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알라딘: 동물신학의 탐구

알라딘: 동물신학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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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신학의 탐구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
앤드류 린지 (지은이), 장윤재 (옮긴이) 대장간 2014-10-15


7
100자평 0편
리뷰 2편
세일즈포인트 462
240쪽



책소개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살지만, 인간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우리들의“동료 피조물”인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해방을 다룬다. 저자는 동물이 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피상 적인 판단과는 달리, 기독교 전통이 동물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원천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은 기독교의 경험에 있어서 가장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곁에서‘같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자신의 정당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그는 결론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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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역자 서문
저자 서문
제1장 _ 종교 그리고 동물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제2장 _ 동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학
제3장 _ 동물권과 동물신학
제4장 _ 생태신학과 동물신학의 갈등
제5장 _ 동물신학에 대한 논쟁에 답하다
제6장 _ 예수와 동물 - 한 다른 관점
제7장 _ 초기 중국 기독교에서의 동물과 채식주의
제8장 _ 동물을 위한 예배를 드리는 것에 관하여
제9장 _ 요약 : 동물을 위한 예언자적 교회를 향하여
부록1 _ 사냥에 관해 주교님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부록2 _ 동물 및 종교관련 주요도서
부록3 _ 한국에 소개된 동물보호 및 채식 관련 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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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앤드류 린지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동물신학의 탐구> … 총 1종 (모두보기)
동물과 기독교 문제에 관해 광범위하게 글을 써 거의 200편의 논문과『기독교와 동물의 권리』Christianity and the Rights of Animals및『동물신학』Animal Theology과 같은 명작을 저술하였다.

영국과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 강연했으며,‘옥스포드 동물윤리센터’Oxford Centre for Animal Ethics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특별히 하나님께서 지으신 지각이 있는sentient 피조물들의 권리와 복지와 관련된 창조신학의 분야에서 독창적이고도 많은 개척자적 연구”를 수행한 공로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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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장윤재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코로나19와 한국교회의 회심>,<포스트휴먼 신학>,<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 … 총 8종 (모두보기)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로 조직신학을 가르치며 전통적 기독교 교리와 현대 세계와의 소통을 위한 연구에 힘쓰고 있다.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신학과 과학, 신학과 예술(미학), 신학과 경제, 신학과 생태, 신학과 여성, 그리고 에큐메니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총 2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저서로는『세계화 시대의 기독교 신학』,『신자유주의시대, 평화와 생명 선교』등이 있으며, 역서로는『켈트 그리스도 : 창조세계의 치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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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
동물 신학의 탐구

이 책은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살지만, 인간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우리들의“동료 피조물”인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해방을 다룬다.

“나는 네가 왜 이 문제에 시간을 모두 허비하는지 모르겠어. 맙소사, 그것들은 단지 동물일 뿐이야!”이 말은 앤드류 린지가 1970년대에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그의 동료 학생 중 하나가 그에게 던진 말이다. 지금은 목사이자 박사가 된 앤드류 린지는 이후 동물은 단지 무언가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중요한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존재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저자는 동물이 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피상 적인 판단과는 달리, 기독교 전통이 동물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원천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은 기독교의 경험에 있어서 가장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곁에서‘같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자신의 정당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그는 결론 내린다.

동물보호운동은 약하고 무구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존재들을 위한 새로운 감수성의 발현이다. ~ 오랫동안 평화와 정의를 갈망해 온 한국인들이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체로 이 정의와 연민을 확장하기를 바란다.
<저자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

인간이여, 당신들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뽐내지 마십시오. 동물들은 죄를 짓지 않지만, 인간은 자신의 위대함을 가지고 땅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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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201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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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서양의 기독교사상이 어쩌다 인간우월주의에 빠졌는지 궁금했다. 성경은 동물을 진짜로 인간 마음대로 쓰라고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앤드류린지의 이 책은 오아시스같은 책이었다. 차별하는 관용이나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진정 하느님이나 예수님의 메시지대로 살고자 한다면 무비판적으로 기존의 성경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교회에서 노숙자나 길냥이를 내치며 심지어 방치해 죽게 하는 경우도 봤는데,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이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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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Jeon 202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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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신학을 공부할 때부터 주변인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 하나인 ‘맙소사, 그것들은 단지 동물일 뿐이야!”는 그가 동물 신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 몇 가지 대답을 한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을 옹호하는 ‘이성적’ 논거는 매우 튼튼하나, 왜 동물에 가하는 고통에 대해서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둘째는 기독교는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충분한 기반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노예, 여성 등에 관해서도). 이것은 현대까지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잘못 해석한 결과임을 잘 알고 있다. 셋째는 지극히 저자 개인적인 고민으로서, 지구 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하며, 동물은 어떻게 대우받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1장에서 저자는 종교와 동물보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물보호자들을 종교의 지지가 필요하고, 종교는 동물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보면 대부분 종교인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가 훨씬 강하게 들린다.




그러나 2장에서는 동물에 대한 신학을 다루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감정적인 문제로 여기고 등한시해왔지만, 생각보다 이성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물 문제는 윤리적, 신학적, 영적 도전들이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한다. 윤리적 문제는 동물들의 착취를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것이 대해서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성서의 모든 내용에서 동물에게 연민과 친절을 보이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은 있다. 신학적 도전들에서는 ‘신정론’에 관하여 획일적을 피조물의 한 종인 ‘인간’에게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현 신학을 비판한다.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 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계시겠는가?” 이것이 저자의 질문이다.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신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영적 도전들에서는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 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을 ‘다스린다’는 지배권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힘과 지배에 대해 성경은 정당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힘을 가지신 예수는 섬기는 분으로 오셨다. 인간이 힘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3장에서는 동물권에 대한 오해와 동물권에 대한 개념의 발전등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리고 동물권-신학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도하려고 한다.




4장에서는 생태신학과 동물신학의 차이를 설명한다. 저자는 그 차이에 대한 기준들을 몇 가지 제시한다. 죽임에 대한 윤리, 고통의 문제, 동물의 경영, 생태신학은 자연속에 자연스럽게? 있는 ‘포식 체계’를 창조주가 만든것이라고 본다. 생태신학은 자연 전체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 생각속에서 은연 중에 야생 동물을 살상하며, 정당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전체를 위해… 동물신학은 지금의 자연은 타락했고, 각각의 피조물은 지각있는 존재들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동물신학이 자연 전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물에게 해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5장은 구약, 신약, 조직신학의 분야의 교수들이 동물신학에 대해서 비평한 논쟁에 대해서 저자가 대답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도 그가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등장한다. 피조물에 대해서 가진 인식을 인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보면 동물에게도 모든 피조물들이 존중속에 있어야 한다는 ‘신적 권리(theos-rights)’가 있다는 동물권을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이 저자 주장의 핵심이다.




6장에서는 외경에서 예수와 동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을 선별하여 기독교인들이 동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문서들에는 동물들에 대한 예수의 모습은 지극히 윤리적이며, 동물들과 공존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강조된다.




8장은 초기 중국 기독교에 퍼져있었던 동물에 대한 관심과 채식주의를 다룬다. 저자의 생각에 초기 중국 기독교인들은 동물보호를 위한 윤리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본다.




9장은 과연 동물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능한가를 논한다. 이곳에서 그는 동물들을 위한 장례식을 진행했고, 그와 관련된 책을 쓰기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을 언급한다. 또한 책이 출판된 후에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놀랄만한 ‘동물의 구원’을 주장한다. 그가 생각한 구원이란, 동물들이 살면서 겪었던 불평등과 고통을 보상받는 차원의 구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10장에서는 교회는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제안한다. 첫째는 성서 안에서 모든 동물 친화적인 요소들을 끌어내는 ‘동물성서’다. 둘째는 동물이라는 대의에 목소리를 내는 ‘동물신학’이다. 셋째는 동물을 보살피고, 동물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동물목회’다. 마지막 넷째는 동물들의 생명을 경축하고, 인생의 반려자가 된 것에 감사하며, 그들의 고통이 경감되기를 기도하고,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예배 즉, ‘동물 의례’다.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질문들이 생각난다.




Q1. 2장에서 저자는 동물권이 성서에서 간단히 도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물보호에 대한 신학적 가치를 정립해 갈 때, 충돌될 수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6장에서도 동일한 언급이 있다. 기독교 사상이 동물에 대해 무관심 하거나 적대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문서들도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충돌이 생기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생략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Q2. 율법에 나와 있는 음식에 관한 법을 저자는 인간 중심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길까? 만약 창세기의 논지에 따라 ‘채식주의’가 중요하다면 율법을 어떻게 여겨야 할까?




Q3. 저자는 애완동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동물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아끼는 사람들의 행동은 창조주의 섭리에 맞는 것일까? 아니면 지극히 인간을 위해 애완동물이 이용되고 있다고 평가할까?




Q4. 예수께서 생선을 드시지 않았을까? 세례 요한도 메뚜기를 먹지 않았는가?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말을 빌려 개혁 운동의 세 단계(조롱하기, 토론하기, 받아들이기) 중에 동물 보호 운동이 토론하기의 단계에 와 있음을 좋은 징조로 여긴다. 나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에 대한 학대는 당연히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과 샬롬에는 모든 피조물의 회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동물신학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물론 애완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진행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목회자로서 고민한적이 정말 많다. 저자의 말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토론을 통해 나은 방향이 제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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