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3

알라딘: 메이지의 그늘 -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 이찬수

알라딘: 메이지의 그늘
메이지의 그늘 -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 
이찬수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23-01-31































Sales Point :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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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재의 자민당 중심의 보수 일색 정치의 일본이, 메이지 시대 이래로 문화, 철학(종교) 사상에 눌어붙은 짙은 그늘을 여전히 간직한 체제라는 점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지난 200년간 일본인의 종교적 내면부터 사회적 정서, 정치적 문법까지 종합함으로써 일본 전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이를 통해 일본이 주변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인지, 한국인으로서는 궁금한 문제들을 명쾌하게 다룬다.

메이지, 신도(神道), 호국영령, 천황제, 멸사봉공, 혐한, ‘일본회의’, 국민(國民) 등의 키워드를 근간으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사죄하지 않는 전범국가, 종교적 천황주의, 보수주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같은 속성으로 채워 근현대 일본의 속살들은 단지 ‘호전적인 일본인의 침략 근성’으로 설명되는 역사적 사건의 개념어가 아니라 철저한 종교철학적 토대 위에 구축된 체제라는 발견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는 그간 한국인이 주로 역사적인 맥락에 집중하여 일본을 파악해 온 것과 달리, 심층에서의 일본 이해를 가능케 한다. 특히 일본의 보수주의란 진보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사상이 아니라, 천황을 정점으로 하여 메이지 시대 ‘영혼의 정치’ ‘제사하는 국가’의 전통과 정서를 승계하는 집단적 사고방식이자 태도라는 점을 주목한다. 이것이 일본이 왜 이웃국가와 국민들에게 정성 있는 사과를 함으로써 과거사를 벗어나서 미래로 향하는 길을 택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렇게 일본을 깊이 알아야만, 비로소 한일관계의 해원과 동북아 평화 체제 모색의 길을 열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목차


서문

Ⅰ. 메이지 시대와 그 그늘
한국과 일본, 왜 꼬였나 / 일본 보수 세력의 탄생 /호국영령과 애국주의 / 신도의 국가화와 영혼의 정치

Ⅱ. 영혼의 정치학: 메이지 시대와 종교적 정치
귀신 담론의 정치성 / 메이지유신과 호국영령 / 국학과 제사 문화 / 종교적 정치성과 영혼의 사회화 / 재앙신 신앙과 혼령의 인격화 / 현창신 신앙과 ‘천황교’ / 국가, 확대된 가족 / ‘무종교’라는 종교 / 행위의 모호한 주체

Ⅲ. 천황제의 현재: 새로운 종교로 이어지는 제사 문화
제사와 위령의 나라 / 영계에 대한 강조 / 신종교의 선조공양 / 수직적 국가주의의 거부 / ‘영혼’은 해석적 실재

Ⅳ. 제사의 정치, 영혼의 거처
국가의 제사 / 살아 있는 사자(死者), 영혼의 국가화 / 종교적 정치와 제사의 문화화 / 전쟁국가와 천황교 / ‘천황교’의 이중성

Ⅴ. 오오야케(公)와 와타쿠시(私): 일본 너머는 공(空)하다
공(公)과 사(私)라는 것 / ‘와타쿠시(私)’와 ‘혼네(本音)’ / ‘멸사봉공’으로서의 공공성 / 조화를 일치로 이해하다

Ⅵ. 불교와 천황제: 불교는 어떻게 국가주의에 기여했나
니시다의 철학과 공(公)에 포섭된 공(空) / 논리에만 충실한 스즈키 다이세츠 / 군국주의에 공헌한 불교계 / 이념화된 감정, 희생시킨 이들의 정당화 / 선과 의지: ‘하고자 함’과 ‘함’의 간격 / 니토베 이나조의 경우 / 선(禪)과 현실, 다시 스즈키 비판 / ‘상(相)’을 간과하다 / ‘종의 논리’와 타나베 하지메 / 여전한 한계와 근본적인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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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8~9가령 일본의 총리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는 소식은 거의 어김없이 한국과 중국의 뉴스에도 등장한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이 과거의 불법적 침략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사과할 줄 모른다며 어김없이 비판한다. ... 그런 관례나 정서의 근간을 찾아가다 보면 메이지 시대(1868-1912)에 도달한다. ... 메이지 천황 이후 세 명의 천황을 더 거쳤지만, 오늘날 일본 문화의 전반에는 여전히 ‘메이지의 그늘’이 걷히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지 시대를 보면 현대 일본의 어두운 속살이 보인다는 뜻이다. - 서문 접기
P. 70~71일본인은 이른바 ‘일본교도’로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도 ‘한국교’라고 불릴 만한 문화 안에서 그 문화에 어울리는 삶을 자신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만, ‘일본교’의 경우는 그 삶의 방식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그 ‘일본교’의 내용을 천황제가 강화시켜 온 것이다. 1945년 패전 이후 천황의 신적 차원[人神]은 공식적으로 포기되고 상징적 존재가 되었지만, 상당수의 일본인이 그 상징성을 어떤 이유에서든 유지하는 것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천황제의 영향력이 일본인의 내면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영혼의 정치학’ 접기
P. 106패전으로 국가적 영광에 상처를 입힌 사건의 희생자들은 국가적 제사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미국과 교전을 벌였던 오키나와에서 무수히 희생된 자들은 국가가 제사지내지 않는다. 고야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키나와만이 아니다. 제사드려지지 않는 국내외의 무수한 사자(死者)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일본인의 마음’을 속여 국가와 야스쿠니가 연속적이라 말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허언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다. … 국가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으나 제사드려지지 않는 안팎의 무수한 사자(死者)들에게는 야스쿠니의 존재 자체가기만일 것이다.” - ‘제사의 정치, 영혼의 거처’ 접기
P. 131일본은 오랜 과거부터 국가주의적 성향이 강했지만, 특히 메이지 시대에 신도를 국가적 정책 속에 융합시켜 천황 중심의 ‘국체(国体)’를 확립시켜 가는 과정은 멸사봉공적 공공성을 잘 보여준다.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 국민에게는 국가라는 ‘오오야케’를 위해 진력해야 하는 멸사봉공적 자세가 강력했던 탓에 각종 전쟁까지 벌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가 일본에서는 문지방 안의 자가(自家)의 세계(집·가정·자신)로서 그 영역을 인정받고 있었던 만큼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사’에게는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국민은 ‘국가=공’을 위해 가족이라는 ‘사’의 영역을 버렸으며, 자신의 재산과 생명이라는 ‘사’의 영역을 버리고 전쟁에 종사했던 것이다. - ‘오오야케(公)와 와타쿠시(私)’ 접기
P. 194근본적인 문제는 많은 일본인이 한국 등 이웃 국가가 겪은 상처를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20세기의 일본 역사를 객관적으로 공부해보지 않은 탓이 크다. 그리고 일본의 우익에게는 메이지 시대 이래 국가화한 제사 문화와 그에 따른 군사주의적 팽창이 무의식적으로 체화되어 있다시피 한 탓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늘도 비록 군국주의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일본인 대다수가 의식하지 못한 채 ‘영혼의 정치’ 또는 ‘제사의 정치’적 역학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과 연결된다. 이렇게 일본의 보수는 문화화한 ‘종교적 정치’ 혹은 ‘정치적 종교’의 정서를 유지해 오고 있다. - ‘반일과 혐한, 그 역사와 전복의 가능성’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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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일본의 사상과 문화, 동아시아의 종교와 평화 연구자.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와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의 사상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일본)코세이 가쿠린 객원교수, (일본)중앙학술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난잔대학 객원연구원, 성공회대 대우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일본정신』,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교토학파와 그리스도교』, 『다르지만 조화한다』, 『평화와 평화들』, 『사회는 왜 아픈가』... 더보기

최근작 : <메이지의 그늘>,<보훈과 교육>,<보훈, 평화로의 길> … 총 6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메이지 시대를 보면 현대 일본의 어두운 속살이 보인다
일본국민은 모두 ‘천황교(天皇敎)’ ‘일본교(日本敎)’의 신자로 살아간다
국가를 위하여 죽었으나 제사 드려지지 않는 무수한 존재가 있다
멸사봉공에 볼모로 잡힌 일본, 일본인, 일본사를 들여다본다
20세기 일본사를 객관적으로 공부하지 못한 데서 갈등이 시작된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철학 차이 - 한일청구권 협상에 개인 배상이 포함되는가 아닌가

현 정부의 일본 손들어주기 - 비극의 역사 재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역사의 ‘그늘’을 되돌아보는 공동의 시간을 더 만들어야 한다

악의 평범성, 일본과 독일의 차이점과 동질성

언제나 ‘일본의 사과와 배상’ 문제의 비교 대상이 되는 독일의 경우를 돌이켜 보며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을 말하지만, ‘전범국가’라는 면에서 보면 독일과 일본의 유사성이 훨씬 더 생동감 있게 두드러진다. 일찍이 나치 체제하에서 ‘유대인 대량 학살’의 실무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한 한나 아렌트는 취재기를 모아 출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악의 평범성’은 아이히만이 “유대인 대량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가 ‘태생적으로 악마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아렌트의 이러한 통찰은 탁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악의 평범성은 ‘전시 체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 사회의 도처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일 터이다.

‘일본의 평범성’ ― 잘못했다고는 생각지 못하는 사고력 결핍증
이 말을 그대로 일본의 경우로 가져와 보면, 일본의 경우 동아시아 일대를 전화(戰禍)로 내몰고 수백만 명의 인명을 희생시킨 행위를 행하고서도 오늘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오불관언하는 것은 그들이 그 문제에 관한 한 ‘사고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잘못을 저질렀지만 사과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생각지 못하는 판단력 결핍’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1차적으로 20세기 전후의 역사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 데서 비롯하지만, 근본적으로 메이지 이래 ‘일본 영광론’을 한 번도 떨쳐 버리지 않았던 ‘일본국의 근대 사상, 철학, 정교, 문화’에 두루 걸쳐 있는 ‘메이지의 그늘’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침략의 역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이나 중국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들은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일본만 기억하거나, (한일청구권협상 등에 따라) 배상이 끝난 ‘위안부’나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를 새롭게 들고 나오고, ‘(한국의) 법원조차도 정치적인 판결을 하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국가와 국민’으로서 한국을 멀끔히 쳐다볼 뿐이다. 그들이 ‘정상국가 일본’을 그토록 갈구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평범한 일본의 본래’ 모습이라고 여기는, ‘일본의 평범성’에 대한 갈구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인)으로서는 국가(정부)든 국민이든 간에 ‘국가 간에 협상(한일협상)’이 끝난 문제를 ‘국민적인 반발’을 이유로 ‘뒤집는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정신이 천황이며, 따라서 국가의 결정은 ‘신(神)’의 명령과 같은 것이며, 우리(일본)이 그러하니, 다른 나라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하고, 그러하여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일본인에게 한국인은 ‘몰상식’하고 ‘평범하지 못한’ 미개인으로 비치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의 ‘영혼의 정치’와 ‘제사하는 국가’
아이히만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일본(국가)나 일본인(국민)의 ‘사고력 결핍’은 결국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시점의 교육체계가 빚어낸 의식화(세뇌)의 산물이다. 아이히만이 ‘나치즘’이라는 이념의 사생아라면, 일본은 메이지 이래 일본이 치달아온 천황을 정점으로 한 군국주의, ‘국가신도’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 체제 전체의 종교화와 깊이 관련된다.
이 책에서는 메이지 정부가 오랜 민중 신앙인 신도(神道)를 국가적 통치 시스템의 근간으로 삼는 과정, 즉 부모에 대한 효행을 선조에 대한 제사와 연결시키고 제사의 대상을 일본의 신화적 기원인 아마테라스에까지 확대시켜서,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는 천황을 숭배하게 하고, 그를 통해 천황 중심의 통일 국가를 성립시켜온 과정에 대해 조목조목 정리한다.
특히 전몰자의 혼령, 즉 ‘호국영령’을 위로하고 제사함으로써 국민의 호국적 자세를 강화하고, 그를 통해 국민의 정신적 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전략을 이 책에서는 ‘영혼의 정치(학)’이라 명명한다. 죽은 자(조상신, 호국영령 등 귀신 전반)가 산 자를 움직이는 일본 특유의 ‘영혼과 제사의 정치’의 특징을 역사적 흐름과 주제를 따라가며 설득력있게 분석한다.

‘천황교’의 탄생, 오오야케(公)·와타쿠시(私)

메이지 시대 이른바 제사의 정치를 중심으로 사실상 ‘천황교’가 탄생했다. 일본인은 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의식중에 거의 ‘천황교 신자’가 되었다. 이 천황교는 공과 사를 분리하는 일본식 ‘오오야케(公)’와 ‘와타쿠시(私)’의 개념을 더 강화시켰고, 이것이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일본적 대인관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일본이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이유, 인류 보편의 가치보다는 내부의 가치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일본에는 왜 기독교인이 거의 없는지, 한국과는 상이한 일본인의 ‘하늘’관 등을 밝힘으로써, 일본의 문화적 정서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이를 통해 한일 간 소모적 갈등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전투기를 헌납하는 종교와 전쟁을 옹호하는 철학

왜 일본 최고의 지성들이 천황제 안에 머물면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찬양하기만 했는지 그 철학적 논리와 오류를 밝힌다. 서양 사상가들을 일본 연구로 끌어들였던 니시다 기타로, 스즈키 다이세츠, 타나베 하지메와 같은 일본 최고의 철학자들은 물론 여러 종단들이 천황제를 찬양하고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된 배경과 논리,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일본적 ‘그늘’ 혹은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한일기본조약, 종군위안부,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한 한일 간 해석의 차이가 왜 이렇게 큰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치즘이 ‘민주주의적인 절차’(국민투표)에 의해 권력과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마침내 반민주주의적 독재(총통) 체제를 달성해 냈다면, 일본의 경우 메이지 이래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일본교(日本敎)’ 체제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해 나가고, 종교적(정서적, 신념적)으로 교화해 나간 결과물이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와 만주-중국대륙을 침략하고, 태평양 전쟁을 발발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이교도’들을 향해 종교전쟁을 벌이며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것은 마녀사냥으로 세계를 정화(淨化)하는 것과 한 치도 다름이 없었으며,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천황(神)을 위해 순교(殉敎)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이 메이지의 그늘, 천황의 발 아래 ‘가스라이팅 된’ 일본, 일본인, 일본 역사이고, 그 본질은 현재의 일본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동아시아와 세계를 전화(戰禍)에 휩싸이게 한 역사는 되풀이될 것인가

현 정부 들어 노골적으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면서 일본의 버티기로 말미암아 온전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절망적인 ‘해체’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억지를 부리며 버텨 온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실질적으로 국내 법(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며, 국제적인 상식(‘위안부’ 문제)마저도 무시하면서, 결과적으로 일본을 위한 정치외교를 펼쳐나감으로써, 국민적 자괴감, 분노, 허탈감을 촉발시키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국민적 좌절감이나 우려라는 정서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일본으로 하여금 과거 역사의 과오를 돌아볼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오히려 과거 역사를 되풀이할 빌미와 동력을 제공하는 측면이다. 일본은 최근 ‘선제적 방어’라는 희한한 개념을 들고 나와 ‘공격(침략)전쟁 가능’ 국가로의 실질적인 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일본의 독자적인 판단이든, 배후에 있는 강대국(미국)의 ‘버튼 누르기’에 의해서든, 일본은 여차 하면 (실질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북한에 대한 국지적인 혹은 전면적인 도발을 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을 완비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분노 조절이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일본을 제대로 알 때다
일본의 무뢰함과 무식함과 무책임함을 욕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수십 년을 되풀이해 온 방법으로 한일 관계에 대처하는 것은, 헛된 일일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일본인의 속내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는지, 그들이 무엇을 알지 못하여 이렇게 말하는지, 그들이 무엇에 홀려서 다시 죽을 구덩이(군국주의 부활)를 열심히 파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메이지의 그늘: 영혼의 정치와 일본 보수주의��는 “‘국민’보다 ‘국가’와 ‘국가주의’가 상위에 있던 일본적 ‘공기’”를 근간으로 하는 ‘일본’을 앎으로써 일본을 이기고, 일본을 이김으로써 일본을 화해의 광장으로 맞아들이는 멀고 험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무엇보다 일본을 위한 일이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과거의 식민 역사에 대한 기억의 상처,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의 상처를 씻는 길이며, 한-일 관계의 건전한 발전은 곧 국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행복한 발전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 관련 학자들은 이 책을 이렇게 평가한다

“일본이라는 산맥의 전체상을 조망하면서 일본 사상의 심연까지 과감히 파헤친다. 일본인도 미처 깨닫지 못하던 종교적 일상의 공기와 정치적 그늘의 음습함을 일깨워준다.” - 가미야마 미나코(나고야가쿠인대학 준교수)

“메이지의 ‘그늘’은 어두운 그림자뿐만 아니라 시원한 그늘이나 보호막으로서의 그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영혼의 정치’에 깔려 있는 ‘모순’에 대한 일본인의 독특한 사유방식을 낱낱이 풀어헤쳐 보여준다.” - 박규태(한양대 일본학과 교수)

“현재의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한 ‘발명’이며, 말 그대로 ‘메이지’는 아직도 역사화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일본인의 종교관, 정치관, 역사관, 세계관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간행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 김경묵(와세대다학 문학학술원 교수)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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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시대의 그늘을 제사문화와 천황교라는 종교 시각에서 풀어냈다. 흥미로운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실마리가 보인다. https://www.betulo.co.kr/3199
자작나무 2023-02-08 공감 (1) 댓글 (0)




하늘신앙이 없는 일본

  •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空)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를 일본인이 최초 번역할 때하늘(天)을 空(そら)라고 번역하는데서 일본의 하늘신앙 부재를 지적하는 저자의 주장이 신선했다.
  • 일본이 한국보다 기독교를 훨씬 먼저 수용했음에도 기독교인 그 숫가 아주 작은 이유 중 하나가 잔인한 박해도 있었지만천황제 중심의 종교이념으로 인한 하늘신앙 부재도 한 이유라는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권용철 2023-02-1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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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메이지의 그늘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 < 오현석 일간투데이

[서평] 메이지의 그늘 -영혼의 정치와 일본의 보수주의 < 북리뷰 < 라이프 < 기사본문 - 일간투데이



오현석 (북경대학 일어일문학 박사. 중국 화북전력대학 한국어 교수)


[일간투데이 양보현 기자]

한·일 갈등 뿌리는 서로 다른 의식 구조
日천황, 메이지유신 국가종교 시스템 정점
절대적·시원적 존재로서 무오류·무책임성
머나먼 화해의 길 첫걸음은 상호 이해로부터


“참을성이 있어야 해.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 앉아 줘. 저쪽 풀밭에 말이야. 그럼 내가 곁눈질로 살짝 널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거든. 그렇게 매일 조금씩 가까이 다가앉는 거야.”(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말했다. 그리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시간을 두고, 아주 서서히.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단박에 되는 일은 잘 없다. 거리를 두고 말을 아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여우가 했던 말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깊은 사막을 넘어 동아시아의 두 나라에서도 말이다. ‘메이지의 그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일본 연구가 집약되어 녹아 있다. 청년기의 지적 호기심에서 장년기를 거치며 원숙해진 실천적 관심까지. 수많은 논문에서 다져진 생각이 고스란히 농축되었다. 거기엔 신학과 불교학의 언어가, 통일과 평화학의 몸짓이, 레고 블록처럼 짜여있다. 작은 책이지만 결코 작거나 가볍지 않은 이유다.

책의 처음과 마지막 꼭지. ‘한국과 일본, 왜 꼬였나’. 그리고 이루어야 할 ‘다른 정서의 조화’. 양 끝에 배치된 두 개의 소제목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왜’ 갈등하나, 그래서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쉽지 않다. 난제(難題) 중의 난제다. 두 소제목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다. 우주의 깊이만큼이나 멀어 보인다. 그 거대한 사이, 틈새마다 곡절이 가득하다. 그 지도리에 일본의 ‘천황제’와 ‘영혼의 정치’가 있다.

저자는 말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일본은 국가를 위해 죽은 이들을 제사지냈다고. 이른바 ‘호국영령’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제사다. 그 제사의 정점에 ‘천황’(天皇)이 있다. 죽어서 신이 된 자들의 계보, 그 꼭대기에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이 놓인 것이다. 일본 국민이 올리는 모든 제사는 궁극적으로 천황에게 바치는 것이 된다. 종교적 국가 시스템. 메이지 유신이 만들어낸 일본이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빚어진다. 메이지 이후 일본인은 세상의 근원이며 절대적 존재인 천황을 넘어서는 가치를 상상하기 힘들다. 양심의 근거 혹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보편적 가치 관념이 약하다. 한국인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느냐!”라고 호통 칠 때의 그 ‘하늘’. 일본인에게는 그 ‘하늘’이 낯설다.


결국,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국토경계선. 거기까지가 일본인이 ‘공(公)’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범위가 된다. 그 토대는 물론 천황이다. 모순은 여기서 시작된다. 천황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지울 수 없다. 세계의 근원이자 존재의 원천이니 오류도 실수도 없다.

나쁜 일이 벌어졌다면 당시의 ‘공기’[구키, 空氣]가 만들어낸 결과다. 일시적으로 형성된 외부적 현상의 산물일 뿐이다. 누군가는 져야 할 ‘책임’은 그렇게 공기처럼 허공에 흩어진다. 이를 이해하면 일본의 많은 것이 보인다. 주변 국가를 침략한 것도, 과거사 반성에 소극적인 것도, 심지어 후쿠시마 오염수를 그렇게 방류하는 것까지도 말이다.

이 책은 쉽사리 ‘화해’를 말하지 않는다. ‘화해’는 괄호 속의 기호처럼 묶여 있다. 기의(記意)는 있으되 기표(記標)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화해는 너무 먼 길이다. 아득하다.

저자의 제안은 간결하다. “서로의 진심을 읽는 공동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화해의 첫 걸음은 이해다. 서로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 그들의 몫은 그들에게 두자. 우리는 다만 우리의 일을 해야 한다.

다시, 사막의 한가운데다. 어린 왕자와 헤어질 무렵이었다. 여우는 말했다. ‘마음으로 보아야 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마음으로 읽기. 이 책은 그 시작으로 손색이 없다.


양보현 기자 report0330@gmail.com
 

일본 메이지의 그늘, '제사하는 국가'와 '천황교'

일본 메이지의 그늘, '제사하는 국가'와 '천황교'

일본 메이지의 그늘, '제사하는 국가'와 '천황교'by 자작나무숲 2023. 1. 31.

“일본을 알려면 일본의 제사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인권연대가 주최하는 ‘이찬수 교수의 메이지의 그늘’ 기획강좌는 일본에 대한 흥미롭고도 시의적절한 분석을 제시한다. 1월 31일 첫 날 주제는 <메이지 시대의 ‘영혼의 정치’와 제사하는 국가>였다. 이찬수 교수는 메이지유신이 제도화한 ‘영혼의 정치’를 종교학자의 눈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사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극단적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진정한 사과”를 말하지만 일본으로선 그 말의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그러므로 한일관계 정상화는 죽음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찬수 교수는 “제사를 지내는 건 사실 한중일 공통이지만, 일본의 독특한 점은 죽은 사람은 존엄한 존재인 호토케[佛]가 되고 죽음은 생전의 모든 것을 정화하며, 신에게 책임을 묻는 개념이 희박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인도 합사돼 있다는 걸 바라보는 한국/중국과 일본의 너무나 다른 태도를 생각해보자. 한국/중국에게 천인공노할 짓이 정작 일본에선 왜 문제인지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그 정신적 뿌리를 알려면 메이지 유신(維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신은 말뜻을 풀어보면 유지하면서[維] 새롭게 한다[新]가 된다. 유신은 일본의 정신[和魂]을 지키면서 서양 문명[洋材]으로 일본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일본의 정신에 해당하는 것이 신토[神道]였다. 이로써 메이지[明治] 체제는 막부에서 천황제로 권력구조를 새롭게 하면서도 실상은 “전근대적 정교일치 국가를 구축(27쪽)”했다. 이로써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서양의 요구를 수용(27쪽)”할 수 있었다. “제사의 대상이 된 ‘귀신’은 제사를 드리는 이들에게 담론의 주체가 되고 문화의 근간으로 작용하며 국가 운영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순환적 구조(28쪽)”인 셈이다.







“메이지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각종 전란도 벌어졌다. 이때 죽은 이의 영혼을 국가 차원에서 제사하는, 일종의 ‘제사의 정치’로 사회를 통합하면서 정부의 정책도 정당화해 나갔다(24쪽).” 여기서 생겨난 신조어가 호국영령[護國英靈)이다. “’영령’은 본래 메이지 초기 군대에서 특수하게 사용되던 용어였다가, 일본이 국운을 걸고 벌인 러일전쟁 당시 언론들이 자국 전사자에 대한 존칭으로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일반명사가 되었다(25쪽).”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전쟁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에 명기한 “영령을 현창하고 근대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사명은 ‘영혼의 정치’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이다.

이찬수 교수는 “사실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도 ‘현충일’에서 보듯 한국도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역시 ‘제사의 정치학’의 연장선이다. “가령 누군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국립묘지에 참배하지 않거나 영혼을 현양하는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설령 영혼이라는 것은 없다고 믿는 이들조차 대통령의 그런 행위를 비판할 것이다. 죽은 이의 영혼을 높이는 행위가 이미 국가를 움직이는 동력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28~29쪽).”

일본이 한국/중국과 다른 점이라면 메이지 정부가 만든 국가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메이지 정부는 정치와 종교의 일체화를 통해 천황 중심 국가체제를 만들어 갔다. 메이지 시대 헌법은 천황을 무한한 권리를 갖되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존재로 규정했다. 천황은 헌법의 원천이자 헌법을 초월한 존재로서 말 그대로 ‘신(神)’이 됐다. “물론 천황이 만든 건 아니죠. 메이지 유신 주도세력은 천황을 교조로 하고 교육칙어와 군인칙유를 경전으로 하며 전국에 있는 신사를 교회로 삼는 사실상 ‘천황교’를 만들어낸 겁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은 모두 ‘천황교 신자’가 됐습니다.”

1945년 패전 이후 천황은 ‘인간 선언’을 했다. 이제 천황은 상징적 존재로 남게 됐다. 하지만 그걸로 ‘천황교’는 사라졌을까. 이찬수 교수는 유명한 1988년 당시 텔레비전 화면을 보여줬다. 야구중계를 하는 중간에 히로히토의 체온과 맥박, 혈압을 속보로 내보냈다. 이런 일이 서너달 동안 계속됐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순수한 ‘천황교’의 희생자일까. 이찬수 교수는 “일본인들이 천황교를 이용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헀다.

이런 구조에서 나오는 치명적인 부산물이 있다. “때로는 전쟁 책임은 천황에 있다는 핑계를 대며 내심 전쟁에 동의했던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일본 국민의 주체성은 희미하거나 불분명하거나 유동적이었다(72쪽).” 이찬수 교수는 “행위 주체가 모호해진다. (천황이) 하라고 해서 했으니 자신의 책임은 사라져 버린다”면서 “일본문화론에선 이를 아마에(甘え)와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로 표현한다. 공통점은 책임회피”라고 지적했다.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 1921~1991)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전쟁범죄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달랐던 이유도 여기서 찾았다. 일본인들은 모든 잘못된 결정의 책임을 ‘어쩔 수 없었어’ 하는 식으로 ‘공기’에 맡긴 뒤, 미국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공기’의 명령에 따르며 전후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날 도쿄가 도리어 차분하기도 했다는 것이 이제는 공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데서 오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74~75쪽).” 행위는 있는데 행위 주체가 없는 모호한 상황은 ‘무책임 정치’를 만든다.

‘천황교’는 일본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다음주 화요일(2월7일)에는 오오야케(公)과 와타쿠시(私), 와타쿠시(私)와 혼네(本音)라는 개념을 통해 메이지 시대의 그늘을 짚어볼 예정이다.


쇼와(昭和)천황(1926.12.25.~1989.1.7 재위)이 십이지장암으로 건강이 악화하자 급변사태를 예감하며 일본 방송사들은 병세를 자막으로 내보냈다. 야구중계나 어린이 만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글 검색으로 찾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