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0

유상용 | 야마기시즘 - 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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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Ryu Sang 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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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다음의 인간ㆍ사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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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7 m ·

아래의 글은 '야마기시즘실현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야마기시씨가 쓴 글이다. 조금 전 번역을 한 것인데, 그의 자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라, 관심있는 분들께 참고자료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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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 >
1960년 5월- 야마기시 미요조, 처(부인) 니와
연구가·실행가에게 드리는 말씀

이 저서는 교서教書가 아니다. 아니, 이 저서뿐만 아니라 나의 과거에 말해 온 것, 써 온 것, 해 온 것 모두 및 앞으로의 모든 언행, 어느 것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전부 연구가의 참고 자료로서 제공하고, 그것의 취사선택·실행에 있어서는 각각의 자유의지에 맡기는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서 내가 생각한 대로 혹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표현되고 있는, 일단의 부분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윽고 내가 생각하는 기록, "월계月界로의 통로"의 일부분으로서 『정해正解 야마기시즘 전집』의 초안을 정리해 각 집輯으로 분류하고 인간 생활은 물론 우주 만반의 현상계·무현상에 대해, 내가 느끼는 대로 종횡으로 써내려 대중 앞에 드리고 싶어서 지금 그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되지 않는 것은, 지금의 환경 조건 하에서 심신의 불편함으로 인해 그것의 중단 상태의 부득이한 사정에 있으며, 내가 오늘까지 받았던 과거, 현재의 사람들 및 대자연에 응하는 날이 늦어지는 것에 무거움을 느끼고 무위로 생명이 다 연소될 때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아쉬워한다.
이 저서는 지금의 세계정세를 고려하여, 내일을 기다릴 수 없는 긴박함을 느끼고, 신심의 초췌함 속에서 마음 졸이는 대로 전집 안의 구절을 발췌·생략하여 기술한 것으로 조잡한 정도가 심한 것이 있다.
나를 낳고, 키우고, 쏟아넣은 것이 살려지는 것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
만약 세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면, 나를 살려서 사용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진정, 최량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검토하고, 탐구하고, 한순간의 멈춤 없이, 희망찬 전진 일로, 과거·현재를 알고, 장래를 창조하는 환희로 생활하는 오늘-지금, 즉 모두가 사이좋게 즐겁고 풍요롭게 오늘보다 내일, 모레로 경쾌한 미래를 창설하는 오늘의 환희 속에 현재-지금도 정상·건강 속에 잠겨 생활하는 한 컷 한 컷의 연속이려 하는 것이다.
내일의 행복은 오늘의 기쁨 속에서 나온다.
만약 오늘-지금이 정상·건강하지 않다면 신속하게 그것의 원인을 탐구하여 그 틀린 부분을 발견하고 즉각 그것의 해소를 도모하는 것이다.
슬픈 오늘 중에서 즐거운 내일은 태어나지 않는다.오늘은 물건이 부족하고 몸에 땀이 나도, 마침내 올 물심의 풍만, 건강·정상을 위한 오늘-지금의 마음의 세계는 환희요 삶의 보람으로 사는 것이다.
야마기시즘 생활은 진실을 지향하여, 지금도 진실일 것이며 환희 속에 이론연찬·방법연찬·실행연찬의 정상·건강의 연속생활을 말한다.
이 책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을 저술할 때 사실은 이론, 이념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한 후, 현상면에 대해 쓰는 것이 순서인데, 지금 저자의 체력적·시간적 사정도 있고, 그것은『정해 야마기시즘 전집』에 따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읽는 사람들이 둘러가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형태면에 대해 대중적으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최종 단계의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진리, 진실, 최선을 목표로 하는, 이제부터 시작인 단계에 있으며 미숙·불완전한 전진 단계의 한 장면임은 물론이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연찬을 계속하여, 개량에 개량을 가해 유치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키워 나가려는 생장기의 것이다.
그 연찬 개량도 저자 혼자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세계의 모든 지혜, 모든 능력, 실적을 취사선택하여 다같이 키워나가는 것이고, 내일도 오늘의 이 저서에 담겨있는 형태를 답습하는, 진보성 없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창안하고, 보다 좋게, 보다 진짜로, 모두가 개량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반복해서 말해 두고 싶은 것으로, 저자 스스로도 더욱더 개량을 계속해 나가겠지만, 그것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 스스로 개량·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교서가 아니라고 쓴 것은, 가르치려는 것이거나 따르고 배우는 것이 전혀 아니고, 어디까지나 생각하기 위한 참고 자료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현재의 세태에서는, 본서의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겠지만, 이것을 읽어도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본서에 담긴 구현방식을 즉시 실행,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경지에 들어선 상당히 진보적이고 세계의 첨단을 가는 혁명의식에 불타는 보기 드문 사람들에게만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공상空想도 일반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지만, 사실 실현하기 쉬운 이상경理想境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이 지상의 일각에 한 곳 든든히 세워질 때, 그것을 보고, 듣고, 전한 세계 과학자들의 연구 과제가 되어, 인간의 본질, 사회의 본연의 상태 등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실행가実行家가 속출할 것은 불을 보듯이 명확하다.
세계 각지·각처에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이 속속 세워질 것이고, 이렇게 해서 이것들이 상관연相関連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세상에 번져, 급속히 전세계를 휩쓰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꿈같은 이야기라고 비웃고 있는 낡은 사회통념・상식관도, 사실 앞에서, 어느새인가 새로운 사태 속에 서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계 제1호를 쏘아 올릴 사람은 누구일까.
뒤따르는 사람은 누구누구일까. 하기 싫은 사람, 못하는 사람은 하지않아도 될 일이고, 또 그런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돈이 필요 없는 즐거운 마을』이라는 저서명도 단지 그것은 일단의 일부의 표현일 뿐, 이것의 진의真意·실질은 삼라만상 모든 것에 관계하는 깊은 것으로, 세계혁명을 유발하는 포문을 여는 것이다. 돈이 필요 없다는 것은 통화나 티켓·권익·계약·의무·소유관념 등 유무형 일체의 틀에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의 천지天地이며, 예부터 내려오는 법률·제도·습관·통념이, 근본적으로 참된 모습에 입각한, 전 인류가 상상으로조차 이루지 못한, 가장 진보적인, 문화적인, 물리·심리의 정수를 모은, 철리현현哲理顕現의 세계이고,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현도 쉬울 것이다. 참된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잘못된 생각에 방황하는 동안에는 진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수규명理数究明적으로 한 점의 차질 없는 답이 나올 것이다.
규모는 작아도, 본질적인 것이 한 군데 생기면, 나중에는 누가 권하지 않아도 모두 다 본받는다.
전 세계에서 보러 와서, 전 세계로 넓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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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 실현지, 산안마을>230326

한국에서 일본어로 된 이름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산안山岸의 일본발음이 야마기시다. 
내가 실현지에 참획(실현지 멤바로 되는 것)한 92년부터 작년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92~2002 실현지, 야마기시즘을 배우다 
2002~2009 실현지, 나의 야마기시즘 검증기 
2009~2018 강화도, 스즈카와 교류하며 본질적인 사회를...
2018~2022 강화도, 스즈카와 결별,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름,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해마다 겨울이면 1~2주일, 삶의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복기가 되어있다. 마무리하는 과정의 글이 늘어지는 것도 재미없으니, 시기별로 한 두 꼭지씩의 글을 쓰고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이 글들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아홉 분은, 길고 짧게 실현지 생활을 하셨거나 현재 살고 계신 분들이다. 우리들 역시 공개적인 방식으로 야마기시를 다루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함께 정리해보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으면 좋겠다.  
92년 1월에 참획하기 전에 나는 1년 반 정도 미국 에미서리 공동체에서 살았었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spiritual community였다. 그곳에서 한국으로 나올 때 나는 이미 야마기시에서 ‘일생의 일’(거창하지만 그 때는 그런 뇌피셜~^^)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것은 그 전에 잠시 들렀던 야마기시 어린이 낙원촌(캠프)에서 느낀 ‘본향本鄕’의 느낌과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실현지 식구들이 많이 떠나고 어려운 상황에서, 돌아와서 함께 하자고 권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치 않은 인연인 윤00님을 도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2008년11월에 미국서 돌아와 2009년1월에 참획을 하였다. 
참획과 함께 다가온 것은 나의 희망찬 느낌과는 거꾸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참획을 정한 날은, 함께 하자고 권한 사람이 가방을 싸들고 실현지를 나가는 날이었다. 새로운 참획자에게는 엄격했는데, 외부에서 온 편지를 사전에 잘라서 검열?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외부세계에 대한 닫힌 의식과 리더의 완고한 자기 확신 등등, 시간이 갈수록 “나는 왜 여기에 왔나?” 하는 기분이 쌓여갔다. “무언가 하늘의 뜻(?^^그 땐 그랬다)이 있을 것 같았는데...” 다만 나의 착각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미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참획 후 6개월, 그런 심리적 압박이 쌓여가서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1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꼼짝을 못할 것 같아서, 강원도 태백에 사는 친형에게 부탁해 산속 외딴 빈집을 알아봐달라고 해서 5일간을 기거하게 되었다. 쌀과 반찬만 가지고 들어가 밥을 해먹으며 5일 밤낮을 자거나 앉아서 묵상을 했다. “나는 왜 왔는가?” 
6일째 되던 날 아침에, 말로는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개운해지고 “이제 됐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뚜렷한 답은 안 나왔지만, 정리하고 실현지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기차에서, 평택 즈음을 지나는데 논 가운데 담장을 친 농가가 몇 집이 보였고, 문득 ‘답답하게도 경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 때 알게 됐다.
 “경계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거였구나. 그래서 야마기시에 돌아왔구나...” 그 뒤로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야마기시의 선배들이 해온 것을 최대한 그대로 배워보리라” 
장점을 보자면 야마기시에는 지금까지 잘 없었던 여러 가지 사회실험들을 하여, 개발 터득해온 사회적 방법들이 있다. 
ㅡ 야마기시즘 사회의 조직과 운영방식, 실현지라는 이상사회의 축도에 짜넣은 무소유ㆍ공용ㆍ일체의  사회제도, 
6개월 1회 자동해임으로 역할에의 집착을 풀어놓는 제도, 상하의식이 없는 사회 기풍
ㅡ 연찬학교라는 무아집체득의 훈련이 사회제도로서 내장되어, 경제적으로도 번영하지만 인격적으로도 성숙할 수있는 기회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
ㅡ 인간 의식과 사회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실험과 그것을 시험할 수 있는 시험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
ㅡ 종교 맹신을 배제하고 자기 탐구와 연찬으로 사회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
등 많은 성과들이 있었다. 
전쟁을 준비하려다 개발된 기술이 인류의 복지에 기여하기도 하고, 밥먹는 일과 거리가 먼 달 착륙선을 만들다가 알게된 원리들이 인간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더구나, 과학적 탐구와 지혜를 모은 연찬을 기치로 내세운 야마기시가 70년 정도 실험한 내용에는, 그 전체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활용하려고 하면 살려 쓸 수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실현지 분들도 더욱 개방해서, 모두에게 살려질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풀어놓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연찬학교'의 내용을 짧은 코스로 풀어서 제공한다거나..
다음 글에는 그런 것들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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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은 일본문화의 정수(精髓)> 230323

‘축소지향’의 일본문화가 가장 아름답게 꽃 핀 것 중의 하나가 이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라고  생각한다. 
7박8일간의 짧은 기간 안에, 고정관념, 화, 소유, 나, 일체(一體), 자유, 참된 행복, 불행의 원인, 진실사회와 실현방법, 운동론까지를 씨줄 날줄로 짜 넣어서,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보여 오는 진실 사회의 모습이, 단기간 내에 실감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축소지향의 함정이 하나 있다. 축소해놓은 것은 아름답고 알기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확장한다고 같은 내용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야마기시 운동의 결함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일본문화가 오버하면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강을 받은 사람들이 맛본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이나 몇 군데 마음공부 프로그램에서 특강의 전반부를 차용하여 잘 활용하시는 것을 보면 핵심을 꿰뚫는 내용이 있음은 증명되었다고 본다. 
문제(?)는 후반부에서 제안하는 <마음이 열린 뒤에 보여 오는 세계-사회와 그 실현>에 대한 공동 작업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一)원인은 야마기시회 스스로가 자신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운동을 전개한 지도 오래됐고, 본래 실현해보려고 했던 사회의 실태도 주춤하고 있는 지금이니까, 이제는 해왔던 일들을 ‘일단 선반 위에 올려놓고, 영위에서, 모두의 연찬으로 철저히 구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래는 특강에 대한 대략의 설명이다. 사과에 대한 설명으로 사과 맛을 볼 수 없듯이 관심있는 분은 꼭 특강에 참석해보시길 바란다>
특강은 아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진행해간다. 
1. 어떠한 경우에도 화(怒)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
2. 영위(零位)에 선다.
  주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정하지 않고 
예를 들면 지위, 가문, ... 아(我), 시간, 생명 등에  집착하는 마음을 풀어놓고 영(零)의 몸 가벼움에 서서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구명 <연찬(硏鑽)> 이해한다.
3. 연찬은 모든 생각하는 법의 기본이고
   모든 실행의 근본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하고 사고하며 
4. 자타일체(自他一體)의 리(理)를 연찬하여 
   이것이 진실사회(親愛의 情으로 가득 찬)의 근본이념이라는 것을 체득한다. 
5. 자타일체로 번영하려고 하는 이론, 방법, 실행은 어떨까하고 연찬한다.
이 목표는 기간 중 계속 의식하고 확인해가며 진행된다. 
특강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자신과 사회의 실태, 불행의 원인과 그것이 제거된  행복사회의 모습, 그리고 이상사회를 만드는 방법까지를 압축해 넣은 것이다. 
도입부는 자신의 ‘생각’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아가는 것이다. 목표2처럼 ‘주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정하지 않기’위해, 자신의 생각이 무언가에 집착하여 ‘고정’되게 사물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제 없이 사물을 볼 준비가 되어야하는 데 그것을 ‘영위에 선다’라고 했다.  
목표2에서는 ‘영의 몸 가벼움에 서서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구명’하는 것을 ‘연찬’이라고 했다. ‘연찬’이란 야마기시즘의 방법론의 키워드이다. 인간의 생각이란 옳고 그름을 수없이 반복하여 판단해오며 쌓은 것인데, 한번 옳다고 생각한 것은 여간해서는 정말은 어떤지 검토되지 않은 채 판단의 기준이 된다. ‘옳다, 틀림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검토해보았다면, 그 다음은 ‘감정’에 대해 살펴본다. 무엇이, 누군가가 ‘싫다’는 감정은 어떤 것인가? 자기가 한번 싫은 것이라고 정하면 그것은 싫은 것인가? 싫다는 것 역시 자신의 고정관념은 아닐까? 
그 다음은 감정의 극단적인 모습 중의 하나인 ‘화(분노)’에 대해 살펴본다. 목표1은 ‘어떠한 경우에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이다. 야마기시는 왜 이것을 목표1로 했을까? 이것은 개인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의 아주 중대한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내면의 갈등이나 개인 간의 싸움, 전쟁의 원인이 되는 ‘화’에 대해 검토해가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자신을 부자유하게 묶고 있는 고정관념들을 검토해간다. 인간사회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법률, 규칙, 의무 등에 스스로가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나 소유관념도 그런 고정관념이 사회화된 한 예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도 검토해간다.
그렇게 주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단정하지 않고, 고정관념을 풀어놓고 자신도 사물도 제로에서부터 검토해가는 것을 연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목표3은 ‘연찬(硏鑽)은 모든 생각하는 법의 기본이고 모든 실행의 근본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하고 사고하며’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물을 검토해가면 세계의 참된 모습이 보여 온다는 것인가? 야마기시는 그것을 목표4에서 ‘자타일체’라고 표현했다. 현상에서는 나와 남으로 분리되게 보여 대립ㆍ갈등하는 모순된 세계지만 본질에서는 나와 남이 한 몸이라는 것이 참된 이치(理)가 아닐까하는 것이고 그것을 연찬하여 진실사회의 근본이념임을 체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강의 후반에서는 야마기시가 그리는 이상사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인간의 특징인 지능과 사용방법, 인간의 불행의 원인과 그것을 제거하고 행복사회를 실현하는 이론과 방법 등에 대해 연찬한다. 
야마기시는 집약된 일주일의 특강을 통해 한 사람이 개별ㆍ대립적인 사람에서 일체ㆍ조화의 사람으로 전환되는 것만이 아니라, 인류사회가 일체ㆍ조화의 사회로 대전환되는 ‘다음 세상으로의 통로’가 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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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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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이하 특강)이란 긴 이름의 핵심은 ‘연찬’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연찬인데, 아직 사람들이 연찬할 수 있는 상태로 되어있지 않으니까, 특별히, 강습적으로, 연찬할 수 있는 상태를 맛보게 하여, 최종적으로는 ‘연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연찬’하자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는 자기연찬, 둘이서는 대화연찬, 셋 이상은 연찬회로 구분하여 한다. 
실현지 생활 내내 ‘연찬은 생명선이다’라고 강조해왔었다.
대부분의 우리는 ‘아집’, ‘자기중심성’에 바탕을 두고 듣고, 말하는 경향이 크니까, 
생각으로는 ‘진실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해도, 실제로는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수가 많다.
 
들을 때는 ‘나’가 없이 듣고, 말할 때는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이 서로 듣고 말하는 관계가 사회의 기본이 된다는 것이, 단순하지만 사회구성의 핵심이다. 
실제로 이 듣고 말하기가 잘되는 연찬회에서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열리고 공간에는 화기(和氣)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두뇌인터넷이라고 할까? 브레인스토밍도 같은 원리라고 본다.
 
이 ‘연찬’이란 것이 조화로운 사회의 기본이라고 본다
세계가 수 천 년 동안, 소유-권력-상하 사회로 지속되어져 오면서 기본을 잊어버린 것이지 특별한 방법이 아닌 것이다.
 
내가 알게 된, 사람들의 대화방식 중에 이 연찬과 가장 흡사한 것은, 북미 인디언들이 마을에서 나누는 대화이다. 비폭력대화, 써클대화 등의 서양에서 개발한 대화법들도 실은 인디언 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원형의 대화이고, 야마기시에서는 그 바탕에다 탐구(과학적)를 더해서 원뿔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진리탐구의 방법론이기도 한 것이다.
 
특강에서는 야마기시가 쓴 ‘야마기시즘 사회의 실태(부제 : 세계혁명실천의 서書)’를 ‘자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안에는 그가 그리는 이상사회의 모습그 실현방법이 적혀있다. 그 것을 읽고 이해해가면서 동시에 그가 짜 넣은 묘한 방법들을 통해 자신과 사회의 참 모습에 대해 차차 깨닫게 된다.
약간 스포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음 글에서는 특강의 내용을 어느 정도 소개하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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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즘을 연찬한다>
야마기시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세 가지가 있다. 야마기시 유정란 양계,
야마기시즘특별강습연찬회(또는 연찬),
그리고 야마기시즘 실현지 자체다.
(단정적으로 들리는 표현은 그 뒤에, “라고 나는 생각한다”를 붙여서 읽어주시길..)
유정란 양계는 일찍이 1930년대부터 시작된 야마기시씨의 농업실험의 결과로 나온 벼-닭-사람의 순환농법에서 비롯되어, 한국에는 1970년대 협업농 운동에서부터 생협, 한살림 등의 사회 운동의 초기에 중요한 정신적, 기술적 제공을 하였다. 야마기시씨는 그의 <야마기시회 양계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양계서적이라 생각하고 보기보다는 행복의 서적으로 읽는 편이 알기 쉽습니다. 또는 철학서적, 혹은 지능테스트 서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사람 모두 행복을 원하며 일하고 있겠지만, 어째서 행복을 얻을 수 없을까요?
. . .
그러므로 출발에 앞서서, 참다운 행복이나, 인생의 바른 모습을 확인하고, 참다운 양계란 어떤 것인가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 . .
본 양계법은 종합철학으로부터 생긴 것으로서
... 이 양계의 진수를 터득하게 되면 정치ㆍ경제ㆍ사회ㆍ인생문제 및 기타 전부에 공통하므로, 응용하여 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야마기시씨는 그의 양계법을, 기술만이 아니라 행복이란 목적을 향한 종합적인 철학, 사회 실현 방법의 하나로서 짜 넣고 있고, 양계서는 돈벌이로서의 양계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이어진 ‘자연-전인 일체(一體)’의 진실을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양계서의 본 뜻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정란 양계의 여러 기술들이 전해져 일정한 기여를 한 것은 틀림없고, 야마기시즘이 한국사회에 받아들여지는 데, 그런 음덕(陰德)이 또한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특강이라고 줄여 부르는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가 90년대 한국 사회운동의 전환기에,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있다. 7박8일간의 특강을 수강한 한국사람은 아직껏 수 천 명을 넘지 않으나, ‘연찬’이라는 사고방식과 특강의 내용에서 다루는 ‘주제와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당시 한국의 사회운동, 정신운동의 리더들에게 전환의 ‘key role’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기주장과 대립이 강한 사회상에 모두의 마음과 지혜를 모으는 연찬을,
유물도 유심도 아닌 ‘심물(心物)풍만세계’를,
본질을 바탕으로 한 지적 사회혁명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보여준 것은 정신적 충격이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희망이기도 했다.
다만 ‘일본 것’이라는 의식이, 내용에 더 깊게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연찬’은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0’에서 사물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고, 연찬회는 그런 상태의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가는 것이다. 맑은 두뇌인터넷이라고 할까?
그럼 ‘야마기시’의 성과는 연찬되고 있을까? 아마 일부는 되어 지고 일부는 빛이 비치지 않은 채로 있을 것 같다. 야마기시씨는 “이상은 방법에 의해 실현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야마기시는 이상을 충분히 실현하였는가? 실현되고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유 등 인간의 관념에 기반한 사회가 아닌 실제(실재)에 기반한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는가? 등등
그런데서 '야마기시'를 연찬해보고 싶은 것이다.
특강과 실현지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는 게 좋겠다.
* 야마기시즘실현지(산안마을) 식구들께는 몇 분께 양해를 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야마기시'라고 쓸 때는, 야마기시즘이라는 사고방식, 야마기시회라는 단체, 특강ㆍ연찬학교ㆍ실현지 등의 구현방식 등을 총칭해서 쓰고 있고, 인물로서의 야마기시는 '야마기시씨'로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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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단청
    고맙습니다!
    새롭게 정리되는 기회가 되네요.
    그냥 좋으니까 살았고, 저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2
    • 유상용
      나단청 각자의 선택이었지만 시대의 파도였고, 우리가 접한 지 30년이 넘었으니 이제 한번 정리해볼 때가 되었지요. 잊었던 것을 들어올려 연찬하면 그 의미가 새롭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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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기시와의 또 다른 통로 ㅡ

고1 겨울을 지나면서 ‘뿌리찾기’의 하나로 떠올린 것이, 막연하지만 땅, 지구(가이아), 농업 등이었는데, 2학년이 되면서 농업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2학년 때 담임교사는 생물선생님이셨는데 진학 상담에서 ‘농대’ 진학에 관심이 있던,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으셨고, 본인이 아는 농장 한 곳을 견학시켜주시겠다고 했다. 
1980년, 햇살이 따스한 5월의 어느 일요일,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서 내려 또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간 후, 병아리를 키우던 어떤 농장을 함께 돌아보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그것도 영향이 있었는지, 나는 82년도에 서울 농대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농대 나왔는데 어째 농사를 모르냐”는 말을 수 십 년 듣게 되는 출발이 되었다.^^

탈춤추고, 술먹고, 스터디하고, 시위 나가고, 학교 잘리고, 군대 가고, 돌아와 보니 89년 1월이었다. 헛헛한 마음 중에 자연농업, 한살림 등 여기저기서 미리 준비해주신 재료들을 모아, ‘바른 농업을 하며,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하며, 도농 직거래를 하는, 사이좋은 마을공동체’를 만들면 어릴 때부터 바라던 삶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마침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으면 복적이 된다고 해서, 농대 4학년으로 복학을 했고, 그 1년 동안은 한국 내에 있는 유기농, 자연농, 공동체 등을 수업이 없는 매주 일요일 마다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어떤 스님으로부터 “자기는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경기도 화성에 있는 어떤 농장에 가면 불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런 곳을 제가 찾고 있습니다. 바로 가보지요”하고, 4월의 어느 주말, 물어물어 그 곳을 찾아갔다.

버스 큰길에서 내려 시골길을 삼십분 정도 걸어가니, 짙은 색 벽돌로 된 아담한 집이 한 채 나왔다. “계십니까~?” 하고 부르니 현관 안쪽 문이 열리며 한 중년 남자분이 나왔다.

 “어!, 선생님 여기 웬일이세요?” 
“자네야 말로 웬일인가?” 

그 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윤ㅇㅇ님이었고, 내가 졸업하고 얼마 안 있어 학교를 그만 두시고, 84년부터 뜻있는 몇 가족과 함께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시작하셨던 것이었다.  

이 이어짐에 대해서는 글을 쓸지를 조금 망설였는데,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그 후 20년 정도의 야마기시 활동에 있어서 이 분과의 관계, 한국 야마기시 운동에서 이 분의 역할을 빼놓고서는 얘기할 수 없고, ‘본질적인 운동’과 그 ‘리더십’이라는 큰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20년간 그 분의 중력장에 빨려 들어가지도 않고, 반발하여 튕겨나가지도 않는 묘한 균형점을 유지하려고 해왔다. 애증(愛憎)은 아니고 애려(愛慮)라고나 할까?

* 나중에 선생님께 들어보니, 그 농장은 지금의 실현지는 아니고, 그 가까운 지역에서 야마기시 양계의 육추실험을 하던 회원 농가였다.

===  · 

내가 야마기시에 접어든 경로 -

고등학교 1학년(1979년) 겨울, 어떤 계기로 인해 현상의 사회가 허망하게 느껴진 뒤, 나의 ‘뿌리 찾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79년에는 박정희의 죽음, 12.12쿠데타로 이어지는 혼돈의 시기였고 그런 분위기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이후로 10년 정도, 강렬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허망하지 않은’ 길을 찾는 탐색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혈통적인 뿌리 찾기로 시작하여, 몽골리안 루트, 시베리아 샤먼, 탈춤, 함석헌의 뜻으로본 한국사, 환단고기류의 상고사, 도올의 동양학, 김지하의 남녁땅 뱃노래, 동학, 증산도, 원불교로 이어지는 근세 개벽사상 등의 경로를 밟게 되었다. 

그 중 86년에는, 우리 때 많이 공부하던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고 ‘과학이라면 현대물리학은 포용하고 있는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까?’ 하고 물어 들어갔다. 인간에 대한 물음은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는데,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동학, 증산, 원불교의 수련들을 조금씩 해보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군대에 가서도 계속되었고, 그 때 읽은 책 중에 지승스님이란 분이 쓰신 ‘피야 피야 삼신 피야’란 책이 있는데, 나의 뿌리 찾기와 비슷한 경로를 밟으셨기에 반갑고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지승스님은 80년 10.27불교계 법난을 겪은 후 그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민족 사상의 원류라는 길로 들어가셨던 것로 기억한다. ‘삼신사상’을 말하고 있었는데, 원불교는 그 끊어진 표층수가 지하에서 다시 용출한 것으로 보았다. 원불교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커진 계기가 되었다.

89년 1월에 군대를 마치고 나왔는데, 사회주의권의 해체에다 한국사회 상황도, 
‘옛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찬바람 부는 겨울이었다. 그 때 후쿠오카 마사노부 선생의 자연농업을 발견하였고, 한살림의 태동, 카톨릭의 도농공동체 등의 소식도 들려와 희망의 봄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조선의 마음’의 밑뿌리에는 뭔가 인류 보편의 심성이 살아있고, 그 것을 바탕으로 본질적인 사회(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노동과 수행이 둘이 아니고, 마음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가 동시에 풀리는 통합된 길이 있지 않을까?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상-정신으로서의 ‘한사상’ ‘삼신사상’은 좋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사회화하는 데는 가져다 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 중에서 가장 사회화, 생활화에 균형 잡힌 길을 제시했다고 본 원불교를 베이스로 ‘삶의 양식이 근저에서부터 전환된 마을’을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 91년~92년에 걸친 지리산 문수골 실험이었다. 교무, 청년들도 여러분이 관계했는데 모여살기 시작하고 6개월이 안되어 해체하게 되었다. 각자의 그림이 다르기도 했고, 종교단체의 특성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사회에 보편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려면 정신적인 바탕과 함께, 구체적-실제적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필수 요소 등을 분석적 과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있어야하고, 그 재료들을 가지고도 사회설계를 할 수 있는 종합적인 사고와 실제로 구성할 수 있는 실천력 등이 모두 필요하다. 그야말로 종합예술인데, 한국사상은 ‘하나의 사상’이라는 바탕이 훌륭하지만 구체성이 약했다. 

그 때 만난 것이 ‘야마기시즘(실현지)’이고 내가 생각하고 있던 본질적인 사회의 모습을 거의 대부분 이미 구현하고 있었다! 

“이 구체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야마기시즘이 한국사상의 뿌리에 닿으면 뭔가 보편적인 제시를 할 만한 것이 나올 것 같다.” 는 생각에 나는 이후 야마기시의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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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3 March at 12:07
  ·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 2

사이좋다는 것은 일본어로 나카요시仲よし, 이고, 무엇과 무엇의 사이가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마기시에서는 나카中(안, 속)이 좋다는 뜻으로 중의적으로도 쓴다. 속이 좋다는 것은 마음 속이 좋은 상태 즉, 각자의 마음 속에 대립이 없는 하나의 상태를 뜻하는 데, 본래의 사이좋음이라고 풀어쓰고 있다. 야마기시즘 특강에서는 “왜 화가 납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상대가 끊어지는 체험을 해본다. 

대립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도 섬세한 마음에서 관ㆍ찰 觀ㆍ察할 때, '나'와 '상대'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을 본다. 상대세계가 출현하는 것이다. 분별이 대립이 되지는 않겠지만 단절은 착각의 시작이다.

‘즐거운’이란 어떤 상태일까? 나도 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데, 마실 때는 즐겁고 깨고 나면 불쾌함, 미진함이 남는다. 그렇게 유쾌-불쾌를 반복하지 않는 순일한 즐거움을 생각해본다. 마음 안에 대립이 없고, 가까운 사람과 사이좋고, 멀리서 온 사람을 환대하고, 자기에게 맞는 쾌적한 일을 하고, 적당히 풍족한 물질이 있고, 등등. 달리 말하면 ‘행복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행복의 의미는, 불행의 반대말이 아니고, 인생은 쾌적하고 행복일색一色인 것이 참된 인생의 본연의 모습이라는 우리들의 인생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불행이라고 느끼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어딘가에 잘못이 있고, 그 잘못의 원인을 탐구하고 제거하면 바르고 참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 야마기시 미요조

‘마을’이란? 인간은 수 만년 동안 마을(무리, 씨족)을 이루고 인간류로 살아왔다. 인간다움의 원형이 형성된 대부분의 시간을 마을에서 지내왔던 것이다. 유인원부터의 진화 시간으로는 수백만년. 

야마기시씨는 ‘세계혁명’을 지향했지만 방법론으로는 ‘국가’, ‘종교’ 개혁으로 먼저 들어가지 않고 ‘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왜일까? 

아마 ‘본질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그 견본을 만들고 전파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세계의 많은 공동체 실험들도 이같은 발상으로, 가까운 사이에서 소유와 대립의 담을 허문, 사람 사이의 실례를 만들고 그것이 넓혀지기를 바랐던 것이겠지. 그런 접근에 대해서는 ‘공상적 사회주의’ 등 현실 가능성 없는 이상주의라는 비판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당대’에 실험해서 어느 정도 검증을 해볼 수 있다는 면도 있기 때문에, 과학과 실증을 중요시하는 야마기시씨도 그런 순서를 택하지 않았나 싶다. 

“이리하여 한 마을의 기풍을 근저에서부터 바꾸어 행복촌으로 하고, 지상의 각지에 행복의 단서를 만들어, 그것이 차차 전파되어 확대되고, 온 세계가 행복인으로 메워지면, 물자는 넘쳐  흐르고, 친애의 정이 가득 차 넘치고..” - 야마기시 미요조

김원일
형이 산안에 들어간 지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30년 경험을 합쳐서 곱씹는 작업이라 기대가 됩니다. 지역이, 땅이, 기후가 인간 삶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에 지역에 따라 사상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동북아시아 중심에서 중국과 일본을 이어주고 섞어주는 역할을 해왔던 한국의 특징에 잘 맞는 새 야마기시즘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Reply5 d


유상용
1 March at 13:13
  ·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 1

이 문구는 야마기시즘실현지(산안마을)가 스스로 붙인 별칭이다.

‘돈이 필요 없는’ 이란 ‘무소유’를 말하는데, 경제의 방식이며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야마기시즘 특강에서 “그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하는 질문을 받으면, 소유관념에 찌들은 이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의 관념 안에서 쳇바퀴를 돌다가 진행자의 반복되는 질문과 실연으로 차차 사물을 관觀하게 되고, 인간의 생각과 사실-실제와의 다름에 조금씩 눈뜨기 시작한다. 

‘필요 없다’는 것은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소유’란 ‘내 것’이고, ‘내 것’은 ‘나’란 것이 생기고 연달아 발생하는 것인데, ‘나’가 임시적인 ‘가아假我’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까지 이어지는 문제이다.
 (假我를 거짓된 나로 보기보다는 건물의 지을 때 설치하는 가설재 같은 임시적 구조물로 본다)
누군가 마음의 문제를 상당히 해결하더라도, 마음이 차차 현상으로 나타나 지금의 사회로 된 것이 수천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깨달은 사람도 쉽사리 현상의 모순을 바로 잡기 어려운 것이다. 

야마기시씨는 독특하게도, 20대 초반에 깨달음(?)을 얻고 나서, 종교를 펼치지 않고 쌀농사와 양계 등의 농업을 시작했다. 짐작컨대, 자기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의 실상이 보여 온 후에도, 종교 등의 ‘가르침을 펼치는’ 구조로 들어가지 않고, 이상사회의 물적 토대를 바르게 하기 위한 실험을 착수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모종의 깨달음을 얻은 뒤에 그 내용을 이렇게 두 문장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진리는 하나다. 이상은 방법에 의해 실현할 수 있다"

Jewon Jeon
저는 야마기시즘이
사상이 완벽하고, 사실은 , 정말은 , 진리는 이러한데, 인간이 깨닫지 못해서, 체득하지 못해서 행복 사회를 구현하지 못한게 아니라
그러한 장단점과 모순 나약함 불안함의 그 모든 특성을 지닌 인간을
어떤면에서 이상화 시킨 점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Reply1 w


Namgok Lee
28 February at 21:37
  · 
오랜만에 이 책자를 본다.
내가 50대의 8년을 함께한 '무소유사회'의 이념과 실천의 방향에 대한 개설서槪說書다.
'특강'의 자료로도 사용해온 책이다.
그 동안 이 사회실험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 See more
윤차차로
요즘.
온전히 내 의지로 새로운 삶의 방법을 선택 한다면
야마기시적시스템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Reply1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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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8 February at 10:35
  · 
요즘 야마기시즘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무언가를 전개하려는 게 아니고 마무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25세 되던 1989년 봄에, 마음의 문제와 사회의 모순과 자연과의 관계 등 이어져있는 세계가 조금 보여오고, '본질적인 사회' 즉 마음의 본질이 현상에 실현되는 인간사회가 실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후, 최근까지 30여년 길을 더듬어 찾고 실천해왔던 그 곳을, 나로서는 더 할 일이 없어서 이제, 당분간 휴업을 하려고 한다.
아직 유효하고 어쩌면 아직 본격적으로는 시작도 하지않은 것이기도 하나, 내게 주어진 힘과 함께 할 사람과 사회의 인심이, 나로서는 더 갈 수가 없다고 느껴서 에필로그를 쓰려고 하는 것이다. 
야마기시즘실현지도 있고, 에즈원커뮤니티도 있어서 진행 중이기도 한 일이나, 양수겸장의 달인이 나타나주길 바라며 휴식을 취한다. 

ㆍ심리적 방면의 해결
ㆍ사회구성의 진수란?
"(인간이) 이 정도 빛나는 실적을 남기고, 훌륭한 희망까지도 기대되는 실현력을 가진 지능을 구비하면서, 심리적 방면의 해결이 심히 늦어지고, 더욱이 사회구성의 진수眞髓를 파악하지 못하여, 인간사회에 분쟁이 끊어지지 않고, 불행으로부터 탈각할 수 없다는 것은,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ㅡ 야마기시 미요조"

浦崎雄一
直ぐに陽の目を見なくてもやり続ける事で、後世に人々に評価される日が来るかもしれません。貴方の実践が周りを溶かして行くと確信しています。こうして繋がっているのですから大丈夫だと思います。
ReplySee translation1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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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5 February at 00:43
  · 
- 나는 비밀을 견지하고 있다, 야마기시 미요조
나는 지금까지 나의 사회구상을 일부만 언급하고, 구체적인 것은 대부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야마기시즘 사회의 근본적 요소를 가장 정확하게 결정적으로 명확히 드러내는, 매우 간단히 몇마디로 설명할 수있는 말이 있다. 이 말로 전부를 누구든 판정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언젠가는 말하겠지만, 지금 그것을 입 밖에 내면, 어떤 국가들은 쇼크를 받아 공격하러 올 것이기 때문에, 나의 몸이 위험하게 된다.
원래 생명은 한번은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아니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ㆍㆍㆍ,
이상사회가 늦어질 것 같아  발표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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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2 February at 14:27
  · 
ー 본질적 사회의 실제 모습 
나는 지금(1954년) 이것에 대해 전부를 말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현재의 사회 기구나 관념ㆍ사상과 너무나 거리가 멀어, 틀을 벗어나고 거꾸로이고, 정치ㆍ경제ㆍ법률ㆍ도덕ㆍ관습 등을 뿌리로부터 자르고 바꾸는 것이고, 
지금의 학설ㆍ이론을 제쳐놓고 판단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없고 위험하다고 볼 부분이 많아서,
주관을 다 버릴 수 없는 사람이나, 왜곡된 간접자료에 의한 것이나,
진수眞髓를 구명하지 않고, 겉으로 부분적으로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의 비난ㆍ공격ㆍ박해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ㅡ 야마기시 미요조
4, 50년 지나니 '민주주의'도 빛을 잃고, 진보건 보수건 '돈주주의'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50년대에 조심스레 내민 이 '위험한?' 사상은, 70년이 지나서 할일을 다 했을까? 또는 지표면 밑에서 지하수로 흐르다가 다시 용출될까? 
'일본' 사상이라는 외피를 넘어서 보면,
'본질을 현상에 실현'하려는 구체적 사회실험의 가치가 보인다. 
실험의 규모나 형태적 성공 여부를 떠나, 맑시즘 못지않은, 인간세에 대한 전면적인 제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이런 얘기는 별 관심도 없겠지만..


Geun-Soo Lee
인간의 욕심을 파고드는 명품. 국민소득이 어느정도 올라가니 그게 작은거라도 손에 잡히고 인스타로 자신을 과시하는 세상이 오니 MZ세대로부터 가꾸로 돈주주의 사상이 퍼지는게 아닌가 함.
80년대 군사정부 시절이 끝나면 뭔가 달라질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바닥에 깔린 공무원사회는 그대론지라 힘든 과정이 반복되고.
민주화시대의 열매를 10년간 가꾸다가 실패해 MB한테 농장내줬다가 박그네 닭질덕에 다시 찾은 사람들은 다시 열매 경작을 하는 과정에서... 20년간 농장 경영 뺏길 일 없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아마도 친일프레임을 적절히 사용하면 편하게 지낼거라 생각했을거라고 봄.
과연 반일만이 정답인지는 세월이 가르쳐줄듯. 왜 타이완은 한국과 일본 대하는 정서가 그렇게 다른지...
다양한 일본의 면을 못보고 하나만 보고 그걸 자기네 정치생명 연장에 쓰려는건 나라에 도움이 안될거라 생각.
Reply2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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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20 February at 14:40
  · 
<세계혁명실천의 書, 서문에서 발췌>

살아있는 모든 것, 누가 참으로 행복을 원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실로 인류의 역사는, 이 행복 획득의 피투성이 싸움에 묻혀있다, 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연 세상은 항구적인 평화와 영원한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까?
우리 인간 세상은, 본래 행복일색一色이어야한다는 신념에 서있다. 
이 이상사회는 다른 어떤 것의 힘도 빌리는 일 없이, 우리들 인간의 힘으로 초래할 수 있다는 확신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일체一切를 이해와 납득 위에 서서, 기쁨 속에서 다툼없이 투쟁없이 평화 속에서 하는 혁명.
참된 항구적인 평화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행복을 마음으로부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야마기시즘 사회로의 세계혁명의 서]를 보낸다

1954.12.20 
 
ㅡ 야마기시 미요조 ㅡ

문병훈
간만에 들렀는데
올드한 느낌...
Reply1 w
유상용
문병훈 1954년, 올드하지. ㅎㅎ
Reply1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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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19 February at 04:57
  · 
일체一體의 리理
보합保合의 리理
사랑愛의 리理
진리眞理
一 야마기시 미요조
간명하다.

김석환
간명한 데 어렵네 친구!^^♥♥♥♥♥♥♥
Reply2 wEdited
유상용
김석환 해설이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Reply2 w

2023/03/09

앞으로의 의학이 추구했으면 하는 방향성 - 카페 이용하기 - 자천의학

앞으로의 의학이 추구했으면 하는 방향성 - 카페 이용하기 - 자천의학

앞으로의 의학이 추구했으면 하는 방향성
작약 12.06.20 566

제가 생각하는 의학이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 하고 앞으로 의학이 가야할 방향이
무엇이 옳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제가 제일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각자가 갖고 있는 자연치유력이라는 것입니
다.
의학의 신이니 신의 손이니 어쩌구해도 결국 그 뭔가 설명 불가능한 자연 치유력
의 보조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본 대다수의 의학까페나 의학 관련 기사나 의학 종사자 분들의 자세
를 비유로 설명하자면
'내가 너의 목발이 되어줄게....이 목발이 더 좋아.....이 목발이 더 최신형이야....이런
스킬을 쓰면 더 목발을 멋지게 사용할 수 있어....'
식이 많은 것 같고 어느 목발이 더 좋은지에 대한 도토리 키재기 식의 경쟁(?)을
서로가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보면 저도 반성이 되고 타산지석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의학하시는 분들의 자세나 의학의 포지션이 각자의 자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고 의

타심을 조장하는 그런 것이라면 그런 의학자나 의학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천의학마저 그런 목발의 하나가 된다면 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까
페의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학을 한다는 것은 내 몸의 건강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남
의 몸을 그분께서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본다는 것이 되어야 한
다고 생각해요. 저희 까페에서는 내 몸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 들이
공유되고 함께 토론되어 각자에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안내자의 역할
을 할 정보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남의 몸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사람이 안 아플 수 없고 아플때는 아무래도 남의 도움을 받으면 회복
이 빨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분의 건강 회복을 도와줄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도
모두 모와 함께 공부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강의 의미는 '몸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동안 최소한의 고통으로
잘 좀 써보자'는 것이에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생노병사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이
라는 존재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잘 사용하면 각자의 성장에 아주아주 많
은 도움이 있기 때문에
生 - 이미 태어나 있다 -> 잘 좀 태어나서 잘 자라게 하고(교육적인 측면)
老 - 늙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잘 좀 늙게 하고(인격의 성숙)
病 - 병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잘 좀 병들게 하고(개인적으로 가벼운 감기 몸
살과 물리적 부상과 죽기직전의 아픔을 제외한 모든 질병은 잘 병든 것이 아니
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 세가지를 제외한 모든 질병은 좀 지구상에서 사라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死 -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잘 좀 죽을 수 있게 하자(웃으며 죽자)
는 것인데 저기서 잘하는 게 뭔지 또 함께 고민해봐야 겠죠.

저희 까페만의 특징으로 삼을 만 한 것은 수도자들의 의학 까페라는 것인데 '수도
를 한다는 것'이 생로병사의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되요. 그것에
대해 고민 많이 하신 분들이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함께 고민한다면 의학의 새로
운 측면이 또 개발 될 수 있을거라 생각되요. 수도의 이론에서는 인간의 몸을 이용
해 바른 몸(양신)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데 그걸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더 건강할 수 있는 법은 무엇일지 고민해보는 것도 또다른 의학
의 새로운 측면이 될 수 있을꺼라 생각하구요 그걸 통해 위에서 가정한 생로병사
에 대한 심리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한번 탐구해보자는 것도 저희
의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모든 탐구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 남에게 스승 역할을 하려는 스승병 과 또
다른 목발이 되려는 유혹을 극복하고 스스로 하늘로서 많은 이들과 함께 단지 자
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그저 나누고 서로에게 배우며 함께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
는 분들을 위한 장소-특히 건강과 수도의 분야를 중심으로-가 될 수 있도록 더 노
력할 것이며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의학의 방향도 그렇게 되길 개인적으로 바래봅니다.
以小成大
智者本位
自力養成
道成救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