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6

하늘과 정신에서 땅과 물질로: 강력한 인간중심 철학자, 마르크스 < 융합으로서의 철학과 신학 < 신학과 영성 < 기사본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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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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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정신에서 땅과 물질로: 강력한 인간중심 철학자, 마르크스
기자명 이찬수
입력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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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외와 노동에 의한 자유

(지난 호에 보았듯이) 헤겔 철학의 주요 개념 중의 하나가 ‘자기소외’(Selbstentfremdung)다. 소외는 자기가 본래의 자기를 외화(外化, Entäußerung)하고는 외화한 자기에게 지배받으면서 본래의 자기를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런 일은 왜 벌어지는지, 헤겔은 다음처럼 설명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은 홀로 생기지 않고, 다른 이들의 자기의식과의 관계를 통해 생긴다. 둘 이상의 자기의식이 만나면 서로에게서 자기를 인정받으려는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인정투쟁에서 승리하면 주인(독립 의식)이 되고, 실패하면 노예(의존 의식)가 된다. 주인은 노예가 만든 생산물을 향유하며 한동안 자유를 누리지만, 노예가 생산한 물건에 의존하다가 자유를 잃고 무력해진다. 타자(노예)에게 의존하는 가짜 자유로 전락하는 것이다.

노예도 처음에는 직접 노동해서 생산한 물건을 주인에게 빼앗기며 소외된다. 세계의 현실과 자신의 내면이 분리되면서 ‘불행한 의식’(Das unglückliche Bewußtsein)의 상태에 머문다. 그러다가 자연물을 가공하고 물건을 만드는 노동을 통해 자기의 생각과 의지를 물질계에 구현한다. 자신의 의식이 현실의 물질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자연과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주체성을 확보한다. 그러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나서고, 거기서 이성이 절대정신의 자기표현이라는 사실을 파악한다. 나의 의식이 정신으로 전환하고, 나와 세계가 일치된 본래의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노예가 노동을 통해 자연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생산물을 보면서 스스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적 자유를 얻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의 의식이 ‘우리’라는 정신(Geist)으로 도약하며, 역사의 진정한 동력으로 거듭난다.

노동 우위의 변증법과 공산사회라는 정점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노예가 노동으로 자연을 가공하며 자아를 실현한다는 헤겔의 이론에 주목했다. 노동자는 직접 물건을 생산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질적 힘을 인식한다. 헤겔과의 차이가 있다면,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신이 낳은 생산물로부터 자기가 소외되는 모순된 현실에서 ‘계급의식’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는 데 있다. 헤겔이 의식의 발전 과정으로 해석했던 역사를 물질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및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현실의 전환까지 도모한 것이다. 관념론적 변증법을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전환해 실제로 세계 변혁의 길로 나아가려 했다.

아울러 헤겔은 1806년 예나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프로이센군에 승리하며 봉건적 사회 제도를 개혁하는 모습에서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구현을 보았다. 국가가 일으킨 전쟁이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구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와 달리 마르크스에게 진보의 주체는 국가가 아닌 억압받는 ‘계급’이고, 전쟁은 국가 간 싸움이 아니라, 내부적 ‘계급투쟁’이었다.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려면 내부 갈등과 투쟁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출산하는 산모의 고통이 비극이 아니라 생명의 시작인 것과 같다. 그렇게 계급투쟁으로 성취한 공산사회는 모순이 해결되고 분열이 종식된 상태로서, 헤겔의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와 유사한 구조를 한다.
존 자베즈 에드윈 메이올이 촬영한 카를 마르크스의 초상화. (사진 출처 = 존 자베즈 에드윈 메이올,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세계 해석에서 세계 변혁으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를 통해 소외론을 더 구체화했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1872)는 헤겔의 변증법을 이용해 종교를 비판하면서 소외론을 전개했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천진무구하게 서로 조화롭게 살다가 신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그러나 신이 인간적 속성들의 외적 표현[外化]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신을 인간에게 위협적인 외부적 힘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자발적 자기 자신’과 ‘외부의 힘으로 인식된 것’으로 양분된 상태가 ‘소외’다. 소외의 상태에서 인간은 신을 독립된 외부의 힘으로, 그에 대해 자신은 무력한 존재로 느낀다. 자신이 창조한 신의 이미지에 대해 스스로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 소외를 극복하려면 신이 실제로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자신들의 일부라는 그 연관관계를 인식해야 한다.(군나르 시르베크 외, “서양철학사”, 윤형식 옮김, 이학사, 2016, 706-707쪽의 요약) 포이어바흐는 이런 비판적 인식으로 이분화한 종교적 소외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이 종교적 소외론에 영향받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포이어바흐에게 종교적 소외는 잘못된 관념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었기에 이성적 계몽으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는 종교를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회피하려는 환상 같은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이 현실을 외면하려 환상으로 도피할수록 모순이 더 공고해지는 현실을 보며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했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이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카를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e-Book), 유페이퍼, 2016) 종교적 소외(자신이 만든 신에의 종속)가 경제적 소외(스스로 생산한 물질로부터의 소외)를 정당화시키는 모순을 간파하고, 종교적 소외도 경제적 소외를 철폐할 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관념적 자유의 추구에서 더 나아가, 세계의 실질적인 변화, 즉 삶의 자유를 추구했다. 물질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한 경제적 자유의 토대를 제시하려 했다. 세계를 ‘해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세계를 ‘변혁’하고자 했다. 그의 유명한 말, 즉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Karl Marx,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Karl Marx • Friedrich Engels Werke, Bd.13), Dietz Verlag Berlin, 1961, S.9)는 말에 그의 입장이 압축되어 있다. 인간의 관념(상부구조)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방식인 경제(하부구조)가 인간의 생각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변혁은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가.

생산력, 생산관계, 그리고 혁명

마르크스에 의하면, 물적 토대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 이때 ‘생산력’이란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기술적 지식과 도구를 활용하는 노동력을 의미한다. 돌도끼에서 철기, 전기, 그리고 증기기관과 대규모 공장 시스템으로 발전해 온 기술적 능력으로서, 지식이 쌓이면서 계속 발전하는 성향이 있다.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사회 조직의 한 형태다. 공장과 토지의 소유자 문제, 사회적 신분의 법적 구분 문제 등이 그 핵심 내용이다. 생산관계는 기득권의 이익과 기득권 중심의 법으로 묶여 있어서 기존 방식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생산력은 생산관계 안에서 확대된다. 그런데 생산력의 규모가 생산관계보다 더 커지면 이 두 측면은 서로 충돌한다. 가령 증기기관의 발명, 수공업의 공장화, 그로 인한 대량 생산으로 생산력이 커지면, 생산력은 새로운 생산관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것이 변혁이다. 옷(생산관계)은 그대로인데 몸(생산력)이 자라면 몸에 맞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도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두 측면이 충돌하며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혁명을 통해 봉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스템(생산관계)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같은 논리로 자본주의도 전복될 것이라고 보았다. 가치를 창출하는 원천은 노동인데, 자본가가 경쟁에서 이기려 기계를 도입하고 노동자를 줄이면서 노동자의 구매력이 생산력을 따라가지 못하면, 자본주의는 결국 공황에 빠진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계와 자동화 시스템(생산력)은 고도로 발전해서 생산량 자체는 풍성해지는데, 공장과 자본은 특정인이 소유하는 자본주의의 원리(생산관계) 때문에 소수의 풍족한 자본가와 다수의 가난한 노동자가 대립하고, 노동자가 노동의 결과인 생산품에서 소외되는 모순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잉여가치(자신의 노동으로 창출한 가치에서 생산 비용과 임금을 제외한 가치)가 이윤의 형태로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모습을 보며 노동자는 자신이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잉여가치는 새로운 기술력의 향상에 재투자됨으로써 자본은 계속 확장된다. 그러나 자본이 확장되어 자본가에게 몰릴수록 노동자의 피착취 의식은 선명해진다. 그러다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노동자 혁명을 통해 해체되고, 사회가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산주의’ 단계로 나아가면서 이런 모순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흔히 마르크스의 철학을 ‘경제결정론’으로 보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마르크스에게도 경제와 관념(사유)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상부구조’(종교, 철학, 도덕, 문학 같은 문화적 현상들 및 국가, 이데올로기, 사유 등)도 ‘토대’(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해서 상부구조가 토대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결국은 토대(경제)가 상부구조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공산주의는 과거 시스템의 부정이나 삭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경제가 일정한 포화 상태에 도달하면 발생하는 질적인 도약이다. 하나의 단계가 그보다 더 높은 단계에 의해 부정되고 지양될 때 발생한다. ‘부정’이라지만, 하나의 경제 체제를 없애고 다른 경제 체제를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본질적인 측면들이 더 합리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더 높은 단계로 재정립되는 것이다. 그것이 헤겔이 말했던 ‘지양’(Aufhebung)이다.

레닌과 스탈린의 성급한 실험
블라디미르 레닌이 연설하는 모습. (사진 출처 = Vladimir Leni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석하고 붕괴를 예상하면서도 공산국가 경제 시스템의 구체적 설계도를 남기지는 않았다. 마르크스 철학의 실제 운영도를 처음으로 만들어 적용해 보았던 이는 레닌이다.

1917년 2월, 러시아제국의 황제를 폐위시키는 혁명적 사건(러시아 혁명)이 벌어지던 중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이 추종 세력(볼셰비키)과 함께 러시아에 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했다. 이른바 10월 혁명이다. 그 뒤 왕당파, 반공주의 자본가, 유럽 열강의 지원을 받은 군대(백군)의 저항을 받으며 내전으로 이어졌지만, 볼셰비키군(적군)이 노동자 세력의 지원을 받아 승리했다. 레닌은 자본가가 생산수단(공장, 토지, 자본)을 사적으로 소유하여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보았던 마르크스의 비판에 따라, 생산수단과 사적 토지를 국유화하고, 대기업, 공장, 은행, 철도를 국가의 관리하에 두었으며, 농민이 생산한 잉여 농산물을 징발해 도시의 노동자와 군인에게 배분했고, 화폐 사용을 억제하고, 물물교환과 배급제도를 시도했으며, 노동 의무제 등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농민의 생산 의욕 상실로 인한 대기근, 정치적 반란, 경제적 파탄이라는 참담한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레닌은 ‘자본주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완전한 공산주의로 갈 수는 없다’고 판단한 뒤, 타협안으로 사유재산을 일부 인정하는 신경제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민중을 대리한다며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가 사실상 독재 관료(노멘클라투라)로 변질했고, 반대파를 타도한다며 언론과 사상을 탄압했으며, 그럴수록 정치세력 내부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자정 능력과 비판 수용 능력을 상실해 갔다.

레닌 사후에는 스탈린이 정적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극단적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쪽으로 몰아갔다. 스탈린은 프롤레타리아 정권을 표방하면서 생산수단의 국유화, 농업의 집단화, 사유재산의 폐지 등 국가 주도의 강력한 계획경제를 몰아붙였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완성되면 국가 기구도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스탈린은 자본주의 세력과의 대립을 핑계로 국가 기구와 비밀경찰의 권력을 극대화했다. 인간 소외의 극복과 해방이라는 마르크스의 희망과 달리, 반대파를 대거 숙청하며 사실상 개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스탈린 사후(1953)에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등의 과도기를 지낸 뒤, 고르바초프 시절 시장주의를 도입하고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내걸었지만, 너무 늦었다. 소비에트연방 체제가 그동안 누적된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렇게 인류 최초의 공산주의 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가장 도발적인 인간 중심의 철학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철학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철학은 온갖 비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남아 있다. 마르크스는 주저 “공산당선언”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 적이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이 연합하여 이 유령을 잡기 위한 성스러운 몰이사냥에 나섰다.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Metternich)와 기조(Francois Guizot),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경찰들이…정권을 잡은 반대파들에게서 공산주의적이라고 비난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으며, 좀 더 진보적인 반대파나 반동적인 적수들에게 공산주의라는 낙인을 찍으며 비난하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겠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공산주의는 모든 유럽 세력에게서 이미 하나의 권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목적 그리고 의도를 공공연하게 전 세계에 밝히고, 공산주의 유령이라는 동화(童話)에 당 자신의 선언으로 맞서야 할 적기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18, 15)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쓴 때가 1848년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공산주의에 대한 노골적 비판들도 동시에 생겨났다.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찍기도 성행했다. 180여 년 전 유럽의 상황과 현 세계의 상황도 과히 다르지 않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여전히 공산주의자, 빨갱이라는 낙인찍기가 계속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인간을 더 강력하게 자본에 종속시키고 있고, 마르크스 철학이 그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대안의 하나로 지금도 살아있다는 역설적 증거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철학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인간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추적하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했던 인간 중심 철학이다. 마르크스 당시에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자본 중심주의가 더 강력해지고 그만큼 더 비인간화하고 있는 오늘의 사회를 분석하는 유효한 도구로 마르크스 철학은 여전히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19세기 서양에서 출현해 21세기의 세계 전체까지 강타한 가장 도발적인 인간 중심의 실천 철학인 것이다.

이찬수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신학, 불교학, 철학을 중심으로 이십여 년 종교학을, 십수 년 평화학을 강의하고 연구했으며, 아시아종교평화학회를 창립해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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