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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첫날과 둘쨋날,
이스탄불/
튀르키예에 왔다. 우리에게 터키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나라로, 역사·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차로 역할을 해왔고, 특히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이자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 정치가 만났던 곳임에도 그 의미와 중요성이 간과된 나라이기도 하다.
뒤늦게사 이곳에 대한 관심이 생겨, 여행사 패키지편으로 아내 정원님과 함께 9박 10일의 일정으로 가볍게 나선 길이다.
서울 막내집에서 아침 5시경의 공항버스편으로 출발하여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비행 시간만 12시간 반 정도 걸렸다. 시차가 6시간이니 한국은 밤 11시가 된 것이다. 다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도착하니 잠자는 일만 남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 땅의 역사와 중요성을 다시 배운다.
튀르키예 지역은 히타이트, 그리스, 로마, 비잔틴 등 수많은 고대 문명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땅이라고 한다.
에게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전략적 위치로 인해, 동서 교역의 중심지이자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3개의 대륙을 지배했던 거대한 제국인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 제국의 중심 도시 이스탄불은 4세기에는 로마 제국의 동방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세워지면서,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로 성장했고, 15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며 이곳은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그런 역사의 도시 이스탄불은 튀르키예의 가장 큰 도시이자, 역사적으로 세계 문명의 중심이었던 세계의 교차로로써,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중심으로 양쪽에 걸쳐 있어, 유일하게 두 대륙에 걸친 도시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이란 도시, 또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이 도시는 과거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오스만제국시대부터는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동서양 문명의 융합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소인인데, 아쉽게도 첫날은 그냥 잠만자게 되었다.
튀르키예가 세계의 역사, 문화의 중심이었던 곳이고 그 오랜 제국의 풍요로운 문화 유산과 크고 넓은 국토를 패키지 편의 짧은 여정으로선 주마간산격으로 그저 스쳐지나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또한 하나의 새로운 기억이 되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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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셋쨋날 그리고,
앙카라와 카파토키아/
둘쨋날의 시작을 이스탄불을 두 개의 반도로 나누는 해협인 골든 혼(Golden Horn)을 바라보는 묘지 언덕에서 해협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신,구도시를 바라본다. 구도시는 기원 전에 이어져 있고 신도시의 역사 또한 600년에 이른다.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까지 갔던 카라반, 그 대상들이 먼 어정에서 돌아와 첫 시장을 열었던 그랸드 바자르를 둘러보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첫 여정을 시작한다.
3%의 유럽 땅을 차지하여 유럽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나라, 이슬람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유럽경제공동체에 참여하여 유럽 식탁의 야채류를 60% 이상 공급하는 물산이 풍요로운 나라. 한때 유럽을 지배했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 유적지와 실크로드의 흔적과 성서 속 사도들의 발자취와 초대 교회의 이야기가 아직도 숨쉬고 있는 나라, 그리고 내가 닮았으면 하는 유일한 시인이자 수피즘의 성자인 루미성인이 살았고 죽어 묻혔던 땅.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을 자신들의 형제국이라고 부르며 특별히 우호적으로 대하는 이 나라에 대해 단순히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가이드의 해박한 설명을 들을수록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이 나라, 이 지역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면 별도의 공부가 더 필요하리라 싶다.
이번 패키지 여행의 동선이 3200km에 가깝다고 하는데, 실제 이곳에서 여행기간은 7일에 불과하니 하루 이동거리만 평균 500km에 이른다. 그러니 대부분 주마간산격으로 스쳐지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침 4시에 일어나 5시에 식사하고 6시에 출발하기도 하는데, 6시간의 시차까지 있으니 숙소로 돌아오면 지쳐서 그날 보고 들었던 것을 정리하여 나눌 여유조차 없다.
차량으로 이동 중에도 가이드의 해박한 설명을 놓치기 아까워 제대로 졸지도 못하니 더욱 그렇다.
들었던 이야기와 본 것들 가운데 함깨 나누었으면 하는 것들이 많다. 고대 신들의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풍부하지만 이번 여정 기간 중에선 나누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방문하는 한 곳 한 곳이 모두 이야기를 길게 따로 나누어야할 곳들인데, 나로썬 지금은 그 이야기들 따라가기에도 벅찬 까닭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돌아가서 기회가 닿는대로 나누기로 하고 우선 이곳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나마 대강 나누기로 한다.
이곳 여름은 건기라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이 또한 반가운 일이다.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행히 저녁엔 서늘하다. 뒤늦게 소식 전하는 지금 갈수록 이 나라가 내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박정미
튀르키에 수도가 이스탄불이 아니고 앙카라인 걸 선생님 덕분에 처음 알았네요. 건강 주의하시고 즐거운 여행 되시길요!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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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셋쨋날 그리고,
앙카라와 카파토키아/
둘쨋날의 시작을 이스탄불을 두 개의 반도로 나누는 해협인 골든 혼(Golden Horn)을 바라보는 묘지 언덕에서 해협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신,구도시를 바라본다. 구도시는 기원 전에 이어져 있고 신도시의 역사 또한 600년에 이른다.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까지 갔던 카라반, 그 대상들이 먼 어정에서 돌아와 첫 시장을 열었던 그랸드 바자르를 둘러보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첫 여정을 시작한다.
3%의 유럽 땅을 차지하여 유럽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나라, 이슬람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유럽경제공동체에 참여하여 유럽 식탁의 야채류를 60% 이상 공급하는 물산이 풍요로운 나라. 한때 유럽을 지배했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 유적지와 실크로드의 흔적과 성서 속 사도들의 발자취와 초대 교회의 이야기가 아직도 숨쉬고 있는 나라, 그리고 내가 닮았으면 하는 유일한 시인이자 수피즘의 성자인 루미성인이 살았고 죽어 묻혔던 땅.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을 자신들의 형제국이라고 부르며 특별히 우호적으로 대하는 이 나라에 대해 단순히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가이드의 해박한 설명을 들을수록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이 나라, 이 지역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면 별도의 공부가 더 필요하리라 싶다.
이번 패키지 여행의 동선이 3200km에 가깝다고 하는데, 실제 이곳에서 여행기간은 7일에 불과하니 하루 이동거리만 평균 500km에 이른다. 그러니 대부분 주마간산격으로 스쳐지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침 4시에 일어나 5시에 식사하고 6시에 출발하기도 하는데, 6시간의 시차까지 있으니 숙소로 돌아오면 지쳐서 그날 보고 들었던 것을 정리하여 나눌 여유조차 없다.
차량으로 이동 중에도 가이드의 해박한 설명을 놓치기 아까워 제대로 졸지도 못하니 더욱 그렇다.
들었던 이야기와 본 것들 가운데 함깨 나누었으면 하는 것들이 많다. 고대 신들의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풍부하지만 이번 여정 기간 중에선 나누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방문하는 한 곳 한 곳이 모두 이야기를 길게 따로 나누어야할 곳들인데, 나로썬 지금은 그 이야기들 따라가기에도 벅찬 까닭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돌아가서 기회가 닿는대로 나누기로 하고 우선 이곳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나마 대강 나누기로 한다.
이곳 여름은 건기라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부터 비가 오락가락한다. 이 또한 반가운 일이다.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행히 저녁엔 서늘하다. 뒤늦게 소식 전하는 지금 갈수록 이 나라가 내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박정미
동생 생기신 거 축하드립니다! 저도 튀르키예 가고 싶은데 돈 생기면 선생님께 여행사 의논 드려야겠네요. 패키지여행을 이렇게 만족스럽게 다녀오신다는 것도 큰 복입니다.
1d
Reply
Author
이병철
박정미 튀르키예는 2차례나 3개의 대륙을 지배했던 유일한 지역이었네. 넓은 땅과 풍부한 물산과 기독교와 이슬람이 교차하면서 빚어낸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즐비했네. 아마도 내 생각엔 언제가 이 나라가 세계의 강국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었네. 이 나라를 잘 느끼려면 사전 지식과 넉넉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 꼭 한번 다녀오게. 장서방과 함깨하면 생애의 멋진 여정이 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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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병철 - -튀르키예에서 5, 루미의 숨결을 스쳐가며/ ‘사랑의 춤’ 사랑은 우리를 산산이 부수고, 그 파편으로... | Facebook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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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에서 5,
루미의 숨결을 스쳐가며/
‘사랑의 춤’
사랑은 우리를 산산이 부수고,
그 파편으로 또다시 하나를 만든다.
춤추라.
이 세상이 무너져도 춤추라.
네가 찾는 신은
네 가슴 속에서 춤추고 있다.
― 루미
내가 루미 시인을 만난 것은 관옥 사형이 번역한 루미 시집(루미詩抄/내가 당신이라고 말하라)을 접하면서였다.
그 시집을 읽고 루미 시인을 통해 이슬람의 신비주의인 수피즘(Sufism)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나도 수피즘의 현자라고 불리는 루미 시인처럼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루미 시인은 내가 시를 쓰는 데 있어 유일한 시적(詩的)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시는 아직도 스승 루미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지만, 내 시에서 ‘당신’이라는 말이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은
스승을 닮아가고자 하는 내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첫 시집의 제목도 "당신이 있어" 였다.
그가 노래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신과의 합일에 대한 갈망은 내가 시를 쓰며 평생 붙잡고 싶었던 화두와 같았다.
이번 튀르키예의 여정에서 나는 루미가 스승 샴스(Shams)를 만나 내면의 영적 폭발로 새로운 길을 열어갔던 수피즘의 도시 코냐(Konya)를 잠시 스쳐 지나며 다시 루미와 그의 스승 샴스를 떠올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내에 들어가 루미의 묘소와 기념관은 찾아가지 못했다.
인구 200만에 달하는 이 도시 코냐에는 술집이 하나도 없고, 여성들은 아직도 검은 히잡을 쓰고 다니며 원리주의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인이자 현자였던 루미는 영혼의 자유와 해방을 시와 노래와 춤으로 드러내며 걸림 없는 존재였다.
언젠가 나도 그처럼 삶과 시가 하나가 되는 시를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싶었다.
루미, 그 이름은 지금도 튀르키예와 전 세계에서 ‘영혼의 시인’, ‘수피즘의 현자’로 불리며 종교와 문화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시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잘랄루딘 루미(1207~1273), 그가 살던 시대는 몽골의 침략으로 온 세상이 불안과 혼란에 휩싸였던 시기였다.
그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페르시아와 시리아, 그리고 지금의튀르키예의 코냐로 이어지는 길을 떠돌다 결국 그곳에 정착했다.
루미는 신학자이자 학자로 명성을 쌓았지만, 곧 신과의 직접적인 합일을 추구하는 길, 수피즘에 깊이 들어섰다.
수피즘은 이슬람의 내면을 탐구하는 신비주의 영성 운동으로, 춤과 음악, 시를 통해 신과 하나 되는 체험을 강조한다.
우리가 잘 아는 ‘세마춤(Whirling Dervish)’, 그 신비로운 회전 춤은 바로 루미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루미의 시에는 종교적 경계가 없다.
그의 언어는 무슬림, 기독교인, 힌두교인,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은유와 상징이 풍부하며, 춤과 음악의 리듬을 닮아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그의 시 속에서 사랑은 단순한 인간의 사랑을 넘어 우주와 신을 향한 절대적 사랑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다 보면,우리 자신이 이미 그 신비로운 춤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루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샴스 타브리즈(Shams-i-Tabriz)라는 신비가다.
루미는 본래 신학자이자 율법학자로서 학문과 설교에 몰두했으나, 샴스를 만난 뒤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샴스는 루미에게 영적 사랑의 불을 지핀 사람이었다.
그와의 만남으로 루미의 내면에서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났고,.그 이후 루미의 시와 춤, 수피즘 사상은 꽃피웠다.
샴스가 갑작스레 사라진 뒤, 루미는 그 슬픔을 수많은 시와 춤으로 승화시켰다.
루미의 시 속에서 ‘사랑하는 이’로 등장하는 대상은 사실상 샴스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루미에게 샴스와의 사랑은 존재와 영혼을 오롯이 불태운 헌신과도 같은 불꽃이었으리라 느껴진다.
예전에 나는 신성의 춤(神性舞)이라고 불리는 구르지예프 무브먼트를 잠시 연습할 때 세마춤, 그 수피댄스를 살짝 맛본 적이 있다.
루미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이 춤은 치마 끝단에 모래를 넣어 회전할 때 치마 폭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게 하고,
그 치마를 입은 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끊임없이 도는 몸짓으로 이루어진다.
춤추는 이는 두 팔을 펼쳐 오른손은 하늘을 향해 신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왼손은 아래를 향해 그 축복을 세상에 흘려보낸다.
몸은 쉼 없이 회전하지만 중심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다..춤추는 이는 그 회전 속에서 자신과 세상, 그리고 신의 경계를 잊는다.
“나는 돌고, 세상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직 하나.”
45분 동안 끊임없이 회전하는 이 세마춤을 처음 추었을 때 나는 어지럽고 숨이 가빴다..하지만 이 춤을 계속 추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오직 내면의 침묵과 황홀만이 남는다고 한다..루미가 말한 영혼의 춤의 의미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코냐, 잠시 스쳐간 도시였지만.그곳은 내 시의 영적 스승인 루미가 남긴 사랑과 신비의 세계를.다시 생각하게 해준 소중한 곳이었다.
수피 음악을 구하고 싶어 가이드 김선생에게 CD를 부탁했더니 요즘은 CD로 된 음반을 구하기 어렵다며 대신 자신의 스마트폰에 담긴 곡들을 보내주었다.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첫 시장을 열었던 그랜드 바자르에 들러 세마춤을 추는 수피 그림 액자 하나와 접시 네 개를 샀다. 접시의 그림은 인쇄가 아닌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라기에 기념 삼아 산 것이다. 앞으로 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을 때마다 루미와 그가 남긴, 돌고 도는 수피댄스가 함께 떠오를 것이다.
돌고, 또 도는 그 춤 속에서 나 자신과 온 세상이 하나가 되기를,
언젠가 다시 그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그들과 함께 이 춤을 춰보고 싶다.
(2025.09.15)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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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에서 5,
루미의 숨결을 스쳐가며/
‘사랑의 춤’
사랑은 우리를 산산이 부수고,
그 파편으로 또다시 하나를 만든다.
춤추라.
이 세상이 무너져도 춤추라.
네가 찾는 신은
네 가슴 속에서 춤추고 있다.
― 루미
내가 루미 시인을 만난 것은 관옥 사형이 번역한 루미 시집(루미詩抄/내가 당신이라고 말하라)을 접하면서였다.
그 시집을 읽고 루미 시인을 통해 이슬람의 신비주의인 수피즘(Sufism)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나도 수피즘의 현자라고 불리는 루미 시인처럼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루미 시인은 내가 시를 쓰는 데 있어 유일한 시적(詩的)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시는 아직도 스승 루미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지만, 내 시에서 ‘당신’이라는 말이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은
스승을 닮아가고자 하는 내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첫 시집의 제목도 "당신이 있어" 였다.
그가 노래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신과의 합일에 대한 갈망은 내가 시를 쓰며 평생 붙잡고 싶었던 화두와 같았다.
이번 튀르키예의 여정에서 나는 루미가 스승 샴스(Shams)를 만나 내면의 영적 폭발로 새로운 길을 열어갔던 수피즘의 도시 코냐(Konya)를 잠시 스쳐 지나며 다시 루미와 그의 스승 샴스를 떠올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내에 들어가 루미의 묘소와 기념관은 찾아가지 못했다.
인구 200만에 달하는 이 도시 코냐에는 술집이 하나도 없고, 여성들은 아직도 검은 히잡을 쓰고 다니며 원리주의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인이자 현자였던 루미는 영혼의 자유와 해방을 시와 노래와 춤으로 드러내며 걸림 없는 존재였다.
언젠가 나도 그처럼 삶과 시가 하나가 되는 시를 쓰고, 노래하고 춤추고 싶었다.
루미, 그 이름은 지금도 튀르키예와 전 세계에서 ‘영혼의 시인’, ‘수피즘의 현자’로 불리며 종교와 문화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시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잘랄루딘 루미(1207~1273), 그가 살던 시대는 몽골의 침략으로 온 세상이 불안과 혼란에 휩싸였던 시기였다.
그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페르시아와 시리아, 그리고 지금의튀르키예의 코냐로 이어지는 길을 떠돌다 결국 그곳에 정착했다.
루미는 신학자이자 학자로 명성을 쌓았지만, 곧 신과의 직접적인 합일을 추구하는 길, 수피즘에 깊이 들어섰다.
수피즘은 이슬람의 내면을 탐구하는 신비주의 영성 운동으로, 춤과 음악, 시를 통해 신과 하나 되는 체험을 강조한다.
우리가 잘 아는 ‘세마춤(Whirling Dervish)’, 그 신비로운 회전 춤은 바로 루미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루미의 시에는 종교적 경계가 없다.
그의 언어는 무슬림, 기독교인, 힌두교인,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은유와 상징이 풍부하며, 춤과 음악의 리듬을 닮아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그의 시 속에서 사랑은 단순한 인간의 사랑을 넘어 우주와 신을 향한 절대적 사랑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다 보면,우리 자신이 이미 그 신비로운 춤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루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샴스 타브리즈(Shams-i-Tabriz)라는 신비가다.
루미는 본래 신학자이자 율법학자로서 학문과 설교에 몰두했으나, 샴스를 만난 뒤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샴스는 루미에게 영적 사랑의 불을 지핀 사람이었다.
그와의 만남으로 루미의 내면에서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났고,.그 이후 루미의 시와 춤, 수피즘 사상은 꽃피웠다.
샴스가 갑작스레 사라진 뒤, 루미는 그 슬픔을 수많은 시와 춤으로 승화시켰다.
루미의 시 속에서 ‘사랑하는 이’로 등장하는 대상은 사실상 샴스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루미에게 샴스와의 사랑은 존재와 영혼을 오롯이 불태운 헌신과도 같은 불꽃이었으리라 느껴진다.
예전에 나는 신성의 춤(神性舞)이라고 불리는 구르지예프 무브먼트를 잠시 연습할 때 세마춤, 그 수피댄스를 살짝 맛본 적이 있다.
루미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이 춤은 치마 끝단에 모래를 넣어 회전할 때 치마 폭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게 하고,
그 치마를 입은 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끊임없이 도는 몸짓으로 이루어진다.
춤추는 이는 두 팔을 펼쳐 오른손은 하늘을 향해 신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왼손은 아래를 향해 그 축복을 세상에 흘려보낸다.
몸은 쉼 없이 회전하지만 중심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다..춤추는 이는 그 회전 속에서 자신과 세상, 그리고 신의 경계를 잊는다.
“나는 돌고, 세상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직 하나.”
45분 동안 끊임없이 회전하는 이 세마춤을 처음 추었을 때 나는 어지럽고 숨이 가빴다..하지만 이 춤을 계속 추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오직 내면의 침묵과 황홀만이 남는다고 한다..루미가 말한 영혼의 춤의 의미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코냐, 잠시 스쳐간 도시였지만.그곳은 내 시의 영적 스승인 루미가 남긴 사랑과 신비의 세계를.다시 생각하게 해준 소중한 곳이었다.
수피 음악을 구하고 싶어 가이드 김선생에게 CD를 부탁했더니 요즘은 CD로 된 음반을 구하기 어렵다며 대신 자신의 스마트폰에 담긴 곡들을 보내주었다.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첫 시장을 열었던 그랜드 바자르에 들러 세마춤을 추는 수피 그림 액자 하나와 접시 네 개를 샀다. 접시의 그림은 인쇄가 아닌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라기에 기념 삼아 산 것이다. 앞으로 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을 때마다 루미와 그가 남긴, 돌고 도는 수피댄스가 함께 떠오를 것이다.
돌고, 또 도는 그 춤 속에서 나 자신과 온 세상이 하나가 되기를,
언젠가 다시 그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그들과 함께 이 춤을 춰보고 싶다.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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