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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2

2207 Philo Kalia | Facebook 심광섭 - ‘仁義’란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고, 본성이란 하늘이 내린 명이라면(天命之謂性)

(4) Philo Kalia | Facebook:

[대화]
원로 철학자이신 김태창(Taechang Kim) 선생님과 페북에서 뵙고 포스팅과 미학적인 글에 큰 사랑과 지지도 받고 더 넓은 생각의 지평을 얻을 수 있는 코멘트를 달아주시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최근 포스팅에도 코멘트를 해주셨고 서너 번 대화가 오간 것을 기록해두고 싶어 차례로 모았다.
‘仁義’란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고, 본성이란 하늘이 내린 명이라면(天命之謂性),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는 야훼 하나님의 의나
맹자를 통해 告한 하늘이 명한 인간의 본성(인의)은
그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같은 것이리라.
Taechang Kim
相通하는 바가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내용이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상호이해는 중요하지만 서로의 고유가치를 동일의 사유로 묶어버리면
서로 다른 것의 아우러짐을 통한 새엶의 지평을 닫아버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심광섭
Taechang Kim 相通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숙고해보니 통하는 점들이 있어 공감, 공명, 교류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상이한 것들이 상보함으로써 풍부해진다는 것이고, 고유 가치는 다른 개념(표현)으로 언표되는 한 훼손되거나 일방적으로 통일될 수 없음이지만, 여기서 내용이란 사람이라면 상황과 방도는 달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큰 이치(天理)에서 나온 情의 用이란 점에서 같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合理合情이고 順理順情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Taechang Kim
Philo Kalia 그래도 기독교의 義와 유교의 義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기독교와 유교의 共存相尊을 의미있게 한다고 생각됩니다. 다르다고 생각해 왔는데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은 동시에 거의 같다고 느껴진 것이 다 깊은 곳에서 다르고 그러면서도 함께 있음으로써 이제까지 몰랐던 새 지평열기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심광섭
Taechang Kim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중용의 '중용'은 정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義와 유교의 義사이에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는 깊은 곳에서 다른 존재론적 차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차이"라는 지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적인 혹은 생활세계적인 차이가 있다할지라도 대의명분이 있는 어떤 절박한 문제의식이나 역사적 과제 앞에서 근본을 생각하면 동학의 가르침인 吾心卽汝心의 계기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계기(실존적 순간)는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다윗에게서(삼상 13:14)도 나타난 것이 아닐런지요. 그렇지만 인심은 늘 인욕이 되기 쉽고 위태하니 誠敬의 태도가 필수이듯이, 역사적, 제도적, 교리적, 전례적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존중심은 모든 종교에 상이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근원 체험(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개신의 역사)에 근거하여 상고할 때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Taechang Kim
Philo Kalia 예. 대화가 되어서 기쁩니다. 선생님의 생각과 제 생각이 같을 필요는 없잖습니까? 지나 저의 미흡한 생각입니다만, 역사적 상황적 접근은 가능하지만 다름아닌 존재론적 차이가 기독교와 유교사이에 엄존한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인간존재의 근원(본성)은 죄지은 존재(=근본악)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롭다함을 인정받아야 할('義認')존재론적 실상을 전제로 해서 구제론적 복음의 실존관련적 뜻매김 자리매김이 뚜렷해지지만, 정통유교의 인간본성론의 핵심은 본질적 선성(善性)에 전제로하기 때문에 초월적 타자에 의한 의롭다함을 필요로 하지 않고 거기서 義의 대의명분을 빙자한 独善-独断-独裁에 의한 전체주의적 지배구조의 정당화 근거가 되기도 했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간내면에 깊이 잠재한 근본악에의 편향가능성에 대한 자각이 없는 仁義만으로는 뿌리깊은 偽仁偽義의 창궐에 대 개신적 대응이 곤난하다는 것이 저 자신의 체감 체험 체듣한 바 입니다. 유교에서 배울만한 점이 많지만 인간 본성론만으로는 근본악의 문제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없었고 황제의 선의지와 사대부의 선인식이 부합되면 선한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낙관론이 황제의 흑심과 사대부들의 욕심때문에 왜곡되고 변질되는 역사와 상황을 뿌리 바탕으로부터 바꿀 수 있는 초월적 타력의 개입을 처음부터 차단해 놓은 데서 오는 한계요 모순이라 생각됩니다. 구태어 제도적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초월적 타자의 눈과 귀와 입이 있어서 인간의 오만과 자기의인(=스스로 의롭다함)이 근원적 악에로의 편향을 제어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행태를 목격해온 저로서는 유교적 인간본성론과 기독교적 인간본성론과 부분적으로 겹치고 상통하는 점이 적지 않게 있지만 결코 같다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것을 선생님 생각으로 존중하고 배우려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대화은 계속하고 십습니다.
심광섭
Taechang Kim 선생님의 고견을 잘 읽었습니다. 몇 가지 의문이 생겨 대화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1)서양과 동양, 기독교와 유학(유교)의 차이가 존재론적 다름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역사적 과정과 지리적 배경의 차이에서 비롯되어 2~3천 년의 역사 속에서 생성된 것인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저는 후자에 무게중심을 두고 싶습니다. 물론 신학자 존 캅은 <존재구조의 비교연구>라는 책에서 세계 종교의 차이를 존재구조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한 바 있습니다.
(2)기독교의 인간 본성론이 원죄라는 근본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성악설과 가깝다는 것이 전통적 이론이고 중론이긴 합니다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이해에 기초한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을 완전폐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선행하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긍정할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또한 유학의 인간본성론도 성리학에서 人心道心說로 세미하게 전개된 것도 있고, 논어의 처음 장들에서 외적인 巧言令色을 금하고 내적인 성찰(一日三省吾身)을 다각도로 강조하고 있으며, 敬과 誠, 愼獨 등의 사상은 偽仁偽義가 생길 위험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으며, 이것이 유학의 인간본성론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사상이 감언행(感言行)의 일치를 통해 체감, 체득되어야 한다면 초월적 타자가 개입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타율적 인간 도덕을 벗어나 궁극적으로 자발적, 자율적, 주체적 인간의 도덕 형성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목적에 잘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평소 강조하시던 “脫在”신학과 어떤 연관성 있을까, 順연관성이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정의’, 유학의 기초 사상인 ‘仁義’는 존재론적 차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생성과정에서 형성된 차이라고 생각하며, 역사적 차이라는 관점에 설 때 오늘날 지구적 소통과 사유가 일어나는 시공간에서 동서양 사상이 잘 만나 공명하고 지구적 난제들을 극복하고 인간성을 심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면서 동양사상을 이웃으로 벗삼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제 인격과 우리 문화 안에 동서양의 사상과 문명이 혼합되어 새로운 실재를 형성해가는 도중(途中)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Giovanni di Paolo ,Dante and Beatrice before the Light, 1450.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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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영
행복이 인간의 제일 꿈 이라면....두분 대화를 보는 재미가 또한 행복입니다.ㅎ
Reply40 w
Philo Kalia
박순영 기쁨悅, 즐거움樂, 게다가 행복까지
복받은 주말 나눠주시니 흐뭇합니다.

Reply40 w
Philo Kalia
박순영 지구별보다 아름다운 곳이 아직 없으니 여기서 잘 살아야겠지요



유용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대학 때 동양종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추구하고, 경전들을 열독한 사람으로 과연 '차이' 혹은 '특징'을 심도깊게 연구했었습니다. 완전한 결론에는 못 이르렀지만, 제 생각으로는 장로교를 위시한 개혁교회의 신앙원리에 '완전타락'과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 파괴'가 있어서 인간이 자의적으로 신을 알 수도 없고, 신의 계시를 수용할 수도 없으며, 거룩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교리와 신조가 있는데, 이것에 대한 감리교의 해석이나 수용이 다른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감리교는 완전한 타락, 파괴에 동의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행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든지 동양사상과의 접촉점이 가능해 질 수 있지요.
Reply40 w
Philo Kalia
유용현 네, 논점을 콕 집어 주셨습니다. 원죄와 악에 기초한 전통적 기독교의 인간이해가 종교와 철학을 포함한 제학문에서 탐구 되는 인간이해와 잘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ply40 w
윤세형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논쟁을 보는 듯 합니다.
Reply40 w
Philo Kalia
윤세형 격조 높게 봐 주시니 영광입니다.
Reply40 w


Taechang Kim
정말 함께 서로 절차탁마하는
대화과정이 열리는 것같아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제 90을
바로 앞에 든 삶자리에서 남들
이 어떻게 말했다가 아니라 저
자신이 살아오면서 배우고 익
히고 깨닫고 삶속에 녹여 뼈와
창자에 새겨온 생각을 말씀드
리는 것이며, 저는 가르치는데
는 더디고 배우는데는 서두르
는 常学人(学者나教師가아님)
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배우려
는 의도에서 현재까지의 체감
체험 체득의 일단을 말씀올림
을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
랍니다. 저는 할아버지에게서
중국고전을 배웠고 그기초위에
서 중국사상을 공부했습니다.
그 후에 미국과 유럽에서 서양
사상을 공부하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몇몇 다른 나라에서 서
양과 동양의 사상 철학 문화 종
교들사이의 대화가능성에 촛
점을 둔 철학대화를 30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중국대륙을 10년동안 동서남북에 있는 대학이나
연구소를 찾아다니면서 자유롭고 활발한 대화를 전개
해서 많은 현장검증도 쌓았습니다. 서양에서의 체험
학습과 중국에서의 체험학습,
그리고 일본과 한국사이에서
서로 다른 관점과 입장에 있는
분들과 나누고 있는 대화를 통
해서 몸으로 느끼고 맘으로 가다듬고 얼로 삶에 살린다는
자세와 방법으로 쌓아 온 깨달
음의 현단계의 한쪼각에 불과
합니다. 서론이 길어 졌습니다.

1. 한마디로 유교라고 말할 때
공맹유교의 성선설과 순자-한비자등의 성악설이 대립해 있고 그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
는 공맹유교를 유교의 대표성
을 유지해 왔고 심교수님이 거
론하신 유교관련 언급이 그 쪽에 무게중심이 실려있는 것
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기독교
쪽도 소위 정통기독교라 칭해져왔던 입장과 관점에다
촛점을 맞춘 논의를 전개하려
했습니다. 평소에 존재신학적
인 말씀이 많으셨기 때문에
그쪽에서 논의하자면 정통기독
교와 정통유교사이에는 인간존
재의 파악과 인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고 양쪽이 우리의 사
고발전에 좋은 시사를 던져주는 기본토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피차
간의 역사적 상황적 변화 발전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기독교와 유교의 양쪽에서 정통과 다른 새로운 생각이
생성 정리 정립됨에 따라 성선
과 성악의 두 기틀이 겹치고
포개져서 기독교도 유교도 비슷한 인수분해과정을 걲게
되어 상호간의 대화가능성의
폭이 넓어젔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역사적 상황적 변화에
따른 인식-실천의 파라다임이
상호접근했다는 것이지 본래
의 차이가 없어진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기독교는 그 뿌리
바탕이 인간개개인의 영혼구제
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계시
하는 복음인데 비해서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지향하
는 통치철학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계구조가 다르고 인간존재
의 파악이 다르고 핵심주체가
다릅니다. 서양과 동야의 접근
만을 주안점으로 한다면 희랍
인문주의와 유교인본주의를
비교연구하는 쪽이 훨씬 공통
점을 많이,그리고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 상황적 변화에 따른 상호접근성이라는 각도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살펴
본다는 것은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
에 개활적인 언급으로 끝내거나 한두가지 사례로 해
결하기에는 신중한 심사숙고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입
니다. 서로 다르면서 함께 새
지평을 열어가는 일이 다 같다고 해서 끝내는 것보다
다이나믹한 사고력-상상력-
구상력을 기르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Reply40 w
Philo Kalia
Taechang Kim 선생님의 노숙한 사유와 너른 지평을 가늠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새기며 두고두고 제 공부의 과정에서 성찰하겠습니다.
Reply40 w
손미옥
Taechang Kim 선생님,멋지고부럽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학문의 경험과 체득을 쌓을 수있는 귀한 축복을 받으신 분^^


Reply40 w
Taechang Kim
손미옥 아닙니다. 너무 아둔해
서 남이 금방 깨닫는 것도 남
보다 몇배 힘들여야 깨닫게 되
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노력한
것뿐입니다. 공자께서 태어나
면서 아는 것이 으뜸이고 배워
서 아는 것이 중이며 힘들여 아
는 것은 하라고 하면서 힘들여
애를 써도 배우지도 알지도 못
하는 것에 대해서는 포기한 듯
한 말씀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은 공자가 포기한 그 그
룹에 속한 스스로를 알아차려
서 남보다 더 힘들여 애썼습니
다. 그러니까 배울 수 있는 기
회를 찾아 다녔습니다. 아직도
남을 가르치기 보다는 제가 배
워야할 것이 많으니까. 심광섭
선생님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
와 거기 계신 분들을 만나 배우
게 되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지 노년의 값진 学-思-行을 함
께 갈고 닦을 수 있는 哲友들의
모임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Reply40 w
손미옥
Taechang Kim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 말이 실감나네요^^
저는 공부해나가는 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배움을 즐기심은 벌써 학문의 樂 으뜸이지 않으신가요?
두분 선생님의 깊은 학문의 세계와 겸허함에 늘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Reply40 w
Taechang Kim
손미옥 예. 그렇게 보아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Reply40 w
송명호
Taechang Kim 장자에 묻지도 않았는데 끼어든다는 불사이응이란 말이 있어서 용기를 냅니다.
저는 공맹 유교라는 용어가 틀렸다고 봅니다. 공자의 유교는 동서양 대부분의 학자들이 모르며, 공자와 맹자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맹자와 순자의 유교는 군주에 대한 충성을 겅조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합나다.
인성 논쟁도 맹자와 공자는 다르며, 인의도 공자와 맹자는 다릅니다 공자는 인을 올바른 것을 찾아가는 과정과 이를 실천하려고 살산성인 목숨을 바침이 두었는데 맹자는 측은지심이라는 천리나 먼 것에서 찾았습니다. 안중근이 아등박문을 죽이는 것은 인의입니다. 그런데 측은지심하면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예도 사양지심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자의 예를 새소한 매너 수준을 파악악한 것입니다. 공자의 예는 천하를 바꾸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사양지심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저는 김일성 좋아하는 좌익에게 아무 말도 않습니다. 예는 사양지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Reply18 w
김영훈
아주 좋네요, 두 분의 생각의 차이가 충분히 논쟁거리가 되고 또한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네요.
두 분께 감사할 따름!
Reply40 w
Philo Kalia
김영훈 읽어 주시니 천망관중의 박수소리를 듣는듯 합니다. 🤣
Reply40 w
Troy Clapton Choi
교수님께 과외받고싶습니다 ㅎㅎ
Reply40 w
Philo Kalia
Troy Clapton Choi 영광입니다. ㅎㅎ
Reply40 w
손미옥
가장 본성은 죄없으신 순수? 하나님의 영을 받아 사람이 생령이 되었을 땐, 하나님께서 하나님만큼 존중하여 주신 자유의지가 존재했을 땐 아예 선악이 없는 에덴은 인간의 존재적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요?
인간이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된 때부터 인간의 고통이 시작되고 선악이 나뉘는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흔히 말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동인형으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인간과의 참 대화와 소통하는 관계를 원하셨던 것이니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레벨만큼이나 우리를 존중해 주시고 높여주심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원죄 이전에는 성악설이 성립되지 않는단 생각을 해봅니다.
원죄 이후 인간은 전적인 타락으로 성악설에 해당하고 저는 태창선생님의 입장이 더 와닿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필연이구요.
공자의 인의예지(仁義禮知)는 피조물인 인간의 인성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성선설의 仁은 인간이 잉태되었을 때는, 태고의 에덴동산의 원죄 이전 상태, 최초의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을 때의 선악 이전의 순수한 상태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인간에게 탯줄을 끊은 이후 배꼽이 남듯 그 이후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말의 양심?으로 선의 흔적이 남아있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상태가 되지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공자의 성선설보다 맹자의 성악설이 더 매력있게 다가오더이다. 기독교인이어서가 아니라, 선을 추구하며 현실적으로 선을 지켜나갈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세상에 악을 없애고 실질적인 선을 세워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서 입니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일전에 중독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전문가들이 말하길, 중독자가 치료의 가망성이 보이는 때가 역설적이게도 본인의 힘으로 절대 고칠 수 없다는 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인간이 본인은 스스로 구제할 수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임을 고백할 때 구원의 가능성이 시작되듯이 말입니다.
깊고 높고 넓은 학문적 경지에서 나누시는 대화에 저는 학자로서가 아닌 구냥 상식을 가진 일반 성도로서 제 의견을 개진한 것이오니 그릇된 견해가 있으시면 바로잡아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Reply40 wEdited
Philo Kalia
손미옥 (1)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는 인간이 계속 악만 저지르고 산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절망하실까요? 성악설, 성선설을 논의하자는 게 아닙니다. 해답이 없는 난제입니다. 다만 저는 하나님이 은총으로 주신 선한 본성을 믿을 뿐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惡한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믿음이지요 (2)유학은 인간의 원래의 성품에 인의예지의 본성이 있다고 봅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경악하면서 구출하려고 달려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타락한 인간에게는 이런 본성이 없는 것인가요? (3)맹자 성선설이고 순자의 성악설입니다. 맹자의 성선이든 순자의 성악이든 인간의 원래 선한 본성을 회복하자는 사상입니다. 성선을 강조하면 덕성을 강조하게 되고 성악을 강조하게 되면 외왕(外王)의 방향으로 나갑니다. 內聖外王 (4)중독은 심각한 질병입니다. 타자의 도움이 있어야 중독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벗어나서 주체로서 의존과 노예적 타율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치유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중독에서 벗어나서도 타자에 계속 의존해서 살아간다면 이것 또한 온전한 해결책이 아닐 것입니다. (5)기독교의 원죄나 전적 타락이 인간의 본성을 짓누르고 억압하며 어둠 속에 가둬두고 영원히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인간론이 아니길 바랍니다. 기독교의 인간론의 현재와 미래는 구원받고 해방된 인간으로서 기쁨과 감사의 삶, 정의와 평화를 지어나가는 인간상이 아닐까요?
Reply40 w
Taechang Kim
Philo Kalia 일본에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을 인정 존중하면
서, 가장 기본적인 동시에 가장
공통적인 문제의식이 될 수 있
는 화두로 도겐(道元1200-12
53 일본 曹洞宗의 개조)의 자력도와 신란(親鸞1173-1262 일본 浄土真宗의
개조)의 타력도를 둘러 싸고
오래고 신중한 논재이 이어지
고 있으며 전문가에 따라서는
정통유교는 도겐의 자력도에
가깝고 기독교는 신란의 타력도에 가깝다고 이해하면
참고가 될거라는 이야기를 합
니다. 한편 유교를 연구해온 사
람과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
은 주자학과 카토릭, 양명학과
개신교를 각각 연결시키면서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조직체
계와 계율과 행사에의 참여를
중시하는 카토릭은 다분히 주
자학적인 경향으로 이해하고
인간개개인의 근원적 선성과
그것의 발현(치양지)를 기본으
로 삼는 양명학의 특징으로 보고 개신교(특히 무교회주의
의 개신교)의 개인주체성을
강조하고 조직이라는 타자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개개
인의 주체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설정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어데까지나 불교
또는 유교의 입장과 관점에서
기독교를 앞에 놓고 대화가능
성을 모색하면서 함께 새로운
인식지평을 열어 보려는 노력
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저 자신
은 한국의 여러분과 함께 기독
교의 입장과 관점을 공유한다
는 전제에서 불교와 유교와의
대화가능성을 모색하고 함께
새로운 인식과 실천의 차원열
기를 시도하는데 중점을 둔다
는 것입니다. 어데까지나 각자
의 고유성과 가치성을 인정 존중하면서 함께 대화를 통해
서 새 차원 열기를 기도하려
면 우선 서로의 근원적인 차이
에 대한 철저한 인식 각성 자각
이 있고 거기서 함께 개신할 수
있는 차원 지평 경지를 열어 나
간다는 신중하고 인내있는 자
세와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입
니다. 영합이나 흡수가 아닌
상호이해요 相反相成을 통한
共進化를 공통목표로 한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체험지입
니다.
Reply40 w
손미옥
심광섭 에공 맞자요.
순자가 성악설이었지요.
1. 성선설, 성악설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떠오른는 저의 소견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을 뿐 저도 성선설 성악설을 논의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저희가 악한 행동을 할 때,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슬피 우시지요. 존재론적 죄성-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하심-을 말하는 것이지 저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지적인 노력과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데서 출발하기에 교만이나 아상이 있을 틈이 없다는게 제가 특히 기독교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믿음도 선물인 것도 자랑치 못하게하려고 주신 것이니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과 공의가 십자가로 이루심요
2.믿지않는 사람에게도 양심이란 존재하므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인간 존재는 점점 악해져 사이코패스의 인성,묻지마 살인 등도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이전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를 믿은 후 거듭남의 과정요.
4.중독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 구원이 시작됨같이스스로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고 문제가 있음을 부정하지않고 수용,인정할 때 어떤 치료든 출발이 된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렸던 겁니다.
친절햐고 다감하신 답변 감사드려요~♡
Reply40 wEdited
Philo Kalia
Taechang Kim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지혜의 말씀에 공감, 동의합니다. 모든 만남과 대화의 시도와 결실은 차이를 전제로 한 것임은 당연한 전제이겠지요. 차이가 없다면 대화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차이가 존재론적인 것인지, 역사적, 지리적,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형성된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대화를 넘어 실천을 목표로 할 때 그 목표가 같지 않으면 공동 실천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사료됩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각각의 사상, 교리, 예전, 법, 관습 등을 무시하고 영합, 흡수하려는 식민주의적 발상의 시도는 대화가 아니라 폭력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종교간 대화와는 별도로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제종교사상의 이해와 통합은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유학과 도불을 공부하는 것은 그들 종교와 대화하려고 하는 것 보다 한국인으서 저 자신의 정신적 역량과 지평을 확장학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儒佛道基가 활연관통되고 원융회통되어 일심에 이를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이 있음을 말씀드리면서, 선생님의 지혜를 구하고자합니다.
Reply40 w
Taechang Kim
Philo Kalia 예. 저는 저 자신
의 문제보다는 한일관계의 악
화가 심신혼을 아프게 하기 때
문에 그 아픔을 함께 하는 분들
과 힘을 합쳐서 생명개신의 새
경지를 열어가는데 전력투구하
는 입장이라 자기정체성확립과
자타관계정상화를 가능한 변행
개신하려는 것입니다. 거기에
서양사상만이 아니라 중국사상
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
의 사고와 판단과 행위를 틀지
어 왔는가를 냉정하게 살펴보
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중국고
전에의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한자
사용도 중국식 표현을 인용 차
용 원용하는 것으로는 중국화
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서요. 중국에 가서 10년동안
중국인들과 치열한 대화를 해
보고 우리가 쓰는 한자표현이
결국 자기네의 모방 응용 적용
에 불과하다는 폄하적언급에
대항하기 위해서 한겨레의 감
성과 역사적 체험이 녹아 들어
있는 한자활용을 창안함으로
써 비로서 걸맞는 인정과 대화
가 가능했던 경험을 여러번 했
습니다. 영어도 서양 사람들이
미쳐 생각지 못했던 우리 생각
을 담은 신조어를 통해서 고유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이해 납득시킬 수 있다는 경험
의 축적이 있습니다. 한자가
가진 동아시아사상-철학-문화-
예술-종교에서 갖는 소통창달
력을 중국모방적이 아닌 한민
주체적으로 선용-활용-창용하
는 효과는 큽니다.
Reply40 w
Philo Kalia
Taechang Kim 동북아 및 유럽의 맥락에서 한국 사상의 고유성과 보편성을 찾아 궁리하시는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과 부단한 노력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또한 대학생 시절부터 토착화 신학과 민중신학을 통해, 선생님과 같은 안목과 관점을 익혀왔으며, 때문에 지금 intra- + inter religious Dialogue에 손원영 교수와 함께 진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불도가 중국 및 인도에서 유입된 사상이지만 한국에 와서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중국과 일본과는 다르게 뿌리내리고 성장했는지에 대한 연구,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런 맥락과 함께 하는 기독교 신학 연구는 절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양 모방, 중국 모방에서 벗어나 한국사상의 고유성과 보편성을 위한 연구들이 그간 다행스럽게 많이 나와 있고, 이 성과 위에서 고무되어 계속 공부할 수 있고, 미학적 관점을 더하기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입니다.
Reply40 wEdited
Taechang Kim
Philo Kalia 예. 共学-互学-相学의 자세와 방법에 대한 자각
을 공유할 수 있으면 남어지는
각자의 사유 판단 실행의 축적
수정 개신하면 되니까.
Reply40 w
손미옥
Taechang Kim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셨네요.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않고 진정한 실력과 바탕이 있어야 가능함을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이 개인의 배움과 소양을 넘어서 울 나라의 자존감과 정체성 회복에도 귀한 영향을 미친 것이네요.
알아갈수록 존경하게 됩니다~💕
Reply40 wEdited
번역성경
페이스북 [원어번역성경] 그룹에 오셔서
원어성경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을 접해보세요.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Reply39 w
김김현수
아멘
Reply27 w
송명호
Taechang Kim 장자에 묻지도 않았는데 끼어든다는 불사이응이란 말이 있어서 용기를 냅니다.
저는 공맹 유교라는 용어가 틀렸다고 봅니다. 공자의 유교는 동서양 대부분의 학자들이 모르며, 공자와 맹자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맹자와 순자의 유교는 군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성 논쟁도 맹자와 공자는 다르며, 인의도 공자와 맹자는 다릅니다 공자는 인을 올바른 것을 찾아가는 과정과 이를 실천하려고 살신성인 목숨을 바침에 두었는데 맹자는 측은지심이라는 엉뚱한 것에서 찾았습니다. 안중근이 아등박문을 죽이는 것은 인의입니다. 그런데 측은지심하면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예도 사양지심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자의 예를 사소한 매너 수준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공자의 예는 천하를 바꾸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어떻게 이데올로기를 사양지심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저는 김일성 좋아하는 좌익에게 아무 말도 않습니다. 예는 사양지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Reply18 w
송명호
저의 인터넷이 고장이라 모바일로 쓰다 보니 오타가 많아서 고쳐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위의 잘못된 글도 지우지 못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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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위르겐 몰트만 독서
매주 금요일 진행하는 다음 신학 공부는 위르겐 몰트만이다.

독서모임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몰트만은 가장 많이 번역된 신학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신학 사상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각 시대의 문제의식을 시의적절하게 포착하여 말한다.
그의 사상은 폭넓고 두께가 있지만, 신학적 상상력을 체계적으로 전개한다.
몰트만의 이 사상 정도가 기준이 되어 근본주의, 문자주의, 기업교회, 권력교회를 몰아내고 한국 교회의 중심적 신학 사상이 되도록 공부하자.

a. 희망의 신학(1964) - 부활절
b.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 - 수난절
c.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 – 오순절

이 시기에 몰트만은 교회의 중요한 절기에 초점을 맞추어 신학을 전개했다.
1. 『삼위일체와 하느님 나라』(1980) – 사회적 삼위일체론
2.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1985) – 생태학적 창조론
3. 『예수 그리스도의 길』(1989) – 우주적 그리스도론
4. 『생명의 영』(1991) – 생명의 신학
5. 『오시는 하느님』(1995)–개인, 사회와 역사, 자연과 우주 및 하나님에게도 해당하는 종말론
6. 『신학적 사유의 경험들. 기독교 신학의 길과 형식』(1999)-그의 방법론은 맨 나중에 온다.
7. 『몰트만 자서전』(Weiter Raum, 2006) - 신학의 세계적 넓이

abc가 교회적 신학이라면 19년 계속된 그의 조직신학의 기여는 시간만이 아니라 공간, 역사만이 아니라 자연,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그리고 우주에까지 확장되고 심화된 신학, 이성적이고 실천적인 영성신학이다.
이번에 읽을 교재, 『살아 계신 하나님과 풍성한 생명』(2013년)은 완숙기인 87세에 출간된 책으로서 몰트만의 전 사상을 ‘삼위일체 하나님’, ‘생명’, ‘아름다움’과 ‘미학’으로 요약된 결정본이라고 생각한다. 문체도 문학적, 논문적이라기보다는 산문적이다.

[59회] 5월 5일, 금!!, 10.00-12.00
ZOOM(ID: 380-389-5679)
범위: 교재의 머리말과 서론(5-48쪽)
*부담 없으며 참여하실 분 페메로 연락 주시면 단톡방에 초대 하겠습니다.











2023/04/30

오구라 기조 小倉紀藏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조선사상전사' , '새로 읽는 논어 ' ,

Ogura Kizo오구라 기조 小倉紀藏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조선사상전사' , '새로 읽는 논어 ' , + : 네이버 블로그



Ogura Kizo오구라 기조 小倉紀藏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조선사상전사' , '새로 읽는 논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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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30.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와 기로 해석한 한국사회)



별점8.0점 | 네티즌리뷰 7건 (동작,영등포,마포아현,강남,강서,양천,고척,용산,동대문,개포,종로,정독,
저자 오구라 기조|역자 조성환|모시는사람들 |2017.12.20
원제 韓國は一個の哲學である <理>と<氣>の社會システム
페이지 272|ISBN 9791188765003|판형 규격외 변형


韓國は一個の哲學である 〈理〉と〈氣〉の社會システム (講談社學術文庫 2052) (文庫)


韓國は一個の哲學である (<理>と<氣>の社會システム)
小倉紀藏 저 | 講談社 | 1998

별점0.0점 | 네티즌리뷰 0건
저자 오구라 키조|講談社 |2011.05.12 재발간
페이지 264|ISBN 9784062920520

목차
0 韓國.道德志向的な國
1 上昇への切望――<理>志向性のしくみ
2 <理>と<氣>の生活空間
3 <理>と<氣>の文化體系
4 <理>と<氣>の社會構造
5 <理氣>の經濟.政治.歷史
6 <理氣>と世界.日本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1998)의 후기에서 “이 책은 무엇보다도 한국에 대한 찬탄과 비판의 책이다. 이 책의 제목에 두 가지가 모두 들어 있다. 찬탄은 ‘철학’이라는 말에, 비판은 ‘하나’라는 말에 담겨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150600075&code=910100&sat_menu=A074#csidxb20f4e03b85726fa1f7f1c20a52f04b




문고판 후기
p.258-259

... 이로 인해 일본과 한국의 아카데미즘은 점점 더 서구의 세계관으로 도배질되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장은 서구적 세계관의 대리인들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지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연구라는 분야에 과거에는 없었던 '우등생'이라는 사람들이 대거 가담하게 되어, 이 식민지화는 점점 더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의 시험 우등생 같은 이들이 어찌 한국을 인식할 수나 있겠는가? 권위를 인정받은 저명한 서구적 세계관(방법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한국을 인식했다는 흉내를 내고, 적당한 논문을 써서 대학에서 자리를 얻고, 대량의 예산(세금)을 확보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주구( )들을 나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 인식 같은 것은 못하고 있다. 내 인식의 성장은 이 책과 그 후에 쓴 한 두 권의 책으로 멈추고 말았다. 그 외에는 의미 있는 글은 없다.

그래도 다시 한번 내가 한국에 접근하는 일이 있을까? 한국이 나에게 접근하는 일이 있을까?

모른다.


2011년 3월

교토 후카쿠사에서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_




3장

'리'와 '기'의 생활공간




2. 리기의 생활학




2) '리'의 위광( )과 '리'의 상품




p.68

...

<제일의 리 = 달>은 근원적인 단지 하나의 '리'이다.

<제이의 리 = 달>은 만물에 동등하게 분배된 '리'로, 이것을 '분수리(分殊理 )'라고 한다.

단지 만물은 '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드러난 '리'도 각각 다른 것이다.







3.'리'와 '기'의 방법론




1)이분법의 극복




p.77




아니 그런데 이 책의 방법론 자체가 '리'와 '기'의 이분법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두 세계를 분리하기만 하는 분석은 오류이기 때문이다.

'리'의 세계와 '기'의 세계를 단지 나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두 세계는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붙어 있다. 두 세계는 서로 뒤섞여 있으면서 떨어져 있다. 이것을 주자학의 용어로는 '리'와 '기'는 '불상잡( ) 불상리( )' (서로 뒤섞여 있지도 않고 서로 떨어져 있지도 않다) 라고 한다.







2) '리'와 '기'의 상호 관계




...

'리'와 '기'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 관계에 있다. 주자가 말하듯이 '리'와 '기'는 불상리(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리'와 '기'는 불상잡( )이기 때문에 서로 완전히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둘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것으로, '기'가 '리'를 가리고 있다. 그리고 '기'의 맑고 탁한 정도에 따라 '리'를 드러나는 정도도 달라진다.







4장

'리'와 '기'의 문화 체계




14)




15) 의상의 리리무애법계 理理無碍法界




p.101

...

그런데 의상은 이 네 개 법계의 사상이 성립되기 이전에 '리리무애법계'라는 신기한 개념을 주장했다. 이것은 '리'에 어긋난 듯한 기묘한 생각이다.

즉 유일절ᆞ평등무차별ᆞ융통편재( )한 '리' (이것은 물론 주자학의 '리'가 아니라 화엄의 '리')들이 서로 무애하다(=장애가 없다) 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에 대해서는 이즈쓰 도시히코( )가 이슬람 철학자 Ibn al-'Arabi 이븐 아라비(1165-1240)의 사상을 빌려 설명한 것이 참고할 만하다.

이즈쓰는 '리리무애법계'의 '리'란 유일하고 절대적인 '리'가 개별적인 '리'로 자기분절(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이것은 주자학에서 말하는 '분수리(分殊理 )'와 같은 것이다.








>>




사종법계(四種法界),四法界사법계 four realms of reality




사종법계(四種法界),四法界 four realm..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t/l/s/t/j/s/0/1/2/5님의 블로그 : 네이버 블로그
자기소개가없습니다. ............................ 연구 목적,정보 블로그 (상업목적 이웃 사양)
blog.naver.com











리(理)[8]와 리(理)의 의존관계(상즉相卽)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8] 이때 리(理)는 사(事)와 일체로서의 리(理)이며, 개체적 리(理)를 인정하기에 가능한 교설이다.




의상(신라) - 나무위키 (namu.wiki)







>>




cf.)




理一分殊(이일분수) : 우주의 근원은 하나이지만, 이것이 나뉘어지면 각각 다른 형태와 성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理壹分殊(이일분수) 이치는 하나이나 나뉘어 다르니




* 리일분수(理一分殊); 세계 보편적 진리인 리일(理一: 하나의 리)이 각 개체에 부여된 것이 분수리(分殊理)다.




>>







5.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범신론은 만물이 개별의 이(理)를 구유하고 있지만 그 개별의 ‘이’는 보편적인 하나의 ‘이’와 동일하다는 ‘이일분수(理一分殊)’라는 명제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이일(理一)과 분수(分殊)를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과 각일기성(各一其性)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는 보편성과 특수성, 전체성과 개체성의 합일을 표징하는 것이다. 스피노자 사상의 현대적 부활은 그의 철학체계 속에 나타난 신, 자연, 인간 그리고 자유와 행복에 대한 그의 주장이 지속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들이며, 그의 사상으로부터 오늘날에도 우리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대안문명 건설의 단초가 거기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 최민자 , ' 스피노자의 사상과 그 현대적 부활 (2015)




>>

朝鮮思想全史



별점0.0점 | 네티즌리뷰 0건
저자 小倉 紀藏|筑摩書房新書 |2017.11.01
ISBN 9784480071040
도서


+


새로 읽는 논어



별점7.0점 | 네티즌리뷰 2건 (동작,영등포,구로,강서,양천,개포,정독,
저자 오구라 기조|역자 조영렬|교유서가 |2016.05.09
원제 新しい論語
페이지 268|ISBN 9788954640435|판형 규격외 변형


‘애니미즘’적 세계관이란 삼라만상에 생명이 깃든다는 세계관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에서 ‘생명’이 드러난다는 사상이다. 저자는 이러한 해석을 통해 이제까지 인류가 확실히 인식하지 못했던 생명관을 명확히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공자라는 사람의 생명철학이라고 강조하며, 공자의 세계관에 다가서고자 한다.


/

저자는 『논어』의 세계관에는 〈애니미즘〉의 색채가 짙다고 본다. 그러나 주자학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애니미즘〉을 부정하고, 『논어』와 유교 전반을 〈범령론汎靈論〉적으로 해석했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범령론〉이 〈애니미즘〉을 몰아낸 최종단계였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논어』 텍스트를 통해 밝히면서, 동아시아 〈애니미즘〉의 복권에 관해 철학적으로 논의한다.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인류가 확실히 인식하지 못했던 생명관을 명확히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공자라는 사람의 생명철학이라는 것이 저자의 기본 관점이다.




/




공자는 〈생명〉에 대한 동아시아의 두 가지 해석, 즉 〈애니미즘〉과 〈범령론〉에서 〈애니미즘〉을 대표하는 사상가였다. 〈범령론〉을 ‘범신론’이라 해도 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신神’이라는 글자가 일신교적 신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범령론〉이라 부른다. 〈범령론〉이란, 세계 혹은 우주가 하나의 ‘영靈(spirit)’ 혹은 영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스피노자의 범신론도 큰 의미에서는 〈범령론〉인데, 동양에서는 ‘기氣 사상’이 대표적인 〈범령론〉이다. 왜냐하면 ‘기’라는 것은 순수한 물질이 아니라, 생명이나 넋을 포함한 ‘영적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 전체가 하나의 기로 되어 있다고 보는 도가나 유가 등의 기 사상은 〈범령론〉이라 할 수 있다고 저자는 전제한다.




/



공자가 외친 ‘인仁’이라는 개념도 흔히 ‘도덕’이나 ‘사랑’으로 이해하지만, 좀더 정확하게는 인간이 둘 이상 있을 때 그 관계성 〈사이〉에서 문득 드러나는 〈생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파악한다. 즉 공자의 ‘인’은 〈사이의 생명〉이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이런 공자적 〈애니미즘〉 역시 〈제3의 생명〉의 세계관이다. 이에 비해, 〈범령론〉은 〈제2의 생명〉의 세계관이다. 이 책에서 〈범령론〉은 세계(우주)에 하나의 보편적이고 비육체적인 생명이 가득하다고 보는 사상 일반을 가리킨다.

애니미즘이라는 단어는 흔히 삼라만상에 생명이나 아니마가 깃들어 있다고 보는 세계관을 가리키는데, 저자는 이 책에서 ‘삼라만상에 생명이나 아니마가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주관共同主觀에 의해 〈생명〉을 문득 드러내는’ 세계관을 괄호를 붙여 〈애니미즘〉이라 일컫는다. 그러면서 이런 〈애니미즘〉을 보통의 애니미즘과 구별하기 위해 〈소울리즘soulism〉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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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3.<제3의 생명>의 부활을 향하여




p.249

<생명>은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갑자기, 우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똑같은 하늘을 보아도 <생명>을 느끼는 사람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제3의 생명>이다.

...

아니면 지금, 영적이고 보편적인 <생명>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물( ) <사이>, 물과 물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드러나는 <생명>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실은 많은 것일까.










>>




공자의 <사이의 생명>, <제3의 생명>적인 세계관은 공자적 애니미즘 (명료하게 표현해서 soulism)인데 이를 이어받은 후대는 범령론(통상적인 범신론)으로 오인하고 곡해하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주자학 이후에는 애니미즘 (공자적 애니미즘인 소울리즘 마저도)이 동아시아에서도 배격되어졌다고 보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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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마 츠요시(小島毅) 일본 도쿄대 교수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5152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1)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일보가 연중 펼치고 있는 ‘동양포럼’으로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온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가 최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와 ‘조선사상전사(朝鮮思想全史)’ 책 두 권을 펴냈다.‘한국은 하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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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원불교사상 책임연구원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5155

동양포럼(61) /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조선사상전사’ 등 서평 (2)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내가 생각하기에 이 땅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대략 1940년생 세대로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김형효나 김경재 세대). 그 이후의 세대들은 이른바 ‘전문화’의 길로 들어서거나 ‘근대화’의 세례를 ...
www.dynews.co.kr














2016년 1월 9일 이화여대에서 강연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

출처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http://www.dynews.co.kr)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5860

동양포럼(62) / 동양포럼 ‘한·중·일 회의’ 참가자 기고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새해에, 한국어의 탁월함을 생각한다 저는 일찍이 한국을 알게 되고, 한국말의 특출한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 왔습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저 자신이 느낀 한국어의 탁월함을 다시금 확인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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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생명 즉 ‘제3의 생명’은 ‘문득 나타나는 생명’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에 우발적으로 나타나는 생명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그것을 ‘미(美)’라든가 ‘아우라’라든가 ‘모노노 아와레 (일본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지만 실은 그것들은 ‘생명’인 것입니다. 다만 그것들은 육체적인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생명과는 다른 이름으로 표현되어 왔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이 그림에는 생명이 있다’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 생명을 정확히 이야기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육체적인 ‘제1의 생명’도 아니고 영적인 ‘제2의 생명’도 아니기 때문에 ‘제3의 생명’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제3의 생명’은 간주관적(間主觀的) 생명, 우발적 생명, 미적(美的) 생명이며, 다른 말로 하면 ‘사이의 생명’, ‘나타나는 생명’입니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면서 원래 주제인 한국어의 미의식이라는 내용에서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원래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 ‘생각’, ‘한’, ‘멋’ ... 한국어의 미의식과 생명

저는 ‘생각’, ‘한’, ‘멋’이라는 한국어에 ‘제3의 생명’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에 관해서는 동양포럼주간이신 김태창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말의 본래 문자는 ‘생각’이며 이는 글자 그대로 ‘생명의 각성’을 나타내는 것이겠습니다.
즉 한국어의 ‘생각하다’는 합리적인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의 약동(Elan Vital)을 수반하는 행위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생각하다’에 관한 김태창 선생님의 이러한 해석을 따르고자 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생각하다’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 번째는 ‘생각’의 ‘생’을 육체적인 ‘제1의 생명’이라고 파악하여 ‘생각하다’란 육체적 생명이 각성하는 작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생각’의 ‘생’을 영적인 ‘제2의 생명’이라고 파악하여 ‘생각하다’ 란 우주의 보편적인 섭리를 각성하는 작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生覺)하다’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의 ‘생’을 육체적인 ‘제1의 생명’과 보편적인 ‘제2의 생명’이 아니라 우발적인 ‘제3의 생명’이라고 해석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생각하다’는 일상의 한 순간 한 순간에 불꽃처럼 번쩍이는 미적인 감동과 정감을 지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다’라는 아주 평범한 행위 자체가 한국어의 세계에서는 개개의 육체적 생명의 각성과 우주의 보편적 생명의 각성, 그리고 일상에서의 미적 순간의 지각이라는 다양한 층위를 포함한 생명적 행위인 것입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까요? 다음은 ‘한’입니다. ‘한’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부정적인 감정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미의식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이란 동경이다’라고 해석합니다. 한국어의 고유어에 동경에 해당하는 어휘가 없고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저는 ‘한’이라는 말이 애초에 ‘동경’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은 이상적인 상태 즉 ‘아름답다’에 대한 동경과, 그 이상적인 상태와 주체가 합치되어 있지 않은 것에 따른 슬픔과 원통함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제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한’이라는 말의 뜻이 한일사전에는 ‘うらみ(원망)’라고 나와 있는데, TV 방송에서 한국인이 ‘공부가 한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이 가난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공부가 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한’은 ‘원망’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부에 대한 동경과 그것이 실현되지 못한 원통함’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요? 이 ‘한’이야말로 한국인의 일상 세계에서 지속과 순간이라는 상반되는 시간성을 응축시킨 미적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되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보편성에 대한 동경과 원통함입니다. 한국인의 마음을 늘 강한 동경과 원통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동경을 정적으로 내성화시키면 ‘곱다’라는 미(美)가 됩니다만, 때때로 동경은 고통스러운 원통함과 합체되여 ‘한’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한’이 언젠가는 풀리기를 늘 기원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순간에 기적처럼 ‘한’이 풀리는 일도 있습니다. 이 순간 동경과 원통함은 동시에 해방되어 ‘아름다운 세계’가 개벽합니다. ‘한을 풀다’란 보편적인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는 동경과 그 세계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는 슬픔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생각되다가 어느 순간 단숨에 작열하듯이 풀리는 순간의 절대적인 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에너지가 강한 ‘제3의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멋’입니다. ‘멋’은 한국어에 나타난 ‘제3의 생명’의 미의식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낸 말일 것입니다. ‘멋’은 우주적인 범위를 지닌 말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정신 세계에서는 ‘아름답다’ 같은 보편적인 미의식 즉 ‘제2의 생명’에 의한 세계관이 일본보다 더욱 강하기 때문에, 이 우주적인 보편성에 바람구멍을 내어 우발적인 생명을 나타내려면 그를 위해 필요한 자유의 힘도 강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멋’에 해당되는 일본어 ‘이키’는 지극히 인공적이며 섬세한 정감의 미묘한 작용에 관한 개념입니다만 한국의 ‘멋’은 인간관계 및 사회뿐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자유자재로 발휘됩니다. 보편성의 규범이 지나치게 강하면 ‘멋’은 그곳에 자유를 위한 바람구멍을 냅니다. ‘아름답다’는 보편적인 미이지만, 이 보편성이 틀에 박히면 억압이 되고 맙니다. 그때 ‘멋’은 미의 헤게모니를 해체시키거나 흐트러트립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미가 ‘제2의 생명’관에 기초하고 있다면 ‘멋’은 ‘제3의 생명’에 기초한 미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은 저자가 2016년 1월 9일 이화여대에서 강연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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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는 앞으로도 오구라 교수의 한국학 저서를 지속적으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오구라 기조 교수는 현대일본에서 한국철학이나 한국사상을 연구하는 학회 또는 연구회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이상(異常)한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일본 사회에서 한국철학을 비롯한 한국학(韓國學) 연구 및 활성화를 견인하는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학자로 유명하다.

http://news1.kr/articles/?3201023

일본 오구라 교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한글판 출간
(익산=뉴스1) 박슬용 기자 | 원광대학교(총장 김도종) 원불교사상연구원 조성환 박사가 지난 20년간 일본에서 한류 관련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였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한글판을 출간했다고 8일 밝혔다.이 책은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에서 한국철학을 강의하는 오구라 기조(小倉...
news1.kr














서양을 비롯한 현대문명은 어떤 의미에서 앞길이 막힌 궁경에 빠졌기에 어떻게 해서 현대문명을 구해낼 수 있는 새로운 철학을 구축하고자 철학자들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동양적인 가치와 세계관을 재평가함으로써 새로운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내고 인류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학자는 적지 않습니다. 김태창 주간도 그러한 한 분입니다. 김 주간은 끈질기게 동아시아의 영성을 탐구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 노력에 감복하고 있습니다.

출처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http://www.dynews.co.kr)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4795

동양포럼(60) / 국제포럼 ‘한·중·일 회의’ 소감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지난해 8월 저는 교토대학 오구라 연구실의 일원으로 한국에서 세 개의 포럼에 참가했습니다. ● 국제영성포럼-공공하는 영성지난해 8월 4~6일 꽃동네대학교의 주최로 국제 영성(靈性) 포럼이 개최됐습니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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群島の文明と大陸の文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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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小倉 紀藏|PHP硏究所 |2020.10.28
페이지 254|ISBN 9784569847542










http://www.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8942

139.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을 읽고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일보 동양포럼 기자]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와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일본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의 서평을 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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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의 서평






‘대륙의 문명’과 ‘군도(群島)의 문명’은 비교문명학의 기본 틀인 ‘중심-주변’이라는 ‘수직적인 축’을 답습한다. 한편으로 과거에는 중국문명, 오늘날은 미국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의 서양문명에 흠뻑 빠진 일본과 한국이라는 ‘주변문명’ 즉 일본-한국이라는 ‘수평적인 축’에서 일본문명을 비춰보고 고찰한다. 이와 같은 고찰에 있어서 현대 일본에서는 저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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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의 생명: 생물학적· 육체적 생명=개별적· 객관적· 상대적· 물질적 생명.

제2의 생명: 영적 생명=보편적· 절대적· 종교(정신)적· 비물질적· 집단적 생명

제3의 생명: 미적 생명=간주관적· 우발적· <사이>적 생명, ‘지금· 여기’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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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머니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 지배 아래, 격차사회에 따른 분단과 이질적인 타인에 대한 불관용이 만연하는 현대 세계에서, 군도적(群島的)인 ‘제3의 생명적’, ‘사이적’ 문명을 일본이 앞장서서 세계에 제창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면서, ‘공창(共創)하는 동아시아로’라고 호소한 것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신형코로나바이러스로 가로막히고 먹구름이 드리우는 나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사는 세계 사람들, 거대한 재앙에 신음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한 가닥의 밝은 빛을 비춰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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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스즈카의료과학대학 강사






...
논자가 보기에 ‘제2의 생명’과 ‘제3의 생명’은 원래 그 원천이 다르다. 저자가 밝혔듯이 덧없이 살다 죽는 한계(제1의 생명)를 가진 인간이 영원하고 보편적인 ‘하나(1)’라는 관념을 극도로 추구한 결과 도달하게 된 것이 ‘제2의 생명’이다. 이에 대해 ‘제3의 생명’은 개별성, 순간성, 감각성을 지닌 것이고, 또한 어린 아이가 철들기 전에 많이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어린 아이를 잘 살펴보면 그들은 이미 나날을 그렇게 살고 있다. 어른에는 생명이 없어 보이는 물건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주고 다루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린 아이가 아끼는 인형과 말하고 역을 떠나는 열차에게 손을 흔드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바로 그때 그(녀)와 인형이나 열차 사이에는 ‘제3의 생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도 ‘다오야메부리(たおやめぶり)’ 즉 “덧없고 아녀자(兒女子)같은 것”이며 여성적이고 유약하고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것이 인정(人情)의 본래 모습이고, 이것이 곧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라고 말했다. 노리나가에 의하면 무사적인 “올곧고 씩씩한” 마음가짐은 오히려 ‘가라고코로(漢意)’ 즉 불교・ 유교와 같은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꾸며진 정신이라는 것이다. (유약함이 곧 일본의 원래 정신이라는 노리나가의 주장은 무사사회 일본에서는 아주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오구라의 절묘한 균형 감각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민주주의 등의 정치, 새로운 복지와 교육, 리얼리즘도 설계주의도 아닌 외교 방식 등 사회의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저자가 ‘아니미즘’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에 의해 변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구라 생명론과 문명론이 장차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하면서 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출처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http://www.dynews.co.kr)






2023/04/29

알라딘: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알라딘: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 문명과 가치 총서 7
박현모,정윤재,정순우,가타오카 류,김봉진,김태창,야규 마코토,고희탁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2016-05-10


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교보 
종이책 18,000원
eBook 20,000원








책소개
세계 인류문명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고유 가치를 발견하고 탐구하고자 기획한 '문명과 가치 총서' 7권. 동양 문명 속에도 서구 근대성의 틀 안에 있는 공공성 담론과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하고 근원적인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고유한 형식의 공공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양의 공공성 담론이 인성론이나 공부론과 같은 깊은 철학적 성찰과 맞닿아 있음에 주목하고, 그들 지식인들의 개인과 사회 공동체, 국가에 대한 오랜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 재해석하고 수용할 만한 공공 담론을 산출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목차


*총론
• 한국적 공공 이해-그 공통 인식을 위한 대화적 연구(김태창)

• 14세기 말에서 16세기 중반 ‘공공’ 용례의 검토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문집총간>을 중심으로(가타오카 류)
• 조선 선비들을 통해서 본 공공성의 개념과 쟁점들(정순우)
• 최한기와 일본의 공공 사상가 비교 연구(야규 마코토)
• 민세 안재홍의 다사리이념과 ‘공공함’의 정치(정윤재)
• 사중지공(私中之公)으로 본 정조의 국가경영(박현모)
• 선비와 사무라이의 공공의식(김봉진)
• 일본 근대 여명기 국가 공공성 의식
-‘민’의 참여와 체제의 대응을 둘러싼 니노미야 손토쿠의 사례를 중심으로(고희탁)
-‘민’의 참여와 체제 대응을 둘러싼 동학·천도교 운동의 사례를 중심으로(고희탁)

• 면우 곽종석의 공공이학(公共理學)(야규 마코토)



저자 및 역자소개
박현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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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서울대학교에서 ‘정조(正祖)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1년부터 14년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조와 세종, 정도전과 최명길 등 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연구했다. 2013년부터는 미국의 조지메이슨대학교, 일본의 ‘교토포럼’ 등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형 리더십’을 강의하는 한편, 시민강좌 ‘실록학교’를 운영했다(2022년 기준 3,600여 명 수료). 현재 여주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및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대학교양 필수과목인 ‘세종리더십’을 대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태종평전』, 『정조평전』, 『정조 사후 63년』, 『세종처럼』 등이 있고, 『몸의정치』와 『휴머니즘과 폭력』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국대전의 정치학」, 「정약용의 군주론: 정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국왕의 동선과 정치재량권의 관계에 대한 연구: 정조와 순조」 등 90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접기

최근작 : <백 년간의 프로젝트 (1351-1450)>,<태종 평전>,<세종학 개론> … 총 43종 (모두보기)

정윤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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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과 졸업(정치학박사)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국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방문학자 역임
현대사상연구회 회장,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회장 역임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처장, 국제협력처장,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초대소장, 한국학진흥사업단 단장 역임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 교수

주요 저서
《한국현대정치사》(공저), 《미래한국의 정치적 리더십》(공저), 《남북한의 최고지도자》(공저), 《장면ㆍ윤보선ㆍ박정희》(공저), 《유교리더십과 한국정치》(공저), 《한국정치사상의 비교연구》(공저), 《세종의 국가경영》(공저), 《세종리더십의 형성과 전개》(공저), 《세종과 재상, 그들의 리더십》(공저), 《청소년을 위한 세종리더십 이야기》(공저), 《비폭력과 한국정치》(공역), 《리더십강의》(공역), 《영혼의 리더십: 간디의 생애와 유산》(공역), 《다사리공동체를 향하여: 민세 안재홍 평전》, 《다사리 국가론》, 《정치리더십과 한국민주주의》, 《비살생 정치학》(단독 번역) 등 접기

최근작 : <안재홍 평전>,<한국정치 리더십론>,<민족운동가들의 교류와 협동> … 총 25종 (모두보기)

정순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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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출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버클리 대학교 및 캐나다 UBC 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파리 7대학 강의교수를 지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장 및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2013년 현재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후기 교육사와 지성사 분야에 관한 약 40여 권의 공저서, 10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조선조 선비들의 사유 방식과 삶의 태도를 다양한 시선으로 헤아려 보고, 그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공부의 발견>(2007), <도산서원>(공저, 2001), <지식 변동의 사회사>(공저, 2003), <東亞傳統敎育與學禮學規>(공저, 2005), <서당의 사회사>(2013)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후조당 종가의 가문 세우기>,<우반동 양반가의 가계경영> … 총 23종 (모두보기)

가타오카 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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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생. 도호쿠 대학 문학연구과 준교수. 와세다대학 문학연구과 박사후기과정 단위 취득 자퇴. 전공은 근세유학, 동아시아사상사.

최근작 : <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교양으로 읽는 일본사상사> … 총 4종 (모두보기)

김봉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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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하고 1985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 대학원 외교학과를 수료했다. 동경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박사 과정(국제관계론 전공)을 수료(1991)하고 1993년에 기타큐슈北九州대학 조교수, 2001년부터 2021년까지 기타큐슈 시립대학(대학명 변경)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비교 사상사이며, 현 기타큐슈 시립대학 명예교수이자 동양문화연구소(동경)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東アジア「開明」知識人の思惟空間 ―鄭觀應·福澤諭吉·兪吉濬の比較研究》(九州大学出版会, 2004)가 있으며, 공저로는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지식산업사, 2019), 《한국 국제정치학, 미래 백년의 설계》(사회평론, 2018), 《辛亥革命とアジア》(お茶の水書房, 2013), 《国際文化関係史研究》(東京大学出版会, 2013), 《歴史と和解》(東京大学出版会, 2011), 《韓国併合と現代》(明石書店, 2008) 등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다시 보는 옛 미래>,<안중근과 일본, 일본인>,<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 … 총 8종 (모두보기)

김태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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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주한미국경제기획보좌관, 충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동경대학교 객원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객원연구원, 호주 시드니경영대학원 객원교수, 공공철학공동연구소장(오사카) 등을 역임하였다. 일본에서 「교토포럼」을 20여 년 동안 기획하고 이끌면서, 50여 개국이 넘는 나라와 수천명의 학자들과 철학대화를 전개하였다.
동양포럼 주간

최근작 : <충청도 청주 동학농민혁명>,<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 대화>,<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 … 총 5종 (모두보기)

야규 마코토 (柳生眞)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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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예안대학 일어전가

최근작 : <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 총 2종 (모두보기)

고희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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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연구교수

최근작 : <조선왕조의 공공성 담론>,<한국과 일본의 공공의식 비교 연구> … 총 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동양 문명 속에도 서구 근대성의 틀 안에 있는 공공성 담론과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하고 근원적인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고유한 형식의 공공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양의 공공성 담론이 인성론이나 공부론과 같은 깊은 철학적 성찰과 맞닿아 있음에 주목하고, 그들 지식인들의 개인과 사회 공동체, 국가에 대한 오랜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 재해석하고 수용할 만한 공공 담론을 산출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책은 세계 인류문명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고유 가치를 발견하고 탐구하고자 기획한 ‘문명과 가치 총서’의 제7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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