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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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 | 김조년 ,부인(이종희)-서신
작성자 바보새 1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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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 ,부인(이종희)-서신
 
 
믿음이 모든 고난과 시험을
 
이종희님께.
뜻밖에 편지 고맙게 받았습니다. 거기 가신 줄 알지도 못했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계실 것이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수고 많을 줄 압니다.
여기는 장마가 아직 걷히지 않았습니다. 두세 번을 오락가락하는 동안에 여름이 다 갔습니다. 오늘 햇빛 보니 참 반갑습니다.
나라 형편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언제나 평안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일 하며 살 수 있을지? 믿음으로 참아야겠지요. 믿음이 모든 고난과 시험을 이기지요.
독일은 좋은 것을 가진 나라입니다. 물론 현대문명으로 인해 오는 잘못된 것이 많겠지만 그래도 좋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많이 배우십시오. 그럼 이만 씁니다.
1975년 7월 30일, 함석헌

 
명동(明洞)이 아니라 암동(暗洞)
 
이종희님께.
축하카드 고맙게 받았습니다. 멀리 떠나 계신데 한번 위로의 말도 못 보내어 미안한 마음만 많고, 이 일년을 재판받노랍시고 왔다갔다하는 동안에 다 보냈는데 축복의 말씀 받으니 새삼 더 감사를 느낍니다.
나라는 가마솥같이 부글부글 끓는 동안에 한 해가 다 갔습니다. 서울 길거리는 상상도 못하실거요. 사람이 얼마나 혼잡한지. 서서 빠져나갈 수가 없고, 버스마다 성냥곽 속 같아 하루에도 차사고가 몇 번인지. 아침마다 신문에 살인사건 빠지는 날 거의 없고 부정사건 이야기 없는 날 없습니다.
그런 속에서 나는 한 주일에 두 번은 명동을 가요. 명동(明洞)이 아니라 암동(暗洞)이지. 아주 그 복판, 가톨릭 여학생회관에서 주일 오후마다 성경모임을 하고, 화요일 밤에는 노자 강의를 하니 익살이지요.
3월 1일 민주구국선언을 했다 해서 재판을 받는데 나 외에 6인은 불구속으로, 그리고 11명은 이날까지 감옥에 있는데 여기서보다 거기서 더 잘 알겠지요. 그런데 어젯밤까지 그 재판이 다 되고 오는 29일 오후에 선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8명이 다 건강하고, 하나도 낙심 하지도 않고 서로 기쁜 얼굴로 만나고 했으니 놀라운 일이지요.
김선생이 책을 만들어 보내주어서 받았을 뿐 고맙단 말도 못했어요.
아무리 나빠도 제 나라지, 멀리 떠나서 외롭지요. 그래도 믿음과 희망으로 분투하시기 바랍니다.
1976년 12월 21일, 함석헌

어느 구석에 새 씨알이
 
김조년님에게.
오랜 만에 글월 받아 반갑소. 공부할 데가 작정됐다 하니 좋소. 무엇이나 작정하거든 그 담은 거기 전력하는 것이지. 또 다른 것을 좌고우면(左顧右眄)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니, 남이 나를 뭐라 하나 그런 걱정 말고 정진하시오. 본국 문제도 어느 의미로는 잊어버리는 것이 좋소. 생각한다 해서 무엇이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오. 우리는 물론 지난 역사 의 까닭이 있어서 되는 일이지만, 너무 지나치게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많아서 걱정이오. 그보다도 더 깊이 말한다면, 근본에서 이기주의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지요. 열심으로 투쟁을 한다는 사람도 아직 자아를 버리지 못했으니 가다가는 분열이 아니 생길 수 없지. 열심으로 공부해서 박사 됐다는 사람도 속에는 ‘나’밖에 있는 것이 없으니 의리고 보람이고 공도(公道)고 아무것도 없소.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사람들이 못쓰게 만들고 있소. 말하자면 모든 말재주와 기술이 다 악에 협조를 하고 있다는 말이오. 그 사람들이 차라리 깊이 인간을 파들어가는 공부를 했더라면, 차라리 전문공부 없이 씨대로 있었더라면 사회가 이렇게 썩지는 않았을 것이오.
문제는 우리만이 아니오. 문명 전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니 인류가 깊이 반성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우리 나라도 근본문제는 인구과다에 있소. 거리를 걸어나갈 수가 없으니 인간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이론으로는 가급적 문명을 발달시켜서 여가를 많이 얻어 정신적 향상을 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반대로 되어 이제 제가 만든 기계를 제가 통제할 수가 없어졌으니 망하는 수밖에 없고 망해야 할 것이오. 지난번 비행기 납치사건을 보고 놀랐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란다니 무섭지 않소? 그것이 역사의 자기 비판 아닐까? 이성이 어디 있어요? 인류학은 과거에도 몇 갈래의 인류가 있었다가 멸망한 것을 말하는데 이 인류라고 아니 망해요? 자기네는 과학으로 죽음을 정복한다는 데 그 과학 자체가 전체적인 죽음을 초래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러나 그래도 믿어야지. 이 인류는 망해도 생명은 아니 망할 것으로. 이 생명만이 생명이 아닐 것을, 과거에도 그랬듯이 전체가 악으로 썩는 동안 어느 구석에 새 씨이 준비될 것을 믿어야지요? 말을 다할 수 없지. 잡지는 보내겠소.
1977년 2월 4일
 
 
모든 것을 아는 자리
 
편지 고맙게 받은 지 여러 날 됐는데 쉬이 회답 못 드려 궁금했을 줄 압니다. 한마디로 잘 있습니다. 지금은 토요일 밤이고 내일이면 주일입니다. 사람은 저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지만 목적은 그 알 수 없는 근본 되시는 이처럼 모든 것을 아는 자리에 가잔 것입니다. 이 시간이나, 또 내일 내가 어떠할 것은 생각도 하고 어느 정도 알 수도 있지만 남인 다음엔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 마음과 혼의 상태를 알 수 없군요. 그래서 편지라도 해보지만 그것으로도 참 저쪽을 알기는 어렵고, 나를 알릴 수도 없고, 또 죽음이라는 하나의 경계선을 넘으면 더욱 알 수 없지요. 같은 사건으로 인해 아직 감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만 내가 어찌 그들 마음속을 같이 느낄 수 있소?
옛날 어떤 선사는 온 우주가 한 큰 감옥이어서 모든 생령들이 거기서 신산한 고초를 겪고 있다(三界悠悠一囹圄 覊鎻生靈受酸楚)고 했어요. 그렇게 보면 다 같이 감옥살이고, 그래 서로 동정해야 할 것인데, 다 저라는 감옥을 또 만들어가지고 그 속에만 있으려기 때문에 서로 몰라요. 서로 알게 되는 날 감옥은 이미 감옥이 아니고 천국인데.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달린 죄수처럼.
그동안도 또 반항을 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또 새로 감옥에 갔고, 그런데도 감옥 문이 열릴 기미는 뵈지 않고. 이렇기 때문에 인생과 역사를 좀 내다보자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각별히 기쁜 것도 각별히 슬픈 것도 없어요. 그러니 각별히 내 편이랄 사람도, 원수랄 사람도 없어요. 안박사도 그래 그런지 어제 금요 저녁기도회에서, 사람은 분노할 줄도 알아야지만, 그보다 서로 고통을 지는 ‘너’를 측은히 여길 줄을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사마리아사람 이야기를 읽고 한 설교요. 장자가 놀라운 사람이오. 전국시대에 나라 한답시고 사람을 마구 죽이는 꼴을 보다 못해 그랬을 거지만, 신인(神人)은 사람이 많이 오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 여럿이 와도 별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 가까이 아니하니 이롭게 해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심히 친한 것도 없고 심히 싫어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눈으로 눈을 보고 귀로 귀를 듣고 마음으로 마음에 돌아간다 그랬어요. 눈, 귀, 마음으로 한다는 것은 자기가 없이 한다는 말 이오. 세상을 망치는 것은 나요. 그럼 잘 있어요, 그 한마디면 됐지.
1977년 5월 14일, 바보새
서로 저쪽 마음이 돼보자.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
 
김조년 부인님께.
크리스마스 카드 고맙게 받고 내 주의대로 카드는 안 보내더라도 회답은 보내야겠다 하면서 못 쓰고 있는데 글월 다시 받아 더욱 감사합니다. 나는 아주 잘 있고, 우리족(뿌리族)들 다 잘 있습니다. 혹 밖에서는 걱정할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아주 잘 있습니다. 나는 지난 1년은 몸도 참 건강했어요. 감기도 한번 안 들었고. 전에는 혹시 소화불량되는 일도 있었지만 지난 해는 그것도 없이 원기 참 넘쳤어요. 피곤기를 느껴본 일도 없고, 정보부에 갔을 때도 그들이 놀랄이만큼 잘 잤습니다. 집이나 마찬가지로 누우면 1,2분내에 잠들지요. 마음이 평안한 탓이지요. 왜? 잘못이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서야 전신을 눈물로 녹여 울어도 부족할 나지만 이 세상의 권세자들 앞에는 조금도 잘못이 없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역시 의를 위해 싸운다는 자신 때문에 그리 했을 것입니다.
나는 칠십이 넘도록 그전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기도했고 더 간절한 마음으로 했으며 하나님을 가까이 느꼈습니다. 그래 밥이 맛이 있지 않을 리 없고, 무슨 일을 당해도 겁이 나지 않지요. 큰소리는 해서 못쓰는 법이지만, 정말 죽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도 멀었지. 베드로가 추태를 부렸는데 나 같은 것이 장담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내 맘성은 그렇습니다.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티끌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그런 심정에 가면 죽음이 결코 싫지 않습니다. 이 노래를 읊을 때마다 눈물을 아니 닦을 수 없어. 지금도 흐린 눈으로 이 글을 씁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어 ? 저 악이지! 악을 미워하지 않기를 처음으로 조금 깊이 배웠어요. 악이 와서 내 영혼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가 싹이 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어리석은 것이 사람을 (반드시 내가 아니라) 잘못 알아보고 공연히 턱도 없이 건드리니 내 속에 내 영혼을 지켜주는 하나님의 사자가 죽은 척하고 있을 리가 없지요. 천사가 옥 속에서 자고 있는 베드로를 발로 차 일으켰다는 것이 결코 헛소리가 아닙니다. 내가 바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람인 나야 하잘것없지만 그래도 나도 믿노라고 고백했으니, 나를 버릴 수 있어요? 깨워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올렸고, 그러니까 눈을 뜨고 머리를 들었고, 그러니까 의의 하나님이 태양같이 빛났고, 그러니까 용기가 났지요. 그것이 다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덕택입니다. 숫돌이 있은 것은 칼을 날서게 하기 위해서요, 세상에 악인이 있는 것은 의인을 다듬어 의를 완성시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글 속에 이러다가는 이 인류가 망하고 말 것 같다는 말 했는데 나도 벌써부터 같은 생각 하고 있습니다. 이러고서 아니 망할 수 있어요? 제 한 짓 때문에 스스로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망한다는 것은 생명의 씨가 망한단 말은 아닙니다. 인류는 제 죄로 스스로 멸망 속에 들어가도(멸망해야 합니다) 그래도 생명은 살아 한층 더 올라갈 것입니다. 지금 인류도 처음 있는 것이 아니고 몇 차례 전에 있던 인류가 망하고 나온 것입니다. 망할 것들이 제 잘못으로 망하면 그 속에 있던 영원한 생명의 씨에서 시련을 겪은 높은 성격으로 새 인류가 나옵니다. 과거도 그런 것같이 미래도 그럴 것입니다. 어리석은 천당패들은 그것은 모르고 천당 가면 부모형제 처자다 만난다지만, 그런 것 없습니다. 한층 더 자란 새 생명의 바다가 있을 뿐이고 거기 하나님의 바람이 붐에 따라 억만 영혼이 일어날 것입니다.
속에 가진 동산을 잘 가꾸시기 바랍니다.
1978년 2월 1일 밤, 늙은 바보새
 
 
주의(主義)의 희생물
 
편지 받은 지도 벌써 여러 날 됩니다. 두 분이 다 잘 계신지요? 여기 금년은 날씨가 대체로 불순한 편입니다. 요새도 여러 날 비가 와서 좀 지루한 생각도 있습니다.
지난번 편지는 참 고마웠습니다. 같은 생각을 나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 편지를 잡지에 독자 통신으로 내기로 했는데 아마 다음 호에나 나갈 것입니다. 싸움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게 벌써부터의 나의 느낌인데 싸우는 이들의 대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문제지요. 정치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의견에 취해 살고 있어요. 현실에 치중할수록 깊은 성찰을 못하나봐요. 역사가 되어가는 대세를 보면 우리야말로 먼 앞을 보고 사상적으로 앞서야겠는데 언제나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이 맘에 들지 않는이만큼 어서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데만 마음이 급해서 감정적으로 독주하는 일이 많지, 문제를 깊이 보려 하지 않 습니다. 예를 든다면 얼마 전에 YMCA의 강좌에서 청해서「우리 역사 속의 민족관」이라는 제목으로 말을 하면서 내가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말을 했더니 싸움의 열성분자인 청년층에서 상당히 비판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만큼 섭섭합니다. 그날 저녁 또 한 말이지만 왜 청년 학도가 나보다도 사상적으로 뒤졌느냔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주의의 희생물인데. 이제 그것을 경쟁해 이기겠다는 생각뿐이지, 참 이기는 것은 그것을 따라 넘는 데 있는 것 아니라 역사의 앞을 내다보아 그것을 지양하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을 모릅니다. 물론 이것은 현집권자들이 너무 지나치게 하기 때문에 나오는 반동에서 오는 것이지만. 민주주의를 참으로 지키려는 사람은 그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더 분명히 말한다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므로 이제 새로운 정치철학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나는 국가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날까지 강대국의 국가지상주의의 희생이 되어 이 지경에 빠진 우리인데, 젊은이들도 어서 우리도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범위를 넘지 못하고 있으니 섭섭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런 것만은 아니고 반대되는 면도 있습니다. 지난달 호의 나의 노자, 장자 강의에 대한 광고를 했더니 어젯밤 새 학기 처음으로 모였는데 100명도 더 와서 놀랐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것은 나쁜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라날 때 30이 넘어도 노자, 장자 소개해주는 사람 하나도 없던 데 비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나는 내일은 광주 가서 하루 저녁 말을 하고, 모래 주일 아침에는 부산을 향해 떠나서 오후 세시 장기려(張起呂) 박사가 주장하시는 부산모임에 가서 한 100명 될까 하는데, 성경 강론을 하고 저녁에는 가톨릭이 수녀들이 경영하는 여학생 기숙사에 가서 또 수양강화를 하고, 월요인 새벽 다시 광주로 가서 낮에 강진교회 사람을 만나 강진읍으로 가서 그날밤부터 13일 아침까지 3,4 차 설교를 하고 오게 될 것입니다.
『씨알의 소리』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자니 답답한 일이 많지만 그래도 근래는 찾는 사람이 차츰 늘어갑니다. 시원한 날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정말 믿는 사람에게는 “때가 장차 오지만, 지금도 그때”라는 말이 옳은 것입니다.
그럼 공부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1978년 9월 8일

잡지에도 어려움 많습니다
 
보내준 150마르크 받았습니다. 사무실에 넘겨주겠습니다.
부인도 아기도 다 건강하게들 있는지? 그동안 나에 대해서는 너무 놀라운 풍설이 돌아서 세계 각지의 고마운 마음들에게 걱정을 많이 끼쳐 할 말이 없습니다. 보안사령부에 갔다가 16일 만에 나왔으나 아무런 고통 없이 잘 있다가 나왔습니다. 기소는 되어 오는 15일부터 재판이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고생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시국이 어떻게 되려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믿고 살아야지요.
잡지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검열이 아주 까다롭습니다. 12월호가 이제야 겨우 인쇄되어 어제 발송하려 했는데 갑자기 계엄에서 다시 문제되는 것이 있다 해서 고쳐야 하게 됐습니다. 며칠 더 있어야지요.
여러분께 안부 전해주시고 나라 일이 순탄치 못하니 밖에 계신 분들도 잊지 말고 기도하고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해주십시오. 그저 답답만 해서 글 쓸 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기고 할 의무를 다해야지요.
다하지 못한 말 마음으로 헤아리시기 바라며 이만 씁니다.
1980년 1월 10일

 
세계권력쟁탈전의 악조건
12월 1일에 쓰신 편지가 1월 27일에야 왔습니다. 지금은 벌써 이사하셨을 줄 압니다. 부인도 아기도 평안하신지?
여기 형편은 아무리 자세히 한다 해도 짐작도 하시기 어려울 것이고 또 밖에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도리어 이 사회는 너무도 잘 살기나 하는 듯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기가 막힙니다. 나는 우리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 하고 지금도 그 고난 속에 빠져 있으며, 그 구경의 의미는 민족의 마음이 한층 더 깊어지고 높아지며, 그 지옥 속에서 탈출하자는 자각과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데 있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형편없는 민족인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과거의 치욕의, 죄악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을까요? 나는 요새는 아무것도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사회가 이런데다가 지난 12월 6일 새벽 목욕가다가 얼음길을 헛딛고 넘어져서 가슴과 척추를 상해 한 달도 더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났지만 아직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자주자주 누워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잘 아시겠지요?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간신히 풀뿌리를 휘어잡고 낭떠러지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에게 자꾸자꾸 불리한 사건만 일어나고 해치려는 맹수, 독충만 달려들 듯이, 세계권력 쟁탈전의 악조건이 우리를 점점 더 불리하게만 만듭니다. 우리가 원커나 말거나 어쩔 수 없이 세계 인류의 문명의 죄악을 우리가 담당하여야 하도록 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찍부터 “우로 돌아 앞으롯”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민족은 그와 반대의 길로만, 이 망할 운명의 문명의 잔재를 주워먹기에만 급급해 있으면서 그것을 영광이나 되는 양 떠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폴란드 전람회 구경했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 폴란드가 부럽습니다. 그들은 깨어 있지 않아요?
「예수전」잘 읽었습니다. 더 깊이 체험을 쌓도록 힘쓰지요. 어쩌면(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의무를 다해서 이 망하는 다수의 문명에서 장차 올 새 시대의 종자나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아니 될지도 모릅니다. 예수를 더 깊이 재체험하고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좁은 문, 험한 길이지요. 여러분께 문안해주시오.
우리나라 종교는 꼭 일제 말년 상태를 되풀이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말을 다 못합니다.
1981년 1월 30일
 
 
말씀의 가뭄
 
생일 축하카드 고맙게 받았습니다.
기쁜 소식 하나 드리지요. 지난 9일 대전 있는 유영소라는 목사가 자기 교회에 와서 3.1절 기념강연을 해달라 해서 그전 날 8일 주일이 부산 가는 차례여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거기 들러 강연을 하고 서의필 목사님 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며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서목사는 며칠 전에도 한번 내집을 찾아왔었고, 이번 강연 1주 전에도 들러주셨는네 이번에 정말 그 댁 손님 노릇을 하고 왔습니다. 조년씨 이야기도 하셨고, 한국 형편을 위해 정말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세계는 이렇게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가 되는 길을 내놓고는 다른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은, 기독인까지도, 그중에서 특히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사람들까지도 그러한 내다봄은 없는 듯하니 한심합니다.
나는 지난 해 12월 6일 넘어져서 허리와 가슴에 충격을 받은 것이 아직도 잘 낫지 않아 일을 활발히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 한 달은 완전히 누워 있었고, 다음 한 달은 조금씩 기동을 했고, 지금은 여기저기 다니기는 하나 아직도 장시간 있으면 가슴과 허리가 결립니다. 생일날은 안박사, 김동길, 김용준 박사 등이 기념모임 운운하는 것을 내가 다 반대하고 그냥 지냈는데, 그대신 오는 28일 기념강연을 하기로 해서 안 박사가 사회, 김동길 박사가 말씀을 하고, 김용준 박사는 내 약력을 말하고 나중에 내가 인사말을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듣고 싶어하나 말을 할 수가 없지요. 구약의 말대로 말씀의 가뭄입니다. 싸 우는 것은 반드시 소동을 일으키거나 흥분시키는 말을 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오. 그렇지 않고도 폭력보다도, 욕지거리보다도 더 힘있는 정신을 깨워 일으킴으로써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가 됐습니다. 우리는 내편도 다 가르쳐야 합니다. 정말로는 내 편, 네 편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석 달 이상을 누워 있으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공부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 깊이 하십시오. 있다가 썩고 불탈, 지나간 문명의 말이 아니라 새로 올 세계 구원의 공부 말입니다. 나는 독일어를 모르니 철학ㆍ신학의 독일이 앞을 내다보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이 잘못된 문명이 종시 회개를 못하고 자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중에서 새 창조의 씨가 나와야겠는데, 글쎄요! 그럼 안녕.
1981년 3월 21일
 
서신 1975.7.30-1981.3.21
저작집30; 22-195
전집20; 18-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