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6

希修 < 체면과 겸손의 과도한 중시는 그 자체로 이미 有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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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면과 겸손의 과도한 중시는 그 자체로 이미 有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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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해치면 안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 공통의 윤리이지만, 이 핵심을 제외하고는 각 사회나 시대의 가치 우선순위에 따라 윤리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특히 불교의 윤리와 상식적 윤리 사이에는 차이점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 것 같다. 우린 대개 상식적 윤리와 불교 윤리가 내용은 동일하되 기대되는 수준만 불교에서 좀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우리가 아는 불교, 즉 동북아의 대승불교가 유교와 도교를 이미 흡수했기 때문이고, 초기불교의 윤리와 상식적 윤리 사이에는 그 내용 자체가 아예 다른 경우들이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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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본인은 계율을 안 지키면서 남에게만 지키라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
부처님은 "너나 잘 하세요!"라 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위선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타적'alturistic의 측면에서 평가하셨다 (AN 4.99).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겐 솔선수범이 당연히! 요구되고, 리더가 아니라 해도 이런 경우는 대개 "자신도 실천 못하는 좋은 얘기를 늘어놓으며 잘난 척하는 위선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텐데, 부처님은 왜 이런 평가를 하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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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잘못임을 아예 모르는 듯 보일 때, 나는
(a) 나도 가끔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가 있으니 잘난 척 하지 말고 가만 있어야지 생각할 수도 있고
(b) 물론 나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이 사람은 선의의 거짓말이 계율에 어긋난다는 사실조차 아예 모르는 것 같으니 설사 내가 "너나 잘 하세요!" 비웃음 당하더라도 일단 이 사람에게 가르쳐 주기는 해야겠다, 생각할 수도 있다.

세속적 관점에선
(a)가 겸손한 것이고 (b)는 잘난 척이며 그래서
(a)는 무아, (b)는 에고, 뻔뻔, 나르시시즘 등의 평가를 아마도 받겠지만,

부처님은 (b)를 오히려 "남을 위해"라고 표현하셨다. 즉,
(a)는 내!가 남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이지만,
(b)는 나의 이미지보다 상대의 '안전' (계율을 어기지 않는)을 중심으로 한 생각인 것.

이 경우 실은 예상과는 반대로 (a)가 '유아'이고 (b)가 '무아'인 것. 그래서 부처님이 저런 평가를 하신 게 아닌가 추측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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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세속에선 왜 (a)가 더 칭찬받는 것일까?
X도 가끔 선의의 거짓말을 하면서 X가 Y에게 선의의 거짓말이 5계 위반임을 알려 주는 광경을 볼 때, 우리 대부분이 X를 '고깝게' 여기기 때문 아닐지.
타인이 좋은 의도에서 해 주는 바른 말조차 건설적으로 받아들이지도 흘려듣지조.차. 못하고 기어코 '고깝게' 듣고야 마는,
즉 take personally 하는 우리의 속좁은 자기중심주의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X보다 Y에 더 감정이입하는 것이고, 또 그래서 X를 "잘난 척 한다"/"가르치려 든다"며 비난하는 것 아니겠는지.

따라서, 타인에 대해 "에고가 강하다," "교만하다" 등의 평을 하는 사람은 실은 화자 자신이 그러함을 반증할 뿐인 것이고, 인간의 의식이 이렇게 병들어 있기에 그래서 매사 take impersonally 하는 not self와 no conceit을 부처님이 그렇게까지 강조하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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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비담마는 자신을 남 위에 두는 우월감도, 남의 아래에 두는 자기비하도 모두 'conceit'으로 정의하는데, 그러고 보면 소위 '체면'이라는 self-image는 극도의 conceit. '쉽게 상처받는' 사람도 그 '자신감 부족' 때문에 겉으론 '겸손'해 보이지만, 실은 take personally의 정도가 더 높음을 의미하기에 결국은 self/conceit이 그만큼 더 강한 것이며, 어떤 조직에서 A의 불합리함으로 인해 A와 B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분명 A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A와의 친분/의리 때문에 ‘중립'을 지킨다면 그것도 나의 '유아'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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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여, 동양 문화권에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서 표정이나 말로 자기표현 않고 조용히만 있으면 무조건 '겸손'='무아'라 여기지만, 초기불교의 not self, no conceit 가르침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목소리 크기가 기준이 아니고, 자신의 감정, 생각, 이익, self-image 같은 것들(*)로부터 마음 속에서 진정 얼마나 자유로운가?가 기준인 것. 인간이면 누구나 매사를 *을 기준으로 하여 자기중심적인 해석과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에 그래서 자기객관화가 어렵지만 중요한 것이고, 윤회의 대표적 원인인 집착중에서도 ‘나’집착이 가장 강하기에 그래서 또 무아가 중요한 것. 특히 주의할 부분은, 내가 '이타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상대를 사랑하는 나의 감정이나 상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나의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것이라는 사실. (맨날 고기를 사냥해 와 염소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자의 '염소 사랑'을 생각해 보시길. 사자의 '순수한 선의'조차 채식동물인 염소에겐 오직 스트레스/부담일 뿐.) "남 배려 말라"는 얘기가 아니고, 매사의 기준을 나의 감정/생각 대신 인과에만 두라는 것. 인과에 대한 나의 판단조차 최대한 객관화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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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언제나 그렇듯, 제가 적는 얘기들은 공부 차원에서 생각을 정리해 볼 뿐입니다. 틀릴 가능성도 다분하고 언제 바뀔지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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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저 길 옆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나와서 노래 한 곡 해 보세요.'라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기보다는 '저 노래 못 해요.'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이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잘났기 때문에 못하는 거고, 잘나고 싶거나 잘보이고 싶기 때문에 자유롭지가 못한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없거나 잘보이고 싶지 않으면 '노래 한 곡 하세요.' 할 때 '예'하고 노래하면 되는 거예요. '무슨 노래를 불러라, 어떻게 불러라, 잘 불러라.'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노래하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잘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입니다. ... ... '노래하러 나가세요.' 하면 나가서 노래 부르고, 사람들이 듣기 싫어서 '이제 그만 하세요.' 하면 또 '예, 알겠습니다.' 하고 들어오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노래 못 한다고 다섯 번쯤 빼던 사람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대부분은 그냥 평범한 노래를 안 부르고 옆에서 도와줄 수 없는, 모르는 노래나 가곡을 불러요. 이처럼 내가 남보다 잘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 법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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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明淑, Sungsoo Hong and 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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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에 대한 오해 #7. 남 집착이 Not Self, No Conc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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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 대한 오해 #5. 무조건 남을 내 위에/앞에 두는 것이 무아/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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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 대한 오해 #3.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 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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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을 듣고 행동을 보겠다"고 하는 공자님의 말씀이 있는데, 언행일치를 중시하는 동아시아의 유교적 윤리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말씀도 깊은 관점의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많이 고민해볼 부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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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훈
       네, 위에 제가 예로 든 AN 4:99 내용은 '자신도 실천하고 남의 실천도 도우면 최고이지만, 둘 중 하나라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우리의 상식과 너무 달라 저도 종종 충격 받을 때가 있는데, 뭐가 더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고, 다만 동북아에선 유교적 관점에 많이 치우쳐 있기에 보완의 차원에서 다른 관점도 숙고해 보는 것이 포용력의 증대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재미도 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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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希修
       예. 고민하는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좋은 이야기와 관점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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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곰..
      어렵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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