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9

퀘이커 박양수 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



알라딘: [전자책] 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




[eBook] 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 - 되짚어 보는 지구촌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박양수 (지은이)아마존의나비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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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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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292쪽, 약 14.8만자, 약 4.5만 단어


책소개
현재의 정치, 경제 및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경제 성장, 민주주의 및 생태계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지구촌 경제를 만들어 갈 책임이 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지구촌 경제의 건설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저자는 현업에서의 풍부하고 실증적인 경험과 연구를 통해 축적된 수많은 사례들을 그래프로 제시한다. 또한 <경제학 톺아보기> 페이지를 통해 독자들이 한걸음 더 나아가 경제현상과 이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목차


책머리에 부쳐 / 5
1부. 무엇이 문제인가?
1장. 장기적 관점에서 본 글로벌 경제 환경의 변화 / 23
세계 경제 통합화와 국적 없는 기업의 속출|금융의 글로벌화와 국제 통화 체제의 불안정|직접 금융시장 발전 및 금융 자유화와 금융 혁신
2장. 경제 주체 행태 변화와 글로벌 금융 위기 / 44
자본 유출과 위기의 전염 | 글로벌 불균형 확대 | 비금융 기업의 경영 행태 변화
소득 및 자산 불평등 심화 | 부채 주도 성장 | 금융 부문의 취약성 확대 및 위기 발생
3장.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요 경제 현안 및 논쟁 / 86
글로벌 경제의 장기간 저성장 | 유로존의 경제 위기 | 금융 규제의 강화
대차대조표 불황과 정부 부채 급증 | 비전통적 통화 정책과 재정 우위 체제
완화적 통화 정책과 실물·금융 간 불균형 심화| 인구 구조 변화, 구조적 장기 침체 및 포용적 성장 | 인플레이션 동학의 변화| 기후 변화 및 환경 친화적 성장 | 고용 없는 성장과 정치적 불확실성

2부. 해결 방법은 어디서 찾을까?
4장. 주류 경제학의 분석 틀 개선 및 지구촌 경제 전망 / 187
시대가 요구하는 경제학 | 기존 주류경제학 분석 틀의 한계
거시경제학 분석 틀의 개선 방향 | 향후 지구촌 경제 전망
5장. 새로운 사고 체계의 정립과 유익한 비주류 아이디어들 / 234
경제학과 공정성 | 경제 정책 평가 시 민주주의 고려
시민권과 고용 및 소득 | 금융의 역할 재검토 및 시카고 플랜
채권자와 채무자의 위험 분담 | 공짜 돈과 마이너스 금리
공급자 주도에서 소비자 주도로 전환 | 행복지수 및 환경과 인간의 공존
정책의 독자성 및 국제 공조
책을 마무리하며 / 267
참고문헌 / 278
찾아보기 / 285

접기


책속에서



냉전 시대의 개발 프로젝트는 한국을 포함 대만, 싱가포르, 홍콩, 브라질, 멕시코 등 신흥공업국의 등장을 촉진했다. 아시아 신흥국들은 자원이 빈약했기 때문에 초기에 노동 집약적 상품 수출을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 수입 대체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을 선택하였으며 1970년대부터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육성으로 전환하였다. 반면 라틴아메리카 신흥국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1950년대에 이미 철강, 석유화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켰다. 경제 개발 과정에서 신흥국들 특히 아시아 신흥국들은 외화 확보를 위해 수출지향 산업화 모델을 채택했고 자본주의 진영 선진국 기업들에게 생산 기지를 이전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즉 자본주의 선진국 기업들은 소비재, 기계류, 컴퓨터 등의 생산처를 제3세계로 이전하는 대신, 이들 나라로부터 자유무역지대 등의 형태로 신규 투자에 대한 법인세 감면, 노동조합 없는 저임금 노동 제공 등 인센티브를 제공받은 것이다. 한편 동아시아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라는 특성으로 인해 미국이 자국 제품의 중간재로 활용하는 이들 국가의 수출품에 대해 시장을 적극 개방해 주었기 때문에 경제 발전이 더욱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1부. 무엇이 문제인가? <세계 경제 통합화와 국적 없는 기업의 속출> 중.

1970년대 초반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1980년대부터는 금융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되었으며 자본 이동도 점차 자유화되었다. 더욱이 다양한 금융 기법과 파생상품이 발달하면서 금융시장의 유동성은 크게 증가하였으며 선진국 자본이 고수익을 찾아 국경을 넘어 빈번하게 이동하였다. 특히 초국적 은행 또는 글로벌 은행들은 레버리지 확대를 통한 글로벌 영업 전략을 채택하면서 국경 간 자본 이동을 크게 증가시켰다. -<자본 유출과 위기의 전염> 중


금융 자유화 및 혁신의 결과로 나타난 경제의 금융화 또는 금융자본주의(finance-dominated capitalism)의 탄생은 여타 경제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경제 시스템의 취약성을 증가시켰다. 민스키(Hyman P. Minsky, 1986)는 금융자본주의하에서는 부채가 과다하게 늘어나고 자산 가격의 버블이 형성되는 현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즉 금융 자산의 속성, 경제 주체들의 기대 형성 방식 및 금융 회사의 행태가 상호 작용하여 금융자본주의는 금융 위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채 주도 성장> 중


이 과정에서 로고프(Kenneth Rogoff) 교수와 크루그먼 교수 사이에 국가 부채와 성장의 관계에 관한 논쟁이 주목을 받았다. 우선 라인하트와 로고프(2010)는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90%를 상회한 이후 23년 정도는 이전 기간에 비해 경제 성장률이 평균 1%p 정도 낮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헌던(Herndon, 2013) 등은 라인하트와 로고프에서 사용한 데이터 및 수치 계산에 오류가 있으며 국가 부채가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여부는 불명확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로고프는 《파이낸셜타임즈》 기고를 통해 일부 실수를 감안하더라도 논문의 핵심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즈》 칼럼을 통해 권위 있는 학자들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 잘못된 연구가 정치적 이해관계와 어우러져 유로 지역의 불황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대차대조표 불황과 정부 부채 급증> 중

세계 경제의 장기 저성장세는 고령화 급진전 및 기대 수명 연장, 소득 불평등 심화, 디레버리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이의 해결을 위한 대안을 신고전파나 슘페터학파 등이 강조하는 신성장 동력의 발굴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편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노동시장에 참여하려는 의욕 자체가 꺾이고 젊은 세대의 지식과 기존 공장 시설이 폐기되는 등 이력효과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케인지언적인 경기 안정화 대책도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신고전파의 생각과 케인지언의 사고를 어떻게 활용하여 현재의 경기 침체를 극복할 것인가이다. -2부 해결 방법은 어디서 찾을까? <시대가 요구하는 경제학> 중

경제학에서 소득 불평등이 유효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케인즈와 동 시대의 폴란드 경제학자 칼레츠키(Michal Kalecki)에 의해 제기되었다. 칼레츠키는 경제 주체를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로 분류하고 자본가는 낮은 평균 소비 성향을, 임금 노동자는 높은 평균 소비 성향을 가진 것으로 전제하여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아지면 소비 및 총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케인즈는 소득 분포와 유효 수요의 관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임금 하락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면 소비가 위축되고 투자의 한계 효율도 낮아져 유효 수요가 위축된다고 보았다. 한편 2000년대 중후반부터 포스트케인지언을 중심으로 칼레츠키의 분석 체계에 기반한 임금 주도 또는 소득 주도 성장론이 제기되고 있으며 국제노동기구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과 소비 및 성장관계> 중

공정성이라는 개념과 이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 철학과 법학의 범주에 머물러 있고 경제학 분석의 본류에 깊숙이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다만 조세론에서는 효율성과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의 논의가 있고 경제학의 본류에 속하지 못하는 토지이론에서 공정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조지(Henry George)는 토지의 사유가 불공정한 분배의 근본 원인이라며 모든 세금을 토지세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도 부유층이 건물이나 토지, 또는 독점권 등을 통해 여타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지대(rent)를 받는 것이 소득 불평등의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롤즈(John Rawls)는 개인의 자율과 책임을 기본으로 삼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라는 개념을 정립하려 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현대 정의론의 출발점이자 현대 복지국가의 사상적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롤즈는 어떤 사회 공동체에서 각 구성원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상태에 있을 때, 즉 자기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베일 뒤에 있을 때, 가장 정의로운 분배원칙을 정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라 주장한다.
-<경제학과 공공성> 중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양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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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에서 20년 넘게 경제전망 및 정책보고서 작성 업무에 종사하였고 여기서 얻은 노하우를 『경제전망의 실제』(2011년, 한티미디어)에 정리해 출간한 바 있다. 이후 한국은행 통화재정팀장, 계량모형부장, 금융안정연구부장 등을 맡아 통화재정, 금융 안정 등의 분야로 연구 영역을 확대하였다. 같은 기간에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 세계 및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새로운 거시경제정책 패러다임 등에 대해 읽고 고민하면서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체계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류경제학적 사고에 기반을 둔 저자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숙고 과정에서 정리한 것들을 두 번째 저서인 이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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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경제전망의 실제>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불평등 심화, 부채 주도 성장, 구조적 장기 침체, 기후 변화, 인공지능 발전 등이 복잡하게 얽힌 지구촌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주류와 비주류 경제학의 아이디어를 총망라하여 해결책을 모색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장기간 경기 침체와 소득 불평등 심화, 빚을 감당하지 못한 중산층의 파산, 높은 청년 실업률 등 사회적 모순이 누적됨에 따라 서민들은 강한 지도자 신드롬이나 이민자 혐오와 같은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인도주의적인 반응으로 그들의 좌절과 분노를 표출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파시즘으로의 회귀 같은 느낌을 주는 이러한 반응은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우리에게는 현재의 정치, 경제 및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경제 성장, 민주주의 및 생태계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지구촌 경제를 만들어 갈 책임이 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지구촌 경제의 건설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 풍부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지구촌 경제의 실상을 분석하고 공동체적 삶에 기반한 생존의 문제를 고민한다.

저자는 현업에서의 풍부하고 실증적인 경험과 연구를 통해 축적된 수많은 사례들을 그래프로 제시한다. 또한 <경제학 톺아보기> 페이지를 통해 독자들이 한걸음 더 나아가 경제현상과 이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현실 경제학자들과 특히, 미래를 준비하는 경제학도들에게 유연한 중용의 사고를 갖추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철학적 사고를 갖춘 “사람을 위한 경제학”의 조그만 출발점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접기

퀘이커 서울모임 자유게시판 05 박성용 퀘이커 평화운동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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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술용


퀘이커 평화운동에 대한 단상 펌)



퀘이커 평화운동에 대한 단상
http://ecopeace.pe.kr/index.php?pl=30

작성자 : 박성용(EcoPeace)
sungyongpk@yahoo.com
전직 - 유네스코/아시아 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시민사회실장, 사업조정자
현직 - 생명평화 훈련 교육기획 및 대안교육 운동가(자유직)

작성일 : 05/11/11 18:09

내가 퀘이커와 인연을 맺은 것은 90년대 중반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이행우 선생님(현재 자주평화통일미주연합 고문)을 통해서이다. 자주연합활동을 하면서 이 선생님을 통해 함석헌 선생님과 퀘이커활동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필라델피아의 퀘이커 해외봉사사무실(AFSC)에도 들려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특히 관심의 동기가 되었던 것은, 아이들을 퀘이커 학교(Friends School)에 보내면서 거기서 폭력에 대응하는 철저한 교육, 아이들 인격존중과 평등에 대한 관점이 교사나 프로그램 속에 배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가 학위가 끝나가는 마지막 해 2001년 나 자신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선생님을 통해 필라델피아 남쪽, Wallingford에 소재한 퀘이커 교육기관이자 수련공동체인 Pendlehill (www.pendlehill.org)에 가을학기를 지내게 되면서 평화교육에 관한 결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거기서 생활하면서 내게 남겨진 인상적인 몇 가지 체험과 신학적 관점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적으로 내가 펜들힐에 들어가고 나서 두 주 만에 9.11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그 날은 논문 최종 본을 내는 날이어서 아침에 템플대 캠퍼스에 갔다가 학생들이 경악을 하면서 모든 학생들이 TV를 지켜보고 계속 전화를 사방으로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각각 1시간에서 2시간 거리쯤의 위치에서 북으로는 뉴욕에, 서부 펜실베니아에 그리고 남쪽 워싱톤에 비행기가 각각 떨어지면서 가운데 위치한 필라델피아의 학생들에게도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당시 펜들힐에서는 지역사회에 매우 유명하면서도 영향력이 강한 일련의 공개강연회를 매 학기마다 해 오고 있었다. 이미 2년 전에 기획되고 1년 전에 주제와 강사가 섭외되는 이 공개강연회의 당시 주제는 “퀘이커와 돈”이었었고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맘모니즘에 대항한 대안적 삶에 대한 것이어서 꽤나 기대가 큰 주제였다.

그러나 9.11사태가 터지자마자 펜들힐은 이 주제를 즉각적으로 취소하고 이슬람에 대한 주제로 바꾸면서 미국내 및 해외의 이슬람 학자와 활동가, 이슬람권과 관계된 평화운동가 등으로 전면 교체하였고 이슬람과 관련된 주제가 다음 학기까지 지속되었다. 대게 참석자들은 처음엔 퀘이커들이 많았으나 보통 100-200명이 모이던 숫자가 여러 지역사회의 관심 있는 사람들로 인해 넘치면서 그 장소를 옮겨 대대적인 모임과 더불어 종교적 타자(religious Others)인 이슬람권을 알고자 하는 열정과 더불어 미국의 헤게모니 정책에 대한 각종 반대운동의 결성을 조직하고 실천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퀘이커 모임에서는 이념, 종교, 인종에 관계없이 고통 받는 타자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게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놀라움으로 보게 된 것이다. 월남전중에 상선을 구입해서 구호물자를 베트남에 보내다가 미국함대가 이를 막고자 했던 사건이며, 20여 년 전에 이미 북한에 들어가 활동을 먼저 한 곳도 퀘이커 단체였다. 17세기 중엽이미 미국의 퀘이커들은 흑인노예제에 대한 반대운동을 실시하고, 위원회를 두어 신도들을 찾아다니며 노예를 풀어줄 것을 권고하고 이것이 시행이 안 되자 연회에서 강제로 흑인노예주들에 대한 멤버쉽을 박탈시켜 퀘이커 숫자가 반으로 주는 일까지 감수하였다. 비록 전 세계에 30만 밖에 안 되는 숫자이면서도 갈등해결과 지역빈민구제활동, 비폭력저항운동, 인권을 위한 정책로비활동, 국제구호와 국제연대, 평화활동, 그린피스운동의 경우처럼 녹색활동 등에서 독보적인 위치와 공헌을 하고 있는 데에는 이들이 가진 독특한 신앙관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창시자 조지 폭스(George Fox)가 1656년 론세스톤(Launceston)의 감옥에 있으면서 쓴 편지의 몇 단어를 차용하여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 “Answering that of God in everyone"- 퀘이커란 하느님의 영에 의해 진동을 하는 자란 뜻이다. 퀘이커는 모든 인간은-남/여, 노/소, 정상인/장애우, 백인/흑인/황인, 신앙인/비신앙인을 막론하고 - 누구나 “하느님의 그것”이라 부르는 “신적인 빛,” “그리스도의 빛” “내적인 빛”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존중되어야 하며, 특별한 엘리트나 권위자에 대한 경칭을 갖지 않는다. 그러기에 성직자가 없으며 모두가 친우(friends)로 불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 내면에서 흘러나온다. 타 종교에 대한 존중과 관심에 의한 종교 간의 대화가 이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이러한 신념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펜들힐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학습자와 강사(instructor)간에 구별이 없으며, 강사의 경력이나 질로 보면 수십 년간을 그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으로서 각자가 독보적인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겸손함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따사로움이 두드러진 특성임을 느끼게 된다.
이는 무슨 결정을 할 때도 소수자의 신적인 빛을 이해하여 다수결로 정하는 법이 없다. Friends School의 교실에서는 아이가 장애우이어도 교사와 지도자의 역할을 할 때가 있고, 어떠한 강제도 없으며, 어울림이 매우 자연스럽고 친밀한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예배처[교회]이자 모임장소인 Meeting House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평등의 원칙을 고려하여 가운데 빈 공간을 중심으로 한 팔각형내지 사각형의 의자 배치와 어떠한 성물-십자가, 촛대, 설교단, 성가대-도 없다. 이들 형식적인 것 모두가 신적인 빛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지 각자는 조용히 모여 침묵기도를 드리며 어느 누군가가 성령의 감흥을 받고 그것을 말할 수 밖에 없다고 느끼면 전체를 향해 말하게 된다.

참여하면서 느끼는 것은 말, 기도 혹은 노래 어떤 형식이든 가슴에서 울려 터져 나오는 그 메시지는 매우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함께 모두의 가슴이 울리는 듯한 반향을 일으켜 매우 감동적이곤 한다. 혹은 감흥이 없을 때는 기다리다가 침묵으로 마치게 된다. 이런 형태를 통해 각자는 개인의 내적 수행(individual practice)을 통해 신께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의 내적 감흥에 자신도 울림을 받으면서 공동체적 수련 (communal practice)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침묵명상기도는 성령, 신적인 빛의 자유롭고 능동적인 역사를 위해 나의 활동, 나의 에고활동을 중지시킨다. 그러나 이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침묵의 시간을 갖을 때 이는 또한 ‘나의 말함’을 멈추고 미세할지라도 ‘타자의 음성 voices of Others'을 듣고자 하기 때문이다. 타자의 신적인 빛이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빈 공간을 허락할 기회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따라서 퀘이커에게 있어서 영성은 말하기 보다는 들음이 영성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들음의 영성으로 인해 이들의 영혼이 다른 이들보다 얼마나 여리고 예민한지 느끼게 된다.

* “Be valiant for the Truth" - 진리는 단순히 추상이나 이해가 아니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이는 확신(convincement)과 관계된 것으로 도달하고 견고히 지켜나가야 할 삶의 방식 (the way of life)이다. 위의 “모든 이에게 있는 하느님의 것에 응답함”이 신적 빛의 경험(experience)과 존재에 관련된 것이라면 “진리를 위해 용감해짐”이란 공개적으로 그 빛에 의해 걸어감(walking in the Light publicly)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어떤 맹세니 징집문제에도 거부하고, 세상에 어떤 타협을 하지 않는 이유이다.

퀘이커 신앙에는 신적 빛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사회적 증언(social witness)이 분리되지 않는다. 펜들힐에는 영성을 위한 프로그램(치유기도, 성서연구, 신학...)등과 더불어 사회적 증언을 위한 프로그램 (폭력과 갈등대응, 지역빈민구호, 파트너쉽과 권한부여 empowerment ...)이 동시에 존재한다. 평화의 증언은 퀘이커 역사에 오래된 것이다. 장소, 혀, 펜 그 무엇이든 주 하느님을 위한 것이라면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감옥이나 자기희생이 따를 지라도 진리일 경우에는 목숨을 거는 증언자가 되는 것이다. 상업에 있어서도 주변에서 누군가가 퀘이커라 할 때 그의 정직과 신용은 의심하지 않게 된다.

* “Be patterns, be examples" - 진리에 대한 경험은 모범을 만드는 실험(experimental)을 강화한다. 이들은 선교(mission)이란 말을 안 쓰고 봉사(service)란 말을 선호한다. 따라서 세속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권을 높이고 하느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누룩처럼 전위적인 일들을 만들어 낸다. 그 예가 감옥에서의 각종 자원 활동, 정신병동의 개선, 중재, 아동치유학교, 대안교육공동체운동, 평화활동이 그것이다.

또한 일을 함에 있어서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없이 타자를 일에 함께 관여시키는 방식을 통해 소유권이나 멤버쉽의 배타성을 주장하지 않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펜들힐의 교육이 종교적 타자인 누구에게나 열어 놓고 있는 것이 그 예이며, 수많은 퀘이커관련 봉사기관에 타 신앙인이 직원으로 와 있고 네트워크 활동에 과감히 이들 타자들과 더불어 활동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봉사는 어느 특정한 공동체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느님의 목적에 봉사하도록 지향한다. 즉 봉사는 진리를 널리 전파하고 인류를 생명으로 모으는 (“spreading the truth abroad...gathering up into the life") 것이며, 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함과 더불어 신의 생명과 능력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10년 동안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이 퀘이커 펜들힐에서 한 학기를 보내면서 마무리 될 수 있게 된 것은 내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동안 따라온 허무주의와 내적인 고통이 정리되고 꼭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됨으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실존적 교리로서 성육신 -let your life speak-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되었다. ‘내 생으로 진리를 말해야 한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진리를 자기 삶으로 실험해야 한다는 사실은 평화교육운동을 하는 내게 있어서 근본체험으로 다가온 것이다.

- 2005. 11. 10. -


1905 북한의 공격적 평화주의- 퀘이커서울모임강연 2019.5.26 13:00



북한의 공격적 평화주의- 퀘이커서울모임강연 2019.5.26 13:00
북한의 공격적 평화주의- 퀘이커서울모임강연 2019.5.26 13:00
2019년 5월 17일 · by leesiwoo · in 소식


마태복음 5장 9절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퀘이커 서울모임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화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일반인들도 참석이 가능하니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랍니다.

1. 일시 : 2019년 5월 26일 13:00~15:00
2. 강사 : 이시우(사진작가)
3. 주제 : 북한의 공격적 평화주의
4. 장소 : 퀘이커 서울모임 2층 예배실

2013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

제21호 2013년 여름, 살림이야기


[ 길을 묻다, 길을 가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 ]

“모든 이의 내면에 빛이 있습니다”

진행 주요섭\사진 홍진훤








“참 조심하고 조심하자고 했다. ‘생각의 씨’ 하나 던져 뿌려 보자는 심정으로 나도 생각하고 그도 생각하는, 아니 우리 시대가 함께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맘으로 편지를 썼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듯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매일의 다짐이었다.”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67)은 2011년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년퇴임을 두어 달 앞두고, 제자 450여 명에게 매일 아침 써 보냈던 편지글을 모아 《청춘에게 안부를 묻다》라는 책을 펴낸다. 이 책의 머리말에 제자들에게 편지를 쓴 마음을 싣고 있다.
어른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어린 이에게 자꾸 뭔가를 가르치고 이 길이 옳으니 따라오라고 다그치기 좋아하지 않던가. 그런데 김조년 선생은 어린 제자들을 ‘같이 생각하는 벗’으로 대우하며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를 보이니 다른 어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함석헌 선생의 가장 성실한 제자


씨알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이어받은 가장 성실한 제자로 꼽히는 김조년 선생은 독일에서 사회학, 교육학, 정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26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임 후 문을 연 김조년 선생의 연구실 ‘옹달샘터’는 대전역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대흥동성당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김조년 선생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차를 직접 내려주었다.


살림이야기_ 한남대 교수직에서 퇴임하신 지 이 년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주로 어떤 일에 주력하십니까?
김조년_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학교에서 강의를 합니다. 학기마다 대학원이나 학부 강의를 한 과목씩 맡아 왔는데,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퇴임하면서 연구실에 가득한 책을 보면서 저걸 다 어디에 두나 하다가 이곳 옹달샘터를 마련했어요. 마침 명상춤 수행공간을 찾던 아내가 옆방을 씁니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그전부터 하던 대로 <씨의 소리>를 격월간으로 계속 발간하면서, 올해는 《함석헌 전집》을 개정해서 펴내려 합니다. ‘정본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게 일이 큽니다.


부인 이종희 선생은 명상춤 안내자로서 유명하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 전통에서 비롯한 명상춤은 종교의 벽을 넘어 고요 속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는 영성훈련의 입문과정인데, 부부가 함께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이종희 선생은 평화운동에 참여하고 명상춤을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명상춤 수행모임을 연다. 또한 1970년 함석헌 선생이 창간한 <씨의 소리>는 1980년 7월 군부정권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었다. 1988년 12월에 복간하여 함석헌 선생이 돌아가신 뒤로는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맡아 격월간으로 내고 있다.








살림이야기_ 환경운동연합과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에도 참여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퇴임하시고 새로 시작한 일들도 있으실 텐데요.
김조년_ 단체활동에서도 물러나서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일이, 하나는 자존감이 부족하여 방황하는 탈학교 청소년들, 또 하나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런데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아직은 마음만 있어요. 지난해 3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고전공부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30~40대 주부들이 자아정체감 때문에 방황을 많이 한다고 해요. 지인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고전을 읽는 모임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에밀》과 《장자》를 읽었고 지금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또, 격주마다 ‘옹달샘터 낭독회’를 열고 있습니다.


옹달샘터 낭독회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저녁 두 시간 남짓 열리는데, 낭독자가 한 시간 가량 낭독하고, 그 뒤에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낭독하는 동안 음악가가 연주를 하기도 한다. 지난 5월 15일로 꼭 1년이 되었다. 6월에는 서울에서도 낭독회가 열릴 예정이다.

김조년_ 가을쯤에는 함석헌 사상 강좌를 열 예정입니다. 그리고 퇴직 교수들과 함께 ‘거리의 사회학’ 강좌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강좌에서 물어보았는데,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함석헌 선생은 폭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생명평화주의자였기 때문에 군사독재시절 많은 탄압을 받았지요. 1980년대에는 글을 쓰거나 발언할 기회도 모두 차단당했어요. 그래서 세상과 단절될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는 제자로서 선생의 생각을 좀 더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려합니다. 선생의 글들은 교과서에 실리기에도 손색이 없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못해왔지요.


김조년 선생이 함석헌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반대하여 14일 동안 삭발 단식하던 함석헌 선생에게, 고등학생 김조년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이 고등학생에게 진지하게 답장했다. 편지 교류는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유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고, 그 소년은 스승이 창간한 잡지를 다시 내고 사상 연구와 평화 실천 면에서 스승을 이어가고 있다.






살림이야기_ 20여 년 동안 내온 <표주박통신>은 요즘 안 하십니까?
김조년_ 퇴임 후에 이제까지 한 번도 못냈어요. 최근에 자꾸 묻는 사람들이 생겨요. 이제 안 하느냐, 오래도록 못 받았다 이런 얘기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요. 사실 다른 것들은 내게 맡겨진 일이고, 내 일은 <표주박통신>인데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해온 일이거든요.


<표주박통신>은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작했다. 1984년 독일에서 귀국하여 사회사상사 수업을 맡았는데, 당시는 대학생들이 수업에만 열중할 사회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 때 30명의 학생들에게 주소를 받아 못 다한 강의 내용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이듬해 ‘막스 호르크하이머’에 대한 내용을 편지로 보내며 <표주박통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 홀수 달 마지막 날 편지를 썼다. 친구, 친지, 동료 등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전자우편으로도 보내며 2쪽짜리 편지가 36쪽 책자가 되었고 독자도 30명에서 2,500명으로 늘었다.


권위와 형식에 굴복하지 않는 퀘이커


함석헌 선생은 한국에서 많지 않은 ‘퀘이커’로서도 유명하다. 김조년 선생 역시 부인과 함께 퀘이커로, 매주 일요일 아침 옹달샘터에서 퀘이커 예배를 한다. 스승이 퀘이커라고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독일에 유학하던 때 함석헌 선생이 베를린을 방문하면 동포들과 퀘이커들을 꼭 찾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지만, 함석헌 선생이 세상을 뜬 뒤에야 지역 모임에 나가보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대전에서 퀘이커 공부 모임을 하면서도 또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퀘이커가 되었다.



“퀘이커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글쎄 저도 그게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합니다”라며 웃었다. 퀘이커는 350여 년 전 기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던 시대에 생겨났다. 특히 영국 국교의 형식성,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삶이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 조지 폭스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종파이다. 퀘이커들은 미국으로 많이 건너갔는데, 그 가운데 유명한 이가 윌리엄 펜이다. 펜은 북아메리카 델라웨어 강 서쪽, 지금의 펜실베니아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영국의 개척자들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몰아내며 땅을 차지했는데, 펜은 인디언 공동체와 최초로 평화협정을 맺고 공존하기로 했다.


김조년_ 퀘이커는 “오직 진리에만 복종하고, 형식과 권위에는 복종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는 관습이 있었다는데, 퀘이커들은 “너나 나나 같은 권위의 사람이다. 그러니 무릎을 꿇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에만 복종한다” 이랬다고 해요. 그러니 미움을 사서 감옥에 많이 갔겠지요. 감옥 중에서도 가장 환경이 나쁜 곳에 갇히곤 했답니다. 퀘이커들이 감옥에서 나와서 한 것이 감옥개선운동입니다. ‘감옥은 지옥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야 할 곳이다’라고 적극적인 운동을 벌입니다. 본인들이 고생을 해봤으니까요.


퀘이커는 ‘신과 나 사이에 중간자가 필요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다른 종교와 달리 성직자나 예언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믿음이 앞서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직책이 되거나 영속적인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크리스트교 사이에서도 한때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김조년_ 퀘이커는 종교 박해를 많이 받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이겨내고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평화운동을 열심히 해서 지금은 평화종교라고 불릴 정도이지요. 평화운동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방법은 반드시 비폭력으로, 그리고 ‘원수는 없다’는 것이에요. 국가적으로 적대적인 존재라고 해도, 생명은 국가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국가란 한시적인 보호 조직일 뿐 영속적이지 않아요. 그러니 인간의 생명은 국경을 초월하지요. 적대국의 사람도 나의 형제이므로 싸움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거부’입니다.






살림이야기_ 학교일뿐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의 활동을 해왔고, 물론 지금도 앞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시겠지만, 퇴직한 뒤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김조년_ 살면서 순간순간 계속 돌아보아야 되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개인보다는 공동으로 함께하는 운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혼자 고요히 생각도 하지만 공동의 불이 비추도록 함께 기원하거든요. 촛불 하나보다는 둘셋 겹치면 더 밝게 비추듯이, 어차피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개인으로서는 이상대로 살아왔지만, 작은 공동체로 함께 살면서 실천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두 번째 아쉬움은 제가 좀더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남에게 막 강요를 못해요. 모든 사람은 다 내면에 스승이 있듯이 누구나가 똑같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게 열리면 스스로 하게 되어 있는데, 막 다그쳐야 할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사회의 큰 약점 중 하나는 사람들의 자발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맘으로는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스스로 마음에서 막 솟아올라서 하는 것이 진짜지 하며 망설이곤 합니다. 젊다면, 해 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림이야기_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학과에서 오랜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 그 학문이나 학과가 사회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김조년_ 저는 두 가지 희망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좋은 학자가 되면 좋겠다. 두 번째는 좋은 교사가 되면 좋겠다. 처음에는 좋은 학자면 족할 것 같았는데, 한국에서 강단에 서고 학생들과 접해 보니 학문만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대학생들도 학문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선생과 제자로 만나는 게 더 많은 거예요. 그런데 돌아보면 두 가지가 다 실패야. 학문적으로 그렇게 업적을 쌓지도 못했고, 이론을 개발하거나 탁월한 연구를 내놓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공부할 때 ‘내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게 중요하다는 것만은 깨달았지요.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내가 왜 여기에 사회학을 공부하러 왔나 하는 갈등을 많이 느꼈어요. 사회학이란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건데, 나는 한국에 속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어느 강좌에서도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독일의 사회학은 독일사회라는 재료를 가지고 독일의 학문적인 칼로 그 사회에 맞는 이론을 만드는 거예요. 나의 재료와 칼은 모두 한국에 있다, 여기에서 다만 그 칼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금속공학을 배우듯이 방법을 배워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또한 한국에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사회를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판단력으로 판단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하잖아요? 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기의 생리, 즉 어디에 살고 무엇을 먹는지 알게 해 주어야 해요. 그 자세를 유지하려고 해 봤는데, 뭐 좀, 실패했나 싶기도 하고.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고전을 한두 줄씩 읽자


살림이야기_ 한국사회에서 최근 청년들이 공동체나 공유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생활에서도 공동주거나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많이 다릅니다.
김조년_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달라지는 게 좋으냐 나쁘냐를 이야기하는 건 사실 의미가 없어요. 뭐라고 하든 달라지는 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판단은 우리의 몫일 텐데 함께 사는 것, 그것이 단순히 나 개인의 확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말하면, “내가 똑바로 혼자 살면 되지, 사회가 어떻게 되든 간에”라는 생각이 확장되어 “우리들끼리만 멋지게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은 아니었으면 하죠. 삶은 빛이 되어 주변에 확산되어 나가야 합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삶을 살든 간에. 내가 옳은 삶을 살면 사회에도 옮음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것이 함석헌 사상의 하나이지 싶은데. 함석헌 선생은 개인과 전체는 하나, 시간과 영원도 하나, 생과 사도 하나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입니다. 개인의 정당한 삶은 사회개혁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살림이야기_ 가장 작은 공동체라고 하면 가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가족공동체에서 꼭 지키는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김조년_ 아이가 둘 있는데, 딸이 결혼하여 외손녀가 있고, 아들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에게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하기를 희망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가족과 아이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바깥에서 남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 되겠죠. 제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압력을 받은 것 같지는 않은데…. 집 안팎으로도, 속과 겉이 일치하는 삶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참 힘든데요.


살림이야기_ <표주박통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삶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오셨습니다. 우리 《살림이야기》 독자들에게 한 말씀 나누어 주세요.
김조년_ 가장 핵심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살림은 생명의 표현이지 않습니까? 생명은 누가 하라고 하고, 하지 말라고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속에 생명의 힘이 차면 폭발하듯 나오는 것처럼, 한살림에 참여하는 모든 개개인이 건실한 생명력을 확보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좋은 먹을거리를 갖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역사와 생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철학하는 힘을 갖도록 성장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로 자기 건강을 챙기는 먹을거리 운동일 뿐이지, 우리 생활 전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또 하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는데 자꾸 내부가 복잡해집니다. 전부 좋은 일을 하려 모였는데 왜 그럴까? 요사이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영성이 부족하다”라는 게 그 이야기지요. 영성이란 말이 어려운데, 옛부터 조상들이 쓴 말로 바꾸면 ‘덕’이겠다 싶습니다. 우리에게 덕이 부족한 거예요. 남을 날카롭게 지적할 줄은 아는데 이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어 오히려 더 큰 것을 해친다는 걸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뭉뚝해져야겠다고 생각해요. 노자의 이야기로 밝음이 너무 강하면 눈을 해치듯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다 그렇지요. 그럼 ‘저놈은 안 하는데 나 혼자 하면 손해 안 보나?’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글쎄요, 손해를 보면 얼마나 보겠어요?


살림이야기_ 공부하는 이들이나 사회운동가들 외에 평범한 생활인들은 매일매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은 삶일까도 큰 고민입니다.
김조년_ 우리 학생들에게도 추천하는데, 가정에서 모든 일을 하기 전에 시간을 정해 두고, 부부나 또 같이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과 고전 한두 구절씩을 함께 읽어 보세요. 많이 말고 한두 구절만. 그러고 나서 해설하거나 토론하지 말고 명상을 합니다. 우리 부부도 일요일마다 함께 명상하고 평소에도 무엇을 읽었는지 알려주곤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살자고 합의하여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건 아니에요. 살다 보니까 둘이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한살림 조합원이라면 의식이 더 높겠지요. 또한 조합원을 받아들일 때 기초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삶은 각자 자기의 몫이지만, 삶이 더 재미있어지는 공부를 할 기회를 주면 좋지요.








김조년 선생은 고전을 현대 고전과 과거의 고전 등 두 가지로 나누어 추천한다. 현대 고전이란 신문과 잡지를 말한다. 기자들이 가장 최근의 관심사를 쓰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책이나 교과서는 이미 낡은 것이다. “4년 동안 신문만 열심히 읽어도 대학공부보다 나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거의 고전으로는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함석헌 선생의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씨에게 보내는 편지》을 함께 추천했다. 특히 <씨의 소리>의 권두언을 모아 엮은 《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생의 마감을 앞두고 우리 모두에게 주는 유언 비슷한 간절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생각이 깊은 어른을 만나면 자꾸 이것저것 삶의 고민에 대한 답을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김조년 선생은 한발 물러서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저도 궁금하니 함께 생각해 봅시다”라고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상대의 의견을 구한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빛이 있으니,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또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서로 모여 함께 각자의 빛을 찾으면 더 좋을 것이다.



↘ 주요섭 님은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으로 생명사상(모심)과 협동운동(살림)에 대한 연구와 교류활동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841



자유알림판 - [즉문즉설]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10/23(금)



자유알림판 - [즉문즉설]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10/23(금)

[즉문즉설]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10/23(금)
2009.10.20 | 생명평화결사



즉문즉설(卽問卽說)
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

즉문즉설(卽問卽說)이란?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하는 방식이 아닌, 청중이 질문을 하면 강연자가 적절한 답을 하는 방식입니다.

▪ 사 회 : 김재형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 보따리학교)
▪ 순 서 : 시작->노래공연 또는 영상상영(20분)->강연자소개(10분)->
즉문즉설(2시간30분)*중간에 한차례 휴식->소감나누기(자유롭게)


즉문즉설(2) 김조년 (표주박통신 발행인, 생명평화결사 포럼위원장)
▸ 때 : 10월 23일(금). 오후 6:30~9:30
▸ 곳 : 장충동 분도빌딩 5층 교육관

-.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석헌 옹과 20년간 편지를 주고 받았다. 독일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교수로 재직한지 얼마 안되어 어수선한 정치상황으로 인하여 강의를 진행하지 못하자, 못다한 강의를 교내신문과 편지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 표주박 통신의 시작이 되었다. 현재는 한남대 교수로 대전지역의 평화운동과 명상가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퀘이커 대전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 저서로 '성찰의 창문으로 바라본 세상'(1998.세훈)/ '사랑하는 벗에게'(2007.동연)/
역서로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난 내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2007.바이북스) 등이 있다.

-. 표주박통신 http://pyojubak.hannam.ac.kr

■ 10/30(금) 마사키 타카시 (일본 환경운동가, waㅣk9 순례자)
■ 11/5일(목) 한명숙 (전 총리, 민주당 상임고문)
■ 11/8일(일) 홍신자 (웃는돌 대표, 춤명상가)

즉문즉설에 대한 의견이나 강연자 분들께 질문이 있다면 홈페이지에 올려주세요.
영상과 내용은 추후 홈페이지에 올리겠습니다.

문의 : 061-351-1950(사무국), 010-6410-5238(김재형)
생명평화결사 http://lifepeac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