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투쟁 4000일 기고-4] 판문점 선언, 그리고 강정투쟁 4000일을 지나며(최혜영) - 제주투데이
[강정투쟁 4000일 기고-4] 판문점 선언, 그리고 강정투쟁 4000일을 지나며(최혜영)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5.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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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반대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한 지 4000일을 맞았다. 주민들은 아직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해군제주기지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의 섬'에 걸맞지 않게 외국의 군함과 핵잠수함들이 드나들며 논란을 빚기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배출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 국제관함식을 열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에 분명 강정마을은 총회를 통해 유치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를 무기 진열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국방부가 개최 여부를 명확이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민들은 지적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 문화제를 맞아 강정지킴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마지막 순서는 강정친구들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혜영 씨가 맡았다.<편집국>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 4000일을 맞아 강정마을에서 지난 달 28일 문화제가 열렸다.(사진=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 제공)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을 적극 환영한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대결과 전쟁의 역사를 끝내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약속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왔다고 한다. 그 봄이 오기까지 지독히 긴 겨울을 견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해군기지는 미군의 기지로 쓰이지는 않을 것이라던 국방부의 말과는 달리 미 해군의 구축함들이 들어오고 핵잠수함이 들어오며 본격적인 미국의 군사기지가 되어가고 있다. 해군기지에서는 수시로 군가가 울려 퍼지고 마을에 군인들이 돌아다니며 평화롭던 마을은 불안하며 평화보다는 전쟁을 준비하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그 힘겨운 시간들을 이겨내며 4000일 동안의 저항을 이어 온 사람들에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필요하다.
허울뿐인 평화의 섬 제주가 아닌 평화로써 온전히 살아갈 제주를 위해 지금의 해군기지 폐쇄는 물론 새롭게 건설예정인 제2공항에 공군기지 또한 백지화 되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드기지가 들어선 성주 소성리에는 경찰 병력에 둘러싸인 채 불법적이고 정당하지 않은 공사가 강행되고 있다. 소성리 주민과 종교인들, 평화활동가들이 경찰들에게 끌려 나가고 고착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흡사 6년 전 강정을 다시 보는 것 같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설명회 단 한 번 없이 갑작스레 해군기지가 유치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파괴된 강정. 마을을 지키고자 싸웠던 사람들은 연행, 벌금, 구속에 시달렸고 국가 정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빨갱이’라 불리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열렸고 앞으로 북미대화가 진행 되어 빠른 시일 내에 남과 북의 상황이 개선된다면 제주에 더 이상 대중국 전초기지는 필요 없다. 민중들은 이미 명분이 사라진 해군기지와 사드가 사라질 때 까지 포기 하지 않고 마음을 모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조속히 오기를 소원한다
<최혜영 강정친구들 사무국장,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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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 문화제 28일 개최icon
[강정투쟁 4000일 기고] "우리의 기억이 구럼비가 되어"(한선남)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4.27 12:44
4월 29일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반대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한 지 4000일째 되는 날이다. 주민들은 아직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해군제주기지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의 섬'에 걸맞지 않게 외국의 군함과 핵잠수함들이 드나들며 논란을 빚기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배출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 국제관함식을 열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에 분명 강정마을은 총회를 통해 유치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를 무기 진열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국방부가 개최 여부를 명확이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민들은 지적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 문화제를 맞아 강정지킴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그 첫 순서는 강정해군기지반대 운동에 동참해 딸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선남 씨가 맡았다.<편집국>
해군기지가 들어서며 폭파되기 전의 구럼비.(사진=조성봉, 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 제공)
우리의 기억이 구럼비가 되어
낮이면 반팔을 입어도 될 만큼 봄이 성큼 다가온 4월 말이다. 제주에 와서 처음 봄을 맞았을 때, 한 낮 날씨만 생각하고 나갔다가 서늘한 바람에 움찔거렸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제주의 봄은 육지보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동백도 지고 벚꽃도 진 후, 바닷물이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 완연한 봄이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이 짧은 봄은 금세 여름으로 바뀔 것이다.
제주, 강정에 살면서 느낀 봄과 여름의 시간은 짧은 찰나에 지나가 버렸다. 2011년 가을 펜스가 쳐지며 구럼비로 향하는 길목이 봉쇄 되고, 2012년 3월 구럼비 발파가 시작되며 공사 저지 활동은 봄볕과 여름 볕에 사람들을 내몰았다. 공사차량 먼지에 작렬하는 태양, 쉴 새 없이 몰려오던 육지 경찰 앞에 물을 마셔 보아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던 그 봄이 강정에서 맞은 첫 번째 봄의 모습이었다.
2007년 비민주적으로 해군기지가 강정에 유치되고 제주도민들이 나서고 강정 주민들이 앞장섰지만 중앙정부에서 하는 일은 이명박근혜 시대를 타고 완고하게 집행되었다. 2011년 강정에 와 지칠 대로 지친 삼촌들을 만났을 때, 더 일찍 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대의 손길을 강정에서 보며, 안타까운 마음은 아득한 희망으로 피곤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모일수록 경찰과 국가 권력은 몇 배의 힘으로 사람들의 목을 옥죄었다. 돌아오는 4월 29일이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이다. 이 시간동안 700명이 연행되고, 60명이 감옥에 가고(벌금노역포함), 벌금이 3억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재판도 30여 건이라 한다.
700, 60, 300,000,000 강정마을에 행해진 국가폭력을 단지 이 숫자들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명 한명이 연행될 때 마다 벌어졌던 싸움과 사연, 아픔의 눈물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온몸과 마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구럼비가 폭약에 의해 발파되고, 깨 부셔질 때 구럼비에 담겼던 이야기와 소망들도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숫자로 이야기 될 수 없는 깊은 절망과 고통이 ‘4000’이라는 숫자에 스며있다.
구럼비 바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송동효, 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 제공)
2016년 2월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난 후 거대한 구럼비바위 위에 들어선 조악한 해군기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헤집는다. 미군들이 오고, 핵잠수함이 들어오고, 헬기가 날고, 군복 입은 군인들이 마을에 돌아다니는 모습.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일들이 하나씩 벌어질 때마다 북받치는 설움이 올라왔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 때문만은 아니다. 강정에 살며 듣는 구럼비에 담긴 이야기들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음의 고향 구럼비에 머릿속에 복잡할 때마다 찾아가 앉아 있곤 했다는 이야기. 아이가 아플 때면 할망물 용천수를 떠다가 정성을 드렸다는 이야기.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때까지 놀고 또 놀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이야기. 삼촌들의 눈가에 희미한 웃음과 눈물이 번질 때 파괴된 것은 단지 바위가 아니란 걸 더 절절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4.3 당시에 구럼비에 몸을 숨겨서 겨우 살아난 마을 삼촌도 있었다. 용천수가 나고, 성게며 소라며 미역이며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고, 오랜 시간 만들어진 미로 같은 지형은 몸을 숨기기 좋았다 한다.목숨을 살려준 구럼비 이야기를 하던 어르신은 그런 곳에 해군기지를 지었다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셨다.
나는 육지 사람으로 아주 짧은 순간을 구럼비에서 보냈을 따름이다. 아주 특별한 추억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맨발로 구럼비에 서서 범섬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나에게 구럼비는 강정 삼촌들의 눈에 번지던 웃음과 눈물, 제주를 터전으로 가꾸고 지키고자 했던 제주 도민들의 굳건한 의지, 구럼비를 만나 삶의 터전을 옮겨온 동료들의 추억이 쌓이고 쌓인 것이다. 비록 구럼비를 잃었다 하더라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아직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군기지하면 지겹다 고개부터 돌리는 도민들도 있다. 하지만 매년 거대한 힘으로 생명평화대행진을 후원하고 협력하는 도민들도 있다. 해군이 갈등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국제관함식을 강정에 유치하고자 했지만 강정앞 바다에서 전 세계 해군들이 군사력을 자랑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여전히 굳건하게 생명평화마을을 지키려는 마을 삼촌들이 있다. 그리고 매일을 첫날처럼 춤추고 노래하며 강정에 사는 강정 지킴이들이 있다. 구럼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늘도 계속 쌓인다.
돌아오는 토요일 4월 28일에는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열린다. 구럼비에 설치되었던 예술작품을 재현한 ‘구럼비 설치예술 기억전’, 매주 목요일이면 강정을 찾아 시를 낭독하며 연대했던 김경훈 시인의 ‘강정목시’ 시집 출판기념회, 그리고 매일을 이어온 인간띠 잇기와 4000일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구럼비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모여 구럼비이야기를 더 두텁게 쌓아 갔으면 한다. 소설처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비핵화, 평화협정이 논의 되는 것처럼 구럼비도 그렇게 거짓말처럼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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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투쟁 4000일 기고] "우리의 기억이 구럼비가 되어"(한선남)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4.27 12:44
4월 29일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반대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한 지 4000일째 되는 날이다. 주민들은 아직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해군제주기지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의 섬'에 걸맞지 않게 외국의 군함과 핵잠수함들이 드나들며 논란을 빚기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배출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 국제관함식을 열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에 분명 강정마을은 총회를 통해 유치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를 무기 진열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국방부가 개최 여부를 명확이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민들은 지적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 문화제를 맞아 강정지킴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그 첫 순서는 강정해군기지반대 운동에 동참해 딸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선남 씨가 맡았다.<편집국>
해군기지가 들어서며 폭파되기 전의 구럼비.(사진=조성봉, 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 제공)
우리의 기억이 구럼비가 되어
낮이면 반팔을 입어도 될 만큼 봄이 성큼 다가온 4월 말이다. 제주에 와서 처음 봄을 맞았을 때, 한 낮 날씨만 생각하고 나갔다가 서늘한 바람에 움찔거렸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제주의 봄은 육지보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동백도 지고 벚꽃도 진 후, 바닷물이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 완연한 봄이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이 짧은 봄은 금세 여름으로 바뀔 것이다.
제주, 강정에 살면서 느낀 봄과 여름의 시간은 짧은 찰나에 지나가 버렸다. 2011년 가을 펜스가 쳐지며 구럼비로 향하는 길목이 봉쇄 되고, 2012년 3월 구럼비 발파가 시작되며 공사 저지 활동은 봄볕과 여름 볕에 사람들을 내몰았다. 공사차량 먼지에 작렬하는 태양, 쉴 새 없이 몰려오던 육지 경찰 앞에 물을 마셔 보아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던 그 봄이 강정에서 맞은 첫 번째 봄의 모습이었다.
2007년 비민주적으로 해군기지가 강정에 유치되고 제주도민들이 나서고 강정 주민들이 앞장섰지만 중앙정부에서 하는 일은 이명박근혜 시대를 타고 완고하게 집행되었다. 2011년 강정에 와 지칠 대로 지친 삼촌들을 만났을 때, 더 일찍 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대의 손길을 강정에서 보며, 안타까운 마음은 아득한 희망으로 피곤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모일수록 경찰과 국가 권력은 몇 배의 힘으로 사람들의 목을 옥죄었다. 돌아오는 4월 29일이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이다. 이 시간동안 700명이 연행되고, 60명이 감옥에 가고(벌금노역포함), 벌금이 3억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재판도 30여 건이라 한다.
700, 60, 300,000,000 강정마을에 행해진 국가폭력을 단지 이 숫자들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명 한명이 연행될 때 마다 벌어졌던 싸움과 사연, 아픔의 눈물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온몸과 마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구럼비가 폭약에 의해 발파되고, 깨 부셔질 때 구럼비에 담겼던 이야기와 소망들도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숫자로 이야기 될 수 없는 깊은 절망과 고통이 ‘4000’이라는 숫자에 스며있다.
구럼비 바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송동효, 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 제공)
2016년 2월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난 후 거대한 구럼비바위 위에 들어선 조악한 해군기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헤집는다. 미군들이 오고, 핵잠수함이 들어오고, 헬기가 날고, 군복 입은 군인들이 마을에 돌아다니는 모습.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일들이 하나씩 벌어질 때마다 북받치는 설움이 올라왔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 때문만은 아니다. 강정에 살며 듣는 구럼비에 담긴 이야기들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음의 고향 구럼비에 머릿속에 복잡할 때마다 찾아가 앉아 있곤 했다는 이야기. 아이가 아플 때면 할망물 용천수를 떠다가 정성을 드렸다는 이야기.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때까지 놀고 또 놀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이야기. 삼촌들의 눈가에 희미한 웃음과 눈물이 번질 때 파괴된 것은 단지 바위가 아니란 걸 더 절절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4.3 당시에 구럼비에 몸을 숨겨서 겨우 살아난 마을 삼촌도 있었다. 용천수가 나고, 성게며 소라며 미역이며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고, 오랜 시간 만들어진 미로 같은 지형은 몸을 숨기기 좋았다 한다.목숨을 살려준 구럼비 이야기를 하던 어르신은 그런 곳에 해군기지를 지었다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셨다.
나는 육지 사람으로 아주 짧은 순간을 구럼비에서 보냈을 따름이다. 아주 특별한 추억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맨발로 구럼비에 서서 범섬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나에게 구럼비는 강정 삼촌들의 눈에 번지던 웃음과 눈물, 제주를 터전으로 가꾸고 지키고자 했던 제주 도민들의 굳건한 의지, 구럼비를 만나 삶의 터전을 옮겨온 동료들의 추억이 쌓이고 쌓인 것이다. 비록 구럼비를 잃었다 하더라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아직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군기지하면 지겹다 고개부터 돌리는 도민들도 있다. 하지만 매년 거대한 힘으로 생명평화대행진을 후원하고 협력하는 도민들도 있다. 해군이 갈등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국제관함식을 강정에 유치하고자 했지만 강정앞 바다에서 전 세계 해군들이 군사력을 자랑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여전히 굳건하게 생명평화마을을 지키려는 마을 삼촌들이 있다. 그리고 매일을 첫날처럼 춤추고 노래하며 강정에 사는 강정 지킴이들이 있다. 구럼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늘도 계속 쌓인다.
돌아오는 토요일 4월 28일에는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열린다. 구럼비에 설치되었던 예술작품을 재현한 ‘구럼비 설치예술 기억전’, 매주 목요일이면 강정을 찾아 시를 낭독하며 연대했던 김경훈 시인의 ‘강정목시’ 시집 출판기념회, 그리고 매일을 이어온 인간띠 잇기와 4000일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구럼비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모여 구럼비이야기를 더 두텁게 쌓아 갔으면 한다. 소설처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비핵화, 평화협정이 논의 되는 것처럼 구럼비도 그렇게 거짓말처럼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한선남-강정마을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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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투쟁 4000일 기고-3] 예술이 된 저항 (한선남)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4.30 16:17
지난 4월 29일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반대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한 지 4000일을 맞았다. 주민들은 아직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해군제주기지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의 섬'에 걸맞지 않게 외국의 군함과 핵잠수함들이 드나들며 논란을 빚기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배출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 국제관함식을 열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에 분명 강정마을은 총회를 통해 유치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를 무기 진열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국방부가 개최 여부를 명확이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민들은 지적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 문화제를 맞아 강정지킴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세 번째 순서는 강정해군기지반대 운동에 동참해 딸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선남 씨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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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투쟁 4000일 기고-3] 예술이 된 저항 (한선남)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4.30 16:17
지난 4월 29일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반대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한 지 4000일을 맞았다. 주민들은 아직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해군제주기지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의 섬'에 걸맞지 않게 외국의 군함과 핵잠수함들이 드나들며 논란을 빚기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배출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 국제관함식을 열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에 분명 강정마을은 총회를 통해 유치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를 무기 진열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국방부가 개최 여부를 명확이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민들은 지적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 문화제를 맞아 강정지킴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세 번째 순서는 강정해군기지반대 운동에 동참해 딸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선남 씨가 맡았다.
<편집국>
강정마을 곳곳에는 장승, 현수막, 뜨개로 만든 천막, 나무와 폐자재를 활용해 글을 쓰고, 기억에 남는 말을 새긴 저항예술이 많다. 4000일을 기억하면서, 길거리 미사천막이 있는 옛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쪽에서는 ‘구럼비 설치예술 기억 전’을 시작했다. 28일 오픈을 한 이번 전시는 비록 구럼비를 빼앗겼지만 구럼비를 잊은 적 없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되새기며 구럼비 인근에 설치됐던 작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한 ‘구럼비 전’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예술품을 모은 ‘보아라 전’ 두 주제로 마련했다.
2007년 최병수 작가가 이지스함 모양을 철판에 용접해 만든 작품을 마을 주민 김민수가 재현한 작품과, 고길천 화백이 구럼비 인근에서 해군기지의 위험성을 고발한 다양한 그래피티 작품은 강정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모습’의 선경과 승민 두 작가는 상징적인 글귀로 입간판을 만들어 새우고 마을 지킴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현수막과 다양한 상징물을 만들어 왔다. 이번 전시에 ‘구럼비 매몰지’라는 입간판을 새롭게 제작해 전시했다. ‘구럼비를 지켜라’라는 천에 바느질한 작품을 재현했다.
강정의 국제연대를 이어가는 최성희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최성희는 구럼비를 넘보는 공사 차량들을 막기 위해 진입로에 돌과 현수막 등으로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지던 때 ‘썩은 낭(나무)’에 피켓을 만들던 폼보드를 잘라 연산호를 표현했다. 길에서 주운 것, 남아 있는 쪼가리도 모두 예술의 재료가 되곤 했던 구럼비에서의 나날을 잘 표현하는 작품으로 이것 역시 재현되어 전시중이다. 또한 수감중에 그린 그림 역시 전시중이다. 감옥에서 쓰는 편지지에 그곳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한정된 색의 볼펜과 형광펜으로 그린 그림은 당시의 절절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방사탑도 재현했다. 돌을 들어 옮기고 쌓는 모든 과정은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마음과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과 몸을 모아야만 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해군기지 반대 투쟁 3995일 되던 2018년 4월 24일 성미산학교 친구들과 강정지킴이들이 방사탑을 재현했다.
그리고 2011년부터 강정에서 상주하기 시작한 문정현 신부는 매일 미사와 더불어 나무판에 글씨를 세기는 서각을 통해 강정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표현해 왔다. 투쟁의 현장 곳곳에는 2011부터 만들어온 100개가 넘는 서각작품이 세워졌고 공동 식당인 할망물 식당에도 약 70여점이 걸려 있다. 이 작품은 ‘보아라’라는 주제로 전시중이다.
대만에서 온 왕 에밀리는 ‘내가 4·3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면’이라는 주제로 유화 작품을 내 놓았다. 그녀는 군함을 바라보면 4·3 때 제주인들을 학살한 군사주의가 떠오른다며, “감히 4·3의 아픔을 치유한다면, 당시 목숨을 잃은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를 강정에 오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
나일론 그물에 천으로 바느질한 ‘강정은 4·3이다’라는 작품은 모습이 디자인하고 강정지킴이 15명이 함께 참여한 대형 현수막으로 4·3이 끝난 것이 아니라 강정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음을 외친다. 국가폭력의 종식을 위한 국가의 성찰이 없는 한 4·3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고 강정은 말한다.
강정에서 현장을 지키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작한 설치물은 말풍선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전시되고 있다. 정보를 알리거나, 구호를 적거나, 그림을 그리며 올레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제주의 바람과 햇살에 낡고 허술하게 변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이 자리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2011년 9월 구럼비가 봉쇄 되면서 많은 예술품들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여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음을 기억한다. 많은 작가들의 예술의 원천이 되었던 강정과 그곳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4000일을 기억하며 도내에서 그리고 전국에서 구럼비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28일 토요일 강정해군기지 정문 쪽에서 진행된 문화제에서는 강정과 연관된 다양한 행위예술, 이야기, 노래와 시낭송, 공연으로 이어졌다. 4000일이란 시간동안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강정해군기지반대투쟁은 여러 가지로 곱씹어 생각할 것이 많다. 전국 어디에 이렇게 긴 시간 연대가 지속되는 지역의 현안 문제가 있을까 싶다. 2011년경 폭발적으로 일어난 강정에 대한 연대는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적인 비폭력 저항과 공동식사는 강정의 이야기를 지속하는 힘이다. 아침 7시 백배, 11시 생명평화미사, 12시 인간띠잇기로 이어지는 활동은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매일 지속되고 있다.
‘할망물식당’에서의 점심식사는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공동식당이다. 강정을 기억하는 후원의 힘으로 꾸려지는 식탁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또한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10여개의 다양한 모임들은 투쟁을 더욱 활기차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들은 평화교육, 마을안내와 여행, 지킴이지원, 홍보, 연구, 후원물품 판매, 신문제작, 국제연대, 해양감시, 기지감시, 책방, 갤러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정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강정마을 곳곳에는 장승, 현수막, 뜨개로 만든 천막, 나무와 폐자재를 활용해 글을 쓰고, 기억에 남는 말을 새긴 저항예술이 많다. 4000일을 기억하면서, 길거리 미사천막이 있는 옛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쪽에서는 ‘구럼비 설치예술 기억 전’을 시작했다. 28일 오픈을 한 이번 전시는 비록 구럼비를 빼앗겼지만 구럼비를 잊은 적 없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되새기며 구럼비 인근에 설치됐던 작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한 ‘구럼비 전’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예술품을 모은 ‘보아라 전’ 두 주제로 마련했다.
2007년 최병수 작가가 이지스함 모양을 철판에 용접해 만든 작품을 마을 주민 김민수가 재현한 작품과, 고길천 화백이 구럼비 인근에서 해군기지의 위험성을 고발한 다양한 그래피티 작품은 강정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모습’의 선경과 승민 두 작가는 상징적인 글귀로 입간판을 만들어 새우고 마을 지킴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현수막과 다양한 상징물을 만들어 왔다. 이번 전시에 ‘구럼비 매몰지’라는 입간판을 새롭게 제작해 전시했다. ‘구럼비를 지켜라’라는 천에 바느질한 작품을 재현했다.
강정의 국제연대를 이어가는 최성희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최성희는 구럼비를 넘보는 공사 차량들을 막기 위해 진입로에 돌과 현수막 등으로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지던 때 ‘썩은 낭(나무)’에 피켓을 만들던 폼보드를 잘라 연산호를 표현했다. 길에서 주운 것, 남아 있는 쪼가리도 모두 예술의 재료가 되곤 했던 구럼비에서의 나날을 잘 표현하는 작품으로 이것 역시 재현되어 전시중이다. 또한 수감중에 그린 그림 역시 전시중이다. 감옥에서 쓰는 편지지에 그곳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한정된 색의 볼펜과 형광펜으로 그린 그림은 당시의 절절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방사탑도 재현했다. 돌을 들어 옮기고 쌓는 모든 과정은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마음과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과 몸을 모아야만 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해군기지 반대 투쟁 3995일 되던 2018년 4월 24일 성미산학교 친구들과 강정지킴이들이 방사탑을 재현했다.
그리고 2011년부터 강정에서 상주하기 시작한 문정현 신부는 매일 미사와 더불어 나무판에 글씨를 세기는 서각을 통해 강정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표현해 왔다. 투쟁의 현장 곳곳에는 2011부터 만들어온 100개가 넘는 서각작품이 세워졌고 공동 식당인 할망물 식당에도 약 70여점이 걸려 있다. 이 작품은 ‘보아라’라는 주제로 전시중이다.
대만에서 온 왕 에밀리는 ‘내가 4·3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면’이라는 주제로 유화 작품을 내 놓았다. 그녀는 군함을 바라보면 4·3 때 제주인들을 학살한 군사주의가 떠오른다며, “감히 4·3의 아픔을 치유한다면, 당시 목숨을 잃은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를 강정에 오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
나일론 그물에 천으로 바느질한 ‘강정은 4·3이다’라는 작품은 모습이 디자인하고 강정지킴이 15명이 함께 참여한 대형 현수막으로 4·3이 끝난 것이 아니라 강정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음을 외친다. 국가폭력의 종식을 위한 국가의 성찰이 없는 한 4·3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고 강정은 말한다.
강정에서 현장을 지키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작한 설치물은 말풍선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전시되고 있다. 정보를 알리거나, 구호를 적거나, 그림을 그리며 올레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제주의 바람과 햇살에 낡고 허술하게 변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이 자리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2011년 9월 구럼비가 봉쇄 되면서 많은 예술품들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여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음을 기억한다. 많은 작가들의 예술의 원천이 되었던 강정과 그곳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4000일을 기억하며 도내에서 그리고 전국에서 구럼비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28일 토요일 강정해군기지 정문 쪽에서 진행된 문화제에서는 강정과 연관된 다양한 행위예술, 이야기, 노래와 시낭송, 공연으로 이어졌다. 4000일이란 시간동안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강정해군기지반대투쟁은 여러 가지로 곱씹어 생각할 것이 많다. 전국 어디에 이렇게 긴 시간 연대가 지속되는 지역의 현안 문제가 있을까 싶다. 2011년경 폭발적으로 일어난 강정에 대한 연대는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적인 비폭력 저항과 공동식사는 강정의 이야기를 지속하는 힘이다. 아침 7시 백배, 11시 생명평화미사, 12시 인간띠잇기로 이어지는 활동은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매일 지속되고 있다.
‘할망물식당’에서의 점심식사는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공동식당이다. 강정을 기억하는 후원의 힘으로 꾸려지는 식탁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또한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10여개의 다양한 모임들은 투쟁을 더욱 활기차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들은 평화교육, 마을안내와 여행, 지킴이지원, 홍보, 연구, 후원물품 판매, 신문제작, 국제연대, 해양감시, 기지감시, 책방, 갤러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정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