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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 개방 3000, 뜬구름 잡기” 비판적 견해 다수
등록 :2008-02-12 20:58수정 :2008-02-12 23:03
지난해 5월11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군사회담장 안에서 남쪽 군인들의 브리핑을 듣는 동안 북쪽 군인들이 회담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파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새정부 대북정책 전망·평가
<한겨레>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공동으로 2005, 2006, 2007년에 이어 올해 네 번째로 남북관계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신년 한반도정세를 전망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조사시점을 예년의 12월 초순에서 연기해 1월 중순으로 잡았다. 대선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2008년에도 변함없이 북한 핵은 한반도 최대의 현안이 될 것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은 시지프스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북핵은 시지프스의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지 못한 채 다시 내려오려 하고 있다. 2007년을 돌아보면 2006년 10월9일 북핵 실험 뒤 6자회담이 재개됐지만 누구도 2·13합의와 10·3 불능화 합의 그리고 그런 배경 속에서 10·4 남북정상선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올해도 그런 역동성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새해 벽두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과거와 달리 올해는 신년 전망에 그치지 않고 노무현 정부의 대북 외교안보정책을 평가하고 곧 출범하게 될 이명박 정부에 새로운 정책제안들을 내놓는 의미도 있다. 올해의 경우 설문대상으로 삼은 전문가 80여명 가운데 32명이 답을 보내왔다.
새정부 대북정책 전망·평가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매우 낮은 점수를 줬다.
‘긍정적’ ‘당분간 지켜보자’는 입장을 밝힌 8명을 뺀 나머지 24명은 ‘철학의 부재’ ‘현실성 결여’ ‘무지 소치’ 등 매섭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전문가들도 취임 뒤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아직 전반적 평가를 내릴 만한 내용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로 남북관계가 대미종속으로 전락했다”며 “현재 남북간 불균형이 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비대칭의 상호주의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남북관계 국정과제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은 없고 핵정책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북정책이 외교안보정책의 하위범주로 자리매김됐다”며 “한-미동맹, 북핵, 평화체제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한다면, 전형적으로 힘과 동맹이란 안보패러다임에 입각한 외교안보정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대다수 ‘낮은 점수’
“비대칭 상호주의 비현실적”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주장’과 ‘구호’만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정치적 입장을 앞세운 구호와 주장으로 남북관계를 대할 경우 목표는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긴장과 대결만 확대재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실용주의 노선은 대북 정책의 패러다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외교정책 일반의 접근법”이라며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북핵폐기를 위한 독자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대북정책의 실용성은 그 자체로 구체성을 가진 정책으로 연결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장·구호로 일관할 경우 “긴장·대결 재생산” 지적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전이나 구체성 및 체계성 면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사회 분야 정책에 비해서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정책이 떨어진다”며 “외교안보 분야에서 통일문제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자리잡고, 종합적인 국가대전략의 바탕 위에서 세부 분야별 전략과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실용주의 대북정책이 남북경협과 국제지원을 통한 북한 경제 재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포용정책의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한반도적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이며 설득력이 있고, 국제적이며 특히, 한미공조를 감안한 대북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으로 평가했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는 실용주의 노선이 지금까지 북한 관련 정책담론을 지배해 온 경직된 이념대결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실용을 내건 이명박 정부는 선핵 폐기, 동맹 중시를 강조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현 기조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국정과제인 ‘비핵 개방 3000’에 대해서는 ‘말의 성찬’ ‘자승자박’ ‘뜬 구름 잡는 계획’이란 날선 지적이 쏟아졌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북한 주민 1인당 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준다고 하지만 비핵 ‘이전’에 대한 정책이 결여됐고 특히 북핵 교착 상태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어느 수준에서 ‘비핵’과 ‘개방’이 달성되었다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나갈 수도 있고, 5년 동안 조건만 탓하다가 남북관계에서 아무 일도 못하고 끝날 수도 있는 자승자박의 구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공조속 유연한 대응땐 비핵·경제 재건 가능 의견도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 구상이 성공하려면) 새 정부는 북한이 핵 신고로 나가지 않는 것이 단지 북한만의 책임이 아니라 미국의 동시행동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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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평가를 찾자면 “대북정책 비전 제시”(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비핵과 개방에 엄격한 시간차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실현가능성이 있다”(김명섭 연세대 교수) 정도다. 하지만 이들 전문가들도 비핵화 과정의 구체적이고 순차적인 정책 로드맵 개발을 주문했다.
한편,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 실장은 2007정상선언 이행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에게 ‘총론 계승, 각론 혁신’ 방법을 제안했다. 2007정상선언의 합의문을 원칙적으로 계승한다고 공식 발표하되, 비핵·개방·3000구상에 맞게 재조정, 재편성하자는 것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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