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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한국인의 탄생 : 네이버 매거진캐스트

한국인의 탄생 : 네이버 매거진캐스트





한국인의 탄생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  최정운 저

미지북스

2013.10.10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최정운 교수의 <한국인의 탄생 ­시대와 대결한 근대 한국인의

진화>(미지북스, 2013)는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을 망라한 한국의 대표적 소설들을

자료로 삼아 “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사상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

다. 이 글은 <한국인의 탄생>에 대한 국문학자의 서평이지만, “국문학자의 관점에서

정치학자의 국문학 연구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학문 융합 시대에 다른 분야에 대

한 연구를 시도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며, 최 교수의 책은 국문학을 재료로 했을

뿐 실제로 목표로 하는 것은 “정치사상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왜 한국의 소설을

이용해 정치사상사를 집필하려는 “비정통적인” 방법을 쓴 것일까? 그 사정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의 근현대 역사에는 서구의 경우와 같이 사상사로 읽고 분석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저서들, 텍스트가 거의 없다. 말하자면 이론적, 철학적으로 자신이 살던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 그런 체계적인 저술이 거의 없다.

(...) 이 책은 한국 근대 사상사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우리의 근대 소설

문학에서 창조되어 나타난 일련의 인물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 이런 식의 비정통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는 까닭은 우리의 근현대 사상사가

정통적인 방법론으로는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런 방법

론을 선택한 것은 여러 차례의 좌절을 겪은 후에 내린 결정이었다. (...) 방법론의

아름다움으로 학문 연구의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실증주의 사회과학, 특히 현재

미국 학계의 지배적인 흐름이 낳은 심각한 병폐다. (19~29면)



이 책은 오로지 “한국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체성(identity) 주제에 집중하고 있으

며, 소설이라는 것은 그러한 주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짐작된다. 하지

만 어떤 연구자가 “비정통적인 방법”으로 “좌절”을 겪은 끝에 어떤 책을 내놓았다고

고백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것이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인

모교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느껴온 것(10면)”의 결과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인의 탄생>을 “해방 70년이 되어가는 한국학문의 자기반성”으

로 읽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서평자는 이러한 저자의 연구태도가 깊은 학자적 양

심과 창의성, 열정의 결과라고 직관한다.

최 교수의 이 책은 국문학자들에게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국문학계에는 몇 가지 불합

리한 관행들이 있는데,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연구가 지나치게 분리돼 있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최 교수는 문학이 아닌 사상사를 바라보고 있는만큼, 이러한 구별을 인



정하지 않고 허균의 <홍길동전>부터 홍명희의 <임꺽정>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맥

락 속에서 작품을 분석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사상사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던 만큼, 소설 속의 “인물”을 분석하는 데에 치중한다. 그래서 홍길동, 성춘향, 신소설의 다양한 인물군, 이광수 <무정>의 이형식, 신채호 <꿈하늘>의 한놈, 김동

인 소설의 여러 주인공들, 이광수 <유정>의 최석, 홍명희 <임꺽정>의 임꺽정을 선

정해 분석하고 있다.



서평자는 일단 한국의 소설을 이용하여 정치사상사를 이끌어내려 한 최 교수의 시도

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인문학의 위기, 나아가 “국문학의 위기”가 심심찮게 언급되

고 있는 시점에서, 국문학에 대한 외부의 관심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에는 분명 위험성도 따른다. 그럼에도 저자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뜨거운 관심 때문에 “어렵게 이 책을 내게 되었다(11면)”고 고백하였다. 동시에 이러

한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데서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셨던 듯 “이렇게 분석되고 해석

된 결과가 다른 방법론으로 산출된 결과물보다 더 훌륭하고 진리에 가깝다고 주장할

근거가 부족하다(29면)”고 인정한다. 서평자는 최 교수의 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바, 즉 “분석결과를 진리에 가깝게” 하는 데 필요한 바를 밝히는 방식으로 논

의하려고 한다.

2

최 교수가 연구 자료로 소설을 선택한 것은 속된 말로 “소설이 예뻐서”가 결코 아니

다. 짐작컨대 저자는 “한국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 한국인의 정체성

을 철학적 이론적으로 논술해간 사상사적 저술을 먼저 검색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

교수도 지적했듯이 그런 저술들 가운데 학술적으로 권위있는 작품이나 고전의 반열

에 든 것은 거의 없다. 예컨대 우리는 미국인 하면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독

일인 하면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프랑스인 하면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 이탈리아인 하면 몸젠의 <로마사> 등을 떠올릴 수 있지만, “한국인” 하면 자신있게

내세울 만한 저술이 없는 것이다. 서양 각국의 경우에는 위에 언급한 고전들을 제외

하고도 세부적인 연구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주제로 한 탁월한 저술이 없는 까닭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설령 문제의식이 있었을지라도 중화(中華) 사상과 한문 글쓰

기의 압력 때문에 “한국인(조선인, 혹은 고려인)의 정체성”을 주제로 글을 쓰기가 어

려웠을 것이다. 민족 주체성을 다룬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나 일연의 <삼국유사>

등은 고려 후기에 나타났으나, 학문적 논술은 아니었다. 한국적(조선적)인 것에 대한

분과 학문(역사, 지리)적 관심조차 조선 후기에야 겨우 빛을 볼 수 있었다(안정복의

<동사강목>;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인간 집단”으로서 한국인 자체에 대한 관심

은 근대에 이르기 전에는 나타나기 힘들었다.

또한 근대 이후에는 최 교수의 말씀대로 우리 민족이 그러한 체계적인 저술을 할 시

간적 여유가 없었다. 최 교수는 책 속에서 실용적 지식만을 숭상하고 기초적인 지적

작업을 경시하는 한국의 “반지성주의”를 매우 열렬한 어조로 비판하는데, 한국인들

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론적­철학적 저술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

가 그러한 “반지성주의”에 대한 증거일 것이다. <한국인의 탄생>은 그러한 반지성

주의의 주류적 흐름을 뚫고 나온 첫 성과인 셈이다.

그러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듯이, 우리에게 이러한 사상사적 저술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리에게 그런 문제의식이 없어서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특별히 게을러서도 아닐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앞서 말한 사정 때문

에 자기정체성에 대한 저술을 하기가 어려웠고, 근대 이후에는 한국인의 삶이 급격히

근대화(이는 일본화 또는 서구화를 뜻함)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났다. 또한, 당

연한 이야기지만, 저술이란 언어로 이뤄지는 것이므로, 좋은 저술이 나오려면 한국어

가 학술어로서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화(近代化)는 특히 초기에

일본의 식민통치와 일본어 이식이라는 기형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서 학자들조차 한국

어로 글쓰는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한국어가 “학문의 언어”로 인정된 것조차

얼마 되지 않으며, 자연과학을 포함한 많은 학문적 관행에서는 아직까지도 한국어가

학술어로서 불신받는 것이 현실이다.

서구에서 국민 정체성에 대한 이론이나 저술이 활발한 것은 그들이 독자적 방식으로

일찍부터 학문을 발달시켰기 때문이다. 학문은 그저 책읽기나 글쓰기만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한 나라의 학문은 물적 인프라(출판산업, 도서관, 대학, 실험실, 연구지

원기관)들을 필요로 하며, 학문의 성과는 대체로 그 나라의 국력과 정비례한다. 특히

“국민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국가의 경영방침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제국의 통치

경험이 있는 국가에서 발달하게 마련이다. 위에서 언급한 저술들을 보더라도 <갈리

아 전쟁기>는 로마 제국 최고 권력자의 프랑스인론이며, <게르마니아> 역시 로마제

1)

국 최고 지식인의 독일인론이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나폴레옹 제국의 경험을 생

생히 기억하고 있던 프랑스 지식인의 미국론이며, 몸젠의 <로마사>는 19세기에 세

계를 향해 제국을 선포한 독일인의 이탈리아인론인 것이다.

로마인은 제국 통치 경험 탓에 프랑스인, 독일인에 대해 대략 2천 년 이전부터 관심

을 가져 왔으며, 이후 힘의 균형이 변하면서 정반대 방향의 연구도 이루어졌다. 즉 고

대에는 이탈리아인(로마인)들이 프랑스나 독일에 관심을 가졌다면, 근대에는 프랑스

인(토크빌)이나 독일인(몸젠)이 외국(미국, 이탈리아)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몸젠의

경우 신생 제국 독일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로마사를 연구한 측

면도 있을 것이다. 상호 연결되어 있는 유럽 각국의 지정학적 특질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 각국이 14세기 르네상스 이후 엄청난 노력을 들여 자국어 글쓰기를 발

달시켰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중세 내내 중국문화와 한문 글쓰기의 압력에 시달리며, 성리학 등 중

국 학술의 일부만을 편향적으로 수용하던 한반도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20세기 이

후 한국이 일본의 영향 하에서 근대화를 겪고 서구화된 지금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너무나 많은 요소가 개입하게 되었고, 이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

는 동서의 여러 문헌(언어를 포함한다)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굳건한 학문적 인프라

로 뒷받침된, 한국어 혹은 외국어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한국인 학자들이 나와야 한

다. 최 교수께서는 이러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의 부진을 비관하시는 듯한

데, 사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보다 조금 덜 중요한 문제로서, 서평자가 현재 더욱 궁금한 것은 “소설을 선정하는

편법”을 최 교수가 감행한(?) 것이 어느 정도 적실한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다. 얼핏

보아도 최 교수가 <한국인의 탄생>에서 자료로 삼은 소설의 선정기준은 그다지 분

명치 않다. 그러나 저자는 연구의 필요성을 시급하게 느꼈고, 학문적 정합성보다 일

단 발언의 공론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소설이다. 저자가 소설을 사상사적 연구 대상으로 주목하게 된 과정을 서평자 나름대로 추론해

보면 이렇게 될 것이다:

(1)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사상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2) 한국인들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사상사적으로 깊이 있는 저술을 하지 못했다.

(3) 한국인의 실제 모습과 의식을 한국인의 손으로 자세하게 그려낸 자료는 소설

뿐이다.

(4)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소설들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추출해 연구한다면 한국

인의 정체성에 대한 사상사적 접근이 가능하다.

필자는 위의 추론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위와

같은 방법론으로 소설을 활용할 경우 검열이 문제의식을 왜곡한 작품은 제외하거나

제한적으로 다뤄야 한다. 그런데 일제시대의 대부분 작품은 저자와 검열자의 공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약이 많았다. 저자는 그 문제에 대해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검열이란 단순히 완성된 텍스트를 첨가, 삭제, 편집하는 것만을 뜻하

지 않는다. 검열 제도가 작동하는 전제에서 창작의 자유가 위축된 사실 자체가 문제

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자가 선정한 여러 작품들은 텍스트 해석만으로 결론을

내리기에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곧 언급할 이광수의 <유정>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경

우이다.

국문학계에서는 대체로 한국소설의 원형을 세속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보고하는 고려

시대의 벼슬인 “패관(稗官)”의 기록에서 찾는다. 세속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온갖

번잡하고 시시하며 때로는 저속하고 음란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이른바 “소설”의

감이 되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말 자체가 “작고 사소한(小) 이야깃거리(說)”란 뜻

아닌가. 나는 최 교수의 정치학적 소설 연구가 “시정(市情)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라 경영의 기본”이라고 믿었던 고려시대 지도층들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믿는

다. 단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패관의 이야기가 사소하고 저속한 것은 상관이 없다. 단 거기에는 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진실성이 포함돼야 한다. 진실되지 않으면

아무리 고상한 것도 소용없다는 것, 그것이 “소설(小說)”의 정신이라고 서평자는 믿

는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소설이 허구(fiction)라는 것 때문에 “소설=거짓말”이라고 이해

하고, 소설가를 무슨 거짓말쟁이, 말재주꾼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소설의

본모습을 잘못 이해한 결과다. 소설이 실제 현실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

러나 “좋은” 소설은 현실에 접근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이 소설은 참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때에 그 소설은 성공한 것이다. 단순히

이것은 흔히 말하는 현실주의(사실주의, 리얼리즘) 소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논픽션이나 자서전, 회고록 같은 것을 쓰지 않는 이상, 아니 어쩌면 그 경우에

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과학에서도 정치가의 회고록을

100% 믿지는 않을 것이다. 회고록 저자의 기억력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의도적

2)

으로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으며, 저자의 의식이나 세계관 자체가 편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문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도들은 “진정한 현실은 영원히 개별적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한계 너머에 있다”는 상대주의의 금언(金言)을 늘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근대

소설의 발생도 마찬가지이다. 서구의 근대 소설가들이 “허구(거짓)” 장르로서 소설

을 개발한 데에는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의 “진실”을 포착하려는 강력한 개인적 의지

가 작용하였다. 공산주의자 엥겔스가 반동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경향의 작가인 발자

크의 소설을 격찬하며 “어떤 역사서보다 프랑스 19세기 초반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것도 소설의 이러한 마력 때문이었다. 반대로 이

러한 진실성이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부족한 소설도 있는데, 우리는 이것들을 추려

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역

사에 대한 전망과 전체 사정을 고려하는 안목을 필요로 하는 매우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3

<한국인의 탄생>이 이 시대에 갖는 여러 가지 미덕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성과는 신소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연구를 촉구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

다. 최 교수는 이인직의 <혈의 누>(1906)와 <은세계>(1908) 등을 분석하면서, 조선시대 말기에 대한 우리의 역사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 또한 이 시대는 조선

왕조의 운영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여 마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요약되

는 “홉스적 자연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특히 첫 번째 지적에 완전

히 공감한다. 한국인의 국사지식이 미흡하다는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들어서 식상하기

까지 하지만, 특히 조선 말기에 대한 역사 지식의 부족은 거의 참담할 지경이다. 그리

고 이것은 개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서평자는 한국 근대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

한데도 크게 먹칠이 된 두 구간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1894~1904년이고, 다른 하

나는 1938~1945년이다. 첫째 기간은 청일전쟁으로부터 촉발된 일본 주도의 국

가 시스템 개조기간인 “갑오개혁”부터 러일전쟁까지의 기간이며, 둘째 기간은 중일

전쟁부터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기까지의 기간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첫

째 기간이 <한국인의 탄생> 초반부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신소설이 잉태, 성숙되고 있던 시기였다.

최 교수의 설명대로 신소설은 이상하고 기괴한 느낌을 주기까지 하는 소설이다. 문학

적으로 미흡할 뿐만 아니라, 살인 납치 강간 등 온갖 음모와 협잡이 난무하는 지옥과

같은 세계다. 최초의 신소설이라 할 <혈의 누>가 나온 것은 1906년이므로 앞에서

내가 말한 이른바 “먹칠구간”은 벗어나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1906년에 갑

자기 <혈의 누>가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일전쟁(1894년)으로 인해 부

모를 이별하고 생고아가 된 평범한 조선의 소녀를 “납치하여 미국 유학을 보내고 마

는” 가혹한 내용의 이 소설은 짐작컨대 이인직의 머릿속에서 “첫 번째 먹칠구간” 내

내 잉태되고 자라났을 것이다. 1906년은 이인직이 그것을 손으로 옮겨 종이 위에 옮

겨 적은 해일 뿐이다.

이인직은 흔히 말하는 “골수 친일파”로서, 1910년에 있었던 조선병합의 실무책임을

맡았던, 어떻게 보면 “한일병합의 실행자”였다. 이런 사람이 최초의 신소설 작가라는

것은 솔직히 말해 누구라도 직시하기 언짢은 현실이다. 그러나 이인직은 이토록 대한

민국의 전사(前史) 속에서는 기억하기조차 고통스러운 배신자였음에도 “최초의 신소

설 작가”로 남아 21세기의 우리들한테까지 “나를 기억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에

게는 “나는 기억될 만한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러한 믿음에는 근거가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근대사의 첫 번째 먹칠구간의 비밀이다.

이인직의 <혈의 누>는 1894년 평양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평양 사는 일곱 살 여자

애 옥련이가 조선 땅에서 일어난 청일전쟁에 휘말려 부모와 생이별한다. “착한 일본

군”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 가고, 거기서 4년간 심상소학교를 다니며 신교육을 받는

다. 그후 다시 6~7세 연상의 조선 청년 구완서를 우연히 만나 함께 미국유학을 떠난

다. 옥련은 미국 워싱턴에서 고등소학교를 우등졸업하고 그 소식이 현지신문에 실려

생이별했던 부모와 연락이 닿는다. 그것이 1902년이고, 옥련의 나이는 15세였다. 최 교수는 <혈의 누>를 한마디로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해서 공부의 노예로 만들어

일본으로 미국으로 보낸(124면)” 이야기로 규정하셨는데, 참으로 정곡을 찌른 평가

이다. 이 소설은 결코 정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며, 현실의 이야기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근대소설의 이념은 “삶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허구를 도구로 사

용”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실제 있었던 역사적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묘사는 작품

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인직이 구완서가 아닌 김옥련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현실에 대한 인식능력이 떨어지거나, 작가로서 역량이 부족한 결과라고 볼

3)

수밖에 없다. 일곱 살 짜리 여자아이가 1894년에 미국 유학을 간다는 것은 “진실성

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 교수는 이러한 사실 지적에 머무르지 않

고, 왜 이 시점에서 이런 소설들이 집중적으로 창작되어야 했는지 하는 물적 조건을

묻는다. 최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독특한 종류의 소설이라는 판단과 분류를 떠나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이

러한 독특한 작품들이 어쩌다, 왜 이 시대에, 이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었는가 하

는 것이다. (...) 사실 구한말 역사에서 1898년 독립협회가 해산되던 시점부터

1904년 러일전쟁과 1905년 을사조약에 이르기까지의 시기 동안 어떤 일이 벌어

졌는지,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지, 한국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이 시대

는 기본적인 역사가 전혀 씌어지지 않은 암흑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72면)

참으로 적실한 문제제기이자, 국문학계의 연구관행에 대한 사회과학자의 정당한 비

판이다. 나 또한 최 교수의 이러한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최 교수는 이 시기

에 "신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런 특이한 소설들이 나오게 된 이유를 우리

역사의 첫번째 먹칠구간(1894­1904) 초기에 공동체의 붕괴와 홉스적 자연상태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최 교수가 파악한 신소설의 특징을 인용한다.

공동체가 개인으로 분해되어 모든 사람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다투며

공포에 떠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범죄도 마다하지 않고 여유만 있으면 자신

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그런 공간, 모든 사람들이 아귀가 되어 버린 그런 세상

을 (신소설은­인용자) 그리고 있다. (89면)

이 시기를 다루는 3장 2절 <자연상태의 삶과 죽음>은 이 책에서 가장 읽기 고통스

러운 부분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데, 첫째는 좋든 싫든 한반도의 오백 년 역사

를 이끌었던 조선왕조의 처참한 몰락과정과 그 속에서 겪었던 백성들의 비정상적 행

태들을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이고, 둘째는(사실 이것이 더 큰 문제인데) 우리 학계가

이러한 상태의 원인을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자기고백 때문이다. 서평을 쓰

기로 마음먹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가 크게 저자께 놀란 것 중 하나는 학자적 양

심이라는 말로 단순히 말하고 말 수 없는 어떤 솔직함과 자기진단을 발견했기 때문이

다.

우리가 그토록 나락에 빠졌던 이유에 대해서 밝히는 것은 앞으로 과제이지만, 그 결

과에 대한 최교수의 진단은 정곡을 찔렀다. 그는 조선말기 홉스적 자연상태에 빠진

한반도의 백성들 가운데 일부는 구원의 길을 일본과 병합하는 데서 찾았고, 그러한

대안에 대한 반발이 근대 민족주의를 형성시켰다고 분석한다(162면). 이제, 서평자

가 앞서 언급한 한국 근대사의 첫번째 먹칠구간이 형성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한국을 일본에 진상(進上)한” 이른바 친일파 1세대가 형성된 기간인 것이

다. 친일파의 기원에 대한 최 교수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우리가 인정하기 고통스러

울지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고, 이제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 할 때가 왔음을 선언하

고 있다.

아마 그때 조선 땅이 살만한 곳이었다면 이용구도 송병준도 (이인직도 물론 포함된

다­인용자) 그렇게 비참한 존재로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더 많은 애국자가 나왔

을 것이다. 이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시대에

그토록 많던 친일파를 용서까지는 못해 주어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168면)

다시, 이인직의 <혈의 누>로 돌아가보자. 이인직은 대체 이 작품을 왜 썼을까? 이

작품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의 물리적 역량이 조선인들에게 충분히 인식된

1906년에 나온 작품이다. 내용 자체에는 거의 현실성이 없지만, “일곱 살 난 여자애

가 일본과 미국으로 탈출하는 것만이 희망”이라는 비현실적인 내용의 소설이 나왔다

는 사실 자체가 시대의 진실이 되어 버리는 기막힌 작품이었다. 즉 "소설 내용:개별

적 현실사건"의 대응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엥겔스가 발자크 소설을 분

석할 때 말한 바 리얼리즘의 과제이다), "작품의 존재:작품을 낳은 시대"의 대응이

문제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문학연구의 과제를 넘어선 것이며, 문학을 사회과학적

으로 분석하는 <한국인의 탄생>이 성립하는 지점이다.

4

지금까지 나는 책의 전반적 특성과 장점, 전체적 한계, 그리고 한국학계는 물론이거

니와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이 책이 갖는 중요성과 가치를 주로 언급하였다. 이제는

세부적인 문제점(그러나 상당히 중요한)을 지적하고자 한다. 저자는 책 7장에서 "새

로운 전사의 창조"라는 제목으로 이광수의 비교적 짧은 장편소설 <유정>을 분석한

다. 이 부분은 국문학계의 원로 김윤식 교수와 큰 견해 차이를 빚고 있어 논쟁의 여지

가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필자는 국문학자의 관점이 아닌, 가능하면 최 교수 본인

의 방법론에 입각해서 작품의 선정과 분석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짚으려 한다.

저자는 이미 책 서두 부분에서 "이 책에서 우리 근대문학사의 명작들을 읽는 방식은

국문학에서 시도하는 방식과 상당히 다를 것(26면)"이라고 밝혔다. 당연한 이야기

다. 국문학에서는 작품을 구성하는 언어 자체의 특성이나, 언어표현과 사회현실의 관

계를 연구한다. 반면 신소설에 대한 분석을 우리가 살펴봤듯이 저자는 사회현상, 사

상사적 현상으로서 문학작품을 본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의 사회과학적 의미를 찾으

려고 한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국문학연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최 교

수의 독법이 국문학연구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달라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평자가 판단하기에는, 유감스럽게도 최 교수께서 이러한 "사회과학적 분석

방법"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그러하며, 이

는 결론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예컨대 7장에서 저자는 이광수의 <유정>을 국문학

자들이 반성해야 할 정도로 세밀하게 독해하고, 그 결과를 해석으로 내놓고 있다. 그

러나 서평자가 보기에 이러한 세밀한 독해는 (분명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저자 본인

이 표방한 방법론과 배치된다. 최 교수는 분명히 문학을 사상사, 사회사적으로 접근

한다고 밝혔음에도, 유독 <유정>을 다룰 때만은 언어 텍스트 자체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서평자는 주관화와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7장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 이 장은 1933년 10­12월에 걸쳐 춘원 이

광수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유정>에 대한 분석이다. 작품 내용은 최석이라는 독

립운동가이자 교육자가 유부남임에도 동료의 딸이자 제자인 남정임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고, 주변의 시기와 비난을 견디지 못해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로 가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 작품을 상당히 중요한 작품으로 간주

하는데, 그것은 저자의 다음과 같은 해설에서 잘 드러난다.

최석은 이광수가 자신의 시대, 일제 강점기에 만든 '강한 인간'의 최신 모델이었

다. (...) 그의 강함의 핵심 요인은 정임에 대한 사랑과 자신을 지키겠다는 이성이

모두 최석 안에서 뜨거운 대결과 갈등을 통해 강화되었다는 데 있다. 최석의 죽음

은 목숨을 대가로 사랑과 이성의 진정성과 위대함을 증명하는 순교였다. (419면)

춘원이 살아있다면 매우 기뻐할 만한, 과연 작품의 가치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생

각된다. 서평자는 저자의 이러한 평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싶지만, 굳이 말하라

고 한다면 비판적이다. 단, 서평자는 이것이 단순한 호불호의 문제, 개인적 선호의 문

제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사실 우리 근대사의 두 번째 먹칠구간인

1937­45년의 기원과 관련된 것으로, 일부러 무게 잡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지극히 엄중한" 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나는 근대소설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그것이 허구를 통해 성취하려는 진

실"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기준은 분과학문의 영역을 넘어선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혈의 누>를 다시 생각해 보자. 전통적으로 국문학계에서는 이 작품을 비

판적으로 다뤄 왔다. 작가도 극렬 친일파고, 우리가 앞에서 분석했듯이 역사적 사실

과도 맞지 않고, 사건들은 우연이 반복되고, 일본인은 좋게 묘사된다. 그럼 이 작품이

아무 가치가 없는가? 아니다. 전통적인 문학연구의 방식, 그러니까 작품을 구성하는

언어와 구조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저열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

리가 이 작품의 “존재 자체”를 그 사회가 낳은 일종의 현상으로 본다면, <혈의 누>

는 그 시대의 불구성과 아픔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제목부터

생각해 보자! 피눈물이면 “피눈물”이지 왜 “혈의 누(血の涙)”란 말인가? 이는 이인직

이 최소한 구어가 아닌 문자언어에서는 한국어보다 일본어에 더 익숙했다는 것을 보

여주는 증거다. <혈의 누>는 언어예술이 아닌 사회 병리현상의 일부로 다루어야 하

는 것이다.

최 교수께서 연구의 설득력을 높이려면, 이광수의 <유정>을 분석하는 데서도 이와

같은 사회과학적 잣대를 적용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작품의 내용을 세밀하게 독해하여 결론을 유도하는 데 그쳤다. 저자의 <유정>에 대

한 호감은 요약하면 이렇다. 주인공 최석은 이성 제자를 육체적으로 사랑하려는 동물

적 본능을 초인적 이성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인한 인간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살과 도피의 유혹을 벗어났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최석은 이길 수 없는 싸움

에서 결코 지지 않았다(418면)"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강한 인간(전사)” 창조의

모델은 심훈의 <상록수>로 계승됐고, 이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사랑은 “좋아하는

이성과 결합하는 행복한 감정”이 아니라 “강한 인간을 단련하는 진지한 일”이 되었다

고 저자는 결론짓는다(427면).

서평자는 저자의 이런 결론을 수긍하기 어렵다. 먼저 이러한 저자의 분석은, 서평자

가 보기에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내세운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따른 것이 아니다. 저자가 그렇게 했듯이 <유정>의 내적 언어에만 주목하면, 이 작품은 제자에게 마음

이 흔들린 지식인의,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 내적 독백으로 읽히는 것이 당연하다. 최

교수는 국문학계의 원로 김윤식 교수가 <유정>을 "방랑의 광증의 분출"이라고 평한

것에 대해 강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지만(374면), 서평자가 보기에 김 교수의 평가는

작품을 보는 또다른 시선으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유부남인 민족지도자가 불륜의 유혹을 극복하면 강인한 인간

이 될 수 있다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정상적인가? 저자도 이것이 “잔인하고 변태적인

길(428면)”이라고 적시하였다. 저자께 정중히 여쭙고 싶다. 이러한 잔인하고 변태적

인 길을 “강자가 되고 전사가 되는 진정한 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냐고. 이것은

“불륜의 유혹을 극복하지만 그로 인한 내적 고통으로 죽음에 이르는 남성”은 매우 강

인한 존재가 된다는 말인 셈인데, 과연 이런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신소설

을 분석할 때 나타났던 날카로운 사회과학적 시선이, <유정> 앞에서는 갑자기 무뎌

지는 이유를 서평자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저자의 충분한 보충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기를 원한다.

지금의 상태로서는 저자가 “전사의 창조”라는 자신의 결론을 위해 작품을 끼워 맞췄

다는 느낌을 준다. “허구를 통해 진실을 추구한다”는 근대소설의 기준에서 볼 때, <

유정>은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가져다 주었는가? 어쩌면 이광수 본인은 이렇게 생각

했는지도 모르겠다. “민족 지도자로서 고결한 도덕성은 유지하고, 사랑의 이상도 놓

치지 않으려면, 처절한 내적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 결론은 삶의 포기가 아닌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죽음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던 최 교수가 이러한 춘원의 논리를 비판하지 않

는 데서 서평자는 놀라움을 느낀다.

춘원의 위와 같은 논리는 조금만 살펴보아도 소영웅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며, 역

사와 현실에 대한 관심을 거세당한 정신주의(精神主義)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

한 정신주의, 정신의 승리가 공허한 것임을 통렬히 비판한 작품이 <유정>보다 12년

전에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내놓은 소설 <아큐정전>이었다. 여기서 루쉰은 냉철한

현실인식과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긍정하는 정신”은 결코 약자들이 취해서는 안되

는 길임을 설득력 있게 말했다. 설령 춘원이 제시한 최석의 길이 진짜로 “강자(전사)

로 단련되는 길”이라고 한들, 이는 대다수의 백성들이 갈 수 있는 길은 아닌 것이다. 최대한 높이 평가한들 그것은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지도자가 취해야 할 높은 정신

적 극기의 사례”일 뿐이다. 우리는 차라리, 이인직이 <혈의 누>와 같은 “병리적 신

소설”을 쓴 이유를 탐구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광수가 왜 <유정>과 같은 “병리

적 근대소설”을 썼는지 물어야 한다.

5

저자인 최 교수도 모르지 않겠지만, 국문학계의 춘원 이광수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간단하지가 않다. 말년의 친일행각 때문이라고 생

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부정적 평가는 이광수 소설의

가치가 실제로 낮다는 판단의 결과다. 여기서 “가치”란 언어예술의 완성도를 뜻하기

도 하고, “허구를 통해 진실을 탐구한다”는 근대소설의 정신에 미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인직의 신소설이 그러하듯, 이광수의 작품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사회적

증거” 정도의 뜻을 지니는 것 같다. 이러한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는 인색한 국문학자

들은, 이광수 소설을 과도한 도덕주의로 인해 현실을 바라보는 능력을 상실한 변태적

시각의 산물로 처리하기까지 한다.

서평자 역시 이광수 소설의 문학적 가치는 별로 없다고 보지만, 사회과학적 시각에

입각한 역사적 가치의 평정(評定)은 엄밀하고 분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다. 그가 변태적인 소설을 썼다고 욕할 것이 아니라, 왜 이광수는 그런 소설밖에 쓸

수 없었는지, 그가 살았던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것

은 조상에 대한 후손의 의무다. 그러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발

견할지도 모른다. 마치 <친일인명사전>이 우리 조부와 부친 세대의 모습이자, 우리

의 자화상인 것처럼 말이다.

이광수가 <유정>을 썼던 1930년대 초반은 이인직이 <혈의 누>를 쓰던 시대와 많

이 달랐다. 일단 이 시대는 최 교수가 “홉스적 자연상태”라고 규정했던 역사의 먹칠

구간이 아니었다. 일본의 힘일지언정 강력한 치안(治安)과 내정질서가 확립되어 있

었고, 많은 사료들도 확보돼 있어 한국인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지냈는지 꽤 심도있

게 알 수 있다. 1926년의 만세운동,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을 효율적으로 진압한

총독부 통치가 상당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조선인들 중에서도 포기

4)

5)

6)

할 사람은 포기했으며, 저항할 사람은 이미 외국으로 가서 거점을 잡은 상태였던 것

이다. 문학사적으로 보아도 이 시대를 준비했던 1920년대는 한국어로 된 상당수의

문학이 축적되는 첫 10년간이었다. 춘원 이광수(1892년생)만 해도 한국어로 된 선

배의 글을 읽고 문학수업을 할 수 없었던 불행한 세대였다. <무정>(1917)을 통해

조선 전체에 문명(文名)을 널리 떨친 춘원의 글을 읽으면서 “문학”을 배웠던 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1920년대였고, <유정>은 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정>을 읽을 때, <혈의 누>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잘 모르는

시기에 접근하기 위한 열쇠로서 작품에 접근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우리는 이렇게

어느 정도 알려진 시대의 특성과 <유정>이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춘원은 대체로 사회 현실을 폭넓게 묘사하기보다 자기의 분신과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내적 갈등을 즐겨 그렸다. <무정>(1917)의 이형식

이 그랬고, <유정>(1933)의 최석이 그러했으며, <사랑>(1938)의 안빈이 그러했

다. 특히 <유정>과 <사랑>은 사회 지도층 인사인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이라는 제

재(題材)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 얼핏 보면 똑같은 작품처럼 헷갈릴 정도이

다.

루쉰은 자기 작품의 주인공인 아큐(당시 어리석은 중국민중의 전형)의 정신주의를

자신의 팔을 잘라내는 심정으로 풍자, 비판했지만, 이광수는 풍자나 자기비판과는 거

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진지하고 고지식했으며, “진심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러한 믿음은 본인의 성향에도 기인하겠지만, 그러한 성향을

결정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도산 안창호(1878~1938)의 영향이었다. 흔히 도산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는 방식으로 준비론 내지 실력양성론을 주장하였고, 이광수는 충

직한 계승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유명한 “흥사단 입단문답”에서 알 수 있듯이, 도

산이 우리 민족에게 요구했던 것은 “진실된 마음”과 “거짓없음”이었다. 그리고 그것

은, 오늘날 사람들이 얼핏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

이었다. 흥사단 입단문답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문: 군은 어느 나라 제품을 안심하고 사시오?

답: 독일 것, 미국 것. 문: 우리나라 제품은 신용 못하시오?

답: (쓴웃음을 지으며) 신용 못합니다. 문: 어떤 나라의 상공업이 신용을 못 받고서 그 나라가 부(富)할 수 있겠소?

답: 상공업에 신용 없이는 그 나라가 부할 수 없습니다. (이광수, <도산 안창호>, 하서, 2000, 171면)

믿음이 없으면 경제도 발전할 수 없다는 도산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외제차를 선호

하는 분위기가 불식되지 않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에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있고, 춘원이 그토록 정신주의에 깊이 기울게 된 까닭도 여기

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춘원의 작품 경향은 언제나 일관되다. 심지어 1941년에 나

온 친일소설 <그들의 사랑>에서도 춘원은 “진심으로 일본에게 충성을 다해야 일본

인으로부터 차별받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여 동료 조선인들에게 집단구타를 당

하는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조선인 마키하라(본명 이원구)를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춘원 정신주의(精神主義)의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그

대로 <유정>의 위험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진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될 수

없지만, 진심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자명한 진리다. 생각

해 보자. 왜 독일차가 좋은가? 오늘날 벤츠 본사가 있는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

지방 사람들은, 예로부터 “고지식하고 검소하며 놀 줄 모르는 일벌레”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광수도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이

다. 춘원은 문사들치고는 특이하게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

자세와 개인적 성품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뛰어난 자연과학 기술, 그러한 기

술을 산업화할 수 있는 물적 인프라, 그리고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산업의 발달

없이, 진심만으로 독일차가 나올 수 있었을까? 준비론 사상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도산의 가르침은 단순히 진실하라는 것이 아니었고, “진심을 다해

물적 토대를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우리 민족에게 더 큰 시련을, “유

부남의 불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시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6

이광수가 <유정>을 쓰고 있던 1933년 내내, 도산은 차디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

어 있었다. 1932년 김구의 기획에 따른 윤봉길 의사(義士)의 상하이 폭탄 테러로 인

해 마침 그곳에서 한국독립당 활동을 하던 중 애꿎게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 국내로

압송되었던 것이다. 도산(준비론자)은 당시 이승만(외교론자), 김구(무력행동론자)

등과 함께 국외 독립운동 세력의 한 중추였고,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던 중에 강

제로 입국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광수가 도산의 체포를 슬퍼하고 자주 면회를 갔다

고 기록한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 와중에 쓴 소설이 유부남의 정신

적 불륜을 정신적 투쟁으로 승화시킨 <유정>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1938년

3월 감옥에서 얻은 병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도산이 경성제대병원에서 숨을 거두신

직후에도, 춘원은 <유정>과 매우 비슷한 분위기의 정신적 불륜소설 <사랑>을 썼

다. 물론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할 자유가 있고, 자기가 모시던 어른이 돌아가신다고 해

서 불륜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창작에 임하는 이광수의

이런 행태가 아름답거나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광수는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어떤 연구자의 말대로 고아였던 탓에 “애정 기갈증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일까?

이 자리에서 해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어쩌

면 이광수만이 답할 수 있는, 어리석은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서평자가 말하고 싶은

취지는, 이토록 엄중한 시기에, 왜 민족의 스승을 자처한 이광수는, 그토록 사랑놀음

과 관련된 주제밖에 (물론 단순한 쾌락의 사랑놀음은 아닐지언정) 다루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또한 일종의 병리현상일 수 있다는 가설을, 우리는 진지하게 검토해

야 한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설 수준에서나마, 당시의 정세와 관련지어 찾고 싶다. 이광수가 <사랑>을 내놓은 1938년은 한국 근대사의 두 번째 먹칠구간이 시작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때 국문학계에서는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국어

조차 쓰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한국문학이 멸절될 상황에 놓였고, 그러한 시기가 있

었다는 것을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그러한 이름을 붙이게 했을 것이다. 실

제로 거의 모든 문인들이 친일작품을 지었고, 그 부끄러운 역사는 실제로 1950~60

년대에 걸쳐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먹칠되었다. 그것을 다시 복원하여 그 시대의 맨

얼굴을 드러낸 책이 임종국의 <친일문학론>(1966)이며, 그 성과를 이어받아 사학

계의 성과로 이뤄낸 것이 <친일인명사전>(2009)인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이때 이런 암흑기가 시작된 것일까? 가장 개연성 있는 설명은 당시의

정세 변화다. 1937년 7월 관동군이 북경을 공격함으로써 중일전쟁이 일어났고, 그

보다 한달 앞선 6월에 온건한 준비론을 표방하던 동우회를 친일화하기 위한 공작으

로 이광수와 안창호 등 동우회 간부가 수감되었던 것이다(안창호는 1932년 수감되

었다가 35년에 가출옥했고 망명을 준비하다가 서두르지 못해 재수감됨). 안창호 선

생의 육신은 이 두 번째 수감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맞이했고, 춘원도 6개월이라는

비교적 긴 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이광수는 출감한 뒤(1937.12), 흥사단과 동우회의

큰 어른인 도산을 잃고(1938.3), 본격적인 친일의 길에 나서며, 일본 사법부의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가공할 만한 “진실된 친일(親日), 겉과 속이 같은 친일(親日), 불쌍한

우리 민족이 살길로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친일(親日)”의 길을 가게 된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면, 우리는 <유정>에서 춘원이 제시했다는 이른바 “전사

의 길”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섣불리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진정한 강자(强者)일까? 춘원 이광수라는 사람은 도

산의 1차 검거의 원인이 되었던 1932년의 윤봉길 의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침묵했다. 그의 세계관(준비론, 민족개조론)에 따르면 윤의사의 행동은 진정한

강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객기의 분출이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객기의 분출이었을

까? 윤봉길 의거가 없었다면, 1943년의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장개석이 연합국 수뇌

들을 상대로 “한국의 독립”을 언급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을까? 1945년 9월

미국 군함 미주리 호의 함상에서 이루어진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에서 일본의 서명

대표는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1887~1957)였다. 그는 다리를 절고 있

었는데, 미주리 호 함상의 그 수많은 미군들 가운데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

으리라. 그는 윤봉길 의거의 현장에 있었으며, 윤의사가 던진 폭탄에 다리가 절단되

었던 것이다.

윤의사의 행동을 회고하면서, 우리는 이광수가 던진 “강자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깊이를 그와 다르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탄생>은 우리 학계에서 최초로

이 문제를 제기한 책이지만, 너무 많은 사정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 가지 사실을

더 지적함으로써 이광수식 “강자 만들기”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다. 한국인 가운데

저항시인 윤동주(1918~1945)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이광수가

친일행각에 열중하던 1941년 당시, 시를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그러

나 그는 “시를 쓰려거든 일본말로 쓰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서슬퍼런 압박에 굴복하

지 않았고,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마치 <유정>의 최석이 자신의 욕망에

굴복하지 않고, 대신 끓어오르는 욕망의 보복으로 스트레스성 죽음을 맞이했듯이. 그

러나 차이도 있다. 윤동주의 죽음은 “실제 상황”인 반면, 최석의 죽음은 허구인 것이

다. 그것도 그냥 허구가 아니라 “그것의 진실성을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지 못하는 허

구”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할 것이다. 누가 진정한 강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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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무엇을 생각하

[아포리아] 유럽의 자

작가란 무엇인가

[편집후기] 작가들은

7

나는 이미 <한국인의 탄생>에 대한 서평으로 시작하여 너무나 많은 말을 내뱉고 말

았다. 글을 쓰는 내내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고, 실천 없는 글쓰기의 무력감을 절

감하며 말을 조심해야 했다. 정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겠다. 다만 더 이상 길어져서는

안되겠기 때문에, 저자께 드리고 싶은 몇 마디의 말씀과 함께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

다.

<유정>이외의 다른 작품들에 섬세한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 힘과 권력이라는

주제는 사회과학의 주요 테마인 것이 분명하고, 그 점에서 “강자가 되는 길”을 제시

한 한국소설들을 찾아 분석한 취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유정>말고도, 이광수 말고도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작가와 작품들이 있다. 여성적 섬

세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갖춘 강경애(1905~1943)의 처절한 강인함, 황무지 같은

식민지의 황야를 관통하며 사회주의자가 되어간, 그리고 결국은 북한의 애국열사릉

에 묻힌 이기영(1895~1984)의 품위 있는 강인함, 그리고 어떠한 논리와 협박으로

도 자기 말을 잃은 민족의 독립은 있을 수 없다는 자명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윤동

주의 순교자적 강인함을 기억하고, 이들이 현대 한국인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바

까지 탐구해야 최 교수의 작업은 완성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이신 최 교수의 저술에 깔린 문제의식으로서 “반지성주의에 대한 비

판”을 언급하겠다. 우리 사회에서 순수한 학문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공부는 출

세의 수단이 된지 오래이다. 이때 “출세”라 함은 결국 <한국인의 탄생>에서 누차 이

야기했던 “강자 되기”의 다른 말일 뿐이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가, <혈의 누>의 배

경이 되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홉스적 자연상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빼앗기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학문이고 뭐고

간에 그 절대원칙의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IMF 사태 이후 그러한 흐

름은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서평자가 생각하기에 이광수가 진실된 정신을 그

토록 강조하고, 술도 마시지 않고, 평생을 쉬지 않고 일하면서 지낸 이유도 바로 이러

한 “급박한 생의 요구”였을 것이다.

최 교수의 취지가, 우리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 “반지성주의”의 근원에

이광수의 <유정> 같은 작품들이 놓여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라면, 서평자는 전적으

로 동의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광수의 “진실된 정신”은 진실된 것이 아니었다. 생존

을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광수에게는, 가장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1938~1945)에, 생존이라는 더 큰 명제 앞에서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민

족”이라는 가치를 지켜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반면, 서평자가 보기에 안창호 선생

이나 윤동주의 “진실된 정신”은 반지성주의(생의 욕구를 위해 지적 작업의 가치를 후

순위로 미루는 것)를 벗어나 있다. 거기에는 생존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의

근원은 국제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품위(안창호)이거나, 탁월한 수준의 민족교

육과 보편적 기독교 정신(윤동주)이었다.

서평자는 이러한 진지하고 엄청난 문제를 고민할 기회를 주신 저자 최정운 교수께 깊

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열띤 토론과 폭넓은 연구가 이어져, 진정으로 이 사회가 반지

성주의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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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4년 2월

'아포리아북리뷰'시리즈보기(37/39)

주석

제공 [아포리아 북리뷰] Vol.2, No.2, 2014.02 배수찬,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www.aporia.co.kr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 ­ 변화와 연속의 서사

학교 속의 문맹자들 ­ 공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명의 지배영역 ­ 생명의 법철학적 판단기준

문화로 본 종교학 ­ '종교' 너머의 종교 연구를 꿈꾸며

전쟁은 속임수다 ­ 리링의 병가론과 중국의 전통

자살의 전설 ­ 분노와 상처, 사랑과 그리움으로 빚어 낸 아버지의 초상들

매거진 전체 기획/단행본 한국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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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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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말하면 “한국인이란 누구인가(혹은 무엇인가)?”를 가장 먼저 진지하고 급

박하고 심각하게 질문한 이들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식민통치의 주체였던 일본

인들이었을 것이다. 경성제국대학에서 강의했던 아키바 다카시의 조선무속고나

다카하시 토오루가 조선학술사 같은 것들이 그 증거다. 물론 이런 저술들은 오늘

날 부분적으로 인용 없이 이용되거나, 혹은 식민사관으로 매도되면서 잊혀져 발

전적으로 극복되지 못했다.

2

이때 언어는 한국어이면 가장 좋겠지만, 정체성론은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을

독자로 하기도 해야 하므로 굳이 한국어가 아니라도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극단

적으로 말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영어로 쓰고, 필요하면 번역을 해도 된다. 예컨대

퀘이커교도였던 일본인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 1862~1933)는 1899년에 무

사도(Bushido ­ the Soul of Japan)를 영어로 써서 미국에서 출간했고, 베스트셀러

가 되었다. 이는 그와 연배가 비슷한 서재필(1864~1951)이 한국에서 독립신문 영

문판 원고를 직접 썼던 일과 상응한다. 다만 니토베는 초기의 제국적 통치경험과

물적 인프라,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자기 국가에 대한 자부심 덕에 학문

적 저술을 할 수 있었던 반면, 서재필은 그러한 것들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몽과 언론활동에 먼저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

이 시기가 왜 먹칠구간이라고 생각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

다. 1894년은 갑오개혁이 있었고, 1895년 을미사변, 1896년 아관파천, 1897년 대

한제국 선포, 1898년 만민공동회 운동 등 최소한 이 시기의 전반부만큼은 상당히

많은 역사적 사실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 번째 먹칠구간은 두 번째 먹

칠구간에 비해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

실제 내부 정황에 대해 섬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컨대 1894년의

갑오개혁이 일본군의 경복궁 포위라는 무력시위로 인해 강제된 것임을 우리는 학

교에서 가르치는가? 1898년의 만민공동회 운동이 한국사에서 최초의 공화주의

(共和主義) 운동이었으며, 그것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이승만(대한민국 초대 대통

령)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우는가? 그리고 1898년 이후 러일전쟁이 일

어나는 1904년까지의 침묵 기간이 서양사에서 말하는 일종의 왕정복고(王政復

古)에 해당하는 반동(反動) 시기라는 것을 우리는 아는가? 더 나아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는 배우는가? 서평자가 보기에 한국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섬세함의 부족이며, 그 문제의 원인은 고통스런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와 솔직함

의 부족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못지 않은 역사인식의 왜곡, 역사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인 “과거에서 배우는 미래를 위한 교훈 찾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4

서평자는 김윤식 교수를 두둔하거나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김윤식 교

수의 평가는 춘원문학에 대한 단순한 폄하가 아니라는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김 교수는 춘원의 성격과 작품세계의 발전 과정 전체 맥락에서 <유정>에 대해 가

치를 매긴 것이고, 실제로 김윤식 교수의 <이광수와 그의 시대>는 문학현상을 사

회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한 저술이라는 점에서 최 교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도 한다.

5

물론 그런 와중에서도 그가 친일에 이르는 내적 과정을 그 자체로 살피고,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비판적 평가를 내리는 연구도 있다. 국문학자

로서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국문학계의 면모도 꽤 다양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대표적인 연구로 심원섭, <이광수와 아베 미츠이에, 일본어 시 창작의 문제

>, {일본 유학생 문인들의 대정­소화체험}(소명출판, 2009) 참조.

6

대표적인 것이 {한국문학통사}에서 보여주는 조동일 교수의 평가이다.

11

제공

출판사 편집후기 및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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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의견 전체의견

jssa**** 저는 본 저서의 미흡한 부분을 다루는 최정운 교수님의 후속 저서가 곧 출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 저서를 읽고 "장군의 아들 1편"만 본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져서

요. 하지만 "장군의 아들"처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곧 "장군의 아들 2편"이 나오길 기

대하겠습니다^^*

2014­02­14 10:56 신고

답글

2016/09/27

참세상 기사게시판 :: 주례토론회 :: 박근혜의 ‘제2 새마을운동’과 박원순의 ‘마을만들기’ - [주례토론회]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 신자유주의의 보충물

참세상 기사게시판 :: 주례토론회 :: 박근혜의 ‘제2 새마을운동’과 박원순의 ‘마을만들기’ - [주례토론회]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 신자유주의의 보충물

박근혜의 ‘제2 새마을운동’과 박원순의 ‘마을만들기’

[주례토론회]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 신자유주의의 보충물



요즘 각 지역마다 ‘마을만들기’가 한창 유행이다. 주제도 다양한데, 관광, 안전, 교육 등등 공동체에서 요구되는 각종 인프라가 주제가 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에 의해 소규모적으로 진행되었던 ‘마을만들기’ 사업을 이제 지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중앙정부까지 나서 적극 홍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과열양상은 아무래도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심지어 새누리당에선 서울시장 선거를 겨냥하여 박원순 현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협동조합, 마을만들기 사업 등등을 “좌파 풀뿌리 조직들의 돈줄”이라 공격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최근의 이런 ‘마을만들기’ 현상이 갑자기 일어난 건 아니다. 오래전부터 낙후된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서로의 후생을 도모하기 위해서 조금씩 만들어졌었다. 대표적으로 ‘성미산마을’이 있고, 몇 해 전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퇴촌 남종 생활문화네트워크’, ‘우각로 문화마을’, ‘함께 사는 성북마을문화학교ʼ 등등이 있다. 한편에선 이들의 성공사례를 보고 새로운 대안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모범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무너졌던 지역공동체의 원형들을 다시 일깨워주기도 하고, 경제위기 이후 점증하는 삶의 위기 대처할 몇 가지 지혜를 엿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마을만들기‘ 담론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운동과 함께 결합되면서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새마을운동에 주된 기원을 두고 있는 관주도 사업으로는 국토해양부의 ‘살기좋은 도시(마을)만들기’ 사업과 안전행정부의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민간주도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주로 지자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같은 조직이 대표적이며, 2012년부터는 자치구별 지역단체, 복지단체, 주민자치위원회들이 마을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정책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 단위에서는 지역별 활동가들을 주축으로 2006년부터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가 구축되어 교류가 진행되고 있고, 향후 이 조직은 (가칭)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로 확대될 전망이다. 다른 한편, 2014년부터는 안행부를 중심으로 ‘제2의 새마을운동’이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마을만들기’ 분야에서 정부와 민간 사이에 힘의 관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마을만들기’사업의 제도화가 단순히 풀뿌리운동의 확장으로만 볼 수 없다는데 있다. 박근혜정부의 ‘제2의 새마을운동’이나 박원순시장의 ‘마을만들기’가 지향하는 사회관리 정책은 항상 정세적인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하늘에서 좋은 무엇이 떨어진 것처럼 생각할 수도 없고, 단순한 유행이라고만 터부시할 수도 없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과열되고 있는 전국의 ‘마을만들기’ 현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짚고자 하는 것은 이런 사업들이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 등등 점검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위기 국면에서 ‘마을만들기’ 현상이 보여주고 있는 사회관리정책의 변화에 대해서 짚어보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인 것을 통한 위기관리’에서 등장하는 대응방식과 공동체주의의 가상들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존재론적 불안과 여러 대응들

먼저 우리가 겪고 있는 공동체의 변화를 몇 가지 문화적 코드를 중심으로 쉽게 이해해 보자.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완득이’는 둘 다 주변화 된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을 둘러싼 공동체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전자에는 억압과 통제를 상징하는 ‘아버지’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태권사범인 생부와 시도 때도 없이 몽둥이질을 해대는 교련선생,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학생부 등등. 그런데 후자엔 그런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상징들 대신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장애를 가진 생부와 이주민인 생모,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운동권’ 담임선생은 예전처럼 주인공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소룡을 동경했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의 선택은 결국 억압적인 ‘아버지’들을 힘으로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완득이의 선택은 배제된 이들과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삶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전자의 갈등구조가 ‘종적동일화’를 강조했던 국민국가라는 공동체적 상징 속에서 벌어진다면, 후자에서는 더 이상 모든 걸 규정하고 통제했던 국민국가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아버지’의 소멸로 인한 존재론적 불안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코드로부터 신자유주의적 관리자본주의의 변화를 해석해 보자. 일상화 된 고용 불안과 불안정 노동 같은 경제적 공포에서 보듯, 이제는 삶의 전반적인 유형들이 케인스주의에서 의해서든 발전주의에 의해서든 보편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원인을 ‘사회적인 것’이 종말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사회적인 것’을 회복하기 위한 공동체주의적 전망들이 주목받고 있는 현상들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현대의 원자화 된 개인들이 공동체라는 범주로 재결속함으로써 잠재적, 현실적 불안을 해결하고자 하는 맥락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영화 ‘완득이’의 결말에서 보듯이 말이다.

그런데 현대자본주의의 변화 속에서 ‘사회적인 것’이 정말로 사라졌다거나 회복불능 상태에 놓인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 ‘개별화’를 주된 주제로 설정하는 일련의 관점들은 사태를 간명하게 묘사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존재론적 불안을 ‘개별화’의 문제로만 단순화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에 대한 해법마저도 단순화될 수 있고, 따라서 ‘사회적인 것’을 둘러싼 외재적 요인을 외면한 채 실존적 차원의 문제로만 귀결될 수 있다. 나아가 역사적 분석과 정치적 토론의 공간들이 차단될 수 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화에 따라 삶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됐다고 해서 노동력 관리의 측면, 즉 주체화양식을 배경으로 하는 사회정책이 사라졌다고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신자유주의를 세계화시켰던 영국의 대처의 회고록에서 보듯, 사회라는 것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재배치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내가 의미했던 것은 사회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이웃과 자발적 결사체들의 생생한 구조라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서 사회란 핑계거리가 아니라 의무의 원천이었다.”-마가렛 대처)

그 이유는 무엇보다 재생산이 사회적인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곤란 때문이다. ‘사회적인 것’ 없이 대안적 삶이 불가능하겠지만,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것’ 없이 축적과 통치도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개별화’가 실제 움직이는 힘이라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여 전체화하는 힘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사회적인 것’ 그 자체의 위기라기보다 그것이 상징했던 현실세계에서의 체계와 관계의 위기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한동안 성행했던 자기계발 담론 같은 것들도 단순히 개인들의 세태 적응 방식이라는 통속적 이해로 예단할 순 없다. 이런 담론들은 신자유주의적 위기관리의 측면에서 나오는 전체 사회의 재배치 효과 속에서만 창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관료제 정부의 대안으로 제시됐던 기업가적 정부 모형(신공공관리론)에서도 사회의 활성화가 관찰된다. “참여와 팀워크 및 네트워크 관리”, “참여적 책임 확보”, “민간위탁”, “할 수 있는 권한 부여” 등등이 ‘신공공관리론’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가 시민사회와 연결되는 측면은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적 폐해를 관리하려고 하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담론이 스티글리츠에 의해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했었다. 그 이유는 80년대 등장하여 전 세계로 퍼진 신자유주의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에 제대로 안착되지 못하고 지역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경제체제도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선 노동력을 움직이도록 하는 관리정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97년 IMF사태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가 전면 도입되었는데, 시기적으로 볼 때 몇 해지나 곧이어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 관리담론이 함께 도입되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사회관리정책이 여기에 맞닿아 있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변화는 행정학에서는 비판이론과 공동체주의에 뿌리는 두고 ‘신거버넌스론’, ‘신공공서비스론’이 부상했고, 사회과학에서는 ‘사회자본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었다. 가령 퍼트넘은 ‘결속하는 사회적 자본’에 비해 ‘연결하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각 집단 내에 결속적 조직화와 더불어 집단이기주의를 뛰어넘는 집단 간의 연결된 조직화가 개인 집단 사회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되며, 아울러 정치와 경제 발전을 유인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론과 주장들에서 무엇보다 네트워크, 신뢰, 협력, 공동체, 친밀성, 지속가능성, 이타성 등 ‘횡적 동일화’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 자본 개념은 개인들의 연결과 결속을 통해 정치 참여와 경제 활성화를 촉진시킨다. 그리고 자조적 협력을 통해 주변부의 빈곤을 경감시키고 지구적 불평등을 개선할 원동력으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 ‘시민’이나 ‘주민’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적 가상의 창출은 그 어떤 과제보다도 유효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자원봉사나 취미활동 등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동일화 논리가 현대사회 특유의 존재론적 불안을 순치시킬뿐더러 발전과 위기관리의 전망으로서도 적절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가운데 공동체운동이 다양하게 결합된다. 소박하게는 개별화된 존재들을 연결함으로써 잃어버린 공동체적 감각을 회복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 같은 문제들을 초래한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해서 이념적, 실천적 대안으로 공동체운동을 설정하기도 한다. 대다수의 경우에는 여러 측면이 혼재되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창출된 공동체에 대한 가상들은 이중적으로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에 대해서 주체들이 지향하는 가치, 그 자체가 단일하지 않을뿐더러, 정부나 중간에 개입해 있는 사민사회단체 또는 개개의 시민들이 접하면서 그 결과물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복합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적 가상에 대한 검토가 절실히 요구되어 진다. 공동체는 언제나 문제적이지만 그것 없이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공동체로 인해 정치의 가능성이 폐절될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어떤 정치적 동력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에 혼재된 공동체주의 모호성

이러한 맥락에서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을 들여다보자. 공동체에 관한 오늘날의 전망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근대화와 경제발전과 맞물려 70년대 이래로 전개되어 온 사회동원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새마을운동’은 억압적인 동시에 생산적인 근대적 주체를 기를 수 있는 윤리들을 강조했다. 한편 국가가 주도하되 주민의 참여를 결합하여 상호주관적인 관계들을 조직하고자 했다. 사회동원이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흐름은 지금의 안정행정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에서 주도하는 ‘자원봉사활동’ 사업들의 흐름과 직결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저항과 해방에 관한 전망에 맞물려 80년대부터 등장한 ‘민중공동체’ 담론이다. 여기서 민중은 이전 세대와 달리 국가에 대한 충성에 반발하고자 했던 주체였다. 그리고 공동체는 민중들이 구성하는 집합체이자 민중적 삶의 방식을 가능케 하는 장소였다. 지금 이러한 흐름은 마을 주민, 시민사회단체들 및 일부 지역 정부가 관장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여기서 쟁점이 된 것 이러한 역사적 계보가 단선적이지만은 않다는데 있다. ‘새마을운동’을 위시로 한 국민공동체 담론은 발전주의에 기반한 국가 주도 운동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를테면 관주도적 성격을 내포하기는 하지만 마을 활성화 사업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민중공동체’ 담론이 민간 주도적 성격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민중이라는 형상에 특정한 규범을 강제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새마을운동-자원봉사’와 ‘민중공동체-마을만들기’의 연결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마을만들기’와 ‘민중공동체-자원봉사’의 연결들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

이러한 모호성은 존재 양식의 조건인 ‘관계의 구성’ 논리와 재생산에 기여하는 ‘사회적 동원’ 논리가 애초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실제로 ‘새마을운동’이나 ‘민중공동체’ 담론 모두 이 논리들 중 어느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한 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 역시 공동체적 관계를 재형성하고자 하는 전략과 특정한 지향점을 향해 사회적 동원을 추구하는 전략을 모두 포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 둘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곤란함을 의미한다.

한국의 국민적-사회적 국가 형태는 행정 경험 부족과 재정 조달 어려움 등으로 인해 노동력 관리의 상당한 동력을 언제나 시민사회 부문으로부터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예전엔 이런 역할을 종교단체들이 운영했던 사회복지원이 담당했었다. 따라서 사회적 요구들을 끌어안는데 있어 한계가 노출된 국가의 전반적인 무능력 상태는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일으키는 강력한 동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국가권력의 억압적 성격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식 역시도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따라서 ‘민관합동 관리체제’의 기회구조가 개방됐을 때 가급적 민간 주도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었다. 그래서 이런 맥락들이 위기관리 메커니즘에 시민사회가 참여하게 되는 구조적 원인으로 일부 작용한다.

사회 보호의 대리보충으로서 자원봉사활동

자원봉사활동의 시작은 식민지 시기의 자선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교사들의 활동이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지배자들은 식민지인들을 군사력과 노동력으로 동원해야 했는데, 이들을 ‘정상인’으로서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다.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에 의해 긴급구호 차원의 공공복지가 제공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족한 통치경험과 한국전쟁까지 거친 정부로서는 사회적 약자를 관리하고 재생할 만한 처지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고아, 빈민, 무의탁 노인 구호 부문은 ‘펄벅재단’이나 ‘미국장로선교회’ 같은 외국계 민간단체에 의존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70년대 들어 경제성장이 이륙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된 한국 사회는 서서히 사회발전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 시행이 대표적이다. 그 전까지 시행되었던 조치들이 헌법의 생존권 조항에 근거한 것이라면, ‘사회복지사업법’은 사회권 차원에서 시행된 것이었다. 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는 복지 욕구 다양화와 사회복지조직의 합리화로 특징 지워진다. 이로써 사회복지의 지평은 아동, 노인, 장애인 등으로 확대됐다. 90년대부터는 책임성과 투명성 기조 하에 기존의 민간 사회복지조직들을 합리화할 필요성 제기되었다. 이러면서 민간과 공공이 공동으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가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기존의 종교단체에서 시작했던 각종 민간 복지단체들이 법인화되면서 독립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는 발전국가로서 한국이 서구사회와 다른 사회적 국가 경험을 모태로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사회의 구성원들을 건전한 국민이자 건강한 노동력으로 키우는 것이 국가의 기능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적 국가 형태는 시민사회로부터 행정적, 재정적 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민, 관 협력 체제에 근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서구사회가 겪었던 발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최근 서구에선 포스트 신자유주의적 신공공서비스론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건 마치 우리가 이미 겪었던 민관 협력 체제에서의 사회관리정책과 맞닿아 있다.

1997년 8월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거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사회복지사 1급 자격은 국가시험으로 치러졌다. 사회복지시설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됐으며 개인 운영도 가능해졌다.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이러한 조치들은 사회관리 메커니즘에서 전환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시민들의 복지를 지원하는 사업에서 정부는 배후 관리에 집중하고 민간이 전면에 나선다는 것을 공표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5년에는 사회복지사업 67개 분야를 중앙 정부관할에서 지역 정부로 이양하는 등, 이와 같은 추세는 가속하고 있다. 외국 선교사들에게 의존했던 40년 전과 비교하면 괄목할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추세는 공익법인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1995년 768개였던 사회복지 관련 법인은 2006년 2617개로 3.4배 증가했다. 학술, 장학, 자선, 공익의료 법인도 2.6배 증가했다.

이로서 작아진 정부 대신에 커진 시민사회가 그 역할을 점점 대신하게 되었다. 실제로 2008년 국내에 등록된 자원봉사자는 모두 4백 4십 만 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인구 중 대략 11명중 1명이 자원봉사 경험을 해봤다는 의미이다. 1996년 전국 248개 시군구에서 설치하기 시작한 자원봉사센터는 2002년 완료됐다. 이는 정부의 사회복지 대책이 자원봉사의 조직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재구축하는 맥락으로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관리하는 국가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이런 변화는 경제적 수준이 향상된 데에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2000년대 당시는 외환위기 이후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신빈곤이 생겨나면서 중간계급이 몰락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자원봉사활동이 증가한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자원봉사의 필요성이 새로운 차원으로 인식되면서 범사회적 운동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한 에너지로써 작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육성을 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인은 모두 사회위기라는 하나의 공통된 현상으로부터 나온 듯하다. 시민들로서는 도탄에 빠진 사회를 자체적으로 구조할 필요가 있었고, 앞서 언급한 바처럼 정부로서는 사회안전망의 일선으로부터 후퇴하면서 시민사회의 조직들을 활용하고 체계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자원봉사활동이 아주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2007년 태안기름유출 사건이다. 당시 자원봉사자가 수는 무려 123만 명 수준이었다. 이들의 노고로 태안 앞바다는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상당 수준으로 회복했다. 교통비를 포함해서 하루 일당 15만원으로 계산해 봐도 1815억 원이나 되는 비용이다.

자원봉사활동을 조직하는 범정부적 조치들은 비교적 치밀한 편이었다. 복지시설 설립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함에 따라 사회복지 관련 공익법인들이 속속 신설 혹은 등록되었고, 이렇게 등록된 단체들은 각 지역 자원봉사센터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었다. 남은 문제는 실제 활동할 자원봉사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해답은 비교적 간단했다. 그 표적은 바로 10대 청소년과 공무원이었다. 최근 10년 동안 자원봉사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도 이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10대 자원봉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중학생들은 매년 20시간씩 자원봉사활동이 의무로 규정됐다. 고등학생들은 각종 대학입학전형에서 요구하는 자원봉사 점수를 채우기 위해 비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동참한다. 대학생들도 사회봉사학점과 취업에서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동참한다. 이들 뿐 아니라 70만 공무원 중에서 무려 12만 명이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한다. 지자체별로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봉사활동 포인트가 쌓이면 다양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주5일제 도입 이후 고비용 놀이문화를 저비용 봉사활동으로 대체하자는 캠페인도 한 몫 한다.

이로써 국가가 방치한 사회안전망을 시민들이 구축하는 구조가 완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해방 직후 사회관리에 무능했던 국가와는 다르다. 신자유주의적 인간이 자기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주체가 되듯이, 오늘날 국가도 그 자신이 신자유주의화 된 행위자로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한에서만 사회에 개입한다. 노동력 생산과 사회보호를 위해 범사회적 자선을 요구했던 맥락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오면서부터 심상치 않은 굴절을 거치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한편, 너무 막다른 골목에 몰았다 싶은 경우에는 자신의 대리자를 내세워 보호비용을 최소화하고 통치방식을 효율화하는 것이다. 국가의 사회복지정책과 민간의 자선사업은 상호보완적이었다. 이러한 체계는 마치 이중운동과도 같이 움직인다.

도시빈민운동에서 도시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마을만들기’

다음으로 ‘마을만들기’로 넘어가 보자. 자원봉사 쪽이 중앙정부 부처별로 기초, 광역 지자체에 체계적으로 연결되는 데 반해, ‘마을만들기’ 운동은 각각의 사업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분산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것의 시작은 도시빈민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비슷한데 도시빈민들의 주거환경을 놓고 공무원들과 부닥치면서 운동이 발전해왔다. 그러다 점점 도시환경 개선책을 시민단체가 세우고 제안하면서 민관거버넌스 형태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90년대 디자인 그룹들이 결합하고 이후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참여하면서 도시재생사업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사회관리 역할과 도시재개발 논리가 마을공동체사업으로 투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역사적 고려사항 중 하나는 이 관행이 주거정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엔 도시재개발 논리가 놓여있다. 대구 삼덕동 담장 허물기 사업, 서래마을 주거환경개선사업, 북촌 한옥마을, 노원구 백사마을 등등 모두 원주민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린 재개발사업이 중심에 놓여 있었다. 당연히 재개발문제에 있어서 수익성 문제가 대두된다. 초창기 북촌 ‘한옥만들기’도 전면재개발을 원하는 원주민들의 심대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그러다 90년대 후반 DJ정부부터 문화관광에 대한 투자가 많아지게 되었는데, 싹쓸고 재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 상품으로서 마을을 개조하는 방법으로 원주민들이 돌아서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 900억이라는 재정이 투여되었다.

‘마을만들기’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의 몇 가지 특징 중에 하나 기존의 재개발사업이 불가능한 낙후지역들이다. 민간개발업자들이 포기한 지역들인데, 암반 지역이거나 연남동 같은 연약지반 지역, 성북구 장수마을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지역에 도시재생사업의 선택지 중 하나로 ‘마을만들기’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상당수 존재한다. 재개발을 포기한 지역들이 ‘마을만들기’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재개발 논리가 ‘마을만들기’의 내재적 동력이었던 셈이다.

최근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책에 따라 비용이 많이 드는 임대주택 건설보다는 비교적 적은 재정으로 도시재생사업을 할 수 있는 ‘마을만들기’ 방식이 부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북촌한옥마을’은 정부가 매입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갔지만, 서래마을 주거환경개선 사업의 경우 15억 정도 수준에서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마을만들기’의 부상은 공기업들의 과다부채 때문인데,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는 방식보다 ‘마을만들기’가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동원 방식은 마치 새마을운동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제2의 새마을운동’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 갈등은 이념적 대척점이라기보다 할당된 재정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며, ‘마을만들기’ 사업이 창출하는 정치적 헤게모니 갈등이다. 일례로 자원봉사센터에 있는 분들이 ‘마을만들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상당히 경계하는데, 지자체의 사회복지관련 재정지출에서 서로 시소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원봉사활동’과 ‘마을만들기’는 오늘날 공동체적 가상이 순수한 형태로 결정될 수 없는 구조화된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거기엔 행정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국가에 대응하고자 하는 도덕적 시민들의 적극적 시도와 복지 및 통치 비용을 민간화하고자 하는 국가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동체 관념의 모호성에 따라 대안 지향성과 같은 논지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유인될 수 있다. 최근 박근혜정부가 ‘제2의 새마을운동’을 제창하고 지역개발의 신성장 동력을 삼으려 하는 것도, 실은 공동체적 가상이 내포하는 모호성 및 관주도와 민간주도 사이의 형식적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공동체적 전망을 대표하는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이란 결국 사회통합 및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와 윤리적 시민성을 발현하고자 하는 시민 개인들의 이념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 차원의 이야기일 뿐, 실제적으로는 사회서비스 조달과 지역 활성화를 필요로 하는 정부, 그리고 호혜의 보람과 생활 개선 및 이력 수집 등의 목적의식을 가진 시민 개인들의 실질적 이해관계가 만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 하에서 탄생한 마을공동체와 자원봉사의 민관 거버넌스는 정부의 행정서비스 제공과 민간의 민주적 참여를 기능적으로 통합하면서 계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라 할 수 있다.

‘위기관리’의 위기대응책, 횡적동일화와 국가의 특수법인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란 사실 적대를 관리하는 체계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적인 것의 재발견이란 위기관리의 위기를 재차 관리하고자 하는 국면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적인 것, 공적인 것, 그리고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문제들이 잠재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의 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네트워크, 친밀성, 공정성, 지속가능성 같은 덕목들로는 채 충족되지 않는 영역이 엄존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것이 죽었다는 판단 하에 공동체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기도가 있지만, 정작 사회적인 것이 죽었는지도 불투명하고 공동체조차도 해답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문제가 되곤 한다.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가 돼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조건과 현실이 남긴 난점들을 통해 어떤 질문 거리들을 남길지가 중요하다.

이제 질문은 공동체라는 가상으로 나타난 사회적인 것이 결국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여기서 경제 비판 없는 제안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남는다. 그런 까닭에 공동체적 전망을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 경제 분야와 접합하고자 하는 시도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개는 금융화가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정작 금융화를 표적으로 삼는 비판에는 착수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는 최근 영미권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회 혁신 채권(social impact bond 또는 사회성과 연계 채권) 상품을 도입해서 사업의 재무 조달 방편을 삼으려고 한다.

대개의 ‘사회적’ 활동가들은 국가가 행정적으로 재정적으로 무능력하다는 사실 때문에 위기관리의 사명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시민개인들은 자기계발을 비롯한 신자유주의적 주체화라는 조건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인 것의 발현은 사적, 경제적인 것과 무한한 긴장 관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안이어야 할 공동체가 자족적인 화폐공동체나 안전공동체 정도로 퇴행할 가능성이 상존하게 되는 것이다.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한 아파트 부녀회의 선동이나 재개발 지역에서 벌어지는 주민들간의 갈등에서 우리는 많은 사례들을 보아왔다.

아울러 통치비용과 리스크를 민간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관리국가의 전략은 공동체적 전망에 외적 위협으로 작용한다. 정부 행정에서는 여러 가지 인적, 재정적, 지역적 제약에 따라 신공공관리론과 신공공서비스론을 상호보완하고 혼합하고자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시민사회 진영은 이 과정에서 공동체주의의 온전한 실현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정부와의 거버넌스에 동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거버넌스를 통해 민주적 참여를 기획하는 시도들이, 때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헤게모니화에 기여할 위험성을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에는 ‘횡적 동일화’와 ‘국가의 특수법인화’라는 쟁점이 놓여있다. ‘횡적 동일화’ 논리는 오늘날 공동체적 가상의 의미에 있어 그 무게중심이 화폐공동체에(또는 안전공동체에) 있음을 은폐한다. ‘국가의 특수법인화’ 현상은 국가의 책임 방기를 정당화하고, 노동력 관리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통치불능 상태를 유예시킨다. 이와 같은 논점들은 공동체적 전망을 기획하는 데 있어 특정한 쟁점들을 담고 있다. 사회적 동원 방식 또는 행정적 추진 방식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향되고 있는 공동체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달라진 공동체적 가상의 구도에서 저항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에는 발전과 해방, 국가와 시민사회, 시장과 시민사회, 그리고 사회적인 것과 사적 경제적인 것 등, 그동안 알고 있던 대당들이 혼재되어 있다. 많은 경우 공동체의 새로운 가상들을 통해 현행하는 삶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희망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형식, 위기관리의 주체, 위기의 해법 등을 재배치하면서 사회적인 것의 귀환을 ‘환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언급했듯 서구와 다른 발전경로 속에서 자리 잡은 ‘민관합동 관리체제’는 현 신자유주의의 위기국면의 관리정책과 쉽게 혼합될 수 있다. 그래서 박근혜의 ‘제2의 새마을운동’과 박원순의 ‘마을만들기’는 이념적 주체적 뿌리가 다를지언정, 현실적 수렴경로가 동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로를 이탈할 수 있는 정세와 주체의 역량은 우리에게 항상 열려진 문제로 남아있다. 언제나 ‘사회적인 것’은 문제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토론문 끝] * 토론문 정리 : 송명관(참세상 기획위원)

다음은 발제문 전문이다.


공동체의 새로운 가상들
: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을 중심으로1)



당시에는 분명했지만 결과적으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됐는데, 내가 의미했던 것은 사회가 그것을 이루는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동떨어진 추상물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이웃과 자발적 결사체들의 생생한 구조라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 사회란 핑계거리가 아니라 의무(obligation)의 원천이었다. - 마가렛 대처2)


1. 존재론적 불안과 공동체적 가상의 활용

현대성의 출현 이래로 존재론적 불안이 항상적 조건이 되었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공동체에 의해 유지된 안정적 삶의 형식들이 자본주의적 축적 논리로 인해 일시성, 유동성, 파편성, 우연성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감수성의 탈안정화로 귀결했으며, 그로 인해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창조적인 것과 파괴적인 것, 변화에의 의지와 방향감각의 상실 분산, 계산가능성과 환유적인 것 등등 각종 아이러니들에 대한 분열증적 경험이 동기화됐다(Berman, 1988[2004], 주은우, 2001 등). 그런 의미에서 존재론적 불안이란 단순히 공동체적 습속으로부터 존재가 개별화됐다는 사실을 넘어, 잔존하는 공동체주의적 향수와 지배적인 개별화의 추세 그리고 그에 대한 재사회화의 반작용이라는 선택지 위에서 삶에 대한 전망이 불가피하게 동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일지 모른다.

불안의 항상성이라는 주제는 20세기 후반부터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전반적인 궁핍화 추세 속에서 불안의 문제가 정신적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차원에서도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도 불안의 가속화는 다양한 양상을 통해 관찰된다. 고용 불안과 불안정 노동 같은 경제적 공포 그리고 학교폭력이나 묻지마 범죄 같은 일상적 공포 등은 신자유주의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한 방식으로 살게 하는 권력은 애초부터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이기도 하다는 문제를 넘어) 노동력까지 포괄적으로 제어하던 관리자본주의가 화폐 제어에 치중하는 관리자본주의로 이행했거나 강조점을 이동했다는 사실로서도 재확인된다(박상현, 2012). 이제는 삶의 전반적인 유형들이 케인스주의에 의해서든 발전주의에 의해서든 보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까닭에 현대의 원자화(됐다고 가정된)된 개인들이 공동체라는 범주 안에서 결속함으로써 잠재적, 현실적 불안을 해결하고자 하는 맥락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현행하는 세계질서의 문제를 사회적인 것의 종말로 설정한 이상, 마을만들기나 자원봉사활동처럼 공동체주의적 전망으로 대항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자연스러운 귀결이기 때문이다. 이들 사업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이래로 붕괴되었다고 가정되는 관계성과 공동체 정신, 즉 ‘사회적인 것’을 회복하는 데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3) 개별화 및 파편화로 묘사되는 사회적 존재 양식을 표적으로 삼고,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라이프스타일과는 다른 사용가치 중심의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적인 것이 정말로 사라졌거나 회복불능 상태에 있었던 것인지는 불분명한 문제가 있다. 예컨대 이러한 문제화 방식의 출발점이 되는 일군의 개별화 테제들은 (사태를 간명하게 해주는 묘사적 탁월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일련의 분석적 제약을 초래하곤 한다. 무엇보다도 존재론적 불안에서 제기되는 아이러니의 형식을 개별화의 문제로만 단순화함으로써 그에 대한 해법마저도 단순화할 수 있고, 따라서 사회적인 것을 둘러싼 외재적 요인들을 외면한 채 실존적 차원의 문제로만 귀결될 수 있으며, 나아가 사회학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역사적 분석과 정치적 토론의 공간들이 차단될 수 있는 문제 등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화에 따라 삶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됐다고 해서 노동력 관리의 측면, 즉 주체화 양식을 배경으로 하는 사회 정책이 부재했다고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제사로 인용했던 대처의 회고에서처럼, 사회는 단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beyond recognition) 재배치됐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재생산이 사회적인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곤란에서 초래된다. 사회적인 것 없이 대안적 삶이 불가능하겠지만,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것 없이 축적과 통치도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개별화가 실제 가동되는 힘이라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여 전체화하는 힘이 뒤따를 수밖에 없으며, 그런 까닭에 문제는 사회적인 것 그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또는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표상체계의 위기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서동진, 2012).

분권, 혁신, 자율, 책임, 창조 등을 덕목으로 하는 자기동일성4) 논리들은 개별화된 인간과 최소화된 국가로 연결된 듯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실제로는 다양한 선분들로 분할된 소집단들에 동일화된 존재 그리고 자본의 집중을 관리하는 국가로 귀결했다. 한동안 성행했던 자기계발 담론 같은 것들도 단순히 개인들의 세태 적응 방식이라는 통속적 이해로 예단될 수 없는데, 이러한 담론들은 신자유주의적 위기관리의 측면에서 나오는 전체 사회의 재배치 효과 속에서만 창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때 관료제 정부의 대안으로 제시됐던 기업가적 정부 모형(신공공관리론)에서조차도 사회의 활성화가 관찰된다는 아이러니를 목격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사회 권력은 억제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라는 표상 하에 국정 참여의 권한을 부여받은 주체로 가상되기 때문이다(<표 1> 참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가 시민사회와 연결되는 측면은 2007년 지구적 금융위기를 전후로 해서 (새롭게 나타났다기보다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행정학에서는 비판이론과 공동체주의에 뿌리를 두고 신거버넌스론과 신공공서비스론이 부상하기 시작했고, 그 밖의 사회과학에서도 사회자본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접합되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다. 포스트워싱턴컨센서스 국면 하에서(Fine, 2004[2006]; Saad-Filho, 2005[2009] 참조) 중심부는 물론이고 주변부에서도 사회동일성 논리가 재개되는 조짐이 전일화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무엇보다 네트워크, 신뢰, 협력, 공동체, 친밀성, 지속가능성, 이타성 등 ‘횡적 동일화’5)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동일화 메커니즘을 집약하는 사회적 자본 개념은 개인들의 연결과 결속(bridging and bonding)을 통해 정치 참여와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한편, 자조적 협력을 통해 주변부의 빈곤을 경감시키고 지구적 불평등을 개선할 원동력으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공동체를 구상하고자 하는 관행들의 공통점이 이상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동역학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그저 단절적인 현상으로 간주한다는 점에 있다. 이 같은 이해방식은 순수한 형태의 공동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다. 정부 행정에서는 여러 가지 인적, 재정적, 지역적 제약에 따라 신공공관리론과 신공공서비스론을 상호보완적으로 혼합하고자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우양호, 2008), 시민사회 진영은 이 과정에서 공동체주의의 온전한 실현을 유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고 정부와의 거버넌스에 동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공동체에 대한 관념적 전망에도 다양(하면서도 불균등)한 층차가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박하게는 개별화된 존재들을 연결함으로써 잃어버린 공동체적 감각을 회복하고자 하고, 적극적으로는 사회적 결속을 통해 삶의 불안정성이 초래한 정신적이고도 물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며, 보다 강하게는 이 같은 문제들을 초래한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이념적, 실천적 대안으로 간주하는 것 등이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에는 이 모든 기대들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혼재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그렇게 창출된 공동체에 대한 가상들은 이중적으로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일차적으로는 역사적 후과(後果) 속에서 형성된 공동체에 대한 가치 지향 자체가 단일하지 않을뿐더러, 이차적으로는 정부나 중간에 개입해 있는 시민사회단체 또는 개개의 시민들이 접변하면서 그 결과물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복합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을만들기나 자원봉사활동 같은 새로운 공동체주의적 설정들은 결국 어느 지점으로 귀결하게 되는 걸까. 비교적 최근에 와서 계급문제나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극복하는 데 있어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논의들이 제기되고 있고(김상철, 2012; 박주형, 2013), 공동체적 가상이 속류화됨으로써 사회적인 것이 물화된다는 몇몇 즉자적이고 인간주의적인 경고들이 없진 않지만(김성윤, 2011; 김재호, 2009), 대개의 경우에는 공동체적 가상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면서 사업들의 프로세스를 검토하고 보완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김찬호, 2000; 남원석 이성룡, 2012; 유창복, 2009; 유창복, 2013; 윤혜순, 2003; 이선미, 2003; 이소영, 2006; 조중현, 2006). 물론 공동체에 대한 낭만적 태도에서 비롯됐든 새로운 정치를 위한 교두보로 인식하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든, 오늘날 공동체에 준하는 사회적 관계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공동체적 가상에 대한 검토가 절실히 요구되지 않나 싶다. 공동체는 언제나 문제적이지만 그것 없이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어렵다는 점, 마찬가지로 공동체로 인해 정치의 가능성이 폐절될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어떤 정치적 동력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최근 성행하고 있는 새로운 공동체에 관한 전망들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이론적 쟁점들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하의 절들에서는 오늘날 공동체라는 관념의 모호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2절), 그것의 효과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지(3절), 공동체적 가상을 제도화하는 실천들에서 야기되는 쟁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4절),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늘날 존재양식의 위기를 관리하는 데 어떤 논점들이 있을지(5절) 등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2. 공동체적 가상의 모호성과 과잉결정

공동체적 설정들이 가리키는 관념의 모호성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공동체주의를 근간으로 해서 추진 중인 대표적 사회정책으로는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을 꼽을 수 있다. 우선 여기서는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을 뭉뚱그려 토의하기에는 그 지향점이나 토양이 상이하다는 점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 마을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진보적 의제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데 반해, 자원봉사 조직화의 경우엔 규범적 성격이 강하고 때에 따라선 사회적 동원의 측면을 보이기 때문이다.

마을만들기는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주민들이 주도하는 계획이라는 점,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양식과 관계성까지 포괄한다는 점, △공동체적 향수를 자극하고 회복하고자 한다는 점 등을 강조한다(김찬호, 2000; 이명규, 2004). 그에 비해 자원봉사 분야는 △민주시민공동체의 형성과 성숙을 목적으로 하고, △자원봉사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여기며, △이를 통해 개인의 자아 성장과 잠재력을 개발하고, △사회발전 및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견인하는 한편, △상호보완적 동반 관계에 있는 정부와 서로 협력하는 것을 기본 정신으로 삼는다.6) 마을만들기가 주민들의 자발성으로써 사업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데 반해, 자원봉사는 시민들의 자원에 기초하되 ‘개발’과 ‘발전’ 그리고 ‘번영’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정부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이질적인 이 두 사업을 포괄하고자 하는 이유는 우리 시대에 ‘공동체’라는 가상이 어떻게 부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선 공통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공동체를 가상하는 입지점은 이질적이지만, 어째서 상이한 기대들이 동일한 언어로 귀결했는지에 대해서는 숙고를 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공동체라는 언어가 가진 관념적 모호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그러한 모호성 자체가 그동안의 이론화와 의제화에 역사적 조건으로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날 공동체라는 언어에 과잉결정된 (또는 과소결정된) ‘블랙박스’에 분석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1) 공동체적 가상의 역사적 기원

공동체라는 관념의 모호성을 구체화하기 위해선 우선 현재적 관행들의 역사적 기원들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마을만들기든 자원봉사활동이든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등장한 체계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에 관한 오늘날의 전망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근대화와 발전에 관한 전망과 맞물려 1970년대 이래로 전개되어 온 사회동원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새마을 운동은 억압적인 동시에 생산적으로 근대적 주체를 배양할 수 있는 윤리들을 강조하는 한편, 국가가 주도하되 주민의 참여를 결합하여 상호주관적인 관계들을 재조직하고자 했다(김보현, 2011; 김영미, 2009). 사회동원이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 안전행정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에서 주도하는 자원봉사활동 사업의 지류들과 직결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저항과 해방에 관한 전망에 맞물려 1980년대부터 가상되어 도시운동의 모태가 되기도 했던 ‘민중공동체’ 담론이다. 여기서 민중은 이전 세대와 달리 국가에 대한 충성에 반발하고자 했던 시대의 신화적 주체였으며, 공동체는 민중들이 구성하는 집합체이자 거꾸로 민중적 삶의 방식을 가능케 하는 장소로서도 여겨졌다(Lee, 2009; 김원, 2011). 오늘날 이러한 흐름은 마을 주민, 시민사회단체들 및 일부 지역정부가 관장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여기서 쟁점이 될 것은 이러한 역사적 계보가 단선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오늘날 마을만들기나 자원봉사 모두 앞선 시대의 공동체적 습속과 실험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을 위시로 한 국민공동체 담론이 발전주의에 기반한 국가 주도 운동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조정이었다는 문제, 사회운동의 조직화를 견인했던 민중공동체 담론이 사실상 ‘개인 없는 공동체’로 귀착하면서 필연적으로 내적 차이의 억압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문제(김원, 2011: 113) 등은 오늘날 공동체적 가상을 형성하는 데 있어 역사적인 참조점이 될 수밖에 없다.7) 이를테면, 새마을운동이 관주도적 성격을 내포하기는 하지만 마을 활성화 사업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민중공동체 담론이 민간 주도적 성격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민중이라는 형상에 특정한 규범을 강제했다는 점 등은 ‘새마을운동-자원봉사’와 ‘민중공동체-마을만들기’의 연결들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마을만들기’와 ‘민중공동체-자원봉사’의 연결들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이러한 모호성은 무엇보다도 존재 양식의 기본 조건으로서 ‘관계의 구성’ 논리와 재생산에 기여하는 ‘사회적 동원’ 논리가 애초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새마을운동이나 민중공동체 담론 모두 이 논리들 중 어느 하나를 배타적으로 선택한 적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 역시 공동체적 관계를 (재)형성하고자 하는 전략과 (저항이든 순응이든) 특정한 지향점을 향한 사회적 동원을 추구하는 전략을 모두 포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점은 마을만들기 사업이 비판적 이론에 근거하여 사회 개혁과 대안을 추구하고, 자원봉사활동이 구조기능주의에 근거하여 사회 유지를 추구하더라도(김경동, 2012), 형식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곤란을 함의한다.

공동체적 가상을 둘러싼 이 두 가지 관행에서 특이한 것은 빈곤과 안전 그리고 복지 등 사회적 개인들의 삶을 관리하는 데 있어 국가의 무능력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 있다. 케인스주의 국가가 행정적, 재정적, 상징적으로 위기관리에 실패했고 이것이 위기관리의 여러 선택지 속에서 최소 국가의 설정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Offe, 1973[1988]; Habermas, 1976[1980]). 이러한 역사적 전개는 오늘날 최소 국가 설정이 노동력 관리에 실패하게 될 때 더 이상은 전통적 행정국가의 설정으로 회귀할 수 없게 하는 조건이 된다. 강력한 국가는 이미 실패의 전철을 밟았던 바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나 공동체라는 가상을 통해 위기관리의 시도가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국제적 여건에 더하여, 한국과 같이 강력한 행정국가 경험이 없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상황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의 국민적-사회적 국가 형태는 (행정 경험 부족과 재정 조달 어려움 등으로 인해) 새마을운동이나 민중공동체운동에서 나타났듯 노동력 관리의 상당한 동력을 언제나-이미 시민사회 부문으로부터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회적 요구들을 제어하는 데 있어 한계가 노출된 국가의 전반적인 무능력 상태는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에 강력한 동기가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국가권력의 억압적 성격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식 역시도 중요한 동기가 된다. 민주화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는 권위주의적 관행들은 노동력 관리의 형식과 내용이 반(反)사회적 결과로 이어질 개연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관거버넌스의 기회구조가 개방됐을 때 가급적 민간 주도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상과 같은 맥락들이 위기관리 메커니즘에 시민사회가 참여하게 되는 구조적 인과성의 일부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공동체를 가상하는 여러 가지 방식과 이를 추진하는 체계에 포진해 있는 역사적 조건들이 자원봉사활동이나 마을만들기에 접합되어 있다. 사회의 파편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무능력하며 억압적인 국가에 대한 이중적 비판과 맞물림으로써 ‘국가 없는 마을만들기’(유범상, 2013) 같은 양상으로 귀결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의 공동체주의는 일정 정도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서, 즉 사회적인 것 그 자체로서 가상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자원봉사활동과 마을만들기가 가진 내재적인 모호성들에 대해 검토해보도록 하자. 이들 사업에 외적인 역사적 문제만큼 그 자체의 역사적 모호성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자원봉사활동과 마을만들기가 어떤 제도적 필연성에 의해 수립된 관행인지를 논구해보는 것이 관건이 된다.

2) 사회 보호의 대리-보충으로서 자원봉사활동
3) 전략적-관계적 상황과 마을만들기
- 생략

3. 주민과 시민, 또는 횡적 동일화

그런 까닭에 오늘날에는 공동체적 가상을 둘러싸고 일종의 ‘담론의 헤게모니적 접합’이라는 양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사회적 삶에 있어서 대안적 성격과 민간주도성을 강하게 내포하는 마을만들기 사업 쪽이 될 것이다. 공동체 관념의 모호성에 따라 대안 지향성과 같은 논지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유인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마을만들기 분야에 존재하는 상이한 지향과 전망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추진될 때에는 애초에 명분으로 내세웠던 공동체성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로 현실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박근혜 정부가 ‘제2의 새마을운동’을 제창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하는 것도 사실은 공동체적 가상이 내포하는 애초의 모호성, 그리고 관주도 운동과 민간주도 운동 사이의 형식적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이 오늘날 공동체를 가상하는 모호한 관행들 중 일부라는 사실, 그리고 그 관행들이 다양한 기대들 속에서 도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등은 해당하는 운동(또는 사업)의 운명에 대한 낙관을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을만들기에 뒤따르는 비판들, 예컨대 전체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자족적 생활공동체로 변이되기 쉽다, 도시 재개발 및 지역경제 활성화 논리를 수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관계를 재활성화하는 장치로 변질될 수 있다, 국가의 통치화 추세에 맞물려 (신)자유주의적인 통치기술로 귀착할 수 있다, 그리고 중간계급적인 아비투스에 최적화됨으로써 노동계급의 이해를 반영할 수 없다는 식의 논평들은 담론의 헤게모니 접합에 관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물론, 이렇게 구조화된 취약성을 가리키는 징표들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마을만들기 종사자들은 이를 ‘진보 진영의 살갑지 않은 우려’ 쯤으로 받아들이고, 그와 동시에 ‘함께’, ‘오래’, ‘호혜’, ‘살림’, ‘골목’, ‘어울림’ 같은 다분히 인간주의적 수사어에 의거하여 자신들의 표적을 예의 ‘개발독재+신자유주의’ 관행에 집중하는 것이 보통이다(유창복, 2013: 46).

오늘날 마을만들기 분야는 진보진영으로부터는 낭만주의적 시도에 불과하고 관주도적 성격을 떨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에, 보수진영으로부터는 박원순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화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정치적 공세에 직면해 있다. 그렇지만 몇몇 종사자들이 제도정치로부터 어떻게든 거리를 두고자 하고 그 누구보다 관주도성으로부터 탈피할 이론적 언어를 갈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 같은 반목은 소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8) 따라서 이들 중 누구의 말이 맞는가의 문제보다는 공동체 운동에서 나타나는 접합 가능성이라는 곤란이 어디서 연유하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사회적인 것을 둘러싸고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은 단순히 정치적 관점 차이나 기술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개념적 구도 자체에서 초래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선 오늘날 공동체 형성의 논리가 과거의 전통들과 형식적으로 다른 측면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결정적 차이는 과거의 주체들이 국민과 민중으로 호명됐던 것에 비해 오늘날에는 ‘시민’)과 ‘주민’으로 호명된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이들 주체적 형상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어떻게 규범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과 민중의 호명 메커니즘 사이에선 정치적 지향이 다르고 시민과 주민의 호명 메커니즘 사이에는 공동체의 범위가 다르다는 점 등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기 쉬운 논점은 국민과 민중이 국가와 민족에 준하는 동질적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던 데 반해, 시민과 주민은 그러한 동질성을 연상하기 어려운 이질적 공동체에 입각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1970-80년대에 공동체를 가상하는 방식과 오늘날에 공동체를 가상하는 방식이 결정적으로 다른 조건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국민과 민중이 국가가 됐든 민족이 됐든 특정한 종족체를 통해 내부의 결속을 다질 수 있었던 데 반해, 시민과 주민이라는 형상들에게는 그와 같은 제3의 매개항이 부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론적 차원으로 돌리자면, 이러한 구도는 공동체와 발전의 전망을 인과적으로 입증하고자 했던 퍼트넘의 논의, 즉 현대 사회에선 ‘결속하는 사회적 자본’(bonding social capital)에 비해 ‘연결하는 사회적 자본’(bridging social capital)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Putnam, 2001[2009]). 퍼트넘은 각 집단 내에 적정 수준의 결속적 조직화와 더불어 집단이기주의를 뛰어넘는 집단 간의 연결적 조직화가 개인, 집단, 사회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되며, 아울러 정치와 경제 발전을 유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 시민이나 주민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적 가상의 창출은 그 어떤 과제보다도 유효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자원봉사나 취미활동 등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동일화 논리가 현대사회 특유의 존재론적 불안을 순치시킬뿐더러 발전(과 위기관리)의 전망으로서도 적실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 개념이 거의 모든 사회과학 분야에 접맥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안적 동일화 메커니즘이 과연 성공적일 수 있을까. 즉, 제3의 항이 부재하는 ‘횡적 동일화’의 논리로써 관계성의 회복, 발전 및 위기관리, 그리고 대안의 창출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논점들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오늘날 공동체적 가상의 새로운 특성으로서 횡적 동일화의 논리들은 현실적 정합성 측면에서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일례로, 사회자본론이 미국 중심의 경험적 현실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문제10)는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사회자본론을 통한 공동체 전망은 (개별집단마다 결속성과 연결성이 다양하게 분포되기에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을뿐더러, 퍼트넘 자신에게도 공적 연대의 현실화 가능성이 불투명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적어도 국가 단위에서는, 결속적 소집단들을 연결적 집단으로 묶어내는 구도를 함의한다. 어쩌면 이러한 구도는 주민으로 구성된 개별 마을 단위들이 시민으로 구성된 전체 사회로 수렴되는 공동체들의 총체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은 미국 같은 전일적인 다인종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소집단에서는 결속성을 원리로 하고 그보다 큰 집단에서는 연결성을 원리로 하는 이중적 형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특히나 극심한 이동성을 전제로 하는 대도시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동질성에 기초한 결속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에 공동체적 전망의 기초 단위로서 마을공동체가 이질적인 주민들 사이에서 어떻게 동질성을 창출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마을공동체 등등은 흔한 비판처럼 자족적 공동체 정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민이나 시민들이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연결의 고리를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는 두 번째 논점을 만나게 된다. 횡적 동일화 논리에 따라 공동체를 (재)구축하려면,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즉, 최소 규모의 집단 내에서) 연결적인 사회적 자본을 규범화해야 하는데 국민주의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이데올로기적 가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뒤르켐이 왜 퍼트넘처럼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마나와 토템을 비롯한 집합의식이나 집합표상에 몰두했었는지에 대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도덕적 밀도 및 연대의 창출은 집합의식이나 집합표상과 같은 종적 동일화를 거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는 곤란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건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정도로 집약된다. 첫째로 종적 동일화 없는 집단 형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로 오늘날의 공동체적 가상 논리들 대부분이 자조와 시민성 같은 횡적 동일화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종적 동일화가 마치 부재하는 것처럼 또는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이데올로기화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마을들이 어떠한 집합적 의식과 표상에 근거하고 있는가,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관계를 지탱하는 지배적 표상으로서 화폐라는 표상이 어떻게 암약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들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들 대다수가 이미 화폐공동체라는 조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논점은 마을이 만들어지고 시민성이 창달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현실화된 공동체적 대안이 어떠한 효과를 동반하게 되는가 하는 질문과 관련된다. 마을만들기 사업이나 자원봉사활동 사업은 우리들 대다수가 공동체를 통해 도덕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데, 이것은 (두 번째 논점처럼 단순히 현재의 지배적인 사회적 존재 양식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넘어) 실제로 대안이 되었을 때 그와 같은 노동력 관리 방식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정치적 토론을 예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인 것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적대에 관한 프레임에 어떠한 문제가 초래됐는지는 이미 알려진 바 있다(Donzelot, 1984[2005]; Steinmetz, 1993; 홍태영, 2002 등).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에도 (사회적 경제와 더불어) 공동체의 가상이 성공적이면 성공적일수록 이 둘의 (역)관계가 다시금 상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횡적 동일화 논리 속에서 공동체 안의 구성원들은 계급적, 성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칭적인 관계 형성이 가능한 것처럼 상정되곤 한다. 여기에 세 가지 정도의 쟁점이 부가될 수 있겠다. 첫째, 마을만들기의 경우 그 모든 차이를 상쇄할 수 있는 다른 요소들(예컨대 지역적 특성이나 문화적 취향)11)을 통해 공동체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데, 결속과 연결의 요소를 보유하지 못했거나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동체적 범주로부터 예외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한 것에 자족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배제된 주민들을 포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주민들 간의 연결 고리를 아예 재구성해야 하는 것일까. 둘째, 공동체들 내부/사이가 평등하다는 가상은 실재하는 적대의 문제가 전위(displacement)되는 경향을 나타내는 셈이라 할 수 있다. 모두에게 호혜롭고 모두를 포용하라는 도덕적 태도로써 정치에 관한 이해방식을 대체 축소하는 양상을 문제시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 마을만들기나 자원봉사활동 사업들에는 공동체적 교리 하에 사회공학적 접근만 시도될 뿐 정치학적 전망이 부재한 것이 일반적이다. 셋째, 종적 동일화 논리를 담론적으로 소거해냄으로써 대타자를 비롯한 보편성의 원리를 사유하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동질화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민중의 호명 메커니즘이 어떻게 해서든 주권과 정치의 문제를 제기하게끔 하는 데 반해, 시민과 주민의 문제설정은 사회적 주체화의 가능성을 개방하지만 정치적 주체화의 가능성은 폐쇄해버리는 효과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이데올로기적 설법과 달리 공동체적 전망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마지막으로 공동체가 발전과 위기관리에 있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자본론자들은 사회적 자본이 정치 경제 발전을 견인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공동체적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정치 문화가 고조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엄연한 상관성에도 불구하고 그 인과적 방향은 불명확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신화화되곤 하는) 성미산 마을의 경우 주민들의 관계성이 정치적, 경제적 전망에 기여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보유한 정치의식이나 경제 수준 등이 공동체 형성에 기여한 것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지역마다 특수성이 있어 성미산 마을을 패턴 설정자(pattern setter)로 삼아 다른 마을공동체에 적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진단들도 어쩌면 이 같은 난점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공동체가 구성원들의 도덕적, 정치적 관심을 제고한다는 것이 사실일 수는 있지만, 바로 ‘그’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주체적 역량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동체가 발전 및 위기관리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에는 개연성이 없지 않다. 특히 공동체적 가상이 포스트워싱턴컨센서스 정세 속에서 나타나는 노동력 관리의 새로운 시도라는 측면에서 이 사실을 부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게다가 지구적 금융 위기 이후로 본격화된 현재의 ‘위기관리의 위기’는 공동체적 가상의 적실성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종적 동일화를 담론적으로 소거해낸 공동체적 가상이 이 위기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데 있다. 공동체성의 회복을 통해 존재 양식의 위기가 해소되는가, 아니면 위기가 관리 조절되어 유예되는가, 그것도 아니면 오히려 가중되는 것인가, 이마저도 아니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과잉결정되는 것인가. 공동체적 가상과 대면하여 우리는 일종의 기로에 선 셈이 됐다.

4. 중간지원조직, 또는 국가의 특수법인화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이 이전의 공동체 운동과 다른 점은 추진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정부와의 협력 수준이다. 자원봉사활동이 사회적 동원 측면에서 새마을운동과 유사하고, 또한 마을만들기가 사회운동 측면에서 민중공동체 담론과 유사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민관 거버넌스’라는 제도적 장치가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관이 안전행정부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자원봉사센터다. 1996년부터 전국 2백 48개 시군구에 설치를 시작해 2001년에 중앙기관으로 한국자원봉사센터가 설립됐고 2002년에는 전국적 체계를 완료한 조직 체계이다. 이들 센터 중 일부는 민간으로부터 전문가를 영입해 운영되고 있고, 다른 경우에는 아예 민간조직에서 위탁 운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그리고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등이 각각 파트너십을 맺고 사회서비스, 행정보조, 안전 방범, 재능기부 등에서 자원봉사 인력을 조직하고 있다.

마을만들기 분야는, 자원봉사 쪽이 중앙정부 부처별로 기초 광역 지자체에 체계적으로 연결되는 데 반해, 각각의 사업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분산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양상은 새마을운동에 주된 기원을 두고 있는 관주도 사업12)에 비해 사회운동에 주된 기원을 두는 민간주도 사업13)이 보다 활동적이고 가시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간주도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주로 지자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14) 같은 조직이 대표적이며, 2012년부터는 자치구별 지역단체, 복지단체, 주민자치위원회들이 마을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정책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 단위에서는 지역별 활동가들을 주축으로 2006년부터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가 구축되어 교류가 진행되고 있고, 향후 이 조직은 (가칭)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로 확대될 전망이다. 다른 한편, 2014년부터는 안행부를 중심으로 ‘제2의 새마을운동’이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마을만들기 분야에서 정부와 민간 사이에 힘의 관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날 공동체적 전망을 대표하는 마을만들기와 자원봉사활동이란 결국 사회통합 및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와 윤리적 시민성을 발현하고자 하는 시민 개인들의 이념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 차원의 이야기일 뿐, 실제적으로는 사회서비스 조달과 지역 활성화를 필요로 하는 정부, 그리고 호혜의 보람과 생활 개선 및 이력 수집 등의 목적의식을 가진 시민 개인들의 실질적 이해관계가 조우한 결과이기도 하다(김성윤, 2011). 이런 배경 하에서 탄생한 마을공동체와 자원봉사의 민관 거버넌스는 정부의 행정서비스 제공과 민간의 민주적 참여를 기능적으로 통합하면서 계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사업들이 추진될 때 나타나는 애로사항들이다. 특히 주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우선 그들 사이에서의 통합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들의 바람대로 사업의 의제나 전망이 고스란히 실현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구조적 제약조건으로서 ‘제도적 동형화’의 문제 때문이다(DiMaggio and Powell, 1983: 149). 마을만들기가 됐든 자원봉사활동이 됐든 공동체 사업들은 육성과 진흥이라는 맥락에 위치되는 이상 정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자원을 통제하는 측으로부터 나오는 특정한 규범과 요구사항을 따라야 하는 고충을 겪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은 타율적 강제나 막연한 모방 또는 자체적 규범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개된다. 이를테면 대다수 조직들이 관련 법률, 조례에 의해 동기화되고 정부 지원 기관에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 사정을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관료제적 관습 등을 준수해야만 하는 문제가 나타난다(강제적 동형화). 또한 마을만들기가 일종의 붐처럼 확산되고 있는 이상 후발 마을들은 사업의 목적이 불확실하거나 모호한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 기존에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마을들을 모델로 삼으면서 자기 조직의 전망을 설정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모방적 동형화). 뿐만 아니라 각종 전문가 집단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지배적 생활양식의 규범을 학습하고 내면화하기도 한다(규범적 동형화).

물론 제도적 동형화라는 제약이 이론적 논리대로 가동되지만은 않는다.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민간 활동가들이 어떤 프레임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정부의 지원체계를 재조정하도록 교섭하고 지역 특색에 맞게 관례들을 다원화하며 대안적 생활양식을 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민간 참여자들은 관료주의에 대응하여 정성적 평가 체계 및 포괄, 참여예산제, 자치구별 사업계획 프로세스, 활동가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유창복, 2013). 실제로 이런 기획들은 (전적으로 통용되리라 낙관할 수만은 없겠지만) 거버넌스 체계에 뒤따르는 제도적 동형화의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쟁점들이 순치될 것이라 관망하는 것도 이른 감이 있다. 거버넌스 체계에서는 규범적 기대와 달리 민과 관이 대칭적 힘을 행사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15) 특히, 중앙, 지역정부와 주민, 시민 사이에 기입되어 있는 이른바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단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중간지원조직이란 해당 사업을 둘러싸고 정부와 민간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종의 제도적 장치인데, 예컨대 자원봉사센터나 마을만들기지원센터 등은 정부의 행정서비스 제공을 합리화하는 한편 민간의 공동체적 습속들을 조성하고 체계화하며 안정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문제는 이 같은 프로세스가 민간의 참여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만으로는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협력적 거버넌스라는 쟁점은 특정한 이론적 기획과 지식담론의 체계, 즉 신거버넌스론이나 신공공서비스론 같은 것들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안이었다(<표 2> 참조).


신공공서비스론은 신공공관리론의 시장중심적 가치에 기인한 폐해들이 지적되면서 1990년대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신공공관리론이 공공성을 침해하는 한편 (특히 주변부 국가들에서) 사회적 배제 문제를 촉진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고, 세계은행과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요구가 전환되기 시작했으며, 복잡해진 사회문제의 통치불능(ungovernability) 상태에 대처할 필요성이 요청됐기 때문이다(오수길, 2008; 102-3). 그렇기에 이 새로운 공공행정 패러다임은 내용상으로는 공유, 공공, 공익 등을 강조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능상으로는 (<표 2>에서 강조된 것처럼) 다원화된 서비스 공급에 초점을 두기도 한다.

오늘날의 공동체적 가상들이란 바로 이와 같은 통치 담론과 이념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원봉사나 마을만들기 분야는 ‘주민주도, 민간, 참여, 풀뿌리, 사람, 과정, 자발성, 관계망 네트워크, 당사자, 공감, 살림, 살이, 돌봄’ 등의 언어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주민들의 공동체성 회복과 주체적 역량 강화에 바탕을 두고 주로 시민사회의 혁신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거버넌스, bottom-up, 보충, 인큐베이팅, 위탁, 발견과 청취, 수시공모, 신뢰와 위험감수, 포괄예산 또는 참여예산, 과정 평가, 사람성장 평가, 질적 평가, 자치’ 등의 언어들을 통해 행정 혁신을 요구하는 맥락도 포함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굿 거버넌스’ 또는 ‘건전한 거버넌스’ 하에서 시민사회는 전통적 관리국가 시기의 ‘협의’의 대상도 아니고, 신자유주의적 신공공관리론에서 나오는 ‘용역’의 공조자도 아니다. 이제는 정책 형성과 집행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자치’의 주체로서 새로운 파트너십에 동참하기 때문이다(주상수, 2008).

물론 이 같은 패러다임이 현실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의 무능력에 대처하고자 했던 시민사회 진영의 적극적 개입이 있다. 예컨대 (마을만들기의 지류 중 하나인) ‘걷고 싶은 도시’를 목적으로 했던 보행운동의 경우 행정 체계에 대한 비판적 대응이라는 문제의식도 보유하고 있었다. 이때 공무원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포섭과 계몽의 대상으로 간주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공동육아나 보행운동 같은 사회적 요구들은 정부와의 협력적 구도를 창출할 수 있었다. 결국 문제는 이러한 정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같은 규범적 균형 상태라는 가상에 만족할 수 있겠는지에 관한 질문들로 모아지게 된다.

우선은 신거버넌스 담론이 실제에 비해 과잉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특히 이 문제는 시민사회의 성숙도에 비해 국가권력이 선진 담론을 쫓아오지 못한다는 논평들과도 관련된다. 거버넌스를 통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통치양식을 재구조화하고 권력을 스스로 공유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일 수 있고, ‘법에 의한 지배’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부터가 문제적이라는 것이다(이명석 박상필, 2005: 193). 따라서 우리는 일련의 상황들이 현실적 감각보다는 일종의 당위론적 전제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 나아가 권위주의적인 국가권력이 불가피한 불안 요소라는 사실을 우선적인 문제의식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하승우, 2013). 공동체적 전망이 제도적 동형화를 통해 언제든지, 그리고 ‘제2의 새마을운동’에서처럼 얼마든지 흡수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16)

다음으로, 통치의 변화 추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거버넌스 담론은 국가-시장-시민사회 등을 대칭적 영역으로 규정하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권력관계에 조금 더 민감성을 부가한다면, 신거버넌스의 창출이 다름 아니라 ‘국가의 준자율적 비정부조직화’(quango-ization of the state), 즉 특수법인화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Rose, 1996: 350). 안전 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안전망이 추구되기는 하지만 ‘통치의 탈국가화’에 조응하여 전문가 집단이 전면에 나서는 형국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민참여가 늘수록 국가의 특수법인화도 강해진다는 역설이 발견된다. 이러한 문제는 신거버넌스라 하더라도 신공공관리론을 비롯한 앞선 시기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곤란 때문에 나타난다. 재정 위기와 비효율성 등 ‘행정국가’의 폐해가 노출된 역사적 조건 때문에, 신자유주의적인 ‘최소 국가’ 설정에 문제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국가는 곧장 전통적 형태로 회귀하지 못하고 특수법인이라는 형태를 통해 노동력 관리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의 성찰성은 참여나 자치 같은 덕목들을 수용하면서 ‘다면적 책임성’을 부과하는 한편 행정적, 재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략적 합리성’을 최적화된 선택지로 삼는 양상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어쩌면 이러한 추세는 우리가 기존에 공유하던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당을 해체해야만 온전히 파악 가능한 사태일 수 있다. 국가와 시민사회가 엄격히 분리되는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국가의 특수법인화 현상은 그람시가 ‘아메리카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관리자본주의 패러다임이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것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시민사회는 존재론적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라는 가상을 통해 의도와는 상관없이 재생산의 위기를 주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국가와 시민사회가 구분 불가능한 영역임을, 사실은 특정한 정치적 형세의 효과였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공동체성에 기반해 시민사회를 미시적으로 재구성하겠다는 기획들은 전략적-관계적 형태를 수반하는 관리국가의 추세와 더불어서만 온전히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상과 같은 제도적 요법이 함의하는 바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마을과 자원봉사는 개인주의화된 사회적 존재 양식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위기관리 장치로서 어느 정도 성공가능성이 있다고 점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쟁점들을 재구성해볼 수도 있다. 이것은 위기의 해소나 유예가 아니라 위기의 과잉결정을 나타내는 측면들이라는 것이다. 신거버넌스라는 행정 패러다임은 시민사회의 참여를 진작함으로써 새로운 규범적 균형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국가의 특수법인화를 통해 통치의 리스크를 사회적 개인들에게 분담시키는 기획이기도 하다. 그와 더불어 공동체적 전망 속에서 종사자들은 사회적 가치들을 추구하며 활동하지만, 생활세계를 활성화함으로써 국가 장치의 노동력 관리 기능을 대리하는 측면도 있다. 오늘날의 진짜 문제는 (사회로부터) 탈착근된 자유주의가 아니라 (공동체를) 역-착근하는 자유주의일지도 모른다.

5. 헤게모니화한 신자유주의: 위기의 과잉결정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란 사실 적대를 관리하는 체계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적인 것의 재발견이란 위기관리의 위기를 재차 관리하고자 하는 국면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적인 것, 공적인 것, 그리고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문제들이 잠재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의 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네트워크, 친밀성, 공정성, 지속가능성 같은 덕목들로는 채 충족되지 않는 영역이 엄존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것이 죽었었다는 판단 하에 공동체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기도가 있지만, 정작 사회적인 것이 죽었었는지도 불투명하고 공동체조차도 해답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문제가 되곤 한다.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가 돼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난점을 간과하면서 신념적 태도를 유지하거나 그런 공백을 대리-보충할 공학적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는, 역사적 조건과 현실이 남긴 난점들을 통해 어떤 질문 거리들을 남길지가 중요하다.

이제 질문은 공동체라는 가상으로 나타난 사회적인 것이 결국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하게 된다. 마을만들기나 자원봉사활동이 현재적 삶의 대안이 되리란 전망이 지배적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경제 비판 없는 제안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남는다. 본고에서 다룰 순 없었지만, 그런 까닭에 공동체적 전망을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 경제 분야와 접합하고자 하는 시도들(이은애, 2013; 이호, 2013)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개는 금융화가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정작 금융화를 표적으로 삼는 비판에는 착수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17) 사회적 경제 부문 자체에 관해서도 수익성과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조적인 축적 조건이 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금융 위기의 비용을 사회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만하다.

어쨌든 여기서 무엇보다도 고려해야 할 것은 공동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약할 만한 조건들이 산재해 있다는 점에 있다. 대개의 ‘사회적’ 활동가들은 국가가 행정적, 재정적으로 무능력하다는 사실 때문에 위기관리의 사명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시민개인들이 자기계발을 비롯한 신자유주의적 주체화라는 선재적 조건에서 살고 있는 이상,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인 것의 발현은 사적, 경제적인 것과 무한한 긴장 관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안이어야 할 공동체가 자족적인 화폐공동체나 안전공동체 정도로 퇴행할 가능성이 상존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통치불가능성의 리스크를 민간화하고자 하는 국가의 성찰성은 공동체적 전망의 외적 위협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거버넌스를 통해 민주적 참여를 기획하는 시도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헤게모니화에 기여할 위험성을 동반하게 된다.

전술했듯이, 이러한 위험 요소들에는 횡적 동일화와 국가의 특수법인화라는 쟁점이 기입되어 있다. 횡적 동일화 논리는 오늘날 공동체적 가상의 의미에 있어 그 무게중심이 화폐공동체에 (또는 안전공동체에) 있음을 은폐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비대칭적 관계들의 잠재적 적대를 순치하는 효과와 결부되어 있다. 국가의 특수법인화 현상은 국가의 무능력 또는 반(半)국가화를 정당화하는 관리자본주의의 역사적 후과 속에서 노동력 관리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통치불능 상태를 유예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와 같은 논점들은 공동체적 전망을 기획하는 데 있어 특정한 쟁점들을 함의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사회적 동원 방식 또는 행정적 추진 방식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향되고 있는 공동체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달라진 공동체적 가상의 구도에서 저항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상과 같은 위험요소들은 존재 양식의 위기가 유예되거나 극복된다기보다는 과잉결정 중에 있다는 점을 내포한다. 여기에는 발전과 해방, 국가와 (시장과) 시민사회, 그리고 사회적인 것과 사적, 경제적인 것 등, 그동안 알던 대당들이 혼재되어 있다. 많은 경우 공동체의 새로운 가상들을 통해 현행하는 삶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희망하지만, 진보된 자유주의 또는 헤게모니화한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형식, 위기관리의 주체, 위기의 해법 등을 재배치하면서 사회적인 것의 귀환을 환영하고 있다.


* 주

1) 이 글은 ‘사회적인 것을 통한 위기관리’를 주제로 진행 중인 학위논문의 일부이며, 본격적 분석이라기보다는 그에 앞서 이론적 쟁점을 추리고자 하는 시론적 성격의 글이다. 사회적인 것을 통한 위기관리는 분석적 차원에서 교환양식과 존재양식으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다고 보는데, 본고는 그 중에서 존재양식에서 나타난 공동체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교환양식에서의 사회적 경제에 관한 논점은 졸고(김성윤, 2013)에서 정리한 바 있다.

2) Thatcher의 회고록(1993) 중 일부(Dean, 2005: 327에서 재인용).

3) 2005년에 「자원봉사 기본법」이 제정되었고, 2012년에는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조례」를 중심으로 광역 기초 지자체들의 조례가 제정, 추진되고 있다. 참고로, 사회적 경제와 관해서는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 등이 있다.

4) 나는 자기동일성(self-identity) 개념을 타인과 다름에서 오는 고유성의 논리를 포함하여, 보다 궁극적으로는 동일화 및 적대의 대상이 소거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재귀적으로 동일화할 수밖에 없는 측면으로 정의한다.

5) 이 용어는 프로이트의 집단심리학과 발리바르의 관개체성(transindividualité) 개념으로부터 착안한 것인데,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백승욱(2011)을 참조하라.

6) 이 내용을 골간으로 하는 「시민자원봉사헌장」은 1999년 11월 18일 한국자원봉사포럼과 중앙일보에 의해 선포되었으며, 2007년 11월 23일에 개정된 바 있다.

7) 아울러 우리는 1980년대의 민중공동체 담론 역시 새마을운동의 후과 속에서 제기되었다는 논점들을 제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국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국민이라는 모호한 표상에 문제를 제기하게끔 했으며, 동시에 주체화의 경계를 공적인 장으로 한정시키면서 정치적 주체에 대한 가상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논지는 광범위했던 민중운동이 국민주의, 엘리트주의, 전체주의적의 한계 속에서만 제기되었다는 서술(Lee, 2009: 296-7)과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8) 이 같은 상황은 본 연구의 정보제공자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한 문제이기도 하다.

9) 여기서 시민이 자원봉사 담론에서 강조되는 개념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시민이 정치적 주체로서 조명되는 데 반해, 자원봉사 담론에서 시민 개념은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도시적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사회적 주체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10) 그 자신이 사회자본론자이기도 한 Halpern(2005)은 사회적 자본의 추이가 각 국가별로 편차를 보이며, 어떤 지표로 측정할 것인가에 따라 상반된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11) 북촌‘한옥’마을, ‘장수’마을 등처럼 마을 앞에 붙는 각종 수사어들이 그와 같은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12) 국토해양부의 살기좋은 도시(마을)만들기 사업과 안전행정부의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13) 특히 2010년대 이후로는 부모커뮤니티, 마을(공동체)기업, 우리마을 프로젝트 등 사업별 분화가 이뤄지고 있다.

14) 성미산 마을 출신의 마을만들기 전문가가 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운영되고 있다.

15) 실제로 마을만들기 사업이 주로 야당 집권 지역에서 활발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협치 같은 규범적 균형 상황보다는 정치적인 것이 더 우선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6) 역으로 시민사회의 도덕적 해이라는 측면에 대해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신공공서비스론에 의존하여 주민들의 참여를 유인하더라도 실제로 참여주민들은 행정적, 재정적 책임을 기피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한 마을만들기 사업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17) 오히려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는 최근 영미권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회혁신채권(social impact bond; 또는 사회성과연계채권) 상품을 도입해서 사업의 재무 조달 방편을 삼으려고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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