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불타는 세상 속의 희망 그리스도
불타는 세상 속의 희망 그리스도
샐리 맥페이그 (지은이), 김준우 (옮긴이) 생태문명연구소 2023-12-11
원제 A New Climate for Christology: Kenosis, Climate Change, and Befriending Nature (2021년)240쪽
불타는 세상 속의 희망 그리스도
샐리 맥페이그 (지은이), 김준우 (옮긴이) 생태문명연구소 2023-12-11
원제 A New Climate for Christology: Kenosis, Climate Change, and Befriending Nature (2021년)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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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저자가 80대 중반에 완성한 이 책은 기후 위기가 빠르게 악화되는 가운데 새로운 그리스도론을 제시한 책이다. IPCC는 2100년까지 3도 상승을 예상했고, 세계 각국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서약했다. 그러나 산유국들은 실제로 배출량을 대폭 줄이기는커녕 화석연료 생산을 1.5도 탄소예산보다 2배 많이 추진하는 중이다. 이런 추세로는 2050년까지 2도 상승하게 된다. 현재 매년 700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죽지만, 2도 상승하면 매년 1억5천만 명이 대기오염 때문에 죽게 되며, 또한 식량난이 심해져서 “북반구에서의 동시다발적인 식량폭동”이 예상된다. 따라서 3도 상승하기 이전에 사회와 문명이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엄중한 자기 파괴적 생명학살의 현실 앞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핵심을 문제 삼는다.
- 서방교회의 개인구원의 대속론 대신에
- 예수의 삶과 가르침, 동방교회의 테오시스 구원론, 그리고
-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화론과 양자역학에 근거하여 “자기 비움의 그리스도론”을 제시한다.
기후위기가 더욱 촉박해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집단최면에서 벗어나 기후 행동을 실천하는 지름길은
- 신학의 재구성에 있으며, 또한
자아와 존재의 본질을 되찾는 것은
- 붕괴와 소멸의 시대에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는 신앙의 기쁨을 회복하는 길이며,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며 또한 능력을 부여하시는 희망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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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예수 그리스도와 기후비상사태 / 9
서론: 케노시스, 그리스도, 그리고 기후비상사태 / 17
1장. 예수와 하느님의 케노시스 이야기들 / 49
2장. 기후비상사태를 위한 포스트모던 통찰들 / 77
3장. 신과 인간의 관계적 존재론 / 91
4장. 친구 하느님과 세상의 친구들인 우리들 / 109
5장. 케노시스, 테오시스,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전개하는 그리스도교 신학 / 139
후기: 케노시스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성찰 / 165
부록 1: “하느님을 찬미하여라.”—프란치스코 교종 / 169
부록 2: “임박한 기후 파국과 인류의 마지막 혁명”—김준우 / 203
접기
책속에서
P.13~14
나는 그리스도교의 구원에 관한 견해들이 기후비상사태 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어떻게 공헌하는지 아니면 방해하는지 하는 문제를 철저히 검토하고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하는 방식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특히 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케노시스적 해석(kenotic interpretation)에 집중하고 싶다. 즉 당신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잃어야만 한다는 이상한 관계 말이다. 십자가의 길은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 생명을 넘겨줄 수 있는 전적인 자기 비움이다. 생명은 결코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이 죄라고 그리스도인들은 이해한다). 대부분의 피조물은 진화를 통해 이 규칙을 지킨다.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접기
P.74
한편으로는 사랑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또한 하느님은 한없는 자기 나누심을 통해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기뻐하면서도 믿을 수 없어 한다. 마찬가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비교적 단순하고 직설적인 명령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즉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기본적 원리는 하느님의 자기 비움에 대한 응답으로서 자기를 내려놓는 것(the displacement of the self)임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전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P.147
테오시스(deification), 또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일은, 우리가 기후비상사태의 도전에 직면해서 하느님의 능력을 받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런 주제가 “서방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귀에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인생의 목표나 구원을 보통 예수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가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처벌을 받아 죽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유롭게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방교회”의 관점은 여러 면에서 매우 다르다. 첫째로, 동방교회 신학에서는 구원에 두 단계가 있다. 케노시스(자기 비움)와 테오시스(하느님처럼 되는 것)이다. 서방교회의 관점은 보통 십자가와 속죄에서 끝난다. 테오시스는 인간의 참여와 관련된다.
접기
P.150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일을 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의 생명이 대항문화적으로 자기 비움인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 안의 하느님을 모방하기보다는 하느님 자신의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자기 비움의 삶이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자기를 비우는 사랑하기)를 알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도 얻는다.
P.177
15. 기후 위기의 어떤 결과들은 이미 최소한 수백 년 동안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바다 온도의 상승, 바다의 산성화와 산소의 감소 등이 그런 결과들입니다. 바닷물은 온도의 관성이 있어서 온도와 염도가 정상화되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리는데, 이런 온도와 염도의 변화는 많은 종자들의 생존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이 우리의 동무들이 아니라 우리의 희생자들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많은 징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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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Ellen T. Armour (Vanderbilt Divinity School): “샐리 맥페이그 교수는 또 하나의 놀라운 선물을 남겨주고 떠났다. 그는 비길 데 없고 명료하며 설득당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글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후비상사태가 우리의 지구와 그 모든 거주자들에게 끼치는 실존적 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과학과 신학은 하나의 공통적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모든 피조물이 그 삶과 죽음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의존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죽음은 모든 차원에서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며 또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기 비움의 사랑을 구현한다. 우리가 그의 권고를 따라서 생명의 순환 가운데 있는 우리의 위치를 끌어안고 사랑함으로써, 이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 번창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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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예수 그리스도와 기후비상사태 / 9
서론: 케노시스, 그리스도, 그리고 기후비상사태 / 17
1장. 예수와 하느님의 케노시스 이야기들 / 49
2장. 기후비상사태를 위한 포스트모던 통찰들 / 77
3장. 신과 인간의 관계적 존재론 / 91
4장. 친구 하느님과 세상의 친구들인 우리들 / 109
5장. 케노시스, 테오시스,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전개하는 그리스도교 신학 / 139
후기: 케노시스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성찰 / 165
부록 1: “하느님을 찬미하여라.”—프란치스코 교종 / 169
부록 2: “임박한 기후 파국과 인류의 마지막 혁명”—김준우 /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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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13~14
나는 그리스도교의 구원에 관한 견해들이 기후비상사태 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어떻게 공헌하는지 아니면 방해하는지 하는 문제를 철저히 검토하고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하는 방식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특히 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케노시스적 해석(kenotic interpretation)에 집중하고 싶다. 즉 당신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잃어야만 한다는 이상한 관계 말이다. 십자가의 길은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 생명을 넘겨줄 수 있는 전적인 자기 비움이다. 생명은 결코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이 죄라고 그리스도인들은 이해한다). 대부분의 피조물은 진화를 통해 이 규칙을 지킨다.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접기
P.74
한편으로는 사랑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또한 하느님은 한없는 자기 나누심을 통해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기뻐하면서도 믿을 수 없어 한다. 마찬가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비교적 단순하고 직설적인 명령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즉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기본적 원리는 하느님의 자기 비움에 대한 응답으로서 자기를 내려놓는 것(the displacement of the self)임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전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P.147
테오시스(deification), 또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일은, 우리가 기후비상사태의 도전에 직면해서 하느님의 능력을 받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런 주제가 “서방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귀에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인생의 목표나 구원을 보통 예수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가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처벌을 받아 죽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유롭게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방교회”의 관점은 여러 면에서 매우 다르다. 첫째로, 동방교회 신학에서는 구원에 두 단계가 있다. 케노시스(자기 비움)와 테오시스(하느님처럼 되는 것)이다. 서방교회의 관점은 보통 십자가와 속죄에서 끝난다. 테오시스는 인간의 참여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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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0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일을 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의 생명이 대항문화적으로 자기 비움인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 안의 하느님을 모방하기보다는 하느님 자신의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자기 비움의 삶이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자기를 비우는 사랑하기)를 알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도 얻는다.
P.177
15. 기후 위기의 어떤 결과들은 이미 최소한 수백 년 동안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바다 온도의 상승, 바다의 산성화와 산소의 감소 등이 그런 결과들입니다. 바닷물은 온도의 관성이 있어서 온도와 염도가 정상화되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리는데, 이런 온도와 염도의 변화는 많은 종자들의 생존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이 우리의 동무들이 아니라 우리의 희생자들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많은 징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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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Ellen T. Armour (Vanderbilt Divinity School): “샐리 맥페이그 교수는 또 하나의 놀라운 선물을 남겨주고 떠났다. 그는 비길 데 없고 명료하며 설득당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글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후비상사태가 우리의 지구와 그 모든 거주자들에게 끼치는 실존적 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과학과 신학은 하나의 공통적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모든 피조물이 그 삶과 죽음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의존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죽음은 모든 차원에서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며 또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기 비움의 사랑을 구현한다. 우리가 그의 권고를 따라서 생명의 순환 가운데 있는 우리의 위치를 끌어안고 사랑함으로써, 이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 번창하기를 기원한다.”
Miguel De La Torre (Iliff School of Theology): “샐리 맥페이그 교수님, 아, 거기 계시는군요! 그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의 말과 지혜는 사후에 발간된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다. 분노하는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죄인들의 잘못된 이야기를 넘어, 맥페이그 교수는 우리로 하여금 삼라만상과 신성과 더불어 관계의 춤을 추도록 초대하는데, 그것은 단지 인간만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우리의 지구를 위한 구원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자기 비움(kenosis)의 요청 속에서 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단죄하며 또한 우리가 점령한 지구를 단죄한다. 맥페이그 교수가 이 책에서 주는 통찰력 넘치는 도전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숙고하도록 요구한다.”
캐서린 켈러 (Drew University 구성신학 교수): “케노시스라는 고대의 상징을 엄정한 생태적 실천으로 되살려내는 책으로서, 우리의 숨을 멈추게 하는 동시에 숨을 쉬게 해주는 책이다. 포스트모던 관계주의와 자연과학과 협력하면서, 희생적 사랑이라는 난감한 가르침은 진화의 생명과 죽음의 순환과 한 점에서 모인다. 현재의 기후적 전환점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고 떠난 위대한 마지막 선물이다.”
James Schaefer (Marquette University): “맥페이그 교수가 신학 담론에 준 마지막 선물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다른 생명체들과 지구 시스템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기후 위기를 감소시키기 위해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박차를 가하게 한다. 개신교 신학을 상당 부분 지배했던 개인주의적이며 인간중심적이며 패권주의적 인간 이해를 대체하려는 맥페이그 교수의 은유적 노력을 완성시키면서, 그는 통렬한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자기 비움의 자기 희생이다. 우리의 욕망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들과 종자들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구의 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참다운 어른들’이 되며, 다른 피조물들을 친구들로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하는 궁극적인 친구인 하느님의 삶에 참여하게 된다.
이 책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맥페이그 교수가 화육(성육신) 교리를 통렬하게 해석하여, 삼라만상 전체를 포함시키고, 또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벗어나 ‘나는 관계를 맺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전향한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메시지와 함께 울리는데, 교종은 만물의 상호연결성, 자기중심적 태도로부터 생태적 책임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우리 공동의 집이 번성하도록 지역에서 행동할 것을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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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샐리 맥페이그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불타는 세상 속의 희망 그리스도>,<풍성한 생명>,<기후 변화와 신학의 재구성> … 총 21종 (모두보기)
밴더빌트대학교와 밴쿠버신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미국의 생태여성신학을 이끌었던 대표적 신학자였다. 리처드 니버와 고든 카우프만의 영향을 받은 그는 가부장적이며 절대군주적이며 전능한 하느님은 생태 위기와 핵 위협 시대에는 적실성을 상실했다고 보고, 하느님을 부모, 연인, 친구로 이해하고, 세계를 “하느님의 몸”으로 제시했다. WCC의 기후 위기 대응 신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옮긴이: 김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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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소비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인류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경고>,<기후붕괴의 현실과 전망 그리고 대책> … 총 74종 (모두보기)
서강대, 감신대, SMU, Drew에서 공부했으며, 2016년에 생태문명연구소를 설립했다.
<생태계의 위기와 기독교의 대응>(2000)을 편집했으며,
<기후재앙에 대한 마지막 경고>(2010), <기후붕괴의 현실과 전망, 그리고 대책: 지구의 현실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과학적 예언자들>(2012)을 발표했다.
샐리 맥페이그의 <기후변화의 신학의 재구성>을 비롯해서 30권 이상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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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왜 맥페이그 교수는 이 책을 탈고하기 전에는 숨을 거둘 수 없었는가?
왜 현재의 평균기온 상승 속도가 과거 대멸종 시대들보다 훨씬 빠른가?
왜 식료품과 에너지의 가격 상승은 초국적 자본의 탐욕인플레이션인가?
왜 서유럽 대다수 국가들에서도 극우 포퓰리스트가 권력을 장악했는가?
왜 유엔환경계획의 <격차 보고서>는 20년 후 인류 운명을 보여주는가?
왜 산유국들은 탄소배출 절반 감축은커녕 두 배 늘려 생산할 계획인가?
왜 2050년까지 격차가 매년 200억 톤씩 나는데 대중매체가 잠잠한가?
왜 1.5도 방어 댐이 붕괴되듯이, 2도 방어 댐도 붕괴될 것이 확실한가?
왜 2도 방어 댐이 붕괴하면, 사회와 문명의 붕괴가 불가피하게 되는가?
왜 20년 후에는 동시다발적 식량 폭동과 사회적 붕괴가 발생할 것인가?
왜 전쟁과 학살의 시대는 생명 외경에 근거한 평화의 꿈을 요청하는가?
왜 99%는 1%의 자본가들이 장악한 금권정치를 전복시키지 못하는가?
왜 프란치스코 교종은 기후위기 논의에 반발하는 신자들을 비판하는가?
왜 교종은 섭씨 2도를 넘어 3도 상승의 사회경제적 재앙을 우려하는가?
왜 교종은 기후 당사국 총회의 비효율성과 정신분산전략을 비판하는가?
왜 생태계를 파괴하는 시장 자본주의를 돌파할 희망이 “자기 비움”인가?
왜 자아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는 기쁨의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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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왜 맥페이그 교수는 이 책을 탈고하기 전에는 숨을 거둘 수 없었는가?
왜 현재의 평균기온 상승 속도가 과거 대멸종 시대들보다 훨씬 빠른가?
왜 식료품과 에너지의 가격 상승은 초국적 자본의 탐욕인플레이션인가?
왜 서유럽 대다수 국가들에서도 극우 포퓰리스트가 권력을 장악했는가?
왜 유엔환경계획의 <격차 보고서>는 20년 후 인류 운명을 보여주는가?
왜 산유국들은 탄소배출 절반 감축은커녕 두 배 늘려 생산할 계획인가?
왜 2050년까지 격차가 매년 200억 톤씩 나는데 대중매체가 잠잠한가?
왜 1.5도 방어 댐이 붕괴되듯이, 2도 방어 댐도 붕괴될 것이 확실한가?
왜 2도 방어 댐이 붕괴하면, 사회와 문명의 붕괴가 불가피하게 되는가?
왜 20년 후에는 동시다발적 식량 폭동과 사회적 붕괴가 발생할 것인가?
왜 전쟁과 학살의 시대는 생명 외경에 근거한 평화의 꿈을 요청하는가?
왜 99%는 1%의 자본가들이 장악한 금권정치를 전복시키지 못하는가?
왜 프란치스코 교종은 기후위기 논의에 반발하는 신자들을 비판하는가?
왜 교종은 섭씨 2도를 넘어 3도 상승의 사회경제적 재앙을 우려하는가?
왜 교종은 기후 당사국 총회의 비효율성과 정신분산전략을 비판하는가?
왜 생태계를 파괴하는 시장 자본주의를 돌파할 희망이 “자기 비움”인가?
왜 자아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는 기쁨의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