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8

알라딘: 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오강남 (지은이) | 예담 | 200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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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진 <도마복음>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풀이하여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도마복음>은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에 비해 내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과 이것을 깨닫는 깨침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도마복음>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환기식 독법’으로 재해석해낸다. 환기식 독법이란 본문 자체의 의도를 찾아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적용해보는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을 말한다.



저자서문 독자들께



예수의 비밀의 말씀

서언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제1절 올바르게 풀이하는 사람은

제2절 찾으면 혼란해하고

제3절a 천국이 하늘에 있으면 새들이

제3절b 너 자신을 알라

제4절 늙은이도 갓난아기에게서 배우고

제5절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깨달으면

제6절 금식을 할까요?

제7절 사람이 사자를 먹으면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라

제8절 지혜로운 어부와 같으니

제9절 씨를 한 줌 쥐고 뿌리는데

제10절 불을 지피다

제11절 하늘은 사라질 것이고

제12절 의인 야고보에게 가야

제13절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작에서 끝을 보라

제14절 금식을 하면

제15절 여자가 낳지 아니한 사람을 보거든

제16절 이땅에 분쟁을

제17절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제18절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제19절 있기 전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20절 그 나라는 겨자씨와 같으니



목숨처럼 사랑하고 눈동자처럼 지키라

제21절 남의 땅에서 노는 어린아이들과 같아

제22절 젖 먹는 아이를 보시고

제23절 천 명에서 한 명, 만 명에서 두 명

제24절 당신이 계신 곳을

제25절 목숨처럼 사랑하고 눈동자처럼 지키라

제26절 티는 보고 들보는 못 보는



세상의 아픔으로 아파하고

제27절 금식하지 않으면

제28절 내 영혼이 세상을 아파하고

제29절 육이 영을 위해

제30절 둘이나 한 명이 있는 곳에

제31절 예언자가 고향에서는

제32절 산 위의 도성은

제33절 지붕 위에서 외치라



깨침의 열쇠를 찾아

제34절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제35절 힘센 사람의 손을 묶어놓고

제36절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제37절 부끄럼 없이 옷을 벗어

제38절 나를 찾아도 나를 볼 수 없는 날이

제39절 깨달음의 열쇠를 감추고

제40절 포도 줄기가 아버지와 떨어져



나그네가 되어라

제41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이

제42절 나그네가 되어라

제43절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44절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제45절 덤불과 가시는 좋은 과일을 맺을 수 없기에

제46절 여자에게서 난 사람 중에

제47절 동시에 두 마리 말을 탈 수 없고

제48절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서로 화목하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제49절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제50절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제51절 언제 쉼이 있겠으며 언제 새 세상이

제52절 산 사람은 무시하고

제53절 할례가 쓸데 있습니까?

제54절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

제55절 자기 부모를 미워하고

제56절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

제57절 가라지 씨를 뿌리고



당신은 구구시기에

제58절 아픔을 겪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59절 살아 있을 동안 살아 계신 이를 주목하라

제60절 잡아먹히지 않도록

제61절 당신은 누구시기에

제62절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제63절 부자 농부는 그날 밤 죽고

제64절 손님을 초청했으나

제65절 소작인들이 주인 아들을 죽이고

제66절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고

제67절 자기를 모르면



핍박을 받으면 행복하다

제68절 미움과 핍박을 받으면 행복하니

제69절 자기 마음속에서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70절 여러분 속에 있는 그것을

제71절 내가 이 집을 헐면

제72절 나누도록 말해주십시오

제73절 추수할 것은 많은데

제74절 우물 안에는 아무도

제75절 홀로인 사람만이 신방에

제76절 다 팔아 진주 하나를

제77절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

제78절 무엇을 보러 광야에

제79절 당신을 낳은 자궁이



세상을 깨닫게 된 사람은

제80절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제81절 힘을 가진 사람은

제82절 나에게 가까이 함은 불 가까이

제83절 그들 안에 있는 빛은

제84절 여러분이 나기 전에

제85절 아담도 합당하지 않아

제86절 여우도 굴이 있고

제87절 몸에 의지하는 몸은

제88절 사자使者들과 예언자들이 와서

제89절 왜 잔의 밖을 씻는가

제90절 내게로 오라

제91절 당신이 누구신지

제92절 구하라 그리하면

제93절 거룩한 것을 개나 돼지에게

제94절 구하는 자는

제95절 돈이 있으면



아버지의 나라는

제96절 아버지의 나라는 작은 양의 누룩을

제97절 곡식이 가득한 항아리

제98절 그 힘센 자를 죽였더라

제99절 내 형제와 어머니

제100절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제101절 미워하지 않으면

제102절 자기도 먹지 않고 남도 먹지 못하게

제103절 도둑이 어디로 들어올지 아는 사람은

제104절 신랑이 신방을 떠날 때



둘을 하나로 만들면

제105절 창녀의 아들이라 불릴 것

제106절 둘을 하나로 만들면

제107절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제108절 내 입으로부터 마시는 사람은

제109절 밭에 감추어진 보물

제110절 세상 것으로 부자 된 사람은

제111절 하늘과 땅이 말려 올라가도

제112절 영혼에 의존하는 몸이나 몸에 의존하는 영혼이나

제113절 아버지의 나라는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있어

제114절 여자를 남자로 만들어



저자후기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천국의 비밀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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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에 나오는 말씀들 중에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공관복음, 곧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아는 분들에게는 귀에 익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실제적으로 약 50% 정도가 공관복음에 나오는 말씀과 평행을 이루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도마복음』이 공관복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그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 “저자서문” 중에서



훌륭한 종교적 가르침은 ‘편안한 사람에게는 혼란을, 혼란한 사람에게는 편안을 준다Disturbing the comforted, comforting the disturbed’고 한다. 언제나 안전지역에서의 편안한 삶,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삶만을 보장하는 종교는 우선은 편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성장과 발돋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불교에서 사용하는 ‘화두話頭’나 ‘공안公案’도 우리의 상식적인 의식에 혼란을 주기 위한 것이라 하지 않는가. 이런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말씀의 더욱 깊은 뜻을 깨닫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전에는 볼 수 없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놀라운 은혜’이다.

- 제2절 “찾으면 혼란해하고” 중에서



깨달음은 평생에 단 한 번 오는 일생일대의 대사건일 수 있겠지만, 일회적으로 그치기보다는 매일, 매순간 깨달음의 연속을 맛보며 신나게 사는 삶, 매사에서 죽음과 부활의 연속을 체험하며 사는 삶이 더 현실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옛 편견을 벗고 새로운 빛으로 들어서는 것, 산을 올라가며 점점 널리 전개되는 풍광을 내려다보며 계속적으로 외치는 “아하!” 경험, 바울이 말하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경험이 모두 깨침의 경험이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제23절 “천 명에서 한 명, 만 명에서 두 명” 중에서



이런 믿음은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표현한 대로, 천만 길도 더 되는 깊은 바닷물에 나를 턱 맡기고 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잔뜩 긴장을 하고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더욱더 빨리 가라앉고 말지만, 긴장을 풀고 느긋한 마음으로 몸을 물에 턱 맡기고 있으면 결국 뜨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의 뜨게 하심을 믿고 거기에 의탁하는 것이다.

- 제36절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중에서



최근에는 경제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그리스도인 지도자도 있다. 경제가 인생사의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배고픈 사람들에게 당장 먹을 것을 구해주는 것 같은 ‘경제 활동’이라면 그것이 최우선의 과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빈익빈 부익부,’ 철저히 천박한 자본주의적 재테크에 따라 땅 투기나 기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오로지 돈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살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받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예수님 따르는 사람이라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는 그냥 금송아지를 섬기는 사람일 뿐이다.

- 제54절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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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작 :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1~5 세트 - 전5권>,<종교인의 연애>,<아하!> … 총 56종 (모두보기)

 인터뷰 : 예수는 없지만 예수는 있다 - 2002.12.03

 소개 :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종교너머, 아하!’ 이사장.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세계 종교 둘러보기》 《종교란 무엇인가》 《장자》 《도덕경》 등이 있다.



내 속에 계신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예수가 진정 우리에게 원했던 삶을 담은 『도마복음』에 대한 풀이.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에 비해 내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과 이것을 깨닫는 깨침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도마복음』을,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학자로서의 풀이와 이해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환기식 독법’으로 재해석해냈다. 따뜻함과 명쾌함이 묻어나는 그의 해설을 통해 믿음을 넘어 깨달음을 추구했던 전정한 예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믿음을 넘어 깨달음을 전파한 예수를 만나다



『또 다른 예수』는 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진 『도마복음』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풀이하여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1945년 이집트 북부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문서 중 일부분이 『도마복음』이다. 4세기 초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로 통일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개별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 27권을 선별해 기독교의 경전으로 정경화하고, 자신의 신학적 판단 기준에 따라 ‘이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을 모두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도마복음』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하여 지금까지 외경으로 인식되었다.



『도마복음』은 총 114절의 예수의 말씀인 어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0퍼센트 이상이 공관복음에 나오는 구절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성서고고학자들에게 『도마복음』의 발견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예수가 전한 ‘비밀의 말씀’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도마복음』은 공관복음에서 주로 언급되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은 없지만,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신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공관복음이 예수의 구원과 믿음에 대해 강조하였다면, 『도마복음』은 깨달음을 강조하면서도 공관복음과 전혀 상호배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공관복음과 동일한 평행구의 예수의 말씀을 통해 내 안의 하느님 나라와 내 안의 참나를 깨닫고 우리의 종교의식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믿고, 또 어떤 삶으로써 깨달음을 드러내야 할지를 선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것과는 또 다른 예수를 통해 종교의 본질을 다시금 진솔하게 사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도마복음』은 현재적 “하느님 나라”를 강조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루는 현실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서 예수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설교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과 같은 장소의 개념이 지배적이고, 이렇게 이해하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이 책은 종말론적 입장에서 보는 내세적 하느님 나라보다 현재적 의미적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강조하면서 『도마복음』은 이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과 그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도마복음』은 믿음을 부인하지 않지만, 믿음을 넘어서 의식의 변혁을 촉구하고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강조하지만, 『도마복음』에서는 믿음을 넘어서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과 그를 통해 자유와 해방을 얻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종교의 의미는 무엇이며, 참 종교인의 모습으로 사는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해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도마복음』이 씨? 사상과 맞닿아 있음을 설명하면서 깨달음을 통해 “믿는 것은 그리스도다. 그 그리스도는 영원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 그는 예수에게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내 속에도 있다.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와 나는 서로 다른 인격이 아니라 하나라는 체험에 들어갈 수 있다”는 험석헌 선생님의 말씀처럼 깨침을 얻으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오강남 교수의 『장자』『도덕경』에 이은 고전 풀이의 역작



『장자』『도덕경』을 펴낸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예수의 어록만으로 구성된 『도마복음』을 특유의 ‘환기식 독법’으로 풀어냈다. 환기식 독법이란 본문 자체의 의도를 찾아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적용해보는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을 말한다. 이 책에서 오 교수는 해박한 비교종교학의 지식으로 『도마복음』을 깊이 있게 풀어내면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깨닫는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배경을 살려 다른 종교 전통의 문헌들, 특히 『장자』『도덕경』『불경』 등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과 비교하면서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학자적 관점으로만 풀이하기보다 한 구절 한 구절의 깊이 있는 의미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이하면서 역사적 문헌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메시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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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ㅣ 2016-04-18 ㅣ 공감(2) ㅣ 댓글 (0)

˝도마복음˝을 비교종교학자 오강남교수가 해석한 책. 도마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2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른 복음서는 복음 말씀의 지향이 ˝교회˝ 공동체이며,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말씀인 반면, 도마 복음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을 지향한다.



또한, 다른 복음에서는 전체적으로 예수의 생애 속에서 전후 이야기 흐름이 보이는 반면, 도마 복음에서는 `말씀`위주로 구성되어 각 말씀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도마복음은 말씀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는 다른 종교와 비교를 통해 성경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비춰 주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믿음이 없는 인물로 묘사되는 `도마`라는 인물과 그의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의미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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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뒷편 ㅣ 2014-12-12 ㅣ 공감(1) ㅣ 댓글 (0)

도마복음은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가 1945년 이집트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기존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어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점, 내 안의 참된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는 깨침을 중시한 점 등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이질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도마복음을 쓴 도마(Tomas)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갈릴리 출신의 어부이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20장 24~25절, 개역개정)



요한복음의 위 구절로 인해 그는 의심 많은 도마(doubting Thomas)로 불려진다.

그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인도로 가서 선교하다 순교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가 예수의 쌍둥이 형제라고 했을 정도로 그는 신비주의의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쓴 <또 다른 예수>는 도마복음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풀이한 책이다.

특히 불교나 동양철학과 비교하여 해설한 부분은 도마복음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한다.



두 귀가 있는 자들은 들어라. 깨달은 자 안에는 빛이 있나니 그 빛이 온 세상을 비추노라. 그 빛이 비추지 않으면 어둠이 있으리라. (2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 비밀에 합당한 자에게 내 비밀을 밝히노라. 네 오른손이 하는 바를 네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 (6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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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믿음을 넘어선 깨달음을 원했다! - 도마복음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글샘 ㅣ 2014-01-02 ㅣ 공감(4) ㅣ 댓글 (2)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공관복음이라는 말도 첨 들어본 나로서는 '도마복음'은 낯설었다.

그런데 이미 서론을 읽으면서도 이 책, 교회의 고집쟁이들은 참 싫어하겠단 생각이 든다. ㅋ~

그래서 맘에 들었다.

특히 한국 교회처럼 '성장 교회주의'를 우선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런 책들은 더 나와야 한다.

물론, 오강남 교수는 한국에서 활동하기 어렵겠다만...



여러분이 여자가 낳지 아니한 사람을 보거든 엎드려 경배하십시오.

그분이 바로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15절, 95)



성령으로 혹은 불로 다시 태어난 사람,

스스로 내 안의 하느님을 발견하라는 도마복음서의 취지에 따르면,

교회에 계신 하느님을 찾지 말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GNOSIS)을 깨달으라는 말이 된다고 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158)



이 회개는 어원적으로 '의식의 변화'를 뜻한다고 한다.

반성해서 그분의 세계에 편입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 혹은 변혁의 체험'을 바랐던 분이 예수님이셨다고...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도마복음'을 배격하고 '요한복음'까지 설정한 것은 의미가 깊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깨달음에 이르므로 모두 예수님처럼 자유의 사람이 되라는 '도마복음'식 기별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예수를 믿고 은혜의 선물로 주는 영생을 강조하는 '요한복음'의 길을 채택한 사람들이 많았다.(135)



많은 기독교 교회들이 권력과 결탁하여 부를 누리고 있다.

첨탑이 뾰족하게 자꾸 높아지면서 진리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이런 현실에서는 '요한복음'처럼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도마복음'처럼 빛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 스스로도 빛임을 깨닫고 이를 비추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임을 공부하는 일도 신선한 경험이다.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종교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보다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까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성결의 기초를 행위에다 두지 말고 됨됨이에다 두도록 하라.

행위가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위를 성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본질적 됨됨이에 있어서 위대하지 못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그 행위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176)



헌금을 많이 하고, 신도 수를 늘리기 위하여 역전에서,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까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무엇을 할까를 골몰한다.

길거리에서 노래부르며 커피 나눠주는 '00교회' 신도들 역시 그렇다.

그들의 됨됨이가 <등경 위의 등잔> 같다면, <우뚝 솟은 바위산> 같다면,

애써 기타 튕기며 노래하고 커피 주지 않아도 교회로 사람들이 갈 것이다.



도마복음의 가르침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다면,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도

이처럼 종교 지도자들이 감추거나 잃어버린 '깨침의 열쇠'를 다시 찾아 활용하라는 열쇠.(207)



두드려야 열리고, 찾으면 구할 것인데,

무엇을 할까에 골몰하는 그들은 두드리거나 찾지 않고, '감추거나' 애써 '잃어버리는' 교회로 가는 것은 아닌지.



<크리스찬> 되기보다 <크리스트>가 되라



이렇게 가르친 도마 복음을 되짚어 보는 일은, 높은 곳에서 자기들끼리 잘 사는 신도들에게

뜨거운 죽비가 되지나 않을까?

이미 죽비따윈 두렵지 않는 단단히 걸어잠근 마음이라면, 교회는 이미 크리스찬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곳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든지 알게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입니다.(56절, 267)



죽음을 알고 겸허한 사람은, 삶을 속도와 성장에 무게두지 않는다.

삶의 포인트는 밀도여야 한다.

괴로운 밀도는 트라우마가 되지만, 행복한 밀도는 삶의 자양분이 되는 법.

'깨달음' 이후로는 삶이 밝고 환하게, 신 나고 즐겁게 이끌어질 수 있다.

시체를 찾은 사람이 되어라.



가스펠 송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한 구절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참나>를 찾아 울타리를 떨쳐나갈 용기있는 사람.

그 사람을 찾는 성경이 <도마 복음>이다.



새삼, 안중근 선생의 세례명이 '도마'였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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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ㅣ 2013-04-05 ㅣ 공감(1) ㅣ 댓글 (0)

나그함마디 문서 중에 가장 유명한 '도마복음'은 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져 있고 공관복음과 많은 비유를 공유하고 있지만, 내면의 깨달음에 강조점을 두고 있어서 정전에 들어가지 못했다.



흔히 영지주의라 하면 비교秘敎적 신비주의나 은밀한 입교의식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게 된다. 영지주의가 워낙 다양한 분파를 하나로 뭉뚱그린 명칭이기 때문에 그런 경향의 종파도 있지만, '도마복음'은 예수의 비유 속에 감추인 뜻에 도달하여 우리들도 각자覺者의 경지에 이를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저자도 각 절마다 주석을 달면서 도가나 불가의 가르침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양자의 친연성이 단지 비슷한 비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명상과 자아 성찰을 통한 깨달음(득도, 성불)을 중시한다는 본질적인 유사성 때문이다. 피조물과 완전히 절연된 유일신의 그늘 아래서 살아온 서양인들이 이런 사고법에 낯선 경외심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화두와 같은 가르침을 통해 해탈에 이르려는 선불교나 호흡법과 단약을 이용하여 인간도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도교사상을 오랜 세월동안 체화한 동양인에게 '도마복음'은 '노자'나 '장자' 같은 고전속의 중층된 어록과 별다르지 않다.



신자 각각의 소우주를 중시한 이런 가르침이 주교 아래 통일된 교단을 세우려는 문자중심주의자들에게는 심히 거슬렸을 게다. 동양도 분서갱유와 같은 사상 통일의 참사를 겪었지만 그 기간이 짧았고 무엇보다 이 백가쟁명이 정치사상으로 그쳤기에 후대까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면, 영지주의는 종교의 틀 아래서 믿음의 영역을 다투어야 했기에 로마제국을 점령한 가톨릭의 박멸 시도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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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른 의구심, 왜 예수의 말을 옮겨적었는데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까? 도덕경처럼...  새창으로 보기

KarlKim   ㅣ 2010-11-10 ㅣ 공감(1) ㅣ 댓글 (0)

몇년전 동양사상에 대한 탐구과정에서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오강남교수가 풀어쓴 도덕경/장자를 읽고 오랜동안 책꽂이의 가장 손이 닿기 쉬운곳에 놓아두고 밑줄 쳐가며 뜻을 음미했던 기억으로 책을 구매했다.

책을 읽고 나서 먼저 드는 의구심은 왜 예수의 말을 옮겨 적었는데, 해석 없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도덕경은 한자의 뜻을 일일이 찾아서 보면 대략적인 해석이라도 될터인데... 아마도 당대의 문화적인 지식없이는 이해가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름 추정해 본다.

또하나 이상한 점은 일반인을 위한 서적이라고 보기에는 해석에서 인용되는 내용이 너무 지식을 요한다. 일반인들이 불교/기독교/유대교/흰두교/천도교의 교리나 경전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지은이가 불교에 대한 비유를 하면서 드는 내용이 모두 대승불교의 경전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설법으로 언급하는 예수의 말을 해석하면서 부처의 직설법이 한두군데밖에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아마도 지은이가 최근 한국불교계에서 소개되는 초기불교 경전을 접하지 않은듯 하다. 여러곳에 불교적 해석을 하면서 표현하였던 대승불교의 '참나'라는 용어가 눈에 거슬렸음을 느낀다.

다루기 힘든 주제를 학술적인 관점에서 풀어 쓴 지은이의 용기에 감사 드린다. 인류 문화 유산을 발견된지 50여년이 지난 지금이나마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좀더 심도 있는 또 다른 접근을 시도한 도서를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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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기독교 관] 믿음 이전에 이해가 필요 --- [-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은...

 [도올의 기독교 관] 믿음 이전에 이해가 필요 --- [-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은...

[도올의 기독교 관] 믿음 이전에 이해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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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은 간편하고 또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위태롭다.
- 그러한 믿음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믿음을 가능케 하는 역사적 환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더 이상 핍박받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기독교를 발생시킨 그러한 절박한 상황의 강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 모든 종교는 제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반복적 제식은 특별한 감정을 수반하며, 그 감정은 신앙을 유발한다. 그리고 제식은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신화는 합리화된다. 이 합리화단계에서 우리가 말하는 조직적 종교가 발생한다.
-그런데 모든 종교적 합리화(Rationalization)는 인간의 체험에 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그 정보에 대하여 독특한 권위를 부여한다.
- 나는 이러한 합리화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의 자유로운 지식의 장 속에서 무전제적으로 다시 소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거부하면 그것은 천박한 독단일 뿐이다. 현대시민사회에서 독단을 중세세기방식의 도그마틱스로서 유지하려는 것은 사기꾼들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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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발제문 전문]
“종교는 더이상 ‘이해없는 신앙’강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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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공화국이며 민주시민사회의 모든 원칙을 준수한다. 나는 민주사회의 한 시민이며 개인이다. 내가 말하는 기독교는 매우 단순한 이런 전제들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의 기독교의 이해방식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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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이고 내면적이지만 사회적 가치도 거부 안해
2. 그렇다고 나의 기독교에 관한 논의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나 어떤 국적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종교와 국가의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거부한다. 종교는 오히려 그러한 국가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개체의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것이며, 제도적이라기보다는 내면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가 사회적 가치, 즉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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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의 실존의 선택이나 결단 대상일뿐
3. 나의 기독교에 관한 논의는 매우 단순한 나의 실존적 사실, 즉 내가 민주시민사회의 한 시민이라는 원자적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즉 기독교는 어떤 종족이나 국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속적인 제도가 될 수가 없으며 나 개인의 실존의 선택이나 결단의 대상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한 종교의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대한민국사람이 구원을 얻을 뿐이다. 그 사람은 개인이며 시민이다. 시민사회는 인간 개인(individual)의 존엄을 지상의 가치로 삼는다. 개인이 신이라는 존재자에게 복속되는 제도적?법적 권위는 전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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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집단적인 게 아니라 나의 실존과 하나님이 만나는 것
4. 종교의 초기 제식행위는 대부분이 집단적인 것이었다. 부족집단의 춤(tribal dance) 같은 것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였다. 아프리카의 민속춤이나 우리나라의 영고(迎鼓)·무천(舞天)이 모두 그런 류의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행위는 기도이다. 기도는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며 그것은 나의 내면 속에서 나의 실존과 하나님이 만나는 것이다. 예수도 기도를 가르쳤다. 기독교는 이미 출발부터 개인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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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구약적 율법주의 따른다면 유대교의 아류일뿐
5. 기독교는 민족종교가 아니다. 유대민족의 모든 제식(할례, 절기 준수 등)이나 혈통주의적 관습의 강요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이방선교를 통해 초대교회를 구축했다. 그것은 “예수”라는 신념을 선택한 개인들의 공동체운동이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출발부터 유대민족의 율법주의를 거부했다. 어떠한 종교도 율법주의를 거부하지 않고서는 위대한 종교가 될 수 없다. 공자도 기존의 의례(儀禮)의 권위를 거부한 사람이었고, 불타도 베다의 권위를 거부했다. 기독교가 이제 와서 구약적 율법주의를 직접적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유대교의 아류일 뿐, 기독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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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교리가 아닌 사랑 믿음 소망 생존의 공동체운동
6. 나는 교회를 공동체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동체운동의 기본이념은 교리가 아니요, 사랑, 믿음, 소망, 생존과 같은 아주 보편적 정서(emotion)이다. 교회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배타성(exclusiveness)이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교리 이외의 어떠한 종교적 신념도 다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리라는 것은 대부분 후대의 역사적 정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며 성서적 근거가 박약하다. 이것이 조직신학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독교의 배타성도 유대인의 다이애스포라와 유사한 피박해집단의 역사적 특수상황에서 비롯된 아폴로제틱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곧 기독교의 본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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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불교·토속 무교 등 종교신념체계와 공존해야
7.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오늘 여기에서의 나의 실존을 생각할 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공동체는 기독교라는 교리집단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유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토속 서낭당 무교, 이슬람, 여타 다양한 종교신념체계와의 공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들 모두가 인간 내면의 고독(solitude)을 해결해가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기독교가 이러한 공존을 배제하는 독존만을 고집한다면 나는 그러한 기독교에는 일순간도 나의 에너지를 할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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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나쁜 것이며 악한 것 일 수 있다
8. 종교는 반드시 좋은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발상이나 강박관념을 우리는 버려야 한다. 종교는 나쁜 것이며 악한 것일 수 있다. 종교는 인간의 모든 야만성의 마지막 보루일 수도 있다. 종교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사회일 수가 있다. 단지 우리가 이러한 사회를 꿈꿀 수 없는 이유는 종교를 통하여 형성되어온 인류문명사의 기나긴 관성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종교는 인간세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러한 거대한 추세 속에서 인간세는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고려사회를 장악하고 유교가 조선왕조를 장악하고 기독교가 20세기 우리민족의 식민지역사를 장악한 그러한 강력한 장악성을 21세기부터는 기대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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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시점에서의 성서 정본 존재하지 않아
9. 기독교는 2천 년 동안 서서히 형성되어온 것이다. 이 말은 곧 어느 한 시점에서의 기독교의 모습이 기독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형성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1세기의 기독교, 4세기의 기독교, 16세기의 기독교, 21세기의 기독교가 모두 동등한 자격을 지니는 기독교일 뿐이다.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시점에서의 성서의 정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4세기말에나 모습을 드러낸 27서체제의 성서나 20세기 한글판개역성경은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신약성서의 다른 판본일 뿐이다. 신학도들이 기준으로 삼는 희랍어성서도 19세기말에나 그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다. 희랍어성서 자체가 2천 년 동안 진화해온 것이다. 현재의 27서체제의 성경이 기독교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생각도 매우 유치한 발상이다. 가톨릭은 아직도 성서에 근거가 없는 많은 후대의 추가전승을 교리로 신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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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합리화의 재소통 거부하면 사기꾼의 횡포
10. 나는 기독교의 “이해”(Understanding)를 위하여 상기의 책 2권을 썼다.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은 간편하고 또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위태롭다. 그러한 믿음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믿음을 가능케 하는 역사적 환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더 이상 핍박받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기독교를 발생시킨 그러한 절박한 상황의 강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제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반복적 제식은 특별한 감정을 수반하며, 그 감정은 신앙을 유발한다. 그리고 제식은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신화는 합리화된다. 이 합리화단계에서 우리가 말하는 조직적 종교가 발생한다. 그런데 모든 종교적 합리화(Rationalization)는 인간의 체험에 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그 정보에 대하여 독특한 권위를 부여한다. 나는 이러한 합리화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의 자유로운 지식의 장 속에서 무전제적으로 다시 소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거부하면 그것은 천박한 독단일 뿐이다. 현대시민사회에서 독단을 중세세기방식의 도그마틱스로서 유지하려는 것은 사기꾼들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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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촉발제 역할 자부
11. 나의 “이해”의 노력은 한국의 기독교를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촉발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21세기의 종교가 “이해없는 신앙”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양아치적 권위의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시민사회의 논리에 의하여 무기력하게 될 뿐이다. 나의 “이해”가 많이 대중에게 읽힐수록 21세기의 한국기독교는 희망이 있다. 성서는 이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이해 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만이 21세기를 버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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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신학자의 신념과 언어체계를 콘트롤하면 안돼
12. 나는 기독교에 기웃거리는 이방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기독교의 핵심 인사이더로 살아왔으며 기독교의 가치를 체화한 패밀리 전통 속에서 성장해왔다. 나는 나의 진리탐구가 이 사회의 많은 건강한 기독교운동을 촉발시킬 수 있기를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신학계가 자유로운 담론의 장을 확보해야 한다. 교회는 신학자들의 신념이나 언어체계를 콘트롤해서는 안된다. 교회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관심이 신학의 자유로운 개화(開花)를 질식시켜서는 아니된다. 모든 교회는 훌륭한 신학자를 양성하는 데 교육장학금으로서 최소한 십일조를 내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 존립의 이유며 양식(良識)이며 의무다. 그리고 교육헌금에 대하여 일체 이념적 클레임을 해서는 아니된다. 한국교계의 생명력은 오직 자격있는 신학자와 수준높은 목회자의 양성에 있다고 나 도올은 굳게 믿는다.
도올 김용옥
2007년 5월 11일 밤
駱閒齋에서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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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生 > 알립니다 > "상생의 세상"이란



相生 > 알립니다 > "상생의 세상"이란

"상생의 세상"이란
글쓴이 : 원정 날짜 : 03-07-28 06:42 조회 : 5439
홈페이지 : http://sangsaeng.com
트랙백 주소 : http://www.sangsaeng.com/main/bbs/tb.php/ss06/1

이 세상에는 계절의 흐름이 있듯이, 삼라만상은 때로는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관계를 맺으면서, 때로는 서로를 해치는 상극의 관계를 맺으면서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삶은 죽음에 의지하듯이 일견 서로 해치는 듯한 관계일지라도 멀리 보면 이 또한 서로를 살리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강 상류의 모난 돌들이 강 하류로 흘러 내려가면서 서로 부딪혀 상처를 주고받을 때는 상극의 관계인 듯 보이지만, 그렇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았다면 강 하류에 이르러 어떻게 둥근 돌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리 주인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강아지로 태어났을지라도 죽음이 없어 강아지의 모습으로만 머문다면 그 강아지가 어떻게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철천지원수가 알고 보면 자신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주는 스승입니다.
그래서 일견 상극의 관계로 보이는 경우에도 잘 살펴보면 그 또한 상생의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 세상은 이미 상생의 세상이요, 삼라만상의 모든 관계는 상생의 관계라고 볼 수 있지만(상생의 눈으로 보면 상생의 세상이고 상극의 눈으로 보면 상극의 세상이기에, 결국 알고 보면 상생도 상극도 없지만), 외면적인 모습이 상생관계로 보이는 곳에 에너지를 모아주고 싶은 마음이 동하여 "상생의 세상"을 열었습니다.

"상생의 세상"에는 자신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그리하여 자신들도 모르게 이 세상을 살리는 그런 사람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모든 물은 결국 바다에서 만납니다.
물이 강으로 흐르든지 지하로 흐르든지 서로 다투지 않듯이 우리도 서로를 존중하면서 이 세상에서 욕심껏 흘러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다음에 바다에서 만나 우리는 항상 한 몸이었음을 마음껏 노래합시다.

상생의 세상을 열면서


2003. 7. 28. 아침에

원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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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모모 날짜 : 03-08-04 18:44


하나 하나 알아가면 갈수록, 원정님의 글들은, 절 감탄하게 만듭니다..
에고와 해탈과의 관계도 그렇고,, 상생에 대한 글들도 그렇고,,,,,,,^^*
하여튼, 이렇게 좋은 자리 마련해 주신 원정님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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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원정 날짜 : 05-12-23 16:56


2003. 7. 원정이라는 자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군요.
지금은 강아지 부분은 거두어 들여야 할 듯....
전생도, 내생도, 윤회도 없어라.
지금의 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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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원정 날짜 : 06-08-22 15:39


강 상류의 모난 돌인들 어떠랴, 강 하류의 둥근 돌인들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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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성일 날짜 : 06-09-07 20:49


법(法)이란 '물'과 '가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의 속성, 즉 자연의 섭리가 법이라는 선인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물은 아래로 가기도 하지만 위로 날라가기도 하지요.

이 하늘로의 비상이 '가다'의 원인이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결국 모든 물은 고여 있게 되겠지요.
여러분들에게도 이와 같은 비상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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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원정 날짜 : 06-09-08 03:55


저도 물처럼 살기를 바랍니다.

상생의 세상에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좋은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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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원정 날짜 : 06-09-25 10:43


저는 개인적으로 상생의 세상에 방문하신 분들이 정신적인면과 물질적인 면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인면과 물질적인면이 서로 다르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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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임광철 날짜 : 06-11-03 17:42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분이 느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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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임광철 날짜 : 06-12-16 11:29


사진없었는데 .. 뽀샵처리가 필요한듯..ㅎㅎ


글쓴이 : 원정 날짜 : 06-12-17 00:54


사진이 너무 크게 올려져 있네요.
나중에 지구인님에게 부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뽀샵에 기타 온갖 사기술을 동원한 상태로 알고 있는데...
기본이 부족하다보니 아직도 많이 부족한가 봐요.^^


글쓴이 : 이선복 날짜 : 07-12-17 23:00


안녕하세요... 저 연천에 선복이예요..
기억하실란가 모르겠네요
그간 잘지내셨는지요
이제야 한번 들어와 보네요
사진 뵈니 너무 반갑습니다
그때 만나고 계신 여친과는 잘 되어가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결혼을하신건 아니겠지요
날짜 잡으시면 연락주세요
꼭 가서 축하드릴께요...
참! 싸이 한번 들어가보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못찾겠네요
제 싸이주소는 sunsoka0a0@naver.com 입니다
꼭 한번 놀러 오세요
별 볼건 없습니다..ㅎㅎ
얼마 남지 안은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만사형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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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원정 날짜 : 07-12-18 16:44


잘 지내세요?
제가 잊을리가 있겠습니까?

결혼할 일이 있으면 연락드릴께요.
전 싸이는 없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법률문제는 예방이 더 중요합니다.
일도 쉽게 해결되고 비용도 들지않고...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이선복님에게는 제가 평생 고문변호사 역할을 해드리겠습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도 좋은 해 되세요.
--

2016/11/07

解明의 수사학 : 남다른 사이였던 백제와 고대 일본

解明의 수사학 : 남다른 사이였던 백제와 고대 일본



남다른 사이였던 백제와 고대 일본 독서

660년 7월,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계백(階伯, ?~660)이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맞아 분전했으나, 끝내 방어선이 뚫려 버렸고, 사비성과 웅진성이 잇달아 떨어졌습니다. 백제의 의자왕(義慈王, ?~660, 재위 641~660)은 적에게 사로잡혀 당(唐)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쓸쓸히 죽었습니다. 이렇게 백제는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백제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도성과 왕을 잃었지만, 백제 땅 곳곳에서 나라를 되살리려는 부흥군이 들고일어나 나당 연합군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부흥군은 일본에 있던 왕자 부여풍(扶餘豐)을 데려와 왕으로 삼고 나당 연합군을 더 세게 압박했습니다. 백제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663년 3월, 일본은 부흥군과 함께 나당 연합군과 싸울 2만7천 명이나 되는 대군을 한반도로 보냈습니다. 같은 해 8월, 일본 수군은 부흥군의 근거지인 주류성을 치고자 바다를 건너온 당의 수군을 백강 어귀에서 맞아 싸웠습니다. 수적으로 우세했음에도 일본군은 당군과 네 번 싸워 네 번 모두 패하며 4백 척에 이르는 전선을 잃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사서들은 이때 불탄 일본의 전선들에서 나는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환하게 했고, 바닷물을 붉게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싸움, 백강 전투 또는 백촌강 전투의 참패로 부흥군은 무너졌고, 백제는 정말로 멸망했습니다. 부여풍이 고구려로 망명했다는 풍문이 떠돌았고, 많은 백제인이 정든 고향을 등진 채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이와 같은 백제 최후의 날 풍경을 보면, 물음표 하나가 우리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일본은 무엇 때문에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인 당과 전쟁을 벌이는 것도 마다치 않고, 백제를 도왔을까요?

일본에서는 백제가 일본의 속국이었으므로 속국의 멸망을 막고자 원군을 보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백제를 돕기로 마음먹은 사이메이덴노(斉明天皇, 594~661, 재위 655~661)를 비롯한 일본의 지배층이 백제 출신이기 때문에 조국을 부흥하고자 출병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조국부흥전쟁설인데, 여기에는 사이메이덴노가 의자왕의 누이였다는 근거 없는 상상까지 덧붙습니다. 다른 듯하지만, 다르지 않은 이 주장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란 어렵습니다. 백제가 일본의 속국도 아니었지만, 속국이었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무너지면서까지 속국을 돕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또 일본의 지배층을 백제 출신으로 만들고자 억지로 사료를 비튼 조국부흥전쟁설도 설득력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고대 한일 관계의 역사를 연구한 김현구 교수는 앞의 두 주장을 모두 비판하면서 일본의 백제 부흥군 지원이 일종의 공세적 방어 전략이었다고 말합니다.

"일본은 당의 침입을 앉아서 기다리다 혼자서 싸우기보다는 한반도에 와서 백제·고구려와 연합전선을 펼치는 길을 선택했다. 일본이 왜 전쟁터를 한반도로 설정했는가는 1894년 청일전쟁의 장소를 한반도로 설정한 것이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진주만(眞珠灣, Pearl Harbor)을 선제공격하여 전쟁터를 미국 쪽에 설정한 사실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반도로 와서 백제·고구려와 손을 잡고 당·신라와 싸우기로 한 이상, 일본은 백제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정권의 운명을 걸고 백촌강싸움에 출병하게 된 것이다."

백제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바다 너머에서 들려오자 일본 열도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무너진다면, 머지않아 나당 연합군이 일본으로 쳐들어오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적들이 올 만한 곳에 성을 쌓아 나당 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했지만, 막상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인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물론 당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자신들도 백제처럼 멸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부흥군을 돕기로 한번 결정하자 일본은 통 크게 부흥군을 지원했습니다. 수만이 넘는 병력과 많은 군수 물자를 한반도로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앞에서 살펴봤듯이 일본군은 나당 연합군에 패했고, 주류성까지 함락되면서 백제 부흥 운동은 끝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이때 백제인들이 "백제의 이름은 오늘로 끊겼다"라며 한탄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백제와 왜는 특수한 용병 관계였다

김현구 교수의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관련 정보)는 제목만 보면 왠지 고대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이 튀어나올 듯하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 보면 그런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백제와 왜가 "특수한 용병관계"이자 "맹우"로서 대등한 사이였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백제는 일본에 필요한 선진문물을 제공하고, 일본은 백제에 필요한 군사원조를 제공하는 특수한 용병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용병관계는 기본적으로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왕의 역할이 절대적이던 당시로서는 용병관계의 이전 단계에서 이루어진 양국 왕실간의 오랜 혼인관계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오랜 인적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양국은 단지 용병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는 관계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두 나라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관계가 훨씬 깊었습니다. 고구려의 남진으로 위례성을 잃고 위기에 빠졌던 백제를 중흥한 군주인 무령왕(武寧王, 462~523, 재위 501~523)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고 하는데, 나중에 무령왕이 죽어 무덤에 묻힐 때 쓰인 관이 일본의 특산종인 금송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백제와 왜가 남다른 사이였음을 암시합니다.

무령왕이 묻힌 무령왕릉과 무령왕이 왜의 남제왕에게 주었다는 거울(한겨레21)

물론 왕실 사람들만 두 나라를 오갔던 것은 아닙니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간 사람도 많았지만, 왜에서 백제로 온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백제로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관료로 활약한 이도 있었습니다. 학자들이 흔히 왜계 백제 관료라고 부르는 이들은 일본에 군사 원조를 청하러 가는 사절단에 한두 사람씩 꼭 끼였는데, 왜계 백제 관료들이야말로 백제와 일본 간의 특수한 용병 관계를 만드는 주인공이었습니다. 뒷날 일본 지배층이 백제 부흥군을 통 크게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공세적 방어 전략 차원에서 일본 열도가 싸움터가 되는 것보다 한반도로 군사를 보내 싸우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두 나라가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백제가 멸망하고 일본이 제 갈 길을 가면서 백제와 왜의 인연은 거의 다 잊히거나 비틀렸습니다. 특히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왜곡의 절정이었습니다. 일제는 실상과 다른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도 했고, 그 후유증은 여태껏 남아 한일 관계를 어지럽히곤 합니다.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에서 김현구 교수는 왜곡된 고대 한일 관계의 역사를 바로잡아 쉽게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임나일본부설 문제도 책에서 빠뜨리지 않고 다루었는데, 후속작이라고 할 만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관련 글)는 임나일본부설의 맹점을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임나일본부설이 왜 사실이 될 수 없는지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책에는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다룬 글도 실렸고, 도래인(渡來人)들의 흔적이 남은 고대 일본의 유적들을 답사한 내용도 볼 수 있습니다. 책 구성이 조금 느슨해 보이지만, 비교적 적은 분량 속에 고대 한일 관계에 관한 이모저모를 풍성하게 담았습니다. 한때는 아주 가까웠던 백제와 고대 일본처럼 오늘날 한국과 일본도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Roberto Alagna - Una Furtiva Lagrima (Elisir d`Amore) (HD 720p)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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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6

Christianity in Japan – Theory and Methods in the Study of Religion

Christianity in Japan – Theory and Methods in the Study of Religion



Christianity in Japan

This annotated bibliography is composed of both seminal and recent works on Christianity in early modern and modern Japan. As reflected in the selections here, the vast majority of scholarship on this topic is focused on two historical moments—the “Christian Century” of the late sixteenth and early seventeenth centuries, and Protestant Christianity in the Meiji Period. This annotated bibliography is a first attempt to review a few frequently-cited works as well as more recent scholarship, and is by no means comprehensive. Given my own orientation as a student of history, I have also restricted this list primarily to works arising out of that discipline.*

 Anderson, Emily. “Tamura Naoomi’s ‘The Japanese Bride’: Christianity, Nationalism, and Family in Meiji Japan.” Japanese Journal of Religious Studies 34, no. 1 (2007): 203-228.
Historian Emily Anderson examines the strongly condemning responses to the publication of Christian minister Tamura Naoomi’s English-language book, The Japanese Bride in 1893, bringing to light the intersections of nationalism, religion, and family in modern Japan. In his controversial English-language publication, Tamura described Japanese marriage and familial customs and compared them to American ones observed in his travels, a comparison perceived as an attack on the Japanese family and a betrayal of Japanese Christianity and the nation at large. Nationalists and Japanese Christians, as Anderson argues, saw the work as jeopardizing Japanese Christians’ authority over a foundational aspect of Japanese society (the family) and undermining the parity that Japanese sought with Western nations, which it needed for its imperialist enterprise. As she writes, “By characterizing Japanese families—the very core of the nation—as shameful, backwards, and unhappy, Tamura was in fact defying the central argument of Japanese claims to modern legitimacy” (225). His publication thus revealed the anxieties of the Japanese nation about its position not only in East Asia, but vis-à-vis the West.
Anderson contextualizes Tamura’s publication within a larger collection of his writings as well as a host of other Japanese-language archival materials. Like Notto Thelle’s study on the Buddhist-Christian relationship, Anderson’s study interrogates the relationship between nationalism, Christianity, and anti-Westernism in Meiji Japan.
Breen, John and Mark Williams, eds. Japan and Christianity: Impacts and Responses. London: Macmillan, 1996.
Japan historian John Breen and literature scholar Mark Williams aim in this compilation, the product of a 1991 conference on Christianity in Japan, to complicate the “Western ‘impact’ and an “Eastern” ‘response’” structure used in understanding Christianity in Japan (1). They frame their study by setting in conversation two scholars—Ebisawa Arimichi, who has argued that Christianity laid a crucial foundation for Tokugawa thought, and George Elison, who declared less positively that in the Japanese context Christianity’s “cultural contribution was nil’ (Elison, qtd. in Breen and Williams, 2).
The collection covers a broad scope of topics and periods, from Christianity from the Tokugawa period to the twentieth century by Mark Mullins, Notto Thelle, Helen Ballhatchet, John Breen, Michael Cooper, Stefan Kaiser, Ohashi Yukihiro (the only Japanese scholar included), Stephen Turnbull, Christal Whelan, and Mark Williams. Collectively, they aim to show the slow but myriad processes by which Japanese interacted with Christian and Western ideas and institutions, and, importantly, the ways in which Japan contributed back to Western Christianity. Topics range from Western-style painting in Japan to the tensions between evolutionary theory and Christian theology to Japanese literary works on Christianity.
Elison, George. Deus Destroyed: The Image of Christianity in Early Modern Japan.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3.
In this seminal work, George Elison challenges narratives of Catholicism in Tokugawa Japan—the “Christian Century”—by eschewing the “Western” point of view adopted by scholars in favor of one that approaches the topic from the “inside,” made possible by his translation of Japanese-language anti-Christian texts. (The title of his book is from an anti-Christian tract written by Japanese Jesuit convert later turned skeptic, Fabian Fucan.) The book is composed of two main sections: the first, an analysis of Christianity in Japan from entry in 1549 to its rejection by the state; the second, translations of four anti-Christian works by Japanese Buddhists, Confucians, and apostate Jesuits. Though acknowledging the complexity of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Japan, Elison is quite clear in his position that Christianity failed to make any lasting positive contributions to Japan, instead reifying the state’s control over society and religion and contributing to its continued isolation. Elison’s challenge to the legacies of Christianity as well as his contribution of translated texts make this a key work in assessing Christianity both in the Tokugawa period and its continued influence in Japan today.
Hardacre, Helen. Shinto and the State, 1868-1988.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9.
Historian Helen Hardacre aims to change the “faceless quality of research on State Shinto” by examining peripheral voices, particularly those of the priesthood, to understand interactions between the state and Shinto between 1868 and 1945. Hardacre argues that Shinto as a religion of Japan was invented after the Meiji Restoration—the word itself is “purely a modern, post-Meiji invention”—and that this invented tradition has been enlisted in the service of the creation of the modern nation (19, 4). Nevertheless, her decision to omit the 1930-1945 period from her analysis does seem to be a critical missed opportunity to bolster her argument about Shinto’s cooptation as a handmaiden of the state.
Hardacre’s work on religion draws attention to another aspect of the state-invented tennosei system on which scholars such as Carol Gluck (Japan’s Modern Myths, 1985) and Takashi Fujitani (Splendid Monarchy, 1996) have also focused. Her argument that postwar Shinto faces serious challenges because of its loss of hegemony over national symbols and because of the rise of religious pluralism also contrasts with Daniel Holtom’s more optimistic conclusion (Modern Japan and Shinto Nationalism, 1943).
—. Religion and Society in Nineteenth-Century Japan: A Study of the Southern Kanto Region, Using Late Edo and Early Meiji Gazetteers. Ann Arbor: Center for Japanese Studies, University of Michigan, 2002.
In this more recent publication, Helen Hardacre presents a detailed study of Buddhist and Shinto institutions from the 1830s to the early Meiji period. Rather than simply tracing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a single religion, she adopts the method of examining institutions (temples and shrines) within a given geographic area. A secondary aim is to examine the impact of the transition between the Tokugawa and Meiji periods on religious institutions and popular religious life. Hardacre argues provocatively that the Meiji state’s adoption of Shinto did not necessarily guarantee the dwindling of Buddhism in Japan; it was instead local factors that were most influential in the decline of Buddhist shrines. Hardacre’s point thus runs counter to that of Shigeyoshi Murakami and Thelle, who take a state-centric approach to religion in Japan.
Also in contrast to broader works like Murakami’s, Hardacre’s work maintains a sharp focus on a specific region. In the process of focusing on the local, however, Hardacre does not connect her findings to larger trends in Japanese religion; further historical and historiographical context would be beneficial to evaluating her desired contribution. It may be fruitful to compare her work with Mary Elizabeth Berry’s Japan in Print (2007), which also uses gazetteers.
Higashibaba, Ikuo. Christianity in Early Modern Japan: Kirishitan Belief and Practice. Leiden: E.J. Brill, 2001.
 Comparative religions scholar Ikuo Higashibaba is interested in this monograph on popular forms of religion and “culture of ordinary Japanese followers,” whom he terms the “laity,” within the Kirishitan community in early modern Japan (xiv, xvi). He argues that these commoners practiced a form of religious syncretism that is often omitted from existent narratives of Christianity in Tokugawa Japan, which have focused on orthodox Catholic belief, and that the earlier acceptance and syncretization of Buddhism set the precedent for acceptance of foreign religions. Like Kitagawa, Higashibaba adopts a “history of religions” approach in which he places Kirishitan beliefs, practices, and symbols within their historical and cultural contexts, drawing particularly on Jonathan Z. Smith’s theoretical work (1987).
Higashibaba’s work is the most recent in a line of works on the Kirishitan community in Tokugawa Japan. His attempt to shift the focus of discussion from intellectual or theological discussions of Catholicism to popular religions provides a counterpoint to works like Elison’s. Nevertheless, it is unclear how exactly he measures the fidelity of the believers—were they really Kirishitans?—whom he makes the focus of his study. Moreover, his thesis that Catholicism became a Japanese religion is neither unique nor a significant intervention in the historiography—this work should be valued for its topical focus rather than actual argument.
Howe, John F. “Japanese Christians and American Missionaries.” In Changing Japanese Attitudes Toward Modernization, edited by Marius B. Jansen, 337-366.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5.
John F. Howe’s contribution to a 1965 collection edited by the late Marius Jansen focuses on Japanese Christians’ experience of psychological “self-abasement” resulting from the belief that Meiji Japan was lagging behind in modernization compared to the West. Through an examination of Japanese Christian and Western missionary, Howe highlights the similarities between ten influential figures—five Americans and five Japanese—and their cooperative religious efforts, which became to be increasingly challenged by growing anti-Western and nationalist sentiment in the 1880s. Howe identifies this at the point that Japanese Christian leaders, with the exception of Uchimura Kanzo, decided to break from their Western brethren to fashion their own version of Christianity, which helped them overcome their own self-abasement.
As in his 2005 book, Howe takes a psychohistorical approach in this work. While he makes a notable attempt at showing the very personal impact of modernization and Christianity in Japan, his reasons for the selection of the main figures in his book are not clear and his narrative of overcoming “self-abasement” strikes one as a bit simplistic.
—. Japan’s Modern Prophet: Uchimura Kanzo, 1861-1930. Vancouver: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Press, 2005.
In a book that has generated much discussion, given the apparently vast amount of scholarship on Uchimura Kanzo (1861-1930) and the author’s provocative perspective, John Howe presents a nearly hagiographic account of Uchimura’s life as a leading Japanese Christian intellectual.[1]
Lauding a native convert’s deep engagement with and mastery of a foreign religion, Howe places Uchimura alongside “the Old Testament prophets, Dante, Luther, Kierkegaard, Carlyle, and Gandhi” (11). According to Howe, the author and theologian bridged East and West by developing a distinct “Japanese Christianity” in which he fused Japanese sociocultural values with those of Christianity, and rejected foreign missionaries in favor of his non-church movement (mukyokai). Drawing on Uchimura’s publications and correspondences, Howes attempts to intervene in the rather large historiography on Uchimura by highlighting his eschatological beliefs and emphasis on “individual faith and morality,” rather than his well-known opposition to war and founding of mukyokai (388). Unfortunately, any real critical examination if missing from this book; Howe neglects to show why people disliked Uchimura as well as incorporate what might have been useful theoretical perspectives on religion and nationalism into his work.
Ion, Hamish. American Missionaries, Christian Oyatoi, and Japan, 1859-1873. Vancouver: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Press, 2009.
In this monograph on Christian oyatai (foreign employees) and Episcopalian, Congregational, Presbyterian, and Dutch Reformed missionaries, historian Hamish Ion seeks to challenge the existent narrative of Christianity in late Tokugawa and early Meiji Japan—pointing out Howe’s 1965 essay in particular—which he articulates as a binary of “acceptance or rejection” (285). His thesis is that despite the missionaries’ commendable optimism and vigor, the period from 1859 to 1873 already foretold the demise of the effort to Christianize Japan, not due to any failure of the missionaries and oyatoi, but Tokugawa and Meiji state policies regarding religion and the relative lack of support from American diplomats. Like Anderson and Thelle, he thus contextualizes Christianity in Japan within the global politics and cultural exchanges of the era. Ion draws from a broad array of primary documents by the American Church mission, individual missionaries, and diplomatic materials. He also engages heavily with the secondary literature, rejecting the applicability of Said’s orientalism to oyatoi, since recording the experiences of the “other” was not a focus of missionary records.
Kitagawa, Joseph Mitsuo. Religion in Japanese Histor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6, repr. 1990.
This work is a compilation of six lectures given by historian of religion Joseph Kitagawa on religion in Japan from the Heian period to the postwar period, an endeavor he calls “autobiographical” given his own background. Despite the broad scope of these lectures in both time and topics covered, Kitagawa announces that he is attempting to apply a Religionswissenschaft (science/history of religion) approach, eschewing the “peculiar Western convention to divide human experience into such semi-autonomous categories as religion, philosophy, ethics, aesthetics, culture, society, etc.” in favor of continuing the spirit of Ritsuryo, Tokugawa, and Meiji syntheses of these categorizations (xiii).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exactly what Kitagawa means by a Religionswissenschaft approach, though it appears to be in the vein of Max Muller’s rejection of classifications. Rather than examine religions individually, Kitagawa attempts to understand the “universal phenomenon called ‘religion’” within the Japanese historical context (3). Of particular interest to the scholar of Christianity in Japan are Kitagawa’s fourth and fifth lectures. In the fourth, he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Christianity and neo-Confucianism respectively to the Tokugawa regime; in the fifth, he briefly touches on the impact of Christianity on Japanese modernization, in which Japan preserved the age-old principle of “immanental theocracy” through state Shinto.
Mullins, Mark. Christianity Made in Japan: A Study of Indigenous Movements.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1998.
Sociologist Mark Mullins asks in this volume how a religion comes to be indigenized, focusing appropriately on the “indigenous and independent expressions of Christianity” in Japan. He argues for a shift in understanding Christianity as a “Western” to viewing it as a “world” religion, much like Buddhism and Islam, which adapts to a given context. There is, therefore, no pure Christianity but rather localized forms. Like Higashibaba, he is interested less in the mainstream versions of Christianity, instead focusing his study on thirteen indigenous groups from the Meiji Period and onward that developed apart from the influence of missionaries and churches. The book includes discussions of Uchimura Kanzo’s mukyokaimovement, among other subgroups, the confluence of Christianity and concerns for ancestors, and a fascinating comparison of Christianity in Korea and transplanted Korean Christianity in Japan.
This book is based on fieldwork that the author conducted primarily in the Kanto and Kansai regions. Perhaps most provocative in this work is the author’s validation of syncretistic, indigenous Christian groups as critical, defining incarnations of Christianity, rather than heterodox deviations from the theological standard, by placing them at the center of his argument on the nature of universal religions. Mullin’s science of religion approach stands in stark comparison to studies oriented to theological belief.
Nirei, Yosuke. “Globalism and Liberal Expansionism in Meiji Protestant Discourse.” Social Science Japan Journal15, no. 1 (2012): 75-92.
Historian Yosuke Nirei charts the liberal Christian arguments of Uchimura Kanzo (1861-1930) and his Protestant colleagues in this recent article. He argues that Uchimura adopted the ideology of liberal expansionism, defined as espousing “Japan’s expansion through peaceful and economic means in tandem with British and American imperialism and emigration overseas,” to justify the Sino-Japanese War and Japan’s advance in Asia (75). Rather than citing political or economic justifications alone for expansionism, Uchimura developed a brand of expansionism ideologically driven by the ideals of freedom and rhetoric of civilization. (Later, he would advocate complete pacifism as his theology became more conservative, but Nirei’s focus is on his earlier, liberal convictions.) The large part of this article is composed of comparisons that Nirei draws between Uchimura and his contemporaries Takekoshi Yosaburo, Tokutomi Soho, and Yamaji Aizan, as well as Leo Tolstoy, which makes for rather dense reading.
The extent of Uchimura’s massaging of Protestant theology to fit the Japanese political and cultural contexts, as Nirei shows, accords with many other studies included in this bibliography on the “indigenization” of Christianity. Here, Nirei shows that indigenization did not simply occur at the level of popular, “common” practices, but at an intellectual, discursive level as well. Greater contextualization with the Japanese religious milieu at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as well comparisons with Western liberal theology, are also opportunities for expansion.
Oshiro, George M. “Nitobe Inazō and the Sapporo Band: Reflections on the Dawn of Protestant Christianity in Early Meiji Japan.” Japanese Journal of Religious Studies 34 (2007): 99-126.
The title of historian George Oshiro’s article is misleading, because it supposes a much broader scope than the author actually takes. Oshiro presents a short biographical sketch of Nitobe Inazo (1862-1933), best known for his 1990 publication of Bushido but also a Protestant Christian internationalist who grappled with “attain[ing] a genuine Christian faith free from the taint of foreign culture” (99). Oshiro narrates Nitobe’s childhood interest in and openness to Christianity, followed by his time at Sapporo Agricultural College (SAC) during which time he made friends with Miyabe Kingo, Uchimura Kanzo, and others of the “Sapporo Band.” Oshiro draws attention to Nitobe’s doubts about Christianity, especially its soteriological aspects, and argues that it was only in meeting the Quakers while studying at Johns Hopkins a few years later that he found real, satisfying answers to his spiritual questions.
Where Oshiro comes far short is in providing his promised “reflections” on Protestant Christianity at large in early Meiji Japan. Oshiro’s sketch of Inazo also lacks a serious engagement with the question of how Quakerism quelled—theological, or otherwise—Nitobe’s worries that “he could not, to be intellectually honest, believe in the grace of an all-loving Savior,” as well as how to set Nitobe’s evolving religious views in the broader religious and intellectual context of Meiji Japan (111).
Paramore, Kiri. Ideology and Christianity in Japan. 1st ed. Hoboken: Taylor and Francis, 2010.
Drawing on a rich array of Japanese anti-Christian texts from 1600 to 1900, intellectual historian Kiri Paramore seeks to challenge existent conceptions of anti-Christian discourse in the lat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the “Christian Century”) and in the nineteenth century as disparate, stressing instead the discursive continuities between the two periods. He thus discards the couching of anti-Christian discourse in the Tokugawa period in a “religious paradigm” versus the placement of Meiji Christian discourse in a the political context. Paramore instead argues that anti-Christian discourse was less about Christianity itself and more about power and conflicts in domestic politics in both the Tokugawa and Meiji periods. Secondarily, he also seeks to dispel the common “Western vs. Eastern” trope that has characterized the reception of Christianity in the Tokugawa period.
In Paramore’s narrative, religion is co-opted by politics; one may therefore draw parallels between Paramore’s work and those on state Shinto, as well as Perelman’s dissertation on the political motives of missionaries.
Perelman, Elisheva Avital. “The Exponent of Breath: The Role of Foreign Evangelical Organizations in Combating Japan’s Tuberculosis Epidemic of the Early 20th Century.” Ph.D. diss.,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2011.
In this recently submitted dissertation, historian Elisheva Perelman brings under critical examination the work of foreign Christian evangelical missionaries in the Meiji and Taisho periods during both a time of modernization and the unattended spread of disease—specifically, tuberculosis—in Japan. Though Japan saw the rise of science research and modern medicine under the Meiji and Taisho states, tuberculosis also spread unchecked at a rapid pace amongst the urban population and received little governmental attention. Perelman argues that the foreign missionaries who did attend to Japanese tubercular were ruled by political interests. Missionaries focused their attentions on evangelism to the nation’s elite so as to gain financial support as well as the marginalized sick so as to ingratiate themselves to the government by filling a public health need; her answer to the quintessential question of whether missionaries are truly selfless is rather damning. Furthermore, the political motives that laced their medical work “made individuals with a disease into a collective, and, in doing so, removed their agency, essentially creating pawns for the constantly evolving chess games between the organizations and the government” (4).
This work creatively draws together themes of disease, evangelization, gender, and modernization, drawing on an array of missionary archives, hospital records, and Japanese-language sources. Perelman also importantly raises the methodological question of discerning intent and motive, particularly relevant in studying foreign missionaries, to which she provides one response.
Thelle, Notto R. Buddhism and Christianity in Japan: From Conflict to Dialogue, 1854-1899.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7.
Missiologist Notto Thelle examines the Christian-Buddhist relationship between 1854 and 1899 by placing it in a larger political and social context. Before 1890, Buddhists saw the newly imported Western Christianity as a threat to their power and social order, whereas Christians dismissed Buddhists as innocuous and irrelevant due to corruption and lack of “spiritual vigor” within its ranks (249). With the passage of the Meiji Constitution in 1889, Thelle argues, the tables were turned and Christianity was placed on the defensive. Nevertheless, in this period debates over nationalism that had driven the two religions apart also worked to bring them into friendlier dialogue. He seems to have identified one critical period in which Christianity became part of Japan’s syncretistic religious fabric (a characterization found also in Hardacre and Byron Earhart’s works).
Thelle draws on a rich variety of primary sources by various Japanese leaders and Buddhist and Christian publications. The work is, however, not without faults: Thelle’s use of the terms “Buddhist nationalism” or “Christian nationalism” are not accompanied by clear definitions. More importantly, the author ignores the impact of State Shinto and the 1873 repeal of the ban on Christianity, significant points in Japanese religious history.


*In compiling this bibliography, I am building on work completed for HISTORY 396D: Modern Japan in Fall Quarter 2012 at Stanford University, which focused more broadly on religion in Japan.
[1] James L. Huffman, review of Japan’s Modern Prophet, by John F. Howes, Monumenta Nipponica 62, no. 3 (Autumn 2007): 366-369; Shibuya Hiroshi, review of Japan’s Modern Prophet, by John F. Howes, Church History 78, no. 1 (March 2009): 147-151; John F. Howes, “Responses to comments on Japan’s Modern Prophet,” Church History 78, no. 1 (March 2009): 151-158.
One comment on “Christianity in Japan
  1. dili optim says:
    Youre so cool! I dont suppose Ive learn something like this before. So nice to find any person with some unique thoughts on this subject. realy thank you for starting this up. this web site is one thing that is needed on the internet, someone with somewhat originality. useful job for bringing something new to the 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