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4

장자에 매료된 유대인 사상가 마틴 부버 : 네이버 카페



장자에 매료된 유대인 사상가 마틴 부버 : 네이버 카페




장자에 매료된 유대인 사상가 마틴 부버 | 자유게시판


2019.04.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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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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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부버




-『나와 너』의 관계를 제시한 20세기 최고의 유대 사상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유대인 사상가 중 하나로 알려진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1878년 2월 3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다뉴브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살았지만 네 살 때 어머니가 가출함으로 어린 마틴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영토 갈리시아에 살던 할아버지 집으로 옮겨가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 솔로몬 부버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도 부유한 유대인 지도자들의 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미드라쉬Midrash라는 성경 주해 방식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던 유대교 학자이기도 했다. 어린 부버는 열 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히브리어 성경, 유대인 구전문학 등을 공부했다.




마틴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집안에서 금기사항이었다. 어린 마틴은 영문도 모른 채 오랫동안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여러 해가 지나서야 기다리기를 포기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어느 장교와 함께 러시아로 도망가 거기서 두 딸을 낳고 살고 있었다. 마틴이 서른네 살 때 어머니가 찾아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마틴 부버가 14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그때부터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폴란드 계의 김나지움에 다녔다. 유대 전통에서 떠나 칸트, 키르케고르, 니체 등을 읽었다. 18세가 되었을 때 비엔나 대학에 들어가1년 정도 머물다가 라이프치히, 취리히, 베를린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철학, 고전어, 독문학, 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베를린에 있을 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은 딜타이(1833~1911)와 짐멜(1858~1918)이었다. 20세경에는 베를린에서 시온주의Zionism 운동을 접하게 되었다. 시온주의란 창시자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1860~1904)의 제안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재건하자는 운동이었다. 부버의 경우 시온주의의 주요 과제는 유대인들의 정신적·사회적 성숙을 가져오도록 하는 것이라 본 데 반해 헤르츨은 그것을 철두철미한 국가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적 하나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밀고 나갈 뿐 종교나 문화의 필요성을 무시했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부버는 시온주의 운동과 결별하고, 자기의 학업을 계속하여 1904년 비엔나 대학에서 신비주의 사상가들인 야콥 붸메Jakob Boehme와 니콜라스 쿠자누스Nikolaus Cusanus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틴 부버가 시온주의 운동과 결별했지만 그 운동에 참가하므로 얻게 된 수확은 컸다. 무엇보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자기의 민족적 뿌리를 재인식하게 되고, 이에 따라 유대인 전통, 특히 하시디즘의 가르침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버는 학위를 받은 후 유대교의 신비주의 전통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목적으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하시디즘 연구에 몰두하면서 스스로도 신비주의 체험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그 이후 그는 근대 하시딤의 창시자 바알 셈 토브에 관한 재료를 모아 1908년 『바알 셈의 전설』 같은 책을 출판하는 등 유대교 신비주의에 관한 책을 내기 시작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1909년부터 마틴 부버가 중국 사상, 특히 도가道家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양 말로 된 『장자莊子』 번역서들을 참고하여 1910년 『장자의 이야기와 비유』라는 제목으로 『장자』의 상당 부분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자기 나름대로 풀이한 책을 펴냈다. 그 외에도 『도道의 가르침』(1910), 『중국의 귀신 및 사랑 이야기』(1911)라는 책도 출판하고, 출판은 되지 않았지만 노자 『도덕경』에 대한 강연 모음도 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부버가 도가 사상, 특히 『장자』를 접한 것이 후기 그의 사상의 핵심이 되는 ‘나와 너’라는 대화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 사실이다. 부버 전문가 허만Jonathan R. Herman에 의하면 부버에 있어서 『장자』는 “그의 ‘나와 너’라는 나비가 나오게 한 유충幼蟲”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1912년 이후 부버의 주관심은 신비주의 일변도에서 점차 ‘대화對話’ 쪽으로 넘어갔다. 점차 ‘상호성’이라든가 ‘만남’이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된 것이다. 개인적 황홀의 경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몰입보다 인간 상호간, 인간과 신, 나와 너와 같은 인격적 만남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려 한 셈이다. 1916년 대화에 관한 책을 내리라는 계획을 수립하고, 1919년 『나와 너 Ich und Du, I and Thou』라는 책의 초고가 나왔고, 이것이 퇴고를 거듭하여 1923년 완결판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와 너』는 짧은 책이지만 마틴 부버의 주저主著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그 이후의 책들은 어느 면에서 이 책에 나온 기본 사상들을 설명하고 보충해주는 주해서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버는 저술활동 외에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에서 유대인의 교사들, 청소년들, 성인들, 랍비들을 상대로 하는 교육에도 힘썼다. 1935년 나치로부터 공적활동 금지처분을 받고 1938년 가족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이민,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서 1951년 은퇴할 때까지 가르쳤다. 그 후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 다니며 강연과 대담 등으로 여생을 보내고, 80세가 지나 각각 철학과 성서와 하시디즘에 관한 그의 저술을 모아 세 권의 전집을 내었다. 그리고 1965년 87세로 타계했다.




앞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마틴 부버는 무엇보다 그의 책 『나와 너』를 통해 가장 많이 알려졌다. 이 책은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버에 의하면 관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나와 그것Ich und Es, I and It’이라는 독백monologue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너, Ich und Du, I and Thou’라고 하는 대화dialogue의 관계라는 것이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우리가 대하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그 이용 가치로 따져보는 관계이다. 일정 정도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사물을 그렇게 보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이런 식으로 그 사람이 나의 이기적 목적에 어떻게 부합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면서 대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든가, 사랑한다든가, 마음으로부터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 자신을 완전히 열어놓지 못하고 뭔가 움츠리고 감추려 한다면 삐걱거리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마틴 부버는 이런 관계를 청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나와 너’라고 하는 대화dialogue 관계에 들어가 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가면이나 체면치레나 가식이나 체하는 일 없이, 심지어는 말하지 않고도 진정으로 이해하고 서로 통하는 관계를 말한다. 독일어에는 ‘너’ 혹은 ‘당신’이라는 이인칭 대명사로 ‘Du’와 ‘Sie’가 있는데, Du는 친밀한 사람들끼리 쓰는 것이고, Sie는 공식적, 외교적인 관계에서 쓰이는 것이다.




부버가 ‘나와 너’라고 했을 때 그것은 물론 ‘Ich und Du’였다. 영어의 경우 ‘I and Thou’라 번역하기도 하지만, 현재 Thou라는 말은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번역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말로는‘나와 그대’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너’의 관계는 서로가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이해관계를 고려함이 없이, 순수한 두 존재가 그대로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유대관계에서는 서로서로 북돋아주고 서로서로 자라게 해주는 일이 가능해진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두 연인, 고양이와 그 주인, 기차에서 만난 두 사람 등이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나-너’의 관계가 한 번 성립되면 언제나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끊임없이 ‘나-너’의 관계에서 ‘나-그것’의 관계로 넘나든다. 또 의식적으로나 억지로 ‘나-너’의 관계를 이루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너’는 다시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결국 ‘나-그것’의 관계로 변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열어놓고 진정한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다리는 것뿐이다. ‘나-너’의 인격적 관계는 경험을 통해서만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부버에 의하면 ‘나-너’의 관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서도 가질 수 있는 관계라고 한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시가 모두 이런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매체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부버는 이런 관계를 신에게까지 적용한다. 부버에 있어서 신은 우리의 ‘영원한 그대’이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거나 신을 정의하려는 것은 신과 우리의 관계를 ‘나-그것’의 관계로 전락시키고 마는 일이다.




‘영원한 그대’에게 무조건 우리 스스로를 열어놓고 기다리면 그와 ‘나-너’의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이런 관계에 들어갈 때에는 말이 필요 없게 된다. 그야말로 언설을 넘어서는 경지라는 것이다. 신과 ‘나와 그대’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이나 자연이나 예술과의 ‘나-너’의 관계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부버에 의하면 경전은 ‘영원한 그대’인 신과 인격적 관계를 체험한 사람들의 기록으로서,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그 기록을 읽고 우리 스스로를 비움으로 그런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을 읽을 때 분석적으로 따지면서 읽으면 안 된다. 그렇게 읽는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하므로 참된 대화의 상대가 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부버에게 있어서 법이 정해주었기 때문에 그대로 행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내가 신이나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 ‘나-너’의 관계에 들어갈 때 그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행동이 진정으로 의미 있고 바람직한 행동이라 보았다.




부버의 관계철학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만물동체라든가 천지합일, 무극이나 불이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도 나와 그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에서 뭔가 궁극 경지에는 미치지 못한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와 그대’의 대화 관계만 있어도 세상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마틴부버 #장자철학 #근대하시딤나와너Ichund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