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5

유기농 생산조직과 대안적 공동체의 형성 - 충북 괴산 ‘솔뫼농장’






유기농 생산조직과

대안적 공동체의 형성

- 충북 괴산 ‘솔뫼농장’을 중심으로




  학 교: 가톨릭대학교
  학 과: 사회학과

이 름: 이지원, 임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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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 서론
  1. 문제제기
  2. 연구방법

. 예비적 고찰
한국의 유기농업의 역사와 현황

. 솔뫼농장의 형성과 변화
  1. 솔뫼농장 형성 배경
   1) 농업환경의 변화
   2) 농업정책의 변화

  2. 솔뫼농장 형성의 역사
   1) 1: (1994-1996)
   2) 2: (1997-2000)
   3) 3: (2000-현재)

. 솔뫼농장의 특징
  1. 솔뫼농장 구성원들의 특징 및 현황

  2. 솔뫼농장의 공동체적 속성
   1) 구조적인 측면
   2) 정서적 측면

  3. 유통의 변화

  4. 솔뫼농장의 개방성

. 맺음말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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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1. 문제제기

  지난 수 십년 동안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자연자원에 대한 지나친 남용이 이루어지면서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게 진행되었고, 1960년대 이래 계속되어온 증산중심 농업정책에 따른 고투입 농법은 토양의 산성화, 하천오염 등 환경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보전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증대되었고, WTO 협상에 대한 대응 방법의 일환으로 고품질 농산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가 활발해지면서 환경친화적인 농업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기존농법과 다른 형태의 농법인 대안적농업방법의 하나로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이제까지의 유기농업은 정부로부터 식량증산 위주의 정책 때문에 외면당하고, 농민운동단체들로부터도 뜻은 좋으나 생산자, 소비자 모두 일부 계층에 제한되기 때문에 농업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러던 것이 수입개방에 대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으로서 정부나 농민운동단체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유기농업이 대안적 농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환경 친화적인 농업 기술과 자연과 인간, 도시 - 농촌, 생산 - 소비의 유기적 결합을 매개로 사회체계의 변화에 대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유기농업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의 유기적 관계를 바탕으로 땅을 살리고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관계의 실현을 도모하는 활동이다(송명규, 2000). 따라서 유기농업 생산자들은 농업을 통한 경제적 이익의 충족과 생명중심의 가체체계의 확립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상만으로 새로운 체계의 구성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유기농업은 생산농가들의 경제적 이해와 생태적 가치 실현 사이의 갈등 등 유기농업의 생산, 소비, 유통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문제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생산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변화한다. 또한 최근 증가추세에 있는 유기농 생산조직이 새로운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유기농업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하고 유기농업이 전체 농업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급속한 도시화 · 산업화로 인해 동계나 동제, 두레로 대표되는 농촌의 마을 공동체적 성격은 무너져 가고 있다. 나아가 농촌 공동체의 위기는 공동체적 조직의 소멸이나 공동체적 문화의 소멸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인구의 급감도 불러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농업 생산조직의 형성은 그 지역의 농촌공동체를 되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는 충북 괴산 솔뫼농장을 중심으로 유기농 생산조직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그 특징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첫째, 유기농 생산조직은 어떤 요인에 의해 형성되는가? 솔뫼농장은 어떠한 배경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것은 조직의 구성과 체계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유기농 생산조직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솔뫼농장의 변화과정은 어떤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으며, 솔뫼농장이 결성될 당시와 현재는 어떻게 변화, 발전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또한 솔뫼농장 11년 동안 유지·존속 되면서 지역사회 또는 외부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은 최근 도시-농촌의 연대를 통해서 지역사회 발전이나 농업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에 미약하나마 힘을 실어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연구방법

  이 연구는 현장방문과 조사를 통해서 실시하였다. 현장조사는 2005 5월 두 차례 방문을 통해서 회원에 대한 인터뷰, 내부 자료 수집을 진행했다. 자료수집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솔뫼농장의 변화과정에서 중요한 1998년 이전의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를 보안하기 위해서 회원들에 대한 인터뷰와 함께 솔뫼농장에 관련한 기사 등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조직구성과 활동 및 사업에 대한 자료는 솔뫼농장의 회의록 및 정기총회 자료를 기본으로 하였고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문서로 보관된 내부자료는 원본 그대로 활용하고자 노력하였다. 


. 예비적 고찰

한국의 유기농업의 역사와 현황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은 1976년 기독교단체인 정농회가 발족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농회는 1976년 농약에 의한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우리나라 전 농토가 화학적 오염으로부터 벗어나 자연환경 및 생태계의 질서를 보전하는 생명농업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며 그 본보기로 유기농업을 솔선 실천한다. 정농회의 첫 유기농업은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풀무원에서부터 실행된다. 그 후 풀무원을 거쳐 간 회원들이 기술과 관념의 계보를 형성하면서 우리나라 유기농업에서 인맥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각자 여러 지역에서 별개의 생산자단체나 유통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도 정농회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매년 1월 중순에 정기연수회와 총회를 열어 회원 상호간의 유대 및 설립목적과 취지에 따른 교육을 받고 있다. 1990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회와 협력하여 경실련정농생활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정농회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안전한 유통을 위해 경실련이 소비자규합 및 유통 업무를 맡고 있다.

정농회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조직이 한국유기농업환경연구회이다. 1978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정농회와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효율적인 기술의 개발을 목표로 개별 농민들에게 기술을 보급하나,
정농회에 비해 생태 관념이나 대안적 사회체계를 활성화하는 데는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이 단체는 관념보다는 기술, 경제에 역점을 둔다.

1980년대 말에는 유기농업 단체들이 대폭 늘어난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이 전반적으로 활성화하기 시작하는 때이고, 삶의 질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진 때이다. 이때 생겨난 단체들 중 유기농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것은 한 살림(1986), 광주의 광록회(1987)등 이고, 그밖에는 생활협동조합중앙회, 한국가톨릭농민회, 여성민우회 등이 관련 활동을 벌인다. 이외에도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는 지방마다 작은 단체들이 생겨난다.

유기농산물이 친환경적이고, 식품의 안정성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농민들이 기술적, 경제적 난점을 인내하면서 재배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각자 나름의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부분 유기농업을 하는 데에는 생태계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으로써의 유기농업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유기농업은 개인의 힘으로는 정보 얻기도 쉽지 않고, 농사를 어려우며, 무엇보다 유기농업에 대해 정서적으로 지지해주고, 신념을 굳힐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기농업을 실행하는 단체들이 정농회, 한마음, 두레마을처럼 상당수 종교단체이거나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기농업이 신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정서적인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농민운동을 하거나 문화운동을 하던 엘리트들, 교수 등의 지식인들이 상당수 유기농업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기농업 관련 활동이 경제 외에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수행되고 잇고 지식인, 종교인 등 개인적인 이익추구보다는 사회의 일반 이익과 지적 사항들에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계층이 유기농업에 접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유기농업의 유통형태는 일반농사물이 일반시장 형태를 띠고 있는 것과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를 하거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유기농업 단체 혹은 전문유통업체가 개입되는 형태를 취한다. 중간에 유기농업 단체나 전문유통업체가 개입을 하더라도 일반농산물을 취급하는 것과는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를 거의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직거래로 간주한다. 이렇게 직거래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유기농산물이 화학농업 처리를 하지 않은 것임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직거래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생산물에 대한 신뢰를 소비자에게 전달함으로써 판매를 지속적으로 하여 가계에 안정성을 가져다주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유기농업 생산과 유통 부문에 있어서 주목되는 현상은 생산과 유통을 단순히 경제적 거래로만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대부분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창출해 가는 활동으로 간주한다.


. 솔뫼농장의 형성과 변화

  1. 솔뫼농장 형성 배경

  1) 농업환경의 변화

농업생산조직의 형성과 변화에 있어서 농산물 가격, 소비자들의 기호의 변화 등 농업외부 환경의 변화는 생산농가의 조직 구성 방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솔뫼농장이 형성될 당시의 농업 외부적 요인을 보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과 WTO 농산물 협상의 가속화이다. 1980년대부터 부분적으로 실시되던 한국정부의 농산물 시장 개방 정책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자유무역 시장 논리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완전개방으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농산물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은 농산물 가격의 하락을 가져왔고 소농 중심적 농업구조를 가진 농업의 해체위기를 가속화시켰다. 특히 쌀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농산물 시장의 완전개방에 대한 위기의식은 농민들만이 아니라 전 국민적인 저항으로 이어지고 종교단체나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한 ‘우리농산물기키기 국민운동’, ‘우리쌀지키기 운동본부’등 전국적인 국민운동[1]의 형태를 띤 범국민적인 저항운동의 성격을 띠고 나타났다. 농산물 시장개방, 특히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운동은 환경보존에 대한 중요성과 전통문화의 유지계승이라는 관점 등 농업이 갖는 경제외적 기능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일부 얻어낼 수 있었다.

둘째, 1987년 6월 시민대투쟁 이후 정치투쟁 중심의 시민운동이 생활상의 실천운동인 주민운동으로 성격을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여성단체나 소비자단체가 생활협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고 이것은 무공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의 증대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사회운동가들이나 사회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생활협동조합이 활발히 건설되기 시작하였다.[2]

농업 외부적 환경의 이러한 변화에 따라 종교적 일치성을 갖는 유기농업생산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가톨릭농민회 소속 회원이나 기독교농민회 소속 회원들의 유기농업생산으로의 전환과 도시와 가까운 지역에서 사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유기농업 생산농가들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오미란, 2004).





2) 농업정책의 변화



솔뫼농장이 조직될 당시 농업을 둘러싼 조건은 개방과 그에 따른 농업위기, 위기에 대응하는 농어촌구조개선 정책으로 농업과 농민들이 혼란스럽던 시기이다. 정부의 농업정책은 개방화에 대비한 농업경쟁력 확보의 일환으로 농업의 전문화, 규모화, 기계화를 꾀한다는 목표 하에 농업구조조정의 일환인 ‘농어촌 발전종합대책’으로 가시화 되었다. ‘농어촌 발전종합대책’은 농민에게 경영과 조직방식의 협업화[3]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1990-1996년 6년 동안 농업영농 법인 3487개소와 위탁영농회사 4906개소가 조직되는 등 협업화는 급증한다.

영농조합법인은 협동 경영적 요소가 강하며 솔뫼농장의 경우에도 이 시기에 영농조합법인으로 출발한다. 오미란(2004)에 따르면 이 시기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농민들의 대응은 이중적이었는데, 정부의 정책에 대해 대규모 투쟁과 대립을 지속하면서도 정책자금의 활용에 있어서는 의존·활용이라는 대응을 보였다. 즉 정부의 농업정책에 일면 강하게 저항하면서도 농업경영과 농가생계유지를 위해서는 정부정책에 협력과 활용을 통해 일정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1994년 이후 정부는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친환경 농업, 고품질 농업, 규모화 영농이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농업구조조정정책을 전개 하였다. 솔뫼농장 또한 설립 초기에 정부의 중·소농 고품질 농산물 생산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원금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그동안 식량자급, 식량증산 정책에 따라 외면해왔던 정부가 유기농업(친환경농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유기농업에 대한 정부 정책은 다음 두 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유기농업 생산의 확대를 위한 지원이다. 유기농업 생산 확대에 관한 지원은 유기농업 단지화, 가족농 단지 조성, 지역특화 사업, 친환경 농업지구 조성, 친환경 농업 시범마을 등 유기농업 생산구조를 만들기 위한 생산조직의 개편에 관한 지원이다.

둘째, 유기농업의 제도화이다. 1993년 농산물품질인증제가 실시된 이후 1994년에는 농림부내에 친환경 농업과를 신설하여 환경농업정책 개발, 유기농업 육성 등의 지원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유기농업 정책이 제도화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공포되면서 1998년 11월 친환경농업 원년 선포를 통해 친환경농업은 농업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2. 솔뫼농장 형성의 역사



1) 제 1기: (1994-1996)



농장이 출범한 처음 시기인 제 1기는 무농약 농사를 짓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안정된 생산 기반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솔뫼농장은 무농약 농업을 하는 몇몇 농민들끼리의 친목모임의 성격이 강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영농조합법인으로, 또한 공동부지 마련 이후 솔뫼농장의 기초를 다지게 된 것이다. 솔뫼농장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일대와 경남 상주시 화북면 지역에서 생명농업(당시에는 무농약 농업)을 개별적으로 실천하던 6명이 모여 1994년 3월 5일 창립하였다. 초창기는 생명농업을 하면서 지역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친목모임의 성격이 강하였다.

솔뫼농장이 틀을 잡게 된 것은 1996년부터였다. 솔뫼농장은 1995년 12월 28일 영농조합법인 설립[4]을 승인 받고, 이평리 179, 180-1번지 두 필지 약 2300평 정도의 공동 부지를 매입하게 된다. 이 시기 솔뫼농장은 영농조합법인 설립이 승인 이후 공동체성을 공고히 하고, 단체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게 된다. 그 일환이 공동농장과 시범농장의 마련이다. 회원들의 출자금으로 매입한 토지 중 공동농장은 회원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곳으로, 시범농장은 소비자들이 유기농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여러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이다. 2005년 현재까지 시범농장은 소비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지만, 공동농장의 경우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다. 처음시작 때 수박농사가 실패하고 연이어 다음해에도 수확에 실패했다. 솔뫼농장은 토지 구입과정에서 빚을 지게 되었는데 결국 공동농장으로 이용하던 토지를 처분하는 것으로 빚을 해결하게 된다.

또한 공동농장, 시범농장을 포함하여 회관,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는 공동부지를 설립하는 과정에서도 예산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의 어려움은 솔뫼농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정일우 신부님이 부산교구로부터 조립식 건물 32평 1동과 7백만 원의 성금을 모금해옴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가로부터 중·소농 고품질 농산물 생산 지원사업을 통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5]

솔뫼농장의 제 1기에서 주목 할 점은 솔뫼농장의 새로운 시도들 뿐 아니라, 솔뫼농장의 시도들을 다방면에서 도와주는 협조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솔뫼농장 설립 초기의 농산물 유통과정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초기의 생산물 판매는 정일우 신부를 통해 가톨릭교회와 연관된 경우가 많았다. 유통에 관련해서는 4장에서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다.

유기농업을 하는 공동체의 경우 친목모임의 형식을 벗어나 영농법인을 설립하여 조직의 틀을 세우려고 할 때 크게 대두되는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다. 솔뫼농장의 경우 영농법인 설립과 공동부지 매입을 위하여 회원 당 이백 만원의 출자금을 내었다. 이것은 중·소농 중심인 회원농가의 살림을 생각할 때 큰 경제적인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보여 진다.





2) 제 2기: (1997-2000)

2기는 기반을 갖추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드러났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개선하고 치유하여 올바른 유기농 생산자로서의 정신적 자세를 갖추는 데 역점을 두고 활동을 했던 시기였다. 구체적으로 의사결정 구조가 민주적으로 변모하였으며, 조직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었고, 내부 규약이 개정되었으며, 유통과정에 있어서는 한살림과의 연계를 통해 대외적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생산성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또한 생명농업이 무농약인지, 저농약은 안 되는지, 벌레가 많은 과수의 경우도 무농약을 적용해야하는 것인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입장에 대해 혼란을 겪고, 구성원들끼리 의견을 합쳐나가는 시기였다.

1998년은 1997년의 사건으로 과거 집행부가 대표와 총무만이 있던 형태에서 벗어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집행부 산하 부서가 생겼다. 또한 98년부터 여성들도 똑같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가진 회원으로 인정되었으며, 임원 역시 남성과 여성의 비례를 맞춰서 뽑게 되었다.

직무
인원
성별
산하 부서 및 하는 일
대표이사
1
무관
농장 전반적으로 관장
총무
1
무관
유통부/회계부/시설관리부
이사
2
영농부/농기계부/취사부/
교육홍보부

2
감사
1


1

Text Box: 표 1>조직 형태




하지만 감사와 유통부장이 동일인물이고, 총무와 이사들도 각 산하 부서의 장을 맡는 경우도 있었다. 솔뫼농장의 경우 인원이 적기 때문에 대부분이 직책을 맡고 있으며, 겹치기도 했던 것이다. 인원이 적고, 집행부가 새로 틀 잡는 첫 해이기 때문에 조직이 이름으로만 분화되었을 뿐 유기적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부와의 연계도 강화되었는데, 청주 가톨릭농민회와 오리넣기 행사를 개최하고, 이평리 179번지 공동 땅에 오리 농법 실시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뫼농장의 수입에 안정성을 보장하고, 소비자 연계운동을 활성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서울 한살림과의 관계가 본격화되었다.

1999년에 이루어진 내부 규약 개정은 이시기의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조직의 정관 등을 모방하여 만든 조항들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항으로 바꾸었다. 이는 유기농 공동체를 설립하고 경영하면서 축적되어 온 경험을 구체적인 조항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조직을 좀 더 튼실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특히 회원의 자격이 생명농업을 1년 이상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지은 것은 1998년부터 재기되어 온 판매와 품질관리에 대한 농장 차원에서의 방침과 규제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건 내부적으로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농산물 출하문제라던가 농사짓는 품질 문제 같은 것들이었지. 그래서 우리 농장 회원들이 기본적으로 이런 정도는 해야 되지 않나 하는 것들을 회원들의 서약서에 담아낸거지. 서약서 같은 경우는 그 내용이 공동체적으로 살고, 지향하고 더불어 사는 거 지향하고, 농사에 있어서 유기농을 철저하게 시행하고, 그런 내용들이야.[6]






이때에 개정 및 신설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목 적
1. 생명 농업의 실천을 통한 자연 살리기
2. 서로 돕고 위하는 공동체 생활
3. 소비자와의 연대 협력
회원의 자격
1. 회원 가입 신청 당시 생명 농업을 1년 이상 실천하고 있는 사람
2. 생명 농업 교육을 2회 이상 이수한 사람
3. 모든 농사는 무농약 이상으로 한다
4. 단 신입회원은 3년부터 모든 농사는 무농약 이상으로 한다
회원 가입
1. 갖추어야 할 서류: 입회원서, 서약서, 교육 확인서, 생명 농업 실천 계획
2. 총회에서 회원의 2/3이상 찬성으로 가입 승인
3. 총회의 승인 후 출자를 납입함으로써 회원 자격 부여
회원의 의무
1. 농장이 결정한 생산품의 품질 기준을 지킬 의무
2. 농장이 결정한 생산품의 가격을 지킬 의무
3. 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생산품을 우선적으로 공급할 의무
4. 생명 농업 관련 교육을 년 1회 이상 이수할 의무
출하원칙
1. 출하할 생산물은 유기농산물 및 무농약 재배로 한다.
2. 회원은 년 초에, 재배할 생산물에 대한 생산 계획서를 제출한다.
3. 회원은 생산 계획서 상의 내용에 변동이 생겼을 때 지체 없이 분과에 통보한다.
4. 회원은 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생산물을 우선적으로 출하한다.
5. 개별적으로 판매하는 생산물은 농장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

Text Box: 표 2 > 솔뫼 농장 내부 규약(개정안)




위의 인터뷰 내용에서 보여 지듯이 농장 재정의 구조 바로잡기와 제대로 된 생산품 품질 및 출하관리를 위하여 집행부가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나서 1999년부터는 유기농을 지키기 위해 가입절차에 조건이 생기고, 회원들은 서약서를 쓰게 되었으며, 생산품 품질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합리적으로 가격을 매겨 출하하기 위하여 품질관리 위원회와 가격 결정 위원회가 생겼다. 품질관리 위원회는 생명 농업 재배 기준을 확립하고, 생산물에 대한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하며, 유기농 농업을 하지 않은 위반자가 생기면 제재 조치를 시행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이전부터 불거져 나온 유기농업에 대한 생산자의 신뢰성 문제가 개인의 도덕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생긴 것으로 보고, 애초에 회원을 뽑을 때부터 생명 농업을 1년 이상 실천해 왔고, 생명 농업 교육을 2회 이상 이수했으며, 신입회원의 경우 3년부터 모든 농사는 무농약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들었다. 또한 조직 내의 감시체계를 확고히 하고,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상설 기구를 만들었다.

총회자료에 의하면 대부분의 부서가 당시에 신설되었고, 특히 품질관리 위원회는 그 필요성에 비해 틀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제대로 운영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8년부터 시작된 한 살림과의 연계로 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품질관리 위원회의 필요성을 더욱 중요해졌으며, 위원회의 활동은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의 생산자에 대한 신뢰성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당시에 유정란이 유통과정에서 상해서 소비자에게 항의가 들어왔는데, 이것을 생산자가 품질관리 위원회에 바로 알리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결한 경우가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소비자에게 사과를 함으로써 해결했던 문제였고, 전체에게도 미안해서 말하기가 어려웠던 것을 위원회에 알림으로써 책임감도 강해지고, 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토양 관리 면에서 화학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했으니 줄이거나,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종자를 선택하는 일 등을 품질관리 위원회에서 하였다.

또한 공동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동일 품목에 대한 평균 가격 결재를 시행하고, 공동체 기금 활용을 통한 재해 보상제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농장 소풍을 농장 회원 및 가톨릭 농민회 회원들과 같이 가고, 농장 회원 전원이 농장 연수를 가기도 했다. 98년 교육 홍보부가 생긴 후로 농장 소풍이나 농장 연수, 농장 단합대회 등 여러 가지 친목모임과 행사가 생겼다.

위에서 약술한 대로 농장 공동기금을 위해 만들었던 공동농장은 자금난의 해결책으로써 매각하게 되었다. 이에 공동기금의 확보를 위해 생산자들은 가구의 농산물 출하한 금액의 5%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 5%중 1%는 생산자 기금으로 1%는 한 살림에서 출자금으로 제하고 실질적으로 농장의 제정이 되는 것은 출하액의 3%이다. 이러한 공동기금에 의해 솔뫼농장은 재정적으로 안정성을 보장받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 공동체성을 위한 모임과 행사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3) 제 3기: (2000년-현재)



회원들 간의 상호 신뢰 회복과 상부상조, 적극적 참여를 통한 마을 공동체적인 솔뫼농장의 모습을 만들어 가자는 목표 아래 공동체성을 강화하고, 외부 활동을 확장시키며, 생산과 유통의 안정성을 한층 더 모색하는 시기이다.

2000년 이후부터는 솔뫼농장의 생산이나 구조가 안정화되었고, 구성원들의 표현에 의하면 ‘자의든 타의든 내외로 규모가 커졌다.’ 이 과정에서 이제까지는 솔뫼농장의 내부에만 신경을 써왔다면 점차적으로 외부와의 연계와 유기농업의 기술과 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농활 오던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솔멩이 공부방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흙살림 연구소에서 벼, 고추, 토마토 등 주요 품목에 대하여 품질인증 실시하여, 신뢰성을 한층 높였다.

이 시기에 특히 주목할 점은 솔뫼농장이 2003년부터 ‘솔뫼 농장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간 솔뫼농장이 유기농업을 지키는 데에 급급한 것에서 벗어나 향후 5년간의 비젼을 세운 것으로 보여 진다.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지역 전체와 함께 하는 일을 확장하고, 농민을 위한 저리 장기 신용 대출 문제를 해결하고, 회원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을 합리적으로 책정하는 등의 조직의 합리적 운영과 농업문제의 직접적 해결 등이다. ‘솔뫼 농장 중장기 발전 계획’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솔뫼농장 가공사업[7]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일단 추진이유는 한살림등 소비단체의 요구가 첫 번째이다. 최근의 웰빙 바람으로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기 때문에 농산물 뿐 아니라 가공품까지 유기농업으로 만들어진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추진이유는 회원들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품목의 확대이다. 그 동안 솔뫼농장의 주 생산물은 쌀, 고추, 토마토, 유정란 등 몇 가지 품목에만 치우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하는 적은 품목들이 그 해 가격이 폭락하거나, 흉작을 하면 가계에 손실이 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잡곡, 야채, 산채 등 회원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어서 가공·원료화 할 수 있는 품목을 재배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불안정성을 줄여나가고자 한다. 세 번째는 지역에서 유기농업 생산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이고, 네 번째는 중, 장기적으로는 가공사업을 통해 번 돈을 회원복지 및 올바른 지역 일에 되돌리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봐 솔뫼농장의 가공사업은 회원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유기농업을 알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역 공동체 전체에 이득을 줄 목적을 가지고 있다. 솔뫼농장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궁극적으로 솔뫼농장의 회원 수를 늘림으로써 세를 확장하고, 규모를 크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 유기농업 기술을 전해주고,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들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가 각 지역에 널리 퍼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적 측면과 가공사업 계획은 잘 부합한다.

실제로 솔뫼농장은 지역의 환경 현안인 채석장 개발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 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에 참가하는 등 여러 가지 환경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해마다 열리는 추수감사절에서 나온 수익은 북한동포 돕기나 세계 기아 돕기에 성금으로 내고 있다.








. 솔뫼농장의 특징

  1. 솔뫼농장 구성원들의 현황 및 특성

번호
이름
성별
주소
생년
농사경력
생명농경력
가입년도
주작목
1
권영매
청천면
1967
11
11
1994
오미자
2
김관식
청천면
1961
7
7
1998
호박, , 오미자
3
황창교
화북면
1963


1994
토마토,
4
김성열
청천면
1960
9
9
1995
유정란,
5
김순귀
청천면
1960
20
18
1994
고추, 토마토
6
김용달
청천면
1964
4
4
2003
천연염색,
7
김의열
청천면
1966
11
11
1994
, 오미자, 호박
8
함창용
청천면
1955
20
5
2002
, 감자
9
김용옥
화북면
1957
27
10
1994
토마토,
10
김철규
화북면
1958
26
11
1994
유정란,
11
누룩
청천면

9
9
1999
고추,
12
민경기
화북면
1963
19
15
1994
유정란,
13
배숙희
청천면
1941
7
7
1999
고추,
14
백승권
청천면
1966
6
3
2002
느타리, , 호박
15
안선경
청천면

6
3
2002
느타리, , 호박
16
이형근
화북면
1958
30
10
1994
, 고추
17
정천복
청천면
1958
25
15
1994
고추, 토마토, 수박

Text Box: 표 3> 2004년 솔뫼농장 구성원 현황

   


<표3>에서 보여 지듯이 솔뫼농장은 12가구, 18명[8]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 중 귀농자의 비율은 절반을 넘는 수준이며 여성들의 회원가입도 점차 늘어 2005년 정지총회 때에는 남성회원들의 배우자 모두가 회원으로 가입할 예정이다. 앞서 말 한대로 솔뫼농장 초기에는 여성들의 회원가입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98년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 이후에 여성들의 회원참여가 활발해졌다. 40대와 50대 초반이 대부분인 연령구성은 여타의 농촌지역에 비해 비교적 젊은 인력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농장 설립 초기에 주축이 되었던 회원들은 거의 모두가 아직도 솔뫼농장에 남아있으며 이들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0여년을 보내는 동안 다소간의 회원 가입과 탈퇴들이 있었지만 조직의 운영이나 방향에 타격을 줄 정도의 회원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솔뫼농장의 기본적인 특성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구분
특징
가치관
  생태주의적 가치관
종교성
  비종교적
생활형태
  가구별. 개별 생활
공동체속성
  농촌 공동체
  유기농생산자 중심의 공동체
지도력
  과거에는 한 개인의 카리스마가 강했으나,
  현재는 집단적 성격이 강함.
유통
  공동출하, 무점포
  (주로 한살림과 가톨릭농민회에 출하)
정부지원
  받은 적 있음
외부성
  개방적
소유형태
  개별 소유를 기본으로
   농장의 건물과 물품은 공동소유
주요생산품
  유정란, 찰벼, 고추, 토마토 등 등.
외부공급물품
  생산물
회원관리
  지속적
의사결정방식
  합의제

Text Box: 표 4> 솔뫼농장의 특성



  2. 솔뫼농장의 공동체적 속성

  1) 구조적인 측면

  

공동체는 하나의 정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형태적으로는 종교적 집단, 소수 집단, 동일 직종의 구성원들, 그리고 특정조직 등을 공동체라 지칭하는 경우도 있으며, 정신적 또는 심리적 연대를 이루고 있는 각종 단체들도 자칭/타칭 공동체로 취급되어 왔다. 또한 지리적으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마을, 읍, 도시 등을 이루고 있는 사회적이며 지역적인 조직체를 공동체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김성균, 2002).

이렇게 공동체라는 용어는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 아니다. 공동체라는 말은 사용상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공동체 속성에 따라서 몇 차원으로 분류를 할 필요성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솔뫼농장의 공동체적 속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유기농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물적 토대에 기반 한 분류이다. 특히 유기농공동체의 경우는 농사를 경제적 토대로 하기 때문에 구성원들 상호간의 토지공동소유 여부와 공동 노동의 양에 따라 공동체성의 수준을 나눌 수 있다.

두 번째는, 공동체의 형태에 기반 한 분류이다. 솔뫼농장은 계획공동체로써 특히 생태적 계획공동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유기농공동체의 물적 토대에 의한 분류는 한경호(2001)에 따르면, 첫 번째로,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 토지의 사적 소유권은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계획과 생각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특정한 과제에 한해서 함께 연대하는 형태가 있다. 물론 이 경우도 농법은 생명농법을 전제로 한다. 생산 및 유통은 개인적으로, 생태적 생활과제는 공동적으로 수행하는 형태이다.

두 번째로, 토지의 사적소유권은 인정하고 생산은 개인적으로, 유통은 공동적으로 하는 경우이다. 유통은 작목반이나 생활협동조합, 농협 등의 조직을 통해 공동적으로 한다. 협동적 노동, 즉 품앗이가 일정정도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아직 전적인 공동생산은 아니다. 부분적인 협동의 단계이다. 이 형태가 농촌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진일보하면서도 현실적인 방법이다.

세 번째로, 토지의 사적소유권은 인정하고 생산, 유통, 분배까지 공동으로 하는 경우이다. 토지, 자본, 기술, 노동 등의 생산요소들을 개인별로 차등을 두어 나중에 분배에 반영한다.

네 번째로, 토지의 공동적 소유 및 생산, 유통, 분배 등 전 과정을 공동적으로 수행하는 형태이다. 이 형태의 공동체는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토지를 공동으로 매입하여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생산, 유통, 분배의 전 과정을 공동적으로 실천해야 가능하다.

한국은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의 경우도 현재 충북 증평의 증평영농조합법인(구, 증평 새마을협업농장) 정도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텐데, 그 곳은 애초부터 토지가 개인소유가 아닌 상황 속에서 노동의 협동화를 기초로 하여 생산과 유통, 그리고 분배를 공동적으로 수행해 왔다.

솔뫼농장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보여 진다. 즉, 생산은 개인적으로, 유통은 공동으로 하고 있다. <표2>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솔뫼농장은 가족농 중심으로 각 개인이 각자 생산을 하고 있지만, 유통은 솔뫼 유기농업 영농조합 설립 이후 솔뫼농장이라는 공동명의로 출하되고 있다. 초기에는 유통의 활로가 개척되지 않아서 출하는 솔뫼농장의 이름으로 했지만, 실질적인 판매는 개별적으로 했다. 하지만 유통이 안정화된 현재는 공동으로 한살림이나 가톨릭농민회 등의 유통조직에 판매를 하고 있다. 토지의 소유권 역시 사적 소유권을 기본으로 하고, 농장 소유의 공동 땅과 건물을 공유하고 있는 형태이다. 그 현황은 아래와 같다.

 
  
공동 토지
 이평리 180-1번지 약 2300평 가량
공동 건물
 소비자의 집, 사무실, 작업장, 창고, 퇴비장, 황토방
공동 농기구
 냉장창고, 발효기, 트랙터, 관리기, 2.5톤 보냉탑차, 1톤 냉동탑차

Text Box: 표 5 > 솔뫼농장의 공동소유물




특히 공동 농기구의 경우 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농가는 대부분 각자 농기구를 사용하므로 실제적으로는 무용지물이다. 심지어 현장조사를 위해 솔뫼농장에 내려갔을 때, 마을 아저씨께 공동으로 사용하는 트럭에 대해서 묻자 안 그래도 요즘 잘 안 보인다고 말씀하셨을 만큼 실제 농사에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공동농기구를 사용하면서 사적 소유가 아니어서 발생하는 관리 소홀에 대한 반성과 해결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공동체성이 공고해 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솔뫼농장은 계획공동체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계획공동체는 정주 공간이 있든 없든, 어떤 공동의 목적이나 이념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를 뜻한다. 계획공동체에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체가 있으며,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의도나 계획이 있다. 계획공동체는 자연발생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김성균, 2002). 이러한 현대적 계획공동체 운동은 지역운동, 협동조합운동, 소(규모)공동체 운동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9]

소공동체운동은 공동체 운동의 보편적인 형태로서 개인적 이해관계의 탈피, 자율적인 인간적 자각 등을 주요 사항으로 다루고 있으며, 강한 의식성을 기반으로 단위 지역 내에서 자급자족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공동체운동은 종교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생태적인 가치에 근거한 소규모공동체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솔뫼농장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보여진다. 솔뫼농장의 전체 구성원 18명(<표1>에서 ‘누룩’이라는 것은 신부님 2명이 속해있는 단체명을 지칭한다.) 중에서 성직자는 3명(누룩, 배숙희)이나 되지만 솔뫼농장은 종교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생태적인 가치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나는 종교랑 전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농장에서 종교 얘기를 해 본적도 없고, 신부 수녀라고 해서 더 배려해주고 고려해주고 이런 것도 없고 다 똑같이 신부님이기 때문에 수녀님이라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농사꾼이기 때문에 신부와 수녀 이전에 농부니까 우리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거고.[10]

 그거는 뭐 종교를 떠나서 그건 모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없고, 지금 모 인제. 판매 면에 있어서는 천주교 쪽으로다가 정신부님이 신경을 많이 쓰셨지. 천주교에 농장식구들이 토요일마다 새벽에 가서 수요일마다 인천 가서 일요일마다 가서 팔고, 모 부산까지 가고 다 다녔지. 가톨릭으로 많이 나가서 종교적인 이유라기 보다는, 정신부님이 신경을 많이 써줬고. 그때까지만 해도 농민회, 가톨릭농민회라는 조직이 유기농의 틀의 붐을 일으키는 시절이었거든 그거랑 맞아떨어진 것도 있고.[11]




위의 인터뷰에서 보여지 듯 두레마을로 대표되는 다른 생태공동체가 종교적 색채가 짙은 것에 비해 솔뫼농장은 종교성보다는 생태주의라는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솔뫼농장에 성직자들의 존재, 특히 정일우 신부님이라는 존재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영향력이 유통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는 것에도 있지만, 구성원들이 신부님들이 계셔서 솔뫼농장이 처음에 가졌던 목표의식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들을 하는 것으로 보아 성직자들이 정신적으로 지지를 해주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솔뫼농장의 구성원들은 대개 이론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유기농업을 시작했다기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생태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약 많이 쳤지. 농약 중독이 되서.. 제초제고 모고 엄청나게 썼지. 인제 내가 농약 중독 되고서 팔 다리가 마비되고 나서 그때부터 이게 아니다. 그땐 모 유기농이라고 안하고 약 안치고 농사 짓겠다 정도지.[12]

도시 살 때부터 한살림 회원 소비자회원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인식을 갖게 되었지. 유기농을 해야겠다는 큰 계기가 있거나 그런거는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도시에서 접하면서 환경문제나 여러 가지 건강 뭐 이런 거 생각하면서 당연히 농약은 안 치겠고 된거지.[13]



이렇듯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와 만든 솔뫼농장은 애초에 이론적인 지향점이 없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생태적 계획공동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생태적 계획공동체는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을 도모하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책임을 근거로 한 생명윤리 및 토지윤리와, 상호의존적인 공생적 삶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경계를 넘어 자연과의 새로운 질서 체계를 구축하고, 생태계의 생존 조건을 배려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특히 이들은 경제적으로 낭비를 줄이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인간 활동을 자제하며, 정치적으로 분권화된 의사결정,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위처럼 정의된 생태적 공동체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유기농산물 생산 및 유통과 관련된 것들이다. 주로 유기농법, 자연농업, 순환농법 등의 형태로 농작물을 생산하여 도시 소비자에게 먹거리를 공급하는 농촌형 공동체와 이러한 농촌형 공동체로부터 먹거리를 공급받아 소비하는 도시형 생활공동체가 있다. 유기농산물 관련 계획공동체는 땅과 생명이 과학농업으로 인해 피폐화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유기농업 중심으로 농촌에서는 생산활동을 하고 도시에서는 주로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와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유기농업을 하면서 생태적 계획공동체로써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산자-소비자 연계로 이루어지는 유기농산물 관련 계획공동체들은 대체로 경제적 잉여 추구의 성격이 강하므로 자신들의 생태적 자각과 이상을 현실사회에 확산시키는 수단으로서는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유기농업 생산을 하는 생산자, 직거래나 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유통 및 소비단체들은 대체로 유사한 이념을 지니고 있으며, 이 이념의 구현을 추구하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이상과 현실이 쉽게 일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14]

 '80년대 초부터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지. 유기농산물 생산에 뛰어든 계기는 처음부터 "대단한 환경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루과이 라운드니 쌀 시장 개방 등의 환경 변화에 발맞추어 "유기농을 하면 생산적이다"라는 주위의 권유로 시작했지. . 그러다가 유기농산물 생산을 하면서 그는 점차 환경 문제에 눈을 뜨고 유기농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거든.[15]



위의 인터뷰처럼 처음부터 환경의식이 있어서 유기농업을 시작한 경우보다는 유기농업의 경제적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구성원들이 많았다. 솔뫼농장 내에서는 생태주의적인 가치관은 없이 최근 웰빙 바람에 힘입어 유기농이 돈이 된다고 생각해서 가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빨리 탈퇴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농공동체를 지속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개인들 각자가 생태적인 가치관을 강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솔뫼농장은 구성원들끼리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고, 규약을 세우고, 생활양식을 친환경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현장조사를 위해 솔뫼농장을 방문했을 때도 소위 유기농업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를 갈 때 자전거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설거지를 할 때 세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상에서의 친환경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9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에는 지리적 생태공동체와 기능적 생태공동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16] 그 배경은 생태위기의 극복이라는 거시적이고도 전지구적인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도 있고, 단지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한 목적을 지닌 것도 많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의 생태공동체가 설립 초기부터 뚜렷한 이념적 배경을 가지고 시작한 경우가 많지 않은 것에 비추어 봤을 때, 운영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집단과 개인의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농장식구들만나면 즐거워. 속사정도 털어놓을 수 있고,,
처음에는 퇴비 같은 거 정보 교환도 많이 되고 그랬는데, 지금은 농사자체보다도 생활에 관련한 것들도 바꿔나가고 있지. 세제안쓰기, 미원안먹기. 농장식구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그런거야. 유기농이 모든 생명을 다 살린다, 농약 화학비료 안쓰니까 땅살리지, 좋은 먹거리 먹으니까 생명살리지, 물오염안시켜서 물살리지.

처음부터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미원안먹기만 해도 5,6년 걸렸어. 쉬울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고. 끊어야 하는게 당연한데도 어려워. 비누도 한 살림에서 나온 비누로 쓰려고 해도, 마음은 있어도 몸이 써야 쓰는 거거든. 그런게 완전히 해소되는게 힘들어. 농장은 계속 그런걸 추구해 왔지.
유기농에만 국한된게 아니야. 서로 큰틀에서 공생하는 거지. 한 살림이나 생협이나 가톨릭 농민회 회원이 천만명 이천만명 된다면 환경은 오염될 수 가 없어. 우리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함부로 할 수가 없거든.[17]

  유기농 공동체가 안전한 먹거리 확보에 머무르거나,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생태위기의 극복이라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려면 개개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우선 시 되야 하지만, 서로를 지지해주는 집단의 역할 역시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생활 양식을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내 구성원들은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2) 정서적 측면
  

앞서 보았듯 솔뫼농장의 구조와 운영방식은 함께 살고 함께 먹는 일명 ‘밥상공동체’라 불리는 공동체의 모습과는 거리를 가진다. 그러나 농장회원들이 정서적으로 느끼는 공동체성은 실제 구조에 비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실재하는 구조에 비해 더 큰 정서적으로 더 큰 공동체성을 느끼는 것은 솔뫼농장의 가치지향적 성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솔뫼농장 회원들의 경우 경제적 이익보다는 자신의 농약중독, 생명의 가치 등의 이유로 유기농업을 선택했다. 이것은 다른 유기농 관련 조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정농회 초대 회장을 지낸 오재길 옹은 ‘유기농업을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한 농법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자체, 문명 자체를 바꾸는 거창한 사업이다’라고 말했다(장길섭, 1976, 재인용). 실상 유기농업은 기존농업에 비해 더 많은 노력(시간과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반면 보상이 불확실하고 많은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농업을 선택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 새로운 사회관계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삶의 철학이 전재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유기농산물이 각광받고 있음에도 유기농이 일반적인 생산방식이 되기 어려운 것도 그러한 이유가 클 것이라 생각된다. 유기농을 하며 힘든 과정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이 회원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기본적인 가치에서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실제적 구조가 미약하더라도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솔뫼농장은 전통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일종의 마을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꼭 같이 농사를 짓는다는 건 아니더라도, 큰 틀에서의 공동체는 돼야 한다는 거지. 마을단위 공동체는 그전에도 다 형성 돼있었잖아. 이 공동체가 깨진 건 기계 때문이거든. 예전에는 품앗이 형태로 공동체가 있고, 그게 아니면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던 건데, 기계가 다 깨버린거야. 나는 공동체가 깨지면 안된다고 생각해. 다들 바르게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만 아는 개인주의 같은 게 다 있거든.[18]



위 인터뷰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솔뫼농장은 느슨한 의미의 마을공동체를 지향하지만 그것이 과거로의 회귀는 아니다. 그것이 마을 수준에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소단위의 마을공동체들이 여러 개 모인 연합 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큰 공동체’로 인식될 수도 있는 연합 체제는 솔뫼농장의 개방적 성격을 보여준다. 솔뫼농장의 개방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후에 좀 더 논의하기로 하겠다.

같은 가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 말고도, 솔뫼농장의 공동체성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요인이 있다. 바로 유기농업이 갖는 성격이 그것이다. 유기농업은 특성상 지력향상과 제초작업이 작업과정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내 논만이 아니라 인근 농민들의 논밭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지역의 집단화이다(오미란, 2004). 또한 제초작업이나 퇴비 활용, 유기농을 중단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유혹으로부터 유기농법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형성하고 함께 하는 것은 유기농업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솔뫼농장의 공동체성이 언제나 일률적으로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정서적으로 느끼는 ‘우리는 공동체다’라는 생각이 그대로였다 할지라도 솔뫼농장 회원들이 함께하는 부분들은 변화해 왔다. 먼저 농장차원의 행사나 소비자와의 만남, 농장의 새로운 사업 구상 등으로 회원들이 함께하는 활동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솔뫼농장 회원으로써 대외적인 활동을 벌이고 외부사람을 만날 일들이 늘어나면서 회원들은 ‘솔뫼농장 회원’이라는 정체성을 조금씩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농업과 관련된 일이긴 하지만 이것이 노동력을 투입하여 농사를 짓는 농사일 그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외부적인 부분에서 ‘솔뫼농장’이라는 공동체를 찾는 반면에, 농사일과 관련된 부분은 전보다 함께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굵직굵직한 것들은 다같이 도와주고 했었지. 누가 고추 심는다고 하면 다같이 가서 해주고.. 지금은 하우스를 세우는 일 같은 큰 틀에서는 그게 되는데, 인원이 많아서 그런건지 어쩐지 다같이 도와주는 건 잘 안되더라고. 이제는 거의 각자하지. 큰 일들은 도와주는데 한 2-3년 전부터 작은 일은 도와주는 게 없어졌어. 옛날에는 모두가 함께 하는 게 솔뫼농장의 자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골에서도 자꾸 공동체가 깨져가는 거지.[19]

  현실적으로 솔뫼농장 회원들의 토지는 각기 분산되어 있어 집단적 영농을 하는 것이 힘들다. 주위의 토지들은 관행농을 하는 토지도 많아, 그럴 경우 옆 토지 주인에게 회원들의 토지 가까이에는 농약을 치지 않도록 부탁해야 한다. 또한 위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회원들은 큰 농사일은 서로 돕지만, 일상적인 농사는 회원 각자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뫼농장은 비록 느슨한 형태일지라도 공동체이며 앞으로도 공동체를 지향할 것이라는 것이 솔뫼농장의 생각이다. 그만큼 유기농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나아가 농업[20]을 해나감에 있어서 공동체 의식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3. 유통의 변화



기존의 농업생간과 유통체계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격리, 도시와 농촌의 분리, 소극적 소비자로서의 대중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먹거리가 지니고 있는 몸, 건강, 생명 등의 의미는 전혀 반영하지 않고 단순한 시장경제의 경쟁논리와 상품성에 의존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대량생산-대량 소비적 농산물 식품 체계의 경직성과 규모의 경제가 초래하는 ‘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효율성과 낮은 가격을 근거로 한 마케팅이 건강과 농식품의 안전의 문제를 간과한다는 비판적 인식이 증대되었다(김철규, 2003). 이러한 비판은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고품질 식품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였고, 최근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웰빙의 트렌드화에 힘입어 소비자와 직접적 대면 판매에 의존하던 유기농산물은 기존의 대형 마트에서도 거래되는 등 보편화되고 있다. 또한 유기농산물 시장은 정부의 친환경 농업정책 실시 이후 다변화되고 있는데 초기 유기농산물 시장은 신뢰에 기초한 대면적 판매에서 생산자의 조직화와 더불어 소비자의 조직화를 통한 조직적 판매로 변화 과정을 거쳐서 최근에는 개별생산자와 직거래, 인터넷판매,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을 통한 상업적 판매방식과 농촌문화, 생태체험[21], 관광을 결합한 패키지 판매 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 전문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상품에 대한 신뢰의 근거나 구매방식도 차츰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다(오미란, 2004).

솔뫼농장의 역사를 볼 때, 솔뫼농장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조직 내적 관계만이 아니라 조직 외부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부적인 요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유통이다. 유기농산물 시장이 열악했을 때는 생산자들 중에서도 유기농업에 대한 가치를 확고히 가지고 있는 성원들만이 유기농업이라는 생산방식을 선택한다. 이 시기의 소비자와의 관계는 상품의 교환이 아닌 유기농업, 생명존중이라는 가치를 매개로 상품판매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유기농업 시장이 확대되면 조직에 우호적인 구성원들이 유기농업 생산에 동참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기농 공동체가 목표로 삼는 생태적인 가치가 흐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솔뫼농장의 구성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유기농은 돈을 뛰어들면 안되는 건데, 자꾸 돈을 보고 뛰어드는 사람이 생긴 다는 거지. 돈 이라는 게 영물이라 돈으로 뭐든지 할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돈을 보고 띠어드는 사람들 때문에 유기농의 이미지 자체가 흐려 질까봐 걱정되는 면도 있지.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평가 받는게  아니라 이름만 유기농이거나 로비를 해서 판매를 한다거나,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지.
지역의 울타리 속에서 서로 논의하고 공감대를 가져가면서 유기농공동체들이 늘어나는게 좋을 것 같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유기농을 시작한다고 하면 자칫 돈만 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22]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소비자들의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수요, 그리고 정부의 친환경 농업정책에 의해 유기농업 소비시장이 경쟁적 시장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유기농산물 생산조직에서 유통의 영역이 비대해지게 되고, 생산자들 역시 이러한 유기농업 소비시장에 맞게 생산을 조절하거나 전환한다.

소비자들은 과거처럼 유기농산물에 대한 상품의 신뢰를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기보다는 친환경농산물 품질인증제를 통해 인증된 상품인 제도화, 규격화된 표준에 의존하게 되고 상품구매에 있어서도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직거래, 전문매장, 인터넷 구매 등 다양한 통로를 활용하고 있다.

솔뫼농장 역시 2001년부터 흙살림을 통해 유기농산물 품질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증을 해주는 쪽과 받는 쪽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는 농산물의 품질 경쟁력 제고와 소비자의 신뢰 확보, 환경보전이라는 3가지 목적 달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다. 또한 소비자들의 불안 요인을 해소함으로써 유기농산물 시장의 확대를 가져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태도 변화에 의해서도 유기농산물 유통의 경쟁적 시장질서는 강화되고, 생산자-소비자의 생명중심 가치체계의 공유라는 목표로 연결된 관계를 축소시킬 수 있다.

특히 유기농산물 생산의 특징인 소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생산의 불안정성과 농업이 기후나 토양에 의해 작황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 의해서 때로 소비자와 갈등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비자와 갈등요인은 주로 상품의 품절이나 시장가격과의 차이, 자연재해에 의한 제품의 품질저하 등의 요인으로 인해 나타난다. 이는 유기농업의 사회관계의 목표인 생명 중심 가치체계의 공유보다는 소비자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식의 하나로 비싸지만 질 좋은 고품질상품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상품 구매동기가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오미란, 2004).

현행 유기농산물 유통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째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둘째는 생산자와 직거래를 매개하는 조직에 의한 판매, 셋째는 백화점 및 대형 할인점 슈퍼, 전문직판장을 통한 판매이다. 이 중에서 솔뫼농장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유통방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유기농산물의 경쟁적 시장질서에 포섭되어 대형매장에 출하를 하고 있지 않고, 주로 한살림을 통해 출하하고 있다.

한살림에 의한 판매는 솔뫼농장에 유통의 안정화를 가져와 개별 농가에게 유기농산물 생산에 대한 부담을 줄여줬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솔뫼농장은 처음에는 개별 판매 형식을 띄다가 1998년을 기점으로 한살림을 통해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유기농업의 경우 유통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어떤 경로를 통해 판매를 안정화시키는 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나는 뭐 2~3명하고 어울려서 집집이 하러 다니고, 내 개인적인 연고 따라서 팔기도 하고.. 시내 아파트 같은 데 나가서 노점도 하고.. 그러다가 한살림이라는 생협조직과의 연대를 많이 좋아졌다고 할까, 관계가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활로 부분이 많이 해소가 되었지. 굳이 밖에 나가서 집판을 안하고 안 팔아도 팔 수 있을 만큼. 내가 농사지은 것을. 그 이전에는 막혀있었던 거고 그러니까 판매가 어려웠지 매 주 서울로 인천으로 팔러 다녔지. 그때는 진짜 농사만 했으면 판매는 진짜 누가 좀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많았지. 너무 힘들었으니까. 대량으로 농사를 지은 것을 소비할 만한 곳을 구하지 못했으니까.[23]

  위에서 보여 지듯이 한살림과 관련을 맺기 전에는 대부분 혼자서 또는 2~3명이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유기농업을 한다고 홍보를 하고, 아파트에 가서 노점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중간조직과 연계하지 않을 경우에, 소비자들은 유기농업에 대한 신뢰성을 갖을 수 없는 반면 가격은 상대적으로 관행농 생산물 보다 비싸므로 쉽사리 사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개인적인 연고를 판매처로 상정하거나, 아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통해 성당에 판매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는 우선 농사와 판매를 본인 스스로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너무 힘들고, 생산물이 얼마나 팔릴지 모르기 때문에 생산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이전에는 한살림으로 나갔는데 일부만 조금만 나갔던 건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대량소비가 대량 출하가 가능해진거지. 가톨릭농민회에도 출하하고.
아무래도 안정적인 소비를 할 수 있으니까, 생산자가 원하는 힘 대로 할 수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판매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많이 심을 수가 없잖아. 직접 발로 뛰지 않아도 팔 수 있는 장이 생기는 거니까. 더 근본적으로 농사를 내 힘에 맞게 규모할 수 있다는 거. 아무래도 전체적인 소득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 한살림이 없으면 내가 호박을 1000평을 심을 수 있겠냐는 거야. 호박 1000 2000개를 어따 팔아. 직접 팔러 다니면 일주일에 한번씩 간다고 해도 한 달 내내 두 달 내내다 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다해. 그걸 못하는 건데 한살림이 있기 때문에 내가 심을 수가 있는 거지. 그러니 당연히 소득은 높아진다고 봐야지. [24]

  한살림으로의 유통 경로 변화는 문화적인 면과 솔뫼농장의 공동체성을 공고히 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한살림은 단순히 경제적인 판매의 측면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다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연대, 도농관계의 발전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한살림의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의식 수준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살림의 회원들은 단순히 안전한 먹거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농업이 전체 생태계를 보존하고, 농업에 있어서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생산물만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직접 솔뫼농장에서 개최하는 소비자와의 행사에도 참여하고, 시범농장에서 농작물을 키우기도 한다.
이러한 한살림의 측면은 솔뫼농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들고, 신념이 없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유기농업을 심정적으로 지지해주고,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농촌에 대한 이해나 농민에 대한 생각이 많이 교육된 사람들이야 소비자라고 해서 단순히 물건 사주고 그런 개념이 아니라 농민들이 우리가 어거지처럼 한살림을 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전부터 했던 사람들은 진자 그 사람들이 좋아서 그렇게 교류하는 거야. 그런  소비자들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 사람들도 우리 농장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러지만 농장 회원들도 내가 볼 때는 많이 변했거든.[25]


  4. 솔뫼농장의 개방성

  1) 농활 및 지역 공부방 활동

  솔뫼농장은 1997년 농활 및 생산지 견학을 본격화 한 이후 이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실상 대학생과 함께 하는 농민 학생 연대 활동이나 기차길 옆 공부방 등의 단체에서 오는 캠프는 솔뫼농장에서 주관하는 행사라고는 볼 수 없다. 그들 자체가 각자에 알맞은 내용과 일정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뫼농장은 소비자의 집이라는 이름의 농장 건물을 이들에게 제공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많은 부분을 협력한다. 여기서 솔뫼농장이 외부에 대해 열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건이 되는 한 외부와의 교류를 확대하고 그것을 유지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든 이러한 외부활동을 통해 농장회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고 외부사람들은 솔뫼농장의 문화나 농촌 자체를 경험하는 장을 만날 수 있다.
  솔뫼농장의 개방성 중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솔멩이 공부방이다. 이것은 솔뫼농장으로 농활을 오던 대학생들이 농활 대신 지역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하게되면서 시작되었다. 2001 1월부터 여름, 겨울 방학에 각각 2~1달 정도로 진행된 솔멩이 공부방은 벌써 10회 째를 맞이하고 있다. 솔멩이 공부방은 솔뫼농장 회원과 그 가족에게만 국한된 것인 아니라 주변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그곳에서 지역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이용한 만들기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것들이다. 솔뫼농장은 솔멩이 공부방 기간동안 농장의 시설을 제공하며 1년에 두 번 각 50만원씩의 지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솔뫼농장의 솔멩이 공부방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도시화를 겪은 이후, 농촌에서 더 이상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아이들의 숫자가 감소함에 따라 초·중등학교도 폐교 혹은 분교가 된다. 이것은 다시 아이들의 숫자를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농촌의 고령화, 자녀 교육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사실처럼 되어버렸다. 이에 비해 솔뫼농장은 그 구성원의 연령층도 비교적 젊으며 귀농한 회원들도 절반 가까이 된다. 젊은 귀농자가 많다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뫼농장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농촌의 이러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솔뫼농장의 회의록 곳곳에서는 공부방에 대한 논의들이 눈에 띈다. 물론 공부방의 구체적인 진행은 교사로 내려오는 대학생들이 준비하지만, 그에 대한 농장차원의 지원에 힘써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공부방같은 것도 우리(농장)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어차피 대를 이어가지 않을 거면 그냥 우리만 잘하면 돼. 남한테 빚이나 안 지고 그냥 살면 돼지. 근데 그건 아니라는 거야. 앞으로 후대를 위해서라도 존속이 되야 하는 거거든. 대를 이어줘서 아이들이 즐겁게 농사를 지을 토대를 만들어줘야지. 농사 아무도 안 지려고 하면 어떻 할꺼야.[26]

  인터뷰에서도 보여 지듯이 솔뫼농장의 지역 공부방에 대한 지원은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쓰노 유킨토(2003)는 전통적인 소농에 대해 "오랜 세월에 걸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농지를 만들고, 그 토지에서 열심히 작물을 재배해서 얻어내는 적은 잉여생산이 자손의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농사법을 자손 대대로 이어온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즉 농사꾼의 전제로 자손 대대로라는 전제를 붙인 것이다. 이것은 위의 인터뷰 내용과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된다. 다만 쓰노의 자손이라는 개념이 직계자손과 가깝다면, 인터뷰 중의 자손은 좀 더 넓은 의미의 미래세대라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이렇게 솔뫼농장은 여러 활동에 대한 개방성을 가짐으로써 자신들의 생각들을 현실화하고 있다. 





  2) 소비자와의 네트워크

  솔뫼농장이 1996년 공동부지를 매입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은 직후 했던 일 중 하나가 소비자의 집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솔뫼농장을 찾은 소비자들을 위해 쓰여지고, 앞서 보았듯 이 소비자의 집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농장회원들끼리 회의를 하거나 모임을 갖을 때에도 이곳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솔뫼농장은 한살림 도봉지구 소비자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한살림, 가톨릭 농민회 등의 회원과도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유통의 변화에서 본 것처럼 유기농업에 있어서 소비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소비가 담보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생산·판매 활동에 너무 많은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뫼농장의 소비자와의 네트워크는 유통이나 판매라는 경제적인 부분 이상의 것이 있어 보인다.
  소비자와의 네트워크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현장 방문공동 노동이다. 예컨대 소비자들이 솔뫼농장을 방문하고, 함께 모내기 등을 하는 경우 인 것이다.  사실 공동 모내기를 한다고 해도 소비자들의 역할은 그지 크지 않다. 일이 미숙하기 때문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방문·공동노동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농장에 왜 소비자들을 모시고 오냐면, 직접 눈으로 보고 그 자리에서 신뢰도를 갖자는 거거든. 마음에서 마음으로 와 닿는, 내가 먹는 걸 만들어 주는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농사를 짓는 지를 알아야지만이 되거든. 어떤 잘못된 상황이 생겼을 때라도 내가 봤을 때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여,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해줄 수 있잖아. 이런 인간관계,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면 유기농이고 농사고가 무슨 의미가 있어. 유기농 제품이 벌레를 좀 먹었다고 해도 가서 보니까 정말 열심히 농사짓더라 하면 먹어주거든. 서로 관계를 맺고 대화도 나눠보고, 어울려 놀기도 하고 이런게 되야지.[27]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김철규 회원은 현장 방문이 실질적인 노동력의 도움은 되지 않아도 소비자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남게 하는 효과는 갖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결국 유기농산물이라는 제품은 판매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와의 사회적 관계를 지속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특이 한 점은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유기농산물을 주는 것이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유기농산물을 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돈이 유기농 생산자에게 오고 유기농산물이 소비자에게 가는 것이 마치 어느 정도의 의무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김성균(2001)은 이와 관련해 화폐가 농민에게 전달되는 호혜적 의무의 상징으로 규정되는 것이며, 유기농업의 지속을 도모하게 하는 현실적 자원으로 규정되는 것이라 하였다.
  소비자들은 소비자대로 현장 방문을 통한 경험이 솔뫼농장에 대한 친밀도 높이게 된다 또한 현장에서 농사짓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유기농산물, 특히 솔뫼농장의 유기농산물을 조금 더 특별하게 느끼게 된다.

하룻밤 자고 올라가는거긴 하지만, 그래도 좋죠 뭐. 아파트에 살아서 땅보고 나무보고 할 일도 거의 없었는데, 아이들도 좋아하고. 사실 저희 가족은 이런 행사에 처음 와봤거든요. 애들이 잘 놀까 싶었는데 맨발로 뛰어다니면서 좋아하더라구요. 나중에 저희 식구들이 먹을 고추모종을 직접 심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구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그냥 먹을 땐 별로 생각 안했었는데, 아저씨들 너무 고생하길 것 같아요. 전 세시간 일하고도 허리가 쑤시던데.. [28]

  솔뫼농장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네트워크 구성에 있어 중요한 다른 한 가지는 매년 가을에 열리는 추수감사제이다. 솔뫼농장은 2001년 가을부터 추수감사제를 열어 지금까지 총 4회를 열었다. 비록 농장의 추구감사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2001년이지만 추수감사제를 열고자 하는 논의는 1990년대 말부터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추수감사제가 열리면 소비자들은 솔뫼농장에서 모여 농장에서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함께 한다. 이 행사는 농업에 있어서의 특별한 의미도 가지며 일년에 한번 있는 것이기 때문에 농장회원과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솔뫼농장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입·판매의 관계를 넘어 친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자주, 깊은 만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행사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한번이라도 솔뫼농장과 농장의 수확물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여했다는 느낌을 주게 만든다. 노력을 투여했다는 느낌은 위의 소비자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추수감사제에서의 노력은 추수감사제의 상징인 결실과 함께 하면서 더 큰 의미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단순히 구매자가 아니라 참여자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관식 회원 또한 소비자는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을 같이 한다.

한살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한살림은 그냥 유통단체가 아니야. 내가 팔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거든. 도시와 농촌의 생명을 살리자는, 일종의 생명사상에 기초해서 철학적인 운동에서 출발한 거기 때문에 당연히 도-농 교류 같은 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본으로, 기본적인 밑그림으로 들어가 있는 거지. 한살림은 주인이 소비자 중심, 생산자 중심도 아니고 생산자, 소비자, 실무자가 거의 동등한 상등관계.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뀌고 하면서 변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거의 그런 위치를 점하고 있고, 소비자들도 상당히 의식이 높다랄까 교육을 많이 받은..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거든.[29]
   2004년 추수감사제와 2005 5월 솔뫼농장에 현장방문을 온 도시 소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은 나들이같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한살림의 회원이라거나 솔뫼농장 농산물의 소비자이라는 점만으로도 그 일대 지역에 연고가 닿는 것으로 인식한 듯 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대개 자녀를 동반했고, 일요일 하루를 농촌에서 즐기면서 아이들에게 농촌 경험과 자연에 대한 경험을 시키고자 했다. 앞서 말한 공동모내기 같은 일들은 노동력의 투여라기보다는 새로운 체험의 기회이며, 추수감사제는 하루 여가가 된다. 이러한 체험들이 늘어나고 지속적으로 솔뫼농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은 농장 회원들과 좀더 신뢰감 있고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쌓아 갈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대로, 솔뫼농장과 소비자들의 네크워크는 그저 생산자와 생산물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가 서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30] 도시 소비자들도 나들이하듯 농촌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함께 교류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솔뫼농장이 지속적으로 소비자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려 노력하는 이유인 동시에 그 결과일 것이다.


. 맺음말


솔뫼농장이 언제나 농장의 지향성으로 내세우는 것은 ‘생명, 더불어 삶’ 등이다. 이것은 농장회원들 간의 관계뿐 아니라 소비자와의 관계, 지역의 관행농가와의 관계 또한 포함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솔뫼농장은 유기농업을 하는 몇몇 농민들의 친목모임의 형식으로 출발하여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10여년을 유지하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격어 왔다. 초기에는 농장 내부의 의사결정과 농산물 출하 및 품질 문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유기농업 자체가 노동력 투입 대비 생산성이 높지 않은 데다,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 쉽지 않아 그 어려움은 더욱 깊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8년 집행부들의 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의 설립을 통해 솔뫼농장은 조직의 문제를 그 조직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시정하고 개혁하려 노력했다. 이것은 솔뫼농장 회원들이 설립 초기부터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려는 생각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함께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농장운영에 있어서의 난관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내부의 문제 뿐 아니라 솔뫼농장의 형성과 변화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농업 정책과 유기농산물 시장의 변화, 즉 유통의 변화이다. 농업 정책의 변화로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음으로써, 유기농 생산조직의 큰 어려움인 자금난을 다소나마 완화 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자금의 활용은 솔뫼농장이 새롭게 준비 중인 가공사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생산물의 소비를 확보하고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솔뫼농장의 가공사업은 충분히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이것은 농장 회원 이외의 농민들에게 유기농을 전파시킬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문제제기에서 밝혔듯 유기농 생산조직이 새로운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유기농업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솔뫼농장은 가공사업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유기농업의 확산까지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유통의 변화는 솔뫼농장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 농산물을 내다팔 곳이 없으면 농업을 계속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솔뫼농장은 주로 한살림, 가톨릭 농민회을 통해 생산물들을 판매하는데,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솔뫼농장과 소비자들의 관계이다. 솔뫼농장은 소비자들과 단순히 농산물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관계에 머물기보다는 조금 더 깊은 신뢰와 유대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특히 소비자들의 현장방문, 공동 노동, 추수감사제 등은 솔뫼농장의 이러한 요구를 실현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솔뫼농장이 끊임없는 소비자들과 신뢰의 관계를 구축하고 지역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지원하고 새로 시작하는 다른 유기농 생산조직을 돕는 것은, 생명중심의 가치체계를 확산하고 농업의 지속성을 담보해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솔뫼농장이 추구하는 이러한 것들은 농산물을 살리고 농민과 도시민을 살리고 나아가서는 황폐화된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뫼농장 내부에서도 농장 설립 초기에 비해서는 품앗이의 문화가 약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구성원들이 느끼는 정서적 공동체성은 아직도 확고하다. 솔뫼농장 회원들의 말처럼 각 지역에 알맞은 소단위 공동체가 생겨나고 이들이 연대할 수 있다면 이것은 미래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솔뫼농장과 같은 유기농 생산조직이 미래 농업의 대안으로 좀 더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일단 유기농산물 시장이 무차별적인 시장경쟁 체제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오미란, 2004). 현재도 백화점이나 고급 매장에 유기농산물이 유행처럼 번지며 시장경쟁 체제로 흡수 되고 있는데, 이것이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농촌역시 생명의 가치나 순환논리 없이 시장으로만 변질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유기농 생산조직 또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기호와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생산해야한다. 솔뫼농장의 경우도 주로 제배하는 쌀, 토마토, 호박, 유정란 등 몇몇 생산물에만 치우쳐 있다. 마지막으로 솔뫼농장을 비롯한 유기농 생산조직들의 과제는 소비자와의 네트워크, 여러 지역의 공동체 간에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네트워크는 농업이나 유통, 소비 등 일면적 측면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궁극적으로는 ‘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솔뫼농장은 일반적인 농가에 비해 가치지향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유기농업의 전파·계승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있으며 생태적 가치에 기반 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추구함으로써 한국의 농업, 나아가 사회 체제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하겠다.


《 참고문헌 》





구자인, 1996, “공동체 운동의 조류와 시사점” 한국도시연구소(엮),『도시서민의 삶과 주민운동』

김성균, 1994, “지역공동체 운동과 생태위기의 극복: 두레마을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성균, 2002, “생태공동체의 이론과 실천”『지역사회 개발연구』, 27호

김철규, 2003, “세계화와 한국의 농업문제”『농촌사회학회 2003 자료집』

박병상, 1999,『참여로 여는 생태 공동체』, 아르케

송명규, 2000, “생태마을 운동의 세계적 동향: 국내외 주요 생태마을을 중심으로”『지역사회개발연구』 제24집 2호

심운정, 2001, “유기농 문화공도체의 형성과 발전과정- 전남 장성 한마음공동체를 중심으로”, 목포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오미란, 2004, “유기농생산조직의 형성과 변화- 장성 한마음공동체를 중심으로” 전남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유정길, 1993, “생태적 지속 가능한 사회로서『계획공동체』의 모색”,『한국불교사회연구소』, 겨울호

조경만, 1999, “농촌-도시의 공동체적 유대와 갈등” 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현대사회과학연구』, 제9권

차명제, 2001, “생태공동체의 한국적 구성”『고려대학교 제 80회 사회학 콜로키움 발표문』

한경호, 2001, “친환경농업과 생태공동체”『생태마을 조성을 위한 토론회 발표문』, 횡성환경운동연합

료스케 하나후사, 1997,『새로운 세상을 여는 공동체 이야기』, 내일을 여는 책

쓰노 유킨토, 2003, 『소농,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녹색평론사

《 참고사이트 》

농림부 Text Box: http://www.maf.go.kr/
솔사모 Text Box: http://www.solsamo.net
솔뫼농장 Text Box: http://www.solmoefarm.com
생태공동체 운동센터 Text Box: http://www.commune.or.kr/comm/

《 표 목차 》

1> 솔뫼농장의 조직형태
2> 솔뫼농장 내부 규약 (개정안)
3> 2005년 솔뫼농장 구성원 현황
4> 솔뫼농장의 특성
5> 솔뫼농장의 공동 소유물







[1] 1990년 ‘우리쌀 지키기 국민운동 본부 결성’, 1991 ‘우리농산물 지키기 전국 국민운동 본부 결성’ 등 농업문제가 국민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시기이다.


[2] 유기농산물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운동은 한사람(1986), 여성민우회(1987)를 출발로 하여 1990년대 초반 각 대도시 지역에서 소비자생활엽동조합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다(김용우, 2001, 재인용).


[3] 헙업의 형태는 작업의 협업, 경영의 협업, 생활의 협업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작업의 협업은 노동력을 중심으로 일정 작업과정만 협동으로 하고 개별경영은 그대로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 둘째 경영의 협업은 농업을 공동으로 경영하는 것, 셋째, 생활의 협업은 경영협업과 소비생활까지 공동으로 하는 것으로 구분된다(조성백·최민호, 1996).


[4] ※법인등록번호 : 154471 - 0000182

※사업자 등록번호 : 315 - 82 - 03749




[5] 이때 지원 받은 공동건물 및 기구들의 내역이 아래와 같다.

-건물 : 사무실, 작업장, 창고, 퇴비장 각 1동

-설비 : 냉장창고, 발효기 각 1대

-농기계 : 트랙터 55마력, 관리기 각1대

-차량 : 2.5톤 보냉탑차, 1톤 냉동탑차 각 1대


[6] 김관식 (44세)


[7] 가공사업 검토 중인 품목은, 각종 가루(미숫가루, 찹쌀가루, 선식, 생식, 엿기름), 조청류(찹쌀, 옥수수, 호박 등), 떡류(떡국떡, 떡볶이떡, 조랭이떡), 반찬류(각종 부각, 지고추 절임), 메주, 메주가루, 효소 및 발효음료류, 과자류(한과, 뻥튀기 등)이다.


[8] 표에서의 번호가 17번까지인 것은 2명의 신부가 함께 사는 공동체인 ‘누룩’을 하나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9] 구자인, “공동체 운동의 조류와 시사점” 한국도시연구소(엮), 『도시서민의 삶과 주민운동』, 발언, 1996, pp. 222-232


[10] 김관식 (44세)


[11] 김철규(48세)


[12] 깁철규 (48세)


[13] 김관식 (44세)


[14] 조경만, “농촌-도시의 공동체적 유대와 갈등” 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현대사회과학연구』, 제9권, 1999년, pp.128-129


[15] 정천복(49세)


[16] 지리적 생태공동체란 일정한 지리적 영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태공동체로서, 적정한 인구규모, 다양한 생활요소가 갖추어진 주거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공동체를 의미한다.

기능적 생태공동체란 특정 이념과 가치의 추구를 위해 설립된 공동체로서, 구성원들이 일정 공간에 함께 거주하지는 않고 다만 생활의 일부 영역을 공동체 동지들과 함께 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17] 김철규(48세)


[18] 김철규(48세)


[19] 김철규(48세)


[20] 여기서의 농업은 농산물을 대량 생산하는 기업농업은 포함하지 않는다.


[21] 솔뫼농장 차원에서는 아니지만, 솔뫼농장의 한 회원은 ‘가족학교 바탕’이라는 생태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천연염색과 손두부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22] 김철규 (48세)


[23] 김관식 (44세)


[24] 김관식 (44세)


[25] 김관식 (44세)




[26] 김철규(48세)


[27] 김철규(48세)


[28] 2005년 5월 14일 솔뫼농장 소비자 현장방문. 여성 소비자 인터뷰(37세, 자영업).


[29] 김관식(44세)


[30] 이것은 작년 한 살림의 수도분과 가격결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소비자 대표가 단위당 1만원을 제시했음에도, 생산자 측에서 “요즘 경기가 어렵다”며 9천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1,2,3) - 에큐메니안 「농촌과 목회」49호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1) - 에큐메니안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1)한국생명농업의 현황과 과제
안재학 목사 | 승인 2011.04.29 09:45


1. 한국농촌지역의 상황과 국내 농업

한국의 농촌지역의 인구는 196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농촌의 젊은 세대들은 도시로 자신과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도시로 직업을 찾아서 나서는 일들이 빈번하였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의 농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70%에 달했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이 변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의 농촌지역은 많은 변화들이 있어왔다. 이러한 변화들은 한국의 농촌의 풍경들을 바꾸어 놓았다. 인구 통계 측면에서 보면 농촌의 남아 있는 이들은 노인 연령층이 대부분인 반면에 젊은 세대들은 도시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산업화로 인해 이농현상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농촌의 노동력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간 인력에 의지하던 많은 농사의 일들이 파종기나 수확기에 기계나 또 다른 기술들로 대체 되었다. 심지어 농경지에는 사람들보다도 기계들이 더 많이 보이는 진풍경까지 낳고 있는 현실을 목격한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농민들이 그들보다 잘 산다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옳은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환율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을뿐더러 한국농민들의 대다수들은 그들이 일 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보다도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농민들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개별농가는 각각의 어려움에 봉착하여 있다. 특히 WTO 법안이 국회를 통과된 지 오래되었고, 농기계와 농약 비료 등을 구입하는데 있어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정부나 농협에게 많은 대출을 받고 있다. 심지어 종자를 구입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기관으로부터 저리로 대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변제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게다가 한국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은 농업을 포기하고 국내총생산량(GDP)을 높이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에 그 어려움이 더하다고 할 것이다.

한국 농업의 두드러진 특색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농가가 적은 경작 면적을 가진 가족농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농민들의 평균연령이 고령화됨으로 위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전체 농업인구에서 60대 이상의 농민의 비율은 90년대 17.8%에서 2002년 38.2%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도시와 농촌지역의 소득의 격차를 더욱더 가속화시켰다. 특히나 자유무역과 같은 농업환경의 빠른 변화와 식품소비 패턴의 변화들은 한국 농업에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한국의 식품 소비 패턴은 최근 눈에 띌 만큼 많이 변했다. 수많은 요인들이 이러한 변화들에 책임이 있다. 이러한 요인들 중에서 주목할 만 한 것은 노동시장에 있어서 여성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력에 있어서 여성들은 시간적으로 압박을 받아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지어 노동의 끝난 이후에도 가사노동을 일상적으로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들은 결과적으로 가족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편리함을 찾게 되었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가공식품의 수입이 증가 되었고, 이것은 가족들 혹은 소비자들의 주된 관심으로서 식품 안전의 문제를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시장의 변화는 농산물 공급체계에도 또한 영향을 주었다. 농산물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소비자들의 기호의 다양화는 생산주도의 시장에서 시장주도의 공급체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시장주도형 공급체계는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유통 등의 개발과 광고 등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기술력 또한 진전되었다. 시장주도형 공급체계는 시장의 상황을 강조하는 시스템이다. 만약 농업생산물이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생산품들은 농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계속)

* 이 글은 지난 해 11월 22-26일 스리랑카 캔디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포럼에서 필자가 발제한 글(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은 「농촌과 목회」49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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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2) - 에큐메니안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2)한국생명농업의 현황과 과제

안재학 목사 | 승인 2011.05.0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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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명농업운동



첫째, 우리는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방식은 작물을 재배하는 생산적이고 대안적인 전략으로서 대체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체뿐만 아니라 지구, 토양, 물 등에 유용한 방법이다. 우리는 미생물들과 다양한 유기퇴비를 사용하며 이것을 우리는 유기농업이라고 부른다. 유기농업의 합리적 근거는 인간존재 자체의 생존을 위한 환경을 지속하는데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위해 지속가능한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미래세대를 위한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회복하기 위한 숙고함 없이 자신들의 편리함을 위해 자원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이러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개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끔 만든다. 개발은 자연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에서 허용된다. 개발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대안농업이라고 부른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고 공급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생명들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무역에 있어서 농사는 점점 더 자연의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미래세대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능력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우리자신의 생존을 위한 지구의 자연환경과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는 우리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우리는 어머니 지구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신념에 바탕한 자연농업과 유기농업에 중점을 둔 농업이 시도되었고 그러한 방법들을 증진시켜나갔던 몇몇의 시민단체들이 있었다. 90년대 이전에는 한국에서 유기농업은 이러한 지속가능한 실천들이 확산되는 초창기였다.



한국농업은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화학비료의 의존도는 점차 감소하고는 있지만 농약의 사용은 여전히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농업생산물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 사이의 요구들 혹은 관심은 높은 품질과 안전성이다. 사실 유기농산물에 대한 요구들은 증가하고 있다. (총생산량- 336,000톤: 전체 농산물의 2%, 23,000 가정, 25,000 헥타르: 2003년 통계)이러한 수치는 더욱 커지고 있고 유기농 농가의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관행농 인구의 10% 미만: 2010년 통계)



우리 유기농업의 상황은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선진국의 유기농업에 대한 현황들과 견주어 보았을 때 초보적인 단계이지만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은 전체 농산물과 비교했을 때 잠재적으로 사업적 전망이 있다.



한국에서 생명농업 운동은 조직적 그리고 개별적인 다양한 헌신들로 이루어졌다. 각 단체들을 언급함에 있어서 단체의 그룹들은 일반적으로 농촌지역에서 헌신하는 목회자 그룹과 농민들과 활동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평신도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두 그룹들 중에서 목회자 그룹을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첫 번째, 감리교 목회자들은 1985년도에 농촌목회자연합회를 결성하고 두 번째, 예장(통합)은 1987년에, 기장은 1989년에 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를 결성하게 이른다. 80년대 후반에 한국의 정치적인 논쟁점들은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직접적인 폭력을 통해 국민들을 억압하는 군사정부의 잘못된 정책들과 얽혀서 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처음에는 농촌목회자들이 정부의 농업정책과 농민들의 권익을 위해서 거리에서 투쟁을 했다. 이것은 종국에는 농촌교회의 선교가 대정부 투쟁 일변도에서 보다 대안적인 방향을 찾도록 결심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곡물과 채소 정부수매에 대해 눈을 돌리고 집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행농의 폐해 즉, 농약, 비료, 제초제 , 살충제 사용에 대해서 화제를 삼지 않았다. 그때에 농촌목회자들이 자발적으로 유기농업과 대안농업을 시작했고 권장하기 시작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1990년대가 시작하면서 농촌지역에서 생명공동체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많은 협동조합들과 공동체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생명농업을 증진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많은 성공적인 이야기와 실패한 이야기들이 공동체 내부, 외부에서 보고되어지고 평가되어 진다. 어쨌든, 이것은 생명농업을 통한 지역공동체건설을 함에 있어서 한국의 현재적 진행상황이다.



반면, 평신도 그룹들 또한 생명농업에 매료되어 생명농업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이러한 단체들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서 그들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그룹에는 정농회, 가나안농군학교, 기독교농민회, 가톨릭농민회, 자연농업협회 등이 있다.



이 지점에 있어서 필자는 농촌선교를 위한 목회자 연합회(이하 농목)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고 자 한다. 농목은 그들의 신앙고백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위해 싸워왔던 시대의 어두움에 저항해왔던 교회들과 목회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농목의 조직 및 개인들은 민중 운동을 함께 하면서 농촌의 인구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목격했다. 80년대와 같이 여전히 농촌지역에는 남아있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이제 부모세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혹은 도시로 이주해간 자녀들이 경제적 이유 혹은 이혼의 이유 등으로 자녀양육이 힘들어서 다시 시골의 노부모에게 자녀들을 내려 보내어진 소위 조손가정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빈곤가정과 이혼가정이 겪는 아픔들이며 그들은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농촌인구의 고령화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게는 주된 관심거리가 되었다. 아무도 농촌으로 이주하여 생업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시로 이주하고 농업에는 관심도 없다. 더욱 나쁜 것은 젊은 한국 여성들은 대부분 도시로 이주했으며 이것은 농촌의 총각들의 결혼풍속에도 크게 영향을 주게 되었다. 최근에 이주여성들이 한국 농촌의 농민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의 보다 나은 삶을 꿈꾸지만 실상은 그들의 바라고 꿈꾸었던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다문화 이슈는 최근 들어 새롭게 급부상하는 문제들이다.



최근에는 소수의 젊은이들이 농촌에 남거나, 농촌으로 돌아오는 경우들이 있다. 원래 농촌지역에 살던 젊은 자식들은 대부분 관행농에 익숙하고 관행농을 통해서 소득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갈등의 소지가 있다. 특히 생명농업에 보다 집중하는 귀농한 젊은 농민들과 그러하다. 관행농과 생명농업이 농촌현장에서 현지인과 귀농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어쨌든 귀농인구의 증가 숫자는 실제적으로 감소하는 농촌인구를 보전할 만한 숫자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연대의 고리가 필요하고 도시와 농촌이 상생할 수 있는 장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도시교회들과 협력하여 생명농업을 증진하는 농촌교회들에 대해서 좀더 집중하려고 한다. 농촌교회는 자연과 평화로운 농촌지역의 공동체의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교회가 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체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현재, 도시교회들은 농촌교회들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청기지로서의 사명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것은 농촌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도시의 삶은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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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3)한국생명농업의 현황과 과제
안재학 목사 | 승인 2011.05.13 14:43


3. 지역공동체 만들기와 농촌교회의 역할


철학적인 사유와 신앙 운동으로써 생명농업에 있어서 본인은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개발에 집중하고자 하며 교회회원들의 실재적인 실천에 보다 관심하려 한다. 이들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희망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는 지역의 주민들이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가능케 하는 힘은 인간의 권리뿐만 아니라 또 다른 창조물들에 대한 권리에 집중하는 공동체 내부로부터 나오는 공동의 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농촌지역에는 이러한 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경제적 자원들은 그들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선교적 사명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작다. 이러한 경제적 자원들은 목회자의 생계조차도 책임지지 못할 정도의 수준인 경우도 존재한다. 교회의 대부분의 회원들의 나이는 고령들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촌교회들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한계들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측면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농촌교회들이 제한적이고, 때때로 생명농업을 실천할 수도 발전시킬 수도 없는 그들의 무능력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공동체 안에서 생명을 회복하는데 헌신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그 능력에 기대어서 의존한다.

농촌교회의 생명농업의 운동은 농민들과 농촌공동체들, 그리고 자연을 둘러싼 많은 생명들의 해방을 선포하는 확고한 기초위에 서 있다. 농촌교회의 목회적 사명은 즉, 생명들을 보호하고 생명들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의 생산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농촌의 자연환경은 식물과 동물, 나무 심지어 미생물들을 위시한 생명들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다양한 생명들은 생산과 또 다른 생명들을 재생산한다. 이러한 순환 혹은 생명의 사슬들은 농약의 과다사용과 파괴적인 다른 수단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파괴하는 형태 혹은 모든 수단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정확하게 농촌교회의 역할이라 할 것이다.

둘째, 농촌교회의 또 다른 목회적 사명은 사회를 위한 공공의 의무감을 사람들로 하여금 증진시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정책들은 공동체의 공공선의 이러한 영역들을 공격하곤 한다. 

셋째, 농촌목회자들은 생명의 생태적인 가치들을 유지해야만 한다. 즉, 모든 유기적인 가치와 함께 협력하여 결합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넷째, 목회의 유연한 가치는 생명농업에 관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격려하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향한 길을 찾기 위해 타자의 생명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다섯째, 농촌목회의 보편적인 가치는 생명의 균등성에 있다. 농촌교회의 능력은 공생공존하기 위해 생명의 균등성을 회복하는데 있다. 이러한 시의적절한 주제들은 목회적 사명에 있어 농촌교회들에게 요구되어져 왔다.

4. 한국의 환경적인 논쟁점들

최근, 한국의 환경 이슈는 4대강 개발 프로젝트에 집중되어 있다. 애초에 정부는 한반도를 관통하는 대운하 건설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그 계획에 대해 반대했고 많은 정치인들도 국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했다. 국민으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정부는 4대강(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을 개발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개발의 목표는 홍수예방과 깨끗한 수자원의 확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들과의 합의없이 이러한 계획을 밀어 붙이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사업의 타당성 연구나 환경영향평가 등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미 이 사업에 대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책정하고 쏟아 붓는 반면 사회복지예산은 대폭 감축해 버렸다. 많은 환경단체들과 전문가들 또한 강들을 둘러싼 환경에 초래될 사업의 파괴적 결과에 대해서 경고했다. 그들은 많은 토종 물고기들이 강바닥을 깊이 파고 또 다른 물리적인 공사들로 인해서 멸종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을 차치하더라도, 그 강들과 인접해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채소농사를 짓고 사는 많은 시설농가들이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개발사업으로 인해 강 주변의 많은 농민들은 다른 곳으로 농지를 옮겨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렇게 대체농지로 이주한 농민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정부에 의해서 농지가 다시 조정되기도 한다. 실례로는 한강 상류지역의 팔당의 유기농단지는 한국의 유기농에 있어서 최대 규모의 단지이다. 그리고 이 장소는 2011년 17차 세계유기농대회와 IFOAM의 대의원 총회의 개최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강을 둘러싼 이러한 종류의 개발을 볼 것이고, 이것은 한국 정부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이러한 4 대강 사업의 반응에 있어서 시민사회는 저항했고, 정부로 하여금 공사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종교지도자들과 환경 활동가들은 이 사업의 거짓된 목적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보위에 올라가서 농성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건설회사들은 정부의 말만을 듣고 개발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은 교대로 금식기도를 진행하며 237일 동안 팔당유기농단지 물탱크 지붕위에서 금식기도를 이어갔다. 그들은 또한 20 여 일 동안 4 대강을 도보로 순례하며 그들의 저항을 이어갔다. 가톨릭 신부들도 매일같이 두물머리 한강변에서 매일 미사를 드렸다. (계속????)

* 이 글은 지난 해 11월 22-26일 스리랑카 캔디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포럼에서 필자가 발제한 글(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농촌과 목회」49호 jagafocus@hanmail.net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진행 - 에큐메니안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진행 - 에큐메니안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진행2월21일-22일까지 포천 평화나무농장에서
편집부 | 승인 2019.01.19 18:57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대표 한경호 목사)이 다음 달 2월21일(목)부터 22일(금)까지 1박2일 간의 일정으로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장소는 경기도 포천 소재 “평화나무농장”이다. 2017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은 이번으로 3회째를 맞이하게 된다.

▲ 지난 해 2017년 1회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제공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국내의 젊은 농업 후계자들을 양성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농촌과 농업을 이어갈 젊은 인재들을 찾는 것을 넘어 농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농업 일꾼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후진양성 프로그램은 주로 강의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 정호진 목사의 “생명농업의 성서적 고백”, 
  • 임기도 목사의 “농사이야기”, 
  • 한명재 목사의 “귀농, 귀촌에 대한 교회의 역할” 그리고 
  • 김준권 평화나무농장 대표의 “생명농업에 기반한 모범적소규모 복합영농” 등으로 이어진다. 

특히 교육기간 중 수제 햄, 베이컨, 소세지 가공실습이 이루어진다.

또한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은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 생명농업지도자를 발굴·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 2019년 10월8일부터 11일까지 인도네시아 ‘마나도’에서 5차 아시아생명농업포럼을 인도네시아 교회협의회와 함께 진행한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시아 농업지도자들을 초청 국내연수도 2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국내 후진양성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평화나무농장(대표 김준권)은 아시아생명농업훈련센터(Asia LGA Training center)로도 함께 운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김준권 대표는 아시아생명농업훈련센터의 소장을 겸하고 있다. 특히 평화나무농장은 소규모 복합영농의 가장 모범적 사례를 갖고 생산과 소비, 그리고 가공과 판매까지 직접 이루고 있다.
자세한 문의와 신청은 안재학 목사(010-2374-0190)에게 연락을 바란다.

▲ 2017년 1회 생명농업지도자 후진양성 프로그램 교육 모습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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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생명농업으로 “영성회복을 위한 나눔 공동체” 실현지를 가다. - 당당뉴스



[현장탐방]생명농업으로 “영성회복을 위한 나눔 공동체” 실현지를 가다. - 당당뉴스





[현장탐방]생명농업으로 “영성회복을 위한 나눔 공동체” 실현지를 가다.하나님의 뜻을 따라 제주생명농업재단을 설립한 오재길 선생님을 찾아서
류기석 | yoogiseo@yonsei.ac.kr





입력 : 2006년 01월 17일 (화) 00:00:00 [조회수 : 3174]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부분적으로 알고 느꼈던 실험적인 도시생활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살다가 반으로 접고, 문뜩 자연의 일부가 되려고 목가적인 시골풍경이 또랑또랑하게 남아있는 파주 배나무골 허름한 농가를 구입, 농촌과 농업을 위한 귀농을 소망할 때 기독교인으로서 정직하게 농사를 짓는 모임인 정농회를 알게 되었다.

그후 정직한 농업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교류를 위하여 정농회 정기수련회와 각종 행사에 참석하면서 여러회원들과 한국 유기농업의 선구자로 정농회를 만들고, 평생 땅을 사랑하신 오재길(86세) 선생님과 인연이 된 것이다.

때마침 제주를 방문할 기회를 얻어 마지막날 '영성회복을 위한 나눔 공동체'인 제주생명농업 현장을 방문했다.

화창한 아침햇살이 서귀포의 해안선을 따라 남제주군 표선면 가시리 제주생명농업 현장으로 향하는 우리들을 반겼다. 이국적인 풍경들과 구불구불한 길들이 잘 어울리는 농촌, 표선면에서 가시리 길은 확 트인 꽃길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목장을 만나면서 더욱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돌에 새겨진 제주생명농업 이정표를 어렵사리 보고 도착한 현장엔 요즘 홍당무 수확으로 한창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오재길 선생님과 공동체식구들을 만났다.

3만평의 넓은 초지입구에는 유기농산물 가공공장을 비롯하여 중앙에 공동체숙소, 우측으로 다목적 공간과 식당 등이 일자형태로 자리잡고 있었다. 5억원을 들여 마련한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직접 약 3만평에서 유기 재배된 농산물과 지역 주민들의 유기 농산물을 이용해 음료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자식들의 안녕과 자신의 여생을 위한 재산축적이 아닌, 제주의 농촌에서 농업을 통한 농민이 땅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인 생명의 농업을 노년에 선택한 듯 하다.

아이들의 영성회복의 길은 청정 농산물 생산에 있다는 생각으로 유기농 농장과 유기농산물 가공공장, 농촌과 농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유기농 교육센터를 마음의 고향 제주 땅에 남기고자 온 것이다.

오재길 선생님이 정직한 유기농업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지난 1970년대부터다. 추자도 출신인 그는 고향을 떠나 경기도 양주에서 생활하며, 여타의 유기농 단체보다 2년 앞선 1976년 그 곳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 조직체인 ‘정농회’를 설립한 기독영농인으로 초대회장직을 14년간 맡기도 했다. 정농회 정관은 바로 성서였다. 그가 성서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선택한 삶이 정농이었고 정농의 방법은 생명농업이었다.

그가 유기농을 선택하게 된 것은 한국농업의 기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각종 자료를 통해 화학비료가 토양에도 안 좋고, 사람의 인체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친환경농업을 통해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야 앞으로 농업의 미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난 1964년 야산을 개간해 만든 1만5000평 규모의 농장에서 유기농법으로 각종 채소류를 재배하는 천보농리원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1999년 땅이 아파트로 개발되면서 불가피하게 새로운 농장을 논, 밭, 과수 등 3단계 조성의 꿈을 그리면서 물색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제주 출신 젊은이가 찾아와 제주의 농촌에는 아직도 무속신앙인과 정신질환자가 많음을 토로하면서 복음화 율이 낮고, 국제 자유지역으로 평화의 섬인 제주를 본격적인 생명농업의 메카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제주의 생명농업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내려와 20억원을 출연, 제주영락교회 김정서 목사와 협력으로, 2002년 11월 제주생명농업재단을 설립했다.

국제자유도시 출범과 더불어 평화의 섬 제주가 친환경 농업의 적지라는 생각에서 표선면 가시리를 찾아, 일생을 바쳐 일구어온 유기농업 경험을 바탕으로 이 곳에 유기농산물을 직접 재배하고 이를 가공한 음료생산 공장을 설립키로 한 것이다.

그는 유기적인 방식의 농업을 위한 인재양성과 아울러 사양길에 접어든 밀농사를 추진할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장마철에 임박해 밀을 수확했는데, 최근에 조기 수확하는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생명농업농장에서 시험재배 한 후 통밀가공제품을 생산해 낸다는 계획이다.

시범사업이 성공하면 그는 인근 농민들과 함께 농장형식의 협업체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또 인근의 젊은이들을 농사 연수생으로 모집하여 체계적으로 유기농법을 교육하고 연구·보급할 예정으로 있다.

우리일행은 식당으로 안내되어 제주에서 생명농업을 하게 된 동기와 계획을 간단하게 듣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이는 육류의 과소비로 폭력적인 성품을 낳았고, 영적 감성을 저해한다. 많은 동양의학연구자들이 동양의학은 하나님의 계시로 된 것이며, 인간으로서 가장 건강한 조건이 성립될 때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온순한 성품과 두뇌기능을 향상시키는 곡류와 함께 채식을 많이 섭취해야한다.” 라는 말씀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어 보급하시겠다는 농업의 당위성을 서두로 꺼내셨다.

또한 “동아시아는 비가 적당히 오는 기후로 고기류 섭취가 필요 없으며, 이에 비하여 서양기후는 비가오지 않아 고기류섭취가 필요하다. 쌀, 밀, 보리, 고구마, 감자들의 탄수화물은 사람인체내에서 단백질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인위적인 단백질의 섭취는 몸에 좋지 않다.” 고 토로했다.

계속해서 “현대의학의 맹점으로는 50대 후반 식사량을 줄이고, 영양소 높은 음식을 삼가며, 적게 먹고 소식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현대의 질병은 많이 먹고 못된 것을 먹어서 생긴 병이다. 또한 다각적으로 사용되는 식품첨가제의 허용기준치가 문제이다. 이는 가공식품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다양한 화학적인 성분들이 인체 내로 섭취되면 서로간의 상보, 상승하는 작용을 이루어 병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시험동물 취급하는 작금의 허용기준치 오류”를 지적하셨다.

그러면서 “농사하는 힘든 일은 크리스찬들이 해야 한다. 교회와 교인들이 앞장서라. 농사는 농사짓는 생산자와 소비하는 소비자 모두가 생명살림의 동반자로 중요하다. 성과는 하나님께 있고, 사람은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또한 “유기농은 화화비료를 쓸 때보다 수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땅이 제대로 기능하면 수량은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제주는 정부의 평화의 섬 인증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닌, 제주도민 모두가 세계평화의 섬을 위한 고통분담을 해결해야 됨을 강조하면서 그곳에서 생산된 시선한 곡류와 채소류로 점심식사를 정공해 주셨다.

식사후 생명보전의 의무를 위한 농업터전과 각종 건물들을 둘러보고, 오재길 선생님의 사무실에서 차를 대접받았다. 그의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인생역정을 전해들으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오재길 선생님께 지금 가장 절실하게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에 대한 물음을 드렸더니,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그 질서에 부응하는 “영성회복의 길” 찾음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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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김성훈 칼럼] 관·학·언론계의 다국적기업 자본과의 유착관계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2014.08.05 07:21:45

유기농을 죽여야 미래농업 성장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확대경제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향후의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왜 농업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지, 왜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의 귀재들이 '나는 모든 것을 농업에 투자하겠다' 이렇게 나오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이번 기회에 (우리) 농업을 우리 경제 수출의 효자산업으로 적극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국적 농약·농산물 수출회사들의 호구, 대한민국


세계 2차 대전 종료 후, 국지전 성격의 중동지역 전쟁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큰 전쟁이 없어져 현대 무기 제조 판매시장은 한계를 보였다. 한편, 경제성장으로 전 세계 식량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초국경 다국적 기업들은 농업과 식량의 상품화에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20세기 후반기부터 다국적 대기업 단위에서 종자개발과 농약 농자재 산업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두에 선 몬샌토, 듀폰, 신젠타, 다우 등 다국적기업들은 GMO(유전자조작) 종자산업과 농약 등 화학산업에 뛰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농업은 미래 성장 산업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IT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메린다 게이츠 부부가 몬샌토의 종자와 제초제 사업에 20%가량의 주식투자를 감행한 배경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몬샌토 사(社)의 경우, 세계 GMO 종자 및 제초제 농약판매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벌써 세계 제2위의 GMO 종자, 농약, 농산 식품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이들 다국적 화학기업들의 돈 밭이자 '봉'이 됐다. 대한민국이 이른바 '다국적기업의 호구(虎口)'가 된 셈이다. 이런 때 느닷없이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 성장 산업론"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23%대로 떨어져 쌀 자급률은 86%대로, 세계 최고 식량 부족국이나 다름없다. 특히 농가 소득은 지난 9년 동안 2005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유착한 식품/화학기업은 날로 부익부하는데, 정작 3농(三農, 농업·농촌·농민) 부문은 날로 낙후되고 있다.


최근 관·학·언론계로부터 2015년 쌀 완전개방 방침이라든지 한중 FTA와 TPP(태평양경제 동반자) 협정추진이 국익을 위한 대세인 양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WTO 개방체제의 마지막 대안인 "친환경 유기농업"마저 사방에서 무참히 공격받고 있다.


"농업문제만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길 수 없고…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공약했던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농업의 미래 성장 산업론을 주장하고 나서니, 그 의중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박근혜 정권의 정책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 2011년 4대강 사업으로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우리 이대로 농사 짓게 해주세요"라며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팔당 유기농 단지'에서 농성을 부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꽃이 피지 않고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 '침묵의 봄'


화학 독극물 농약과 화학 비료로부터 지속가능한 지구생태계를 보전하고, 각종 생물의 종 다양성을 보호하며, 사람의 건강과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안으로 친환경 유기농업이 급속도로 범(凡) 세계화되기까지 한 여성 생태학자의 목숨을 건 농약피해 현장 고발이 있었다.


미국의 여류 생태학자인 레이첼 카슨 여사는 1962년 살충제와 제초제 등 유독물질로 꽃이 열매를 맺지 않고 새들조차 울지 않는 상황을 그린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출간했다. 농약의 가공할 만한 위력이 적나라하게 알려지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화학 및 농약전문 다국적 기업의 음해성 반박과 반대 로비에도 불구하고, 카슨 여사를 직접 만나 격려하는 등 국회의원들을 추동해 미국 땅에서 살충제 DDT와 BHC의 제조, 판매, 무역 중단을 선언했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도 이 조치에 동참했다. 뿐만 아니라, 농약 피해로부터 지구 생태계를 살리자는 뜻을 담아 '지구의 날(4월 22일)'을 선포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신이 지구 생태계와 생명 농업계에 극독물을 만연케 한 결과, 땅과 물과 강과 바다의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인간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성 보전에까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린 실상이 낱낱이 고발된 <침묵의 봄>은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 중에서 네 번째에 올랐다. <타임>은 레이첼 카슨 여사를 20세기의 중요 인물 100인으로 꼽기도 했다.


증산은 됐으나, 흑색혁명으로 끝난 녹색혁명!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60년대 후반 박정희 군사정권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대통령의 특별 관심으로 농업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녹색혁명' 깃발을 높이 들었다. 다비성(多肥性) 다수확 품종의 화학농사와 농약 과다 의존형 관행농법을 '녹색혁명'이라 명명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군사독재 18년 동안 대망의 식량자급 달성 목표에 근접하게 됐으나, 산·하천·호수·바다는 화학물질로 심각하게 오염돼 후진국형 공업국가로 변신했다. 조국의 산하와 생태계 그리고 농업부문을 '흑색혁명'으로 뒤덮은 것이다. 거기에 세계 제1의 단위면적당 농약 및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국가라는 오명마저 떠안게 됐다.
다국적 기업의 맹독성 농약은 이들과 유착한 재벌이 앞장서 수입판매를 하고, 농업 관련 정부 기관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급했다.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철, 무성히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고자 발암성 제초제(고엽제) 남용이 보편화되고 병해충 박멸을 위해 매해 고독성 농약이 살포됐다. 또한 정부 연구기관은 유전자 형질을 원천적으로 조작해 더 독한 제초제인 독극물을 무제한 불러들이는 화학 농법을 도입하는데 열을 올렸다. 역대 군사정권과 추진 강도는 약간 다르지만 화학물질 의존형, 이른바 관행농업이 이 땅에 뿌리내린 후과(後果)다. 지금 우리나라는 해마다 800만 톤에 가까운 GMO 콩과 옥수수를 수입 중이며, 소비자의 알 권리,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표시도 없다. 그저, 몇백만 톤의 GMO 가공식품이 대기업 식품회사에 의해 범람하고 있다.


21세기형 친환경·친자연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새 시대'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사태, 즉 종(種, species)과 생명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마실 물, 숨 쉴 공기, 생명의 땅이 오염돼 사람을 비롯한 각종 생물의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quality of life) 향상에 중대 위기가 닥치고 있다. 대신 경제발전에 따라 의식과 소득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먹을거리 안전과 삶의 질 개선 문제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레이첼 카슨 여사가 <침묵의 봄>에서 지적한 국민적 각성, 즉 살충제와 제초제(고엽제) 같은 화학 독극물로부터 환경 생태계와 가족의 건강 및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는 의식화 단계로 진화한 셈이다.


정부 단위 '친환경 유기농 원년' 선포


국내외 사조(思潮)가 이처럼 변화하는 가운데, 1997년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의 외환위기인 IMF 사태를 맞았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국민 식생활 안전에 대한 대통령의 섬세한 독려에 따라 1998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친환경 유기농업 원년'을 선포했다. 이는 문민정부 말, 국회에서 '환경농업육성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시행령을 만들고 '친환경농업 원년'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농림부 산하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친환경농업정책과를 신설하였다. 제초제의 배제를 기본으로 하는 저농약·무농약·유기농(전환기 포함) 농산물 등급인증제에 차등의 직접지불 소득보상제도도 도입됐다. 동시에 먹을거리의 안전한 유통경로 확보를 위해 소비자협동조합법(일명 '생협법')도 제정 공포됐다.


참고로, 친환경농업 육성법과 유기농 원년 선포가 이뤄지기 20여 년 전부터 농촌 사회 곳곳 약 2000여 농가 단위로 착한 농민·정직한 농민들이 '바른 농업(正農會, 정농회)'과 '유기 농업 협회'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활동해 왔다. 그때만 해도 정부의 지원은커녕, 증산 정책에 위배된다며 적지 않은 박해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대적 유기 농업, 즉 생물과학 기술과 조상 대대로의 농법을 결합해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선구자적인 생명 농업을 꿋꿋하게 해오고 있다. 원경선, 류달영, 오재길, 홍순명, 정상묵 등이 그들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소비자시민모임, 소비자연맹, 주부클럽, 주부교실 등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소비자 단체의 호응도 뜨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맨 먼저 농업 생산자, 소비자 대표, 정부 대표를 중심으로 '농·소·정 위원회'를 꾸려 친 환경 정책의 추진 단계부터 진행 과정, 소비자 홍보, 도농 연대에 앞장서도록 했다. 이들은 '친환경 유기농 5개년 발전 계획'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수립했다.


다만, 고온다습한 우리나라 여름철에 무성히 자라는 잡초와 각종 병해충을 어떻게 하면 친환경적으로 다스리며 선의의 농민이 죄인이 되지 않게 할지는 정책 당국의 친환경농정 추진에 영원한 과제이다.


화학·농약 물신주의의 발호와 정책의 모호성


'친 환경 농업 원년 선포' 이후 16년, 친환경 인증 농가가 수적으로, 품목·면적·생산량 면에서 10%를 넘는 괄목할 성장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세계유기농대회(IFOAM 총회)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경기도 남양주 양평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을 정도다. 소비자의 인식과 관심도 선진국 수준을 능가할 정도로 높아져 친환경 농업인들의 지적 기술수준과 각오를 크게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개방 농정으로 국내 일반 농업은 쇠퇴일로를 걷고 있으며, 고령 부녀자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외세(주로 화학·농약·유전자조작(GMO) 초대형 다국적 기업)가 활짝 열린 신자유주의 한국 시장에 대거 진출, 대한민국의 관·학·재·언론계를 자본과 권력으로 유착시키고 있다. 식품(가공)산업도 외국 자본 및 기술과 제휴해 대재벌 회사의 주도 하에 국내산 원료를 멀리하고, 75% 이상의 재료를 값이 싼 GMO 포함 수입농축산물로 충당하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와 관련기관은 친 환경 농정의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채 이를 과시할 숫자 놀음에 열중하고 있다. 자재 생산자 등 업체들은 친환경 농민들이 받게 될 보조금을 가로채는데 눈독을 들일 뿐이다. 또 민간 인증 기관들은 얄팍한 수수료 따먹기에 여념이 없다 보니, 묵시적으로 이들 삼자가 연대해 애꿎은 고령화·부녀화 된 농가에까지 친환경 유기농 인증을 받도록 끌어들이는 사례마저 빈번해졌다. 중앙 정부는 어떤 정권, 어떤 대통령과 어떤 농림부 장관이 들어섰느냐에 따라 친환경 유기 농업 정책의 강도에 있어 질적 차이가 커졌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친환경 유기농업은 증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명박근혜 정부는 친 환경 유기 농업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을 살린다는 명분하에, 유기 농업의 발상지 중의 한 곳을 짓밟고 4년 동안 끊임없이 박해했다. 농업 문제만은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친환경 유기농업과 관련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보이지 않는다.


자연 순환 원리에 따라 친환경 유기농업이 환경 생태계를 살리고, 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에 안전을 보장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저가 해외 농산물 수입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은 우리 농산물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내세워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친환경 농정에 유난히 냉담하다. 예산도, 정책 프로그램도, 대(對) 농민 소통도 제자리 걸음이다.


GMO, 제초제, 맹독성 농약이 판치는 세상


더욱이 서울에 진출한 몬샌토 등 프랑켄슈타인(괴물) GMO 종자 및 농산물 수출 다국적 회사와 고엽제 수준의 제초제 및 고독성 화학 제품을 수출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기왕 EU 일부 국가와 북·남미 등의 국가에서 공작으로 일시 재미를 봤던 "유기농을 죽여야 GMO와 농약이 산다"라는 내부 방침을 공공연히 우리나라 관·학·언론계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유기농 식품에 등을 돌리게 하고 화학농업과 유기농업이 '오십보백보'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관·학·언론계에 충실한 장학생을 다수 심고 막대한 자금 살포를 아끼지 않는다.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기관 공직자 중에서는 "농약은 과학이다" "GMO도 GAP도 친환경이다"라는 해괴한 이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이상한 관료들이 등장하고, 일부 친 GMO 언론인의 등장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런 이상 기류에 대한 정책 당국자들의 반응은 대통령의 수첩 지시가 없어서인지, 무관심과 방관 또는 일부 동조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드디어 공영방송이 '유기농 죽이기' 선봉에 나섰다. 한 PD가 1년 가까이 전국의 유명 유기농가를 찾아가 선진국에서는 과학적인 이유(흙 속 농약의 반감기 잔류 등)로 다루지 않는 화학 실험실 수준의 토양 중 농약 성분 찾아내기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농약 옹호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유기농 토양 내 잔류 농약을 발견, 대단한 발견인양 유기농업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7월 31일과 8월 7일 방영된 KBS <유기농의 진실>(2부작) 역시 공작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오래된 미래 농업’인 친 환경 유기 농업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참 유기농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 죽이기'가 박근혜 정부의 미래 성장 산업 육성 전략이 아닌지 의아해하면서….


(일부 내용은 <한국농어민신문> 8월 4일 자 '농훈칼럼'에 중복 게재됐습니다. 필자 주)

11 <생명평화마당> 9월 정기 월례포럼 “한국교회의 갱신과 새로운 교회운동”


 11 <생명평화마당> 9월 정기 월례포럼  “한국교회의 갱신과 새로운 교회운동” 

일 시: 2011년 9월 6일 (화) 늦은7시

장 소: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지하 이제홀 (서대문역 1/2번 출구)

사 회: 조언정 목사 (마실교회)

발 제:

√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한국교회의 갱신과 새로운 교회운동

- 지역공동체 세우기를 중심으로”................................. p. 3



√ 이원돈 목사 (새롬교회)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로서 작은 교회를 주목하자!”........ p. 15



√ 양재성 목사 (예수살기,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예수살기>의 교회운동”............................................ p. 23



9월 포럼을 준비하며



늦더위가 한창입니다만, 이제 곧 가을을 맞이하게 될 터이고 금년 하반기를 지내게 될 것입니다. 작년 뜻을 모으고, 올해 조직체를 구성하여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생명평화마당>도 이번 가을에 소정의 결실을 맺고, 장단기적 안목과 계획을 가지고 내년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월례포럼은 <생명평화마당>의 근간을 이루는 사업입니다. 꾸준하게 펼쳐지는 월례포럼을 통하여 바라기는, 앞으로도 생명과 평화의 담론을 형성하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의 빛으로 빛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과 평화의 빛깔을 내시고 계시는 여러분! <생명평화마당> 월례포럼에서 여러분의 빛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9월 포럼 취지



한국교회는 목이 마릅니다. “추락하기만 하는 한국교회, 왜소해져만 가는 교회운동, 대안이 없다는 말인가?” “예수 정신을 구현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회모델이 무엇인가?” “건강한 교회운동의 방법론은 없는가?” <생명평화마당> 9월 포럼은 교회의 새로운 대안을 묻고자 합니다. 생명과 평화의 사상을 퍼뜨려야 할 1차 영역이 바로 우리들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사실, 생소한 주제도 아니며 이번에 단발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는 그동안 생명과 평화의 사상으로 교회갱신을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교회현장에서 유용하고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를 해왔습니다. 이번 9월 포럼은 그것의 첫 걸음입니다. 무릎을 탁 치며 여럿이 뜻을 모으는 것이 희망의 빛이라 믿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9월 포럼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알림



1. 오늘 순서를 맡아주신 분들과 9월 포럼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 모임안내1 : <교회위원회> 목회자모임 : 9월18일 (주일) 6시, 양평

3. 모임안내2 : “WCC 부산총회 준비를 위한 ‘생명정의평화’ 진영(JPL) 4차모임

: 9월23일 (금) 5시, 기사연 이제홀

4. <생명평화마당> 공식카페에 가입, 활동을 바랍니다. (http://cafe.daum.net/2010declaration)

5. <생명평화마당> 후원회원이 되어주십시오. (자동이체, CMS - 문의: 김지목 간사)

6. ‘2011 교회의 날’ 행사 : “평등한 교회 상상하기” 9월29일(목)-10월1일(토), 100주년기념관/이화여대

7. 이후 포럼 계획 (매달 둘째주 화요일 저녁7시, 기사연 이제홀)

-10월11일 : “교회와 사회변혁을 향한 신학의 개혁” / 발제-Philip Clayton (클레어몬트신학교 학장)

-11월 8일 : “종교개혁과 여성신학(가안)” / 발제-(미정) / 사회-이은선박사

-12월13일 : “기후붕괴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삶과 전망” / 발제-김준우박사 외



<생명평화마당> 실행위원회

권진관(성공회대 교수), 김경호(들꽃향린교회), 김기석(성공회대 교수), 김정숙(감신대), 김영철(새민족교회), 김은규(성공회대 교수), 김희헌(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박명철(연세대 교수), 방인성(뉴스앤조이 이사장), 손은정(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양재성(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윤인중(인천평화교회), 이원돈(부천새롬교회), 이은선(세종대 교수), 장윤재(이화여대 교수), 정상시(안민교회), 조언정(양평 마실교회), 조헌정(향린교회), 최소영(교회여성연합 총무), 최헌국(예수살기 총무), 한경호(횡성영락교회)

문 의: 김희헌 총무 (010-2250-2157) / 김지목 간사 (010-2213-9412)











“한국 교회의 갱신과 새로운 교회 운동[1]

- 지역공동체 세우기를 중심으로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 종교사회학)





1. 지역 공동체 운동의 필요성



현재 한국교회는 안팎으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3대 종교 중에 개신교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이후 특히 권위주의적인 교회 운영에 실망한 젊은 층이 급격하게 교회로부터 빠져나가고 있다. 또한 교회 간 불균형과 쏠림 현상으로 작은 교회는 더욱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밖으로는 교회에 대한 공신력이 약화되어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개신교의 공신력 약화는 교회의 활동이 공공성을 상실한 데에 기인한다.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공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하기보다는 교세 확장과 교회 건물 건축, 교권 유지 등 세상과는 벽을 쌓고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에만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일련의 일들에서 볼 때 개신교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하나의 이익집단과 같이 여겨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사회와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진리를 선포하고, 상대방을 단순히 전도 대상자로 여기는 태도를 보여왔다. 절대 진리를 수호하는 입장에서는 전도의 대상자와 타협하기 어려우며 도덕적 우월감으로 상대를 낮잡아보기 쉽다. 이렇게 자신의 집단 안에 매몰된 사람은 더 넓은 사회의 지평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생활에 열심일수록 사회에 대한 의식수준은 더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것은 한국 개신교가 더 이상 기존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성장주의식 패러다임의 전환을 심각하게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교회 성장이 아니라 교회에 내실을 기하며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이다.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든지 심지어는 다른 교회 교인이라도 우리 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에서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

전래 초기 한국 개신교는 사회 부조리를 혁파하고 새로운 가치 질서를 제시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오늘날의 개신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뿐, 공공의 선이나 선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교회가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공공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의 해결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성숙한 기독교인의 관심은 마땅히 공공으로 확장되고 공동체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 성숙한 공동체는 자신의 존재를 두고 있는 더 큰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사회를 향해 열린 공동체여야 한다. 교회는 기독교인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중앙 중심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지역으로 권력이 분산되고 풀뿌리로부터의 참여가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이후에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시민 사회 관련된 의제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시민 사회에 관한 의제들을 제기하는 노력에 참여해왔으나, 이러한 한국교회의 활동은 교회 안에 있는 일반 교인들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주로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과 명망가들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목회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 중심의 기독교 운동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특히, 시민 사회는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이고, 풀뿌리로부터의 실제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들이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울타리 밖의 사회와 의사소통하며 참다운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거나 기껏해야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교회 구성원들이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교회 구성원들이 시민 사회에 참여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의 의제와 현안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시민 사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공동체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주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으로 지역 사회 주민들의 자주적인 참여와 주도적 노력으로 지역 사회의 경제·정치·사회적 조건의 향상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히 경제 발전이나 개발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 공동체 세우기’(community building)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통적인 촌락공동체는 붕괴되었고, 현대 산업 사회에서 조직 구조의 거대화와 관료주의화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친숙성이 어렵게 하며 비인격의 인간관계를 초래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성과 인격의 상호성 또한 약해지고, 인간은 결국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는 예전의 공동체를 그리워하고 공동체 안에 안주하려는 욕구가 심화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이 ‘새로운’ 지역 공동체는 교회와 시민사회가 만나는 지점을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는 증대하는 대신에 정부의 예산부담은 줄여야 하는 추세가 뚜렷하므로 결국 기대어야 할 곳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부문뿐이라는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교회 역시 시민 사회에 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인적, 물적, 제도적 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교회가 한 축을 감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교회는 종래 시민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던 사회적 제도―학교, 가족, 정부, 회사, 근린집단, 전근대적 교회 등―가 제대로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생긴 사회적 공백을 메우고 지역공동체를 재조직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당위성을 지니게 되었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그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2. 교회와 지역 공동체



지역사회라는 용어는 영어로는 ‘community’라고 하는 것으로 공동체라고도 불리는 사회학 개념이다. 이 community는 ‘공동’의 뜻을 가진 ‘common' 또는 ‘communal'과 하나로 통합을 이루게 하는 ‘unity'와의 합성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를 간단하게 정의 내린다면 “지리상의 근접성(지역성)과 사회 차원의 단일성(공동의식) 및 문화 차원의 동질성(공동규범)을 가지는 공동의 사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역사회는 동질성을 가진 일정한 인구가 자연, 생태, 지리상으로 한정되고 근접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역사 유산을 공유하여 단일한 의식을 가지고 있고 협동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회이다.

이러한 지역 사회를 공동체화 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의 공동체 개념은 공간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다. 이렇게 장소의 의미는 내포되어 있지 않은 커뮤니티와 구별하여 지역 공동체는 일정한 지역을 공유하는 인간집단이라는 면에서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local community'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곽현근: 128). 산업화의 결과로 전통의 공동체들이 와해된 상황에서 삶의 기반을 공유하는 지역 사회에 공동 의식에 터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지역 공동체는 과거에 자연발생으로 형성된 촌락공동체와 같은 자연적 공동체가 아니라 새로운 맥락에서 공동의 목적과 이념,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도적 공동체로 이해되어야 한다(신명호 외: 53). 따라서 지역 공동체는 일정한 지리적 영역 안에 거주하는 지역의 구성원들이 목적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구축해 나가는 일련의 조직화된 활동을 전제로 한다.

교회 역시 교회가 터하고 있는 지역 사회에서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기업, 주민 등과 더불어 지역 사회의 주요한 구성원이다. 교회는 그 지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사람들을 위하여 세워진 기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지역사회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교회 실존의 근거가 바로 지역사회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와 지역사회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교회는 지역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많은 경우, 지역사회의 쇠퇴는 지역교회의 쇠락으로 이어지며, 지역사회의 발전은 어김없이 지역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90년대 수도권 신도시개발 붐을 타고, 구도시지역 교회들이 신도시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교회와 지역사회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깊은 태생적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역사회의 욕구와 당면 문제에 대해 진지한 태도로 임하며, 그 해결을 위해 지역사회의 여러 구성원들과 다양한 형태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최근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에 주목한다. 이전에는 주로 지역사회개발운동으로 지역사회 주민들의 자주적인 참여와 주도적 노력으로 지역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조건의 향상을 추구해왔다. ‘참여’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동체주의 운동 활성화가 필요해지면서,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와 다양한 기관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경제 발전이나 개발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형성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인주의 사회가 경쟁을 앞세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원리가 지배한다면, 공동체 운동은 배려와 관심으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마을 만들기는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지역 사회를 재구조화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마을 만들기 운동은 일종의 주민자치운동으로 여기서 ‘마을’이란 시민 전체가 공유하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고 공동으로 이용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장을 총칭한다. 대부분의 도시 계획이나 도시 재개발 사업이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이라면, 마을 만들기는 관 주도의 지역 개발 운동에 오히려 저항하며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 가장 큰 대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뜻에서 관변식, 학술적 한자어를 피하여 ‘마을’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이명규: 268-273).

그리고 ‘마을 만들기’란 그 공동의 장을 시민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는 ‘눈에 보이는 마을 만들기’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 만들기’의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눈에 보이는 마을’이란 말 그대로 물질로 구성되어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마을을 뜻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활동으로 형성되는 마을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 만들기’는 ‘사람 만들기’를 포함하는데, 곧 시민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 의식을 개혁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 운동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시민의식은 기독교 정신과도 통하는 것이며,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기독교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CHE 선교회와 같이 지역사회를 선교 대상으로 보는 관점도 등장하고 있다(스탠 롤랜드: 1장). CHE는 Community Health Evangelism의 줄임말로 총체적 지역사회 선교의 관점으로 특히 위생 환경이 열악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 우물을 파주는 일 등을 통해 선교 지역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제3세계 빈곤 국가에서는 이러한 지역 사회 개발이 중요한 선교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일정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에서는 지역 개발보다는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 보다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다만 도시에 비해 생활수준이 낮은 촌락 지역에서는 개발 전략이 함께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교회는 일차로 예배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시민공동체이기도 하다. 하나의 의례행위로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천 윤리의 행위 지향성이 삶의 무대인 사회생활에서 표출되어 나타나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는 개교회 내부 결속력은 강하지만, 다른 교회와의 협력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연계 활동은 부족하므로 이에 대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교회가 지니고 있는 물질과 제도 자원이 지역사회를 위해 효과 있게 활용될 뿐만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다른 교회나 시민 단체들과 협력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시민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지역사회가 기독교의 가치를 지향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교회의 공신력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3.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 공동체 모델



지역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를 주도해나갈 주민주도형의 협력 체계 곧 결사체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결사체 거버넌스는 지역의 내생적 발전에 필요한 주요 자원을 동원하는 자발적 자원동원 체계이다. 이러한 자원 동원 체계로서 결사체 거버넌스의 원활한 작동은 참여주체자들 사이의 사회 자본의 크기에 달려 있다. 사회 자본은 조직 구성원들 상호간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정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본 동력인 신뢰, 규범, 가치 등을 의미한다(로버트 푸트남: 281). 그리고 이 사회 자본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Rosemary Leonard·Jenny Onyx). 따라서 이 사회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 요구된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활공동체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타결하는 참여민주주의 훈련과 주민자치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들을 배양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지역 실정에 맞는 적절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발굴하고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 작업을 가능하게 해 주는 힘이 바로 신뢰와 협동, 자치와 참여라는 사회 자본이다(김영정: 14). 여기서 교회가 하나의 사회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원자화된 개인들이 운동 경기를 보듯이 모여 있는 교회 구성원들이, 공공의 문제를 토론하는 사회관계를 발전하게 된다면, 시민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 자본으로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공동체 모델을 도식화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먼저 운동의 제1 주체는 시민 곧 지역 주민이다. 그러나 행정기관과 지역 단체와의 협력은 필요하다. 행정 기관의 역할은 공동체 역량구축을 위한 조력자이자 지원자로서의 역할이다. 행정기관은 지역 내 공동체의 실체와 그 역할을 파악하고, 지역의 각 공동체 역량을 상호연결해주는 ‘네트워크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역량은 내부 역량들을 상호 연계하고 결집했을 때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김구: 74-75).





<그림>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공동체모델



























지역 공동체 운동은 주민, 행정기구, 지역 단체가 함께 하는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여기서 지역 단체의 역할은 공동체 운동 주체들의 파트너십 속에서 이 운동의 지속성을 견인하는 성실한 중개자이자 매개자이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지역 단체 활동가들은 관련분야를 폭넓게 학습하고 종전의 감시형, 비판형, 이슈형의 행동양식보다는 참여형, 창조형, 대중형의 행동양식으로 적극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 지역 단체에는 지역 교회가 포함된다. 지역 교회 역시 지역 단체의 하나로서 교회가 가진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지역 공동체 운동을 견인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4. 지역 공동체 형성 전략



이제까지 공동체 형성을 위한 교회의 노력이 전혀 없던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져왔고 또한 사역을 실천해 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대개 사회사업, 사회봉사, 사회복지라는 개념으로 대별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들이 매우 의미 있고 우리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많은 경우 복음전도의 수단으로 여겨져 온 것 또한 사실이다. 복음전도의 접촉점을 마련하고자 이러한 방법을 활용한 것이다. 또한, 도덕적 우월감 위에서 시혜를 베푸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시혜자와 수혜자라는 비대칭적 관계에서 수혜자를 대상화해온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라는 관점에서는 특정인이 우월한 위치를 점하지 않고, 주종의 관계를 이루지 않는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 역시도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다른 구성원들을 존중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론적 입장에서만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복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가치 창조’이다.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산업화 시기에 우리 사회는 성장과 개발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 생존 경쟁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그러나 탈산업화 시기에는 환경 보존과 지속가능한 성장이 중시되고 경쟁과 배제보다는 배려와 포섭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이러한 탈산업화 시기의 가치는 기독교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가치를 창조하여 활성화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세우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역 공동체 세우기 전략은 지역 주민들이 나름대로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의식을 형성하고 주체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인 과정과 전략들은 꿈 그리기, 보물찾기, 사람 세우기, 공통의 의제와 일감 발굴하기, 관계 만들기, 민주적으로 협의하기, 더불어 나누기 등으로 나누어진다.[2]

지역 공동체 세우기는 먼저 ‘꿈을 그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본에서 일평생 마을 만들기에 헌신한 전문가는 마을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꿈을 그리는 것’을 꼽았다. 꿈은 공동체의 회복, 아름다운 동네, 편리한 시설, 생태적 삶 등을 소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꿈을 그리고 전파하는 단계가 마을 만들기의 시작이자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기독교 정신과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이러한 꿈을 그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은 기독교인들만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보물찾기’는 특정 지역이 가지고 있는 보물(흔히 쓰는 표현으로 자원)을 찾는 것인데, 이러한 보물을 찾는 경우 매우 큰 추진력과 탄력을 받게 된다. 보물을 소재로 하여 마을의 성장가능성을 발견하고 지향성을 설정하기도 한다. 마을이 전통적으로 구심점으로 삼아온 역사나 자랑거리가 마을의 보물이 될 수 있는데, 기후나 자연 경관과 같은 풍토적 가치와 역사 사건이나 문화유산과 같은 역사적 가치,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이나 행사, 축제와 같은 행위적 가치로 구분된다(다무라 아키라: 70:74). 특히, 비도시지역의 경우 지역 특산물이, 도시 지역의 경우 잊혀진 역사나 문화 유적 등이 좋은 보물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에코뮤지엄’이라는 개념이 활용되고 있다. 에코뮤지엄이란 프랑스에서 1960년대 후반에 생긴 개념으로 불어의 에코뮈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에코뮤지엄이라는 개념은 스웨덴의 스칸센 야외박물관으로 시작한 생활사 복원운동의 전시기법에서 처음 생겼고, 생활 전체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집의 박물관’이라는 아이디어에서 기인했다(오하라 가즈오키: 19). 우리말로 번역하면 ‘생태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에코뮤지엄은 단순히 생태학에 관한 박물관이 아니라 박물관 그 자체가 지역에서 환경생활의 친화적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환경보전형 마을만들기’ 활동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윗글: 21-22).

이렇게 보면, 마을에는 공동체 운동의 자원이 되는 다양한 보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유후잉 마을은 한국 언론에도 많이 소개된 사례이다. 녹음이 우거진 분지형태의 온천지대에 위치하여 습온 식물의 보고였던 이 지역에 골프장 건설 붐이 불게 되었을 때 주민들은 ‘유후잉의 자연을 보호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자연 보호를 주장하며 폭넓은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대규모 자본과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고, 료깐(여관) 경영자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힘으로 친환경적인 생활형 관광지를 만들어 마을 자체가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박물관이자 관광지로 만든 것은 환경보전형 마을만들기의 매우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사람 세우기’는 현장 일꾼의 역할을 하는 지도자를 세우는 것과 주체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참여자를 교육하는 것을 포함한다. 성실성과 공평성을 가진 일꾼도 중요하지만, 모든 공동체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없이는 공동체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주민 대표가 주도하는 운동이 아니라 모든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민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 모두 주인 의식을 갖도록 동기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구성원의 합의와 관심의 최대 공약수로서 공통의 의제와 일감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통의 의제와 일감은 가능하면 많은 수의 구성원이 지지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폭넓은 지지와 참여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의제와 일감을 설정하지 않고, 공공의 관점에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이해관계를 중시할 경우, 주민 운동이 자칫 지역 이기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로는 동네 하천 살리기, 생태 농업과 같은 자연 생태 운동이나 마을 공유지 마련, 공동 자산, 트러스트 운동과 같은 공동체 회복 운동을 참고할 만하다.

‘관계 만들기’는 이웃 사이의 관계, 구성원 간의 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공동체 회복을 강하게 지향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공동체로 단순하게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적인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이 함께 꿈을 나누며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도록 인격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에서 바자회 같은 활동을 할 때에도 교인들끼리 하기보다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주민들을 단순히 손님으로 부르기보다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함께 기획하여 진행할 수 있도록 하여 활동의 공동 참여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공동체를 지향하는 바람직한 태도이다.

다음으로 ‘민주적으로 협의’하는 것은 주민자치센터나 반상회 같은 정부 주도의 행정기구가 아니라 주민 위주의 자발적으로 풀뿌리로부터 참여하여 협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의사결정 기구로서의 민주적인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더불어 나누기’는 마을 만들기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 다양하게 시도되었던 정부 중심의 지원정책이 신뢰를 상실한 가장 큰 이유는 공평한 나눔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운동의 성과가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참여자들 사이에 공평한 나눔이 이루어져야 하고, 필요한 재정 역시 투명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역 사회 활동을 효과 있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구성원들의 지역 사회활동에 대한 인식과 참여 의향을 조사하여 지역 사회활동을 전담할 수 있는 전략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교회 소그룹을 TF팀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교회 전체가 지역 사회 활동을 하기는 어려우나 각종 소모임들이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더 자발성이 있고,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게 되어 많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이 소그룹 TF팀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를 조사하고 구체적인 공동체 세우기 전략을 모색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운동 사례



지역 공동체 운동의 내용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단순히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약해져가는 현대 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고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 인간미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단순한 봉사나 구제 활동보다는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토론할 수 있는 모임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참고할 만한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1) 생태 공동체 운동

1980년대 생협운동과 함께 벌어진 환경과 생태공동체 운동은 생태적 환경파괴가 급증한 최근까지도 높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생태 공동체는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지역의 순환경제체계를 만들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현대 거대 사회를 대체하는 대안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의 산물이다.

생태공동체운동센터에서는 생태성, 공동체성, 영성의 세 가지 기준을 강조한다. 여기서 영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생태성과 공동체성 만큼이나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진다. 생태공동체의 중심에 영성이 자리하고 있지 않으면 그 내용이 아무리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회 체계와의 차별성은 없어질 것이므로 공동체적 영성, 생태적 영성, 더 나아가 우주적 영성에까지 자아를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 생태공동체가 종교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성은 종교와 깊이 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적 생태공동체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의식적 노력과 자각을 강조한다(홍성태: 4).

웰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갈수록 커지면서 생태공동체의 가치는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이른바 신토불이와 유기농업만이 한국 농업의 실제 희망이라고 한다. 생태공동체는 이 희망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나 한국의 농촌은 공업적 농업으로 심하게 병들었을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멋을 잃은 척박한 곳이 되었다. 생태공동체는 한국의 농촌이 지니고 있던 생태문화적 경관을 되살려야 한다. 한농복구회나 함양 두레마을, 한생명공동체 등은 생태공동체의 좋은 보기가 되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도 상당히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강원도 화천의 토고미 마을과 충남 홍성의 문당리 마을도 환경 농업의 대표 사례로 뽑힌다.



(2) 녹색 가게 운동

1991년 서울YMCA 생활협동운동으로 과천생협 공동체가 형성되어 환경교육 및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보급을 위한 생협활동이 발단이 되어 시작한 녹색 가게 운동은 생활용품을 다시쓰고 바꿔쓰는 생활문화운동이다. 녹색가게는 우리 주위의 소비물품들을 교환하고 순환시켜 자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실천하여 녹색지역사회건설에 힘쓰는 지역 공동체 운동이다. 이러한 녹색가게는 구체적인 개인의 실천을 유발하며 개인의 실천이 사회공동체화 하도록 돕는 지역 공동체 운동의 센터로 주부 및 청소년, 직장인, 노인 등 다양한 연령층의 주민들이 '녹색가게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민주성과 투명성의 원칙아래 지역 주민 스스로 펼쳐가는 생활 환경 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4]

또한 기아대책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자선가게라고 할 수 있는 <행복한 나눔>은 지역의 자원을 통해 운영되는데, 교회와 단체는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기부하여 매장을 열고, 각 지역 기관과 주민들의 자원봉사와 물품 기부로 운영된다. 각 지역 매장의 수익금의 50%는 지역의 필요를 리서치하여 진행되는 지역 복지 사업을 위해 사용되며, 50%는 기아대책의 해외 사업장을 통해 전세계 빈곤 퇴치를 위해 사용된다. 또한 지역 매장에서는 지역 내의 취약 계층(특별히, 여성)을 고용하여 지역의 고용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5]

그리고 한국 교계의 사회적 기업 중의 하나인 ‘사랑의 줄잇기 가게’는 자원봉사자들이 중고물품들을 깔끔하게 손질하여 싼값에 판매하고 수익금은 전액 공공복지에 사용한다는 100년 역사의 영국 채리티 샵의 운영 방식과 정신을 이어 한국에 접목한 가게이다. '사랑의 줄잇기 가게'는 새 옷을 싸게 구입해 80%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의류회사들이 스톡세일(stock sale·일명 땡처리)을 하는 이월상품이기에 가능하다.[6]



(3) 커뮤니티 비즈니스

지역 공동체 세우기의 한 사례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앞에서 지역공동체 세우기 전략의 하나로 ‘보물찾기’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 사업을 기획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로 일본에서 시도되고 있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1994년부터 일본에서 만들어서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식 영어이다. 일본은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 오사카를 중심으로 황폐화된 지역이 증가하는 등의 일본형 도시 공동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하여 도시 내부 문제 연구에 몰두하여 나온 것이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단어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건강하게 만드는 주민 주체의 지역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나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주민 스스로 지역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비즈니스로 전개하려는 것이다(호소우치 노부타카 엮음, 20-21).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일반 기업과 크게 다른 점은 ‘지역을 위해서’ 또는 ‘사람을 위해서’ 일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영리추구를 제일의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사회적 기업이 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을 추구하여 영업활동을 수행한다.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이타적 동기를 추진 동력으로 하여, 사회적 공헌을 사업으로 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이 저소득 계층의 빈곤 극복을 목적으로 한다면,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 사람들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효과는 다양하게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은 참여자의 일하는 보람과 자아실현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 다양한 지역사회 문제의 해결, 지역 문화 계승과 창조, 경제 기반의 확립 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속성을 전제로 하면서 적자를 내지 않고 기업을 유지해 가는 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기업이 흑자를 내지 못하면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성공하고 지속적으로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정신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가격과 품질만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공헌과 환경보호, 인권존중 등을 고려해 이를 소비해 주는 고객이 있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조직,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 두루 인정받고 이들이 서로 격려하고 연대하여 힘을 모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지역공동체 운동의 사례로서 굳이 비즈니스를 논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와 기업의 개념이 지나치게 오염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자본 곧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의미하고, 기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인 양 이해되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상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아담 스미스의 사상마저도 아전인수로 왜곡시킨다. 흔히 아담 스미스의 사상을 나타내는 저서로 「국부론」이 얘기되지만, 그의 사상은 「도덕 감정론」에 더 잘 드러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이상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근대 자본주의를 등장시킨 청교도 윤리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7]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 기업에 대하여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고 소수자를 존중하는 태도로 기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최근에 기존의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공동체 자본주의’이다. 공동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성경적, 시대적 대안으로, 경제자유와 경제정의의 유기적 조화를 지향한다. ‘다 같이 더 잘 사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약자의 천부인권과 정직(Integrity)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정의 하에서 개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가 최대한 보장되고, 창의적 방법에 의한 자발적 나눔이 문화가 되는 자본주의가 공동체 자본주의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 자본주의는 지역 공동체 운동의 전략적인 요충지가 된다. 왜냐하면 지역 사업조차도 지나치게 자신이 속한 지역의 이해관계만을 위해 전개된다면,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기여보다는 자기 지역만을 위한 사업으로 전락하여 자칫 지역 이기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자본주의 정신은 지역 사업이 사회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포섭하는 데 기여하도록 지침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자본주의는 곧 청교도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근대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해 태동되었음과, 처음 태동될 때부터 이미 공동체 정신을 그 핵심요소의 하나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자본주의에 터한 지역 공동체 운동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본래 청교도 윤리에서 유래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되찾고, 왜곡된 자본주의로 인해 피폐화된 현대인들에게 공동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 운동을 교회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를 포함한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요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서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지역을 활성화하고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교회가 참여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관건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제시할 수 있는 사례가 아직은 거의 없으나 임실치즈마을은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인 1960년대에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와 예장 통합 교단의 심상봉 목사가 의기투합하여 마을의 빈곤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시작한 치즈 사업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임실치즈마을은 그 시작부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운영위원회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으며 민주적인 의사결정으로 마을을 운영해 하고 있다.





6. 나가는 말



교회는 사회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교회의 모습도 변하게 된다. 시대마다 특정한 역사 상황에서 특정한 교회의 생활과 형식이 나왔고, 역사상 특정한 신학자들이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교회관이 있었다. 따라서 근본으로부터 교회라는 개념은 주어진 각 시대의 교회의 형태에 의존하는 것이다. 한스 큉은 교회의 본질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형이상학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역사 형태로만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관은 끊임없이 변하는 역사 상황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요구인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모습은 교회 자체와 더불어 필연으로 계속되는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따라서 언제나 새로이 시도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자신들이 처한 시대를 개혁하기 위해 성서를 가지고 모든 것을 시험하고 그 원리를 적용하면서 그 당시의 문제에 답하는데 전력을 쏟았던 것처럼 이 시대에는 현재의 상황에 맞는 교회관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의 사회가 각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며 시민의 덕성을 중시하는 시민 사회의 성격을 강조한다고 할 때, 교회 역시 이러한 시민 사회에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나치게 물질을 중시하는 경제주의식 사고와 약육강식의 무한 경쟁 체제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현존의 가치를 초월하여 성서가 제시하고 있는 본래의 기독교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가치 및 규범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회가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와 규범에 따라 지역 사회에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때에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의 공공성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지역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한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교회가 속한 지역에서조차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더 이상 지역 교회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교인들도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오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 역시 지역에 대한 관심이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라고 하지만, 외부와는 단절된 채 안으로의 결속에만 집중한다면, 교회는 더욱 더 게토화 되고 ‘끼리끼리’의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종교성의 추구는 설사 그들만의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지평에서 어떠한 기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교회는 지역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역에 대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교회는 교회가 속한 지역에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이 땅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에 처한 이웃들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여 좁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다.[정재영]





도움받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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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새로운 생태계로서

작은 생명 교회를 주목하자!”



이원돈 목사 (부천새롬교회,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





한국교회의 상황은 드디어 도저히 눈뜨고 볼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쓰나미 이후 간절히 선한 목자를 바라는 시대 이 시대의 백성들은 지금 내몰림과 따돌림이라는 처철한 목자 잃은 양떼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두 개의 한국 교회



한국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대형 교회 그리고 대형 교회가 되고 싶은 교회. 교회 성장에 매몰된 한국 교회의 세태를 꼬집는 예리한 진단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형교회가 최근 큰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산업화 시대의 무한 경쟁적 승자독식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미국 성장주의형 대형교회의 대명사인 미국의 수정교회가 파산을 목격하고 그 여파로 우리나라의 초대형 교회 중에도 몰락 직전의 모습을 보임을 우리는 지금 다 함께 지켜보고 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 부러워하던 수정교회 그래서 한국 목사님들의 미국순례관광의 필수코스였던 성공적인 교회성장의 모델 수정교회를 앞으로 목사님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이렇게 하면 교회가 파산한다는 교회성장주의 운동의 몰락의 현실을 배우는 필수 코스로 자리 매김하여야할 처참한 처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2. 한국 교회의 이미지:

보수주의에서 근본주의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노르웨이에서 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붙잡힌 테러범이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밝히면서 `근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노르웨이의 그는 근본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면 근본주의자란 누구인가? 오늘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걸핏하면 가스통을 들고 나오는 분들이 계시고 단군 상의 목을 짜른다든지 지하철에서 거품을 물고 예수천당 지옥 불신을 외치는 이런 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분들을 우리는 대게 극우 근본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불교 사찰에 들어가 불상에 십자가를 그려 넣는다든지 사찰 땅 밟기를 한다든지 하는 이러한 행동을 하는 분들을 우리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두렵게 하는것은 한국 개신교는 광신도, 십자군, 초딩, 개독교, 짝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지금 "한국교회는 '보수'적 경향을 넘어서 근본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한주간의 사회적 이슈는 무상급식 선거이었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서울시 무상급식 선거는 한국사회 진보측의 보편적 복지대 보수측의 선별적 복지의 한판 승부이었다. 그런데 결론은 진보측의 보편 복지의 한판승으로 결론이 났다. 무상급식 선거날 제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후배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번 투표 최대의 패배자는 한국 개신교회다”

왜 한국 교회가 이번 선거의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는가? 이번 선거에서 대형교회들이 무상급식 전면 시행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이것은 시장이나 회사처럼 사적기관이 아닌 공적인 기관인 교회가 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일은 교회 스스로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적 이익 집단임을 자임하는 행위를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저지르고 있는것을 의미 한다. 과거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약자들 편을 들며 민주화운동에 나섰을때는 이런 욕을 먹지 않았다. 비록 기득권 보수진영으로부터 정치목사라는 말은 들었어도 국민전체로부터는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내놓고 가진자 기득권자들 편을 드는 일부 대형교회 보수 목사들 때문에 한국 기독교는 세상의 비웃움과 조롱거리가 되어버리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공공적이고 보편적인 무상의 원리를 공격하고 무상의 원리가 확산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하는 사람 들과 집단이 바로 대형교회의 보수목사들임을 보고 이들이 이번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투표를 선동하고 보편적 복지와 무상 급식을 반대하는 편에 서는 것을 볼때 이들 이야말로 인간에게 무상의 은혜를 무한히 주시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며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더구나 내년 총·대선 앞두고 조용기목사와 금란교회 김홍도목사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등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목사들을 내세운 우파 성향의 기독교 정당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는 언론의 보고를 들을때 이들이 도대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오늘 한국교회 중 일부 대형교회들이 권력과 돈과 신도 수와 교회건물의 크기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무엇인가? 교회가 공적이고 보편적인것을 잃고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선별적이 될때 교회가 정의를 잃어 버릴때 어떠한 심판이 임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3. 기후 생태계처럼 한국 교회 생태계도 급변하고 있다



최근 엄청난 폭우가 또 쏟아진다. 이렇듯 전례 없는 집중폭우는 기후변화의 양상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처럼 지금 지구촌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들어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의 생태계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우리는 올해 들어 산업화 시대란 무한경쟁 / 승자독식의 시대이었는데 그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리는 카이스트학생의 자살 모습을 보면서 이 산업화시대의‘생존경쟁-효율-속도-성과주의’가 파산하여 우리 모두를 자살로 몰고가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목격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이러한 산업화 시대의 무한 경쟁적 승자독식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미국 성장주의형 대형교회의 대명사인 미국의 수정교회가 파산을 목격하고 그 여파로 우리나라의 초대형 교회중에도 몰락 직전의 모습을 보임을 우리는 지금 다 함께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생태계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지금 산업화 시대가 황혼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대는 산업화시대를 넘어서 있는데 우리 한국 교회는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대형교회 신드롬에 옵티마이즈 되어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3-1. 교회생태계의 변화



① 우리는 한국대형교회의 몰락과 기독교정권의 몰락 이후의 저성장시대의 한국교회를 준비해야 한다.



실천 신학 대학원의 은준관 박사님은 최근 한국교회를 이렇게 진단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선한 싸움이 아니라 교인을 쟁탈해야 하는 무서운 종교 전쟁터가 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교회 성장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학적 색맹이 되어 이 흐름의 비밀을 읽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스스로 영적으로 살려고 젊은이와 지식인이 교회를 조용히 떠나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제 메가 처치와 작은 교회 사이의 싸움이 아니다. 미래의 싸움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세대들과 교회가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가에 있다.

설사 2050년에 한국교회 교인 수가 400~500만으로 축소되는 불운이 온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 400~500만 명이 하나님나라를 존재 이유로 하는 하나님의 백성인가, 창조적 소수가 되어 역사를 변혁해 가는 남은 자인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이 이렇게 들린다. 우리 한국 교회는 한국교회의 크기가 몰락하고 한국교회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기독교정권의 몰락 이후의 저성장시대의 한국교회를 준비해야 한다.



② 사회적으로 소셜 테이너라고 하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목양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 그동안 세상을 지배하던 산업화 시대의 무한 경쟁적 승자독식주의의 경쟁형 인간 이후에 이제 어떠한 인생이 들이 다시 탄생하고 있는가? 지금은 한 경쟁적 승자독식주의의 경쟁형 인간에서 이제 돌봄과 나눔과 섬김의 목양적 인간으로 돌아서며 그러한 인간형이 존경 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운데 이 돌보고 나누는 목양적 인간관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교회의 목사인가, 장로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인가, 교회인가?

소셜테이너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가? ‘소셜테이너’는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최근 주목받는 소셜테이너는 단연 배우 김여진씨이다. 그녀의 이름 앞에는 ‘개념찬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다고 한다.

그녀는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 소식을 듣고 홍익대학교 본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농성 중이던 이 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녀는 트위터로 부지런히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소식을 실어 날랐고, 반찬을 실어 날랐으며, 트위터로 뜻을 모은 시민들과 함께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광고를 신문에 실었다.

또 다른 분으로 정혜신 박사라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이분은 자살의 위기에 직면한 쌍용 자동차 노조원을 심리상담을 하여 주었는데 그녀가 상당하는 동안에 그분들의 아이들을 바깥에서 정말 진심을 다해서, 정말로 열심히 놀아주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평택 쌍용차 해직자 가족을 찾은 가수 박혜경씨와 레몬트리 공작단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최근 신문기사에서 영화배우 김여진과 가수 박혜경씨 그리고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박사를 보며 이들이야 말로 파산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시대의 신자유주의의 인간형이후 고치고 싸매고 치유하는 목양적 인간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태일 이후 185일을 고공농성을 하여 3만 명이 부산으로 집결하게 만든 김위원장이라는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 피조물이 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소셜테이너라고 하는 사회의 새로운 목양자가 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제는 교회도 성공만을 바라보고 서로 경쟁하는 낡은 시대의 삶의 가치를 버리고 서로 나누고 섬기고 돌보는 내양을 치는 목양적 삶을 사는 부활한 인생들로 새롭게 거듭나 부활 이후의 서로 나누고 섬기고 돌보는 삶을 신나게 출발하는 생명목회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③ 2013의 한국교회 WCC 총회 유치로 교회의 새로운 마당이 준비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세계 기독교인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2013 WCC 제 10차 세계 총회 부산에 유치하게 되었다.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제 10차 WCC 세계 기독인 대회는 우선 그 주제부터가 주목할 만다. 생명 정의 평화가 총회의 주제로 결정된 것은 바로 생명 정의 평화를 절실히 요구되는 바로 아시아와 한국의 상황이 반영된 주제로 환영할 만한 주제가 선정되었다.

둘째로는 아프리카의 파다레(열린마당)와 남미의 뮤티라오(Mutirao)에 이어 한국대회는 마당이라는 개념이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 부산 총회때 우리가 활용했으면 하는 우리 한국의 마당이란 무엇을 뜻하는 개념인가?



첫째로. 마당은 열린 소통 구조 이다. 한국 사회에서 마당이란 우선 가족공동체와 마을과 지역사회과 만나는 열린 소통 공간이듯이 이 마당 공간에서 어떻게 가족과 교회와 마을뿐만이 아니라 세계와 만날 수 있는가하는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마당 공간이 펼쳐져야 할 줄로 믿는다.

둘째로 한국의 마당에는 판이 벌려지고 그 판에는 해학과 소통과 해방의 맛이 있다.

셋째로 한국의 마당의 절정은 뭐니 뭐니 해도 갑자기 구경꾼과 관중이 무대에 뛰어들기 시작하고 배우과 관객이 어깨동무하고 하나가 되어 대동의 세상을 이루는 그야말로 해방의 절정을 맛보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우리는 이번 10차 세계 WCC 총회때 이 마당의 진행 절정에 관객들이 무대로 뛰어들고 주최측과 참여자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새로운 우주와 새로운 세상과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우주적 드라마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5. 새로운 에큐메니즘 즉 공적 영성과 지역 에큐메니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교회 생명망을 짜기와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의 가능성이 있다.



한국교회는 목이 마르다. “추락하기만 하는 한국교회, 왜소해져만 가는 교회운동, 대안이 없다는 말인가?” “예수 정신을 구현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회모델이 무엇인가?” “건강한 교회운동의 방법론은 없는가?” <생명평화마당> 9월 포럼은 교회의 새로운 대안을 묻고자 한다. 생명과 평화의 사상을 퍼뜨려야 할 1차 영역이 바로 우리들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는 그동안 생명과 평화의 사상으로 교회갱신을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교회현장에서 유용하고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를 해왔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는 지금 한국교회의 새로운 대안을 5가지 부분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운동을 생태적으로 연결하며 새로운 교회의 탄생을 그려보고 그것을 발전시켜 보려고 한다.



1. 지역사회 복지형 2. 교회시민사회형 교회 3. 생명생태형 교회 4. 도시창조형 교회 5. 교회 2.0 운동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 생명 평화 마당 교회 위원회에서는 이번 종교개혁주일 이후에 오늘 한국 교회의 생태계의 변화를 진단하며 대형교회 시대 이후 중소형 생명교회의 새로운 교회 패러다임과 생태계를 제안하려 하는 것이다.



1. 지역 에큐메니즘에 기초한 지역 사회 생명형 교회:

우리가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를 생각할 때 가정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이제 교회를 지역과 사회에서 분리 격리 고립된 한 개교회의 단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스스로 고립되고 자폐된 한 개체 교회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지역과 마을과 자연과 우주와 생태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에서 이제 교회는 마을속의 지역 속에 교회가 되어야 하고 목회자는 교회의 목회자인 동시에 지역과 마을을 목회하는 지역 생명 목회자로 적극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와 마을과 지역을 잇는 영적인 동시에 복지. 교육. 문화적인 지역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공부방, 도서관, 복지관, 주민자치 센타 등의 복지 교육 생태계를 만들고 이러한 복지 문화적 생태계들을 교회의 영적 그물망과 서로 연결 소통할 때 교회는 마을과 지역을 살리는 영적 생명의 구원 망으로 다시 설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교회일수록 지역 사회의 교회가 되어야 하며 자신만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지역 사회를 위한, 지역의 교회나 마을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도 개 교회 목사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목사가 되어야 하며 지역 사회에 있는 자원을 연결하고 동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화시대의 다품종 소생산체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화 다품종 소생 산의 시대의 미래 교회는 작고 영향력 있고 창조적인 다윗과 같은 교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윗과 같은 미래 교회들은 작지만 아름답고, 작지만 자유롭고 창조적인 교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작은 에큐메니칼한 생명 교회들은 창조적 작은 교회들로 작은 생명 생태망으로 지역을 파고들면서 실핏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덩치는 작지만 수많은 작은 다윗들로 분화하기도 하고 다시 연합 연대하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에큐메니칼한 영성으로 무장된 작은 지역 생명 생태형 교회로서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과 힘을 발휘하는 지역 에큐메니즘에 기초한 생명 생태적 영성의 생명 교회들이 될 것이다.



2. 공적 영성 상실로 게토화되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시민 사회형 교회 :

많은 한국 교회들은 개교회주의·기복주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서 기독교 영성과 사역의 공적 측면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교회의 공적 영성의 미발달은 크게는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였으며, 작게는 성도 개개인이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시민의 역활을 감당하는 것을 가로 막았다.

많은 신앙인들의 착각은 한국 개신교의 위가 개인적인 경건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데 있다. 개인적 경건은 하나님 앞에 개인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것이지만, 교회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사역을 감당해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 경건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의 사역을 이끌어줄 시대적 세계관 신앙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적으로 경건한 목회자 혹은 교회라고 해서 공적 영성의 결핍 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신학적인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패러다임을 기복적·성장지향적·개교회주의적 영성에서 공적 영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의 한국 개신교의 영성 코드에 공적 영적을 담아내는 신학적 재구성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지향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학준 교수 / 뉴브런스윅신학교)

우리는 향린교회 새민족교회 등 지금 이러한 교회의 공적 영성과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교회들이 탄생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건강한 의미에서 교회도 성장하고 있음을 보고 이러한 교회의 공적 영성과 사회적 책임이 최근 ‘2012 생명평화 기독교행동’으로 출범하며 새로운 한국교회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3. 농촌 지역 생명 생태 환경형 교회 : 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과 농촌교회 그리고 지역공동체"



한국 교회의 농촌교회에서 이미 생명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생명농업과 생명목회는 단순히 농법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의 문제이고, 생명문화의 문제이고, 세계의 관계를 생명적 관계로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복음사역에 매우 중요한 본질적인 과제가 된다고 보는 생명 농업 포름이 존재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생명 생태 목회가 준비되어 오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최근 기후문제를 중심으로 생태계의 위기를 맞이하며 이러한 생명 생태형 농촌교회들의 존재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이러한 생명 생태형교회에 대한 관심이 농촌교회에서 출발하여 도시교회로 그리고 마을과 지역의 생명 생태 살리기 운동으로 확산되어 감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20-30명밖에 안 되는 농촌교회라도 목회자가 마을의 목회자로 생각하면, 목회적, 선교적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WCC 총회가 진정한 에큐메니칼 정신을 우리가 다시 한 번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공론화하고 공감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피조물, 다른 인종, 다른 종단과 함께 사이좋게 잘 사는 것,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다시 한 번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WCC 부산총회를 준비하는 농촌교회 좌담회 중 이태영 목사)



4. 도시지역 도시 창조 목회형 “지역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도시목회”

(Creative Urban Ministry for Local Community)



지금 한국의 도시 교회의 일각에서는 "지역공동체 세우기와 마을 만들기"를 통해 도시 교회 공동체와 창조목회를 연구하는 공동체가 “도시 공동체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그룹으로 도시 공동체 연구소는 한국교회의 위기적 상황을 극복할 대안을 지역공동체를 세우는 지역교회운동에서 찾고자 새로운 도시교회 운동을 시작한다.

도시공동체 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변혁적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의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지역사회를 섬기고 지역의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금 발생하는 모든 한국교회의 문제는 결국 신앙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부재로 인해 나타난다고 보고, 우리 연구소는 궁극적으로는 교회가 지역과 삶의 현장으로 겸손하게 내려가서 공적인 책임을 다하며 지역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의 공적 표현, 실천, 공공신학의 구체적 실천, 교회의 정치적 책임, 사회와 지역에 대한 공적인 의사소통 등의 문제를 다루고 함께 토론하면서 앞으로 연구소가 어떻게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지, 또 한국교회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5. ‘교회2.0목회자운동’



= 교회 목회도 2.0 시대, “개방, 참여, 공유, 소통”해야

: 참여 공유 연대 web 2.0 매체 혁명 소셜 네트웍크형 교회=



나도 이러한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교회 소비자 운동과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 교회도 참여 공유 연대로 민주화 하여야 한다는 교회 민주화 운동이 젊은 목사님들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들 젊은 목회자들은 목회자 중심의 독단적인 교회 운영에서 벗어나 평신도 교인들이 교회 내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하는 민주적 교회 운영을 제일 큰 목회 방침으로 정하고 있다. 상호 평등한 의식과 협력적인 팀 사역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도력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결론:



최근 성공회 신학대학의 신용복 선생님이 한 신문사와 대담을 하셨는데 거기서 참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늘 새로운 창조성은 늘 변방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외부와 바깥, 변방과 마이너리티가 대단히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중심부는 언제나 기득권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중심부에서는 창조적인 변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인류역사의 전개과정을 보더라도 문명의 중심부는 늘 변방으로, 변방으로 옮아왔다.

왜 그러냐면 중심부는 늘 보수적 저항이 완고할 뿐 인데 반해, 변방은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새로운 것이 태동할 수 있는 창조의 지반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변화는 변방에서 오고 모든 새로운 에너지는 밖에서 온다는 것이다. 모든 에너지는 밖에서 변방에서 불어온다.

안철수 교수가 한국기업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동물원에 갇혀있다고 하였듯이 한국교회도 지금 대형교회의 동물원에 갇혀있다. 이 동물원에서 탈줄해야 하고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벤쳐 생태계가 탄생해야 하는데 그것이 중소형 생명형 교회들의 탄생이다.

혹시 우리 교회만 낡은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 체계를 닮은 대형 교회의 모습을 흠모하고 닮으려하여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작고 빠르고 창조적인 교회의 모습을 상상하며 세상과 새로운 소통을 꿈꾸는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생태계는 급변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산업화 시대에 한국 교회를 주도하던 대형교회 중심의 교회 성장운동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급격한 쇠퇴를 경험하고 있고 새로운 교회 생태계로서 공적 영성과 지역 에큐메니즘을 기반으로 한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과 새로운 교회의 생명망을 짜기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는 그 덩치는 크지만 이미 그 믿음과 도덕성과 사회성과 영성을 잃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큰 걱정과 근심과 진통을 앓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서 오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두려움이 없는 교회라, 작지만 아름답고, 작지만 자유롭고 독립적인 교회들이 될 것이다.

이처럼 미래에서 오는 교회는 크고 멍청한 골리앗이 아니라 작지만 창조적이고 영향력 있는 다윗과 같은 교회로 올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공적 영성과 지역 에큐메니즘을 기반으로한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과 새로운 교회의 생명망을 짜기를 준비해야할 때이다.

첫째로 "산업화 시대의 개교회 성장 패러다임"을 넘어 정보화 시대에 창조적으로 지역과 소통하는 "지역 섬김형 생명 목회 패러다임"의 교회의 탄생을 기도해야할 때이다,

둘째로 나도 이러한 교회를 다니고 싶다는 교회 소비자 운동과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 교회도 참여 공유 연대로 민주화 하여야 한다는 교회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 되어야 할 시기이다,

셋째로 최근 발생하는 모든 한국교회의 문제는 결국 신앙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부재로 인해 나타난다고 보고, 지역공동체 세우기와 마을 만들기"를 통해 도시 교회 공동체와 창조목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며 지역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헌신해야 할수 있는 새로운 에큐메니칼한 공적 영성을 준비할 시기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를 준비하는 우리로서 가장 중요한 인식의 전환은 이제 교회는 교회와 마을과 지역과 지구촌을 잇는 공적 영성과 지역 에큐메니즘을 기반으로 한 교회의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과 새로운 교회의 생명망을 짜기를 준비해야 할 시기임을 자각하고 준비하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이원돈]











































































“<예수살기>의 교회운동”



양재성 목사 (예수살기,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예수살기 창립선언문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4:18-19)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것이 예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역사적 현장을 유기하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개인화해버렸다. 역사를 외면하고 단지 종교 영역 안에 갇혀버린 기독교, 삶을 간과하고 단지 말의 잔치로 숨어버린 기독교는 지금 극심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이 추락해버린 한국교회 모습은 어느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 예수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우리들의 허물임을 고백하며 회개하는 심정으로 예수 살기의 새로운 운동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감히 ‘예수살기’라 이름 하였지만 우리가 예수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반성과 뉘우침에서 이 모임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를 믿는 자리에서 예수를 사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 믿기는 예수 알기에서 시작하여야 하며 예수 따르기, 예수 살기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예수는 우리의 전 존재가 자신을 따라 나설 것을 요청하셨다. 부자가 되기를 포기할 뿐만 아니라 부 자체를 포기하라고 하신다. 예수가 가르친 구원은 개인의 심리적 위안이나 죽은 후에 타계에서 이루어지는 구원만이 아니다. 예수의 구원은 개인의 경건과 사회적 성화, 더 나아가 우주적 성화까지 지향한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가 기쁜 소식을 듣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갇힌 자가 놓임을 받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치유와 해방의 메시지였다. 그는 개인을 억압하는 부당함과 사회를 억압하는 불합리와 생명을 억압하는 불의함에 맞서 싸우셨다.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생명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역사의 진보에 발을 맞추어 책임 있는 행동을 해나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실제로 참된 기독인은 역사의 고비마다 민족과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며 예수를 따르는 삶의 순수성을 지켜온 양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할 무렵 기독교는 민족의 자주적 의지를 키워가는 온상이었다. 일제가 기독교신앙을 타계적, 초월적, 개인적 신앙으로 변절시키려는 의도에도 당시 전체 인구의 1% 정도에 불과한 기독인들이 전국적으로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살해, 구속, 부상당한 피해자 중 기독교인이 과반수를 넘어설 만큼 기독교는 3.1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민족성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저항하며 의연하게 순교의 길을 가기도 하였다. 1970년대 유신 정권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할 때에 기독교는 산업선교 등을 통해 이 땅에 고난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였고, 이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촉발시켰으며, 고난의 현장에서 탄생한 민중신학을 꽃피웠다. 한편 한국사회가 통일문제를 금기시하던 때에 한국교회는 해외에서 남북 교회가 만나 화해와 교류를 선언하고, 마침내는 1988년 한국기독교의 통일선언과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으로 이어지는 선도적 투쟁으로 통일운동의 물고를 트기도 하였다.

이렇게 기독교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난한 민중과 함께 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역사의 고비마다 신앙 양심을 지켜온 사건들에 주목하고 이들에 의해 유지해 온 예수를 살아가는 전통을 계승해 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일제 강점기에 신사에 참배한 잘못, 해방 후 이승만 독재 정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잘못, 유신군부독재의 인권 유린ㆍ억압ㆍ학살을 묵인하고 동조해온 죄악, 아울러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에 동참하여 이웃나라에 고통을 가하는 죄악을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며 민족 앞에 사죄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과 평가는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규정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이며, 한국교회가 참된 교회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는 상대적으로 민주화되었고 조금씩 사회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비민주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 반사회적, 반역사적, 반민주적인 길을 가고 있으며, 결국은 교회 내 윤리는 실종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자신이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삶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같은 길을 가는 동지들과 연대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이에 역사에 책임적 자세로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기독인들이 모여 새로운 기독인의 모임 “예수살기”를 세운다. 우리는 이 공동체를 통하여 책임적인 삶을 살아가고자하며 다음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나아가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출애굽을 통해 히브리 민중이 이룬 해방된 공동체를 추구한다.

독재와 억압의 표본이었던 애굽의 바로 아래서의 종살이는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였고 삶을 송두리째 파괴시켰다. 이에 야훼 하나님은 신음하던 떠돌이, 가난뱅이들, 노예들을 대표하는 히브리 민중들을 내 백성이라 칭하시며 그들을 해방시킬 것을 선포하셨다. 마침내 애굽과의 투쟁을 통하여 고통과 억압에서 히브리 민중들을 해방시킨 하나님은 해방자이며 그들이 이룩한 히브리 공동체는 해방공동체였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하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된다. 즉 민중을 섬기는 일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그것이 참된 기독인과 거짓 기독인을 구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인간화, 반생명성을 기독교의 적으로 규정하며 인간과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세력에 대항한다.



둘째,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의 중심인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간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기독교 신앙의 기반이다. 이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것이 복음이다. 예수의 태어나심, 삶, 죽으심, 부활하심과 가르침이 복음의 내용이다. 그 예수가 평생 붙들고 사신 것은 하나님 나라였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여기에 충실했다. 그의 죽음도 십자가도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였다. 궁극적으로 기독교 운동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다.

천사들은 예수의 태어나심이 하늘엔 영광이고 땅엔 평화라고 노래하였다. 예수는 생명을 주러왔고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긴 자를 고치시고, 소외당한 자를 세우시는 등, 생명을 살리고 일으키고 보전하는 일은 예수의 중심 사역이었다. 생명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이 시대에 생명을 살리는 일은 분명히 하나님의 일이다. 또한 예수는 평화를 주러왔다고 자신을 규정하셨다. 때문에 예수는 거짓 평화인 로마제국에 빌붙은 예루살렘 체제와 대결하여 성전을 숙정하셨다. 예수께서 평생을 두고 씨름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의 두 기둥은 생명과 평화인 셈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생명과 평화의 나라다.



셋째, 우리는 성령의 역사와 교회의 정체성을 이룩하여 나간다.

초대 교회를 가능하게 한 것은 성령이었다. 성령께서 임재하시어 예수의 가르침을 생각하게 하셨고 예수를 따르게 하셨다. 성령은 사람들 안에 분열된 마음을 치유하여 하나되게 하신다. 성령의 역사는 우주가 하나님의 몸이며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의 지체로 한 형제요, 한 자매임을 보여준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위임받은 공동체이다. 초대교회 안에서 종과 자유인, 이방인과 유대인, 여자와 남자가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갈라진 것들이 하나되는 화해는 공동체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웃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무관심과 오만을 회개하고 그들과 자매, 형제 관계를 회복하는 운동이었다. 또한 성령은 무력한 자들을 일깨워서 세상을 변혁하도록 역사의 현장으로 뛰쳐나가게 하신다.



넷째, 우리는 정의ㆍ평화ㆍ창조질서보전에 앞장선다.

세계교회협의회는 그 중심 과제를 정의ㆍ평화ㆍ창조질서보전과 폭력극복운동에 두고 있다. 그것은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교회는 이 과제에 충실할 의무가 있다. 교회는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고 평화공동체를 건설하고 창조질서를 보전하며, 폭력에 반대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예수살기 신앙고백문



우리는 해방의 역사를 통해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신론)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살아 참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기독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이 생명과 평화의 영임을 믿는다. (성령론)

우리는 예수의 몸인 교회가 생명, 평화 그리고 정의의 세상을 여는

하나님의 일꾼임을 믿으며 (교회론)

성서와 더불어 자연과 역사가 진리와 은총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성경론)

우리는 모든 생명이 자유로이 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믿으며 (하나님 나라)

예수를 따라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임을 믿는다. (제자도)





예수살기 행동강령



<개인>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성찰한다. (말씀)

우리는 날마다 교회개혁과 사회변혁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

우리는 생명을 살리고 보전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세우는 일에 순명한다. (순종)

우리는 만물을 하나님께 하듯 지극한 사랑으로 대한다. (정체성)



<교회>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유화하지 않는다. (공교회)

우리는 감사와 기쁨 그리고 두렵고 떨림으로 성례에 참여한다. (경외)

우리는 올바른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한다.(개혁)



<사회>

우리는 고통 받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 (이웃/봉사)

우리는 겨레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힘쓴다. (통일)

우리는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며 생명, 평화를 위해 일한다. (평화)

우리는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힘쓴다. (평등/정의)

우리는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힘쓴다. (인권)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와 위선에 저항한다. (정의/저항)

우리는 진리를 따르고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과 연대한다. (연대)

우리는 지구를 살리는 창조질서보전에 힘쓴다. (생태)

우리는 이웃종교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존중한다.(이웃종교와 대화 연대)





예수살기 운동 및 모임 수칙



1. 우리는 서로에 대하여 깊은 동지적 이해와 사랑을 가진다.

2. 우리는 운동의 자율성을 강조하므로, 어떤 전체주의나 자율성을 침체시키는 요소를 경계한다.

3. 우리는 운동의 통일성을 추구한다. 서로 믿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힘을 합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4. 우리는 운동의 역사성에 주의한다. 올바른 역사흐름과 거슬러 흐르는 운동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고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성찰과 분별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5. 우리는 서로 다른 교파나 종교 단체에 대해서 포용성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대화하며 역사의 공동과제를 위하여 협력한다.

6. 우리들은 각자가 모임에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한다. 우리는 실천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월정 회비를 성실하게 납부하여 회원의 의무를 다한다. 매주 목요일을 기도의 날로 정하여 정해진 시간에 회원 상호간 기도의 만남을 가지며 매주 홈페이지(www.withjesus.or.kr)에 들어와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건강한 신앙과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학습을 열심히 한다.

7. 우리는 시간은 모두가 공유하는 공유물이므로 정확하게 지킴으로 남의 시간을 늦추거나 빼앗지 아니한다.[예수살기]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생명평화마당>은 그동안 기독교 사회운동 진영에서 그 위상이 어떠해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해 왔습니다. 우선 월례포럼을 활동의 근간으로 두고, 신학위원회를 중심으로 대중을 확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차근히 내용을 축적해 왔습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와 한국기독교의 모순과 폐단을 지적하며, 차세대 개신교의 개혁을 위하여 진지하게 자성하고 생명과 평화의 사역을 펼쳐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구현하기 위하여, 한국교회 영역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당연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교회위원회의 활성화에도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의 위상

1. 한국교회는 개혁과 새로운 대안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포스트 메가처치의 대안으로 중소형교회가 할 수 있는 교회개혁의 건강한 모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일각에서 시도되고 있는 지역사회형 교회모델, 시민사회형 교회모델, 생명생태환경형 교회모델, 도시창조목회형 교회모델, 교회2.0목회자운동 등의 시도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기류 속에서 <생명평화마당>이 지향하는 교회모델 또는 교회운동모델을 개발하고 확산시켜 나감으로써, 한국교회, 특히 중소형교회에 활력을 주고 목회의 신명을 더할 수 있어야 한다.

2. 작금에 있어서 교회개혁이란 무엇인가? 근본에 자리한 신앙관부터 개혁하고 진정성 있는 고백에서 기인한 본질적 개혁이어야만 한다. 외연만 그럴싸하게 바꾸는 시늉으로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실제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도출하고 실현가능하여 주효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3.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중소형 교회(농어촌, 도시빈민)모델로써, 실제적인 교회개혁을 이루어간다는 목표로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의 위상을 설정해야 한다.



<생명평화마당> 교회위원회의 역할과 활동계획

1. 우선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동역자 그룹을 형성해야 한다. 새로운 대안에 목말라하고 출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며 힘겨운 목회를 하고 있는 중소형교회의 목회자들과 만남을 주선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목회방안을 연구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나가야 한다. 그 같은 자료들을 엮어서 신학위원회나 사회선교위원회와 함께할 논의자료로 제시할 수 있다.

2. 교회위원회 중소형교회의 모델정립의 완성도를 위해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생명평화마당> 월례포럼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월례포럼이 신학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꾸려가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교회위원회와 사회선교위원회가 번갈아서 주도해야 한다. 그럴 때 ‘신학-교회-선교’라는 삼각구도 안에서 내실 있는 포럼이 될 수 있다.

3. 교회위원회의 활동의 결과로 얻은 성과는 전국단위로 적극적으로 유포하고 확산시켜 내야 한다. 이를테면 ‘생명과 평화를 향한 교회개혁 선언’을 선포하고 전략적으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함께 뜻을 가진 동역자들의 규합을 도모해야 한다.

4. 또한 이미 우리와 비슷한 내용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 단체들과 동지적으로 연대하여 ‘생명평화의 목회’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어야 한다.

5. 목회자 동지들과 끈끈한 정기모임을 기반으로 하고, <생명평화마당>의 내용과 조직을 바탕으로 하며, 연구하여 도출한 생명평화의 교회모델 또는 교회사역모델을 전국단위로 확산해 나가는 활동을 교회위원회 역할로 규명하고자 한다.

6. 창조적이면서 독창적인 모델을 연구하고 제시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미래적 대안을 마련하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환경을 서서히 형성해가야 할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1] 이 글은 정재영 “교회가 참여하는 지역공동체 세우기의 이론적 기초,” 정재영·조성돈, 「더불어사는 지역공동체 세우기」(서울: 예영, 2010)의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2] 이 내용은 이종수, “공동체와 마을 만들기,” 이종수 엮음, 「한국사회와 공동체」(서울: 다산, 2008)의 23-30쪽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3] 생태공동체운동센터 홈페이지(http://www.commune.or.kr)에서 인용.


[4] 녹색 가게 운동 홈페이지(http://www.greenshop.or.kr)에서 인용.


[5] 행복한 나눔 홈페이지(http://www.giversmart.or.kr)에서 인용.


[6] ‘사랑의 줄잇기 가게’는 자원봉사자들이 중고물품들을 깔끔하게 손질하여 싼값에 판매하고 수익금은 전액 공공복지에 사용한다는 100년 역사의 영국 채리티 샵의 운영 방식과 정신을 이어 한국에 접목한 가게이다. ‘사랑의 줄잇기 가게’ 홈페이지(http://www.lovingline.org/)에서 인용.


[7] 이것은 막스 베버가 자신의 저작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서울: 세계, 1988)에서 전개한 핵심 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