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9

[클로즈업 북한] 김정은 ‘공포통치’…수단·사례는? > 남북의창 > 정치 > 뉴스 | KB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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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북한] 김정은 ‘공포통치’…수단·사례는?
입력 2015.11.21 (08:07) | 수정 2015.11.21 (09:15)남북의창| VIEW 2,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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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최룡해의 실각과 마원춘 등 최측근들의 잇단 복권,

북한의 권력 지형이 요동치면서 김정은식 공포 통치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무자비한 처형과 숙청, 혁명화 조치를 통한 기강잡기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데요,

김정은 시대 북한 공포통치의 양상과 특징을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주민들이 도열한 평양 시내를 한 대의 장갑차가 지나간다.

북한군 원수이자 빨치산 1세대 리을설의 장례 행렬이다.

<녹취> 조선중앙TV : "고 리을설 동지의 장의식이 11일 평양에서 국장으로 엄숙히 거행되었습니다."

김정은 제 1위원장을 비롯, 북한 최고위층이 모두 참석한 장례식..

<녹취> 황병서(북한군 총정치국장) : "우리는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리을설 원수동지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닷새 간의 국장 기간,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가 있었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였다.

갖가지 억측이 나도는 가운데 지난 12일,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의해 최룡해의 신변이 확인됐다.

지방의 한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백두산발전소의 부실 공사와 사적인 자리에서의 말실수가 화근이 됐다는 설명이다.

북한 권력 내 최고 실세 중의 실세 최룡해 비서의 갑작스러운 실각..

고위 간부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이른바 ‘공포통치’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군 훈련일꾼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제 1위원장.

김정은이 꽃다발을 받기 위해 잠시 멈춘 사이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한걸음 앞서 걷는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황병서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건네자, 군 서열 1위 황병서는 물론 서열 2위 리영길 총참모장이 경쟁하듯 받는다.

현영철 처형 직후 촬영된 이 영상은 북한 공포통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녹취> 조선중앙tv :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현명한 영도따라 백두산 혁명강군의 위력을 천백 배로 다져갈 불타는 맹세를 다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공포통치의 수단인 고위간부 처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차단, 제거하는 숙청이 있다.

특히, 총살 등을 통한 ‘처형’은 가장 강도 높은 숙청 방식에 속한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12월) :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 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 제 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지난 2013년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김정은이 자신의 고모부이자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국가 전복 기도와 매국, 부정부패 등 20가지가 넘는 죄목을 일일이 열거하며, 체포 사흘 만에 장성택의 공개 처형을 집행했다.

이 같은 고위간부 처형은 어떤 과정을 거칠까.

<인터뷰> 이OO(북한 당 간부 출신 탈북자) : "북한에서 고위 간부들을 숙청하거나 철직(해임)시킬 때 법적 문제에 근거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문제를 근거할 때는 오직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근거합니다. 최고 수뇌부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시켰다는 조항을 조목조목 비판을 하고, 그 자리에서 모든 당과 행정 직무를 박탈한다는 걸 선언합니다. 선언하고 체포 지시를 하달합니다. 그렇게 되면 체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처형의 주된 이유는 대부분 유일 권력, 즉 김정은 제 1위원장에 대한 불충 또는 불경이다.

지난 5월 우리 정보기관에 의해 처형 사실이 공개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죄목 역시 ‘불충’이었다.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에서 졸거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모습이 김정은의 진노를 샀다는 설명이다.

당시 북한을 촬영한 위성사진엔, 대공포를 이용한 현영철의 처형 당시 상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처형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방편으로도 활용돼 왔다.

지난 2009년, 비대해져가는 시장을 억제하기 위해 시행한 ‘화폐 개혁’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녹취> "먹지도 쓰지도 않았는데 모아놓았더니 한 순간에 돌이 되었단 말이다. 그걸 다 국가가 회수했단 말이다."

그러자 북한 당국은 ‘인민 생활을 도탄에 빠트린 역적’이라며, 당시 화폐 개혁 책임자였던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전격 총살했다.

김정일 시대 ‘농정파탄’의 책임을 물어 서관희 농업 담당 비서를 처형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체제에 위협이 되는 사회적 상황, 정치적 상황이 발생을 했을 때 일종의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거죠. 주민들의 어떤 동요가 있거나 아니면 엘리트층의 어떤 이완이 있거나 할 때 그런 것들을 막기 위해서 그런 죄를 뒤집어씌워서 숙청을 했다..."

처형 다음 단계인 ‘정치적 숙청’도 강도 높은 처벌에 속한다.

지난 2011년, 김 제 1위원장과 나란히 김정일의 운구차를 호위하며 김정은 시대 최고 실세로 예측됐던 리영호 총참모장.
그러나 불과 7개월 후 상황이 바뀐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7월) : "리영호 동지를 신병 관계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머지 운구차 호위 인물들인 우동측, 김영춘, 김정각도 줄줄이 숙청의 칼날을 빗겨가지 못했다.

이러한 정치적 숙청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보 당국은 지난 5월 변인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의 숙청 소식을 전했다.

또 그 칼날이 중간 간부에게까지 향하고 있으며, 유일권력에 대한 불충 외에 비리, 여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엄벌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렇게 숙청된 이들 중 일부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한다는 게 북한 간부 출신 탈북자의 증언이다.

<인터뷰> 이OO(북한 당 간부 출신 탈북자) : "본인 자체는 살려주지만 엄한 징계로서 정치범 관리소 이주민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도 직계 가족들이 다 같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인간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 XXX, △△△ 그 소리를 듣고 무조건 갱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되며 그 사람들이 발언하는 것을 보면‘정말 이렇게 살 바에는 죽어야 한다'."

숙청보다 한 단계 낮은 처벌 수단은 ‘혁명화’다.

지난 해 11월, 평양 순안공항 건설 현장을 시찰하던 김정은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해 11월) : "다른 나라의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주체성, 민족성이 살아나게 마감하라고 과업을 주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 일로 총 책임자였던 마원춘 설계국장이 받은 처벌이 다름 아닌 혁명화이다.

최룡해 당 비서가 현재 받고 있는 처벌이기도 하다.

지방 농장, 탄광 등에서 낮에는 노역을, 밤에는 김일성 일가에 대한 학습을 하며 사상적, 육체적 단련을 하는 혁명화..

북한 당국은 이 같은 혁명화를 고위 간부의 충성다짐 계기로도 활용했다.

김정일 시절 혁명화로 탄광 노역을 했던 김용순 당시 당 비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터뷰> 이OO(북한 당 간부 출신 탈북자) : "그 사람이‘당의 신임을 져버렸을 때 나의 인생은 개나 버러지와 같은 인생이로구나’ 이런 의미의 감상 일기를 적었었습니다. 김정일이 그걸 보고 참으로 실감나는, 우리 간부들에게 교양적 가치가 있는 실감나는 감상일기라고, 그러니까 이것을 출판 편집해서 당 간부들과 모든 국가 간부들에게 의무적으로 보게 하라. 그래서 이제 중앙기관 국장 이상급 간부들이 그걸 다 봤습니다."

이러한 혁명화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이 지나면 다시 현직 복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숙청과는 차이가 있다.

유일권력에 대한 충성 강요와 이를 어길 시 뒤따르는 무자비한 처벌..

북한 간부 처벌의 역사는 정권 수립과 궤를 같이 해 왔다.

6.25 전쟁 직후 김일성은 남로당 박헌영을 미국 스파이로, 친소파 허가이를 반혁명분자로 몰아 공개처형했다.

이후 ‘8월 종파사건’을 통해 남은 세력까지 모조리 숙청하며 유일권력 체제를 확립한다.

그리고 1974년 김정일의 본격적인 등장..

<녹취> 조선중앙TV : "역사적인 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는 영롱하신 그이(김정일)를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김정일이 간부들을 향해 칼을 빼든 건 사회주의 진영의 잇단 붕괴와 경제난으로 위기가 도래한 1990년 대.

약 2만 여 명의 간부가 숙청, 처벌을 받은 ‘심화조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유독 김정은 시대 들어 ‘공포통치’가 부각된 건 짧은 승계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는 게 국정원 고위 간부 출신 대북 전문가의 분석이다.

<인터뷰> 남주홍(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는 바람에 후계가 승계된 것 아닙니까. 그러다보니까 체계적으로 주변에 당정군 간부의 인물, 이른바 세력군을 모집하는데 시간이 없었어요. 단기에 군의 기강을 확립하고, 단기에 당정 간에 교통을 정리하고, 단기에 장성택 세력에 대한 견제를 해야 되기 때문에, 먼저 견제 세력을 쳐버렸는데 (그 때문에) 상당히 이 공포 통치의 현상이 심각하죠."

실제로 지난 5월까지 김정은 집권 기간 처형된 고위 간부는 70여 명으로, 김정일 집권 초기 같은 시기보다 일곱 배나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즉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김정은의 성격 역시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터뷰> 남주홍(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 "내가 어려서 후계 체제를 이어받았다고 함부로 나한테 했다가 내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강한 집착증이 있어요.‘감히 내 앞에서 졸다니.’이게 현영철 같은 거예요. 과거에는 여러 차례 시험 기간을 거쳐서 하는 처리 행위를 급격하게 해버린다니까. 그것이 지금 김정은의 성향으로 봐야 돼요."

나아가 군, 당 고위층 관료들의 계급 강등과 복권을 반복하며 충성 경쟁을 유도하는 전략도 김정은 식 공포통치의 특징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집권 17년 동안 3명의 인민무력부장을 기용한 것과 달리 집권 4년 동안 인민무력부장을 다섯 번이나 교체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런 공포통치는 역효과도 가져온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런 지속적인 유혈 숙청을 통한 공포 통치는 결과적으로는 단기적으로는 권력을 강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엘리트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신뢰감을 약화시킨다. 김정은이 그렇게 무모하게 즉흥적인 국정 운영을 하는데 만약에 직언하는 세력들이 없게 되면 사실 조기 경보 기능이 없어지는 거고, 결과적으로 김정은 체제 내구력에 현저한 약화를 초래하게 되는 거예요."

최룡해의 해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간부들을 향한 기강잡기에 나선 김정은 제 1위원장!

하지만 공포통치는 결국 체제 불안을 부르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 속에, 김정은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