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9

알라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알라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서동진 (지은이)돌베개2009-11-23

432쪽

책소개

한국사회의 다양한 층위, 구체적인 맥락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주체 형성의 논리가 어떻게 스며들고 작동하는지 살펴본다. 신자유주의를 사회, 정치, 행정, 교육, 문화 등 자본주의 사회의 전 분야를 총체적으로 조직하는 '새로운 합리성'으로 바라보고 근본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것. 이 책은 1980년대 산업구조조정에서부터 20년간의 흐름이 '자기계발하는 주체'라는 새로운 주체화 방식에 있음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일상에서 강박적으로 자기계발 서적을 소비하는 개인의 모습을 지난 20년 사이 일터에서 등장한 유연하고 경영자적인 노동주체와 연결시킨다. 또 이를 다시 새로운 권력의 형태가 주조해내는 자율적인 시민의 모습과 연결시킨다. 이 '주체성의 계보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이론적인 탐색이라 할 수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새로운 자본주의는 어떤 사람을 빚어내는가

01 지식기반 경제라는 경제적 가상
1. 변화의 담론, 담론의 변화
2. 지식기반경제의 경제적 주체
3. 한국 자본주의와 그 재현의 변화

02 자기계발하는 시민
1. 신지식인, 지식기반경제의 국민주체
2. 능동적 시민이라는 인적자원
3. 국미의 통치, 자아의 통치

03 유연한 노동주체
1. 자본의 유연화에 따른 노동주체의 변화
2. 경영담론과 주체성의 관리
3. 전략경영에서 인적자원관리까지
4. 능력에서 역량으로

04 자기계발의 의지
1. 한국의 자기계발 담론
2. 나는 기업이다
3. 자기의 테크놀로지
4.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정치학

에필로그 자유라는 위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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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빈곤은 어쨌거나 사회적 현실이다. 빈곤을 그냥 불편이나 불행이라 부르지 않고 빈곤이라 이름 붙이는 것은 그것이 자기 삶 밖에서 들이닥친 현실임을 알린다. -8 쪽 - 제라드
그렇지만 놀랍게도 '희망 없는 빈곤' 이란 말 속에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어울려서도 안 되는 차원이 맞붙는다. 희망이 나의 내밀한 삶의 세계에서 비롯된다면 빈곤은 경제적인 생존을 규제하는 바깥 세계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희망 없는 빈곤' 이란 말은 빈곤을 나의 책임과 자율의 세계로 떠넘기며, 빈곤을 낳은 원인을 용케 나... 더보기 - 제라드
게다가 자존하고 자립하고 자활하라는 윤리적인 다그침 속에는 네 삶 밖의 세계에 어떤 허튼 소리도 하지 말라는 위협적인 목소리가 깔려 있다. 네 스스로 힘껏 살아보라는 말 속에는 그리고 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속삭임 속에는, 사실은 절망과 분노는 내색조차 하지 말라는 협박이 숨어 있는 셈이다. -8~9쪽 - 제라드
저자 및 역자소개
서동진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계원대학교 융합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사회학이며, 대표논문으로 「스트롱맨의 척추해부학-신자유주의와 남성성」「사악한 기계들의 윤리학 - 통신과 인륜성」 등이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태와 문화/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관심이 깊다. 최근에는 금융화와 물류혁명이 지각과 경험의 형태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최근작 :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하여>,<서경식 다시 읽기>,<가족의 재의미화 커뮤니티의 도전> … 총 44종 (모두보기)
Editor Blog현장 MD가 뽑은 올해의 좋은 책 2009 l 2009-12-28
어느덧 시상식의 계절입니다. 연예대상, 가요대상, 연기대상 등 화려한 시상식은 차고 넘치는데, 왜 어디에도 책 관련 시상식은 없는 걸까요? 리영희 선생이 평생공로상을 받고, 카라가 축하 공연을 하는 '도서대상'을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일까요? 아쉬운 마음에 여기, 현장MD로 살았던 2009년의 기억을 남깁니다. 조금 편파적이고, 아이돌 그룹의 축하 공연도 ...

출판사 소개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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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능호관 이인상 연보>,<동물 너머>,<트랜스젠더 이슈>등 총 617종
대표분야 : 역사 4위 (브랜드 지수 751,834점), 음악이야기 4위 (브랜드 지수 23,571점), 한국사회비평/칼럼 8위 (브랜드 지수 53,95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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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문제제기에 비해 본문내용이 추상적.자기계발 주체에 대한 역사화가 필요.  구매
nautes 2011-09-06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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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는 좀 질리지만 그 화두의 선택과 진지함은 굳!  구매
nickle 2010-01-17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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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민주화 기획"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진보진영에 일독을 권함  구매
wonder 2010-05-0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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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딩 필독서  구매
LineIDsecondto0 2014-12-1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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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자기계발의 압력`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본문의 내용이 더 와닿을 것 같습니다. 자유를 포기할 수 없지만 자유가 위선적으로 포장되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도 흥미롭고요.  구매
blue923 2014-04-2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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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2 새창으로 보기 구매
저자는 지난 20년간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 과정에서 형성된 권력의 주체화의 논리, 즉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형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기존의 규율사회를 비판하고 자유를 꿈꾸는 주체의 자기형성의 논리와 겹쳐져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계발에의 의지라는 것은 결국, 보다 나은 자기가 되고픈 인간 본연의 소망, 그리고 비상과 해방에 대한 인간의 본연적 욕구와 같은 것들이 권력의 자장 속에서 마름질 당하고 가공된 형태라는 것이다. 인간 본연의 진보적 희망과 자유에의 소망이 매번 권력의 전략에 포섭되어 변질되고 마는 것이라면, 차라리 애초에 그런 꿈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자유를 지지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어떤 종류의 자유인가 매번 날카롭게 질문해야 한다. 질문은 사유이고, 사유는 곧 새로운 자유의 가능성이다. 새로운 자유란 어떤 자유인가. 그것은 권력의 전략에 포섭되어 관리되는 자유, 순응적으로 변질된 자유, 기껏 자기계발의 자유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관계로부터의 호명이 불가능한 자유, 관리되고 대상화되기를 거부하는 자유, 외부를 사유하는 자유, 탈주하는 자유다. 새로운 자유의 정치학을 꿈 꿀 것! 이 책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가슴벅찬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은 사실상 환자한테 불치병 선고 해놓고 미안해서 보약 한 첩 다려주는 거랑 다를 게 뭔가. 저자의 제안에 따라 아무리 세계의 자명성에 질문을 던지고, 해방된 자유, 탈주하는 자유를 열심히 사유해봤자 그가 쓴 책 전체를 관류하는 푸코식 통치이론의 논리에 따르면 그 또한 결국에는 통치 권력의 전략에 포섭되어 너무나 단정한 모습으로 그리고 또한 너무나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형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것이 권력의 역학 관계를 벗어날 길 없는 개체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수유너머가 기성의 체제와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 역시 그러한 한 전형은 아닐까. 예를 들어 수유너머의 일시적 구성원이었던 나의 경우, 수유너머를 늘 남산에 있는 무릉도원 쯤으로 여기곤 하지 않았던가. 가슴이 턱 막힐 때마다 무릉도원에 잠깐 다녀가 오금이 저려오는 온갖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로 목을 축이고 나서, 자극적인 관념들로 샤워를 하고 나서, 다시 속세로 귀환해서는 마치 별세계에서 한바탕 꿈꾸다 돌아온 듯 이전과 다름 없는 태도로 일상을 살아가지 않았던가.

그곳에서의 공부는 나의 구체적인 삶을 전혀 바꾸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나의 공부는, 배움을 주셨던 선생님들의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에게는 그저 출구 없는 일상에 작은 위안을 주는, 그런 신기루 같은 공부였지 않았나. 그렇다면 함부로 말해서 나 같은 이들에게 자기위안용 혹은 자기장식용 지식을 판매하는 것이 결국에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수유너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역시 그곳 선생님들의 기대(내지는 최초에 그곳 선생님들이 꿈꾸었던 자유의 정치학)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 책 비롯, 푸코의 통치권력이론의 영향을 받아 씌어진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공황장애에라도 빠진 듯한 기분이 된다. 끔찍할 정도로 조화롭고 치밀한 자기 완결적 시스템. 거기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도, 불순한 종자들의 혁명도, 우연의 장난질도, 그 어떤 우발성도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푸코가 그려내는 세계는 마치 한치의 허점이나 틈새도 보이지 않는, 영원히 붕괴되지 않는, 견고한 성채 같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도저한 슬픔이다. 푸코가 말년에 주창한 자기윤리라는 것은, 결국에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 비루한 자구책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얼마나 경악하고 얼마나 절망한 끝에야 비로소 호쾌하게 웃는 능동적 니힐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이 견고한 성채 안에서 우리는 과연 냉소를 멈출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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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0-11-10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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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만든 자기계발하는 주체들 새창으로 보기
젊은이들이 쉴 줄 모릅니다. 방학(放學)이면 말 그대로 좀 쉬어야 하죠. 그동안 공부 부지런히 했으니 잠깐이나마 목을 돌리면서 마음에 빈칸 하나쯤을 남겨두어야 하는데, 요새 젊은이들에겐 이딴 소리를 했다간 세상물정 모른다며 따가운 눈총받기 십상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줄 알아요? 전쟁이에요. 총성 없는 전쟁!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방학 때 더 바쁩니다. 계절 학기를 통해 조금 떨어지는 학점들을 끌어올리거나 인턴으로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거나 기업에서 좋아라 하는 자격증을 따거나 새벽에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스펙을 쌓아야 하니까요. 느긋함이란 말은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습니다. 회계사란 전문자격증을 딴 대학생은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한 친구가 회계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게 가장 큰 동기가 되었어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제가 앉아서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고시는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회계사 시험에 붙으니, 친구들에게 뒤쳐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었죠. 뭔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나중에 제가 뭘 하고 싶으냐가 아니라 당장 뭘 하는 거였어요. 크게 봐서 제가 뭘 할 거니까 이게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거 따면 어떤 기회가 생기고 뭔가를 얻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죠. 나중에 뭘 하려는 과정으로서 자격증을 준비한 게 아니라 일단 뭘 해야 했고 해야 될 게 필요했어요”

 

그렇습니다. 이젠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암만 뛰어나고 스펙이 빵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마조마한 시대입니다. 뭘 하고 있어야만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한 손엔 자기계발서적을 꼭 쥐고 부채삼아 자기 안의 일렁거림을 달래려 하지만, 가슴 한복판의 불길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릅니다. 이러한 불안을 장작삼아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뜨겁게 뛰어다닙니다.

 

이른바 ‘자기계발하는 주체’들이죠. 이제 자기계발하지 않는다면 멍텅구리가 되는 형편입니다. 너나할 거 없이 죄다 자기계발을 뇌까리며 허리띠를 조릅니다. 이젠 깍쟁이보다도 제 앞가림 못하는 사람을 더 거북해하고, 가난이나 차별 때문에 쓰러진 사람에게 “너가 못났기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현실이죠. 어느 때보다 물질이 넘치는 시대를 살지만 어떻게 된 게 사람들은 더 헉헉거리고 툭하면 악다구니를 벌입니다.

 

이런 현실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 2009]는 아주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매우 촘촘히 밝힙니다.

 

글쓴이는 자본주의가 자기계발하는 주체를 만들어냈다고 여러 자료를 통해 보여줍니다. 자본주의는 주체를 지배하지 않고 주체를 ‘통해’ 지배하니까요. 그러니까 옛날 권력들은 사람들을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려고 했다면 이젠 통치이성으로서 지배합니다. 오늘날엔 단순히 어떤 권력자가 주먹으로써 지배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자유로써’ 지배합니다. 언제나 권력은 자유를 통해 작동하니까요.

 

결국 권력은 지배받는 주체에게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성을 형성하고 그 주체가 자신의 삶에 작용하는 방식을 규정함으로써 주체를 ‘멀리에서’at distance 지배한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런 지배대상으로서의 주체를 빚어낸다.

 

그러므로 개인들은 어떤 의미에선 자유롭습니다. 자신이 땀 흘린 만큼 보상을 받는다고 믿으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련히 자기계발을 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며 살죠. 그런데 야릇하게도 자유를 쫓으면 쫓을수록 삶은 갈팡질팡 더 흔들리고 땀에 흠뻑 젖은 등줄기는 하루도 편치 않습니다. 가만 되돌아봅니다. 나는 정말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자기계발하는 자유가 허깨비이자 쇠사슬이라면서 사람들이 매트릭스에 갇혀있는 꼭두각시라고 빈정거리지 않습니다. 이 자유가 거짓이니 벗어던지자고 할 수도 없습니다. 대신, 오늘날의 자유가 어떠한지 짚어보면서 자유가 지닌 아찔함을 알리며 ‘새로운’ 자유의 정치학을 일구자고 얘기하네요. 여태껏 몸소 채찍질을 하면서 달려왔다면 이젠 자신을 후려치던 ‘자유’를 어디에 써야할지 고민하자고 합니다. 참 자유는 참 사유를 거쳐서만 태어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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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 2010-06-3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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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의지? 그렇다면 그 다음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일단 푸코를 잘 모르니 푸코를 통해서 이해하는 것은 포기! (푸코 없이 이해해도 큰 차이는 없는 거 같음. 호기심은 다음 기회에 풀어 보고...)

일단 책이 너무 지리하다. 그렇게 지리 안해도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을텐데...

하지만 문제의 요지는 매우 신선했다.
왜 노동자들은 분기탱천해서 이 현실을 뒤집어 없는 혁명에 나서지 않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이명박이를 찍었을까?

모 위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의 한 주제는 될 거 같다.

"자유를 추구하면 추구 할수록 더 많은 선택을 발휘하면 발휘할수록 더 많은 재량을 발휘하면 할수록, 자유와는 반대 방향으로 치닫는다는 느낌이 우리를 휩싼다. 따라서 이제 자유를 향한 열망은 자유에의 환멸로 반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면서도 자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저자네요.

근데 부르조아지도 자유를 갈구 했다. 프로레타리아의 자유는? 부르주아 자유와 프로레타리아의 자유는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당연 '연대'이다

저자의 프로시안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유감인 것은 '이제 자유가 아니라 평등으로'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는데 이 때도 느낀 것이지만 '자유와 평등'이라는 컨텍스트에 매몰되면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프로레타리아는 부르조아와의 평등을 요구했나? 노동자의 "연대"는 단지 권력 탈취의 도구, 수단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자유가 아니라, 아니 평등도 아니라, '연대'여야 한다.

유적존재로서의 인간이 사람다와 지는데도 바로 이 연대요,
자유를 잉태하는 것도 바로 이 협동과 단결, 공동체 인 것이다.

나는 저자(혹시 이진경 씨나 수유공간 너머에 속한 분들도)가 이런 문제를 '자유의 의지~' 책을 쓰듯이 깊이 연구해 보면 좋겠다 싶다. 그 철저함이라면 아마 또다른 역작이,,, 바로 혁명의 '주체화'의 해법을 얻지 않을까...

물론 그러려면 서양의 '근대성'의 텍스트, '자유와 평등'이라는 컨택스트로 부터 튀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푸코에 그렇게 의지하지 않고도 진리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남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참조가 되긴 하나 그 자체가 새로운 진실을 말해 주지는 않을테니까...

하여튼 저자의 다음 작품이 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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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le 2010-01-1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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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만이 춤추는 대한민국 새창으로 보기 구매
전체적으로 푸코의 담론개념을 통하여 현 자본주의와 한국 사회에서의 주요 노동과 관련된 경제사회적 담론을 분석하고, 역시 푸코의 통치성과 주체성 개념에 입각한 주체와 미시권력적 구조 개념을 통하여 위의 각종의 담론과 분석을 구체화한다.  전체적인 분석내용 노동조합의 무력화화  스스로 역량기계가 되어 자신이 소속한 기업과 그러한 정책을 가꿔내는 국가에 봉사하는 주체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사실 온 사회가 이렇게 자기계발하는 주체로 구성되면 어떠한 비판도 들어설 수 없는 무색할 현재의 지경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저자도 계속 강조하고 있듯이 그러한 주체의 변신과 기획 그리고 그 노력은 주체 자신을 위한 것인가? 라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현재의 사태믈 비판해야 한다는 강조점을 짝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은 전통적 맑스적 관점이라기 보다는 네그리를 위시로 한 포스트자본주의 비판에 근거하여 분석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러한 포스트자본주의적 비판의 강조가 본 글의 주제는 물론 아니다.  요는 담론중심주의적 비판에 관한 문제인데. 자본의 담론을 수용하는 노동자체 정치력의 우위가 가능하기 어렵기에 담론에서의 승부, 가치논쟁에서의 주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담론 중심의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은 생각임.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전유물이 된 자유에 관한 문제인데.

같이 이 책을 읽은 친구중엔 자유란 원래 허구적 가치이며, 내용이 없는 순수 형식적 결정불가능성으로 그에 대한 가치를 담는 담론은 그 자체가 보수담론의 범주를 너머설 수 없다고 까지 얘기하는데, 덧붙여, 라캉식의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일 수 밖에 없는 자유의 구조적 한계까지 생각해 보면 자유 자체에 대한 관찰은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의 토양이란 점이 이해되는데, 



에필로그에서의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새로운 자유의 이미지의 고안의 필요성 역점. 376  그리고

우리는 자유를 통해 지배와 관리의 규칙과 의무, 규범을 의문시하고 현실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결코 자유로부터 물러나서는 않된다. 자신의 행위를 생각할 대상으로 삼고, 행위를 둘러싼 의미와 조건, 목적 같은 것을 의문시하는 것이 사유라고 한다면, 사유란 곧 자유이다.

자유를 동원함으로써 사회적 삶을 관리하고 조절하며, 나아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주체화해야 할 것인가를 강제하는 것이 자유의 정치학이라며, 그런 자유의 동원을 다시 문제화함으로써 자유가 지닌 위험을 알리고 비판하는 것도 역시 자유의 정치학이어야 한다.



등의 정리주장을 보면, 저자 서동진 역시 자유라는 모든이가 사랑하는 이 언표를 버리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 이 단어를 사랑하고 이 언표를 절대시하는 많은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우리는 자유를 새롭게 가공하여 원하는 사회를 실용적으로 앞당길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이 책을 다시 살펴 보면 에필로그가 박사논문 취득을 위한 어정쩡한 타협적 정리를 했을 수 있다는 앞의 친구 얘기가 과감한 설득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이 책이 자유주의 사회적 한계를 꼼꼼히 정리한 훌륭한 책일 수 까지 있겠지만.....

자유라는 언표의 위력을 저자도 포기하긴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간의 자기계발적 자유와  향후의 반 자기계발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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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mn 2014-07-1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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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꼭 읽어봐야 할 도서.!! 특히 우리 20대들 새창으로 보기
제라드 2010-09-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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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조직에서의) 권한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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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인돌 2012-06-26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기계냐 동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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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과 2010-02-28
하지만 자기계발의 영역에서도 담론투쟁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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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yhy 201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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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사회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새창으로 보기
이번주 주간경향(96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를 간추리고 간단한 독후감을 보탰다. '피로사회'란 말의 의미가 선입견과는 다르기에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우리가 '성과사회'에서 자발적인 자기착취를 통해 느끼는 피로감은 '피로사회'가 아닌 '피로한 사회'의 피로감이다('피로한 사회'는 저자의 용어가 아니다). 혹은 '피곤사회'라고 할까?..

 

 

 

주간경향(12. 03. 27)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사회’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비평가 중 한 사람’의 저작이 소개됐다. 뜻밖에도 재독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다. 작년에 먼저 나온 <권력이란 무엇인가>(문학과지성사)를 통해서 처음 소개된 저자는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가 철학으로 박사학위와 교수 자격을 취득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2010년에 출간된 <피로사회>는 그의 대표작으로 주요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피로사회’란 말은 독일에서 아예 상용어가 됐다. 무엇이 그러한 반향을 불러온 것인가.

 

Müdigkeitsgesellschaft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독일의 독자들이 “성과사회의 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이 책의 테제에 주목하고 공감한 것으로 본다. 과거 규율사회가 타자 착취 사회였다면 신자유주적 자본주의는 자기 착취 사회다. 이 새로운 21세기 사회를 그는 ‘성과사회’라고 부른다. 규율사회와 산업사회에 대한 분석과 철학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발적 착취가 이루어지는 성과사회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규율사회의 지배적 공간이 병원과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 등이었다면 성과사회는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 등의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지배적 공간의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 또한 변모시킨다. 이들은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로서 각자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곧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자기경영’이 성과사회의 패러다임이다. 규율사회가 부정성의 사회로서 여전히 ‘~해서는 안 된다’라는 금지를 통해 사회를 규제하고자 한다면 성과사회는 긍정성을 동력으로 한다.

 

‘나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있다’는 능력이 성과사회를 이끄는 긍정의 도식이다. 물론 핵심은 이러한 성과주체가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라는 점이다. 성과주체는 분명 외적인 지배와 착취로부터 자유롭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면서 주권자이다. 하지만 그는 이 자유를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내맡긴다. 그리하여 성과 제고를 위한 과다한 노동은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게 된다. 자기 자신이 착취자이면서 동시에 피착취자인 처지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게 자유의 역설이고 변증법이다.  

 

물론 성과사회에 대한 진단과 성과주체의 발견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를 통해서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읽을 수 있었다. ‘자유의 의지’가 곧 자기를 구속하는 ‘자기계발의 의지’로 전화된다는 게 저자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때 자유의 의지가 갖는 부정적 역설은 성과주체가 맞닥뜨리게 되는 자기 착취의 역설과 다르지 않다.

 

<피로사회>가 ‘문화비평’으로서 갖는 강점은 사회적 진단을 병리학적 시각을 통해서 조명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지난 20세기를 안과 밖, 친구와 적, 나와 남 사이의 경계 구분을 문제 삼았던 ‘면역학적 시대’로 규정한다. 면역학적 행동의 본질은 공격과 방어이며 이 패러다임은 철저하게 냉전의 어휘와 군사적인 장치를 통해 기술될 수 있었다. 반면에 오늘날 이질성과 타자성은 점점 지워지고 있다. 오히려 21세기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건 우울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과 같은 신경성질환들이다. 가령 우울증은 오늘날 성과주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물론 그러한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곧 자발적 착취의 병리적 결과로서의 우울증은 긍정성 과잉사회에 고유한 질병이다. 우리는 이 ‘우울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저자는 탈진의 피로와는 대조되는 무위의 피로, ‘근본적 피로’를 대안으로 암시한다. 그것은 모든 목적 지향적 행위에서 해방되는 ‘막간의 시간’을 가능케 하는 피로다. 성과사회 이후에 도래할 ‘오순절-사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피로사회’다.

 

12.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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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2-03-21 공감 (9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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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사회학과 진정성의 운명 새창으로 보기
사회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문학사회학자라고 해야 하나?) 김홍중 교수의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 2009)이 출간됐다. 엊그제 산 책인데, 어제 한 송년모임에서 우연히 저자와 몇 마디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서문만 읽은 상태라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진 못했는데, 그런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면 몇 개 장 정도는 미리 읽어볼 걸 그랬다. 오늘자 한겨레에 책에 대한 리뷰가 실렸기에 옮겨놓는다. 주로 첫 장인 '진정성의 기원과 구조'의 내용을 따라가고 있는 듯싶다.   한겨레(... + 더보기
로쟈 2009-12-19 공감 (3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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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출렁거림을 잴 수 없는 이론은 검정색이자 경색이다 새창으로 보기
1. 자유도 그날그날을 살고, 민주주의도 살아날뛰는 것이고, 노동이라는 것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삶의 출렁거림을 잴 수 없는 이론은 검정색이자 경색이다.   2.  형평이라는 지렛대가 없다면 민주주의도 자유도 신위에 모셔져 풀려날 길이 없다. 모시기만 할 뿐 삶은 형편없이 헛바람처럼 날려 살아진다. 단 한 사람, 그 삶들의 인력은 없다.  삶의 척력만, 사람은 사람을 기대지 않는다. 형평의 중력이라는 숨골이 제 기능을 못해 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다. 공평은 노동에서, 일자... + 더보기
여울 2015-01-07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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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원래 공부를 '독고다이'로 해온 편인데, 이번 학기에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또 공부의 열의가 있는 사람들끼리 '감정사회학'이라는 테마로 모임을 가져볼까 생각 중이다. 사실 김홍중 선생의 책 <마음의 사회학>을 읽으면서, 마음을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이론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나는 이것이 매체 연구에서의 어떤 전환을 야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더보기
얼그레이효과 2010-08-30 공감 (1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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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계발] 영원한 사기극, 평생 자기계발해봐라 새창으로 보기
 평소 자기계발서는 책으로 치지도 않는다. 예전에 누군가 올해 독서 목표가 100권이라고 했는데 읽는 책이 전부 자기계발서였다. 그에 대한 내 판단은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았다였다.

 

자기계발서를 부정하는 이유가 있다. 얼마전 출간된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제목처럼 이건 사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을 해봐야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쉬운 가정을 해 보자.

 

일을 하고 싶은 100명이 있다. 하지만 일자리는 80개다. 그리고 거기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1%라면 1명만이 성공한다
그 100명이 똑같은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자기계발서에 나온데로 일년 365일 노력한다. 아무리 노력을 해봐야 20명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고, 일하고 있는 79명은 성공할 수 없다. 내가 자기계발서를 싫어하고 책으로 치지도 않는 이유이다.

 





어쩌다 한번씩 기획회의라는 잡지를 읽곤하는데 재미있는 꼭지가 있었다. '자기계발 다시읽기' 자기계발서를 단순히 터부시 하기만 했는데 자기계발서를 문화적으로 접근한 방법이 흥미로웠다. 생각해보니 '거대한 사기극'은 기획회의에 연재되었던 내용이 책으로 엮여저 나온 것이다.

 

생각해보니 2009년에 한국상황과 자기계발을 연구한 책이 출간되었다.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신문에서 소개글을 읽고는 바로 구매했던 책이다.

 

기획회의 352호는 특집으로 '굿바이 자기계발'을 실었다. 이 참에 사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독서를 기획했다.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는 민주화 이후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생겨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구조조정의 상시화와 지식기반사회라는 사회환경속에서 개인을 평가하는 관리기법들이 태어나고, 각 개인들은 알아서 자기계발을 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책은 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실제적으로 기업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영관리기법들을 다루고 있어 관심이 간다. 다만 쉽게 읽기에는 조금 부담이 될 것 같다.

 

<자기계발의 덫>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8가지 습관'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가 정작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자기 딸에게는 계획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말고, 벽에 걸린 시계가 아닌 마음이 하고 싶은데로 하라는 충고를 하는데, 이는 자신이 주장해 온 계획도구들을 자신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모순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계획도구로 많은 이의 돈을 긁어모았으면서 정작 자신은 그렇지 못한... 이 책은 아마도 이렇게 미국에서 유명한 자기계발저자들을 파헤치지 않을까 싶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IT종사자, 문화산업종사자들 처럼 열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처한 현실에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자기계발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 국가와 기업이 아니라 개인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발상은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탁월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긍정의 배신>은 바바라 애런라이크 배신3부작(노동의배신, 희망의 배신)과 같이 읽을 생각이다. 긍정의 배신은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만 보고,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긍정주의의 메시지가 불편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 저마다 자신의 쳇바퀴에만 열중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매트릭스로 작용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유방암 경험에서 시작해 시중에 넘쳐나는 자기계발서의 메시지, 초대형 교회의 모순적인 설교, 동기 유발 강사들과 기업들의 커넥션, 그리고 세계를 재난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차근차근 더듬어 가며 '긍정주의'의 실체를 우리에게 전하는 저자의 시각은 날카로우면서도 시종 유쾌하고 재치 있다. " 특히 긍정주의가 가져온 문제점을 밝히는 점이 관심을 갖게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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