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7

불교언론-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 스님 - 법보신문

불교언론-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 스님 - 법보신문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 스님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승인 2012.11.27 14:12

‘오온’ 명확히 모르면 ‘아트만’ 세울 가능성 높다
확철대오 자신에 중퇴 후 출가
7년 정진 속 진전없자 인도행

먹이 찾는 돼지새끼 몸부림에
‘윤회’ 무서움 알고 교학 매진



▲각묵 스님


화두가 끊이지 않았다. 자다가 깨어나면 화두부터 챙겨졌다. 남모를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화두 하나만 타파하면 깨달음에 이른다 하지 않았는가!’ 선방에서 한 달만 밀어붙이면 생사는 곧바로 뛰어 넘을 것만 같은 충만감이 전해져 왔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송광사 여름수련대회 참가 후 화엄사 도광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 했다. 부산대학교의 여정은 그걸로 끝이다.

화두타파 원력이 출가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만 단초는 중학교 3학년 때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허망감에 갈 길을 잃었다. 당장 의지해야 할 게 있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철학책을 뒤적였다. 그러던 중 불교를 만났다. 사막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찾아 낸 오아시스와 같았을 터!

대학 불교학생회에 가입해 불자로서의 삶을 지어가기 시작했다. 교화부장을 맡았던 그는 수업 전에 매일 예불과 함께 금강경을 독송했다. 회원들의 교리공부도 그의 몫이요, 법사 초청도 그의 몫이었다. 자연스럽게 부산과 경상남북도의 ‘큰스님’을 친견하게 됐다.

어느 날 삼묵 스님을 친견했다. 전율이 일었다. ‘도인이란 이런 모습이구나!’ 그의 법기를 이미 간파했던 것일까? 삼묵 스님은 신심명과 증도가, 육조단경을 가르쳤다. 기본 교리는 이미 터득했을 것이라 본 삼묵 스님은 선의 세계로 그를 안내했던 것이다. ‘무(無)’자 화두를 받았다. 화두는 수지 직후부터 성성하게 들렸다. 전생 인연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전공하고 있던 수학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법담’이 아닌 일반적인 ‘대화’는 식상했다. ‘뭔가 그 동안 속고 살아온 것’만 같았다. 출가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랬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구산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송광사 선원에 입방해 가부좌를 틀었다. 벼르고 벼르던 일을 이제야 시작하게 된 것이니 그 선열감은 각묵 스님 자신만이 감지했을 터. 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화두가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화두는 들리지 않고 졸음만 쏟아져 내렸다. 구참 수좌에게 물어보니 오후불식 하면 좀 나아질 것이라 해 실행에 옮겼다. ‘배고프니 잠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7년의 세월이 다 되어 갔지만 확철대오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그 즈음, 활성, 철오, 함현 스님을 만났다. 초기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기 시작했다. 이원섭 시인이 번역한 마쓰다니 후미오의 ‘아함경’과 ‘불교개론’을 접한 것도 세 스님의 인연 덕이었다. 어느 날 함현(현 청주 관음사 주지) 스님이 가져온 월폴라 라훌라의 ‘부처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접했다. 이 책은 팔리 삼장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명료하게 서술해 놓은 명저다.

활성 스님은 각묵 스님에게 초기불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함현 스님 또한 초기불교 경전 번역의 원력을 세워보라 권했다. 철오 스님과의 토론을 통해 초기불교의 일면이나마 맛을 보고 있었던 각묵 스님은 자신을 다시 한 번 추스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물음에 접근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불교를 갈무리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자연스럽게 초기불교로 발길을 돌렸다. 1987년 칠불암 운상선원 하안거로 7년 동안의 선원 여정은 일단락 됐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인도유학을 결심한 각묵 스님은 서울 법련사에 머물며 영어공부에 매진한 후 1989년 3월 인도 유학길에 올랐다.

10년의 유학 내공은 최근에 와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미 ‘금강경 역해’를 비롯해 대림 스님과 함께 4부 니까야를 완역했다. 번역 작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팔리 삼장을 모두 완역해 내겠다는 그의 원력에 비춰보면 말이다. 세미나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내 보인다. ‘나는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서로의 ‘앎’을 공유하며 부처님의 진의를 함께 찾고 정립해 가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승불교권에만 머물러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불교계에 젊은 각묵 스님의 이러한 왕성한 활동은 부처님 법에 좀 더 상세히 접근해 보려는 불자들에게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다. 이 단비가 한국불교사의 한 축을 흐르는 ‘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각묵 스님을 친견했다.

궁금했다. 화두를 내려놓고 초기불교라는 교학의 숲에 들어 간 각묵 스님이 진정 얻은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청정도론’을 통해 전한 붓다고사의 일언을 전했다. ‘윤회에서 두려움을 본다고 해서 비구라 한다.’

“강의 중에 이 말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윤회 또한 본래 없는 줄 알아야지,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게 비구라니요! 이러니 ‘소승’이라는 말을 듣는구나 했지요.”

이 때가 유학 3년째라고 한다. 한 때 화두를 들었던 선사의 기백으로도 들린다.

“그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돼지새끼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우기철이면 길은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 길 위에서 오물범벅이 된 채 먹이만을 찾아 이리저리 허우적대는 돼지새끼 한 마리. 나도 저렇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뭐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단물만 쪽쪽 빨아 먹고는 다음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 들 저 돼지새끼와 뭐가 다른가!”

이 사념에 이끌린 각묵 스님은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발심했다. ‘공부하자. 제대로 해야 한다.’ 각묵 스님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었음을 곧 알았다.

“우리 간화선 수행인 중에도 돈오를 잘못 이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오 논의의 핵심은 깨달음이 실현되는 바로 그 시점입니다. 그 시점만 놓고 보면 ‘즉각’적입니다. 그 전에 몇 년을, 아니 몇 겁을 닦아왔든 깨달음의 실현 시간은 순간적인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행과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를 무시한 채 ‘깨닫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는데 이는 단편적인 사고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윤회에 대한 교학적 접근을 철저하게 해 보지도 않고 ‘윤회 또한 본래 없는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자신과 유사한 간화선 수행인이 지금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무상, 무아, 고든, 무상, 무아, 공이든 이를 통찰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면서 횡설수설하며 생과 세상의 찬미만 늘어놓는다면 이는 깨달은 체 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초기불교 해체적 방법론 통해

무상·고·무아 철관 노력 해야



불연 있어도 공부는 자기 몫

불법·수행방법 자신이 찾아야






▲각묵 스님은 “초기불교는 불교의 뿌리”라며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대승불교 이해도 높아질 게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교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음이다. 초기불교 프리즘이든, 대승불교 프리즘이든 나름대로의 불교 갈무리가 있어야 설법을 하고 수행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다. 현 간화선 수행인들에게는 뼈아프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선원에서 7년 공부한 수행인의 일언이라면 귀 기울여 보아야 한다.



“초기불교의 핵심은 일단 해체해서 보기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궁극적 지향점은 개념 해체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는 겁니다. 세계는 18계로,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는 겁니다. 왜 해체해서 보는가? 무상, 고, 무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라는 직관을 통해 무상, 고, 무아를 체득할 수 있겠지만, 일단 교학적 접근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는 그 방법으로 ‘해체’라는 무기를 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부처님은 ‘오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자아’, ‘아트만’이라는 고정불변 하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오온을 설하신 겁니다.”



오온은 ‘반야심경’에도 나와 있는 대목이다. 무아를 설명하는 데 오온은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 아닌가. 초기불교에서의 오온 설명은 대승불교에서의 오온 설명과 다르다는 것인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많다고 봅니다. 무아라 하지만 현실에서는 또 다른 ‘자아’를 전제한 ‘참 나’, ‘주인공’ 같은 개념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핏 보면 이는 또 다른 자아, 즉 아트만을 연상시킵니다. 대중설법을 위한 방편으로 이 말을 썼다 해도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말들은 아예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각묵 스님은 ‘마음’에 대한 이해도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초기불교 입장에서 보면 ‘마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이 또한 ‘오온’을 통해 여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색(色)은 ‘물질’이고. 수(受)는 ‘느낌’입니다. 단, 탐욕과 성냄은 여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상(想)은 인식입니다. ‘푸른 것도 인식하고 빨간 것도 인식’하는 그러한 인식입니다. 행(行)은 심리현상들의 무더기입니다. 복수로 표현됩니다. 단, 느낌과 인식(오온의 수와 상)은 제외합니다. ‘청정도론’에서는 52가지 심소법 중 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50가지 심소법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식(識)은 무엇일까요? 번역하기 참 어려운 대목입니다. 분별하는 식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신 것도 식별하고 쓴 것도 식별하는 식’입니다. 따라서 저는 ‘알음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식’은 마노(意), 마음과 같은 겁니다.”



교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오온의 마지막 ‘식’이 ‘마음’과 같다는 대목에서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식’ 즉 ‘아는 작용’은 반드시 느낌의 인식과 심리현상(行)들과 같은 심소법들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용도는 차이가 납니다. 우리의 마음을 나타내는 술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역할이나 문맥에 따라 엄격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라고는 쓰지만 안심, 이심, 비심, 설심, 신심, 의심 등의 합성어는 팔리 삼장 어디에도 없습니다.”



각묵 스님은 ‘컵’하나로 이를 설명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가 컵 하나를 보았을 때 오온은 동시에 일어난다. 컵이라는 대상의 물질을 본 순간, 즐거운 느낌(受)이 일며 파란 컵(想)임을 인식하고, 소유해야(行) 한다는 것과 함께 ‘소유’의 식(識)을 최종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식’은 갖겠다는 ‘마음’을 낸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이 ‘마음’도 조건발생이라는 것입니다. 감각이나 대상이라는 조건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마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 또한 찰나생, 찰나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마음에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불교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찰나생 찰나멸 하는 마음, 더욱이 그 변화 속도가 그 무엇보다 엄청나게 빠른 마음, 오온의 한 일부일 뿐인 마음을 두고 ‘닦고’, ‘찾고’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참 마음을 찾자’, ‘청정심을 회복하자’고 한다. 방편으로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대중에게도 이러한 설명이 있은 뒤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묵 스님의 지적처럼 ‘마음’이 어디 우리 몸 한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초기불교는 불교의 뿌리입니다. 뿌리를 거부하고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대승불교 이해도 역시 높아질 게 확실합니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교 전파가 ‘너무도 즐겁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늘 웃고 다닌다. 주위에서 ‘그만 좀 웃고 다니라’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란다. 각묵 스님을 친견하며 초기불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부처님 뜻을 헤아려 보려 스스로 찾고 가름한 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각묵 스님의 모습!

‘나는 지금 무엇을 가름하고 있는가?’ 불교와의 인연이 맺어졌다 해서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부처님 뜻을 헤아려야 한다. 수행방법도 자신이 찾아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면 아닌가.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각묵 스님
경남 밀양 출생. 1979년 화엄사 도광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7년 제방 선원 안거 후 인도로 유학. 10여년 간 산스크리트, 팔리, 프라크리트 수학.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크리트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실상사 화엄학림 교수사 및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역·저서로는 ‘금강경 역해’, ‘초기불교 이해’, ‘아비담마 길라잡이’(대림 스님과 공역),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디가 니까야’, ‘쌍윳따 니까야’ 등이 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요약] 각묵 스님 ‘초기불교를 통한 깨달음의 길’ :: 불교저널





[요약] 각묵 스님 ‘초기불교를 통한 깨달음의 길’ :: 불교저널




[요약] 각묵 스님 ‘초기불교를 통한 깨달음의 길’
깨달음의 핵심은 ‘해체해서 보기’


2009년 11월 22일 (일) 21:12:05 서현욱 기자 mytrea70@yahoo.co.kr


고불총림 백양사 ‘야단법석-깨달음의 길을 찾는다’에서 세 번째 법주로 나선 실상사 화엄학림 강사 각묵 스님은 ‘초기불교를 통한 깨달음의 길’ 강연을 통해 “불교의 목적을 행복의 실현(離苦得樂)이라고 설명하고 이를 위해 초기불교에서는 ‘온·처·계·근·제·연’를 교학체계로 삼았고 ‘37보리분법’을 통해 깨달음을 실현했다”고 보았다.

불교교학은 ‘온·처·계·근·제·연’



▲ 실상사 화엄학림 강사 각묵 스님.
각묵 스님은 “불교 교학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온·처·계·근·제·연’이라고 즉답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불교 교학의 이론체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강조했다.

각묵 스님은 “행복에는 금생의 행복, 내생의 행복, 궁극적 행복이 있다. 스님들의 출가 이유가 궁극적 행복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온’이다”라고 했다. 스님은 “‘나’를 오온(색수상행식)으로 해체해 보면 무상과 고, 무아가 보인다”며 “무상 고, 무아를 봐야 해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각묵 스님은 “세계란 무엇인가? 를 알기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12처 18계”이며 “진리가 무엇인가?란 의문에 부처님의 답은 고·집·멸·도 사성제이고, 괴로움의 구체적 가르침이 12연기이다. 윤회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가 곧 12연기이다”고 설명했다. 각묵 스님은 “교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37보리분법의 수행이 있어야 깨달음은 실현된다”고 해석했다.

“행복하려면 봉사하는 삶 살아야”

각묵 스님은 먼저 《디가 니까야》 <사문과경>을 인용해 “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 여의고 행복의 실현”이라며 “부처님은 금생의 행복은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기술로 세상에 기여하고 이윤을 창출하여 금생에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중요한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의 이 같은 말은 금생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의 존재론적 욕망의 사용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각묵 스님은 “인간은 자기에게 맞는 기술을 익혀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서 “봉사하는 삶은 지계와 보시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각묵 스님은 “《숫따니빠따》<마하망갈라경>에는 ‘많이 배움’ ‘기술’ ‘규율’ ‘잘 공부지음’ ‘보시’ ‘공덕을 쌓음’ 등을 금생의 행복의 조건으로 본다”며 “이는 보시, 지계,학문, 기술”이라고 말했다.

각묵 스님은 “내생의 행복을 위해 부처님은 보시와 지계를 강조했다”면서 “봉사하는 삶과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묵 스님은 “재가자는 삼보에 대한 믿음과 보시와 지계에 충실해야 내생의 행복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각묵 스님은 “궁극적 행복은 곧 열반이고 깨달음으로 이는 불교만의 고귀한 가르침”이며 “이는 계정혜 삼학을 갖추어야 영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각묵 스님은 “궁극적 행복 실현은 개념적인 존재를 해체해서 법으로 환원해 보아야 하며, 이를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온·처·계의 무상·고·무아에 대한 철견(徹見), 사성제의 통찰, 팔정도의 완성, 12연기의 역관을 부처님은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각묵 스님은 “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초기불전은 분명히 팔정도가 도라고 밝히고 있다. 명확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부처님은 팔정도를 실현함으로써 깨달았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라며 깨달음의 내용이 우리 곁에 있음을 강조했다.

각묵 스님은 이어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깨달음을 실현하는 방법 가운데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무상 고 무아의 통찰을 통한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라며 “주석서들은 한결같이 염오를 강한 위빠사나로, 이욕은 도로, 해탈은 과로, 구경해탈지는 반조의 지혜로 설명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깨달음의 핵심은 ‘해체해서 보기’
“부처님은 해체해서 설하시는 분”

각묵 스님은 “초기불교의 핵심은 ‘해체해서 보기’”라고 규정했다. 스님은 “초기 불전에서 설하는 깨달음의 핵심은 ‘해체해서 보기’”라며 《상윳따 니까야》<천 명이 넘음경>과 주석서를 인용 , “부처님은 마음챙김의 확립 등의 부분으로 법을 해체하는 것을 말하셨다”고 설명했다.
각묵 스님은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온처계연 등으로 설해지는 모든 존재들의 무상 고 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면서 “이러한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함으로써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 그래서 해탈 열반 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초기경전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묵 스님은 “개념적 존재나 명칭이나 말에 속지 않고 단지 오온이고 12처이고 18계이고 연기일 뿐임에 사무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온처계연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며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수행 방법의 핵심도 나라는 존재를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으로 해체해서 그 중 하나에 집중(삼매, 사마타)하거나 그 중 하나의 무상 고 무아를 해체해서 보는 것(통찰, 위파사나)”이라고 설명했다.

각묵 스님은 이날 강연을 “나와 존재와 세상과 생사 문제를 이처럼 온처계연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염오-이욕-소멸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는 말로 끝맺었다.

장성 백양사=서현욱 기자

[요약] 각묵 스님 질의 응답

문: 고기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부처님도 걸식을 하실 때 고기를 드시지 않았나.
각묵 스님: 부처님은 삼정육은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탁발을 하던 상황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를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살아 있는 생명을 직접 죽여 먹는 것은 불자로서 적절하지 않겠지만 남이 잡은 것을 먹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채식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 쉽지 않으므로 삼정육을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신이다.

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설명하며 ‘수’를 느낌이라고 했다. 저는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몸과 주관적인 기억의 조합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는 기억이라는 부분은 다뤄지지 않고 있다.

각묵 스님: 상좌부 아비달마에서는 기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면 기억은 모두 법으로 심리현상으로 환원해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경험한 심리현상이 지금에 일어날 때 기억이라고 한다. 상좌부에서는 무엇인가 기억되는 현상은 심리현상이고, 그것을 지금 일어나게 하는 것은 마음챙김으로 본다.

문: 어제 질문 중에 윤회에 대해 논의했다. 초기불교에서는 윤회가 사상적 체계를 가지고 있나?
각묵 스님: 윤회는 불교 이전에도 있었고 인도에서는 삼사라라는 용어로 설명됐다. 부처님께서도 초기경전 도처에서 윤회를 말하고 있다. 윤회를 설명하는 방법이 다르다. 힌두교는 자아의 윤회로 설명한다. 힌두교에서는 자아라는 고정불변한 존재가 있어 끝없이 윤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자아를 인정하지 않는다. 굳이 얘기하자면 무아의 윤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하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찰나와 상속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존재는 한 찰나에 일어났다 사라지는데, 바로 그 다음 찰나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상속이라 한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는 고정불변한 존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즉 찰나 찰나의 흐름을 윤회라고 할 수 있다. 오온의 찰나 생 찰나 멸의 흐름을 윤회라고 초기불교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문: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 하고 과학은 진화했다고 한다. 불교는 어떻게 보나?
각묵 스님: 초기불교에서는 무시무종으로 설명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다. 범망경에서 보면 전생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깊은 삼매에서 어느 시점까지만 보지 그 이전은 알 수 없다. 중생은 무시무종이지만 아라한은 금생에서 멸하게 되면 끝이 있다.

문: 초기불교와 조계종의 선불교는 깨달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각묵 스님: 저는 견성성불을 무아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책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책됨이 있기 때문이다. 이 됨을 우리는 성이라고 이해한다. 초기불교 입장에서 보면 견성성불의 성을 무상 고 무아의 근본 성질을 보는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문: 초기불교에서는 아미타경의 입장을 어떻게 보나?
각묵 스님: 정토삼경에 나오는 정토, 극락세계를 초기불교에서도 설명해낼 수 있다고 본다. 초기경에는 천상세계를 많이 얘기한다. 욕계천상은 공덕을 지어 태어나는 곳이다. 그 위를 색계천상이라고 하는데 공덕과 계율만으로 태어나는 곳이 아니라 삼매를 닦아야 한다. 정거천은 삼매를 닦고 불한과를 얻은 성자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북방에서 말하는 극락세계는 바로 이 정거천, 넓게 보면 색계천상까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 대승불교에서는 자성불성이 공이고 연기라고 설명하는데, 스님은 자성불성을 무상 고 무아라고 설명했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각묵 스님: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다. 대승의 흐름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중 불성을 말하는 것은 여래장 계열이다. 유식에도 불성의 개념 나타나지 않는다. 여래장 중 대표적인 것이 화엄경 능엄경 능가경 등인데 여기서 불성을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초기불교 아비담마 유식은 법의 체계이고, 여래장은 믿음의 체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래장은 믿음을 중시한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근원적인 믿음을 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일심 여래장 등을 말한 것인데, 이를 실체화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무아와 연기로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본인의 마음이다.

문: 화두를 가지고 참선하고 있다. 팔정도의 길을 강조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각묵 스님: 바른 견해는 사성제를 아는 것이 바른 견해다. 바른 생각은 대표적으로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고자 하는 사유를 들고 있다. 바른 말은 망어 기어 등을 하지 않는 것이고, 바른 행위는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바른 생계수단은 세상에 해가 되는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이다. 간화선은 팔정도 중 정명 즉 바른 마음 챙김에 해당하는 것이다. 화두를 든다고 바른 견해, 바른 사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듯 각자 수행을 하면서도 팔정도를 실천해야 한다.

문: 불교의 대중화를 말하셨다. 교학의 대중화도 중요하겠지만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각묵 스님: 결론적으로는 아직 저도 고민 중이다. 불교 안에서조차 깨달음 해탈에 대해 이야기를 못 하고 있다. 불교 안에서부터 이를 명확히 이해하고 사유한 후 전 국민에게 확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깨달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해체해서 보자는 것이다. 해체해서 보면 무상 무아가 보이고 이를 통해 깨달음이 실현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도법 스님: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머릿속에 만들어진 수행, 깨달음의 상, 부처님의 상을 알아야 한다. 이를 들여다보면 굉장히 신비화, 과장되어 있다. 신비화되어진 깨달음, 수행이 있다고 전제하고 접근한다면 갈등과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테레사수녀는 약자를 위해 인생 전부를 바쳐 헌신했다. 그러나 그분이 쓴 글을 보면 자신의 삶이 늘 암흑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왜냐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둘로 나눠보면 하나는 어딘가 거룩한 존재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자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그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깨달음의 문제는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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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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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초기불교이해 음성파일>이라는 방을 만들어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 간행한 <초기불교이해>에 대한 강의 음성파일들을 틈 나는대로 하나씩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2010년 9월에 10일 간에 걸쳐서 총40시간을 대구 동화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기본선원에서 <초기불교이해>를 교재로 초기불교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때 강의한 내용을 이번에 모두 음성파일로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음성파일들은 <초기불교이해> 제1장부터 마지막인 제31장까지의 책 전체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강의는 기초선원 과정을 이수 중이신 사미/사니미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이 음성파일은 대구에 있는 <삼영불교음반>(053-431-0072)에서 녹취하여 만든 MP3파일입니다. 이 음성파일을 모두 제게 보내주신 삼영불교음반 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음성파일을 직접 구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전화번호로 연락해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이 강의 음성파일은 모두 41개의 MP3파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파일이 30M가 넘는 큰 용량이라 까페에 음성파일로는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동영상 파일의 형태로 만들어서 올리려고 합니다. 오늘부터 긴 걸음으로 틈 날 때마다 동영상 파일로 편집해서 하나씩 올릴까 합니다.

제 목소리가 하도 천박하여 이런 목소리를 담은 음성파일을 올린다는 게 저로서는 아주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천박한 목소리로 부처님의 원음을 강의한 음성파일을 자료로 올린다는 것이 부처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 아닌지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어서 아주 망설였습니다. 그렇지만 법우님들의 초기불교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며칠의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서 올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법우님들의 불교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법우님들께서 금생에 해탈열반의 튼튼한 토대를 만드시기를, 그리고 늘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각묵 합장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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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 海印 2005 실상사 화림원 각묵 스님

月刊 海印



실상사 화림원 각묵 스님이전 게시물다음 게시물
호계삼소 - 김영옥2005년 12월 286호

전북 남원시 실상사, 일주문 대신에 절 대문 구실을 하고 있는 사천왕상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 들은 텅 비어 있다. 절과 너른 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봉우리, 소설도 입동도 되기 전, 아니 서리도 내리기 전에 눈 모자를 하얗게 뒤집어쓰곤 하는 저 봉우리, 경상과 호남의 경계도 산 이름 하나로 허물어버리고, 수다한 봉우리와 계곡과 개울을 품되, 첫 시작은 모두 하나임을 선언하고 마는 산, 평지 사찰인 이곳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실상사 큰절에 있는 화엄학림은 개혁불사 이후로 1995년에 개설된 조계종 최초의 전문교육기관이다. 승가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사람들에게만 수강 자격이 주어지는 곳, 두 해의 과정을 끝내면 교수 아사리(강사 자격증)가 주어지는 이곳을 졸업한 학인들은 지난해 8기에 이르기까지 일흔 명쯤 된다. 《중론》, 《유식》, 화엄사상사, 화엄 본경, 그리고 《화엄현담》 등을 공부하는 본 수업말고도, 초기 불교, 팔리어, 아비담마 불교, 한문 등의 특강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지는 이곳 학림은 한 해에 두 달 방학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 주일에 나흘 수업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수업 중에 사제간의 의견 나누기에는 격의가 없다. 인천의 스승이 되어야 할 사문들, 그러나 작금의 한국불교가 풀어야 할 ‘교육 부재’라는 문제점은, 문제 의식을 함께 촉발시켜 가면서 격렬한 공부 과정을 거쳐 배출되는 스님들이 강단에 서게 될 즈음에는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화엄학림 강사 중 한 분인 각묵 스님은 확신한다.
현재 학림의 강사 스님은 넷, 그들은 전공에 상관없이 화엄 본경 수업을 ‘의무적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산스크리트어본 《유식》을 강의하고 있는 각묵 스님은 화엄이 전공은 아니지만 수업이 ‘재미있다’. 인도에서 십 년 동안 유학하면서 그가 연찬해온 초기 불교의 관점에서 보아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데나, 상치되는 점을 짚어주면서, 또한 자신도 학인들과 ‘함께’ 배우기 때문이다. 각묵 스님이 큰절에서 천천한 걸음으로 10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화림원을 처소로 삼은 것은 2003년 3월부터이다. 학인들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함께 배우는 일의 즐거움이 없지 않지만 그가 금생에 해마치고 싶은 일, 그래서 ‘일의 순번’에서 양보할 수 없는 것은 따로 있다. 부처님이 45년 동안 설법한 당시에 쓰셨던 언어인 팔리어로 적힌 경·율·논 삼장을 모두 우리말로 번역해 내는 일이다.
칠십년대 중반쯤에 출판물로써 그 징조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던 초기 불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대학 재학 시절 대불련과 부산대학교 불교학생회에서 활동했던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것은 미미한 것이었다.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때, 안정된 미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이미 안중에 없어져버린 그로서는 선방의 좌복 위에 앉으려는 마음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에 모친을 사별한 그의 아린 마음에서 비롯된 삶에 관한 작지 않은 물음이 그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대학 시절에 만난, 구척 키만큼 뿜어내는 기가 엄청났던 스님, 버릴 수 있는 것 다 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느냐?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대답한 그를 향해 벼락처럼 내린 할, 저놈 갖다 묻어버려라! 마조의 할로 백장의 귀가 사흘 동안 들리지 않았다더니, 사흘 동안 정말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일을 몸소 겪으면서 그는 출가를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7대 장손의 처지로 뜻을 세우기가 쉽지 않더니, 수련대회에서 사흘 용맹정진 끝에 천배 절을 하고 우물가에서 지쳐 쓰러졌다가, 눈을 뜬 순간에 홀연히 정리가 되었더라 했다.
《선문염송》 수준의 책까지 섭렵해버린 뒤이기도 했지만, 강원 과정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제방 선원에서 참구하는 세월은 7년, 나름대로 애썼던 시간들이었다. 새벽잠을 이기려고 오후는 불식하고, 주린 배를 물로 채우다 말고 조석으로 백팔배로 몸을 이기려던 시절, 뼈만 남은 그때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20kg쯤 몸무게가 늘어난 지금의 그를 못 알아 본다.
인도행도 ‘수좌식’으로 결정한 일이라며 그는 오늘 웃었다. 마지막 선방, 칠불암에서 결제중이었는데 한 달 보름이나 외국 망상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외국행, 푸나대학 입학 허가서를 받고 인도로 떠난 것이 89년이었다. 그리고 십 년 동안 그곳에서 산스크리트어와 인도 철학을 전공, 박사 과정을 마치는 동안에 팔리어와 프라크리트어를 익혔다. 인도의 고문헌에 관한 폭넓은 섭렵도 이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 성지를 순례할 때마다 엎드려 절하면서 올린 기도는 ‘이생에서 팔리어 삼장을 완역할 수 있게 해주십사’는 것이었고, 그것은 기도로 끝나지 않고, 학업을 계속하는 동안 역경을 위한 방대한 자료 저장도 함께 병행했으니, 지금 그의 컴퓨터에는 경전 주석서만도 일백오십 권 정도, 그리고 20만 단어를 자신이 뽑아 담은, 사전 여덟 권 분량의 자료가 입력되어 있다. (그는 요즘도 국내에서 역경 일에 전념할 형편이 못 된다고 판단이 되면 이 자료가 담긴 노트북 하나만 가지고 외국으로 ‘피신’을 간다)
그가 산문 안팎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1년에 《금강경 역해》(부제:금강경 산스끄리뜨 원전 분석 및 주해)를 출간하고 난 뒤부터였다. 산스크리트 원문을 싣되, 그의 주관적 과목 나누기(이것도 경전 해석의 관점이 된다)와 함께, 구마라습의 의역과 현장의 직역을 일일이 대조시키면서 역해해 낸 그의 역작물은 경전 연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년 겨울, 이 책을 교재로 삼아, 그는 논주로서 사부대중 대상의 동안거 간경看經 결제를 이끌면서 논의를 심화시켰다. 참선이 아닌 간경식 결제 형식도 그러했거니와, 승속이 함께 결제에 동참하는 일도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일이었다. 40명의 스님들, 그리고 일천삼백 명쯤의 일반인이 참여, 한겨울 시린 지리산 자락을 후끈 달구었던 법석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은 ‘무아’로서, 실체화될 어떤 것도 상정할 수 없다. ‘실체’란 없으며, 그저 인연의 조건(관계)에 따라 이루어지는 ‘연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무아는 곧 연기이다. 《금강경》이 설파하고 있는 핵심적 내용이다. 주인공도, 여래장, 불성, 진아, 참나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불생불멸의 생명 자리가 따로 있다고 믿는 힌두의 믿음과 다를 것이 없다. ‘공空’을 꿰뚫어보는 것이 ‘반야’이며, 이는 허무가 아니라 ‘연기’인 것이다.”
그로서는 부처님의 원음을 접하면서 겪어야 했던 지독한 충격 속에서도 접지 못한 간화선에 대한 애정이었다. 간화선이야말로 ‘무전제’의 수행이고, ‘무전제’는 바로 ‘무아’라는 초기 불교의 근본 입장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며, 그래서 최상승의 수행법이라 자부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도그마이다. 간화선이 동북의 전통에 맞는, 팔정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수행 테크닉이듯, 비파사나 또한 구경 열반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아니, 실은 자신에게는 그런 구분조차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의 관심은 부처의 가르침을 어떻게 ‘바르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말의 문제, 결국 뜻을 전하는 말의 문제였다. 그는 그 답을 ‘초기 불교’라는 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팔정도 가운데서도 수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념正念’을 이해함에 있어, 그는 ‘마음 챙김(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라고 이해하고 그렇게 적고 있거니와, 한국불교 간화선이 화두를 들되, 면밀하고, 세밀하고, 정밀하고, 엄밀하고, 그리고 간절하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실은 주객을 초월하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 자신도 역경을 하는 사람으로서 구마라습이나 현장에 대한 놀라움은 금할 수 없지만, 잘못 옮겨놓거나, 고의는 아니었더라도 ‘의도’가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 여긴다. 5세기에 구마라습이, 7세기에 현장이 정착시킨 한문은 현재의 이해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역 경전이란 결국 2차 자료일 뿐이다.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로 적힌 원전을 우리말로 옮김으로써, 한역의 오류와, 그 오류를 답습한 우리의 역사까지 객관화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작업은 1600년 한국불교사에서 처음으로 중국불교의 아류에서 벗어나 자주 불교를 실현할 기회가 되어줄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는다. 그는 다시 강조해서 말했다.
“역경에 한국불교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가 세운 원력의 내용인 바, 팔리어 삼장을 제대로 역출해 내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은 어떤 것일까. 언어학적 이해나 소양, 그리고 아비담마와 이를 바탕으로 삼고 있는 주석서를 섭렵한 뒤에 얻을 수 있는 경에 대한 안목 등을 꼽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역경의 소양과 깊은 이해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를 지금 여기 내 삶에 적용시켜 해탈 열반을 실현하리라는 원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삼장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불사의 메시지는 바르게 읽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이어 말한다.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말씀이 아닐까보냐.
그가 지도 법사로 있는 초기불전연구원은 그에게 아비담마의 의미를 다시금 깨우치게 한 소중한 도반인 대림 스님이 이끌고 있는 곳이다. (대림 스님은 남방 불교 부동의 준거, 번역하기 까다롭고 어렵기로 정평이 난 《청정도론》을 번역해 행원문화상 역경상을 받았다) 그가 사문의 몸으로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여기는 홍법과 포교의 뜻은 책으로뿐만이 아니라, 회원 수효가 이천 명이 넘는 곳, 월 회비로 후원금을 내는 회원 수도 적지 않다는 인터넷 까페(다음, 초기불전연구원)를 통하여 열정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초기 불교와 아비담마에 관한 한 다른 어느 사이트보다도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다고 자부하는 곳이다.
그에게 한 해에 여섯 달은 다른 어떤 일과도 타협할 수 없는 역경 작업 시간이다. 한참 일에 매달릴 때는 열 시간쯤 사분정근 하듯이 시간을 정해놓고 작업을 한다. 여섯 시간 잠을 자도 나머지 여덟 시간 동안 인터넷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알고, 포행도 하고 그런다. 열 시간 작업, 눈에는 알 수 없는 흰 반점까지 생겼지만 뭐 괜찮겠죠, 그러면서 하하 웃는 그는 그간 《금강경 역해》를 비롯, 《아비담마 길라잡이》(공역),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대념처경과 그 주석서)를 세상에 내놓았고, 올해가 가기 전에 《디가 니까야》(장부)도 책으로 나오게 된다.
여름내 화림원 맑은 흙벽을 붙잡고 기어올라간 아기 담장이들, 이 늦가을 잎은 다 지고, 잎맥만 바닷가 새 발자국처럼 애잔히 남아 있다. 서쪽 하늘에 낮게 떠올랐던 개밥바라기가 큰절로 내려가 공양을 하고 돌아오는 그를 반짝, 하고 맞아주었다. 별의 눈빛이 한결 서늘해졌다. 가을이 또 그렇게 지나가나보았다. 팔리어 삼장을 한글로 완역해 내는 것말고도, 주요 팔리어 주석서, 그리고 《아비담마》, 《중관》, <유식》 등을 비롯한 주요 산스크리트 불전을 한글로 번역하고, 초기 불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도 주요 고전도 번역해보고 싶어하는 각묵 스님, 바람맞이 언덕에서 눈부신 등불처럼 저를 켜들었던 은행나무 잎도 다 지고 만 줄을 알아챌 겨를이나 있으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