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북 특권층의 외제 선호와 국산품 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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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주요 정책 중 하나는 국산품 장려 정책입니다.
수입병이니 뭐니 지나치게 국산품 애용을 강조하다보니 TV 화면에서 외제 상표를 지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는데요.
하지만 정작 외제 사치품 수입이 꾸준히 느는 등 특권층들의 외제 사랑은 여전합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북한의 국산품 애용 정책, 그 이면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2일, 북한 조선중앙TV는 특별 프로그램, ‘정구운동을 대중화하여’를 내보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2일) : "부소장 이상의 일꾼들부터가 운동복을 입고 종업원들과 함께 흠뻑 땀을 흘리며 정구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북한 전역의 사업소에서 다양한 운동, 특히 정구 열풍이 불고 있음을 주장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주민들의 운동복에 새겨진 상표..
삼각형 로고 밑에 있어야 할 해외 브랜드의 영문 상표가 테이프로 모두 가려진 것이다.
외제상표가 드러난 운동복을 그대로 노출시켰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최근 외제상표 가리기까지 나선 건 김정은 제 1위원장의 ‘국산품 애용’ 지시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녹취> 김정은 신년사(2015년) :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이며…"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수입품을 선호하는 세태를 '수입병'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북한 매체들은 “수입 만능주의자는 매국노” “현대판 노예”라는 격한 표현을 빌려 국산품 애용을 독려했다.
<녹취>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2013년 2월 이른바 전국 경공업 대회 이후에 국산품 장려 운동을 지금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기술의 국산화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가장 중요한 목표가 기본적으로 인민 생활 향상과 연관된 경공업 제품 전반을 국산화하려고 하는 그런 목표와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거죠."
집권 이후 김정은은 경공업 분야의 생산 시설을 잇따라 시찰하며 국산품 애용을 독려해왔다.
지난 해 8월, 평양 양말공장을 찾은 김정은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양말의 품질을 꼼꼼히 살펴보고, 공장 관계자들에게 양말의 ‘국산화 투쟁’을 강조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해 8월) : "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자면 원료, 자재 보장 대책을 철저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양말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국산화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이며.."
신년사에서 ‘수입병’을 언급한 직후인 지난 1월 방문한 류원 신발공장..
김정은은 대외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신발을 생산하라고 주문하며, ‘세계가 조선의 유행을 따르게 하라’는 야심찬 목표까지 내걸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품질에 대해선 따끔한 질책도 뒤따랐다.
지난 2월 화장품공장 시찰 당시엔 마스카라의 질을 지적하며 ‘외국산은 물에 들어갔다 나와도 그대로인데 북한산은 하품만 하면 너구리 눈이 된다’고 공개적으로 질타한 바 있다.
이러한 김정은의 행보엔 국산화 정책을 통해 경공업 분야를 되살리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최고 지도자가 직접 지시하고, 그 다음에 어떤 지침을 내리는 형태로 지금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의 말 한마디는 결국 북한 전 지역에 급속도로 확산을 미칠 수 있는 큰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국산품 애용 자체가 결국 애국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북한 전 지역의 수입병을 타파하기 위한 그런 어떤 적극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북한 당국은 국산품 생산 증가와 함께 유통망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기하고 있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평양의 한 가게.
우리의 ‘편의점’에 해당하는 북한 국영상점, 황금벌 상점이다.
각종 생필품과 먹을거리, 의류에 이르기까지 천 오백여 가지 상품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녹취> 림분옥(북한 주민) : "오늘 아침에 우리 세대주(남편)가 신선한 남새국(채소국)을 잡숫겠다고 해서 아침 일찍 나왔습니다. 질 좋은 상품들이 많이 있고 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주목할 점은 북한 당국이 이곳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이 국산품이라고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지난 4월 처음 선보인 온라인 쇼핑몰 ‘옥류’도 마찬가지.
북한 내부 인터넷 망인 ‘인트라넷’을 이용해 주문하고, 현금카드를 통해 결제하는 시스템인 ‘옥류’에서도 백 퍼센트 국산품만을 취급한다.
국산품의 유통 반경을 넓혀 주민들의 소비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다시 설비, 투자를 확충하는 이른바 ‘선순환 구조’를 구상한 것이다.
<녹취>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결국은 이제 북한의 국산화를 강조하는 핵심 목적 중에 하나는 국제 사회의 제재를 돌파하고 북한 내부 자원을 최대한 총동원해서 자립 경제 기반을 다지는 것하고도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그런 자연 자원들이 많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생산해서 수입 의존도를 낮춰서 자립 경제 기반을 구축하겠다.."
지난 4월, 집권 이후 두 번째로 비행기 조종간을 잡은 김정은의 모습이 북한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북한이 처음으로 자체 생산했다는 경비행기 시범 비행을 위해서였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4월) :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성능이 대단히 높다고 조종하기 편리하고 발동기 소리가 아주 좋다고 거듭 치하하셨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비행기 생산 공정을 공개하고 자체 생산한 경비행기의 성능을 과시했다.
북한은 비행기 뿐 아니라 자동차, 휴대 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전자기기의 자체 생산을 꾸준히 선전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조립, 포장에 그친다는 것이 우리 정부와 다수 전문가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이 사실과 동떨어진 선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우리의 기술 수준이 이렇게 높아졌다. 그러면서 결국은 이제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켜서 김정은 체제에서 와서 달라진 그런 국가적 위상, 자존심, 이런 것들을 최대한 홍보하려는, 또 주입시키려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봐야 되겠죠."
북한 당국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의 국산화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시설, 설비의 부족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공장은 전력난 등으로 대다수 가동을 멈췄다.
그리고 이 틈을 타, 중국산 제품들이 장마당을 통해 북한 내부에 대거 유입됐다.
가전제품, 각종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수입품이 범람하면서, 이에 길들여진 북한 주민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품을 외면하는 것은 국산화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수입품 중에서도 한국산의 인기가 높은데, 이를 구하기 위한 눈치작전도 치열하다고 한다.
<녹취> 최성국(탈북자/무역 중개상 출신) : "한국산 물건 파는 거는요. 거의 간첩훈련 받은 사람처럼 사야 되고, 간첩훈련 받은 사람처럼 팔아야 됩니다. 옛날에는 ‘저쪽 아랫동네 것 있냐고.’ 그냥 이렇게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것도 이젠 좀 단속 당하니까 이제는 ‘중국 거보다 더 좋은 게 있냐.’ 이렇게 불렸어요. 그런데 그것도 또 이제 잡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있냐고.’ 이래요. ‘저쪽 꺼 있냐’고.."
최근 한 북한 전문매체는 북한 당국의 국산품 장려 정책에 따라 장마당에서 수입품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단속이 강화될수록 수입품을 향한 수요는 커질 거라고 무역 중개상 출신 탈북자는 전망한다.
<녹취> 최성국(탈북자/무역 중개상 출신) : "일단 통제가 강화되면 될수록 통제하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더 올라가요. 모르던 사람들도 ‘야, 이게 뭐야.’ 이렇게 되고. 그리고 그렇게 통제를 강하게 하는데도 외국 제품을 입고 다닌다. 그러면 그 사람 아주 멋있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통제를 할수록 판매도 많이 되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가운데 있는 중개상들이 이 기회에 돈을 벌죠."
문제는 북한의 엄격한 수입품 통제가 일반 주민들에게만 국한돼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4일, 우리 정보 당국은 북한 최고위층의 소비 행태에 대한 자료를 발표했다.
정보에 따르면, 주민들에겐 국산 분유 사용을 장려했던 김정은, 리설주 부부가 정작 자녀에게 먹이는 것은 독일산 고급 분유.
북한 근로자 한 달 임금의 절반에 달하는 고가 제품이다.
의복, 액세서리 등도 도마에 올랐다.
리설주가 지난 6월 공개 석상에서 착용했던 목걸이의 가격은 200만원.
김정은의 인민복 역시 한 벌에 최소 400만원이 넘는 영국제 명품 원단으로 밝혀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외제 사치품 수입액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09년 3억 2253달러였던 사치품 수입액은 매년 증가해, 2013년엔 6억 4429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김정일 집권 시절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사치품 수입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장마당 등 시장경제 통해 부를 축적한 이른바 ‘돈주’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종합쇼핑몰의 탄생은, 사치품 구매의 장이 되어 북한 신흥 부유층의 소비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체제 유지 수단으로 사치품을 활용하는 측면도 있다.
고급 승용차와 양주, 시계 등 사치품을 사들인 뒤군과 당 간부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녹취>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외국산 사치 제품을 들여와서 이 사치 제품을 통해서 북한 간부들, 핵심 간부들한테 선물을 하는 일종의 선물정치를 통해서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고, 그 다음에 북한의 일부 계층들에 대한 어떤 우월성을 좀 돋보이게 해가지고 북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이런 목적이 가장 크지 않나..."
2006년 북한의 첫 핵 실험 이후, 유엔은 핵실험을 거듭할 때마다 북한에 대한 사치품 제재 조치를 강화해왔다.
하지만 지난 해 북한군 결의대회에서 20억이 넘는 벤츠 신형 모델이 포착되는 등 유엔의 사치품 규제는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중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이 주요 사치품의 반입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마다 사치품을 수입하는 데 드는 돈은 옥수수 366만 톤, 쌀 151만 톤의 구매 비용과 맞먹는 규모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의 ‘국산품 장려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녹취>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주민들이 바라봤을 때는 최고 지도자가 국산품을 강조를 하게 되면 솔선수범해가지고 어떤 국산품을 애용하는 것을 보여줘야 되는데 최고 지도자는 말로는 국산품을 애용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외제 상품을 선호한다는 게 비춰짐으로서 결국 북한 주민들한테는 불만을 야기하는 커다란 하나의 요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대북제재에 맞선 경제 회생의 돌파구로 ‘국산품 장려’ 카드를 꺼내든 북한!
하지만 특권층의 사치품 수입이 해마다 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만 강요되는 ‘국산품 애용’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주요 정책 중 하나는 국산품 장려 정책입니다.
수입병이니 뭐니 지나치게 국산품 애용을 강조하다보니 TV 화면에서 외제 상표를 지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는데요.
하지만 정작 외제 사치품 수입이 꾸준히 느는 등 특권층들의 외제 사랑은 여전합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북한의 국산품 애용 정책, 그 이면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2일, 북한 조선중앙TV는 특별 프로그램, ‘정구운동을 대중화하여’를 내보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2일) : "부소장 이상의 일꾼들부터가 운동복을 입고 종업원들과 함께 흠뻑 땀을 흘리며 정구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북한 전역의 사업소에서 다양한 운동, 특히 정구 열풍이 불고 있음을 주장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주민들의 운동복에 새겨진 상표..
삼각형 로고 밑에 있어야 할 해외 브랜드의 영문 상표가 테이프로 모두 가려진 것이다.
외제상표가 드러난 운동복을 그대로 노출시켰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최근 외제상표 가리기까지 나선 건 김정은 제 1위원장의 ‘국산품 애용’ 지시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녹취> 김정은 신년사(2015년) :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이며…"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수입품을 선호하는 세태를 '수입병'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북한 매체들은 “수입 만능주의자는 매국노” “현대판 노예”라는 격한 표현을 빌려 국산품 애용을 독려했다.
<녹취>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2013년 2월 이른바 전국 경공업 대회 이후에 국산품 장려 운동을 지금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기술의 국산화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가장 중요한 목표가 기본적으로 인민 생활 향상과 연관된 경공업 제품 전반을 국산화하려고 하는 그런 목표와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거죠."
집권 이후 김정은은 경공업 분야의 생산 시설을 잇따라 시찰하며 국산품 애용을 독려해왔다.
지난 해 8월, 평양 양말공장을 찾은 김정은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양말의 품질을 꼼꼼히 살펴보고, 공장 관계자들에게 양말의 ‘국산화 투쟁’을 강조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해 8월) : "생산을 높은 수준에서 정상화하자면 원료, 자재 보장 대책을 철저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양말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국산화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이며.."
신년사에서 ‘수입병’을 언급한 직후인 지난 1월 방문한 류원 신발공장..
김정은은 대외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신발을 생산하라고 주문하며, ‘세계가 조선의 유행을 따르게 하라’는 야심찬 목표까지 내걸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품질에 대해선 따끔한 질책도 뒤따랐다.
지난 2월 화장품공장 시찰 당시엔 마스카라의 질을 지적하며 ‘외국산은 물에 들어갔다 나와도 그대로인데 북한산은 하품만 하면 너구리 눈이 된다’고 공개적으로 질타한 바 있다.
이러한 김정은의 행보엔 국산화 정책을 통해 경공업 분야를 되살리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최고 지도자가 직접 지시하고, 그 다음에 어떤 지침을 내리는 형태로 지금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의 말 한마디는 결국 북한 전 지역에 급속도로 확산을 미칠 수 있는 큰 파괴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국산품 애용 자체가 결국 애국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북한 전 지역의 수입병을 타파하기 위한 그런 어떤 적극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북한 당국은 국산품 생산 증가와 함께 유통망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기하고 있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평양의 한 가게.
우리의 ‘편의점’에 해당하는 북한 국영상점, 황금벌 상점이다.
각종 생필품과 먹을거리, 의류에 이르기까지 천 오백여 가지 상품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녹취> 림분옥(북한 주민) : "오늘 아침에 우리 세대주(남편)가 신선한 남새국(채소국)을 잡숫겠다고 해서 아침 일찍 나왔습니다. 질 좋은 상품들이 많이 있고 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주목할 점은 북한 당국이 이곳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이 국산품이라고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지난 4월 처음 선보인 온라인 쇼핑몰 ‘옥류’도 마찬가지.
북한 내부 인터넷 망인 ‘인트라넷’을 이용해 주문하고, 현금카드를 통해 결제하는 시스템인 ‘옥류’에서도 백 퍼센트 국산품만을 취급한다.
국산품의 유통 반경을 넓혀 주민들의 소비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다시 설비, 투자를 확충하는 이른바 ‘선순환 구조’를 구상한 것이다.
<녹취>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결국은 이제 북한의 국산화를 강조하는 핵심 목적 중에 하나는 국제 사회의 제재를 돌파하고 북한 내부 자원을 최대한 총동원해서 자립 경제 기반을 다지는 것하고도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그런 자연 자원들이 많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생산해서 수입 의존도를 낮춰서 자립 경제 기반을 구축하겠다.."
지난 4월, 집권 이후 두 번째로 비행기 조종간을 잡은 김정은의 모습이 북한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북한이 처음으로 자체 생산했다는 경비행기 시범 비행을 위해서였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4월) :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성능이 대단히 높다고 조종하기 편리하고 발동기 소리가 아주 좋다고 거듭 치하하셨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비행기 생산 공정을 공개하고 자체 생산한 경비행기의 성능을 과시했다.
북한은 비행기 뿐 아니라 자동차, 휴대 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전자기기의 자체 생산을 꾸준히 선전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조립, 포장에 그친다는 것이 우리 정부와 다수 전문가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이 사실과 동떨어진 선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우리의 기술 수준이 이렇게 높아졌다. 그러면서 결국은 이제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켜서 김정은 체제에서 와서 달라진 그런 국가적 위상, 자존심, 이런 것들을 최대한 홍보하려는, 또 주입시키려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봐야 되겠죠."
북한 당국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의 국산화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시설, 설비의 부족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공장은 전력난 등으로 대다수 가동을 멈췄다.
그리고 이 틈을 타, 중국산 제품들이 장마당을 통해 북한 내부에 대거 유입됐다.
가전제품, 각종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수입품이 범람하면서, 이에 길들여진 북한 주민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품을 외면하는 것은 국산화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수입품 중에서도 한국산의 인기가 높은데, 이를 구하기 위한 눈치작전도 치열하다고 한다.
<녹취> 최성국(탈북자/무역 중개상 출신) : "한국산 물건 파는 거는요. 거의 간첩훈련 받은 사람처럼 사야 되고, 간첩훈련 받은 사람처럼 팔아야 됩니다. 옛날에는 ‘저쪽 아랫동네 것 있냐고.’ 그냥 이렇게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것도 이젠 좀 단속 당하니까 이제는 ‘중국 거보다 더 좋은 게 있냐.’ 이렇게 불렸어요. 그런데 그것도 또 이제 잡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있냐고.’ 이래요. ‘저쪽 꺼 있냐’고.."
최근 한 북한 전문매체는 북한 당국의 국산품 장려 정책에 따라 장마당에서 수입품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단속이 강화될수록 수입품을 향한 수요는 커질 거라고 무역 중개상 출신 탈북자는 전망한다.
<녹취> 최성국(탈북자/무역 중개상 출신) : "일단 통제가 강화되면 될수록 통제하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더 올라가요. 모르던 사람들도 ‘야, 이게 뭐야.’ 이렇게 되고. 그리고 그렇게 통제를 강하게 하는데도 외국 제품을 입고 다닌다. 그러면 그 사람 아주 멋있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통제를 할수록 판매도 많이 되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가운데 있는 중개상들이 이 기회에 돈을 벌죠."
문제는 북한의 엄격한 수입품 통제가 일반 주민들에게만 국한돼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4일, 우리 정보 당국은 북한 최고위층의 소비 행태에 대한 자료를 발표했다.
정보에 따르면, 주민들에겐 국산 분유 사용을 장려했던 김정은, 리설주 부부가 정작 자녀에게 먹이는 것은 독일산 고급 분유.
북한 근로자 한 달 임금의 절반에 달하는 고가 제품이다.
의복, 액세서리 등도 도마에 올랐다.
리설주가 지난 6월 공개 석상에서 착용했던 목걸이의 가격은 200만원.
김정은의 인민복 역시 한 벌에 최소 400만원이 넘는 영국제 명품 원단으로 밝혀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외제 사치품 수입액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09년 3억 2253달러였던 사치품 수입액은 매년 증가해, 2013년엔 6억 4429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김정일 집권 시절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사치품 수입이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장마당 등 시장경제 통해 부를 축적한 이른바 ‘돈주’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종합쇼핑몰의 탄생은, 사치품 구매의 장이 되어 북한 신흥 부유층의 소비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체제 유지 수단으로 사치품을 활용하는 측면도 있다.
고급 승용차와 양주, 시계 등 사치품을 사들인 뒤군과 당 간부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녹취>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외국산 사치 제품을 들여와서 이 사치 제품을 통해서 북한 간부들, 핵심 간부들한테 선물을 하는 일종의 선물정치를 통해서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하고, 그 다음에 북한의 일부 계층들에 대한 어떤 우월성을 좀 돋보이게 해가지고 북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이런 목적이 가장 크지 않나..."
2006년 북한의 첫 핵 실험 이후, 유엔은 핵실험을 거듭할 때마다 북한에 대한 사치품 제재 조치를 강화해왔다.
하지만 지난 해 북한군 결의대회에서 20억이 넘는 벤츠 신형 모델이 포착되는 등 유엔의 사치품 규제는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중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이 주요 사치품의 반입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마다 사치품을 수입하는 데 드는 돈은 옥수수 366만 톤, 쌀 151만 톤의 구매 비용과 맞먹는 규모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의 ‘국산품 장려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녹취>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북한 주민들이 바라봤을 때는 최고 지도자가 국산품을 강조를 하게 되면 솔선수범해가지고 어떤 국산품을 애용하는 것을 보여줘야 되는데 최고 지도자는 말로는 국산품을 애용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외제 상품을 선호한다는 게 비춰짐으로서 결국 북한 주민들한테는 불만을 야기하는 커다란 하나의 요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대북제재에 맞선 경제 회생의 돌파구로 ‘국산품 장려’ 카드를 꺼내든 북한!
하지만 특권층의 사치품 수입이 해마다 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만 강요되는 ‘국산품 애용’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