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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4

알라딘: 함석헌의 사상과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탐구

알라딘: 함석헌의 사상과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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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사상과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탐구 - 한국 인문학의 선구   
김영태 (지은이)전남대학교출판부2018-02-23




함석헌의 사상과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탐구

정가
20,000원
판매가
19,000원 (5%, 1,000원 할인)

책소개

신천옹(信天翁) 혹은 씨을로 불리우는 함석헌(1901~1989) 선생의 사상과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탐구서이다. 신천옹의 사상은 다분히 종교철학적이며 종교다원주의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사상은 유교ㆍ불교ㆍ도가사상ㆍ천도교ㆍ기독교(특히 프로테스탄트), 더 나아가서는 힌두교와 간디의 비폭력 사상ㆍ퀘이커교의 평화사상ㆍ한국사 및 세계사에 대한 성서적 역사관ㆍ실존철학 사상ㆍ현대적 과학정신ㆍ민주주의 이념 등으로 꽉 차있기 때문이다.
목차
머리말 / 5

제1장 서론 / 11
제2장 함석헌의 생애, 영적 순례 그리고 사상적 토대 / 20
제3장 이웃종교 섭렵과 원용 / 127
제4장 한국그리스도교 비판 / 178
제5장 새 종교론과 종교다원적 삶 / 268
제6장 평화사상 구현 노력 / 309
제7장 20세기 한국민주화의 창도자(唱導者) / 346
제8장 결론 / 376

사진출처 / 382
참고문헌 / 384
영문초록 / 397
찾아보기 / 402

책속에서
제1장 서 론

신천옹(信天翁, Albatross, 바보새) 함석헌은 1901년에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1989년에 서울에서 서거하였다. 그는 한반도에서 온전히 20세기를 살다 간 사람이다. 민족사와 세계사를 통틀어 20세기만큼 크고 놀라운 변화의 시대는 없었다. 한국의 20세기는 제국주의와 국가주의로 치닫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민(民)의 주체적 자각이 이루어지고 세계화가 일어난 시대였다. 그러나 역사의 전환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바, 서양의 산업과 군사, 과학기술과 학문, 정치와 종교가 일방적으로 동양에까지 깊이 들어온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한국 사회는 짧은 기간에 낡은 봉건사회로부터 산업 문명의 새 세상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해방 후 70여 년 동안에 이른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적인 가치와 문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크게 흔들리고 무너졌으므로, 새로운 변화가 획기적으로 요구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함석헌은 낡은 관습과 전통에서 벗어나 과학과 기술, 민주주의, 그리고 당시의 새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한반도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개의 큰 강물이 만나서 하나로 합류하는 지점이었고, 함석헌은 이러한 지점에서 시대정신에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한 큰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민족의 사상과 문화는 수천 년 동안 중국사상과 문화의 영향 아래 있었고, 지배층과 학자들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져 있었다. 거기에 일제의 식민 통치 시기와 해방 후 군사독재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정신과 문화는 많이 위축되고 유린되었다. 군사정부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한국정신과 문화를 내세우기는 했으나, 군과 정보기관을 앞세운 폭력적 지배 속에서 박제된 민족 문화와 새로운 한국을 어설프게 제시했을 뿐이다. 따라서 식민 사관과 서양의 문화가 지배한 지난 100여년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는, 겨레의 얼과 혼이 살아 있는 주체적인 한국 사상과 철학이 나오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철학자들은 동서 정신문화를 아우르고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주체적이고 세계적인 한국철학을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이는 동서 문명을 그들의 정신 안에서 통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함석헌은 주체성을 지키면서 기독교와 서양 문명을 깊이 받아들여 동서 문명을 아우르는 철학을 이룩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함석헌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자유당 정권, 군사 독재, 민주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종교인으로서, 민주화 운동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는 일제하 식민지 시대에 서구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이를 한국의 종교 문화적 감수성과 사회 역사적 경험 속에서 창조적이고도 주체적인 한국 기독교 사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나아가서 그는 고난과 위기로 점철되었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기독교 실천가로서, 예언자적인 사회운동가로서도 대중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 근현대의 다른 어떤 인물보다 그를 돋보이게 만든 점은 그가 자신의 사회적ㆍ역사적 실천을 사상적ㆍ종교적ㆍ신학적 진술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앙적ㆍ사회적 실천 속에서 깨달은 깊은 영적 통찰을 시적이고도 감수성 넘치는 글로 담아 낼 줄 알았고, 인격적이고도 역사적인 성서적 기독교 신앙과 마음을 중시하며 신인합일(神人合一)적인 동양 종교적 감수성을 결합해 창의적으로 기독교 사상을 펼쳤다. 그에게는 신앙적이고도 대중적인 실천과 창조적인 기독교 사상이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아마도 함석헌은 한국 종교사에서도 사회 변혁과 독창적 사상 형성이라는 양 측면 모두에서 발군의 업적을 쌓은 인물로서 한국 불교사의 원효와 근세의 다산 정약용 그리고 동학의 최제우에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함석헌이라는 인물의 깊이와 넓이에 비해 실제 그에 대한 연구와 이해의 정도는 아직 미진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회운동가, 사회사상가로서의 그의 면모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사상과 활동의 중심에는 기독교 신앙과 체험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의 삶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동하는 그의 종교 체험의 떨림과 울림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수용했고 그것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변용시켰는지, 더 나아가 그러한 변화의 동기와 동력은 무엇인지 탐구해야 할 것이다.
함석헌은 정통 신학자나 목회자는 아니었다. ‘이단자’라는 이름이 붙은 한낱 평신도 기독교인이었을 뿐이다. 그가 맞서 싸웠고 정화하려 했던 것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권력자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였고, 그들이 발휘하는 영향력 아래서 폐습과 독단에 물든 한국 기독교였다. 그는 빗나간 한국 기독교를 각성시키는 ‘등에’(gadfly)나 다름없었다. 아울러 함석헌은 기독교 사상과 동양 사상의 융합, 보편주의적 종교관, 기독교에 대한 동아시아적 입장에서의 재해석 등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지평을 넓히고 그것을 심화하려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함석헌은 기독교 진리에 입각해서 비민주적인 근대한국의 정치 및 사회적 풍토를 쇄신하려고 혼신을 다해 싸웠다. 한국의 민주화, 즉 평화로운 한국을 만들기 위해 그의 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함석헌의 진의는 대승적 차원에서, 인류가 전쟁으로 공멸할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벗어나 스스로 살길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함석헌에게 평화는 하느님과 역사의 ‘절대적 명령’이었다. 평화는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될 문제가 아니라 가능해도 가고 불가능해도 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렇다면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했던가? 함석헌은 무엇보다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의 사상적 안내가 될 수 있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서양의 고전철학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동양의 고전 철학, 특히 노ㆍ장 사상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를 뒷받침하는 힘의 숭배, 폭력과 전쟁과 탐욕의 논리 반대편에서 노ㆍ장 사상이 제시하는 것은 ‘평화’의 논리였다고 본 것이다. 노자의 평화주의는 『도덕경』에서 명백히 드러난 바, ‘어린 아이’, ‘여성’, ‘물’로 대표될 수 있는 부드러움과 유약함, 겸손, 마음의 평정 같은 높은 가치들이 그것이다.
현대 한국은 놀랍게도 다종교(多宗敎)국가이다. 서구 선교사들의 열렬한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 신도(神道)같은 동양 전래의 종교들이 여전히 국가적 종교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구 나라들은 기독교를 압도적으로 국가적 종교로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면에서 좀 특이한 경우이다.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토속신앙, 그리고 신흥종교들이 두루 공존하는 가운데 어느 하나가 배타적으로 독점권을 누리고 있지 않은 가운데 한국은 동양종교와 서양종교가 혼재하는 나라이다. 한국은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과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정책이라는 종교 차별정책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에서 불교와 천주교는 강력한 세력으로 살아남아있고 양자 간에는 대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함석헌은 동양의 고전 사상을 서구 기독교와의 관련 속에서 재조명하려 했고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들어맞도록 재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유교적 가치관과 개인 각자의 책임의식을 회피하는 기독교의 대속론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 대신 그는 종교적 관용주의의 입장을 취한 기독교의 퀘이커교도로서 한국의 기독교 풍토를 유연한 것으로 변화시키고자 힘썼다. 더 나아가 그는 서구 기독교에 상대적으로 우세한 사회 정의, 인권, 저항의식 등의 요소를 동양 사상이 강조하는 초월의식, 관용성, 포괄성과 결합시키려 했다. 구리와 아연으로 황동을 만들듯이, 함석헌은 동서의 장점을 융합한 사상이 문명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장차 인류가 보다 높은 영적 단계에 도달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예견한 것이다. 마치 인간의 두 다리나 남녀, 혹은 음양의 원리가 서로 협동하듯이 이 융합된 사상이 인류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근원적이고도 역동적인 힘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함석헌의 원대한 포부와 추동력은 결국 무엇보다도 그의 폭넓은 종교적 신념에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본서에서는 그의 종교사상의 씨줄과 날줄이 과연 어떠한 구조와 특성을 가지고 짜여져 있으며 그 이상(理想)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하였다. 퇴계와 율곡은 유학에 기초해서 그들의 독특한 사상을 펼쳤고, 다산(정약용)은 유학과 천주교에 토대하여 그의 실학사상을 전개했다면, 현대 한국의 사상가 함석헌은 서양에서 전개된 기독교(개신교)에 기초하여 유ㆍ불ㆍ도, 인도사상까지 포괄해서 동ㆍ서양의 사상을 아우르는 다원적 사상의 토대 위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몸소 행동으로 실천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철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는 주로 과학ㆍ기술ㆍ자본ㆍ다원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이와 같은 역동적 현대 사회에서도 깊은 인문학적 성찰과 철학을 가지고 살아온 분들이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가운데, 함석헌은 마치 평지의 고봉처럼 돋보이는 현대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사상가(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 사상가의 반열에 내어 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특출한 철학자라고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가 세계 철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그의 저작들이 오로지 한글로만 되어 있을 뿐 국제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또 한국 기독교 주류가 그를 이단시하여 그의 성장을 막았었고, 정치적으로는 북한의 공산주의 정부와 남한의 자유당 정권 및 군사정권이 그를 억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함석헌에 대한 평가가 적극적이고 다양하다 : 예언자, 인권운동가, 민주주의 신봉자, 평화주의자, 종교사상가, 다원주의자 등. 덴마크가 낳은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진가는 그의 사후 100년 만에 인정받았는데 그 이유는 우선 덴마크의 국교인 루터교를 신랄히 비판함으로써 국교로부터 배척당한 점과 그의 저작들이 단지 덴마크어에 갇혀 있었다가 보다 폭넓게 사용되는 독일어로 그의 저작이 번역되고, 이어서 영어로 번역되면서 그의 사상의 진가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선 함석헌에 대한 국내 보수 기독교인들의 인식전환이 있어야 하겠고 또 함석헌에 대한 연구의 붐이 일어나야 하겠으며 게다가 그의 저작들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그의 생동력있는 사상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2008년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함석헌을 논의했던 것은 아주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의 글과 외침은 그의 생존시에는 외로운 광야의 외침이었으나 지금에 와서 보니 그의 주장과 외침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그대로 우리의 현실에 적중한, 앞을 내다 본 예언자적 외침이었다. 그는 강단 철학자가 아니라 실존과 현실 및 상황 철학자이기에 그의 주장은 결코 현학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삶의 철학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삶 자체가 생동하는 철학이었다. 이렇듯 사ㆍ언ㆍ행(思ㆍ言ㆍ行)이 일치했던 함석헌 같은 철학자는 세계철학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한국의 현대 실천적 사상가 함석헌을 탐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고 그 연구물들은 국내ㆍ외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특히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있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치유에 그의 사상은 크게 보탬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와 같은 탐구를 위해서는 주로 문헌적 연구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의 문헌은 《사상계》, 《씨알의 소리》, 《기독교 사상》 등에 산재되어 있으며, 함석헌에 관해서는 그의 주변 인물들의 글과 증언, 그리고 그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통해서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는 『함석헌 전집』 20권과 그의 『저작집』 30권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씨알사상 연구원과 함석헌 기념사업회, 함석헌 학회, 함석헌 평화포럼 등을 통해 새로운 자료들이 제법 제공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그의 기독교 사상, 그의 역사관과 윤리관, 기독교 외에 그가 관심을 가졌던 여러 종교들에 대한 그의 이해와 관점, 더 나아가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꿈과 이상, 그리고 그의 공헌과 영향력이 무엇인지를 탐구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의 종교사상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즉 역사적 접근, 전기(傳記)적 접근, 종교학적 접근, 신학적 접근, 실존철학적 접근, 신비주의적 접근, 종교신학적 접근, 정치-사회적 접근, 동양종교적 접근 등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학과 관련하여 그의 공적(功績)으로 민중신학의 토대마련을 들 수 있는데 그의 사상 중 ‘씨알’사상은 한국 민주화와 한국 민중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민중신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안병무에게 끼친 영향은 심대하다고 본다. 아울러 송기득, 김경재, 박재순에게 미친 영향 또한 대단히 크다고 생각된다. 이 세 학자들은 탄탄한 철학적 지식의 기반 위에서 함석헌의 사상을 정리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정지석, 김성수 등은 해외에서 함석헌을 연구하여 외국어로 논문들을 발표하여 한국 현대철학자 함석헌을 부각시키는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함석헌에 대한 깊은 연구는 결국 미약한 한국의 인문학을 부흥시키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영태 (지은이) 
1944년 전북 고창군에서 태어나 광주(光州)에서 성장하였다. 서울신학대 신학과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전공(영어교육학석사), 전남대 일반대학원 철학과에서 서양철학(윤리학전공, 문학석사)을 공부하였다. 전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에서 칸트(Kant)의 종교철학을 전공하여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퀘이커 공동체 신비주의로 종교학박사, 성공회(聖公會)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신학과에서 함석헌의 종교사상과 그의 영성적 삶에 대한 연구로 신학(神學)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안식년을 기하여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Israel)에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을 비교 연구하였고(1년간), Bethany Theological Seminary 및 Earlham School of Religion(U.S.A)에서는 Brethren Church(형제교회)와 Quakerism(퀘이커교)을 연구(1년간) 하였다.


경력으로는 국가공무원(법무부 산하) 2년 5개월, 중등학교 교사 9년, 전남대학교에서 29년간 윤리학과 종교학을 담당하였다. 정년퇴임 후 지금은 명예교수로서 자유롭게 연구와 강의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의 종교』(2인 공저), 『신비주의와 퀘이커공동체』, 『도덕신학과 도덕신앙』 등이 있으며 수십 편의 연구논문이 있다.
교수직을 수행하는 동안 한국종교간 대화학회 창설 및 공동대표, 한국윤리학회 회장, 문화체육관광부 공직자 종교차별(문제) 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접기
최근작 : <함석헌의 사상과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탐구>,<도덕신학과 도덕신앙>,<신비주의와 퀘이커공동체> … 총 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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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신천옹(信天翁) 혹은 씨을로 불리우는 함석헌(1901~1989) 선생의 사상과 삶에 대한 종교철학적 탐구서이다. 신천옹의 사상은 다분히 종교철학적이며 종교다원주의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사상은 유교ㆍ불교ㆍ도가사상ㆍ천도교ㆍ기독교(특히 프로테스탄트), 더 나아가서는 힌두교와 간디의 비폭력 사상ㆍ퀘이커교의 평화사상ㆍ한국사 및 세계사에 대한 성서적 역사관ㆍ실존철학 사상ㆍ현대적 과학정신ㆍ민주주의 이념 등으로 꽉 차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 역시 다차원적 면모를 지니고 있는 바, 풍류도적ㆍ신비주의적ㆍ영성적 특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의(不義)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정의(正義)실현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상과 삶의 기반 위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암울했던 20세기 한반도의 민중(民衆)들이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첩경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고향땅 북한에 있을 적(1947년 이전)에는 김일성 공산정권에 저항하고, 월남한 이후에는 부패한 이승만 정권과 부당한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듦으로써 고초(옥고 일곱번)를 당하면서까지 한반도의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투쟁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민중신학의 기초를 제공함으로써 향후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실현의 길까지 마련해 놓았다. 접기

2020/11/06

어떻게 살 것인가 (개정판) - 성장하고 치유하는 삶을 위한 근원적 질문 2016

 알라딘: [전자책] 어떻게 살 것인가 (개정판)


[eBook] 어떻게 살 것인가 (개정판) - 성장하고 치유하는 삶을 위한 근원적 질문  epub 

고은,석영중,손봉호,용타,한명기,박승찬,황현산,이강호,김상근,최인철,조성택,차드 멩 탄 (지은이)21세기북스2016-10-07 

전자책정가  12,800원

판매

 종이책 페이지수 312쪽, 

책소개


존재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잇는 근원적 물음,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황폐화와 사회 가치의 퇴색, 현실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의 부재로 현대인들은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 물음 끝에 탄생한 이 책은 2014년 가을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한 동명의 대중강연을 엮은 것으로, 누적 6만 명 이상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1부에서 김상근, 한명기, 조성택, 석영중, 황현산, 고은은 인류의 역사 속에 우리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을 통해 너를 살피고 나를 다스리는 지혜를 설파한다. 2부에서 손봉호, 박승찬, 차드 멩 탄, 최인철, 용타, 이강호는 상처를 견디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통해 삶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삶과 행복의 기본과 원칙이 현실에 닥친 슬픔과 혼란을 극복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며, 황폐해진 개인의 삶과 희미해진 사회적 가치를 극복할 수 있는 해답임을 역사와 철학, 종교와 문학 등 인문학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증명한다.

목차

발간사 / 흔들리는 세상에 맞서서, 어떻게 살 것인가


1부 너를 살피고 나를 다스리다


아포리아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 김상근

지금 대한민국은 아포리아의 시대

황금만능주의가 불러온 몸짱 열풍

캐묻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이상적인 국가 건설은 가능한가

통치자의 지혜


『징비록』 과거를 경계해 훗날을 대비하다 / 한명기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징비록』을 통해 본 임진왜란

정유재란 그리고 이순신의 죽음

류성룡의 끝나지 않은 고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화쟁, 경계와 차이를 넘어 함께 사는 지혜 / 조성택

‘어떻게’라는 질문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혜를 요구한다

화쟁론과 장님 코끼리 만지기

화쟁은 대화의 철학이다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 / 석영중

톨스토이, 마음을 바꾸다

톨스토이, 불륜을 말하다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

톨스토이, 소통을 말하다

톨스토이, 죽음을 말하다


시와 타자의 목소리 / 황현산

당신의 사소한 사정

얼굴과 뒷모습

주체인 나와 타자인 나

시에는 극단적인 무엇이 있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내 안의 광야, 노래의 씨를 뿌려라 / 고은

폐허 시대의 허무 의식

죽음을 딛고 삶을 노래하다

삶은 상처이자 자유다

세계사적 의미의 새로운 통합

희망의 노래


2부 삶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아프게 하는 사회,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 / 손봉호

고통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책임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고통을 넘어 희망으로 / 박승찬

고통의 미학, 고통의 의미

고통에 대한 다양한 구분

에피쿠로스의 철학

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을까

인문학의 위안

사랑하시오, 그리고 원하는 것을 하시오

홀로서기와 함께 걷기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 차드 멩 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행복을 위한 연습, EQ 트레이닝

마음 근육 키우기

삶을 바꾸는 자기 인식의 힘

행복을 위한 건강한 습관들


행복은 몸에 있다 / 최인철

신나게, 의미 있게, 몰두하는 삶

행복이 위험해지고 있다

사랑하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움직이고 걷고 달려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환경이 마음을 지배한다


행복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원리 / 용타

행복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원리

존중과 교류의 가치관

나는 누구인가

비전을 향해가는 방법


글로벌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 이강호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라

꿈꾸고 배우고 소통하라

꾸준히 최선을 다했는가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가치관을 세워라

기본과 원칙이 안전과 여유를 보장한다

인생을 바꾸는 순간들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접기

책속에서

P. 14 만약 인문학적 성찰이 ‘나는 누구인가’에만 머무른다면 그것은 매우 이기적인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문학은 자기 성찰에서 출발해 이웃과 세상 사람들, 그리고 사회 속에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작업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반드시 두 번째 질문인 ‘어떻게 살 것인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P. 31~32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전란사입니다. 제목인 징비(懲毖)는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의 “예기징 이비후환(豫基懲 而毖後患)”, 즉 내가 경계함은 후환을 삼가기 위함이라는 구절에서 한 글자씩 따왔습니다. (…) 그는 임진왜란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난이 일어나기 이전의 일도 기록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접기

P. 97 세상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인문 정신이며 시민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지혜로 세상을 바라볼 때, 논쟁이 화쟁적 대화로 이어질 때, 갈등과 분쟁은 더 이상 문제 상황이 아니라 더 큰 진리가 드러나는 에너지요, 기회가 될 것입니다.

P. 99~100 톨스토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게 되는데요, 그 답은 바로 ‘성장’입니다. 성장이란 인간이 끊임없는 성찰과 학습을 통해 자기완성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톨스토이는 성장에 대해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P. 135 개인의 사소한 사정은 더더욱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연대도 가능하고 협력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있는 문제는,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대가 불가능하고 협력도 어렵습니다. 바로 그 사이에 다리를 놓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문학입니다. 또한 그것들을 표현할 말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세계를 개발하고 또 그것들을 전파할 수 있도록 약속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그리고 그 문학의 전위가 바로 시(詩)이며, 시가 바로 그 일을 합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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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고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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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8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18세의 나이에 출가하여 수도생활을 하던 중 1958년 『현대시』『현대문학』 등에 추천되어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피안감성』(1960)을 펴낸 이래 고도의 예술적 긴장과 열정으로 작품세계의 변모와 성숙을 거듭해왔다. 연작시편 『만인보』(전30권), 서사시 『백두산』(전7권), 『고은 시전집』(전2권), 『고은 전집』(전38권), 『무제 시편』, 『초혼』을 비롯해 16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고, 1989년 이래 영미ㆍ독일ㆍ프랑스ㆍ스웨덴을 포함한 약 20여개 국어로 시집ㆍ시선집이 번역되어 세계 언론과 독자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한국문학작가상 단재상 유심작품상 대한민국예술원상 오상순문학상 등과 스웨덴 시카다상, 캐나다 그리핀공로상, 마케도니아 국제 시축제 ‘황금화관상’ 등을 수상했으며, 세계시단의 주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버클리대 한국학과 방문교수, 하버드 옌칭연구소 특별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이며, 서울대 초빙교수 및 단국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로 쓴 한민족의 호적부’라 일컬어지는 연작시편 『만인보』는 시인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서 수감되었을 때 구상한 것이다. 1986년 1권을 출간한 이래 25년 만인 2010년, 전30권(총 4,001편)으로 완간된 『만인보』는 한국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념비적인 역작이다. 2012년 10월, 55년간 써온 작품들 중 240편을 모은 대표 시선집 『마치 잔칫날처럼』을 출간했다. 접기

수상 : 2015년 심훈문학대상, 2014년 공초문학상, 2014년 스트루가 황금화환상, 200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7년 영랑시문학상, 2004년 단재문학상, 1999년 현대불교문학상, 1993년 대산문학상, 1989년 만해문학상, 1974년 한국문학작가상

최근작 : <어느 날>,<시요일 스페셜 (시요일 APP 1년 이용권 + 특별 한정판 시집 5종)>,<고은 깊은 곳> … 총 198종 (모두보기)

석영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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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슬라브어문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도스토옙스키 강의를 해왔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인간 만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읽기』, 『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우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도스토옙스키의 『분신』, 『가난한 사람들』, 『백야 외』(공역),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공역),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대위의 딸』,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 자먀틴의 『우리들』, 마야콥스키의 『마야꼬프스끼 선집』,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등이 있다. 푸시킨 작품집 번역에 대한 공로로 1999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2000년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상을 받았다. 2018년 고려대학교 교우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접기

최근작 : <매핑 도스토옙스키>,<고전 강연 7>,<인간 만세!> … 총 81종 (모두보기)

손봉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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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경북 포항 출생. 고신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나눔국민운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세계밀알연합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서울영동교회, 한영교회, 다니엘새시대교회 협동 설교자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순수하며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 윤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함을 전하는 특별한 사역자이며 철학자이자 윤리학자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다.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지냈다.

저서로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오늘을 위한 철학》, 《기독교적 관점에서》, 《꼬집어 본 세상》, 《윗물은 더러워도》, 《별수 없는 인간》, 《고통받는 인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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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사랑의 9가지 습관>,<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나는 누구인가> … 총 59종 (모두보기)

용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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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륜불교문화재단 이사장, 귀신사 회주, 재단법인 행복마을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전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동 대학교에서 「불교의 선에 관한 연구」로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4세에 청화 대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승려 신분으로 10여 년의 교직 생활 후 제방선원에서 20안거를 성만하였다. 저서로는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10분 해탈』 『공(空)』이 있다.

최근작 : <이야기로 풀어낸 용수 중론(中論) 상편>,<어떻게 살 것인가>,<용타 스님의 행복노트> … 총 12종 (모두보기)

한명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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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가톨릭대, 한신대, 국민대에서 강의했으며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지냈다.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동안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 《광해군》(2000),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2009),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2013)를 썼고, 그 밖에 여러 저술이 있다.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한국사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이 많다. 첫 책인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25회 월봉저작상을, 《역사평설 병자호란 1, 2》로 2014년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접기

최근작 : <원치 않은 오랑캐와의 만남과 전쟁>,<최명길 평전>,<광해군 (리커버 특별판.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총 38종 (모두보기)

박승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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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에 중세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현재는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중세 철학사’ 강의는 2012년 11월에 SBS와 대학교육협의회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대학 100대 명강의’로 선정되었다. 또한 SBS-CNBC ‘인문학 아고라’ 「어떻게 살 것인가」, EBS 특별 기획 「통찰」 등의 TV 방송 출연, 한겨레신문 연재, 다양한 강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중세에 대해 갖는 편견을 깨고 중세 철학이 지닌 매력과 그 깊이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 『생각하고 토론하는 서양 철학 이야기 2: 중세-신학과의 만남』(책세상, 2006), 『서양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사: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누멘, 2010), 『철학의 멘토, 멘토의 철학』(공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3),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전2권, 가톨릭출판사, 2015), 『서양고대철학 2』(공저, 도서출판 길, 2016),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가톨릭출판사, 2017)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라틴어 원문에서 번역한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아카넷, 2002), 『신학요강』(토마스 아퀴나스, 나남출판, 2008), 『대이교도대전 Ⅱ』(토마스 아퀴나스, 분도출판사, 2015),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레오 엘더스, 가톨릭출판사, 2003)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서양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사>,<중세의 재발견>,<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 … 총 36종 (모두보기)

황현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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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목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프랑스 현대시에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연구하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우물에서 하늘 보기』 『밤이 선생이다』 『잘 표현된 불행』 『말과 시간의 깊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동물시집』, 말라르메의 『시집』,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 보들레르의 『악의 꽃』 『파리의 우울』,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등이 있다.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번역비평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았다. 2018년 8월 8일 별세했다. 접기

수상 : 2012년 대산문학상, 2012년 팔봉비평문학상, 2011년 서정시학 작품상

최근작 :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잘 표현된 불행> … 총 57종 (모두보기)

이강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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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G(Predictive Management Group), 프런티어 코리아(Frontier Korea) 회장. 37년 동안 글로벌 기업, 한국 기업, 뉴욕 현지 법인 등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업하였다. ‘사람 생각(Think People)’이라는 미션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인성경영’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37년간 경영자로 일하면서 개인과 기업이 지속가능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의 가치를 알고 중요시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책에는 그 깨달음이 있기까지의 인생 경험, 글로벌 무대에서 체득한 것들, 저자에게 울림을 준 사람이나 기업의 사례, 고대 선인들의 지혜를 담았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의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다수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에 대한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 대통령표창, 덴마크 왕실 훈장을 수훈하였다. 공저한 책으로 《젊은 심장, 세계를 꿈꿔라》, 《나의 꿈은 글로벌 CEO》, 《아름다운 유산Beautiful Legacy》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사람 생각>,<어떻게 살 것인가>,<인문학 아고라 시리즈 세트 - 전3권> … 총 13종 (모두보기)

김상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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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이며, 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미국 에모리 대학을 거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와 명나라 말기의 종교 교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작 《르네상스 창조경영》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에서 창의적 사고와 르네상스 시대를 연결시켰고, 화가인 카라바조와 엘 그레코,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의 전기를 썼다. 피렌체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한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는 SBS 특집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다수의 EBS <인문학 특강>과 <세계테마기행>,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하여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고전 독서 모임인 ‘루첼라이 정원’에서 그리스, 로마, 독일, 인도,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 유대문학과 셰익스피어의 명작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작으로는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과의 대담을 정리한 《초격차》가 있으며,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 첫 번째 책인 《나의 로망, 로마》도 출간했다. 접기

최근작 : <삶이 축제가 된다면>,<나의 로망, 로마>,<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 총 59종 (모두보기)

최인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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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동대학교 행복연구소 센터장, 듀오 휴먼라이프연구소 책임교수로 있다. 국내 심리학자 최초로 국제학술지의 편집위원장(Associate Editor)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적인 학술저널에 수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2003년에는 한국심리학회 소장학자상, 2007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우수 연구교수상, 2008년 서울대학교 교육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굿라이프》《프레임》 등이 있으며, 역서로 《생각의 지도》《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가 있다.

최근작 : <공존과 지속>,<ABOUT H : 대한민국 행복 리포트 2019>,<심리학 프리즘> … 총 45종 (모두보기)

조성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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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했으며, U.C버클리에서 인도 초기 대승불교의 성립에 관한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학 비교종교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위원회 상임위원 및 위원장을 지냈다.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이자 고려대 철학과 교수,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불교와 불교학: 불교의 역사적 이해』, 공저로 『인생교과서 부처』, 『석전과 한암,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말

하다』가 있다.

최근작 :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지금, 한국의 종교>,<어떻게 살 것인가> … 총 13종 (모두보기)

차드 멩 탄 (Chade Meng Ta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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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최고의 인기 직원 교육 프로그램 ‘내면검색Search Inside Yourself’의 개발자

구글의 107번째 엔지니어 출신으로, 초기 구글의 모바일 검색엔진 개발을 주도했다. 구글에서 엔지니어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마음챙김 명상을 더 널리 전파하고자 스탠퍼드 뇌과학자들과 심리학자, 선승 들을 불러모아 마음챙김 명상에 기반한 감성지능 강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내면검색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도 구글 최고의 직원 교육 프로그램으로 긴 대기자 명단을 가지고 있으며 이 교육을 받은 이들 대부분이 이전보다 감정조절이 쉬워지고 더 행복해졌으며 자신감이 높아지고 인간관계와 리더십이 향상되는 효과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내면검색 프로그램의 효과가 확인되자, 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쓴 첫 책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Search Inside Yourself》는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전 세계의 리더들이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화와 통찰을 얻기 시작하면 세계 평화가 올 것이라 얘기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비영리조직인 '내면검색 리더십 연구소Search Inside Yourself Leadership Institute’를 창설, 구글 직원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내면검색 프로그램을 좀 더 쉽게 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현재 노벨평화상 후보에 일곱 번이나 오른 ‘10억 개의 평화 운동One Billion Acts of Peace’의 공동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기쁨에 접속하라Joy on Demand》는 그의 두 번째 책으로, 내면검색 이후 마음챙김 명상으로 내면의 행복과 기쁨을 발견하는 쉬운 방법을 특유의 재치 있는 글 솜씨로 유쾌하게 소개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기쁨에 접속하라>,<어떻게 살 것인가>,<인문학 아고라 시리즈 세트 - 전3권> … 총 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문학의 두 번째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


고은, 용타, 김상근, 최인철, 차드 멩 탄…

최고의 지성 12인의 상처를 극복하고 공생하는 방법!


존재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잇는 근원적 물음,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황폐화와 사회 가치의 퇴색, 현실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의 부재로 현대인들은 인간과 삶,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 물음 끝에 탄생한 『어떻게 살 것인가』는 2014년 가을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한 동명의 대중강연을 엮은 것으로, 누적 6만 명 이상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1부에서 김상근, 한명기, 조성택, 석영중, 황현산, 고은은 인류의 역사 속에 우리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을 통해 너를 살피고 나를 다스리는 지혜를 설파한다. 2부에서 손봉호, 박승찬, 차드 멩 탄, 최인철, 용타, 이강호는 상처를 견디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통해 삶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삶과 행복의 기본과 원칙이 현실에 닥친 슬픔과 혼란을 극복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며, 황폐해진 개인의 삶과 희미해진 사회적 가치를 극복할 수 있는 해답임을 역사와 철학, 종교와 문학 등 인문학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증명한다.


상처 입은 사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생하는 삶에 대한 12가지 실천적 철학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인들이 잊고 살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개인의 삶이 점점 황폐해지고 사회 가치가 희미해지는 요즘,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삶에 더욱 중요해졌다. ‘인간’을 탐구하고 ‘인생’을 공부하는 학문인 인문학 열풍이 거세진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그 물음 끝에 탄생한 『어떻게 살 것인가』는 2014년 가을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한 동명의 대중강연을 엮은 것으로, 누적 6만 명 이상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눈앞에서 듣는 것처럼 고은, 용타, 김상근, 최인철, 차드 멩 탄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 12인이 전하는 삶의 지혜와 인문학적 통찰이 뜨거운 감동과 함께 생생하게 전달된다. 우리 일상에 맞닿은 사례들을 중심으로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위대한 고전과 사상가들의 핵심 메시지를 깊이 있고 흥미롭게 분석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근원적인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흔들리고 방황하는 삶에 용기와 철학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삶을 향한

역사, 철학, 종교, 문학의 성찰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질문은 반드시 ‘행복’이라는 대답으로 이어진다. 역사, 철학, 종교, 문학 등 다양한 시각으로 삶의 방법을 분석한 우리 시대 최고 지성 12인이 상처를 극복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개인과 사회가 서로 신뢰할 때 우리의 삶은 여유로워지고 사회는 안전해진다.

1부에서는 인류의 역사 속에 우리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을 통해 너를 살피고 나를 다스리는 지혜를 배운다. 대한민국 사회를 ‘아포리아’ 시대로 규정하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고대 그리스에서 찾은 김상근, 『징비록』에 담긴 역사적 기록을 통해 세계 격변의 시기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고민하는 한명기, 원효의 화쟁사상을 통해 시민의 지혜와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성택,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바탕으로 몰입, 소통, 죽음 세 단계의 성장하는 삶을 이야기한 석영중, 주체로서의 나와 타자로서의 나를 소통시키는 시(詩)의 힘을 통해 잘 사는 법을 전한 황현산, 극심한 갈등 속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의미의 통합을 이룰 것을 주장한 고은 시인을 통해 산다는 문제가 공생에 관한 논의로 확장되는 것을 경험한다.

2부에서는 상처를 견디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통해 삶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로 지나친 경쟁심과 불공정한 규칙을 꼽으며 정직하게 나와 타인의 행복과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자존심이자 원칙이라고 전하는 손봉호, 나의 ‘홀로서기’와 타인과의 ‘함께 걷기’를 통해서 고통을 넘어서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한 박승찬, 감성지능을 개발하기 위한 세 단계인 주의력 집중, 자기 인식, 정신 습관을 통해 행복의 비법을 전한 차드 멩 탄, 행복을 마음이 아닌 몸과 연결 지어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최인철, ‘나, 모두의 행복, 마음 천국, 관계 천국, 세상 천국’이라는 다섯 가지 원리를 통해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세계 평화가 시작함을 이야기한 용타, 준비하고 실행하는 삶, 주인공이 되는 삶,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고 만남을 소중히 하는 삶이라는 삶의 다섯 가지 실천을 제시한 이강호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인지 다시 한번 숙고하게 된다.

인문학의 목소리로 전하는 인간의 삶과 행복, 기본과 원칙은 현실에 닥친 슬픔과 혼란을 극복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전한다. 황폐해진 개인의 삶과 희미해진 사회적 가치를 극복할 해답을 인문학에서 찾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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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주제의 책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그러나 언제나 나를 뒤돌아보게하는 시간을 가질수 있어 좋다. 

부다붐 2018-10-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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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 중에서 어느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더 근원적인 질문일까?


어느 것이 먼저이고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양립적이면서 병렬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은 후자에 집중한 책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평범한 인간의 인문학이 되는 것이고, '나는 누군인가'라는 성찰 다음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 인문학 성찰의 가치가 증대된다고 한다.


엊그제 회사 워크샵을 다녀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일하기 위해서 사는가? 살기 위해서 일하는가?'


나는 당연히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살기 위해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군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정말 살면 살수록 고민하게 되는 질문이다.




이 책은 2013년 가을에 고려대에서 열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강연 내용을 모은 책이다.


여러 강사의 강연 모음집이기 때문에 저자는 철학자, 역사가, 종교인, 문학가, 사업가 등 여러 사람이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연한 인문학 강의 내용이어서 한 편의 강의를 듣는 듯 내용은 압축되어 있었고, 강의에 담긴 전달력은 강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어보니 지난해에 읽었던 21세기북스의 '인문학명강-서양고전'이 생각났다.


그 책도 여러 학자와 교수들이 서양 인문학 내용을 요약하여 압축적으로 전달해주어서 짧은 시간에 서양 인문학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고, 서양 인문학 공부에 대한 자극을 주기도 하였다.


이 책도 그런 느낌과 효과를 주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총 12분의 강연자께서 강연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여러 강사의 강연 중에는 지난해 한국사회를 비통함과 분노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지금의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되짚어 보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에 접근하는 인문학적인 방법을 이 책에서는 가르쳐주고 있다.


한국은 고도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부분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면서도 반대로 특정 분야에는 특혜를 주어왔으며, 결국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의 대부분은 최근에 갑작스럽게 발생했다기 보다는 우리 사회가 수십년간 만들고 숨기고 감추고 짊어지고 온 폐해들이 송두리째 한꺼번에 노출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도 우리나라와 같은 과정을 우리나라보다 약하게든 아니면 더 심하게든 거쳐왔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희망을 인문학에서 찾고자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책에 열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지금 계속하여 노출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폐해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그 속에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참되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그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김상근 교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아포리아로 규정하였다.


아포리아는 통로나 수단이 없는 상태 또는 해결 방안이 없는 심각한 난관을 뜻한다고 한다.


아포리아에 빠진 대한민국에게 주는 대답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테네를 떠난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 건설을 고민했다.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통치자는 지혜를 추구하고, 수호자는 용기를 가져야 하고, 시민은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더불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혜, 용기, 절제가 세 집단의 성격에 맞게 필요하고, 세 집단이 각각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바로 정의라고 한다.


그리고, 교육은 혼의 지적 기관을 가장 쉽고 효과적으로 전향시키는 기술이지, 그 기관에 시력을 넣어주는 기술이 아니라고 말했다.


교육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찾는 것이다.


동굴 안에 있는 이들이 교육을 받고 동굴 밖으로 나가서 태양을 보는 것이 교육이다.


안경을 쓰거나 시력교정술을 받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마주하는 과정이 내가 누구인가를 성찰하는 과정이고, 그 다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둡고 추운 동굴 속으로 다시 내려가 그 안의 고통과 명예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라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만이 나오지는 않는다.


소크라테스와 제자에 대한 재미난 대화가 웃음과 교훈을 준다.


제자 : 선생님, 사모님은 너무 잔소리가 많습니다.


소크라테스 : 물레가 돌아가려면 소리가 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자네가 참야야지.


잠시 후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 아내가 소크라테스에게 물을 끼얹는다.


소크레테스 : 이보게, 천둥이 있었으니 비가 오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큰 관심을 준 인상적인 부분은 한명기 교수의 징비록에 대한 내용이었다.


요즘 드라마에서 징비록을 방송하면서 징비록과 관련된 책들도 여러 권이 출간되고 있어 마치 징비록 유행시대 같다.


나는 징비록을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한명기 교수의 징비록에 대한 강연 내용에서 징비록에 큰 매력을 느꼈다.


나도 아마 조만간 징비록을 읽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징비록에 대해 자세한 내용과 함께 임진왜란 전후의 역사 그리고 한명기 교수의 탁월한 역사적 해석을 접할 수 있었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이다.


징비는 시경의 '예기징 이비후환 (내가 경계함은 후환을 삼가기 위함)'이라는 구절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류성룡은 성리학, 양명학, 불교, 도교, 풍수지리, 병학, 의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추천한 혜안을 가진 인물이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임진왜란을 '삼한정벌'로 부르다가 1910년 이후 부터 '문록·경장의 역(전쟁)'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강제 병합에 대한 명분을 위해서 과거 정벌이라는 이름으로 했던 침략 전쟁을 은폐하기 위한 역사 왜곡이라고 한다.


일본인의 참으로 치밀한 성향이 나타나는 역사 왜곡이다.


이런 식의 치밀한 말바꾸기는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자행되면서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무리 개혁적인 세력이나 인물도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변질된다.(p.37)'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한 조선의 원인으로 조선의 건국세력인 신진사대부의 변질을 지적했다.


조선은 세조의 즉위 이후 정쟁과 부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때 일본에는 포르투칼 사람들이 오가면서 조총이 전해졌다고 한다.


조총은 날아가는 새를 맞춰서 떨어트린다는 의미인데, 일본에서는 조총이라는 중국말 대신 철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철포의 일본식 발음이 뎃뽀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무데뽀라는 말이 뎃뽀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16세기 중반 무렵에 일본은 총을 든 보병 위주로 군대가 바뀌었고, 스페인에 이어 세계 두번째 은 생산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과는 이미 차원이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역사였다.


한명기 교수는 이순신은 조선 사람 같은 않은 조선 사람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책임감의 화신으로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은 이순신만큼의 책임감을 갖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해전에서 승리를 하며 임진왜란이 패전으로 결론나는 것을 막은 이순신을 선조는 전쟁의 영웅으로 우대하기 보다는 육지에서도 왜군을 무찔러달라는 무리한 지시를 하였고 ,이순신이 이를 거부하면서 선조로부터 미움을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 알면 알수록 부끄러운 어처구니 없는 역사의 기록들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마자 이순신은 일본군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임되고 백응종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군이 파놓은 함정에 대해서는 이 책에 설명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조선의 간신들과 일본의 합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왜란 때는 우리는 힘없이 전쟁터만 내어주고 피해만을 당하고 전쟁에 대한 협상은 명나라와 일본의 차지였다.


한국전쟁과 흡사한 모습이다.


어쩌다 우리 역사는 항상 이런 모습을 그리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임진왜란 당시의 명나라와 일본의 협상 과정에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들이 펼쳐졌었다.


약소국의 슬픈 역사였다.




한중일 역사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었다.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것도, 중국이 한국전쟁 때 북한을 도운 것도 중국 자국을 위한 것이었다는 해석이다.


끝없이 만주 벌판에서 일본과 전쟁을 하는 것보다 국토의 7할이 산악지역인 조선에서 일본군을 상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진정한 베풂과 협조는 참으로 드문 것 같다.


모두 자기의 실리에 맞을 때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손길을 뻗치는 것 같다.




조총 기술은 포로로 붙잡힌 일본군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손재주가 뛰어난 우리나라 사람들은 금새 조총 기술 실력을 높이게 되었다고 한다.


대포 기술을 가진 명나라에게 기술 전수를 요청했지만, 명나라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명나라는 진정한 지원군이 아니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나라 영토를 전쟁터로 빌린 국가라는 생각이 드는 내용이었다.


이런 명나라를 숭상한 조선의 관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국익과 백성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명분을 위한 성리학을 빙자한 정치 행위가 아니었을까?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을 따라온 명나라 상인들은 하동, 구례에 자생하는 녹차를 보고서 그걸 따다가 팔면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조선인들은 맨날 돈이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것이 조선에서의 녹차의 상업화의 시작인 것 같다.




임진왜란 기간 동안 열다섯 번이나 왕위에서 물러나겠다는 거짓 제스처를 취한 무능한 왕인 선조의 모습은 그 당시 조선의 나약한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징비록에 담긴 교훈을 계승하여 미랠르 대비하고 있을까 하면 한명기 교수는 질문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우리가 일본에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양재동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관리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곰팡이가 슬고, 유물들이 썩어가고, 지하에는 물이 들어찼다고 한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일본의 역사소설가 진순신은 청일전쟁이라는 소설에서 갑신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이 찾아가 만날 사람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나 중국의 이홍장이 아니라 한국의 전봉준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옥균은 갑신정변에 실패한 후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을 만나러 찾아다녔지만, 이들은 조선의 애송이 혁명가인 김옥균을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역사소설가가 말하는 이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큰 내용이다.


만약에 김옥균과 전봉준이 힘을 합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명기 교수의 이력을 보니 현재 명지대 사학과 교수이시며, '임진왜란과 한중 관계', '광해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병자호란' 등을 저술하셨다고 한다.


이 책에서 관심이 가는 역사학자 한 분을 더 알게 되었다.




'성장을 말하다.'


석영중 교수가 강연하신 톨스토이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톨스토이의 저서 중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이 있듯이 톨스토이는 어떻게 쓸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 고민한 작가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 인생에 있어서 성장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톨스토이는 백작 가문의 자제였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유명 인물의 유형에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며 깊이 파고들어 명료하고 통일된 비전으로 모든 것을 통합화하는 고슴도치형 인간이 있고, 다채로운 경험과 현장의 체험을 중요하게 여기며 다양한 시각을 즐기는 여우형 인간이 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고슴도치가 되고자 했던 여우형 인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군대를 가기도 하고, 외국 여행도 즐기고, 문학·철학·역사·종교·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사냥도 즐기고, 피아노도 잘 치면서도 모든 체험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통일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은 그의 저서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그의 책은 내용은 길지만 그 내용에 복잡하거나 현란하지 않고 단순하다고 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안나 카레니나의 시작말)'


욕구에서 출발한 사랑은 성장할 수 없다고 한다.


욕구에서 시작된 사랑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은 소유로 이루어지고, 그 소유는 증오로 변질된다고 한다.


사랑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공감이 되는 말이다.




'어떤 일에 완전히 빠져 있을 때 흔히 마음을 비운다고 표현한다. 이런 상태에 있을 때는 일이 잘 된다. 저절로 된느 느낌이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무아지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 더 잘하려고 한다든가 앞의 사람을 쫓아가려고 하면 갑자기 일이 어려워진다.(p.113) '


안나 카레니나의 명장면인 레빈의 풀베기를 통해서 무아지경의 효과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석영중 교수가 말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톨스토이의 대답은 성장이다.


'자기의식에 몰입하고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자기의식을 해방시키고 더 많은 타자와 세상과 굥감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그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p.122)'


그것은 그냥 사는 것이고 선하게 사는 것이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고, 죽음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대신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원효대사의 화쟁 사상, 시에서 찾는 인문학적 성찰, 행복, 고통, 윤리 등에 대해서 다루어지고 있다.


저명한 학자들의 강연에는 역시나 인상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어느 절에 귀한 종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도둑이 그 종을 훔치러 갔다. 매달린 종을 떼려하자 자꾸만 댕그렁댕그렁 소리가 났다. 도독은 솜으로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종을 훔쳤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종소리가 안 날리는 없었다. 결국 도둑은 붙잡혔다. 고통은 부인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맞닥뜨리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p.167)




'행복과 고통의 차이는 행복은 지속될수록 무뎌지지만 고통은 계속되어도 강도가 줄어들지 않는다.(p.169)'




'암스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당하지 않아 좁은 길에 본래의 옛 모습이 남아있다. 로테르담은 엄청난 폭격을 당해 넓은 길에 현대식 건물이 늘어선 신도시로 재탄생했다. 고통이 반드시 고통만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p.173)'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인간은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다.(토머스 홉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끔직하게 살해하는 만행을 본 어느 할머니는 편지에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라고 적었다고 한다.(p.177)'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사회는 도덕적이 되기 어렵다.(라인홀트 니부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중)'




'윤리에는 동기윤리와 책임윤리가 있다.'




'윤리에는 작위와 부작위라는 개념이 있다. 작위는 누군가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말하고, 부작위는 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p.183)'




'뇌물은 가난한 사람의 돈이 부자에게 직행하는 것이다. 뇌물이 빈번한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점점 더 부유해진다.(p.185)'




'조선사람들은 도둑질을 매우 잘하며 속이거나 거짓말도 잘한다, 그래서 조선사람들은 신뢰할 수가 없다.(하멜표류기 중)'




'우리나라의 탈세율은 26.8%로 그리스나 스페인과 비슷하고, 보험금의 13.9%가 보험사기로 지불되고, 교통사고 입원률은 일본의 9.5배에 달한다.(p.187)'




'비인불인 불인비인(非人不忍 不忍非人), 참지 못하면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 아니면 참지 못한다.'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가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러면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구글의 20퍼센트 시간, 구글 엔지니어들은 근무시간의 20퍼센트, 즉 일주일 중 하루는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넘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넬슨 만델라)'




'의미있게 살기 - 가치 있는 삶, 헌신하는 삶, 목적이 이끄는 삶'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70세 생일에 그리고 80세 생일에 그리고 2014년 90세 생일에도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하여 성공했다.'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해 설명해줄 수가 없다.


한여름만 살다가는 곤충에게는 찬 얼음에 대해 설명해줄 수가 없다.


편협한 지식인에게는 진정한 도와 세계를 설명해줄 수가 없다.(장자)'




인문학을 이해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론내리고 확정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어쩌면 평생동안 함께 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한 고민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징비록과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인문학적 성찰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가르침과 자극을 준 좋은 책이다.




※ 어떻게 살 것인가 독서 후기 포스트는 21세기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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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처럼 2015-03-08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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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공존을 위한 인문학 특강!^^ 새창으로 보기

[어떻게 살 것인가]공존을 위한 인문학 특강!^^


 


삶에 정답이 없다지만 누구나 원하는 삶은 인간다운 삶, 나누며 공존하는 삶,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삶일 것이다.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이기에 공존, 공유, 공감 등은 공동체의 필수요건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늘 인문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살지만 늘 부족한 삶이다. 해서 제대로 살기 위한 인문학적 통찰은 내게도 늘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이 많은 나에게 온 선물이다. 앞서간 인물들을 통해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는 성찰을 돕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인문학적 성찰은 더 큰 가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나의 문제에만 집중한 인문학은 정신적·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가 될 것이고, 자기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또 다른 술책이 될 것입니다. 약자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인문학은 교묘한 지배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5쪽)


 


플라톤 이야기가 몹시 인상적이다.


플라톤이 길이 막힌 아포리아(통로와 수단이 없는 상태)를 극복할 방법으로 내세운 것은 교육이었다. ‘동굴의 비유’에서 본질인 이데아를 보지 못하고 환영인 그림자를 보는 동굴 속 갇힌 인간이 깨어나는 것은 동굴 밖을 보게 하는 것이었다. 플라톤이 말하는 교육이란 무지한 인간에게 밖으로 나가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진정한 교육이란 동굴 밖으로 나가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길이 없는 아포리아의 현실에서 교육을 통해 서로 손잡고 함께 가는 길을 모색했다. 플라톤의 주장은 동굴 안에 머무르지 말고 선을 향해, 이데아를 향해 방향을 잡고 계속 나아가라는 것이었다. 선을 향해 머무르지 말고 나아가라,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경우엔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삶의 자세였다. 캐묻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던 논변의 시대에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을 발견한다. 몸짱이나 성형 등에서 오는 외모에서의 탁월함이 아니라 절제와 헌신, 정의의 실천, 지혜의 추구가 진정한 탁월함임을 깨달은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깨달음에는 늘 질문하고 답변하는 문답법과 산파술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다. 질문하고 성찰해서 자신의 무지를 알라. 나 자신을 알기가 참으로 어려운 법인데......


 



류성룡의 『징비록』과 이순신의 『난중일기』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진한 감동이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의 전시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우리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하기 위해 쓴 책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역시 임진왜란의 기록이다.


 


임진왜란을 보는 조선과 명나라, 일본의 입장 차이가 흥미롭다.


일본은 임진왜란에 대해 1910년 이전엔 ‘삼한정벌’로 바꿔 부르게 된다. 정벌은 상대방의 잘못을 정당하게 손 봐 준다는 의미다. 하지만 1910년 이후엔 삼한정벌 대신 ‘문록·경장의 역’이라는 중립적인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강제병합 이후 한반도의 역사가 왜곡되기 시작한다.


 


한편, 명나라에서는 이 전쟁에 10만의 대군을 보내 8년 이상 일본군과 싸우거나 대치하게 했다. 중국에서는 임진왜란을 ‘항왜원조’라고 한다. 원조라는 의미가 조선을 도왔다는 베풂의 뜻이다. 하지만 이미 왜군이 침략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명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자국보호 차원에서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조선이 왜에 뚫리면 이웃나라인 명의 피해도 만만찮을 테니까.


 


임진왜란 패전과 승전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일본군은 날아다니는 새도 맞춘다는 조총이라는 신무기와 전국 통일의 과정에서 전투 경험이 많은 전사들이 있었다. 은과 조총(데뽀)을 바탕으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키운 일본은 정명가도의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명나라를 칠 테니 조선은 그냥 길만 내달라는 것이다. 그에반해 조선은 싸울 군사력도 미약했고, 당파싸움으로 정치 혼란 가중과 민생 파탄 등 조선 내부의 문제조차 해결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격적인 일본군과 방어에 나선 조선군의 전쟁이었으니 누가봐도 승패는 뻔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할수록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임진왜란과 『징비록』 이야기다. 참고로, 조총(데뽀)에서 ‘무데뽀’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명나라에선 1570년 경, 장거정의 대대적인 재정개혁으로 재정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에 명나라는 대군을 보낼 여력이 있었다. 장거정의 등장은 명나라의 수명을 72년 정도 연장한 효과가 있었다는 평판을 들을 정도로 명의 재정상태를 견고하게 했으니까. 장거정의 개혁이 조선의 입장에서도 명나라 군대의 도움을 받은 행운을 준 셈이다.



이순신의 해전에서의 승리는 언제나 전율이 일 정도로 짜릿한 승리들이다. 이순신의 바다에서의 활약으로 일본군의 서해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고,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었으니까.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서의 승리는 서해를 살리고 전라도를 살렸기에 결국 조선을 살리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중에 보여준 이순신의 책임감과 류성룡의 통찰력이 없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진 조선을 살린 힘이 이순신의 책임감과 류성룡의 통찰력 덕분이었기에 늘 감사하게 된다.


 


책에서는 김상근의 ‘아포리아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한명기의 ‘『징비록』 과거를 경계해 훗날을 대비하라’, 조성택의 ‘화쟁, 경계와 차이를 넘어 함께 사는 지혜’, 석영중의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 황현산의 ‘시와 타자의 목소리’, 고은의 ‘내 안의 광야, 노래의 씨를 뿌려라’, 손봉호의 ‘아프게 하는 사회,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 박승찬의 ‘고통을 넘어 희망으로’, 차드 멩 탄의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최인철의 ‘행복은 몸에 있다’, 용타의 ‘행복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원리’, 이강호의 ‘글로벌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이 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인문학은 언제 들어도 상쾌함을 선물한다. 때로는 공허하고 막막한 인생길에서 삶에 대한 통찰을 선물하는 인문학 강의이기에 유쾌함을 선사한다. 알토란같은 조언들이 가득한 책을 통해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찾아가게 된다. 삶에 대한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여행을 돕는 유익한 인문학 특강이었다.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은 이들을 위해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2013년 가을 학기에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고 한다. SBS의 <삶>에서도 방송되면서 화제가 된 강연이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넘은 ‘어떻게 살 것인가’, ‘더불어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고 고민을 담은 책이다. 공생공존을 위한 인문학 특강이다. 혼돈의 시대에 내게로 온 소중한 책이다. 올리뷰 이벤트로 받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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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5-04-06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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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새창으로 보기



인문학 강의가 곳곳에서 열린다. 3월 봄 시작으로 인문학 강좌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고 알려 온다. 무료로 시작하는 곳도 있고, 유료로 시작하는 강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인생 공부 확실하게 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면서 고민하는 것들을 이미 오래전에 했던 철학가, 사상가들의 책과 생각을 통해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방법을 얻을 수 있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을 내가 가보지 않은 것들을 쉽게 알 수 있는 도구들이 많아졌다. 




인터넷이 그중 하나다. 그러나 그 보다 생생한 것은 현장 강의에 참가해서 직접 듣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독서다. 독서를 통해서 사람을 알고 세상을 느끼고 삶의 방식을 터득할 수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한 시간에 우리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바로 우리 시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고 문제 해결을 도와줄 지식인들을 통해서 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편리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현장 강의를 듣는 것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 있은 느낌이 드니 말이다. 




겨우내 쳐졌던 기운이 따뜻한 햇살로 일어난다. 가라앉은 마음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은 책 속 문장 한 줄 한 줄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이 녹아 있는 문장은 어지러운 세상에 가야 할 길이 어디인가를 보여주는 이정표다. 누구에게든 배울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스승이다. 우리 시대 우리가 간절히 필요한 것은 삶의 방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회의 어른이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면 바른길로 가야 한다고 외칠 수 있는 교수가 필요하다. 얼마나 그런 사람들, 용기 있는 사람들의 외침이 있는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자신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 우리는 어떻게 지켜보고 해결해야 할까?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방향을 제대로 짚어줄 수 있어야 한다. 모두 같은 범위에서 경쟁하려고만 한다. 위험한 곳으로는 안 가려고 한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곳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없다. 왜 한 번 뿐이 인생을 모두 똑같이 살아야 할까, 왜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갈까. 




"또한 인문학은 세상을 '이어줍니다', 서로 다른 사람, 지역, 계층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 위아래, 남과 북 서로 다른 모든 것을 이어주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흔히 좌우, 진보와 보수, 왼쪽과 오른쪽은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다르면 구분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의 오른손과 왼손은 구분되지만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몸입니다. 태극의 음양도 구분되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96페이지 중에서




최근에 나온 책 중 유유 출판사에서 '공부해서 남 주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는 에릭 호퍼를 비롯 모두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지식인으로서 대중과 함께 지식을 공유하고자 했던 인물들이다. 자신들이 배우고 익힌 것들을 어려운 책 속에서 건져내 쉽게 전달하도록 노력했다. 1900년 대 후반 특정인들의 지식으로만 머무를 수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어 대중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모티머 애들러는 독서의 기술을 쓴 저자로서 고전교육 강좌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삶과 행복, 기본과 원칙을 말하다'라는 취지로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로 나온 '어떻게 살 것인가'도 2014년 하반기 대중을 향한 강좌 내용을 엮은 것이다. 고은, 손봉호, 황현산 등 우리 시대 학자, 분야별 전문가 12명이 나와 전한 삶의 방식을 소개한다. 




"이는 우리에게 부분적 진리만 있으니 모두 겸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내가 만진 것만이 유일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경험과 지식만이 진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도 진리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원효의 개시개비 핵심은 누구도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일 수 있으니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도 옳을 수 있다는 생각, 이것이 곧 화쟁입니다. 이분법적 사고는 민주 사회의 걸림돌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사회로의 출발점입니다."-87페이지 중에서.




가야 할 길이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길만 정답이라는 생각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 모두가 가는 길이라 그것이 정답이고 바른 길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 다른 길이 보일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거려는 주는 마음의 울림이 있다. 불행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행복을 위해 가져야 할 생각들,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하나둘 깨우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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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mjan 2015-03-15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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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어떻게 살 것인가 _ 개인과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 새창으로 보기

♡ 어떻게 살 것인가 ♡


 


 


 




 


 


『책에서 마주친 한 줄』


 


통치자에게는 "나라 안의 특정 요소가 아니라 나라 전체에 관해 결정하되, 대내적으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전문 지식 (…) 소수의 수호자들이 가져야 할 지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통치자는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하며, 그것이 곧 통치자의 지혜라는 말입니다.


 


수호자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용기란 일종의 보존이다. (…) 괴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욕망이나 혹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도 소신을 버리지 않고 온전히 보존한다는 뜻이다." 담력이나 체력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을 버리지 않고 보존하며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몸짱이 되고, 얼굴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헌신하며 정의를 실현하고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탁월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상황을 직접 겪었던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보여준 덕목은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과 책임감 그리고 비전이었습니다.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유산인 징비의 정신을 계승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를 잊지 않아야겠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으니까요.


 


오늘날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간이 행사할 수 있는 힘도 커지면서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아야 하고, 그 결과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입니다. 그러려면 선한 동기만이 아니라 지식도 있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기 이전에 지금 어떻게 살고있나, 우리 모두 안녕한가,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있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고민들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부와 명예에만 기울여있고 지혜·진리에는 최선의 상태가 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양쪽에 추를 매단 상태에서 '안정감'이 목표라면 양 추의 무게는 동일해야 한다.


아직도 생각하면 슬프고 비극스러운 세월호 사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배를 잘 만드는 나라지만 안전에 있어서는 세계 최하위임을 입증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해경들이 바다로 갔을 때, 배는 침몰하지 않은 상태였다. 우연히 TV를 켜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세월호 첫 속보를 접했다.


'전원구조'부터 시작해서 '오보'라는 말과 함께 많은 이들이 희생되어 눈물과 기도로서 뉴스를 바라볼 수 밖에 없던 그 때였다.


 삭막해지고 피폐한 사회속에서 개인들의 삶도 점차 삭막해지고 피폐해지고 있다. 바람 잘 날이 없다라는 말처럼 하루하루 사건·사고들이 주를 이룬다.


 


책 속에서는 류성룡의 징비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류성룡은 말하고자 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되며 잘못된 점을 시인하고 파악하여 다시는 재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기본정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큰 사건·사고들은 기본정신을 지키지 않은 허술함에서 드러났다.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기본정신을 지킨다는 것은 쉽다고들 생각하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정신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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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15-03-1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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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성장과 대면하는 삶을 위해 ! 새창으로 보기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답하는 석학들의 강연 속에 일깨우지 못한 우리들의 미욱함을 뉘우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어떤 방향을 추구하며 살아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불황의 늪 속에서 헤어나기 힘든데다 내우외환의 위기가 깊어지는 때 총체적인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를 얻는 일은 쉽지 않을진대 12명의 지성인들의 글을 통해 현안을 해결해 갈 물꼬를 트고 자신의 상황에 부합하는 선택과 결정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가야할 숙명이 내려졌다. 


   의견을 드러내다 보면 상충하여 갈등할 때가 있는 우리 사회는 그것을 분열로 몰고 가서는 흑백논리로 치닫고 말아 화합과 상생의 조합과는 요원한 길을 걷는 경우가 허다하다. 원효는 화쟁론에서 모든 경전을 인정함으로써 개별적 다양함을 살려내 나의 경험과 지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도 진리임을 인정해야 함을 밝혔다. 내가 옳음을 입증하는 논쟁에 비해 대화는 상대방의 옮음을 발견하는 과정인 만큼 경청을 통해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일부터 시작할 일이다. 조성택 교수는 세상의 아픈 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고 인문학이 세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할 수 있는 시민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진왜란 당시 전시 총사령관격인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던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을 온몸으로 겪은 후 집필한 전란의 기록인 <<징비록>>을 통해 한명기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의 역사적 과오를 응징하여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는 지혜와 통찰을 구하려고 하였다. 임진왜란 동안 15회나 물러나겠다고 선수를 쳤다가 철회한 선조를 다독여 종묘사직을 유지하였던 영의정 류성룡의 고달픈 임무를 떠올리며 최고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과 책임감이 막중함을 후세에 전하려는 의도가 컸다. 국정 최고의 요직에 있으면서 전란의 현장에서 조선의 재건을 위해 류성룡은 상업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식으로 외교나 교섭의 힘은 한 나라가 갖고 있는 능력과 힘에 비례함을 간파하였다. 


   자기 안의 언어가 저절로 커서 자연스럽게 폭발하여 표현된 시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잘된 작품이라는 글을 통해 힘을 배는 작업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견고한 성처럼 자리한 주체성이 비껴난 자리 밑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힘을 내게 하는 시를 통해 자신 안에 깃든 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일흔인 학자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읽으며 말귀가 밝아질 수 있도록 힘쓰고, 관용의 정신을 기름으로써 외롭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도 잘 사는 방법 중 하나라 일컬었다. 격동의 시대를 보낸 고은 시인은 많은 죽음을 목도하면서 생존자로서 애도해야 할 의무를 안고 살아가는 원죄를 말하며 폐허 위에 삶을 노래하며 궁극적으로는 통일된 세상을 바라는 시로 갈무리하였다. 


   ‘쾌락이야말로 최고선이며 고통과 불행은 최고 악이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으로부터 해방하는 게 행복이라고 보았지만 관능적인 쾌락이 주는 행복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욕구를 끌어 올리다 보면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고 욕구를 낮출 때 행복은 우리 가까이 있게 됨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는 정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철학적인 성찰을 나누면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질 때 행복했다고 회고하였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빅터 프랭크는 니체의 구절을 가슴에 새기며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게 한 희망의 전언이었다. 고통은 홀로 맞서야만 하는 주관적인 체험으로 홀로서기를 통해 극복 가능한 것이지만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타인의 상처를 섣불리 아는 것처럼 나서서는 안 됨을 절감한다.


   특정한 방식과 목적을 갖고, 비판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10초 동안 호흡에만 집중할 때 감성지능은 높아지고 마음의 고요는 들어앉아 열락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명상법을 차드 멩 탄은 소개하였다.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내면을 살핌으로써 자기 인식 능력을 발전시켜서 번뇌로부터 벗어나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습관이 자리할 때 세계 평화로까지 확대해 나갈 수가 있다. 돈을 어떻게 써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할 때 서슴지 않고 여행 경비와 문화생활을 위한 관람료 지불 등을 꼽는다. 재화는 남지 않지만 남는 경험으로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해야 무엇이든 이루며 살 수 있는데 지난해에는 건강한 생활을 위해하는 요소들이 불거져 온 가족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내야 했다. 여전히 안고 가야 할 일이지만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지금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다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건강한 신체에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 가는 평생 학습을 잇고,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이강호 교수는 글로벌 시대의 필수 과제로 보았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아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월호 사건을 통해 안전한 생활을 담보할 수 없는 나라의 우울한 자화상이 떠올라 숙연해지고 만다. 130년 째 건설 중인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에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제대로 된 성당을 완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경계의 벽을 허물고 호기심을 품어 변화를 추구하며 무엇인가에 도전하며 살아갈 때 그 생활에 깃든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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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15-03-1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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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9

일본에 있어서「초기 및 남방 상좌부 불교」 연구의 역사와 현황 : 네이버 카페

일본에 있어서「초기 및 남방 상좌부 불교」 연구의 역사와 현황 : 네이버 카페



일본에 있어서「초기 및 남방 상좌부 불교」 연구의 역사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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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에 있어서「초기 및 남방 상좌부 불교」 연구의 역사와 현황



1. 들어가는 말



현재 일본에서 인도학 불교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전체적인 학회인 「인도학 불교학회」 회원(정회원의 자격은 석사 학위 소지 이상의 학력이 있는 전문 연구자임)은 약 2400명 정도이며, 이들은 전국의 국립대학, 일반대학, 단과대학과 불교종단에서 세운 대학 그리고 각종 연구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일본의 전문 연구원에 의한 연구성과는, 일단 양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일본 이외의 세계의 인도학 불교학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능가하고 있으며, 몇몇의

뛰어난 학자들의 연구성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에서의 연구성과는 연구분야가 너무 세분되어 있어 폭넓은 시야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른바 원전 또는 사본연구 등에 의거한, 역사적이며 정확한 문헌고증적인 연구방법은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일본에서 이처럼 인도학 불교학이 발전하게 되었는가 ?



일본에 있어서의 새로운 불교학 즉, 문헌(이 경우의 문헌이란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오던 漢譯 경전 보다는 주로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 등의 원전과 티베트어로 번역되거나 저술된 문헌을 가리킨다)에 의거한 역사적인 연구법은 明治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明治 초기부터 일본은 서양의 자연 과학의 수입과 근대 학문의 수입과 연구에 힘을 기우린다. 근대적인 불교학의 태동은 이러한 明治 시대의 분위기에서 싹을 틔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열매들을 거두어 왔다.

本論에서는 일본의 불교학 가운데에서 주로 초기불교 및 남방 상좌부불교에 대한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고찰해 보게 될것이다. 일본의 연구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소개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明治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학자들이끊임없이 유학이나 연구활동을 통해, 인도학 불교학을 배워오고 있는 유럽의 연구성과를 간과해서는 일본 학계에 대한이해조차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서구에서의 연구사도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한다.



2. 일본 근대 불교학의 성립



근현대 일본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明治維新 초기에, 정부는 幕府의 비호속에서 지내오던 일본불교계에 廢佛이라는철퇴를 내리쳤다. 이에 대응해서 불교계에서는 여러가지 자각의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로 일본의 근대 불교학의 역사가 막을 올리게 된다.

明治 이전까지 한역 佛典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방법에 의해 진행되어 오던 불교학은, 서구 특히 유럽의 근대적인 학문의방법론의 수입에 의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일본의 불교 종단에서는 宗派的인 차원에서 유학승들을 파견하였고, 국립대학에서도 전문 연구가의 해외에서의 연구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이들의 귀국 후의 활동에 의해 역사적이며 문헌비평적(Text critical)인 근대 불교학이 자리를 잡게된다.



2.1 明治시대와 그 後의 해외 유학자들



明治시대의 해외유학은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영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가 그 주요 대상국이며, 스리랑카나 인도 등에 유학하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유학은 개인적이 아니라 종파적인 차원 혹은 대학에서 인물을 선정해서 파견하는양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 근대불교학에 기여한 학자들 가운데 유학의 경험이 없는 이는 없을 정도로 일본불교학계는

활발하게 유럽의 근대 학문의 방법을 배워왔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南條文雄 明治9년-17년(1876-1884) 영국 (불교학 방면에서의 최초의 유학자)

高楠順次郞 明治23년-30년(1890-1897) 영국, 독일, 프랑스

荻原雲來 明治32년 38년(1899 1905) 독일



荻原雲來 明治32년-38년(1899-1905) 독일

姉崎正治 明治32년-37년(1899-1904) 독일, 영국, 인도

渡邊海旭 明治33년-大正1년(1900-1912) 독일

立花俊道 明治36년-41년(1903-1908) 스리랑카, 영국

宇井伯壽 大正2년-6년(1913-1917) 독일, 영국

赤沼智善 大正4년-8년(1915-1919) 인도, 스리랑카, 영국

木村泰賢 大正8년-11년(1919-1922) 영국

山口 益 昭和2년-4년(1927-1929) 프랑스

等等

이 가운데 初期佛敎硏究 및 팔리불교연구에 공헌한 학자는 高楠順次郞, 荻原雲來, 姉崎正治, 立花俊道, 宇井伯壽, 赤沼 智善, 木村泰賢, 등을 들수 있다.

물론 이 시기 이후에도 일본의 인도학 불교학자들은 거의 구미 유학을 통해 끊임없이 서구의 학문적인 성과를 수입해 발전시켜 오고 있음도 주지하는 바와 같다.





3.초기 및 팔리불교연구의 전개



明治 이후의 일본에 있어서의 팔리어 원전에 의한 초기불교 및 남방상좌부불교의 연구는, 크게 나누어 東京大를 중심으로 한 關東계열과 京都의 大谷大學 중심의 關西계열로 나눌 수 있다.

關東계열은 7년간의 유럽 유학을 마치고 1897년에 귀국한 高楠順次郞에 의해 주도되어 長井眞琴, 木村泰賢, 宇井伯壽,宮本正尊, 荻原雲來, 渡邊照宏, 西義雄, 水野弘元, 中村元, 早島鏡正, 平川彰, 玉城康四郞, 前田惠學, 藤田宏達, 三枝充悳, 奈良康明, 森祖道, 田中敎照, 片山一良 등의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어 오고 있다.

關西계열은 일찌기 南條文雄에 의해 시작된 梵語學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던 大谷大學의 赤沼智善에 의해 본격적으로팔리어 원전의 연구가 시작된다. 大正8년(1919) 인도, 스리랑카, 영국 등지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34세에 귀국하자마자大谷大學의 교수로 임명되어 원시불교와 팔리어를 담당하여 舟橋一哉, 雲井昭善, 櫻部建, 長崎法潤,吉元信行, 浪花宣明등으로 이어지는 大谷大學의 계열를 형성했으며, 京都大 철학과 출신으로 大谷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佐佐木現順도 초기불교 및 아비달마불교 연구에 공헌 하였으며, 최근의 京都大 출신의 荒牧典俊의 수타니파아타를 중심으로 한 연구와 夏本文雄의 한역 아함경을 중심으로한 연구 등이 참고할만하다.



3.1 연구방법론



3.2 초기불교의 정의의 문제



초기불교, 원시불교, 근본불교, 최초기불교, 팔리불교



3.3 언어 및 문헌의 연구



팔리어학 및 사전

원전의 번역



原始佛典 全10卷 東京 ; 講談社

編集委員: 梶山雄一, 櫻部建, 早島鏡正, 藤田宏達

1. ブッダの生涯 1985.

2. ブッダの前生 1985.

3. ブッダのことばI 1985.

4. ブッダのことばII 1985.

5. ブッダのことばIII 1985.

6. ブッダのことばIV 1986.

7. ブッダの詩I 1986.

8. ブッダの詩II 1985.

9. 佛弟子の詩 1985.

10.ブッダチャリタ 1985.



3.4 초기불교의 교리에 대한 연구



緣起, 三法印, 無我, 法, 四聖諦

講座佛敎思想 (全7卷 三枝充悳 編集, 長尾雅人․ 中村元 監修. 東京 ; 理想社 1974-1982)에 수록된 초기불교 및 부파

불교에 관한 논문.

第1卷 存在論 時間論, 1974.

「原始佛敎․アビダルマにおける存在の問題」 櫻部建, pp.17-55.

「原始佛敎․アビダルマにおける時間論」 平川彰, pp.181-226

第2卷 認識論 論理學, 1974

「原始佛敎の認識論」 平川彰, pp.15-54.

第3卷 倫理學 敎育學, 1975

「原始佛敎の倫理思想」 藤田宏達, pp.19-64.

第4卷 人間學 心理學, 1975

「佛敎における人間論」 中村元 pp.19-64.

「原始佛敎․アビダルマにおける心理學」 水野弘元, pp.197-240.

第5卷 宗敎論 眞理․價値論 1982

「緣起思想」 武內義範 pp.71-140.

「印度佛敎における眞理․價値論」 玉城康四郞, pp.275-352

第6卷 人生觀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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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ンド․東南アジアにおけるパ-リ佛敎文學思想」 前田惠學, pp.19-62.

「死後の世界」 奈良康明, pp.63-116.

佛敎思想 全12卷(京都 ; 平樂寺書店. 旣刊 10卷, 佛敎思想硏究會編, 代表; 中村元)시리즈 중의 초기불교 및 부파불교에

관한 논문.

佛敎思想 1 愛 1975.

「「愛」の理想と實踐」 中村元, pp.1-35.

「原始佛敎に現われた愛の觀念」 雲井昭善, pp.35-94.

「愛に對する新約聖書と原始經典」 玉城康四郞, pp.341-397.

佛敎思想 2 惡 1976.

「惡」 中村元, pp.1-89.

「善惡應報の思想 - インド一般思想として - 」 雲井昭善, pp.89-114.

「原始佛敎における惡の觀念」 藤田宏達, pp.115-156.

「社會惡」 水野弘元, pp.385-407.

佛敎思想 3 因果 1978.

「因果」 中村元, pp.1-54.

「業因業果と無因無緣論」 雲井昭善, pp.55-82.

「アビダルマの因果論」 櫻部建, pp.125-146.

佛敎思想 4 恩

佛敎思想 5 苦 1980.

「苦の問題」 中村元, pp.1-94.

「原始佛敎における苦の考察」 玉城康四郞, 95-200.

「苦の傳統的解釋 -アビダルマ佛敎를 中心으로-」 藤田宏達, pp.201-240.

「時代․社會苦 - 末法と苦」 雲井昭善, pp.241-264

佛敎思想 6 空 上 1981.

「原始佛敎における空の觀念」 中村元, pp.39-50.

佛敎思想 7 空 下 1982.

「原始佛敎における空」 藤田宏達, pp.415-466.

「アビダルマ佛敎における「空」の語の用例」 櫻部建, pp.467-480.

「空思想에の反省」 玉城康四郞, pp.907-1015.

佛敎思想 8 解脫 1982.

「解脫の思想」 中村元, pp.1-80.

「原始佛敎における解脫」 雲井昭善, pp.81-116.

「パ-リ佛敎における解脫思想」 渡邊文磨, pp.117-148

「阿羅漢에の道 - 說一切有部の解脫」 加藤純章, pp.149-192.

佛敎思想 9 心 1984.

「心の反省」 中村元, pp.1-109.

「原始佛敎における心」 水野弘元, pp.109-144.

「部派佛敎における心」 塚本啓祥, pp.145-218.

佛敎思想 10 死 1988.

「死をいかに解するか?」 中村元, pp.1-54.

「原始佛典에 보이는 死」 藤田宏達, pp.55-106

3.5 초기불교 교단사 및 계율에 대한 연구

3.6 초기불교 연구와 자이나교 연구

3.7 최근의 연구 동향

불교인류학, 문화연구





부록 1 「초기 및 남방 상좌부 불교」 연구 - 인물과 論著



1. 高楠順次郞(다카쿠스 준지로, 1866-1945)

淨土眞宗 本願寺派.불교학자이며, 교육가. 明治23년(1890년) 渡英, 옥스포드의 Max Müller에게 師事하여 인도학을 배

움. 明治30년 귀국. 東京帝國大學에서 梵文學을 강의.

南條文雄, 望月信亨과 함께 大日本佛敎全書 151冊, 우파니샤드 全書 9권, 渡邊海旭과 함께 大正新修大藏經

100권, 프랑스의 S. Levi와 함께 法寶義林 4권, 그리고 南傳大藏經 65권 70책 등을 출간했다. 이외의 저술은 高

楠順次郞全集 12권(東京:敎育新潮社 1977-1978)에 수록되어 있다. 全集 제6권에 「明治佛敎의 大勢」와 「明治佛敎에

영향을 준 서양の불교학자」의 두 논문 을 통해 明治佛敎를 조망해 볼 수가 있다. 동경제대에서 梵文學敎科書(1898)

로 梵語를 가르칠 때 저술한 巴利語佛敎文學講本(1900년)은 당시 팔리어 교과서로 쓰였으며, 1908년 이후의 팔리어

담당은 제자인 長井眞琴이 맡았다.

일본에 있어서 이른바 문헌학적 연구에 바탕을 둔, 근대적인 학문 방법론에 의한 초기불교연구는 高楠順次郞에 의해 비

롯되었다. 高楠順次郞는 유학 초기에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서 막스 뮐러의 지도하(1890-1894)에 산스크리트어를 중심

으로 라틴어, 희랍어 등의 서양고전어와 한역 불전의 영역(佛說無量壽經 南海寄歸內法傳) 등의 작업을 하였으며,

당시는 영국을 중심으로 리스 데이비스(Rhys Davids)에 의해 1882년 창립된 Pali Text Society가 팔리 원전의 출판을 본격

적으로 진행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高楠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高楠順次郞의 팔리어 연구는 옥스포드 졸업

후, 독일의 킬(Kiel)대학으로 가서 헤르만 올덴베르히(Hermann Oldenberg,1854- 1920)의 지도하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 高楠의 당시의 연구과제는 붓다고사의 팔리 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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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全譯은 하지못하였다고 한다.

(善見律毘婆沙의 漢譯은 후에 平川彰박사와 P.V.BAPAT박사에 의해 영역됨. Shan-Chien-P'i-P'o-Sha: a Chinese Version

by sanghabhadra of Samanta-p s dik , Poona, 1970)

근대 일본 불교학계에서의 최초의 유학자인 南條文雄(1845-1927)가 막스 뮐러의 도움을 받아 한 작업 가운데 하나가,

당시에는 영국에 알려져 있지않은 漢譯佛典의 목록인 大明三藏聖敎目錄의 작성이었다. 이와 같이 南條文雄에 의해

시도된 한문불교권의 서구에의 소개에 高楠順次郞도 업적을 남긴다. 그것은 高楠順次郞가 당시에 팔리어에서 한역된 불

전은 없다는 설에 대하여, 학계에 반증의 논문을 발표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즉 팔리 율장의 주석서Samanta-p s

dik 의 서문이 漢譯되어 「善見律毘婆沙」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음을 밝힌 후, 高楠은 테라바다 불교의 藏外 불전 가운

데 하나인 밀린다팡하도 那先比丘經으로 漢譯되어 있음을 알리는 작업을 한다.

이처럼 유럽의 불교학을 배우고, 또 한편으로는 한역 불전과 팔리 불전과의 관계를 밝히기도 하면서 유학생활을 마친

후, 1897년 귀국, 1899년 東京帝大 교수가 된다. 이후 1927년(昭和2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유수한 제자들을 길러낸다.

長井眞琴, 木村泰賢, 宇井伯壽, 宮本正尊 그리고, 정년 퇴임직전의 水野弘元 등의 제자들이 초기불교 및 팔리불교연구의

초석을 다져놓았다.





2. 荻原雲來(오기하라 운라이, 1869-1937)

1896년 淨土宗學本校 졸업. 1899년 제1회 정토종 해외 유학생으로 독일에 유학, 로이만박사에게 師事, 梵語學 전공.

1922년 문학박사 학위 취득. 大正大學교수.

1917

印度の佛敎 東京 ; 丙午出版社





3. 姉崎正治(아네자키 마사하루, 1873-1949)

明治-昭和시대의 종교학자. 京都 태생. 明治27년(1894) 東京帝國大學 哲學科 졸업. 同 대학에서 종교학 강의. 1899년,독

일, 영국,인도 등에서 3년간 유학.明治36년(1903년) 現身佛と法身佛로 문학 박사 학위받음. 1904년 同 대학 宗敎學

강좌 초대 주임교수가 됨. 종교의 학적 연구에 진력. (增谷文雄, 아네자키의 업적; 宗敎硏究 147 참조)

1904

現身佛と法身佛 東京 ; 有朋館

佛敎聖典史論(1899)을 비롯한 여러가지 저술 가운데 根本佛敎(1910년 초판, 東京 ; 博文館, 1950년 개정판, 現代

佛敎名著全集 第2卷 東京 ; 潮友社, 1966년, 再錄)가 초기불교연구에 관계된 것이며, 과학적이며 비판적인, 새로운 학문

방법론으로 유명.



4. 立花俊道(다치바나 슌도, 1877-1955)

曹洞宗. 駒澤대학 10代, 14代 학장. 明治36년 曹洞宗 大學林 졸업. 同年 11월부터 5년간 스리랑카에 유학, 팔리어, 산스

크리트어, 초기불교를 배운 후 귀국.曹洞宗 大學林 강사가 됨. 大正7년(1918년) 동남아시아을 돌아보고, 다음 해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유학해서 佛敎倫理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음. 귀국 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함.

팔리어 관계 저술로는 巴利語文典(明治43년)이 있고,번역으로는 國民文庫刊行會의 國譯大藏經 가운데 일본에서

는 최초로 팔리어에서 직역한 法句經(Dhammap da),諸經要集(Suttanipat ),長老偈(Therag th ),長老尼偈

(Ther gath ),所行藏(Cariy pi aka), 律藏健度部의 大品(Mah vagga),小品(C lavagga)이 있다.

立花俊道는 당시 동경제대에서 팔리어를 가르치던 長井眞琴과 팔리어에 있어서 쌍벽을 이루었다. 이 두 학자는 바로 당

시 학생이었던, 현재 남방상좌부불교학의 대가인 水野弘元의 팔리어 선생이었다.

5. 長井眞琴(나가이 마코토, 1881-1970)

大正, 昭和시대의 불교학자. 불교학, 특히 남방불교, 팔리어, 인도불교 연구의 泰斗. 明治40년(1907년) 동경제대 印度哲

學科졸업. 大正12년(1924년), 「律藏을 中心으로 한 根本佛典の硏究」로 문학박사 학위받음. 1931년-1941년 東京帝大교

수 在任.

1922

根本佛典の硏究 東京 ; 天地書房

1930

獨習巴利語文法 東京 ; 丙午出版社. (東京, 山喜房佛書林, 1977年, 第10版)

1936

南方所傳 佛典の硏究 東京 ; 中文館書店

이외 여러 저술이 있으며, 高楠順次郞, 水野弘元과 함께 原典 批評的 校訂本(Text Critical Edition)을 낸, 붓다고사의 팔리

율장의 주석서Samanta-p s dik (漢譯; 善見律毘婆沙. London; Pali Text Society 1924-1947)는 팔리성전 연구사에

있어서 세계적인 업적의 하나이다. (東方學 30 참조)



6. 木村泰賢(기무라 다이켄, 1881-1930)

曹洞宗. 大正, 昭和시대의 인도철학 불교학자. 1903년 曹洞宗 大學林졸업 후 東京제대 입학 高楠順次郞에게 師事. 문학

박사. 1919년-1922년까지 영국에 유학 리스 데이비스등에게 배움. 1923년 東京帝國대학 교수로 취임. 인도철학과 설립

후 최초의 담당 교수가 됨. 불교학 인도철학분야에 근대적 학문방법에 의한 선구적인 업적을 남김. (宗敎硏究 新 7-4 追

悼號 참조)

1911

阿毘達磨論の硏究 東京 ; 明治書院. 1927, 增訂改版. (複刊 ; 複刊 ; 木村泰賢全集 第四卷, 東京 ; 大法輪閣, 1968년 1

刷, 1982년 5刷) 기무라 다이겐 박사의 학위 논문.

1914

印度哲學宗敎史 東京 ; 明治書院 ( 複刊 ; 木村泰賢全集 第一卷, 東京 ; 大法輪閣, 1969년 1刷, 1981년 5刷)

1915

印度六派哲學 東京 ; 明治書院 (複刊 ; 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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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始佛敎思想論 東京 ; 明治書院 (複刊 ; 木村泰賢全集 第三卷, 東京 ; 大法輪閣, 1968년 1刷, 1982년 6刷)

1926

大乘佛敎思想論 東京 ; 明治書院. 1927, 再版. (複刊 ; 木村泰賢全集 第六卷, 東京 ; 大法輪閣, 1967년 1刷, 1982년 6

刷)

1927

小乘佛敎思想論 東京 ; 明治書院 (複刊 ; 木村泰賢全集 第五卷, 東京 ; 大法輪閣, 1968년 1刷, 1980년 5刷)

7. 宇井伯壽(우이 하쿠쥬, 1882-1963)

曹洞宗. 大正, 昭和시대의 인도철학, 불교학자. 高楠順次郞의 제자. 木村泰賢과 東京帝大 동기. 1913년 독일에 유학했으

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영국의 옥스포드로 피신하여 독학으로 인도철학과 불교연구. 이 시기에 번역한 勝宗(바

이쉐시카학파)十句義論의 英譯 “The philosophy of Vai e ika”는 지금도 참고할만한 자료로 쓰여지고 있음. 문학박사.

1923년 東北帝國大學교수. 1930년 동경제대교수를 겸임. 1941년 駒澤대학 학장이 됨. 인도철학에서 시작하여 인도불

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연구의 초석을 다져놓음. 엄밀한 문헌고증적인 연구방법으로 유명. 宇井伯壽에 의해 세워진 학

풍은 이후 동경대학 인도철학과의 학문적 전통이 됨.

印度哲學硏究 2,3,4권에 초기불교연구 논문수록

주요논문-1.「佛滅年代論」 2.「原始佛敎資料論」 3.「十二因緣の解釋」 4.「六師外道硏究」(이상 印度哲學硏究 第2), 5.

「八聖道の原義 및 그 變遷」 6.「阿含에 나타난 梵天」 7.「六十二見論」 8.「阿含の成立에 관한 考察」(이상 印度哲學硏究

第3), 9.「根本佛敎における僧伽の意義」 10.「阿含에 나타난 佛陀觀」 11.「阿育王刻文」 12.「阿含硏究の후에」(이상 印度

哲學硏究 第4)



8. 赤沼智善(아카누마 지젠, 1884-1937)

明治, 昭和전기의 불교학자. 眞宗大谷派. 1914-1919 인도, 영국 등지에 유학. 1919년 귀국 후 大谷대학 교수가 되어 팔

리어와 원시불교를 가르침.

印度佛敎固有名詞辭典 京都 ; 法藏館, 1967, 複刊, 1979, 第1版 3刷.

1939

漢巴四部四阿含互照錄

阿含の佛敎

1939

佛敎敎理之硏究

1939

原始佛敎之硏究

1939

佛敎經典史論

舟橋一哉 「赤沼智善先生」 京都, 大谷大學, 佛敎學セミナ- 14號 pp.66-74. 大谷大學, 1971



9. 和什哲郞(와츠지 데츠로, 1889-1960)

大正, 昭和시대의 윤리학자, 문화사가. 1912 東京帝國대학 철학과 졸업. 문학박사.東洋대학, 法政대학 등의 교수를 거

쳐, 1927년에 독일 유학, 1931년에 귀국, 京都帝國대학 교수가 됨. 1934-1949년 東京帝國 대학 교수. 저술은 和什哲郞

전집 20권으로 정리되어 있음(東京, 岩波書店, 1961-1963)

불교에 관한 저술은 다음과 같음

1927

原始佛敎の實踐哲學 東京 ; 岩波書店, 1932, 2刷.(和什哲郞全集 第5卷, 東京 ; 岩波書店,1962. pp.1-293. 同出版

社에 의한 改版1刷 1970) 和什哲郞 박사의 학위논문.

1962

「佛敎哲學の最初の展開」 和什哲郞全集 第5卷, 東京 ; 岩波書店,1962. pp.1-293. 同出版社에 의한 改版1刷 1970. 아

비달마 불교에 대한 논문집.

1963

佛敎倫理思想史 和什哲郞全集 第19卷, 東京 ; 岩波書店.



10. 宮本正尊(미야모토 세이준, 1893-1983)

大正, 昭和시대의 불교학자. 眞宗大谷派. 21년 東京帝國대학 인도철학과 졸업. 1924년-1928년 영국 옥스포드에 유학.

문학박사. 1928년 귀국 후 1954년까지 동경제국대학 교수. 1951년 日本印度學佛敎學會 창설하여, 초대 이사장이 됨. 후

에 와세다, 駒澤대학 교수역임. 중도사상의 연구를 시작으로 폭넓게 불교학을 연구함.

1944

中道思想及びその發達 京都 ; 法藏館

根本中と道

大乘と小乘

明治佛敎の思潮

佛敎の根本眞理(宮本正尊編)

1979

「中道の原初型と發達類型」 佛敎の比較思想論的硏究 東京 ; 東京大學出版會. pp.911-943.

11. 金倉圓照(가나쿠라 엔쇼, 1896-?)

論文集이 세 권으로 정리되어 출판. 제 1권이 불교학에 관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며, 그 가운데 초기불교 및 부파불교

에 관한 것들이 다음의 논문들이다.

1973

インド哲學佛敎學硏究 I 佛敎學編, 東京 ; 春秋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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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における法の意味」 pp.105-123.

「毘尼母經と雪山部」 pp.239-262.

「十事非法に對する諸部派解釋の異同」 pp.263-290.



12. 西義雄(니시 기유, 1897-1992 ?)

臨濟宗. 문학박사. 동양대학교수역임. 대표적인 업적은 國譯一切經 毘曇部의 阿毘達磨大毘婆沙論 11卷(木村泰

賢, 坂本行男과 共譯), 阿毘達磨俱舍論 3卷,俱舍論記 5卷의 번역작업. 木村泰賢박사의 뒤를 이은 아비달마 연구

가.

初期大乘佛敎ㅇ 硏究

原始佛敎에 있어서 般若ㅇ 硏究

阿毘達磨佛敎ㅇ 硏究



13. 水野弘元(미즈노 고우겐, 1901- )駒澤大學名譽敎授

パ-リ佛敎を中心とする佛敎の心識論

パ-リ語文法

パ-リ語辭典

南傳大藏經 總索引

原始佛敎

飜譯 多數. 특히 パ-リ語文法pp.190-220에는 「パ-リ語およびパ-リ佛敎硏究の歷史」가 있어 이 책이 쓰여질 1955년

까지의 서구와 南方諸國 그리고 일본에 있어서의 연구사가 정리되어 있음.



14. 佐藤密雄(사토 미츠유, 1901- )大正大學名譽敎授

1963

原始佛敎敎團の硏究 東京 ; 山喜房佛書林

1991

新訂增補 論事 附 覺音註 東京 ; 山喜房佛書林



15. 增谷文雄(마쓰타니 분유, 1902-1987)

昭和시대의 종교학 불교학자. 1925년 東京帝大 종교학과 졸업. 1946년 東京外國語大學교수, 大正大學교수. 문학박사.

일본종교학회 회장 역임. 종교신비주의 및 불교의 종교학적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김.

佛敎とキリスト敎の比較硏究

佛陀時代

根本佛敎の硏究

佛陀の傳記

1979

阿含經典 全4卷 東京 ; 筑摩書房. 1983-1984 初版 8刷.

여기에 번역된 경전들은 漢譯 阿含經과 팔리 니카야에서 주제별로 선별한 것들이다.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 1권 - 總論

존재의 법칙(緣起)에 관한 경전군

제 2권 - 인간의 분석(五蘊)에 관한 경전군

제 3권 - 인간의 감관(六處)에 관한 경전군

실천의 방법(道)에 관한 경전군

제 4권 - 詩(偈)에 관한 경전군

增谷文雄著作集 12卷

(저작집 제12권이 近代佛敎思想史임. 여기에 明治佛敎에 대한 연구가 있음).



16. 渡邊照宏(와타나베 쇼코, 1907- 1977)

眞言宗智山派. 東洋大學名譽敎授. 일본의 대표적인 불교학자 가운데 한 사람. 30여 개 언어에 대한 독해력을 바탕으로

原典에 대한 번역 및 연구 성과가 20여 책의 저술로 남아있음. 東京帝大 인도철학과 졸업. 독일에 4년간 유학하여 로이

만박사에게 師事. 九州大學을 거처 東洋大學 교수 역임. 成田山佛敎文化硏究所 주임연구원. 문학박사.

65권 70책의 南傳大藏經 번역 가운데 13책의 경론을 번역함. 번역한 경론은 다음과 같다.

1935

小部經典 18, 無碍解道 1, 論母, 大品.

南傳大藏經 40, 東京 ; 大藏出版社. 1972年 再刊.

1936

小部經典 19, 無碍解道 2, 俱存品, 慧品.

南傳大藏經 41, 東京 ; 大藏出版社. 1972年 再刊.

1936

雙論 1, 1-6

南傳大藏經 48上, 東京 ; 大藏出版社. 1973年 再刊.

1937

雙論 2, 7

南傳大藏經 48下, 東京 ; 大藏出版社. 1973年 再刊.

1938

雙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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律藏 3, 大品

南傳大藏經 3, 東京 ; 大藏出版社. 1970年 再刊.

1939

律藏 4, 小品 (宮本正尊 共譯)

南傳大藏經 4, 東京 ; 大藏出版社. 1970年 再刊.

1939

相應部經典 3, 健道品

南傳大藏經 14, 東京 ; 大藏出版社. 1971年 再刊.

1939

增支部經典 5, 8集

南傳大藏經 21, 東京 ; 大藏出版社. 1971年 再刊.

1940

增支部經典 6, 9集

南傳大藏經 22上, 東京 ; 大藏出版社. 1971年 再刊.

1940

增支部經典 7, 10集

南傳大藏經 22下, 東京 ; 大藏出版社. 1971年 再刊.

1940

相應部經典 5, 大編 1-3

南傳大藏經 16上, 東京 ; 大藏出版社. 1971年 再刊.

1940

相應部經典 6, 大編 4-12

南傳大藏經 16下, 東京 ; 大藏出版社. 1971年 再刊.

南傳大藏經번역 작업 외의 초기불교에 대한 번역 및 저술에 다음의 것들이 있다.

1951

「新譯․法句經(眞理の言葉)」 다음의 著作 新譯․法句經講話에 수록. 著作集 5에 再錄.

1951

新譯․法句經講話 東京 ; 大法輪閣

1966

新釋尊傳 東京 ; 大法輪閣

1969

「スッタニパ-タ」 (譯者代表) 世界の大思想 II-2, 佛典, 河出書房新社, pp.5-103. 著作集 5에 再錄.

1974/1977

「涅槃への道」 大法輪 1974․9-1977․3, 1977․5-1977․7. 著作集 2에 편집 발간. (渡邊重郞 「涅槃經硏究の基本的資

料 - 「涅槃への道」 備忘錄」 成田山佛敎硏究所紀要 6, 1981년, pp.129-171)

위의 저작 이외에도 많은 저작들이 있는데 주로 불교논리학에 관한 것들이 많으며, 法華經을 비롯한 대승경전과 대승론

서에 대한 것들도 많다. 불교에 대한 논저는 대개 渡邊照宏著作集 全8卷(東京, 筑摩書房,1982)에 再錄되어 있음. 자

세한 정보는 渡邊重郞 「渡邊照宏主要著作目錄」 (渡邊照宏 佛敎學論集 東京, 筑摩書房,1982, pp.559-572) 참조하기

바람.





17. 舟橋一哉(후나바시 잇사이, 1909- )大谷大學名譽敎授

1952

原始佛敎思想の硏究-緣起の構造とその實踐 京都 ; 法藏館, 1983 7刷.

1954

業の硏究 京都 ; 法藏館

1955

俱舍論の原典解明 世間品(山口益 共著) 京都 ; 法藏館

1987

俱舍論の原典解明 業品 京都 ; 法藏館 (書評 ; 本庄良文 京都, 大谷大學, 佛敎學セミナ- 48, 1988, pp.99-104)



18. 中村元(나카무라 하지메, 1912- )東京大學名譽敎授 東方學院院長

일본 學士院 회원. 문학박사.

決定版 中村元 選集(東京 ; 春秋社, 全32卷 別卷11卷, 1994년 10월 현재 13권 간행) 가운데 原始佛敎시리즈 8권-고

타마 붓다 I,II 佛弟子の生涯 原始佛敎の成立 原始佛敎の社會思想 原始佛敎の思想 I(이상 旣刊 ),II 原始

佛敎の生活倫理 外 붓다のことば- 붓다 마지막여행-대반열반경 眞理のことば․感興のことば(이상 岩波文

庫)등 다수의 현대어역의 佛典이 있음.

1979

「原始佛敎の比較思想論的硏究」 佛敎の比較思想論的硏究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pp.87-122.



19. 雲井昭善(구모이 쇼젠, 1915- )大谷大學名譽敎授

大谷大學 卒業. 문학박사.

1967

佛敎興起時代の思想硏究 京都 ; 平樂寺書店 (書評 ; 前田惠學, 佛敎學セミナ- 6,京都, 大谷大學, 1967,pp.55-59.

藤田宏達, 宗敎硏究 第199號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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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平川彰(히라카와 아키라, 1915- )東京大學名譽敎授

일본 學士院 회원. 문학박사.

平川彰박사의 논저 가운데 초기불교 및 아비달마에 관한 것들만 소개한다. 그 외의 論著은 平川彰博士古稀記念論文集

佛敎思想の諸問題(東京;春秋社, 1985)의 著作目錄과 平川彰著作集17권(旣刊 10권)에 대한 정보는 春秋社의 圖書

目錄 (1993년)참조.

초기불교와 아비달마에 대한 논문들은 대략 平川彰著作集 1,2卷에 수록되어 있으며, 율장에 대한 연구는 平川彰著

作集 9, 10,16,17卷(未刊)과 14,15卷(旣刊)에, 그리고 초기불교 교단조직에 대해서는 平川彰著作集 11,12,13卷(未

刊)으로 간행될 예정이다.

1960

律藏の硏究 東京 ; 山喜房佛書林

1964

原始佛敎の硏究 - 敎團組織の原型 東京 ; 春秋社. 히라카와 아키라 박사의 학위논문. (書評 ; 藤田宏達, 宗敎硏究

第185號 1965. pp.102-108)

1973

俱舍論索引․第一部 (共著) 東京 ; 大藏出版

1974

インド佛敎史․上 東京 ; 春秋社

1977

俱舍論索引․第二部 (共著) 東京 ; 大藏出版

1978

俱舍論索引․第三部 (共著) 東京 ; 大藏出版

1979

インド佛敎史․下 東京 ; 春秋社

1984

佛敎硏究入門(編著) 東京 ; 大藏出版

1988

平川彰著作集 第1卷 法と緣起 東京 ; 春秋社

1991

平川彰著作集 第2卷 原始佛敎와アビダルマ佛敎 東京 ; 春秋社

1993-1

平川彰著作集 第14卷 二百五戒の硏究I 東京 ; 春秋社

1993-2

平川彰著作集 第15卷 二百五戒の硏究II 東京 ; 春秋社



21. 玉城康四郞(다마키 고시로, 1915- )東京大學名譽敎授

불교학자. 1940년 東京帝大印度哲學梵文學科 졸업. 1959년 문학박사. 1960년-1976년 東京대학 교수. 東北대학, 日本대

학 교수 역임.

1979

佛敎の比較思想論的硏究(編) 東京 ; 東京大學出版會

1985

佛敎ㅇ思想 1-原始佛敎 京都 ; 法藏館

수록논문 및 出處

1.「佛敎硏究の反省」 pp.2-19. 東北印度學宗敎學會論集 3號 1978(原題 = 「佛敎の根低-佛敎硏究の反省」)

2.「ブッダの解脫」 pp.20-61.

3.「原始佛敎における法の根源態」 pp.62-108. 平川彰博士還歷記念論文集 佛敎における法の硏究 東京 ; 春秋社,

1975

4.「原始佛敎における佛の根源態」 pp.109-145. 神觀念の比較文化論的硏究 東京 ; 講談社, 1981. (原題 = 「原始佛敎

における佛の觀念」)

5.「インド佛敎における眞理觀」 pp.146-238. 講座佛敎思想 第5卷 東京 ; 理想社, 1982.



22. 佐佐木現順(사사키 겐쥰, 1915- )

1974

佛敎における時間論の硏究 東京 ; 淸水弘文堂

「南北傳アビダルマの時間論と順正理論の存在論」 등.

1978

大乘佛敎から大乘佛敎へ-歷史と體驗 東京 ; 淸水弘文堂, 1981年. 新版 1刷. 1987년, 2刷.



23. 佐佐木敎悟(사사키 교우고, 1915- )

1937년 大谷대학 졸업(불교학전공) 1944.1-1946.8 태국에 유학. 1962년 大谷대학 교수.

インド文化史 S. 레비 著 (山口益 共譯註)

インド․東南アジア佛敎硏究 戒律と僧伽 京都 ; 平樂寺書店.

1986

インド․東南アジア佛敎硏究 II 上座部佛敎 京都 ; 平樂寺書店. 태국 불교에 대한연구.



24. 宮坂宥勝(미야사카 유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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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佛敎の起源 東京 ;山喜房佛書林

宮坂宥勝博士의 논문은 다음의 두 저서에 정리되어 있음. 上卷의 「初期佛敎と印度文化」에(pp.5-110, pp.[3]-[71]) 初期

佛敎에 대한 연구가 실려있음. 上卷 뒷 부분은 密敎와 인도사상, 下卷에는 인도철학 諸派와 불교, 인도고전논리학과 불

교가 실려있음.

1983

インド古典論 上 東京 ; 筑摩書房

1984

インド古典論 下 東京 ; 筑摩書房



25. 早島鏡正(하야시마 교쇼, 1922- )東京大學名譽敎授

1964

初期佛敎の社會生活 東京 ; 岩波書店

1979

ゴタマ․ブッダ 東京 ; 講談社, 1989 5版(早島鏡正著作集9卷에 收錄 예정)

이하의 早島鏡正著作集(全15권 예정) 1과 2에 박사의 초기불교에 대한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음.

1992

初期佛敎の實踐と展開(早島鏡正著作集2) 東京 ; 世界聖典刊行會

近刊

初期佛敎のさとり(早島鏡正著作集1) 東京 ; 世界聖典刊行會



26. 三枝充悳(사이쿠사 미츠요시, 1923- )日本大學敎授 筑派大學名譽敎授

1950년 東京大學文學部 哲學科 졸업. 1962년 뮌헨대학 졸업. 문학박사, Ph.D.

1978

初期佛敎の思想 東京 ; 東洋哲學硏究所

1980

「初期佛敎の緣起說をめぐる論爭」 私家版 (本書는 三枝充悳, 舟橋一哉, 宮地廓慧 세 박사의 연기설에 대한 논쟁으로 中

外日報에 1978년부터 1980년에 거처 연재된 기사 모움집임)

1986

佛敎の思想-三枝充悳對談集 東京 ; 春秋社

1987

インド佛敎人名辭典(編) 京都 ; 法藏館



27. 渡邊文磨(와타나베 후미마로, 1924-1990)

1956년 龍谷大學文學部佛敎學部 졸업. 1956년 同 大學 大學院에서 修士學位 획득. 1961년 박사 과정 수료. 1965년 카나다 토론토 대학에 유학. 1976년 Ph.D.학위 취득. 近畿大學 교수, 愛知學院大學國際文化學科 교수.

1983

“Philosophy and its Development in the Nik ya and Abhidharma” Delhi; Motitiral Banarsidass.(書評 ; 浪花宣明, 京都, 大谷大學, 佛敎學セミナ- 39, 51-55) Ph.D. 논문.



28. 櫻部建(사쿠라베 하지메, 1925- )大谷大學名譽敎授

1969

俱舍論の硏究 界․根品 京都 ; 法藏館, 1979 5刷

1975

佛敎語の硏究 京都 ; 文榮堂 (書評; 香川孝雄, 佛敎學セミナ- 23, 京都, 大谷大學, 1978,pp. 60-65)

1985

「初期佛敎硏究の回顧」 佛敎學セミナ- 42, 京都, 大谷大學, pp.82-102

1991

「papa ca 考」 パ-リ學佛敎文化學會 パ-リ學佛敎文化學 第4號 pp. 17-26.



29. 前田惠學(마에다 에가쿠, 1926- )愛知學院大學敎授

淨土眞宗大谷派. 東京大學文學部 哲學科 卒業. 水野弘元박사와, 什直四郞 교수에게 배움. 原始佛敎聖典の成立史的硏

究로 박사학위 취득. パ-リ學佛敎文化學會 설립(1986), 회장으로 선출됨. 여러차례에 거쳐 유럽의 불교학계 시찰 및

동남아시아, 동아시아(한국,중국)의 불교현황 조사활동을 하여 보고.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 연구 소개 논문

다수.

(前田惠學교수의 論著에 대한 정보는 「前田惠學博士履歷およびに業績」 前田惠學博士頌壽記念會編(1990년, ㅍ. 1-22)

를 참조함)

1962

「デンマ-ク學士院の批判的パ-リ語辭典 (一)」 東方學 第24輯, ㅍ. 112-101.

1963-1

「デンマ-ク學士院の批判的パ-リ語辭典 (二)」 東方學 第25輯, ㅍ.121-107.

1963-2

「海外におけるパ-リ語文獻を中心とする佛敎의 硏究 - ヨ-ロッパ -」 印度學佛敎學硏究 11-1, 日本印度學佛敎學會,

pp.283-297.

1963-3

「海外におけるパ-リ語文獻を中心とする佛敎의 硏究 - インド․東南アジア -」 印度學佛敎學硏究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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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始佛敎聖典の成立史的硏究 東京 ; 山喜房佛書林(書評; 櫻部建, 佛敎學セミナ- 1, 京都, 大谷大學, pp.67-73.

1969-1

「戰後の阿含硏究と今後」 (一) 國譯一切經印度選述部․月報 2 ㅍ.1-7.

1969-2

「戰後の阿含硏究と今後」 (二) 國譯一切經印度選述部․月報 3 ㅍ.1-7.

(1975 「戰後の阿含硏究と今後」 (一)(二) 三藏集 第1輯에 再錄, ㅍ.7-20)

1982

「海外におけるパ-リ寫本の保存狀況」 佛敎學 14, 佛敎學硏究會, pp.1-16.

1984

「ヨ-ロッパ佛敎の成立 - Eurobouddhisme-Eurobuddhism-Eurobuddhismus - 愛知學院大學人間文化 創刊號, ㅍ.1-19.

1985

‘Japanese Studies on the Schools of the Chinese Agamas’ Zur Schulzugehörigkeit von Werken der Hinayana-Literatur I,

heraus. von Heinz Bechert, Göttingen, pp. 94-101.

1986

現代スリランカの上座部佛敎(編著) 東京 ; 山喜房佛書林.

1990

「パ-リ文化圈の展望」 パ-リ文化學の世界 水野弘元博士米壽記念論集, 東京 ; 春秋社, pp.155-178.

1993

原始佛敎と大乘佛敎 上․下(編) 渡邊文磨博士追悼記念論集, 京都 ; 永田文昌堂.

30. 藤田宏達(후지타 고우타츠, 1928- )北海道大學名譽敎授

淨土眞宗. 東京大學 哲學科 卒業.

1954

「轉輪聖王について - 原始佛敎聖典を中心として」 印度學佛敎學論集 - 宮本正尊敎授還歷記念論文集 -  東京 ; 三省

堂, pp.145-156.

1957

「三乘の成立について」 印度學佛敎學硏究 5-2, 東京 ; 印度學佛敎學會, pp.91-100.

1958

阿含について多佛史上の一斷面 - 現在他方佛との關係」 印度學佛敎學硏究 6-2, 東京 ; 印度學佛敎學會, pp.64-73.

1959

「四沙門果の成立について」 印度學佛敎學硏究 7-2, 東京 ; 印度學佛敎學會, pp.69-78

1960

「三界說について」 印度學佛敎學硏究 8-2, 東京 ; 印度學佛敎學會, pp.59-62.

1964

「在家阿羅漢論」 結城敎授頌壽記念 佛敎思想史論集 東京 ; 大藏出版, pp.51-73.

1971

「原始佛敎について生天思想」 印度學佛敎學硏究 19-2, 東京 ; 印度學佛敎學會, pp.412-420

1974

「原始佛敎について善惡の問題」 印度學佛敎學硏究 22-2, 東京 ; 印度學佛敎學會, pp.1-10.

1975

「三法印と四法印」 佛敎硏究論集 橋本博士退官記念佛敎論集刊行會編, 大阪 ; 淸文堂出版, pp.105-123.

1977

「佛の稱號 - 十號論」  佛の硏究 玉城康四郞博士還歷記念論集, 東京 ; 春秋社, pp.81-98.

1981

「佛傳資料の一考察 - ニダ-ナカタ- 覺え書 - 」 佛敎の歷史的展開に見る諸形態 古田紹欽博士古稀記念論集, 創文

社, pp.188-213.

-1

「原始佛敎․初期佛敎․根本佛敎」 印度哲學佛敎學 第2號, 北海道印度哲學佛敎學會, pp.20-56.

1987-2

「ダンマパダ覺え書」 インド學佛敎學論集 高崎直道博士還歷記念論集 東京 ;春秋社pp.165-181.

「原始佛敎について涅槃 - nibb naとparinibb na -」 印度學佛敎學硏究 37-1, 東京 ; 印度學佛敎學會, pp.1-12.



31. 奈良康明(나라 야스아키, 1929- )駒澤大學敎授

曹洞宗. 東京大學印度哲學科 卒業. 인도 캘커타대학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인도종교문화사 전공. 문학

박사.

1979

佛敎史 I インド․東南アジア 東京 ; 山川出版社 1985 1版3刷.

1992

ブッタから道元へ (監修) 東京 ; 東京書籍株式會社



32. 塚本啓祥(츠카모토 게이쇼, 1929- )東北大學名譽敎授

初期佛敎敎團史の硏究

1980

「初期佛敎について持法者と持律者の論爭」 佛敎思想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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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團論」 岩波講座 東洋思想 10 インド佛敎 3 東京 ; 岩波書店, pp. 361-407

1991

「部派佛敎について人間觀」 インド思想에 있어서 人間觀 京都 ; 平樂寺書店,pp.279-362.



33. 石上善應(이시카미 젠오우, 1929- )大正大學敎授

1953년 大正大學佛敎學部梵文學部 졸업.

1980

「釋尊の對話と經典の對論の形式」 佛敎思想史 3 <佛敎內部について對論>, 石上善應․塚本啓祥編, 京都 ; 平樂寺書店,

pp.1-24.

1985

「ブッタの傳說とその周邊」 三康文化硏究所所報 第21號, 東京 ; 三康文化硏究所, pp.1-22.



34.村上眞完(무라카미 신칸, 1932- )

1957년 東北大學文學部印度哲學佛敎史專攻 卒業. 1963년 同 大學 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



35. 森祖道(모리 소토, 1934- )愛知學院大學敎授

1984

パ-リ佛敎註釋文獻の硏究 東京 ; 山喜房佛書林

cf.Friedgard Lottermoser

Quoted Verse Passages in The Works of Buddhaghosa:contributions towards the study of the lost S ha a hakath

literature(붓다고사의 저작에 있어서 인용된 게송 句節:산실된 시할라 주석문헌의 연구에의 기여) Göttinggen

Univ.PH.D.1982.

1989

“Studies of the p li cammentaries- A provisional Collection of Articles” Tokyo, Toko Press



36. 長崎法潤(나가사키 호쥰, 1934- )大谷大學敎授

1979

「ジャイナ敎の業思想」 業思想硏究 京都 ; 平樂寺書店, .499-534

1988

ジャイナ認識論の硏究 京都 ; 平樂寺書店

1990

「パ-リ佛敎硏究とジャイナ敎硏究」 パ-リ文化學の世界 水野弘元博士米壽記念論集 東京 ; 春秋社, pp.329-357

1992

「犀角經と璧支佛」 佛敎學セミナ- 第55 號, 京都, 大谷大學, pp.1-14.

1993

「海外における佛敎硏究者の視點 - 方法論を中心として」 海外における佛敎硏究の方法と課題 京都 ; 大谷大學眞宗

綜合硏究所, pp.1-34



37. 荒牧典俊(아라마키 노리토시, 1936- ) 京都大學敎授

1975

「Suttanip ta 1032-1039: Ajitam avapucch について」 日佛年報 41, pp.1-16.

1980

「A text-strata-analytical Interpretation of the Concept Pa caskandhas」

京都大敎養學部, 人文 26, pp.1-36.

1983

「Suttanip ta A hakavaggaにみられる論爭批判について」

中川善敎先生頌德記念論集․佛敎と文化 京都 ; 同朋社出版, pp.117-146.

1984

「原始佛敎經典の成立について - 韻文經典から散文經典へ」 東洋學術硏究 23-1.

東京; 東洋哲學硏究所, pp.53-67.

1985

「Attada asutta(Sn 935-954)は「釋尊の言葉」であり得るか」 日佛年報 50, pp.1-18.

1988

「ゴ-タマ․ブッタの根本思想」 岩波講座 東洋思想 8 インド佛敎 1

東京 ; 岩波書店, pp.61-98.

38. 森章司(모리 쇼지1938- )東洋大學敎授

39. 片山一良(가타야마 이치로, 1942- )駒澤大學敎授

팔리어학에 관한 연구 및 번역과 최근 남방불교국가에 대한 불교인류학적 연구.

1990

「佛敎人類學- その立場と領域」 水野弘元博士米壽記念論集 - パ-リ 文化學の世界

東京; 春秋社, pp.233-261.



40. 浪花宣明(나미와 노부아키, 1948- )

舊姓, 우에스기(上杉). 1974년 大谷大學大學院修士졸업. 1978年 同 대학 박사과정 수료. 1980-1982년, 인도 푸나

(Poona)대학에 유학. Ph.D.(푸나대학)

1978

「サンカ-ラの硏究」 佛敎硏究 第7號, 兵松 ; 國際佛敎徒協會, pp.19-33.

1980

「行の硏究 - 有行心

8/29/2020 일본에 있어서「초기 및 남방 상좌부 불교」 연구의 역사와 현황 : 네이버 카페

https://cafe.naver.com/qkwmfk/88 12/14

「行の硏究 有行心と無行心」 佛敎硏究 第9號, 兵松 ; 國際佛敎徒協會, pp.97

114.

1981

「パ-リ佛敎における三歸依について - Up sakajan la k ra 第1章の硏究」 佛敎硏究 第10號, 兵松 ; 國際佛敎徒協

會, pp.127-148.

1982

「心の作用と h na」 佛敎硏究 第  號  兵松 ; 國際佛敎徒協會, pp.101-117.

1983

「心所法のアビダルマ的變化」 佛敎硏究 第12號, 兵松 ; 國際佛敎徒協會, pp.71-

88.

1984

「パ-リ上座部における色法說の一考察 - nipphanna와parinipphanna」 佛敎硏究 第13號, 兵松 ; 國際佛敎徒協會,

pp.45-62.

1985

「色法の主觀的認識 - “ruppati”の解釋をめぐって - 」 佛敎學セミナ- 第41號, 京都, 大谷大學佛敎學會.

1987

在家佛敎の硏究 京都 ; 法藏館

1990

「パ-リ佛敎における色法をめぐる諸議論」 佛敎硏究 第19號, 兵松 ; 國際佛敎徒協會, pp.139-160.

41. 田中敎照 (다나카 교쇼, 1949- )武藏野女子大學敎授

초기 및 아비달마 불교에 대한 논문 다수. 특히 修行論 분야가 많음

初期佛敎の修行道論 東京; 山喜房 1993





42. 夏本文雄 (에노모토 문유, 1954- )

한역 아함경과 범어 단편의 아함경 연구 등

1982

「初期佛典における三明の展開」 佛敎硏究 12. 兵松; 國際佛敎徒協會, pp.63-81.

1983

「初期佛典における srava(漏)」 南都佛敎 50. 京都 pp.17-28.

1984

「阿含經典の成立」 東洋學術硏究 第23卷 第1號, 東京; 東洋哲學硏究所,pp.93-108.

1988-1

「初期佛敎思想の生成-北傳阿含の成立」 岩波講座 東洋思想 8 インド佛敎 1

東京 ; 岩波書店, pp.99-116

1988-2

「初期佛敎における業の消滅」 日佛年報 54. pp.1-13



다음의 두 논문은 저자가 독일의 괴팅겐대학의 연구원 이절에 이루어낸 연구성과이다. 내용을 보면, 전자는 바미얀(아프카니스탄)과 東터키스탄에서 발견된 說一切有部 所傳의 雜阿含經의 산스크리트 단편과 漢譯과의 대조연구이며, 후자는 대승불교의 유식학파의 논서인 瑜伽師地論 聲聞地品에 인용된 雜阿含經 상응부분에 대한 연구이다. 두 논문 모두사본연구와 산스크리트-한문-팔리-티베트어가 가능한 학자에 의한 이른바 철저한 문헌학적 연구의 본보기라 할수 있

다. 에노모토교수는 독일서 이 두 논문을 발표하고 1991년 12월 東京대학에서 이 두 논문을 자료로 일주일간의 집중강의를 했다. 불교연구를 위한 고전어인 산스크리트, 팔리, 티베트, 한문 자료의 비교검토와 해석으로 진행된 강의였다.



1989-1

‘Sanskrit Fragments from the Sa yukt gama Discovered in Bamiyan and Eastern Turkestan’ “Sanskrit-Texte aus dem

buddhistischen Kanon: Neuentdeckungen und Neueditionen” Gottingen ; Vandenhoeck & Ruprecht. pp.7-16.

1989-2

‘ ar r rthag th : A Collection of Canonical Verses in the Yogac r bh mi. part 1: Text’ “Sanskrit-Texte aus dem

buddhistischen Kanon: Neuentdeckungen und Neueditionen” Gottingen ; Vandenhoeck & Ruprecht. pp.17-35

후지요시 지카이(藤吉慈海)

インド․タイの佛敎 東京 ; 大東出版社 1991.인도와 태국, 버마 등지의 불교에 대한 논문 모음집.

부록 2

明治불교에 영향을 준 서양의 불교학자

부록 3





해외의 연구



1. 영국

Pali Text Society를 중심으로 한 연구

K.R.Norman, F.Gombrich

2. 덴마크

Critical Pali Dictionary 편찬을 중심으로 한 연구성과

3. 독일

괴팅겐 대학, 등

Heinz Bechert

1966

Buddhismus, Staat und Gesellschaft in den Ländern des Therav da-Buddhismus, Band 1 - Allgemeines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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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Metzner Verlag.

1967

Buddhismus, Staat und Gesellschaft in den Ländern des Therav da-Buddhismus, Band 2 - Birma, Kambodscha, Laos,

Thailand, Wiesbaden, Otto Harrassowitz.

1973

Buddhismus, Staat und Gesellschaft in den Ländern des Therav da-Buddhismus, Band 3 - Bibliographie, Dokumente, Index,

Wiesbaden, Otto Harrassowitz.

Oskar von Hinüber

1968

Studien zur Kasussyntax des P li Besonders des Vinaya-pi aka, Münhen. 히뉘버 교수의 박사 학위 논문. 팔리 율장에 있

어서의 格變化 문장론. (書評 ; J.W.de Jong, Buddhist Studies(ed by Gregory Schopen), Berkeley, 1979, PP.219-221.

「도이치 印度學界の現況」 佛敎學세미나 23號 pp.76-83. 1976 大谷大學

各 章의 참고자료



2. 일본 근대 불교학의 성립

明治시대의 불교에 대한 연구 저술

2.01

明治시대의 불교에 대한 가장 종합적인 연구서로서 現代佛敎特輯號 明治佛敎の硏究․回顧(東京 ; 現代佛敎社, 1933)

를 들수 있다. 이 책은 총 780 쪽에 달하는 논문집으로 明治 시대의 불교연구를 위한 필독서이다. 특히 高楠順次郞의

「明治佛敎의 大勢」(6-17), 「明治佛敎에 영향을 준 서양의 불교학자」(152-161) 그리고 간단한 논문이지만 長井眞琴의

「明治佛敎의 原典硏究」(171-174) 등의 논문 참조.

2.02

岸本英夫 編 明治文化史 6 宗敎(東京 ; 原書房, 1979), 第三章 明治佛敎史 pp.147-252에는 德川幕府시대의 佛敎, 明

治維新과 廢佛毁釋, 불교도의 각성, 서구문화와의 접촉과 불교의 혁신, 「破邪顯正」운동과 불교의 부흥, 근대적 불교사상

의 전개 - 새로운 불교학의 수립과 불교의 정비시대의 순서로 明治시대의 불교계의 동향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특히 근

대적 불교사상의 전개 부분의 ‘유럽의 불교연구의 동향과 그 영향’과 ‘새로운 불교학의 수립’ 부분이 당시의 유학 상황을

말해주고 있음.

2.03

增谷文雄 增谷文雄著作集 12 近代の宗敎的生活者 (東京 ; 角川書店, 1982) 에서의 「近代佛敎思想史」 부분(pp.14-

147)의 ‘근대불교사상의 전개’, ‘구미불교학의 공헌’, ‘근본불교주의의 수립’ 등의 논문 참조.

2.04

渡邊海旭 歐米の佛敎 (東京 ; 丙午出版社, 1919. [渡邊海旭論文集(東京 ; 大東出版社, 1933 初版, 1936 再版)에

再錄 pp.1-191])는 明治시대, 서구에서의 불교연구상황을 종합적으로 연구 보고한 저술. 제1장 팔리성전의 연구, 제2장

梵語불교성전의 연구, 제3장 支那佛敎의 연구, 제4장 西藏불교의 연구, 제5장 인도학연구상의 불교, 제6장 西域발굴의

불교, 제7장 歐洲에 있어서 불교의 감화로 구성되어 있음. 이 가운데 1,2,5장을 참조.





2.1 근대 불교학자들에 대한 소개 및 傳記에 관한 논저



2.11

長崎法潤 「산스크리트의 착수」(「サンスクリット事始め」), 佛敎學세미나 52, 1990. 70-86에서는 南條文雄과 笠原硏

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음.

2.12

雲井昭善 「南條文雄先生-近代佛敎學硏究의 先驅者」 佛敎學세미나 7, 1968. 60-70

2.13

「마음에 남은 근대의 불교자 100인<하>」(「心に殘る近代の佛敎者100人<下>」) 大法輪 東京 ; 大法輪閣, 平成5年

(1993)5月號 pp.120-145에 南條文雄, 高楠順次郞, 荻原雲來, 渡邊海旭, 姉崎正治, 木村泰賢, 宇井伯壽, 長井眞琴, 山口

益 등의 傳記와 업적에 대한 소개가 실려있음.

2.14

日本佛敎人名辭典

2.15

增谷文雄의 2.03 增谷文雄著作集 12 近代の宗敎的生活者에는 南條文雄, 木村泰賢, 渡邊海旭, 등에 대해 소개되어 있음.

2.16

山折哲雄 「여읜 <佛陀>-近代佛敎硏究의 功罪를 묻는다」(「やせほそった<佛陀>-近代佛敎硏究の功罪を問う」) 季刊 佛

敎 no.1, 東京 ; 法藏館 , 1987.10 pp.28-57에는 木村泰賢과 宇井伯壽, 和什哲郞의 緣起說에 대한 해석의 相異点을 논

하면서 木村泰賢과 宇井伯壽의 학문적 성향 및 傳記에 대해 서술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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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08:55

아다다사

안식(眼識)이 위와 같듯이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도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 모두 다 알아야 한다.

안촉(眼觸)이란 무엇인가? 3가지가 화합(和合)하여 생겨나는 것으로 경계의 정묘(淨妙) 등의 대상(義)을 취한다.

위와 같이 나머지 촉(觸)의 각각도 각기 다른 경(境)에 따라서 그 상(相)을 설명하는 줄 알아야만 한다. 여기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6처(處)의 종자가 섭수하는 바의 종자의 촉(觸)과 거기에서 생기게 되는 과(果)의 촉(觸)을 말한다. 욕계에는 여섯 가지

를 갖추고 있으며, 색계에는 네 가지, 무색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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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1. 09:17

황 부다

온갖 다라니문에 대하여 온갖 다라니문이라 말하면서 온갖 다라니문이란 생각을 일으켜 집착하며, 온갖 삼마지문에 대하여 온

갖 삼마지문이라 말하면






2020/08/27

지눌과 구산의 선 사상 비교 연구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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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지눌과 구산의 선 사상 비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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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영불교연구소

2019. 10. 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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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訥과 九山의 禪 思想 比較 硏究



1999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종교학 전공



박 정 환



목 차



Ⅰ 序 論 1



1. 硏究의 目的 1



2. 硏究의 方法 4



Ⅱ 知訥의 生涯와 韓國佛敎傳統 6



1. 知訥의 생애와 禪風의 振作 6



2. 知訥의 불교사적 업적 8



Ⅲ 九山의 生涯와 宗風振作 12



1. 九山의 출생과 求道 12



2. 교화와 禪의 중흥 18



Ⅳ 知訥과 九山의 禪思想 比較 21



1. 知訥의 禪思想 21



1) 禪思想의 형성 21



2) 心性論 24



3) 修行論 30



(1) 頓悟論 30



(2) 漸修論 32



(3) 看話論 37



2. 九山의 禪思想 40



1) 心性論 42



2) 修行論 47



(1) 三要 48



(2) 三學 49



(3) 看話論 51



(4) 頓悟漸修 55



(5) 定慧雙修 60



Ⅴ 結 論 63



참고문헌 67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compare Gusan with Chinul. I



investigated their places in the history of korean Zen Buddhist thought. I



traced Chinul and Gusan in their writings and ascertained their enormous



achivements and also pursued the samenesses and differences between



Chinul and Gusan.



The first chapter shows the significance of the purport and method of



this study.



In the second chapter, I deal with the life of Chinul in the background



of the Korean tradition of S o ˘n. He aimed to reform the corrupt Koryo



buddhism. This made his contribution to the Koryo Buddhist society.



In the third chapter, I study the life of Gusan. Gusan devoted himself to



his own self-cultivation and the mission toward foreigners. He spread



Koean Buddism in the world, and made many pupils. So there are many



disciples in the Songgwang-Sa and in the foreign countries. In this chapter



I showed how important his place and activity was in Songgwang Sa.



Forth chapter is the most important, because I refer to the essential



samenesses and differences of Chinul and Gusan in this chapter. Gusan



followed Chinul with a little modification. But his concept of self-awareness



shows some differences. Gusan's kanhwa s o ˘n(看話禪) is somewhat



different from Chinul's sudden enlightenment and gradual cultivation.(頓悟



漸修) In this chapter, I aimed to compare their theories of mind(心性論)



and theories of cultivation,(修行論) analyzing the thoughts of these two



Korean Buddhist monks.



In the last chapter, I explain the places of Gusan and Chinul inside the



Korean Buddhist history. To sum up, through the comparison of Gusan



and Ghinul, I clarified the characteristic places of their Zen Buddhist



thoughts.



국문초록



본 논문은 지눌과 구산의 선사상을 비교하여 한국선에 있어서 양자의 위치



와 두 선사의 사상적인 특색을 밝히고자 한다.



지눌의 사상을 축으로 해서 구산의 사상을 심층적으로 검토해 양자를 비교하



여 일치점과 차이점을 구분하고자 한다.



먼저Ⅰ장에서는 연구의 목적과 방법을 제시한다. 문헌에 대한 설명과 비교



방법 등을 제시 하다.



Ⅱ장에서는 한국불교전통과 지눌의 생애를 다룬다. 그는 고려시대에 철저한



자기 수행과 함께 정혜결사를 실행하여 혼탁한 시대의 불교를 바로잡고자 노



력하다. 그의 생애와 불교사적 업적을 통해 당시 불교계의 상황을 살펴 보



았다.



Ⅲ장에서는 구산의 생애를 검토하다. 구산은 사상못지 않게 포교에 더



많은 중점을 두었던 선사이다. 그는 한국의 불교를 해외에 전파하고 외국인



제자들을 양성하는 등 한국불교의 국제화에 노력한 선사이다.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많은 제자를 두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송광사에서의 그의



위치와 활동을 비롯해 해외에서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Ⅳ장은 이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지눌과 구산의 선사상을 비교한



다. 구산의 사상은 지눌의 사상과 거의 유사하다. 특히 심성론이 더욱 그러하



다. 즉, 구산이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는 것이다. 단 약간의 변형된 형태의 계



승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수행론에서 간화론에 대한 차이점이 드러나기 때



문이다. 따라서 구산의 간화선과 지눌의 돈오점수론을 대비해 다루어 보았다.



구도는 심성론과 수행론으로 나누어 양자 모두 이 구도에 따라 분석해 보았



다.



Ⅴ장 결론에서는 이제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구산과 지눌의 일치점과 차이



점을 도출해 보았다. 한국의 불교전통에 있어 그들은 어떠한 존재는지를 살



펴 보았다. 그리고 비교를 통해 각자가 지니는 선사상의 특징등을 살펴보면서



그 일단을 정리해 보고자 하다.



Ⅰ 序 論



1. 硏究의 目的



현재 우리 사회에는 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古代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교가 발생했다가 소멸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종교는 간단한 原理로 생겨나나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해석과 실



천에 의해 그 내용의 다양성이 나타난다.



2,5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한 불교에는 많은 실천



적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佛性을 찾아 깨달



음에 이르는 自覺的 방법을 대표하는 것이 禪이라 할 수 있다.



禪은 思惟修나 靜慮 그리고 定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마음을 一



境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게 정신을 통일하는 수행법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禪은 불교 이전부터 인도의 수행자들에게 행해졌던 수행법의 하나다. 석가



모니 부처님께서 思惟修에 의해 正覺을 이루어 성불하신 이후 불교에 있어서



는 선을 최고의 수행으로 여겨왔다. 이러한 禪은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하나의 宗派로서 형성되기에 이르고, 禪宗은 ‘不立文字 敎外別傳’을 표방하



면서 불교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불교사에 있어서 본격적인 禪의 전래는 新羅末로 보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간헐적인 전래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전래는 신라 말쯤에 들어오기



시작한 南宗禪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禪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한국불교



- 1



의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따라서 그러한 禪을 연구하는 작업은 우



리 스스로가 한국불교의 정신을 계승하는 작업이며 새로운 실천불교를 이룩하



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禪思想을 주창한 고승은 많았다. 그 가운데 고려시대의



知訥(1158∼1210)은 단연 돋보이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행적과 사상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1) 그만큼 그의 불교사적 위상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12세기의 고려불교가 정치적인 혼란시기에 교단



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정법이 멀어진 상태에서 불교 본연의 자세를 堅持하는



데 헌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눌의 정신은 그가 창건한 송광사를 중심으로 면면히 계승되었고,



16국사가 배출되면서 고려후기부터 수행의 중심처가 되었다. 그리고 排佛政策



으로 불교계의 위상이 저하된 조선시대에도 지눌의 사상은 면면히 계승되었



다. 특히 근·현대 인물로서 이러한 지눌의 사상을 드높이는데 앞장선 분은



九山(1909∼1983)이라 할 수 있다.2) 현재에도 송광사에는 지눌의 사상을 연구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87년 창립된 ‘보조사상연



구원’이다.



구산은 오래 동안 송광사에 머물면서 많은 불사를 행하다. 그런 불사 가



운데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고자 한 활동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지눌이 송광사



에 세운 修禪社를 다시 재건하면서 지눌의 사상을 바탕으로 다시 결사의 정신



을 되새기는 한편 本分事를 요달하여 국사의 慧命을 이어가자는 내용에서 그



가 얼마나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고자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3)



1) 지금까지 지눌에 관한 연구성과는 다음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普照關係資料目 錄 , 보조사상 , 제1집- 제11집, 보조사상연구원, 1987- 1999. 2) Robert E. Buswell JR, The Zen M onastic Experience, Princeton Univ Press 1992, pp. 59∼64. 3) 구산문도회, 구산선문 , 불일출판사, 1995, 47쪽.



- 2



九山은 이런 결사의 의미 이외에도 禪을 지도하면서 修禪者의 이해를 돕는



내용의 상당법어를 펼칠 때 많은 부분에서 지눌의 사상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볼 때 그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구산은 지눌



의 시호를 딴 佛日會를 발족하여 그의 慧命이 이 땅에 계승되기를 기원하는



한편, 佛日國際禪院을 개설하여 그의 제자 Buswell로 하여금 지눌의 법어집을



번역케 하여 서구 세계에 지눌의 사상을 알리는 등 지눌의 사상이 함축된 佛



事를 행함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사상적 계승에 전념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



다.4) 따라서 본 연구는 九山의 선사상에 지눌의 사상이 어떻게 계승되는지 구



체적으로 밝힐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九山의 사상이 지눌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은 쉽게 가정



할 수 있겠지만 반면 지금까지 이루어진 九山의 생애와 그 사상에 대한 연구



는 전무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구산의 생애가 연구 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입적 하신지 오래되지 않은 시간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이 구산의 사상을 구명하는데 어려운 점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눌



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연구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지눌과 구산은 그들의 생존연대에서 보여지듯이 752년이란 시대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활동이 판이하게 달랐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방향은 禪의 부흥을 통한 불교 본연



의 모습을 찾는 데 있었다. 특히 구산의 사상이 대부분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



고 있음을 볼 때,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리성이 현존함을 인식하는 계



기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본 논문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4) 구산문도회,『구산선문 , 608∼609쪽.



- 3



2. 硏究의 方法



한 禪師가 남기고 간 발자취를 더듬고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특히 이 논문을 쓰며 부딪히는 어려움은 知訥은 많은 저술과



역사적 활동을 통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어 그의 사상과 불교사적 위치를 비교



적 수월하게 알 수 있는 반면, 근·현대에 걸쳐 자신의 삶과 사상을 펼쳐온



九山은 그와 같은 위상을 조명하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어려움을 보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知訥과 九山



의 사상을 검토하고자 한다.



먼저 두 선사의 생애를 비교하여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들이 가진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다. 지눌은 고려시대 혼탁한 사회상



황 속에서 定慧雙修의 기치를 내걸며 한국 선을 크게 융성 시킨 한국선종사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가 크게 존경받는 것은 당시의



혼탁하고 부패해진 수도공동체를 변화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지눌의 생존시기



인 12- 13세기는 혼란한 시대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있었는가 하면



상당기간의 무신정권의 통치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는 왕실과 매우



접한 관계에 있었고, 정치적 배후를 등에 업은 불교는 현실과 접한 관련



을 맺게 됨으로 해서 본연의 모습을 떠난 세속과의 결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지눌은 이런 사회상황에 회의를 느끼고 불교를 혁신적으로 개혁하고자 하



다. 이것이 정혜결사 운동이다. 그는 이 운동을 통해 교단을 정화시킴과 동시



에 그의 독특한 사상체계도 발전시켰다. 따라서 그러한 정신이 어떻게 전승되



- 4



어 한국불교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가를 중점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한편 구산은 1937년 불법에 귀의한 이래 교단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다.



특히 스승인 효봉 스님을 도와 1954년부터 시작된 불교계의 정화운동에서 한



국불교의 전통을 살리고자 노력한 점은 시대적 의의를 갖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69년부터는 정법구현과 보살도를 실천하며 조계종풍과 목우가풍



을 다시 일깨워 제2의 정혜결사 운동을 염원하면서 조계총림을 발족시켰다.



그리고 그 후원회로 불일회를 두어 국제선원을 설립하여 수행과 포교에 힘썼



다.



그렇지만 구산은 그러한 佛事의 중흥보다는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여 한국



불교의 禪風을 진작시키는 한편 수행자로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주된 관심



이었다. 따라서 구산은 인간본성을 추구하는 眞性의 탐구가 그의 화두다. 구



산은 그런 진성의 탐구를 위해 여러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의 자료가 빈약한 구산에 대해서는 다



음과 같은 방법으로 그의 사상을 살펴보고자 하다. 구산에 관한 자료로는



먼저 구산선풍 과 구산선문 이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구산의 제자들이 구



산의 법어를 모아 사후에 편찬한 책이다. 구산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두 책의 분석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체계적인 선사상을 전개하



기보다는 게송과 그의 들이 체계가 없이 나열되어 있다. 따라서 나는 지눌



의 사상과의 비교를 통하여 구산의 사상체계를 드러내고자 한다.



즉 두 권의 법어집에 수록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지눌이 제시하고 있는 심



성론과 수행론의 체계에 구산의 심성론과 수행론의 체계를 대비시켜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는 면과 차이점을 찾아봄으로써 시대적 차이를 두고 보여주고



있는 두 선사의 사상을 비교하고자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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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知訥의 生涯와 韓國佛敎傳統



1. 知訥의 생애와 禪風의 振作



한국불교사에 있어서 지눌은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역사적으로는 禪·敎



를 통합하여 교단의 융화를 모색하으며, 사상적으로는 頓悟漸修와 定慧雙修



를 제청하여 문란한 僧風을 회복하다는 점에서 그가 철저한 수행을 중심으



로 한 실천가음을 보여준다.5)



知訥은 고려 의종 12(1158)년 황해도 서흥군에서 부친 鄭光遇와 어머니 趙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諱는 知訥이며 스스로를 牧牛子라 불다. 우리가 普照



國師라 함은 희종이 내린 시호가 佛日普照國師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부모는 부처님 전에 기원하기를 병이 나으면 출



가시킬 것을 결심하고 기원대로 병이 낫자 宗暉禪師에게 귀의하여 득도케 하



다.



출가 후 지눌은 다음과 같이 몇 차례의 계기로 인해 禪에 귀착하는 계기를



맞게 됨을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일정한 스승 없이 수행하다가 1182년 승



과에 합격하으나 이에 집착하지 않고 普濟寺 담선 법회에서 뜻을 같이한 10



여 명과 結社를 약속하으나 실행하지 못하고 전남 나주에 있던 淸源寺에서



육조단경을 보다가 중생의 眞性은 萬象에 물들지 않고 항상 자재함을 깨닫게



5) 朴相國,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저술 , 普照思想 제3집, 보조사상연구원, 198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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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면서 큰 전기를 맞이하다.



다음은 지눌의 나이 28세가 되던 해 1185년 普門寺에서 3년 동안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李通玄의 화엄론을 읽고 부처님의 말이 禪과 계합함을 깨닫고



禪敎不二 禪敎會通을 주도하게 되었다.6) 이후 지눌은 본격적인 禪의 수행을



주도하는데 그것이 바로 修禪結社이다. 결사운동은 자신이 25세 때 마음에 두



었던 것으로 여기서 그는 부처님의 말은 道에 들어가는 문턱인 戒와, 그 핵



심으로서의 定과 慧를 균등하게 닦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눌은 자신의 나이 41세(1198)가 되던 해 지리산 上無住庵에



은거하면서 투철한 정진으로써 깨닫게 된다. 여기서 그는 禪定의 근원을 깨닫



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얻은 그의 감회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보문사에서부터 이미 10년이 되었다. 비록 뜻을 얻어 부지런히 닦아 시간



을 헛되이 보낸 일은 없었으나 아직 情見만은 버리지 못하여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리어 마치 원수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리산에 있을



때 『大慧普覺禪師語錄』을 보니 여기에 “禪定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반연 하여 응하는 곳도 있지 않



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먼저 고요한 곳을 버리고



참구 하지도 말아야 한다. 만일 갑자기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



일임을 알 것이다.” 라는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치어 저절로 걸려 있는 가



슴이 걸리지 않고 원수도 한 자리에 있지 않아 당장 편하고 즐거워졌다.7)



이러한 깨침은 지눌에 있어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것은 지눌의 나이



6) 강건기, 지눌의 돈오점수 사상 , 인문논총 제 14집, 1985, 49쪽. 7) 金君綏 撰, 普照國師碑銘 , 普照全書 , 보조사상연구원, 1989, 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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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1200)가 되면서 자리를 松廣寺로 옮겨 1210년 입적할 때까지 禪을 닦으



며 대중을 교화하여 한결같이 깨우침에 의한 자비와 실천을 위해 매진하기



때문이다. 그런 지눌의 생애는 禪學을 융성하게 한 것이 가까이나 멀리에서



비교할만한 상대가 없다는 평가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 후 지눌은 定과 慧를 고루 닦아 禪과 敎를 함께 하는 수행으로 문란해



진 교단의 수행풍토를 개혁하고 禪敎의 대립을 지양하는 會通을 위해 매진하



다가 1210년 그의 나이 53세가 되던 해 대중에게 노력할 것을 당부하고 입적



하다.8)



2. 知訥의 불교사적 업적



지눌은 고려시대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음은 물론 그의 사상



은 현대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처럼 그의 사상이 계승됨은 불교



사적 업적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지눌이 남긴 불교사적 업적을 살펴보면 우선적으로 고려불교의 비판을 통



한 목표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다음으로는 그의 사상이 후대에 계



승되면서 한국불교사상에 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눌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비판의 주된 내용은 수행자의 자세에 관한 면모



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지적에 의하면 당시 수행자들의 경향은 현



실적 이양에 떨어져 공부를 게을리 하며,9) 문자에 집착한 교학자의 병과 깨침



8) 강건기, 앞의 , 51쪽. 9) 지눌, 勸修定慧結社文 , 普照全書 , 보조사상연구원, 198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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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닦음의 본말을 모르고 무조건 앉아 있는 것을 禪으로 착각하는 선학자의



痴禪, 그리고 눈뜬 종사들의 말을 겉으로 흉만 내며 닦음을 포기한 채 날뛰는



무리들이 마치 모든 수행을 다 마친 양 착각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10)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눌이 결사를 생각한 것이 선풍의 회복



과 선교의 회통이었다. 지눌이 본격적으로 결사운동을 전개한 것은 1190년(명



종 20)에 팔공산 居祖寺에 있을 때 禪客들의 청을 받고 머물게 되면서 법회를



열고 定慧社를 결성하고 결사문을 지으면서 비롯되었다. 그 후 1200년 定慧社



를 吉祥寺로 옮기고 그 이름을 修禪社로 개명하고 11년 동안 대중을 교화하



여 많은 사람이 동참함으로써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으며,11) 이러한 결사운동을 통해 당시의 문란한 僧風을 회복하고



일상생활에서 禪修行이 생활화 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



다.12)



선의 중흥뿐만 아니라 지눌은 당시 불교계가 지니고 있는 禪과 敎의 문제



점을 여실히 지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병폐는 지눌이 살았던 고려불교의



과제으며 지눌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진력하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부처의 입으로 말한 것은 敎이고 祖師의 마음에 전한



것이 禪이므로 부처와 조사의 마음과 입이 결국엔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禪·敎 學者들은 그 근원을 알려하지 않고 각기 자신이 익힌 곳에



안주하여 논쟁만을 일삼아 시간만 헛되이 보낸다는 것이다.13)



이와 같은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敎로서 그 방향을 분명히 한 다



음에 닦아야 올바른 수행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여 禪敎會通이야말로 수행자



10) 지눌,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 普照全書 , 보조사상연구원, 1989, 103∼117쪽. 11) 金君綏, 앞의 . 12) 權奇悰, 고려 후기 불교와 보조사상 , 보조사상 제3집, 보조사상연구원, 1989, 25쪽. 13) 知訥, 華嚴論節要 , 普照全書 , 보조사상연구원, 1989,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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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지녀야 할 본분임을 알려주고 있다.14)



다음으로는 지눌의 사상이 후대에 계승되어 그것이 한국불교의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눌의 모든 교학



과 선이 일치한다는 견해는 선을 중심으로 한 교학의 융합이라는 전통을 남겼



으며, 선풍 진작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독창적이고 체계를 갖추어 한국



불교의 전통으로 자리하고 이것이 후대에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15)



지눌의 결사운동을 효시로, 이후 한국불교에서는 많은 결사가 이어져왔다.



이러한 결사는 불교 자체내의 모순과 부패를 없애고 정법불교로 새로워지려는



움직임이다. 그 가운데 정혜결사와 같은 시기에 나타나 이후까지 전개된 백련



결사는 지눌의 향을 받아 了世에 의하여 결성되었는데 당시 불교계의 타락



상과 모순에 대한 비판운동을 띄었다.16)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지눌의 회통적이고 실천적인 전통은 서산에 의해



계승됨을 볼 수 있다. 그는 당시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응하여 禪敎·悟修 등



의 융회(融會)는 물론 타교와의 융회(融會)까지도 꾀하여 불교의 위상을 새롭



게 정리하다고 할 수 있다.17)



근대에 이르러 지눌의 결사운동은 鏡虛에 의해 계승되고 있음을 볼 수 있



다. 경허에 의하면 당시 정법이 사라진 시대, 혼돈의 시대, 더 나아가 개혁을



시도할 시기로 보고 있으면서 그 방법은 정혜를 닦는 것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지눌의 정혜결사에서 찾고 있음을 볼 수 있다.18)



지눌의 사상은 결사운동으로만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측면에서도



14) 知訥,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 普照全書 , 보조사상연구원, 1989, 103쪽. 15) Hee Sung Keel, Chinul, The Founder of the Korean S n Tradition, berkly buddhist studies series, 1984, pp. 163∼177. 16) 채상식, 고려후기 불교사상연구 , 일조각, 1991, 70∼71쪽. 17) 서산, 禪家龜鑑 , 동국역경원, 1976. 18) 김경집, 鏡虛의 定慧結社와 그 思想的 意義 , 韓國佛敎學 , 제21집, 한국불교학 회, 1996, 376∼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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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업적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현재 불교계에서 실행하고 있는



강원교육의 특성과 교과목에서 지눌의 저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



기 때문이다.



먼저 현재의 강원교육은 禪敎를 겸수하는 교육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조선시대부터 계승되어온 교육 방법임은 물론 지눌 이후로 보여지는 전



통적인 禪敎觀과 일치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미과,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로 나누어져 있는 강원의 교육 과정에서 지눌이 저술한『계초심학인



문』과『법집별행록병입사기』가 사미과와 사집과에 포함되어 있으며, 지눌의



사상을 이어받은 제자 혜심이 찬집한『선문염송집』이 대교과에 포함된 것이



그러한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19)



더 나아가 지눌이 평소 즐겨 인용하던 경전들이 강원교육의 교과목에 편성



되어 있음은 그의 정혜쌍수와 선교회통의 사상이 그대로 한국불교의 강학이념



과 수행법풍으로 계승되어온 그의 역사적 위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20)



19) Hee Sung Keel, ibid. pp. 175∼176. 20) 종범, 강원교육에 끼친 보조사상 , 보조사상 제3집, 보조사상연구원, 1989, 7 5∼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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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九山의 生涯와 宗風振作



1. 九山의 출생과 求道



구산 스님은 1909년 1월 27일(음 1909. 12. 17) 전라북도 남원군 남원읍 내



척리 509번지에서 아버지 蘇在衡과 어머니 崔姓女 사이에서 4남 2녀 중 3남으



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농사일에 종사하여 그리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다. 그런 생활



에서도 구산은 1922년(14세) 일제 식민지하에서 용성 소학교를 졸업하다. 그



후 漢學을 공부하던 중 1923년(15세) 부친의 갑작스런 별세로 청년기에 가사



를 돌보며 이발관을 운하다. 훗날 부처님 10대 제자 중 이발사 출신인 우



바리 존자를 상기시켜 ‘우바리존자’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다.



불교와의 인연은 구산의 나이 26세가 되던 해에 이루어졌다. 1934년 그 해



우연히 병을 얻어 신음하던 중 진주에 사는 河處士라는 불심이 강한 居士를



만나 무상 법문을 듣고 인생 무상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에의 출가는 다음해인 1935년에 이루어졌다. 거사로부터 ‘몸은 마음의



그림자며, 사람마다 누구나 원만히 갖추어 있는 自性자리는 본래 淸淨하거늘



어디에 병이 있겠느냐.’ 라는 법문을 듣고 발심하여 집안일을 정리하고 불법에



귀의하고자 먼저 지리산 원사에서 백일간 관음기도를 시작하여 이를 성취하



자 차츰 육신의 병이 쾌차하게 되고 불법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때가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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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28세다.



그 후 스승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의 사찰을 돌아다니다가 송광사에 금강산



도인 曉峰禪師가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자신을 문하에 받아 줄 것을



간청하여 1937년(29세) 음력4월8일 효봉선사를 은사로 송광사 삼일암에서 사



미계를 받았다.



이와 같이 불교에 인연을 맺은 구산은 남보다도 굳은 의지로 수행에 전념



해 갔다. 구산의 나이 31세가 되던 해인 1939년 음력 4월 15일 통도사에서 해



담 화상을 戒師로 比丘戒를 받고 여름 안거를 백련암 선원에서 보냈다. 그 후



에도 구산은 1941년(33세) 가야산 백련암에서 정진하면서 化主소임을 맡아 백



련암 중건불사를 이룩하고, 이듬해 34세에 선원에서 안거를 마친 후 상노사인



석두스님과 은사인 효봉스님께서 수행했던 금강산의 산사들을 참배하다.



1943년(35세). 경북 금릉군 불산 청암사 수도암에서 정각토굴을 짓고 착실히



정진하기도 하다.21)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후의 행적은 한국 불교의 정통을 바로 세우고



일제하에서 크게 변질된 종단을 정화하여 올바른 수행인을 양성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그는 1946년 가야산 해인사에 한국불교



최초로 가야총림(伽倻叢林)이 설립되자 초대 방장으로 추대된 은사 효봉스님



의 부름을 받고 가야총림 선원의 도감과 원주소임을 번갈아 보면서 지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수행이 부족함을 깨닫고 정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1947년(39세) 은사의 허락을 받고 가야산 정상봉 밑에 법왕대 토굴을 짓고 용



맹정진 하다. 그렇지만 한 철이 지나도록 별로 소득이 없어 하산을 결심하



고 짐을 챙기니 그날 밤 꿈에 산신이 나타나“이 곳은 스님과 인연 터이니 떠



나지 말고 한 바탕 더욱 용맹 정진하라”고 당부하며 “현세의 복으로는 공부



21) 구산문도회, 구산선풍 , 29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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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가 어려우니 내생 복을 당겨 받으시오” 라고 지침을 내려주었다고 한



다.22)



이와 같은 기이한 꿈을 꾸고 난 후 필사적인 정진을 계속하여 마침내 心眼



이 열리고 큰스님의 인가와 함께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며 다음과 같은 게송



을 남겼다.



달이 일천 강에 비치고 파도는 달을 비추니



하늘은 만물을 안고 나는 하늘을 안았도다.



일체의 명상이 그대로 진리이거늘



어찌 장엄 법계가 진리를 말하리요.23)



6·25 사변으로 내외의 사정이 어렵게 되자 해인사 가야총림도 해산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구산은 진주 의석사로 거처를 옮겨 동안거를 보냈으며,



세수 44세에 이르러서는 통 미륵산 용화사 도솔암 선원에서 모시던 효봉스



님을 미륵산 정상봉에 토굴을 지어 주거케 하고, 1953(45세)에는 경남 통군



산양면 운리 뒷산 미륵산의 편백나무 숲 속에 스승님을 모시기 위해 미래사



를 창건 한 후 초대주지가 되기도 하다. 1954년(46세), 음력 3월 미래사 법



당을 낙성한 후 미래사의 좌우 산자락에 토굴을 짓고 상노사(석두)와 효봉노



사를 모시는 등 수행에 힘썼다.



한가로이 수행에 전념하고자 했던 구산에게 당시의 교단은 그를 놓아주지



22) 같은 책, 301∼302쪽. 23) 구산선풍 , 302쪽. 月印千江波印月 天藏萬物我藏天 一切名相元理足 莊嚴法界豈 言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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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다. 내외의 사정은 물론 교단에서도 혼란의 기미가 보고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기에 이르다. 이른바 정화불사에 참여하신 것이다.



한국불교에 있어 정화운동은 일제의 강점기와 해방후 미군정 속에서 변질



된 불교계의 모습과 함께 여러 가지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나타난 종단적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그 대략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분규의 시작은 독신 승려의 움직임이 표면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다.



특히 1952년 11월 경주 불국사에서의 승려대회는 수행풍토를 저해하는 대처승



들의 사찰내의 생활을 지적하고, 다음해 4월에는 조계종의 부활 등이 논의



되기도 하다. 이런 작은 움직임 등이 1954년 5월 21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대처승은 물러가라’는 유시에 힘입어 점차 대립적 양상으로 변해가



게 되었다.



이승만의 유시는 그후에도 여러 차례 발표되지만 주된 내용은 일제불교의



잔재를 일소한다는 취지에서 사찰에서의 음주, 가무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었



다. 이러한 유시를 계기로 비구승들은 선학원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정통이라



는 주장을 피력하고, 대처승들은 태고사에서 법통을 고집하게 되었다.



그후 정부의 중재로 여러 차례 합의와 결렬이 반복되면서도 비구 측과 대



처 측은 최종적인 합의까지 협의되었지만 타결되지는 못하다. 그 결과 쌓인



감정의 대립과 함께 재산권의 분배에 따른 이견으로 말미암아 분규는 계속되



었고 이것은 결국 법정싸움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환하기에 이르다.24)



지금까지 세연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구산도 이런 종단적 사태에는 방관만



24) 이러한 분쟁은 5·16 이후에는 새로운 양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것은 불교계의 법적 단체로의 등록이었다. 당시 불교계의 중재를 맡았던 문교부에서는 1961년 12 월 ‘불교재건위원회 조례’를 제시하여 양측의 화합을 도모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후 양측은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으로 등록하지만 비구 측에 유리한 면이 강조된 탓에 대처 측은 이를 수락하지 않고 다시 분종을 선언하여 1970년 1월에 ‘한국불교태고종’을 창설하여 문교부에 등록하게 되어 불교분쟁은 막 을 내릴 수 있었다. 정병조, 불교의 대중화운동과 전망 , 대한불교총람 , 대한불교진흥원, 1993,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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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었다. 그래서 1954년 음력 8월 17일 여름 안거를 마친 후 효봉스님을



모시고 상경하여 종단정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선학원에 머물면서 전국 비구니 대회를 개최하여 정화불사를 위한“종단정화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다.



그 후 1955년 음력 6월 15일 500자 혈서로서 정화불사의 당위성을 알리는



탄원서를 당시 이대통령에게 보내어 정화의 결의를 굳게 다졌으며, 같은 해에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 ‘전남종무원장’에 취임하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다.



그 후에도 그는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감찰원장’에 취임하고, 1960년부터 1967



년까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임되어 종단일에 관여하다.



1957년 그의 나이 49세에 이르러서 종단정화불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자 수행정진만이 見性成佛하고 교화중생의 길임을 절감하여 전남 광양 옥용



면 소재 백운산 상백운암의 옛터에 삼 칸 토굴을 중건하고 정진에 들어갔다.



불퇴전의 용맹심으로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시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으시



니 이때 선사의 나이 53세다.



깊이 보현의 터럭 속에 들어가



문수를 붙잡으니 대지가 한가롭구나



동짓날에 소나무가 저절로 푸르니



돌사람이 학을 타고 청산을 지나간다.25)



구산의 정진은 나이에 관계없이 지속되었다. 그의 나이 70이 되었을 때도



동분서주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기 위하여 헌신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25) 같은 책, 305쪽. 沈入普賢毛孔裡 捉敗文殊大地閑 冬至陽生松自綠 石人駕鶴過靑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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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년에 가장 애를 쓴 것은 스승의 유훈을 받들어 표충사에서 송광사로



옮겨온 후 16년에 걸쳐 중창불사를 이룩하여 오늘과 같이 한국에서 최초로 국



제선원을 개설하는 등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기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은 의지의 스님도 世緣이 다함을 막지 못하셨다. 1983년 3월 26일 전국



불일회 총회에서 제8차 중창불사를 결의하여 공사가 시작되자 기뻐하면서 설



계와 공사현장을 두루 살펴보는 등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오



후 제자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첫째, 내 몸에 주사를 놓지 말아라.



둘째, 坐禪의 자세로 장례를 치르라.



셋째, 和合하여 살아라.



넷째, 禪風에 累가 되지 않게 하라.



또한 “자기를 속이는 중노릇하지 말고 거듭 발심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라”



고 유촉하며 다음과 같은 열반게를 남기셨다. 이때가 1983년 12월16일로 그의



나이 75세이며 법납 46년이었다.



온산의 단풍이 봄꽃보다 붉으니



삼라만상이 그 바탕을 온통 드러내었도다.



생도 공하고 사도 또한 공 하니



부처의 삼매 중에 미소지으며 가노라.26)



26) 같은 책, 313쪽. 滿山想葉紅於二月花 物物頭頭大機彰 生也空兮死也空 能仁三昧微 笑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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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화와 禪의 중흥



구산이 근·현대의 격변기에서 한국불교를 위해 크나큰 족적을 남겼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은 그의 업적을 요약해 본다면 한국불교의 正體



性 확립과 국제화로 요약할 수 있다.



구산이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애쓴 것은 교단의 정화와 많은



불사를 추진하여 쇠락한 교단을 부흥시킨 점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



화의 기운이 일어나자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선학원에 머물면서 종단정화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혈서로써 정화불사의 당위성을 알리는데 노력하다.



이런 노력 가운데 그는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 전남종무원장’ ‘대한불교 조계



종 중앙감찰원장’ 등의 교단의 주요한 자리에 취임하여 불안한 교단의 안정에



주력하다. 그리고 정화이후인 1960년부터 1967년까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으로 선임되어 종단 일에 관여하는 등 교단을 위해 헌신하다.



정화불사가 일단락 되자 그의 관심은 허물어져 가는 가람을 중창하는데 뜻



이 모아졌다. 1962년 그의 나이 54세인 4월 11일 오랜 분규가 종식되고 통합



종단으로 탄생한 대한불교 조계종의 초대 종정에 효봉스님이 추대되자 종정의



거주 사찰로 지정된 대구 팔공산 동화사 주지로 취임하여 봉서루 등 중창불사



를 시작하고, 금당선원 산내암자 등을 수행 도량으로 불사하다.



1966년 구산의 나이 58세가 되던 해 노환중인 효봉 대종사가 앉은 자세로



입적하면서 승보사찰인 조계산 송광사를 재건하라는 유훈을 남기자 구산은 이



를 자신의 평생 사업으로 받들었다.



1969년 그의 나이 61세 때는 은사인 효봉스님의 유훈인 송광사의 복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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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여 한국불교에 있어 해인총림에 이은 조계총림을 발기하고 하안거 결제



일에 개원식을 거행하다. 이때 조계총림 설립위원장에는 청담스님을 추대하



고, 자신은 초대 방장에 추대되었다.



총림을 개원 한 후에도 총림의 수행적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단체인



불일회(佛日會)를 전국적으로 결성하여 대구 불일회가 조직된 것을 시작으로



부산, 광주, 대전, 서울 등 대도시마다 불일회의 지회가 결성되었다. 이들에게



생활불교의 지표인 7바라 사상을 실천하도록 선양하다.27)



그 후에도 구산은 전국의 여러 곳의 도량을 중창하다. 대략적으로 살펴



보더라도 1971년 6·25사변으로 폐사가 된 山內庵子 감로암의 중건을 필두로



1974년 ‘法蓮寺’의 개원, 1975년 산내암자인 ‘불일암’의 중건, 조계산 상봉아래



‘ 인월정사’의 창건, 그리고 1976년에는 호남불교의 중흥을 위하여 광주시에 광



주 분원인 ‘원각사’를 개원하여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이러한 구산의 업적이 두각을 보인 것은 바로 한국불교를 세계로 알린 것



이라 할 수 있다. 1966년 구산의 나이 58세가 되던 해 세일론에서 개최된 ‘세



계불교승가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것을 필두로, 1972년(64세) 12월에는



한국불교 최초로 미국 가주 카멜시 근교에 한국 사찰인 ‘三寶寺’가 설립되어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첫 번째 미국 순방 길에 올랐다. 이어 1973년(65세)



에는 미국의 LA, 뉴욕, 시카고, 등 동 서부와 동부지역을 순방하고 3월 13일



귀국 길에 미국 LA의 최초 사원인 ‘達摩寺’ 개원 법회에 참석하여 설법하는



등 한국불교를 미국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구산의 한국불교의 해외 소개는 자신의 방문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1973년



여름 안거부터 조계총림에 한국 최초의 국제선원인 ‘佛日國際禪院’을 개설하여



27) 요일별로 지켜야 할 규율이다. 월요일부터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만 행을 지킬 것을 구산은 강조했다. 생활불교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구산, 석사자 , 불일출판사, 1980, 206∼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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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에 관심 있는 해외의 스님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는 등 한국불교의



국제화에 앞장섰다. 그런 구산은 또한 외국인 제자들을 위해 문판 법어집인



Nine mountains 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런 향은 뒤에 외국인으로 송광사에



서 출가 수행한 Buswell(慧明)이 지눌의 법어집을 문으로 번역하여 서구세



계에 지눌의 사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다.28)



1980년 그의 나이 72세가 되던 해 10월 14일 두 번째 미주 순방 길에 올라



많은 외국인들에게 수기 설법으로 선풍을 진작 시켰고, 12월 21일에는 송광사



‘ 불일국제선원’의 LA분원 ‘高麗寺’를 개원하다.



1982년 세 번째 미국 순방 길에 올라 미국 각지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 사원들을 순방하여 법회를 개최하고, 서구인들을 위한 수련 도량의 개설



을 위해 유럽을 순방하기도 하다. 그 해 6월 17일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구산은 ‘불일국제선원’을 개설하려 하으나 여의치 않아 스위스 제네바로 옮



겨 ‘佛乘寺’를 개원하고 7일간 개원기념 법회를 개최하다. 이어 프랑스, 스위



스, 이태리, 독일 덴마크 등 유럽 각국을 순방하면서 법회를 주관하다.



그 해 여름 미국을 다시 방문한 구산은 캘리포니아 카멜시에 ‘大覺寺’를 개



원하고 많은 미국인에게 수계법회와 참선법회 등을 개최하여 한국 선 불교를



고취시키고 10월 12일 귀국하기도 하다.



이러한 활동에 만족하지 않은 구산은 문판 법어집인 The Way of



Korean Zen을 발간하여 송광사 국제선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많은 외국인들



에게 한국의 선을 이해시키는 데 노력하다.



28) Robert E. Buswell JR, The Collected Works of Chinul, Univ of Hawaii Press,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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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知訥과 九山의 禪思想 比較



1. 知訥의 禪思想



1) 禪思想의 형성



지눌(1158- 1210)은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선사기에 그의 구도 역정을



통해 많은 정신적 방황을 해야만 했다. 지눌의 선사상은 결코 그 자신의 證驗



없이 전개된 단순한 이론적 사변이 아니었다. 그가 선에 관한 이론적 저술을



통해서 후학들의 선 수행에 지침을 마련해 주고자 한 것도 자신의 정신적 방



황의 경험을 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가 제시한 선 수행의 길은 모



두 자기 자신의 체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지눌에게 있어 이론과 실천, 사상과



체험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선사상은 단적으로 표현하면 그로 하여금 선적 진리로 이끌어 준 如



實言敎에 근거하여 동시에 그 자신이 터득한 진리의 표출로 볼 수 있다.29) 그



것은 사상은 반드시 체계가 있으며 체계가 있으면 구조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



29) 길희성, 지눌의 선사상 구조 , 지눌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 정신문화연구원, 1996,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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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지눌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선사상을 구축하려고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선적 진리와 그 진리를 중득 하게 하는 수행의 길을 향해 있었다. 지



눌은 자신의 구도역정을 선에 관한 확고한 이해를 얻게 될 때까지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전적들과 씨름해야 했으며 여러 사상가들의 향을 받게 되었



다. 그의 선사상은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점차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지눌의 선은 지적일 뿐만 아니라 포용적이고 포괄적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정혜결사 운동을 통해서 당시의 타락한 불교계를 정화하여 불교 본연의 길로



돌아가게 하고자 하는 웅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생각의 폭은 단지



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정혜결사 운동은 초종파적인 것이었고 불교 밖의 인



사들로부터도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따라서 지눌의 선은 매우 포괄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다양한 근기를 지닌 사람들에게 알맞은 수행법들을 제시함으로



서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선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측면들을 지니고 있는 지눌의 선사상 속에서 하나의 일관된



체계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지눌의 선사상 체계란 결과적으로 생겨



난 것이지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지눌은 그의 저술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선



사상 전체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으며, 그의 사상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측면들의 상관 관계를 밝히는 종합적인 성찰도 보이고 있지 않다. 그



는 의도적으로 선 사상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



라서 지눌의 선사상의 체계를 논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저술에 암묵적



으로 내재하고 있는 체계를 말하는 것이지 지눌 자신이 명시적으로 밝히거나



인정하는 체계는 아니다. 지눌의 선의 체계란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혹은 구



성하는 체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러한 작업은 불가피하게 지눌 선의 전



체적 성격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하나의 해석학적 작업일 수밖에 없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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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지눌의 선사상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의 생애를 기록한 다음과 같은



을 주목하게 된다.



사람들에 권하여 암송하는 것은『金剛經』으로 했고 법을 세우고 뜻을 설



명한즉 반드시『六祖壇經』에 뜻을 두었으며 거듭 이통현의『華嚴經』과



『大慧語錄』으로 양 날개를 삼았다. 문을 열매 三種이 있었으니 곧 惺寂



等持門, 圓頓信解門, 徑截門이다. 이에 의거하여 수행하여 믿어 들어가는



자가 많았으니 선학의 융성함이 옛날이나 근래에나 이에 비함이 없었다.31)



이것은 지눌 선 수행론의 전모를 三門으로 요약하고 있는 내용이다. 지금



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그의 수행론이 이 세 가지로 요약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 자체로서는 수행체계라고 말할 수 없고 지눌의 선사상에 있어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는 心性論이 누락되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지눌은



선 수행의 길만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수행을 통하여 도달하는 眞心의 세



계, 곧 깨달음을 통해 드러나는 眞如 혹은 實在의 세계에 대해서도 수행자들



을 위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눌의 선사상은 구조



적으로 심성론과 수행론이라는 두 부분을 갖게 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32)



이러한 견해를 뒤받침하고 있는 것이 지눌의 저술 가운데 그의 말년에 저



술된 것이라고 하는『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에 잘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



다.



지눌의 선사상에서 법의 두 측면인 불변과 수연은 지눌의 心性論이라 할



30) 길희성, 앞의 , 69∼70 쪽. 31) 金君綏, 앞의 . 32) 길희성, 앞의 ,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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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으며, 돈오점수로서 모든 성현들이 따랐던 길은 곧 修行論으로 볼 수 있



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눌은 선행에서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것이 徑截門(지름길)으로서 화두를 看하는 看話禪이다. 돈오점수가 선의 시작



과 과정이라 한다면 간화선은 지눌에 있어서 선의 완성을 기하는 길이며 불법



에 대한 문자 적이고 개념적 이해의 자취를 말끔히 씻어버린 證俉를 성취하는



선 특유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33)



2) 心性論



지눌은 그의 저서인『眞心直說』에서 眞心을 體와 用으로서 고찰하고 있



다. 지눌은 원래 그의 생애에 있어서 大慧禪師의 간화선을 접한 후 선의 원리



가 어떠한 知的인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을 깊이 느끼면서 그것을 자신의 저서



에서 역설하고 있다.



지눌은 진심의 진리는 조사들에 의하여 마음에서부터 전하여 오다가 하택



신회가 드디어 知라는 한 자는 모든 妙함의 門이라는 말로서 말없는 以心傳



心의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마음의 본성을 말로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종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법이 꿈과 같다고 여러 성인들은 다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망령된 생



각도 원래 고요한 것이요, 티끌의 경계도 본래 空한 것이라, 공하고 고요한



마음은 신령스러이 알아 어둡지 않나니 이 공하고 고요한 마음은 곧 과거



에 보리달마가 전한 깨끗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미혹하여도 미혹한 그대로



33) 길희성, 앞의 ,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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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깨달아도 깨달은 그대로로서, 마음은 본래 스스로 아는 것이라. 인연을



따라 생기지도 않고 경계로 인해 일어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혹



한 때에는 번뇌이지만 그것이 번뇌가 아님을 알고, 깨달을 때에는 신변이



지만 그것이 신변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아는 것(知)이라는 한 자는 온



갖 묘한 이치의 근원이다.34)



이러한 견해는 모든 법이 다 空한 곳에 신령스런 앎이 어둡지 않아 무정한



것과는 같지 않게 성품이 스스로 신령스러이 아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중생들



이 지니고 있는 청정한 마음의 본체이며, 이것이 삼세의 모든 부처의 깨끗하



고 맑은 마음으로 중생들이 깨달아야 하는 성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35) 그



것은 마음의 세계는 단지 모든 현상적 다양성이 다 사라져 없어진 조용한 공



의 세계가 아니라, 이 空한 경지를 동시에 어떤 스스로 밝게 아는 것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앎이야말로 眞心의 세계를 아무 감각과 사고도 없



는 無情의 세계와 구별시켜 주는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지눌은 이 앎을 중생에게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佛性 혹은 覺性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눌은 心體의 양면 즉 空寂과 靈知를 또 하나의 체와 용의



관계로 해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法과 이치를 세운다면 이치에 들어가는 천 가지의 문이 定과 慧 아님



이 없다. 그 강령을 들면, 그 둘은 體와 用이라는 자성의 양면이니 앞에서



말한 바 空하고 고요하여 신령스런 앎이 바로 그것이다. 定은 體요 慧는



用이나, 體는 곧 用이므로 慧는 定을 떠나지 않고, 用은 곧 體이기 때문에



34) 지눌,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 普照全書 , 보조사상연구원, 1989, 104쪽. 謂諸 法如夢 諸聖同說‥‥然知之一字 是衆妙之源. 35) 지눌, 修心訣 , 普照全書 , 보조사상연구원, 1989, 36∼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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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은 慧를 떠나지 않는다. 定이 慧이기에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 慧가 定이



기에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 마치 조계가 혼란 없는 心地가 자성의 定이요



어리석음 없는 심지가 자성의 慧라 하는 것과 같다.36)



지눌은 이러한 진심의 내용을 설득하기 위하여 능엄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知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데37) 이와 같이 知와 寂의 관계를 定과 慧



와 같이 진심의 體상에 있는 體用의 관계로 보는 것은 바로 신회의 선사상이



나 단경에서 유래함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외부 세계와의 감각을 통한 접촉을 끊고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면 고요한 상태가 나타나며, 이 상태는 결코 단순한 空의 세계가 아니라 어



떤 밝고 어둡지 않은 것, 즉 어떤 앎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서 지눌은 우리의 진심의 체는 고요하나 앎이 있어 한편으로는 앎이 있으나



고요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요하나 앎이



없는 무정의 세계와도 다름을 피력하고 있다.38) 지눌은 이와 같은 진심을 體



와 用의 양면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밝힌 바 空寂靈知는 비록 분별을 하는 식도 아니고 깨달음을 체험하



는 지혜도 아니지만 識과 智慧를 산출해 낼 수 있다. 범부도 되며 성인도



되며 선도 짓고 악도 짓는다. 마음에 들거나 거슬리거나 하는 용의 힘이



만 가지로 변한다. 그 이유는 그 체가 知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인연을



만났을 때 모든 옳고 그름 좋고 싫음 등을 구별한다.39)



36) 지눌, 修心訣 , 普照全書 , 39쪽. 若設法義 入理千門 ‥‥ 心地無痴自定慧. 37) 지눌, 修心訣 , 普照全書 , 36쪽. 38) 지눌, 眞心直說 , 普照全書 , 65쪽. 39) 지눌,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 普照全書 , 143쪽. 今之所明空寂靈知 ‥‥ 能分 別一切是非好惡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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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우리는 고요하고 불변한 진심의 체가 동시에 우리의 일상생활에



서 경험하는 모든 특수성과 차별성을 되살려 내는 모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진심의 體가 知이기 때문이다. 즉 진심이 그 체에 있어서 밝고



투명한 면이 있기 때문에 때에 따라 항상 외적인 대상의 세계가 지닌 다양성



에 대하여 그대로 알 수 있으며, 이 다양성의 세계가 진심의 체를 떠나서 따



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진심의 체가 앎을 갖고 있기 때문



에 동적인 用의 세계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하나의 마음에 고



요하고 변치 않는 眞如의 면과 수시로 변하는 生滅의 면이 동시에 있으며, 이



두 면을 연결시켜 주는 원리가 다름 아닌 심진여 자체상의 앎을 말하는 것으



로 볼 수 있다.



지눌은 이 寂과 知라는 두 측면이 모두 진심의 體의 세계이지만 양자를 다



시 體와 用의 관계로 해석한다. 지눌에 의하면 진심의 空寂한 측면은 우리의



自性에 내재하는 定이며 靈知는 자성의 慧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과 혜 사이



의 관계는 불가분적 체용의 관계이다.40)



지눌이 말하는 空寂靈知心에서 空寂의 개념은 물론 空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用적 측면인 知는 보다 세심한 주의와 고찰을



요한다. 지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바는, 모든 중생은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선하



거나 악하거나 혹은 금수의 차별 없이 가진 바 心性이 모두 자연히 언제나



환히 알아 木石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 그것은 대상에 따라 분별하는 의



식이 아니며 깨달음의 지혜도 아니다. 다만 진심의 自性이 무감각한 허공



40) 金呑虛, 縣吐譯解 普照全書 , 회상사, 1963,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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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달라 본성이 스스로 항시 앎이 있다는 것이다.41)



여기서 지눌은 이 진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앎(知)은 우리가 대상을 분별



하는 일상적인 인식이 아니며 또한 ‘깨달음의 지혜’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앎이다. 그것은 따라서 앎이 아닌 앎이다.



지눌에 의하면 이 知가 비록 보통의 인식과도 다르고 깨달음의 지혜와도



다르지만 우리의 모든 인식활동의 바탕이 되며 깨달음을 얻는 지혜의 근거도



된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진심의 體와 구별되는 진심의 用에 관한 지눌의



이론에 접하게 된다.42)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는 고요하고 변하지 않는 진심의 體가 동



시에 우리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모든 차별적 조건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하



는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세계가 진심



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진심의 妙用적 측면일 뿐이라는 것이



다. 진심의 세계에서는 따라서 생사와 열반, 중생과 부처, 시간과 원, 그리고



생성과 존재의 대립이 극복된다. 화엄철학의 술어로 말하자면 理事無碍의 세



계인 것이다. 지눌에 의하면, 진심이 이렇게 수연적 성격을 띠는 것은, 다시



말해 진심의 體가 변하는 用적 측면을 띨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진심의 體 자



체가 지니고 있는 知라는 용적 측면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體가 知이기 때



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눌의 心性論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모든 차별성



과 다양성이 사라진 공적 한 진심의 체에서 일상적 세계가 역동적으로 되살아



날 수 있는 것은 진심 자체가 지니고 있는 知의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이 신비를 우리에게 가장 잘 이해시켜 주는 종이 사용한 摩尼珠의 비유



를 살펴보면서 지눌의 심성론을 요약하고자 한다.



41) 안진호 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 四集合本 , 법륜사, 1973, 766쪽. 42) 안진호, 앞의 , 7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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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주가 오로지 둥고 깨끗하고 맑아서 일체의 차별적 색상을 전혀 가지



고 있지 않듯이, 하나의 靈的 心性이 비고 고요하고 항시 알며 본래 아무



런 分別도 없고 일체의 선악도 없다.



그 체가 맑기 때문에 바깥의 사물들을 대할 때 일체의 차별적 색상을 나타



낼 수 있듯이, [심성의] 體가 앎(知)이기 때문에 여러 조건들을 대할 때 모



든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을 분별할 수 있으며 世間과 出世間의 온갖 종류



의 일들을 수행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隨緣의 측면이다.



비록 색상 자체는 差別이 있으나 맑은 구슬은 일찍이 변한 일이 없듯이,



비록 어리석음과 지혜, 선과 악 자체는 차별이 있고 걱정과 기쁨, 미움과



사랑 자체는 생기고 사라지는 일이 있지만, 아는 마음은 일찍이 그침이 없



다. 이것이 불변하는 면이다43)



이 비유의 핵심은 마니주가 깨끗할 뿐만 아니라 맑기도 하다는 것을 나타



내고 있다. 즉 진심의 體가 寂할 뿐만 아니라 知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왜냐



하면 바로 이 맑음의 면이 있기 때문에 구슬이 바깥 대상들과 접할 때 여러



가지 색상을 취하여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 구슬 자체가 대상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지눌은 寂과 知[구슬의 깨끗함과 맑음]의 관계를 진심의 體가 가지



고 있는 體와 用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眞心의 體안에 있는 불



변의 用[구슬의 맑음]이 진심의 변하는 用[구슬 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색상



들]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심의 知를 알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며, 知야말로 衆妙之門이라 할 수 있다.



43) 안진호, 앞의 , 6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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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修行論



(1) 頓悟論



지눌은 자신의 수행관을 정립하면서 깨침을 닦음에 종속시켜 漸門을 세운



澄觀의 입장과, 닦음을 깨침에 종속시켜 頓門을 세운 宗密의 입장을 두루 섭



렵한 다음, 그들의 돈과 점을 아울러 자신만의 頓悟漸修를 확립하다.



그가 이러한 돈오점수를 채택한 것은 수심의 올바른 길이 먼저 마음의 性



品을 분명히 깨치고 그 깨친 후 점차로 닦아 가는 先悟後修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을 모두 성인의 길로 보고 있



다.44)



보조의 견해대로 수행과정의 순서를 둔다면 먼저 돈오를 들 수 있다. 돈오



란 우리 마음의 實相에는 번뇌 망상이 空하여 본래 부처와 똑같은 지혜가 갖



추어져 있음을 확실히 깨닫는 것이다. 즉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실에 눈뜨는



것이며, 자기 존재의 실상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지눌은 이러한 돈오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頓悟란 범부가 미혹했을 때 사대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여 자



기의 성품이 참 법신인 줄 모르고, 자기의 靈知가 참 부처인줄 몰라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 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의 빛을 돌이켜 자기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



44) 지눌, 수심결 , 보조전서 ,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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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원래 번뇌가 없고, 완전히 지혜의 성품이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頓悟라 한다.45)



지눌에게 있어서 깨침이란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



다. 그것은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미혹한 범부이기 때문에 진리의 원천이



성품 가운데 있음을 모르며, 거짓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참다운 나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허망 된 생각을 마음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눌은



밖으로 향했던 마음의 빛을 안으로 돌이키면 스스로의 성품, 즉 본래 참다운



모습이 밝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눌의 頓悟論은 宗密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지눌의 頓悟論에는



종과는 다른 새로운 면들이 있다. 지눌은 구도기에 수 차례 깨침의 체험을



한 일이 있다. 그 가운데서 지눌의 돈오관에 커다란 향을 준 것은『華嚴



經』과 이통현의『華嚴論』을 읽다가 얻는 깨침의 경험과 『大慧語錄』을 통



해 얻은 깨침의 경험이었다. 전자는 지눌의 華嚴的 頓悟論의 배경이 되었고



후자는 우리가 나중에 고찰할 그의 看話禪 곧 화두를 통한 깨침의 길인 敎外



別傳的 頓悟論의 배경이 되었다. 양자 모두 종에게는 찾아볼 수가 없는 사



상이다.



지눌은 자신이 禪師임에도 불구하고 頓悟가 결코 禪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



달았다. 宗密이 禪과 敎의 일치를 이론적 혹은 사상적 차원에서 보여주고자



했다면, 지눌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화엄적 돈오의 체험을 통해 선교일



치를 몸소 확인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두 저술,『華嚴經節



要』와『圓頓成佛論』에서 화엄적으로 돈오의 길을 천명하고자 했다. 이것이



곧 그가 제시한 圓頓信解門인 것이다. 이를 통해 지눌은 頓悟의 의미를 좀더



분명히 하고 顯敎化시킬 뿐 아니라, 禪의 관점에서 華嚴을 해석함으로써 - 혹



45) 지눌, 수심결 , 보조전서 , 34쪽. 頓悟者 凡夫未時 ‥‥ 分毫不殊 故 云頓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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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華嚴의 관점에서 禪을 해석함으로써- 敎를 禪안으로 끌어안았다. 이것은



고려 불교계의 골칫거리던 禪敎의 갈등에 대한 그의 해법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눌의 돈오, 즉 見成에 대한 이론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지눌에 의하면 悟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解悟이



고 다른 하나는 證悟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한 것은 解悟로써, 如實言敎에



따라 반조의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의 체험이다.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할 점은, 解悟라 해도 결코 그것이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것은 이해의 주체와 객체가 일치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 이해이며 오직



내적 자기성찰의 행위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깨침의 체험이기 때문이다.46)



(2) 漸修論



깨침이 아는 것이라면 닦음은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을 실제로 행할 수 있는가는 닦음의 핵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지눌에 의하면 깨친 즉시 행동이 일치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



로 깨친 후에도 수행이 필요한데 이것이 漸修이다. 지눌은 자신의 저술에서



다음과 같이 점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漸修란 비록 본래의 성품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



혀온 習氣를 모두 없애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



차로 익히어 공이 이루어지고 오래 오래 소질을 길러서 성인이 되기 때문



에 점수라고 한다. 비유하면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에 모든 기관이



갖추어져 있음은 어른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충실하지 못하므로 상당한



46) 길희성, 앞의 ,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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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과 같다.47)



이와 같이 지눌은 성품을 깨친 사람을 바로 성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에 의한다면 깨친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며, 그



자질은 점수의 과정을 거칠 때 완전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



눌은 깨친 후 닦음의 과정을 소를 먹이는 행위로 비유하고 있다.



도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진심이 앞에 나타났을 때에 아직 습기를 버리지



못하고 전에 익히던 妄의 경지를 만나면 때로는 생각을 잃을 수가 있다.



마치 소를 먹일 때 그것을 잘 다루어 이끄는 대로 따르게 되었더라도 그래



도 채찍과 고삐를 놓지 않고, 마음이 부드럽고 걸음이 평온하여 곡식 밭에



몰고 들어가더라도 곡식을 해치지 않게 되기를 기다려서야 비로소 손을 놓



는 것과 같다.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목동의 채찍과 고삐를 쓰지 않더라



도 자연히 곡식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48)



이와 같은 지눌의 견해로 본다면 한 번 깨침으로 모든 일을 다 마쳤다고



닦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눌은 리한 무리들이 별



로 힘들이지 않고 깨쳐 쉽다는 생각을 내어 닦지 않는 것을 크게 경계하다.



지눌은 점수의 필요성에 대해 바람의 비유를 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



눌의 견해에 따른다면 바람이 그쳤으나 물결은 아직 출이고, 이치는 나타났



47) 지눌, 수심결 , 보조전서 , 34쪽. 漸修者 雖悟本性 ‥‥ 故云漸修也. 48) 지눌, 진심직설 , 보조전서 , 64쪽. 學道之人 已得眞心現前時 ‥‥ 自然無傷苗 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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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망념은 아직 침노할 수 있다는 것이다.49)



이 견해는 출이는 물결을 재우고 망념을 대처하는 공들임은 다름 아닌



점수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망념을 지혜로 살필 때 완전한 결지로 나아갈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깨달은 후에 필요한 닦음인 것이다.



왜 지눌이 修後의 悟가 아니라 悟後의 修를 주장하는가? 지눌에 의하면



悟없는 修는 뿌리를 제거하지 않은 채 돌로 뿌리를 누르는 행위와 같다고 보



고 있다. 누르면 누를수록 맹렬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눌은 다음



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이 空함을 모르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고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몸과 마음을 억제하면서 이것이 마음 닦는 것이라 한다. 이는



크게 미혹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르기를 “聲聞은 마음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되 끊으려는 마음 자체가 적이 된다”고 했다. 단지 살인, 절도, 간



음, 거짓말이 性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觀하면, 일어남이 곧 일



어남이 아니라, 그 순간에 단박 고요해지니, 어찌 다시 그것들을 끊을 필요



가 있겠는가? 고로 이르기를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달음이 더딜까 두려워하라”고 한 것이다. 또 이르기를 “만일 생각이 일어



나면 곧 깨닫고, 깨달으면 곧 없는 것이다”라고 한다.50)



따라서 頓悟의 세례를 받지 않은 漸修는 지눌에 의하면 올바른 수행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억압일 뿐이고, 처음부터 진 싸움이나 다름없다. 修에



대한 이러한 억압적 관점은 北宗뿐만 아니라 모든 방편적 가르침에서도 발견



49) 지눌, 수심결 , 보조전서 , 38쪽. 50) 김탄허, 앞의 , 5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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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지눌은 禪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이런 형태의 修를 따르지 말고, 닦음이



없는 닦음, 번뇌를 끊음이 없되 끊는 진정한 修를 하라고 촉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거룩한 가르침 중에서 法의 相에 관련된 방편적 가르침에



집착하여 스스로 비굴한 마음을 내어 수고로이 점진적 수행을 닦아 性宗을



어긴다. 그들은 여래가 말세의 중생을 위해 비을 여는 비결을 열어 놓으



신 것을 믿지 않고, 종전에 들었던 바를 고집하여 황금을 버리고 삼을 지



고 간다.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을 매우 빈번히 만났다. 비록 그들에게 설



명을 해 주어도 끝내 그들은 믿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단지 의심과 비방



을 더할 뿐이다. 어떻게 그들이, 心性은 원래 깨끗하고 번뇌는 원래 空한



것임을 모름지기 먼저 믿고 이해하되 그러한 이해에 의거하여 薰修함을 방



해받지 않는 사람들과 같을 소냐? 외적으로는 [이 후자의 사람들은] 戒律



과 儀禮를 지키되 구속과 집착이 없으며, 내적으로는 고요한 생각[禪, 禪那]



을 닦되 억누르지 않는다. 가히 악을 끊되 끊음이 없는 끊음이요, 선을 닦



되 닦음이 없는 닦음이기에 참다운 닦음이요 끊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이다.51)



우리는 頓悟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진정한 修를 역설적 修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번뇌가 본래 공하고 중생이 부처와 조금도 다름없다는 통찰



에 근거한 닦음이기에 쉽고 가벼운 修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돈오가 반드시



漸修에 선행해야 하는 이유이고, 이것이 漸修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코 頓悟



이전의 수행, 즉 억압과 수고로움의 수행으로 다시 회귀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 점에 대해 지눌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51) 김탄허, 같은 책,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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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비록 後修가 있다 해도, 이미 먼저 망념이 본래 공하고 심성이 본래



깨끗함을 대번에 깨달았기 때문에 악을 끊음에 있어서 끊되 끊음이 없고 선을



닦음에 있어서 닦되 닦음이 없으니, 이것이 곧 참된 닦음이요 참된 끊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만 가지 행을 갖추어 닦는다 해도 오직 아무런 생각



이 없음(無念)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2)



이제 점수의 요점만을 말하자면 지눌은 定과 慧 혹은 性과 寂, 止와 觀의



균형 있는 닦음을 주장한다. 이른바 定慧雙修, 惺寂等持門이다. 그러나 이 닦



음이 어디까지나 오후의 수이기 때문에 지눌은 수행에서 自性定慧와 隨相定慧



를 구별한다. 수상정혜의 定은 수행자가 그때그때 직면하는 상과 사로서의 번



뇌에 꾸준히 대처해 나가는 삼매이며 慧는 제법 하나 하나에 대하여 미혹됨이



없이 그 공을 관하는 반야를 말한다. 지눌에 의하면 이런 수상정혜의 수는 북



종이나 기타 방편적 가르침들에서 행하는 수의 길로서 결코 최상승선이 아니



다. 반면에 자성정혜란 자신의 본성안에 이미 내재하고 있는 정과 혜를 의미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진심의 체가 지니는 두 측면인 寂과 知,



定과 慧를 가리킨다. 따라서 자성정혜를 닦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심성 속



에 내재해 있는 것을 닦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곧 修 아닌 修인 것이다. 이



런 역설적 닦음이야말로 진정한 修, 無念修이다. 자성정혜란 따라서 일반적 의



미의 닦음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라기 보다는 돈오에 의해 이미 자신의 현실로



서 자각되는 定慧이다. 여기서는 누구도 정과 혜를 이루기 위해 어떤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정과 혜는 이미 우리의 심성 속에 내재하고 있기에



다만 자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성정혜의 수에서는 정신집중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인 결가부좌나 호흡조절 그리고 정신적 혼침을 막기 위해



성성함을 유지하려는 노력 등 모든 것이 필요 없다. 그리고 자성정혜의 수에



서는 정과 혜 사이에 수행 순서상의 구별도 무의미하다. 진심의 체의 양면으



52) 김탄허, 같은 책,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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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정과 혜는 불가분적 통일체를 형성하기 때문이며, 하나를 위해 다른 하



나를 닦아야 할 필요도 없으며 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자성정혜의 수에서는



또한 닦음의 주체와 대상의 구별도 사라진다. 왜냐하면 寂과 知는 수의 대상



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53)



(3) 看話論



지눌이 간화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바로 大慧의 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지리산의 상무주암에 거주하면서 내관과 함께 대혜의 어록을



읽었는데 대혜가 끊임없이 재가신자들에게 일상생활 본연의 업무 가운데서 간



화 수행을 권하고 있는 점에서 크게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눌의 간화선은 대혜의 향을 받았지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



고 있다. 즉 간화선을 수용하고 있으면서 돈오점수의 길을 포기하거나 무시하



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지눌에 있어서 하나의 특색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각각의 근기에 따른 여러 가지 방편을 인정한다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가장 수승한 경계로서 간화참구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54)



강 저편 언덕에 다다른 수행자는 타고 간 뗏목을 지체 없이 버려야 한다.



그러나 지눌에 따르면 바로 이 버림이 뗏목을 타는 일 못지 않게 어렵고 때로



는 그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 버림을 위해서 별도



의 특별한 방법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곧 話頭 공부, 즉 看話禪이다. 그 뿐



아니라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 이른바 過量之機의 소유자들은 여실



53) 길희성, 앞의 , 104쪽 54) 지눌, 법집별행록병입사기 , 보조전서 ,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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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교에 의존하지 않고서 처음부터 바로 眞心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것이 곧 徑截門으로서, 지름길로 진리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것이 간화선이



다.



간화선은 처음부터 아예 말을 듣고 의미를 이해하는 일없이 곧바로 증입할



수 있는 파격적인 길이다. 곧 徑截門으로 바로 꺾어 들어가는 참구의 길이다.



이것은 돈오점수 혹은 先悟後修라는 도식을 거치지 않고도 곧바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證悟의 길이며, 여기에는 인식과 실천 사이의 간극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눌에 있어서 이 새로운 깨침은 점수상의 막연한 어떤 지



점이 아니라 점수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어떤 계기를 이룬다. 解悟가 하나의



뚜렷한 체험이듯이 화두 참구를 통한 證悟 역시 하나의 독자적인 체험의 계기



를 형성하는 것이다. 지눌의 看話決疑論은 바로 이러한 화두 참구를 통한 선



만이 아는 頓門에 대한 논의이다. 거기서 지눌은 화두선의 특성, 그 수행 방



법, 그리고 그것을 통한 깨침이 교가에서 말하는 깨달음과는 어떻게 구별되는



지를 논하고 있다.



대혜 스님이 이렇게 주해를 붙여 화두를 주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자는 하



루 24시간, 걷거나 머물러 있거나 앉거나 눕는 모든 행동 속에서 다만 [화



두를] 붙잡고 깨달으려 할뿐이니, 심성의 도리에 관하여 離名絶相[이름을



떠나고 형상을 끊음]의 알음알이가 전혀 없고 緣起無碍[모든 것이 조건에



따라 생기는 것이기에 서로 막힘이 없다는 진리]의 알음알이 또한 없다. 불



법을 머리로 이해해서 알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열 가지 알음알



이의 병에 걸리게 된다. 그러므로 모두 내려놓되, 내려놓았다거나 내려놓지



않았다거나 병에 걸렸다거나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헤아림조차 없다. 홀연



히 재미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는 화두에서 한 번 단박 깨치면 一心의 法



界가 환히 밝아진다. 그러므로 심성에 갖추어 있던 수백 수천의 삼매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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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없는 이치의 문이 구하지 않아도 완전하게 얻어진다. 종전의 치우친 뜻



과 이치, 그리고 듣고 이해함으로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종



경절문에서 화두를 참구하여 證得해 들어가는 비결이다.55)



『간화결의론』에서 길게 인용한 위의 에서 우리는 대혜 선사와 간화선



에 대한 지눌의 견해를 알 수 있다. 지눌이 대혜의 간화선을 채택하면서 우선



적으로 관심을 두었던 점은 알음알이의 병(知解病)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지눌이 경절문을 세운 것은 순전히 알음알이의 병을 제거함에 있어서 화두



가 지니는 위력을 절감한 그의 개인적 체험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교 전통 속에서 알음알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열망이 가장 잘 표현



된 곳은 空의 진리를 설하고 있는 般若部 계통의 경전들이다. 특히 『金剛



經』같은 경전에서는 진리에 대한 언술과 더불어 생기는 진리의 대상화를 거



부하고 언표 자체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리고자 하는 자기 해체적 언술들이



거듭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화두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처음부터 언어의 분별적 작용을 일체 용납하지 않는 말 아닌 말이다. 지눌은



이 화두 참구야말로 모든 분별지와 알음알이의 병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행법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지눌에 의하면 선 수행자들은 先行하는 어떤 문도 거치지 않고 바로 화두



를 붙잡을 수도 있고, 아니면 돈오점수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화두선에 들어



갈 수도 있다. 지눌은『간화결의론』에서는 전자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반면



에『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에서는 후자의 길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



제는 궁극적으로 각자의 역량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다. 다만 지눌 자신이 그



55) 김탄허, 앞의 , 120∼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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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구도 역정에서 따랐던 길이 무엇이었는지를 고려해 볼 때, 그는 필경 전자



보다는 후자의 길을 더 권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徑截門을 선의 완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눌은 특출한 근기의 소



유자라면 돈오점수라는 예비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곧바로 간화선을 시도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지눌에 의하면 최고의 수행이라 할 수 있는 무심합도도



화두라는 格外的 방법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지눌에 있어서 禪行의 세 번째 문인 徑截門은 頓悟 혹은



圓頓信解門의 완성이자 漸修 혹은 惺寂等持門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세계에는 알음알이의 걸림돌이 제거되고 인식과 실천의 간극이 해소되며 정과



혜의 구별조차 무의미하게 되어버려 수행이라 부를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지 無心으로 道와 일치하는 완전한 자유의 경지가 활짝 열리는 것이다.



지눌은 실로 한국 불교사에 있어서 간화선의 전통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공



헌을 한 사람이다. 비록 그가 어느 선사로부터 특정한 선의 법맥을 친히 전수



받은 일없이 無師獨悟한 자지만, 간화선의 확립에 있어 지눌의 공헌은 결정



적이었다. 지눌 이후 곧 간화선은 더 이상 이론적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시되었다. 이것은 그의 뒤를 이어 수선사를 주도한 眞覺國師 慧諶



에게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다. 흔히 지눌의 禪 사상을 논할 때 頓悟漸修論



만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지눌 선의 일면만을 논하는 것이다.



看話徑截門은 그의 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길이다. 그것으로써 지눌의 선은



완성되기 때문이다.56)



2. 九山의 禪思想



56) 길희성, 앞의 , 113∼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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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想이란 오랜 생각의 所産이라 단편적인 생각이 아니라 일정한 체계는 물



론이고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九山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것은 구산이 文字를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수행에 전념하



기 위해 불필요한 言說을 삼가고자 했던 의도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구산은 출가후 많은 시간을 통해 확고한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부



처님의 말을 연마하는 것은 물론이고 참선을 통한 자기체험을 위해 노력하



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고 일정한 체계를 형성하여 사



상으로 발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여러 사상가의 향이



다. 구산은 자신의 생애에서 보여주듯이 時空을 초월하여 지눌로부터 향을



받아왔음을 그의 저술에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간의 본성과 그 본성을 찾



아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음이 보여진다.



즉 심성론은 지눌과 많은 일치감을 보이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수행론에서



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특히 구산과 지눌의 돈오사상의 차이점이다. 구산이



간화선을 돈오점수보다 더 중요시하으므로 이점을 근거로 양자에 나타나는



돈오의 개념을 살펴 그 차이점을 밝힐 것이다.



단 어려운 점이 있다면 현존하는 구산의 연구가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생애와 사상을 체계화시키는 작업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따라



서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구산에게 가장 많은 향을 주고 있는 지



눌의 사상적 체계에 대비해서 구산의 사상을 체계화 하고자 한다. 그러면 구



산의 선 사상적 특징이 돋보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구산의 禪 사상에서는 앞서 살펴본 지눌의 선사상과 같이



심성론과 수행론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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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心性論



지눌은 인간의 마음을 眞心이라고 표현한 반면에 구산은 인간의 마음을 다



룸에 있어 眞性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구산에 의하면 진성은 다름아닌 인



간의 본래 모습이다. 따라서 진성을 깨닫는 것은 인간이 본래 모습을 깨닫는



것이다. 진성은 인간 고유의 밑바닥에 있는 가장 깨끗한 인간의 본래 성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의 참성품을 깨달으면 그대로 佛祖가 된



것이요, 참된 나를 잃게 되면 중생이라 부르게 될 것이며, 자기의 주인공을 밝



혀내면 바로 피안에 이르는 것이요, 자기의 주인공을 모르게 되면 그대로 사



바세계라는 것이다.57)



그래서 수행자가 진성을 깨달으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 나와 한몸일



뿐 아니라 산하 대지도 일시에 같이 증득하며 일체 중생도 나와 다름이 없게



되지만, 眞性에 미혹하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에 물들어 집착하게 되고



전도를 이루며 모든 고뇌가 생겨나서 생사를 스스로 부르게 되어 삼계의 윤회



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58)



구산은 깨달아야 할 대상을 진성이라 명명하고 자신의 참모습을 알면 부처



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선과 교에서는 이를 일컫는 많은 용어들이 존재



하며 나름대로 인간의 참성품을 밝힌다. 진성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상태이고



그 상태에 인간은 묘한 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산은 지눌과 마찬



가지로 空寂靈知라 하다.



한 물건이 신령하여 묘용이 많으니



57) 구산선풍 , 28쪽. 58) 같은 책,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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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부터 생사가 없는 줄을 알겠는가



根塵을 벗어나서 전체가 드러나니



산하와 대지가 이대로 내 집일세.59)



空寂한 靈知는 범부성을 초월하니



자비 광명 비춘 곳에 道는 더욱 친해지네



南海에서 구름 일고 北山에서 눈 내리니



氷 와 玉骨을 한 바늘에 꿰었구나.60)



구산은 이러한 空寂靈知에 대해 예전이나 현재에 있어 뚜렷하고, 범부와



성인을 초월하여 밝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묘용이 毘盧遮那의 정수리를 드러



내고 四相이 푸른 하늘 밖에 멀리 떨어질 정도여서 십불이 이 가운데 언제나



자재 하다는 견해이다.61)



인간의 마음은 고요한 가운데 앎이 있다라는 커다란 전제아래 한편으로는



‘ 寂’하고 한편으로는 ‘知’한 것이다. 구산은 지눌과 같이 이 구도를 다시 ‘定’과



‘ 慧’ , ‘寂’과 ‘惺’ , 그리고 ‘體’와 ‘用’으로 구별한다.



그래서 만약 이러한 도리를 알게 되면 제각기 모든 것이 기틀이요, 사물마



다 온통 밝게 드러내게 되어 菩提와 열반도 오히려 눈 속의 티끌과 같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방일하여 이러한 공적지를 알지 못하면 생사의 괴



로운 굴레가 心身을 사로잡는 것이 마치 벌겋게 단 쇠 바퀴 위에서 누르고 밑



에서 받치면서 갈아대는 것과 같아서 그 지극한 괴로움이 끝이 없다는 것이



59) 구산선문 , 202쪽. 60) 같은 책, 425쪽. 61) 같은 책,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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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62)



구산이 위에서 말하고 있는 공적지는 사실 구산의 독자적 思考는 아니



다. 이 知라고 하는 언어는 하택신회, 종, 지눌로 이어지는 개념으로 구산이



위의 선사들의 개념을 받아들여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63)



구산은 선가에서 언급하는 진리의 체를 위와 같이 靈知라고 하는 언사로



표현했다. 하택신회는 진심의 진리는 조사들에 의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



오다가 드디어 ‘知’ 라고 하는 한 자로 진리를 밝혔다고 하다. 종에 따



르면 신회의 특별한 공헌은 종전의 無爲, 無相 등과 같은 부정적인 언사들을



넘어서서 심의 체를 ‘知’라는 한마디로 적극적으로 풀어냈다는 것에 있다.



즉 선의 궁극적 실재인 진심의 체를 空하고 寂 할뿐 아니라 이 空한 경지



에 동시에 어떤 스스로 밝게 아는 앎(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앎이야말로 진심의 세계를 아무 감각과 사고도 없는 무정의 세계와 구별시켜



주는 결정적인 차이라는 것이다.64)



이와 같이 구산은 진성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깨칠 것



을 주장한다. 이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근거(佛性)로서 부처를 부처이게끔 하



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구산은 자기의 참성품을 어둡게 하면 부처가 중



생이 되고 참성품을 밝히게 되면 중생이 부처를 이루게 되니, 밝고 어둠의 차



이는 있으나 성품은 둘이 없는 것이니 깨달음을 등지고 티끌 경계에 빠져서



바깥을 향하여 구하게 되면 옳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65)



구산에 의하면 이 진심을 깨닫게 되면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하게 되니 그



때에야 만물의 장이라 부를 만하며, 생사를 해탈하여 세간이나 출세간에 걸



림 없이 자재 하게 되니 격식을 벗어난 대장부요 천상과 인간의 큰 스승이라,



62) 같은 책, 28쪽. 63) 구산선문 , 224∼225쪽. 64) 길희성, 지눌의 심성론 , 역사학보 제3집, 1982, 4∼6쪽. 65) 구산선풍 ,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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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가운데서 하늘이요, 부처 가운데서도 참 부처라는 것이다.66)



이몸이 태어날 때 따라 난 것 아니고



이몸이 죽을 때에 따라가지 않는다.



한결같은 참성품은 끝없이 원하니



신령스런 광명이 법계에 두루하네67)



모든 사람에게는 본래부터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한 眞性이 있다. 그



러나 이 진성을 망각하고 오랫동안 육체 본위로 살아왔기 때문에 환경에 사로



잡혀 망상을 진성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가 善性이 따로 있고 惡性



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혹은 착해지기도 하고 혹은 악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햇빛 그 자체에는 본래 명암이 없으나 어느 때는 비가 오기도 하



고 구름이 끼어 어두워지기도 하고 어느 때는 밝은 햇빛이 나기도 하는 것과



같고, 또 저 푸른 하늘은 본래 변함이 없건만 기후 변화가 측량키 어려운 것



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변화무쌍한 것은 중생심



이요 기후는 변하여도 日光은 불변하듯이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저 맑은 하늘



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성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산은 이 세상 천지 만물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如如不動한 것이



청정법신이며, 우주가 건설되기 이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금부터



우주가 멸망할 때까지도 不增不減하는 것이 곧 우리의 眞性이라 표현하고 있



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眞性은 부처님으로부터 인간과 미물 산천초목에 이르



66) 같은 책, 135쪽. 67) 같은 책,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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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까지 털끝만큼도 차별이 없이 본래 구족하여 있는 것이다.68)



구산은 이와 같은 점에 있어서 미묘한 법은 모든 선악경계의 八風에도 움



직이지 않고 뜻은 태산처럼 굳게 서며 다만 自性에 의지하여 정과 혜를 함께



닦고 공적한 지를 마음대로 쓰더라도 天眞스러워 하는 것이 없으며 動과 靜



이 언제나 禪이 되어야만 쇳덩이를 다루어서 황금으로 만들게 될 것이니 뜻이



있는 장부는 모름지기 간절하게 힘써야 할 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69)



그래서 구산은 범부가 수심하여 眞性을 깨치면 성불한다고 보고 있다. 그



렇지만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육신만을 ‘나’라 하고 心靈을 망각하여



眞我를 상실하고도 상실한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인간이라 하면서도 眞我를 모르고 사



는 것은 사이비 인간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전도되어 자유 없이 속박된 노



예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아를 망각하면 잠잘 때만 夢幻이



아니라 일체의 생활이 전부 다 夢幻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몽에 의해 假我



에 집착하고 유위법에 속박되어 허수아비와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다.



그래서 구산은 중생들이 이러한 진성을 찾을 수 있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성불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70) 왜냐하면 구산이 말하고 있는 본



래의 성품 즉 眞性은 성인이라고 해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범부라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진성은 深淺의 차별과 優劣의 차별이 없



다는 것이다.71) 그래서 참된 수행을 한다면 사람마다 본래 구족한 불성인 眞



我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72)



68) 구산, 석사자 , 불일출판사, 1980, 155∼156쪽. 69) 구산선풍 , 169쪽. 70) 구산, 석사자 , 불일출판사, 1980, 61∼63쪽. 71)『구산선문 , 548쪽. 72) 구산, 석사자 ,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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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修行論



여기에서는 구산이 인간의 본성을 眞性이라 표현했는데 그 진성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수행론을 다루고자 한다. 구산이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



다고 하는 것은 구산의 수행론 역시 지눌의 수행론에서 많은 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지눌의 심성론을 구산이 계승하기 때



문이다.



먼저 우리가 여기서 검토할 것은 두 禪師의 사이에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간화선에 관한 두 선사의 입장 차이



이다. 지눌은 圓頓信解門, 惺寂等指門, 徑截門을 거치는 수행의 구조를 지향한



다. 따라서 그에게는 앞의 두 문과 간화선은 별도의 수행관으로 여겨도 무방



하다. 곧 간화선은 상근기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그의 저서 속에도 이러한 점



을 잘 나타내고 있다.



반면 구산에 있어서는 간화선이 그의 사상을 지탱하는 축이다. 결론에 가



서 보다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여기서 한가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 있



다. 그것은 구산의 어록 속에는 돈오점수나 정혜쌍수와 같은 사상에 간화 즉



화두가 항상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사상은 간화선이라



는 커다란 틀 안에서 모든 사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지눌과 구산



의 차이점을 결정적으로 구별짓는 중요한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이러한 양자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구산의 수행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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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三要



구산은 수행의 근본으로 다음과 같은 三要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삼요



가 중생이 진성을 찾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먼저 구산은 眞性을 찾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三要가 그 근본이 됨을 말하



고 있다. 여기서 三要란 大信과 大憤心, 두 번째 大勇猛心 마지막으로 大疑心



을 말한다.



이러한 삼요는 오래 전부터 禪家에서는 공안 참구의 조건으로 거론되어 왔



으며,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 가면 범부에서 성현 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하다.73)



큰 믿음이란 일체중생이 본래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음을 믿는 것이다.



즉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런 사실을 믿지 않고



온갖 罪業만 짓고 생사윤회만 익혀 성현의 세계와 열반의 경지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세계와 惡道의 고해에 빠져 무량한 고통을 받고, 늙고 병들고



신음하는 중생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古人의 행적을 거울 삼아 믿고 難行苦



行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大勇猛心이다. 이는 세간에 존재하는 순간



의 즐거움을 끊고자 하는 마음을 말한다. 세간에 존재하는 즐거움에 대해 구



산은 財慾, 色慾, 名譽慾, 貪慾, 睡眠慾으로 나타내고 있다. 중생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욕락을 너무 즐기게 되면 생활의 안전성을 가져올 수 도 없고 수



행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잠을 자면서만 꿈을 꾸는 것



이 아니라 눈을 뜨고서도 二重, 三重의 꿈을 꾸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면 우리 중생들이 생각하는 명예와 권력, 부모형제 怨親恩愛가 모두 一場春夢



과 같으므로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大勇猛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73) 구산, 石獅子 , 불일출판부, 1980,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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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진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大疑心을 일으켜야 한다는 견해이



다. 그것은 三世佛祖와 천하의 선지식들이 일체중생을 제도하고자 간절한 마



음으로 말하셨지만 듣는 중생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고 自心을 깨닫지 못하



므로 佛祖의 誠言인 公案을 참구함에 있어 큰 의심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조의 성언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와 같고



자비와 聖行을 보되 보지 못하니 눈이 있어도 눈먼 봉사와 같기 때문에 이런



악도에서 벗어나려면 眞我를 찾아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의심을 갖고 공안을



참구해야 한다는 견해이다.74)



(2) 三學



삼학은 선의 참구만이 아닌 계율과 지혜의 均修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



에 화두를 중요시 여기는 禪家의 전통에서는 삼학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렇지만 구산은 화두를 참구하는



것 못지 않게 삼학이 제대로 갖추어지기를 바랐다. 즉 구산은 간화선을 강조



하면서 동시에 戒, 定, 慧와 같은 수행도 중요시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그래서 구산은 법의 그릇을 이루는 공력이 定慧를 雙修하고 惺寂을 等持하



는 功임을 피력하면서 육근이 경계를 대하더라도 마음이 경계를 따르지 않는



것을 定이라 하고 마음과 경계가 모두 空하여 밝은 거울처럼 미혹함이 없는



것을 慧라 보고 있다. 또한 법망경에서 계의 그릇이 청정하고 정의 물이 맑아



야 혜의 달이 밝게 나타남을 인용하면서 본분납자가 수행하고자 한다면 戒,



定, 慧 삼학은 솥의 세 발과 같아서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고



74) 구산, 石獅子 , 불일출판부, 1980, 48∼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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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75)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본래부터 眞性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진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산은 아무리 환경이 변하여도 맑은 하늘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성현의



마음이며 원히 不增不滅 하는 것이 우리의 眞性이라는 것이다.76) 중생이 모



든 선악경계에 흔들림이 없이 뜻을 굳게 세우고 자성에 의지하여 定과 慧를



함께 닦아 진성을 깨치면 성불한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생이 눈에 보이



는 육신만을 ‘나’라 하여 眞我를 상실하고 망각하면 허수아비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77)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戒行을 지켜야 하고 계행을 지키면 禪定이 생기



며, 선정이 생기면 지혜가 생기므로 어지러운 알음알이가 사라지고 불안한 마



음이 사라져 즐거움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하는 대중들은 옛사람



의 금언을 거울삼아 부지런히 삼학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구산의 견해이다.78)



계, 정, 혜 三學이란 바로 그러한 목표를 위해 수행하는 바른 길이다. 그래



서 구산은 마음에 그릇됨이 없는 것이 자성의 戒요, 마음에 산란함이 없는 것



이 자성의 定이요, 마음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을 자성의 慧라는 견해임을 밝



히고 있다79)



75) 구산선문 , 32쪽. 76) 구산, 석사자 , 불일출판사, 1980, 155- 156쪽. 77) 같은 책, 61- 63쪽. 78) 구산선문 , 588쪽. 79) 같은 책,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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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看話論



구산의 선사상 저변에는 항상 간화선이 깔려 있다. 그것은 수행의 완성을



간화론을 통한 깨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화선에 대한 흐름은 지



눌이후 한국 선종에서 볼 수 있는 전반적인 경향으로 지눌의 제자인 혜심과



고려말의 보우,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산과 그 법통을 계승한 인물들에



서 나타나는 전통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80)



구산은 먼저 화두를 들 때의 방법과 자세에 대해 도 있게 설명하고 있



다. 구산의 견해에 의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선정을 닦아 眞性을 발견하고 범



부를 고쳐 성인이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공안을 결택하여 간절하게 참구해 나



가되 사량 분별로써 이리저리 헤아리지 말고 머리 위에 불을 끄듯이 하여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81)



그리고 화두를 결택하여 공부를 지어갈 때에 바깥경계는 寂寂하고 안의



경계는 惺惺하게 하여 간절히 추구해 가되 급하거나 느슨하지 않게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이 하면서 간절히 참구해 나갈 것을 당부하면서 화두에 집중할 때



는 연속적인 자세가 필요하므로 망상이 생기더라도 화두를 놓아버리지 말고



뜻은 태산처럼 굳게 세우고 마음을 바다와 같이 하여 부지런히 할 것을 당부



하고 있다.82)



구산이 화두에 집중할 때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하는 것은 선 수행에



있어 본참공안을 성성하게 의심하거나 혼침과 망상이 일어나게 되면 眞性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일시



적인 집중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괴롭게 생각하거나 생각과 생각을 서



80) Hee Sung Keel, ibid. pp. 167∼175. 81) 구산선풍 , 32쪽. 82) 같은 책,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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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번뇌는 저절로 사라지고 의심 덩어리는 뚜렷이 드러



내어 마음이 깨끗하기가 차가운 눈과 서리 같이 되고 눈빛은 새벽별처럼 초롱



초롱하게 되어 점차 좋은 경지에 들어가서 마침내 크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



이 구산의 생각이다.83)



그래서 예전부터 참된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다만 화두를 들 때 혼침과 망



상이 화두와 서로 다투게 되면 오히려 끊임없이 이어가며 화두를 들어 망상을



물리치는 자세를 견지 하여하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혼침과 망상이 공부에



장애가 된다는 생각을 내게 되면 그 생각이 도리어 혼침과 망상에 사로잡히게



하는 일이 됨을 지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84)



이런 상태에서 구산은 망상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자세를 지니



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 방법은 과거사는 이미 지나갔으니 잊어버리고, 미래사



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생각을 안 하면 마음은 자연히 앞과 뒤가 끊어지고 망



상이 공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더욱 성성하게 화두를 참구한다면 진



실하고 간절하게 공부가 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85) 그러다 보면 시절인연에



이르게 되고 ‘할’하는 한 소리에 홀연히 칠통을 타파하고 佛祖를 붙잡게 되어



참으로 쾌활하고 쾌할 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86)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간화선에 있어 수행자들은 선문 조사의 화두나



공안에 대하여 의심하도록 지시 받는다. 한편 간화선은 전적으로 깨달음의 체



험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계·정·혜와 같은 점진적 수행 덕목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념적 사유의 과정에



서 자유롭게 되어 수행자는 본래부터 깨친 상태로 있는 그의 마음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고 그 자신의 깨달음을 저절로 실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



83) 같은 책, 32쪽. 84) 같은 책, 49쪽. 85) 같은 책, 93쪽. 86) 같은 책,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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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예전부터 간화선에 정통한 선사들은 닦음은 깨달음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87)



구산은 수행시 부딪히는 번뇌 망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연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간화선의 수행은 번뇌 망상을 버리고 공안을 참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번뇌 망상에 즉 해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



구하는 데 그 요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산은 그러한 번뇌에 대해 원래



空한 것이라 하며, 보리는 길고 짧다는 생각마저도 끊어져 변함없는 이름인



金剛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88) 이제는 無心을 최고 수행 단계로 보아 그에 대



해 살펴보고자 한다. 지눌에 따르면 자성정혜는 여전히 의미 작용의 자취를



완전히 털어 버리지를 못한다. 그러나 무심합도의 경지에서는 구태여 어떤



수행의 방법을 논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높은 수행의 형태



이지만 결국은 아무런 수행도 아닌 오히려 자유로운 삶 그 자체를 말한 것이



다. 이 무심합도문의 사상은 구산에게서도 같은 맥락으로 발견된다.



봄바람이 평등하여 온갖 꽃을 피우지만



흰구름은 흩어져서 오고감을 싫어하네



오고감이 분명함이 어느 곳에 돌아가나.



흔들리는 바람가지 달빛 어린 물이로다89).



구산은 일체 모든 경계를 모두 공적하게 관하고 오직 한 마음만 있어서 외



로이 드러내어 홀로 서고 진심이 홀로 비추어 도에 걸리지 않음을 강조하고



87) 길희성, 앞의 , 115- 117쪽. 88) 구산선문 , 559쪽. 89) 같은 책, 221∼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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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90) 그러면서도 구산은 그의 선사상에서 無念과 無心에 관한 이론을 전개



하면서 일체의 망상을 털어버린 후의 가장 자유롭고 높은 수행의 단계임을 보



여주고 있다.



모든 생각 돌이켜 無念으로 돌아가면



툭 터지는 한 소리에 만상을 거두리라



한 조각 녹음 속에 원한 여름이요



밝은 달빛 가득하니 온 누리가 가을이네.91)



모든 인연 쉬고서 無念이 되면



한 법에 일체 지혜 두루 갖추고



백천 가지 삼매를 모두 닦으니



천만갈래 함께 모여 한맛 이루네92)



무심합도문의 경지에서는 구태여 어떤 수행의 방법을 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가장 높은 형태의 수행이지만 결국은 아무런 수행도 아닌, 오히려 자



연스러운 삶 그 자체라 할만한 것이다. 결국 道와 합한다는 최고의 수행방법



은 수행을 넘어선 자유로운 삶이다. 오히려 화두를 넘어서는 경지로 무심으로



참 자아와 하나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93) 이와 같은



이유로 간화선은 깨달음에의 경절문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94)



90) 같은 책, 467쪽. 91) 같은 책, 118쪽. 92) 같은 책, 412쪽. 93) 길희성, 앞의 , 116쪽. 94) 김호성, 간화선에 대한 양자 택일적 관점과 돈오점수와의 관련성 , 보조사상 , 4집, 451-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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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은 화두로 들어가 바로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이다. 따라서 화두의



참구는 깨달음을 얻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화



두에 관해서 구산은 상세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공안을 참구하여 깨닫기를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산은 화두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성스런 마음을 더하여 뜻은 태산과 같이



세우고 믿음과 원행을 철두철미 하여 본참공안에 대해 생명처럼 여기어 간절



하고 간절하게 참구해야만 조금이라도 나아갈 分이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



다. 그래야만 禪定을 익히고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점점 좋은 경지를 얻게



된다고 하다.95)



그래서 진실되게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본참공안을 간절하게 참구 하여야만



점점 깨끗한 경지에 들어가 不二法에 계합하게 되며, 이렇게 된다면 다시 공



력을 들여 의심을 흐릿하게 하지 말고 성성하고 적적함을 같이 지녀서 한덩어



리를 이루게 되면 즉 이것이 잠잘 것과 먹을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때라는 것



이다. 그래서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잊지 말고 머리 위에 불을 끄듯이 하면



홀연히 대쪽 맞듯 맷돌 맞듯 칠통을 타파하여 불조를 잡아 거꾸러뜨리고 부처



나 조사들이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을 곳을 잡아내게 된다는 것이다.96)



(4) 頓悟漸修



구산은 돈오점수에 있어서는 지눌과 큰 이견을 내지 않고 전통적으로 내려



오는 돈오점수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구산은 돈오점수보다 간화선에 비중을 많이 두었기에 간화선에서



95) 구산선풍 , 23쪽. 96) 구산선문 , 3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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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난 그의 頓悟觀을 지눌의 돈오점수의 頓悟觀과 간략히 비교하여 돈오의



의미를 검토한 후 구산의 돈오점수를 언급하겠다.



지눌에게 있어 돈오의 의미는 일차적인 깨달음, 돈오(解悟)가 있어야만 점



수가 가능하다고 하다. 그렇지 않고 돈오의 세례를 받지 않은 점수는 단순



한 억압일 뿐이라고 하다.97) 따라서 지눌에게 있어서 궁극적 깨침에 이르기



위해서는 점수 이전에 돈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구산이 강조한 간화선의 경우는 先頓悟가 없이도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가능하다. 즉 근기에 상관없이 바로 간화선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구산



은 말한다. 따라서 간화선에 있어서 돈오는 수행의 전제조건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구산과 지눌이 지니는 돈오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눌에



게는 수행에 돈오가 전제조건이기에 돈오점수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반면



구산의 간화선에 있어서 돈오는 일정기간 동안의 점수 끝에 궁극적으로 얻는



깨우침인 것이다. 따라서 양자간의 돈오의 의미는 이와 같은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한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간화선에서는 닦음은 깨달음과 동시에 이루



어지는 것이다.98) 따라서 이때의 돈오의 의미는 닦음보다 앞선 지눌의 돈오의



개념과 일치점을 보인다. 즉 돈오아래 점수를 해야 하는 지눌의 돈오점수이론



과 돈오와 동시에 깨닫는 순간의 닦음은 돈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양쪽



다 돈오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두 이론은 이와 같은 일치점도



보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구산의 간화선과 지눌의 돈오점수론에 나타난 돈오의 의미를 간



략히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제 구산이 계승한 돈오점수 이론을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구산의 돈오점수는 지눌의 사상을 거의 그대로



97) 길희성, 앞의 , 101쪽. 98) 길희성, 앞의, 115-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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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하고 있다.



구산은 먼저 수행적 자세에 대해 당부하고 있다. 그는 비록 중생이 여러



생에 익힌 버릇이 깊으니, 바람이 고요해도 물결은 아직 솟구치듯 이치가 드



러나도 생각은 오히려 침입한다고 하으며, 또 이르기를 한 가리움이 눈에



있으면 헛꽃이 떨어진다고 하으니 법을 조금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것이다.99)



그런 자세로 깨달음을 추구해 가면 깨달음이란 찰나에 있는 것이요, 수행



함은 만겁에 있는 것이니, 모든 집착은 녹아버리고 온갖 의혹을 부수어서 선



입견이나 잘못된 주견을 흩어버리고 법을 간택하여 관조하되 크게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고 머리 위에 불을 끄듯이 하고 닭이 알을 품듯이 하여 오래오래 계



속 하다보면 반드시 들어가는 곳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100) 이러한 구산의 돈



오점수론은 지눌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돈오 후에도 습기가 남아있



기 때문에 계속 수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돈오점수의 사상이기 때문



이다.



돈오란 단박에 깨치는 것이다. 즉 돈오란 공적지한 마음에 대한 눈뜸이



다. 그 자리는 본래 일체의 번뇌 망상이 없는 여여한 부처의 자리이다. ‘마음



이 부처’ 라는 말은 이 때에 비로소 확인된다. 그러면 무엇을 깨치고 닦는다는



것인가. 다음의 게송에서 구산은 그 답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생각에 빛을 돌려 자성을 보게 되면



한량없이 묘한 지혜 걸림 없이 쓰게 되네



원래부터 번뇌 없고 애욕강물 맑았으니



달빛아래 태연하게 젓대를 희롱하네.101)



99) 같은 책, 47쪽. 100) 구산선풍 ,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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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깨침은 개념적으로 파악된 깨침이 아니다. 종교적 체험은



결코 다른 어떤 체험으로 환원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며 선 불



교에서의 깨침 또한 마찬가지이다.102) 논의하고자 하는 ‘깨침’이란 것은 엄



한 의미에서 가르쳐 줄 수 없고 깨닫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깨침의



내용을 규명하고자 함은 그 비합리적 요소를 무시하여 합리화하자는 뜻이 아



니며 비합리적인 것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남기자는 것이다.103) 그렇다면 돈오



는 자신의 참자아(眞我), 즉 허망한 꿈과 같은 미혹으로 인해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참마음을 홀연히 발견하게 됨을 의미한다104).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은 그 내용을 보다 간결하게 표현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등불 밝혀 장님이 눈뜸이여



천 년간 어둡던 방 한순간에 밝아지네



마음 쉬고 망상 없앰 이 또한 아니라



광대한 자비로서 중생을 위함이네.105)



佛祖께서 법을 설하시는 것은 병을 따라 약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병이 없다면 약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自性을 어둡게 하는 것은 오직



망상이며, 이 망상에 의해 좋고 궂은 경계에 근본을 버리고 枝末을 쫑으면서



흐름 따라 망령되이 행동하게 되니 이것을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



101) 구산선문 , 384쪽. 102) 이동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동시적 고찰 , 각 , 민족사, 1994 306쪽. 103) 구산선풍 , 307쪽. 104) 길희성, 같은 책, 90쪽. 105) 구산선풍 ,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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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는 지음이 없는 대도가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일체 모든 경계를 단번



에 놓아버리고 마음이 벽을 대하듯 해야만 한다는 것이 구산의 頓悟觀이



다.106)



구산은 돈오 이후에도 습기가 남아 있으니 계속 닦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



다. 이것은 돈오점수의 가장 기본으로서 지눌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



다.



구산이 이러한 점수를 주장하는 것은 등불이 비록 밝기는 하지만 햇빛으로



견줄 수가 없고 햇빛이 밝다해도 자신의 광명과는 비교할 수 없고, 지금 만일



닦지 않으면 악도에 떨어져서 온갖 괴로움이 몸을 얽어매고 벗어날 기약이 없



게 되어 괴롭고 괴로울 뿐이며 고난만 가득하리니 닦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다.107)



구산의 이러한 점수론은 중생의 근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근기에 맞



춘 수행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산은 중생의 근기를 셋으



로 나누고 있다. 그 가운데 上根大智는 일언지하에 생사를 단박 뛰어 넘을 수



있지만 중근기나 하근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사를 돌보지 않



고 몸이 부서지고 뼈가 가루가 되도록 모든 힘을 다해 정진하여 겨우 화두가



조금 익어졌다가도 정진의 기간이 지난 후 할 일없이 분주하게 남북으로 왔다



갔다하면서 本分事를 방일하게 되고 이때 옛 부터 익혀온 번뇌의 가림이 돌로



풀을 누른 듯이 다시 되살아나서 도를 장애하게 되는 것이 말로 다할 수가 없



다는 것이다.108)



그것은 頓悟하면 비록 부처와 같이 되나 이미 여러 생에 익힌 버릇이 깊어



서 바람이 고요해도 물결은 아직 솟구치듯 이치가 드러나도 생각은 오히려 침



106) 구산선문 , 511쪽. 107) 구산선풍 , 154쪽. 108) 구산선문 , 406∼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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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는 것처럼 법을 조금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서 옛 사람도 참되게 수행하는 자는 갈수록 어렵다고 한 것을 들어 자기 마음



을 밝히지 못한 자는 수행한 자취를 여의지 말고 큰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아



간절하고 부지런히 힘쓸 것을 강조하면서109),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을 찾아



탁마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110)



(5) 定慧雙修



구산은 지눌이 언급한 바와 같이 定과 慧를 반드시 함께 닦을 것을 강조했



다. 그에 관한 자세한 내용과 해석은 구산이 직접 그의 어록에서 언급하고 있



다. 이러한 점이 보조와 구산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지눌이 언급



한 성적등지란 정혜쌍수의 다른 이름으로 이것은 결사문에 보이듯이 정과 혜



를 겸수하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구산은 정혜쌍수를 설명하면서 보조의 견해를 많이 따르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바깥 경계는 적적하게 되어 가는 먼지



하나라도 묻을 수가 없게 된 것을 定이라 하고, 마음 경계가 성성하여 화두가



어둡지 않은 것을 慧라고 보고 있다. 구산은 이러한 자신의 견해에 대해 지눌



이 성성함과 적적함을 같이 지녀 성적등지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다라고 한



점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111)



더 나아가 六根이 경계를 거두어서 마음이 攀緣을 따르지 않는 것을 정이



109) 같은 책, 47쪽. 110) 구산, 석사자 , 68쪽. 111) 구산선풍 ,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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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고 마음과 경계가 모두 공하여 밝게 비추어 미혹함이 없는 것을 혜라고



하면서 이것이 비록 相을 닦아 들어가는 정, 혜 이지만 점점 닦아 들어가는



수행이라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112) 구산은 이러한 의미를 다음과 같은 게



송으로 나타내고 있다.



정과 혜를 같이 닦아 헛된 꿈을 깨고 보니



한밤중에 밝은 해가 시방세계 비추도다.



털끝 속에 바다 품고 모래알에 천지 안아



무수 가지 끝에 꽃은 절로 붉었구나.113)



이와 같이 살펴본바 惺惺寂寂과 定慧雙修가 그의 사상의 골격을 이루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성성적적은 지눌의 惺寂等持門과 유사한 의미로 寂은



定에 해당하고 惺은 慧에 해당되며, 寂寂으로 일어나는 생각을 다스리고 뒤에



惺惺으로 지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114)



그러나 특이한 점은 구산은 지눌과는 달리 성적등지를 화두참구의 일환으



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구산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보통 좌선한다는 것에 대



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坐라는 것은 바깥경계가 적적하고 안의 경계가



성성하여 화두가 이곳에 견고하게 머물러서 끊어지지 않고 역력한 상태를 말



하고 있으며, 선이란 것은 안의 경계가 성성하고 바깥경계가 적적하여 의심



덩어리가 홀로 드러나서 흩어지지 않고 간절하게 참구하는 것을 선이라 말하



고 있는 것이다.115) 이는 성성함과 적적함을 함께 지니고 정과 혜를 함께 닦



112) 같은 책, 162∼163쪽. 113) 구산선문 , 426쪽. 114) 같은 책, 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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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함을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어느 누가 무생법(無生法)을 깨닫고자 한다면



성성적적(惺惺寂寂) 함께 지녀 정(定)과 혜(慧)를 밝히어라



털끝이 바다 삼켜 광명을 통달하니



무수(無影樹) 가지마다 꽃향기가 절로 나네.116)



공부를 지을 때에 그저 空한 定만 지키지 말고 惺惺함과 寂寂함을 지녀야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것은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은 옳거니와 망상이 성



성한 것은 잘못이며,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은 옳지만 적적한 가운데 혼침에



빠지는 것은 잘못된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깥의 경계는 적적하고 안으



로는 화두가 성성하여 적적함과 성성함을 가지런히 지니고 선정과 지혜를 함



께 닦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정은 있고 지혜가 없으면 무명만 더



욱 늘어나고 지혜는 있으나 선정이 없으면 삿된 견해만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17) 그러한 점을 구산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성성적적 함께 지녀 정과 혜를 밝히니



티끌세계 국토마다 큰 기틀을 드러내네



두 쪽 견해 내지 않고 평등하게 행동하면



115) 같은 책, 556쪽. 116) 구산선풍 , 47쪽. 117) 같은 책,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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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마저 모두 건져 극락세계 이루리라.118)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산의 선사상에는 성성적적과 정혜쌍수적 사상



을 확연히 볼 수 있는데 이는 구산사상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수행자들이 위없는 菩提道를 이루고자 한다면 惺惺과 寂寂함을 함께 지녀 定



과 慧를 밝히기를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119)



Ⅴ 結 論



지금까지 지눌과 구산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선사의 생애



에 있어서는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는 두 선사



118) 구산선문 , 557쪽. 119) 구산선풍 , 59∼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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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생애와 활동에 있어 교단의 상황이 혼미한 때 교단의 쇄신에 전념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두 선사의 생존연대가 대략 칠백 여년이 넘는



차이는 있지만 교단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은 동질의 것이라고 보



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러한 종단의 부흥을 禪風의 振作으로 이끌어 간 점



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사상적인 면을 살펴본다면 구산은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음을 여



러 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心性에 대한 견해(心性論)와 이를 찾



기 위한 수행의 방법에서 지눌과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지눌의 眞心이라



는 개념이 구산의 眞性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져 인간의 참성품이 무엇인가를



가려내어 인간의 본래 순수한 마음을 찾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적



지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寂과 知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이 공적지는



인간을 가장 순수한 불성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역사적으



로 계승되는 지눌의 선사상과 일치하는 점이다.



수행론에 있어서 두 선사의 공통되는 면을 살펴보면 그들 모두 看話禪을



중요시했다는 점이다. 단 지눌은 最上根機에만 화두를 들라고 한 반면 구산은



간화선을 보다 더 대중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눌에 있어 간화선이



禪의 최종 단계라면 구산에 있어서는 간화선이 禪의 모든 것이라는 견해를 보



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눌의 선사상과 구산의 선사상을 구별



짓는 결정적인 내용인 한편 지눌과 구산이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단서이



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눌은 원돈신해문, 성적등지문이라는 수행을 지나 간화론을 세



워 화두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알음알이의 병을 제거할 수 있는 강한 수행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수행의 세 번 째 문인 경절문은 돈오, 혹은 원돈신해문의



완성이자 점수 혹은 성적등지문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구산의 수행론은 간화선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사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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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중을 간화선에 두고 있다. 따라서 그에 있어서는 수행의 바탕이 온통 간화



선이다. 단 여기서 주의할 것은 구산이 주장하는 간화선에는 항상 점수의 이



론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구산과 지눌은 차이점을 보인다.



구산은 근기의 상하에 관계없이 모든 수행자에게 간화선을 제시하면서 정과



혜를 닦는 것도 간화선과 함께 수행해야 하며 공안을 참구함에 점수적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간화선을 제외한 수행론에 있어서도 두 선사간의 견해에는 몇 가지 공통되



는 점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지눌은 先頓悟 後漸修를 주장하며 전통적인 頓悟



漸修說을 주장한다. 구산도 이러한 지눌의 수행관을 계승하여 돈오점수를 주



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눌이 주장하는 돈오점수는 解悟와 證悟



를 구분하여 먼저 돈오한 후 점수를 계속 닦아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고 있음



이 특징인데, 돈오점수론에 있어 구산도 頓悟를 시작으로 하여 계속 漸修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교로써 심성론과 수행론에 나타난 두 선사의 특징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구산의 생애와 법어집에서 지눌의 저서가 자주 인용되



어 있는 점으로 볼 때 지눌의 사상을 계승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져 많이 답습



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두 선사를 비교했는데, 지눌의 禪思想은 변형된 형태



이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가 창건한 송광사의 방장 九山에게 면



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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