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2

박정미 - 맥스 베넷, [인간 지능의 기원

박정미 - 물질의 깊이는 한량없어라 -진화의 산물로서의 인간과 영혼의 문제에 관한 뜬 생각... | Facebook



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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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깊이는 한량없어라
-진화의 산물로서의 인간과 영혼의 문제에 관한 뜬 생각

책으로 세우는 내 세상에서 두개의 독보적이면서 상호 보완적인 으뜸 기둥이 드디어 마련되었다. 바로 최근에 나온 맥스 베넷, <인간 지능의 기원>과 1969년에 출간된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가 그것이다.
베넷을 읽으면 그 치밀한 논리에 휘말려 멀리 있는 하이젠베르크가 뜬구름같이 느껴진다. 그러다 다시 하이젠베르크를 읽으면 그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베넷의 논리는 하찮은 근시안으로 보여진다.
일견 둘은 서로 배척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창조적 관용으로 두 책을 읽다 보면 두 책을 기둥으로 삼은 더 큰 질서의 체계, 거대한 진리의 형상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떠오르는 것이다.

◇맥스베넷의 유물론적 인간 진화론
“창조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리처드 파인만이 남긴 마지막 문장처럼 인류는 이제 자신의 지능을 본 떠 AI를 창조하는 도정에 오름으로써 자신에 대한 이해수준을 획기적으로 드높일 수 있게 되었다.
맥스 베넷은 치열한 인공지능 개발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기업가로서 뇌의 진화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는 인공지능 개발과 인간 뇌의 진화과정을 대응시켜 고찰함으로써 감정과 지성의 사령탑인 뇌기능을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그 어떤 뇌과학자도 신경생리학자도 진화생물학자도 이렇게 인간 지성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인간뇌를 표상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기업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지적인 마력에 속수무책으로 이끌려가면서도 읽는 내내 나는 어둡고 불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마치 물리법칙과 화학법칙, 전기적 작용으로 환원되는 생물학적 과정만으로 인간존재가 다 해명될 것만 같은, 그렇게 인간을 이해해야만 할 것같은 두려움이었다.
인간의 지적능력, 감정체계 심지어 자유의지까지 이 AI기업가는 생물학적 산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인간의 의식은 변화된 환경에서의 생존이라는 진화압의 산물이다. 의식은 몸에서 발현되었고, 그 몸은 40억년 전 생긴 뉴클레오티드가 해저 열수공의 끓는 물과 충돌하면서 DNA 유사 분자사슬로 바뀌었다가 우연히 자기복제가 가능해지는 조합을 형성하면서 시작되었다.
35억년전 모든 생명체의 공통조상 루카(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가 탄생함으로써 분자진화의 장벽을 넘어 생명진화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여 자신의 환경을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기까지 삼십억년이 걸렸다. 그리고 신경계의 통합조정체인 뇌를 만들어내서 운동기술과 탐색능력이 좋아지는데 또 다시 5억년이 걸렸다.
그 이후 인간진화의 시계는 숨 쉴 틈 없이 빨라졌다. 척추동물에서 포유류로, 다시 영장류로 진화하면서 고비마다 지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 힘든 과정 끝에 드디어 인류에 고유한 언어가 등장했다.
맥스베넷은 뇌의 진화과정이 “사전에 계획해서 만들어지지 않고 잘못된 출발점과 엉뚱한 반전, 우연과 반복, 행운이라는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본다.
지구가 탄생한지 45억년, 이 모든 것이 무질서한 우연에 의해 이 시간안에 이루어졌다. 물질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원시생명이 우연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서 인간의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많다. 특히 닐스 보어,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데이비드 봄 등 양자물리학계 인물들은 진화과정을 우연에만 맡겨두지 않고 모종의 질서를 형성하는 의식의 개입, 즉 형이상학적 사고를 긍정하는 입장이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신과 영혼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입자물리세계의 관찰과 실험을 통해 파악한 현실을 엄밀한 수학적 방정식으로 기술해내고 그것을 보통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해서 설명해주는 전세계 일급 전문가였다.
그는 양자역학의 이론적 함의와 일이차 세계대전을 통과한 독일인으로서의 역사적 경험을 이 책 <부분과 전체>로 집약했다.
이 책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스승인 닐스 보어의 양자물리학적 개념인 상보성을 토대로 사상을 전개해 나간다. 인간의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자연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양자역학을 설명해나가는데 있어 상보성 개념은 필수적이다.
“양자론은 파동과 입자라는 상보적 개념을 사용해 자연을 이중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불충분한 이론이라고들 해요. 하지만 양자론을 정말로 이해한다면 양자론을 원자현상에 대한 통일적인 묘사로 느끼겠지요. 다만 그 이론을 실험에 적용하기 위해 자연적인 언어로 번역하니까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뿐이에요.
그러므로 양자론은 어떤 상황을 명백하게 이해했으면서도 이런 상황을 표현할 때 상과 비유로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예예요.
일반적인 철학, 특히 형이상학에서도 비슷할 거예요. 어떤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 진실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 상과 비유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때로는 모순을 피할 수 없지요. 하지만 이런 상들로 진실에 다가갈 수 있어요. 현실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거예요. “
닐스 보어는 양자물리학계에서 확인된 상보성을 자연기술의 중심적 특성으로 느끼고 이 개념이 생물학적 현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고 본다.
“알다시피 생물학에는 본질상 인과적이지 않고 합목적적인 연관들이 있어요. 가령 생물체에서 나타나는 상처치유과정 같은 것이 그런 거죠. 이런 궁극적 해석은 물리학적, 화학적, 원자물리학적 법칙에 다른 진술과 전형적으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어요. 두개의 서술방식은 상호 배타적이에요. 그렇다고 반드시 모순인 것은 아니에요. “
“그것은 두개의 상보적 관찰방식의 전형적인 경우예요. 하나의 방식은 사건이 목적을 통해 결정된다고 보고 다른 방식은 사건이 직접적으로 선행하는 사건을 통해 , 즉 직접적으로 선행하는 상황을 통해 결정된다고 믿는다는 거죠.
이 두 요구가 우연히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은 굉장히 개연성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두 관찰방식은 서로를 보완하죠. 우리는 생명이 있으므로 이 두가지가 옳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니까.”
즉 보어를 위시한 일군의 양자물리학자들은 생명현상이 물리 화학법칙으로 환원될 수만은 없고 총체적 질서를 형성하는 합목적적 힘을 필요로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의 이 생각을 인간존재의 본질과 신에 대한 관념으로까지 확장한다.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즉 인생길을 헤쳐나갈 때 기준으로 삼는 나침반은 인간과 세계의 중심질서와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하이젠베르크의 기본생각이다.
“물론 알다시피 현실은 우리의 의식구조에 좌우돼. 객관화할 수 있는 부분은 현실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 하지만 주관적인 부분이 문제가 될 때에도 중심질서가 작용하기에, 이런 부분을 형상화하는 것을 우연이나 자의의 작용으로 볼 수는 없어. 물론 민족이나 개인이나 주관적인 영역에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지. 때로 중심질서에서 떨어져나온, 그래서 중심질서에 맞지 않는 부분질서가 작용할 수도 있어. 그러나 결국에는 언제나 중심질서가 관철돼.”
“영혼이라는 말은 여기서 한 존재의 중심질서를 칭하는 거야. 외형은 아주 다채롭고 조망하기 힘들지만, 그 안에 깃든 중심 말이지.”
그는 또 다른 사람의 영혼에 다가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다가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중심질서의 다른 말이 바로 인격신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의 철학과 인생에서는 플라톤의 지적향기가 일관되게 느껴진다.
◇진화생물학적 인간이해를 넘어
인간이 되기까지 우리는 생명일반의 진화과정을 충실히 밟아왔다.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고도화되어 생명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베넷의 책은 몸의 진화가 아니라 의식, 즉 인간지성의 진화를 직접 겨냥하고 그 경로를 빈틈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무척 불편해진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 개별존재는 생물학적 진화과정의 사슬로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회적 사건에 불과하게 된다. 물질의 진화적 형태인 생명현상에 불과할 뿐 노화와 불의의 사고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망가지면 물질로 환원되고 마는 운명인 것이다.
나는 대학시절 접한 유물론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강요한 결과, 만성 스트레스 반응과 우울장애로 젊은시절 내내 정체되어 있었다. 베넷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서 전제하는 인간이해의 자장에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진화생물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맥스베넷의 과학적 인간이해를 수긍하면서도 철학적 측면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누가 선언적 진리를 제시한다 해도, 도저히 깨뜨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체계논리적 정합성이 나를 압도한다 해도, 더 이상 나를 내어줄 마음이 없다. 나에게 생명력의 고갈과 만성적 우울로 이끄는 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진리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최종적 결론으로 선언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인식의 도정이고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것은 과정적 진리에 불과한 것이다. 같은 값이면 나를 살아있게 하는 과정적 진리를 붙잡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은 그 연원이 짧다. 다윈 이래 과학의 일분과로 정초된 진화생물학은 20세기 중엽, 왓슨과 크릭의 DNA구조 발견으로 도약을 이루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것은 고전물리학이 코페르니쿠스 전환기(1543)에나 가졌던 놀라움과 충격의 단계에 불과하다. 물리학은 그로부터 100년이 더 지나 뉴튼이 등장하여 고전물리학체계가 완성되고, 그로부터 300여년이 지난 후 그에 기반한 양자도약을 이루었다.
우리 인류는 최근의 진화생물학적 발견보다는 지난 세기 정초된 양자물리학 전선에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돌파하고 있다. 과학에서 존재론을 추출해내기 위해서는 덜 발달한 생물학보다는 물질과 마음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밀고나간 양자물리학에 기반을 두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지구역사 45억년만에 물질이 조합되어 내 자신과 같은 의식이 발현되었다면 140억년 되는 이 우주의 실상은 어떠한 것일까. 또 종교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처럼 우주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성주괴공의 무한순환을 이루는 영원한 과정이라면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양자물리학에서는 물질현상은 관찰자의 마음, 즉 관찰의 방식과 배후 이론모델을 떠나서 표상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그 모든 물질은 쪼개지고 또 쪼개지고 궁극에서는 입자와 파동을 넘나들고 그 근원을 확정할 수 없다고 한다. 물질의 깊이는 한량없다. 그 무한한 깊이의 어드메에서 물질은 근원의 마음과 만나지 않을까.
베넷의 책은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하지만 과학적 성과라는 이미 아는 것에 맴돌지 않고 아직 모르는 것, 더 큰 질서를 찾아 나아가는 신비의 감각은 하이젠베르크에게서 나온다. 신비의 감각은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이고,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다.
나는 베넷뿐만 아니라 하이젠베르크까지 양 옆구리에 끼고 신비를 향해 나아가며 인식의 기쁨, 살아있다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은 이미 아는 것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이라고 되뇌이면서.






손영득
한 호흡에 읽었슴다,.
배움이 짧아서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눈이 먼 곳을 볼 수 있게 해주네요,.
책을 꼭 읽어야겠네요,.ㅎ
박정미
손영득 우와! 제가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긴데 한 호흡에 읽으셨다니요. 고맙습니당! 저야 쓰고 싶어서 쓰지만 헛수고가 아니게 해주시니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박헌권
자연과학의 인과의 작용인과
인간사회의 공존의 목적인은
서로 상보적이죠!
결국 상호인과의 중도로 귀결되지요!
박정미
박헌권 잘 모르겠지만 중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제가 길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강상태
읽다가 일하다 하니 재밌는 글을 진지하게 못읽어서 복사하여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정미
강상태 아이고. 그저 호기심 많은 사람의 뜬 생각인데 이렇게나 소중히 여겨주시다니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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