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9

알라딘: 땅의 옹호 - 공생공락의 삶을 위하여



알라딘: 땅의 옹호 - 공생공락의 삶을 위하여






땅의 옹호 - 공생공락의 삶을 위하여

김종철 (지은이) | 녹색평론사 | 2008-05-15
공유
URL











정가 15,000원
판매가 13,500원 (10%, 1,50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마일리지
750점(5%) + 405점(멤버십 3%) + 5만원이상 구매시 2,000점

세액절감액 610원 (도서구입비 소득공제 대상 및 조건 충족 시)


추가혜택 카드/간편결제 할인



이 책의 전자책 : 출간된 전자책이 없습니다.
출간알림 신청



반양장본 | 384쪽 | 150*215mm | 730g | ISBN : 9788990274410


배송료 무료
수령예상일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내일 수령

92.9% 최근 1주 확률
(금정구 구서2동 우성아파트 )


주문수량










장바구니 담기
바로구매
선물하기
보관함 담기









8.8

Sales Point : 491





읽고 싶어요 (1명)
읽고 있어요 (0명)
읽었어요 (9명)


100자평 (1편)

리뷰 (4편)



알라딘에 팔기
회원에게 팔기

중고 등록 알림 신청

내 블로그에 상품정보 복사
1:1 문의











- 1월 특별 선물! 피너츠 양각머그.주기율표 변색머그
- 이 시간, 알라딘 굿즈 총집합!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간디의 물레>의 저자가 격월간지「녹색평론」을 통해 발표한 글을 묶은 사회비평집. 그동안 저자가 「녹색평론」발간을 통해 밝혔던 사회에 전하고자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다. 또한 「녹색평론」100호 발간을 기념해서 엮게 된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경제논리가 아닌 인간다운 삶과 문화를 유지시키는 땅과 흙을 얘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땅은 개발과 경제적 성공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이에 저자는 사태의 핵심을 직시하고 우리가 정말 지향해야 할 사회와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단순히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근원적으로 사색하며 비판적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머리에

흙의 문화를 위하여
땅의 옹호
아름다운 영혼을 기리며
왜 자치, 자율의 삶이 필요한가
민중의 자치와 평화
폭력의 문화를 넘어서
부시 재선과 민주주의의 희극
쓰나미와 자급의 삶
동아시아의 평화와 ‘일본문제’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開眼이다
북핵문제와 ‘현실주의’
한미FTA, 경제성장, 민주주의
한미FTA, ‘국익’이라는 환상
野生의 삶의 기술
‘공생공락의 가난’을 위하여
민주주의, 성장논리, 農的 순환사회

[토론] 한미FTA, 성장주의 패러다임의 극복은 불가능한가
[대담] 환경과 평화의 세기를 위하여
[토론] 시인의 큰 마음
[대담] 21세기 한국문학과 지성의 현주소




결국, 민중의 평화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농촌공동체의 보존과 회복이다. 농업은 아직도 세계의 절대다수 인구가 종사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일자리이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사실상의 기업식민지로 전락해가고 있는 오늘날, 자본과 국가와 '전문가'로 이루어진 막강한 ...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 ‘쉼’이라는 주제로 소개한 책들





지은이 : 김종철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성장시대의 종언과 민주주의―김종철 생태사상론집>,<대지의 상상력―삶·생명의 옹호자들에 관한 에세이>,<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 총 34종 (모두보기)
소개 : 《녹색평론》 발행 및 편집인.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지은 책으로 『간디의 물레』, 『땅의 옹호』,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공역),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등이 있다.




저자의 말
그러나, 아무리 가혹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제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과 ‘풍요’도 거의 끝나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더 많이 투입함으로써 사태를 개선하려는 가망 없는 노력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태의 핵심을 직시하고, 우리가 정말 지향해야 할 ‘선진사회’란 대체 무엇이며,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사색할 줄 아는 비판적 능력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녹색평론사
출판사 페이지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아담을 기다리며>,<녹색평론 통권 164호>,<녹색평론 통권 163호>등 총 69종
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2위 (브랜드 지수 74,326점)

추천도서 : <간디의 물레>
우리사회에 생태주의 논의를 선구적으로 제기한 격월간 인문교양지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교수의 저서로서, 생태적·문화적 위기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철저한 근대 산업문명 비판서라고 평가받고 있다. 공동체와 인간다운 삶, 지속가능한 비폭력의 문화를 위한 논리와 비전을 담고 있다.

김정현(편집장)






이 책은 ≪간디의 물레≫ 이후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이 그동안 ≪녹색평론≫을 통해 발표한 글을 묶은 사회비평집이다. 그동안 김종철 선생이 격월간 ≪녹색평론≫의 발간을 통해 이 사회에 전하고자 메시지가 잘 압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책은 조금 앞서 나온 녹색평론 서문집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와 더불어 ≪녹색평론≫ 100호(2008년 5-6월호) 발간을 기념해서 엮게된 의미있는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책머리에 - 김종철
선인들의 가르침에 망본초란(忘本招亂)이라는 말이 있다. 즉, 근본을 잊어버리면 망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에서 땅의 건강을 유지하고, 그러기 위해서 땅을 돌보는 일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람들에게 ‘땅’이라고 하면 막대한 불로소득을 안겨주는 부동산, 즉 끊임없는 투기의 대상 이외에 어떤 의미가 아직도 남아 있을까. 지금 이 나라는 투기꾼들의 세상이다. 그리고, 바로 그 투기꾼들이 나라의 온갖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탓에 끊임없이 땅을 파헤치고, 죽이는 이른바 ‘개발사업’이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에게 ‘땅’은 만물을 기르는 어머니 대지(大地)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순환적인 패턴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리듬에 순종하면서, 사람끼리 어울려 땀 흘려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수확의 기쁨을 나눔으로써만 인간다운 삶과 문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진리였다. 아무리 잔혹한 전쟁일지라도 땅과 땅을 보살피는 사람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뿌리째 파괴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생존과 문화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땅의 의미는 자본주의 근대의 발흥과 더불어 뿌리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 문명의 전개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역사라기보다 세계 전역의 토착문화와 그 문화의 토대인 땅에 대한 체계적인 유린과 공격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땅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그 땅을 기반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을 가차없이 망가뜨리고, 오로지 소수 특권층의 배타적인 ‘행복’을 증진시켜왔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땅 그 자체의 생명력이 거의 회복불능의 수준으로 훼손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파괴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신의 붕괴를 가져올 밖에 없다. 그 징후는 이미 기후변화, 피크오일, 식량 및 금융위기 등등 수습하기 어려운 다양한 생태적, 사회적, 정치적 위기를 통해서 세계 전역에 걸쳐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자제하여 파괴의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란 본질적으로 자기제어 능력을 철저히 결여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땅’을 유린하는 것을 대가로 하여 얻은 ‘경제적 성공’에 두뇌가 마비되어 침로(針路)를 잃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지금 이 사회는 ‘경제’라는 일원적 가치를 위해서라면 모든 인간적인 가치가 희생되어도 좋다고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그 결과, 이 사회는 무엇 때문에 ‘근대화’를 지향하고, ‘경제발전’을 추구해왔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기묘한 사회로 변해버린 것이다. 일찍이 이보다 더 인간성이 파괴되고, 인간관계가 망가진 흉흉한 사회가 있었던가.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이른바 ‘압축적’ 근대화에 성공한 사회로서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기초적인 사실을 오늘의 한국인들이 순순히 인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성공’이 바로 인간다운 삶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것은 이제 겨우 ‘선진적’ 삶을 향유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는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혹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제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과 ‘풍요’도 거의 끝나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더 많이 투입함으로써 사태를 개선하려는 가망없는 노력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태의 핵심을 직시하고, 우리가 정말 지향해야 할 ‘선진사회’란 대체 무엇이며,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사색할 줄 아는 비판적 능력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은 《간디의 물레 ― 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1999년)를 펴낸 이후 지금까지 내가 주로 《녹색평론》에 썼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녹색평론》 100호를 기하여 내놓는 이 책의 준비과정에서 나는 《간디의 물레》 이후 내 생각에 일어난 약간의 변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변화는, 간단히 말하면, 근년에 이르러 이반 일리치의 생애와 사상이 내게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점과 크게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 일리치는 우리의 삶에서 ‘우정’이 갖는 중심적인 의의에 대해서 나를 깨우쳐주었고, ‘우정’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나아가서 일리치는 내게 실제로 좋은 벗들을 불러다주었다. 내가 오랜 직장이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로 자리를 옮긴 뒤, 나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벌써 4년이 넘었지만 대부분 초기회원들이 계속해서 참가하고 있는 이 모임을 통해서 나는 대학생활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우정’은 사심없는 마음, 자기희생의 정신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고 일리치는 말했다. 그의 말은 실제로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서 빈번히 입증되었다. 나는 이 책이 이 모임의 벗들에게 하나의 작은 선물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책을 내놓는다.






읽고 싶어요 (1)
읽고 있어요 (0)
읽었어요 (9)


100자평

마이페이퍼 > 마이페이퍼
스포일러 포함


현재 0 / 280byte (한글 140자 이내)
등록

글 작성 유의사항

구매자 (1)
전체 (1)

별점순
최신순
공감순

zikomo 2016-04-15
사회민주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곳을 잘 보여주는 글이라 느끼게 되네요. 모두가, 모든 것이 망해가는 이 세상에서 똑바로 보고 가야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합니다. 다만 책에서, 권정생 선생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랬는데, 쉬운 낱말과 문장으로 글을 좀 쓰시면 좋을 텐데요...
공감(0) 댓글(0)
구매자 기준은




마이리뷰
쓰기

구매자 (1)
전체 (4)

별점순
최신순
공감순

양심적 산업문명 거부자
사랑하기 때문에 2012-10-20



김종철 선생님이 보기에 인간을 타락시키고 병들게 만들었으며 자연을 파탄낸 것은 산업문명이라는 서구세계의 교만이다. 이제는 이 땅의 사람들도 강자숭배주의에 빠져 국익이 되고 경제성장이 되면 원자력도 좋고 자동차도 좋고 유전자조작도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어 이 사회를 움직인다. 선생은 산업문명은 반드시 국가주의와 결부되며 국가주의에 현혹된 개인들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줄 모르고 경제성장논리와 국가논리에 빠져 허우적대게 된다.

이 분이 누누히 강조하는 것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마을공동체의 부활이다. 농업도 소농이라야 땅을 소중히하고 사람을 아낀다는 것이다.



선생의 글은 종말로 치닫는 세상에 외침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존기반 혹은 너무도 당연히 우리 사회의 제도 및 토대라 여겼던 교육, 의료, 금융과 같은 것이 사실은 권력엘리트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해주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진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과는 확연히 다르다. 석유문명의 고갈은 문명사적 전환을 일으킬 것이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회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고층건물을 짓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 곧 거대한 흉물이 될 것이니 말이다. 올레길, 둘레길하면서 걷기열풍에 먼 곳으로 차를 타고 가서 무슨 웰빙을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처량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작 자기 동네에서 두 다리로 걸어다니려 해도 자동차의 위협에 시달리니 이제는 걷는 것도 대단한 사치인 모양이다. 하물며 사람이 다니는 인도도 없는 도로가 있고 인도를 차가 덮고 있을 때도 있으니 마음껏 걷는 것도 돈을 주고 구입하는 상품인가 보다.



반문명주의자가 되서 기계를 파괴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혁명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국가와 산업문명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 어쩌면 빙산을 바라보고도 돌진하는 타이타닉호처럼, 자신이 걸터앉은 나무가지를 톱질하는 우매한 사람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읽고 나서야 깨달을지 모른다.



간디의 물레로 시작해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선을 만났고 마음이 홀가분하다. 산업사회에서 경쟁하면서 갖추어야 하는 것들 즉 학벌, 자동차, 좋은 직장, 아파트 같은 것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위에 나열한 것을 갖추지 못하면 심한 열패감에 젖어 소외되고 갖추면 우월감으로 타인을 무시하면서 삶의 모든 가치라 착각하며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간디에 물레'부터 '땅의 옹호'까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김종철선생과 만나서 내려놓는 홀가분함을 느끼길 바란다.



아울러 김종철 선생님이 신문에 쓴 칼럼이나 강연록도 읽어볼만 하다.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