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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2

기세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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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기세춘(奇世春, 1933년 ~ )은 대한민국의 재야운동가이자 한학자이다. 본관은 행주. 호는 묵점(墨店).[1]

생애[편집]

1933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2] 조선 선조 때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한 기대승의 15대손이며, 조부는 의병활동을, 부친은 항일운동을 했다. 일본학교에 다니는 대신 서당에서 사서삼경 등 한학수업을 받다가 나중에 초등학교 5학년으로 편입하였다.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으나, 4.19혁명에 적극가담하고, 5.16이 일어나자 입산했다.

서울시에 근무하면서 1963년 동학혁명연구회를 창립, 후진국개발론, 통일문제를 연구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신영복 교수 등과 함께 조사를 받았으나 기소유예로 판결을 받아 옥살이를 하지 않았다.

이후 대전에서 작은 기계공장을 운영하며 사출기, 자동포장기 등을 설계, 제작하며, '평화통일연구회' '사월혁명연구회' '전북민주동우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국민화합운동연합' 등에서 사회운동을 했다.

동서양의 철학에 몰입하여 다수의 번역서, 해설서를 냈다.[3]

저서[편집]

  • 묵자 - 천하에 남이란 없다, 1992년
  • 예수와 묵자, 문익환 공저, 1994년
  • 중국역대시가선집, 신영복 공저, 1994년
  • 주체철학 노트, 1997년
  • 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 - 유가, 묵가, 도가, 주역, 2002년
  • 동양고전 산책 1,2권, 2005년
  • 장자, 2006년
  • 장자(완역), 2007년
  • 성리학 개론 2007년
  • 노자 강의, 2008년
  • 묵자, 2009년
  • 논어 강의, 2010년

출처[편집]

2021/06/04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보자. - 당당뉴스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보자. - 당당뉴스: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보자.
배종열  |  bbx@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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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9월 24일 (금) 22:44:32
최종편집 : 2010년 09월 25일 (토) 13:46:42 [조회수 : 2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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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당당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보자.


배종열 (평통사 상임대표,/ 전 전농 의장)




   
함석헌선생은 유신시대 반독재의 지도자요 ‘씨알의 소리’로 민중을 깨우치고 많은 저술을 통해서 지성인사회의 거성으로 받들어져 오늘날 동서 철학계에서도 그분의 철학사상을 재조명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해온 공범인 일본 철학계나 서구 철학계가 그분을 위대한 철학자로 떠받든다 하더라도 제국주의의 오랜 지배아래 고난의 길을 살아온 민중의 시각에서 그 역사관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 역사의식은 재평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저같이 천학비재한 농투성이인 농민운동가의 한사람이 훌륭한 분의 저서를 감히 평가할 수 있을까마는 특히 그 책에 해방공간과 6,25전란을 언급하고 있는데 미군정의 남한사회 통치기구를 일본 식민지지배구조를 온존시키고,① 이승만을 이용하여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잘못된 미국의 대한정책②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 6.25동란을 이승만 독재와 미국 입장에서 왜곡 기술하여 미 제국의 한반도 점령정책을 오히려 시혜로 여기는 역사 왜곡③을 민족의 한사람으로 좌시할 수 없다. 사후에 가신 그분께나 그를 존경하는 많은 분들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린다. 나는 그 모든 분들 존경하지만 보다 우리 역사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이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음을 용서하시기 바란다.

첫째, 역사관의 문제

 

   
그분은 역사관에는 여러 사관이 있는데 종교적 사관이 가장 올바른 사관이라고(우주,인생속에 있으면서도 우주, 인생을 뛰어넘는 것이 종교다. 그러므로 참 역사는 종교적인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말하고 ‘나의 종교는「아가페」적이고 (1)성경은 역사의 근본을 하나님께 구한다. (2)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하였다고 한다. (3) 종말관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p42맨밑줄~p57)

이런 전제는 신앙고백으로는 지극하고 갸륵하지만 성경이 역사 기록이 아니듯이 역사관을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거나 보편성만을 강조하면 오류를 범한다고 말하고 싶다. 역사는 인간의 역사며 한국의 역사는 한국인의 역사요 한국 민족의 역사며 우리 민중의 삶의 역사이기 때문에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고증되어야 한다. 역사를 김부식처럼 유교적 관점이거나 일연처럼 불교적 관점이거나 함석헌처럼 기독교적 관점이거나 어떤 종교적 관점이든 올바르지 않다. 기독교사관이 잘못이란 것은 역사가 증언한다. 11세기 예루살렘을 서로 차지하려고 벌인 십자군전쟁④, 콜롬부스 일행의 아메리카 탐험과 인디안 살륙⑤, 17세기 이후 기독교세계의 세계제패⑥, 오늘날 미국의 네오콘에 의한 전쟁도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갈등을 볼 때 종교적 역사관은 파탄난 것이라 판단된다.

덧붙어 말씀드리면 성경강해의 일환으로 한 내용이니까 모두 긍정할 수 있지만 그분의 신관(神觀)은 자주적이지 못하다. p124 '하나님 섬기기'에서 "우리 조상들이 섬긴 神은 다신교인데 그 중에서 두드러진 지위를 가진 ‘하나님’이 있는데. 기독교에서 보는 듯한 유일신은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며 많은 설명을 하고 있지만 홍익인간의 하나님이시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같이 양심의 깨끗함 만을 위하여 엄격하게 회개를 요구하는 하나님은 아니였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만 온전한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겨레가 섬겨온 하나님도 온전한 하나님이라 주장하고 싶다, 함옹이 말한대로 홍익인간의 하나님이시고 天人合一 人中天地一의 하나님이고 性命雙修의 깊은 경지에 이르면 우아가 하나되는 우주적 인간이 되어 자비가 넘치는 것이다.

"3,宗敎的史觀(p43)" 아래서 6줄 이하에서 "이런 의미에서 孟子가 墨子의 兼愛說을 반박한 것은 까닭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기술 되어 있는데 문익환 홍근수,기세춘공저 「예수와 묵자」p78 첫 줄에서 기세춘씨는 「열하일기」⑦ 도강록을 인용하여; "백이, 숙제와 묵자는 고려인이다⑧"라 했고, 공자는 관중이 없었다면 漢族 제국이 고죽국에 망해서 조선족의 머리와 옷을 입고 살게 될 뻔 했다고 말해 고죽국이 고려임을 확인해준다. 문익환목사님은 「예수와 묵자」에서 "묵자와 예수의 하나님은 똑 같은 유일신",  "묵자와 예수의 하나님은 하나⑨ "라 했고, 또 신영복씨는 겸애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고 번역하고 겸애는 하나님의 뜻(天志 )이라 했다⑩. 나는 묵비사염, 반전, 평화사상은 전쟁문화, 과소비문화, 퇴폐문화를 거부하고 인간이 역사의 주체로 서야한다⑪. 는 최고의 경지로서 예수님의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리라"는 말씀을 뛰어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함옹은 우리 전통문화나 고려인들의 사상을 천박한 것으로만 인식하고 그 시대의 주류사회 담론에 치우쳐 자주적 역사관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 민족은 詩 없는 민족이요, 哲學없는 국민이요, 宗敎없는 민중이다(p112, 11~12줄)

이어서 “宗敎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남에게서 빌려온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유교가 그렇고, 불교가 그렇고, 기독교가 그렇다. 근래에 오다가 東學이요, 천도교요 하나 요컨대 밖에서 들어온 남의 사상을 요리 따고 저리 따서 섞어놓은 비빔밥이지 정말 우리의 것이 아니다, 大倧敎까지도 이러한 잘못에 눈이 팔려...”(p112;15째줄~19줄)
이렇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관을 自嘲的 역사관이라 말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우리 민족, 우리 국민, 우리 민중을 폄하 할 수 있는가?

1) 詩가 없다는데 처용가가 있고 서동요가 있고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준 을지문덕의 시가 등 열거할 수 없다. 신채호 선생은 우리 선조들의 시들이 이두문에서 한역 과정에서 사라지고 고려 입국 때나 이조 입국 시절 고서들을 불사르는 과정에서 시집들이 사라졌으리라고 추정하셨다.⑫ 고려 말에는 제왕운기⑬와 같이 역사를 시로 쓸 정도로 시가 발전한 것으로 안다. 근현대에 와서 윤동주 시인, 신동엽 시인, 김지하 시인, 김남주 시인, 고은 시인 등 열거할 수 없고 노동자 시인, 농민 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2) 哲學이 없는 국민이라 하셨는데 우리 국민의 철학은 저항과 개벽의 철학이다. ‘지신밟기’ ‘비석치기’ ‘탈춤’ ‘농악’ 등 모든 민속놀이의 몸놀림, 춤사위 가락마다 저항과 개벽의식이 깔려 있다. 춤사위에 계급 저항의식이 표현되어 있고 풍물에서도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라고 굿을 치는데 앞부분은 지주에 저항하는 굿판이라면 뒷부분은 외세에 저항하는 굿판이 아닌가? 민중 신앙으로 전래된 정감록 등 도참설에는 새세상에 대한 꿈을 꾸며 살았다. 우리 민중은 옛 역사를 들지 않더라도 임진왜란 시기 의병들, 19세기의 민란, 동학농민혁명, 의병투쟁, 3.1독립운동, 4,19혁명, 5,18민중항쟁, 6월항쟁은 세계사의 모범을 보인 혁명운동이었다. 전래 철학은 천부경과 삼일신고에 잘 나타난대로 삼재(三才)사상이다⑭하늘, 땅, 사람이 하나 되는 天極,地極,太極의 철학이다. 인체내서는 性, 命, 精으로, 또 心, 氣, 身으로 나타낸다. 훈민정음에도 • ㅡ ㅣ음이 기본이 되는 것이요 형상에서는 圓 ,方, 角 이요, 하느님 사상에도 환인, 환웅, 환검의 삼위 사상이다 . 이 삼재사상은 오행사상과 함께 중국의 음양사상에 앞선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⑮

철종시대의 기철학자 최한기선생의 기학2-ⓛ은 동서 어느 철학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민족의 기철학의 총결산이라고 믿는다. 이 기철학은 다음에 말하는 선교수련에서 얻어지는 우리 겨레의 종교요 철학이다

3) 우리 민중은 종교가 없는 민중이고 모든 종교가 남의 것에서 빌려온, 남의 사상을 요리 따고 저리 따서 섞어놓은 비빔밥이라 하였는데 과연 그런가? 동화 작가 윤기현 선생이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때 그의 훌륭한 농사꾼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자 햇볕에 그을린 농사꾼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부끄러워 숨어버렸다"고 그때를 참회했었다. 이와 같이 식민지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자기 조국, 자기 조상들의 것은 모두 초라하고 식민지 종주국의 것은 좋아만 보였던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80평생을 살아 왔지만 우리 고유종교의 우수성과 긍정적 면을 인정하고 기독교와 같은 종교적 편협성을 극복하고 21세기 이후의 영성세계의 미래를 예비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⑴ 우리 고유 종교는 선교(仙敎)로 불교, 유교, 도교 이전에 창시된 고조선시대, 삼국시대에 민중신앙의 원류였다. 단제 신채호 선생도「동국고대선교고」에서 ‘선교는 동국 고대에 성행한 종교로 天仙, 國仙, 大仙이란 명칭을 삼국건국이전과 삼국초기에 사용한 것을 보면, 중국의 도교나 인도의 불교 전래 이전에 동국고유의 종교라 말할 수 있으며, 최고운은 나랑비서(鸞郞碑序)에서 국유현현묘지도 선교시이(國有玄妙之道 仙敎是已)라 하였으며, 구비(口碑), 잔서를 살펴보건대 古書에 환인이 아들 환웅을 보내어 삼천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오니 그가 환웅천왕이라, 아들 단군을 생하였다 하였으며, 기원람에는 이르되 환인은 천인이요, 환웅은 신이라 하였으니 환인, 환웅, 단군(환검)은 삼신이요, 삼신은 곧 선교 창립의 시조라 하였다.’2-② 이러한 선교가 고구려에서는 선인, 신라에서는 화랑도 등으로 번창하다가 불교숭배의 고려조와 유교숭배의 조선시대를 지나며 사대주의 정권과 관료들의 극심한 탄압 속에 면면이 부지하다가 1909년 흥암 나철에 의해 대종교 란 이름으로 재출발하고 일제하에서 신흥군관학교를 설립하고, 북로군정서를 두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나라사랑, 겨레사랑, 인류사랑을 실천한다2-③ 외국에도 선교되고 있다.2-④

⑵ 동학은 서세동점의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 겨레 속에 세 분의 종교지도자가 탄생하는데, 동학 또는 천도교 창시자 수운 최제우선생과 대순진리회 창시자 강증산선생,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정이다. 이분들은 외세를 극복하고 외래문화의 거센 풍랑 속에 민족정기를 살려내며 인간 영성의 주체성을 확립한 지도자라 믿는다. 여기서 원불교는 어떻든 불교이고, 강증산선생은 자신이 천재라 하는 것을 보면 기독교처럼 메시아이즘이 강하다 하겠다.

그러나 수은 최제우 선생의 동학은 외래종교에서 교훈 받은 바는 있지만 민중주체 ‘无極大道 後天開闢’의 사상은 우리 고유종교인 선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사상을 근저에 깐 주체적 종교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제2대 교주 최시형 선생의 인시천 사상과 그 철저한 실천은 흠모할 만하고 이 사상이 동학농민전쟁 중에도 잘 실천되었다는 것은 혼란기 조선 민중을 사로잡고 남음이 있다.

동경대전의 중요주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는 우리 고유 종교 선교 안에서 천인합일 성명쌍수 사상을 승화시킨 것이요, ‘지기금지 원위대강’에서도 ‘지기’는 우리 선교의 기 체험에서 왔다고 본다. 또 영부를 사용한 것도 우리 古記에 한웅이 천부인 셋을 가지고 내려오셨다는 사실과 부합하는 것으로 모든 부분이 남의 것에서 온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또 ‘궁궁을을’은 반전, 평화, 생명사상이 담긴 것으로 나는 우리 민중의 노래 아리랑과도 상통하는 생명사상이라 말하고 싶다.2~⑤

여기서 우리의 석학 도올 김용옥 씨는 우리 민족이 진정한 바이블이 있다면 동경대전이라고 「조선사상사대관」에서 말씀하였고2-⑥, 김지하 시인은 동학은 우리민족 특유의 민중적 생명사상을 확고한 중심으로 삼아 모든 종교의 민중적 생명사상을 창조적으로 통일한 보편적 생명사상이라 했다.2-⑦

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듯이 대종교, 동학-천도교인들은 대부분 개혁적 삶을 살았다. 전봉준 장군을 비릇한 동학접주들과 동학농민군들이 그러하고 대종교 교인들과 박인진 도정 등을 비롯한 북접의 많은 천도교인들이 항일운동에 생을 바친 것이나 김개남포의 김단아씨는 오랜 수련 후 진주에 내려가 형평사를 조직하는 등 사회 개혁운동에 헌신한다.2-⑧

셋째, ‘32. 解放’ ‘도적 같이 온 해방’ ‘하늘이 준 떡’

‘그 악랄한 이리가 이 양을 놓고 물러갈 줄은 저희도 생각 못했거니와 우리도 감히 생각 못하였다.....적어도 이성을 가지고는 그 물러갈 날을 예측할 수 없었다’ 이렇게 기술하고 있는데 예언자는 수백년 후 예수가 탄생할 것을 알고 예언했고, 역사가 토인비는 100년 앞날을 내다본다 했다. 국내에서 항일투쟁하던 여운형 선생 동료들은 일본이 망할것을 예견하고 그를 대비해 「건국동맹」을 건설하고,2~⑨ 중국과 중국 동북3성, 연해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전사들은 이태리 뭇솔리니가 항복하고,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자살하고 일본이 홀로 남았으니 일본이 얼마 가지 않아서 패망할 것을 알고 국내 진입을 시도하거나 준비했다2~⑪고 했는데, 해방이 도적 같이 왔다는 분을 역사 철학자라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여기서 적어도 ⑴ 해방은 어떤 의미인가? ⑵우리에게 해방이 있었는가? ⑶ 미군은 해방군인가? 점령군인가? ⑷ 해방공간이 있었다면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이런 점들이 최소한 기술되었어야 했다.

넷째, 33. 六․二五

‘6,25전쟁은 그날 새벽까지 몰랐다,,,, 저쪽에서는 미리미리 준비한 것인데 이쪽에서는 왜 그리도 준비가 없었을까?’

6,25동란을 과연 저쪽만의 남침으로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인 브루스 커밍스는 이 전란이 미국의 대한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간접표현하고 있고,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흐르고’ 한겨레신문 연재기사(137회)에서 “미국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서 6․25를 맞이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외다”라고 했고, 미국의 시사월간지「라이프」의 1950년 8월호에서는 ‘우리의 역사에서 한국 전쟁을 시작할 때처럼 치밀하게 준비한 예는 지금까지의 어느 전쟁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2~⑪ 6․25 일주일전에는 미 국무장관 고문 덜레스도 방한해 “남한은 외롭지 않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긴 뒤 도쿄에서 기다리던 맥아더 사령관, 즌슨 국방장관, 브래들리 합참의장 등 미국 군부의 수뇌들과 회의를 가졌다.2~⑫ 1950년 2월 9일 국방장관 신성모는 “우리는 북한을 수복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미국의 명령만 기다린다”고 밝혔고1950년 3월 1일 이승만은 대중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주민의 울부짖음에 응답할 것이다. 통일의 시간이 다가왔다. 해외 우방들이 우리의 무력사용을 말려도 우리는 강행할 것이다”라고 했다.,2~⑬

그러면서 소련군이 철수한 후 남한군은 38선 전역에서 북한을 침공한 사실이 있고 특히 옹진반도에는 38선 이북에 전투사령부까지 설치하기도 했다.2~⑭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보고에 접한 에치슨은 “한국이 우리를 구했다(korea saved us)”라며 반겼으며, 1952년 1월 밴플리트 장군도 필리핀 사절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국전쟁은 축복이다”라고 망언을 했다한다.2~⑮ 이런 정황을 살펴 볼 때,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자국 산업의 침체를 극복하고 한반도를 대소 대중국 봉쇄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던가는 뚜렷한 사실인데, 함석헌 선생께서 몰랐다면 역사 연구를 포기한 분으로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고, 알면서도 이런 기술을 했다면 반공주의 지식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다섯째, 유엔 정신의 자라남(p363)에서 ‘이 전쟁이 주고 간 큰 선물은 유엔의 힘이 자란 것’이라 하였는데 과연 그런 것인가?

물론 유엔은 많은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미국 지성인 촘스키의 말대로 󰡒유엔은 미국의 허수아비 유엔3~①"가 아닌가? 미국은 유엔과 이승만을 이용하여 남한 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우리통일정부 수립을 방해했고,3~② 한국 전란이 일어나자 투르만 독트린에 의해 미군이 한국에 개입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미명아래 편법으로 유엔의 규정을 어기고 유엔군의 깃발아래 한국군의 작전지휘권마저 탈취해 간 것3~③, 그리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동원하여 북한을 제재하며 평화적 협상을 회피하고 우리의 통일여건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번에도 유엔을 통해 이란을 제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세계평화를 위한 유엔의 힘이 자란 것인가?’ 과연 유엔이 약소국에 희망적이었는가는 의문이다.


여섯째 왜 ‘씨알’을 강조하면서도 동학농민혁명운동과 의병투쟁, 3.1독립운동 등 일제하 모든 민중사를 기술하지 않았을까?

강재언 교수는 ‘갑오농민전쟁은 19세기 한국 민족운동의 최고봉’이라 했고3~④,신영복선생은󰡒갑오농민전쟁은그 참담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아시아 민족운동의 큰 봉우리로서 그 이후 한국 근대사의 골간을 ,이루는 의병투쟁,독립전쟁의 선구다󰡓라 했다3~⑤. 유청하 교수는 ‘3.1운동’은 ‘한국민족독립운동사 속에서 뿐 아니라 전세계 약소민족 해방운동사 속에서 커다란 좌표로서 위치하고 있다’고 썼다.3~⑥

한국민족 민중의 혁명운동, 해방운동을 정확히 조사 연구하여 그 뜻을 되새겨 살려낼 때 만이 진정한「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역사 기술의 기본이 될 것이다. 전농의장과 민중연대 상임의장, 진보연대 상임의장을 지낸 정광훈의장이 농민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한국사연표」란 큰 책을 보이며 “이 큰 역사책 속에 우리농민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한 줄도 없다. 우리민중의 역사는 우리가 쓰자”고 강조하셨다. 말로는 민중, 씨을 강조하면서 민중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한국사를 쓴 이를 어떻게 역사철학자라 추켜세울 수 있을까?


끝으로 〔함석헌 기념사업회〕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고난의 역사를 사는 우리는 정확한 역사를 거울삼아 지난날의 과오를 되새기지 않고 정학한 역사인식과 실천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해야 하리라 본다.

겨레의 고난은 분단모순, 계급모순이라고 보는데 분단의 핵심책임세력, 분단을 지속시킴으로 자신들의 패권과 이익을 실현하려는 제국주의 세력 및 예속적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전하려는 세력과 자주, 평화, 통일세력간의 선한 싸움을 앞에 두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역사적 개념들을 애매모호하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개념들을 분명히 해주어야 그 어른이 말씀한 ‘생각하는 백성’이 되지 않겠는가 한다.

‘씨알’의 개념 속에 ‘겨레’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겨레와 우리끼리’, ‘씨알’을 병기해야 하지 않을까? 제국주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는 권력과 자본 대 민중이 되겠지만 ‘가스라 태프트 밀약’ 이후 100년 이상 일본군과 미군의 지배아래 분단모순을 안고 작전통제권까지 저당잡힌 우리는 ‘겨레 또는 우리’를 담지한 ‘씨알’이어야 하고, 신학적으로도 민중신학보다 민족해방, 민중해방의 내용을 담은 해방신학적 사고가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의 ‘화두’는 자주, 민주, 통일, 정의, 평화, 생명이 되겠다.
① 자주; 우리 겨레의 주체성 확립, 올바른 국사교육에 의한 민족정기 확립. 우리끼리, 작전통제권 완전한 환수, 자주적 문화의 창달, 식량 안보 등
② 민주;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 국가보안법 철폐
③ 통일; 7,4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공동선언 이행으로 단계적통일, 통일의 조건으로 북미 남북적대관계청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미군의 단계적 철수, 이명박 정권의 삼단계 흡수통일정책 폐기
④ 정의; 빈부격차 해소, 최소생계비문제, 비정규직문제, 복지문제, 기회균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극복, 도시영세민문제
⑤ 평화; 반전, 반핵, 군사동맹 폐기, 군축, 침략적 군사훈련 중단, 군사동맹에 의한 군사파견 중단, 대량살상무기 생산 중지, 북한에 대한 안정화계획 폐기
⑥ 생명;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해 무모한 개발중단, 반전, 반핵, 당면문제인 4대강사업 중지, 농업과 농촌 보존 등

이 모든 이야기를 농투성이의 ‘광야의 소리’로 들어주기 바란다.

〈주〉
ⓛ 해방전후사의인식 미군정기 국가기구의 형성과 성격 p184이하
브루스 커밍스 저 한국전쟁의기원 식민지 관료체제의 부활 p206
황성환 저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국군경 양성과 실태 p433
② 앞의 책 미국의 둘러리 유엔 감시위원단 p465
정경모 씀 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29회 남한 단독선거 미국의 집요한 떼쓰기
앞의 글 30회 야합이 낳은 반쪽 건국
③ 앞의 글 137회 한반도에서 소련과 전쟁을 준비한 미국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제국의 전쟁준비 p482~487
④ 조찬선 저 기독교 죄악사 p163~186, 류상태 지음 세계종교의문을열다.십자군전쟁 p158이하
⑤ 앞의 책 p121~142, 갈레아노 저 수탈된 대지 제1장 금과 은의 봄 p59~77
⑥ 갈레아노 저 수탈된 대지 p59이하 황성환 저 제국의 몰럭과 후국의 미래
⑦ 박지원 저 리상호 옮김 열하일기(보리)도강록 p73 첫줄
⑧ 문익환,홍근수,기세춘 공저 예수와 묵자 p78
⑨ 앞의책 p176~179
⑩ 신체호 저 조선 상고사 p109, 논어(김혁제 교열) 헌문편 p295 첫줄 신영복 저 강의 p361 이하
⑪ 앞의 책 p386, 김성동 千字文 p62
⑫ 단제전집 朝鮮古代文字와 詩歌의 變遷 p568~579
⑬ 김경주 역주 帝王韻記
⑭ 天符經의 秘密과 白頭山族의 文化 천부원본 3역의 모체 p137,
김지하 전집 1권 한국 전통사상의 현대적 의미 p593
⑮ 단제전집 6권47 東國古代仙敎考, 단제 신체호 원저 조선 상고사 부루의 서행 p99
2~① 혜강 최한기 지음 손병주 역주 「기학」, 도올 김용욱 지음 독기학설
2~② 단제전집 권6 47 東國古代仙敎考
2~③ 유상태 지음 세계종교의 문을 열다 p142 이하, 정제승 편저 民族秘傳情神修煉法,
한겨레신문 2009년8월19일 법륜스님과 떠난 역사기행 대종교 3인묘 이국 들판에 버려져
2~④ 조지 클렘비스 태미 스바르츠 씀 해뜨는나라
2~⑤ 정정숙 천도교 중앙총부 교화원장 교열
2-⑥ 도올심득 동경대전 서문에서
2-⑦ 김지하 전집 p58
2~⑧ 앞의 책 p682 이하
2~⑨ 전상봉 글 몽양 여운영 p136
2~⑩ 손석춘의 소설 아름다운집 p82
2~⑪ 황성환 지음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제국의 전쟁준비 p482
2~⑫ 앞의책 p483
2~⑬ 앞의책 p477
2~⑭ 앞의 책 p489
2~⑮ 앞의 책 p486 말미
3~① 촘스키,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p74
3~② 황성환 저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국의 둘러리 유엔 감시위원단 p465~468
정경모씀 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29회 남한 단독선거 미국의 집요한 떼쓰기
앞의 글 30회 야합이 낳은 반쪽 건국,
3~③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p497 이하
3~④ 안병직 박성수 외 韓國近代民族運動史 p259 이하
3~⑤ 신영복 옥중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녹두씨 p263 이하
3~⑥ 안병직 박성수 외 韓國近代民族運動史 p429 이하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보자. - 당당뉴스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보자. - 당당뉴스

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보자.
배종열  |  bbx@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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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9월 24일 (금) 22:44:32
최종편집 : 2010년 09월 25일 (토) 13:46:42 [조회수 : 2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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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다시보자.


배종열 (평통사 상임대표,/ 전 전농 의장)




   
함석헌선생은 유신시대 반독재의 지도자요 ‘씨알의 소리’로 민중을 깨우치고 많은 저술을 통해서 지성인사회의 거성으로 받들어져 오늘날 동서 철학계에서도 그분의 철학사상을 재조명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해온 공범인 일본 철학계나 서구 철학계가 그분을 위대한 철학자로 떠받든다 하더라도 제국주의의 오랜 지배아래 고난의 길을 살아온 민중의 시각에서 그 역사관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 역사의식은 재평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저같이 천학비재한 농투성이인 농민운동가의 한사람이 훌륭한 분의 저서를 감히 평가할 수 있을까마는 특히 그 책에 해방공간과 6,25전란을 언급하고 있는데 미군정의 남한사회 통치기구를 일본 식민지지배구조를 온존시키고,① 이승만을 이용하여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잘못된 미국의 대한정책②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 6.25동란을 이승만 독재와 미국 입장에서 왜곡 기술하여 미 제국의 한반도 점령정책을 오히려 시혜로 여기는 역사 왜곡③을 민족의 한사람으로 좌시할 수 없다. 사후에 가신 그분께나 그를 존경하는 많은 분들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린다. 나는 그 모든 분들 존경하지만 보다 우리 역사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이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음을 용서하시기 바란다.

첫째, 역사관의 문제

 

   
그분은 역사관에는 여러 사관이 있는데 종교적 사관이 가장 올바른 사관이라고(우주,인생속에 있으면서도 우주, 인생을 뛰어넘는 것이 종교다. 그러므로 참 역사는 종교적인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말하고 ‘나의 종교는「아가페」적이고 (1)성경은 역사의 근본을 하나님께 구한다. (2)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하였다고 한다. (3) 종말관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p42맨밑줄~p57)

이런 전제는 신앙고백으로는 지극하고 갸륵하지만 성경이 역사 기록이 아니듯이 역사관을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거나 보편성만을 강조하면 오류를 범한다고 말하고 싶다. 역사는 인간의 역사며 한국의 역사는 한국인의 역사요 한국 민족의 역사며 우리 민중의 삶의 역사이기 때문에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고증되어야 한다. 역사를 김부식처럼 유교적 관점이거나 일연처럼 불교적 관점이거나 함석헌처럼 기독교적 관점이거나 어떤 종교적 관점이든 올바르지 않다. 기독교사관이 잘못이란 것은 역사가 증언한다. 11세기 예루살렘을 서로 차지하려고 벌인 십자군전쟁④, 콜롬부스 일행의 아메리카 탐험과 인디안 살륙⑤, 17세기 이후 기독교세계의 세계제패⑥, 오늘날 미국의 네오콘에 의한 전쟁도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갈등을 볼 때 종교적 역사관은 파탄난 것이라 판단된다.

덧붙어 말씀드리면 성경강해의 일환으로 한 내용이니까 모두 긍정할 수 있지만 그분의 신관(神觀)은 자주적이지 못하다. p124 '하나님 섬기기'에서 "우리 조상들이 섬긴 神은 다신교인데 그 중에서 두드러진 지위를 가진 ‘하나님’이 있는데. 기독교에서 보는 듯한 유일신은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며 많은 설명을 하고 있지만 홍익인간의 하나님이시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같이 양심의 깨끗함 만을 위하여 엄격하게 회개를 요구하는 하나님은 아니였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만 온전한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겨레가 섬겨온 하나님도 온전한 하나님이라 주장하고 싶다, 함옹이 말한대로 홍익인간의 하나님이시고 天人合一 人中天地一의 하나님이고 性命雙修의 깊은 경지에 이르면 우아가 하나되는 우주적 인간이 되어 자비가 넘치는 것이다.

"3,宗敎的史觀(p43)" 아래서 6줄 이하에서 "이런 의미에서 孟子가 墨子의 兼愛說을 반박한 것은 까닭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기술 되어 있는데 문익환 홍근수,기세춘공저 「예수와 묵자」p78 첫 줄에서 기세춘씨는 「열하일기」⑦ 도강록을 인용하여; "백이, 숙제와 묵자는 고려인이다⑧"라 했고, 공자는 관중이 없었다면 漢族 제국이 고죽국에 망해서 조선족의 머리와 옷을 입고 살게 될 뻔 했다고 말해 고죽국이 고려임을 확인해준다. 문익환목사님은 「예수와 묵자」에서 "묵자와 예수의 하나님은 똑 같은 유일신",  "묵자와 예수의 하나님은 하나⑨ "라 했고, 또 신영복씨는 겸애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고 번역하고 겸애는 하나님의 뜻(天志 )이라 했다⑩. 나는 묵비사염, 반전, 평화사상은 전쟁문화, 과소비문화, 퇴폐문화를 거부하고 인간이 역사의 주체로 서야한다⑪. 는 최고의 경지로서 예수님의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리라"는 말씀을 뛰어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함옹은 우리 전통문화나 고려인들의 사상을 천박한 것으로만 인식하고 그 시대의 주류사회 담론에 치우쳐 자주적 역사관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 민족은 詩 없는 민족이요, 哲學없는 국민이요, 宗敎없는 민중이다(p112, 11~12줄)

이어서 “宗敎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남에게서 빌려온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유교가 그렇고, 불교가 그렇고, 기독교가 그렇다. 근래에 오다가 東學이요, 천도교요 하나 요컨대 밖에서 들어온 남의 사상을 요리 따고 저리 따서 섞어놓은 비빔밥이지 정말 우리의 것이 아니다, 大倧敎까지도 이러한 잘못에 눈이 팔려...”(p112;15째줄~19줄)
이렇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관을 自嘲的 역사관이라 말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우리 민족, 우리 국민, 우리 민중을 폄하 할 수 있는가?

1) 詩가 없다는데 처용가가 있고 서동요가 있고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준 을지문덕의 시가 등 열거할 수 없다. 신채호 선생은 우리 선조들의 시들이 이두문에서 한역 과정에서 사라지고 고려 입국 때나 이조 입국 시절 고서들을 불사르는 과정에서 시집들이 사라졌으리라고 추정하셨다.⑫ 고려 말에는 제왕운기⑬와 같이 역사를 시로 쓸 정도로 시가 발전한 것으로 안다. 근현대에 와서 윤동주 시인, 신동엽 시인, 김지하 시인, 김남주 시인, 고은 시인 등 열거할 수 없고 노동자 시인, 농민 시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2) 哲學이 없는 국민이라 하셨는데 우리 국민의 철학은 저항과 개벽의 철학이다. ‘지신밟기’ ‘비석치기’ ‘탈춤’ ‘농악’ 등 모든 민속놀이의 몸놀림, 춤사위 가락마다 저항과 개벽의식이 깔려 있다. 춤사위에 계급 저항의식이 표현되어 있고 풍물에서도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 땅도 내 땅이다”라고 굿을 치는데 앞부분은 지주에 저항하는 굿판이라면 뒷부분은 외세에 저항하는 굿판이 아닌가? 민중 신앙으로 전래된 정감록 등 도참설에는 새세상에 대한 꿈을 꾸며 살았다. 우리 민중은 옛 역사를 들지 않더라도 임진왜란 시기 의병들, 19세기의 민란, 동학농민혁명, 의병투쟁, 3.1독립운동, 4,19혁명, 5,18민중항쟁, 6월항쟁은 세계사의 모범을 보인 혁명운동이었다. 전래 철학은 천부경과 삼일신고에 잘 나타난대로 삼재(三才)사상이다⑭하늘, 땅, 사람이 하나 되는 天極,地極,太極의 철학이다. 인체내서는 性, 命, 精으로, 또 心, 氣, 身으로 나타낸다. 훈민정음에도 • ㅡ ㅣ음이 기본이 되는 것이요 형상에서는 圓 ,方, 角 이요, 하느님 사상에도 환인, 환웅, 환검의 삼위 사상이다 . 이 삼재사상은 오행사상과 함께 중국의 음양사상에 앞선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⑮

철종시대의 기철학자 최한기선생의 기학2-ⓛ은 동서 어느 철학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민족의 기철학의 총결산이라고 믿는다. 이 기철학은 다음에 말하는 선교수련에서 얻어지는 우리 겨레의 종교요 철학이다

3) 우리 민중은 종교가 없는 민중이고 모든 종교가 남의 것에서 빌려온, 남의 사상을 요리 따고 저리 따서 섞어놓은 비빔밥이라 하였는데 과연 그런가? 동화 작가 윤기현 선생이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초등학교 다닐 때 그의 훌륭한 농사꾼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자 햇볕에 그을린 농사꾼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부끄러워 숨어버렸다"고 그때를 참회했었다. 이와 같이 식민지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자기 조국, 자기 조상들의 것은 모두 초라하고 식민지 종주국의 것은 좋아만 보였던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80평생을 살아 왔지만 우리 고유종교의 우수성과 긍정적 면을 인정하고 기독교와 같은 종교적 편협성을 극복하고 21세기 이후의 영성세계의 미래를 예비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⑴ 우리 고유 종교는 선교(仙敎)로 불교, 유교, 도교 이전에 창시된 고조선시대, 삼국시대에 민중신앙의 원류였다. 단제 신채호 선생도「동국고대선교고」에서 ‘선교는 동국 고대에 성행한 종교로 天仙, 國仙, 大仙이란 명칭을 삼국건국이전과 삼국초기에 사용한 것을 보면, 중국의 도교나 인도의 불교 전래 이전에 동국고유의 종교라 말할 수 있으며, 최고운은 나랑비서(鸞郞碑序)에서 국유현현묘지도 선교시이(國有玄妙之道 仙敎是已)라 하였으며, 구비(口碑), 잔서를 살펴보건대 古書에 환인이 아들 환웅을 보내어 삼천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오니 그가 환웅천왕이라, 아들 단군을 생하였다 하였으며, 기원람에는 이르되 환인은 천인이요, 환웅은 신이라 하였으니 환인, 환웅, 단군(환검)은 삼신이요, 삼신은 곧 선교 창립의 시조라 하였다.’2-② 이러한 선교가 고구려에서는 선인, 신라에서는 화랑도 등으로 번창하다가 불교숭배의 고려조와 유교숭배의 조선시대를 지나며 사대주의 정권과 관료들의 극심한 탄압 속에 면면이 부지하다가 1909년 흥암 나철에 의해 대종교 란 이름으로 재출발하고 일제하에서 신흥군관학교를 설립하고, 북로군정서를 두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나라사랑, 겨레사랑, 인류사랑을 실천한다2-③ 외국에도 선교되고 있다.2-④

⑵ 동학은 서세동점의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 겨레 속에 세 분의 종교지도자가 탄생하는데, 동학 또는 천도교 창시자 수운 최제우선생과 대순진리회 창시자 강증산선생,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정이다. 이분들은 외세를 극복하고 외래문화의 거센 풍랑 속에 민족정기를 살려내며 인간 영성의 주체성을 확립한 지도자라 믿는다. 여기서 원불교는 어떻든 불교이고, 강증산선생은 자신이 천재라 하는 것을 보면 기독교처럼 메시아이즘이 강하다 하겠다.

그러나 수은 최제우 선생의 동학은 외래종교에서 교훈 받은 바는 있지만 민중주체 ‘无極大道 後天開闢’의 사상은 우리 고유종교인 선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사상을 근저에 깐 주체적 종교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제2대 교주 최시형 선생의 인시천 사상과 그 철저한 실천은 흠모할 만하고 이 사상이 동학농민전쟁 중에도 잘 실천되었다는 것은 혼란기 조선 민중을 사로잡고 남음이 있다.

동경대전의 중요주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는 우리 고유 종교 선교 안에서 천인합일 성명쌍수 사상을 승화시킨 것이요, ‘지기금지 원위대강’에서도 ‘지기’는 우리 선교의 기 체험에서 왔다고 본다. 또 영부를 사용한 것도 우리 古記에 한웅이 천부인 셋을 가지고 내려오셨다는 사실과 부합하는 것으로 모든 부분이 남의 것에서 온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또 ‘궁궁을을’은 반전, 평화, 생명사상이 담긴 것으로 나는 우리 민중의 노래 아리랑과도 상통하는 생명사상이라 말하고 싶다.2~⑤

여기서 우리의 석학 도올 김용옥 씨는 우리 민족이 진정한 바이블이 있다면 동경대전이라고 「조선사상사대관」에서 말씀하였고2-⑥, 김지하 시인은 동학은 우리민족 특유의 민중적 생명사상을 확고한 중심으로 삼아 모든 종교의 민중적 생명사상을 창조적으로 통일한 보편적 생명사상이라 했다.2-⑦

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듯이 대종교, 동학-천도교인들은 대부분 개혁적 삶을 살았다. 전봉준 장군을 비릇한 동학접주들과 동학농민군들이 그러하고 대종교 교인들과 박인진 도정 등을 비롯한 북접의 많은 천도교인들이 항일운동에 생을 바친 것이나 김개남포의 김단아씨는 오랜 수련 후 진주에 내려가 형평사를 조직하는 등 사회 개혁운동에 헌신한다.2-⑧

셋째, ‘32. 解放’ ‘도적 같이 온 해방’ ‘하늘이 준 떡’

‘그 악랄한 이리가 이 양을 놓고 물러갈 줄은 저희도 생각 못했거니와 우리도 감히 생각 못하였다.....적어도 이성을 가지고는 그 물러갈 날을 예측할 수 없었다’ 이렇게 기술하고 있는데 예언자는 수백년 후 예수가 탄생할 것을 알고 예언했고, 역사가 토인비는 100년 앞날을 내다본다 했다. 국내에서 항일투쟁하던 여운형 선생 동료들은 일본이 망할것을 예견하고 그를 대비해 「건국동맹」을 건설하고,2~⑨ 중국과 중국 동북3성, 연해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전사들은 이태리 뭇솔리니가 항복하고,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자살하고 일본이 홀로 남았으니 일본이 얼마 가지 않아서 패망할 것을 알고 국내 진입을 시도하거나 준비했다2~⑪고 했는데, 해방이 도적 같이 왔다는 분을 역사 철학자라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여기서 적어도 ⑴ 해방은 어떤 의미인가? ⑵우리에게 해방이 있었는가? ⑶ 미군은 해방군인가? 점령군인가? ⑷ 해방공간이 있었다면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이런 점들이 최소한 기술되었어야 했다.

넷째, 33. 六․二五

‘6,25전쟁은 그날 새벽까지 몰랐다,,,, 저쪽에서는 미리미리 준비한 것인데 이쪽에서는 왜 그리도 준비가 없었을까?’

6,25동란을 과연 저쪽만의 남침으로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인 브루스 커밍스는 이 전란이 미국의 대한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간접표현하고 있고,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흐르고’ 한겨레신문 연재기사(137회)에서 “미국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서 6․25를 맞이한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외다”라고 했고, 미국의 시사월간지「라이프」의 1950년 8월호에서는 ‘우리의 역사에서 한국 전쟁을 시작할 때처럼 치밀하게 준비한 예는 지금까지의 어느 전쟁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2~⑪ 6․25 일주일전에는 미 국무장관 고문 덜레스도 방한해 “남한은 외롭지 않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긴 뒤 도쿄에서 기다리던 맥아더 사령관, 즌슨 국방장관, 브래들리 합참의장 등 미국 군부의 수뇌들과 회의를 가졌다.2~⑫ 1950년 2월 9일 국방장관 신성모는 “우리는 북한을 수복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미국의 명령만 기다린다”고 밝혔고1950년 3월 1일 이승만은 대중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주민의 울부짖음에 응답할 것이다. 통일의 시간이 다가왔다. 해외 우방들이 우리의 무력사용을 말려도 우리는 강행할 것이다”라고 했다.,2~⑬

그러면서 소련군이 철수한 후 남한군은 38선 전역에서 북한을 침공한 사실이 있고 특히 옹진반도에는 38선 이북에 전투사령부까지 설치하기도 했다.2~⑭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보고에 접한 에치슨은 “한국이 우리를 구했다(korea saved us)”라며 반겼으며, 1952년 1월 밴플리트 장군도 필리핀 사절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국전쟁은 축복이다”라고 망언을 했다한다.2~⑮ 이런 정황을 살펴 볼 때,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자국 산업의 침체를 극복하고 한반도를 대소 대중국 봉쇄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던가는 뚜렷한 사실인데, 함석헌 선생께서 몰랐다면 역사 연구를 포기한 분으로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고, 알면서도 이런 기술을 했다면 반공주의 지식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다섯째, 유엔 정신의 자라남(p363)에서 ‘이 전쟁이 주고 간 큰 선물은 유엔의 힘이 자란 것’이라 하였는데 과연 그런 것인가?

물론 유엔은 많은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미국 지성인 촘스키의 말대로 󰡒유엔은 미국의 허수아비 유엔3~①"가 아닌가? 미국은 유엔과 이승만을 이용하여 남한 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우리통일정부 수립을 방해했고,3~② 한국 전란이 일어나자 투르만 독트린에 의해 미군이 한국에 개입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미명아래 편법으로 유엔의 규정을 어기고 유엔군의 깃발아래 한국군의 작전지휘권마저 탈취해 간 것3~③, 그리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동원하여 북한을 제재하며 평화적 협상을 회피하고 우리의 통일여건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번에도 유엔을 통해 이란을 제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세계평화를 위한 유엔의 힘이 자란 것인가?’ 과연 유엔이 약소국에 희망적이었는가는 의문이다.


여섯째 왜 ‘씨알’을 강조하면서도 동학농민혁명운동과 의병투쟁, 3.1독립운동 등 일제하 모든 민중사를 기술하지 않았을까?

강재언 교수는 ‘갑오농민전쟁은 19세기 한국 민족운동의 최고봉’이라 했고3~④,신영복선생은󰡒갑오농민전쟁은그 참담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아시아 민족운동의 큰 봉우리로서 그 이후 한국 근대사의 골간을 ,이루는 의병투쟁,독립전쟁의 선구다󰡓라 했다3~⑤. 유청하 교수는 ‘3.1운동’은 ‘한국민족독립운동사 속에서 뿐 아니라 전세계 약소민족 해방운동사 속에서 커다란 좌표로서 위치하고 있다’고 썼다.3~⑥

한국민족 민중의 혁명운동, 해방운동을 정확히 조사 연구하여 그 뜻을 되새겨 살려낼 때 만이 진정한「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역사 기술의 기본이 될 것이다. 전농의장과 민중연대 상임의장, 진보연대 상임의장을 지낸 정광훈의장이 농민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한국사연표」란 큰 책을 보이며 “이 큰 역사책 속에 우리농민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한 줄도 없다. 우리민중의 역사는 우리가 쓰자”고 강조하셨다. 말로는 민중, 씨을 강조하면서 민중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한국사를 쓴 이를 어떻게 역사철학자라 추켜세울 수 있을까?


끝으로 〔함석헌 기념사업회〕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고난의 역사를 사는 우리는 정확한 역사를 거울삼아 지난날의 과오를 되새기지 않고 정학한 역사인식과 실천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해야 하리라 본다.

겨레의 고난은 분단모순, 계급모순이라고 보는데 분단의 핵심책임세력, 분단을 지속시킴으로 자신들의 패권과 이익을 실현하려는 제국주의 세력 및 예속적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전하려는 세력과 자주, 평화, 통일세력간의 선한 싸움을 앞에 두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역사적 개념들을 애매모호하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개념들을 분명히 해주어야 그 어른이 말씀한 ‘생각하는 백성’이 되지 않겠는가 한다.

‘씨알’의 개념 속에 ‘겨레’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겨레와 우리끼리’, ‘씨알’을 병기해야 하지 않을까? 제국주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는 권력과 자본 대 민중이 되겠지만 ‘가스라 태프트 밀약’ 이후 100년 이상 일본군과 미군의 지배아래 분단모순을 안고 작전통제권까지 저당잡힌 우리는 ‘겨레 또는 우리’를 담지한 ‘씨알’이어야 하고, 신학적으로도 민중신학보다 민족해방, 민중해방의 내용을 담은 해방신학적 사고가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의 ‘화두’는 자주, 민주, 통일, 정의, 평화, 생명이 되겠다.
① 자주; 우리 겨레의 주체성 확립, 올바른 국사교육에 의한 민족정기 확립. 우리끼리, 작전통제권 완전한 환수, 자주적 문화의 창달, 식량 안보 등
② 민주;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 국가보안법 철폐
③ 통일; 7,4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공동선언 이행으로 단계적통일, 통일의 조건으로 북미 남북적대관계청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미군의 단계적 철수, 이명박 정권의 삼단계 흡수통일정책 폐기
④ 정의; 빈부격차 해소, 최소생계비문제, 비정규직문제, 복지문제, 기회균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극복, 도시영세민문제
⑤ 평화; 반전, 반핵, 군사동맹 폐기, 군축, 침략적 군사훈련 중단, 군사동맹에 의한 군사파견 중단, 대량살상무기 생산 중지, 북한에 대한 안정화계획 폐기
⑥ 생명;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해 무모한 개발중단, 반전, 반핵, 당면문제인 4대강사업 중지, 농업과 농촌 보존 등

이 모든 이야기를 농투성이의 ‘광야의 소리’로 들어주기 바란다.

〈주〉
ⓛ 해방전후사의인식 미군정기 국가기구의 형성과 성격 p184이하
브루스 커밍스 저 한국전쟁의기원 식민지 관료체제의 부활 p206
황성환 저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국군경 양성과 실태 p433
② 앞의 책 미국의 둘러리 유엔 감시위원단 p465
정경모 씀 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29회 남한 단독선거 미국의 집요한 떼쓰기
앞의 글 30회 야합이 낳은 반쪽 건국
③ 앞의 글 137회 한반도에서 소련과 전쟁을 준비한 미국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제국의 전쟁준비 p482~487
④ 조찬선 저 기독교 죄악사 p163~186, 류상태 지음 세계종교의문을열다.십자군전쟁 p158이하
⑤ 앞의 책 p121~142, 갈레아노 저 수탈된 대지 제1장 금과 은의 봄 p59~77
⑥ 갈레아노 저 수탈된 대지 p59이하 황성환 저 제국의 몰럭과 후국의 미래
⑦ 박지원 저 리상호 옮김 열하일기(보리)도강록 p73 첫줄
⑧ 문익환,홍근수,기세춘 공저 예수와 묵자 p78
⑨ 앞의책 p176~179
⑩ 신체호 저 조선 상고사 p109, 논어(김혁제 교열) 헌문편 p295 첫줄 신영복 저 강의 p361 이하
⑪ 앞의 책 p386, 김성동 千字文 p62
⑫ 단제전집 朝鮮古代文字와 詩歌의 變遷 p568~579
⑬ 김경주 역주 帝王韻記
⑭ 天符經의 秘密과 白頭山族의 文化 천부원본 3역의 모체 p137,
김지하 전집 1권 한국 전통사상의 현대적 의미 p593
⑮ 단제전집 6권47 東國古代仙敎考, 단제 신체호 원저 조선 상고사 부루의 서행 p99
2~① 혜강 최한기 지음 손병주 역주 「기학」, 도올 김용욱 지음 독기학설
2~② 단제전집 권6 47 東國古代仙敎考
2~③ 유상태 지음 세계종교의 문을 열다 p142 이하, 정제승 편저 民族秘傳情神修煉法,
한겨레신문 2009년8월19일 법륜스님과 떠난 역사기행 대종교 3인묘 이국 들판에 버려져
2~④ 조지 클렘비스 태미 스바르츠 씀 해뜨는나라
2~⑤ 정정숙 천도교 중앙총부 교화원장 교열
2-⑥ 도올심득 동경대전 서문에서
2-⑦ 김지하 전집 p58
2~⑧ 앞의 책 p682 이하
2~⑨ 전상봉 글 몽양 여운영 p136
2~⑩ 손석춘의 소설 아름다운집 p82
2~⑪ 황성환 지음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제국의 전쟁준비 p482
2~⑫ 앞의책 p483
2~⑬ 앞의책 p477
2~⑭ 앞의 책 p489
2~⑮ 앞의 책 p486 말미
3~① 촘스키,우리가 모르는 미국, 그리고 세계 p74
3~② 황성환 저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국의 둘러리 유엔 감시위원단 p465~468
정경모씀 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29회 남한 단독선거 미국의 집요한 떼쓰기
앞의 글 30회 야합이 낳은 반쪽 건국,
3~③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p497 이하
3~④ 안병직 박성수 외 韓國近代民族運動史 p259 이하
3~⑤ 신영복 옥중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녹두씨 p263 이하
3~⑥ 안병직 박성수 외 韓國近代民族運動史 p429 이하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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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당이 <노자> 관계 비판 글을 쓰게 된 사연 이경숙노자 비판

2010. 3. 16. 10:21


https://blog.naver.com/jaseng54/90083287327
엮인글 2개 번역하기


『老子』 2000년, 『노자』20년
- 노바당이 <노자> 관계 비판 글을 쓰게 된 사연



저는 50대 후반의 개업약사입니다. 저는 대학 때부터 취미로 <노자>, <장자> 등 도가사상을 중심으로 중국 제자백가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독서를 했고, 약 20년 전인 1989년에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노자 왕필주> 강의를 동국대학교에서 들었습니다. 이 강의 직후 출판된 책이 <노자, 길과 얻음/ 김용옥/ 통나무>입니다.


<노자, 길과 얻음>


이후에 제가 어떻게 <노자> 공부를 더 했고, 2001년 <노자 제대로 읽기/ 씨앗을 뿌리는 사람>라는 책을 쓰게 되었는지는 ‘노바당’이라는 인터넷 필명으로 쓴 제 글들 중에 실려 있습니다.



<노자 제대로 읽기>


1. <완역 이경숙 도덕경/ 2004> 비판

저는 원래 평소에 원고지 한 장의 글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2007년 초에 우연히 <노자를 웃긴 남자/ 2000>와 <완역 이경숙 도덕경/ 2004>을 쓴 이경숙의 <노자> 해설이 이해하기 쉬워서 좋은 것 같다는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그 동안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이 분은 이 외로는 제가 봐도 너무도 상식적인, 아니 대단히 지적인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의 오해를 풀 목적으로 쓴 글이 ‘노바당의 <완역 이경숙 도덕경> 비판’입니다. 이런 사연도 제 글 중에 실려 있습니다.

김인성의 블로그

http://minix.tistory.com/




<노자를 웃긴 남자, 1,2> <완역 이경숙 도덕경>

그런데 2007년 이경숙은 본인이 운영하던 공동체인 ‘구름타운’에서 강퇴시킨 전 회원들과 고소고발 등 법정싸움까지 하며 추잡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은 인터넷 정치 웹진인 에코넷(everkorea.net)과 팍스코(paxkonet.com)에서 알 수 있었으나, 이 두 사이트 모두 지금은 운영 중지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자료는 모두 보관되어 있고, 부분적으로는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으로도 출판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경숙의 <노자를 웃긴 남자>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노자와 21세기>에 대한 막된 비판으로 중앙일보 등 중앙일간지 기자들의 대단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자기 말로는 30만 권을 팔았다고 합니다. 소설책이 아닌 인문학 책으로는 그 1/10 만 팔았어도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평가됩니다.



<노자와 21세기, 1,2,3>


아래의 기사 목록은 당시 중앙일보에서 도올 폄하와 이경숙 선전에 얼마나 광분했는지 말해줍니다. 우리나라 어떤 분야의 저자도 단 한 권의 책으로 중앙 일간지에서 이 정도의 대접을 받은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기사는 중앙일보의 배영대 기자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작성했고, 다른 일간지의 출판 담당 기자들은 대체로 배영대 기자의 판단에 따랐습니다. 이 기사 작성자 중에는 드물지만 서울여대 중문학과 홍광훈 교수와 같은 비판자도 있습니다.


*2000.12 『노자를 웃긴 남자』 출간/ 이경숙 자인출판사


2000.12.16 중앙일보 신간 소개 『노자를 웃긴 남자』 배영대

2000.12.21 중앙일보 ‘[2000 새뚝이] 1. 사회-도올 김용옥씨’ 우상균

2001.01.04 중앙일보 ‘도올의 『논어』 강의가 더 크려면’ 김기평

2001.02.09 중앙일보 ‘[중앙시평] 소인이 군자를 講하는 시대’ 서지문(고대 영문학과 교수)

2001.02.17 중앙일보 ‘독창적으로 논어 해설한 『도올논어2』 관심’ 배영대

2001.02.17 중앙일보 “[김용옥식 ‘새로운 논어해석’]” 조우석

2001.02.22 중앙일보 ‘도올 김용옥씨 “웃기려는 강의 아니다.” 배영대

2001.02.24 중앙일보 ‘인상비판식 도올 논쟁 유감’ 이경숙 인터뷰 배영대

2001.02.27 중앙일보 ‘[분수대] 사문난적’ 이경철

2001.03.03 중앙일보 ‘[북카페] 도올논쟁 점입가경’ 배영대

2001.03.10 중앙일보 ‘[저널 리뷰] 봄호에 일제히 도올 비평 다뤄’ 배영대



2001.03.11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1. 고전 읽기는 어렵지 않다’ 이경숙

2001.03.18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2. 동양학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경숙

2001.03.25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3. 고전을 다시 읽자’ 이경숙

2001.04.01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4. 고전의 독해’ 이경숙

2001.04.08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5. 고전의 독해(2)’ 이경숙

2001.04.22 중앙일보 ‘[동양학 읽기] 6. 연재를 끝내며’ 이경숙

-위의 6개 기사는 이경숙이 쓴 전면 칼럼입니다. 위 컬럼은 모두(99.9%) 엉터리입니다.



2001.03.16 중앙일보 ‘[중앙시평] 화나면 밥도 안 먹는 군자?’ 서지문(고대 영문학과 교수)

2001.04.16 중앙일보 ‘이경숙 ․ 김용옥 동양학 논란을 보고...’ 홍광훈(서울여대 중문학과 교수)

2001.04.21 중앙일보 ‘[삶과 문화] 센 자를 물어 뜯어라’ 홍사종(숙대 문화관광학 교수)

2001.04.21 중앙일보 ‘[상반된 시각으로 본 도올 동양학]’ ‘...일본 베끼기’ 배영대

2001.04.27 중앙일보 ‘[상반된 시각으로 본 도올 동양학]’ ‘...인문주의’ 배영대



2001.04.30 중앙일보 [도올 ․ 이경숙 동양학 논란을 보고] “저마다의 공자만 있고 모두의 논어가 없다” 전호근(철학박사,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구원 교수)

-이 글에 대해서는 2009년 ‘전호근 선생님께 묻습니다 /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라는 제목으로 쓴 비판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전호근이 활동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 올려 회원 수백 명이 보고, 수십 명이 추천하였으나 글쓰기 정지를 당했습니다. 비판을 허용치 않는 '철학, 사상'이 무슨 소용입니까?



http://www.hanphil.or.kr/board/board.php?eq1=&eq2=&eq3=&eq4=&eq5=&b_id=free&st=0&sk=%B1%E8%BB%F3%C3%B6





2001.03. 『월간 중앙 3월호』‘도올은 종교의 참메시지 모르는 철부지’ 이상학(주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

2001.04. 『월간 중앙 4월호』 ‘누가 진짜 <노자>를 웃겼나’ 배영대

2001.04. 『월간 중앙 4월호』‘노자를 웃긴 남자 도올을 울린 여자' 배영대

-『월간 중앙 4월호』에 배영대 기자가 쓴 기사는 20페이지가 넘는 이경숙 특집입니다.



2001.05.22 중앙일보 ‘TV <도올논어>김용옥씨 돌연 중단’ 배영대

2001.05.23 중앙일보 ‘<도올의 논어이야기> 중단 배경에 고심’ 우상균



2001.07.12 중앙일보 ‘<동양학 논쟁> 김진석 - 김상환 교수 <교수신문>서 공방’ 정재왈

-인하대 철학과 교수인 김진석(서양 철학)은 <노자>에 대한 오해와 곡해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 분은 2010년 <더러운 철학/ 개마고원>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김진석은 이 책에 2001년에 <노자>와 관계하여 쓴 글들을 약간 변형하여 실어 놓았습니다. <노자>에 대한 오해의 대표적인 예로 이 책의 <노자> 관계 부분에 대한 비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더러운 철학>

*2004.01 『완역 이경숙 도덕경』 「도경」, 「덕경」 출간/ 이경숙 도서출판 명상


2004.01.14 중앙일보 ‘<도올 저격수> 이경숙 컴백’ 배영대

2004.01.19 중앙일보 [사람사람] ‘완역 도덕경` 펴낸 아줌마 논객 이경숙씨’ ‘도올 비판은 오류잡기의 첫 단추’ 배영대


<노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노자를 웃긴 남자>나 <완역 이경숙 도덕경>을 그냥 재미로 읽고 말았다면 모르지만, 이 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적적으로 평가하거나, 이 책 덕에 <노자>에 대해 뭔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지적 비판 능력과 회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노자>는 읽는 사람 맘대로 해석이 가능한 시집이 아닙니다.

단언컨대, 이경숙은 한문이나 <노자>에 대해 무지합니다. 이경숙의 문제는 한문이나 <노자>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노자> 번역서인 <노자를 웃긴 남자>나 <완역 이경숙 도덕경>은 구구단도 모르는 사람이 쓴 수학책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제 글 ‘노바당의 <완역 이경숙 도덕경> 비판’은 이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저는 이경숙의 <노자> 해석에 경도되었던 어떤 사람도 제 글을 읽은 후 그 생각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경숙은 이런 데에 대한 판단 능력이 없는 회원들을 데리고 기니, 음양오행이니 하면서 기공 수련이라는 걸 하는데 너무도 위험한 일입니다. 그만두고 다른 방식의 생계 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이경숙 사건은 이 사회의 인문학, 특히 한문 고전 이해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현재 진행형인 추문이며, 사이비가 어떻게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이 사회에서 기생하는 지에 대한 실예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이비를 거르긴 커녕 오히려 선전해 준 중앙 일간지의 출판 담당 기자들과 어설픈 학자들의 저열한 수준입니다. (2010.03)

* 여기에 제 글을 읽고 바로 이해한 한 분의 글을 소개 합니다. 이 분은 자신의 잘못된 점을 그대로 인정한 드문 분입니다. 저도 이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글 중 ‘이xx’, ‘이 모씨’는 제가 ‘이경숙’으로 바꾸었습니다.


落花醉仙, 나를 찾아가는 길(道) 위에서

jiahn73.egloos.com 2008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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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락당하다...

籠絡; 교묘한 꾀로 남을 제 마음대로 놀림.

사전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요샛말로 낚였다고 하는데...



몇 년 전에 대학에서 공부한 적 없이 혼자서 공부해서 한학으로 대가를 이뤘다는 이경숙이라는 여자가 한학의 대가인 도올 선생의 노자를 까는 책(<노자를 웃긴 남자>)을 내놓고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이 그럴싸하고 노자의 도덕경에 관심있던 내가 두 권의 책을 사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음~ 하며 공감도 많이 했고...



그런데 그 이경숙씨가 18년간이나 넷 글을 올리고 책도 내고 한 것이 사실은 남편의 대필이었다는 사기극이 요새 관련 사이트 여기저기서 밝혀지고 있는 모양이다.

배신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필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대단하다고 느껴진 노자 해설 등이 사실은 엉터리였다는 것까지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몇 번 이경숙씨의 사이트에서 이런저런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는데 작년쯤에 건강보조식품 등을 공구하기도 하고 회비도 모으고 해서 난 발을 뺐었다

왜냐하면 나름 공부할 만큼 하고 도공부도 했다는 사람이 자신의 배를 불리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제 우연찮게 이것과 관련된 글들을 보게 되었다.

사기꾼이 사기친 것도 나쁘지만 그 사기에 넘어간 나의 얄팍한 귀와 지식 공부정도에 더 많은 충격을 받았다.

낚였다고 흥분한 것도 잠시, 내 수준이 보였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다.



옛 말에 진리를 잘못 설파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남에게는 道공부좀 하려면 귀 열고 눈 뜨고 살라고 나불거렸는데, 내가 눈감고 귀 막고 살았던 모양이다.

길(道)을 걷다보면 똥을 밟을 수는 있지만 다음에도 같은 똥을 밟아서는 안 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할 따름이다.



http://www.paxkonet.com/bbs/board.php?bo_table=zero1&page=2 <- 이경숙의 노자해설이 잘못됨을 보여주는 반박 글 이다.



노바당님께 감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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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세춘 선생의 노자강의/ 2008> 비판



문화평론가 조우석의 <기세춘 선생의 노자강의> 서평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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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고응이 풀이한 노자/ 개정판/ 2008> 비판




<진고응이 풀이한 노자/ 개정판>은 진고응 선생의 <노자금주금역 老子今註今譯>에 대한 번역입니다. 번역의 질 문제로 자진 판매 중지하고 단시일 내에 재번역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도 아직 재번역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자금주금역>은 반드시 번역이 돼야 할 책이라고 봅니다. 이런 책은 독자의 수요가 한정되어 있어서 누가 먼저 번역을 하면 그 질을 떠나 다른 사람이 다시 번역을 하기 어렵습니다. 재번역 약속을 지키시기 바랍니다.(200604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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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자(老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 강신주/ 2004> 비판



저는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노,장에 대한 책을 거의 사 봅니다.

위 책은 출간 당시(2004.05.12 구입) 읽어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사람 질도 여러가지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후 2006년 출판된 강신주의 <장자 & 노자, 도에 딴지걸기/ 김영사>와 2008년 출판된 <장자 읽기의 즐거움, 망각과 자유/ 생각의 나무>를 읽어보니 저와는 <노자> 뿐 아니라 <장자>에 대한 이해도 너무도 달랐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노, 장을 포함하는 도가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만약 강신주의 도가 이해가 옳은 것이라면 저는 도가가 아닐 뿐 더러 평생을 오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강신주는 <장자 & 노자, 도에 딴지걸기>에서 이렇게 강조하여 말합니다.

"노자와 장자는 다릅니다. 그리고 두 사상가의 차이는 단순히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자와 장자는 다릅니다. 그러나 두 사상가의 차이는 표면적이고 근본적으로는 같습니다. 노,장을 관통하는 근본은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것입니다."

노,장에서의 ‘자연(self-so-ness)’이 ‘대자연’이라고 할 때의 ‘자연(nature)’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노,장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입니다. 물론 강신주도 이런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신주는 도가에서의 '자연'이라는 의미의 근본적 중요성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하여, 그 결과 노,장을 말하는 위의 3권의 책 전체를 통틀어서 한 두번 언급(설명이 아니라)했을 정도로 소홀히 취급하였습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의 책 광고를 보니 이 분이 <철학 VS 철학>이라는 책을 낸 모양입니다. 이 책 제목의 '철학' 중 한가지는 동양철학일텐데, 저는 강신주의 <노자>, <장자>의 원문(한문)을 해독하는 능력과 그 해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별 것도 아닌 똑 같은 주장을 출판하는 책마다 표현만 조금씩 바꿔서 반복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봅니다.

강신주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1. <장자>는 타자와 소통하며 자아의 변형를 위한 철학이다.

2. <노자>는 지배자의 통치를 영구화하기 위한 수탈과 재분배의 철학이다.

3. 그러므로 <노자>와 <장자>는 도가라는 같은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

4. 내 말은 옳고 2000년간 노,장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틀렸다.





저는 <장자>의 메시지로 '타자와의 소통'을 엄청나게 중시하는 강신주와 생각이 크게 다릅니다. 그리고 <노자>에 대해서는 핀트를 완전히 잘못 맞췄다고 봅니다. 강신주는 본인이 “<노자>를 직접 읽어 보았다.”, “직접 <노자>라는 고봉을 올라가 보았다.”고 자부하는 데, 저 혼자 산에 오르다가 길을 잘 못 들어 다른 산 꼭대기에 올라 간 게 아닌지 의심해 봐야합니다.



저는 강신주가 <노자>, <장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노,장을 이용하여 서양 철학(주로 프랑스 현대 철학)의 감화를 받아 형성된 자기 철학을 토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근거를 대서 밝히기 위해 한 편의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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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장자> 해석에 대한 비판 글을 한국철학사상연구회(한철연)에 올렸더니 강신주에 대한 '인신공격'이라며 삭제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글이 정말 인신공격에 해당하는지, 또 비판의 정당성 여부를 묻고자 여기에 추가합니다.(2010.11.04)






강신주의 장자는 <장자>가 아니다




‘강신주의 장자 해석’에 대한 비판: 내가 인신공격을 했다?


#이경숙#노자#도덕경#기세춘#진고응#최재목#강신주#교육·학문


[출처] 노바당이 <노자> 관계 비판 글을 쓰게 된 사연 |작성자 노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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