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6

알라딘: 일본정신 - 일본서기에서 신영성운동까지 이찬수

알라딘: 일본정신 - 일본서기에서 신영성운동까지

일본정신 - 일본서기에서 신영성운동까지 
이찬수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0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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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00자평(0)리뷰(3)

208쪽

책소개

일본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종교문화의 형식과 내용 전반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다. 일본의 종교문화를 현상적으로 일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름대로 ‘일본정신’이라는 보편적인 담론으로 재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종교’를 매개로 해서 일본의 정신문화의 근본 바탕을 찾아나선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기독교, 천주교 등 서구 전통의 종교는 거의 없다시피한 일본 정신문화가 형성되어 온 과정을 보면 오늘의 일본은 물론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와 지향점까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목차


Ⅰ. 일본 종교, 어떻게 볼까
1. 무엇을 어떻게 쓸까

II. 신도와 일본의 근대
2. 일본인의 비종교적 종교성 
3. 일본 문화의 다른 이름, 신도
4. 근대의 신도와 야스쿠니 신사 
5. 근대 천황제와 귀신 담론
6. 그리스도교를 보는 일본인의 시각

III. 일본의 불교와 근대 문화
7. 신불습합을 넘어 일본적 불교로 
8. 일본의 장례문화와 불교
9. 일본 불교를 세운 이들 
10. 법화경의 후원을 받아 온 나라
11. 일본의 그리스도교와 불교

IV. 애국주의와 신종교
12. 일본의 신종교, 그리고 소카가카이 
13. 종교 간 대화를 선도하는 릿쇼코세이카이
14. 기성종교, 신종교, 그 이후

V. 조상숭배와 유교 문화
15. 불교적 형식, 유교적 내용 
16. 일상화한 축제, 마츠리

VI. 종교와 일상성
17. 사무라이와 일본인의 혼 
18. 일본의 정신과 서양의 문물
19. 나가는 말 -- 평범한 개인, 비범한 사회



책속에서



P.20
비록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종교’라는 낱말이 주는 비일상성 때문에 종교문화라는 말 자체를 낯설어 하기도 하지만, 유교적 질서와 정서, 또 불교 사상과 사찰 등 문화재를 빼고 한국적인 것을 설명할 수 없듯이, 불교와 신도적(神道的) 종교성을 제외하고서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P.30
일본의 보통 사람에게 종교는 특정 종단 안에 가입해 초월적 존재를 향해 정기적인 의례를 하는 비일상적 행위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런 종교 행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낯설어 한다. 그러면서도 외견상 모순 같지만, 일본인의 생활 습관이나 문화 속에는 종교적인 행위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일본인은 무의식 중에 종교적 행위를 한다. 의식적인 차원에서 특정 종단 ... 더보기
P.54
한국인이 스스로를 유교인이라고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유교적 질서에 따라 살아가듯이, 한국의 대형 개신교회의 정서 속에 오랜 무교적 전통이 신자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 있듯이, 신도도 마찬가지이다. 신도가 하나의 종교 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오늘날, 자신의 종교를 신도라고 밝히는 일본인은 3~4%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곤란한 일을 만나면 신사를 찾거... 더보기
P.68
일본에서 그리스도교는 큰 나무의 잔가지와 같다. 꺾어지고 말아도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일본인은 그리스도교를 보면서 신도와 같은 자신의 전통적 정체성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의 일원이 될 사회적 이유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더군다나 특정 종교 공동체에 소속되어 정기 종교의례에 참여하는 식의 문화는 일본인에게 여전히 낯설다. 그저... 더보기
P.101
일본 불교의 특징이 있다면, 세계종교로서의 보편성보다는 자기 집단을 세운 개조(開祖) 내지 법주(法主)에 대한 신앙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 그리고 세계에 두루 통하는 불교적 보편성이나 석가모니불보다는 자신에게 신앙의 세계를 알려준 개조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일본인의 현세적, 그리고 자기집단 중심적 경향의 반영이기도 하다. 보편성이나 추상성보다는 특수성이나 구체성에 집착하는 경향은 불교만이 아니라 일본 종교, 아니 일본 문화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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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종교문화를 현상적으로 일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름대로 ‘일본정신’이라는 보편적인 담론으로 재구성해 보여주고 있다.‘종교’를 매개로 해서 일본의 정신문화의 근본 바탕을 찾아나선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기독교, 천주교 등 서구 전통의 종교는 거의 없다시피한 일본 정신문화가 형성되어 온 과정을 보면 오늘의 일본은 물론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와 지향점까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학과 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칼 라너(Karl Rahner)와 니시타니 게이지(西谷啓治)를 비교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학교 교수, (일본)WCRP평화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 등을 지냈고, 종교철학에 기반한 평화인문학의 심화와 확장을 연구 과제로 삼고 있다. 저서로 『평화와 평화들: 평화다원주의와 평화인문학』,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 사형폐지론과 회복적 정의』(공역), 『아시아평화공... 더보기


최근작 : <한국인의 평화사상 2>,<한국인의 평화사상 1>,<인간은 신의 암호> … 총 4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민주당 정권 출범, 일본은 과연 변화하는가?
 
일본 민주당 정권이 일본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54년간 일본 정치를 주도해 온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새로운 일본>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민주당을 선택하였다. 일본인 자신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이번 선거 결과에 놀라고 있다. 단순히 자민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지난 54년간 유지되어 온 자민당 일당 독주 체제의 그림자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변화”라는 단어 자체가 매우 낯설고, 또 불편한 것이기에, “변화”를 선택한 이번 선거 결과는 놀라운 것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일컬어지는 무라카미 류는 “일본이 마침내 어른이 되고 있다”는 말로 이번 선거의 의미를 극찬하기도 했다. 무라카미는 이번의 선거 결과는 민주당 정권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일본인이 더 이상 국가나 정치권에 자기 자신의 운명을 내맡겨 두지 않게 되었다는 징후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과연 일본은 변화할 것인가? 그 변화는 일본 자신에게, 혹은 일본을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분명 자민당 정권에 비해 주변국가와의 선린 외교나 불행한 역사의 청산에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그것이 끝내 그러한 방향으로 일본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주변에 놓인 국가들이 겪어 온 일본의 정체는 한두 번의 선거 결과로 흔들리거나 변화하리라고 믿기엔 너무도 견고하고 독특하기 때문이다.

변하는 일본, 변화하지 않을 일본정신
동북아시아 제국 중에서 가장 먼저 서구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였고, 또 그것을 성공적으로 체화하였던 일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수백 년, 수천 년 이상을 이어 온 어떤 정신적인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짧게는 2, 3백년 전, 길게는 3, 4백년 전부터 바로 그러한 일본의 모습에 서양인들은 열광하였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일본의 실체는 어떻게 들여다 보아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민족성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일본인의 속마음을 진정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어떠한 도구가 필요할까?
이 책 일본정신은 바로 그러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 <일본정신>은 오늘의 일본이라는 외형을 이룩한 내면의 정신세계를 ‘종교’라는 관문을 통해 접근하여 해부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종교, 문화, 사상을 다룬 책들은 많았으나, 대부분 일서의 번역서이거나, 일본적인 틀과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정신은 간결하고 소박한 문체와 분량이지만, 일본정신의 이해를 한국인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비로소 일본인의 속마음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을 기다리는 일본인들이 많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본은 어떻게 일본이 되었나
일본정신은 일본인의 정신세계의 특질을 다음 몇 가지 관점으로 해부하여 보여 준다.
첫째, 한국은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교단 종교>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번성하면서도 그 반면에 반종교적인 정서도 강하다. 반면에 일본인은 스스로를 무종교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지만 한국인에 비해 성향이나 행태가 종교 지향적인 경우가 훨씬 많다. 일본인에게 있어 종교란 생활, 삶과 유리된 어떤 것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측면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인의 경우 특정 종단에 가입해 초월적 존재를 향해 정기적인 의례를 하는 종교 행위는 지극히 낯선 문화이다. 왜 그렇게 되었고, 그것은 일본문화를 어떤 식으로 특징지우고 있을까? 그것이 일본의 기독교 세력이 미미한 이유와 어떻게 연관이 있을까?
둘째, 한국은 전통종교 등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 변질되었으나 일본은 전통종교나 문화를 버리기보다는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고, 그들의 본성에 충실하게 자기의 문화를 온존, 계승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것이 <패전>이라는 구렁텅이 속에서도 일본을 오늘의 일본으로 만든 힘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러한 <전통 문화의 보존> 성향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을까?
셋째, 한국인은 대체로 한 가지 종교만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은 한 집안에서 여러 신을 모시는 이중적인 종교생활을 한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다. 개인의 취향과 그때의 형편에 따라 고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신만을 숭배하는 일만큼 일본인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없다. 이 점은 사실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이기도 하고 유사점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경우에도 어떤 종교를 믿든 그 신앙 행태는 “무속적(기복적)”이다. 그러나 일본인의 경우 “신도”를 훌륭한 정신적 유산, 문화적 자산으로 계승 발전시켜 낸 반면, 한국에서의 “무속”은 적어도 공론의 영역에서는 대체로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한 한국인의 이중성은, 일본의 경우에 빗대어 보면 더욱 뚜렷이 부각된다. 그 차이는 일본과 한국의 현재를 형성하는 데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까?
넷째, 한국은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에 얽매이지만 일본은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다.“일본인은 무의식 중에 종교적 행위를 한다. 특정 종단에 가입해 있지 않아도 종교적 행위는 자연스럽게 누린다.”
이러한 특성은 예컨대, 한국이 세계적으로 열성적인 종교인들이 많은 국가, 세계 곳곳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기적의 국가(기독교의 입장에서)이면서도, 종교인들에 의한 일상적인 폐해가 역시 세계적인 이유와 어떻게 연관이 될까?

이 책 일본정신은 한국에 대해 거의 얘기하지 않고 있지만, 한 페이지마다, 한 행마다 한국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러한 비교를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일본의 정체에 대한 내밀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본은 우리에게 여전히 불친절한 이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에 대한 부러움, 동경이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에 대한 극단의 증오, 일본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나에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요, 일본은 일본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일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일본을 딛고 세계로 나아가고, 일본을 벗어 던지고 가장 우리다운 우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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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배우자!!

일본드라마를 보고, 일본노래를 들으며, 일본만화와 일본소설을 읽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 가끔씩 드는 의문은.. 일본인은 왜 집안에 불단이 있을까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나 명탐정 코난을 읽을 때엔 살인사건이 있은 뒤 피해자의 집에 방문한 형사들이 먼저 집에 있는 불단을 찾으며 향을 올리고, 식탐정을 보면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매일 불단의 음식을 정성스레 바꿔올리는 모습이 어느새부터인가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일본여행을 하며 느낀, 가정집 옆에 있는 묘지들의 모습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종가집을 보면 위폐를 모셔놓는 사당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 가정의 이야기이고, 집에 불단이 있기보단 납골당이나 묘지를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만약 가정집 주변에 묘로 빽빽히 들어찬 묘지가 있다면, 대번에 집값이 떨어진다며 집을 사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집을 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텐데..

분명 일본은 우리나라를 통해 불교가 전파되었고, 그리스도교는 똑같이 억압을 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우리나라와 많은 것이 비슷하다고 하는 일본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나라였다..

우선,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엔 그리스도교가 얼마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온갖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어 동네마다 여러개의 교회와 지역마다 여러개의 성당이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경우 민족 종교인 불교를 이용하여 철저히 억압 1%에 미치지 못하는 소수자들만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는다고 하였다..

두번째 차이점은 무교든 불교든, 그리스도교든 한 가지 종교를 가지며 그 종교에 맞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사람들은 딱히 불교를 믿는 사람도, 유교를 믿는 사람도 없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정월초하루엔 신사에 가서 일년의 복을 빌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휴일이 아닌 크리스마스에 케익의 초에 불을 붙이고, 캐롤을 들으며, 결혼식은 교회의 예배당에서 하며, 죽어서는 사찰을 향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도 딱히 그리스도교가 아니어도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산에 올라서는 사찰을 구경은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아닌 사람이 성당이나 교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종교와 상관없이 사찰에서 장례를 지내는 것이 아닌 종교에 따라 장례방식도 달라지기에 일본인의 모습은 조금 신기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런 일본인의 종교이면에 신도와 융합된 불교가 있으며, 조상을 숭배하는 유교정신과 "도"를 중시하는 사무라이 정신이 융합된 독특한 세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문물을 받아들이며 전통을 무시했던 것과는 달리 전통을 중시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습관에 의해 형성된 일본인의 정신세계.. 이렇게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이다 보니 50여년 동안 일본을 종식하고 있던 자민당이 민주당에 참패했던 것이 큰 이슈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 한권을 통해 일본인의 정신을 완전히 이해했다고도 못하겠고, 일본을 안다는 말도 아직은 못하겠지만 은 다른 것은 몰라도 전통을 중시하고 새로운 것을 융화시키려 했던 그런 정신은 배워야할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이야 전통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은 전통보단 신문물에 열광을 하며 전통을 소홀히하고, 잃어버린 전통을 나중에가서야 후회하니 말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표지는 좀 촌스럽다.. 아무리 일본정신이라곤 해도빨간 표지에 사무라이만 그려놓을 것 까지야.. 촌스럽기도 하고 부담없이 집기엔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표지였다..
몽자&콩자 2009-10-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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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신

일본은 과연 어떠한 나라일까? 우리 한국과는 가까우면서도 굉장히 먼 나라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여러모로 차이점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국가적 차원의 사상과 개인적 차원의 사상까지도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은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만은 않다. 이러한 일본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면밀하게 연구하고 공부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사상과 종교적 사상을 먼저 살펴보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가치관과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시는 사람들 출판 이찬수 지음의 일본정신은 그야 말로 간단명료함을 보이는 책이다. 일본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까지 그들이 추구해온 사상 즉 일본정신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만의 독특한 사상과 종교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소개 한다. 한국과는 아주 상이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온 일본인들. 그들이 가진 정신적 세계의 모습과 그들이 우리 한국에 끼치는 특이한 현상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평가 할 만하다.

일본정신은 한마디로 정치적 맥락에서는 제국주의적 사무라이 정신이 돋보이고, 종교적인 맥락에서는 신도사상이 두각을 드러낸다. 무인 정권이라 해도 무색할 에도시대와 메이지유신 시대를 지나면서 그들의 몸과 마음에는 자연스레 무사정신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1300년을 지켜온 천황을 위시한 신도사상은 일본만이 가진 특유의 종교관이다.

일본의 종교는 개인적 성향을 드러내면서도 아주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들이 믿는 종교는 신도사상이라 일컫는다. 일본인의 대부분이 종교가 없는 무교라 말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삶속에 모두 숨겨져 있다. 일본인들은 무언가에 구속 되는 것을 싫어하는데,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생활의 모든 부분들 종교적 성향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일본이다. 이러한 것을 비종교적 종교성이라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일본하면 야스쿠니 신사가 떠오른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전범들(세계대전 참전자)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일본은 이 유교적 분위기의 위패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때때로 이 문제는 국제적 문제로 야기되어진다. 세계대전의 피해를 생각하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전범들의 위패에 참배하는 일본인들에게 반색을 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여한 일이 아닐까?

일본은 불교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일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도 자세하게 설명되어져 있지만 불교가 대중 속에 깊게 뿌리 내려진 이야기는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예라 생각 된다. 일본의 불교 계파중 묘법연화경을 위시한 일련교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남묘호렌계교 즉 SGI로 들어 와 있다. 이것은 낯설지 않은 일본종교로 일본을 대표하는 불교종파라 이야기 한다.

얼마 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그와 맞물려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자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이 얇은 책으로 일본을 다 이해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참담해 던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잘 준비하여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한번쯤 읽어 보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다시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즘 잘 알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그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여 민족주의자라 말할지 몰라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예르미아빠 2009-10-2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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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본질적 정신 세계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특히 조선이 일본에 의해 멸망하고, 살육 당하고 핍박받았던 역사적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어서 일본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하나의 창 구실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과 사고가 일본을 더 자세히 바라보고 경계할 수 있는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일본과 일본인의 본모습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근대화는 단적으로 ‘서양화(西洋化)’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서양화는 우리가 곧바로 서양을 본받아 온 것이 아니라,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서양을 접하고 서양을 본받아 온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고 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단어들 즉,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등 이런 말이 일본이 서양의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말이고, 우리는 지금 이 말들을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양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우리는 고대로부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일방적으로 선진문물을 전수했으며, 그들은 ‘왜놈’이라는 야만인들로 우리보다 하위의 종족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는 일본의 영향을 그보다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현재 세계 경제사적 측면에서 볼 때 동북아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역량을 볼 때 우리나라와 더 긴밀히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정확한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일정한 날에 특정한 사찰이나 교회에서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종교 행위가 매우 낯설다고 한다. 일본인에게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냐고 물으면 대체고 거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매우 종교적인데, 이것을 ‘비종교적 종교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축원하고, 결혼식은 교회식으로 치루며, 죽으면 화장하여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절의 공동묘지에 묻힌다는 것이다. 또 집집마다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아침, 저녁으로 조상에게 절을 올리는 것을 보면 유교적 전통이 우리나라보다도 오히려 더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의 종교성의 특징이라면 ‘현세 지향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월’이나 ‘사후세계’와 같은 정신세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제일의 종교는 바로 ‘신도’라고 할 수 있는데, 신사를 찾아가 기도하는 것도 거의가 현실 세계에서의 건강 기원과 소원 성취라고 한다.

‘신불습합’이라고 할 만큼 불교와 신도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일본의 불교는 주로 ‘법화경’을 신봉하고 추구하는데, 일본식 불교하고 할 수 있는 ‘일련교(日蓮敎)’에서는 ‘나무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花經)’만을 외우면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신종교 운동이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소개되어 있는 것들을 보면 거의 일련교에서 뻗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의 현실 지향적인 결과 거의 기독교가 없다고 한다. 1% 미만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서구화, 근대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전통을 중요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오히려 서구 문화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여긴다고 하다. 즉, 전통적인 ‘전근대’는 익숙하고 질서적인 것이며, 서구에서 온 ‘근대’는 낯설고 무질서한 것으로 파악하여, 비록 서구와 근대가 갖고 있는 물질적 우수함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지만, 오히려 더 지켜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을 ‘화혼양재(和魂洋才)’라고 한다. 이러한 사고를 단순히 근대 이전 중국에서 일어났던 ‘동도서기(東道西器)’ 운동과 같은 구호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너무나도 뚜렷하게 근대화를 가장 선도적으로 이루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이러한 사고는 오로지 서구화와 근대화가 절대선인 양 추구하였던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본인의 정신적 특징으로 또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평범성’이다. 일본인은 사회 전체적인 조화를 매우 중시하여,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서’를 매우 중시하는 것인데, 이러한 정신적 특징 때문에 어떤 사회적 과업을 일사불란하고 능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정신적 특징은 과거에 그랬다시피 지도자가 잘못된 생각을 하여 잘못된 길로 인도하더라도 일본국민은 그것을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길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서로 교류와 협력을 그만 둘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들을 더 잘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교류, 협력이 가능하고, 만일에 있을 그들의 야욕을 먼저 파악해서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분량은 비록 많지 않지만 일본의 종교성과 정신세계를 군더더기 없이 충분히 잘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가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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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저자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학과 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감신대, 서강대, 성공회대, 원광대, 이화여대, 한신대, 일본 코세이가쿠린 등에서 불교학.종교철학.비교종교학.종교신학.한국문화 등을 강의했으며, 현재 강남대 교수 및 종교문화연구원장, 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생각나야 생각하지』, 『인간은 신의 암호』, 『종교신학의 이해』, 『종교로 세계 읽기』,『일본정신』 등이 있고, 역서로 『절대, 그 이후』, 『지옥의 역사』,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다』,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토라의 길』,『화엄철학』 등이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통해 불교가 전파되었고, 그리스도교는 똑같이 억압을 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우리나라와 많은 것이 비슷하다고 하는 일본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나라였다..  우선,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엔 그리스도교가 얼마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온갖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어 동네마다 여러개의 교회와 지역마다 여러개의 성당이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경우 민족 종교인 불교를 이용하여 철저히 억압 1%에 미치지 못하는 소수자들만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는다고 하였다.. 두번째 차이점은 무교든 불교든, 그리스도교든 한 가지 종교를 가지며 그 종교에 맞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사람들은 딱히 불교를 믿는 사람도, 유교를 믿는 사람도 없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정월초하루엔 신사에 가서 일년의 복을 빌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휴일이 아닌 크리스마스에 케익의 초에 불을 붙이고, 캐롤을 들으며, 결혼식은 교회의 예배당에서 하며, 죽어서는 사찰을 향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도 딱히 그리스도교가 아니어도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산에 올라서는 사찰을 구경은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아닌 사람이 성당이나 교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종교와 상관없이 사찰에서 장례를 지내는 것이 아닌 종교에 따라 장례방식도 달라지기에 일본인의 모습은 조금 신기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런 일본인의 종교이면에 신도와 융합된 불교가 있으며, 조상을 숭배하는 유교정신과 "도"를 중시하는 사무라이 정신이 융합된 독특한 세계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문물을 받아들이며 전통을 무시했던 것과는 달리 전통을 중시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습관에 의해 형성된 일본인의 정신세계.. 이렇게 변화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이다 보니 50여년 동안 일본을 종식하고 있던 자민당이 민주당에 참패했던 것이 큰 이슈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인의 정신적 특징으로 또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평범성’이다. 일본인은 사회 전체적인 조화를 매우 중시하여,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서’를 매우 중시하는 것인데, 이러한 정신적 특징 때문에 어떤 사회적 과업을 일사불란하고 능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정신적 특징은 과거에 그랬다시피 지도자가 잘못된 생각을 하여 잘못된 길로 인도하더라도 일본국민은 그것을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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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go******|2009.10.29|신고/차단
7.5
일본정신

일본은 과연 어떠한 나라일까? 우리 한국과는 가까우면서도 굉장히 먼 나라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여러모로 차이점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국가적 차원의 사상과 개인적 차원의 사상까지도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은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만은 않다. 이러한 일본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면밀하게 연구하고 공부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사상과 종교적 사상을 먼저 살펴보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가치관과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시는 사람들 출판 이찬수 지음의 일본정신은 그야 말로 간단명료함을 보이는 책이다. 일본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까지 그들이 추구해온 사상 즉 일본정신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만의 독특한 사상과 종교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소개 한다. 한국과는 아주 상이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온 일본인들. 그들이 가진 정신적 세계의 모습과 그들이 우리 한국에 끼치는 특이한 현상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평가 할 만하다.

일본정신은 한마디로 정치적 맥락에서는 제국주의적 사무라이 정신이 돋보이고, 종교적인 맥락에서는 신도사상이 두각을 드러낸다. 무인 정권이라 해도 무색할 에도시대와 메이지유신 시대를 지나면서 그들의 몸과 마음에는 자연스레 무사정신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1300년을 지켜온 천황을 위시한 신도사상은 일본만이 가진 특유의 종교관이다.

일본의 종교는 개인적 성향을 드러내면서도 아주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들이 믿는 종교는 신도사상이라 일컫는다. 일본인의 대부분이 종교가 없는 무교라 말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삶속에 모두 숨겨져 있다. 일본인들은 무언가에 구속 되는 것을 싫어하는데,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생활의 모든 부분들 종교적 성향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일본이다. 이러한 것을 비종교적 종교성이라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일본하면 야스쿠니 신사가 떠오른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전범들(세계대전 참전자)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일본은 이 유교적 분위기의 위패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때때로 이 문제는 국제적 문제로 야기되어진다. 세계대전의 피해를 생각하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전범들의 위패에 참배하는 일본인들에게 반색을 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여한 일이 아닐까?

일본은 불교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일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도 자세하게 설명되어져 있지만 불교가 대중 속에 깊게 뿌리 내려진 이야기는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예라 생각 된다. 일본의 불교 계파중 묘법연화경을 위시한 일련교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남묘호렌계교 즉 SGI로 들어 와 있다. 이것은 낯설지 않은 일본종교로 일본을 대표하는 불교종파라 이야기 한다.

얼마 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그와 맞물려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자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이 얇은 책으로 일본을 다 이해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참담해 던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잘 준비하여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한번쯤 읽어 보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 생각되어진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다시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즘 잘 알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그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여 민족주의자라 말할지 몰라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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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ja******|2009.10.29|신고/차단
5
디자인은 상당히 깔끔했다. 한 손에 들고 다니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타일이랄까.
그러나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다.
뭐랄까... 책의 출판이 다소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점이라면,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작가가 직접 경험한 여러 일들이 이 책에 녹아있다다.
'아 이건 이렇더라' 하는 식의 추측성 글이 아닌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달까
직접 찍은 사진 자료들도 독자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또한 일본의 일반 대중들의 생활방식도 알 수 있었다. 종교에 대한 그들의 시각, 그리고 종교가 환영받지 못하는 세속적인 풍토들을. 그러면서도 삶의 구석구석에서 종교에 의지하는 그들의 모습들을.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아 이거 아까 했던말이잖아' 하고 생각했다. 물론 큰 틀에서 여러 사항을 설명하고 그것을 다시 작은 틀에서 세부적으로 얘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얘기들이 계속 반복된달까.
 
 많은 지식을 쌓고 싶은 분에게는 그닥 좋지 않겠지만 반면 이런 반복은 핵심적인 단어가 머리에 남도록 해주는 효과는 있었다. 과연 이것이 작가의 의도일지 아니면 우연일는지는 직접 읽으면서 판단하시길.
 
 그리고 역사적인 설명이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거에 종교에 대한 진행이 확실히 설명된 다음에 현실에 대한 설명이 되었으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 같다.
 
 
일본의 정신, 타인의 것을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배제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화혼양재
종교의 삶적 체득.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일본의 정신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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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ky****|2009.10.29|신고/차단
7.5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특히 조선이 일본에 의해 멸망하고, 살육 당하고 핍박받았던 역사적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어서 일본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하나의 창 구실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과 사고가 일본을 더 자세히 바라보고 경계할 수 있는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일본과 일본인의 본모습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근대화는 단적으로 ‘서양화(西洋化)’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서양화는 우리가 곧바로 서양을 본받아 온 것이 아니라,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서양을 접하고 서양을 본받아 온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고 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단어들 즉,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등 이런 말이 일본이 서양의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말이고, 우리는 지금 이 말들을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양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우리는 고대로부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일방적으로 선진문물을 전수했으며, 그들은 ‘왜놈’이라는 야만인들로 우리보다 하위의 종족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는 일본의 영향을 그보다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현재 세계 경제사적 측면에서 볼 때 동북아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역량을 볼 때 우리나라와 더 긴밀히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정확한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일정한 날에 특정한 사찰이나 교회에서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종교 행위가 매우 낯설다고 한다. 일본인에게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냐고 물으면 대체고 거의 없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매우 종교적인데, 이것을 ‘비종교적 종교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축원하고, 결혼식은 교회식으로 치루며, 죽으면 화장하여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절의 공동묘지에 묻힌다는 것이다. 또 집집마다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아침, 저녁으로 조상에게 절을 올리는 것을 보면 유교적 전통이 우리나라보다도 오히려 더 잘 지켜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의 종교성의 특징이라면 ‘현세 지향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월’이나 ‘사후세계’와 같은 정신세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제일의 종교는 바로 ‘신도’라고 할 수 있는데, 신사를 찾아가 기도하는 것도 거의가 현실 세계에서의 건강 기원과 소원 성취라고 한다.
‘신불습합’이라고 할 만큼 불교와 신도는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일본의 불교는 주로 ‘법화경’을 신봉하고 추구하는데, 일본식 불교하고 할 수 있는 ‘일련교(日蓮敎)’에서는 ‘나무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花經)’만을 외우면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신종교 운동이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소개되어 있는 것들을 보면 거의 일련교에서 뻗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의 현실 지향적인 결과 거의 기독교가 없다고 한다. 1% 미만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서구화, 근대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전통을 중요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오히려 서구 문화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여긴다고 하다. 즉, 전통적인 ‘전근대’는 익숙하고 질서적인 것이며, 서구에서 온 ‘근대’는 낯설고 무질서한 것으로 파악하여, 비록 서구와 근대가 갖고 있는 물질적 우수함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지만, 오히려 더 지켜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을 ‘화혼양재(和魂洋才)’라고 한다. 이러한 사고를 단순히 근대 이전 중국에서 일어났던 ‘동도서기(東道西器)’ 운동과 같은 구호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너무나도 뚜렷하게 근대화를 가장 선도적으로 이루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이러한 사고는 오로지 서구화와 근대화가 절대선인 양 추구하였던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본인의 정신적 특징으로 또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평범성’이다. 일본인은 사회 전체적인 조화를 매우 중시하여,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서’를 매우 중시하는 것인데, 이러한 정신적 특징 때문에 어떤 사회적 과업을 일사불란하고 능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정신적 특징은 과거에 그랬다시피 지도자가 잘못된 생각을 하여 잘못된 길로 인도하더라도 일본국민은 그것을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길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서로 교류와 협력을 그만 둘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들을 더 잘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교류, 협력이 가능하고, 만일에 있을 그들의 야욕을 먼저 파악해서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분량은 비록 많지 않지만 일본의 종교성과 정신세계를 군더더기 없이 충분히 잘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가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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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tu*****|2009.10.27|신고/차단
7.5
일본인에 대해서 어설프게 알고 있던, 흔히 말하는 고정관념과 주변에서 하는 얘기들에 의한 근거없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생각들을 가지고 이 책 일본 정신을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종교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알게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그 단체들에 대한 뿌리를 알게되었다.
 
또 한가지 일본인들 중에는 그리스도교가 거의 없다는 사실, 전체인구의 약 1%정도도 안된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특이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에는 불교, 그리스도교가 가장 큰 종교을 이루고 있기에 더더욱 그 의미가 참 궁금했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또 정치적으로 박해를 당하면서 세력을 넓히기도 줄기고 하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점을 볼 때 우리나라도 기독교의 박해가 있어왔지만,  정치세력에 의해 박해를 당했왔어도 일본처럼 그 세력이 미미하지만 않다.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에도시대에 사찰을 통해 개인의 종교 여부를 확인하고 개인의 신상을 사찰에 등록하게 하는 제도(宗門改製度-종문개제도)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유도한 정책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인들이 그의 신상을 공개하기를 꺼렸던 점에서 점점 신도의 숫자가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컸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점점 늘어나는 지역축제들을 일본에서는 '마츠리'라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인 종교의례를 점점 신사나 사원 내지 지역상점회등에서 주체하는 일종의 축제가 되어서 모든 참가자들이 즐길 수 있게 행사를 접하고 있다...사찰이나 교회안에 갇혀있는 종교의식이 아닌 지역축제와 같은 행사로 즐기는 것이다. 가볍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사고는 이런 종교의식 속에 내재되어 유지되고 있다.
 
극히 종교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일본인들은 실상은 지극히 종교적이며, 이런 종교적 사고들은 그들의
일상 생활 속에 녹아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들과 구별되려고 하지 않고, 굳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기존 내부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오랜 정서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 일본의 '화혼(和魂)'정신이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그들의 그 친절함, 결코 튀지 않는 행동들...
 
이 책을 통해,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인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은 정리되는 느낌이다.
또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일본종교들에 대한 지식들도, 어설프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들을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사고와 우리의 생각이 결코 같을 수 없음을 이해하지만, 앞으로도 이웃해 있는 그들의 사고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적절히 대처할 수 없음을 느낀다...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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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신, 이찬수, 도서출판 섬기는 사람들, 2009


생각보다 작은 크기의 책이었다. 일본의 종교에 대해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용은 알찼고, 두꺼운 책에 빼곡한 글씨가 가득했다면 읽기가 많이 버거웠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종교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의 종교를 이해하리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그러나 굵지만 핵심만 간추린 이 책으로 인해 일본의 종교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에 일본의 연표와 더 읽을 만한 책들에 대한 정보는 독자를 위한 저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얇은 책 한 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듯이 다른 책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본의 종교는 ‘신도’라고 불린다. 신도의 세계관은, 본래 인간은 깨끗한 존재인데 거기에 무언가 더러운 것이 덧붙여져 깨끗한 상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게 깨끗함이 선이라면 더러움은 악이다.
특히 관심이 갔던 내용은 야스쿠니 신사이야기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는 신사를 참배하는 문제 때문에 늘 시끄러웠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조차도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논란의 대상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신도 좋아한다” 는 말이었다. 일본인에게 종교는 삶 ‘밖’에 있거나 분리된 것이 아니다. 복잡한 종교의례를 치르지 않고, 전통과 새로운 문물을 합하여 받아들인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의 ‘온고지신’ 정신은 본받을 만한 것이다. 지금도 몇 십 년 된 음식가게나 장인들이 있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쉽게 버리지 않는다. 자신들의 것은 지키고, 도움이 될 만한 남의 것들은 받아들인다.
제사로서의 마츠리가 일상적인 축제문화로 자리 잡혀 있는 것은 우리 종교문화에도 받아들이면 좋은 일이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종교라고 해서 딱딱하게 예를 갖추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루는 것이 아니다. 함께 어울리는 축제 같은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나왔듯이 우리의 연등축제도 좋은 예이다.
일본인들은 종교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을 종교에 의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르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단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책을 통해 비추어진 그들의 종교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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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ls****|2009.10.24|신고/차단
10

   몇 해 전 배낭형식으로 일본열도를 누빈 경험이 있었는데 그 당시 느낀 점은 1200만 명이 사는 수도 도쿄 중심지임에도 도시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차량은 강물이 흐르듯이 경적 소리 한번 없이 정해진 신호에 따라 정해진 간격대로 움직였고 인파들 역시 도도한 물결을 이루었으나 그 역시 정해진 흐름을 역행하는 법이 없었다.  한 때에는 방송에서도 일본의 정지선 지키기를 배우자는 열풍이 불기도 했었기에 나도 단순히 ‘일본인들은 교통규칙을 잘 지키고 질서의식이 뛰어나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이 찬수박사님의 “일본정신”을 읽고 나서는 단순한 교통규칙 준수나 질서의식 차원을 뛰어 넘는 일본인 특유의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내면의 흐름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일본의 정신을 잘 나타내는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것이 있다.  기술은 서양에서 빌리지만 정신은 일본의 것을 지킨다는 메이지시대의 모토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나라가 고유의 미풍양속을 점차 잊어 가면서 서구의 문물과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풍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잘 사는 나라들은 그리스도교를 믿는다는 말을 자주 들어 왔었는데 일본은 잘 사는 나라인데도 그리스도교 신자가 전 국민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보다 더 오래전에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그리스도교의 교세가 미미해진 이유를 이 책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어느 화재보험회사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만일 집에 불이 나면 무엇부터 꺼내 오겠느냐?”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가장 많은 답변은 예상할 수 있듯이 귀중품이었지만 두 번째로 많았던 답변은 뜻밖에 조상의 이름을 담아 놓은 위패(位牌)였다고 한다.  많은 일본인 가정에는 조상의 위패나 각종 종교와 관련된 상징물 등을 모시는 일종의 사당 역할을 하는 가미다나(神棚)가 설치되어 있다. 불자 집안에서는 부쓰단(佛壇)을 둔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매년 정월, 신사에 참여해 복을 비는 행사를 하고, 건물을 신축하면 신주(神主)를 불러 지진제(地震祭)를 지내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들이 딱히 어떤 특정한 종교를 믿는 것과는 별개이다.  일본인들은 특정한 공동체에 속해 정기적인 종교의례에 참여 하는 것을 부자연스럽게 느낀다.   이렇게 위패 내지 신주를 모시는 것은 조상숭배 전통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문화나 사고방식이 일본인의 보이지 않는 종교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생전에는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사람도 사후에는 사찰의 납골묘원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인의 사생관 내지 장례문화와 관련해서 불교를 빠뜨리고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일본인은 살았을 때는 특정 종교를 신봉하지 않지만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는 결국 불교에 맡기고 산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불교는 가장 종교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하면 떠오르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마츠리(祭り)이다.  마츠리(祭り)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의미하며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이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가무 등의 의식을 행하면서 신의 음덕(陰德)을 나누어 받고, 그 힘으로 개인의 평안과 공동체적 결속을 도모하는 행위인데 요즈음 들어서는 엄숙함 보다는 세속적 흥겨움이 더 많아져서 이벤트로서의 마츠리(祭り)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우리로서는 전통문화가 계승, 발전되고 있는 일본의 마츠리(祭り)를 보면서 타산지석을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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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ta******|2009.10.20|신고/차단
7.5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일본을 싫어한다?단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것이라 생각한다.가까운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있듯이, 거란족 여진족 몽고 혹은 중국제국들의 침략보다일제강점기가 최근의 일이고 그 자세한 기록들이 알려져 있기때문에 타 동북아 국가에 비해일본은 미운나라가 되어있다.반면에 일본에서 생산한 양질의 제품들, 그들의 문화는 이미 한국에 만연되어있고 추종자들도거느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있는가.일본제국주의, 라면, 만화, 망언, 야구 등...전쟁하면 전투기의 출격장면이나 폭탄투하장면이 떠오르듯, 일본이 주는 이미지 또한 이런 단편적인 것들의 집합이 아닐까?우리나라조차 확실히 모르는데 굳이 일본을 알아야하나...라고 말한다면 제대로된 대답을 할 수있을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침략자였으며 현재의 경쟁자 미래의 동반자가 될 수있는 일본이라면좀 더 자세히 알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인 '종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의미일까?국사나 세계사를 통해 본 종교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졌고 '현대사회에 종교는 의미가 없다'라는말이 나오는 지금도 종교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지만..종교는 '사회를 보여주는 창' 즉 문화라고 생각한다.
'
일본정신'은 이때까의 기업을 통한 일본알기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일본에 접근한 책들과는달랐다.인간의 역사와 함께했던 '종교'를 통해 좀 더 깊은 곳에서 그들을 관찰했다.(덕분에 뉴스에서 접하면서도 자세하게 알 수 없었던 '야스쿠니 신사'나 그저 지역축제로만 알고있었던 '마츠리'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되었다.)물론 두번째 읽었지만 아직도 책의 내용을, 일본의 종교를 통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내가 일본인이 아닌이상 완전한 이해는 열번을 읽더라도 힘들것이다.또한 작가가 일본인(일본학자)가 아닌이상, 아니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접근자체가 어려울것이라 생각한다.그렇지만 한국인이면서 일본종교나 세계의 다른종교를 연구한 작가이기때문에 볼 수 있는 것들을소개하였고, 그것을 통해 한국의 종교와 문화까지 돌아보게 만들었기때문에 이 책은 '일본알기 그리고 한국 돌아보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작가자신은 어설픈실력이라 했지만 중간중간의 흑백사진들과 주석들도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간략하지만 종교를 통한 일본사연표 또한 한눈에 보여서 쉬운 접근을 허락해주는듯 하다.
과거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한국과 일본은 어떠한 식이든 밀접한 관계를 맺을것이고, 그들을 아는것은 또다른 역사적 과오를예방하는 방법이면서 더 밀접한 관계를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일본정신'이 소개하는 일본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를 통해 내가 몰랐던일본을 알게되었고 별 생각없이 마주한 '종교'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북로그에서 글을쓰다보니 로그인이 풀리는군요....1시간넘게 쓴글이 날아가서 패닉상태에서 간단하게
서평을 올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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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ku****|2009.10.19|신고/차단
7.5
일본의 정신, 일본인들의 성향, 기질, 습속 등에 관한 저작들은 그네들의 경제력만큼이나 수도 없이 즐비하다. 그러나 대중적 저술로서 일본의 종교에 관해 말한 책은 거의 없지 않을까싶다. 이 저술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문화의 총체”로서, 그리고 “문화 전반을 내다보게 해주는 가장 큰 창문”으로서의 종교를 통해 오늘의 일본, 일본인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나 사회집단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려면 그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 종교적 관습만큼 유용한 것도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일본의 거리를 거닐다보면 도처에서 신사(神社)와 사찰을 발견케 되는데, 일상적 삶 속에 깊이 침투해 있는 이러한 모습은 더욱이나 그네들의 정신적 근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종교적이라는 이러한 외부의 시각에 동의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단다. 현대 일본인은‘의식적’인 차원에서는 전반적으로 종교 현상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많은 신사와 사찰은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집집마다 예외 없이 설치되어있는 불단(佛壇:부츠단)이나 신붕(神棚;가미다나)위의 위패는 무엇일까? 소위 이러한 일본인들의 행위는 종교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즉 오랜 전통적 문화로서 이해되는 것이지, 종교의식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종교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인은 종교가 없다기보다는“구체적 현실을 향유”하려는 것이 일본식 종교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함을 지적한다. 즉 현세 중심적인 일본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굳이 초월적인 존재와 현실 밖의 것을 추구하는 행위로서의 의식화 된 종교에는 거북해하지만 일상의 풍요를 긍정하고 정당화 해주는 근거로서 현세주의적인 일종의 구원문화로서 수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라는 의식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문화화한 종교적 관례를 따르고 수용하는 모습에서 일본의 속마음은 상당히 종교적이다.”라고 하고 있지만, 이러한 것을 종교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인지 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편 일본인의 무의식적 심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신의 뿌리인 신도(神道)의 정수를 파악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령숭배에 기원을 둔 신도의 배경과 인간의 욕망이 구체화 된 것으로서의 신(神;가미)의 의미, 메이지(明治)시대 국민결속과 부국강병의 국가공식 통치이념화 과정을 설명한다. 또한 일종의 주술적 정토신앙에 불과하여 자체적인 완결성을 지니지 못하는 까닭에 늘 다른 것의 도움을 받고서야 자기 정체성을 의식하게 되는 불완전한 세계로서의 신도와 불교의 영향을 통해 비로소 형식을 갖추게 되는 경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주술적이고 종교 혼합적인 양상은 조상신과 윤리를 결합하여 표현되고 있는 유교적 제례의식과 불교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불단 안에 위패를 모시는 행위가 이러한 예인데, 이처럼 생활방식은 전형적으로 유교적 세계관을 반영하면서 불교라는 조직을 통해서 계승시키는 현상은 그네들에게 종교라는 것은 단지 인간의 희망 내지는 욕망을 투사하여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것 이상이 아님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결국 그네들의 신도라는 것은 유교와 불교, 그리고 주술적 정령신앙이 혼합된 구복(求福)적 문화의 형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그네들의 의식으로부터 일본에서 외래 종교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외래적인 것은 새롭지만 무질서하며, 자신들의 오래된 전근대가 오히려‘질서적’것이라는 자긍심과 전통에 얹어진 가지에 불과하다는 잡거(雜居)적 사상에서 연원한다. 즉 서양종교도 하나의 문화형상이라는 차원에서 누리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일본인에 비해 마치 자신의 전통은 극복되어야 하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말살해버리고 국적도 없는 표피적 문화에 허우적대는 한국인의 양태는 크게 대비되어 비친다.

물론 사상적 뿌리가 취약하고 물질적이고 극히 속세적인 종교관이라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그네들의 근대화시기인 메이지 시대의 “정신은 일본 전통을 지키면서 물질문명은 서양에서 배운다.”는 화혼양재(和魂洋才)나, 대화혼(大和魂)이라는 그네들의 조화의 미덕이라는 정신에서 개성보다는 집단의 조화를 중시하는 시스템 사회의 긍정을 발견 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전체를 구성하는 나사나 톱니바퀴가 빠져 삐걱거리고, 저마다 제소리에 열중하는 한국사회, 세계가 주목하는 기이한 현상인 한국의 그리스도교, 전통은 폐기하고 정신은 오간데 없이 물신주의에 허덕이는 양태는 어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기까지도 하다.

“갓난아이가 저도 모른 채 부모의 품에 안겨 신사의 신들에게 신고 되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교 교회나 교회식으로 꾸민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죽어서는 불교 사찰에 묻히는” 일본인들의 일상과 종교의 경계가 허물어진 모습이 낯설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토속신앙을 정체성으로 하여 외래문화와 조화를 도모하며, 독특한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네들만의 사상적 토대는 우리에게 일본인을 이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데 유익한 기틀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삽화와 그네들의 역사, 종교사, 오늘의 신종교와 신신종교까지 다양한 현상이 수록되어 오늘의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향도 예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일본 정신의 또 다른 측면에서의 유용한 해석이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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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vi********|2009.10.15|신고/차단
5
일본정신이란 제목이 주는 터프한 이미지때문에
기존의 일본 비판서적일거라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말그대로 일본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종교와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쓰여져있는 책이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문화권이면서도 조금은 낮선 나라인 일본에 대해
불교, 유교, 신종교, 그밖에 사무라이정신 같은  낮익은 개념들을 통해
이것들이 어떻게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또한 지배하여 왔는지
왜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지를 알려주고 있다.
 
만화, 연예인 이야기가 전혀없는 일본에 관한 책이라
좀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깊이 있는 책이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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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기 2015

알라딘: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기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기
 
이찬수 (지은이)
모시는사람들2015-08-31







320쪽
책소개
기독교 신학자, 목회자이면서 화엄철학과 선불교를 공부한 저자가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내면에서 상통하는 종교적 본질을 밝힌 책. 불교적 언어가 불자에게 주는 의미와 기독교적 언어가 기독교인에게 주는 의미의 정도가 다르지 않음을 말하면서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어지는 종교 공부와 수행을 이끌어 내고, 신앙의 거룩함을 일깨운다.

불교와 기독교가 표면상 외형상 전혀 다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심층에서 서로 통하는 면이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기독교가 절대유의 차원에 서 있다면 불교는 절대무의 차원에 서 있으나, 절대는 절대로 통하는 법이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착점은 결국 동등한 체험의 깊이를 나타내며, 붓다와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세계도 결국 동등하다는 것이다.


목차


1부_ 깨달음의 길에 서다
01 인연에 따르다 : 불교의 인간론
02 믿음과 용기, 그리고 깨달음 : 지눌의 신심론과 틸리히의 신앙론

2부_ 불교와 기독교 서로 만나다
03 법신불 일원상과 범재신론 : 원불교의 일원주의와 세계주의
04 모두 절대무 안에 있다 : 니시다의 철학과 기독교
05 창조적 만남과 궁극적 일치 : 길희성과 타나베의 신학과 철학
06 두 종교를 동시에 살아가다 : 불교적 그리스도인 니터의 고백
07 신학을 불교화하다 : 야기의 불교적 신학
08 불교를 수용하며, 신학을 변호하다 : 발덴펠스의 자기 비움의 신학

3부_ 두 세계를 다시 보다
09 종교는 해석이다 : 스힐레벡스의 신학적 해석학: 모든 종교는 해석이다
10 오늘 우리의 구원과 해탈 : 어느 불교적 신학자의 구원관
11 비종교적인 그러나 종교적인 : 비종교인 리영희가 보는 기독교와 불교
12 90점 불교와 70점 기독교 : 두 종교에 대한 애정어린 요청과 희망


--------------------------
책속에서



P.37
지눌 선사상에서 믿음과 앎은 깨달음, 즉 돈오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지눌이 믿음과 앎의 해석에도 깊은 주의를 기울였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눌은 『신화엄경론』과 만나는 체험 후에 원돈신해문, 즉 원돈교에서의 믿음과 앎으로 들어가는 문을 상세히 밝혔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으로 선에서 강조하던 돈오를 믿음과 앎이라는 언어로 해석함으로써 화엄의 선화(... 더보기
P.69
법신불은 구체적 “상징” 또는 “나타낸 바”의 차원과 단순히 동일시할 수 없다. 법신불은, 경험적으로는 불타에게서 알려졌으되, 논리적으로는 그 불타 및 다양한 불보살들의 존재론적 근거로, 또는 다양한 불들을 정말 불이게 해 주는 원천으로 상상된 개념이다. 상상되었다고 해서 그저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려면 먼저 그 깨... 더보기
P.151
한국인은 기독교인이기 이전에 다양한 종교 사상들을 녹여 내고 있는 한국 안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종교 사상들을 매개로 해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 안에 녹아들어 가 있는 한국의 종교가 한국의 기독교를 기독교되게 해 준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국 종교가 이미 온전히 담... 더보기
P.186
(일본의 신학자) 야기는 이러한 불교와의 만남에서 인간은 성서와 십자가의 직접적 도움 없이도 본래성을 획득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죄 없는 사람(=예수)이라 해도 한 인간이 타인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십자가는 본래적 실존으로 이끄는 매개이고 성서는 실존의 근저의 표현이다. 따라서 인간은 “선교의 말씀 안에서만 그리스도와... 더보기
P.254
차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불교와 기독교의 개개 ‘형식’ 내지 ‘제도’를 벗기고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불교와 기독교란 따로 없다. ‘너’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원천적 삶에는 종파가 따로 없는 것이다.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하는 원천적 사실에 종파 간, 성별 간, 지역 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미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있는 인...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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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학과 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칼 라너(Karl Rahner)와 니시타니 게이지(西谷啓治)를 비교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학교 교수, (일본)WCRP평화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 등을 지냈고, 종교철학에 기반한 평화인문학의 심화와 확장을 연구 과제로 삼고 있다. 

저서로 
『평화와 평화들: 평화다원주의와 평화인문학』,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 사형폐지론과 회복적 정의』(공역),
 『아시아평화공동체』가 있고, 

논문으로는 
“베트남공화국의 몰락: 지엠 정권의 식민지적 민족주의, 서구적 종교편향, 하향적 반공주의를 중심으로”, 
“平和はどのように構\築されるか: 減暴\力と平和構\築”, 
“Disaster: The Otherization of Nature, the Reification of Human Beings, and the Sinking of MV of Sewol”, 
“祭祀の政治學 II:明治時代の國家神道と公私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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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한국인의 평화사상 2>,<한국인의 평화사상 1>,<인간은 신의 암호> … 총 4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기독교 신학자, 목회자이면서
 화엄철학과 선(禪)불교를 공부한 저자가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내면에서 상통하는 종교적 본질을 밝힌 책이다. 
이 책은 불교적 언어가 불자에게 주는 의미와 
기독교적 언어가 기독교인에게 주는  의미의 정도가 다르지 않음을 말하면서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어지는 종교 공부와 수행을 이끌어 내고, 
그리고 신앙의 거룩함을 일깨운다.

■ 출판사 서평

깨달음에서 서로를 경유하여 다시 자신에게로
이 책은 ‘세계적 차원의 종교들이 균질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도 대립과 조화 사이를 오가는 기이한 종교 왕국’인 한국에서 태어난 한 신학자의 자기 고백과 그에 관한 부연이다;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출발했다. 나는 나 자신이 한국인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임을 그만두지 않은 채 한 사람의 불자가 되어서 돌아왔다.” 인도의 신학자 파니카의 말을 빌려 표현한 대로 불교와 기독교가 궁극적 차원에서는 만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저자는 신학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과정에서 고립되고 배척당하는 고난을 겪기도 했으나 그의 신학 역정과 신앙 모색은 멈추질 않았다.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심층

이 책은 불교와 기독교가 표면상 외형상 전혀 다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심층에서 서로 통하는 면이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착점, 가령 공(空)과 하느님, 열반과 하느님 나라, 그리스도와 보살, 기도와 염불 등은 결국 동등한 체험의 깊이를 나타내며, 붓다와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세계도 결국 동등하다는 것이다. ‘다르지만 조화한다’라는 말은 “군자는 상대와 조화하면서 차이도 인정한다(君子和而不同)”는 공자의 말씀을 염두에 둔 것으로, 언어와 관념을 넘어서는 근원의 세계, 궁극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기독교가 절대유의 차원에 서 있다면, 불교는 절대무의 차원에 서 있으나, 절대는 절대로 통하는 법이다.

불교적 그리스도인, 폴 니터의 불교
저자는 두 종교 사이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신학자로 미국의 신학자 폴 니터(Paul F. Knitter, 1939- )를 예로 든다. 니터 또한 불교를 창조적으로 소화해낸 대표적 신학자이다. 니터는 신학자로서 불교 언어를 치열하게 소화해, 신학적 양심에 솔직하게 녹여내어 고백하는 데에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저자는 태생이 기독교인이고 일급 신학자이지만, 두 종교를 단순 병렬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로 녹여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웅변적이고 체험적으로 보여준 니터를 종교다원주의 신학자이자 불교학자라고 명명한다. 그 밖에도 원불교 사상과 기독교, 쿄토학파와 기독교, 한국의 길희성과 타나베 비교 등을 통해서도 이점을 구명한다.

90점의 불교와 70점의 기독교
저자는 종교의 깊이와 넓이를 수치화해서 불교가 90%쯤 완성된 종교라면, 기독교는 70%쯤 완성된 종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속적 수치를 넘어서서 불교가 정말로 깊고 넓다면 ‘밖’의 것을 소화해 받아들이는 태도를 좀더 확연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밖을 받아들이려면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모자라는 30%를 채우려는 기독교인의 노력 이상으로 공부를 심화하여 부족한 10%를 채워야 한다. 기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면, 종국에는 딱히 ‘성인이랄 것도 따로 없는 확연무성(廓然無聖)의 진리’를 공


Climate Change and the Ten Warning Signs for Cults « Aletho News

Climate Change and the Ten Warning Signs for Cults « Aletho News



Climate Change and the Ten Warning Signs for Cults

By Will | Medium | February 23, 2019
Have you thought to yourself that the Climate Change movement seems more and more like a religious movement?
I have, so I researched how to identify a religious cult. Rick Ross, an expert on cults and intervention specialist, developed a list of ten warning signs for unsafe groups, which is published by the Cult Education Institute. So let’s take a look at all ten signs and compare:
1. Absolute authoritarianism without meaningful accountability.
The leading advocates of the Climate Change movement are politicians, entertainers, and even children. Climate preachers such as Al Gore and Leonardo DiCaprio lack any formal scientific training whatsoever, and live personal lives of unparalleled luxury while prescribing carbon austerity for the masses. Yet no one is permitted to point out their scientific ignorance or call attention to their hypocritical lifestyles.
Child advocates such as Greta Thuneberg and the crudely indoctrinated children of the “Sunrise movement” are essentially sock puppets for their shameless activist handlers. Refuse to bend the knee to these tiny fascists, as Diane Feinstein most recently did, and the mainstream left will relentlessly attack you as an accessory to mass murder.
The authority of Climate Change leaders is entirely unmerited and absolute, yet no one is permitted to hold them accountable for their ignorance, inexperience, or brazen lies. Thus, the Climate Change movement clearly meets the first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2. No tolerance for questions or critical inquiry.
The conclusions of the Climate Change movement may not be challenged or questioned under any circumstances. Those who dare scrutinize the conclusions, methodology, or prescriptions of “climate scientists” are categorically dismissed as a “Climate Denier”, an excommunicated untouchable whose opinion is no longer valid on any subject.
Questions and critical inquiry aren’t merely dismissed or refuted. The unfortunate heretic immediately experiences a relentless ad hominem onslaught of scorn and hatred from the political and media left, and is often subjected to accusations of outright murder. Simply question the effectiveness of a “carbon tax” and you may find yourself tied to a stake.
There is no tolerance for questioning the Climate Change movement, and thus it clearly meets the second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3. No meaningful financial disclosure regarding budget, expenses such as an independently audited financial statement.
Hardly anyone knows just how much money is spent on “Climate research” every year. The cost is spread out among laughably useless study grants, wind and solar farm subsidies, carbon offset credits, “green” building code evaluation and enforcement, salaries for bureaucrats solely dedicated to “climate concerns”……you get the idea, it’s a lot of hazy money.
The abhorrent practice of “sue and settle” was a flat out money laundering scheme that allowed sympathetic government officials to transfer millions of tax dollars to radical leftist environmental groups. The practice only ended when the Trump administration used executive power to clamp down on it.
The total amount of yearly financial expenditure on the Climate Change movement is vague, difficult to track, and often carried out in unethical manners. Thus, the Climate Change movement exhibits the third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4. Unreasonable fear about the outside world, such as impending catastrophe, evil conspiracies and persecutions.
This one is pretty obvious. The Climate Change movement always shouts out revised and updated apocalypse predictions, eerily reminiscent of the stereotypical bum on the sidewalk with that “The End Is Near” sign. “The world will end in X years if we don’t do X” is the constant refrain. The years always pass, and the apocalypse never happens. Interestingly, this is a characteristic of multiple religious cults (such as the Seekers of Chicago, and the Order of the Solar Temple). At the moment, we apparently have 12 years to nationalize the entire economy and phase out fossil fuels before we all die a fiery death.
There’s also no shortage of conspiracy theories about who they consider to be Earth’s greatest saboteurs. They have an enemies list. The fossil fuel industry is at the top of it, with widespread tinfoil hat theories about oil companies burying patents for efficient renewable fuel recipes to keep us all guzzling gasoline.
The “repent or burn” doomsday preaching is the most well-known staple of the Climate Change movement, and quite clearly exemplifies the fourth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5. There is no legitimate reason to leave, former followers are always wrong in leaving, negative or even evil.
Climate alarmists who leave, step back from, or even lightly criticize the movement are immediately subjected to vicious smear campaigns. Dutch professor Richard Tol experienced this phenomenon firsthand when he removed his name from an IPCC climate report and criticized the reports excessively apocalyptic predictions.
The smear campaign was led by Bob Ward, director of policy at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Grantham Research Institute on Climate Change ‘This has all the characteristics of a smear campaign”, Tol said. “It’s all about taking away my credibility as an expert.”
The treatment of Professor Tol is not uncommon, and clearly demonstrates that the Climate Change movement exhibits the fifth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6. Former members often relate the same stories of abuse and reflect a similar pattern of grievances.
Professor Tol is not an anomaly. Dr. Richard Lindzen of MITDr. Nils-Axel Mörner, and countless other former IPCC in-crowd climate experts were subjected to smear campaigns from their colleagues and the news media for the crime of throwing cold water on the outlandish predictions of the Climate Change movement.
This pattern is all too familiar to anyone who has studied what happens to individuals who leave the Church of Scientology, and clearly meets the sixth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7. There are records, books, news articles, or television programs that document the abuses of the group/leader.
The abuses of the Climate Change movement are loud and proud. They vociferously attack their perceived enemies for public consumption, and are cheered on by fellow travelers in the journalism class. Most recently they brainwashed a bunch of kids and marched them into an octogenarian Democrat Senator’s office to beg not to be murdered by a ‘No’ vote on impossible legislation. Have you seen those kids in Diane Feinstein’s office? You should, it’s creepy, here they are:
These tantrums and protests aren’t only meant to rally supporters of the Climate Change movement. They are a form of intimidation, a tactic used to silence those who question the gospel. There is ample evidence that the Climate Change movement meets the seventh warning sign of an unsafe group.
8. Followers feel they can never be “good enough”.
The atonement process for Climate warriors always demands more. It started with using a recycling bin and grocery bags. Now, in 2019, being a good follower means imposing veganism on the masses and issuing fatwahs against innocuous objects such as plastic straws and grocery bags. Despite all the efforts of the faithful, Climate minions maintain a constant state of dread and despair, knowing they can never truly do enough to stop the coming doom.
Clearly, the eighth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applies to the Climate Change movement.
9. The group/leader is always right.
When have the climate leaders been called wrong for their failed predictions? Regardless of the weather, they are always intrinsically correct.
Flood? Climate Change. Drought? Climate Change.
No Snow? Climate Change. Too much snow? Climate Change.
Tornado? Climate Change. Hurricane? Climate Change. Lack of hurricanes? Climate Change.
See how this works?
One of the best aspects of the movement is “weather is climate until it isn’t”. The acolytes of Climate Change will point out the window in a heat wave and say, “See? We’re right!”
If a skeptic points out the window during a blizzard, the same acolytes will simply cry “Weather isn’t climate!” It’s a game they can never lose, one in which they are never wrong and always right.
Thus, the ninth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clearly applies.
10. The group/leader is the exclusive means of knowing “truth” or receiving validation, no other process of discovery is really acceptable or credible.
The path to discovery for the Climate Change movement is an intentionally vague discipline referred to as “climate science”.
Did you carry out a study on gender and glaciers? Climate Science.
Did you think up the worst possible scenarios that have no actual chance of happening (actual portion of latest National Climate Assessment)? Climate Science.
Any “science” that confirms the tenets of the Climate Change movement is deemed “climate science”, while actual scientific research that disputes their conclusions is derided as “denialism”.
The tenth warning sign for unsafe groups is clearly met.

The Verdict: It’s a cult

According to the established, scientific guidelines developed by cult experts, the Climate Change movement fits the bill for a potentially unsafe group. … Full article

1 Comment »





  1. rick ross is an accomplice to mass murder….
    do “cult members” or even “visitors” to a cult compound have “rights”
    if some a**hole in a “JEW” worshipping society makes a claim about
    a cult…?
    like the right to due process, or even not being assaulted on sunday morning
    by a synagogue of satan psychopathic cult member shooting through the roof
    from a helicopter…
    what synagogue of satan cult prints the filthy lucre {{{JEW}}} lies…federal reserve notes
    what synagogue of satan cult owns the media…
    what synagogue of satan cult pays the {{{JEW}}} worshipping crack whores in congress
    for real climate change study to show yourself approved…
    READ and study Matthew 13:39-43
    Comment by Anthony Clifton | April 15, 2019 | Reply

2019/04/15

진보 역사3단체, ‘임정 법통론’ 비판

진보 역사학계 ... :: 네이버 뉴스



기사입력2019.04.14 오후 2:55

진보 역사3단체, ‘임정 법통론’ 비판

‘역사전쟁으로 임정 법통론 강화’ 지적

“임정 법통론은 남북 대결의식 고취”

“역사학이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해”


원본보기임종명 전남대 교수(사학과)가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가 주최한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 주제의 학술회의에서 ‘근대 정통론과 기원·계보의 정치’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보수, 개혁 집단 모두 집권 세력이 과도하게 역사인식에 개입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홍석률 성신여대 교수) “한 역사학자가 말한 ‘선한 정치권력이라도 역사 오용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을 고민해봐야 한다.”(이용기 한국교원대 교수)

진보적 역사 3단체가 문재인 정부의 국가·민족주의적 역사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임시정부 100주년을 두고 “건국 백년”이라 말하고,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11일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제출하는 등 역사적 사실과 다른 ‘임시정부 신성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가 주최하는 학술회의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주최 단체들은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취지문에서, 우파의 반공주의적 1948년 건국설과 문재인 정부 및 일부 ‘진보’학계의 ‘임시정부 법통론'에 기반을 둔 1919년 건국설 모두를 두고 “서로 다른 기원을 근거로 양자가 벌이는 정통성 경쟁은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역사전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우리는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점으로 ‘건국 백년'이 운위되는 것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낀다. 이는 학계를 포함해 공론장의 충분한 논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인 것이 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3·1운동의 마땅한 계승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주 노동자들이 국가의 역사적 정통성이 부족하다고 외치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역사가 현실의 모순을 넘어서기 위한 해방의 계기가 아니라 그 합리화와 정당화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학)의 종말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진행 중인 상설 전시관 개편이 학계와의 소통이 없이 진행되고, 해방 이후 한국군이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을 중심으로 출범한 사실을 외면하고 “육군사관학교의 역사적 뿌리도 100여년 전 ‘신흥무관학교’에 이른다”(문 대통령)고 한 역사 인식도 문제 삼았다.

주제발표자로 나온 이용기 한국교원대 교수(역사문제연구소 소장)는 “과거 ‘진보’ 역사학계는 임정 법통론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건국절 논쟁이 진행되면서 ‘진보’ 역사학계는 침묵 속에 방관하거나 1919년설에 동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임정이 국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요소와 실천에선 제한적”이었다며 “1923년 국민 대표 회의 이후에는 대표성에도 한계를 나타내 전체 민족해방운동 세력을 아우르는 독립운동의 최고지도기관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애초에 임정 법통론은 해방 이후 이승만 등 우익진영이 주도적으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만든 정치 논리”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주의 세력 등 다른 독립운동을 배제하고 임정만이 유일하며 배타적인 정통성을 가진다는 논리는 “남북 대결의식을 고취하는 냉전적 논리를 강화”하는 결론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사학과)는 역사교과서 논쟁으로 정사·정통론이 강화된 상황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한국사학계의 일제 식민지 시대 연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탈근대주의적 역사인식 등이 대두하며 민족주의적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화되는 추세에 있었다”고 짚었다. 하지만 “역사논쟁이 과잉정치화되면서 오히려 역사 논의가 더 협소해지고 단순해지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면서 “역사학계가 보수세력의 공세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며 민족주의의 방패 뒤로 숨는 모습을 보여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원적인 국가에서 ‘단일한’ 역사서술, ‘올바른’ 역사서술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1999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연방수상이 “독일인 모두가 통일적 역사상을 지니는 것은, 내가 이해하고 있는 한 개방된 민주사회에 전혀 적합한 일이 아니다”라고 한 연설을 인용했다.


원본보기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사학과)가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가 주최한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 학술회의에서 “‘역사전쟁’을 성찰하며”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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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토론에선 주제발표를 두고 다양한 지적이 나왔다. 특히 국가가 역사에서 정통성을 찾고, 이를 다수 국민이 지지하는 상황을 두고 역사가들은 비판만 하는 것이 옳으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토론자로 나온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20여년 동안 ‘임시정부 법통론’을 극복해내기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왔음에도 ‘임시정부의 법통’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 내몰려 어느 순간 스스로가 소위 ‘임시정부주의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나 자신은 상황 논리 하에서 정말 비겁했다”며 ‘자아비판’을 했다. 하지만 윤 교수는 “국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정통론을 내세울 텐데, 역사학자들이 ‘정통론은 틀렸다고’만 말한다고 무슨 문제가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다시 역사학자들이 비겁하게 행동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정일영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도 “왜 대중이 정부의 역사 드라이브를 지지하고, 역사 정통론에 매료되고, 기꺼이 역사전쟁에 참전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자칫하면 대안 없이 비판만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병욱 고려대학교 교수(민족문화연구원)는 “시민·대중이 국가의 역사 정통론을 선호하는 이유는 역사를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시키기 때문이다. 정통론에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자존감을 주는 역사 서술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에 관해서도 토론이 벌어졌다.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사학과)는 “역사 3단체가 (단체 설립 정신인) 민중사학, 실천적 역사학이란 민중·통일 민족주의를 지금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누구 마음대로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박했다. 그는 덧붙여 “극우 세력과 역사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5·18 관련 망언을 해도 제지할 수 없고, 친일 문제 대응도 무기력한 상황이다. 여전히 수구적 역사로 퇴행하려는 기도는 의회와 언론을 거점으로 강력하게 이뤄지고 있다. 칼끝을 돌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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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r****
자칭 진보 역사학계가 이런 주장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북한이 임정을 '부정'하거든 ㅋㅋㅋㅋ
2019-04-14 15:52:50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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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진보놈들이 역겨운게 저놈들 지금까지는 임시정부에 정통론이 있다고 씨부리다가 막상 김정은이 임시정부의 정통론을 무시하고 김일성정부가 정통성이 있다고 씨부리니까 말이 또 바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유엔의 승인을 받은 이승만초대 정부가 정통성이 있다고 봐야 하는건데 말이지 그리고 북한의 초대내각은 친일파가 대부분 차지했지만 이승만정부의 초대내각은 전부 독립투사 출신이었다
2019-04-14 16:20:01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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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작성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2019-04-14 16: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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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댓글모음
역사는 늘 후대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강화된다대한민국의정통성은 임시정부에서 출발한다에 동의함.친일청산하지못한 근현대사의 업보임..
2019-04-14 17:01:47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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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비공감공감9비공감2
doza****
진보역사학계 맞음? 친일 뉴라이트 인가요? ㅎ


‘기생하는 존재’로 키우는 한국 부모들





단비뉴스



‘기생하는 존재’로 키우는 한국 부모들

[제정임의 문답쇼, 힘] 조벽 숙명여대 석좌교수

2019년 04월 12일 (금) 23:27:46 이자영 기자 delicious_12@naver.com



“어떤 학부모들은 아이를 ‘기생하는 존재’로 키우고 있어요. ‘기여하는 존재’가 아니고요. 내가 먹여주고 태워주고 입혀주고 뭐 사주고 다 할 테니까 넌 그냥 앉아서 공부만 해. 공부해서 남 주냐? 오로지 너만을 위해서, 네 주변에 있는 거 네가 다 끌어다 써라. 그게 기생하는 존재의 특성 아닙니까?”



미국 미시간 공대에서 20년간 재직하며 최우수 교수상을 연속 수상하고 강의법 강좌를 통해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명성을 쌓은 조벽(63) 숙명여대 석좌교수가 11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한국 교육에 일침을 가했다. 2005년 귀국 후 학교폭력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청소년 정책과 교육혁신에 참여해 온 그는 현재 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으로서 부모자녀관계와 부부관계 회복 등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공부해서 남 주냐’며 이기심 부추기는 풍토



▲ 한국 부모들 중에는 아이를 ‘기여하는’ 인재가 아닌 ‘기생하는’ 존재로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고 꼬집는 조벽 교수 .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조 교수는 한국에 돌아와 들은 말 중 ‘공부해서 남 주냐’가 가장 충격적인 것 중 하나였다며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 훗날 돈도 벌고 얻을 거 다 얻은 후에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여하겠다는 것은 헛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30~40년을 살아 온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것”이라며 “인재라는 것은 도달하는 목표점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주입식 교육을 넘어 아이들에게 꿈마저 주입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이들의 장점을 키워주는 대신 의사 등 특정 직업을 목표로 ‘국영수사과(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에 매달리게 하고 단점을 메우는 데 집중함으로써 결국 평범한 수준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주입하는 꿈은 결국 악몽이지 진짜 꿈이 아닙니다. 그리고 20년 후에 그 부모님의 악몽이 시작될 거예요. 저는 그런 사람 너무 많이 봤거든요. 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 40대, 50대 돼가지고 우울증에 걸려 죽고 싶다 그래요. 그리고 그 나이에 부모님을 탓합니다. 엄마 아빠 얼굴도 보기도 싫다고 해요.”



‘집단 지성’ 대신 ‘집단 실성’을 보여주는 사람들



조 교수는 또 한국 사람들이 ‘실력이 없으면 인성이라도 좋아야지’ 하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성이 ‘실력자에게 갑질을 당해도 비굴하게 빌붙는 태도’가 아니라 ‘타인과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 실력’이라고 정의했다. 인성이 곧 실력이라는 것이다.



▲ 조벽 교수는 흔히 말하는 실력이 전문지식과 기술이라면 인성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이며, 따라서 인성 역시 실력이라고 정의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그는 인성교육의 세 가지 요소로



  •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자기조율’, 
  • 다른 사람과 어울려 일할 수 있는 ‘관계조율’, 
  • 공동체를 위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공익조율’을 꼽았다. 




그는 특히 다가오는 인공지능시대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익적인 목적으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능력이 더 없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을 보니까 집단지성이 아니라 그냥 집단이에요. 끼리끼리 모여 있는 집단.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쳐가지고 기득권 유지에만 목표를 두고 있어요. 끼리끼리 모여가지고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는 게 바로 집단 실성하는 거죠.”



아이를 ‘정서적 금수저’로 키우려면



조 교수는 빈부격차에 따른 신분세습을 의미하는 ‘금수저’ ‘흙수저’와 달리 ‘정서적 금수저’와 ‘정서적 흙수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항공 사주 일가를 예로 들어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경제적 금수저’가 ‘정서적 흙수저’로 자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가 자주 싸우거나 자녀들과 애착관계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경우 아이들이 주의력결핍장애(ADHD) 등 심신의 문제를 일으키고 심각한 경우 우울증, 중독, 자살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아이들을 ‘정서적 금수저’로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서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행동을 곧바로 지시하기보다 정서적 지지를 앞세우는 ‘감정코칭’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의 마음 상태를 먼저 이해하고, 부모가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 뒤 행동의 한계를 그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조벽 교수는 “부모들은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행동코칭’ 대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서적 지지를 앞세우는 ‘감정코칭’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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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인생, ‘독특함’으로 승부하다



조 교수는 열대의학을 전공한 의사 아버지를 따라 10살 때 자메이카로 이주한 뒤 대학 공부는 미국에서 했기 때문에 청소년기는 흑인들 사이에서, 대학생 때는 백인들 사이에서 늘 ‘아웃사이더(외부자)’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소수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최고(베스트)’가 되기보다는 ‘독특함(유니크)’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초임 교수시절, 연구 부담으로 강의준비 시간은 부족하고 학생들은 수업이 지루하다는 반응이어서 거의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죠. 한 해를 그렇게 보낸 뒤 교수법 책이란 책은 다 찾아서 독학을 했습니다. 강의기법에 투자하지 않는 교수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유니크하고 독보적인 존재가 됐죠.”



‘교육계의 마이클 조던’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교수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심리학 전문가인 아내 최성애(63) 박사의 도움으로 이론적 토대를 다지면서 교육혁신 전문가로 입지를 굳히게 됐다고 밝혔다.

경제방송 SBSCNBC는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9 시즌방송을 3월 14일부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조현아 PD





[이자영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팀, 환경부, 미디어부 이자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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