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ビハーラ僧は、来ないで! | セクシーバディのためのダンシングD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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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라 승려는 오지 마!
2012-11-27

테마:비하라
계속해서 병원과 복지시설에서 활동

비하라 스님의 화제입니다.

상당히, 용기가 있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땀)



요 전날 말기 암 환자를 방문했던 스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인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거나,

사교 사령을 말하거나하는 것이 능숙합니다.


노인은 특히 보씨에게 경의를 가지고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오는 사람에게는

"잘 와주었다. 보씨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와줘."

라고 말합니다.

비록, 사실은 스님의 방문이 싫어도, 어른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말대로 받고, 그 스님은,
말기암 환자에게 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여행 준비에 들어갈 때,
가족분으로부터, 「오는 것은 삼가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해졌다고 합니다.


그 스님은 지금까지 그 노인과 관계가 쌓여 왔습니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가족이 종교를 싫어해 오지 말라고 말하기 때문에,

본인은, 이미 말기이기 때문에, 만나러 가는 편이 좋은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
정말 오지 마세요! ! !

사교 사령으로, 노인은 「와 주어서 좋았다」라고 말하고 있었으므로,

보 씨가 돌아온 후에는 느긋하게 잠들었다고 합니다.

말기 암 쪽이, 없는 체력을 휘두르고, 아빠에게 실례가 없도록 하면,

필사적으로 된 노인이 계셨습니다.
본인의 성격으로부터 하면, 스님에게 직접,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이 본인의 딱딱한 표정을 살펴보고,
본인 대신에, "이제 오는 것은 삼가 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노인은 매우 매너가 제대로되어 있습니다.
그 노인과 좋은 관계가 쌓여 있다는 것은
그냥 승려의 추억입니다.


어떤 비하라 연수에 참가했을 때,
스님의 모습을 하고 병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죽거나 살아가는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 속에 들어가는데,

복장이 어떠한지 고민하는 시점에서

상대의 느낌을 모르고,

상대는 옷차림을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상태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감염증 대책 때문에 병원 직원조차도

환자 1명과 접할 때마다 갈아입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소독액에 담그지 못한 스님의 옷을 입고 가는 시점에서,

의료 현장에 들어갈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잠깐 말했다.

매우 실례했습니다.


의료나 복지의 현장에서는, 인손 부족입니다.
스님 앞에 직원을 늘려 주었으면 하는 것이 현장의 비명입니다.


개호 시설에서 법화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던 스님이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성가신가요?









법화가 행해지는 장소에, 노인을 데리고 가는 것은,

개호 직원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회장으로 데려갑니다.

안에서는, 침대 그대로라든지.

또한, 법화 시간은 직원이 깨끗합니다.


개호 직원의 협력이 있어,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왔기 때문에 법화가 생겼다고 위로부터 시선.


개호 시설에서의 법화에, 무엇인가 의미는 있습니까

노인은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법화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편안한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서도,
법화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사나 간호사, 개호 직원이 할 수 없는 영적 케어를 하고 있으면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의료 및 복지 직원은 전문입니다.
스님이 없어도, 제대로 환자님이나 이용자님의 케어는 할 수 있습니다.

환자와 의료 스탭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말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나쁘지만, 우리는 그리 무능하지 않습니다!
핥는 것도 좋은 가감으로 해주세요!
라고 또 말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스님은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직업은, 「무직」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스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빠의 모습은 하지 않고, 병원이나 개호 시설을 방문해도,

Bo-san은 Bo-san이 아닙니까?



살거나 죽을까 싸우는 사람은 옷차림을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진실을 파악하고 싶다.


현장을 보면, 의료나 복지의 현장에 스님이 필요한지 어떤지를
논의할 여유도 없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인적 부족이므로, 개호 직원으로서도, 청소의 자원봉사로서도

일해 주신 분이, 아직 좋은 것이 아닐까요.




생각했을 때, 어쩌면 인간의 생각은 옳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무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승려는 사람을 돕는 힘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병원에 옷을 입고 가고 싶다.
이것은 당신의 제멋대로입니다.


상근의 비하라 승려가 있는 병원에서, 직원에게 앙케이트가 취해졌다고 합니다.
결과가 비하라 승려에게 전해질 정도로 알기 때문에,
아무리 익명이라도 본심은 쓸 수 없습니다.

환자도, 직원도, 병원의 경영 모체와 같은 종교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차별이 있다고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보씨의 모습으로, 걷지 마라!


환자도 신세를지고 있다는 틈이 있고,
잘 해줘야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개종을 제기하거나,

립 서비스를 하거나.


환자에게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가.

환자에게 전화하면 옷을 입고 승려로 환자를

방문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옷을 입은 스님이 상근이라는 것은,

환자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곤란한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 앞에서는, 누가 개호 직원으로, 누가 스님인가라는 구별도 중요하지 않고,

모두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 좋지 않아?

그렇게 복장이나 직업을 고집하지 말고.







해외에서도입니다만, 일본에서도, 원래, 의료나 복지라고 하는 것은,

사원과 교회에서 열렸다는 역사가 있으며,

비하라 활동이라는 것은 근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병원, 유치원, 학교, 개호 시설 등을 종교 법인이 경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조차, 병원이나 개호 시설에서, 종교라든가, 승려라든지, 의식하는 것은 아니고,

의식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거부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승려의 역할은 병원에도 개호시설에도 없고 절에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곤란했을 때, 언제나 갈 수 있는 절이 있는, 

병원에 부르면 언제든지 오는 승려가 있는데,

그 존재를 알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며,

이미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승려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안심을 제공하는 것이 절의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멋지게 해도 내용은 없다,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 보주는 보주, 그래서, 좋지 않아?









승려도 병원이나 시설에서는 특별하지 않고 모두와 함께.

모두와 같다.











다양한 비하라의 형태가 있다, 보다는,

모양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오케이.

아무도 정답.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합니다.













나에게 비하라 활동은 교리 실천을 위한 활동의 ​​일부라는 인식이다.

포교 활동이 아닙니다.







법화는 하지 않아도 될까요?

옷도 필요 없어?













교리에 감동하는 것은 매우 꽤.

감동하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리에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면 좋을까요?













종교는 '나만 혼자를 위한' 것.

당신의 진실은? 뭐라고?













의료나 복지의 현장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논하는 시간이 있으면,

일찍 오세요!

함께 땀을 흘리자!













병원에 스님이 필요하다고 사회에 호소하고 싶은 마음은,

스님 여러분도 자신을 필요로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범주도 절에서 혼자서 녹슬어요.

절이 필요 없다고 말해, 녹슬고, 필요하다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자매라면, 자신의 존재, 자신의 필요성은 스스로 생각해라!

병원에 필요한지, 스스로 생각해라!















병원에서의 활동을 보고하고 있는 스님이,

스님을 받아들이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스스로 승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승려의 일은 장례식뿐만 아니라,

장례식 불교라고 불리지만, 경은 장례식 때만 읽는 것이 아니라,

경도도 승려도,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 옷을 입고 활동을 계속하면 언젠가 알 수 있을까?













그럼 사회의 이해가 부족할 뿐이라고 말하는 거야?

즉, 당신이 옳고, 사회의 사람이 잘못,

편견이다, 라고도 말하고 싶습니까?













확실히 말해, 스님을 받아들이는 병원이 늘어난다는 발언이,

위에서 시선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옳다, 모두는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모두는 알 것이다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나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원래, 나도, 스님 여러분과 같은, 「범부」입니다.


인간에게는 무엇이 맞는지 잘못되어 있는지는 모르고,
비록 알았더라도,
잘못한 것만 해 버리는 것이 「나」입니다.


스님 여러분도 같은 목적을 향해 걷는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꽤 지나친 발언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동료로서의 발언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무례했습니다!







합장
===
ビハーラ僧は、来ないで!
2012-11-27

テーマ:ビハーラ
引き続き、病院や福祉施設で活動する

ビハーラ僧の話題です。

結構、勇気がいる発言をしております・・・。(汗)







先日は、末期がんの患者さんを訪問していた僧侶の方の話を聞いたのですが、

お年寄りは、他人の気持ちを考えたり、

社交辞令を言ったりするのが上手です。







年寄りは、特に坊さんに対して敬意を持っている人がいるので、

来る人には、

「よく来てくれた。坊さんと話ができて良かった。また来てくれ。」

と言います。

例え、本当は僧侶の訪問が嫌でも、大人ですから、

そういう態度は見せません。







それを、言葉のままに受けて、その僧侶は、

末期がん患者のもとへ通っていたそうです。

ところがある日、いよいよ旅立ちの準備に入るという時に、

ご家族の方から、「来るのは、遠慮して欲しい」と言われたそうです。









その僧侶は、今までそのお年寄りと、関係が築けてきたと

思っていたのです。

家族が宗教を嫌がって来るなと言っているだけだから、

本人は、もう末期だから、会いに行った方が良いか悩んでいたようです。







いやいや、そうじゃなくて、

本当に、来ないでください!!!







社交辞令で、お年寄りは「来てくれて良かった」と言っていたので、

坊さんが帰った後は、ぐったり寝込んでいたそうです。

末期がんの方が、ない体力をふりしぼって、お坊様に失礼がないようにと、

必死になっていたお年寄り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







本人の性格からすると、僧侶の方に直接、もう来ないでと言えないので、

ご家族の方が、本人のぐったりした表情を察して、

本人の代わりに、「もう来るのは遠慮して欲しい」と

言われたそうです。







お年寄りは、とてもマナーがしっかりしておられます。

そのお年寄りの方と、良い関係が築けているというのは、

ただの僧侶の思い込みです。







とあるビハーラ研修に参加させていただいた時に、

僧侶の格好をして、病院に入って行きたいと言っていた人がいました。







死ぬか生きるかの戦いをしている人の中に入って行くのに、

服装がどうのこうのと悩んでいる時点で

相手の気持ちが分かっていない、

相手は、身なりを気にする余裕もない状態ということが理解できていない証拠だと

思います。







また、感染症対策のため、病院の職員でさえ、

患者さんお1人と接する毎に着替えていることもあるのに、

消毒液に漬けることができない僧侶の衣を着て行っている時点で、

医療現場に入る資格はないと思います。







あ、ちょっと言い過ぎました。

大変失礼いたしました。










医療や福祉の現場では、人手不足です。
僧侶の前に、職員を増やして欲しいというのが、現場の悲鳴です。







介護施設で法話をしたと自慢げに話していた僧侶がおりました。

何で迷惑か、分かりますか?













法話が行われる場所に、お年寄りを連れて行くのは、

介護職員です。

お一人お一人を、ベッドから車いすに移乗し、会場へお連れします。

中では、ベッドのままでとか。

また、法話の時間は、職員が付きっきりです。













介護職員の協力があって、「させていただいている」ということ、

お気付きになられますでしょうか?

でも、いかにも、自分が来たから法話ができたと上から目線。







介護施設でのご法話に、何か意味はありますか?







お年寄りは、僧侶のお話を、聞いてあげているんです。







法話があったからと、何にも変わりません。

死を受け入れるためにも、安らかな最期を迎えるためにも、

法話はいりません。













医者や看護師、介護職員ができないスピリチュアルケアをしていると

自信を持っているようですが、

医者に、患者の心が分からないとでも思っているのですか?







医療や福祉のスタッフは、プロです。

僧侶がいなくても、ちゃんと患者さまやご利用者さまのケアはできます。







患者と医療スタッフとをつなぐ橋として、って言ってた僧侶がいました。

悪いけど、私たちは、そんなに無能ではありません!

なめるのも、いい加減にしてください!













って、また言いすぎました。

謝ります。

すみませんでした。







僧侶は、職業ではなく、生き方だとお伺いしております。

でも職業は、「無職」と答えておられる僧侶を知っております。







だったら、お坊さんの格好はせずに、病院や介護施設を訪問しても、

坊さんは、坊さんじゃないんですか?













生きるか死ぬかと戦っている人は、身なりを気にする余裕はないです。

現場の声を聞いてください。

お年寄りとお話をして、真実を見極めていただきたい。









現場を見れば、医療や福祉の現場に僧侶が必要かどうかを

議論する余裕もないのは分か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人手不足なので、介護職員としてでも、掃除のボランティアとしてでも

働いていただいた方が、まだ良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考えたところで、所詮、人間の考えることは、正しいことはないのでしょう。

人間は無力だ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でしょうから、

僧侶には人を助ける力があるはずはないんです。













病院に、衣を着て行きたい。

これは、あなたの自分勝手な思いです。













常勤のビハーラ僧がいる病院で、職員にアンケートが取られたそうです。

結果が、ビハーラ僧に伝わることくらい分かるので、

いくら匿名でも、本音なんて書けないです。







患者さんも、職員も、病院の経営母体と同じ宗教ならいいのですが、

そうでなければ、

差別があるのではと不安に思ってしまいます。







坊さんの格好で、歩くな!







患者さんも、お世話になっているという引け目があるし、

良くしてもらわないといけないという思いがあるので、

改宗を申し出たり、

リップサービスをしたり。













患者さんに、どれだけ気を遣わせているか。

患者さんに呼ばれたら、衣を着て、僧侶として、患者さんを

訪問されても良いと思いますが、

衣を着た僧侶が常勤というのは、

患者さんのストレスになっていることがあります。













困っている人が目の前にいるというのは、事実。

その人の前では、誰が介護職員で、誰が僧侶かという区別も重要ではなく、

みんなで一緒に生きていく仲間で良いんじゃない?

そんなに服装や職業にこだわらないで。







海外でもですが、日本でも、元々、医療や福祉というのは、

お寺や教会で行われてきたという歴史があり、

ビハーラ活動というのは、近代始まったものではなく、昔からあったものです。







病院、幼稚園、学校、介護施設などを宗教法人が経営していることが多いのです。







今さら、病院や介護施設で、宗教とか、僧侶とか、意識することではないし、

意識させようとするから、拒否されることもあるのではないかなと思います。









僧侶の役割は、病院にも介護施設にもなく、お寺にしかないのでは?

困った時に、いつも行けるお寺がある、 

病院に呼んだら、いつでも来てくれる僧侶がいる、

その存在を知っているかどうかの方が重要で、

すでにあることに、気付いてもらうための努力をしていく方が

僧侶がすべきことではないかと。











いつも、変わらないものがあるということを知っていることが

安心で、

安心を提供するのがお寺の仕事な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どうせ格好つけても、中身はない、
分からないものは、分からない、坊主は坊主、それで、良いんじゃない?









僧侶も病院や施設では、特別でもなくて、みんなと一緒。

みんなと同じ。











いろんなビハーラの形がある、というよりは、

形がないものだから、

何でもオッケー。

どれも正解。

何にでもなれる、どこでもできる、何でもできるはず。













私にとって、ビハーラ活動は、教義の実践のための活動の一部だという認識です。

布教活動ではありません。







法話はしなくても良いでしょう?

衣もいらないでしょ?













教義に感動するのは、大いに結構。

感動したら、誰かに話したくなるという気持ちは分かります。

同じく教義に喜んでいる人と一緒に

喜べばい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宗教は、「私ただ一人のため」のもの。

あなたの真実は?ってとこかな?













医療や福祉の現場で宗教の必要性を論じる時間があったら、

早く来い!

一緒に汗を流しましょう!













病院に僧侶は必要だと社会に訴えたい気持ちは、

僧侶のみなさんも、自分を必要とされたいということ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坊主も、寺で1人で、さびしいんですよ。

寺がいらないと言われて、さびしいし、必要だとみんなに言いたいんだと思います。













坊主なら、自分の存在、自分の必要性は自分で考えろ!

病院に必要かどうか、自分で考えろ!















病院での活動を報告している僧侶の方が、

僧侶を受け入れてくれる病院が増えてきていると言っていましたが、

それは、自分で僧侶の必要性を強調したいだけだと思います。













僧侶の仕事は葬式だけではない、

葬式仏教と言われるが、お経は葬儀の時にだけ読むものではなく、

お経も僧侶も、縁起が悪いものではないから、

病院に衣を着て活動を続けると、いつか分かってもらえる?













じゃ、社会の理解が足りないだけと言っているの?

つまり、あなたが正しい、社会の人が間違っている、

偏見だ、とでも言いたいのでしょうか?













はっきり言って、僧侶を受け入れてくれる病院が増えるという発言が、

上から目線だと感じます。

自分が正しい、みんなは誤解している、だから、いつかみんなは分かるだろうと

言っているように聞こえます。













私も、自分が正しいとは思っていませんが。

そもそも、私も、僧侶のみなさんと同じ、「凡夫」です。













人間には、何が正しいか間違っているかは分からないし、

例え分かったとしても、

間違ったことばかりしてしまうのが「私」です。













僧侶のみなさんも、同じ目的に向かって歩む、仲間だと思っています。

かなり行き過ぎた発言もあ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

仲間としての発言だとご理解いただければと思います。







失礼いたしました!







合掌


【仏教の窓】臨床宗教師って何だろう?【コラ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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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年1月3日

読了時間: 6分


【仏教の窓】臨床宗教師って何だろう?【コラム】



 副住職は2017年の春から夏にかけて、東北大学が主催している「臨床宗教師」の研修を受けてまいりました。そこで今回は臨床宗教師の社会的な役割についてご紹介させていただこうと思います。 日本版チャプレン「臨床宗教師」  皆さんは「チャプレン」という職業をご存知でしょうか。チャプレンとは主にアメリカなどのキリスト教文化圏において、病院などの公共の場で心のケアを提供するために専門実習を受けた宗教者のことです。日本では、緩和ケア病棟やホスピスに配属されている例はわずかです。一方、欧米では病院の他に福祉施設、教育機関、警察・消防署・軍隊・刑務所など様々な公共空間で、当たり前のようにして雇われている馴染み深い宗教者の専門職なのだそうです。  これまで日本においてはお寺・神社・教会などの宗教施設以外で宗教者が活動すること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近年、公共の場においても生死の問題と向き合う宗教者が求められるようになってきています。その要望に応えるべく生まれたのが、チャプレンの日本版ともいえる「臨床宗教師(苦悩・悲嘆・不安の現場に寄り添う活動をする宗教者)」です。










■東北大学主催「臨床宗教師研修」の様子 僧侶だけでなく様々な宗教者とともに学びを深める





臨床宗教師の主な特徴  臨床宗教師は公の場で活動するということもあり、一般的な宗教者の立場とは異なる点があります。主な特徴は次の通りです。


①布教伝道を目的としない(要望がある場合には適宜対応する) ②傾聴※を基本とする心のケア ③宗教間協力を前提とする ④信徒以外の相談にも応じる ⑤「臨床宗教師」の倫理綱領を遵守する


(※傾聴…相手の話をただ聞くのではなく、注意を払って、より深く、丁寧に耳を傾けること。自分の訊きたいことを訊くのではなく、相手が話したいこと、伝えたいことを、受容的・共感的な態度で真摯に聴くこと)


 宗教者のホームグラウンドは基本的にはお寺や教会といった宗教施設です。そのため、そうではない公共の場において「宗教者が活動するとはどういうことなのか」「何を提供することができるのか」をより考慮した行動が求められます。  ①や②の特徴にはそれがよく表れています。例えば、お寺や教会であれば仏教やキリスト教の話をしても違和感はありませんが、病院や老人ホームですれば、教義・価値観の押し付けと思われても何ら不思議ではありません。場合よっては利用者のみならず、職場のスタッフにも混乱を招く恐れがあります。そのため、こちらから宗教に関する話を一方的に持ち出すことは厳禁なのです。ただし、全く宗教の話をしないというわけではなく、相手が宗教宗派に関する話を望み、その場の環境・人間関係などを考慮した上で問題がなければ応えます。  また、病院や福祉施設、被災地などではこちらが何かを教えるよりも、その人の気持ちに耳を傾けることが癒やしになる場合が多々あります。そのために必要なのが「傾聴」の姿勢です。傾聴とは、ただ話を聞くのではありません。全身全霊で相手の話したいこと、伝えたいことに向き合うことです。自分自身の存在が受けとめてもらえること、自分の気持ちを口に出して語ることが新たな気づきや癒やしに繋がります。  このように、その場の環境・人間関係に配慮し、宗教者としての特性を活かした心のケアを行うのが臨床宗教師であると言えます。一方で、①~⑤のような決まりごとがあると「宗教者としての意義が失われるのではないか」といった声もあります。とはいえ、公の場で皆が安全安心に過ごすためには最低限必要なことなのです。













■被災地の公営住宅で行なわれた傾聴喫茶「カフェ・デ・モンク」





 具体的な一例をあげると、京都府では、自殺対策の一貫として臨床宗教師を活用した事業が2015年より始まっています。これは布教や勧誘をせず、宗教宗派の違いを超えて、悲嘆や苦悩に「傾聴」という姿勢で寄り添う宗教者だからです。特定の宗教団体が利することがないこと、政教分離の原則に抵触しないことから、安心して現場にいることができると判断されたのです。公の機関が宗教者を採用するというのは驚くべきことですが、これも①~⑤のような立場が明確に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が大きな要因である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








科学によって解決しえない領域  では、なぜ宗教者が公共の場で求められるようになってきているのでしょうか。  これからの日本は超高齢多死社会をむかえると言われており、どのように生を全うし、死を迎えていくかが深刻な問題となっています。緩和医療、在宅医療、高齢者施設など「老病死」と密接した現場では様々な喪失体験の連続です。また、身体的な痛みを取り除くだけでは解決できないこと、―生きる意味や自分自身の存在そのものが問われるような問題とも向き合わなくてはなりません。すると、これまでの医療・福祉の専門職のみではケアをしきれない問題が出てきています。  「なぜ自分がこんな理不尽な目に合うのか」「何のために生きるのか」「死んだ後はどうなるのか」といった問いに向き合うときには、大きな不安や苦悩が伴います。しかし、それらの問いに対して科学的な答えを出すことはできません。科学的思考に支えられて生活している私たちにとって、独りで向き合うにはあまりにも難しい問題です。  そこで、生と死について日々考える立場である宗教者が現場に入れば、それらの問題に一緒に向き合う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医療・福祉の領域を中心に注目され始めているのです。





自分自身を受けとめてもらえる場所 つながりを感じることができる場所  私は現在、緩和ケア病棟、宗教者による傾聴喫茶「カフェ・デ・モンク」、在宅医療クリニックなどで臨床宗教師として活動する機会をいただいています。そこでお会いする方々の中には、ずっと誰にも話すことなく抱え込んできた思いを口にされる方も少なくありません。在宅医療の現場では部屋から一歩も出ることができず、医療・福祉関係者以外と話す機会が全くないという方もいます。また、傾聴喫茶「カフェ・デ・モンク」には毎回30~40人ほどの方が来店しますが、20代、30代の若い方もいらっしゃるので正直驚いています。








■「東京カフェ・デ・モンク」の様子


 今日、全国的に、どこの地域であっても人と人との交流が少なくなっています。特に都市部ではそれが顕著です。厳念寺周辺にも次々とマンションが建っていますが、「お隣さん」や「ご近所さん」との交流は限られており、一人暮らしの人は老若男女問わず増え続けています。また、家族がいたとしても耐え難い苦悩を背負って生活している方も少なくありません。目に見えていないだけで、実際には孤独な思いを抱えている人はとても多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日々の生活を維持するのが精一杯で、人とのつながり、ぬくもりを感じることができる機会や、生と死の問題としっかりと向き合う時間を持てる人は極わずかです。そのような状況で、突然大切な人やものを喪失し、生と死の問題と向き合わなくてはならなくなったとしたら大変なことになります。  そのような中、臨床宗教師が求められた背景には、安心できること、存在を受けとめてもらえること、つながりを感じることができることが社会全体で求められてきているということなのかもしれません。


【菅原耀 記】

【불교의 창】임상 종교사란 무엇일까? 【칼럼

 부주직은 2017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도호쿠대학이 주최하고 있는 「임상종교사」 의 연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임상 종교사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일본판 챠프렌 「임상 종교사」 

 여러분은 「챠프렌」 이라고 하는 직업을 아시겠습니까. 챠프렌은 주로 미국 등 기독교 문화권에서 병원 등 공공 장소에서 마음의 케어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 실습을 받은 종교자입니다. 일본에서는, 완화 케어 병동이나 호스피스에 배속되어 있는 예는 적습니다. 한편, 구미에서는 병원 외에 복지 시설, 교육 기관, 경찰·소방서·군대·형무소 등 다양한 공공 공간에서, 당연하게 고용되고 있는 친숙한 종교자의 전문직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사원·신사·교회 등의 종교 시설 이외에서 종교자가 활동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공공의 장소에서도 생사의 문제와 마주하는 종교자가 요구되게 되어 왔습니다. 그 요망에 부응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챠프렌의 일본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임상 종교사(고뇌·비탄·불안의 현장에 다가가는 활동을 하는 종교자)” 입니다.
 

■도호쿠 대학 주최 「임상 종교사 연수」의 모습 스님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자와 함께 배우기를 깊게 한다

 
임상 종교사의 주요 특징 

 임상 종교사는 공공장소에서 활동한다고 하는 일도 있어, 일반적인 종교자의 입장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포교 전도 
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요망이 있는 경우에는 적절히 대응한다) 
② 경청※을 기본으로 하는 마음의 케어 

윤리강령 준수


( ※ 경청… 상대의 이야기를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보다 깊고, 정중하게 듣는 것.자신의 묻고 싶은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것을 , 수용적·공감적인 태도로 진지하게 듣는 것)

 종교자의 홈그라운드는 기본적으로 사원이나 교회와 같은 종교 시설입니다. 그러므로, 그렇지 않은 공공의 장소에서 「종교자가 활동한다고는 어떤 것인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인가」를 보다 고려한 행동이 요구됩니다. ①이나 ②의 특징에는 그것이 잘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절이나 교회라면 불교나 기독교 이야기를 해도 위화감은 없지만, 병원이나 노인홈이라면, 교리·가치관의 압박이라고 생각되어도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용자뿐만 아니라 직장 직원도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쪽으로부터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꺼내는 것은 엄금입니다. 다만, 전혀 종교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상대가 종교 종파에 관한 이야기를 바라며, 그 자리의 환경·인간 관계 등을 고려한 후에 문제가 없으면 응합니다. 또, 병원이나 복지 시설, 재해지 등에서는 이쪽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보다, 그 사람의 기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치유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경청"의 자세입니다. 청취는 단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전신 전령으로 상대의 말하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것에 마주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받아 들일 수있는 것, 자신의 마음을 입에 내고 말하는 것이 새로운 눈치와 치유에 연결됩니다. 이와 같이, 그 자리의 환경·인간 관계를 배려해, 종교자로서의 특성을 살린 마음의 케어를 실시하는 것이 임상 종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①~⑤와 같은 결정이 있을 때 「종교자로서의 의의가 상실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공의장에서 모두가 안전 안심에 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필요한 것입니다.

■재해지의 공영 주택에서 행해진 경청 카페 「카페・데・몽크」

 구체적인 예를 들면, 교토부에서는 자살 대책의 일관으로서 임상 종교사를 활용한 사업이 2015년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포교나 권유를 하지 않고, 종교 종파의 차이를 넘어, 비탄이나 고뇌에 「경청」이라고 하는 자세로 다가오는 종교자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종교단체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정교분리 원칙을 저촉하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현장에 있을 수 있다고 판단된 것입니다. 공공기관이 종교자를 채용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만, 이것도 ①~⑤와 같은 입장이 명확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큰 요인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과학에 의해 해결할 수 없는 영역 

 에서는 왜 종교자들이 공공 장소에서 요구되게 되어 왔는가? 앞으로의 일본은 초고령 다사 사회를 맞는다고 하며, 어떻게 생을 완치하고, 죽음을 맞이해 나가는가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완화의료, 재택의료, 고령자 시설 등 「노병사」와 밀접한 현장에서는 다양한 상실 체험의 연속입니다. 또, 신체적인 통증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 ―사는 의미나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묻는 문제와도 마주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의료·복지 전문직만으로는 케어를 할 수 없는 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왜 자신이 이런 불합리한 눈에 맞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에 마주할 때에는 큰 불안이나 고뇌가 수반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대답을 낼 수는 없습니다. 과학적 사고에 힘입어 생활하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혼자 마주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에 대해 날마다 생각하는 입장인 종교자가 현장에 들어가면, 그 문제에 함께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의료·복지의 영역을 중심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곳 합니다. 거기서 만나는 분들 중에는, 계속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안아 온 생각을 입에 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재택 의료의 현장에서는 방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고, 의료·복지 관계자 이외라고 말할 기회가 전혀 없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경청 카페 「카페・데・몽크」에는 매회 30~40명 정도가 내점합니다만, 20대, 30대의 젊은 분도 계시기 때문에 솔직히 놀라고 있습니다.
 

■「도쿄 카페・데・몽크」의 모습


 오늘날, 전국적으로, 어느 지역이라도 사람과 사람과의 교류가 적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현저합니다. 엄념사 주변에도 차례차례로 맨션이 세워져 있습니다만, 「이웃」이나 「이웃씨」와의 교류는 한정되어 있어, 혼자 사는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가족이 있었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고뇌를 짊어지고 생활하고 있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 실제로는 외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은 너무 많지 않을까요?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고, 사람과의 연결,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나, 생과 죽음의 문제와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상실하고 삶과 죽음의 문제와 마주해야 한다면 힘들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임상종교사가 요구된 배경에는 안심할 수 있는 것,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연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회 전체에서 요구되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스가와라 야기】


ビハーラ (医療) - Wikipedia 비하라 (의료)

ビハーラ (医療) - Wikipedia


비하라 (의료)

출처: 무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

비하라( vihāra )는 산스크리트어 로 정사 , 승원, 사원 혹은 안주·휴양의 장소를 의미하며, 현대에서는 말기 환자 에 대한 불교 호스피스 , 또는 고통 완화와 치유의 지원 활동을 가리킨다.

개요 편집 ]

구미에서 발상한 '호스피스'가 기독교계 의 울림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비하라'는 불교적 독자성을 낸 것에 특징이 있다.

터미널 케어 에 있어서의 인간의 정신면의 중요성이 재검토되어 종말 간호와 종말 간사에 있어서 불교자( 비하라 승 )와 의사, 간호직 내지 소셜 워커 등에 의한 팀워크에 주목한 것에 불교 사회 복지 적 특징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타니야마 요조 가 "비하라란 무엇인가?-응용 불교학의 관점에서-"("파리학 불교문화학"19호, 2005)에서 협의·광의·최광의의 3가지 카테고리로 정리해 비하라를 정의하고 있다. 협의란, 「불교를 기반으로 한 종말기 의료와 그 시설」이며, 광의란, 노병사를 대상으로 한, 의료 및 사회 복지 영역에서의, 불교자에 의한 활동 및 그 시설」을 가리키고, 최광의란 "재해원조, 청소년육성, 문화사업 등 생명을 지지하거나 생명에 ​​대한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불교자를 주체로 한 사회활동"이다. 그러나 정의는 다양하게 만들어졌으며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임상 의 장소에 있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넘기 위해서,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을 포함해 불교에 배우는 활동, 혹은, 그것을 행하는 시설을 의미하고 있다.

연혁 편집 ]

  • 1985년 에 불교의 주체성・독자성을 나타내기 위해, 불교를 배경으로 하는 터미널 케어의 시설에 「비하라」라고 명명하는 것을, 당시 불교 대학 사회 사업 연구소에 소속하고 있던 타미야 히토시 가 제창. 또, 이 일의 이념적 연구의 사키가케는 타시로 슌 타카 이다. 그의 저자인 '불교와 비하라 운동-사생학 입문-'(1999년, 법장관 )은 그 후의 비하라 운동을 리드했다.
  • 1993년에 니가타현 나가오카 니시병원에 최초의 비하라 병동이 생겨, 그 후 각지에 퍼졌다.
  • 1998년에는 불교를 배우는 의료 관계자로 전국 규모의 비하라 의료단 이 결성되어 비하라 운동의 추진과 그 보급이 빗나가고 있다.
  • 2008년에는 성양시 에 정토진종 본원사파 에 의해 「아소카 비하라클리닉」이 개업했다.

관계문헌 편집 ]

관련 항목 편집 ]

외부 링크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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ビハーラ (医療)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ビハーラ(vihāra)は、サンスクリット語精舎、僧院、寺院あるいは安住・休養の場所を意味し、現代では末期患者に対する仏教ホスピス、または苦痛緩和と癒しの支援活動を指す。

概要[編集]

欧米で発祥した「ホスピス」がキリスト教系の響きを持っていることに対し、「ビハーラ」は仏教的独自性を出したことに特徴がある。

ターミナルケアにおける人間の精神面の重要性が見直され、終末看護と終末看死において仏教者(ビハーラ僧)と医師、看護職ないしソーシャルワーカーなどによるチームワークに注目したことに仏教社会福祉的特徴がある。

さらに近年においては、谷山洋三が「ビハーラとは何か?ー応用仏教学の視点からー」(『パーリ学仏教文化学』19号、2005)で、狭義・広義・最広義の3つのカテゴリーにまとめてビハーラを定義している。狭義とは、「仏教を基盤とした終末期医療とその施設」であり、広義とは、老病死を対象とした、医療及び社会福祉領域での、仏教者による活動及びその施設」を指し、最広義とは、「災害援助、青少年育成、文化事業などいのちを支える、またはいのちについての思索の機会を提供する仏教者を主体とした社会活動」である。しかし、定義はさまざまになされており、定まっていない。

共通して言えることは、臨床の場において、生老病死の苦を超えるために、本人のみならず、家族を含めて仏教に学ぶ活動、もしくは、そのことを行う施設を意味している。

沿革[編集]

  • 1985年に仏教の主体性・独自性を表すため、仏教を背景とするターミナルケアの施設に「ビハーラ」と命名することを、当時佛教大学社会事業研究所に所属していた田宮仁が提唱。また、このことの理念的研究のさきがけは田代俊孝である。彼の著である『仏教とビハーラ運動-死生学入門-』(1999年、法蔵館)はその後のビハーラ運動をリードした。
  • 1993年に新潟県長岡西病院に最初のビハーラ病棟ができ、その後各地に広まった。
  • 1998年には、仏教を学ぶ医療関係者で全国規模のビハーラ医療団が結成され、ビハーラ運動の推進とその普及がはかられている。
  • 2008年には城陽市浄土真宗本願寺派により「あそかビハーラクリニック」が開業した。

関係文献[編集]

関連項目[編集]

外部リンク[編集]

영양실조로 실명하게 된 임상 선교사 , 조수아의 그 향기 20151113


영양실조로 실명하게 된 임상 선교사 , 조수아의 그 향기 20151113https://www.youtube.com › 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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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라는 공간 속에서 진솔한 삶의 간증을 통해인생의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는 감성토크[조수아의 그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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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각장애가 판 할 때부터 시각장애 셨어요 아니면 간도의 장애를 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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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신 거예요 제가 9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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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사업을 하시다가 4 갑작스레 부두를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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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가산이 몰락 되고 갑자기 못 살게 되다 보니까 예 1 3년 좀 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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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정말 그지 처럼 살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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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눈이 갑자기 안 보였어요 때문에 가니깐 핸드가 그런 고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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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원인은 영양 영양 실조 뭐 신규 웅가로 뭐 여러가지 그런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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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9 셀 수율 도살 때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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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두 살 때가 어디 정도 3월 들을 파와 딴 기억들은 있으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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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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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날라다 면서도 보고 4 바다에 흠뻑 물결이 반짝이는 것도 보고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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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감성이 좀 풍부한 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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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혀 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예 그 때 실명을 했는데 다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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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시력이 0.2 라 시 저 남아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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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듀오 교정시 되기 전 안나왔어요 음 그래서 학교 순간을 잘 적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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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고 예 가난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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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집에서 자주 이렇게 가출을 했어요
1:13
가출을 눈도 잘 안 보여 때문에 거예요 그리고 집에 강북을 거 없고 학교
1:18
가면 학습이 진행이 안되고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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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서야 봉사하고 놀리고 그래서 어느 곳을 가든지 마음 자갈 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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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이게 너무 너무 힘든 거예요 제가 부산에 사는데 20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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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게 되고 서로 올라가니까 계기는 상황에 어라
1:38
저분자 무 담가 중하 부담 가치로 혼자 살아요 몇 살 때 제가 1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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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갈 때 학교 졸업하고 예 서울에 가서
1:49
연구자가 없으니까
1:51
그때 서울역 주변으로 해서 20 8일 구도 딱히 식당 일을 했어요
1:58
4 약간의 시력 밖에 없으니까 예 그 시력을 가지고 올바른 일을 못했죠
2:05
눈이 안 보인다는 이것을 말 하게 되면 1부 터져 안 써 주기 때문에 안
2:11
보이는 것은 피하고 갔는데 항상 3일만 지나면 다 톨 통해 나요
2:17
실습을 많이 했었어요 주소 공표가 안보이니까 배달
2:20
또 안되고 수문 팔에도 사람 표정이 않을 것이니까
2:24
예 수분 주문을 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요
2:29
그래서 한 3년정도 객지 생활을 하다가 너무 배고프고 그래서 길가에 있는
2:35
자전거 하나 이렇게 훔쳐서 팔다가
2:37
잡히게 되고 어청수 는 상담을 통해서 적어 안지 집으로 강제적으로 내려
2:44
오게 되겠죠
2:45
다시 tv 를 3년 반의 브라우저의 우리 생활 형편이 좀 좋아 치면
2:51
괜찮았을텐데 가정 3 관련글 별로 안좋았어요 그때 통해 아예 그래서
2:56
어머니가
2:57
구원 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좋겠다
3:02
저렇게 충격이었죠 왜냐면 머리 어머니는 절도 나를 안 버릴 것인데
3:10
그래서 구원을 들어가서 생각을 했어요
3:13
이제 나는 죽어야 되겠구나 괴롭 와서 좋겠다는 것 보다는 누군가에겐 않은
3:18
집이다 버림받았다 질내 버림받고 나는 칩니다
3:23
주는 나름 들고 심사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곳에 스
3:28
어제 생각이 관저에 도 함께 계시는 역사가 나타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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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후보 3 는 시각장애 들이 많아요
3:35
예 그것이 있죠 순교 샀는데 오셔서 세운 과 온 인데
3:41
하늘의 태양 에서도 사람들 마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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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계시다 음 생명 뿐이었어
3:48
예 나이 카우스 라는 곳이에요 빛이 집이죠
3:52
난 안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 건가 예
3:55
그것이 참 궁금했는데 근데 그 시각장애인들이
4:00
축구도 하고 바꾸다 보약 오도하고
4:03
아침 생활 시작 2 예배 시작 이거든요
4:06
4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 저에게 말씀해 주는 것이 저 들려
4:12
왔거든요
4:13
세상에 나를 벌고 세상에 나를 힘들게 해도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은 나를
4:20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않겠다는 그 음성을 저게 주셨어요
4:24
예 저 극의 감동을 했고 그곳에서 그는 복음을 접하게 되신 거예요 예
4:29
그곳에서 예수님을 늦게 되고 제생각이 환전이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죠
4:35
오직 뽑은 우지 기능 cts

평화와 협력을 지원하는 '니와노평화재단' - 더나은미래

[김동훈의 인사이트 재팬-⑫·끝] 평화와 협력을 지원하는 '니와노평화재단' - 더나은미래



[김동훈의 인사이트 재팬-⑫·끝] 평화와 협력을 지원하는 ‘니와노평화재단’
김동훈 PeaceWindsJapan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입력 2018.07.23.
09:30



‘협력’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을 지원하는 재단이 있다.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작은 비영리단체들을 지원하고, 매년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구현에 앞장선 이를 선정하는 평화상도 수여한다.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니와노평화재단’의 이야기다. 2000년에는 당시 ‘크리스찬아카데미’ 이사장이었던 강원용 목사가 재단에서 수여하는 ‘니와노평화상’을 수상했다. 20년간 재단과 함께하며 재단 행정을 총괄하고 있는 ‘타카타니 타다시(高谷 忠嗣)’ 니와노평화재단 전무이사를 만나, 40년간 평화와 협력을 지원해온 재단의 히스토리를 들었다.2017년 제34회 니와노평화상 수상식 ⓒ니와노평화재단

ㅡ니와노평화재단은 어떤 곳인가요?

니와노평화재단은 1978년에 설립된 공익재단입니다. 니와노평화재단은 종교간 이해와 협력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니와노평화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증진하는 활동을 하는 개인과 단체를 지원하는 사업들도 운영하고 있죠.

‘평화’는 조화가 이루어진 상태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인간’과 ‘인간’과 조화, ‘인간’과 ‘환경’의 조화, ‘인간’과 ‘사회’의 조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추구하는 인권, 환경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과 단체들이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삶을 목표로 활동하는 다양한 개인 및 단체들을 지원하는 기금의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에 ‘니와노 닛쿄(庭野日敬)’씨가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니와노 닛코씨는 불교종단인 입정교성회의 창시자이자, 종교계의 노벨평화상이라는 ‘템플턴상(Templeton Prize)’을 수상한 분입니다. 종교간 협력을 통한 평화활동의 목적으로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World Confererce of Religion and Peace)’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셨죠.

ㅡ구체적인 지원활동이 궁금합니다.

니와노평화재단은 불교 기반의 재단이지만, 종교를 초월한 협력과 평화 지원 활동을 합니다.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공통된 정신은 ‘평화’라고 봅니다. 평화를 위해 모든 종교들이 자신의 경계를 넘고 힘을 합쳐서 활동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평화 활동을 하고 있는 NPO를 위해 공모지원, 비공모지원, 임시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비공모지원은 사무국에서 단체와 사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것을 말하고, 임시지원은 긴급지원을 말하죠.

핵심사업은 매년 평화에 공헌한 개인과 단체 한 곳을 선정해 2000만엔 상금을 수여하는 ‘니와노평화상’입니다. 그 외에도 최근 북한 핵문제가 심각해지자 긴급 심포지움을 개최해 그 실상과 과제를 논의해보는 자리를 마련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일본에 왔을 때 평화문제에 대해 같이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죽음 직전의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임상종교사’ 자격과정을 만드는 것을 지원하기도 했고, 홈리스 단체의 사업비뿐 아니라 인건비도 지원해왔습니다. 2004년부터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에서 10년간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NGO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남아시아지원프로그램’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중국, 대만, 일본의 동아시아 종교계의 젊은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씰(SEAL. School for East Asia Leadership)’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해엔 제주도에서 개최했습니다.세계시민교육교재로 활용하고 있는 남아시아프로그램 보고서 ⓒ니와노평화재단

ㅡNPO를 지원하는 기준은 어떠한가요.

임팩트와 영향력을 중요하게 봅니다. 프로그램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확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면 선정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심포지움이나 학회를 개최할 때 참가자에게만 공개하기보단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확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라는 조언을 심사위원회가 제안하기도 합니다. 인재 양성도 핵심 요소입니다. 일방적인 지식 주입 방식은 지양합니다. 예를 들어 NPO를 직접 만들어가면서 스스로 사회적인 과제를 찾고, 외부와 협력합니다. 조직을 꾸려나가는 경험을 하면서 인재가 길러질 수 있도록 소셜비즈니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죠. 재단 내 담당자들이 우리가 후원하는 단체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단체들과의 소통을 강화해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노력도 지속할 계획입니다.니와노평화재단이 지원하는 약자의 빈곤문제 컨퍼런스 ⓒ니와노평화재단

ㅡ앞으로 재단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재단 본연의 역할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일본에 있는 많은 공익재단들과 중복되지 않도록, 효율적인 지원을 이어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재단이 앞에 나서서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는 뒤에서 밀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합니다. 또한 교육 분야처럼 10~20년 이후 성과가 나타나는 장기적인 시각의 후원을 강화하려합니다.



김동훈 PeaceWindsJapan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국제사회복지사. ‘국제개발협력’과 ‘소셜비즈니스’를 두 축으로 다양한 공익활동을 펼치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혁신기관 ‘피스윈즈재팬 Peace Winds Japan’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Program Coordinator’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본의 여러 공익활동 중 한국에서도 관심가질 만한 공익활동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