이 펼쳐진 ‘다(多)’의 세계와 그 무수한 사상이 하나로 접힌 ‘일(一)’의 세계는 외재적 자연과 내재적 자연[一心]의 관계로서 상호 조응해 있으며 상호 관통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할 수 있을 때 천인합일의 의미를 알게 되고 생명의 전일성과 유기적 통합성을 자각할 수 있게 되어 진정한 자율성과 평등성이 발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배와 복종의 이원화된 구조에 입각한 권력정치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루소의 이상국가의 현저한 특징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유기적 성격으로 그 속에는 개인과 국가, 권력과 자유가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여 개인은 자신을 전체와 결합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고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자유로운 것입니다.
이러한 유기적 성격을 낳는 개념이 바로 ‘일반의지(volonte generale)’인데 그 속에는 주관과 객관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루소의 일반의지는 생명의 전일성과 유기적 통합성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한의사들도 하나의 조직생활을 하는데 종종 개인과 조직의 가치가 충돌합니다. 최근에는 조직보다 개인의 가치가 중시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개인의 의사를 중심으로 일반의지가 재구성되고 있는 과도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 문제 역시 앞서 말씀드린 큰 틀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공공선의 조화는 인류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어라 할 수 있겠지요.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우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고 심지어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우주의 진행방향은 영적 진화이며 우리 모두는 영적 진화의 지향성을 갖는 우주의 불가분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현 상황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에 저항하기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수용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의계에서도 슈바이처 같은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지요.
▲의료계 내에서도 한·양의학이 간혹 충돌을 일으키곤 합니다. 전통적 삶의 방식과 현대적 삶의 방식이 조화되는 길은 없을까요?
=전통과 현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 내에 뚜렷하게 분화할 만한 어떤 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분리의식 때문입니다. 흔히 전통적, 동양적인 것을 정신적·종합적·비과학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현대적, 서양적인 것을 물질적·분석적·과학적인 것으로 이해하지만, 이 양 차원은 생명의 본체[의식계]와 작용[물질계]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면 본체와 작용이, 정신과 물질이, 전체성과 개체성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영성 그 자체가 아닌, 감각적·지각적 경험의 대상 즉 물질적 생명으로만 인식해서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소통하는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다행히 현대 과학―특히 현대 물리학―의 눈부신 진보는 전통 학문과 종교의 영역에 갇혀있던 동양적 지혜의 정수를 과학적으로 풀어냄으로써 보편적 지식체계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점을 ‘의식의 발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신·물질 일원론에 기초한 동양사상의 정수가 현대 과학에서 실험적으로 입증되고 있으니 동양적 가치가 세계적 가치로 존중되는 시대가 곧 도래하리라 봅니다.
▲교수님께서는 장보고기념탑과 중국·북한·러시아 3국 접경지역에 유엔세계평화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새로운 동북아시대를 맞이하여 약 1,200년 전 진정한 세계인이었던 장보고의 역사적 복권이 곧 우리 민족의 역사적 복권이며, 장보고의 기개와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장보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보고기념탑 건립을 추진한 것입니다. 유엔세계평화센터 건립은 21세기 환경·문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환경생태·문화예술의 강점을 지닌 중국·북한·러시아 3국의 접경지역에서 세계적인 북 축제, 문화예술 공연, 생태관광, 유비쿼터스(ubiquitous) IT시스템 구축,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한 수소에너지 발전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이 지역을 환경생태·문화예술의 메카(Mecca)가 되게 함으로써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의 이념을 지구촌 차원으로 확산시키는 동북아의 허브로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 유엔평화대학도 이곳에 유치할 예정이며, 세계평화의료원, 대체의학연구소 등도 설립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한의학도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되며, 경쟁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한의사와 한의계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양의 순환적 발전론의 핵심은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한의계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순천자의 역할을 선도적으로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최민자 교수는? □
최민자 교수는 젊어서부터 우주와 인생에 궁금증이 많았으나 그 누구로부터도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2005년경 동학관련 논문을 쓰다 천부경을 펴놓고 사흘째 명상하는 중에 81자의 구조가 보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불교·기독교·동학 등 유사 이래 모든 종교의 정수가 3화음적 구조(불교의 法身·化身·報身, 기독교의 聖父·聖子·聖神, 동학의 內有神靈·外有氣化·各知不移)임을 알고 희열을 느꼈다. 이때의 기쁨을 그는 “사념으로 가득 찼던 머리가 한 줄기 광명이 비치면서 어둠이 일시에 사라진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우주의 이치를 알면 무의식적으로 실천하게 되고 이상국가도 실현된다고 본다.
그의 저서로는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를 비롯해서 『생태정치학』, 『천부경·삼일신화·참전계경』, 『동학사상과 신문명』, 『세계인 장보고와 지구촌 경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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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지구인문학의 시선- 갈래와 쟁점
2022/03/21
Yoo Jung Gil 놀라운 뮤지컬 [싯다르타]를 보고
Yoo Jung Gil
놀라운 뮤지컬 <싯다르타>를 보고
<와! 이거 대박...>
코로나19의 상황으로 공연계는 대단히 위축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엔터테인먼트의 여러 인연과 관심이 있어
올해들어 탈마당극 1월 22일 <아가멤논>을 봤고 다음날 23일은 대학로에서 창작 오페라 <장총>, 3월 5일 아람누리에서 <130회 두레콘서트>를 봤고, 급기야 오늘 3월 19일 올림픽공원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뮤지컬 <싯다르타>를 봤습니다.
이렇게 잘난체하는 것은 제가 나름 평균적인 한국인에 비해 한 10배는 넘게 공연분야에 관람경험이 있어 남다른 안목이 쫌(?)있다는 것을 드러내어 다음 감상의 글에 사실성의 무게를 주고 싶어서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이 뮤지컬의 스토리 흐름이 아주 좋았고, 장중하고 입체적인 음악에 놀라웠으며, 배우들의 시원하고 거침없는 성량의 노래, 화려한 군무와 무대예술 등 공연을 볼수록 몰입도가 높아진 공연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출가 고뇌를 보며 나 스스로 수행과 마음공부의 초심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향한 깊은 각성의 계기를 갖게 된 인생뮤지컬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슛도다나왕의 고통과 싯다르타의 출가>
예언자 아시타 선인은 아이가 태어나 왕이 된다면 강력한 군주, 전륜성왕이 되거나, 수행자가 되면 큰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듣고 전륜성광을 기대하는 카필라국의 왕 아버지는 슛도다나는 아들이 출가할까봐 전전긍긍 걱정합니다. 뮤지컬로 보니 그 고뇌가 다시금 구체적으로 전달이 됩니다.
인근의 강대국 코살라국이나 마가다국에서 받는 서러움 때문에 아버지는 반드시 아들이 왕이 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지만, 예민한 태자는 결국 농경제에서, 사문유관에서 생명의 고통과 중생의 고통을 보고 왜 <생명들이 서로 죽고죽이는가, 함께 행복하지 못할까>를 고뇌하며 결국 아들 <라훌라>를 낫고 출가를 하게 되는 장면에 다시금 깊은 성찰을 하게됩니다.
또한 마지막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싯다르타의 내면의 마장을 상징하는 마왕 파순 (마라 파피야스)의 유혹과 가슴을 후벼파는 그의 대사와 배우의 호소력있는 연기는 뮤지컬을 보는 내내 나에게 하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아쉬운게 있다면 옆에 노래의 가사와 대사를 보여주는 전광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웅이 아니라 한 인간의 득도 과정을 보여주는 오페라>
처음엔 부처님의 일생을 과연 어찌다 표현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의 미덕은 고통을 벗어나 깨달음을 위해, 삶의 가치와 이상을 위해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수저로 태어난 태자의 안정된 삶을 홀연히 던지고 출가하는 과정, 고통받는 생명과 가난한 중생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고행과 수행의 과정, 그리고 결국 강력한 마왕의 유혹에 갈등하고 고뇌하다 마지막에 큰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드라마적인 설득력을 갖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홀로있지 않고 연결된 인연의 존재임을 합창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아주 시원했고 깔끔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전체를 보니 개인 싯다르타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주고, 스스로 탈각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주제여서 더욱 감흥이 깊었습니다.
특히 음악에 대해 칭송하고 싶습니다. 역동적이고 힘있는 음악과 연주도 좋았지만 안정적으로 시원한 호소력 넘치는 최고 뮤지컬 경력의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는 몰입을 넘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작곡가와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노고, 배우들이 참 경외스럽더군요.
<보편적 호소력있는 세계적 뮤지컬이 되길>
실제 종교의 교조로서 싯다르타가 아니라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탈피(脫皮)의 과정에 집중된 이 내용은 유럽과 미국등 서구사회에서도 보편적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이 정도의 거대한 음악과 화려한 안무 연출이면 충분히 K-뮤지컬로서 세계성을 갖을 수 있는 한국문화 컨텐츠라고 생각되었고 실제 정말 그렇게 되길 기원합니다.
저와 함께 간 두 분도 이 공연의 화려함과 장중함, 그리고 득도의 깨달음 과정에 대한 메시지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 싯다르타가 <왜 사람들이 살려면 작은 생명을 죽여야 하는지>를 노래하는 대목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 또한 <고행을 중단하고 보통사람의 삶을 통해 깨달음을 얻겠다>고 말하는 대목에 남다른 울림이 있었습니다.
<안보면 인생의 후회>
사실 처음 이 <뮤지컬 싯다르타>공연이야기를 들은 것은 한 4년전입니다. 당시에 내가 아는 분이 대단히 열심히 공연홍보했지만 어려운 불교내의 문화환경 때문에 그다지 기대하지 않아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3월 19일은 우리 불교환경연대의 공동대표이신 태고종전국비구니회 회장 <현중스님>께서 초청해 주셔서 이런 감동의 기회를 갖게 되었군요. 이럴 줄알았으면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건데.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4월 3일까지 서울공연후에 4월 8-10일은 광주에서, 15일 17일은 부산에서, 22일-24일은 대구에서 한답니다. 꼭 가보시길...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녹색불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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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omments
Gookhyeon Hwang
원작이 헤세인가요? 책은 정말 몰입해서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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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
2022/03/19
장공 김재준 목사, 마이크 잡다
장공 김재준 목사, 마이크 잡다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 5김거성 한국기독교장로회 구민교회 목사 | 2022-03-19 10:27:52
김구학회(대표 한동우)의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 중 10편을 골라 주 2회(수, 토요일)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김구, 조봉암 등 선열들이 오늘의 시대 상황을 직시하며 나라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민족의 존엄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겨레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독백 형식의 글이다. 모든 글은 선열들이 남긴 기록들, 행적들, 역사적 사실들 등을 토대로 하여 필자의 의견을 가미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네이버 블로그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에는(https://blog.naver.com/tongwoohn/222631939375) 2020년 7월 이후의 모든 연재 글( 25편)을 볼 수 있다.
1. 김구 선생 마이크 잡다
2. 죽산 선생 마이크 잡다
3. 마륵사(마륵사) 선생 마이크 잡다
4. 일곡(유인호) 선생 마이크 잡다
5. 김재준 목사 마이크 잡다
6. 강원룡 목사 마이크 잡다
7. 스코필드 박사 마이크 잡다
8. 서인주 도사 마이크 잡다
9. 이지 스톤 마이크 잡다
10. 땅 속 운동권 마이크 잡다
평화: 남과 북의 민중을 공통분모로
이 범용자(凡庸者)가 태어난 해가 1901년이니, 올해로 만 120살이 된다. 조선 말기와 일제 침략 시기, 그리고 남북 분단 시기를 살았다. 해방 후 고향인 함북 경흥 창꼴을 끝내 가보지 못한 것도 안타깝지만,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남과 북이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무기 경쟁, 전쟁 연습에 몰두하는 현실이 한스럽다. 관광객 피살사건이나 전단 살포 등 남북 당국이 구실 삼으려면 자잘하건 크건 무엇이든 다 핑곗거리가 되는 일 아닌가. 물론 나 자신도 한국전쟁 등으로 말미암은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큰 그림에서 미래를 향해 먼저 서로 마음을 열고 가슴속의 철조망부터 걷어내 통일을 찬찬히 준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이 남과 북의 공통분모인가. 바로 남과 북의 민중 아닌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남한 동포나 북한 동포나 모두 인간이요, 이웃 아닌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닭싸움처럼 눈을 붉힌다면 언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이념이나 체제나 사상 이전에 서로가 상대를 인간으로 바라보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와 자유를 서로 인정하며 사랑으로 피차 존경하는 바탕 위에서 먼저 교류와 협력을 굳게 세워나가야 한다. 평화통일의 밝은 내일은 바로 오늘의 지향과 실천 속에 움트는 것이다."
정의: 혐오와 차별, 탐욕, 거짓을 벗어나야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나를 목사직에서 제명할 당시의 논거는 성서의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을 부인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 전부터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국내외 신학 교육기관에서는 성서비평학을 가르쳐왔고, 해당 교단 신학교도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 했다. 결국 지난 2016년 10월 해당 총회가 그 목사직 제명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사참배 참회가 7~80년 지나서 나오기도 했으니 66년이나 걸린 것도 다행히 아니겠는가.
나를 향한 공격이야 그저 뜬구름과 같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꾸했었지만, 지금도 한국 개신교계에 이와 유사한 차별과 혐오의 잘못이 여전하여 마음이 아프다. 미국 교계에서 한때 낙태 반대를 마치 천국의 열쇠인 것처럼 주장하던 목소리가 있었는데, 한국 교계에서는 지금 ‘차별금지법’ 반대, 타 종교 배척과 혐오 등으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성차별 또한 여전하여 아직까지도 주요 교단의 총회장직은 모조리 남성이 차지해오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얼마 전 어떤 원로 신학자는 동성애 주제의 논설로 목사직을 박탈당했다고 한다. 또 어떤 신학 교수는 한 근본주의자가 불교 법당에서 벌인 훼불행위를 사과하고 그 복구 비용을 모금했다고 하여 파면당했고, 해당 신학교는 지금까지 법원의 복직판결조차도 무시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속이 쓰리다. 이러고도 세계 교회에 나가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차별을 반대하는 세계의 모든 교회와는 관계를 끊고 앞으로 영영 척지고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성서비평학을 가르치는 해외 대부분의 신학교에 유학을 다녀와서도 자신은 아닌 체하고 가면을 썼던 사람들처럼, 회칠한 무덤과 같이 앞으로도 쭈욱 위선에 절어 있을 터인가. 독재에 기생하고 맘몬에 아부하면서도 나는 반공이니 주초(酒草)에서 자유로우니 하면서,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답습할 것인가. 이런 잘못은 또 얼마나 지나야 제자리로 돌아올까. 혐오나 차별은 그 자체만으로도 악행이거니와 거기에 온갖 거짓까지 동원되니 이중적인 잘못이다.
박정희 시절, 조작한 인혁당 사건으로 사법살인을 자행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또 “운동권이 성을 혁명의 도구로 쓴다”라거나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며 거짓을 유포했던 악한 권력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광주민중항쟁에 북한의 사주 운운하는 선전선동이 있다. 교회나 정파, 재벌, 또는 국가 등 어떤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든 간에 자기들만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짓밟는 일은 용인될 수 없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위나 권한을 남용하며, 더욱이 거짓까지 꾸며 공격하거나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언제나 어디서나 결단코 용납될 수 없는 악행이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해야 마땅하다."
아프간 사태의 교훈: ‘무엇이 중요한가’
최근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게 다시 넘어간 까닭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아프간 정권의 부패와 무능함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뿐일까.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시각과 접근방법에도 매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간 까닭이 9.11 테러범들을 체포하고 그곳이 미국에 대한 공격기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사상자 수는 너무나 크다.
쏟아부은 1조 달러도 부채로 조달했다니 그 이자까지 더하면 또 얼마나 되겠는가. “전쟁은 끝났지만, 비용은 계속된다”라는 표현처럼, 아프간과 이라크 참전군인에 대한 지원비용 등 또한 추가될 것이다. 그처럼 어마어마한 희생과 비용을 치렀지만, 미국 입장에서 테러 위협이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더욱이 아프간에서의 민주주의도 거의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으니 이런 비관적인 상황을 왜 미리 내다보지 못했을까.
9.11 당시 급하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 후에라도 정책을 바로잡지 못한 치명적 잘못의 결과 아닌가. 1975년 월남이 패망하는 장면을 목도하고 나는 물량과 신무기를 신주처럼 믿어온 미국의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렇지만 물리력 즉 군사력이면 금방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은 지금까지도 여전한 것 같다. 말 그대로 ‘눈먼 미국’의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기에 그런 엄청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쓴 엄청난 비용 대부분은 군사비였고 재건사업 비중은 5%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니. 그 가운데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교육 등에 사용한 비용이 과연 얼마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의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바탕을 위해 군사비의 절반이라도 투여했었더라면 하는 회한을 품는 사람들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물론 금액 규모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종교나 문화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을 기독교화, 서구화했어야 한다는 뜻도 결코 아니다.
물량을 쏟아붓는 방식, 단지 전투에서의 승리나 미국의 눈앞의 국익만을 좇아간 것 같아 안타깝다. 오히려 여성을 포함한 인간 존중, 생명 살림, 지속 가능한 사회 추구 등 국제사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를 추구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먼저인가에 대해서 돌이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혼’을 넣어주는 교육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일제하 조선에서 만주, 시베리아로 망명하는 애국지사들을 보며 나는 고민했다. ‘그래, 교육 밖에는 없다’라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후진들에게 뭔가 ‘혼’(魂)을 넣어줄 접촉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금융조합을 사직하고 소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쳤고 유학에도 간도 용정 은진중학교, 또 조선신학원에서 젊은이들을 키워나가고자 했다. 해방 후에도 민주화, 통일, 평화와 인권 등 실천 지성을 양성하고자 했다.
교육이 혼 없이 지식이나 기능 위주로 흘러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은 미래 불행의 전조일 뿐이다. 개인적 차원의 좋은 ‘인성’을 넘어, 진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도록 이끌어내는 일, 이는 후세를 위한 지금 우리의 마땅한 책임이다.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발전은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민주시민교육을 바탕으로 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입학, 채용, 승진 등에서 오로지 시험 성적만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것이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유의 시험에 익숙한 사람들만 실력자라고 평가될 뿐이다. 획일적 평가가 아닌 개인의 다양한 능력과 재능이 인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과 실천이 인정되고 그러한 자세가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미래가 속히 도래하기를 소원한다. 그 바탕으로 ‘민주시민교육지원법’도 제정하고, 무엇보다도 그런 체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힘차게 실천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이제부터
나는 민주적 기본질서가 파괴된 현실 속에서 늘 신앙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려고 했다. 이 땅에서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정부를 수립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수많은 희생과 피의 아우성에 하늘이 응답한 것이라 하겠다. 1987년 함석헌 옹과 더불어 ‘새해 머리에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 적었던 바와 같이, 정치는 주권재민의 민주화를 이룩하고, 민중 생존권을 확립하며, 자주 국가로 나아가는 길에 서야 하는 큰 사명이 있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는 기업주와 공생(共生)하여 그 이익을 만들어내고, 또 그 이익이 정의롭게 분배되도록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바르게 깨닫고 제 임무를 다해야 한다. 선전에 속아 부화뇌동하거나 횡포를 용인하는 일이 없이 자유와 정의를 향한 힘찬 행진을 계속해야 한다. 상대방을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데서 온갖 인권의 침해와 착취가 일어난다.
"성별, 연령, 피부색이나 출신, 종교, 취향, 장애 여부 등의 장벽을 넘어 서로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바탕이다. 그런데 교리만의 종교가 백골과 같은 것처럼, 절차에서만의 민주 또한 허무일 따름이다. 내 눈에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내용적 민주주의를 향한 시발점일 뿐이다."
생명살림
오늘날 기후변화와 환경, 생태계의 위기가 화두다. 나도 젊은 시절부터 열 가지를 정하여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산하(山河)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와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가 있었고, 늘 “생명, 정의, 평화”를 기도했다. 자연은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자연과 환경의 보전은 후세를 위한 우리 세대의 마땅한 책임이다. 그 가운데 핵발전, 핵무기 등의 극복이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전쟁으로 말미암은 인명의 대량 살상은 물론 이려니와, 평시에도 이 땅에서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말미암은 안타까운 죽음들을 막아야 한다. ‘생명살림’이란 이 늙은이의 호소에 교육, 국방, 건설, 산업, 정치, 시민사회 등 각 부문이 응답하기를 바란다."
‘잊지 않도록!’
끝으로 말하련다. 이 땅의 흙은 억울한 피에 절었다. 최제우, 최시형 등 탁월한 종교 창시자를 죽이고, 동학농민혁명의 총수 전봉준을 일본군대에 청 넣어 죽였다. 이승만 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여운형, 김구, 조봉암 등등 쟁쟁한 지도자들이 암살당했다. 그뿐인가. 4·19 때 의로운 학생들의 피, 광주학살에 억울하게 희생된 수백 명의 학생과 시민들, 1987년 박종철, 그리고 이한열을 비롯한 수많은 의로운 피가 하나님께 울부짖고 있다.
‘불망비(不忘碑)’는 역시 필요하다. “그들을 잊지 않도록(Lest We Forget)!”
김거성 한국기독교장로회 구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