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8

19 이호재 한국의 이단 기독교와 기독교 이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한국의 이단 기독교와 기독교 이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한국의 이단 기독교와 기독교 이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종교학자 눈으로 본 한국교회…예수의 삶과 성경의 황금률 실천하는 참기독교인 육성해야

이호재 (newsnjoy@newsnjoy.or.kr)
승인 2019.09.19 17:28


종교(학)에서는 '정통과 이단'이라는 고정된 개념이 없으며 다양한 종교 문화와 신앙 현상이 존재할 뿐이다. '정통과 이단'은 상호 의존적인 개념으로 다원적인 사회에서는 거의 화석화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독교 역사 자체가 '정통'과 '이단'의 분열사이자 교체사였던 역사적 사실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지구촌 사유가 합류하고 다원화된 종교 시대에도 어느 종교에서나 '정통과 이단'을 판별하고 차별화하는 시대착오적인 근본주의적 종교현상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근본주의는 초기 종교의 정체성을 형성한 종교적 기제였기에, 그 관성적 종교적 영향력으로 진리 수호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내적 신념이 내재화되어 있다.

원래 학술적으로 이 글 제목은 "한국의 그리스도교 '이단'과 그리스도교 '이단', 그리고 말씀"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에게 편하게 전달하기 위해 통용화된 사회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 소통되는 용어 자체가 이 글에서는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와 교파를 보는 사회적 잣대를 제공하기에 편리한 이해를 도울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마 보수 성향 기독교인일 경우, 한국의 이단 기독교 하면 쉽게 떠오르는 종교 단체가 있을 것이다. 이단 기독교는 특정 기독교 단체가 배타적인 성경 해석권을 기준으로 종교 시장에서 이해관계에 있는 기독교를 판별하면서 생겨난다. 반면에 '기독교 이단'은 독자들에게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다. 이 개념은 기독교 내부에서 기독교적이지 않은 현상을 패러디해 필자가 특별히 붙인 종교적 용어이다.

전자가 소위 주류 기독교에서 서구 신학과 다른 새로운 성경 해석과 기성 기독교의 종교 권위에 도전하는 기독교를 표방하는 단체에 적용하는 배타적 방어기제라면, 후자는 한국의 역사적 종교 전통의 맥락을 존중하지 않고, 한국의 종교적 심성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과도기적 기독교 현상, 즉 '격의 그리스도교 문화 현상'을 말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예를 들면 성경의 기본 정신과 기독교의 본질이 신앙생활과 괴리되어 나타나는 신행信行 불일치 현상,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 세습, 교회 매매 등과 같은 반反기독교적 현상을 말한다.



종교적 권위의 독단과
성경 해석권 남용으로 양산되는
이단 기독교




한국의 종교 문화는 풍류와 무교적 심성이 바탕이 되어 수용된 유교적 전통, 불교적 전통, 도교적 전통이 축적된 다원적인 종교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 근대가 들어설 즈음 서구의 기독교가 전래되었으며, 거의 동시에 동학이 효시가 되어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다양한 신종교가 창교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종교 지도를 형성하게 된다.

한국 종교 역사의 '막내'격인 기독교는 초창기 열정적인 전도, 교육, 의료 기관 설립, 한글 성경 번역 등 한국 사회에 긍정적 바람을 불어넣었다. 반면에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 해방 후 반공을 내세운 정권과의 정치적 결탁, 사회 차원보다는 개인 구원을 내세운 자본신앙과 결탁한 '성장신학'과 '번영신학'으로 세계 교회가 놀랄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어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시련, 한국전쟁의 참화,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 투쟁, 열강 사이 힘의 역학에서 분단된 남북한이라는 시련의 역사에 걸맞은 한국 신학과 한국 기독교 문화를 창출하였는가? 한국 사회가 본받을 기독교인상이 정립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고난과 역경 속에 문화를 꽃피운 저력의 기독교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양적 성장에 걸맞게 질적인 내실을 갖추지 못했는지를 진지하게 반성적으로 성찰해 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살펴보려는 이단 기독교 현상과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


해방 전후 역사에서 우치무라 간조(1861~1930)에게 신학적 세례를 받았던 함석헌(1901~1989)은 무교회주의자라며 이단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 1956년 <사상계>에서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기독교 비판과 대안 제시를 했고, 천주교 윤창중 신부와 몇 차례 지상 논쟁을 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면서 건전한 기독교 담론으로 수용되지 못한다. 사실 '무교회'를 보고 어감상 교회를 부정한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지만, 우치무라의 교회론은 제도 교회가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성경 정신과 부합하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의 거두인 서남동(1918~1984)이 1970년 통일교의 <원리 강론>을 '종교적 상상력과 독창성에 있어서 최고'라는 신학적 평가를 한 것이 개신교계 반발을 사, 재임하던 대학교를 떠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학자가 성경에 토대를 둔 종교 조직, 예를 들면 초기 통일교 경전,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경전 등을 연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학문적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장이었던 변선환(1927~1995)'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입장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불교와의 대화를 추진한 일이 빌미가 되어, 1992년 감리회에서 목사 자격과 신자 지위를 박탈당하고 제명된 불행한 역사가 있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는 기억에서 사라질 만하면 재현된다. 
2006년 이찬수 교수 해임 사건, 
2017년 손원영 교수 파면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당연히 권장해야 하는 불교 등 다른 종교와 우호적 관계를 표현한 신앙적 양심이 강단을 떠나게 만드는 빌미로 작동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다원화된 종교적 전통에 놓인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공존 및 공생은 적극 권장해야 할 종교 행위이다. 이런 몇 가지 종교적 선례는 대부분의 신학 교수와 신학자가 교단 소속의 범위를 벗어나는 신학적 범주와 자유에 기초해 학문하는 일을 꺼리게 만드는 내적인 원인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종교적 적폐 행위는 건전한 이단 연구마저 왜곡해 특정 교단의 일방적인 종교 정보만 전달하는 통로로 악용되기도 한다. 건전한 종교 문화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는 종교의 사회학적 순기능을 스스로 유폐하는 악순환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기독교 내부로 들어가 보자.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개신교로 범주화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만 보더라도 장로교, 감리회, 성결교, 예수교 등 다양한 교파가 존재하고 있다.
최대 교단인 장로교는

  • 신사참배와 
  • 친일 청산 문제, 
  • 역사 비평 도입, 
  •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에 대한 

견해 차이로 다양한 교파로 나누어진다. 지금은 수백 개 교파로 분열되어 있다.

종교적 상식이지만 종교 내 분열은 늘 진리와 교권 수호를 외형적 명목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교권과 교세의 확산과 확장을 위한 세속적 자리다툼이 주요한 동기로 작동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일정한 교세와 교단을 형성하면 이해 당사자 간 이단 투쟁은 상호 간의 '침묵의 카르텔'로 잠복한다.

거칠게 표현한다면, 교단 소속 신학자는 끊임없이 '신학적 자기 검열' 속에 교단이 허용하는 신학적 사유 테두리 안에서 교단 목소리를 추종하거나 강화하는 대변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자답해 보아야 한다. 이런 틈을 악용해 이단 기독교를 판별하고 정죄하는 일부 직업 종교인은 기독교/비기독교, 교회/비교회라는 이분법적 도식에서 형성돼 온 서구 기독교 담론에서 구축된 교리 체계를 신봉하면서 '이단 사냥'에 열중한다. 이 과정에서 양식 있는 다수 기독교인의 목소리는 덮이고 만다.

만일 '이단' 투쟁 정당성 측면에서 본다면, 천주교와 개신교, 기장과 예장, 예장 내의 합동과 통합, 감리회와 장로교 등 다양한 분파 현상을 보이는 기독교 내부에서 교단과 교파 사이에 '이단 판정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근본적 물음을 던져 보자. 누구나 쉽게 말하기를 주저하지만 결국은 이해관계자의 종교 권력 투쟁의 산물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특히 이단 기독교 연구가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는가? 마치 예수를 정죄하려던 유대교의 바리새적인 독단적 태도로 상대방을 '이단 사냥'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어볼 뿐이다.

일부 이단 직업 종교인에 대한 기독교계 내부의 시선도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 하물며 이단 직업종교인이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이단으로 대하는 태도는 더욱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다. 독단적인 이단 판정은 사실을 왜곡하는 뒤틀린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는 어느 교단은 이단을 해제하고, 다른 교단은 이단을 유지하는 이율배반적 이단 판정을 기독교계 내외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외부인 시선에서는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일반 기독교계가 우려하는 이단 기독교가 한국 종교사에 부단하게 출현하는 것은 기성 기독교의 결핍을 채우려는 '한국적인 기독교' 문화 현상이라는 종교학자 윤승용의 비평에 귀를 기우려 봄직도 하다.) 종교학자 입장에서 다원적 종교 전통을 가진 한국에서 서구 신학 전통과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성경 해석권'을 기준으로 한국적 기독교를 이단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제국형 식민신학의 배타적 독단에 불과하다. 이단 기독교 논쟁은 이해관계자가 종교 시장을 유지하고 확산하려는 종교현상에 불과하다.

종교학자 관점에서는 정통 종교도 없고, 이단 종교도 없다. 오직 하나의 종교 문화만 있을 뿐이다. 함석헌은 적절하게 지적한다.


"이단은 없다. 누구를 이단이라는 맘만이 이단이라면 유일한 이단일 것이다"


자본신앙과 건물 성전에 함몰된
기독교 이단


기독교 이단은 기독교를 표방하면서도 창교자와 성경 가르침과는 본질적으로 괴리된 종교현상을 나타내는 기독교를 말한다. 예를 들면 기독교 종교 권력이 예수와 초기 제자와 같이 세속적 권력을 탐하지 않고 겸손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자본신앙과 기복신앙을 추구하는 탐욕적 모습을 보이거나, 세속적 명성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는 기독교 정신과 먼 기독교 이단의 모습이다.

특히 기독교 이단은 한국의 역사적 종교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기독교 이외에 다른 종교와 관계 설정을 할 때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사회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기독교 이단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현상으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

첫째, 기독교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예수의 몸 된 성전'이라고 종교 선전을 하면서 이를 세습하거나 매매하는 종교적 행위이다. 성전은 모세의 장막 성전, 솔로몬의 예루살렘성전 등 유형 건물 성전 시대를 지나, 예수를 기점으로 건물 성전이 아닌 인격 성전과 인격 공동체가 '참성전'인 시대가 왔음을 성경은 말한다. 기독교인 스스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전하는 '교회'를 사유화해서 '세습'하고 '매매'하는 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런 교회 세습과 교회 매매 사태를 보고도 성전에 대한 근본정신인 인격 교회, 인격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기독교 담론은 거의 형성되지 않고 있다.

인간이 만든 건물 성전(교회)에는 하나님이 부재(행 7:47-49, 행 17:24-25)한다. 바울은 기독교인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고후 6:16)이라는 인격 성전(요 2:19, 고전 3:16-17, 고전 6:19)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사도행전 2장의 공동체적 성령 체험과 새로운 생활 모형은 인격 공동체에 대한 성경의 진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최근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대형 교회 매매와 목회자 세습은 일부 직업 종교인의 일탈으로만 보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오히려 외부인 시선으로는 기독교의 신앙 공동체가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지금도 건물 교회를 '참교회'로 선전하면서도, 직업 종교인의 탐욕으로 교회를 매매하고 세습하는 일을 용인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신앙 공동체의 본질을 호도하는 기독교 이단 현상에 불과하다.

둘째, 기독교 이단은 '자본신앙과 세속 권력'만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존경과 사표의 대상이 아닌 미움과 배척의 대상으로 형성되는 기독교 현상을 말한다. 기독교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의 근본정신을 도외시하고 성장신학과 번영신학에 함몰되어 양적 교세만을 추구한다. 반면에, 십자가의 고난신학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자비신학이 주류 신앙이 되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참기독교인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기독교 신앙 생태계를 말한다.

아울러 창조주에게서 위임(?)받은 지상의 대리인으로 자처하는 직업 종교인이 과학의 도전, 생태계 위협이라는 시대적 도전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역사적 소명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기독교 모습을 보인다면, 이것이 바로 기독교 이단 현상이다. 또한 기복신앙과 자본신앙에 충실해서 값싼 은총과 믿음 신앙에 함몰되어 '건물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신자를 양산하는 것이 기독교 이단의 모습이다. 심지어 사회 법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M교회의 성직 세습, 또 다른 M교회의 성직자 윤리 문제, S교회의 도로 불법 전용, 또 다른 S교회의 자금 횡령 문제 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기독교 이단의 모습을 가진 직업 종교인과 종교 조직의 행태는 진정한 참기독교인들의 빛나는 종교적 행위마저 평가절하하는 역기능을 한다.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점은 한국 기독교 생태계가 '빛과 사랑'으로 넘친다면 이런 어두운 그림자마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신앙인만 있는 조직인지, 아니면 직업 종교인의 인건비와 건물 교회 유지비와 교세 확장을 위한 신자의 양적 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셋째, 기독교 이단은 주체적인 한국 신학의 부재와 다른 종교 간 대화와 공존을 부정하는 제국형 종교와 신학이 창궐하는 종교현상이다. 현재 한국 신학이 서구 신학 전래사이며,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마치 신라 시대에는 중국에서 전래된 종파 불교가 신라에 고스란히 재연되고,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 이외에 무교, 양명학 등은 음사와 사문난적으로 치부하던 역사적 상황을 방불하게 한다. 이런 역사적 유비 현상이 지금 한국 기독교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스럽다.

한국인의 삶의 정황을 도외시하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적 신앙의 태도를 가진 기독교 교단과 교파, 신자가 있다면, 이는 다원화된 한국 종교 지형과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뿌리내리지 못한 기독교 이단의 모습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문화가 한국인의 주체적 심성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서구에서 전래된 '격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대리로 신앙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서구 신학 전통과 서구 신학자의 사유 체계를 빌리지 않고는 주체적인 한국의 신학을 전개하지 못한 뼈아픈 한국 기독교의 슬픔이다.

지구촌의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적 정황에서 세계적인 신학을 만들어 내놓지 못하고 '칼 라너', '본회퍼', '칼 바르트', '몰트만', '판넨베르크' 등 서구 신학자의 성과를 맹목적으로 이식해서 한국 기독교계를 서구 신학의 대리전을 치르게 하는 제국주의적 식민신학 현상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이단을 발생하게 하는 온상이자 근본 원인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식민신학과 제국 기독교의 행태가 한국 기독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필자를 포함해서 양식 있는 대중을 절망하게 한다.



하나님 말-씀의 재현: 영성靈聖 생활인生活人의 탄생


이단 기독교와 기독교 이단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성경 텍스트가 서술하는 '말-씀' 오해에 있다. '말-씀'을 오해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기독교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통계청의 2015년 종교 인구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 인구는 10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이렇게 많은 기독교 인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예수와 같이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사는 기독교 인구가 얼마나 되는가? 세계 최고의 교세 성장을 자랑하면서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삶을 실천하는 기독교 인구는 얼마나 되는가!

재작년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고,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 종교 행사도 또 한 페이지의 과거 역사로 넘어갔다. 잘 알다시피 '기념과 선언'만으로 새로운 기독교 역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믿음을 통한 실체 없는 개인 구원과 '남녀차별'의 기독교 전통, 그리고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신학적 용어로 기독교의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로마 시대가 아니다. 낡은 문명과 새 문명의 전환기에 처한 문명사적 시간 속에, 냉전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대척점에 있는 지구촌의 하나뿐인 분단 한국에 사는 기독교인은 새로운 혁명적 결단을 해야 한다.

참다운 기독교인은 참다운 한국인이다. 참다운 한국인이야말로 참다운 지구촌 시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절대 획일화되지 않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가지고 각 민족 단위로 복음의 씨가 내려져야 한다. 예수가 만일 "너는 한국인으로서 나의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했는가?"라고 물을 때 기독교인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를 자문자답해 보라. 서구 신학을 통해 배운 신앙으로 '앵무새'와 같은 서구 신학을 통해 배운 영혼 없는 답변을 예수가 기대하겠는가! 절대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인은 한국인이라는 주체적이고 토착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말-씀'을 회복해야 한다. '말-씀'을 체화해서 새로운 기독교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말-씀의 회복은 말(logos)을 쓰는(씀, praxis) 영성靈聖 생활인生活人의 탄생이다.


조직신학회장을 역임한 김흡영은 로고스와 프락시스가 이원론적으로 전개되는 서구 신학의 뿌리 깊은 한계를 지적하며, 로고스(말)와 프락시스(씀)가 일치되는 '도의 신학'을 주장한다. 잘 알다시피 도道의 어원적 해석 자체가 머리首를 찾아가는辵 활동이다. 전통 신학에서 태초에 감추어진 비밀이 '성육신 사건'을 통해 나타나고, 예수는 영성시대의 첫 열매가 된다.

이처럼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말, 예를 들면 평화·사랑·고난·믿음·은혜·봉사·섬김·구원 등의 근본어로 이루어진 다양한 말言 가운데 자기의 말을 찾아야 한다. 그 하나님이 자기에게만 준 말을 '마음의 지성소'에 고이 간직하고, 로고스의 창조적 행위의 참여자(요한복음 1장, 요한1서 1장 참조)로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과 관계성을 맺고 일상생활에서 재현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과 자신의 씀(삶)이 생활 세계에서 개성적인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인 영靈적인 차원에 뿌리를 박고, 일상생활에서 성聖스러운 행동을 하는 영성靈聖 생활인生活人으로 거듭나야 한다. 제도 크리스천이 아닌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참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의 향기'를 싱그럽게 뿜어내는 화신체로서 말이다. 말-씀의 회복, 성서 텍스트에 면면히 흐르는 바탕의 말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해서 '사랑'의 화신체, '평화'의 전도사, '청빈'의 섬김이 등으로 거듭나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을 육성하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영성 생활인이 한반도 삶의 정황에서 평화통일의 주역이 되어 새 문명의 생활 세계를 구현해 실천하는 본보기를 지구촌 사회에 보여 주어야 한다. 또한 이것이 바탕이 되어 인격 성전과 인격 성전이 중첩적이고 다층적으로 연대한 영성 생활 공동체가 지구촌 차원에서 낡은 문명을 혁신하고 새 문명의 생활 세계를 선도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새 시대 한국 기독교의 사명이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만일 이단 기독교와 기독교 이단를 판별하는 유일한 '이단' 판정의 기준을 만든다면, 기독교 신앙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경의 황금률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참기독교인을 육성해 내는 종교 조직인가 여부로 규정되어야 한다. 즉 영성 생활인만이 참기독교인이라는 '선포'를 통해 한국 기독교는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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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 종교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자하원 원장이다. 관심 영역은 동서양 종교 사상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의 사유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새 축 시대의 영성 생활인'이라는 생활 프로젝트를 세계화하는 데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 종교운동>(2018), <한밝 변찬린: 한국 종교 사상가>(2017), <인생 지도>(2017)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 재래 종교의 '구원'관>, <함석헌의 '새 종교'론의 의미와 남겨진 과제>, <변찬린의 새 교회론 연구> 등 수십 편의 국내외 논문이 있다.

이호재 - 한국교회에는 올바른 교회론이 있는가 - 건물 교회에서 인격 교회, 인격 공동체로



한국교회에는 올바른 교회론이 있는가 건물 교회에서 인격 교회, 인격 공동체로

이호재 (newsnjoy@newsnjoy.or.kr)승인 2019.11.05 17:05


신앙적 교회와 건물 교회의 혼란

최근 일부 대형 교회가 교회법에 위반되는 교회 세습을 편법으로 용인하고, 사회 법에 저촉되는 지하 예배당 건축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교회 매매와 세습은, 종교 의례를 행하는 장소를 '성당'이라고 하는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다. 교의학에서 교회는 '비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 글에서는 '가시적 교회'인 지상 교회가 일반 부동산과 같이 매매되고 세습되기에 부동산 개념인 '건물 교회'라고 표현한다. 신앙적 교회와 건물 교회의 혼란에 대한 비평적 대안을 제시하는 글이기에 오히려 필자가 만든 단어인 '건물 교회'가 독자와 소통하는 데 적합한 용어라고 판단한다.


교회 용어 사전에서 교회는 "문자적으로는 '밖으로 불러 모으다'는 뜻으로, 죄악 세상에서 불러 모아진 성별聖別한 자들의 모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의 모임을 가리킨다(엡 1:22-23; 히 2:12)"고 정의한다. 과연 교회라는 명칭을 건물 장소에 붙이는 것은 성경적 맥락에 맞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이라는 교회를 매매하고 세습한다는 것은 기독교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한정된 지면에서 구약의 성전 개념과 신약의 교회 개념이 다양한 맥락 가운데 어떤 통일성을 지향하고 있는지 성서에서 말하는 성전과 교의학에서 말하는 교회를 구별해 살펴본 후 한국교회 현상에 대한 반성적 비판을 통해 나름대로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성서는

'인간 자체가 하나님 모신 성전',

인격 성전을 말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성전은 어떠한 맥락으로 기술되어 있을까.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이스라엘 하나님,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은 인간 안에 거하고 인간이 하나님 안에 거한다(렘 31:33–34). 이스라엘 백성은 각자의 심령 성전에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섬기는 생활을 한다(히 8:10-11 참조). 성전에 대한 첫 언급은 모세가 네 차례 시내산에 오르는 가운데 세 번째 시내산에 오르면서 성막을 짓는 모형을 계시받는 데서 비롯된다. 무형의 성전이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유형의 성막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장막 성전을 종교 의례 중심지로 삼으며 40년 동안 40번 장막을 옮기면서 시내 반도를 방황한다. 주요한 점은 성막 성전은 고정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광야 교회'였다는 점이다(행 7:38).




성전은 이동하는 장막 성전 시대를 거쳐 솔로몬이 B.C. 960부터 B.C. 950년 사이에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했다.(왕상 6:1, 6:37–38). 성서 역사에서 첫 건물 성전을 지은 솔로몬마저도 인간이 지은 성전에는 하나님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 8:27)."]. 예루살렘성전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대왕이 B.C. 587년 예루살렘을 침략해 파괴된다(왕하 25:8-9, 스 6:12).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이 B.C. 516년에 파괴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한다(스 5:2, 6:12). 유대인은 관습적으로 예루살렘성전에 하나님이 있다고 맹신하고 모세 율법에 근거해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이런 종교 의례 타락 현상에 대해 구약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말 1:10)고 하면서 구약은 막을 내린다.




기독교에서 메시아라고 신앙하는 예수가 왔을 당시에도 예루살렘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아닌 시장으로 변모해 있었다(마 21:12-13). 이처럼 예루살렘성전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제사장의 종교 의례 장소와 시장터로 변모해 있었다. 이런 정황을 보고 예수는 말한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예수는 '실체 성전'(요 2:21, 계 21:22)이고, 예루살렘성전은 '상징 성전'인 건물 성전에 불과하다. 성서에서 모세의 장막 성전, 예루살렘성전 등은 상징 성전이고, 예수가 말하는 참 예배는 고정된 건물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와 수가촌 여인의 담화에서 예배할 장소에 대해 문답을 나누는 대목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가촌 여인은 예루살렘성전과 사마리아 그리심산에 있는 성전 중 어느 곳에 가면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예수께 질문한다.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각각 자신이 만든 성전에서 예배해야 하나님이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예수는 인간이 만든 성전은 예배할 장소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중략)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성서의 주인공인 예수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리심산에 있는 성전과 예루살렘성전이라는 건물 성전에서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인격 성전이며 실체 성전인 예수의 안목으로,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드리는 예배는 모르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우상숭배였다(행 17:23-25). 예수만이 인격 성전으로서 참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수는 성전은 살아 있는 인간 성전 즉 인격 교회(요 2:21)이며, 두세 사람이 한마음이 되면 그곳에 있겠다고 약속했다(마 18:19–20). 예수 사후 최초 순교자인 스데반도 이사야 66장 1절과 2절을 인용하며 건물 성전에는 하나님이 부재하는데도 유대인이 오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행 7:48-51). 예수의 제자들도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다(고전 6:19).",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 6:16)."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혹은 교회는 '가시적 교회'라고 명칭을 단 건축물이 아니고 거듭난 인격이며, 인격이 사랑으로 연대한 인격 공동체가 교회이다(엡 2:20–22). 심지어 바울은 말한다.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제물"(롬 12:1)이라고 강조한다. 성서는 이처럼 인격 교회를 지향하고 있지, 건물 성전 혹은 건물 교회를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성서의 일맥상통한 맥락은 성서의 마지막 문서인 요한계시록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이 개명되어 하늘에서 거룩한 성이 내려오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연출된다. 성전은 없고 거룩한 성만이 있다는 것이다. 성전은 바로 하나님과 어린 양을 지칭하는 예수이다.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하나님과 예수는 바른 신앙고백 위에 거듭난 인격 교회에 거한다고 신약성서는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새롭게 거듭난 인격교회인 성전은 누구의 설교나 계명에 따라 타율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율에 의해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인간은 진리로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계 21장). 변찬린은 이렇게 말한다. "존재가 거할 영원한 집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진리만이 우리가 거할 참 집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된 성전! 이것이 새날의 교회이다."[변찬린, <요한계시록 신해>(한국신학연구소), 272쪽]




건물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 성도들이 거룩하게 교제하는 담소의 장소 혹은 기도하는 예배당에 불과하다(마 21:13 참조). 특히 성전과 교회를 건축할 때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직업 종교인이 부동산인 양 매매하고 세습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도, 교의학의 교회론도 아니며, 교회법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는 위법이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기복신앙과 자본신앙을 가르치는 건물을 '교회'라고 하는 것을 외부인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하나님의 성전'인 가시적 교회와 매매와 세습이 되는 '건물 교회'라는 신앙적 괴리를 기독교 구성원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구약의 성전은 이동성이 담보되었던 장막 성전, 예루살렘성전을 헐라던 예수의 비판, 그리고 예수 사후 스데반은 건물 성전에 하나님이 없다는 증언을 하면서 순교자의 길을 간다. 건물 성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예수와 사도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전대를 매지 않았다. 무소유로서 복음을 전파한 것이 성서의 정신이다.




교의학 교회론도

건물 교회를 '교회'라 하지 않는다

교회 역사는 모세의 장막 성전, 예루살렘성전 시대를 거쳐 성직자의 제도 교회에서 형제자매의 공동체로서 역사적 변천을 거듭해 왔다. 초기 신앙 공동체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생활공동체의 양상을 띤다(고전 3장 참조).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을 시발로 로마의 기독교는 국가교회로 변모한다. 또한 기독교 변증가에 의해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Salus extra ecclesiam non est)라는 사도 계승이 교리화하고 국가 차원의 거대한 위계적인 성직자 제도와 이를 정교화한 종교 의례가 만들어진다. 특히 가톨릭 신학에서는 예수의 제자 베드로를 적통으로 세우고 324년 니케아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이라는 성격을 가톨릭 교회관의 전통으로 삼는다. 이를 바탕으로 교황을 정점으로 추기경-주교-사제 등의 위계질서를 가진 성직자 제도로서 보편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마태복음 16장 18-19절이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하략)"라는 성구이다. 당시 이미 베드로 계열의 공동체, 바울 계열의 공동체, 야고보 공동체 등도 있었기에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위 성구는 사도를 계승한 성직자 교회로서 자리 잡게 하는 핵심적 성구가 된다.




반면 개신교는 기톨릭 중세 국가교회의 모순점을 비판하며 종교개혁가는 성직자들의 '객관적, 법적 제도'가 아니라 성도들의 교통, 선택받은 자들의 공동체를 교회의 본질로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개신교 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성직 교회가 아니라 교회는 본질적으로 성도들의 모임과 사귐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큄멜(W. Kümmel)은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출전을 둔 ekklesia는 제도 교회가 아닌 예수 부활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이 형성한 생활공동체가 교회의 모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2장의 공동체 성령 체험과 새로운 생활 모형인 인격 공동체에 대한 성경의 진술을 기억해 보자. 또한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 같은 신학자도 '장소와 제도'로서의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듣는 곳'이 교회이며, 민중신학도 민중 교회는 민중의 삶 속에 드러나는 공동체라고 말한다. 즉, 교회는 건물 교회가 아니고 '사건 혹은(과) 말씀 혹은(과) 삶'에서 드러나는 교회로 규정된다. 이런 사상은 몰트만도 교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기독교인이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신학자 입장에 따라 다른 맥락의 교회관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고정된 장소가 '교회'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다.




심지어 개혁 교회는 성령을 받은 성도들의 자발적인 봉사와 헌신에 맞게 직분을 맡는 등 인위적인 성직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한다. 이처럼 가시적인 교회 조직은 비가시적인 교회를 본떠 위계질서와 계급 질서 등 일체의 차별과 차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개혁 교회의 본질적 정의이다. 그러나 개혁 교회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정해진 제도의 틀에 의해 목회자가 육성되며 직분은 목사·장로·권사·안수집사·집사 등으로 차등화, 차별화한 교회 신분으로 고착화해 가는 경향을 보이며, 만인사제설은 유명무실하게 되어 초기 개혁 정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종교 조직으로서 교회는 종교적 위계질서에 의해 점차 경직화하고 타율화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개혁교회가 내건 "개혁되어진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manda)라는 스스로의 종교적 구호에 충실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인격 교회 선포하고

인격 공동체 형성하라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천주교는 성당이라는 부동산 개념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신교는 '국명 혹은 소속 교단 명칭 혹은 지역'을 혼용하며, 대부분 마지막에는 교회 명칭을 붙인다. 과연 이것이 개혁 교회가 규정한 교회의 본질과 동일한가. 굳이 언어철학과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언어와 실재는 명실상부해야 한다. 즉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개신교의 대부분 건물교회가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명실상부한가. 대부분 교회를 지을 때는 '하나님의 성전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으로 헌금을 거두어 교회를 성대하게 짓는다. 따라서 목사 등 직업 종교인이 이것을 매매하거나 세습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붕괴시키는 신성모독이다. 더구나 종교 자유가 보장되는 한국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교회 매매와 세습, 사회 법을 위반하는 교회 사태는 신앙공동체의 구조적 모순이다. 이는 일부 대형 교회 문제라기보다 한국교회 공동 책임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사태를 직면하고도 기독교 구성원의 담론 형성 지점을 보면 한국교회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교회 신앙체의 근본인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사고팔고 세습하는 '대사건'인데도 진작 기독교 구성원들이 보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과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한 반응은 외부인 시선으로는 의아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기독교는 그동안 무엇을 신앙하고 있었는가. 일부 진보적 기독교 지도층은 검찰 개혁에 서명을 하는 등 사회적 발언에 용기를 보이지만, 진작 기독교 신앙의 근거인 교회 존립의 근간을 흔드는 교회 매매와 세습에 대한 소극적 태도에는 상대적으로 신앙 공동체의 '침묵의 카르텔'을 보이는 경향마저 감지된다. 생각해 보라.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전통적 구원관의 근간을 흔드는 교회 매매와 세습에 대해 그동안 한국 기독교의 중추적 역할을 해 온 기독교 지도층의 책임 있는 목소리가 어디에서 들리고 있는가.







사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한반도의 국제 정세와 한국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에 가지는 큰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역사적 고비에 공과는 있었지만 어느 종교 조직보다 신앙 공동체로서 잠재력과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이 조그만 계기가 되어 기독교 근본 개혁을 위한 하나의 건전한 담론으로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기독교 신앙 공동체는 지금부터라도 신앙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고 반성하고 한국의 명운이 걸린 남북 평화 질서, 사회 개혁, 종교 혁신 등에 앞장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종교학자로서 내놓는 단기적인 실천 가능한 대안과 중장기적인 근본 개혁 방향에 대한 제안이 기독교 혁신과 갱신의 출발점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첫째, 교회 명칭을 건물 교회는 건물 교회답게 예배당, 교회당 등 장소의 명칭으로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면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예배당(혹은 교회당) 혹은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당(혹은 예배당) 혹은 기독교대한감리회 ○○교회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예배당(혹은 교회당) 혹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회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회당(혹은 예배당) 등 장소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회는 부동산으로 간주되어 기독교인의 교회에 대한 신앙 지향점과의 괴리 현상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동산을 매매하고 세습하는 것은 정해진 사회 법 절차에서 용인되는 상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도기적으로 성서 정신과 교회라는 교의학적 개념과 명실상부하지 않는 건물 교회를 공동체가 모이는 장소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 보다 더 현실적이고 명분 있는 작은 대안이 될 것이다.

둘째, 기독교인 각 자가 주체적인 인격 성전으로 인격 교회를 선포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은 성서의 기본 정신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름을 받은 자는 예수와 같이 '나=교회' 즉 인격 교회임을 선포하며 예수의 길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가 언제 건물 성전에서 민중과 더불어 동고동락했는가. 성전 자체였던 예수는 스스로가 민중의 삶 속에서 사회적 약자와 사랑 실천을 솔선했다는 것이 신약성서의 일관된 기술이다. 깨어난 기독교인은 구약성서의 장막 성전과 건물 성전 시대는 예수의 인격 교회 선포와 제자들의 증언으로 기독교 역사에서 사라져야 하는 역사적 유물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인 스스로가 주체적인 바른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서 인격 교회를 선포하는 운동이 자율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셋째, 종국적으로 인격 교회와 인격 교회가 연대한 인격 공동체 운동을 확산해야 한다. 

예수가 십자가 고난을 받고 부활한 후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에게 성령이 내림으로 유무상통하는 신앙 공동체가 생긴다. 이 신앙 공동체는 신약성서에 처음으로 기술된 성령 공동체이다. 이들은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라는 오순절 체험 모습이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오순절 체험은 교회 공동체의 모형으로, 오늘날 재현해야 할 '인격 공동체'의 원형이다. 오순절 공동체는 자율적이고 자발적이고 자립적으로 민중의 삶 속에서 형성되는 열린 공동체이다. 오순절 공동체는 자발적인 공동체이지 타율적인 제도 공동체가 아니다. 예수와 제자의 설교는 삶의 행동이었다. 정형화한 설교로 민중과 교류하지 않았다.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처럼 하나님이 왕이고 공동체 구성원은 수평적인 질서 속에서 포도송이처럼 인격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런 제안이 당황스럽고 현실을 모르는 대안 운동이라고 기독교인은 말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기독교의 근본 신앙을 믿는 한국의 주류 기독교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의 계명을 금과옥조처럼 신앙하는 기독교인이 위에 제시한 성서 정신과 교의학에 부합하는 대안 운동을 실천하지 못할 까닭이 전혀 없다고 믿는다. 심지어 예수는 기독교인에게 다음과 같이 용기와 희망을 주기까지 한다. 예수는 자기를 따르면 하나님처럼 온전할 수 있다는 용기, 사랑 계명만 실천하면 '나의 친구'라고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참 기독교인이라면 어찌 예수의 당부를 실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성서 정신과 교회론에 부합하는 인격 교회 선포와 인격 공동체 형성은 새 시대 기독교인의 큰 사명이다. 인격 교회와 인격 공동체는 하늘나라의 지상적 모형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24, 유사 성구: 눅 14:27, 마 10:3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중략)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2:12-14)."

말씀을 회복한 '인간=교회'인 인격 교회는 성서의 언어 맥락에서 말하는 참 교회인 '새 교회'이다. 반면에 인간이 만든 건물 교회는 늘 우상숭배 근거지로 하나님이 부재하다고 증언하는 것이 성서의 근본 정신이다. 참 기독교인은 스스로가 인격 교회임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한다. 그리고 인격 교회와 인격 교회가 사랑의 마음으로 인격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바른 교회관이다. 건물 성전이 축 시대의 성전이었다면,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을 '인간(공동체)=교회'에 모시는 인격(공동체)교회는 새 축 시대의 '새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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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 종교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자하원 원장이다. 

관심 영역은 

  • 동서양 종교 사상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의 사유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 '새 축 시대의 영성 생활인'이라는 생활 프로젝트를 세계화하는 데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 종교운동>(2018), <한밝 변찬린: 한국 종교 사상가>(2017), <인생 지도>(2017)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 재래 종교의 '구원'관>, <함석헌의 '새 종교'론의 의미와 남겨진 과제>, <변찬린의 새 교회론 연구> 등 수십 편의 국내외 논문이 있다.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순절'로도 불리는 '성령강림절'의 유래와 의미는?


'오순절'로도 불리는 '성령강림절'의 유래와 의미는?

'오순절'로도 불리는 '성령강림절'의 유래와 의미는? : 오피니언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


'오순절'로도 불리는 '성령강림절'의 유래와 의미는?


기독일보

입력 Jun 04, 2017 05:51 PM PDT







주일인 6월 4일은 성령강림절(聖靈降臨節, Whitsunday)이다.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로서, 이날 모인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행 2:1)이다.

<교회용어사전(생명의말씀사)>에 따르면, 기독교에서 성령강림절은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3대 절기로 꼽힌다. 특히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탄생일'로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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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은 유대교의 3대 절기인 '오순절(五旬節, Pentecost)'과 같은 날이다(레 23:9-11). 구약에서 오순절은 '5'를 뜻하는 헬라어(펜테)에서 파생된 말로 '50번째 날(축제일)'이란 뜻이다. 유월절, 수장절과 함께 구약 3대 절기인 '칠칠절(출23:14-17)'에 대한 헬라식 표현으로,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 다음 날부터 계산해 50일째 되는 날에 행해지는 감사절기를 이른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고 하셨다. 제자들은 이 명령에 순종해 한데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오순절을 맞아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기도하던 중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서방교회에서는 성령강림절 철야제를 성탄절, 부활절과 같이 성대하게 행했는데, 특히 철야제는 세례와 함께 행해진다. 이는 성령 세례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또한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확장과 성장을 도모하는 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령의 역사와 인도와 충만을 기도하게 된다. 성령강림절 이후 강림절(성탄절 4주 전 주일, 대림절, Advent)까지의 주일들은 '오순절 후 주일들'로 불린다.

'성령'은 하나님, 예수님과 더불어 삼위(三位)의 한 분이다. 소요리문답 6문에는 "삼위는 하나님이시며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하시다"고 명시했다. 그러므로 성령은 '성령님'으로 호칭하는 것이 적절하다. 특히, 기도나 찬양 시간에 성령을 직접 부를 때는 분명하게 '성령님'이란 인격적인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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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ng-Chan Rah (Author), Brenda Salter McNeil (Fore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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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Soong-Chan Rah planted an urban church in Cambridge, Massachusetts, his first full sermon series was a six-week exposition of the book of Lamentations. Preaching on an obscure, depressing Old Testament book was probably not the most seeker-sensitive way to launch a church. But it shaped their community with a radically countercultural perspective.
The American church avoids lament. But lament is a missing, essential component of Christian faith. Lament recognizes struggles and suffering, that the world is not as it ought to be. Lament challenges the status quo and cries out for justice against existing injustices.



Soong-Chan Rah's prophetic exposition of the book of Lamentations provides a biblical and theological lens for examining the church's relationship with a suffering world. It critiques our success-centered triumphalism and calls us to repent of our hubris. And it opens up new ways to encounter the other. Hear the prophet's lament as the necessary corrective for Christianity's future.
A Resonate exposition of the book of Lamen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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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This book illuminates the resilient faith of a current lamenter's raw trust in God. Everyone engaged in the shared struggle to hope in the midst of a violent and unjust world ought to read this accessible integration of biblical text, witness and sharp insight into the present cultural realties of the American church. Readers will discover a pithy prophetic response to the reality of shame, the problem of privilege and the possibilities of honor, hope and worship with integrity. This volume is a credit to the Resonate series." (James K. Bruckner, professor of Old Testament, North Park Theological Seminary, author, Healthy Human Life)

"Prophetic Lament is a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book of Lamentations. Rather than reading as a typical commentary with foci on individual verses, original languages, and such, the book reads as an extended essay that swerves consciously between the experience of Israel's exile and reflections on contemporary events, particularly issues of justice that have often escaped white churches. . . . "Lamentations is a book that can and should speak into our current circumstances and, in Prophetic Lament, Rah has given us an accessible introduction for our troubled times." (David Swanson, Signs of Life, December 19, 2015)

"Soong-Chan Rah adds a significant voice to the rich and growing interpretive corpus on the book of Lamentations. He brings to his study a special attentiveness to the rootage of lament in Korean religious tradition. As Western culture is increasingly in 'free fall,' there is compelling reason to pay steady attentiveness to Lamentations. Rah's book will be of great value in that now-required attentiveness." (Walter Brueggemann,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Let me warn you ahead of time. This isn't a how-to, feel-good, seven-steps-to-cool-justice kind of book. In a culture today where we often elevate conversations about justice, reconciliation and peacemaking, Dr. Soong-Chan Rah provokes challenge and courage for the church not just to love the ideas of such things but to commit ourselves to the journey―even at the cost of including the oft forgotten process of deep lament and confession. To say that I loved Prophetic Lament by Dr. Rah would be somewhat misleading. I didn't love the book, but I confess, I needed this book and believe this to be an important resource for the wider church." (Eugene Cho, senior pastor, Quest Church, author of Overrated)

"Not often am I taken by surprise when reading a book. As an academic and a writer, I've read a lot of books, and even though I've read the Bible many times over, I confess I had not really taken Lamentations or lament seriously until now. In Prophetic Lament, Rah gifts the church not only with his caring prophetic voice but also his pastoral calling, which help us to grieve the sins of our society and those of the church. This book is timely and reaches very deep theologically, emotionally and spiritually. If you care about our country and about how God feels about us, Prophetic Lament is not just a must-read; it is a must-read-now! Place this book on the top of your reading priority list." (Randy Woodley, Distinguished Professor of Faith and Culture, George Fox Seminary, author, Shalom and the Community of Creation)

"Soong-Chan Rah argues for reorienting Christian theology, ministry and church life around the harsh realities of our time. The anguished cries of those who endured the ransacking of Jerusalem by the Babylonians, which come to us in the book of Lamentations, have much to teach us. Repentance and shame, not triumphalism; compassion and justice, not consumerism; hope in a sovereign and faithful God, not despair―these are what that ancient text and Prophetic Lament call us to embrace. A needed word!" (M. Daniel Carroll R., distinguished professor of Old Testament, Denver Seminary)

"As a product of the African-American and urban church I am grateful for this important resource on the mission of God in the context of suffering. Soong-Chan Rah's transparent, prophetic and practical voice comes through in powerful and deeply insightful ways on the pages. In a time when too many churches are held captive to a feel-good and happy-rich gospel, this book shows us a more authentic biblical narrative." (Efrem Smith, president and CEO of World Impact, author of The Post-Black and Post-White Church)

"Finally, a book that rightly commends lament as the best way to interpret and reckon with the pain and suffering so prominent in today's news! The book also gives Lamentations, an oft-overlooked biblical book, a voice―a very fresh voice―in that reckoning. The author's scholarship is first-rate, his style winsome and true-to-life, and his message occasionally hard-hitting but always hugely relevant. An important book for openhearted evangelicals." (Bob Hubbard, professor emeritus of biblical literature, North Park Theological Seminary)

"In modern American Christianity, especially in the white church, we have done a disservice to our faith, our relationship with God and ultimately the justice of our society by focusing on the triumphal Scriptures of praise and glossing over the equally essential Scriptures of lament. In Soong-Chan Rah's riveting and provocative commentary on the book of Lamentations, he shows us that there can be no authentic praise and joy without justice, and no true justice without the deep acknowledgement of injustice, pain and sin inherent in the biblical practice of lament. Soong-Chan Rah masterfully explains the meaning of Lamentations in the context in which it was written, then seamlessly applies the lessons of these Scriptures to our contemporary setting, raising a powerful and prophetic challenge to the American church on critical issues such as racial inequity. I recommend this book to anyone who wishes to understand and embrace a fuller, more authentic and more just expression of Christianity. Prophetic Lament is more evidence of Soong-Chan Rah becoming one of the most important theologians of our time, and one of the few who truly understands the world into which theology must now enter." (Jim Wallis, New York Times bestselling author of The UnCommon Good, president of Sojourners, editor in chief of Sojourners magazine)

"This timely book is indeed prophetic in its call for us to live as the faithful and repentant people of God in our violent age." (C. Christopher Smith, Relevant, December 18, 2015)

About the Author

Soong-Chan Rah is Milton B. Engebretson Associate Professor of Church Growth and Evangelism at North Park Theological Seminary in Chicago. His books include The Next Evangelicalism and Many Colors.

Rev. Dr. Brenda Salter McNeil is a dynamic speaker, author and trailblazer with over twenty-five years of experience in the ministry of racial, ethnic and gender reconciliation. She was featured as one of the fifty most influential women to watch by Christianity Today in 2012 and is an associate professor of reconciliation studies in the School of Theology at Seattle Pacific University, where she also directs the Reconciliation Studies program. Salter McNeil was previously the president and founder of Salter McNeil Associates, a reconciliation organization that provided speaking, training and consulting to colleges, churches and faith-based organizations. She also served on the staff of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for fourteen years as a Multiethnic Ministries Specialist. She earned a MDiv from Fuller Theological Seminary, a DMin from Palmer Theological Seminary and was awarded a Doctorate of Humane Letters from North Park University. She is an ordained pastor in the Evangelical Covenant Church and is on the pastoral staff of Quest Church in Seattle. In addition, she serves on the board of directors for Wycliffe USA and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USA. She is also the coauthor of The Heart of Racial Justice and the author of A Credible Witness. Brenda lives in Seattle with her husband Dr. J. Derek McNeil and their two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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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le
Length: 225 pages Word Wise: Enabled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January 24, 2019
Format: Kindle EditionVerified Purchase
I veer wildly between an honest concern about too much focus on the bad in the world (there is far more good than what is often credited) and a frustration about the lack of concern about the harm that is being ignored by many. I think many more people need to read Bradley Wright’s book Upside about how much about the world has drastically improved recently.
But at the same time I am concerned that many have far too little concern about systemic issues of oppression. Black Lives Matters (whether the broader movement or the organization), systemic problems of the criminal justice system, a rise of nativism or xenophobia, continuing revelations about ongoing racism, sexism, and other bias that impacts real people on a regular and ongoing basis, matters.

And so I picked up Prophetic Lament when I was frustrated with the inability for the Evangelical church in particular (but the larger church as well) to actually embrace lament. Christian Music that is ‘safe for the whole family’ and Christian fiction that seems to only be able to tell happy tales with tidy endings is not particularly faithful example of historic Christian artistry. It is not that we cannot be happy or that we should not consume tidy books or safe music. It is that we should not only consume safe music and tidy books.

The world is not tidy or ‘safe for the whole family’ and neither is scripture. Scripture is decidedly R rated if you don’t skip over hard passages. About 40% of the Psalms (which has historically been the prayer and songbook of the church) are psalms of Lament. A study of hymn books in 2012 found that no hymnbook even hit 20% of its songs as lament.

Soong-Chan Rah explicates the book of Lamentations well. He hits not only the themes and particulars of the five chapters, but relates it to the areas that our modern American church should be lamenting about. I think some will complain that Soong-Chan Rah gets too particular about areas of lamentation. That could be, but it is better to be too specific than not specific enough. Unspecific lamentation is not real lamentation.

The case is also well made that lamentation is an essential part of historic Christian faith. Faith that is only happy is gnostic or otherwise dis-embodied. Jesus wept real tears. Paul was in real chains. John was exiled to a real and specific place. Stephen was actually killed. Lamentation is part of what we should be feeling in the fact of not only the widespread injustice of the world, but the every day general living and dying that we all participate in. People around us get sick and die. They have miscarriages and lose jobs. They have a marriages that fall apart and children that stray from the good path.

If we are unable to lament with those that lament, then we are not fully entering into their lives. Prophetic Lament puts good words to that biblical call and biblical example.

My only real complaint, and it is not much of one, is that I wish the actual text of Prophetic Lament included the whole book of Lamentations as he was discussing the book. I think it would have forced more conversation with the actual book of scripture. It is very possible to read this book without reading the actual book of Lam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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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October 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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