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4

알라딘: 지적생활의 방법



알라딘: 지적생활의 방법






지적생활의 방법

와타나베 쇼이치 (지은이), 김욱 (옮긴이) | 세경멀티뱅크 | 1998-12-30
공유
URL






정가 5,500원
판매가 4,950원 (10%, 55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마일리지
270점(5%) + 멤버십(3~1%) + 5만원이상 구매시 2,000점

세액절감액 230원 (도서구입비 소득공제 대상 및 조건 충족 시)


추가혜택 카드/간편결제 할인



이 책의 전자책 : 출간된 전자책이 없습니다.
출간알림 신청



224쪽 | 148*210mm (A5) | 291g | ISBN : 9788985502672


배송료 유료 (단, 도서 1만원 이상 또는 신간 1권 포함시 무료)






절판
품절도서센터
의뢰하기

재출간 알림신청
보관함 담기






- 이 도서는 절판 되었습니다. (확인일 : 2017-03-08)






























7.3

Sales Point : 293





읽고 싶어요 (4명)
읽고 있어요 (0명)
읽었어요 (14명)


100자평 (0편)

리뷰 (7편)


이 책을 알라딘에 1,100원
(최상 기준)에 파시겠습니까?
알라딘에 팔기
회원에게 팔기

중고 등록 알림 신청

내 블로그에 상품정보 복사
1:1 문의











- 이 시간, 알라딘 굿즈 총집합!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글쓰기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지적 생활`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책과 책읽기, 그리고 장서에 관한 지은이의 생각을 에세이식으로 모아놓은 책이다.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이냐는 독서법에 관한 글이라기보다 책 자체에 대한, 이를테면 자신의 장서를 꾸리고 이용하는 법, 시간의 활용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과연 `지적 생활`이 지은이가 강조한 것처럼 책읽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지은이는 책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지적 생활의 전부인 양 말하는 편협함을 드러내고 있다. 하긴, 이 책은 출간된 지 벌써 20년이나 지났고 그간의 시대적 간격이 그대로 도드라진 것이긴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든 책읽기란 지은이가 말하는 `지적 생활`에 중요한 부분임은 틀림없고, 그 책읽기를 어떻게 생활화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들은 모범적이진 아닐지라도 한번쯤 참고할 만하다. - 임지호(1999-04-27)





1.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신
셰익스피어의 교훈/ 은사를 만나다/ `모른다`고 말하는 게 두렵지 않게 돼/ 영어 소설을 읽지 못하다/ 지적 오르가슴을 찾아/ 충족치 못한 감정의 해소/ 노령은 겁나지 않는다

2. 고전을 만들다
되풀이하여 읽는다/ 취미의 형성/ 고전이란 무엇인가

3. 책을 사는 의미
자기 돈으로 산다/ 다시 읽고 싶을 때 읽는다/ 카드 시스템의 문제점/ 무리해서라도 책을 산다

4. 지적 공간과 정보 정리
책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자다/ 능동적인 지적 생활자/ 장서와 지적 생산의 관계/ <독일참모본부>의 뒷이야기/ `책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 돈은 시간이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방법/ 에어컨의 효용/ 서재의 음열 대책/ 도서관을 갖는다/ 카드 시스템/ 카드 박스/ 카드의 교체/ 파일 박스/ 복사기 이용법

5. 지적 생활과 시간
조용한 지속/ 시간의 한계/ 해머턴의 충고/ 일찍 일어나는 칸트/ 괴테의 경우/ 조조형이냐 야밤형이냐/ 혈압에 따른 유형/ 중단/ 용광로와 지적 생산/ 괴테의 성/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짤막한 시간, 어떻게 사용하는가/ 통근시간/ 코스팅/ 수면과 평온함

6. 지적 생활의 형이하학
교제를 즐긴다/ 식사에 대해/ 맥주와 와인/ 커피에 대해/ 우유와 위스키/ 산책에 대해/ 가족/ 결혼/ 부부의 지적 생활

7. 지적 생활의 이상적인 모습
자기 도서관을 갖는다/ 장서와 미소/ 질이 좋은 책/ 지적 생활의 반려자/ 스콧의 훌륭한 라이브러리/ 사법관으로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스포츠·저작·사교/ 불행 속에서의 일대 분투/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본업과 지적 생활/ 육체에의 배려/ 찻집에서의 대화



자료에 대한 감식안을 키우고 독서의 질을 높이려면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게 좋다. 줄거리를 알지라도 문장과 서술방법에 매료되어 「자신만의 고전목록」을 만들어내야 독서 취미가 예민해진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서재=장서」 마련하기. 그래야 문득 읽고 싶은 책이 떠오를 때 독서에 돌입할 수 있고 「개인 도서관」은 「지적 무기」가 되고 중단 없는 생산성을 담보한다.

집필을 염두에 두는 「능동적인 지적 생활자」는 책 위에 이부자리를 펼 각오까지 해야 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쓸 때 나폴레옹 전쟁관련 자료만 도서관 분량을 모았다. 바빠서 책을 못 읽겠다는 말은 핑계다. 근대적 의미에서 첫 베스트셀러 작가라 불리는 영국작가 스콧은 25년여 동안 서기직과 판사직을 겸하면서 장편소설·서사시집 등을 48권이나 썼다.






지은이 : 와타나베 쇼이치 (渡部昇一)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지적생활의 발견>,<심리학이 잡은 범인> … 총 199종 (모두보기)
소개 :
평론가이자 조치 대학 명예교수. 동서양의 폭넓은 학식과 깊은 통찰력으로 문학, 역사, 사회, 경제 등 다방면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1930년 일본 야마가타 현에서 출생하여, 조치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문화연구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55년부터 1958년까지 독일 뮌스터 대학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했으며, 뮌스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조치 대학 문학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 후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부패의 시대》 《독일 참모본부》 《영어어원의 소묘》 《인간다움의 구조》 《비술로서의 문법》 《자신의 벽을 깨는 사람》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 《무엇이 일본을 이상하게 만들었나》 《지적생활의 발견》 등이 있다.





옮긴이 : 김욱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상처의 인문학>,<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베스트셀러 절대로 읽지마라> … 총 125종 (모두보기)
소개 : 서울대 신문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서울신문, 경향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서 3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 생산성 본부’ 출판 기획위원 및 현재는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한국 교직원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상처의 인문학』,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노력론』, 『지적 생활의 즐거움』, 『쇼펜하우어 문장론』, 『약간의 거리를 두다』, 『잠깐 흔들려도 괜찮아』, 『죽음이 삶에게』 등 다수가 있다.







읽고 싶어요 (4)
읽고 있어요 (0)
읽었어요 (14)


100자평

카테고리
스포일러 포함


현재 0 / 280byte (한글 140자 이내)
등록

글 작성 유의사항

구매자 (0)
전체 (0)

별점순
최신순
공감순
등록된 100자평이 없습니다.


마이리뷰
쓰기

구매자 (3)
전체 (7)

별점순
최신순
공감순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
안티고네 2001-04-07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적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당연히 ‘책’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얻는 지적인 기쁨이 너무나 달콤한 것이어서, 노령(老齡)이 겁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겁나기는커녕 오히려 정년(停年)이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차례로 신간(新刊)을 사들여 아침부터 책을 읽는, 정년 후의 인생이 지금부터 기다려진다.”고 말할 정도이다.

『논어』에 보면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이다. 실로 저자는 독서를 즐기는 경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은 어디에 와 있는가?

저자는 지적 생활을 위해서는 자기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입이 적으면 적은대로, 그 때 그 때 자기 돈으로 책을 조금씩 사들여 자기 주위에 책을 쌓아가는 것이 지적 생활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장서’, 곧 ‘도서관’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어느 날 문득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찾던 그 책이 곁에 없어서 읽을 수 없었다면, 그것은 지적 생활에서 치명적인 일이다. 이튿날 또는 다음 기회에 도서관 등에서 빌려 보려 했을 때에는 이미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감흥이 사라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시 책은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책을 산다든가 하지 않는 사람이 지적으로 활발한 생활을 하는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적 생활이란 언제나 끊임없이 책을 사들이는 생활을 말한다. 따라서 책을 둘 장소를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즉 공간과의 싸움이다. 저자가 아는 한 연구자는 책 때문에 밤에 이부자리를 펴지 못해 책을 깔고 그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잤다고 한다. 우리 가운데 과연 이런 사람이 있던가 하고 자문(自問)하지 않을 수 없다.

지적 생활자는 수동적 지적 생활자와 능동적 지적 생활자의 둘로 나뉜다. 수동적 지적 생활이란 주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 한다. 이 경우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아도 된다. 작은 방에 애독서들이 들어차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능동적 지적 생활을 하는 사람, 즉 논문을 쓰거나 신문,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권의 책을 쓰려면 50배, 100배의 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집에서 잡지에 기고할 글을 쓰다가 무언가 조사할 일이 생겼을 때 집안에 참고문헌이 없다면 그날 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이튿날 도서관에 가서 조사를 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한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마감을 지켜야 하는 경우라면 참고문헌이 없어 집필을 중단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된다.

문득 민족주의자이자 무교회주의자였던 김교신(金敎臣)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선생은 절대 책을 남에게 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서재란 마치 구축함과 같아서, 전시에 어떤 무기를 뽑아 사용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글을 쓸 때는 언제 어떤 책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적 생활 초심자의 경우 ‘원칙적으로’ 카드를 만들지 말라고 권한다. 카드 작성은 너무나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독서가 중단된다는 것이다. 결국 카드 쓰기가 귀찮아져서 독서하기가 싫어지고 지적 생활을 위축시키게 된다.

책 한 권을 사서 카드를 작성하면서 읽는 시간에 20권의 책을 읽으면서 중요 대목에 줄을 쳐가며 읽을 수 있으니, 도서관 책을 빌리지 말고 책을 사버리는 것이 결국은 시간 절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산다는 것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인생은 짧으니까)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의 경지에 들어간 저자가 부럽기 짝이 없다.


공감(8) 댓글(0)
책읽기와 책 모으기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유용한 책
은비 1999-12-07
내가 정기 구독하는 잡지 중에 <인물과 사상>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11월 호에 실린 최성일의 글 때문에 <지적생활의 방법>을 접하게 되었다. 최성일은 그 글에서 책을 권하는 릴레이를 말하면서 그 예로 <지적생활의 방법>을 들고, 본인이 이 책을 읽게되기까지는 세 명의 책 권하기 릴레이가 있었노라고 말하고 있다.

최성일 뒤로 이어지는 릴레이의 끝에 내가 서 있다. 그 글을 읽고 이 책을 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서평을 읽은 누군가가 내 뒤를 이어 릴레이의 주자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말고도 최성일의 글을 읽고 그의 릴레이를 이어받은 내 친구도 있으니, 어쩌면 이 릴레이는 피라미드처럼 퍼지지 않을까.

<지적생활의 방법>은 나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책은 내 행동까지 변화시켜버렸다. 학교를 다닐 때는 서술형 시험의 답안지일지라도 글을 써야했지만, 졸업한 이후에는 남에게 보여주는 글과는 담을 쌓았던 내가 지금 겁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는 인터넷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 그 증거다. 이 책에서 언급된 능동적인 지적 생활을 하려고 생각하니 가장 쉬운 길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 책은 무난하게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쉬운 주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우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자기자신에게 솔직 하라는 말을 다시 새롭게 들려준다. 그것이 진정으로 알게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그리고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독서의 질이 높아지며, 그렇게 반복되는 독서에서 선택되는 책들이 자신만의 고전이 된다는 것이 그 것이다.

주문은 점점 어려워진다. 집은 좁은데 책이 넘치면 그 위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을 자더라도, 돈이 쪼들릴 때에도, 무리를 해서라도 꼭 책을 사라는 것, 끊임없이 책을 사들여서 자신만의 장서를 갖추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부끄러워진다. 나는 반복해서 읽는 책이 몇 권이나 되지? 누군가 집을 방문하면 내 지적 여정을 알아볼 수 있는 책으로 들어찬 책장은 가지고 있나?

그리고 이제는 책을 사고, 읽고, 얘기 나누는 수동적인 지적생활을 떠나서 글을 써서 발표하는 능동적인 지적생활을 하라는 주문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책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을 쓰는데는 50배, 100배의 책을 가지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책이 엄청나게 많아지니까 서재가 아닌 도서관을 가지는 게 좋다 !

아, 나는 책장도 보잘것없는데, 도서관이라니.

그러나 때로는 나에게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여러 작가들이 글을 쓰는 방법을 언급한 대목이다. 나는 위대한 걸작을 남긴 뛰어난 작가는 번득이는 영감으로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내는 줄 알았었는데, 이 책은 그들도 꾸준한 근면 성실함과 엄격한 시간 관리로 그 일을 해냈다는 비밀을 누설한다.

'몇 줄의 글을 쓰는데 왜 나만 이렇게 오래 걸리고, 자꾸 썼다 지웠다 고쳤다 하는 거야?' 같은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리고 구상이 떠오르면 먼저 과감히 쓰기 시작하라는 충고도 시작하기 전에 망설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이 많은 내게 적절했다.

그러나 이 책에도 내가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점이 있기는 하다. 질이 좋은 책(고급 양장본)이 좋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결혼의 폐단이라든가, 여성은 결혼을 해도 남편에 대한 의무감과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는 지적생활을 영위하기에 더 좋다는 생각은 우리 여성의 처지를 너무나 잘 모르고 하는 소리 같다.

그러나 그런 작은 허물을 덮고 보면 전체적으로 이 책은 책읽기와 책 모으기, 그리고 글쓰기에 관해 따라하고 싶은 좋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지적으로 살고싶은 사람에게 꽤나 유용한 책이며, 참으로 믿음직한 길라잡이다.



공감(1) 댓글(0)
평범한 사람들도 지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준엽 1999-12-21
알라딘 독자 서평에 올라와 있는 김금련 님의 책 권하기 릴레이를 받고 책을 읽게 되었다. 김금련 님께 감사드린다.

사람 마다 어떠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바램이 있을 것이다. 돈이 많은 인생, 모험을 즐기는 인생, 창조하는 인생, 그냥 되는 대로 편하게 사는 인생 등. 나의 경우에는 지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 한마디로 지적이고 교양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 내 삶의 목표다. 이책은 이러한 나의 목표에 구체적인 방법과 준비 과정을 일러준 책이다.

저자는 우선 지적인 생활을 위하여 자신에게 충실할 것을 권하며 그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자세임을 밝힌다. 모른다고 말하는 자세가 알려는 노력을 일으키고 결국은 지적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무리해서라도 책을 사야 한다는 가르침은 용돈에 시달리는 월급쟁이에게 과감하에 책을 살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고전은 되풀이 읽히는 책이며 자신만의 고전을 만들기 위해 책을 쌓아 가며 되풀이 읽어 가는 것이 독서의 질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지적과 자신의 도서관을 만들라는 충고 또한 한 단게 높은 지적 생활의 모범을 보여 준 대목이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들어온 것은 독서,사고,토론의 '수동적인 지적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저술과 논문 발표 등의 '능동적인 지적생활'로 향상 시키라는 권고와 구속이나 제한 없는 자유로운 지적생활을 위해 경제적인 자립을 꾀하라는 권고이다.

인상 깊어 머리에 남았지만 경제적인 자립을 그것도 지적인 생활을 위해 꾀하는 것은 두 아이와 아내가 있는 평범한 월급쟁이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주어진 조건에서도 나는 나의 가족과 지적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능동적인 지적생활의 창조물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고 또 읽고, 쌓고 또 쌓고, 쓰고 또 쓰고 할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열매로 저자가 지적생활의 바이블이라 이야기한 P.G 해머튼의 <지적생활을 위하여>를 샀으며, 다음의 문구를 가슴에 남길 수 있었다.

-- 몇 살이 되든 지적 생활의 중심은 고독 속에서 생각하거나 명상하거나 하는 시간, 고독 속에서 책을 읽는 시간, 고독 속에서 작업하는 시간이다. 하루 몇 시간이고 완전한 고독 속에서 지내더라도 마음은 마냥 즐겁다는 기질을 갖지 못하게 되면 지적생활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본문 157쪽)

-- 이 세상과 함께 할 때 인간은 자기 시대에 살게 되지만 고독할 때는 모든 시대와 사는 것입니다. (본문 160쪽)



공감(1) 댓글(1)

2019/03/20

Spong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 - The Fo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

 존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 주교의 책 <요한복음 해설서>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 -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
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  2013
by John Shelby Spong

====

책 한 권 소개합니다. | 자유게시판


2019.03.20. 00:33

soft103a(soft****)
나눔회원

경계너머 아하!https://cafe.naver.com/yooyoonjn
https://cafe.naver.com/yooyoonjn/1682


오늘 어느 출판사 대표와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그 분 말씀이 요즘 신문에 내는 책 광고는 전혀 효력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광고 효과가 있는 곳이 페이스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존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 주교의 책 요한복음 해설서가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에 그가 쓴 요한복음 해설서의 개략을 말씀드려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한국말로 번역한 변영권 목사님이 계시지만 좀처럼 언급이 없으셔서 제가 두어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스퐁 주교는 미국 뉴저지 주 성공회 주교로서 많은 책을 썼고 그 중 많은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여기 저기 강연도 하고 책도 계속 쓰고 있습니다. 그가 82세 이후에 쓴 요한복음 주석서와 마태복음 주석서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책 중에 들어갑니다. 마태복음 주석서는 변영권 목사님이 지금 번역중인 것으로 압니다.

요한복음 주석서는 원서 제목이 The Fo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입니다. 한국어로는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 -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한국기독교연구소 | 2018년 6월)로 나왔습니다.
--------
Spong 주교 자신도 자기가 책에서 주장하는 바가 전통적인 교인들, 심지어 교회를 졸업한 사람들에게도 걸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페친 되시는 분들은 신학계에 이런 주장도 있다고 하는 것 쯤을 알아두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미 알고 계시는 분도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저는 지금 한국 번역본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영어로 된 것을 좀 자유스럽게 의역하려 합니다. (영어본 10쪽에 나옵니다.)

1. 요한복음은 약 30년에 걸쳐 각기 다른 저자들에 의해 각기 다른 층으로 된 기록이다.
2. 그러므로 요한복음에는 어떤 의미로든 문자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라 여겨질 수 있는 것이 포함되어 있을 수 없다.
3.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한 말씀의 어느 것도 역사적 예수가 직접 말한 말이라고 볼 수가 없다.
4. 요한복음에 표적(signs)라고 불리는 기적, 예수님이 행했다는 그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다.
5.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저자의 문학적이거나 가상적인 창작으로서 실제로 살았던 인물들이 아니었다.
6. 외계의 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었다고 하는 언어,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이 복음서를 읽는 방식을 꼴지우고 있지만, 이것은 이 복음서 저자가 의도했던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상입니다. 놀랍더라도 이 책의 즐독 부탁 드립니다.
==========






Follow the Author

John Shelby Spong
+ Follow


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  2013
by John Shelby Spong (Author)
4.7 out of 5 stars 224 customer reviews


John Shelby Spong, bestselling author and popular proponent of a modern, scholarly and authentic Christianity, argues that this last gospel to be written was misinterpreted by the framers of the fourth-century creeds to be a literal account of the life of Jesus when in fact it is a literary, interpretive retelling of the events in Jesus' life through the medium of fictional characters, from Nicodemus and Lazarus to the "Beloved Disciple." The Fourth Gospel was designed first to place Jesus into the context of the Jewish scriptures, then to place him into the worship patterns of the synagogue and finally to allow him to be viewed through the lens of a popular form of first-century Jewish mysticism.

The result of this intriguing study is not only to recapture the original message of this gospel, but also to provide us today with a radical new dimension to the claim that in the humanity of Jesus the reality of God has been met and engaged.

Editorial Reviews

From Booklist


*Starred Review* 

The Gospel of John differs from Mark, Matthew, and Luke in terms of style, tone, and many of the events described. Further, the gospels tendency to negatively call out “the Jews” has led, in many ways, to anti-Semitism. So it’s surprising that Spong, a former bishop and educator who has written persuasively about the need for a nontheistic Christianity, would choose to devote a book to John. 

And in fact, Spong writes about his difficulties coming to terms with John’s message. But, in his eighty-second year, Spong feels he at last understands John, seeing it now in a new light, as the writing of a Jewish mystic. He moves readers deliberately through the pages of the gospel, explaining by example how he’s come to his conclusions. 

John, he maintains, was written after the Johanine community had been expelled from the synagogue. Consequently, John’s purpose in writing is to use Jewish symbolism to explain Jesus and his movement to those who would not or could not accept him. Spong himself says that many of the ideas here—let’s boil it down to God is love—aren’t new. But Spong is writing for a lay audience, and he does so magnificently. His thoughts are bracing, his writing exciting, and his conclusions thought provoking. Those who love reading about religion in general and Christianity in particular may want to go through this volume more than once. --Ilene Cooper
Review


“We now approach our scriptures with a literalism that is unparalleled in the history of religion. This new and imaginative book by John Shelby Spong will liberate many people from this unnecessary complication of the religious life.” (Karen Armstrong, author of A History of God: The 4,000-Year Quest of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Spong is writing for a lay audience, and he does so magnificently. His thoughts are bracing, his writing exciting, and his conclusions thought provoking. Those who love reading about religion in general and Christianity in particular may want to go through this volume more than once.” (Booklist (starred review))

“No one has done more to articulate a vibrant, post-mythic vision of Christianity than John Shelby Spong. Bishop Spong’s masterful interpretation is destined to become a classic.” (Michael Dowd, Author of Thank God for Evolution: How the Marriage of Science and Religion Will Transform Your Life and Our World)

“Bishop Spong’s in-depth struggles with and work on the Gospel of John have resulted in a book that challenges dominant assumptions and interpretations. This book will help anyone who cares to think about faith in open, dynamic, hospitable, and inclusive ways.” (Tat-siong Benny Liew, Vice President for Academic Affairs and Dean; Professor of New Testament Pacific School of Religion, Berkeley, CA)

“Leave it to Bishop Spong to uncover a message of universal hope that is deeply rooted in Jewish mysticism. Spong’s synthesis of Johannine scholarship will lead both clergy and lay readers to a new appreciation of the surprising origins and message of the Fourth Gospel.” (David Felten & Jeff Procter-Murphy, authors of Living the Questions: The Wisdom of Progressive Christianity)

“Spong is always readable and informative, but this book reads like a cross between a detective story and an adventure saga that is founded on excellent scholarship. I could not put it down.” (Fred C. Plumer, President of Progressive Christianity.Org)

“Spong invites readers on a stimulating and challenging journey to read the gospel of John afresh and to consider Christianity from a new perspective. This is a must read for every Christian who has tried to make sense of this gospel.” (Kah-Jin Jeffrey Kuan, Dean and Professor of Hebrew Bible, The Theological School, Drew University)

“Spong stands on solid scholarship. . . . More important than the negatives to the profoundly persuasive author is the unburnished positive: . . . The Fourth Gospel calls on the faithful to believe that Jesus achieved ‘the mystical oneness with the God who is the source of life.’” (Publishers Weekly)

“In his 24th book, 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 the always provocative Bishop John Shelby Spong takes on the Gospel of John, opening new windows of insight and challenging the ways the fourth gospel has usually been understood.” (Publishers Weekly)
Read lessSee all Editorial Reviews


Product details

Hardcover: 368 pages
Publisher: HarperOne; First Edition edition (June 11, 2013)
Language: English
ISBN-10: 0062011308
ISBN-13: 978-0062011305
Product Dimensions: 6 x 1.2 x 9 inches
Shipping Weight: 1.2 pounds (View shipping rates and policies)
Average Customer Review: 4.7 out of 5 stars 224 customer reviews





More about the author
Visit Amazon's John Shelby Spong Page

Follow

Biography
John Shelby Spong was the Episcopal Bishop of Newark, New Jersey for twenty-four years before his retirement in 2000. He is one of the leading spokespersons for liberal Christianity and has been featured on 60 Minutes, Good Morning America, FOX News Live, and Extra. This book is based on the William Belden Noble lectures Spong delivered at Harvard.

----------


Top Reviews

fusiafinch

5.0 out of 5 starsA compelling treatise!!June 15, 2013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No matter what your opinion about John Shelby Spong's ideas and theology, he sure writes in such a compelling and entertaining way that it's hard to put the book down! This book gives a brand new and fresh insight into the Gospel of John that will be especially attractive to those who have given up on Christianity. Spong's insights offer a new way to interpret the Christian story that will be compelling to many of us in the "Church Alumni Association, and give us a way to believe in the transformative message of the Christian story again.

Spong goes way beyond his primary thesis that the Gospel of John is not to be read literally, but symbolically. He supports his arguments with excellent Biblical scholarship that also incorporates ideas from his earlier books into this treatise. He not only presents many of the characters in John as symbolic literary creations or developments, but also finds new insights into history and theology by doing so. This book is compelling reading which will inspire those who have left the church because of the Church's adherence to dogmatic literalism. But the book will also disturb those who base their faith on the literal historical reading of the text. Either way, the book is never boring!

I have only one criticism. Spong makes a clear argument in favor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as a non-literal, non-physical event. But he also implies an objective reality to resurrection that is clearly more than the disciples subjective experience. But he does not elaborate too much on what that objective event could be. He mentions that resurrection "means something" but does not speculate further on what that "something" is. He does mention entering into a "universal consciousness" or "entering into the life of God" and I would have loved to hear his personal speculation about this. I know it would be speculative, but I hope he addresses this more in his other writings. But this criticism does not diminish the profound insights found in the rest of the book.

Some pages of this book dazzled me with insights that I have never even thought of before. He also offers new ideas about traditional biblical characters that create whole new meanings for the Biblical text. For that alone, I recommend this book.

89 people found this helpful

HelpfulComment Report abuse

C. M Mills

TOP 500 REVIEWER
4.0 out of 5 starsA good exegesis of the gospel of John by the liberal John Shelby Spong will help enlighten readers on hope in Jesus ChristAugust 8, 2014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I am a Presbyterian minister who believes that Jesus DID APPEAR IN THE FLESH to his disciples following the resurrection..I also believe that John Shelby Spong has done the faith community a service in this splendid new book on John. Among many fascinating notes observed by Spong who spent five years studying John in detail the following proved the most salient to me:"
1. Spong clarifies the differences between John and the synoptic gospel. For instance, John has no parables, miracles and shows Christ appearing in Jerusalem on several occasions. The Last Supper occurs prior to Passover in the account in John.
2. Jesus is the triumphant Lord whose enthronement culminates on the cross. Spong believes that Jesus shows us how to transcend human barriers to exert complete and full freedom. John is adverse to atonement theology.
3. The first twelve chapters of John are ":the Book of Signs": Light and Darkness, Death and Life are all themes in the gospel. We see how various New Testament characters respond to Christ';s call to enter His reign of life and love. Peter accepts the Lord while Judas refuses I.
4. Mary the mother of Jesus represents Judaism. As Spong focuses on the major figures in the gospel he asserts that they are fictional symbols crafted by John and do not reflect real persons.
5. John was the last gospel written and its provenance is probably in Ephesus. Much of the gospel deals with the conflict between Judaism and the emerging Christian community which had been expelled from the synagogue.
6. Jesus speaks in long discourses which Spong says were composed by John., He believes there are no authentic words of Jesus recorded in John
7. Spong supports the Jesus Seminar which seeks to discover the actual words of Jesus. This is a highly controversial group!
8. Spong believes we need to eschew biblical literalism and explore the symbolism of the gospel of John.
9. Spong believes John is a deeply Jewish book influenced by mysticism.
Whether you agree with Spong's radical conclusions or not the book is a good study of John. Worthwhile.

14 people found this helpful

HelpfulComment Report abuse

Ernest G. Barr

5.0 out of 5 stars
An Eye Opener for Readers of the Fourth GospelAugust 13, 2013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This is among the best books retired Bishop Spong has written. I don't claim that lightly; while I haven't read them all, I have read twelve and in this one Spong does a masterful job of unraveling the obscured messages that the author (actually three writers) have written in the Gospel of John. The writers, Jewish mystics, use stories and characters that are not historically verifiable, however, they convey truths that cannot be discerned by literal interpretation.

An example is the story of Jesus' conversation with Nicodemus, who came at night (suggests "religious night"). The phrase,"born again" confused Nicodemus. Spong suggests that the meaning is, "You must enter a transformative experience. You must see with insight...You must open yourself to a totally new perspective."

Throughout the book there are fresh interpretations of familiar word or concepts. For example: there is no such thing as "the faith". "Faith is not believing in creeds, doctrines, or dogmas; faith is trusting the divine presence to be in every moment of every tomorrow." Faith is about more than believing--it is living!

"For John there was no fall into sin and thus no time when the human and the divine were separated: One literally permeated the other." Jesus, therefore, did not "die for your sins." Neither was he the victim whom God punished in our place. The death of Jesus was not punishment. Jesus gave his life away in love."

These are just a few of the gems that await. While Spong usually leaves the reader a bit unsettled, it is my contention that it is through that turmoil the thoughtful, seeking reader grows in the Christian faith.

Ernest G. Barr
========


Rev. Luther C. Pierce

3.0 out of 5 starsTypical Spong, he takes an almost destructive interpretation of ...April 14, 2015
Format: HardcoverVerified Purchase
Typical Spong, he takes an almost destructive interpretation of a biblical message and then ends up with some very helpful spiritual comment and advice. Read it with care unless you, too, are way out left on biblical scholarship.

3 people found this helpful


=========
Goodreads

COMMUNITY REVIEWS
Showing 1-30
4.13 ·
Rating details
· 328 ratings · 57 reviews




Filter
|
Sort order

Jun 22, 2013Lee Harmon rated it it was amazing
Spong has never warmed to the historicity of the Fourth Gospel. In fact, he never warmed to that gospel much at all, until the last few years, when he decide to make a study of it. I’m glad he finally did; I thoroughly enjoyed reading Spong’s analysis.

He begins his book by admitting that the older he gets, the more he believes, but the fewer beliefs he holds. I quoted Spong in my own book about John’s Gospel (published just three months ago) as saying “I do not believe I can make a case for a si ...more
flag9 likes · Like · 1 comment · see review



Jul 07, 2013Donnal Walter rated it it was amazing
Shelves: christianity, mysticism
Except for when I am traveling by air, I read few books these days, but a few weeks ago I received 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 by John Shelby Spong. It was intended for my bedside table along side half-a-dozen other volumes awaiting my attention. I decided, however, to read the Preface, which turned out to be Chapter 1, and by then I was hooked. I read the book in two days. Absolutely spellbinding. No, it was more than (or other than) captivating, it was liberating.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 I can clearly state why I am still a Christian.

Unlike Bishop Spong, I have always been partial to the Gospel of John, but like Spong I have found this gospel troubling, albeit for different reasons. For example, changing water into wine has always seemed impossible to me, as unlikely as either Jesus or Lazarus literally being raised from the dead. These would not be miracles in my mind, they would represent a complete repudiation of my entire worldview. This is not to say that my worldview is closed or static (and physicist Lee Smolin has recently expanded my views), but a literal interpretation of these stories is simply incomprehensible to me. For the learned bishop to state, therefore, "that literalism can never be applied to this book and the author(s) tell us, on almost every page, that a literal approach to the reading of this book is worthy only of ridicule," is a breath of fresh air to me. Amen. Whew. Finally.

For me to say any more about the particulars of this book would be to sell it short, but I would like to say a little more about its style and my personal response. I have read a number of other books by Spong, and while I have generally found them to be intellectually stimulating and spiritually uplifting, at the same time I have had the uneasy feeling that his scholarship may not always be as rigorous as I might have hoped. Not being a scholar in these topics myself I cannot be any more explicit than that. I've been sympathetic to his writings, but uncertain about how much authority to ascribe to them.

This book is different, not because I am any more of a scholar in this area than any of the others and not because the scholarship behind this book is any more compelling than that of the others. It is different because of the way it speaks directly to my own experience. It has the ring of truth on every page. It is a poem that speaks deeply to my soul. It is a poem on many levels. The Book of John is so poetic, and the way Spong opens its meaning is nothing short of a poem. For example, to read Jesus' farewell discourses to his diciples as John's encouragements to the (mystical) community at the end of the century is beautiful, and by the time Spong finishes it all fits together as a unified whole. (For what it's worth, the scholarship also seems more robust this time around, but honestly I am in no position to judge.)

My review may be criticized as little more than a subjective response to finding an argument to shore up a personal worldview that may or may not be valid. I have no way to objectify Bishop Spong's conclusions or my own empathetic response, but when page after page my every response is "yes, exactly" something must be said for the inter-subjectivity that is at play.
(less)
flag4 likes · Like · comment · see review



Nov 12, 2013Fred Kohn rated it it was amazing
Shelves: christian-nonfiction
After reading this book, my opinion of it hovered between three and four stars. But one should never read a book such as this without immediately checking its assertions against the scripture it is discussing. After rereading John's gospel, I couldn't help but enthusiastically rate this book as a five star book.

One who expects this book to be solely exegetical will surely be disappointed with it: there is a lot of bishop Spong's personal theology injected into this book. Some of his minor theories I found to be simply wild speculation But the major ones are backed up with a lot of sound research. I was quite surprised to hear that there is nothing in John of original sin, and hence nothing of the need for atonement. In my rereading of John, I found that this is indeed the case. Instead, John explains his theory of the crucifixion in these verses: "Then one of them, named Caiaphas, who was high priest that year, spoke up, 'You know nothing at all! You do not realize that it is better for you that one man die for the people than that the whole nation perish.' He did not say that on his own, but as high priest that year he prophesied that Jesus would die for the Jewish nation, and not only for that nation but also for the scattered children of God, to bring them together and make them one." (John 11:49-52) Thus the purpose of the crucifixion for John is to bring about unity- a theme reiterated throughout that gospel and even put upon the lips of Jesus: "If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I will draw all people to Myself." (John 12:32) A possible connection that I personally find fascinating is that this all may be an echo of an earlier communion formula in The Didache:

We thank Thee, our Father, for the life and knowledge which You madest known to us through Jesus Thy Servant; to Thee be the glory for ever. Even as this broken bread was scattered over the hills, and was gathered together and became one, so let Thy Church be gathered together from the ends of the earth into Thy kingdom; for Thine is the glory and the power through Jesus Christ for ever.

If atonement is not in sight in John, then the famous and misused quotation of Jesus: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John 14:6) needs to be rethought. This scripture is usually understood as "Christianity is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Christianity," complete with its atonement theology and all that jazz. Thanks to Shelby Spong I haverethought John 14:6, but as this review has gone on way too long anyway, I'll just let you all read this book and decide for yourself what it means.(less)
flag2 likes · Like · comment · see review



Sep 11, 2014Joel Hubbard rated it did not like it
The Right Reverend John Shelby Sponge has shown himself to be, once again, both a lunatic and a ravening wolf in this remarkable book of his entitled "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

To begin, I stopped reading his book on page 80 as he is trying to persuade us (unsuccessfully) that Our Lord's mother was nothing but a literary creation invented for the purpose of telling the "christ"-experience in order to write this rather short review. Here are my assumptions formed from The Right Reverend "Lunatic"'s book:

One: He would have us believe that in order to read the Gospel of John as it was originally written and read -- without a theistic, "Nicene", "literalistic" view, as he cautions us -- we must, for the lack of a better word, "regress" back into Judaism, or more specifically, back into Jewish mysticism.

The Christ of the Christian religion never came to Earth -- rejecting the weak argument that He was a "god-in-the-sky"; the early Christians, Jew and Gentile, never thought like that -- to preach a modernistic Middle-eastern, Buddhism-like "faith" that was completely foreign to both the Juaistic and Hellenistic religions of the day. He came for the express purpose of sacrifice upon the Cross, to redeem the fallen race of humankind from our futile shortcomings and failures (*leh gasp!*), and transform us into His holy and royal Bride the Church Universal.

Two: He contradicts himself many, many times, as in another book (Jesus for the Non-Religious). He says he believes in Jesus, also calls Him the "son of God", whatever that means, also believes that He was a literal Jesus of history, whomever that is, and also believes that the Christian faith, whatever that means to him, is the way Jesus has given us (there may be others) so that we can go to God-hood.

Then, he turns right around and says, smack in your face, that he does not believe in Jesus -- the traditional Jesus, preferring to use instead a John Shelby Sponge patented "Jesus" --; that he does not believe him to be the "son of God" -- to Sponge, that is the divine nature present within us all, without the silly notions of "sin", "the devil", and "hell" because those represent a dualistic universe and are incompatible to "modern" civilization --; that he does not believe that he was a literal Jesus of history (literal as in the Jesus Christ of the ancient Nicene, Apostles, and Athanasian Creeds, also the entire canonical New Testament, and is the Savior promised by the Jewish scriptures, also known as the Old Testament); and also does notbelieve that the Christian faith is the fulfillment of every religious expression in the world since the Fall of Man. Have I left anything out?

Three, and finally: Sponge is but a product of his times, where scholarly atheism is the only prerequisite to authentication in biblical circles and that they are the only ones worth listening to. I've noticed that on the back cover of his book there are many, many names of atheistic or agnostic authors who're pretty much from the same mold; who're hardly expected to be unbiased in his favor, because, most certainly, they have admitted that they do not believe Christianity, her Founder or the One who sent Him to Earth.

Like all fads and heresies which have distressed the Church since from the time of Christ Himself (starting with the same Jews whom Sponge suggests we become in order to be "christian"), this one shall fade away into the dusts of time like Gnosticism and Arianism -- of which this heresy seems, most probably to this reviewer's mind, a compendium of the two --, and the true faith will go marching on "with the Cross of Jesus, going on before!" (Onward Christian Soldiers, a 19th century hymn)

This here is my two cents.

--

EDIT: After thoroughly reading (and finishing) through "The Fourth Gospel:Tales of a Jewish Mystic", I have come to the conclusion that, if The Right Reverend reverses his stance on the Christian faith -- and no longer attempts to deconstruct the so-called "Jesus-myth" which he (and many others of his stamp like him) believe limits the "Jesus experience" and expression of our enlightened and emancipated civilization -- John Shelby Sponge would be, after C.S. Lewis himself, one of our best apologists. I admire his wit and brilliance in drawing parallels between and juxtaposing the Scriptures with the Four Gospels; but, because of his hardened, unbelieving heart (and I think he refuses to believe), he will, unfortunately, be relegated to the dustbin of history. (less)
flag1 like · Like · comment · see review



Jun 28, 2013Marfita rated it it was ok
Shelves: religion-atheism
Hoo-boy!
I had never read anything by Spong before so I thought I'd try this one, which I purchased along side of Ehrman's book, Did Jesus exist?. I seem to have the same problem with John that he did. Spong avoided this gospel and attacked any antisemitism or other weirdness he thought was caused by it. After 36 years of also avoiding Bultman's commentary on it, he finally sat down to wrestle with it and this is the result.

In a nutshell: this gospel is in no way literal, it's all mystical ... stuff, such as symbolism, metaphor, invented characters, litotes (okay, maybe not litotes). Spong has finally reconciled this book with his own view of Christianity - and good on him! Somehow he is able to believe in the greatness and wonder of God's love without a creed nailing it down. Once you have a creed, he asserts, you draw a line in the sand and it will inevitably lead to violence.

The backstory of the book of John is that it was written by Jews excommunicated from the synagogue for insisting that Jesus was messiah. This explains the onus placed on "The Jews" for the crucifixion. Spong says "The Jews" is a code word for the hierarchy of the synagogue. And, of course, Pilate is given special velvet glove treatment to curry favor with the Roman overlords. But, rest assured! this is a Jewish book by Jews for Jews loaded with Jewish liturgical symbolism and mysticism.

Footnotes are few, and most of them just refer the reader to the bibliography for "information" (usually one of his other books, on sale at bookshops everywhere, but sometimes the works of others), and are designed to keep him on topic and not wander off on something else that's just terribly interesting.

Spong intentionally annoys the literalists early in the game by listing all the things that Just Plain Never Happened and people that Never Existed.

A few interesting crumbs I gleaned from the corpus:

There's no town Magdala, so why is Mary Magdalene, Mary Magdalene? [Obvious answer: there are two other Marys easily identified by their relationships, Mary-mother-of-Jesus and Mary-sister-to-Martha.]

Why was the crippled man crippled specifically for 38 years? Answer: No one knows. Oh, well.

Who was the Beloved Disciple who gets to lie with his head on Jesus' bosom (symposium-style, for dinner) blocking Peter from asking questions? Well, after tantalizing us with the idea that the risen Lazarus was beloved by Jesus, [Spoiler Alert] Spong tells us it isn't anyone. The Beloved Disciple is a made-up character that represents the person that "gets it." It is merely a device which I read as a placeholder for the reader/listener. You are the beloved disciple. There is room for you in that spot. What a nice thought! [This reminds me of the entrance to the children's room in our library. On either side are characters from The Wizard of Oz, but not Dorothy. That's because (sighs and rolls eyes) the child entering the children's room becomes Dorothy. The early Christians listening to this book being read become the Beloved Disciple. Gosh, High Concept drives me nuts.]

Isn't it amazing that Spong somehow retains his belief in God and the open-ended non-creed of "Jesus Is Messiah" despite the Fourth Gospel (Is it called that the same way one refers to "Macbeth" as "The Scottish play"?) being made up almost totally of whole cloth? He hopes to lure us non-believers back this way. It hasn't really done that for me, but it has made me pity the literalists even more. How sad that they wait for the God that they control with their picayune creeds to come and solve all their problems and punish those they envy or hate when He never went anywhere to come back from. Jesus keeps saying, You're looking at Him, He's in me.

This God is as big as the universe and as light as the space between atoms. In trying to define Him, they make Him look ridiculous* instead of a source of the superpower of love, love for everyone and everything, that will set them free here and now.
At least according to John as interpreted by Spong.

*If God is all-powerful, can He make a rock that He Himself can't lift?
If Jesus is God, then God sacrificed His own Self to save humanity from His own judgment. Wouldn't it be easier to just forgive them directly?
Or is Jesus just His son that He filled with His Holy Spirit, which is also Him? (less)
flag1 like · Like · comment · see review



Dec 31, 2018Greg rated it it was amazing
Much like John's Gospel itself, Spong's meditative investigation of the 4th gospel is intriguing, often beautiful and, in equal parts, frustrating.

John's gospel has long been recognized as a work significantly different in content, style, and presentation of Jesus than those by Mark, Matthew, and Luke -- identified, because of their numerous similarities, as the Synoptic accounts.

Mark's was the earliest, perhaps even written before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by the Romans in 70. Matthew and Luke follow, composed somewhere in the next couple of decades, and clearly use Mark's account as the basis for their own, while also adding elements not found in Mark, some from a source known to them both, and others from sources unique to themselves. It is only in Matthew and Luke's gospels that we find accounts of Jesus' birth and they also add post-resurrection information not found in Mark.

John's version is very different for a couple of apparent reasons: 1) His was the only account apparently written after the expulsion of Jewish Jesus-followers from Jewish synagogues; and 2) he was writing to, and from within, a mystically inclined community that was likely itself but a small minority within Jesus-followers, an increasing number of whom were now Gentiles who had little or no acquaintance with Judaism and its long historical and scriptural history.

Spong writes that he can discern at least two different authors in the gospel and notes that other scholars think there might have been even more. There is evidence in our extant text of editing, including possible rearrangement of segments. The lovely tale of Jesus and the woman caught in adultery, for instance, is not found in the earliest texts of John, and actually has more of a Lukan "feel" to it. Also, at one point in Jesus' very long "farewell discourse" on the occasion of the last supper he (Jesus) says, "Come, let us rise and go from here," yet the text then goes on with another segment of the discourse.

Spong's central thesis is that the mystic author (or authors) has written an account of Jesus that is largely symbolic, that is, filled with symbols, figures and images crafted to echo in Jewish memory of their beloved Scriptures and of some of their most memorable heroes and events, including Moses, Joseph the son of Jacob, Elijah, and the Exodus liberation. Furthermore, most of his key characters are "inventions," if not entirely drawn from fictive cloth -- and he includes Jesus' alleged father Joseph, the important figure of Lazarus, and even John's famous "beloved apostle" in this category -- then vastly expanded from what is known about them elsewhere, and here he means Jesus' mother and other figures like the apostle Peter.

The result is an often beautiful, if sometimes quite puzzling, interpretation.

Mary, for example, is, from Spong's viewpoint, John's symbol of Jesus' people -- the Jews, from whom Jesus came, in whom Jesus believed, and to whom he tried to communicate the fulness of life in God. (God, Spong notes here as he has elsewhere, is not some "being in the sky, removed from us or outside our world" but, rather, is -- and always has been -- in "everything" because God is the essence of creation itself. Therefore, each of us is "permeated by God" even if we choose to behave in non-Godlike ways; Spong affirms John's view that "God is love.")

In any case, this Mary is one who, despite having given birth to Jesus, remains filled with doubt, and perhaps some misgivings, because of him. (Spong corectly notes how little Mary appears in any of the gospels, a point worth noting because the attention subsequently given to her by Catholicism in particular is hard to reconcile with the insignificant role she actually plays in the gospel accounts.) So, in John, this Mary, while clearly knowing that her son possesses mysterious powers -- recall the first "sign" reported in John's gospel, the changing of water into wine at the wedding feast in Cana, an act done at his mother's request -- she appears uncertain about the direction his teaching is taking him. In a sense, Spong writes, she "stands aside" from Jesus, apart, but not severed, from him.

And the unnamed "beloved apostle," Spong believes, represents those persons who have come to understand Jesus' message of "life=fullness of living love." When, therefore, John pictures the two of them -- Mary and the beloved disciple -- standing at the foot of Jesus' cross (a "fact" not mentioned in the Synoptic accounts), he is attempting to say that the Jesus-followers who truly "got it" are to take unto themselves -- for protection and honor -- Jesus' people, the Jews, until such time as his people could come to understand his message about the essence of God as well.

Despite the horrific way John's use of "the Jews" in his gospel as a shorthand reference to those among the Jewish community who were opposed to Jesus has been used to justify anti-Semitic acts over two thousand years, Spong argues that John's actual message is that Jesus-followers -- very much including the now majority Gentiles among them -- were not to abandon but to embrace the Jewish people!

Spong may be "right on" with all of this, and I do encourage those among you who are persistent inquirers about "the truth of Jesus" to read his book for yourself.

However, there are aspects of his work -- this book and in his others -- that I find puzzling, even a tad unsettling.

For one thing, I think he has fallen into the kind of trap all of us can get into when we think that "aha, I've got the missing piece," or, "I've found the interpretive key." That is, we fit the "evidence" into our framework, and whatever does not "fit" is ignored or dismissed.

For example, when Spong writes about how Matthew's and Luke's versions differ from Mark's, he attributes those variances solely to the incorporation of "myths" that have grown up among the various Christian communities in the years since Mark wrote his account, even thought he notes that both Matthew and Luke had sources available to them that Mark did not. While I agree with him that both Matthew's and Luke's birth narratives are likely highly imaginative (that is, non-literal), I am much less certain about other aspects of their gospels that largely agree with Mark's content.

As I have written elsewhere, I found Dr. Timothy Luke Johnson's course on the gospels for the Teaching Company enlightening for several reasons, and chief among them was his stressing that we must remember that this was a pre-literate society, that is, one in which the vast majority of the populace were not literate. As a consequence, they retained memories of significant people and events through the utilization of memory skills that have largely atrophied in our own time, given the plethora of books and electronic data retrieval devices. Johnson argues that the gospels, in fact, are composed of a series of "memory units" passed down from original eye-witnesses to others that accurately retain the most important -- or, to those individuals, most striking -- words and deeds of Jesus.

(Even today, those of us who were alive when JFK was assassinated, or when the Columbia shuttle blew up on its way to orbit, can recall with immense detail where we were and how we felt when we learned of those things. Heck, I still remember shaking hands with JFK when he was campaigning for office in 1960, even though most of the details of that event have become blurry -- the others who were with me, the faces of those nearest me, etc. Certainly, an encounter with Jesus would have triggered a like memory response!)

I accept that, over the relatively few decades between Jesus' death and the gospels assuming written form, some details might have been slightly expanded as well as forgotten. But the deliberate creation or incorporation of myth? I hesitate to affirm that.

Furthermore, as Spong relates in some detail his thesis of how John is using symbol to convey meaning it becomes very difficult to discern where -- or even if when -- his account of a portion of John's gospel morphs from symbol/myth to remembered fact or conversation. Is ALL of John's gospel a symbol? Are there any "real" events or words remembered or recounted?

This, of course, is the very question that has deeply bugged many over the centuries who have found Jesus' teachings powerfully beautiful but who have balked at some of the more miraculous or theological implications. A few hundred years ago, Thomas Jefferson famously published his edited version of the gospels in which he attempted to identify Jesus' words and deeds apart from material he deemed more suspicious.

And so we continue to do this even today! (As, I confess, do I.)

But since Dr. Spong's book is so well-written, and his interpretation so worth pondering, I do recommend it to any and all serious students of Jesus.

More than 2,000 years after his death, there clearly remains many things about this extraordinary man that intrigue and attract us still! (less)
flagLike · comment · see review









2019/03/15

도올논어강의 20장 신종추원 (제사의 모든것)



Daum 블로그




신종추원(愼終追遠)
2015.08.11 16:19 재휘애비溢空총루
카테고리논어 이야기
댓글1




도올논어강의 20장 신종추원 (제사의 모든것)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NmkAuJj3bGU$





도올논어강의 22장 제사와 동학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tAot5cnYZUc$





□ 생명의특질

○ 모든 생명은 끝이 있다. 이것이 생명의 특질이다.(生滅이 있다)

○ 유기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 특질이다.





□ 愼終追遠(신종추원)

○ 愼 : 삼간다, 신중하게 한다.

- 삼간다는 동사의 주체를 죽는 사람 당사자로 볼 수도 있으나

- 愼의 주체는 그 후손에 해당되는 것임

- 喪에는 복상의 기간이 따른다. 공자는 3년喪의 실제적 창립자였다



○ 終 : 喪 : 인간의 생명의 終焉을 의미, 삶의 마감, 곧 죽음

-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의 끝이라고 하는 것을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

- 혹자는 주어를 죽는 사람 본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음

- 그러나 대개는 죽은 자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의 태도로 봄 : 喪禮를 신중하게 하라 - 상례 : 흉례에 속함

- 모든 생명은 끝이 있다.

- 모든 유기체는 시작과 끝이 있다.



○ 遠 : 나에게 멀리 있는 조상

- 한 인간이 죽은 시점에서 3년까지의 복상기간을 喪의 기간으로 본다면

- 3년이 지나게 되면 이 죽은 사람은 나에게서 멀리 있게 된다

- 그 때는 愼의 대상이 아니라 追, 즉 추모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오스왈드 슈펜글러(Oswald Spengler, 1880 ~ 1936)

○ 독일의 역사학자, [서구의 몰락(Der Undergang des Abendlandes)]으로 유명

토인비에게 영향을 줌

○ 역사(문명)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그 문명은 태어나고 죽어야 한다.

○ 모든 유기체(organism)는 시작(生)과 끝(滅)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유기체의 최대 특질이다











□ 四禮(사례)

○ 冠婚喪祭 : 冠婚(성인식, 결혼식) = 가례(嘉禮)

(관혼상제) - 冠禮를 거쳐야 士가 됨 그래서 士冠禮라고도 함 , 字를 받음

- 婚禮는 본래 昏임 , 결혼식은 음과 양이 엇갈리는 시간에 혼례를 올림

혼례의 원래 의미는 결혼례라는 뜻이 아니고 황혼례라는 뜻임,

음과 양이 교접되는 하루의 황혼 시점에 예를 올린다.

중국에서는 終身大事라고 함

- 喪禮 : 흉례(凶禮) : 사람이 죽었을 때가 喪

1. 빈례(殯禮) : 빈소 차리는 예, 草墳의 경우

2. 장례(葬禮) : 무덤을 만드는 예

- 祭 : 길례(吉禮)

상례를 거치고 나면은

죽고 나면 나로부터 멀어진다.(遠, 조상들)



○ 신종(愼終) : 상례(喪禮)

○ 추원(追遠) : 제례(祭禮)







□ 예로부터 나라에서 행하던 의례를 다섯 가지 예로 분류

1. 길례(吉禮) :

2, 흉례(凶禮)

3, 군례(軍禮)

4, 빈례(貧禮) : 사람이 죽으면 빈소를 차림, 마당에다 썩힘, 나중에 뼈를 골라 묻는 것을 장례

5. 가례(嘉禮)







□ 종교란 무엇이냐?

○ 종교의 주제

-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주제를 神이라고 생각하는데

- 이러면 종교란 문제를 풀 수가 없다

- 모든 종교의 주제는(the main theme) 신(God)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 (Death)이다.

죽음은 곧 유한성(Finitude)의 문제이다.

- 이러한 유한성의 인간이 이러한 유한성에 만족하면 되는데 그렇지를 못 한다는데 종교의

문제가 대두

- 인간에게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은 언어이다.

“아이고 좋아 죽겠네” “아이고 맛있어 죽겠네” “귀여워 죽겠네” 등

우리 언어생활에 죽음이라는 것이 깊게 깔려 있음.

- 언어가 생겨나면서 죽음이라는 문제가 보편화되었다

- 인간의 유한성인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되었다.





○ 인간의 죽음을 해결하는 방법 : 시간관점

1) 시간 밖에서(beyond time)해결하는 방법 : 기독교, 천당(生滅이 없다)

- 인간이라는 것은 원래 시간 밖에서 온 존재인데 죽고 난 다음에는

시간 밖으로 다시 가는 것이다 : 유한성이 해결 됨

- 인간의 영혼이 육체에 포로로 잡혀 있다가 죽음과 동시에 해방되어 하나님 아버지한테 감.

- 모든 고대 종교의 유한성해결 방식





2) 시간 안에서(within time)해결하는 방법 : 유교

- 나의 존재는 유한하지만, 그러나 유한한 존재의 연결은 무한하다.

- 바로 제사라는 방식은 이러한 시간 안에서의 해결 방법이다.

- 나는 죽지만 후손들에 의해서 愼終追遠된다.

- 나는 죽지만 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자손들에 의해서 영속성을 持續한다 : 유한성이 해결됨







○ 인간의 죽음을 해결하는 방법 : 공간적 관점

1) 개인적 해결(individual solution)하는 방법 : 기독교, 불교

- 나의 業을 나 혼자 해탈하여 간다





2) 집단적 해결(collective solution)하는 방법 : 유교

- 積善之家 必有餘慶(적선지가 필유여경) - 주역, 곤괘문언 -

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남아 돌아 가는 복이 있다.

- 인간의 구원을 家단위로 생각하고 있다.

- 조상의 묘를 잘 쓰면 그 자손들이 다 잘된다.(집단적으로 해결)







□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 ~ 1903)

영국의 사회학자이며 철학자, 진화론적 사고에 기초하여 모든 학문을 통합하려고 노력하였다.



○ Ancestor worship is the root of every religion.

모든 종교의 뿌리는 조상제사이다. - 스펜서의 사회학 원리 중에서 -

-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야훼)은 유태인 종족의 신

-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여호와를 믿는다고 해서는 안된다. 여호와는 구약의 하나님이다.

-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낡은 약속(舊約) 속의 폐기되어야 할 하나님이다. - 도올 -

- 기독교의 하나님의 유대교의 율법 속에 갇혀있는 하나님이 아니다





○ 유대인들이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

- 곧 야훼도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다윗의 하나님이다

- 결국 그 계보를 따져 올라가면 야훼도 어떤 조상신의 전화형태 일 것이다.

- 야훼도 결국 유대인들의 조상신일 뿐이다

- 개별적 조상의 숭배(individual cult)이든, 민족전체의 조상숭배(national cult)

그것은 사실 조상숭배라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 모든 종교는 다신론에서 출발

- 多神論(polytheism) → 一神論(monotheism)

- 십계명에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속에는 다신론을 인정

하는 것임

- 유일신으로의 신의 통일은 항상 지상에서의 권력의 통일의 시기와 일치됨

- 부족국가시대에는 유일신은 있을 수 없다, 유일신의 출현은 제국(Empire) 성립 이후의 사건이다.

- 중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통일국가가 형성된 진시황 때 와서야 상제라는

통일된 신의개념이 생기는데 다신론의 모체는 모두가 조상숭배를 바탕 으로 함

- 유에메리즘(Euhemerism) : BC300년 전후에 활약한 신화작가 유에메로스의 주장

모든 神의 계보는 역사적 영웅, 지배자, 종족의 추장, 전사의 혼령에서 비롯 되었다





○ 多神論 → 一神論 → 無神論 : 佛敎

- 불교는 절대적 무신론이다, 무신론은 종교진화의 최종단계이다

- 콘체(Edward Conze) -

- 불교는 심리학이다,. 그 심리학의 궁극은 멸집(滅執)이다 - 도올 -

- 諸法無我, 色卽是空, 空卽是色(제법무아, 색즉시공, 공즉시색)

- 불교의 난해한 문제 중의 하나인 무아론과 윤회의 이론적 상반성이다.





○ 종교라는 것은 이렇게 많은 종교들 중의 하나에 속하는 것임.

- 일신론 종교를, 또는 다신론 종교를 택할 수 있는 것이다.

- 종교란 개인의 선택이어야 한다.









□ 無我論 과 輪廻(Transmigration)(무아론와 윤회)

○ 윤회(輪廻) : 사람이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을 계속 반복한다.

범어로 삼사라(Samsara)라고 한다.

- 죽어도 영혼은 그 자체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로 다른 육체로 들어감

- 그렇다면 영혼의 自我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無我論과 배치됨

- 불교가 지금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







○ 제사(祭祀) : 4대봉사(四代奉祀)

- 인간은 하늘과 땅이 합쳐진 것임

- 인간은 氣덩어리인데 하늘적 기(魂)과 땅적인 기(魄)로 구성되어져 있다.

- 동양인에게는 인간의 영혼의 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전신에 골고루

섞여 있는 것임

- 죽는다는 것은 골고루 섞여 있던 하늘적 기(魂,혼)과 땅적인 기(魄,백)이

완전히 분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 죽으면 하늘적인 기는 하늘로, 땅적인 기는 땅(무덤)으로 가게 됨

- 喪禮의 기본은 땅적인 기를 모시는 것이고

- 무당들은 하늘적 기를 다스림



- 땅적인 기가 쇠하여 가면서 하늘적 기도 쇠하여 가면서 동시에 죽으면 安樂死이나

- 갑자기 자동차에 치여 하늘적인 기는 그대로 있는데 땅적인 기만 죽게 되면 액귀가 되는데

이러한 액귀를 다스리는 것이 무당들 임

- 이때 하늘적 기가 하늘로 간다는 것은 서양인들 같이 시간 밖으로 가는 것 이 아니고 동양적

사고로는 시간 안에 있는 하늘에 있으며 이러한 시간 안 의 영혼이 윤회를 하게 됨

- 이러한 영혼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돌게 되면 윤회가 되는데

-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도 하늘 밖으로 나가는 윤회가 아님

- 유교사상은 하늘적 기도 땅적인 기가 없어지면 결국은 흩어지게 된다

즉 동양인의 세계관은 영혼의 독자적 영속성(identity)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을 신멸론(神滅論)이라고 부른다

- 하늘적 기는 지속성이 강하여 대개 4대(120년)걸쳐 흩어지기 때문에 4대봉사(四代奉祀)하는 것이다.

- 하늘적 기가 살아있는 인간과 어떤 관계를 갖느냐는 것이 고대인들의 관심 이었는데 죽은 영혼이 인간에게 악한 방향으로 작용하면 악귀 , 좋은 방향 으로 작용하면 善鬼라고 하는데

- 제사라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혼령과의 화해시키는 의식이다.

- 제사의식은 동양 사람들에게 깊은 역사의식을 주었다.

- 나의 행위가 자손만대에 영향을 주므로 나의 삶이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불천위(不遷位) : 4대를 넘어서 영원히 모시는 신위(神位) : 퇴계선생 등





○ 사당에 4대 신주를 모심.

- 사당에 모셔진 혼들은 한 가족(Family)의 개념에 속한다.

그래서 어데 나갔다 들어오면 어른한테 보다는 먼저 사당에 가 조상들에게 인사를 올리게 됨

- 매조(埋祖)

사대봉사 후에 신위를 땅에 묻는 제식,

이것은 백(魄)이 아니라 혼(魂)을 묻는 것이다.

- 혼(魂)을 모시는 것이 제사이다.

인간의 역사는 귀신들로 인하여 연속성이 보장되게 된다.





○ 동양사상에서는

- 인간의 사후의 세계를 인정한다고도, 안 한다고도 말할 수 없음

- 인간의 혼백(魂魄)을 제례로서 인간의 역사성속에서 생각했는데

- 기독교는 백(魄)이라는 것에 대한 역사성을 인정하고 혼(魂)은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음.

- 이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

- 서양 사람들은 영혼의 독자성을 인정

- 서양 사람이 말하는 영혼, 이성은 초시간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집착





○ 희랍철학자 플라톤의 이데아론

이데아(Idea)는 시간을 초월한 영혼의 고향이다.

- 서양인은 영혼의 독자성을 인정, 시간을 초월하는 곳에 있음

- 인간의 영혼을 초시간적성을 인정한다는 면에서는 기독교와 불교는 일맥상통(윤회인정 시)

- 언어적으로도 불교는 산스크리스트어, 팔리어를 기독교는 히브리어,

희랍어를 기초로 하고 있다.(사유형태가 비슷하다)

이 두 종교는 동일한 인도유러피안어군의 주부, 술부관계 속에 매여 있다.

- 불교에서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을 해탈(moksa) 이라고 한다.

- 인도인의 열반(Nirvana), 희랍인의 이데아(Idea), 유대인의 천국(Kingdom of Heaven)은 동일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 묘법연화경(법화경)

○ 불교의 신행의 제일의 목표는 깨달음이 아니다.





○ 법화경의 제2편 방편품에 보면

- 부처가 “여기서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다 나가라”고 하니

- 5,000여명의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재가신자들까지 모두 나가버림

- 그러자 “부처가 아 이제 그놈들이 없어 참 좋다”

- “저 놈들은 깨달지도 못하고도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다.”





○ 불교의 목표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 진정한 의미에서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 기나긴 윤회의 세월을 거쳐야 되는데 일시에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 불교의 제일의 목표는 긴긴 윤회 굴레 속에서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보시(報施)하여야 하는데 저 혼자만 깨달았다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불교의 제일 신행의 목표는 해탈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보살행이다





○ 윤회라는 것은

- 불교에서는 해탈하기 위해서는 윤회가 있기 때문에 해탈하려는

도덕적 노력이 이루어진다.

- 불교는 윤회론을 포기하지 못한다.

- 윤회론 속에 인간의 도덕성이 있기 때문이다.





○ 종교에 있어서 신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 서구의 근대정신은 모두 무신론(atheism)에 기초하고 있다.

무신론은 유신론(theism)의 한 형태이다.

- 신이 없어도 종교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 기는 끊임없이 취산(聚散)한다.

기철학적 세계관은 영혼의 지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취산하는 한 고리일 뿐이다.





○ 동양인의 神은 歷史이다.

- 떳떳한 이름을 역사에 남기겠다.

-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하여 영원히 남겠다





.





□ 마테오 릿치(Matteo Ricci, 1552 ~ 1610)

○ 이태리 출신의 제수이트 신부로서

- 중국에 30년을 살면서

- 동서문명의 회통에 크게 기여

- 그의 대표작은 [天主實義, 1603]는 우리나라 개화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조상 제사 허용론자였는데

- 그 뒤에 들어온 프란시스칸, 도미니칸 들이 금지





○ 전례논쟁(Rites Controversy)

- 1628년 중국 강소성 종교회의에서 시작되어

- 1704년 크레멘트 2세의 칙령으로 마무리 된 논쟁인데 4백년을 끌었다.

天主卽上帝說, 孔子崇拜, 祖上崇拜(천주즉상제설, 공자숭배, 조상숭배)를 금지

.



○ 1939년에 로마교황청은 조상제사를 공인





○ 제2차 바티칸 공의회(The second Vatican Council, 1962-1965)

토착적 의례를 천주교의 전례로 할 수 있다고 선언











□ 김창숙(金昌淑, 1879 - 1962)

○ 경북 성주 출신의 유학자, 호는 심산(心山),

- 평생을 항일투쟁과 반독재투쟁에헌신

- 1946년 성균관대를 설립 , 유학발전의 결정적 계기 마련





○ 김수환 추기경이 심산상을 받음

- 겸허한 자세

- 심산 선생의 묘소에 가서 참배할 때 2번 절을 올림

- 기독교 정신은 하느님에 대한 효로부터의 下向이고 , 유교정신은

인간에 대한 효로부터의 上向이다 - 김수환 추기경

-





□ 民德歸厚矣(민덕귀후의)

○ 역대의 모든 주석가들은

- 신종추원을 천자로부터 諸侯, 大夫, 士에 이르는 喪祭로 해석

- 즉 지배자들이 喪禮와 祭禮를 후덕하게 하면 민심이 후덕하게 돌아간다 해석



○ 논어에서 民의 용법은 분명히 庶人의 뜻으로 한정되어 쓸 때도 있지만

- 막연하게 “보편적 인간” 즉 제후나 대부, 사, 민의 구분을 초월하는

보편적 개념으로 쓸 때가 많다



○ 다산은 어떻게 喪祭가 천자, 제후, 대부, 사에게만 있고 민에게는 없단 말인가?

民은 죽지도 않고 제사도 안 올린단 말인가? 며 반박



○ 죽은 자에 대한 喪祭가 단순히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산 자의 덕성을 후하 게 한다는 것은

죽은 자의 삶에 관한 인식의 전환을 이룩한 위대한 인문주의적 비약을 상징하는 증자의 명언이다.




.
쿠로즈미 교수의 집을 들어가며 장서에 대한 충격,채옹(132-192)의 만권의 서가 생각, 후한말기, 왕삐가문에 이 책이 흘러들어감[따라서, 왕삐(王弼)가 16살에 노자를 주를 달고 주역을 해석한게 우연한 천재성으로 인함이 아니라 윗대에서부터 쌓이고 쌓인 내력이 왕삐에 의해 표출됐을 것]
이번시간은 신종추원 이 다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종추원(愼終追遠), 민덕귀후의(民德歸厚矣).
[신종: 喪례, 추원: 祭례]

지난번 20강 종교란 무엇인가는 매우 중요한 강의입니다 케베스에서 20강단위로 판다고 하는데 하여튼 그 강의내용은 치밀이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의 대상은 신이아니라, 죽음이다라고 했는데
제 20강은 굉장히 중요한 강의였고 오늘 강의는 따라서 그 강의의 뒷풀이로 하겠습니다
.프래이져라고 저명한 인류학자죠
이사람이 종교를 어떻게 정의내렸냐 하면
.
By religion, then, I understand a propitiation or conciliation of powers superior to man
which are believed to direct and control the course of nature and of human life
-프래이져(Sir James G. Frazer, 1854 ~ 1941)

종교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그것은 인간을 초월해 있으면서 인간의 삶과 대자연의 진로를 지배하고 방향짓고 있다고 믿어지는 "힘"과의 화해며 달램이다


그러니까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초월한 어떠한 힘과의 화해라 그말이죠, 이게 프레이져의 정읜데, 자, 결국은 이러한 데서 제사란 것도 나왔고, 기독교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에 대한 제사종교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결국은 유교의 이 명제(신종추원 민덕귀후의)의 위대한 것은

증자는 충서(忠恕)로 지은죄를 신종추원 한마디로 대속했다고 했는데, 무슨말이냐 하면 신종추원이라고 하는 이것 자체가 어떠한 수직적 관계의, 이 수직적인 힘(인간을 초월해 있으면서 인간의 삶과 대자연의 진로를 지배하고 방향짓고 있다고 믿어지는 힘, 즉 신)과의 문제 때문에 신종추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종추원을 왜 하냐
제사를 왜 하냐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덕성이 후덕해지기 때문이다 라는 거죠
제사는 신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인간들 끼리의, 인간들 관계에 덕성이 후한데로 가기 때문이라는 거죠.
얼마나 휴메니스틱한, 종교에 대한 이러한 인본적 해석이 없습니다.
(자막:수직적 공포관계를 수평적 연대감으로 바꾼 인문주의적 명언이다)


내가 죽으면 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후손들이 나를 기억해줄 것이다. 그러니까 사는 마음 자체도 후덕해 질 것이다.
상제(喪祭)라고 하는 것은 어떤의미에서 귀신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문제라.
제사라는 게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내가 요즘 조영남씨하고 가깝게 지내는데, 그양반이 예산에서 살았는데, 디귿자집의 밑을 팔았는데 그 집이 옥분이네 집, 헌데 옥분이네 집은 제사로 망했다 일년동안 어이어이 하다가 망했다. 조영남씨가 어린마음에 우리나라가 제사때문에 망하는 구나,해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제사 안 지내는 걸 고맙게 생각했대요

지금 제사때문에 얼마나 피 보는 사람이 많냐, 아무리 민덕이 귀후라 하지만,
자 이런 문제를 생각을 해보려 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얘기 할려 그래요


근대성! 우리민족의 근대성은 사상사적으로 동학입니다. 그리고 이 동학의 핵심은 바로
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제도사적으로는 중앙집권적 조선사회의 성립을 이미 근대의 출발로 볼수가 있다. 그러나 동학이야말로 정신사적 근대성의 출발이다. 동학의 인간관은 데카르트의 코기탄스에 비견할 수 있다.

동학사상의 핵심은 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있습니다
제사라고 하는 것은 사자, 귀신에 대한 숭배 아니요,
이것을 동학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나, 동학하면 뭘 아세요

인내천, 이게 핵심적인 사상인데
사람이 곧 하늘이다.

(자막: 천주, 동학에서 '하늘님'이라는 우리말을 한역한 표현으로 서학의 천주와 구분되는 독특한 개념)

천주라는 인격적인 말인데, 이 동학의 가장 이론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물론 최수운선생, 최제우라고 이사람이 어리석은 세상을 구하겠다고 제우라고 고친거요.

(자막: 최제우(1824~1864)동학의 창시자, 호는 수운, 1860에 득도, 1861년부터 포교, 1864년 3월1일 대구장대에서 참수형으로 순도)

어디사람? 동학은 전라도 꺼 같죠, 아니예요, 경주에요 경주는 우리나라 근대 사상의 발상지요
경주 월성군 가정1리 315번지 동국대학교에서 북쪽으로 더

공부를 많이 한분, 굉장히 지식이 높음, 동경대전을 손수 씀(최수운이 득도해서 남긴 한문으로 쓰여진 글, 사후 해월에 의하여 1880년 강원도 인제 갑둔리에서 간행되어 동학포교의 기폭제가 됨)

20세쯤 집을 떠나버려 14년간인가 기나긴 방황. 그때쯤 우리나라와 관련되어 일이 하나 있죠, 아편전쟁(1839년 임칙서가 아편판매를 금지한 것으로부터 시작, 1842년 8월 영국에 굴복, 불평득조약인 남경조약 체결)이 뭐요, 중국이 전부 아편으로 쩔어가지고 양놈들이 아편으로 어마어마한 중국놈들을 아편쟁이로 만든거요



우리나란 대륙의 질서, 뭐니뭐니해도 중국이 자기를 떠받치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 갑자기 이것이 paper tiger, 지호, 종이호랑이가 된거요, 갑자기 무릎을 꿇으니까 조선민중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아세요,

지금 미국이 완전히 섬멸당했다 막막하실거요 그런느낌

19세기 초 대륙이 무너진 후 방황감. 난과 역질, 기근에 중국까지 무너짐 사람들이 전부 집을 떠나 방황함. 그때 유명해진 게 계룡산이요 그때부터 굴형상이래서 가장 안전하다더라 도사, 최수운선생도 갔을 거요, 점서들, 정감록이니 여러 점서들이 유행, 말세적 감정에 휩싸임. 기독교 들어오고 말세에 대한 위안을 줬죠

(자막:용담유사에 하늘님, 한울님이니 하느님이니 하나님이니 하는 표현은 모두 후대의 변형된 표현이다. 원래 우리말은 그냥 하늘님이다)

그런데 동학은 하늘님을 재해석해 들어갔어요

경주 용담으로 돌아오고. 오두막으로 들어가고 도를 닦는데, 36세(1859)
어느날 홀연히 나타남 뭔가, 몸이 떨리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지敎)

봐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의아해 했는데 수심정기해서 용기를 내서 물었어

넌 누구냐

시지불견 청지불문 心常怪訝
수심정기이문왈 何爲若然也?

그때 대답이 그 유명한 대답이 뭐냐면, 그 상제가 아니, 하늘님 소리가
내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라 인간들이 이것을 어찌 알리

(吾心卽汝心 人何知之) (지천지이무지귀신 귀신자 오야)

천지를 알면서 귀신을 알지 못하니 귀신이라는 것이 바로 나다(論學問)

뭐죠! 내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고 그랬죠

인내천 나의 마음이 네 마음이라 곧 뭐죠 내가 곧 하늘님이다
무신론, 기독교,불교 도 아니라 동학사상은 특이해요

이것을 포교하니까 몰려드는 거죠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뭐 용한 사람이 났다드라 해서 모이지만 뭐 별얘기 아니요 그당시엔. 1861년에 대각을 했는데
(잠시 쉼, 그리고 이어서 진지하게)

그 동네서 멀지 않은 검등골이란 화전골, 최경상이라고 하는, 해월, 서너살 연하 (자막,사진,최경상 (1827~1898), 경주시내 황오리, 해월이라는 분인데
나는 이세상에서 태어나서,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오늘날까지
나는
내가 해월선생이 안계셨더라면 이 땅에
나는 한국에 안 살았을 지도 몰라요

내가 해월선생을 발견했다는 것이 내가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내인생에 결정적인 자각적 계기요,
해월선생이 이땅에 뿌린 피가 있는 한 내가 이땅을 안 떠난다는 각오를 했어요.
그렇게 위대한 분이요.
이분은 말이요 재밌는게, 저번에도 말했듯이 지식이라는게 우습다고, 해월선생은 화전민으로 일자무식꾼이요. 공부도 안했고 한문모르고 지식인도 아뇨.
그러나해월선생이야 말로 우리나라 단군이래 가장 위대한 지식인이요. 가장 위대한 지식인이요나는 아직 내 인생에서 해월이상의 위대한 분을 못봤소

여러분들 말이죠 마하트마 간디를 생각하시면 깡마른 사람이 이렇게 말이요 물레를 돌리면(웃음) 성자 같잖아요, 그럼 여러분들은 말이죠 인도에는 저런 간디같은 멋있는 성자가 있는데, 왜 우린 없냐고 하실진 모르지만

마하트마 간디보다 더 위대해요 우리 해월선생은, 최경상선생은.
이분은 말이죠 평생습관이 새끼를 꼬는게, 멍석을 꼬는게 일이요. 새끼를 꼬는 데 도사요(간디는 물레를 돌리는 성자의 모습이고, 해월은 새끼를 꼬는 성인의 모습니다) 그 관군을 피해 다니며 접주조직을 만들고 도망다니면서도 항상 새끼를 꼬시는 데 그러다가 꼴 새끼가 없으면


다시 풀어(청중 웃음)
그래서 주변의 제자들이 왜 그렇게 다시 푸십니까


하늘님은 쉬는법이 없다 - 해월
(至誠無息(하늘의 성실함은 쉬는 법이 없다-중용))

어찌내가 쉴 수 있으리
그러고 멍석을 깨끗하게 말아놓고
관군 들 닥치기 전에 방을 깨끗이 정리해 두시고, 사는 곳곳마다 사과나무 등 다 정성껏 깨끗하게 해놓고 도망간단 말이야

인생의 자세가 자기 제자가 감옥에 가면 자신은 이불 안덮고 자 맨몸 냉방에 주무셔
인격이라는 것이 말할 수 없어, 실천의 역사요

해월선생의 일생을 세밀히 추적했어요 영화를 만들려고

[개벽, 1991, 감독 임권택, 각본 김용옥, 이덕화 이혜영, 그해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등 5개부문 석권했으나 도올이 평하길 작품이 기대이하였다고 함, 자신의 각본대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음]


이분과 눈물을 흘린 얘기가 너무너무 많아
일자무식인 이 양반이 검등골에서 용담골로 걸어가면 8~10시간 걸려 갔겄지
(최수운이)포교시작한지 한두달있다가 (해월이)찾아가(1861년 6월)
사람 많고 난리가 났겄지

최수운선생이 이상하게 말이지 일자무식인 해월선생를 보자마자 뭔가를 간파를 하는데

동학이라는 게 뭐 별게 아니고 궁흘부적이란걸 그리는게 그게 뭐 태극형상이 된다 그거요 종이에 그려서 말려서 태워서 물에 타 먹어 희던머리가 검어지고 뭐 몸이 좋아졌다 그거야 지금은 숯가루도 먹잖아요 옛날 먹이란게 좋은거고 종이도 닥지로 만들었으니 몸에 좋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주문을 외워요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외는데 사람들이 천어, 사람들의 말씀이 들린다, 사람들이 방언을 하는 거지
해월선생이 어떻게 해야지 하늘님말씀이 들립니까 하고 물어요 수운선생한테.

무식하잖아요, 무식한 사람이 소박하잖아요 진실하고 거짓이 조금도 없는
해월이, 아무리 지기금지..해도 안들린다 이거야 그런데 너들은 어떻게 들리냐?

그당시 사람들이 모여들면 모함을 받게 되듯이 모함받아 도망가요 수운선생이, 전라도 교룡산성 한 울을 보네여 음해하고 가짜다 에 질려갖고 그당시 경상도에서 전라도에 가는건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수운선생이 가기전에 해월보고, 수심정기하고 타악 앉아 주문을 외워 봐라 고 말해요


내가 거기 가 봤어요 아직도 남아 있어요
거기 화전리 꼭대기에 딱 앉아서 한겨울 내내 앉아서 거적 쳐놓고 밤낮없이 주문만 외는 거요
하~ 도를 딲는데


하늘님소리가 들리긴 뭘 들리냐 이거야
안들려가지고 해월선생이 동지섣달 겨울에 화가나가지고 그 추운겨울에 빨개벗고 개울에 그냥 풍덩 들어갔던 모양이야 얼마나 답답했으면

찬물에 퐁당 들어갔는데

들린거요, 갑자기, 까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뭐라 그러냐 하면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눈에 힘, 입은 일자로)

"찬물에 급히 들어가는 것은 몸에 해롭나니라!" (큰소리로 웃음)

분명히 그런 소리가 들렸단 말이야 그 소리가ㅡ,찬물에 급히 들어가는 것은 몸에 해롭나니라,
그게 이상한거요, 이 순진한 사람이,이게, 이 사람이 그거를 듣고, 겨울을 나,
그리고 그 이후론 아무소리도 못들었어, 아무리 앉아있어도(웃음)

그래가지고 (최수운)선생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극진했던지

수운선생이 봄에 경주로 몰래 아무도 모르게 곽대오(?)라는 사람의 집에 돌아왔는데, 얼마나 마음이 극진했으면 괜히 거기가 가고싶은 거요 그래서 갔더니 와 계시잖아 울면서, 먼길왔으니, 절하니까,

최수운: 하늘님 소릴 들었냐
해월>듣긴 들었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찬물에 들어가는건 몸에 해롭다고

언제쯤이더냐
동짓달 어느날인 듯해요

몇시쯤이더냐냐
새벽 한시쯤 됐습니다

옳다 내가 요새 내가 도인들이 냉수마찰을 좋아해서 안되겄기에

陽身所害 又寒泉之急坐(찬물에 급히 들어가 앉았으면 몸에 해롭다.

동경대전,修德文)를 마침 썻나니라 그리곤 답답해서 크게 읊었나니
라 그때 그걸 니가 들었구나(웃음,박수)

여러분들 이게 동학사상의 원좁니다
너무 웃기죠

무슨 얘기냐 하면
수심정기하면 시공을 초월해서 마음이 통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뭐냐하면

천지가 한 생명(Oneness of Cosmic Life)이라
는 자각이요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찬물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 는
보통사람의 이야기가 하늘의 소리라 이말이요(톤이 절제되고 높다가 떨어짐)
응! 이것이 바로 종교의 궁극이다 이거요

이 이상의 하나님의 소리가 없다고 하는게 수운선생의 해월선생에의 가르침이요
(자막:사람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다
Man`s voice is God`s voice) (박수)

우리역사에서 이 한마디 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높여준 말씀이 없어요

평상시 얘기대로, 찬물에 급히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고 쓴 그말이 바로 내귀에 하늘의 소리로 들렸다 그말이요, 이 이상 인간의 소리에 존엄성을 높인 명제가 어딨습니까 이것이 우리 민족의 근대적 각의 출발이요 근대성의 출발

우주에 대한 자각이, 선생이 어디에 있던 경주에서 들을 수 있다

수운선생이 도끼로 1864 수운 참형을 당해요 모함으로. 그 당시 별거 아님 동학이라는게

경주의 동학 풍지박산나고 삼천명이 흩어지요, 이것을 해월이 다시 조직 합니다. 1864~1894 30년간
전국의 그 어마어마한 세포조직을 해월혼자 만든 거요

그걸 만든 힘이 뭐냐

인간이 곧 하나님이라는 그 신념 하납니다(목소리 낮게 까리고 무거움, 조용)

해월선생이 청주를 지나가 손병희(서택순)집앞을 지나는데 베틀소리가 들려요

누가 베틀을 짜냐 -제 메눌아기입니다 다시물어요 >누가짜냐 -제 며눌아깁니다 또물어요 > 누가 짜느냐

그러고 그냥 떠나셔 한참 가다가 아무리 해결이 안돼 제자가 물어
그건 하늘님이 짜고 있는 것이더라

며느리가 곧 하늘님, 그 소리가 하늘의 소리, 부녀자의 노동이 하늘의 노동

하찮은 부녀자의 노동도 하늘님의 노동으로 생각하고 존중해줌 이게 동학사상입니다, 물타아(勿打兒), 그당시에 어린애를 그리 때렸거덩, 어린이야 말로 하늘

이게 인내천 사상이요 근대의 시작이요 인간의 평등을 외친 우리나라의 위대한 사상입니다.

손병희가 해월에게 지극함 손병희 사위 방정환 어린이 말 만듬 늙은이란 말은 있어도 어린이란 말은 없었음 어리석은 사람뿐. 어린이 는 곧 하늘 동학사상이 어린이란 말을 만듬

1894년에 비참하게 공주우금치전투에서 비참하게 패합니다

(자막:1894년 10월 25일 ~11월11일, 남북접 10만대군이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 불과 500명이었다)
우리조총은 2~30미터가 유효사거리고, 일본 조총 100미터 조준입니다 게임이 안되요
그냥 죽는 거요 (숙연)

해월선생은 또다시 도망칩니다. 1864에서 죽는1898년까지 계속 도망만 친거요, 한번도 다리뻗고 주무신 적이 없어(숙연)
이렇게 처절하게 산 사람이 없다고 우리 역사에 최장기 도바리꾼이었다고(조용한 웃음)

마지막 돌아가시기 전에 음죽군 앵산동(현 이천군 설정면)에서 마지막 설법하신 것이 그 유명한
향아설위(向我設位)라는 거요(1897년 4월5일)

제사를 지내며는 벽에 밥을 놓고 제사를 지내죠

제사는 신을 맞고 즐기고 보내는(迎신 娛신 送신)구조로 되있습니다. 모든제사의 기본 스트럭쳐입니다.

옛날에는 뭐냐면 향벽설위, 벽 저쪽에서 하늘님, 귀신이 저쪽에서 온다는 전제로 벽을 향해 제사상을 차립니다. 설위를 벽쪽으로 숟갈도 그쪽을 꽂죠
(향벽설위)

해월선생이 향아설위, 뭐냐면, 나를 향해서 제사상을 차려라
밥을 내가 이쪽에 놓고 돌려놓고, 향아설위를 하라,


이말이 뭐요!!
내가 곧 귀신이다
제사를 지내는 내가 곧 귀신이다
그 귀신은 이미 내게 이어졌다

(부모지사후혈기, 存遺於我야)
너가 귀신이 있는 자리라 이거요


그리니까
니가 귀신이다. 니가 먹어라(웃음)
제사는 자기가 차려놓고 자기가 먹는거
귀신이 왔다는 걸 어떻게 압니까
네가 밥을 먹고 싶다는, 배고프다는 그것이 바로 귀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생명력 그것이 바로 너의 신이다
(인지욕식지념, 즉천주감응지심야)

상기(喪期)는 어떻게 합니까, 삼년상을 지냅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심喪백년, 인지거생시. 불망부모지념 차시영세불망야
심상으로 백년해라

마음으로 잊지만않으면 되는거지 삼년이고 육년이고 그것이 뭔 X이냐(웃음, 박수)
상은 어떻게 차립니다

상은 냉수 한 그릇으로 족하니라 다만 정수 한 그릇이라도 지극한 정성만 있으면 최고의 제사니라
(단청수일기, 극성치성, 가야)
천지가 하나의 일첸데 청수 한그릇이 그것이 제사상의 전부니라, 이게 동학입니다

이런 위대한 말씀을 남기고, 다음해, 해월선생은
단성사 뒷켠에서, 교수형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때의 고문당하고, 처참한 모습이, 사진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사진, 1898년 6월2일 단성사 뒤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으로 뜨다. 당년 72세)

이렇게 위대한 분을, 우리는 죽여온 역사예요


그런데, 우리가 오늘 이자리에서
여러분들이, 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분들의 혼령이, 우리 마음에 살아있기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이 강의를 듣고 있는겁니다(박수, 인사, 나감)

====================

조상 제사를 드릴 때는 조상이 앞에 계신 듯이 드려야 하고, 신령께 제사를 드릴 때는 신령이 앞에 계신 듯이 드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제사에 몸소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과 같다."(3-12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 "吾不與祭, 如不祭.")

맹의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효란 무엇입니까?" "어기지 않는 것이다." 번지가 마차를 몰자 공자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맹손(맹의자)이 나에게 효를 묻길래 나는 '어기지 않는 것이다'고 말해주었다." "무슨 뜻입니까?" "살아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하고 예로써 제사하라는 것이다."(2-5 孟懿子問孝. 子曰 :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樊遲曰 : "何謂也?" 子曰 :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주희에 따르면 "조상 제사는 효성이 위주이고 신령에 대한 제사는 공경함이 위주이다. 자기가 응당 제사해야 할 때 혹시라도 다른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그것을 주관하게 하면 귀신이 마치 앞에 계신 것과 같은 성의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이미 제사를 드렸다고 하더라도 이 마음은 석연치 않은 것이 마치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과 같게 된다는 말이다. 자기의 정성이 있으면 조상의 신이 있게 되고 정성이 없으면 조상의 신도 없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음은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과 같은즉 정성이 실질이고 예는 허상이다."(『논어집주』)

또 공자는 "마치 조상의 귀신이 앞에 계신 듯이 정성을 다해 제사를 모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귀신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따라서 제사도 귀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제사하는 것이 아니다. 제사란 후손으로서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추념의 예식일 따름이다. 따라서 제사는 자신이 직접 드려야 하는 것이다. 자신은 참여하지 않고 남에게 시켜서 대신 제사 지내게 하는 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공자가 말하였다. "자기의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하는 것은 아첨이다."(2-24 子曰 : "非其鬼而祭之, 諂也. […]")

계씨가 태산에 여(旅 : 천자나 제후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드리자, 공자가 염유에게 말하였다. "네가 막을 수 없었는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 태산의 신이 임방만도 못한 줄로 여긴단 말인가?"(3-6 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 "女弗能救與?" 對曰 : "不能." 子曰 : "鳴呼! 曾謂泰山不如林放乎?")

공자가 말하였다. "체 제사는 강신주를 부은 뒤부터는 나는 보고 싶지 않다."(3-10 子曰 :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혹자가 체 제사의 내용을 묻자, 공자는 "모른다. 그 내용을 아는 자는 천하에 대하여 마치 이것을 보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손바닥을 가리켰다.(3-11 或問禘之說. 子曰 :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공자에 따르면 도리상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귀신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 즉 사회에 아무런 긍정적 의미가 없고 오히려 파괴적인 작용을 할 따름이다. 대부인 계씨가 제후만이 드릴 수 있는 태산에 제사를 올리자 공자는 탄식하였다. 공자가 보기에 그런 행위는 마치 오늘날 도지사나 군수가 국가 원수나 행할 수 있는 의전행사를 행하는 것처럼 참람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귀신도 예에 맞지 않는 제사는 흠향하지 않는다"는 말 역시 그런 참람한 짓은 조상도 역겨워할 내용이라는 말이다. 공자는 제사를 올릴 자격이 없는 제사는 드려서는 안 된다고 했을 뿐 아니라, 그런 제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로 여겼다. 즉 천자만이 드릴 수 있는 체(禘) 제사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조차 거부하였던 것이다.




공자는 거친 밥에 나물국을 먹을 때도 반드시 제사를 드렸고(고수레를 하였으며), 반드시 재계처럼 엄숙했다.(10-11 雖疏食菜羹, 瓜祭, 必齊如也.)

공자가 삼간 것은 재계, 전쟁, 질병이다.(7-13 子之所愼 : 齊, 戰, 疾.)

공자는 벗이 보내준 물건은 그것이 비록 수레나 말이라고 하더라도 제사 고기 말고는 절하지 않았다.(10-23 朋友之饋, 雖車馬, 非祭肉, 不拜.)

공자에게 있어서 제사는 "삶에 대한 경건한 태도의 표명"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다. 주희는 설명하기를 "옛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종류마다 조금씩 떼어내서 두간 사이에 두어 선대에 처음 음식을 만든 사람을 제사하였으니 근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재계는 엄숙하고 공경하는 모습이다. 공자는 박한 물건이라도 반드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제사는 반드시 공경을 다했으니 성인의 정성이다." "재(齊)의 의미는 정돈한다는 것이다. 제사를 모시려면 정돈되지 못한 사려를 정돈하여 신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지성을 모으는지 여부와 신의 흠향 여부는 모두 여기서 결정된다. 전쟁은 많은 사람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것이고, 질병은 또 자신의 몸의 생사존망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건과 제사 (공자 『논어』 (해제), 2005,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공자가 말하였다. "우임금은 내가 비난할 데가 없다. 거친 음식을 드시면서도 귀신에게는 효성을 다했고(致孝乎鬼神), 허름한 의복을 입으시면서도 제사 예복은 아름답게 꾸몄고, 궁궐은 낮게 지었으나 치수 사업에 진력하셨으니, 우임금은 내가 비난할 데가 없다."(8-21 子曰 : "禹, 吾無間然矣. 菲飮食, 而致孝乎鬼神; 惡衣服, 而致美乎黻冕; 卑宮室, 而盡力乎溝洫. 禹, 吾無間然矣.")

증자가 말하였다. "부모상에 장례를 정중히 하고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에 정성을 다하게 하면 사람들의 덕이 두터워진다"(1-9 曾子曰 :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제사란 무엇인가? "귀신에게는 효성을 다하는 것(致孝乎鬼神)", "존재의 시원을 추모하는 것(追遠)"이 제사이다. "귀신에 효성을 다한다 함은 선조 제사를 풍성하고 정결하게 한다는 것이다." (주희) 공자는 말하기를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라(敬而遠之)"고 하였다. 멀리하지 않으면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공경해야 하는가? 거기에 인간의 도리가 있기 때문이다. 귀신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공경을 표하는 일이 곧 제사이다.

공자의 이러한 사상은 순자를 거쳐 한대(漢代) 『예기』에서 체계적인 제사관으로 확립되었다. 『예기』에 따르면 "예에는 오경(五經)이 있는데, 그중에 제례가 가장 중요하다. 제사란 밖으로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마음이 슬프기 때문에 예로써 받드는 것이다. 밖으로 제물을 극진히 마련하고 안으로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 이것이 제사를 올리는 마음가짐이다."(「제통(祭統)」) 『순자』에 따르면 "제사란 추모하는 마음의 표현으로서, 참마음과 믿음, 사랑과 공경의 지극함이요, 예절과 격식의 성대함이다. 군자는 제사를 인간의 도리(인도)로 여기고, 백성은 귀신에 관한 일(귀사)로 여긴다. 제사는 죽은 분을 살아 계신 듯 섬기고 없는 분을 있는 듯 섬기는 것인바, 제사 대상은 형체도 그림자도 없으나 격식을 완수하는 것이다."(「예론」)

그리고 "신종추원(愼終追遠) 민덕귀후(民德歸厚)"라는 증자의 말은 유교의 상례와 제례를 언급한 대표적인 말로 전해오고 있다. 주희의 설명에 따르면 "신종(愼終)은란 초상에 예를 극진히 하는 것이고, 추원(追遠)은 제사에 정성을 극진히 하는 것이다. 민덕귀후(民德歸厚)는 아래의 백성들이 교화되어 그들의 덕 또한 순후해지게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임종(終)이란 사람이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인데도 능히 근신하여 모시고, 선조(遠)는 사람이 망각하기 쉬운 일인데도 능히 추모하게 되는 것이 순후함의 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스스로 행하면 자신의 덕은 순후해지고 아래 백성이 교화되면 그들의 덕 또한 순후해지게 된다."

그러나 증자의 말은 공리주의(功利主義)의 혐의가 있다. 백성이 순후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상례와 제례를 지내면 이로움이 있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증자의 이러한 설명은 공자의 본뜻이 아니라고 풍우란은 이렇게 지적하였다. "인간의 마음의 진실된 발로는 예에 맞기만 한다면 바로 지극히 좋은 것이다. 그것을 행위로 옮긴 것이 과연 이로운 결과를 낳을지의 여부까지 꼭 따질 필요는 없다. 사실상 마음의 진실하고도 예에 맞는 발로가 행위로 표현되면 사회에 이익이 되면 되었지 적어도 해는 없는 것이다. 공자는 다만 이 사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예컨대 3년상제는 증자가 말한 '부모 상에 장례를 정중히 하고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에 정성을 다하게 하면 사람들의 덕이 두터워진다'는 설로써 이론적 근거를 부여할 수도 있었겠으나, 공자는 그저 3년상을 행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행하면 편하다고만 말했을 따름이다. 이 제도가 비록 '인민의 덕을 두텁게'하는 이로운 결과를 내포했다손 치더라도 공자는 그것으로써 3년상제의 이론적 근거로 삼지 않았다는 말이다. 공자가 행위의 결과를 강조하지 않은 사실은 그의 일생 행적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로는 공자의 입장을 설명하여 '군자가 벼슬함은 자기의 의(군신의 도리)를 행하는 것일 따름이다. 도가 실현되지 않을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18-7)"(『중국철학사』 상, 125-6쪽)


[네이버 지식백과] 제사란 무엇인가? (공자 『논어』(해제), 2005,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증자왈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상례를 정성껏 하며 제사를 정성껏 지내면 백성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 (마침을 삼가히하는 것 (喪事)에 그 예를 다하는 것이 요 먼 것을 추모한다는 것은 祭事에 그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終者, 喪盡其禮. 追遠者, 祭盡其誠. 民德歸厚, 謂下民化之, 其德亦歸於厚. 蓋終者, 人之所易忽也, 而能謹之; 遠者, 人之所易忘也,
而能追之: 厚之道也. 故以此自爲, 則己之德厚, 下民化之, 則其德亦歸於厚也.



신종이라는 것은 상사에 그 예를 다한 것이여. 추원이라는 것은 제사 지낼 때 그 성의를 다한 것이여. 民德歸厚라. 백성의 덕이 후한데로 간다는 것은 원덕이고 民德歸厚가 있어 위하민화지하야 기덕역귀어후(謂下民化之, 其德亦歸於厚)라.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서민이 화해 가지고 감해 가지고 그 덕이 또한 후한데로 돌아간다. 전부 백성이 화해가지고 ● 군자의 덕은 태풍이요 군자의 덕은 풍과 같다. 바람과 같다. 소인의 덕은● 라. 바람이 불면 확 누어 가지고●

蓋終子는 개 자는 의문이여. 아마 종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소홀하기, 홀 자는 소홀할 홀 자여. 소홀하기 쉬운 것이로되 능히 근신하고, 遠한 자는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 말이여. 遠한 자는 사람마다 잊기가 쉬운 것이로되 ● .능히 추모하는 것은 후하게 하는 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차자위즉(以此自爲則) 위에 있는 사람이 이것으로써 스스로 실제로 자기가 실제로 행위를 하면 기지덕후(己之德厚)여. 자기 덕이 후해지고, 하민화지즉(下民化之則) 아래 서민들이 화해 가지고, 한즉 그 덕이 또 후한데로 국가의 덕이 전부 후한데로 돌아간다.

우리는 왜 제사를 지내는가

우리는 왜 제사를 지내는가





우리는 왜 제사를 지내는가

명절증후군의 근원을 찾아서

by멀고느린구름Feb 04. 2016


우리는 왜 제사를 지내는가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삶의 마감을 신중히 하고 먼 조상까지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될 것이다.

- 논어 '학이(學而)' 제9장 -


동아시아 문명에서 제례를 지내는 전통은 이 한 구절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공자 본인의 말이 아닌 제자인 증자의 말이다. 일찍이 공자는 제자인 증자를 일컬어 "좀 어리석다"라는 한 마디로 평가한 바 있다. 불행하게도 공자의 수제자였던 안회가 공자보다 앞서 죽어버린 후, 공자의 맥은 아이러니컬하게 증자에게로 이어졌다. 증자의 이름은 '삼'이다. 공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삼은 공자 사후에는 많은 제자를 거느리며 '증자(자子는 스승을 일컫는 존숭의 호칭)'로 추앙받으며, 논어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증자가 위의 말을 했는지, 공자가 한 말을 증자가 한 것처럼 후대의 기록자들이 편집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실제 발언을 했는지에 관계없이 "신종추원, 민덕귀후의"라는 말 속에는 공자의 유학사상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 사계의 중론이다.

"삶의 마감을 신중히 하고"

이것은 장례의식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 내가 다루고 싶은 부분은 이다음의 말이다.



"먼 조상까지 추모하면"



이 구절이 바로 제례를 이르는 부분이다. 이 소박한 말 한 마디가 수 천년 간 동아시아의 정신문화를 지배하리라고 공자(혹은 증자)는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렇게까지 짐작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공자가 남긴 이 한 마디 말 때문에 개신교 신도들에게는 조상숭배를 한다는 종교적 비판을 받으면서도 '제례'의 관습을 지켜오고 있다.



제례는 크게 조상의 기일에 지내는 제사와 명절에 지내는 차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벗어나 타지에서 대부분의 삶을 살게 되는 현대인의 특성 때문에 명절이면 귀향객으로 차들이 고속도로에 사설 주차장을 만드는 현상이 일어나게 됐다. 대체로 운전을 담당하게 되는 남성들은 운전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제사 음식을 제작해야 하는 여성들은 제사상 차리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어느 때부턴가 현대인에게 명절은 즐거운 축제의 날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 중심에 '제례'가 있다.



이분이 바로 명절증후근의 근원(?) '주자가례'의 저작권자인 주자, '주희' 선생이시다.



오늘날 우리 한민족이 따르고 있는 제례의 풍습은 조선조 양반가에서 주로 행해지던 <주자가례>의 양식이다. <주자가례>를 지은 주자는 13세기 중국 남송 시대의 인물로, 담백한 일상 언어로 표현되어 있던 공자의 사상을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하여 '성리학(또는 주자학)'이라고 부르는 형이상학적 유학의 형태를 창안한 사람이다. "먼 조상까지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될 것이다."라는 공자의 소박한 말이 주자라는 필터를 거쳐 나오면서 음양오행의 원리니, 이기론(理氣論)이니 하는 복잡한 이론이 더해진 것이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제사상을 차릴 때도 생선 머리는 어느 쪽으로 해야 하니, 전이나 과일은 몇 개를 두어야 하니, 절은 몇 번 하는 것이 옳으니, 몸가짐은 어떠해야 하느니, 여자는 참석을 못하느니 하는 세세한 규약들에 얽매이게 되었다.



이것이 허례허식임을 간파했던 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는 공자의 본래 뜻을 회복해 조상을 추모하는 데는 청수(=맑은 물) 한 사발이면 족하다고 말하며 그렇게 실천했다.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동학교도들은 대부분 최제우의 뜻에 크게 동의했고, 그것은 일종의 제례 혁명이었다. 이미 양반의 신분을 사고팔기 시작한 당대에 벼락 양반이 된 이들은 경쟁적으로 제사상을 으리으리하게 갖추고 사대부가의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고 있었다. 청수 한 사발의 제례는 그런 그들의 허영을 날카롭게 꾸짖는 민초들의 자발적 문화혁명이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동학혁명은 미완으로 그쳤고, 조선 정복의 야욕을 불태우기 시작한 일제는 동학 문화의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양반가의 허례허식뿐이었다.



동학의 맥을 이은 천도교는 여전히 맑은 물 한 그릇 제례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삶의 마감을 신중히 하고 먼 조상까지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될 것이다.



공자가 이 말을 했을 때는 이 말 자체가 매우 혁명적인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응? 대체 어디가?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자가 살던 당시는 아직 종교 사회에서 인문사회로 완전히 전환되지 않았을 때다. 즉, 나라의 지도자가 점을 치거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 등을 통해 신의 의사를 묻고 신에게 간청하는 형태로 정치가 이루어지던 시기다. 신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리얼하게 자리 잡고 있던 시절, 제사라는 것은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한 행위였다.



그러나 공자는 이 제사의 의미를 인간적인 의미로 뒤바꿔버리는 혁명을 감행한 것이다.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될 것이다."



공자는 제사를 지내는 의미가 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이루는 공동체 속에서 덕을 전하는 것에 있다고 천명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의미다.



건민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다가 죽었다고 치자. 만약 이 사람의 생이 죽음으로써 일회적으로 끝나버린다면 건민이는 평소에 덕을 쌓으며 살고자 할까?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만약 건민이가 죽고 난 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그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제도가 있다면 어떨까. 건민이가 평소에 악행을 일삼았다면, 건민이를 추모하는 날이 매년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모여서 건민이의 욕을 할 것이다. 죽어서도 편하게 두 다리를 뻗지 못하는 것이다. 허나 반대로 건민이가 평소 덕을 쌓았다면 건민이의 제삿날마다 후손들이 모여서 "아, 정말 할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지.", "나도 꼭 아버지 같이 살 거야."라고 말하는 훈훈한 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죽은 뒤,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다시 말해 역사에 어떻게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살아있을 적의 삶에 충실하게 된다.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된다는 공자의 말은 이러한 원리에 착안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원리는 매우 강력했고, 이후 동아시아 문명의 2000년 이상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되었다.



만약, 공자가 살던 당대가 오늘날과 같이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여겼던 시대였다면 단언컨대 결코 공자는 여성을 제례에서 배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공자는 아버지의 제사와 어머니의 제사를 똑같이 지냈다. 장자 상속이니, 여자는 절을 할 수 없느니 하는 모든 묘한 풍습들이 모두 공자 이후 어떤 특수한 시대 상황 속에서 한정적으로 생겨난 일시적 방편들에 불과하다.


주자가례의 형식을 지키는 것보다, 최초에 공자가 제례에 담고자 했던 뜻을 지키는 것이 더 예에 가깝지 않을까?

그 본(本)을 잃지 않는다면 형식은 시대에 맞게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 온당하다. 그러나 오늘날 명절의 풍경을 보면 오히려 거꾸로다. 형식에 맞추느라 오히려 근본을 잃어버리고 있다. 아이들에게 왜 제사를 지내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왜일까? 답은 쉽다. 어른들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우리가 더 이상, 양반 흉내를 내고 싶어 <주자가례>를 억지로 따르던 시대의 조선인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제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떠나간 이를 추모하는 일'이다. 음식을 차리는 일보다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멜론이면 어떻고, 파인애플이면 어떤가. 먼저 간 이가 좋아했던 음식이라면. 평소 생선이나 전, 튀김 같은 것은 입에 대지도 않고 떠나가신 분에게 차례상이라고 그런 것들을 올리는 이유는 또 무언가. 음식은 요즘 사람들이 편히 먹는 것들로 간소하게 차리되, 친척들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먼저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 추억하고, 그 기억을 다음의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 그것이 공자가 바랐던 참된 제례가 아닐까. 증조할머니가, 증조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는 증손남, 증손녀가 몇이나 될까. 고전적 형식미를 갖추는 것은 저 성균관의 명문 사대부가만으로 족하다. 우리 모두가 인간문화제가 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왜 제사를 지내는가. 질문 속에 분명 답이 있을 것이다.


<도올 만화 논어> 중 공자의 말. 공자는 우리가 오해하는 것만큼 꼰대어른이 아니다.

Biodynamic Man 17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