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9

[클로즈업 북한] 북한의 숙청 간부 ‘흔적 지우기’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북한의 숙청 간부 ‘흔적 지우기’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클로즈업 북한] 북한의 숙청 간부 ‘흔적 지우기’
입력 2015.05.23 (08:05) | 수정 2015.05.23 (08:52)남북의창| VIEW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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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 발표를 계기로 북한에서 숙청된 인물을 각종 기록물에서 삭제하는 이른바 ‘흔적 지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부터 김정은 제 1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숙청 인물들의 흔적 지우기는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져오고 있는데요.

그렇게 사라져 간 인물은 누구인지, 북한이 흔적 지우기에 열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3일, 북한군 서열 2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 사실이 전격 언론에 공개됐다.

여기에는 현영철이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포로 처형됐다는 첩보 내용이 함께 포함됐다.

국정원이 밝힌 현영철의 숙청 사유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불경과 불충이다.

김정은이 주재한 행사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과 함께 평소 김정은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수차례 지시를 어긴 정황이 공안당국에 적발됐다는 것이다.

20년 넘게 북한군에서 복무하며 현영철을 직접 만난 적도 있다는 군 고위간부 출신 탈북자는, 현영철의 우직하고 솔직한 성격이 화근이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인터뷰> 이OO(탈북자/前 북한군 고위관계자) : "(현영철을) 저도 한두 번은 만나 봤는데, 사람이 좀 뭐라 그럴까 자기 심정을 내속에 감출 줄 모르고 툭 털어놓는 유형입니다. ‘김정은이는 정치만 했으면 좋겠다.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다. 나이가 어려서 모르면 말하자면 자기네(간부들)한테 배우고 스스럼없이 물어봐서 배우고 하면서 나라의 정치를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그 발언도 즉시 말하자면 김정은한테 보고되고 현영철을 공개 총살함으로써 주변 간부들에게 각성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숙청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숙청을 ‘정치적 반대세력을 차단하거나 제거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숙청은 북한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정치적, 형사적 처벌을 의미한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한 번 숙청당한 인물의 경우에는 혁명화의 경우와는 다르게 그가 이제 복원된 경우가 거의 드뭅니다. 왜냐하면 숙청이라는 건 간부들에게 공개처형이나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는 것인데 정치범 수용소에서 돌아 온 케이스는 그의 무죄가 밝혀진 케이스라든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우 드뭅니다. 고위 간부들의 경우 그만큼 김일성이나 김정일 또는 김정은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그 신임을 배반한다고 했을 때 처벌의 강도는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숙청의 역사는 김일성 시대인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남침 실패의 책임을 물어, 남로당 출신 박헌영을 미국 스파이로, 친소파 허가이를 반혁명분자로 몰아 공개 처형한 것이다.

이후 종파사건을 통해 소련파와 연안파를 제거한 김일성은 1967년 김정일 후계를 반대하던 갑산파를 대거 숙청함으로써 유일 권력체제를 확립했다.

김일성의 숙청이 주로 정적 제거 수단이었다면 김정일의 숙청은 정권 유지의 수단이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간부를 숙청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숙청이 이어졌다.

1997년, 고위간부 2만 여 명을 숙청한 ‘심화조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인터뷰> 김근식(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 "70년대 이후에 김일성의 이른바 수령제 시스템, 유일영도체계가 확정된 다음에는 김정일 시대로 넘어와서 이제 어떤 하나의 정치 세력 다툼이 아니라 단일한 유일영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김정일에 대한 정치적 반역행위, 정치적인 저항행위 이런 것들이 발각될 때 정책적 실패 등을 물어서 개인적으로 숙청된 경우가 계속 있었고요."

반면, 어린 나이인데다 권력 승계 기간마저 짧은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 기반 구축을 위해 숙청을 남발하고 있고, 그 방식 또한 훨씬 즉흥적이고 잔혹해졌다는 평가다.

북한의 숙청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 목적과 양상이 변해왔지만, 여기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숙청자들의 사진과 기록을 없애는 이른바 흔적지우기다.

<인터뷰> 김근식(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 "반당종파행위 이런 것들로 규정이 돼서 숙청이 됐을 경우에는 당연히 그 다음 따랐던 것이 뭐냐면 그 이후에 발간되는 공식문서들, 특히 이제 혁명역사를 서술한 책이라든지 그 다음에 조선노동당의 약서를 서술한 책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의 공식서적에 그 이후에 발간된 내용에서는 숙청된 세력들은 다 이름을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 있었던 행적 자체가 숙청 이후에는 공식문건이나 공식역사서에서 지워진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당 반혁명 분자의 흔적이 남아있을 경우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훼손할 것을 우려해 우상화 영상물을 비롯한 숙청 간부의 개별 기록들을 모두 삭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간부들에 대한 경각심 고취는 물론 숙청에 대한 정당성 논란의 소지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목적도 담겨있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7월) : "회의에서는 리영호 동지를 신병관계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남북의 창 취재진은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군 실세였던 이영호 전 참모장의 숙청 직후 작성된 북한군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숙청 다음 달인 2012년 8월 30일 작성된 문건에는, 실제로 이영호의 사진은 물론이영호의 이름과 글이 들어간 모든 출판물을 삭제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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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당 반혁명 분자 이영호의 사진과 기록을 모두 없애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당 선전선동부에 하달된 직후 벌어진 일이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북한에서 반대세력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기억까지 없애려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그들의 영향력을 아예 송두리째 뽑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숙청된 인물들 그들이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또 이제 그들의 측근까지도 다시 세력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예 없애기 위해서 북한은 아주 철두철미한 그런 이제 기억의 재주조 작업을 해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북한의 흔적지우기는 원칙적으로 숙청으로 ‘처형’된 인물이 삭제 대상이다.

1990년 대 농정 파탄의 책임을 물어 처형한 서관희 농업비서와 2010년 화폐개혁 실패로 처형된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된 장성택과 이영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귀순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숙청자가 아니지만, 북한이 체제 위협 대상으로 규정해 예외적으로 삭제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모든 과정은 김정은의 결재를 받아 당 선전선동부와 군 총정치국장이 역할을 분담해 주도하고 있다.

북한이 최우선적으로 진행하는 흔적지우기는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등장하는 영상이나 사진에서 숙청자의 모습을 제거해 재편집하는 것이다,

삭제과정에서 김일성 일가의 기록물이 손상될 가능성이 크거나 삭제시에도 숙청자의 모습이 명확히 남아있는 경우는 삭제가 아닌 회수조치가 이뤄진다.

심지어는 공식 기록물을 넘어서 숙청된 인물의 사진을 보유한 각 가정을 대상으로도 흔적지우기가 진행된다는 게 탈북자의 전언이다.

<인터뷰> 이OO(탈북자/前 북한군 고위관계자) : "이제 각 세대들에서 (숙청자가 찍힌) 기념사진을 한 장씩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 사진에 이제 (예를 들어) 현영철이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 김정은 옆에 앉아서..그럼 그걸 다 걷습니다. 그걸 사진을 다 삭제해버립니다."

1997년 황장엽 전 비서가 귀순한 뒤에도 북한에서는 주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사진 회수작업이 벌어졌다고 한다.

<인터뷰> 이OO(탈북자/前 북한군 고위관계자) : "벌써 어느 집에는 1호 사진이 몇 개 있다는 걸 다 압니다.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저 같은 경우도 집에 뭐 일곱 장 이렇게 있었는데, 우리 집에 1호 사진이 일곱 개가 있다고 하니까 저도 (북한에) 있을 때 황장엽하고 (찍은) 사진을 저한테서 가지고 가서 삭제했습니다."

숙청 간부들의 흔적을 지우는데 걸리는 기간은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8개월까지 천차만별이다.

김정일 집권 시기 처형된 서관희 농업 비서는 3개월, 황장엽 비서는 7개월이 걸렸고, 김정은 시대 들어 리용하, 장수길 부부장은 각각 2개월,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8개월이 걸린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장성택의 경우 처형 닷새 전부터 기록 영화 등 모든 영상에서 기록이 삭제됐고, 이영호의 경우처럼 숙청 엿새 만에 신속하게 매체에서 사라진 경우도 있다.

이렇듯 흔적지우기를 통해 숙청된 인물을 지워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지만, 현영철의 경우 그 양상이 다르다.

국정원이 숙청일로 밝힌 지난달 30일 이후 북한 매체 보도에서 현영철의 공식 활동은 사라졌지만, 기록영화를 통해서는 꾸준히 모습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현영철이 숙청됐다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정성장(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북한에서 공개총살 당하거나 강제 수용소에 보내진 이른바 숙청된 간부들의 경웅에는 그들의 이름이 북한의 언론매체에서 삭제가 되고 또한 각종 기록영화에서 그들의 얼굴도 지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현영철이 공개처형당했다고 밝힌지 벌써 2주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북한의 공식매체에는 현영철의 이름과 그리고 사진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와 같은 점에 비춰 봤을 때는 현영철이 공개총살 당했다고 믿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반면, 북한 당국이 의도적으로 현영철의 흔적 지우기를 미루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국내외 언론에 현영철의 숙청이 보도된 상황에서 그의 모습을 삭제할 경우 공포 정치를 시인되는 셈이어서 이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군 고위 인사를 공식 절차 없이 숙청한 것이 알려질 경우 북한 내부에서 군부가 동요할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의 정보 판단에 혼선을 야기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당분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인터뷰> 김근식(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 "현영철 부장 같은 경우 우리가 먼저 숙청사실을 알렸단 측면에서는 그것을 바로 인정해버리는 꼴이 되면, 그래서 숙청사실을 자기도 대내적으로 공개하고 바로 곧바로 신속하게 영상물에서 흔적을 지운다면 남쪽에 오히려 동조한 듯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현영철의 숙청사실을 공개하거나 시인하지 않고, 그 다음에 현영철을 기록물에서 지속적으로 조금 더 유지하면서 남측 국정원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지난 17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서울을 방문했다.

현영철의 숙청을 공식 거론한 존 케리 국무장관은 ‘김정은이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공개 처형이나 숙청을 하고 있다’면서,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가능성을 언급했다.

과거 숙청이 북한 내부의 문제에 그쳤다면, 이제는 국제사회로 그 파장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유일 권력 수립과 유지 수단으로 3대에 걸쳐 숙청을 자행하고, 숙청자들의 흔적조차 없애온 북한.

커져가는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과 장기적으로 체제 불안의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 속에 북한의 공포 정치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