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다카기 진자부로 (지은이), 김원식 (옮긴이) | 녹색평론사 | 2006-01-03
정가 10,000원
판매가 9,000원 (10%, 1,00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반양장본 | 284쪽 | 152*223mm (A5신) | 398g | ISBN : 9788990274311
8.3
환경운동 주간 12위
사회과학 top100 7주
Sales Point : 325
국내도서 > 과학 > 과학의 이해 > 과학사상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환경운동
"자연에 뿌리박은 민중, 그 민중에게 '자연'은 해방을 위한 투쟁의 근거가 된다. 생태주의는 단지 도시 문명에 식상한 사람들의 '취미'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지성계가 '근원적 생태주의의 기념비적 저서'라고 격찬한 책. 인간중심주의 사고는 곧 공멸의 위기 상황으로 귀결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연을 바라보는 근원적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곧 인간중심주의를 버리고 자연 속의 한 개체로 인간을 상대화함으로써 자연과의 공생을 이루어 내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자연의 다양한 행동을 완전히 해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자각을 통해 자연의 정교하고 자연스런 조화로 이루어지는 법칙성을 인정하고 인간을 자연의 흐름 속에 합류시키자고 말한다.
서장_ 지금 왜 자연인가
1부 인간은 자연을 어떻게 보아 왔는가
제1장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제2장 로고스가 된 자연
제3장 기계로서의 자연
제4장 우주는 해명되었는가
2부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제5장 에콜로지적 지구상
제6장 민중의 자연
제7장 자연과 노동
종장_ 자연에 살다
증보_ 그리고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것은 또한 오늘날, 자연과 인간의 나눌 수 없는 생명의 끈을 지키고 혹은 복권하려 하는 민중적인 삶이 생명을 건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에 있어서 생태주의의 가능성을 서양에서 수입한 사상으로서가 아니라, 다나카 쇼조를 원점으로 생각하려는 하나자키 코헤이의 지적은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옳다고 할 것이다.
생태주의는 오늘날 확실히 도시 문명에 식상한 사람들의 취미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항상 어깨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선 것 같은 이른바 '전투적 생태주의'로만 존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본질적으로 더 자유롭고 더 자연스러운 정신과 신체의 존재 양식의 지평일 것이다. - 본문 203쪽
근대로의 전환이 일어났을 때 자연관이 과학적 자연관 일색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과학적 자연관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이원화가 일어났던 것이다.-112쪽
- 가랑비
과거를 향해서, 아니면 미래를 향해서, 우주상이 단순화되어 가는 한, 그러한 단순화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다. 물리학, 더구나 과학의 통합화라든가 보편화라는 것은, 본래 그러한 작업이다. 그러나 그 거꾸로의 도정을 찾아서 개별성으로 돌아오는 힘을, 과학은 결코 가질 수 없다.-134-135쪽
- 가랑비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 겸손의 자연관, 해방의 자연관
지은이 : 다카기 진자부로 (高木仁三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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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시민과학자로 살다>,<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총 7종 (모두보기)
소개 :
1938년에 태어나 도쿄대학 이학부 화학과를 졸업하였다. 도쿄대학 원자핵연구소 근무하였으며, 1969년 도쿄 도립대학 이학부 조교수를 부임했다. 1973년 "국가권력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민중의 편에서 '자립적인 과학'을 추구하기 위해" 교수직을 사직했다.
원자력발전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원자력자료정보실' 창설, 대표를 역임했다. 1998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두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며, 병상에서도 자전적 기록인 <시민과학자로 살다>와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등을 집필하는 등, 원자력 시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호소의 메시지를 남겼다. 2000년 10월 8일 영면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시민과학자로 살다>,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외에, <과학은 변한다>, <플루토늄의 공포>, <위기의 과학>, <내 안의 에콜로지>, <핵시대를 생각한다>, <핵의 세기말>, <플루토늄의 미래> 등의 저서가 있다.
옮긴이 :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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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 총 14종 (모두보기)
소개 : 1923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고 국대안 반대 투쟁을 겪으며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중퇴했다. 한국 환경운동의 여명기에 공해추방운동연합에 참여했으며 지금은 반핵반전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어로 옮겨 소개한 책으로는 환경사상의 내용과 역사를 153항목의 키워드로 살펴본 《환경사상 키워드》를 비롯해 《환경학과 평화학》《환경정의를 위하여》《위험한 이야기》《지구를 파괴하는 범죄자들》《시민 과학자로 살다》《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들이 있다.
저자의 말
에콜로지즘은 해방의 사상이 될 수 있는가. 수학문제처럼, 이런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 이원적으로 분열된 자연관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방향에서 해방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입장이다.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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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아담을 기다리며>,<녹색평론 통권 164호>,<녹색평론 통권 163호>등 총 69종
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2위 (브랜드 지수 74,326점)
추천도서 : <간디의 물레>
우리사회에 생태주의 논의를 선구적으로 제기한 격월간 인문교양지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교수의 저서로서, 생태적·문화적 위기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철저한 근대 산업문명 비판서라고 평가받고 있다. 공동체와 인간다운 삶, 지속가능한 비폭력의 문화를 위한 논리와 비전을 담고 있다.
김정현(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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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온 2010-06-26
이것은 1985년에 씌여진 책이다. 우리가 땅을 막 파헤치기 시작하던 시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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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보는 눈
플로라 2007-09-30
이 책은 자연과 인간과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했는지. 왜 인간과 자연이 팽팽한 긴장의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간이 자연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착취는 그 수준이 이미 심각하다. 그래서 자연이 인간에 대한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고, 이미 그 반격이 시작되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밝혀지고 있다. 도대체 인간들은 어떤 방식으로 오늘날과 같은 자연관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이 책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인간의 자연데 대한 관점을 추적해 간다. 자연에서 진리를 찾으려던 사람들이. 자연의 메커니즘을 밝히게 되면서 자연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게 되고, 자연을 마구잡이로 수탈하게 되는 과정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정립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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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그 스스로 치유하다
雨裝愚齋 2006-01-19
한 지하절 서점에서 눈에 확 들어왔다. 저 지방..<대구 사람들에게는 실례가 되겠죠..용서하시길..>에서 출판활동을 통해 이 땅에 사는 무수한 사람들의 삶을 반성하게 만드는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이었기에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이제까지 '녹색평론사'에서 출간한 책들을 모두 읽었다고 할 수는 없어도, 잡지 '녹색평론'이나, 내가 가장 아끼는 '책' 가운데 하나인 '우리들의 하나님'을 출간한 출판사이기에 주저없이 구입하여....<사실 한 지하철 서점은 내가 자주 가는 곳이지만 이 책을 사기 전까지는 한번도 그곳에서 책을 구입하지 않았다...이후 책은 대형서점에서 구입하였고 이곳은 단지 써핑하는 곳이었다..그러나 처음으로 이 책을 그곳에서 구입했다, 그만큼 이 책은 나에게 주저없는 구입을 하게 만든 그런 책이었다.....>천천히 일주일을 씹어서 읽었다. 책 제목인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이 책의 2부에 해당하고 1부는 서양의 자연관을 다루고 있다. 저자 나름대로의 새로운 자연관?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한 시민과학자(사실은 고도의 지적 수준을 지닌 학자이다)로 자임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가 나름대로 서구적 자연관의 변화를 어렵지 않고도 간명하게 정리를 해 준 1부를 지나 이 책의 주제인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자연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2부에 이르기까지, '자연'이라는 말은 핵심 주제어로서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인간의 이용대상물로 전락한 사물화된 자연을 인간의 친구이자 공생의 관계인 살아있는 자연으로 바라볼 것을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점은 결코 새로울 것 하나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사실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저자의 글쓰기의 매력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리에 익히 잘 알려진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이야기나 헤시오더스의 '노동과 나날'을 통해서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 문제의 문제점까지 소소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러나 깊이있으면서 어렵지 않게 전달하는 저자의 그 공력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즐거웠다. 자연에 반하는 죽은 생명의 문화를 이제는 자연과 공생하는 살아있는 문화로 전화해야 된다는 사실.....그것은 바로 우리가 숨을 쉬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언제 숨을 쉰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았던가? 지금도 나는 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그 숨을 쉬게 만들어 주는 이 위대한 자연에 깊이 고마움을 절감해 본 적이 있던가? 도시적 문명 속에서 살아가면서 점점더 사막화되어 가는 나를 되돌이켜 보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 이 책은 유익한 책읽기였다. 한 동안 시골에서 지냈던 그 시절.....잇속에 물들지 않아 보였던 이발장수와 칼국수 아줌마의 그 칼국수를 먹고 싶다. 왜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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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조금만 쉽게 썼더라면.
도넛공주 2007-06-21
다카기 진자부로는 개인적으로 몹시 존경하는 분 중 하나다. 핵과 대중 사이를 이만큼 좁힌 과학자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대해 이만큼 가슴아파하며 궁리한 이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당연히 그이의 전작은 모두 읽었고, 일본 원서로 나왔다는 '다카기 진자부로 저작집 12권 시리즈'도 사보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도 어렵게 쓰여졌다. 보고 또 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또 봐도, 머릿속에 쑤욱 들어오질 않는다. 들어있는 큰 뜻과 빛나는 이론은 알겠으나, 그렇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감치 못할 필체로 쓰이지 않은게 마음 아프다. 다시 한번 찬찬히 읽으면서 최대한 뜻을 파악한 후, 쉬운 말로 다른 이들에게 설명해주었으면 좋겠으나...사실, 그렇게까지 '노력'하면서 읽어야 하는 게 독서는 아니지 않은가. 역시 연구의 업적과 그걸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필체를 모두 갖춘 사람은 드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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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간문제다
샬롬 2008-11-11
다카기 진자부로/ 김원식 옮김,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녹색평론사, 2006.
책 읽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을 번역한 사람부터 이야기해야 되겟다. 김원식이라는 사람. 처음 듣는 사람이다. 근데, 책 마지막 옮긴이의 글 제일 끝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원자력 폐기물 처리를 둘러싼 최근의 작태, 새만금과 천성산에서 발악하고 있는 개발망령들은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묘혈(지구멸망)을 파고 있다. 내 나이 어느덧 80을 넘었지만 나는 앞날을 똑바로 바라보고, 오늘도 자본주의와 싸우려고 한다."
80을 넘은 노인이다. 근데 그가 '앞날을 똑바로 바라보고 오늘도 자본주의와 싸우겠다고'고 한다.
책 뒷표지 안에 있는 약력을 보았다. "현재 아나키즘에 기반한 반전, 평화운동 등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나와 있다.
머리 숙인다.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다 본다.
본래 이 책을 쓴 것은 1985년이라고 한다. 그 후 증보를 한 게1998년이라고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래서인가 조금은 식상한 내용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1985년에 이미 사태를 예측한 것이다. 그가 이 책을 쓰자마자 체르노빌 사건이 터졌다. 그러니 식상이 아니라 선지적 지식이었던 셈이다.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제목 그대로 이것이 이 책의 핵심적 질문이다. 그리고 답은 자연을 인간보다 밑에 놓지 말라는 것이다. 자연 속의 인간이지, 자연 위에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를 철저하게 상대화하고, 근대의 인간을 인간답게 했다고 여겨진 인간지성의 절대적 보편성(또는 다른 자연에 대한 우위)을 버리자는 것이 에콜로지즘의 본질인 것이다."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산자락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볼 때의 자연, 이것은 시인의 자연이다. 그러나 천체운행을 설명할 때의 자연은 과학자의 자연이다. 둘 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후자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회복이 필요하다.
근데 사실 책이 좀 어려웠다. 집중해서 읽지 않고 들고 다니며 읽어서 그랬는지 잘 들어오지 않은 대목이 많았다. 게다가 책의 처음엔 고대 서양철학의 자연관부터 다뤘다. 그랬으니 내가 좀 헤맸을 수밖에.
특이한 해석을 보였던 게 프로메테우스 신화였다. 그는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주었다. 그래서인가 지금까지 그 신화에 대한 해석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 개척을 상징했다고 말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이고 제우스는 악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다카기 진자부로는 다른 해석을 내린다. 제우스가 그를 벌 주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적 문화와 테크놀로지의 대립이라고 말한다.
이후 자연은 점차 로고스가 되었다. 감성과 직관은 사라지고 오직 단순한 논리만이 중시되었다. 한 예를 보자.
태양이 왜 가라앉는가를 물으면 그것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답이 아니다. 어떻게를 답했을 뿐, 왜에 대해서는 아직 말한 게 아니다. 왜 자전하는가. 우린 이쯤되면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로고스를 말한다. 아 허약한 로고스여.
소위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서도 말을 한다. 이 말은 본래 부르트란트위원회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 사고다. 출구가 없는 임시 방편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대해야 한다. 열려있는 생명 시스템으로서의 지구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근본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지구환경문제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지구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환경에 문제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중심적 사고의 결과다. 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문제에 핵심에 서 있다. 인간 중심을 벗어나야 한다. 환경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인간이 잘못을 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환경문제라고 한다니, 그의 지적이 옳다.
특히 이런 자세는 생태주의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경종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생태주의가 항상 어깨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선 것 같은 이른바 '전투적 생태주의'로만 존재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본질적으로 더 자유롭고 더 자연스러운 정신과 신체의 존재양식의 지평일 것이다.
언젠가 이 책을 읽고 평을 썼던 최성각이 인용했던 구절을 여기 다시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우리 대지 위에 사는 사람들 모습과 이 풍경이 허물어지고 죽어가는데, 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반인간적인 정경, 그 하나하나에서 들녘을 달리는 신(神)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놈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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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지구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지구에서
가랑비 2007-04-09
근대로의 전환이 일어났을 때 자연관이 과학적 자연관 일색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과학적 자연관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이원화가 일어났던 것이다.-112쪽
과거를 향해서, 아니면 미래를 향해서, 우주상이 단순화되어 가는 한, 그러한 단순화의 도정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다. 물리학, 더구나 과학의 통합화라든가 보편화라는 것은, 본래 그러한 작업이다. 그러나 그 거꾸로의 도정을 찾아서 개별성으로 돌아오는 힘을, 과학은 결코 가질 수 없다.-134-135쪽
하나의 통일적 법칙을 지배하는 것이 하나의 신이라고 한다면, 무한히 다양하고 독립적인 신이 독립된 우주를 각기 하나씩 갖고 있다는 것이 제일 ‘보편합리적’인 생각이고,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을 가장 ‘상대화’한 것이 아닐까. 하나의 인간에게 유일한 신과 그의 법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신=인간의 계는 무한히 있을 수 있다.
(......)
우리가 현재 있는 우주, 지구, 자연계, 그리고 우리들, 그런 것이 어떠한 절대보편성을 갖는지보다도, 그러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꿔치기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142쪽
인간의 두뇌와 신체는 극한까지 찢겨져서, 한편으로 우주를 해석하고 지배하는 보편성 합리성으로 존재하고, 또 한편으로 무기질의 원자의 집합체로 환원되어 있다. -136쪽
“땅을 기는 것, 하늘을 나는 것, 물에 사는 것, 풀, 나무, 돌멩이, 벌레, 병균 등” 그러한 모든 것이 우리라는 관점이다.-143쪽
지구는 옛날부터 ‘우주선 지구호’적인 폐쇄계가 아니었다고 한다.-157쪽
살아있는 계는 순환에 의해서 정상상태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폐쇄계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자원이 고갈되거나 오염물 처리장이 없어지거나, 어차피 폐쇄계는 오래 살 수 없다.
이와 같은 생명계에 대한 기본적 고찰에 기초해서 지구를 생각하면, 지구는 그야말로 사물이 흐르고 그것으로 ‘살아있는’ 개방정상계에 다름이 아니다.-158쪽
우리는 지금 생물의 공생을 뚜렷하게 적극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생존을 의존할 뿐이라는 수동적인 공존이 아니다. 하나의 생물이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주고, 다른 것으로부터 반응을 이끌어내고, 그러한 반응이 피드백하여 자기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시 자신도 변화해간다. 이런 상호작용이 자신을 항상 새로운 것으로 창출하면서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
이런 고찰은 생물의 진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빛을 던져준다. 다윈이즘적인 진화관에서는, 정적(靜的)인 지구의 조건에 적응하는 것이 적자(適者)로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도태된다. 생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는 경쟁원리에 지배되고 있으며, 그들의 공존관계는 적대적 공존이라 할 수 있다. 다윈이즘은 인간을 ‘진화한 원숭이’로 생물계에 상대화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다윈이즘은 적응을 달성한 생존경쟁의 챔피온으로 인간을 복권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인간의 자연에 대한 거의 모든 행위가 생존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되는 토양을 만들었다. -165-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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