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8

알라딘: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알라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은이), 이언숙 (옮긴이) 청어람미디어 2001-09-10


7.7
100자평 29편
리뷰 133편
세일즈포인트 6,069
308쪽
알라딘 리뷰
"당신은 참 대단하오!"
현대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의 강연 및 잡지 원고 중에서 '책'을 주제로 한 글을 모았다. 일본에서는 출간 후 몇 개월만에 37만 부가 팔리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기도 하다.

다카시는 일본 문화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문 저술가로, 한 번 집필 주제를 정하면 약 1m높이에 이르는 관련도서를 빠른 시간에 섭렵하는 독서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그가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문학 청년과 문학 소녀였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는데,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될 운명이었던 셈이라고 할까?

대학 졸업 후에는 문예춘추사 르포 기자로 활약하면서 자료 수집 및 취재 기사 작성의 노하우를 쌓기 시작한다. 그러나 읽고 싶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해 정신이 점점 황폐해진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하는데, 당시 회사 사보에 기고한 '퇴사의 변'에는 이러한 심경이 잘 담겨있다.

"나 자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나와 나 자신은 대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은 대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계속 책을 읽어 왔고 삶을 살아 왔던 것이다.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은 결코 단순한 사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연구한다고 해서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본문 p.185 중에서)

그 후에는 도쿄대학 철학과에 입학해 각 국의 언어로 철학 고전을 읽는 기쁨을 맛본다. 전공투('전학공투회의'의 약자)에 대한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저술활동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 그 때부터 다카시는 책과 세계를 향한 지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영역을 넘나드는 편력을 이어오게 된다.

어느 대담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첫구절 -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알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 을 인용하며 신비로운 것을 알고 싶어하는 순수한 지적 욕구가 자신을 이끌어왔다고 고백했는데, 그 말마따나 스스로 알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다면 그토록 많은 책(40여권 이상)을 쓰지도, 읽지도 않았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 책은 그의 '독설론, 독서설, 서재론'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어 장서가나 애서가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고양이 빌딩'으로 알려진 다카시의 3층 서가를 구경하는 재미가 여간한 게 아니다.

책 한 권을 쓰는 데 약 500권 정도의 책을 참고하다 보니, 서가를 꾸미는 일이나 효율적인 독서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젊은 시절부터 그의 업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런 그가 건평 약 7평인 지하 1층, 지상 3층의 서고 빌딩을 지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그밖에도 실용적인 14가지 독서법, 중학교 때의 독서일기, 넓고 튼튼한 책상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한 일화가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들의 유별난 책사랑'에도 관심이 많은 법 아니었던가?
- 최성혜 (200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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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나의 지적 호기심
2. 나의 독서론
- '인류의 지의 총체'를 향한 도전
- 체험적인 독학 방법
- '실전'에 필요한 14가지 독서법
3. 나의 서재.작업실론
- 나의 요새
- 서고를 신축하다
- 나의 비서 공모기
4.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 나는 독서를 되돌아본다
- 퇴사의 변
- 다치바나 씨의 작업실 '고양이 빌딩' 전말기 (그림.글 세노갓파)
5. 우주.인류.책
- 역자후기
- 다치바다 다카시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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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 때까지만 해도 제 머리 속에 문학은 고급 문화이고 논픽션은 저급 문화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양질의 논픽션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박력으로 인해 완전히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이에 자극을 받아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모든 문제에 대해 알기 위해 신간 서적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러커, 갤브레이스, 패커드, 볼딩, 맥루한, E. 프롬 등의 저서를 읽은 것도 이 시기입니다.

그 무렵 회사의 제 책상 위에는 항상 20권 정도의 책이 쌓여 있었습니다. 시시하다면 시시한 책들도 꽤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의 현실에 대해 너무 무지하였기 때문에 무슨 책이든 읽으면 눈이 떠지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본문 p.133-13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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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SuperSalome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적 욕구에는 어떠한 기능이 있는지 생각해 보겠는데, 요컨대 여기서 인간 사회를 지금의 수준까지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바로 지적 욕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숭이 사회와 인간 사회를 비교해 보면, 우리 인간은 원숭이와는전혀 다른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그러한 사회 속에서 일상 생활을꾸려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문명 사회를 형성하여 그 사회 속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명 사회를 인간이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간의 지적 욕구의 역사적인 축적 과정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53그렇게혜윰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서적만을 고전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는 고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P.133그렇게혜윰
상대방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P.237그렇게혜윰
결국 책을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책이 지금 나에게 어떤 책 읽기 방법을 요구하고 있는지 재빠르게 판단하여,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P.170정이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권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베스트 5‘에 해당하는 책을 소개해 주신다면,
다치바나
그 부탁은 거절하고 싶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을 읽고 기뻤던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말았구나‘ 라는 후회만 남았으니 말입니다. 결국, 책과의 만남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으로 책을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이 한 권을 이라고 추천하는 독서 방법은 권하고싶지 않습니다. 무엇인가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 관련 서적을 10권 정도는 읽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책이 뭘까‘ 따위는 생각하지말고, 서점에 가서 관심이 가는 분야의 책들을 하나하나 펼쳐본후, 우선 10권 정도 사서 집으로 돌아오십시오. 그 중에는 아마 읽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은 책들도 있을 것입니다. 재미없다거나 너무 어렵다거나 저자와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10권 중에는 분명 바로 이것이다‘ 싶은 책도 있을 것입니다. 한두 권 읽는 것으로 끝내는 독서법은 버리십시오.
‘책과의 만남‘ 이란 다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 이야기本の話』, 1995년 7월 창간호 기사에 대폭 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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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다치바나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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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생태학적 사고법>,<정신과 물질>,<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 총 28종 (모두보기)
분야를 넘나들며 방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선보이는 일본의 ‘지知의 거인’. 1940년 나가사키현 출생. 1964년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문예춘추에 입사해 1966년까지 일했다. 1967년 도쿄대학교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다. 1974년 《문예춘추》에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 금맥과 인맥〉을 발표해 다나카 당시 수상의 비자금과 정경 유착을 폭로했다. 1979년 《일본 공산당 연구》를 발표하여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1983년 “철저한 취재와 탁월한 분석으로 폭넓고 새로운 저널리즘을 확립”한 공로로 《문예춘추》가 수여하는 제31회 기쿠치간菊池寬상을 수상했고, 1998년에는 제1회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상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죽음은 두렵지 않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천황과 도쿄대》 등이 있다. 2021년 4월 향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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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이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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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사학과에서 일본사를 전공했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국사학과에서 일본중세사 전공으로 연구생 과정을 수료했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외교통상부·국제교육진흥원·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통역관으로 활동했고, 현재 한일역사교육교류회·한일대학 생협교류세미나 등에서 통역을 담당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신기하고 재미난 집구석 과학》,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희망난민》,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일등 국가의 조건》, 《만들어진 나라 일본》, 《대한제국 황실 비사》, 《멸망하는 국가》, 《일본인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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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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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책에 많은 리뷰가 다수 실리는게 이해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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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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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읽은 책. 그의 독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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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온타스 201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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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보다 지자랑이 좀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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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plex 201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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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총체는 고전보다는 최신 보고서에 있다.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으나 관련된 책은 여러 권 읽어라. 14가지 독서법, 속독(단락의 첫문장을 차례로 읽기)과 회화적 책읽기의 중요성 그리고 고양이빌딩. 지의 거인의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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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rim 200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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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기대하고 구매했던 책.. 읽는중..아직은 큰자극은 없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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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소년 201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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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지식에 대한 욕심은 어디까지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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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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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 열 개 중에 아홉 개가 나와 맞지 않고 심지어 내가 질색하는 것도 한 두 개 있는데 딱 하나,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이 나와 맞는다. 그 하나로 나머지 아홉이 커버되는 희안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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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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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고 자주 읽는다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들 - 무슨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이 잘 읽는 것인가, 내가 잘 읽고 있는 것인가 - 하는 의문들을 해소해주었다. 일본 지식인인 저자와의 사회적, 문화적 거리감은 존재하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방해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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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네루다 201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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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책. 10~20대 친구들이 꼭 읽어봤으면 한다. 물론 내 자식들에게도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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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뽈 201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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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중간에 7평남짓의 개인서재(도서관)이 무척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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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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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1940~)⭐
일본 나가사키 출생. 동경대 불문학 전공. 도쿄대 철학과 중퇴.
주요 저서: 뇌를 단련하다/ 지식의 단련법/ 뇌사/ 우주로부터의 귀환/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1979년 <일본 공산당 연구>로 고단샤 논픽션상 수상

■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는 각자의 목적과 취향대로 책을 읽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문학과 비문학을 함께 읽는데 일정한 기준은 없다.
다치바나 책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다독가로 소문난 그의 책을 읽어보면 나름 독서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필자는
독서에 대한 호기심
독서론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우주, 인류. 책. 독서법
등에 대해 소신 있게 밝히고 있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1. 책을 선택하는 방법
2. 독서법, 속독법
3. 서평 쓰는 법
등이 도움이 되었다.


--------------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부분이 잊힌다.

이번 기회로
책에서 읽었던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한곳에 모아두기로 했다.

수많은 책을 어떻게 고를 것이며
어떤 방식을 읽고
기록할 것인가에 대해
궁금한 이웃님들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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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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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 때는 독후감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서론을 읽으면서부터 뭔가 잘못 접어 든 길에서 당황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환갑을 넘긴 일본인의 독서 편력과 책에 대한 집착을 바라보면서, 정말 대단한 책벌레이구나,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일본의 독서 환경을 부럽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우리 텔레비전에 나오는 책을 읽읍시다 라든지, 도서관을 세웁시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던 우리 독서 문화의 후진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일본에 수십년 뒤져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다느니, 업다느니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도서관이 없고, 책 읽는 사람이 없는 우리 사회를 보면 어두운 건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서점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 어린 아이들을 보라. 희망의 불빛이 보이는가? 절망의 미래가 보인다. 전부 귀신 이야기에 머리 쳐박고 몰두한다. 그나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아이들은 훨씬 나은 편이다.

그의 독서 지도는 독특하다. 일단 돈을 아끼지 않고 책을 산다는 점은 부럽다. 나는 이사다닐 게 두려워서 책을 못 사고 있는데... 그리고 그의 책을 읽는 게 재미있다는 삶이 부럽다. 나는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책을 잡지 못하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든다. '나를 찾는 시간'을 갖고 싶은 요즘. 피아노를 바이엘부터 치기 시작했다. 한 달만에 바이엘 상권을 떼고 이제 하권으로 들어간다. 숨쉬기 운동도 하면서 소화가 훨씬 가볍게 된 것을 느낀다. 그리고 책을 종일 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찬물에 발 담그고 책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나'임을 느낄 수 있다. Ich bin Ich.

내가 나라고 느낄 수 없는 시간도 많다.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수업 시간. 쓰잘데기 없이 인간들이 모여서 지껄여대는 회의시간(나는 직원 회의, 전체 조례 이런 것을 선천적으로 증오한다), 별 일도 아닌데 모여서 마셔야 하는 술자리(많은 사람들은 술 자리에 꾸준히 참석 하는 것이 인간성과 비례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술의 후유증으로 아무 것도 못하는 비인간적 상태, 지독한 잡무와 쓰잘데 없는 연구 등등..., 속썩이는 학생들과 아무 교감없는 지도로 신경을 상할 때..., 운전대 잡고 앞차 꽁무니나 쳐다 볼 때(시간이라도 느긋하면 틈틈이 호흡 연습이라도 하지만, 시간이 빠듯하면 정신 나간 운전수가 된다)

느긋하게 책을 잡고 있는 즐거움. 책 속에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시공을 초월한 선배들을 만나면, 반갑고, 설레이고, 고맙고, 눈물이 나려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 편력을 보며, 나의 빈약하던 어린 시절을 안타까워하였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도서실에 간 건 '공산당의 잔인함, 남북의 다른 생활' 조사하러 한 번 갔었다. 그 당시 도서실에는 엄청난 분량의 반공 도서가 즐비했다. 또 한 번 가서는 닐스와 기러기? 라는 책을 한 권 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성서 이야기 보다가 포기했고, 안데르센 동화집(글씨가 8포인트 정도 되는) 2학년 때 읽었고, 서유기 4학년, 셜록 홈즈 5학년, 장발장 6학년 이게 거의 다 인 것 같다. 아, 누나가 보던 공상 과학 소설도 몇 권 읽었다.

중고교 시절에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의 분량(한국 단편은 거의 섭렵했지만, 국어 교사인 지금도 그걸 읽은 게 무슨 도움이 된 것인지 아무 느낌이 없다.) 갈수록 도서 환경이 열악해 지는 비쥬얼 시대의 후세들에게 속히 독서 풍토를 물려주려는 운동이 일었으면 한다. 아파트 도서실 운영 등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지역 도서실 활성화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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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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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다카시는 이 한 권이면 충분.

다른 책 중 하나는 완독했으나 한 권은 실패했는데 이 책을 읽자니 이 한 권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성한 지적 욕구자의 독서에 대한 방법을 엿볼 수 있는데 이 분은 이게 일이다보니 속독 중심이고 논픽션 중심의 독서라 많은 내용은 나랑은 다소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 이내의 책을 고전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는 공감했고, 논픽션의 경우는 고전보단 신간이 의미있다는 데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간 서가에서 책의 제목을 훑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부분을 읽고는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고르고 구입하는 서점순례 방식은 너무나 현실적이라 웃음도 나왔다. 입문서의 경우 한 권을 꼼꼼하게 읽기보단 여러 권을 슬렁슬렁 읽으라는 팁도 얻었다. 고양이빌딩을 구현한 과정을 보며 망구엘과 이동진이 자연스레 떠오르며 마구 부러워진다.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서적만을 고전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는 고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P53
상대방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상상력입니다- P133
결국 책을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책이 지금 나에게 어떤 책 읽기 방법을 요구하고 있는지 재빠르게 판단하여,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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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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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평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은 오로지 그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관한 정보이다. ◎ ○ △ X 등의 기호로 등급을 표시하는 것으로써 서평을 대신한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책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다. 책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당연히 읽는 사람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다.



서평을 하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참고 의견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독자는 보통 책을 사기 전에 ① 서점의 앞쪽 판매대에서 책을 펼쳐 든다, ② 책을 대충 보며 책의 가치를 가늠해 본다, ③ 주머니 사정을 살펴본다 등의 단계를 보여 준다. 서평을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은 ①의 '서점의 앞쪽 판매대에서 책을 펼쳐 들게 되는 계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는 ②와 ③에 대해 서평을 보조적인 참고 의견으로 보는 데 그쳐야지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다. (211~212p.)



그 책을 직접 볼 기회만 있었다면 분명 샀을 사람과 만나 볼 여유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책이 너무 많다. 적어도 이처럼 책이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이 서평이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책을 깎아 내리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고(이렇게 말하면서도 책을 깎아 내린 일이 몇 번이나 있지만), 단지 그 책을 한번 펼쳐 보고 싶은 적절하면서 매력적인 인용을 활용하는 것이므로, 적절히 인용할 곳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213p.)



정보의 중심은 그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읽을 가치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그것을 가능한 한 요약과 인용을 통해 책 자체로 말하는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개인적인 비평적 코멘트(다른 사람의 서평에서 내가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는 될 수 있는 한 비중을 줄이고 있다. 따라서 나는 서평을 쓸 때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의 몇 배나 되는 노력을, 소개하려는 책을 고르고 요약하고 인용하는 과정에 쏟아 부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목표는 책을 읽는 사람에게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하여, 서점의 판매대에서 그 책을 발견하였을 때 펼쳐 보도록 하는 데 있다. 또한 그 책을 사야겠다는 기분까지는 들게 하지 못하더라도 그 책이 어떤 책인가를 알려 주어, 그 안에 실려 있는 정보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작은 지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지적 우주를 확대해 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오호라' 하며 마음속에서 놀라움과 탄성을 지를 수 있게 하는 한 구절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서평에는 그런 작은 탄성이 몇 백 권 분량 이상으로 담겨 있으며, 정보량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자부한다.(216~217p.)





최근에 서평이벤트 응모에 재미를 붙여서 정신없이 읽고 서평 쓸 책이 쌓여가고 있다. 시간에 쫓기게 된 이유다. 시간에 쫓기는게 기분 좋을 리는 없지만 좋은 점도 있는데 그건 책을 읽는 것도 읽는 거지만 읽은 책에 대해서 뭔가를 써낸다는 사실이다. 그 '뭔가'가 비록 책에서 어떤 부분을 골라 옮겨 적는 것에 불과하다 해도 상관없다. 실제로 책을 읽고 어떤 부분을 옮겨 적는 그 과정에서 이미 나는 읽는 것에 버금가는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옮겨 적는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책을 다 옮겨적는 것은 아니므로, 읽으면서 감동을 느끼거나 새롭게 느낀 부분을 옮겨 적다보면 감동은 배가 되고 새로운 것을 알아는 즐거움은 더욱 확실해진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읽으며 작가가 정말 개성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개성이 강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 개성이 나와 맞지 않을 때라도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개성을 오랫동안 지켜가는 것을 알게되면 기분이 좋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읽으며 처음 만난 다치바나 다카시. 알고보니 꽤 유명한 사람이다.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람인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다가 반쯤 읽고 바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할 정도로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주문한 책이 내일 도착할 예정이므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이제 그만 덮어두기로 한다. 내일이면 내 책을 받아 마음껏 밑줄 치고 메모해가며 읽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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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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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부터의 귀환>이라는 인상적인 책으로 기억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강연, 독서론, 작업실론 등.

일본에서는 1995년 12월 출간된 오래된 책이라 그 후 어떤 후속 연구들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비둘기의 뇌' 부분이 재미있어 옮겨 적는다.
최근에 연재한 기사를 조금만 소개하면, 조류의 뇌에 관한 연구 결과를 두 번의 연재를 통해 다루었습니다. 첫 회에는 게이오 대학의 와타나베 시게루 교수의 비둘기 뇌에 관한 실험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이 실험은 비둘기에게 피카소와 모네의 그림을 보여 주고 이를 구분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먼저 피카소의 그림과 모네의 그림을 각각 10장씩 준비하여 비둘기에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피카소 그룹의 비둘기가 피카소 그림을 보았을 때, 모네 그룹의 비둘기가 모네 그림을 보았을 때, 새장의 문을 콕콕 두드리면 먹이를 주는 훈련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약 2주일 정도 되면 90%의 비둘기가 그림을 구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비둘기들이 그림을 `보고 구분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특정 단서를 가지고 식별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림 20장을 그냥 모두 외워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음 실험에서는 비둘기들에게 피카소와 모네의 새로운 그림을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 섞어 놓은 상태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피카소와 모네의 새로운 그림을 구분해 낼 뿐만 아니라, 모네 그림을 보여 준 그룹의 비둘기들은 세잔느,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 피카소 그림을 보여 준 그룹의 비둘기들은 브라크, 마티스 등 전위파 화가의 그림에 강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웃음). 다시 말해, 비둘기들은 화가의 화풍까지도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그림을 거꾸로 세워 놓고 실험해 본 결과, 모네 그림에 반응한 비둘기들의 정답률이 크게 떨어진 데 반해, 피카소의 그림에 반응한 비둘기들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웃음). 놀랍게도 인간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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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열 200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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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서가 3개 분량의 책과 참고자료를 읽는 사람. 한 달에 2~3편의 정기 기고문을 써 내는 사람.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웃고 떠드는 것보다 책을 보며 공부하는 것이 더 좋다는 사람. 그리고 독서에 대한 자기 주장이 분명한 사람. 저자는 항상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정리하고 또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낸다.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알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한다.



나는 저자가 가진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받아 들이겠다는 그의 집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 책 내용 중에서 독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가장 표현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현재로서는 수익성도 보장되지 않는 우주여행에 왜 돈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원숭이는 초식동물로서 특히 과일을 주로 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정글이야말로 생존에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사바나를 보고 비록 그곳의 환경이 열악한 듯 하지만,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어쨌든 가 보자고 생각한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원숭이 무리가 사바나로 진출하면서 비로소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정글에 남아있던 원숭이들은 여전히 원숭이로서 살아가게 되었고 말입니다.”



저자는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지적 욕구라고 한다. 그래서 우주여행를 현재의 가치와 수익성을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의 발전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는 책을 종이에 문자를 인쇄한 정보, 지식전달 지의 수준을 넘어, 인간이 가진 지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이를 후세에 계승하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평가한다. 책을 쓰는 자, 책을 만드는 자, 그리고 책을 사서 읽은 자들은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작은 우주이다. 이러한 소우주가 확대됨으로써 인간의 지적, 문화적 다양성을 점점 확대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이끄는 것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그리고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형 독서가 전부이다. 물론 그가 지식을 얻지 위한 독서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필요로 하는 독서는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제시한 독서 법은, 저자가 자신의 독서 법에 대해 평가한 것처럼,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으로서의 독서 법이다.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2. 같은 테마의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어라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마라

5. 읽다가 그만 둔 책이라도 일단 끝까지 넘겨 보라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8. 가이드북에 현혹되지 말라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11. 새로운 정보는 꼼꼼히 체크 하라

12. 의문이 생기면 원본 자료로 확인하라

13. 난해한 번역서는 오역을 의심하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나도 논문을 쓰거나, 어떤 이슈에 대한 내 의견을 정리할 때에는 이와 같은 독서 법을 사용한다. 일에 필요한 책이나 자료들을 모아 놓고, 이들 중 필요한 부분을 찾아 발췌한 다음, 이 내용들을 다시 짜 맞춰 내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저자가 말한 독서 법과는 달리 책 속에서 나를 찾고자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식과 정보가 아닌, 나를 알고 우리를 이해하고자 책을 읽는다면, 저자가 말한 독서 법 중에 한두 가지는 도리어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것은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는 부분과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는 부분이다. 물론 이 2가지 역시 지식을 습득하여 이를 새롭게 재 생산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나는 책을 본 후 서평을 쓰고자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도 관심 있게 본다. 가끔 서평 중에서 ‘이 책은 상식적인 내용이..’ ‘이 책의 내용은 과거 진부한…’ 이란 표현을 보게 되면 나도 그 책을 구해 읽어본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대부분 맞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기서 무엇인가 얻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 차이가 궁금했다. 왜 똑 같은 책을 보는데 어떤 사람은 진부한 내용이라고 하고, 나는 그 책 속에서 무엇인가 느끼는 게 있었다고 하는지.나는 책을 통해 나를 발견하려면, 제 3자 입장에서 책 내용의 진위를 따지지 말고, 내가 책 속으로 들어가 그 내용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았다. 그것은 어떤 독서 법이 더 나은가 하는 판단을 떠나, 책을 읽을 때 가지는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즉 책을 읽을 때 내가 그 책의 주인공이 되어 그 책을 보느냐, 아니면 지식을 얻기 위해 제 3자의 입장에서 책 내용을 평가하며 보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독자의 입장이 아닌, 저자의 입장에서, 책 속에 나온 주인공의 입장에서 책을 보면, 상식적인 것 같은 내용이라도, 그것 자체를 실행하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예전에는 머리 속에만 있던 단편적인 지식들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자기계발서에서 자주 보는 경영우화, 문제가 있는 사람과 멘토 간의 대화체 이야기일 때는 자신이 바로 그 책의 주인공이거나 멘토가 되어 그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일 경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책 속에 투영시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는 지식을 얻고자 책을 보는 것은 독서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독서 법이 과거 선인들의 지식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점이 바로 독서를 공부와 연관시켜 우리로 하여금 독서자체를 기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 봤다.



독서와 공부는 동일한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책 읽는 것에 재미를 붙이는 방법은 책에 내 자신을 몰입하여, 그 속에서 잊어버렸던 내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이를 위해 책 내용을 비판하고 평가하기 이전에 내가 책의 주인공이 되어, 책과 함께 나만의 인생 시나리오를 펼쳐 보는 것도 독서가 주는 큰 기쁨 중의 하나라고 본다.var viewer_image_url = "http://blogimgs.naver.com/blog20/blog/layout_photo/viewer/"; var photo = new PhotoLayer(parent.parent.parent); photo.Initialized(); window.onunload = function() { photo.oPhotoFrame.doFrameMainClose(); }.bind(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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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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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는 '요령껏 책읽기'를 통해 시간을 아껴 더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무턱대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그만한 가치가 없는 책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먼저 단락 구성을 본다거나 문단별 앞문장만 보고 넘기거나 해서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Toefl 강사들의 reading 강의와 비슷하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의 책이 '정독'되기를 바랐을까?
나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읽고 싶은 부분만 꼼꼼히 읽고, 나머지는 대충 넘겼다. 사실 약간 지루한 감이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문학에서 Non Fiction으로의 전환이다.

다치바다 다카시는 대학 때까지 문학작품들을 읽어왔다.

고등학교 때는 <결정판 세계문학전집>을 위주로, 스탕달,발자크,플로베르,도스토예프스키,톨스토이,모파상,로렌스,헤세,헤밍웨이등 주로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섭렵했다.
대학 때는 20세기 문학만을 읽었다.
조이스,프루스트,카뮈,보루아르,카프카,포크너,헨리 밀러,생 텍쥐페리,뒤아멜,모라비아,T.S.엘레엇,로렌스 더렐,발레리,J.D.샐린저 등의 책들을 읽었다.

이런 다카시가 직장인이 되면서, 소설에 작별을 고하고
Non Fiction만을 읽게 된다.

왜냐면,소설이 재미없어서라기보다는 논픽션을 읽고서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전문적'인 독서가이자, 출판인, 저술가로서의 다카시는 이제 '전문서적' 위주의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있다.

'어떤 분야든 최첨단 정보를 얻고 싶을 때,예를 들어 원숭이학에 관한 것일 경우 대략 높이 1m에 구입비 5만 엔 정도의 자료를 읽으면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저는 이런 과정을 반복해 가는 가운데 커다란 재미와 즐거음울 느낍니다.소설 종류는 읽을 틈도 없고 읽고 싶지도 않습니다.저는 어떤 영역에 좀더 깊이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지면,그 일이 그다지 크게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맡아서,그것을 구실로 관심이 가는 영역을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합니다.' (p59, 나의 독서론 중에서)

이 부분에서 나는 다카시의 강한 '지적 호기심', 아니 호기심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식을 향한 끝없는 '욕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다카시는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고, 새로운 스타일의 여자를 사귀는 것 처럼 , 기존 지식이 없는 미지의 분야, 예를 들어 '원숭이학' 같은 생소한 분야에 대해 '독서'를 통해 '지식'을 얻는 것에 커다란 즐거움을 느낀다. 그 분야에 관한 수많은 '전문서'를 읽으면서 말이다.

끝없이 지식을 탐하는 다카시에게, 이제 fiction은 그다지 큰 즐거움을 주는 읽을거리가 아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누구나 클릭만 하면 들어와서 볼 수 있는 <독서일기>를 쓰면서, 난 가끔 내 옷장에 무슨 옷이 있는지 다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독서일기>도 일기이고, 한 사람의 취향이나 지적인 성향 또는 수준(?)을 타인에게 내어 놓는 일인 것이다.

다카시의 독서일기에서 그의 fiction에서 non fiction으로의 전환은 참 흥미로웠다. 하지만, 난 다카시 식의 책 읽기는 하고 싶지 않다.전문가도 아닐 뿐 더러, 다카시에게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그냥 책은 말이다, 침대에 엎드리거나 도서관 창가에 앉아서 기분 좋게 읽는게 내 취향이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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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깨짱 201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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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바나 다카시는 1940년에 태어나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수재로 졸업 후 주간문춘이라는 잡지사를 다니다 2년 만에 퇴사, 그 해 도쿄대학 철학과에 재입학한, 딱 봐도 괴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천재타입의 인간이다. 좀 더 황당한 얘기를 해주자면, 이 사람은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책으로 가득 채운 빌딩 한 채를 갖고 있다. 벽면에 커다란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어 고양이 빌딩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지하 1층, 지상 3층 총 4층에 걸쳐 타치바나 다카시가 읽은 책 수만 권이 보관되어 있다.

이 사람에 대한 감탄은 읽은 책이 많다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의 저작들을 살펴보면, '일본공산당연구', '원숭이학의 현재', '뇌사', '거악 vs 언론',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우주로부터의 귀환' 등 역사, 사회, 철학에서 생물학, 뇌과학 그리고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써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분야들은 단순히 한 분야를 파해치다 보면 그 주변의 것들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이른바 '연계 학문'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완전히 독립된 분야여서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전 인생을 걸고 공부해야만 하는 것들, 그 중에서도 최첨단을 달리는 난해하고 까다로운 전문 분야인 것이다.








한 인간이 이 모든 지식을 섭렵하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면 거기에는 두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천체물리, 고전역학, 분자생물학, 열역학, 역사, 철학, 사회, 교육, 법학, 의학, 인류학 등 세상의 모든 지식을 그 밑바닥에서부터 추론해 터득할 수 있는 기초 학문을 각각 A4 다섯 매 이내로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태어날 때 부터 갖고 있었거나, 보통 사람보다 열 배는 느린 시공간에 살고 있다는 가정 말이다. 얼굴이 심하게 못생겼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외계인이나 괴물 따위를 가정해 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인간의 형태와 비슷하기에 이 같은 가정은 제외 하겠다. 대신 그의 지식 탐구 과정을 조금 더 살펴 보기로 하자.







이 남자는 자기가 맡은 일이라면 어떤 분야이든 상관없이 먼저 그와 관련된 책 수십권을 읽고 시작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원숭이학의 전문가와 대담이 잡혀 있다면 원숭이학 자체는 물론 생물학, 동물학 등 관련된 분야를 적어도 큰 그림만큼은 정확히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선행 학습을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읽는 책을 쌓아 올리면 1~2m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시작할 때니까 그 정도지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되어 책이라도 쓰게되면 하나 둘 씩 쌓인 자료와 책이 산을 이뤄 매번 그 자료를 보관할 아파트를 새로 임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도쿄 한 복판에 우뚝 솟은 고양이 빌딩은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어느 괴짜의 허영이 아니라 오직 필요에 의한, 필요를 위한, 필요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 많은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있을까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일부는 '전부 읽었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읽었다'라는 말에 대한 정의를 각각 다르게 내리는 한 이러한 논쟁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목차, 도입부의 수십 페이지 혹은 각 단락의 첫 문장만 읽는 것만으로도 그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상 서문에 전부 써있으며 각 단락의 중심 주제는 주로 첫 문장에 제시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책 한 권을 십분만에 읽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책 뒤 쪽의 색인만 있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단순 정보를 읽는데 수 시간을 할애하거나 더 이상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을 꾸역 꾸역 읽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단 하루 만에도 우리가 공들여 읽어야 할 보물같은 책들은 수천 권씩 생겨난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렇게 진화하는 지식의 속도를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니 될수 있는 한 몸을 가볍게 해 광범위한 지식 세계를 두루두루 탐험해 가자는 것이 타치바나 다카시 독서의 핵심인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역시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된다. 핵심은 지식이 형성하고 있는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지 지식 자체가 아니다. 예전에는 어느 내용이 어떤 책 몇 페이지에 나오는지 기억하는 게 지식인의 척도로 여겨졌지만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암기란 구시대적 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그 두껍고 지루한 책을 덮어 버리는데 주저하지 말라. 머뭇거리기엔, 우리가 가야할 길이 너무나도 멀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저자의 독서사(史)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에서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나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적잖이 실망할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저자가 '독서'에 관해 여기저기 기고했던 글, 혹은 강의 기록의 모음이다. 그래서인지 형식과 주제가 다소 산만한 면이 있다. 정작 듣고 싶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대한 대답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인터뷰로 수록되어 있지만, 그의 독서법을 받아들여 후루룩 읽어 치웠으니 그 내용은 스스로 상상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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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쓰기&글쓰기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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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쓰기]

🌀나처럼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러 저러한 주제를 왔다 갔다하는 독서습관(자칭 쾌락적 독서)을 저자와 같이 지적 호기심이 왕성해서라고 설명할 수는 없을텐데. 번잡스러운 내 독서습관의 이유는 뭘까?

🌀문학서, 교양서, (확장된 의미의)고전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대담한(?) 발언이 새롭게 들린다. 진리라고 생각해왔던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의 느낌이 좋다. 전복의 설레임?

🌀모든 책을 완독해야 한다는 부담감의 불합리함에 대해 알게 되었으나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밑줄 긋기]

📐인간의 지적 욕구는 그 사람의 본질을 형성해 가는 가장 근본적인 구성 요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적으로서의 독서(독서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것)는 학창시절 이후에는 거의 안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알게된 논픽션 서적과 취재활동에 비해 재미와 상상력이 떨어지는 문학작품에 실망해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과거의 지의 총체라는 것은, 인간의 지의 운용을 하나 하나 계통수로 그렸을때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든 것을 제거하고, 현대의 지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주류만을 선별하여 그것에 대한 최신 보고서를 읽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분야든 최첨단 정보를 얻고 싶을 때, 대략 높이 1m에 구입비 5만엔 정도의 자료를 읽으면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독학 공부법

1.거금을 들고 대형서점에 가서 그 분야의 신간서적을 모두 검토한다. 그 다음에 입문서를 하나 하나 펼쳐보면서 내용을 훑어본다(머리말, 맺음말, 목차, 역자 서문, 판권장, 참고문헌과 색인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이렇게 그 분야에서 정평이 난 교과서적인 입문서를 3권(경향이 서로 다른 것으로) 정도 구입한다.

2.구입한 입문서의 참고문헌을 대충 서서 통독한다. 그러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명저를 알게 된다. 이 명저를 구입한다.

3.조금 각도를 달리 한 책을 고른다. 그 분야에 대한 책중에서 일반인을 위한 가벼운 해설서나 교양서적이나 소설 같은 읽을거리들을 5~6권 정도 구입한다.

4.그 학문의 역사, 학설사, 사상사 관련 책

5.(흥미있는)각론을 설명한 책 우선 1권 정도

6. 그 장르의 전문 사전, 연감 1권

7.구입후에는 책꽂이에 꽂지말고 책상 위에 놓는다. 그래야 읽는다.

8.이제 가벼운 개설서부터 읽는다. 빨리 읽어야 하므로 정독 필요없고 메모도 안하는게 좋다(그냥 밑줄만 긋고 읽기). 처음부터 의욕이 앞서면 중도포기하게 된다. 입문서 한권을 정독하기보다 입문서 5권을 가볍게 읽어치우는게 낫다. 20% 정도는 못읽는 책이나 가치없는 책이 나올 것이니 포기해라. 조금씩 어려운 책으로 읽어갈때 피로감이 오면 함께 구입한 가벼운 읽을거리로 긴장을 풀어준다.

📐회화적 책읽기(속독 기술):우선 단락별 첫문장만 읽어나간다. 이후 다시 읽을 필요와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판단이 들면 단락별 첫문장과 끝문장만을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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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여행자 200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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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가득한 책을 발견했다. 놀라운 독서 경력과 독서술을 가졌고, 그런 독서를 바탕으로 해서 원숭이학, 인터넷, 일본 공산당 연구, 뇌사, 우주, 섹스, 에콜로지에 이르기까지 최첨단의 학문에 관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이 열정이 넘쳐나는 책을 쓴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철학 서적을 탐독했다. 젊은 시절, 그의 학력은 불문학과 철학이지만 실상, 뒷날에는 이과 계열의 논픽션들을 주로 읽었으며 여기서 감동을 얻게 되어 최근까지 독서와 연구,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문학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한다. 잡지사 초년 시절 선배에 의해 문학만을 읽는 독서 행태를 지적 받고 나서 논픽션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픽션의 세계가 논픽션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편으로 그의 다방면에 걸친 독서편력이 여기서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또 인간의 감정과 고뇌, 사랑을 다룬 문학을 폄하(?)하는 그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 더 책을 읽어보면 그의 지적 열망이 어린 시절의 문학 독서에서 내공이 쌓여 폭발하기 시작되었음을 간파하게 된다. 그의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간 것뿐이다.

자신을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비정상적으로 강한 '이상 지적 욕구자'라고 말하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제너럴리스트인 동시에 스페셜리스트이다. 폭넓은 독서가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길을 열었고, 깊이 있는 독서가 스페셜리스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가 걸어온 독서 여정을 역추적해 나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독서와 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그가 부러워지면서 동시에 그 열정이 조금은 내게도 전염된다.

더욱이 놀라운 독서 경력을 가진 독서가이며 탐구가인 그가 일러주는 독서론과 지식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경쾌하면서도 때로 진중한 울림이 된다. 고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다시 말해, 그 저서(고전)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 자체가 토론의 대상이 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소재로 활용되기에 적절한 책만이 결국 진정한 의미의 고전으로서 살아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55쪽) 그러면서 결국 지의 총체란 언제나 최신 보고서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본다. 지금은 최첨단 이학계열의 열정에 빠져있는 그에게는 자연스런 답변이었으리라. 그러나 문학과 철학 등의 인문계열의 경우에도, 고전 자체의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시 되풀이하여 '새롭게 널리' 읽는 책이 될 때 진정한 고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독서론에서부터 그는 독학의 방법을 끌어낸다. 늘 새로운 주제의 학문 세계로 진입하여 그 세계의 최정상과 최첨단에까지 뛰어오르기를 원했던 다치바나는 그런 요구 때문에 나름대로의 독학 방법을 만들어 이것을 소개해주고 있다. 학창 시절에 중고등학생의 가정교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처지였음에도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위해서 개인 가정교사를 고용했다고 한다. 그 교사에게 지불하는 돈은 땀의 결정체였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달렸다는 에피소드는 참 처절하면서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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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3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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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2022-01-29메뉴
제목은 책정리하는 법이지만, 일독한 내 판단으로는 완...
제목은 책정리하는 법이지만, 일독한 내 판단으로는 완벽한 서재를 유지하는 법 ?헌 책방 운영하는 법이 적당한거 같다.책정리법외 책 옮기는법, 찢어진책 보수하는법 등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처음 서재와 책에 관련된 저자의 이야기가 나의 처지와 똑같아 아내와 아들에게 읊어줬더니 아들녀석이 그래도 아부지는 이제 더 넓은 집에 서재까지 생겼으니 팔자 폈다한다 ㅠㅠ, 아빠는 40평이자나 ㅠㅠ저자는 25평집에 2.7평 서재(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난 40평집에 3.2평 서재명창정궤 明窓淨几햇빛 밝은 창에 깨끗이 정돈된 책상. 서재(書齋)가 깨끗한 모양. 소식(蘇軾)이 ‘명창정궤에 붓 벼루 종이 먹 등이 극상품이면 인생의 한 낙인데, 이 모두를 갖추기가 드물다.’ 했음.<구양수歐陽修 시필試筆>主人好客頗知禮 淨几明窓甁有花(주인호객파지례 정궤명창병유화 ; 손님 맞기 좋아하는 주인 영감 예의 범절 도저到底하여, 명창정궤에 꽃병까지 곁들였네.)<박종악朴宗岳 송참松站>완벽한 서재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책을 서가에 꽂아둘수 있는 만큼만 가지는 것이다.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장미의 이름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모아봤다.가지고 있는게 별로 읍다. 84권 중 21권내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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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2019-10-26메뉴
지독vs속독(다치바나 다카시 vs 야마무라 오사무)
지금은 약간 덜하지만 한 때 다치바나 다카시가 결코 비판할 수 없는 지와 교양의 아이콘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고양이 빌딩은 모든 책광들의 로망 아니던가. 더불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이유가 그만의 “기적의 속독법”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독서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압박했던 것 같다. 독서에서 좌우파를 나눈다면 속독파를 좌파로 지독파를 우파로 나눌 수 있을 텐데, (느림이 안티테제가 된 요즘은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속독파의 대표주자로 다치바나 다카시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당시 대세였던 다치바나 다카시를 실명비판해서 꽤 신선하게 느껴졌던게 바로 이 책이다. 내가 알기론 야마무라 오사무는 대학교 교직원이고 얼마전에 타계했다. 책에 실린 6편의 에세이를 통해 쉬운 문장에 스기우라 민페이, 발터 벤야민 등 자신의 교양에서 뽑아낸 여러 가지 예화를 통해 지독의 우수성을 강조해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그는 다치바나 다카시 류의 책읽기 권수 경쟁이 독자들을 현혹시킬까 이 책을 쓴 것 같다.그가 보기에 속독할 수 있는 책은 아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며, 일주일에 몇 권 이상 이라는 식의 권수 경쟁도 유치한 짓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하는 발췌독은 야마무라 오사무에게는 아예 독서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그건 독서가 아니라 참조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법은 책읽기를 업으로 하는 평론가나 저술가에나 필요한 독서법이라는 것이다. 자신처럼 생업이 따로 있는 생활인에게는 독서가 삶의 최우선 순위도 아니고 하루종일 책만 붙들고 있는 삶은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삶이다. 그에게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이며 읽는 방법에 따라 책 자체가 바뀐다. 지독에서 느낀 자신의 즐거움을 경험담과 함께 소개하면서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은 지독에서 나옴을 강조한다. 표주박의 이미지를 예를 들며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는 테크닉을 소개하는데 실전사용 가능한 팁이다. 그 외의 지독의 방법론까지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 독서의 즐거움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속독법을 비판하며 대비되는 것이 주내용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를 직접 비판한 부분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의 문장을 인용하며 시작되는데 사실 읽다보면 다치바나 다카시가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야마무라 오사무가 인용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속독법은 다치바나가 서점에서 책을 사기전에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책을 솎아내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책읽기의 달인들은 전부 다치바나처럼 속독으로 책을 먼저 솎아낸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도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 책을 솎아내는 기술로 자신의 속독법을 노하우로 소개한다. 고미숙씨 같은 경우에는 결론부분만 발췌독을 먼저하고, 관심이 생기면 정독을 한다고 한다. 발췌독은 독서가 아니라 참조라고 저자는 분노하지만, 로자 이현우는 “책을 만져보는 것”도 하나의 경험으로 인정한다. 독서의 달인들이 이렇게 독서의 범위를 넓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치바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속독을 권유한 것도 아니고, 본문에서도 자신의 속독법은 속독이 필요한 사람들이 참고정도로 하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 역시 책의 종류에 따라 정독, 통독, 속독을 적절히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속독법이라든지,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와 지식, 교양에 대한 관점, 독학의 방법 등 책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묶고 있는데, 독서에 입덕을 권유할 때 곧잘 언급되는 책이다. 만약 야마무라 오사무가 다치바나 다카시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독서, 책, 지식, 교양 등에 대한 서로의 관점이 근본부터 틀리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야마무라 오사무가 다치바나 다카시에게 하는 비판은 배구선수가 농구선수의 플레이를 탓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마무라 오사무에게 독서는 보물이 숨겨진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그물을 올릴 때 마다 뭐가 걸려오는지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고. 세심히 살피는 지혜도 필요하다. 어쩌다 귀한 보물이 걸려나오면 탄성을 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에게 책은 원재료이고 그냥 매체의 하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책 자체가 아니라, 책이라는 원재료로 돌아가는 자기 머릿속의 정보생산 프로세스인 것이다. 중요한 정보를 준다면 책이 아니라 영상이라도 상관없다. 실제로 문학작품류보다 디비디같은 영상매체를 더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애기하는데 활자가 영상보다 상상력을 키워준다는 상투적인 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에게 독서는 보물이 가득한 바다에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작살을 던지는 것이다. 상어를 잡으려고 작살을 던졌는데 고래가 잡혀봤자 그에게는 실패인 것이다. 교양에 대한 관점도 독특한데 그에게 19세기 문학이나 사변철학 등은 이미 죽은 지식이고, 진화의 계통수가 끝난 공룡같은 것이다. 이유는 더 재미있다. 더 이상 사람들이 그런 것을 읽지도 공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즉 정보의 신진대사가 없다) “고전이란 원래 가치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아예 없다. 그에게 진정한 지식과 교양이란 지금도 활발히 정보의 대사가 이루어지는 첨단과학이다. 다치바나 역시 인간존재의 의미라든지, 시간이라든지 공간이라든지 하는 존재론적 물음을 던진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답변 역시 19세기의 사변철학에서가 아니라 현대의 첨단 뇌과학에서 찾는 것 같다. 현대의 첨단과학을 진정한 지식으로 설정하니 당연히 쏟아지는 지금 여기의 출판물과 정보를 전부 스캔해야 하고, 속독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미래의 인간이란 정보의 대사로 움직이는 인간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마치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의 엔딩같은 느낌까지 든다. 한 쪽에서는 이런 다치바나 스타일이 깊이가 없고 “인격적 성숙”이 없다고 비판을 한다.(예를 들면 <서평쓰는 법>의 이원석) 하지만, 이런 비판도 이미 다치바나와는 출발점이 다른 비판이 되는셈이다. 독서계의 우파가 될까? 좌파가 될까? 이제 사람들이 책을 너무 읽지 않으니 이런 질문은 아예 하지 않을까? 책을 읽는 목적은 전부 틀리고 인생관도 전부 틀리다. 정말 부러운 사람은 자동차의 기어를 바꾸듯 속독과 지독을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만약 자신의 인생의 골수가 무엇인지 이미 아는 사람은 그 골수를 깊이 빨아먹을 수 있는 지독을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인생의 골수를 찾지 못했거나 그런 건 없다고 믿는 사람은 다치바나식의 속독술이 유효하지 않을까. 다치바나처럼 정보를 축적하고 새로운 지식을 메이킹하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마치 세계일주하듯 이런 저런 책을 “만져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근데 요즘 사람들도 다치바나 다카시나 야마무라 오사무를 알까? ps 다치바다 다카시의 일본내 연혁(?)이나 평가 등이 궁금하다면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아이돌론>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지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축조한 지식이 실은 전공자가 보기에는 페이크일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한다. 그 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에 대한 미묘하게 깐죽대는(?) 비평이 재미있게 펼쳐지고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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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6메뉴
다치바나 다카시의 그로테스크한 지적 호기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알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는 실용적 지적욕구가 있고, 순수한 지적욕구가 있다. 하지만, 번외로 ‘여성주간지적 지적욕구’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속물적이며 저속한 욕구에 속한다. 저자는 ‘인류의 지(知)의 총체’를 향한 도전이란 목표로 ‘목적으로서의 독서’와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나름 실천하고 있다. 그에게 특이한 점은 그의 <고전古典>에 대한 재정의이다. 보통 고전이란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은 19세기의 전형적인 문학의 범주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전은 적어도 500년-1000년 정도의 검증을 받은 텍스트를 가리킨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는 고전은 이미 과거완료형의 내용이기 때문에 의미가 덜 하다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최신보고서에 확대되고 집적되어 있는 지知의 총체에 더 의미부여를 한다. 고전과 더불어 지금까지 업데이트된 모든 것, 말 그대로 전체적인 통합의 관점에서, 보다 폭 넓은 관심을 보여준다. 그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보다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길 바란다. 독학은 ‘마음먹은 일을 지속시키는 일’이며, 그러기에 ‘비용을 지불해버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독학의 위험성은, 응답과 질의과정이 없기 때문에 독선적인 해석의 리스크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어떤 분야, 이슈에 대해 읽고자 할 때, 먼저 입문서 한권을 정독하고, 다시 입문서 5권을 가볍게 읽는 방식으로 독서를 한다. 물론 책상 위에 일단 쌓아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저자는 책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는 팁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다카시의 방식이고, 독서를 할 때는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독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간혹 너무 두꺼운 책을 밑줄 긋지 않고 중요한 페이지를 접었다가 나중에 다시 체크하려 했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필사도 해보았지만, 확실히 책읽는 속도가 더뎌지는 것은 사실이다. 우연찮게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학노트에 메모하면서 독서를 했다. 근데 너무 힘들었다. 내가 왜 그렇게 메모를 했을까? 아마도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라 다시 볼 기회가 없으니 메모를 했을 것이다. 근데, 한 번씩 대학노트를 뒤적이면 메모의 내용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책의 내용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게 메모의 힘이다. 독서를 할 때 너무 속도 위주로 가다보면, 기억은 휘발되고 망각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잊어버려야 또 받아들일 수 있으니. 하지만, 속도도 중요하다. 독서를 시작할 처음엔 독서법에 대한 책중에 김병완의 <퀀텀독서법>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독서는 뇌로 하는 것이지,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결국 양이 질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3년 1000권, 더 나아가 자신은 3년 1만권 독서를 했다고 자랑한다(독자들 중에는 김병완작가가 너무 자랑이 심하다고 하더라ㅎㅎ). 독서를 처음 할 때는 굉장히 도전이 되었다. 하지만, 김병완 작가의 자기계발서를 계속 읽다보니 중복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손에 그 사람 책을 잡기가 싫어졌다. 중복이 많아도 너무 많아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모든 책은 모든 독자에게 다양하게 자신에게 나름대로 필요한 책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평가한 것 때문에 그 책을 가까이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선입견을 가져 멀리하게 되면, 그것만큼 악평한 자가 저자에게 미안한 일도 없다. 그래서 평가하는 것이 때론 조심스럽다. ‘결국 양이 질을 낳는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기에, 김병완 작가의 책들은 선별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다독가이기에 메모하고 머무르는 여유보다는 전진하는 데 더 큰 장점을 둔다. 독서법의 왕도는 없는 듯하다. ‘지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에겐 확실히 지적인 광기가 있는 듯하다. 놀란 것은 그의 부모가 크리스챤이었다는 것이다. 복음의 불모지인 일본에서 기독교집안의 출신이라는 것. 그가 히브리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런 신앙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가 신앙을 가진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은 판단된다. 영어, 페르시아어, 심지어 한국어까지 가정교사를 두어 외국어를 배웠다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있다. 엄청난 정보광, 지적인 호기심이 ‘고양이빌딩’을 개인서재로 만들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까지 만들었다. 그리고서 자신의 자료와 문서들을 보관하고 관리, 정리하는 비서를 뽑기 위해 광고를 냈다. 500통이 넘는 지원자들이 몰렸다. 결국 21명으로 추려서, 최종후보를 4명으로 압축해서 시험과 면접까지 보았다는 이야기는 일반인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내용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확실히 광적이다. 그의 저서, <지식의 단련법>을 읽다 도서관에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었다. 그리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을 빌렸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이 책은 읽다가 한번 대충 훑어보고 반납했다. 모든 독서가들은 나름대로의 주관과 고집이 있는데, 메가 독서가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얼마나 더 그러할까? 피가 되고 살이 되기엔 나에게는 너무 벅차다 싶어 추천도서만 챙기고 반납했다. 특별히 기억나서 구매한 책은 사진작가 카파의 책이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런 지의 거장이 추천하는 책은 분명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명작과 양서를 훔쳐볼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에 대한 내가 느낀 점을 대충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일본인들 중에 지적 거인이 굉장히 많다.둘째, 일본 저서들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이 많다.셋째,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식욕과 정보욕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fact이다. 잡지, 과학, 우주, 수학, 철학...모든 영역을 뛰어넘는 지적 탐욕이 그에겐 있다.넷째, 지식이 차고 넘치면 외국어를 배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최신의 과학정보와 자료가 외국어로 넘쳐난다. 관심은 있는데 언어가 안 된다. 언어의 한계로 보지 못한다면, 지식인으로 그것도 힘든 일이다. 과학관심자들에겐 더 그러할 듯!다섯째, 다치바나 다카시가 그렇게 ‘지적 거인’으로 서기 위해선 아내의 내조가 크게 작용했다. 새벽에 남편의 ‘고양이 빌딩’의 벽에 그릴 그림 그리는 일로 인해 지인을 찾아가는 데, 아내가 운전을 손수하며 동행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내는 과연??? 여섯째, 지적호기심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고, 저자의 탐욕적 지식의 호기심은 넘쳐났던overflow 것이다.일곱째, 짧은 시간에 다치바나 다카시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어 좋았다.여덟째, 더 많은 앎을 위해 그는 선천적으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문학독서습관을 들 수 있고, 후천적으로는 그가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문학을 좋아했던 학창시절이지만, 저자는 문학은 읽지 않는다고 한다. 문학fiction보다 현재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사건들non-fiction이 더 흥미롭다고 말한다.아홉째, ‘멋지다’는 말보다는 ‘대단하다!’ 말을 남기고 싶다.열 번째, 하지만, 내겐 ‘딱, 거기까지다!’ 여담...인용 쪽수가 없네요. 그땐 뭐 중요하겠나 싶어 기록하지 않았나 봅니다. 겨울이 너무 추웠나? ㅋ (다치바나 다카시 책 다 읽을 것도 아닌데, 리스트를 올린 것은 여러분의 검색하실때 수고를 덜어드리려고 올렸슴돠! 이미지 안보이는 두어권의 책은 제외시켰네요. 번역 안 된 책도 많겠죠! 대단하지만 부럽지는 않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니깐 이라믄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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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0메뉴
잡킬러는 바로 인간이다!
대박이다! 이런 책이 있다니!(나는 이 책을 통해 4차산업혁명의 문을 열게 되었기 때문이다)미래보고서,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이 몰고 온 후폭풍.전반부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인간의 생존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하며, 실업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데이터를 통해 증명한다.후반부터는 미래사회를 총체적, 거시적으로 다루면서 특히 작금의 시대적인 인문학 열풍에서 '인문학'은 '한국식 인문학'과 '서양식 인문학'이 차이가 있음을 밝혀준다. 우리의 '한국식 인문학'은 서양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왜곡과 굴절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다!저자는 인문학 안에 '과학'이 빠져있다는 이야길 한다. 미래사회는 과학의 지평에서 인간학을 다뤄야 하는데, 과학을 모른 채 무시하며 인문학을 운운할 수 없다는 것이다.책에 따르면, 나는 X세대이고, 아내는 C세대이다. 우리아이들은 O세대들이다. 저자는 앞으로의 '자녀교육'에 대한 부분도 터치한다. 과학과 함께 더 넓어지고, 더 탄력적이 된 사이버 물리적 지평 가운데서 정말 특별한 통찰insight가 요구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왜 과학서를 그렇게 탐독하는지 알 것 같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여러 가지 외국어에 능통하다(심지어 히브리어와 한국어도 할 줄 안다고). 그가 외국어를 왜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최신과학잡지나 뉴스나 이슈를 알기 위해선 외국어를 해야 한다. 외국의 최신의 자료나 정보가 국내에 번역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최신의 자료는 독자의 손에 번역서로 들려질때는 이미 구식의out of date 자료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한 세대나 한 시대만 먼저 태어났어도 그렇게 과학독서에 목매진 않았을 것이다. 미래사회는 인공지능과 함께 가는 사회이고, 지식이 이제 빅뱅의 시점에 이르렀고, 그 지식을 인간 안에 가둘 수 없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그게 너무 굉장하다.디지털이민자인 우리 세대 VS 디지털 원주민인 자녀세대의 갭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기에 디지털 아테네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잡킬러는 인간이 만든 과학이고, 인공지능이고, 로봇이지만, 그 과학적 결과물을 만든 것은 바로 인간이다. 결국 인간이 잡킬러Jobkiller이다. 이 말은 또 다른 측면에서 여전히 '인간'이 모든 궁극적인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령화사회의 문제점, 2060년에는 생각하기도 싫은 미래가 우리 자녀들에게 도래한다. 그 궁극적 어두운 먹구름 앞에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인문학을 읽지만, 신앙인으로서 '인간의 지혜 VS 하늘의 지혜'란 테제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굉장히 흥미로운 사회가 전개되고,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도래하겠으나, 역시 여긴 지구이고, 우리는 인간이다. 판후이가 알파고와 바둑을 두면서 세계랭킹 300위로 도약하고선 'So beautiful! So beautiful!'이라고 했다고 한다.인공지능에 대한 판후이의 찬사이다. 잡킬러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기에, 인간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지혜와 통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만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유튜브에 들어가면 디지컬 이민자인 부모세대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정보와 동영상의 바다에 빠져있는 원주민인 우리 아이들, 그들은 디지털 원주민이다...이민자인 우리가 원주민을 대놓고 욕하고 윽박지를 수만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들은 원주민이다. 원주민! 디지털 원주민의 생태계이고 문화이다. 그러기에, 여기에 나는 사피엔스의 지혜와 호모 데우스의 지혜가 필요하고, 더 나아가 하나 더 추가한다면,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성찰케 하는, 우리의 영역 밖을 넘어서는 '하늘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의 결과이다. 디지털 원주민인 다음세대인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의 책임을 다한 후에 우리도 그런 감탄을 내뱉을 수 있음 좋겠다! “So beautiful! So beautiful!”이라고... -클라우스 슈밥의 책은 꼭 읽고 싶다. 근데, 자꾸 먼지만 쌓인다는...그래도 서재에 꽂혀 있으면 언젠가는 읽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후덜덜! (내가 이 페이퍼를 다 치고 난 후, 익스플로어가 에러가 나버렸다. 글이 다 날아갔다. 임시저장되었는줄 알았는데, 제목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아! 울화가 치밀고...하악! 그래서 다시 안전하게 저장한다고 한글에서 워드를 쳤다. 그리고서 복사한 마우스를 들고 알라딘에 다시 떡 들어왔는데, 이런...다 저장되어 있었다는...아!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가 아니란 말인가!ㅠㅠ그래도 본의 아니게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위한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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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31메뉴
책을 많이 산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작년 8월에 ‘내 서가 속 문학동네’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서 ‘숨은 문학동네 찾기’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출판사 초대전-당신의 서가에 한 권은 있다’ 첫 번째 이벤트를 담당한 출판사는 ‘열린책들’이고, 두 번째 출판사가 ‘문학동네’다. ※ [숨은 문학동네 찾기] 2016년 8월 16일 작성http://blog.aladin.co.kr/haesung/8698286 이벤트 종료 이후에도 문학동네에서 나온 책들 몇 권 더 샀다. 올해에 두 번째 ‘문학동네 초대전’이 열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첫 번째 이벤트와 달라진 점이 있다. 첫 번째 초대전 이벤트는 소장도서를 찍은 인증 사진을 올리는 형식이었다면, 이번 초대전 이벤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문학동네 책 한 권을 소개하면 된다. 늘 그렇듯 최애(最愛)한 책 한 권을 고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모든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 순위제 형식의 글을 작성했다. 순위의 기준은 내 맘이다. 순위에 포함된 도서는 첫 번째 ‘문학동네 초대전’ 이벤트 종료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구입한 것들로 집계했다. 문학동네 소속 브랜드(임프린트) 출판사의 책들도 포함되었다. 나는 아예 안 읽은 책은 ‘읽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하거나 도서 링크를 올리지 않는다. 순위에 포함된 도서 중에 안 읽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리뷰’가 아니다. 안 읽은 책을 링크해야 할 이유도 없다. 의도가 아니더라도 안 읽은 책(특히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간도서)을 잔뜩 올려놓기만 하고, ‘땡스투 적립금’을 받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요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라고 해도 ‘읽는 행위’가 전혀 보이지 않은 글에는 읽는 이의 진지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책을 많이 산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게으른 독서’는 여전하다. 그렇지만 당장 읽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읽을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휴머니스트, 2014) 독서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무모하게 도전했던 다음 책이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였다. 지식이 전무한 햇병아리 고등학생이 하이데거, 데리다, 들뢰즈 등 난해한 사상가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할 리가 없었다. 《현대미학 강의》를 《미학 오디세이》만큼 쉬운 내용이라고 믿고 읽었다가 큰코다쳤다. 유튜브 방송 ‘겨울서점’을 진행하는 북튜버 김겨울님(고려대학교 철학과를 나온 ‘철학 덕후’이다) 말씀이 맞더라. 그분은 철학을 공부하려면 제일 먼저 기초적인 입문서부터 찾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라딘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 곰곰생각하는발님이 작년에 뱀파이어를 주제로 한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원 글에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드라큘라가 언급되어 있다. 뱀파이어와 드라큘라의 관계를 경상도 사투리로 표현하자면 갸가 갸다. 어쨌든 아주 인상 깊은 글이다. 시간 있을 때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 [아아, 딱딱한 아가씨군] 곰곰생각하는발, 2016년 7월 13일 작성http://blog.aladin.co.kr/myperu/8620761 장 마리니는 ‘뱀파이어’와 ‘드라큘라’를 학문적 소재로 격상시켜 진지하게 연구한 전문가다. 마리니가 쓴 《흡혈귀 : 잠들지 않은 전설》(시공사, 1996)은 시공디스커버리총서에 포함된 책이고, 《뱀파이어의 매혹》은 문학동네 ‘엑스쿨투라(Ex Cultura) 총서’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엑스쿨투라 시리즈는 인문학 도서 위주로 나오는데, 그나마 읽기 쉬운 주제의 책이 《뱀파이어의 매혹》이다. 정말로 그런지 엑스쿨투라 총서 시리즈로 나온 다른 책들과 한 번 비교해보자. 《헤겔, 아이티, 보편사》(2012),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2013). 《빈곤과 공화국》(2014). 어때? 내 말이 맞지? ‘문학동네 시인선’ 전체 아니, 문학동네 출판사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새로운 스테디셀러 에이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1989)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의 명실상부 에이스라면, 아직 역사가 짧은 ‘문학동네 시인선’의 에이스는 당연히 박준의 시집이다. 강도가 약한 ‘팩트 폭력’을 시전하자면, ‘문학동네 시인선’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박준 시집 한 권뿐이다. 이보다 강도가 조금 센 ‘팩트 폭력’ 둘. 애서가가 아닌 사람들은 박준의 시집만 알고 있지, 이 시집이 ‘문학동네 시인선’ 시리즈에 포함된 것이며 시집 시리즈 자체가 있는 것조차 모른다. 이거 웃자고 한 말이 아니다. 현재까지 알라딘에 남긴 ‘문학동네 시인선’ 리뷰의 수를 살펴보면 대충 감이 온다. 100자평을 제외한 독자리뷰 10편을 넘긴 시집이 딱 두 권뿐이다. 이문재의 《지금 여기가 맨 앞》(총 11편), 그리고 박준의 시집(총 41편). 100자평 한 개조차 달리지 않은 시집이 꽤 많다. 투자자들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던 명언이겠지만, 이 명언의 진리는 출판사들도 새겨들을 만하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스테디셀러를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독자들은 바구니에 담지 못한 책들이 뭐 있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가 알리지 않는 이상, 책의 존재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 [당신이 살고 있는 ‘맛의 세계’] 2017년 5월 19일 작성http://blog.aladin.co.kr/haesung/9347905 이 책을 읽고, 내 맛의 선호 경향이 ‘괴식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확신했다. ※ [그림에 자유롭게 다가서기] 2017년 7월 5일 작성http://blog.aladin.co.kr/haesung/9439132 얼마 전에 이 책을 리뷰로 소개했으니, 여기서는 책과 전혀 관련 없는 딴소리를 해야겠다. 이번에 ‘문학동네 초대전’ 이벤트를 준비한 출판사 관계자들의 태도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트북스’는 문학동네 소속 임프린트인데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아트북스’에서 나온 모든 책의 ‘관련 이벤트’ 항목에 ‘문학동네 초대전’ 이벤트 내용이 없다. 제발 문학동네 직원이면 아트북스 좀 응원, 아니 초대합시다! 앞서 소개한 유경희씨의 책에 제임스 엘킨스의 《그림과 눈물》이 잠깐 언급된다. 책 소개를 유경희씨의 책에 있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대신한다. 서재에 꽂혀 있던 제임스 엘킨스의 《그림과 눈물》을 다시 꺼내 보았다. 이 책은 그림 속에 그려진 눈물과 울음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림 앞에서 울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넌지시 부러움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는 그림을 보고 감동은 하지만 절대 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미술사학자를 포함한 지적인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의 말처럼 그림 앞에서 울 수 있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정신과의사나 심리치료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경희 《가만히 가까이》 326쪽) 2000년 전후에 문학동네가 인문학 총서를 펴낸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모더니티 총서’다.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이 총서에 포함된 책 중에 재출간된 것은 단 세 권뿐이다.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자의 고독》(2012), 두 권으로 이루어진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2012)이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개념사’ 연구를 주도한 독일의 역사학자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통해 과거를 알 수 있고, 미래에 대처할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코젤렉은 이 역사의 전통적 의미를 ‘근대가 낳은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코젤렉의 ‘개념사’ 연구는 근대에 태동한 역사적 개념들, 즉 제국주의 · 문명 · 진보 등과 같은 단어를 형성하게 만든 역사적 배경들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지나간 미래》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어설프게 책 소개를 하고 싶지 않다. 정희진씨의 《지나간 미래》 서평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 [다가가면 물러서는 미래] 정희진, 한겨레 (2015년 1월 2일)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8&aid=0002259132 ‘비밀언어 시리즈’는 인간의 꿈과 무의식, 예술작품 등에 등장하는 상징체계를 소개한 시리즈물이다. 이 시리즈물의 매력은 그림과 사진이 많다는 점이다. 프로이트 · 융 심리학의 상징이론, 신비주의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부담 갖지 않고 읽을 수 있다. ‘비밀언어 시리즈’ 첫 번째 책 《상징의 비밀》은 최승자 시인이 번역했다. 현재 이 책과 《사랑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지금 주문이 가능한 ‘비밀언어 시리즈’는 《마음의 비밀》 딱 한 권뿐이다. 나머진 절판되었다. 《사랑의 비밀》을 ‘사랑에 관한 백과사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사랑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도판과 인용된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 [삶과 죽음의 간격] 2017년 7월 20일 작성http://blog.aladin.co.kr/haesung/9474883 김애란을 읽지 않은 십 년의 세월을 너무 아깝게 흘려보냈다. 《바깥은 여름》을 읽고서야 뒤늦게 김애란의 진가를 알았다. ※ [책으로 살찌운 영혼] 2017년 2월 18일 작성http://blog.aladin.co.kr/haesung/9146201 사실 이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나머지 아홉 권의 책을 들러리로 세워 놨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내 독서와 글쓰기에 가장 영향을 준 스승이다. 만약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알라딘에 가입해서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내가 책을 많이 사게 만든 ‘만악의 근원’이다. 헌책방 탐방의 묘미를 알려준 사람도 다치바나 다카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교보문고’ 매장에 사서, 이 책을 읽고 쓴 리뷰를 ‘알라딘’에 공개했다. 운이 좋아서 리뷰 대회 2등을 했다. 원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양장본 50권’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세계문학전집 양장본 몇 권이 품절 상태였기 때문에 받지 못한 문학전집 대신에 《테러리스트의 아들》(2015), 《미각의 비밀》, 《정치의 도덕적 기초》(2017)를 받았다. 그러니까 이 책 세 권과 세계문학전집 양장본 47권을 받은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목재 사과 상자에 책을 보관하던 시절을 ‘사과 상자 시대’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오마주(Hommage)를 하고 싶어서 세계문학전집 양장본을 ‘사과 담는 종이 상자’에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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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14메뉴
속독법의 실체
로버트 T. 캐롤의 《회의주의자 사전》(잎파랑이, 2007년)은 대체의학, 뉴에이지, UFO, 심령 등 400항목이 넘는 초자연적이고 초과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설명과 상식에 근거한 비판을 사전 형태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터넷사이트 ‘스켑딕(skepdic)’의 운영자로 여기에 올렸던 글을 선별해 《회의주의자 사전》을 펴냈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엄밀한 과학적 실험과 조사로 규명되지 않은 채 과학으로 행세하는 현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 사전》의 항목 중에 ‘속독’이 포함되어 있다. 혹시 속독법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 책 675쪽을 보면 된다. 속독법을 어린이와 성인들을 위한 학습법으로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부분 이렇다. 속독법은 책 읽는 속도가 느린 사람을 단시간만에 ‘책읽기 천재’로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한다. 속독법을 익히면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책을 빨리 읽으면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정말 속독법 하나로 천재가 되려면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속독법의 효과에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소위 분당 1만 개의 단어를 읽는 사람들은 문장 하나하나 빨리 읽는 것이 아니다. 글을 읽는 게 아니라 훑어본다. 이들은 읽는 문장 속 단어와 표현을 이해하는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더 높다. 속독법을 배워도 어휘 독해력이 부족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보통 사람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빠르게 읽으면 분당 250~300개 단어 정도 속도로 읽을 수 있다. 이게 최대 속도다. 킴 피크라는 사람은 7천 권이 넘는 책을 전부 기억하면서 빨리 읽는 능력을 보유했다. 그런데 그는 선천적으로 좌우의 대뇌반구를 연결하는 뇌량(腦梁, 뇌들보)가 없다. 킴 피크처럼 뇌량 없는 사람은 실독증이 나타날 수 있다. 실독증은 시각 능력이 정상이어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증상이다. 킴 피크의 속독 능력은 정말 확률적으로 나오기 힘든 희귀한 사례이다.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청어람미디어, 2001년) 다치바나 다카시는 독서를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책 읽는 자체를 즐거워하는 ‘목적으로서의 독서’와 다른 하나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책을 읽는 ‘수단으로서의 독서’이다. 후자의 독서를 하려면 속독법을 활용해야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신문에 연재되는 서평 작성이나 취재 준비 그리고 책을 집필하기 위해서 책을 빨리 읽는다. 그는 바쁜 상황 속에 책을 읽는 방법으로 속독 능력을 갖출 것을 강조하면서도 자신만의 속독법이 ‘대충 훑어본 것’과 똑같다고 말한다. 책을 엄청 많이 읽고, 가장 똑똑하다던 다치바나 다카시도 속독을 ‘훑어보기’와 동일한 의미로 언급했다. 속독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다가 내가 알고 싶지 않거나 한두 번 봐도 모르는 내용을 만난다. 이럴 때 과감히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는 것이 낫다. 비록 대충 넘긴 쪽수가 많더라도 책의 핵심 내용이나 가능한 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읽었다면, 책의 절반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게 바로 대충 훑어보는 속독법이다. 그런데 일부 다독가와 속독 학습법을 개발한 교육 전문가들은 속독이 천재들이 가진 남다른 습관이며 일반인도 속독법을 훈련하면 천재처럼 속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속독법이 잠재적인 천재성을 끄집어낸다는 말을 믿고, 꽤 적지 않은 수강료를 내면서 속독법을 배운다.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속독법 교육에 투자하는 건 돈 낭비다. 특히 ‘과학적’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으며 분당 1천 개 이상 단어를 읽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속독법이라고 과장 홍보하면 그냥 무시하는 것이 좋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책과 담 쌓은 사람이 검증되지 않은 속독법에 돈을 쳐바르거나 그거 하나쯤 익혔다고 은근히 우월감을 과시하는 경우이다. ‘목적으로서의 독서’를 하는 사람은 정독을 선호한다. 속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정독의 가치를 낮게 본다. 심지어 정독하기에 적합한 책으로 문학 작품을 예로 들면서 문학 작품을 재미로 읽는 독자들을 한심한 존재로 여긴다. 여기서부터 지적 우월감이 드러내는 지점이다. 애서가의 지적 우월감은 책 읽는 사람들 간의 정서적 위화감을 만들어낸다. 책 읽는 권수나 독서 능력, 심지어 관심 있는 책의 분야마저 하나의 경쟁 대상이 되어 우열을 가리려고 한다. 천재들의 속독법대로 책을 읽었는데도 천재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잘못은 독자의 책임이 아니다. 독서 자체를 좋아한다면, 그냥 완독하는 데 오래 걸리든 말든 속 편하게 책을 읽으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속독은 ‘속 편하게 읽는 독서’이다. 독서로 천재가 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책 읽는 척’하면 된다. 자신이 일 년에 책 1천 권을 독파했으며 오래전부터 알려진 온갖 독서법의 에센스만 가려 뽑아서 ‘천재 속독법’을 만든다. 어때요, 참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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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2-03메뉴
2월 3일 금요일입니다. 좋은하루되세요.^^
2월 3일 금요일입니다. 오늘은 기온이 많이 올라서 따뜻한 날씨예요. 점심 맛있게 드셨나요.^^ 어제보다 조금 흐린 날 같긴 한데, 어쩐지 요즘은 날씨가 흐리면 미세먼지가 같이 오는 건지 찾아보게 됩니다. 주말에는 눈 또는 비소식 있다고 하니 추위가 잠깐 쉬어가는 날인 모양이예요. 오늘은 간단한 퀴즈 입니다. 상품은 늘 그렇듯 없습니다. 그러니 틀려도 좋고 맞아도 좋은, 재미로 풀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문제입니다.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소장도서를 보관하기 위해 건물을 지었습니다. 이 건물과 관련있는 이미지를 고르세요.1. 너구리2. 강아지3. 고양이4. 복숭아정답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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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빠 2017-01-02메뉴
나는 이런책을 읽어왔다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 낸 문명은 어뜻 보면 실용적인 지적 욕구, 즉 경제적인 합리성을 가진 지적 욕구의 소산인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표면적인 측면일 뿐, 우리 인류를 보다 깊은 고에서 움직여 온 것은 보다 원초적인 순수한 지적 욕구, 즉 어찌 되었든 알고 싶고 조금 더 알고 싶다는 근원적 욕구 였다고 생각합니다. 오토마톤 화 된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지적 욕구를 항상 새로운 것을 향해 돌리는 인간이야 말로 지속적인 내면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독서론을 전개할 때 무엇을, 어떤 목적으로 읽는가 하는 문제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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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쥐만세 2015-10-03메뉴
입안에서 단어를 굴리며 천천히 맛보는 풍요로움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책을 읽어왔다를 읽은 후에 리뷰를 쓰지 않은 이유는 인간 백과사전이 되고 싶어하는 다치바나의 효율성을 중심에 둔, 논픽션을 중심으로 책을 읽을때 왼쪽 위부터 사선으로 오른쪽 아래까지 훑어보면서 눈에 걸리는 단어를 중심으로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것은 책 읽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책읽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방식의 책일기를 소개할 수도 있고 자기는 그런 방식의 책읽기를 선호한다고 말할수도 있지만 다치바나의 말투는 백과사전의 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나에게도 강요하는듯이 느껴져서 불쾌했거든 다치바나의 책읽는 방식과 그가 읽은 책에 대한 자랑이 내게는 편협하게 느껴졌다. 맞다. 책을 읽을때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대각선 방향으로 걸리는 단어를 중심으로 읽어도 된다. 그런대 그렇게 포식하듯이 확장한 지식이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쓸모가 있다는 걸까. 레이먼드 챈들러를 읽을때 나는 천천히 읽는다. 단어와 문장을 읽을 뿐 아니라 문장 사이의 행간에 어떤때는 안개가 차갑고 어떤때는 햇살이 반짝인다. 친구를 만날때 효용성을 중심으로 만나지는 않는다. 인연이 된다면 공감하고 지지하고, 끌리고, 코드가 맞고, 눈빛이 마음에 들어서 친구를 만나듯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효율을 앞세운 독서론은 불쾌하다. 물론 나도 모든 책을 느리게 읽지는 않는다. 효율적으로 씌어진 문장이 매력적일 때도 많다. 심농의 문장은 헤밍웨이를 닮았다. 짧고 경제적인 기자들의 문장 그렇지만 건조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효율적인 문장에 감성은 오히려 뜨겁다. 최근의 작가들에게서는 볼수없는 적당한 중편이 더욱 천천히 단어를 입안에서 굴리면서 맛보게 한다. 챈들러의 충실한 후계자 코넬리를 읽을때는 소름이 끼칠때가 있고 마이클 코넬리를 모르고 죽었더라면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에드 맥베인의 문장과 캐릭터는 최고다. 다음 87분서가 언제 번역되어 출간될 것인지 목 빠지게 기다린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감하는 재미를 뒤로하고 책을 읽으며 어떤 효율이 더 있어야 하는 걸까. 다치바나의 깔끔하게 경제적인 독서론을 읽은후 리뷰를 쓰지 않은채 언제든 한마디 해주어야겠다, 생각하다가 데빌스 스타를 너무너무 맛있게 넋이 나갈정도로 정신없이 후루룩 읽고 나니 다치바나가 나의 벗들을 손가락질하며 흉본듯이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아마도 다치바나를 읽은지 10년은 된것같은대, 아직도 마음에 남아 마치 콘메어 벨트에서 상품을 생산하듯 벽돌을 찍어내는 것처럼 논픽션들을 읽는것이 좋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천천히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고 싶은 사랑하는 책들이 있어 삶이 풍요로워 지는것을 모르고 사는 것은 불쌍하다고 알려주고 싶은 책들이야 헤아릴수 없어도 페니를 빼먹을 수는 없고, 다른 작가의 작품이 생각나기 전에 마무리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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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0-29메뉴
19금 비밀 컬렉션~( ͡° ͜ʖ ͡°)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방에 한번 나가면 3만 엔(당시 우리나라 월급쟁이 몇 달 치 월급) 정도의 ‘거금을 들고’ 사냥하듯 책을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책을 산다기보다는 포획 하다는 말이 적절하다. 그래서 사들여서 잔뜩 쌓인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고양이 빌딩’을 짓고, 수만 권의 책 속에 파묻혀 학문의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지난 시절보다 더 왕성하게 글을 썼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청어람미디어, 2001년)를 읽으면 언감생심 그에게는 까마득히 못 미치지만, 그의 독서법에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다치바나는 책은 꼭 돈을 들여서 사고 산 책은 버리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 또한 그런 습관을 지니고 있는데 먼 훗날에 책으로 가득한 서재 같은 창고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청어람미디어, 2008년)에 고양이 빌딩의 구조와 거기에 보관된 책들이 소개된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라면 다치바나가 야한 내용의 책 위주로 따로 모아놓은 서재를 소개할 때이다. 성 관련 책을 빌딩 1층에 보관했다. 성 풍속, 선정적인 내용, 성행위를 과감하게 묘사한 책들까지 제목만 봐도 얼굴을 화근거리게 만든다. 사드의 『소돔 120일』도 빠질 수 없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에는 성 관련 책에 대한 다치바나의 소개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비해 좀 더 상세하게 소개한다. <러브호텔 문화지>, <게이 시장이라 불린 남자>, <성의 구조>, <일본에로사진사> 거기에 사드 후작 선집도 사들였다. 그뿐만 아니다. 허름한 서점 한 구석에 꽂혀 있을 법한 일반인들의 성생활 수기에서 가격이 꽤 비싼 호화본 우키요에 춘화(春畵)도 다치바나 서재의 도서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에 일본 우키요에 춘화를 설명하는 내용이 열 페이지 정도 남짓 할애될 정도로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다치바나는 춘화를 야한 그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가 있는 풍속화에 의미를 두고 있다. 춘화의 그림 스타일을 분류하고 예술로 볼 수 있는지 논할 정도로 말이다. 다치바나는 1979년에 <미국 성 혁명 보고>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을 읽은 잡지의 편집장이 내용에 감동받아 다치바나에게 스와핑 잡지를 매호 보내주었다고 한다. 성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던 고등학생 때 엉뚱하게 야한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서 책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그 꿈(?)이 조금씩 이루어지게 되었다. 제목과 표지만 봐도 ‘19세 미만 독자 구독 금지’ 뉘앙스가 느껴지는 책은 가장 눈에 띄는 책장에 꽂지 않는다. 아직 책의 권수가 많지 않아서 여닫이가 있는 책장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거기에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도 모른다. 거의 비밀에 가까운 보관이다. 일명 ‘19금 비밀 컬렉션’이다. ‘19금 비밀 컬렉션’에 보관된 책 중에서 일부 몇 권은 이미 소개한 적이 있다. 바로 기욤 아폴리네르의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문학수첩, 1999년-품절)과 『완역 돈쥬앙』(전 2권 / 보람, 1995년-절판)이다. 성애문학에서 사드의 뒤를 이은 작가가 아폴리네르다. 그가 한동안 잊힌 사드의 작품들을 발굴하여 전집으로 소개했고,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과 『완역 돈쥬앙』에서도 사드를 뛰어넘으려는 상상 그 이상의 성 행위의 향연이 펼쳐진다. ‘19금 비밀 컬렉션’의 시작은 사드에서 비롯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 소개된 사드의 작품은 악명 높은 묘사로 인해 출간 수명이 짧았다. 1990년에 새터라는 출판사에서 처음으로『소돔 120일』이 두 권짜리로 출간되었다. 여기서부터 희귀본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2000년에 고도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지만, 이 책 또한 빠른 시기에 절판의 운명을 맞았다. 이 때 사드라는 이름을 알고, 『소돔 120일』을 구입한 독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 때는 사드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판매 부수가 적었을지도 모른다. 2000년에 나는 초등학생 6학년이었고, 당연히 ‘사드’ 그리고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사디즘’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동의 세계에 입문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사드의 『소돔 120일』이 악명 높은 작품에다가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대학교 동기가 흥미진진한 외국 영화를 다운로드 받았다고 해서 같이 보자고 나에게 권했다. 그런데 하필 그 영화가 ‘살로 소돔의 120일’이었다. 친구는 자기 혼자 영화를 보다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문제의 장면들이 너무 역겨워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혼자 당한 걸 아쉬웠던지 나에게도 그 영화를 권한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비위가 강한 편이라서 영화를 끝까지 봤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파졸리니가 관객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기분이 찝찝했다. 영화 속 최악의 장면이 머릿속에 자꾸 남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이 때가 바로 사드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결정적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직접 원작을 읽고 싶었으나 헌책방과 인터넷 서점에서 너무 비싼 가격에 팔고 있던 터라 그저 침만 삼키고 있어야 했다. 대신 사드의 단편을 모은 『사랑의 죄악』(장원, 1993-절판), 『미덕의 불운』(열린책들, 2011년), 『사드의 규방철학』(도서출판 비, 2005년-품절)을 구입하면서 드디어 어두컴컴한 사드의 세계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어둠에 가려졌던 문제작 『소돔 120일』이 2012년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는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이 때 한창 성 범죄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때라서, 성 관련 서적이 때 아닌 핍박을 받아야 했다. 결국 『소돔 120일』이 청소년 유해 판정물보다 한 단계 높은 처분을 받게 되어 출간 정지를 당하게 된다. 이 책이 음란물로 규정된 것이다. 출판사가 모든 책을 수거해서 폐기시키는 바람에 한동안 동서출판사 『소돔 120일』이 판매가 금지되었고, 이미 책을 산 사람은 가격을 뻥튀기해서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파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판금조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간행물윤리위원회 재심을 통해 청소년유해간행물로 변경되었다. ‘19세미만 구독불가’ 표시를 하고 비닐로 포장해 판매하게 되었다. 이 결정을 계기로 고도출판사의 『소돔 120일』이 알라딘 중고서점에, 거기에 고가가 아닌 부담 없는 가격으로 한정판으로 판매될 수 있었다. 이 때가 정말 고도출판사의 『소돔 120일』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책이 다섯 권씩 있는 꽂혀 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드 동시대 또는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음란 서적 출판이 성행했다. 이름 없는 무명의 작가들이 쓴 포르노 작품은 독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읽혀졌고, 심지어 궁정의 왕족들까지도 포르노의 대상이 되었다. 소문으로 전해 내려오는 궁정의 섹스 스캔들은 왕족의 무능함에 지친 대중들과 그들 세력을 비판하려는 반정부주의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먹잇감이었다. 특히 18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왕족들을 섹스의 화신 혹은 성불능자로 만들어 희화화시킨 시와 노래 그리고 소설이 유행했다. 그래서 왕족이나 정부는 이를 판매 금지시키고, 제작하거나 배포하는 사람 또 읽는 사람들마저도 처벌을 내렸다. 정부는 은밀하게 유통되는 음란물이 국정을 혼란시킬 수 있는 방해물로 인식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음란물을 수거시켰고, 제작·배포한 사람들은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다. 성애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존 클레랜드의 『내 사랑 패니 힐』(예림미디어, 1999년-절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원제는 ‘Fanny Hill: Memoirs of a Woman of Pleasure’로 영국에서 1749년에 출간되었다. 출판 연도 시기는 사드의 『소돔 120일』보다 무려 40여 년 전이다. 『소돔 120일』은 프랑스 혁명의 포탄이 터지기 시작할 즈음에 사드가 집필한 것이다.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마로니에북스, 2007년)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내 사랑 패니 힐』이 영문학 사상 가장 에로틱한 소설로 꼽고 있다. 참고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 도서목록에 사드의 『소돔 120일』과 『미덕의 불운』(원제는 ‘Justine, or les malheurs de la vertu’, 우리말로 풀이하면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운’이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드와 클래렌드의 작품 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이 쓴 작품의 주인공은 음탕하다. 허나 결말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사드 작품 속 주인공은 악덕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어 불행하면서도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지만, 클래렌드의 『내 사랑 패니 힐』의 주인공이자 창녀인 패니 힐은 자신의 성적 편력을 마음껏 즐기면서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패니 힐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신분 상승을 위한 전략적 무기로 사용한다. 반면 사드의 작품 주인공들은 섹스를 오직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자신만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성애문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알렉상드리앙의 『에로틱 문학의 역사』(한술출판사, 2005년-품절)은 고대부터 현대의 초현실주의까지 에로틱 문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토머스 월터 라커의 『섹스의 역사』(황금가지, 2000년-절판)은 섹스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움직여 온 인간의 역사와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 저자가 수집한 다양한 텍스트와 그림을 통해 독자는 섹스에 대한 인식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세계성풍속사』(세명문화사, 1988년-품절)은 일본인 저자(한자어로 ‘복전화언’)가 쓴 성 풍속사를 다룬 책인데 제목은 거창하게 보이지만, 실상 내용은 짤막한 에피소드를 나열한 것이다. 꽤 낡은 책이지만, 역사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은밀한 성 풍속과 동서양을 아우른 독특한 성 문화를 볼 수 있다. 알라딘에 ‘성 픙속’으로 검색하면 관련 서적들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몇 권은 절판되고 말았지만. 그 중에 임명수라는 저자의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어문학사, 2004년-절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성풍속사』과 같은 내용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에 소개된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다. 시대별로 ‘고대 편’, ‘중세 편’, ‘근세 편’, ‘근대 편’, ‘현대 편’으로 구분한 목차의 특징이 두 책 다 비슷하다. 그리고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 ‘고대 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피임법’이라는 항목명이 있는데 이 내용은 『세계성풍속사』에도 나온다. 굳이 두 책을 직접 비교해보지 않고 일부 소개된 목차만 봐도 얼추 두 책이 이름만 다른 서로 같은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의 저자가 한국 사람인 것으로 보아서는 일본 저자가 쓴 책을 그대로 자신이 쓴 것처럼 교묘하게 이름만 바꾼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젠가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을 발견하게 되면 좀더 자세하게 내용을 비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옛날에 비해 성 문화와 인식이 개방적으로 변화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서적만큼은 무조건 야하다고 생각하면 음란하고 불온하게 보는 인식은 여전한 것 같다. 이런 책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읽으려면 용기를 가져야 한다. 성 관련 서적은 성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는 소수의 독자만 읽을 뿐이지, 대체적으로 잘 팔리지 않는다. 또 재출간될 가능성도 장르문학만큼 희박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이병주의 에로스 문화 탐사』(전 2권, 2002년)은 워낙에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재출간되지 않은 점에 아쉽기만 하다. 서양과 동양의 에로스문화가 시대별로 정리되어 있으며 도판 목록도 화려하다. 보티첼리, 루벤스, 김홍도, 신윤복 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예술가들이 그린 춘화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책을 사 모으고 읽는 독자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많이 읽어서 이성을 잃어버린 괴물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섹스를 제대로 알아야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악덕으로 이용하는 괴물에 당하지도 않으며, 그러한 괴물로 되지도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성 교육이 중요한 거다. 뜬금없이 웬 성 교육 드립이...? 제대로 된 성 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잘 아는 내용이기에 그냥 넘어가고, 일단 이러한 책을 사고 읽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섹스는 절대로 때려야 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섹스가 인간의 역사를 만들었는지를. 단순하게 말하면 섹스를 착하게 또는 나쁘게 이해하고 그 본능에 따르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나누어진다. 그래서 섹스는 인간에게 있어서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쾌락을 선사하면서도 그것이 악용되면 반인륜적 행위로 이어지니까. 섹드립 같은 야한 농담에 부끄러워도 상관은 없지만, 섹스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 분석하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을 변태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수줍어하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있을 수 있다. 건강한 성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는 정신 건강에 해롭지 않다. 그래서 ‘19금 비밀 컬렉션’을 위한 수집은 계속 할 것이다. 나도 다치바나 못지 않을 정도로 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 ͡° ͜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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