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6

ジャラール・ウッディーン・ルーミー - J Wikipedia 자랄 우딘 루미

ジャラール・ウッディーン・ルーミー - Wikipedia

자랄 우딘 루미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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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랄 우딘 루미의 동상 (터키 부카)

자라르 우딘 루미 ( 페르시아어 : جلال‌الدین محمد رومی ‎, Mawlānā Jalāl ad-Dīn Muḥammad Balkhī-e-Rūmī; 터키어 : Mevlânâ Celaleddin-i 7월 17 2007년 1 월  는 페르시아어 문학 사상 최대의 신비주의 시인이다. 같은 시대의 수피 이븐 알 - 아라비 와 나란히 이슬람 신학, 수피즘 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간주되고있다 [1] . '침묵'을 의미하는 '함무슈'를 가호로 하고 [2] , 루미의 아버지 바하우딘을 비롯한 사람들은 '식자'를 의미하는 '호다반데걸'이라고 그를 불렀다 [3] .

루미의 사상의 하나로, 선회 무도에 의해 「하느님 안으로의 소멸」이라는 죽음과 비슷한 상태에 빠지는 신비 체험의 실행을 들 수 있다 루미의 몰후, 콘야 의 루미묘를 거점으로 하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팽이처럼 춤추는 사마우(세마)라는 의식으로 유명한 메브레비 교단 이 형성되었다. 메브레비 교단에서는 이 교단의 시조라고 하고 있다. 주요 저서는 페르시아어 시집 ' 정신적 마스나비 '(Masnavī-ye Ma'navī; مثنوی معنوی).

이름의 어원 편집 ]

이란 에서는 아랍어 로 "우리의 스승"을 의미하는 마우라나 مولانا mawlānā의 페르시아어 형태인 모우러너/메우라나 mowlānā , 뿐만 아니라 '우리사' 모우라비 mowlāvī로 불려 [2] , 터키 에서도 터키어 형태 불린다. 아나톨리아 (룸 지방)에서 주로 활약했기 때문에, 단순히 「루미」라고도 불린다 [2] [5] . 루미는 로마 사람으로, 후년에 살았던 아나톨리아가 이전 동 로마 제국 (아랍어에서는 룸)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이란 , 아프가니스탄 , 중앙아시아 에서는 '루미'가 아니라 그의 탄생지로 여겨지는 발프 에서 유래한 '바르히(Balkhī, 페르시아어 : جلال‌الدین محمد بلخى ‎)'의 이름으로 불리는 [6] . "마우 러너"라고 존칭 된 고명은 우 라마 와 수피은 사상수 많지만, 이란에서 터키까지의 지역에서는, 페르시아어 문학 사상에 엄청난 업적을 남기고 위대한 슈피였기 때문에, 「마우라너」라고 하는 경우 특히 이 자랄·우딘·무함마드·루미를 가리키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메블라나 제라레딘 루미」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평생 편집 ]

루미의 생애는 1244년까지의 제1기, 1244년부터 1261년까지의 제2기, 1261년부터 몰년까지의 제3기에 대별된다 [7] .

1기 편집 ]

1207년 호러  지방의 주요 도시 중 하나 인 발프 (현 아프가니스탄 )에서 고명한 설교사이기도 한 신학자 바하우딘 무하마드 와라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또 다른 설에서는 루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발프의 출신이지만, 그 자신은 두샨베 근교의 소도시 바흐슈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8] . 어머니는 발프의 주지사의 딸이고, 할머니는 호러즘 샤 아침 의 공주라고 전해지고 있다 . 어머니의 할아버지 루크 누딘은 제4대 칼리프 앨리 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10] . 어린 시절의 루미는 다른 아이들과 놀지 않고 종교적 학문 탐구와 금욕적인 자기 단련에 몰두했다 [11] .

바하우딘은 발프에 적대자가 많아, 초기 시기부터 몽골 제국 의 중앙아시아 침입을 예견하고 있었다고 한다 [12] . 1217 년경 에 바하우딘은 가족과 함께 향토의 발프를 떠나 서방의 말라티아 로 이주했다 [13] . 방랑의 여정 가운데, 일가는 체재한 각지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여행의 도중, 루미는 니 셔풀 에서 시인 아타르 와 대면하고, 루미의 성공을 예감한 아타르로부터 그의 저서 『신비의 책』을 받은 전승이 존재한다 [14] . 일가는 바그다드 를 경유하여 메카 순례 를 마치고 다마스쿠스 를 경유하여 엘신장 에 머물렀다 [15] . 자라르 우딘은 엘진장을 떠나 카라만 에 몇 년 동안 머물지만, 이 땅에서 어머니와 형 알라우딘이 병몰한다 [16] . 또한 자라르 우딘은 카라만에서 아버지의 고생 슈라후딘의 딸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16] .

10년 이상의 유랑 끝에, 일가는 룸 세르주크 아침 의 술턴 카이크 바드 1 세에 초대되어 아나톨리아 (룸 지방) 중남부의 도시 콘야 에 정착하고, 콘야에 도착한 바하우딘 일가는 카이크바드 1세부터 어려운 환영을 받았다 [17] [18] . 자랄 우딘은 거주지의 룸 지방에 연관되어 루미라고 호했다. 1231년에 아버지 바하우딘이 죽은 후 [14] , 그 고제 부르하네딘에 동반되어 하라브, 다마스쿠스 등의 도시에 유학하고, 유학처에서는 이슬람 신학 (칼람)이나 하나피 파법학 을 수습했다 [2] . 귀국 후에는 방에 갇혀 기도와 명상에 몸을 바치는 결재를 시작하고, 수행을 마친 후에 브루하네딘으로부터 학문의 수료를 전해져 일샤드 ( 정신적 지도자)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19] . 아버지의 후계로서 스스로도 설교사의 일을 맡았고, 콘야에서는 이슬람교도 이외에 그리스 정교 의 수도사와도 교류를 가졌다 [20] . 룸세르주크 조말기의 실력자인 재상 무인 아딘 슬라이만도 루미에게 사사했고, 루미는 그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21] .

제2기 편집 ]

삽화 첨부 「샴세・타블리즈 시집」(1502-1503년 작성)

1244 년경 [2] , 콘야를 방문한 방랑의 수피수행자 샴수딘 태블리즈 (샤무세 타블리즈)를 만난 루미는 그때까지의 형식적 설교와 생활태도를 파기하고 그를 스승이라고 부르며 수피의 수행에 일생을 바치는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5] [14] . 타블리즈에 하나님의 사랑의 구현상을 찾아내고, 이후 스승에게 밤낮으로 섬기면서 사마우 ( 알라프의 신명을 주창하면서 음악과 춤을 통해 망아· 도취경 에 이르는 수피의 수행법 중 하나) 등에 밤낮으로 몰두했다.

루미는 사람 앞에 나오지 않고 집에 휘말렸고, 또 타블리즈가 오만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루미의 제자나 콘야의 시민은 타블리즈를 증오했다고 한다 [22] [23] . 1244년까지의 루미는 시작에 거의 흥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타블리즈와의 邂逅가 그에게 변화를 가져왔다 [24] [25] . 이 시대의 루미는 타블리즈에 의해 시적 재능을 영감을 받았고, 1247년 12월 5일 밤 [26] 에 타블리즈가 갑자기 실종한 뒤까지 신비주의적 열정에서 많은 발정시군을 낳았다. 이 시기의 시를 편찬한 것이, 루미의 초기의 작품 「샴세・타블리즈 시집」이 된다.

타블리즈가 떠난 후, 루미는 자신의 가르침을 자신의 마음속에 찾아내, 시작에 몰두해 간다 [27] . 1261년 (한설에는 1258년 / 59년 [2] )에 애제자 후삼 우딘의 간청으로 신비주의시의 걸작이 되는 '정신적 마스나비'(مثنوي معنوي Mathnawī-yi Ma'nawī)의 집필을 시작한다. 이는 자아의 멸각에 의해 인간 존재를 본원적 진리로 귀환시키는 것을 주창한 작품의 시작 부분에 열거된 18구를 주제로 전개된 총 6권, 약 25,000구 [2] -27,000구 [28] 에 이르는 장대한 마스나비 ( 서사시 ) 형식의 서사시이다.

마지막 편집 ]

묘내의 루미의 묘석

1273년 12월 17일 저녁에 루미는 콘야에서 몰린다 [29] . 다음날 18일 장례식에는 이슬람교도뿐만 아니라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도 참석하고 [29] 루미의 가장 친한 친구로 사상가 이븐 아라비의 제자이기도 한 새돌딘 쿠나위 가 장례식의 지휘를 받았다 . 30] . 루미가 자는 영묘의 디자인은 타블리즈 출신 의 건축가 바돌리딘이 다루었고, 비용은 무인 아딘과 그 아내가 부담했다 [31] . 루미의 영혼은 육체를 떠나 하나님의 곁에 부름을 받고, 합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의 생일을 '결혼의 밤'이라고 부르며, 12월 17일 콘야에서는 루미와 하나님의 재회를 축하하고 성대한 선회 무도가 개최된다 [32] . 1274년에 완성된 묘는 '녹색 돔'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세에도 많은 참배자가 방문하고 있다 [13] .

14세기 초반에 활약한 터키의 민중시인 유누스 엠레 는 루미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많은 작품에 루미의 시를 인용했다 [33] .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루미의 생애를 소재로 한 세밀화 가 많이 그려졌다 [34] . 루미의 탄생 800주년이 되는 2007년은 「유네스코 국제 마우러너년」에 정해져 이슬람교국이나 구미에서 루미의 탄생을 기념하는 사업이 행해졌다 [35] . 루미의 탄생지인 발프가 속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 바흐슈가 속한 타지키스탄 공화국 , 평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몰린 터키 공화국 외에, 그가 페르시아어 를 저술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 이슬람 공화국 은 , 그를 자국의 위인으로서 현창하고 있다 [36] .

작풍 편집 ]

콘야의 메블라나 박물관 소장의 「정신적 마스나비」의 사본
마찬가지로 '샤무세 타블리즈 시집'의 사본

간결하고 평이하지만 발정성이 풍부한 문체가 특징으로 시를 읽는 자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14] . 시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어, 명수가 들었던 루미의 시를 들은 인간은 도취감에 잠긴다고 말해지고 있다 [37] . 또한 시의 내용에는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신플라톤주의 , 기독교 신비주의로부터의 영향도 볼 수 있다 [14] . 저작은 모로코에서 중국,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이슬람 세계에서 읽혀져 다양한 해석이 되어 왔다 [38] .

특히 1244년부터 1261년까지의 작풍을 가리키며 '정정시의 시대'로 불리며, '샤무세 타블리즈 시집'에는 스승 샴세 타블리즈에 대한 도취의 감정이 나타난다 시집은 사본에 의해 수록되어 있는 구의 수가 다르고, 일부에는 다른 시인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있다 [39] . 선정시집에 스승인 타블리즈의 이름을 씌울 때, 루미는 하나님의 체현으로 보이는 타블리즈와 일체화된 정신상태에 놓여 시에서 신비주의에서의 신과의 합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39] . 루미의 정정시( 가자 르 )에는 연애시의 관능적·육감적인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사에 대한 열정과 사랑, 신비주의적인 사상이 읊고 있다 [39] .

'정신적 마스나비'는 '페르시아어의 꾸란 (코란)', '신비주의의 경전·백과전서'로도 평가되고 있다 [40] . 루미의 제자 후사무 우딘은 다른 제자가 아타르 의 ' 새의 말 ', '재난의 책'과 사나이 의 '진리의 정원'을 애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루미에게 '진리의 정원'의 형식 에 「새의 말」의 운율을 맞춘 서사시의 작시를 추천한 것이, 「정신적 마스나비」 집필의 계기라고 말해지고 있다 [28] . '정신적 마스나비'에 수록된 작품 중 루미가 직접 적은 것은 처음 18구만으로, 나머지는 루미의 시를 제자들이 쓴 것이라고 되어 있다 [28] . 『정신적 마스나비』의 제작은 루미의 죽음 직전까지 계속되고, 루미의 죽음에 의해 6권으로 중단된다 [28] .

도취상태로 쓰여진 '샤무세 타블리즈 시집'과는 반대로 '정신적 마스나비'는 각성상태로 쓰여진 '반성시'이며 루미의 신비체험이 반성적 의식을 통해 언어로 변환 [ 41] . 『정신적 마스나비』에서 말해지고 있는 이야기는 루미의 창작이 아니고, 꾸란이나 하디스 등의 다른 아랍어・페르시아어 문헌을 밑바닥으로 하고 있다 [42] . 은유, 우화, 일화, 이야기의 형태를 취하여 신비주의의 모든 사건이 언급되어 있고, 표면상의 의미의 이해는 용이하지만, 근본적인 진정한 의미의 파악은 난해하다 [42] . 『정신적 마스나비』에 수록되어 있는 서사시의 하나로, 신비주의의 정의가 곤란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어둠 속의 코끼리」를 소재로 하는 비유시를 들 수 있다 [43] . 긴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는 마스나비(서사시)라고 하는 페르시아시의 기법은 루미 이전의 시인도 이용하고 있었지만, 루미 이후는 마스나비라고 하면 그의 현저한 시집이 연상되게 되었다 [44] .

15세기에 오스만 황제 무라토 2세 의 명령에 의해 처음으로 '정신적 마스나비'가 터키어로 번역되어 이후 몇 번에 걸친 재역이 시도되어 왔다 [45] . 20세기 초에 영국의 동양학자 Reynold A. Nicholson에 의해 '정신적 마스나비'는 영역되어 구미에서의 평가가 확립되었다 [44] . 인도 방면 에서도 '정신적 마스나비'의 번역·해설이 시도되었고, 우르두어 , 신 디어 , 팬저 비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인도의 이슬람교도의 대부분은 '정신적 마스나비'에 의해 망설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시인·사상가의 무함마드 익 바르는 루미를 정신적인 스승이라고 믿고 있었다 [46] .

루미의 다른 작품으로는 산문 작품에 『루미어록』, 『7설화』가 있다.

사상 편집 ]

집단에서 소용돌이 치는 동안 여름을 수행하는 메브레 비 교단의 수행 풍경

사상가로서의 루미는 때때로 시작 분야만큼의 독창성은 없다고 평가된다 [14] . 사상은 이븐 아라비와 비슷하지만, 루미의 사상은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47] .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철학'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이븐 아라비나 그 고동생의 새돌딘 쿠나위와 달리 루미는 '시'라는 형식으로 정신세계를 나타냈다 [41] . 체험적·열정적인 루미의 사상은 때때로 이론적·사변적인 가자리  대비된다 [48] .

가족 편집 ]

1226년 에 루미는 아버지의 고동생 슈라후딘 라라 사마르칸디의 딸 고할 하툰과 결혼하고, 고할이 죽은 몇 년 후에 킬러 하툰과 재혼 했다 . 2명 사이에는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버렸다 [49] .

대표 저작 편집 ]

각주 편집 ]

각주 사용법 ]
  1.  잘콘느 『수피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 32-33면
  2. ↑ g 후지이 「루미」 「이와나미 이슬람 사전」, 1057-1058면
  3.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5페이지
  4.  잘콘느 『수피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 38페이지
  5. ↑ c 쿠로야나기 「루미」 「신이슬람 사전」, 522-523면
  6.  다케시타 『이슬람을 아는 4개의 문』, 263-264면
  7.  구로야나기『페르시아 문예사조』, 166-167면
  8.  다케시타 『이슬람을 아는 4개의 문』, 264페이지
  9.  나야 「터키의 선무 교단」, 69-70페이지
  10.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6페이지
  11.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11페이지
  12. ^ 나야 “터키의 선무 교단”, 71페이지
  13. b 이타니 「터키 민족의 활동과 서아시아의 몽골 지배 시대」 「서아시아사 2 이란 터키」, 175페이지
  14. f 힐 “루미” “세계 전기 대사전 세계편” 12권, 241-242페이지
  15.  나야 「터키의 선무 교단」, 72-74페이지
  16. ↑ b 나야 「터키의 선무 교단」, 74페이지
  17. ^ 나야 “터키의 선무 교단”, 69페이지
  18.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10페이지
  19.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브라나」, 12-13면
  20.  잘콘느 『수피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 76쪽
  21.  나야 「터키의 선무 교단」, 65-66, 85페이지
  22.  나야 「터키의 선무 교단」, 81-82면
  23.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브라나」, 16-17면
  24.  구로야나기『페르시아 문예사조』, 166쪽
  25.  『루미어록』(이통 슌히코역・해설), 439페이지
  26.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브라나」, 17페이지
  27.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17-18페이지
  28. ↑ d 쿠로야나기 「페르시아 문예 사조」, 172면
  29. ↑ b 나야 「터키의 선무 교단」, 86페이지
  30.  『루미어록』(이통 슌히코역・해설)
  31.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29페이지
  32.  다케시타 『이슬람을 아는 4개의 문』, 272페이지
  33.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184면
  34.  잘콘느 『수피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 35페이지
  35.  다케시타 『이슬람을 아는 4개의 문』, 262-263면
  36.  다케시타 『이슬람을 아는 4개의 문』, 264-266면
  37.  『루미어록』(이통 슌히코역, 해설), 417페이지
  38.  잘콘느 『수피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 33페이지
  39. ↑ c 쿠로야나기『페르시아 문예 사조』, 168페이지
  40.  구로야나기『페르시아 문예 사조』, 171쪽
  41. b 『루미어록』(이통 슌히코 번역, 해설)
  42. ↑ b 쿠로야나기『페르시아 문예 사조』, 173페이지
  43.  구로야나기『페르시아 문예 사조』, 82-83면
  44. ↑ b 다케시타 「이슬람을 아는 4개의 문」, 273페이지
  45.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178면
  46.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브라나」, 193-194면
  47.  잘콘느 『수피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 34페이지
  48.  구로야나기『페르시아 문예사조』, 173-174면
  49. ↑ b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블라나」, 9페이지

참고 문헌 편집 ]

  • 이타니 강조 「터키 민족의 활동과 서아시아의 몽골 지배 시대」 「서아시아사 2 이란 터키」수록
  • 『루미어록』
  • 쿠로야나기 항남 『페르시아 문예 사조』(세계사 연구 쌍서, 콘도 출판사, 1977년 9월)
  • 쿠로야나기 항남 「루미」 「신이슬람 사전」수록(평범사, 2002년 3월)
  • 다케시타 마사타카 『이슬람을 아는 4개의 문』(푸네우마사, 2013년 1월)
  • 나야 토시로 『터키의 선무 교단』(평범사 컬러 신서, 평범사, 1979년 6월)
  • 후지이 모리오 「루미」 「이와나미 이슬람 사전」수록(이와나미 서점, 2002년 2월)
  • 로버트 .N.힐 "루미" '세계 전기대사전 세계편' 12권 수록(쿠와하라 타케오편, 호루푸 출판, 1981년 6월)
  • 티에리 잘콘느 『수피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
  • Emine Yeniterzi 『신비와 시의 사상가 메브라나』

저작 (역서) 편집 ]

  • 루미어록』(이통 슌히코 번역・해설. 이슬람 고전 叢書, 이와나미 서점, 1978년 5월)
    • 『루미어록 이통 슌히코 저작집 11』(주오 공론사, 1993년 6월)

공부 이야기 - 고3이었을 때 독서실에서 느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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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요즘 의예과 수석 짤로 돌아다니는 글 전문.txt 122
쿵쿵쾅쾅2020-01-09 19:17 | 조회 : 45079 / 추천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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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 수갤 세상다내꺼님 글



서울치대 - 정시, 수석입학
경희대 한의대 - 정시, 차석합격,
경찰대 - 차석합격,
고대 의대 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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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었을 때 독서실에서 느낀 것.




오늘은 바로 공부 이야기 들어간다.

공부 이야기 : 고등학교 때 나는 학교가 기숙사인지라 주말에만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었지.
그런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고3이었던 당시 현재,
나는 내 주변에서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독서실에 있는 그나마 공부를 좀 한다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 중에서
나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이 없었다.
내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는데, 내가 제일 열심히 하고있다?
그 때 깨달았다.
이렇게 계속 공부하면,
여기 있는 애들은 평생 가도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겠구나.


진짜 아이러니하지 않냐
자기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을 이기려면, 그 사람의 배를 해도 모자른데,
똑같은 양조차 하는 사람이 없다니.

공부 열심히 해라.

여기서 말하는 열심히란 너희가 생각하는 것과 그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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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몰아서 해야된다.



오늘부터는 1시에 자야지.

내일부터 6시에 일어나서 공부좀 하고 일하러 가야겠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지...

공부 이야기 : 나는 준비하는 시험 때문에 두달 동안 공부해야되는데
달 공부하면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까?

모든 과목 찔끔찔끔씩 계속?

그냥, 시험이 3일 뒤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 부족한 과목 몰아치기.
그렇게 3일 지나고 나면, 그 때 제일 약하다고 생각하는 과목 또 몰아치기.
계속 벼락치기 하듯 몰아치기 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

수능도 마찬가지.
그냥 대충대충 하면 점수 유지밖에 더 되나.
100점 맞기 위한 공부는 95점 맞기 위한 공부랑 차원이 다르다.
20개 중에서 하나 정도 몰라도 되는거랑.
진짜 전 부분에서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건 느낌부터 다르다.

난 자연계 수석입학을 했을 때보다도
고3때 기말고사 13과목 올백 나왔을 때가 더 행복하고 뿌듯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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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가 공부하는 방법


나는 공부할 때 무작정 오래 앉아있는 거 별로 안좋아했다
난 잠도 많고, 또 노는 것도 좋아해서, 고3 기말고사 하루 전에도 여자친구만나고 그랬다.

공부는 시간이 하는 게 아니다.
공부는 '양'이 결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양' 이란,

내가 모르는 것을 새로 알게되는 양.

옆에 앉은 친구가 나보다 오래 앉아있어도,
내가 한페이지만 더 보면 걔보다 많이 한거다.

걔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한 다음, 편하게 놀면 된다.
누가 뒤에서 쫓아온다고 생각하고 달려라. 그리고 놀아라.

노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면 효과는 더욱 ++
앞으로 이 얘기는 여러차례에 나눠서 하려고 했지만,
우선 가장 기본적인 팁만 몇개 말해주면.



1. 쉬고 싶을 때는 쉬어라. 대신 쉬려면 제대로 쉬어라
게임 같은 거 하지말고, 자던가, 아니면 영화를 보던가. 운동을 하던가.
멍하니 하늘 쳐다보고 잡생각 하면서 앉아있지 말아라.
그런데 웃긴건, 그렇게 잡생각하고 책상에 앉아있어놓고는
그 시간도 공부한 걸로 계산하는 놈들이 많다는 거.

....그렇게 시간이 남아도냐?


2. 시간을 아껴라
화장실 가서 볼일볼 때 책 들고 가라.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쉬러 나올 때 프린트 하나 들고 나와라.
자기전에 앉아서 영어 단어 외우다가 잠와서 비틀거리면 누워서 바로 잠들어라.

밥 먹을 때 영어단어 외워라. 부모님이 엄청 기분 좋아하실거다. 그게 효도다.

.....가장 중요한 것!!!


3. 문제집 풀 때 맞출 수 있는 쉬운 문제 제발 풀지 마라.
그리고 맞은 것 동그라미 치고 좋아하지 말아라. 제발....
멍청한 놈들이나 문제집 두페이지 풀고 다맞았다고 좋아하지.

문제집은 틀리려고 푸는거다!!!!
내가 모르는 유형, 실수하는 유형 알아내려고 문제집 푸는거다.
그런데 왜들 다 맞으면 좋아하는건지 모르겠다.

다 맞으면 그 문제집 괜히 푼거다. 시간 낭비한거다.

모르는 유형을 찾아서, 그걸 새로 알아내기 위해서 공부하는거다.
맞는 거 동그라미 치지 말아라. 부끄러워해라.
1번부터 10번? 쉬운 문제는 모의고사 때 검토 한번 더해서 실수만 안하면 된다.
문제집에 있는 기본문제는 풀지 말아라. (기본 실력이 되는 학생에 한해서.)

나는 고3 수능 2일 전에 수탐투 EBS 파이널을 사서 풀었다.
2시간을 풀었는데, 5회(400문제)까지 풀었다.
물론 절반은 보자마자 아는 거라서 아예 손도 안댄 문제들.
그런데 푼 것 중에 하나 틀렸다.

나 자신이 엄청 한심하더라.
그 문제집 후배 줘버리고 친구들한테 다른 어려운 문제집 구하느라 30분을 썼는데,
그리고 나서 1시간동안 그 문제집 풀어서 모르는 문제를 4개 찾아냈다.

자, 다 맞고 '우왕ㅋ굳ㅋ' 이렇게 하면서 살았다면,
나도 그냥 그런 전교 1등 정도로 멈췄겠지.

난 맞춘 문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르는 문제, 힘든 단원을 좋아한다.
그게 나를 전국 한자리 등수로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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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당연히 힘들어야 한다



공부 이야기 : 공부는 오래 앉아서 하는 학생이 잘 하는 게 아니다.
더 많이 한 학생이 잘 하는거다.

여기서 중요한 게, '오래 하는 것'이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공부라는 게 뭔지 생각해보자.
공부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하는거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모르던 것들을 새로 알아야 된다.

그저 자리에 앉아서 대충 문제집을 끄적거리거나.
교과서나 책을 줄만 긋고 있거나 하는 것,
마지막으로 쉬운 문제집 풀면서 많이 맞고 좋아하는 것은 공부에 아무 도움도 안된다.

공부라는 건 '모르던 걸 알아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부를 하고 있는건지 아느냐?

공부를 하면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어려우면, 그게 바로 공부를 하고 있는거다.
모르는 걸 풀고 외우고 있는데 쉬울 수가 있느냐?

지금 공부를 하면서 지치지 않는다면,
짜증이 안난다면 그건 공부가 아니다.
문제를 다 맞고 있다면 그건 공부가 아니다.

조금 더 어렵게 공부를 하고, 조금 더 많이 틀려라.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모르던 것을 찾아냈다는 것을 기뻐해라.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다면, 결국 넌 모르는 것을 더 많이 알게되는 거다.

공부는 힘들다.
힘들어야 성적으로 변한다.

자, 그렇다면 오래 앉아있는 것이 공부를 많이 한 게 아니다.
모르던 것을 더 많이 알게 된 학생이 많이 한거다.

이 당연한 사실을 대부분의 수험생은 모르고,
대충 인터넷 강의를 슬렁슬렁 듣거나.
문제집을 풀고 다 맞고 좋아하고 있다.
공부를 쉽게 하는 법을 알고 싶어서 난리다.

어려운 걸 기뻐해라.
사고의 관점을 바꾸면, 공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단지 내가 모르던 수천 문제를 다 알기만 하면 되는거다.

모든 공부는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문제집을 사라. 그리고 틀려라.
1번부터 5번까지의 쉬운 문제는 그냥 풀지 말아라. 제발.
맞춘 문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시간만 낭비한 꼴이다.

더 많이 틀리고, 더 많은 오답정리를 한 학생이 공부를 오래 한거다.
옆 자리의 멍~하니 공부한 학생보다 많이 했다면, 놀아라.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성적이 오를 수록 더 오랜 시간을 공부할 수밖에 없다.
왜냐고? 틀리는 문제를 찾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수능 한달 전에는 하루에 문제집을 두세권씩 풀었다.
당연히 맞출 수 있는 쉬운 문제는 넘기고,
어려워 보이는 문제만 풀다보면 한권 푸는 건 금방이다.

그렇게 시중에 있던 거의 모든 사과탐, 수리 문제집을 다 풀어본 것 같다.
수능 직전에 나오는 ebs, 대성, 종로, 블랙박스, 교학사, 지학사, 등등의 총정리 문제집은
정말로 언어를 제외한 전 과목을 다 풀어봤었다,
외국어는 틀릴 것 같은 문법만 풀었고.

그렇게 했는데, 수능 때 내가 처음 보는 문제가 나오는 게 진짜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
그게 내가 성공한 이유다.

공부는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항상 기억하면서 공부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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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에 관하여


공부 이야기 : 보통 아이들이 시험을 잘 못 보고 나면 제일 많이 대는 핑계가

'아 다 아는 문제였는데 실수를 많이 했어요'
이게 참 많지.

'집에 와서 풀어보니까 다 아는 거였어요. 긴장했나봐요'
이런 말들도 많고.

그런데 많이들 들어봤을거야.
실수도 결국 실력이다.

그런데, 이 말이 결국 '아주 잘 알면 실수를 안한다'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람인 이상 누구나 실수는 하기 마련이야!!
단지 그 실수를 고친 것 뿐이지.

그렇다면
왜 실력이 실수를 줄이는 원동력이 되는걸까?

그건 바로 검토에 달렸어.

문제를 많이 풀고, 또 아는 게 많아지다 보면 당연히 문제를 푸는 속도가 빨라지게 되지.

나중에는 결국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빨리 푸는가가 중요해지게 돼.
대충 수리를 예로 들면, 나 같은 경우 처음 30문제를 40분을 잡고 풀었어.
1번부터 15번 정도 까지는 1분에 한문제, 나머지 15문제는 대충 2분정도로 풀어야 한다는 거지.
물론, 중간에 막히는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더 걸리게 되면,
그 시간은 다음 문제를 빨리 풀어서라도 시간을 다시 맞춰야 해.

결국 수능은 시간과의 싸움이야.
언어든, 수리든, 시간이 모자라서 뒤에 있던 아는 문제를 못 푸는 경우도 있지?
그걸 넘어서, 오히려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서 검토까지 할 시간을 버는거야.

나의 경우는 수리영역의 검토를 6번까지 하곤 했어.
다른 과목의 경우는 2번 내지 3번 정도 모든 문제를 시간안에 처음부터 다시 풀었지.

....그렇게 검토를 하는데, 실수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건,
검토를 할 때 풀이과정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푼다는 거.
혹은 수리의 경우 다른 풀이법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그 다른 풀이로 다시 풀어보는거지.

결국 적당한 시간 배분을 한 차원 넘어서,
몇번의 검토까지 가기 위해서는 문제를 정말 빨리 풀어내는 게 중요해.
공부를 할 때, 내가 문제 위주로 공부를 하라는 게 바로 그 이유.

고득점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결국 실수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검토'가 가장 중요해.

문제를 푸는 속도를 빠르게 해도, 내가 맞출 문제를 틀릴 확률은 정말 적어.
오히려 그걸 검토로 찾아내면 실수를 할 확률이 훨씬 더 줄어들지.

모의고사를 볼 때, 항상 시간을 보면서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이도록.
평소에 공부할 때부터.

실수는 검토를 하지 못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
그래서 실수도 결국 실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거야.

집중해서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되는지,
한 문제를 풀더라도 항상 경기에 임한다는 생각으로 풀어봐. 조금은 더 즐거울거야.

의외로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문제를 푸는 피치를 올리면 속도가 꽤 빨라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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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얼마나 해야 하는가?


내일은 오전부터 환자가 있어서 공부하다 지금 집으로 왔음.

공부이야기 :
얼마 전에 '성적이 보통인 학생이 얼마나 공부하면 서울대를 갈 수 있는가'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

그런데 대부분의 내 친구들(all서울대)이 "일년"이면 되지 않을까. 라고 얘기하더라.
1년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성적을 많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데 내가 다시 질문을 했어.
'그럼 이 중에 진짜 1년만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온 사람?'
...그런데 정작 그런 사람, 아무도 없더라.

그리고 이 게시판에서도 '얼마나 공부하면 서울대 갈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

....나도 사실 1년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도, 못하는 사람들도 모두 1년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니.
그럼 이게 진실일 수 도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두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그게 뭔지 알아?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도, 못하는 사람들도 모두 1년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1. 잘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게 두려운 사실.
누구나 모두 자기만큼 올라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열심히 해야하지.

2. 그런데 공부를 열심히 해본적이 없는 학생인데도, 성적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꼭 조금만 하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지금의 상태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기현상.

이 두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거야.

물론 1년만에 얼마나 오를지는 보장할 수 없지만,
공부는 하는 만큼 올라.
그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 중 현재 누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까?

언제나 두 사람에게는 그 차이가 있을 뿐.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면,
'얼마나 열심히 하면 되나요?'
'얼마나 오래 하면 되나요?'
를 묻기 전에,

우선 자신의 성적을 걱정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공부를 시작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인생에 지금 이 순간은 절대로 다시 찾아오지 않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공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지금을 벗어나서 날고 싶다면,
날갯짓을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를 궁금해 하는게 아니라,
한번이라도 더 그 날개를 움직여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없다면, 넌 네 가능성을 스스로 던져버린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마.

침묵 요법: 가면을 쓴 심리적 학대 - Wonderful Mind

침묵 요법: 가면을 쓴 심리적 학대 - Wonderful Mind



인간관계
갈등

침묵 요법: 가면을 쓴 심리적 학대
3분




마지막 업데이트: 30 10월, 2019

침묵 요법, 사일런트 트리트먼트는 자기조절이 매우 강하며, 감정보다 이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전략이다. 그와 동시에, 심리적인 학대를 조장하며, 수동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 말인즉, 이 요법을 받는 상대는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침묵 요법은 상대방을 무시하고자 하는 행동의 모음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수단을 여러 인간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연인들, 친구들, 부모자식 관계, 친척들 등등… 이 침묵요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큰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 행동을 당하는 피해자는 자신이 분쟁을 겪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해자 쪽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친구들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무관심한 것이다: 그것이, 비인간적인 면의 본질이다.” – 조지 버나드 쇼

침묵 요법에는, 이하의 방법들도 포함된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 자신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일, 상대방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는 일, 스스로 남과 거리를 두는 일, 아니면 남을 마치 전염병 걸린 사람처럼 멀리하는 일, 상대방의 요구나 부탁 등을 묵살하는 일, 아니면 끝내 없는 사람 취급하는 모든 행동 등이다.

이런 행동들은 인간관계에 매우 해로운 일이다. 자신의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의 악함, 감성 결여 등도 여과없이 드러내며,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최악의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상대방을 쥐락펴락하려는 이런 행동들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침묵 요법: 스트레스와 감정적 트라우마를 불러올 수 있는 행동

침묵의 방법들의 대상이 된 사람은, 매우 부정적이고, 강렬한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전혀 가치없는 사람이며, 없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행동이, 잔혹한 모습으로, 차갑고 조용한 태도를 보이며 이루어진다면, 상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전혀 모르게 된다.


무시당한 사람은, 매우 깊은 슬픔에 휩싸이게 되고,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어쩌면, 분노와 죄책감, 공포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무시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이 방법은,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있어도, 사용해서는 안될 방법이다.


이 행동들을 당하는 피해자는, 매우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왜 상대방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로 인해 자기 조절을 못하게 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것이, 일종의 학대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 어떤 폭력이나 폭언도 없었지만, 수많은 무언의 폭력행위가 발생하는 것이다.
침묵 요법은, 물론 물리적인 영향도 준다

많은 연구에서, 자신이 배제되거나, 무시당하는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의 뇌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밝히고 있다. 뇌의 한 부위인, ‘전대상피질‘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수준을 감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침묵의 폭력을 당할 때, 이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보고 있다.



이 부위가 작동한다는 것은, 신체에 물리적인 징후도 같이 나타난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흔한 증상이, 두통과 소화 불량에 관한 질환들이다. 피로와 불면증도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만일 상황이 심각하고 오래 간다면, 그만큼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고혈압, 비만, 최악의 경우에는 암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상황 때문에, 신체의 자기면역 체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만일 침묵의 폭력이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 옐르 들어 선생님이나 부모, 상사 등에서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더더욱 심각할 수도 있다.

이 상황들을 적절히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보자

침묵 용법은, 간혹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가끔, 사람들은 침묵 요법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남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마치,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매우 잘못된 생각들이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은, 그저 관계를 파멸시키는 방법일 뿐이다.


많은 방어적인 요인들과 불안감 등으로 발생한 다른 방법들처럼, 이 침묵 용법의 사용도, 그 사람의 인간교류 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침묵은, 상황이 고조된 경우, 그리고 이를 완화하기 위한 차분함이 필요하다면 유용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는 수단이나, 처벌적인 목적을 갖고 사용한다면, 폭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무도, 수동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무시당하도록 둘 사람은 없다. 최소한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라도 듣지 못한다면, 결코 납득할 수 없다. 만일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를 해결할 유일한 좋은 방법은, 서로 해결책을 찾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침묵과 거리를 두는 행위는, 두 사람의 문제를 더욱 키울 뿐이고, 결국에는 파멸의 결말만을 부를 뿐이다.이 글은 어떤가요?

읽어보세요 Wonderful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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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5

알라딘: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알라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 퇴계ㆍ다산ㆍ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지은이)소나무2022-01-27
252쪽

책소개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목차
서문 _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I. 도학에서 천학으로
1. 한국철학의 특징을 찾아서
2. 동방의 제천의례 논쟁
3. ‘천학’이라는 범주
4. 이 책의 구성

II. 조선의 하늘철학
1. 한국인의 하늘사랑
하늘축제
하늘경험
‘하’의 탄생
역사 속의 하느님
2. 조선정치와 하늘철학
경건함으로 다스려라
하늘님을 대하듯 하라
하늘을 참되게 대하라
3. 퇴계의 하늘철학
성인에 대한 믿음
하늘에 대한 효도
리(理)와의 감응
다카하시 스스무 학설 비판
4. 퇴계 이후의 하늘철학
윤휴의 사천유학(事天儒學)
다산의 상제유학(上帝儒學)
실심(實心)과 천학
5. 동학에서 ‘천교’로의 전환
천교(天敎)의 등장
천도(天道)의 탄생
천도와 천교
천인(天人)과 시민(侍民)
하늘의 개별화와 일상화

III. 한국사상의 풍토와 한국인의 영성

참고문헌
===
저자 및 역자소개
조성환 (지은이)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지구지역학 연구자.
서강대와 와세다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고,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한국 근대의 탄생』과 『개벽파선언』(이병한과 공저)을 저술하였다. 20∼30대에는 노장사상에 끌려 중국철학을 공부하였고, 40대부터는 한국학에 눈을 떠 동학과 개벽사상을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1990년대부터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지구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관된 문제의식은 ‘근대성’이다. 그것도 서구적 근대성이 아닌 비서구적 근대성이다. 동학과 개벽... 더보기
최근작 :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동학의 재해석과 신문명의 모색>,<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 … 총 1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철학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책은 ‘하늘(天)’ 관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사상사적 시론이다. 이 시론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기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조선사상사는 중국 주자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구도로 서술되곤 한다. 그래서 주자학의 용어를 원용한 ‘주리론-주기론’이라는 다카하시 도오류식의 분석틀을 사용하거나, ‘중국성리학의 조선화’라는 유학사의 맥락에서 기술되어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만약에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굳이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한국 땅에서 벌어진 현상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라면, 그냥 ‘동아시아유학사’ 내지는 ‘조선유학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의 근저에는 “과연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대단히 본질적이며 상식적인 물음이 깔려 있다. 과연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왜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기본적인 동기다.

“일반적으로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전부 중국철학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의 불교와 조선시대의 유교는 전부 중국에서 수용된 것이다. 퇴계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표현도 전부 중국의 주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치부해버리고 말면 ‘사상사’를 서술할 수 없게 된다. … 똑같은 개념을 써도 함의가 같을 수는 없다. 유학의 천(天)과 동학의 천(天)이 같을 수 없고, 주자의 리(理)와 퇴계의 리(理)가 동일할 리가 없다. 이러한 차이를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한국사상사’ 서술의 관건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사상사 서술방법론에 관한 사례연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론이기도 하다.” (13쪽)

“우리는 주자나 양명이 아닌 퇴계나 다산이 딛고 서 있는 사상적 풍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작업이야말로 ‘사상사’의 본령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결정적 힌트는 유학이라는 틀을 벗어난 동학이 제공한다. 동학은 주자학이라는 중국적 사유가 그 시효를 다한 상태에서 드러난 한국적 사유의 표출이다. … 그래서 우리가 “한국사상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먼저 ‘유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사상은 “중국의 영향이 전부”이고 “유학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상 한국사상의 특징은 포착하기 어렵고, 따라서 한국사상사의 서술은 점점 어려워진다. ‘유학’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조선유학을 바라보지 않는 이상, 조선유학의 특징도 잡아내기 어렵고 동학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놓치게 된다.” (215~216쪽)

우리에게 ‘하늘’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접근하는 하나의 단서로서 필자가 주목한 사상은 ‘동학’이다. 동학은 조선성리학이 그 효력을 다해갈 무렵인 조선말기에 한반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주체적인 사상이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는 자신의 사상을 유도(儒道)나 불도(佛道)와 대비하여 ‘천도(天道)’라 명명하고,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한국)의 세계관(道)은 생명과 평등 그리고 존엄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인간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우주적 생명력인 ‘하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동등하게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이 자신의 사상체계를 ‘하늘’을 중심으로 전개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탈아입구로 대변되는 서구화와 더불어 사상언어로서의 하늘 관념은 사어(死語)가 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철학 역시 선진시대 이래로 ‘천(天)’에서 ‘도(道)’로(제자백가), ‘도(道)’에서 다시 ‘리(理)’로(신유학), 그리고 ‘리(理)’에서 다시 ‘기(氣)’로(청대실학), 그 진행이 점점 ‘하늘’의 초월성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렇게 보면 동학의 탄생은 동아시아 사상사에서는 하나의 ‘사상사적 역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특이한 현상에 대해 과연 어떠한 사상사적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이 해결하고자 하는 하나의 과제다. 그리고 이 과제는 처음에 제기했던 중국철학과는 다른 한국적인 철학이 과연 무엇인지, 그런 것이 있기나 하는지라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이 두 가지 물음, 즉 동학의 탄생에 대한 사상사적 설명, 그리고 한국철학의 특징 찾기를 위해 필자는 ‘하늘철학’을 제시한다.

“고대 한반도인들은 황제나 임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누구나’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였다. 그것도 개별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개인적이 아니라 공공적으로 거행하였다. 이 책에서는 “하늘을 그리다”라고 명명하였다. 여기에서 ‘그리다’는 ‘그리워하다[思]’와 ‘그리다[描]’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그리고 언설로 표출하였다.” (12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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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폐쇄·자기소외’ 한국학을 넘어서

이우진

승인 2022.04.15 


서평_『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 조성환 | 소나무 | 252쪽


퇴계 전후 사상가들의 천관을 통시적으로 추적
조선전기 정치사상이 독자적 경치의 형태로 발현

우리의 한국학은 아직도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그것은 외세의 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고 다시 전쟁과 분단을 겪어야 했던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주도권을 움켜쥐지 못한 채 타자들에 의해 강요된 한국의 근·현대사는 어느새 우리 내면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는 한국학을 ‘자기폐쇄’와 ‘자기소외’라는 상반된 두 방향으로 치닫게 했다.




‘자기폐쇄’는 역사적 경험에 의해 심어진 ‘식민-후진국’과 ‘주변부-종속’이라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역사의 위대성을 찬양하려는 노력이다. 아주 먼 옛날에는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위대한 역사가 언젠가 다시 재현되리라는 나르시스적 입장이다. 역사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객관적 사실이나 과거의 위대성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느냐는 반성적 물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은 우리가 모멸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자의 인정이나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는 우리만의 정신적 승리를 위한 ‘자기폐쇄의 한국학’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폐쇄의 한국학은 우리가 지니고 싶은 믿음과 신념일 뿐,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높지 않기에 그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소외’이다. 자기소외는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정신적 식민지배로 구축된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나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자신의 인질범이나 가해자들에게 오히려 애착이나 온정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막강한 타자에게 장기간 납치당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인 그들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피해자인 우리는 어느새 우리 자신에 대한 독자적인 의견과 해석을 내놓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의 틀을 무시하고 타자의 틀에 맞추어 우리의 역사와 철학을 해석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는 사실은 역으로 자기소외의 한국학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기껏해야 타자의 틀이나 해석에 대한 비판에 머물 뿐 그것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철학은 중국철학 연장선 아니다

이번에 나온 조성환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폐쇄’와 ‘자기소외’의 한국학을 넘어서고자 하는 야심찬 도전이다. 서두에서 “한국사상사의 서술방법론에 관한 사례연구일 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론”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기존의 한국학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저자인 조성환은 “종래의 한국사상사 서술이 중국사상사라는 거대한 숲에 가려져 그 독자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데 소홀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더불어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한국사상사 서술의 시각이 중국이나 일본학계가 만들어놓은 기존의 틀이나 문제의식에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경향”에 의해 구축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는 ‘한국학의 자기소외적 방향’에 의해 한국철학의 독자적 개성을 찾기보다는,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중국철학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거나 해석하기에 급급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철학의 독자성을 질문하거나 고민하거나 논의하는 일은 어쩌면 ‘자기폐쇄의 한국학’에 함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기껏해야 몇몇 한국사상가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데 머물렀을 뿐, 한국의 사상사 전반을 통해 우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일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다시 말해, 개별 연구에 치우쳐 한국사상사에 대한 큰 시각을 제시하는 데 소홀하였다. 아프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면, 우리는 한국사상사 전반을 독자적인 해석틀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묶어내는 일에 실패하였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대담한 가설을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치밀한 고증과 세심한 분석을 수행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많은 한국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이러한 ‘용기’와 ‘노력’이 담긴 한국사상사를 목말라했다. 조성환의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 갈증을 해소해주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의 대담한 가설은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는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을 그리워하고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그리고 언설로 표출하여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철학[天學]’ 혹은 ‘하늘-물음’에 대한 논의는 한반도에서도 뿌리 깊었고, 중국 유교의 전래를 통해 더 심화되고 강화되었으며, 인내천(人乃天)을 종지로 하는 동학의 출현에서 보듯이 근대에서조차 건재하였다는 가설이다. 여기에는 종래 ‘경천사상(敬天思想)’이나 ‘하늘철학’을 중국철학의 전유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날선 비판이 담겨있다. 저자는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한·중 비교철학을 채택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종래에 당연시되어왔던 한국철학과 중국철학에 대한 입장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바는 외래문화의 수용과정에서 ‘수용자의 주체적인 역할’이다. 외래문화를 수용할 때 그것을 수용하는 지역의 풍토와 수용하는 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모종의 변용이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놀랍게도 저자는 자신의 과감한 가설을 검증하는 대상으로서 조선사상사를 택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조선은 주자학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있었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저자는 조선사상사가 중국철학(주자학)의 엄청난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할지라도, 이른바 중국적인(주자학적인) 것이 아닌 한국만의 독자적 특징을 내보인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독자성은 ‘하늘을 섬기고 하늘과 교감해 온 전통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문학적 배경’ 즉 ‘하늘철학’이다. 다시 말해, 조선사상사에는 한국의 인문학적 풍토에서 기인한 하늘철학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증명해내는 길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조선의 유학자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개념이나 표현이 중국문헌에서 유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상의 유사성을 넘어 그 의미상의 차이를 드러내야하기 때문이다. 곧 한국철학과 중국철학, 이 양자에 대한 나름의 명확한 이해뿐만 아니라 치밀한 고증과 세심한 분석을 수행할 때에만이 각각의 개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대개의 조선사상사가 ‘용기’만으로 가득 찬 가설로 머물거나 성과 없는 ‘노력’으로 그치곤 한다. 이 점에서 저자의 ‘용기’와 ‘노력’이 온전히 결합된 이 책의 가치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주자학·천주학·자생학과 하늘섬김

책의 부제가 ‘퇴계·다산·동학의 하늘철학’이지만, 이 책은 조선사상사 전반을 다루고 있다. 그 중심에는 ‘퇴계-다산-동학’의 문헌들을 통해 하늘에 대한 공경[畏天]과 섬김[事天]의 태도가 두드러진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지만 말이다. 더불어 하늘철학의 표출방식에 있어 퇴계는 주자학의 언설로, 다산에서는 천주학의 수용으로, 동학에서는 자생학이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 책 안으로 들어가 보면 조선전기의 정치사상이 한국인의 하늘철학(하늘섬김)이 성리학의 경(敬)개념과 결부되어 독자적인 경치(敬治)의 형태로 발현하고 있음을 논증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조선전기의 정치사상에서 나타난 하늘에 대한 공경과 섬김의 태도가 이후의 퇴계-다산-동학이라는 조선사상사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책은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퇴계 전후의 사상가들에서 보이는 천관(天觀)을 통시적으로 추적하는 방법을 취하면서, 퇴계학파와 주자학에서의 천관을 비교·고찰한 뒤 그 차이가 한국에서 동학을 탄생시켰다고 역설하고 있다.

유학을 전공하는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이 책의 중심에 있는 퇴계철학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의 마지막 부분을 검토하여 퇴계의 경학(敬學)이 천학(天學)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는 논증이나 퇴계의 독창적인 리도설(理到說)을 천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부분은 대단히 흥미롭다. 특히 퇴계의 리도설이 논리적 틀로는 체용론(體用論)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본적론(本迹論)에 더 부합된다는 저자의 독법은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대단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본(本)으로서의 리(理)는 우주론적으로는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고 심성론적으로는 도덕 감정이 발하는 근원이며, 적(迹)으로서의 리(理)는 수양론이나 공부론 상에서 내가 그것에 진지하게 다가가면[卽物窮理] 그런 나의 노력에 응답하는 형태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퇴계의 리도설을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합리적 윤리학’으로 설명하거나 ‘주자학에서 양명학적 접근’을 시도한 외국 학자들의 입장들에 대한 저자의 치밀한 비판도 실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독자에게 스포일러(Spoiler)가 되는 것 같아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저자에게 중요한 도전을 부탁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다루었던 ‘조선 전기 정치사상, 퇴계, 윤휴, 다산, 동학이 지닌 각각의 하늘철학’에 대해 치밀하게 설명하고 논증하라는 도전이다. 물론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사상사 전반을 다루려 했기 때문에 각각의 사상가들이 지닌 하늘 철학적 면모를 풍부하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상사의 독자성으로서 하늘철학을 통시적으로 부각시키려다 보니, 각각의 사상가에 대한 하늘철학적 분석이 소략하지 않았나 하다. 저자의 해석틀이 좀 더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이러한 작업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가 ‘자기폐쇄와 자기소외의 한국학’을 넘어서고 있음을.







이우진
공주교육대 교수·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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