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9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박규태 /Park Kyutae 2014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Focusing on Kim Taechang


비교일본학

2014, vol.31, pp. 37-79 (43 pages)

UCI : G704-SER000001507.2014.31..012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연구분야 :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일본문학 > 일본문화학
박규태 /Park Kyutae 1


1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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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천년대 초입을 전후로 하여 일본에 일기 시작한 공공철학 붐의 문화론적 의의를 고찰하는 글이다. 이때 본고는 특히 998년 4월 사사키 다케시(佐々木毅) 전 동경대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대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김태창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교토포럼>을 통해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경영, 건강, 의료, 세대간 관계, 자기론, 매스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대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동아시아발 공공철학과 관련하여 학제간 토론을 주도해 오면서, 그 세 가지 이념형적 목표로 활사개공(活私開公), 공사공매(公私共媒), 행복공창(幸福共創)을 주창하고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대해 일본문화론으로서의 공공철학, 한류로서의 공공철학, 동아시아 담론으로서의 공공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이 “무한의 저쪽에서 일치하는 평행선의 사유”를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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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철학,
김태창,
활사개공,
일본문화론,
한류,
동아시아 담론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


* 현대일본 공공철학 담론의 의의

­ 김태창을 중심으로 ­

박규태**

2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 행된 연구임(NRF󰠏2012󰠏2012S1A5B8A03034081)

** 한양 학교 교수5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ultural meaning of Public Philosophy in contemporary Japan. In so doing, I will pay special attention to Kim Taechang, who has been leading the variou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since inauguration of “Kyoto Forum” with Sasaki Takeshi, ex󰠏president of Tokyo University in 1998. Kim Taechang maintains “empowering public minds and actions of peoples by animating each individual”(活私開公), “bridging public and private”(公私共媒), and “making happiness together”(幸福共創) as the three ideals of East󰠏Asian Public Philosophy. As a result, this paper will analyze Kim Taechang's discourses on Public Philosophy from the standpoints of “Nihonjinron”, “Korean Wave”, and “East󰠏Asia”, noticing the so󰠏called “thought of parallel” which may seek for the ultimate harmony among the opposite.

Key words : Public Philosophy, Kim Taechang, Nihonjinron, Korean Wave, Discourse on East Asia

)26)

들어가는 말 : 김태창은 누구인가

  <주간 동양경제>라는 일본의 표적인 경제전문지에서 2003년 신년특 집호 특별기획의 일환으로 위기에 처하는 23명의 현자의 지혜라는 주제하에 한 한국인을 인터뷰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김태창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일본의 개혁방법에 관한 청사진 가운데 일본이 포스트 경제 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국가전체보다는 개개인이 정신적/문화적으 로 풍요로워져야 한다는 것, 요컨 키워드는 민의 힘을 살리는 활사개’(活私開公)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공창’(幸福共創)이 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김태창, 2012_11b:15󰠏16) 여기서 말하는 활사개공이나 행 복공창이란 무슨 의미인가? 한일 지식인들이 타자와의 사이()를 연 인(大人)”(모리오카 마사요시, 2013_12:4), “공자가 말하는 인 유학자 (大人儒)”(야마모토 쿄시, 2013:5), “끊임없이 화하는 철학자”(오가와 하루히사, 2013_11:2), “탁월한 지식경 인”(최재목, 2013_12:13) 등으로 극찬해 마지않는 김태창이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이런 극찬은 일본에서 가장 한국에 정통한 철학자로 말해지는 오구라 키조의 다음 수사에서 하 나의 정점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악보가 없는 강렬한 생명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생명을 짓밟으려고 하는 모든 행위와 사상에 한 생명적인 항이다. 한국과 일 본의 틈새에 이와 같은 철학적 생명 그 자체가 활화산의 분화구처럼 분 출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 한 사건이다. 그의 강의를 들은 일본 인은 전율과 함께 까칠까칠한 위화감, 그리고 소리치고 싶은 듯한 고양을 느낀다. 그는 일본이라는 이국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일본어로 일본인들과 무수한 화를 거듭하고, 한국을 정신적 토 로 삼으면서도 일본인과 함께 새로운 철학을 구축하고자 하는 견실한 노력을 20년 이상이나 계속해왔다. 과연 누가 지금까지 이런 일을 이루어냈을까? 식민지 지배를 당한 나라의 인간이 그것을 가한 나라의 인간과 철학 화를 계속하고, 그것을 공공철 학이라는 개념으로 가꾸어낸다고 하는 활동을 그 누가 해낼 수 있었을?”(오구라 키조, 2013:10󰠏12. 필자의 윤문)

  다수의 문저서[1])와 일본어로 간행된 20여권의 공공철학 시리즈물[2])을 포함하는 놀랄만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현 교토 소재 <장래세 총합연구 소> 소장, 오사카 소재 <공공철학 공동연구소> 소장, <수복서원> 원장 등을 겸임하고 있는 김태창은 19984월 사사키 다케시(木毅) 전 동경 총장 및 주식회사 펠리시모의 표 야자키 카츠히코(矢崎勝彦)3)와 함께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창시하여 현재까지 일본 국내외의 2천여 명이 넘는 일급 전문학자들을 끌어들여 공공철학 붐을 불러일으킨 장본 인에 다름 아니다.4) 사실상 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을 통해 종래의 멸사봉공(滅私奉公)적 공공성뿐만 아니라 멸공봉사(滅公奉私)적 미이즘 (meism)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그 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는 일본 에서 공공철학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침투5)하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슬람, 인도, 일본에서의 공사에 관한 사상사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사회학적, 경제학 적, 정치학적 관점에서 공사 역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2(2004) 5권 및  3(2006) 5권에서는 자치/법률/도시/리더십/문화와 예술/종교/지식인/조직과 경

/의료와 건강/세 간 관계 등으로부터 생각하는 공공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밖에도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 비판󰡕(1980),인간  세계 그리고 신󰡕(1985),정치철 학적 사고의 궤적과 그 주변에 모아진 사고의 단편󰡕(1989),현 정치철학: 탐색과

전망󰡕(1989),21세기에의 지성적 응󰡕(1993),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2010),(일 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공공철학 이야기󰡕(2012) 등 다 수의 국내저술이 있다.

3)   <장래세 총합연구소>의 모태인 <장래세 국제재단> 이사장이자 <교토포럼> 사무 국장. <장래세 국제재단>19926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최된 지구정 상회의 <환경과 개발에 관한 국제연합회의>가 개최된 다음 달인 19927월에 미국 에서 설립되었다. 이 재단의 전신이 바로 1989113(문화의 날, 이전의 메이지 절)에 교토에서 발족한 <교토포럼>이다. 이 제1회 교토포럼에서 향후 1990년부터 2 개월에 한 번씩 학제간 화를 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졌으며 그 추진자로서 김태창이 동참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92년 김태창은 <장래세 총합연구소> 소장으로 취임 하게 된다.

4)   김태창은 이 두 사람과의 기적과도 같은 만남을 통해 <공공철학 교토포럼>이 가능 했으며, 이것이야말로 그가 일본에 와서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들과 함께 이룰 수 있 었던 가장 귀중한 농사다고 토로한다.(야자키 카츠히코, 2010:244󰠏45)  

5)   현재 일본을 표하는 사전에서 공공철학시민적 연 감이나 공감 그리고 비판 적인 상호토론에 기초하여 공공성의 부활을 지향하고 학제적인 관점에 서서 사람들 에게 사회적 활동에 한 참가나 공헌을 촉구하고자 하는 실천적 학문”(󰡔廣辭苑󰡕 6 )으로 정의되어 나온다.


1934년 청주의 이른바 ‘다문화가정’6)에서 출생한 김태창은 “나는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그 후 한국인이 된 인간이다. 유소년기는 일본어라는 국어 상용이 의무화된 생활환경 속에서 자라나 일본문화를 알고 일본역 사를 배웠다. (중략) 나는 일본인임을 의심한다든지 분명한 위화감을 가 지는 일은 없었다.”(金泰昌, 2002b:199)고 식민지 소년의 아이덴티티를 술회한다


6)   그가 말하는 ‘다문화가정’이란 반일적 성향이 강한 주자학자 던 할아버지와 친서구 적인 독실한 기독교신자 던 어머니, 그리고 일본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던 아버지로 구성된 가정을 가리킨다. 이들은 각자 개성이 강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김태창은 이 세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것이 어릴 때의 가장 큰 바람이었 으며, 그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사이’와 ‘상생’과 ‘공복’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김태창 편저, 2010:99)


해방 뒤 연세 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어, 독일어, 불어 등을 가르치면서 학원 과정을 마쳤다(정치학박사). 젊었 을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던 그는 결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라 국제관계철학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충족될 수 없었 던 김태창의 학문적 열정은 그로 하여금 국, 독일, 프랑스, 북유럽, 스 칸디나비아 반도, 동유럽 등 5년에 걸쳐 56개국을 돌며 인간학적 체험을 추구하는 방랑자로 만들었다.7) 


7)   이 당시 그는 의식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했다그것은 과거에 일본이 한 국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침략한 것에 한 반동에서. “한국의 지식인의 한 사람 으로서 일본을 무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일본에 이기기 위 해서는 일본보다 더 나라를 발전시켜서수준 높은 학문을 닦고 일본 학자보다 뛰어 난 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에 새겼다.(야마모토 쿄시, 2013:3) 8) 김태창의 생애에 관해서는 주로 (泰昌, 2002b) 및 (김태창 편저, 2010:98󰠏99) 참조.


귀국 후에는 충북 사회과학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학생운동이 한창인 학내에서 제자들로부터는 체제옹 호적이라고 비난받고 국가권력으로부터는 체제비판적이라는 의심을 받아 한때 체포 감금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적도 있었다 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1990년 환갑을 앞둔 나이에 일본으로 간다. 더 이상 방황할 여유도 없고 여력도 없어서 앞으로는 일본에서 중국과 한국 을 왕래하면서 친구들과 힘을 합쳐 어떤 모델이라도 제시하고 싶다는 생 각을 하면서, 국경을 초월하여 시민들끼리 만들 수 있는 좋은 사회를 꿈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8)   본고의 목적은 이와 같은 김태창이 주창한 공공철학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그리고 그의 비전이 일본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 지를 되물으면서 현 일본사회에 있어 그의 공공철학 담론이 가지는 의 의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물론 일본의 공공철학 또는 공공성 담론은 비 단 김태창이 주도해온 <공공철학 교토포럼>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이 와 전혀 무관하게 일본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공공철학 담론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3]) 이하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주로 김태창의 공공철학 담론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 <공공철학 교토포럼> : 왜 일본인가?

  <공공철학 교토포럼>[4])19984월에 발족한 이래 현재까지 약 17 년 이상 거의 매달 한번 꼴로 개최되었는데, 매회 3일에 걸쳐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종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한 주제당 발표 20분에 토론 40분이 주어지고 종합토론에 있어 철저한 화 위주의 형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이 포럼에서는 지금까지 사상사뿐만 아니라, 시 민사회, 국가, 경제, 중간집단, 과학기술, 지구환경, 자치, 법률, 도시, 리 더십론, 종교, 지식인, 조직, , 건강, 의료, 세 간 관계, 자기론, 매스 미디어, 언어, 교육, 비교사상, 각 나라별 공사문제, 고도정보화사회, 세 계승 문제, 성차 문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공공의 관점에서 학제간 토 론이 이루어져왔으며, 전술했듯이 그 내용의 3분의 1정도가 동경 학출 판회를 통해 <시리즈 공공철학> 20권으로 나왔으며, 기타 <시리즈 이 야기론> 3권 및 관련 단행본들로 계속 출간되고 있다.

  1회 포럼의 논의는 공과 사의 사상사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기조 는 공공은 공에 친 성이 있고 사의 반 에 위치한다는 것이었다. 이 는 하나의 전략적 접근이었을 것이다. 당시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의 일 본에는 공공이라는 이름하에 관료사회의 특징인 공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조가 있었다. 이와 함께 전전, 메이지, 에도시 로의 회귀를 꿈꾸는 향 수가 사회 전반에 걸쳐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의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김태창은 활사 개공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에 편향된 일본인들의 정신 풍토에 변화를 일으키고 의 긍정적인 측면을 점차 부각시켜 나갔다. 그리하여 를 살아있는 개개인의 원초적인 행복의지로 재해석하고 그 것이야말로 제도적 지배가치에 우선하는 참된 인간적 가치의 자연적 기 반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는데, 이는 마치 공천하국가(公天下國家)로서 의 일본을 송두리째 탈구축하려는 듯한 야심찬 기획이었다. 그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공적 성향이 강한 제도권 학자들의 반발과 적개심을 사기도 해서 충돌과 불화가 적지 않았지만, 김태창은 역사상 이 일원적으로 민을 짓눌러온 일본에서 공공민과 함께 하는 공공으로 의미변용하 기 위해 공공철학을 동아시아삼국의 범위에서 확실하게 구축한다는 전략

을 선택하게 된다.(야마모토 쿄시, 2013:4󰠏5)

  김태창은 이와 같은 포럼의 흐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연구자들을 네 세 로 구분하고 있다

  1. 예컨 제1세 의 미국 및 유럽 전문가들, 미조구치 유조를 비롯한 제2세 의 중국사상/철학/문화 전문가들
  2. 다나카 쇼조(1 841󰠏1913)민중적인 공공성 담론을 개발한 3세 의 일본사상/철학/문 화 전문가들,[5]) 
  3. 그리고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주자학 연구, 야규 마코 토(柳生眞)의 최한기 연구, 가타오카 류(片岡龍)의 한일비교연구 등 현재 공공철학 담론을 주도하는 제4세 의 한일 비교사상/철학/문화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거론되고 있다.(김태창, 2013_7:8󰠏9)

  이 가운데 특히 철학, 윤리학, 역사학, 사상사, 정치학, 경제학, 법학, 과학론, 공공정책론 등 다양한 학문적 입장에서 21세기에 알맞는 공공성 을 추구한 제1회 포럼에 즈음하여 김태창이 밝힌 취지에 주목해 보자. 그는 이때 반성적 작업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공공철학의 기본 과제를 인간과 국가의 관계를 고찰함에 있어 중간적인 매개 역의 활성 화, 건전화, 성숙화에서 찾으면서 특히 구체적인 생활세계의 공공성과 국가를 넘어선 공공성의 지평이 결합된 글로컬한 공공성의 창출을 제 안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에 있어 공사 관계의 규명 및 서구 공사관 계와의 비교를 통한 재구축의 작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김태창에 의하 면, 현재 일본에서 행해지는 공사 담론은 의 문제에 편중되어 예컨 종래의 을 부활시키는 것이 문제해결책이라는 발상에 기울어져 있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포럼은 철저히 화정신에 입각한 의미생성적 화공간12)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金泰昌, 2001a:ⅳ󰠏ⅺ)    이처럼 포럼 초창기부터 공공철학을 화로서의 철학으로 규정했던 김태창의 인식론적 태도는 그의 서구 경험에서부터 배양되었다. 그는 특 히 노르웨이에서 자기와 타자 사이에있어 립/갈등/분쟁하는 당사자 쌍방의 주장/요구/의도에 귀를 기울여 성실하게 경청하는 태도에 입각한 재조명/재평가/재해석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나모리 카즈오에게 배운 「인생 신조」 야자키 카츠히코 × 이나다 니치부 |

稲盛和夫に学んだ「人生信条」 矢崎勝彦×稲田二千武
이나모리 카즈오에게 배운 「인생 신조」 야자키 카츠히코 × 이나다 니치부 |
2019년 06월 22일


京セラ名誉会長・稲盛和夫氏を囲む勉強会「盛和塾」の立ち上げに携わり、氏の教えを経営、人生に生かしてきたフェリシモ社長の矢崎勝彦さんとファミリーイナダ社長の稲田二千武さん。稲盛氏の教えの神髄を引き継ぐお2人に、そこから培った経営、人生信条を語り合っていただきました。

好評記事、『稲盛和夫が即答した「人生で一番大事なもの」』はこちら

【特集「追悼 稲盛和夫」を発刊しました】
교세라 명예회장 이나모리 카즈오씨를 둘러싼 공부회 「모리와즈쿠」의 시작에 종사해, 씨의 가르침을 경영, 인생에 살려 온 펠리시모 사장의 야자키 카츠히코씨와 패밀리이나다 사장의 이나다 니치부씨. 이나모리씨의 가르침의 신수를 이어받는 두 사람 에게 , 거기에서 길러낸 경영, 인생 신조를 토론해 주셨습니다.

호평 기사, “이나모리 카즈오가 즉답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쪽


【특집 “추도 이나모리 와오”를 발간했습니다】

지난 8월 24일, 이나모리 와오·쿄세라 명예 회장이 체거되었습니다. 35년 전, 1987년의 첫 등장 이래, 접기에 접해 여러분과의 대담이나 인터뷰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많은 서적의 간행, 수많은 강연을 받는 등, 은은 수 알려져 아니.
생전의 후추를 심사해, 월간『치치』12월호에서는 「추도 이나모리 카즈오」라고 제목을 붙여 특집을 짜였습니다. 호화 라인업은 이하 특설 페이지로부터 봐 주세요.


◎【9/16(토)~9/22(금)까지】영화 5년 9월 1일, 덕분에 월간『치치』는 창간 4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평소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지금만의 한정 특전을 준비했습니다. 캠페인의 자세한 것은 이쪽 (아래 배너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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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철학을 인생·일에 살린다

(矢﨑) 
(화살﨑) 

나는 「모리와학원」에서의 20년의 배움을 통해, 바로 이나모리 철학을 실심·실학해 왔다고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학장의 한마디 한마디를 금과옥조로 해 나가는 배우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자신의 양심과 거듭해 판단이나 행동의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배우기를 계속 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 실감하는 것은, 학장의 말씀은 항상 방향성이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양심에 충실히 따르고 있을 때는, 판단, 행동 기준이 일관된 것이 된다고 하는 것을, 이 20 수년의 배움 속에서 강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역시 톱 스스로가 양심을 의식하고 방향을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지금 되돌아보고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이나다) 

내가 가장 영향을 받은 것은, 학장의 「동기선이나 나 마음만 있을 뿐」이라고 하는 말입니다만, 역시 학장이 그 진지한 질문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자신에게 던져 계속 되어 있다 자세에 감동을 기억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있어야 한다든지,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혈육으로 한 철학으로 하고 있는가, 경영의 심지로서 관철하고 있는가 하면,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나는 좀처럼 할 수 있다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세무 문제라도, 업계의 진습이라도, 모두가 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고맙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다르다고. 역시 꿰뚫어야 하는 것은 꿰뚫어야 하고, 과거의 고집에 흘려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처음에는 충격이었습니다. 정말 그런 예쁘게 갈 수 있을까. 그러나, 20년 이상 실천을 계속해 와, 역시 옳은, 관철하지 말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헤매기가 없어졌습니다.

(화살﨑) 

나는 원래 음향 메이커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만, 아버지가 회사를 일으킬 때 함께 경영에 종사하도록(듯이) 말해져, 23세 때에 정관 만들기를 처음부터 했습니다.

창업 전 아버지는 카네보에 근무하고 있어 직원이 자사가 만드는 섬유가 최종적으로 어떤 상품이 되고 있는지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모르는 것에 주목하여 개인으로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날에 의해 여기저기에 흔들리는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로 보면, 그 때의 정세에 따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나로부터 하면, 성공적으로 일관하지 않는 것이 계속 신경이 쓰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5년 후인 38세 때 아버지로부터 배턴을 받고 사장이 된 때에는 빛나는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유통의 방식을 추구해 나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그때까지 메이커 들러였던 경영 자세를 180도 역전시켜, 생활자 가까이로 전환해, 「100만명의 고정 고객 만들기」를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100만개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히트 상품을 돈돈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점점 왔습니다만, 계속 히트 상품을 계속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100만명의 고정객을 가지고 있으면, 1개의 히트 상품에 의지하지 않아도 여러가지 상품을 취급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19만8000명이었던 고정객수를 5년 만에 100만명까지 가져가려는 목표를 내세워 4년 11개월에 달성했습니다.

(이나다) 

그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화살﨑) 

학장으로부터는 자주 목표를 세우는 것의 소중함을 설 수 있습니다만, 명확한 목표를 내걸어 도전한 것이 공을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달성한 후에 이념의 중요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논리는 결정한 틀 안에서 전개하는 것으로, 역시 그 틀이 되는 이념이 중요하다고.
신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


(이나다) 

내가 이나모리 철학에서 배운 인생 신조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우선 학장으로부터 1번 초에 배운 「동기선이야, 사심만 있을 뿐」입니다만, 나는 원래 장난스럽고 정의감이 강하고, 장사에서도 어떤 싸움이라도, 뒤에서 찌르지 말아야 한다, 정면에서 싸운다고 한다 신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어떤 작은 일이라도 「동기선하나」라고 자신에게 질문한다고 하는 것.

예를 들면 사원 1명을 움직이게 해도, 「동기선 나름」이라고 생각하면 꽤 어려운 일입니다. 이기적인 본능은 무의식 가운데 일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성으로 컨트롤한다는 것은 반단한 기분은 할 수 없다. “동기선하나, 사심이 있을 뿐”이라는 것은 그러한 어려운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자신 안에서 반추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법」이라고 하는 것이 이나모리 철학 안에서는 항상 나오네요. 그 "사고 방식"의 기초는 마음, 사랑입니다. 「바르게」라고 하는 것도 잘 말씀하겠지만, 그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간 사랑입니다. 그 사랑 그 자체가 원점이 된 사고방식, 그것이 삶의 방식, 비즈니스 방식을 모두 좌우한다는 것을 마음껏 두어야 합니다.

다음은 「노력」. 이나모리 철학의 노력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이며, 이것이야말로 이나모리 철학의 신수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을 계속해, 마침내 한계까지 이르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의 령령이 내려오면. 흔들림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속삭임이라고. 그러나 그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역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통의 노력으로는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퍼펙트」라고 하는 것. 학장과 식사를 함께 하면, 쌀알 한 개 남기지 않고 구석에서 구석까지 먹게 된다(웃음). 비즈니스 방식도 마찬가지이며, 역시 철저합니다. 조직이 커질수록 어려운 일입니다만, 항상 퍼펙트를 목표로 경영해 나간다는 것. 자신의 삶의 방법에 대해서도 아직 문제는 없는지, 여기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고, 문제의 싹을 전부 파괴해 간다.

이나모리 학원장이라고 하는 분은 그러한 자신과의 싸움에 극복하는 것 굉장히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신념과 철학에 의해 자신의 약점을 훌륭하게 제패되고 있다. 그 자세를 저도 배우고, 스스로 실천해 나가는 것을 다시 마음에 맹세합니다.

(화살﨑) 

저도 이나모리 철학을 배우는 것으로 매우 깊은 주의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배움과 무게가 다른 것은, 학장 자신이 살아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우리 자신도 피가 다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러므로 1회라도 많이 학장 예회에 나가서, 가능한 한 학장의 갈대 기침에 접하면서, 그 배움을 다시 받는다. 거기에 매우 소중한 학생으로서의 배움의 자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거기서 얻은 배움을 사내에서 공유해, 한층 더 지역사회와 공유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주의가 일대, 일사로 끝나 버린다. 그러니까, 자신이 얻은 배움을 가능한 한 이 오사카의 지역사회와 공유해 가고 싶다는 것이 지금의 제 생각이며, 신죠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월간『치치』2010년 1월호 「인생 신조」로부터 일부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특집 “추도 이나모리 와오”를 발간했습니다】

지난 8월 24일, 이나모리 와오·쿄세라 명예 회장이 체거되었습니다. 35년 전, 1987년의 첫 등장 이래, 접기에 접해 여러분과의 대담이나 인터뷰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많은 서적의 간행, 수많은 강연을 받는 등, 은은 수 알려져 아니.
생전의 후추를 심사해, 월간『치치』12월호에서는 「추도 이나모리 카즈오」라고 제목을 붙여 특집을 짜였습니다. 호화 라인업은 이하 특설 페이지로부터 봐 주세요.




야자키 카츠히코(야자키·가쓰히코) 쇼와  
17년 후쿠이현 출생. 35년 오사카 시립 동상업 고등학교 졸업. 오사카 음향(현 온쿄) 입사. 40년 아버지가 창업한 통신 판매의 하이센스 입사. 전무, 부사장을 거쳐 55년 사장 취임. 62년 회장. 헤세이 원년사명을 페리시모로 개칭.

이나다 니치타케(이나다·니치무) 쇼와  
15년 돗토리현 태생. 34년 요나고 상업 고교 졸업, 오사카의 철공소에 취직. 37년 중앙물산 창업, 사장으로 취임. 45년 패밀리로 사명 변경. 헤세이 10년 상해에 발미리 건강 계기, 13년 미국에 FAMILY INADA INC를 각각 설립. 17년 요나고 국제 패밀리 플라자 개업. 19년 샤토·오다카 개업. 패밀리 이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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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십
# 인생
# 인간의 힘
# 직업
# 일술
# 일하는 법
# 사고법
#이나모리 카즈오
# 경영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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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카즈오가 즉답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2023년 08월 24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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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모리 카즈오 씨. 드문 드문 경영 수완과 철학을 통해 산업계뿐만 아니라 널리 이치이 사람에게까지 감화를 준 일본을 대표하는 경영자가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나모리씨는 교세라나 KDDI를 창업해 각각 1.5조엔, 4.9조엔을 넘는 대기업으로 육성. 도산한 JAL의 회장에 취임하면, 불과 2년 8개월로 재상장으로 이끌었습니다.
 업적은 그만큼 머무르지 않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의 공부회 「성화학원」의 학장을 맡은 것 외, 일본발의 국제상 「교토상」을 창설해, 인류 사회에 큰 공헌을 가져온 인물의 현창에도 진력되었습니다 .
 그 다방면에 걸친 활동에 통저하고 있는 것. 그것은 "이타의 마음"이었습니다. 〝신경영의 하나님〟의 호소 높은 씨가 월간『치지』의 독점 취재 로 밝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란――.
<사진=스가노 카츠오>

◎【9/16(토)~9/22(금)까지】영화 5년 9월 1일, 덕분에 월간『치치』는 창간 4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평소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지금만의 한정 특전을 준비했습니다. 
캠페인의 자세한 것은 이쪽 . 저명인의 코멘트는 이쪽



"신·경영의 신"에서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



2017년 11월 27일, 교토시내 에 있는 이나모리 재단의 한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약속의 시간보다 10분 빨리 이나모리 카즈오씨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주어진 취재 시간은 1시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홍보 쪽에서 사전에 그렇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떨까요. 본지 편집장(당시:후지오 히데아키)이 질문을 발할 때마다, 점점 이나모리씨의 표정이 풀리고, 생기가 흘러, 때로는 만면의 웃음을, 때로는 진지하게 질문의 대답을 생각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져 실제로 는 1시간 15분에 이르는 백열의 취재가 되었습니다.

홍보 쪽이 「취재로 이렇게 미소의 이나모리를 본 것은 오랜만입니다」라고 경탄할 정도였습니다.

거기서 말한 내용은, 교토상을 창설한 이유, 교토상 수상자의 공통점으로 시작되어, 마츠카제 공업에서의 수업 시대의 날들, 거기서의 전기와 유의, 교세라 창업의 드라마, 경영 이념에 담은 생각 게다가 일하는 것의 소중함, 모리와학원에서 호소하고 있는 것, KDDI 창업의 인사와 성공 비화, JAL을 기적의 재생에 이끈 열쇠 등, 이나모리씨의 삶 방법, 일하는 방법, 생각의 에센스 을 바로 응축한 것.

「신·경영의 신」의 이명을 취하는 이나모리씨로부터,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일 불평 불만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


이나모리씨는 교세라의 창업자이며 경영파탄에 빠진 일본항공을 불과 2년 8개월 만에 재상장으로 이끈 명경영자입니다.

그 이나모리씨가 신졸로 입사한 회사는 파업계속으로 급료는 지배. 혐오한 이나모리씨는 자위대에 전직하려고 합니다만, 친형의 반대를 받아 그대로 회사에 멈췄습니다. 우울한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회사에서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고향'을 노래하자 무심코 눈물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쏟아진 눈물을 닦아, 이런 생활을 하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이나모리씨는 다시 생각합니다. 자신은 훌륭한 회사에 근무하고,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입니다. 억지로 그렇게 생각해, 일에 격려했습니다.

그러면 신기한 것이고, 그렇게 싫었던 회사를 좋아하게 되어, 일이 재미있게 되어 오는 것은 아닐까요. 통근 시간이 아쉬워져, 이불이나 냄비솥을 공장에 반입해, 잠을 자고 일에 몰입하게 됩니다. 일이 더 즐거워지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한 부서의 리더를 맡아 적자계속 회사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부문으로까지 성장시켰습니다.

신졸 사원의 30%가 3년 이내에 이직한다고 말해 오랜 시간입니다만, 이나모리씨는 당시의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 어느 눈앞의 일에 겨드랑이도 흔들리지 않고, 전신 전령을 걸어서, 반드시 새로운 세계가 전개해 나가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그러므로,
 불평 불만을 새기지 않고,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일단 열심히 넣어 주셨으면 한다.그것이 인생을 빛나는 것으로 해 나간다 유일한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이나모리류 성공 철학의 요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나모리씨가 마지막으로 말한 말도 잊을 수 없습니다.

취재의 마무리에, 「오늘까지 86년간 걸어 오고,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느껴지고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는데, 이나모리씨는 사이를 두지 않고 즉시, 열을 담아 요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역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는, 어떤 환경에 있어도 진지하게 열심히 사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은 항상 "자신이 좋아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본능 로서 가지고 있습니다만, 역시 이타의 마음,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것을 강하게 자신에게 의식해, 그것을 마음속에 그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자기 연루에 노력해 가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월간 『치치』 2018년 5월호 특집 「이타에 살다」보다 일부를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
◆본 인터뷰를 『치치』 2022년 12월호에서 재록했습니다.
전자판에서의 열람은 아래의 기사견본을 클릭!



◇이나모리 카즈오(이나모리·카즈오) 쇼와
7년 가고시마현 출생. 가고시마대학 공학부 졸업. 34년 교토 세라믹(현·교세라)을 설립. 사장, 회장을 거쳐, 헤세이 9년부터 명예 회장. 쇼와 59년에는 제2전전(현·KDDI)을 설립, 회장에 취임, 헤세이 13년부터 최고 고문. 22년에는 일본항공회장으로 취임해 27년부터 명예고문. 쇼와 59년에 이나모리 재단을 설립해, 「교토상」을 창설. 매년 인류사회의 진보발전에 공적이 있던 분들을 현창하고 있다. 또한 젊은 경영자를위한 경영 학원 "모리와 학원"의 학장으로서 후진 육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저서는 「인생과 경영」 「「성공」과 「실패」의 법칙 」 「 성공 의 요점」 「치치 신서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


◇추도 아카이브 ◇
이나모리 카즈오씨가 월간『치치』에 전해 주신 메시지


“치치 출판사의 전도를 축하해”
2004년(1992)년

 요즘, 일본 기업의 행동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이 종래와 달리 현저하게 커져 왔습니다. 일본의 경영자의 책임이 오늘날 지구대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 나가려면 경영자 자신의 마음을 닦고 정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는 길은 없습니다. 인생의 성공 불성뿐만 아니라 경영의 성공 불성을 결정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입니다.

 저는 교세라 창업 직후부터 사람의 마음이 경영을 결정하는 것을 깨닫고 그 이후로 마음을 기반으로 한 경영을 실행해 왔습니다. 경영자의 나날의 판단이 기업의 성격을 결정해 나가고, 경영자의 판단이 사원의 마음의 움직임을 방향 짓고, 사원의 마음의 집합이 회사의 분위기, 사풍을 결정해 갑니다.

 이와 같이 과거의 경영 판단이 쌓여 현재 회사의 상태가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영 판단의 마지막 곳이 되는 것은 경영자 자신의 마음인 것은 경영자라면 모두 통절하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유력한 경영지는 여러가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에 초점을 맞춘 편집 방침을 관철하고 있는 「치치」는 때때로 있습니다. 일본 경제의 발전, 시대의 변화와 함께, 「치지」의 존재는 점점 중요해질 것입니다. 창간만 14년을 맞이하는 귀지의 신생 스타트를 축하해, 향후 점점 발전되길 기원 말씀드립니다.

―― 이나모리 카즈오

<전문> 이나모리 카즈오씨와 『치치』——귀중한 메시지를 되돌아 본다

◎【9/16(토)~9/22(금)까지】영화 5년 9월 1일, 덕분에 월간『치치』는 창간 4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평소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지금만의 한정 특전을 준비했습니다. 캠페인의 자세한 것은 이쪽 (아래 배너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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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풀이 동학적 사고로 신학하기 윤정현 2023

천부경 풀이

동학적 사고로 신학하기

천부경 풀이
다석사상

by 그러함 2023. 2. 15. 윤정현



우리나라 한 사상의 뿌리라고 일컬어지는 천부경(天符經)은 역경(易經)이나 태극도설(太極圖說)처럼 이 세상과 우주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천부경을 제대로 알아야 주역(周易)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천부경과 주역을 이해해야 성경을 참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 다석은 천부경을 순 우리말로 옮겼는데, 참으로 독특하다.





<하늘 댛 일쪽 실줄>

“하나 비롯 없는 비롯 하나(一始無始一), 풀어 셋 가장, 못다할 밑둥(析三極無盡本), 하늘 하나 한(天一一), 땅 하나 맞둘(地一二), 사람 하나 세웃(人一三), 하나 그득, 밑썰 되, 다함 없이 된 셋(一積十鉅無櫃化三), 하늘 맞섯(天二三), 땅 맞섯(地二三), 사람 맞섯(人二三), 한셋 맞둔, 여섯스니 일곱 여덟 아홉 생기다(大三合六生七八九). 옮기어 셋 네모로 쳐이룬 고리, 다섯 일곱 하나 묘하게 뻗쳤음(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 잘 가고 잘 온데 갈리어 쓰이나, 꿈쩍 않는 밑둥(萬往萬來 用變不動本), 밑둥맘, 밑둥해(本心本太陽), 뚜렷 밝아 사람 가운데 하늘 땅 하나(昻明人中天地一), 하나 마침 없는 마침 하나(一終無終一).”





하늘 댛 일쪽 실줄

천부경을 순 우리말로 풀었다. 천(天)을 하늘, 부(符)를 댈 한쪽으로 경(經)을 실줄로 풀었다, 여기에서 부(符)는 신용의 표시인 부신(符信)과 같은 것이다. 부신은 어음과 같은 것인데 옛날에 어음은 대여인과 차용인이 계약서를 쓰고 반쪽씩 나누어 가졌다. 반쪽 가지고 있다가 대어보는 것이다. 다석은 이것을 댛쪽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부(符)란 하늘과 인간이 서로 나눠가진 표라는 것으로 다석은 본 것이다. 곧 사람은 하늘의 참뜻을 부여 받은 존재인데 실줄로 이어진 것 같이 하늘과 사람은 이어져 있다고 여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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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해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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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을 이해하면 주역과 성서가 서로 통하게 된다

 

 

우리나라 한 사상의 뿌리라고 일컬어지는 천부경(天符經)은 역경(易經)이나 태극도설(太極圖說)처럼 이 세상과 우주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천부경을 제대로 알아야 주역(周易)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천부경과 주역을 이해해야 성경을 참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 다석은 천부경을 순 우리말로 옮겼는데, 참으로 독특하다.

 

<하늘 댛 일쪽 실줄>

하나 비롯 없는 비롯 하나(一始無始一), 풀어 셋 가장, 못다할 밑둥(析三極無盡本), 하늘 하나 한(天一一), 땅 하나 맞둘(地一二), 사람 하나 세웃(人一三), 하나 그득, 밑썰 되, 다함 없이 된 셋(一積十鉅無櫃化三), 하늘 맞섯(天二三), 땅 맞섯(地二三), 사람 맞섯(人二三), 한셋 맞둔, 여섯스니 일곱 여덟 아홉 생기다(大三合六生七八九). 옮기어 셋 네모로 쳐이룬 고리, 다섯 일곱 하나 묘하게 뻗쳤음(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 잘 가고 잘 온데 갈리어 쓰이나, 꿈쩍 않는 밑둥(萬往萬來 用變不動本), 밑둥맘, 밑둥해(本心本太陽), 뚜렷 밝아 사람 가운데 하늘 땅 하나(昻明人中天地一), 하나 마침 없는 마침 하나(一終無終一).

 

하늘 댛 일쪽 실줄

천부경을 순 우리말로 풀었다. ()을 하늘, ()를 댈 한쪽으로 경()을 실줄로 풀었다, 여기에서 부()  신용의 표시인 부신(符信)과 같은 것이다. 부신은 어음과 같은 것인데 옛날에 어음은 대여인과 차용인과 계약서를 쓰고 반쪽씩 나누어 가졌다. 반쪽 가지고 있다가  과 대어보는 것이다. 다석은 이것을 댛쪽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부()란 하늘과 인간이 서로 나눠가진 표라는 것으로 다석은 본 것이다. 곧 사람은 하늘의 참뜻을 부여 받은 존재인데 실줄로 이어진 것 같이 하늘과 사람은 이어져 있다고 여긴 것이다.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하나는 시작 없는 하나에서 시작된다.

 

하나()은 절대자를 말한다. 하나이신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하나에서 나온 상대적인 존재의 목적은 절대존재 하나를 찾는데 있다. 다석은 하나이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귀일(歸一)이라고 하였다. 

 

析三極(석삼극)

하나에서 하늘, , 사람 삼극(三極)으로 나뉘었다.

 

절대인 하나()가 상대화하는 것을 나뉘다()로 표현하였다. 하나()가 하늘인 무극(無極), 땅인 태극(太極), 사람인 황극(皇極)으로 나뉘어 삼태극(三太極)이 되었다. 그러나 이 셋은 상대세계에서는 셋으로 나뉘어 보이나 절대세계에서는 하나이다.

 

無盡本(무진본)

하나()가 상대세계에서 삼극(三極)으로 나뉘어도 하나() 밑동()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무진본(無盡本)이다. 달은 하나이다. 그러나 밝은 달은 강에도 비치고, 연목에도 비치고 우물가에도 비친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달이 비추나 본래의 달은 변함이 없는 하나이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하늘 하나가 하나()가 되고, 땅의 하나가 둘이 되고, 사람 하나가 셋이 된다.

 

천일이(天一一)에서 가운데 하나는 상대적인 숫자(1,2,3,4..)의 하나이고, 끝의 하나는 첫머리의 하나와 같은 절대라는 뜻이다. 지일이(地一二)는 하늘에 땅이 마주하였다는 뜻이다. 인일삼(人一三)은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는데, 하늘과 땅의 일에 사람이 참여한다()는 뜻이다. 천지인(天地人)의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 부문이다.

 

一積十鋸無櫃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 

하나가 그득 쌓였다. 태극의 음양의 작용이 다함없이 되어 천지인의 삼극(三極)이 되었다. 

 

일적(一積)의 하나는 절대자이다. 하나는 모든 것을 낳고 모든 것이 하나와 연결되어 있어 그득히 쌓여있는 것이다. 십거(十鋸)의 십()은 음인 ㅡ와 양인 ㅣ의 합으로 음양(陰陽)의 작용이 밀물썰물 드나들 듯 하며 고리를 이루어 돌아가니 괘가 없는 삼극(천극, 지극, 인극)이 되었다. 하나가 무극(無極)으로 상대세계에서는 태극(太極)이 되고, 태극은 음양의 작용으로 만물을 낳는다. 무궤화(無櫃化)는 다함없이 되는 것으로 천지인(天地人) 삼극(三極)을 의미한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하늘 맞아 섯(天二三)이고, 땅 맞아 섯(地二三)이고, 사람 맞아 섯(人二三)이니,

 

()는 상대세계에서 서로 마주한다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이 천지(天地), 지인(地人), 인천(人天)으로 서로 서니, 하늘과 땅 둘에 천지(天地)가 합하여 된 하나가 삼()이 된다. 이렇게 땅과 사람 둘에 지인(地人)이 합하여 된 하나가 삼()이 되고, 사람과 하늘 둘에 인천(人天)이 합하여 삼()이 된다. ()은 삼()과 같은 의미로 쓰이며 숫자 3을 뜻하기도 하지만 참여한다는 의미도 있다,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생칠팔구)

한 셋 맞아 들면 여섯이 되고 일곱 여덟 아홉으로 돌아간다. 

 

천지인(天地人)이 위에서와 같이 대삼(大三)으로 합이 6이 생긴다. 이리하여 1,2,3,4,5,6,7,8,9 실수가 만들어졌다. 수의 생성에 우주철학적인 근거를 천부경은 말하고 있다. 천부경이 한 줄에 아홉 자씩, 아홉 줄로 81자인 것도 의도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9의 우주관을 보여주는 것은 낙서(洛書)이다.   

 

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운삼사성환오칠일묘연)

셋씩 옮기어 네모의 고리를 이룬 것이 다섯 일곱 하나 묘하게 뻗쳤다.

 

낙서(洛書)에 관한 언급으로 보인다. 하도(河圖)가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원리로서 대립 개념의 숫자가 상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면, 낙서는 생성과 분열, 변화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것이 밀고 당기는 운동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아래의 그림 참조). 수의 상징을 나타내는 하늘의 표시, 천부(天符)로서 우주의 구성을 숫자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낙서를 보면 가운데 숫자 5에서 시작하여 6, 7, 2, 9, 4, 3, 8 7개 숫자가 네모를 이루면서 고리로 이어진다. 5를 중심으로 짝수 2 8, 4 6 X축을 이루고 있다. 음의 수가 분열하면서 회전하면 생성과 변화의 운동 과정이 전개된다. 아래의 낙서의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五七一은 낙서의 수의 차례를 말한다. 가운데 5는 사람인 나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블로그 이도경의 이도경세에서 가져옴

http://gdlsg.tistory.com/tag/%EB%8F%84%EC%84%9C%EA%B4%80%EC%9D%98%EC%9C%A0%EB%9E%98

 

나 오()자에 다섯 오()가 들어간 것이 참 묘한 일치를 이룬다. 나 오()를 보면 밑에 는 사방의 땅이다. 천지인(天地人)을 도형으로 말하면 원(), (), ()으로 표현하는데, ()은 땅을 나타낸다. 라는 인간은 땅 위에 선 사람이다. 또한 五七一은 인지천(人地天)의 순서이다. 그러므로 五七一妙衍은 인지천(人地天)이 묘하게도 뻗쳐있다는 뜻이다. 낙서 그림에서 보듯이 5에서 7, 5에서 1로 뻗쳐있다.   

 

 

萬往萬來用變不動本(만왕만래용변부동본)

만물이 오고 가고 하는 것은 절대자, 즉 하나()가 자꾸 갈아 쓰기 때문이나 하나()인 밑동은 움직임이 없다. 

 

만물이 가고 온다는 것은 모든 상대적 존재가 없다가 있어지고, 있다가 없어지는 현상을 말하고 있다. 상대적 존재가 계속 나고 죽고 있다가 없고, 가고 오는 것은 절대자인 하나()가 모든 것을 갈아 쓰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나고 죽고 있다가 없어지는 생사존망(生死存亡)을 거듭하지만 절대자인 하나()는 끔적도 하지 않는 영원불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변화시키면서 존재 자체는 움직임이 없다(用變不動本)는 말은 서양철학에서 자주 말하는 움직이지 않는 원동자(原動者) 또는 제 1 원인자(原因者)의 개념과 비슷하다. 모든 것을 움직이도록 하는 움직이지 않는 원동자의 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부동(不動)의 원동자는  1의 원인자이기도 하다. 초월자는 자기원인자이며 모든 것을 한정할 수 있는 존재로서 절대자 자신에만 의거하는 실체성을 포함하고 무한히 많은 속성으로 구성되며 자신의 본체가 변양하여 모든 표상계열들을 자신 안에 포함한다고 말한 스피노자는 자기 원인자로서 절대자는 무한하다고 보았다.

 

本心本太陽(본심본태양)  

본체가 마음이고 마음의 본체는 한 빛이다.

 

본태양(本太陽)은 하늘의 태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환하게 비치는 원동자인 절대자를 말한다. 태양의 빛은 그리자가 있지만 본래의 빛은 그림자가 없는 환한 빛으로 태양의 빛보다 수십 배가 밝은 한 빛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빛들은 사물의 반대편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러나 절대자의 빛에는 그림자가 조금도 없는 완전한 빛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태양이 필요하지 않다. 빛 자체이신 하나님이 비추시기 때문이다. 이제 그 도성에는 밤이 없어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요한 묵시록 22:5, 공동번역).

 

昻明人中天地一(앙망인중천지일)

드높이 밝아진 사람 가운데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앙천인중천지일(昻明人中天地一) '드높이 밝아진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있어 하늘(天極)과 땅(地極)과 인간(皇極), 3(三極)이 하나를 회복한다. 거룩하게 씻어난 이(聖人)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스며들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늘과 하나가 된 사람,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룬 사람 안에 절대자가 있고 절대자 하나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이다.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이 다섯 문자의 짧은 글귀 안에 사람이 곧 하늘이고(人乃天), 사람이 곧 자연이라는 위대한 우리 민족의 한 사상의 진리가 담겨 있다.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

하나()는 마침이 없는 하나에서 마친다.

 

절대자 하나()는 마침이 없는 하나에서 마친다는 말은 하나는 시작 없는 하나에서 시작한다는 천부경 첫머리와 대조를 이룬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시고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하였는데, 같은 뜻이라고 본다.

 

天符經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無櫃化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 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 昻明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하나는 시작 없는 하나에서 시작된다. 하나에서 하늘, , 사람 삼극(三極)으로 나뉘었다. 하나()가 상대세계에서 삼극(三極)으로 나뉘어도 하나() 밑동()은 변함이 없다. 하늘 하나가 하나()가 되고, 땅의 하나가 둘이 되고, 사람 하나가 셋이 된다. 하나가 그득 쌓였다. 태극의 음양의 작용이 다함없이 되어 천지인의 삼극(三極)이 되었다. 하늘 맞아 섯(天二三)이고, 땅 맞아 섯(地二三)이고, 사람 맞아 섯(人二三)이니, 한 셋 맞아 들면 여섯이 되고 일곱 여덟 아홉으로 돌아간다. 셋씩 옮기어 네모의 고리를 이룬 것이 다섯 일곱 하나 묘하게 뻗쳤다. 만물이 오고 가고 하는 것은 절대자, 즉 하나()가 자꾸 갈아 쓰기 때문이나 하나()인 밑동은 움직임이 없다. 본체가 마음이고 마음의 본체는 한 빛이다. 드높이 밝아진 사람 가운데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하나()는 마침이 없는 하나에서 마친다.

 

이렇게 우리는 천부경에서 옛사람들의 수에 관한 우주관과 세상을 보는 지혜를 볼 수 있다. 그리스 수학자, 피다고라스가 우주는 수로 이루어졌다고 한 주장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된 우리 민족의 철학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천부경(天符經)과 역경(易經), 도덕경(道德經),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우주의 원리와 법칙을 설명하는 같은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약간의 다른 언어와 표현이 있을 뿐 같은 내용이라고 본다. ()과 도덕경(道德經), 태극도설(太極圖說)을 공부하고 보니, 무슨 숫자 암호 같았던 천부경이 이제 해석이 된다. 다석이 천부경을 순 한글로 풀고 왜 그리 좋아하였는지, 그리고 왜 천부경을 보아야 하는지 이해가 된다. 

 

다석은 말하였다. 사람들이 무극, 태극을 다 집어내버리고 음양만 가지고 말한다. 음양오행이 도대체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우리 동양 민족은 음양을 찾다가 망할지도 모른다. 음양을 찾는 것도 음양의 근원인 태극, 무극을 찾아 가는 것이다(다석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