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4
교회, 교리의 무덤에 갇힌 기독교 :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교회, 교리의 무덤에 갇힌 기독교 :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예수는 위대한 인간인가? 신인가?
리차드 루벤슈타인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정병진(naz77) 기자
ⓒ2004 정병진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섣불리 설명하려 들지 마세요. 아무리 훌륭하게 설명한다고 해도 치우치기 마련이라 삐끗 잘못하면 이단으로 몰리기 쉽습니다!"
신학대에 다닐 때 교회사 시간에 들은 충고다. 이단으로 몰리면 어떻게 되느냐고? 세르베투스라는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삼위일체 교리는 엉터리다"라는 주장을 폈다. 과격한 젊은 신학자이던 그는 이런 자기 견해를 가지고 유명한 종교개혁자 칼뱅에게 논쟁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완고하고 잔인했던 칼뱅은 합리적 논쟁 대신 그를 이단자라며 화형에 처하는 것으로 응수해 주었을 뿐이다. 세르베투스 자신은 죽기까지 아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이단자로 낙인찍힌 그는 범죄자나 된 듯이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의해 처형되고 만 것이다.(1553)
불행하게도 이런 터무니없고 끔찍한 일들이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끊임없이 벌어졌다. 하나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놓고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단으로 정죄하고 추방하고 더 나아가 숱한 살육까지 서슴지 않았다. 사랑의 화신이신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이 벌인 일이라고 보기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른바 종교적 열광주의가 낳은 비극이 그리스도교의 교리논쟁 과정에서 거듭해서 나타났다. 그러니 무슨 진리 수호라는 미명 하에 도그마(교리)에 목숨 걸 것이 아니라 본래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교회는 왜 이다지도 쓸모없이 보이는 도그마 논쟁을 사력을 다해 벌여온 것일까? 박해받는 하층민들의 종교이던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에 이르러 제국의 종교로 탈바꿈하면서 교리논쟁이 격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예수의 정체성을 둘러싼 교리 논쟁 자체를 교회 지도자들이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헤게모니 다툼을 일삼은 것이라고만 단정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왜냐면 그 이전부터 이미 교회 내에서는 예수의 신적 지위에 관한 교리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사제들만이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말이다.
개종한 신자이던 콘스탄틴 황제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로 제국의 정신 통일을 이루기 원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불거진 아리우스 논쟁이 교회를 양대 진영으로 갈라놓는 엄청난 위기를 야기하는 것을 직시하고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 논쟁에 직접 개입하게 된다. 그가 소집한 최초의 에큐메니칼 회의인 니케야 공의회는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된 것이다.
예수는 위대한 인간인가? 신인가?
신학자 틸리히에 따르면 아리우스 논쟁의 핵심에는 구원문제가 깔려 있다.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가 피조물이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예수는 하나님에 가까운 위대한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심각한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있었다. 이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닮은 위대한 인간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동일본질(homoousios)인가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을 벌였다. 이에 대해 동방교회는 대체로 아리우스를 따랐고 서방교회는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는 편이었다.
이 책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는 아리우스 논쟁의 양상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처럼 실감나게 재구성해 보여주면서 이들의 논쟁이 결국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말해준다.
아리우스 논쟁은 아리우스의 주장이 니케아 공의회(325)에서 출발하여 제1차 콘스탄티노플 회의(381)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는 단편적인 사실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 논쟁이 끝났을 때 그리스도교는 삼위일체라는 신관의 확립으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넘으로써 유대교와 이슬람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잃어버렸다.
유대인인 저자가 이 논쟁에 깊은 관심을 갖고 파고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에 따르면 아리우스 논쟁이야말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또한 어디에서 나뉘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며, 폭력적인 분열상이 미래에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길을 암시해 줄 수 있다.
지금의 서방교회와 동방정교회는 니케아 신조를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니케아 신조는 사분오열한 교회일치를 이룰 수 있는 에큐메니칼 신조로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이 훌륭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니케아 신조를 비롯한 교회의 여러 신조들이 과연 어떠한 사회, 정치, 문화 배경과 역사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는지를 찬찬히 잘 헤아려 볼 일이다.
니케아파를 대표한 아타나시우스가 무려 다섯 차례나 걸쳐 유배와 복귀를 거듭한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니케아 신조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정치적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한때 아리우스파의 주장도 교회의 공식 교리인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절대불변의 교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교회는 과거로 회귀할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반성하고 오늘의 시대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신앙고백을 해야함을 이 한 권의 책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2004/05/14
ⓒ 2004 OhmyNews
정병진 기자는 현재 여수에서 솔샘교회(http://solsam.zio.to) 담임 교역자로 일하고 있으며, 교회 내에 어린이 전문 도서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