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7

공화(republic)의 사상적 토양과 에토스 정의 : 유학의 화(和), 화동(和同)을 중심으로 김단아

 


【한국종교 분과】

[한국종교분과 4발표]

공화(republic)의 사상적 토양과 에토스 정의 :   유학의 화(), 화동(和同)을 중심으로

김단아(서강대학교 철학과

1. 서론

동아시아에서 공화(共和)는 왜 republic의 번역어로써 채택되었는가? 공화에 대한 개념사적 연구들은 위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결론에 귀착한다.

이 지점에서 상상해 볼 만한 질문은, ‘만약 중국의 經書와 역사서를 통해 형성된 이러 한 동아시아의 지적 토양이 없었다면 과연 共和政體와 같은 제서구의 정치제도가 어 떠한 방식으로 수용 및 정착될 수 있었을까?’라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수용자에게 전혀 이질적인 정치제도라면 공화제 설립의 구호가 과연 대중에게 어떠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비록 그 이해의 방식이 오해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독립적 으로 발전해 온 두 전통이 조우한 데에는 그것을 전달, 융합, 재구성할 수 있었던 공 동의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1)

, 공화주의는 republic의 공허한 번역어가 아니며 양자가 지닌 공통점 때문에 접목된 단어라는 주장이 선 행 연구들의 공통된 가정이다 이에. 더 나아가 정상호(2013: 2016), 신주백(2017)은 공화주의가 republic의 번역어로써 기능하게 된 이유는 대동(大同)이라는 사상적 토양이 마련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본 논문이 주목하였고 강조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군주제의 부정 테제로서 공화가 수천 년동안 중앙집권적 왕권국가를 유지해 왔던 한국과 중국에서 쉽게, 그리고 급속 하게 뿌리 내릴 수 있었던 토착적 맥락이다. 서양에서 공화(res publica)의 본질을공공의 일 로생각한 것처럼 동양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국민 공의의 대변자로 표상되 는 군주가 사사로움을 버리고 애민과 선정을 향한대동공화(大同共和)의 정치 를이상 향으로 꿈꿔왔다.2)

정상호는 천하를 공공의 것으로 인식하고 애민정치의 시행을 목표로 하는 대동사회가 당시, 학자들이 공화주 의를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었던 사상적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동사회는 유가의 이상향으로 여

1)   이정환. 2013. “왕권찬탈과 정통주의 군주제 : 전근대 중국, 한국, 일본에서의 共和에 대한 재해석의 역사.” 대 동문화연구 제82, p. 449.

2)   정상호. 2016. “동아시아 공화(共和) 개념의 비교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505, p. 232.


겨졌으며, 실현을 위해 유학자 집단에서 여러 방법들을 고안해왔다. 대동사상이 유가에서 차지한 위상을 고 려한다면 정상호의, 주장은 일견 타당한 가설로 보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정상호의 주장은 타당치 않다.

우리는 여기에서 갈등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포용하려는 마키아벨리나 메디슨의 공화 주의와 달리, 갈등을 부정하고 원천적으로 제거하려는 공화주의에 대한 동양적 또는 한국적맥락의 그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3)

위 주장은 대동사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대동은. 정상호의 주장처럼 형식적인 동일(同一)이 아닌, 차 이를 인정한 채 한데 어우러짐을 추구하는 화동(和同)을 뜻하는 사상이다(장현근, 2012). 따라서 본고는 대동 사상이 공화주의가 수용될 수 있었던 사상적 토양이라는 정상호, 신주백의 주장을 수용하나, 다른 논거를 제 시하여 정당화하고자 한다. , 대동사상의 요체인 화동, 특히 화()에 주목하여 공화주의의 사상적 기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는 실증적 연구나 개념사적 연구가 아닌, 사상사적 연구임을 미리 명시한다. , 화나 공화에 대한 사 료적인 해석을 주된 연구의 방법으로 삼지 않고 기존, 개념사적 연구에서 배재되어왔던화 사상에주목하여 공화주의의 기틀로 여겨졌던 대동사상을 재해석한다. 또한 공화를 화를 통해 정의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 한 국에 부재하고 있는 공화의 에토스(ethos)를 우리의 사상적 토양 속에서 발견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2. 유학의 화()

군자는 화하면서 동하지 않고 소인은, 화하면서 동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널리 알 려진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자의 화는 동일과 구분되는차등적 지위의 개체들이 분명히 구분된 상태 에서 서로 어우러지는 것 을말한다 김단아( , 2020 : 77). 즉 타자에 대한 순응을 전제하는 동일과 달리 화는 여러 개체들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화는, 여러 개체들이 구분되어진 정적인 상태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개체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활발히 벌어지는 동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질적인. 개체들 간의 상호작용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하 며 갈등, 과정을 거치면서 개체들은 화해를 통해 균형을 찾아간다(Li Chenyang, 2014 : 9). 균형은 어느 한 쪽의 양보나 굴복을 통해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체들의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

화에 대한 이와 같은 추상적인 서술은 화를, 국 요리에 비유한 다음과 같은 안영(晏嬰)의 설명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과 화는) 다릅니다. ()는 국을 끓이는 것과 같아서, 물・불・식초・젓갈・소 금・매실로 어육을 끓일 때, 불을 때서 익히고서 요리사가 간이 알맞도록〔和〕알맞게 잘 조절합니다〔齊〕. 간이 부족하면 (양념을) 첨가하고, 간이 지나치면 (물을) 부어 요 리하므로, 군자는 이런 음식을 먹고 마음을 화평하게 지닐 수 있습니다.4)

3)    정상호. 2013. “한국에서 공화(共和) 개념의 발전 과정에 대한 연구.” 현대정치연구 62, p. 11.

4)    春秋左氏傳 , 「魯昭公」 , 20, “. 和如羹焉, 水火醯醢鹽梅以烹魚肉, 之以薪, 宰夫和之, 齊之以味, 濟其不及, 以洩其過. 君子食之, 以平其心.” : 차민경. 2020. “『논어 에』 나타난 공자의 ()’의 세계관과 상생에 관한 소고.” 유학연구 50, p. 278에서 재인용.

국을 요리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료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릇 안에 재료들을 넣고 물을 붓는 것만으로 국은 완성되지 않는다. 각각의 재료들이 화학 반응을 통해 변용을 거쳐야만 국은 완성될 수 있다. 그런데 단 순히 국을 끓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맛있는,         국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성을 갖춰야 하는가? 각 재료들 이 지닌 고유한 맛이 유지되면서도, 그것들이 국 전체의 맛을 해치지 않아야한다. 요리사는 재료들을 가감하 면서 마침내 그 지점을 발견한다 이처럼.   국의 재료들이 각각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맛을 내는 것처럼, 화는 여러 개체들의 종합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균형과 안정에 이르는 과정들을 총체적으로 뜻한다. 또한 국 요리의 목적이 재료들 간의 조화 그 자체이듯 화의,                목적도 화가 실현된 사회 조화로운, 사회 그 자체라고 이 해할 수 있다.

국을 끓이면서 간을 보는 사람이 필요하듯 화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유학에서 그 기준 은 예()이다. 예의 주된 기능은 마디지음, 구분지음()으로, 개체들 간의 구별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예에 는 계급의, 재생산을 정당화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예의, 적용 앞에서 모든 계급은 평등하게 여겨졌다. 즉 예의, 적용과 실천은 모든 계급에게 요구되었으며 왕조차도 엄격하게 예의 제약을 받았다 특히. 조선에서 예는 왕과 고위공직자들의 권력 남용과 자의적인 통치를 방지하는 기능을 해왔기에 조선의, 군주는 입헌군주 에 상응하는 지위를 유지해왔다(함재학, 2008).

이와 같은 예의 이중적인 특성 작용은- 차이를 고착화하면서 적용에는 평등한 특성 은- 화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일러준다 즉 화는. , 개체들을 분별하는 기준과 그, 기준들을 모든 개체들이 수용하고 실천했 을 때 실현가능하다. 예컨대 오늘날 실행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적용을 위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을 분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동시에 법에 대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와 실천이 필요하다. 두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해당 법을 통해 사회의 조화를 도모할 수 있다.

3. 공화(共和)의 개념사

지금까지 논의한 바에 따라 화에 주목하여 공화(共和)를 해석한다면 화, ()를 함께 한다()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3, 특히 조선과 현재 한국에서 쓰이고 있는 공화는 화의 함의를 담지하지 못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공화에 대한 역사적인 해석과 더불어, 좌우대립, 분단이라는 사건과 함께 정치적인 용 어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죽서기년 에서 공화는 주()대 폭정에 대항하여 여왕(呂王)을 내몰고 공백(共伯)의 화()라는 인물이 대 리 정치를 한 시기를 이른다 왕가의. 혈통을 받지 않은 이의 통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공화는 세습군주제 를 위협하는 정치체제로 여겨졌으며, 전근대 동아시아 3국에서 공화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 되었다(이정환,

2013).

사마천의 사기 에서도 주대 공화는 왕이 없는 시기로 묘사되지만, 공백의 화가 아닌 주공과 섭공이라는 두 신하가 공화, 즉 공동으로 화합하여 국정을 다스린 시기로 서술된다. 이와 같은 사마천의 서술에 따르면 공화는 세습군주제와 대치되는 시기가 아니며 세자가, 장성한 뒤 대를 이을 수 있도록 신하들이 일정기간 동 안 대리 청정하는 시기로 이해된다.

그러나 사마천의 서술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공화는 임금이 부재한 정치체제로 주로 여겨졌다. 광해군일 기 와 고종실록 에 따르면 공화는 세습군주제가 시행되지 않은 시기로 이해되며, 특히 개화기 이후 공화는 구미의 정치제제를 이르는 말로 통용되었음을 실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저들 독립협회 은( ) 구미(歐美)의 공화(共和) 정치를 우리의 전제(專制) 정치의 옛 법에 옮기려고 하며, 대신을 제멋대로 쫓아내는 것을 식은 죽 먹기로 여기고 있으니, 이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5)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요원한 것을 따르는 무리들이 (중략) 다른 나라의 민주와 공화 의 제도를 채용하여 우리나라의 군주 전제법을 완전히 고치려고 합니다.6)

이처럼 죽서기년 의 영향으로 공화는 통치의 에토스(ethos)보다는 정치 제도의 측면에서 주로 논의되었다

(이영록, 2010).

4. 화동(和同)

금기시 여겨졌던 공화 대신 조선에서 널리 사용된 단어는 대동(大同)이었다 오늘날. 대동에 대한 오해로 인 해 대동을 민주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동은 모든 분별과 구분이 없어지는 묵 가의 상동(尙同)과 달리 차이를, 인정하고 이견들의 조화를 이루는 화동(和同)을 의미한다(장현근, 2012).

신주백(2017)에 따르면 이와, 같은 대동사상은 동학농민운동과 대동단결선언 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무장기포의 포고문을 살펴보면 대동이 평등사상이나 신분 철폐와는 거리가 먼 사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신하된 자들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鳳位만 도둑질 하며,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를 일삼으면서 忠課하는 선비를 요망한 말을 한다고 이르고, 정직한 사람을 비도라고 한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나라를 돕는 인재가 없 고, 바깥으로는 백성을 학대하는 벼슬아치가 많다. 인민의 이목이 나날이 변하며, 들어와서는 삶을 즐길 생엽이 없고 나와서는 몸뚱이를 보존할 계책이 없도다. 훨政이 날로 심해지고 원성이 연이어져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융기와 상하의 구분이 드디어

무너져 남김이 없도다.7)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동학농민군은 오히려 군신, 부자, 상하라는 위계 질서의 흐림을 지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농민군들은. 삼강오륜에 따른 구분을 다시 바로 잡는 것이 민()들의 역할이라고 보았으며, 신분 제의 철폐나 민주주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동은 프랑스 혁명과 달리 특정 계급의 배제나 타도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를 모두 조화시킨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정체처럼, 동학 농민군들은 군주 신하 민중들, , 중 어느 한 쪽을 배재하지 않고도 고유한 정치 공간만을 보장해준다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집강소를 통해 고유한 정치권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운동의 실패와 한일 강제 합병으로 인해 군주제가 철폐되면서 대동에 기반한 정치 개혁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대동사상의 부활은 1910년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 14명이 발표한 대동단결 선언 에서 살펴볼

5)   而彼以歐美共和之政, 欲移我專制舊規, 擅逐大臣, 視若茶飯常事, 其罪一也.”( 고종실록 38, 고종 35 12 11 일 陽曆 3번째기사). 한국고전종합DB

6)   而比年以來, 喜新遠之輩...欲用他國民主共和之俗, 一變我邦君主專制之規, 卒之有甲午、乙未之變.”( 고종실록 38, 고종 35 12 9일 陽曆 3번째기사).한국고전종합DB

7)   皮長東徒布告      : 신주백. 2017. “1910년 전후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정체로 정치이념의 전환 공화론과 대동론을 중심으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93, p. 164 재인용.

수 있다 신주백. (2017)은 선언의 제목에 일치단결이나 총단결이 아닌 대동단결이 사용된 이유가 있으리라 짐 작한다. 대동을 화동으로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대동단결 선언의 요지를 쉬이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대동 단결선언 은 일제와의 동화(同化)를 거부하고 순종의 서거로 주권을 이양 받은 한민족(韓民族)간의 화합을 주 장한다.

불쌍한 우리 자손에게 유습이 대대로 전하여져 당동벌이(黨同伐異)의 중독에 빠져서는 우리의 앞길은 영겁에 희망이 없다.8)

대동단결선언 은 당시 분리된 독립단체들 중 어느 쪽의 의견이 더 타당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야 한다 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동단결선언 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각 단체들이 합의나 양보 없이 자신들의 의견만 이 옳다고 주장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단체들과 개인들은 회의를 통해 분리된 여론들을 종합하고통일적 유 기체 를건설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현 방식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통일적, 유기체의 건립을 지지한다는 언급을 통해 특정, 단체가 다른 단체들을 흡수하는 것이 아닌 각, 단체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기관을 구상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대동단결선언에 영향을 받아 설립 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화동의, 정신을 이은 좌우 인사들과 단체들의 합작에 의하여 구성될 수 있었다.

신주백은 주권이 일반 민중들에 귀속되었다는 주장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공화(republic)과 대동사상의 접 합이 대동단결론 에서 성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의 쇠락함과 정치 질서의 문란을 걱정하며, 자신 들을 정치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한 동학농민운동에서 이미 한국적 공화주의는 싹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 다 그러나. 일련의 정치적인 사건을 거치면서 대동과, 공화는 다시 분리되었으며 이후 공화는 민주에 흡수되 거나 정치 체제를 이르는 표현에 그친다.

5. 공화(共和)

화는, 군주를 부정했던 역사적 사건 때문에 공화가 아닌 대동 속에서 그 사상적 명맥을 이어왔다. 한일 강 제 합병으로 군주제의 폐지로 형식적인 평등이 도래한 뒤 공화는 민주와 결합되어민주공화 라는단어로 대 한민국임시헌장의 제 조에서1 등장한다 그러나. 조소앙의 민주공화는 민주주의와 동일한 개념이며, 귀족공화 에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강정인 권도혁( · , 2018). 이후 임시정부, 건국헌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 지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 특히, 공화는군주가 없는 정치 체제 로이해되고 있다 민주와. 결합된 공화는 이 후, 공산주의와 대립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가리키거나, 북한의 정치체제와 대비되는 민주정치를 이 르는 정치적인 용어로 변모하게 되었다(이영록, 2010).

공화주의, 민주공화의 에토스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에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상적 전 통과 유리되지 않으면서도 (민주 공화의) 에토스를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재야학자 설의식은 다음과 같이 민 주공화를 정의하였다.

민주주의의 명분을 세우는 바에 우리의 국체는민주공화 라는이 글자에 요약될 뿐이 오 또 그로써 족하다. ‘민주 인지라모든 주권이인민 에게있음이 물론이오니 인민으 로부터 발원되지 않는 권력의 존재는 일절로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공화 인

8) 조성일, 2020,  100년 후에 다시 읽는 독립선언서 , 서울: 다차원북스, p. 119.

지라 모든 정책이 전체의 조화에 있음도 물론이니 전체의 균형이 확보되지 않는 권력 의 편재도 일률로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9)

설의식은 갈등의 조정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화의 특성에 따라 공화의 에토스를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 이 화에 주목한 공화의 에토스 서술은 republic의 의미와 유리되지 않으면서도 전통 사상과 접목시킬 수 있 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설의식의 주장에 이어서 화를, 통한 공화의 에토스를 정의하고자 한다.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화는, 구성원들 간의 차이를 인정했을 때 추구할 수 있다 또한. 화는, 갈등을 회피하 지 않고 그것을 추동력 삼아 변화를 통한 합의와 균형에 이른다. 공화는, 화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 사 회 구성원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거나 흡수시키려는 시도 대신, 화해를 추구 하는 노력들을 통해 균형에 이르는 것이다 공자가. 화의 도구로 예를 제시했듯이 현대에서는, 법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화의 목적이 화 그 자체이듯이 공화의, 목적도 공화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민주와 공화를 비교해보겠다 민주주의를. 통해 모든 개체들은 형식적으로 평등해진 다. 가령 투표에서, 국민 일인이 행사하는 표의 가치는 모두 동등하며 개인들이 지니고 있는 차이들은 모두 무시된다. 그러나 투표와 같은 형식적인 대의민주주의만으로 사회의 조화는 실현시킬 수 없다. 공화는 투표 를 통해 묵살되었던 소수자들의 의견, 형식적인 평등으로 인해 은닉되었던 차별과 갈등에 주목한다. 조화로 운 사회로의 진입을 방해하는 의견의 대립뿐만 아니라, 성 계급, , 장애에 따른 차별과 갈등을 직시하고, 그것 들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들이 바로 공화이다 가령. 수적으로 대표될 수 없는 소수자들을 각 정당의 비례대표 로 선출하는 시도들을, 공화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갈등의 형식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민주주의라면 갈등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공화이다.

공화의 목적 그 자체가 조화로운 사회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republic의 에토스와 유 리되지 않는다. 이미 조선시대부터 대동사상을 통해 군주와 관료들은 국가를 공적인 것으로 이해하였고, 예 로 인해 서구의 황제나 귀족과 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 공화의 주재 자는 왕과 신하들로 한정돼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을. 거점으로 민들 또한 공화의 주체로서 스스로 인식하기 시 작하였으며 3.1운동을 통해 온전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오늘날 공화는 다양한 계층의 사회구성 원들의 참여를 통해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즉. , republic은 서구로부터 수용된 개념이지만, , 화동, 공화로 이어지는 사상적 토양 속에서 새로이 움틀 수 있는 개념이다.

6. 오늘날 공화의 함의

공화는 다양한 개체들의 차이를 존중하고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들을 조절하며 균형과 안정을 지향하 는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을 의미한다 지난. 4월 투표를 통해 구성된 21대 국회는 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 혹은 21대 국회 자체는 조화로운가? 이번 21대 국회는 이전과 달리 여성, 청년, 장애인, 북한 이탈주민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입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국민 평균치의 5.1배이고, 부동산재산은 4.5배 를기록하고 있다10). 대부분의 국민들과 유리되는 계층에 속한 다수가 국민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는 대의 민주주의가 지

9) 설의식, 「임정을 앞두고」, 새한민보편집국, 임시정부수립대강 : 미소공위자문안답신집 (새한민보사, 1947), 12 : 이영록. 2010. “한국에서의 민주공화국 의개념사.” 법사학연구 42, p. 66 재인용.

10)“[기자회견]         21        국회의원  부동산      신고재산  분석결과  발표”,        경실련,     2020   10        7          접속, http://ccej.or.kr/61638

닌 한계를 보완하여 실질적 평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과정을 통 해 구성된 국회는 수적인 대표성을 지니지만 계층의,       다양성 또한 대표하고 있는지 물음을 던져야할 때이다. 다양한 계층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앞으로,                  국회를 다채롭고 조화롭게 구성하는 것이 공화의 과제가 될 것이 다.

참고 문헌

고종실록 , 한국고전종합DB.

강정인 권도혁·      . 2018. “조소앙의 삼균주의의 재해석.” 한국정치학회보 521, 257-276. 김단아. 2020. “정도전의 조화의 통치철학.” 월간 공공정책 178, 76-80.

신주백. 2017. “1910년 전후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정체로 정치이념의 전환 공화론과- 대동론을 중심으로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93, 151-184. 이영록. 2010. “한국에서의 민주공화국 의개념사.” 법사학연구 42, 49-83.

이정환. 2013. “왕권찬탈과 정통주의 군주제 : 전근대 중국, 한국, 일본에서의 共和에 대한 재해석의                                                                                                                                                                                   

.” 대동문화연구 82, 415-452.

 

장현근. 2012. “초기유가 화동(和同)’ 논의의 정치철학적 의미.”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11권 호, 7-29.  정상호. 2013. “한국에서 공화(共和) 개념의 발전 과정에 대한 연구.” 현대정치연구 62, 5-35. 정상호. 2016. “동아시아 공화(共和) 개념의 비교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505, 217-236. 조성일. 2020. 100년 후에 다시 읽는 독립선언서 . 서울: 다차원북스.

1

차민경. 2020. “『논어 에』 나타난 공자의()’의 세계관과 상생에 관한 소고.” 유학연구 권, 267-293. 함재학. 2008. “유교적 입헌주의와 한국의 헌정사.” 헌법학연구 14 3, 97-129.

50

Li Chenyang. 2014. TheConfucianPhilosophyofHarmony. London and New York:

알라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2001

알라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은이)궁리2001-10-23초판출간 2001년
312쪽

책소개

한국인의 죽음론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책. 이 책에서 지은이는 식물이나 동물 등 폭넓은 생명의 죽음이 아닌, 문화와 인간의 상징적 표상으로서의 죽음론을 펼친다. 민속학자, 특히 한국학자로서의 지은이는 특유의 말솜씨로 '죽음' 에 관한 흥미로운 여러가지 사실들을 되짚어내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한국인의 죽음을 위한 서설

제1부 거듭 되새기는 죽음들
삶을 위한 죽음의 사상
우리들, 죽음을 내다보는 존재

제2부 한국인의 죽음, 그 자화상
죽음은 삶과 함께 자란다
우리들 죽음의 자화상

제3부 어제의 거울에 비친 오늘, 우리들의 죽음
그대, 삶과 죽음 사이를 바람처럼 오가는 이여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몰라보게 되는 죽음들
과잉 상태의 죽음
열린 죽음
죽음이라는 전역(轉役)

제4부 죽음의 문화적? 신화적 형상
지는 잎이 뿌리로 돌아가듯이
신화가 일군 죽음들

제5부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위한 몇 가지 슬픈 사연들
죽음의 유머

[에필로그]
죽음아, 이제 네가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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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소설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푸르메 刊)
저자 및 역자소개
김열규 (지은이) 

1932년에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객원교수, 인제대학교 문과대학 교수,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원장을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학과 미학, 신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그의 글쓰기의 원천은 탐독이다. 어린 시절 허약했던 그에게 책은 가장 훌륭한 벗이었으며,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두고 간 짐 꾸러미 속에서 건진 세계문학은 지금껏 그에게 보물로 간직되고 있다. 이순(耳順)이 되던 1991년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삶을 살고자 고성으로 낙향했고, 자연의 풍요로움과 끊임없는 지식의 탐닉 속에서 청춘보다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펼쳐 보이고 있다. 여든의 나이에도 해마다 한 권 이상의 책을 집필하며 수십 차례의 강연을 하는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김열규의 휴먼 드라마: 푸른 삶 맑은 글」, 「한국인의 에로스」, 「행복」, 「공부」, 「그대, 청춘」, 「노년의 즐거움」, 「독서」, 「한국인의 신화」, 「한국인의 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외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읽기 쓰기 그리고 살기 (반양장)>,<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반양장)> … 총 104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최근작 : <나의 바느질 수다>,<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인생도 미분이 될까요>등 총 380종
대표분야 : 과학 5위 (브랜드 지수 295,710점), 청소년 인문/사회 20위 (브랜드 지수 31,328점), 미술 이야기 33위 (브랜드 지수 82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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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국어학자이자 한국학의 대가 김열규교수가 평생의 화두인 죽음을 다룬책으로 천년만년 살 것으로 착각하면서 아둥바둥 사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이미 김열규교수도 죽었다. 그는 사후세계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누구에게는 언어도단 이겠지만... 어떤 이는 궁금할 것이다.  구매
sprenown 2017-07-2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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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은 이유는. 새창으로 보기
끝까지 읽었다.

처음엔 조금 지나면 본론으로 들어가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읽었고

중간엔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읽었고

뒷부분은 꼭 끝까지 읽어서 자신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겠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대학원 시절 아니 학부 시절에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최고는 원서, 다음은 번역서, 할 수 없을 때 국내서.'

그런 이야기가 왜 생겼는가 이해했다. 차라리 그냥 수필집으로 기획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각주없는 인문서는 또 참으로 새롭구나!

 

이책의 문제점을 대강 짚어보자면,

먼저 밀도가 없다. 문장은 매끄러우나 그 매끄러운 문장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별로 없다. 처음부터 밀도있는 책은 매우 어렵게 읽게 된다. 어떤 책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보량이 늘어나며 열과 성을 다해 읽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한 권의 책안에 담긴 정보량 자체가 인문서라고 보기엔 너무 적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비슷한 이야기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으며 별로 중요치 않은 예도 두 세번씩 나오곤 한다.

죽음론에 대한 책이라고는 했으나 우리나라에서의 죽음에 대한 풍습, 설화, 인식 등을 쉽게 이야기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인상을 쓴 책에 불과하다. 풍습의 의미를 해석할 때도 어떤 근거와 자료를 정확히 제시하기 보다는 그저 자기 생각이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겠는가 하는 정도이다.

저자의 시각이 매우 재미있다. 저자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어떻게 보면 본능적으로 한국 전통의 장례 의식이 사라져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죽음이 좀더 존중되어야 하며 따라서 장례 절차가 길고 복잡하고 힘겨워야 함을 주장한다. 불교적 색채는 철저히 우리 고유의 것과 분리해서 이야기하면서도 유교적 색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꺼내지 않는다. 아마 저자는 유교적인 것을 우리 고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기분만 상하니 하지 않기로 하자. 

김열규 교수의 책은 학부때 숙제를 위해 부분부분 읽었을 뿐이다. 그래도 유명한 교수니 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책을 샀다. 나도 국문과 출신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국문학계에 대해 불신 하나 추가다. 궁리 출판사에 대해서도 불신 하나 추가다. 편집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죽음론이라고 저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 편집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기획, 편집했을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의심스럽고 궁금하다.

이 책을 산 돈을 벌기 위해 쓴 시간, 책을 읽느라 쓴 시간, 화를 참느라 노력한 시간, 계속 읽을까 말까를 고민한 시간. 다른 분들이 이런 시간을 쓰게 되지 않길 바란다.

남에게 아픈 소리를 하면 나도 언젠가 아픈 소리를 들을 것 같아 좋지 않았던 책에 대한 리뷰는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심한 것 같아 두서없이 지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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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란 2005-09-21 공감(5) 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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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런 죽음의 강의록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이 세상에 등장했을때, 각종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했던 죽음에 대해서 파헤쳤던 이유 탓일까? 아마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달리 죽음에 대한 주제를 갖고 책을 쓴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내가 못봤을 경우도 많을테니 확실한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 간혹 외국에서 들어온 책들은 본 적이 있는 듯하다. 걔중에서 "자살"이라는 이름의 책을 한창 흥미진진하게 읽어서 주변 지인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불길한 책을 읽는다고 말이다. 그저 알고 싶고 흥미로워서 읽는 것인데... + 더보기
습관 2005-01-2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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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예습할 수 있을까 새창으로 보기 구매
죽음을 예습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진심으로, 잘 죽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아무리 모모한 삶을 살았다 해도 비참하고 능욕스런 죽음을 맞이한다면 평범하게 살다 평안하게 죽는 인생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무리 멋진 삶을 살았대도 죽음 앞에서 삶에 연연하고 비굴하게 삶을 구걸하는 그런 마무리도 원치 않는다. 죽음 앞에 초연한 생명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래도, 마음의 연습이라도 해두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의연해지지 않을까...

내 기억 속의 한 아름다운 죽음은 김용택 '섬진강' 속에서 본 할머니의 죽음이다. 연세가 높으신데, 겨울 들판을 보면서 봄에 땅 녹으면 갈란다, 했다던가, 그 할머니의 장례를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로 풀었는지,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가끔, 햇살이 좋은 날 마당이나 들판이나 운동장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그 가물가물한 조을음 속에서 내가 서른 몇의 젊은 아낙인지, 여든 몇 쯤 세월을 뛰어넘은 노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아지랑이처럼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이 홱 지나쳤다 드러났다 요동칠 때, 아, 이렇게 조을다가 가고 싶다, 그런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나라에 죽음에 관한 한 권의 책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는 작자의 말만큼 그 사명을 다하며 매우 학술적이지도 않았고 나처럼 감상적으로 좋은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의 마음의 예습을 시켜주지도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할 것도, 그렇다고 친밀하게 생각할 것도 아니라면서 죽음을 삶의 예식으로 끌어들인 우리 민족의 의례도 말하고 죽음과 우주의 세계를 넘나드는 영적인 매개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죽음을 노래한 아름다운 만가들의 가사라도 죽 풀어 써주었더라면 그 선율에 미리 가슴 저려 해 볼만도 했으련만, 그런 것도 아니고...

한국인의 죽음론을 한두어 시간의 강의로 들은 강의록을 본 느낌이랄까. 말하자면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반갑게 만나길 기대했던 친구에게 느낀 무덤덤함에서 오는 서운함 같은 것이다. 문장이 쉽게 읽히길래 앞에서는 정말 많이 생각한 사람이 자기 것으로 녹아난 죽음의 철학을 쉬운 언어로 조근조근 말해줄 줄 알고 은근히 기대도 했는데... 나는 또 그, 예습해 봐야 소용도 없는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이런저런 사설들을 뒤적거리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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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선생 2003-04-2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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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어반복이 심하고, 구성이 혼란스러운 책 새창으로 보기 구매
몇 년 전, 이 책은 거의 모든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읽어본 결과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모호한 제목들이다. 언뜻 보면 굉장히 시적이면서도 본문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듯하지만, 읽어보면 아무런 내용도 없을뿐더러 이런 제목 때문에 오히려 내용이 더 모호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너무 동어반복이 많다. 마치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고 있는 듯하면서 본론은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말만을 반복하거나 사변으로 흐르고, 또 끝에는 앞에서 한 말을 다시 언급하는 식이어서 읽는 데 약간 짜증이 났다. 그리고 책 밑에 페이지밖에 적혀 있지 않아 지금 내가 어디를 읽고 있는지 계속 앞으로 넘겨봐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어색한 문장이나 오문도 비교적 많은 편이고 띄어쓰기도 앞에서는 띄었다가 뒤에서는 다시 붙이는 식이 더러 눈에 보였다(그동안, 다름아닌과 같은 단어).

내용도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바리데기 신화를 열 페이지가량 길게 인용하고 끝에서는 죽음은 떠나감이 아니라 돌아감이라는 해석을 붙이는 것은 너무 무성의해 보인다. 신화를 이야기했다가 일상을 이야기했다가 외국의 시를 인용했다가 우리의 역사를 인용하는 식의 혼란스러운 구성이 좋은 주제를 조금 무의미하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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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처럼 2004-02-0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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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실망이군요 새창으로 보기 구매
제목이 라틴어로 돼어있다는 것이 의미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자신은 국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출판의 상업주의적 안목의 소산인가? 아니면 저자의 유식함이 빗어낸 자연스러움인가? 어느 경우든 이상하군. 우리의 죽음은 라틴어인가?

죽음이라, 이 얼마나 아찔하고 현기증이 나는, 그리고 소위 책좀 읽었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두려움으로 쳐다보는 주제인가?
너무나 무거워 감히 가까이 가기도 두려운 그런 주제가 아닌가?
이 주제를 정면으로 일반인이 읽기에 적당한 내용의 글로 풀어낸 저자의 의도와 노고를 치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하나 밖에 줄수없는 이유는

첫째,앞에서도 나온 지적이지만 동의반복적인 설명이 돼풀이 된다는 점이다. 책이란 특히 훌륭한 책이란 한페이지가 무겁고 한 문장 한 문장이 촌철살인의 맛이 있어야 한다.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같은 개념과 예문이 빙빙돈다.이이야기 저이야기. 전체적 안목에서 쓰인것이 아니라 그때 끄때 쓰인것같다

두번째,나는 최소 이런 제목을 걸고 책을 쓸때는 편협하게 국문학적 관점만이 아닌 동양학 전체철학에서의 입장, 각종교에서의 입장 ,서양 철학에서의 입장 그리고 오늘날 세계화시대속에서 죽음의 의미등 이 모든 것이 반드시 다루어져야한다고 본다. 즉 거창한 제목에 부응하지 못한 내용의 부실함이다

셌째,서평을 보고 샀는데 내가 보기엔 나처럼 막연한 기대감으로 구매하기보다 이런 시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좀더 알찬 내용의 저자의 육성으로 된,머리와 자료가 아닌, 책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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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jhn 2002-04-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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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쪽152*223mm (A5신)437gISBN : 978898880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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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한국인의 죽음론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책. 이 책에서 지은이는 식물이나 동물 등 폭넓은 생명의 죽음이 아닌, 문화와 인간의 상징적 표상으로서의 죽음론을 펼친다. 민속학자, 특히 한국학자로서의 지은이는 특유의 말솜씨로 '죽음' 에 관한 흥미로운 여러가지 사실들을 되짚어내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한국인의 죽음을 위한 서설

제1부 거듭 되새기는 죽음들
삶을 위한 죽음의 사상
우리들, 죽음을 내다보는 존재

제2부 한국인의 죽음, 그 자화상
죽음은 삶과 함께 자란다
우리들 죽음의 자화상

제3부 어제의 거울에 비친 오늘, 우리들의 죽음
그대, 삶과 죽음 사이를 바람처럼 오가는 이여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몰라보게 되는 죽음들
과잉 상태의 죽음
열린 죽음
죽음이라는 전역(轉役)

제4부 죽음의 문화적? 신화적 형상
지는 잎이 뿌리로 돌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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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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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에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객원교수, 인제대학교 문과대학 교수,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원장을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학과 미학, 신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그의 글쓰기의 원천은 탐독이다. 어린 시절 허약했던 그에게 책은 가장 훌륭한 벗이었으며,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두고 간 짐 꾸러미 속에서 건진 세계문학은 지금껏 그에게 보물로 간직되고 있다. 이순(耳順)이 되던 1991년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삶을 살고자 고성으로 낙향했고, 자연의 풍요로움과 끊임없는 지식의 탐닉 속에서 청춘보다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펼쳐 보이고 있다. 여든의 나이에도 해마다 한 권 이상의 책을 집필하며 수십 차례의 강연을 하는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김열규의 휴먼 드라마: 푸른 삶 맑은 글」, 「한국인의 에로스」, 「행복」, 「공부」, 「그대, 청춘」, 「노년의 즐거움」, 「독서」, 「한국인의 신화」, 「한국인의 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외 다수가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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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었다.

처음엔 조금 지나면 본론으로 들어가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읽었고

중간엔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읽었고

뒷부분은 꼭 끝까지 읽어서 자신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겠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대학원 시절 아니 학부 시절에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최고는 원서, 다음은 번역서, 할 수 없을 때 국내서.'

그런 이야기가 왜 생겼는가 이해했다. 차라리 그냥 수필집으로 기획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각주없는 인문서는 또 참으로 새롭구나!

 

이책의 문제점을 대강 짚어보자면,

먼저 밀도가 없다. 문장은 매끄러우나 그 매끄러운 문장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별로 없다. 처음부터 밀도있는 책은 매우 어렵게 읽게 된다. 어떤 책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보량이 늘어나며 열과 성을 다해 읽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한 권의 책안에 담긴 정보량 자체가 인문서라고 보기엔 너무 적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비슷한 이야기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으며 별로 중요치 않은 예도 두 세번씩 나오곤 한다.

죽음론에 대한 책이라고는 했으나 우리나라에서의 죽음에 대한 풍습, 설화, 인식 등을 쉽게 이야기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인상을 쓴 책에 불과하다. 풍습의 의미를 해석할 때도 어떤 근거와 자료를 정확히 제시하기 보다는 그저 자기 생각이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겠는가 하는 정도이다.

저자의 시각이 매우 재미있다. 저자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어떻게 보면 본능적으로 한국 전통의 장례 의식이 사라져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죽음이 좀더 존중되어야 하며 따라서 장례 절차가 길고 복잡하고 힘겨워야 함을 주장한다. 불교적 색채는 철저히 우리 고유의 것과 분리해서 이야기하면서도 유교적 색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꺼내지 않는다. 아마 저자는 유교적인 것을 우리 고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기분만 상하니 하지 않기로 하자. 

김열규 교수의 책은 학부때 숙제를 위해 부분부분 읽었을 뿐이다. 그래도 유명한 교수니 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책을 샀다. 나도 국문과 출신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국문학계에 대해 불신 하나 추가다. 궁리 출판사에 대해서도 불신 하나 추가다. 편집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죽음론이라고 저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 편집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기획, 편집했을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의심스럽고 궁금하다.

이 책을 산 돈을 벌기 위해 쓴 시간, 책을 읽느라 쓴 시간, 화를 참느라 노력한 시간, 계속 읽을까 말까를 고민한 시간. 다른 분들이 이런 시간을 쓰게 되지 않길 바란다.

남에게 아픈 소리를 하면 나도 언젠가 아픈 소리를 들을 것 같아 좋지 않았던 책에 대한 리뷰는 쓰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심한 것 같아 두서없이 지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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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등장했을때, 각종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했던 죽음에 대해서 파헤쳤던 이유 탓일까? 아마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달리 죽음에 대한 주제를 갖고 책을 쓴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내가 못봤을 경우도 많을테니 확실한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 간혹 외국에서 들어온 책들은 본 적이 있는 듯하다. 걔중에서 "자살"이라는 이름의 책을 한창 흥미진진하게 읽어서 주변 지인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불길한 책을 읽는다고 말이다. 그저 알고 싶고 흥미로워서 읽는 것인데...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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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예습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진심으로, 잘 죽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아무리 모모한 삶을 살았다 해도 비참하고 능욕스런 죽음을 맞이한다면 평범하게 살다 평안하게 죽는 인생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무리 멋진 삶을 살았대도 죽음 앞에서 삶에 연연하고 비굴하게 삶을 구걸하는 그런 마무리도 원치 않는다. 죽음 앞에 초연한 생명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래도, 마음의 연습이라도 해두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의연해지지 않을까...

내 기억 속의 한 아름다운 죽음은 김용택 '섬진강' 속에서 본 할머니의 죽음이다. 연세가 높으신데, 겨울 들판을 보면서 봄에 땅 녹으면 갈란다, 했다던가, 그 할머니의 장례를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로 풀었는지,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가끔, 햇살이 좋은 날 마당이나 들판이나 운동장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그 가물가물한 조을음 속에서 내가 서른 몇의 젊은 아낙인지, 여든 몇 쯤 세월을 뛰어넘은 노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아지랑이처럼 주마등처럼 지난 일들이 홱 지나쳤다 드러났다 요동칠 때, 아, 이렇게 조을다가 가고 싶다, 그런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 나라에 죽음에 관한 한 권의 책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는 작자의 말만큼 그 사명을 다하며 매우 학술적이지도 않았고 나처럼 감상적으로 좋은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의 마음의 예습을 시켜주지도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할 것도, 그렇다고 친밀하게 생각할 것도 아니라면서 죽음을 삶의 예식으로 끌어들인 우리 민족의 의례도 말하고 죽음과 우주의 세계를 넘나드는 영적인 매개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죽음을 노래한 아름다운 만가들의 가사라도 죽 풀어 써주었더라면 그 선율에 미리 가슴 저려 해 볼만도 했으련만, 그런 것도 아니고...

한국인의 죽음론을 한두어 시간의 강의로 들은 강의록을 본 느낌이랄까. 말하자면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반갑게 만나길 기대했던 친구에게 느낀 무덤덤함에서 오는 서운함 같은 것이다. 문장이 쉽게 읽히길래 앞에서는 정말 많이 생각한 사람이 자기 것으로 녹아난 죽음의 철학을 쉬운 언어로 조근조근 말해줄 줄 알고 은근히 기대도 했는데... 나는 또 그, 예습해 봐야 소용도 없는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이런저런 사설들을 뒤적거리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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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어반복이 심하고, 구성이 혼란스러운 책 새창으로 보기 구매
몇 년 전, 이 책은 거의 모든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읽어본 결과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모호한 제목들이다. 언뜻 보면 굉장히 시적이면서도 본문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듯하지만, 읽어보면 아무런 내용도 없을뿐더러 이런 제목 때문에 오히려 내용이 더 모호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너무 동어반복이 많다. 마치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고 있는 듯하면서 본론은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말만을 반복하거나 사변으로 흐르고, 또 끝에는 앞에서 한 말을 다시 언급하는 식이어서 읽는 데 약간 짜증이 났다. 그리고 책 밑에 페이지밖에 적혀 있지 않아 지금 내가 어디를 읽고 있는지 계속 앞으로 넘겨봐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어색한 문장이나 오문도 비교적 많은 편이고 띄어쓰기도 앞에서는 띄었다가 뒤에서는 다시 붙이는 식이 더러 눈에 보였다(그동안, 다름아닌과 같은 단어).

내용도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바리데기 신화를 열 페이지가량 길게 인용하고 끝에서는 죽음은 떠나감이 아니라 돌아감이라는 해석을 붙이는 것은 너무 무성의해 보인다. 신화를 이야기했다가 일상을 이야기했다가 외국의 시를 인용했다가 우리의 역사를 인용하는 식의 혼란스러운 구성이 좋은 주제를 조금 무의미하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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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처럼 2004-02-0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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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실망이군요 새창으로 보기 구매
제목이 라틴어로 돼어있다는 것이 의미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자신은 국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출판의 상업주의적 안목의 소산인가? 아니면 저자의 유식함이 빗어낸 자연스러움인가? 어느 경우든 이상하군. 우리의 죽음은 라틴어인가?

죽음이라, 이 얼마나 아찔하고 현기증이 나는, 그리고 소위 책좀 읽었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두려움으로 쳐다보는 주제인가?
너무나 무거워 감히 가까이 가기도 두려운 그런 주제가 아닌가?
이 주제를 정면으로 일반인이 읽기에 적당한 내용의 글로 풀어낸 저자의 의도와 노고를 치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하나 밖에 줄수없는 이유는

첫째,앞에서도 나온 지적이지만 동의반복적인 설명이 돼풀이 된다는 점이다. 책이란 특히 훌륭한 책이란 한페이지가 무겁고 한 문장 한 문장이 촌철살인의 맛이 있어야 한다.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같은 개념과 예문이 빙빙돈다.이이야기 저이야기. 전체적 안목에서 쓰인것이 아니라 그때 끄때 쓰인것같다

두번째,나는 최소 이런 제목을 걸고 책을 쓸때는 편협하게 국문학적 관점만이 아닌 동양학 전체철학에서의 입장, 각종교에서의 입장 ,서양 철학에서의 입장 그리고 오늘날 세계화시대속에서 죽음의 의미등 이 모든 것이 반드시 다루어져야한다고 본다. 즉 거창한 제목에 부응하지 못한 내용의 부실함이다

셌째,서평을 보고 샀는데 내가 보기엔 나처럼 막연한 기대감으로 구매하기보다 이런 시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좀더 알찬 내용의 저자의 육성으로 된,머리와 자료가 아닌, 책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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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jhn 2002-04-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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