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3

성공회 영성생활 :: '공부방/퀘이커' <퀘이커 300년> 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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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300> 독서후기 (1) (0)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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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300> 독서노트 (2) (0)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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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천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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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300> 독서후기 (1)
공부방/퀘이커
2014.11.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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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300>이라는 제목의 책(복사본)을 읽는다. 하워드 H. 브린튼이 지었고 함석헌이번역하였다.
책을 요약하는 하며 간간히 나의 감상과 생각들을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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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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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퀘이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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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처음에는 그것은 퀘이커주의에 가까웠다. 종교개혁은 얼마 못가서 곧 제 형식과권위를 다시 만들었다. 그 지도자들은 순전히 성령에만 근거하는 종교에 겁을 집어먹고, 그런 종교는 무질서에 빠지게 하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 교회들은 자기네들권위의 뒷받침을 얻기 위해 국가와 손을 잡기를 청했다. 독일의 종교개혁은 내면적 종교의하나인 재침례파를 쳐부숴버렸고, 영국의 종교개혁은 퀘이커를 쳐부숴버리려고 했다.



퀘이커는 종교개혁의 원형인가? 사회제도의 권위와 형식을 초월하여 성령에만 근거하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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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주의는 기독교적인 관념에 근거하는 단체신비주의 (group mys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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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는 어떤 종교에나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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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가 신비주의로서 기독교 안에서 가지는 지위는 마치 선종이 불교 안에서 가지는 그것과, 도교가 중국 종교에서 가지는 그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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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양의 신비주의는, 동양의 종교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개인주의적이다. 교단적인 예배는 거의 있다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퀘이커는 단체신비주의이다. 순수한 신비주의는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연합의 끈을 마련해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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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의 사람은 종파의 냄새만 맡아도 싫어한다. 그들의 의견대로 한다면 조직은 정신을 죽여버린다. 그러나 실제로 해야만 종교이다. 그것이 시작될 때는 아마 어떤 개인 선견자 또는예언자의 사상이나 상상 속에서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완전히 드러나려면 반드시 그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려는 어떤 인간의 단체 속에서 전개되는 역사적 발전에 있어서만 가능하다. 종교적 진리가 만일 하나의 운동으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그 생기와 전파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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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주의는 본래 내면생활에 대한 것이지만또 객관적 역사적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기독교 역사에서 중심적인 사건인, 하느님이 나자렛 예수를 통해인간적인 것으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이다.
 만일 하느님이 자기를 외적으로는 역사속에서, 내적으로는 체험 속에서 두가지를 다해 나타내지 않았다면, 그 외적계시는 아무 능력 없는 의미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고, 그 내적 계시는 아무 형체 없는 막연한 것이 돼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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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신비주의를 모르거나 왜곡하거나 피하고 있다. 기성교회는 확립되어 있는 질서에 신자들을 묶으려한다. 그러나 그 질서는 대중들로부터 (특히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이것을 알아차린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새롭게 신비주의를 배우고새로운 교회의 틀을 세우려 한다.
교회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거세다. 특히 교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 거칠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대중의 요구들을 정치적인 것으로 몰아버린다.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시절이다.



퀘이커는 지금 한국사회 기독교에 무슨 말을 걸어 오는가, 나는 무엇을 보게 될것인가?
책을 거울로 나를 돌아보며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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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300> 독서노트 (2) 공부방/퀘이커 2014.11.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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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300> 독서노트 (2) 1.

주님을 우러러 보기 위해 * 올리버 크롬웰이 청교도혁명을 일으켜 영국을 다스리고 있던 1652년에서 56년 사이에 그전에 있었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한 종교운동이 일어났다. 얼마 되지 않은 수의 남녀 무 리가 도시와 시골 집 집에 모여서 고요한 가운데 같이 앉아 ‘주님을 우러르고’ 있었다. 그들 의 얼굴이나 모양에는 두려움과 공경의 빛이 가득해서 그저 보통 살림방이 아니라 거룩한 성 전에라도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무리 위에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 오는 것 혹은 어떤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다림의 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서 그 마음들은 밖을 향한 것이 아니고 안을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떤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높이 들어 하 늘에서 오는 빛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씩 갑자기 침묵을 깨치고 거룩한 뜻에 복종 하라 외치는 목소리, 하느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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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새로운 영적 힘의 폭발은 그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한 나머지 이따금 몸을 떨 게 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반대자들은 그들을 별명지어 ‘퀘이커(quaker)’ 곧 ‘떠는 자들’이라 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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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새 교파를 만들자는 생각은 없었고, 다만 자기네가 발견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려 했을 뿐이다. 그것을 그들은 ‘진리’(The Truth)라 불렀는데, 이 ‘진리’는 새 교리라 기보다는 새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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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가 모여 있는 곳이 진동하더니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이 충만했다” (사도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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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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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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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스테시, 토마스 스텁스, 그 외 몇사람이 처음으로 어퍼사이드에서 진리를 선포했 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얻은 사람들 수는 대여섯 되었고, 이들은 곧 모여서 고요한 가 운데 하느님을 우러렀는데 주님께서는 친히 임하셔서 우리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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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우리는 꽤 많은 수의 사람이 이곳(콘웰)에 모여서 고요히 앉아 주님을 우러렀는 데, 이때에 우리는 아주 좋고 재미있는 모임을 여러 번 가졌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오직 하나 이신 스승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계셔서 우리의 영적인 요구를 이루어주시는 것을 깨달았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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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킨슨은 우리와 같이 며칠을 머문 후 우리에게 모임을 만들라고 권면했습니다. 아무 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여서 주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대로해서 한동안 크리스토 퍼 스토리네 집 이층에 모였는데 얼마 아니 가서 그 방이 적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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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친우들은 진정한 침묵을 속으로 지키기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 뜻 대로 우리 여럿의 마음을 새 술로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몇 사람의 친우는 견디다 못해 마 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몇 마디 말을 하는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의 마 음의 부드럽고 겸손함은 놀랄 정도였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 생생하게 증거 가 되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힘이 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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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켄트에서 설교를 하고 있던 윌리엄 카튼과 존 스텁스)은 모임을 만들어 세워서 신 앙 얻은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고요한 가운데 주님을 우러르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제 속으로 향하여 제 안에 받아가지고 있는 생명의 빛의 분량 에 따라 자기네가 오래 두고 말로 증거해 오던 신앙의 산 실속을 차차 느끼고, 몸에 지니고, 즐길 수 잇는 데까지 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도, 지금 이 시대에도 이루어지기를............. 기독교 교회의 무미건조한 형식을 인위적으로 깨뜨릴 수는 없다. 새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그곳에 기존의 형식은 깨질 것이고 새로운 그 무엇이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