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8

예수가 중심인가, 내가 중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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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중심인가, 내가 중심인가
유무상통마을 2011-12-02  조회 : 2,368, 추천 : 71

조현 2011. 11. 29 조회수 1943 추천수 0 

이은선(왼쪽에서 세번째) 이정배(왼쪽에서 네번째) 교수 부부가 결혼30돌과 저서 출간 기념 예배를 축하하러온 현경 교수(왼쪽에서 두번째) 등 축하객들과 함께했다





이은선 교수와 이정배 교수님이 결혼 30주년을 맞아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신학자 부부인 이정배 감신대(56) 교수와 이은선(53) 세종대 교수가 결혼 30돌을 맞아 동시에 책을 출간했다. 이정배 교수는 <빈탕한데  맞혀놀이-다석으로 세상을 읽다>(동연 펴냄)를, 이은선 교수는 <한국 생물 여성영성의 신학-종교,여성,정치의 한몸짜기>(모시는사람들 펴냄)을 각각 출간했다.

 지난 25일 오후엔 서울 중구 정동 정동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이들 부부의 결혼 30돌과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예배를 겸한 잔치가 열렸다. 이 자리엔 신경하 전 대한감리회 감독과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목사,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 현경 미국 뉴욕유니언신학대 교수 등 200여명의 목사와 신학자 등이 함께 했다.


 이 정배 교수는 현재 기독자교수협의회장을 맡고 있고, 이은선 교수는 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와 여성신학회 회장을 지낸 여신학자다. 이정배 교수는 신학의 토착화를 위해 앞장서다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교수직과 목사직, 신자직까지 박탈당했던 변선환(1927~95) 전 감신대 학장의 애제자로 스승의 맥을 잇고 있다. 이은선 교수는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이식된 교회를 한국인에 의한 토착적 교회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한국그리스도교회연합회 회장이던 신학자이고 목사이자 화가이며 영성가였던 이신(1927~81)의 딸이다.


 이정배·이은선 교수는 동년배 친구였던 변선환과 이신에 의해 부부로 맺어졌다. 이들 부부가 결혼하자 변선환은 이들을 자신의 스승인 스위스 바젤대 프리츠 부리 교수에게 보낸다. 교토포럼에서 활약했던 프리츠 부리 교수는 신학의 지평을 동양으로 확대한 현대신학의 거장이다. 프리츠 부리로부터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을 시도했던 변선환은 이정배와 이은선에게 ‘기독교와 유교의 만남’을 시도해 보도록 했다. 이에 따라 ‘부리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프리츠 부리 교수의 지도 아래 이정배는 주자학을, 이은선은 ‘페스탈로치와 왕양명’을 연구했다.





정동교회 아펜젤로홀에서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정배 이은선 교수의 지인들




 그 뒤 이정배 교수는 감신대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장으로서, 대화문화아카데미 프로그램 위원장 등으로 동서 종교 사상의 만남과 교류를 이끌었다. 이은선 교수도 다시 성균관대 한문학과 대학원에서 다시 박사학위 과정으로 유학을 공부했다.


 <빈탕한데 맞혀놀이-다석으로 세상을 읽다>는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다석학회 회원으로 여러해동안 다석사상을 연구해온 이정배 교수가 다석과 관련하여 연구한 두 번째 책이다. ‘빈탕한데’란 다석 유영모 선생이 ‘허공’을 순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다석 선생은 평생의 소원을 그 ‘빈탕한데’ 맞혀(맞춰) 노는 것이라고 했다. 곧 ‘없이 계신 이’의 실체는 ‘빈탕’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살아가는 것을 ‘빈탕한데 맞혀 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은선 교수는 <한국 생물 여성영성의 신학-종교,여성,정치의 한몸짜기>에서 한국 여성신학의 창조적 영성을 ‘한국 ‘생물’(生物) 여성영성’으로 표현하면서 우리의 생명의 참 모습이 그 안에 ‘천지의 낳고 살리는 원리와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이 세상 모두를 한식구로 알아서 큰 사랑과 자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임을 말했다. 여기서 ‘생물’ (生物)이라는 개념은 ‘생명’보다 더 포괄적으로, 소위 물질과 무생물의 영역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진정으로 ‘만물’(物)을 ‘낳고 살리는’(生) 일을 의미하는 말이다. 저자는 한국 생물 여성영성은 오늘날 기독교의 생명 신학이 오늘 우리 시대 ‘생물권 정치학’시대에 만물을 살리는 생물(生物) 신학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한편 이날 축하예베에서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은 이정배 교수의 <빈탕한데 맞혀놀이-다석으로 세상을 읽다>를 읽고 장문의 서평을 발표했다. 이 서평은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 이정배 교수의 기독관을 보여줄 뿐 아니라 자신의 견해까지 상세히 담았다.



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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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교수의 <‘빈탕한데 맞혀놀이’-多夕으로 세상을 읽다>를 읽고
- 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


이정배 교수, 이은선 교수 두 분이 30년 동안 가족공동체로 살고서 각자 책을 내어 함께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가정이 흔들리고 깨지는 세상에서 두 분은 남다른 부부애와 가정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은선, 이정배 교수는 부부의 도가 매우 깊은 것 같다. 가정을 지켜가는 비결이 있을 것 같다.



이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그 비결의 실마리나 흔적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 교수는 아내인 이은선 교수를 존경하고 고마워하고 이은선 교수에게 배운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이은선 교수에 대한 찬양까지는 아니지만 찬사가 자주 나온다. 이처럼 아내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품고 아내에게 배우는 자세로 살면서 아내에 대한 찬사를 잊지 않으면 부부의 도가 깊어지지 않을까?



이정배 교수는 가정생활에서 아름다운 성공을 이루고 모범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학문과 인생의 길에서도 아름다운 성공을 이루고 큰 모범이 되었다. 유학자의 풍모를 보인 아버지, 한국적인 종교심을 가진 어머니, 고등학교 은사, 교회 담임 목사인 장기천 감독, 감신대학교 스승 변선환 교수, 장인 이신 박사, 바젤대학 지도교수 프릿츠 부리 박사, 다석의 제자인 김흥호 교수와 류승국 교수의 아낌없는 후원과 축복 속에서 이정배 교수의 인생과 학문이 발전하고 성숙해졌다.





탈 교리화 탈케리그마화 도모한 프릿츠 부리로부터 영향 받아


이교수는 이신 박사의 ‘초월과 영과 예술’ 신학, 변선환 박사의 종교다원신학, 프릿츠 부리의 보편적 실존과 생명 신학을 거쳐 유교 성리학과 서구 신자유주의신학을 비교하는 박사학위논문을 쓰고 다석 유영모의 사상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 책은 신학뿐 아니라 지성세계의 폭넓은 절실한 주제들과 학문적으로 대화하고 대결하면서 다석의 신학과 사상을 논구하고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프릿츠 부리는 이교수의 스승 변선환박사의 논문지도교수일 뿐 아니라 이정배, 이은선 부부의 박사논문 지도 교수이므로 이교수와는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다. 이교수의 학문적 뿌리와 배경을 밝히는데 부리를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부리는 루돌프 불트만의 제자로 탈교리화를 넘어서 탈케리그마를 주장했다.


케리그마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한 기독교의 선포”를 가리킨다. 불트만은 기독교 신앙(기독교인의 신앙적 실존)이 케리그마에 근거할 뿐, 역사적 예수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불트만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적 진술만 있으면 기독교 신앙을 세울 수 있다고 하였다. 불트만은 케리그마의 비신화화를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신앙적 실존을 드러내려 했다. 비신화화는 기독교 신앙의 케리그마에서 신화적 교리를 벗겨내고 순수한 신앙적 실존을 밝히는 케리그마만을 남기려 했다. 그는 기독교의 케리그마에 근거하여 기독교 신앙의 실존에 이르려 했다.


부리는 불트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독교의 케리그마에서도 벗어나서 이성적이고 영성적인 인간실존, 생명과 정신의 실존에 충실하려고 했다. 따라서 기독교의 케리그마에 매이지 않고 다른 종교인 불교, 유교와 대화를 통해서 인간 생명과 정신의 실존에 이르려 했다. 부리는 서구 신학계에서 가장 진지하면서도 자유롭고 파격적인 신학자다. 그의 학풍을 배경으로 이 교수는 자유롭게 다석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의 서론 “미정고로서의 예수”는 저자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가정과 학문연구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토착화와 세계화를 아우른 다석의 기독론”을 다루고, 2부는 “두번째 차축시대와 회통적 기독교-종교다원주의의 한국적 이해”라는 제목 아래 종교일원적이며 회통적인 다석신학과 사상을 다룬다. 3부는 “다석으로 본 오늘의 세상 읽기-다석 신학과 현대 사조와의 만남”이란 주제로 진화론적 생명담론과 다석신학을 다루었다. 짧게 말하면 1부 기독론, 2부 두 번째 차축시대와 종교다원주의 신학, 3부 생명진화론과 종교를 중심으로 다석신학과 사상을 논하고 있다.



이정배 교수는 몇 해 전부터 ‘다석학파’라는 말을 쓰고 있다. 다석 유영모, 그의 제자 함석헌, 김흥호, 류승국, 박영호 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정신과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이정배 교수와 함께 다석학파의 끝자리라도 참여하고 싶다. 아직 다석학파라는 명칭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함석헌 선생의 제자들 가운데는 다석학파보다는 함석헌 학파, 씨?학파라는 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영모가 함석헌의 스승이고 씨알사상의 토대를 놓은 분이라는 점에서 다석학파라는 명칭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함석헌의 사회적 영향력이 훨씬 더 크고 씨알사상을 크고 활달하게 펼쳤다는 점에서 함석헌 학파라는 말도 쓸 수 있다고 본다.


또 다석학파에 민중신학자 안병무와 민중신학을 포함시키거나 관련시킬 수 있는지 논의할 여지가 있다. 안병무는 젊은 시절에 유영모와 함석헌에게 오랫동안 배웠고 함석헌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오늘의 민중과 예수를 동일시하고, 고난 받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세상을 구원하다는 민중신학의 기본원칙과 개념들이 다석사상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민중신학은 다석학파에 속하거나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민중신학이 사회경제의 차원에 집중하는데, 다석이 영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석사상과 민중신학의 차이를 말할 수 있다.


나는 다석학파의 역사적 뿌리에 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찍이 다석은 자신이 남강 이승훈과 함석헌이라는 두 벽 사이에 둘러 싸여 살았다고 하였다. 이 말은 그의 삶과 정신세계가 이승훈, 함석헌과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남강이 세운 오산학교에서 남강과 유영모와 함석헌이 만났고 깊은 정신적 결속을 이루었다. 오산학교는 안창호가 조직한 ‘신민회’(新民會)의 교육입국(敎育立國)운동으로 시작된 것이다.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깨워 일으킴으로써 나라를 되찾고 바로 세우려는 일념이 이들에게 사무쳐 있었다. 이들의 정신과 사상은 이승훈을 통해서 삼일독립운동으로 이어지고, 함석헌을 통해서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다. 다석의 씨?철학은 안창호, 이승훈의 민중교육입국운동과 함석헌의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맥락에서 생성되고 발전되었다.





전통 기독론은 예수의 삶과 행위, 말씀보다 예수 신격화에만 초점


이 책의 1부는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론을 비판하고 역사적 예수, 속죄론, 탈민족주의를 논하면서 다석의 얼 기독론, 스승 기독론, 다중(多衆) 기독론을 제시한다. 서구의 전통 기독론은 예수를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교리적 기독론이다. 전통 기독론은 예수의 삶과 행위, 말씀에 대한 관심은 없거나 부족하고 예수를 신격화하여 신적 존재로 고백하는데 초점이 있다.


지난 2~300년 동안 서구 지성계가 성서와 신학을 탐구한 결과 내린 가장 중요한 결론은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를 구분한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 성서학자 르와지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선포자가 선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로 표현되었다. 예수는 하늘나라를 선포했는데 교회는 예수를 선포했다. 하나님 나라를 믿고 선포한 역사적 예수가 믿음과 선포의 대상(신앙의 그리스도)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의 예수와 신안의 그리스도를 구분한 학문적인 성서연구는 전통 기독론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 되었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신학자는 조직신학자 칼 바르트와 성서학자 루돌프 불트만이다. 불트만은 역사의 예수를 탐구했는데 결론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신앙(신앙적 실존)은 역사의 예수에 근거하지 않고 기독교의 선포(케리그마)에 의존하다고 보았다. 역사의 예수를 몰라도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만 있으면 기독교 신앙은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은 상대적인 역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계시)에 근거하는 것이며 신앙의 근거로서 역사의 예수를 탐구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하였다.





본회퍼, 민중신학, 해방신학, 예수 믿음 넘어 따르려는 운동 일어나

역사의 예수를 외면한 그리스도론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신앙, 교리적인 신앙, 내면적이고 실존적인 신앙에 머물기 쉽다. 따라서 역사의 예수에 대한 탐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디트리히 본회퍼를 비롯해서 민중신학, 정치신학, 해방신학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넘어서 예수를 따르려고 했다. 또 20 여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데 머물지 않고 예수의 삶과 말과 행동을 살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예수 믿기, 따르기, 살기를 함께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수가 주이고 목적이다.



 이정배 교수는 서구의 기독교전통을 비판하고 역사적 예수 연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다석의 기독론을 얼 기독론과 스승 기독론으로 제시한다. 이교수가 제시한 다석의 기독론은 예수 믿기, 따르기, 살기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기독론이다. 다석에게 “믿음은 인간 속에 내재된 전체(하나), 곧 ‘밑둥’ 또는 ‘얼’에 대한 깨침이었다.”(85쪽) ‘내’ 속 밑둥의 얼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난다는 것이 얼 기독론이다.
스승 기독론은 나와 예수의 관계를 사제관계로 본다. “스승이란 길을 가다 길이 되신 존재로서 우리 인간 모두···‘하나’로 이끄시는 존재”다.(87쪽) 스승 예수를 따라서 우리도 길을 가다 길이 되라는 것이다. 스승 예수를 따라 산다는 것은 ‘나’의 몸과 맘과 얼로써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진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독교의 미래를 “스승 기독론에 터한 수행(修行)적 기독교의 모습에서 찾는다.(89쪽)


다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얼(성령)이며 ‘나’의 스승으로 파악했다. 예수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얼이 ‘나’의 속에서도 계신다. ‘나’의 속에 하나님의 얼이 계시면 내 속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한다. 얼 기독론에서는 예수가 중심에 있지 않고 나의 얼이 중심에 있다.  기독론에서 스승 기독론이 나온다. 스승은 나를 이끌어주고 바르게 살도록 가르칠 뿐 나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승 예수와 나의 관계는 긴밀한 인격적 관계이지만 나의 삶과 행위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다.


다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어서 그리스도록”으로 풀었다. 예수를 이어서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로 산다는 말이다.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기독론의 새 지평을 여는 것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수의 삶과 정신을 이어서 예수의 바통을 이어서 내가 나의 때를 사는 것이다. 스승은 스승의 때를 살고 제자는 제자의 때를 산다. 예수는 예수의 때를 살고 나는 나의 때, 나의 삶을 산다.







예수가 중심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낳고 그리스도가 되어 사는 주체



여기서는 더 이상 예수가 중심과 주체가 아니라 내가 중심과 주체이다. 다석의 ‘예수 이어 살기’는 ‘예수 믿고 따르고 살기’를 넘어서는 주체적인 기독론이다. 예수를 이어 사는 다석의 기독론은 예수처럼 “만물을 살리는 그리스도가 되라”(206쪽)는 것이다. ‘내’ 속에서 그리스도를 낳고 그리스도가 되어 나의 때 나의 삶을 사는 것을 강조한 다석의 기독론에서는 기독교의 케리그마를 선포하는 일보다 ‘제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


다석의 ‘예수 이어 살기’는 역사의 예수를 넘어서 오늘의 시대, ‘나의 때’를 사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에게 매여서 역사적 예수의 삶에 갇히는 것은 예수의 뜻이 아닐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자신을 넘어서 살 것을 요구했다. “너희는 나보다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한 것은 제자들이 자기를 넘어서 제자들 자신의 때를 살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또 자신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예수가 선한 분은 하나님뿐이라고 한 것도 자신을 완전자로 보지 않은 것을 나타낸다. 최고선은 세상의 완전을 뜻한다. 예수는 결코 최고선이 아니며 역사와 사회의 완전한 결말이 아니다. 역사와 사회의 생명은 예수 안에서 예수를 넘어 나아가야 한다.


이정배 교수는 A. 네그리의 ‘제국’과 ‘다중(多衆)’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다석의 기독론을 다중 기독론으로 제시한다. 네그리는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세계화를 제국으로 보고 이 제국의 불의한 억압과 수탈에 맞서는 인간 대중을 ‘다중’으로 표시한다. 네그리는 제국과 다중의 대결을 위해서 민족과 국가를 이념적으로 해체하고 불의한 자본에 대한 다중의 불만과 저항을 고취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민족의 종교문화전통에 담긴 깊은 영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세계 속에서 민족과 국가의 가치와 지위를 인정한다. 나는 이교수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만일 민족과 국가의 정치종교문화적 전통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세계화라면 그것은 매우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세계화일 것이다. 바람직한 세계화는 민족의 문화와 정신이 존중되고 꽃 피고 열매 맺는 세계화일 것이다.


이 교수는 제국과 다중에 대한 네그리의 세계분석을 받아들이면서도 초월을 배제하고 다중의 정신과 실천을 사회과학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에 반대한다. 다중의 각성과 실천을 위해서 종교의 초월적 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얼’의 존재 속에서 다중을 이해한다. “각양각색(특이성)의 모습으로 살지만 그 속에 ‘얼’이 공재하기에 인간은 본래 다중”이라는 것이다.(122쪽) 얼 기독론과 스승 기독론을 결합시키면 얼 나를 깨달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일’을 완성해 간다는 급진적이고 보편적인 기독론이 나온다. “십자가를 거쳐 새롭게 태어난 성령의 존재, 곧 ‘얼나’는 미정고로 남겨진 예수의 일을 완성시킬 책임이 있다...예수 한 분에게 맡겨진 책임이 다수(多數)의 그리스도, 성령의 사람이 된 뭇 ‘얼나’에게 나뉠 수 있으니 항차 감당치 못할 일이 없을 듯하다.”(193~194쪽)


다석의 얼 기독론과 스승 기독론은 뭇 사람의 영적 자각 속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하는 기독론이므로 다중 기독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 나는 다중 기독론보다는 ‘씨알 기독론’이 다석의 기독론으로서 더 적합한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씨알은 무수한 다수이면서 생명과 정신의 알찬 개체를 나타낸다. 씨알은 다중의 의미와 실존적 영성의 자각을 함께 나타낼 뿐 아니라 유영모와 함석헌이 함께 사상과 정신의 핵심을 드러내는 말이다.



2부는 “두 번째 차축시대와 회통적 기독교”를 논하고 있다. 차축시대는 칼 야스퍼스가 쓴 말로 2500년 전 후의 위대한 영성 시대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 석가,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 예레미야(예수)가 거의 동시에 나와서 고등종교들이 탄생하고 철학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정신사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킨 시대라는 의미에서 축(軸)의 시대, 기축시대 또는 차축시대라고 부른다. 자연종교 시대 때는 자연만물에서 신적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찾았고 국가종교 시대 때는 국가권력과 국가에서 신적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보았다. 차축시대의 영성은 자연이나 국가사회가 아니라 인간 내면(마음)의 이성과 영성에서 신적 생명과 영원한 가치를 발견했다. 사랑, 자비, 인(仁), 진리로 표현되는 내면의 생명과 가치는 개인의 깊은 내면에서 발견되는 것이면서 개인을 넘어서 보편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다. 이것은 배려와 공감의 영성이며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하라.”는 황금율(黃金律)의 윤리로 나타난다.


차축시대의 영성은 보편성을 지녔으나 시대와 지역의 제약 속에서 서로 다르게 표현되고 실천되었다. 유교, 도교, 불교, 기독교, 그리스철학 등은 차축시대의 영성에서 생겨났으나 서로 다른 전통과 형태를 지니고 있다. 기축시대의 영성과 전통들은 내용적으로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시대의 제약 속에 갇혀 있다. 비민주적 신분계급, 비과학적 미신, 국가지역주의의 한계 속에서 기축시대의 영성은 생겨났고 전파되었다. 이런 시대와 지역의 제약 속에서 민중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종교에 머물렀고, 종교와 철학은 분리되었다. 믿고 따르는 종교는 스스로 체험하고 깨닫는 종교, 저 자신의 생활종교가 되지 못한다. 또 종교와 철학이 분리됨으로써 반쪽 진리에 머물게 되었다. 사람의 이성과 영성이 분리되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종교와 철학이 분리되면 온전한 정신에 이를 수 없다.





개체를 넘어 통합의 영성이 핵심이 되는 두번째 차축시대 도래



이 교수는 두 번째 차축시대의 도래를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차축시대가 개별성(자유), 초월을 발견한 시점이었다면 두 번째는 “개체를 넘어선 ‘통합’의 영성이 그리스도 이념의 핵심이 되는 시기”다. “상호 나뉘어 발전한 종교들이 우주적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수렴될 ‘결정적 때’에 이르렀다.”(304쪽) 두 번째 차축시대는 믿고 따르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자각하여 실천하는 종교의 시대이며, 서로 다른 종교와 철학이 공감하고 통합하며 합류하는 시대다. 민주화, 산업(과학)화, 세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는 서로 다른 종교와 철학이 회통하고 합류하는 것은 당연하다. 믿고 따르는 종교에서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종교로 전환하는 것도 시대의 요청이다. 동서고금의 종교와 사상이 회통하고,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종교는 이성과 영성, 철학과 종교의 통합을 추구하는 종교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다석의 사상은 대속적 완결체계로서의 정통적 기독교와 단절함으로써 “축(軸)의 시대의 에토스와 상응하되 종교 창시자들뿐 아니라 씨알모두를 ‘하나’ 곧 대아(大我)의 존재로 이끌었던 급진성에 있어서 두 번째 차축시대 곧 후천시대를 열었다.”(152쪽) 더 나아가 이 교수는 다석의 귀일사상이 “종래-적응주의(마테오 리치), 변증론(濯斯), 그리고 바르티안(海天)-의 유교/기독교 대화의 지평을 뛰어넘을 뿐 아니라 축(軸)의 시대의 시각과도 충분한 변별력을 지녔”다고 보았다.



귀일사상은 “제 종교의 절대성, 포괄성을 거부하고 자기 종교의 틀마저 넘어설 것을 요구하되, 일체 종교가 ‘하나’, 곧 인간의 밑둥(바탈)에서 만날 수 있다.”고 본다.(162쪽) 이 교수는 축의 시대가 인류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지만 시대적 한계로서 여성경험을 탈각시켰고, 분화과정이 두드러질 뿐 통합에 이르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분화되었던 종교들이 하나로 모이고 그 하나가 보편적인 인간의 밑둥(바탈)이 되는 때가 바로 후천(後天)의 시대며 두 번째 축의 시대”다. 다석의 귀일사상은 분화된 종교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영성을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163쪽)





자기 종교를 넘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깨닫고 개화되는 후천 시대의 개화



나는 이 교수의 이런 견해에 공감하고 동조한다. 다석은 동서고금의 사상과 정신을 회통시키고, 생각하는 이성과 신통(神通)하는 영성을 통합하는 철학을 제시했으며,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씨알사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두 번째 차축시대를 열었다. 씨알사상이 시사하는 두 번째 차축 시대의 영성은 성현을 믿고 따르는 종교를 넘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깨닫고 삶과 정신의 꽃과 열매를 맺는 새 종교의 영성이다. 두 번 째 차축시대의 영성은 민주적이고 과학적이며 세계적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차축시대의 영성과 구별된다.



씨알의 영성은 역사와 사회를 스스로 창조하고 형성하는 주체적 영성이며, 과학과 철학을 아우르고 생각을 강조하는 이성적 영성이고, 동서고금의 종교사상과 철학을 회통하는 종합적 영성이다.





공자 민주 민중의식, 석가 역사 진보 성찰, 예수 이성적 깨움이 부족



차축시대는 민주화, 산업(과학)화, 세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오늘의 시대보다 작고 뒤떨어진 시대다. 오늘 우리의 시대가 차축시대보다 크고 앞서 있다. 공자는 민주정신과 민중의식이 부족하며 노자는 역사를 능동적으로 변혁하는 주체적 영성이 부족하다. 석가에게는 생명의 자람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성찰이 아쉽고, 소크라테스에게는 고통 받고 억눌린 민중에 대한 공동체적 공감과 배려가 부족하다.


예수는 역사성과 공동체성에 충실했으나 역시 시대의 제약 속에 있다. 복음서에 이미 여성 차별의 관점이 나오는 것도 예수의 시대적 한계를 드러낸다. 12제자 가운데 여성이 없고, 오병이어의 설화에서 여성을 빼고 사람 수를 헤아리는 것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여성해방과 평등에 대한 분명한 자각과 가르침에 이르지 못한 것을 말해준다. 예수 자신이 여성차별의식을 갖지 않았다 해도 여성평등의 원리를 제자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예수는 믿음을 강조했을 뿐 이성적 생각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이성적 생각을 강조했다면 제자들이 그렇게 쉽게 “부활한 예수가 구름 타고 올 것”이라는 식의 신화적 사고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민중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늘나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민중의 주체성을 강조했으나 민중이 새 나라(하늘나라)를 실현하는 행동적 주체임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하늘나라는 오는 것이고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로 들어간다고 했을 뿐 사람이 하늘나라를 이루어간다는 점은 강조하지 않았다.


지난 2천년 동안 역사와 사회를 변혁하고 창조해가는 민중의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었다. 민중이 민주(民主)가 되었다. 민중이 세상과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다석의 씨알사상에 따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와 역사의 씨알로서 자신의 얼 생명을 스스로 자각하고 실천하여, 사회와 역사를 지어가고 새 시대를 가져온다.



3부는 생명과 생명진화에 관한 생물학·철학·신학의 논의를 하고, 생명진화와 종교를 중심으로 다석의 신학과 사상을 논하고 있다. 이 교수는 생물학적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넘어서 생명의 신적 깊이를 본다. “죽음 역시도···더 깊은 우주에 이르는 통로”이며, “삶과 죽음 나아가 부활을 통해 진화하는 세계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진화론적 신학의 영성”이다.(297쪽) 이 교수는 과정철학적 진화유신론과 책임을 강조하는 한스 요나스의 생명철학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과정철학적 진화유신론은 자연생명세계의 형이상학적 깊이와 높이를 드러냈으나 기독교 중심적 세계관에 경도되었기 때문에 다종교 상황을 감당키 역부족이다. 한스 요나스는 생명진화론을 받아들여 우주와 세상에서 신의 자기무화를 강조하고 인간의 책임성을 요구한다. 신생대로부터 생태대로의 전환이 인간의 몫이며 “막 태어난 갓 난 신생아를 향한 무한책임”이 인간에게 요구된다.(301쪽) 이 교수는 진화론적 신학이 생태학적 위기의 긴박성을 놓치고 있으며 요나스의 무력한 신 개념 역시 인간의 책임을 말하기에 미흡하다고 보았다.(302쪽)


다석은 ‘몸나’의 예수를 숭배하지 않고 “‘얼나’로 솟구친 십자가상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했다.”(308쪽) “저마다 밑둥에서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다석의 얼 기독론은 “자신의 몸나를 줄여 ‘얼나’로 솟구치는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308~309쪽) 다석은 자신의 밑둥(本性)을 불살라 몸나를 줄이고 얼나를 세움으로써 자신과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고 하였다. 자신을 불태워 산제사를 드리는 다석은 다른 어떤 신학자나 철학자보다 오늘의 삶에 대한 책임을 철저하게 강조한다. 오늘의 생태학적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 교수는 물질에 대한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 ‘얼나’로 솟구쳐 ‘빈탕한데 맞혀 노는 일’이 생태학적 회심을 이룬 다석 삶의 본질이었다고 보고 다석을 “우주 대자연의 본질을 꿰뚫은 첨예한 생태 지능의 소유자”로 재해석한다.(270쪽)


다석은 새벽 세시에 일어나 무릎 꿇고 앉아 경전을 보고 묵상하며 진리를 깨우쳤고 하루 한 끼 먹으며 더불어 사는 길을 생각했고 참과 사랑의 말씀을 말하고 실천하려 했다. 김흥호는 이것을 다석의 ‘일좌식 일언인’(一座食一言仁)이라고 했다.



“‘일좌식 일언인’(一座食一言仁)을 통해 근원적 ‘하나’, ‘없이 있는’ 존재를 자신 속에서 깨친 다석의 삶과 지혜는 생태적 능력을 집단지능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277~278쪽)


생명과 생명진화에 관한 논의에서 나는 다석의 생명철학이 생명진화를 전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석 사상 속에 생명진화의 원리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다석은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 곧게 선 존재임을 강조하고 하늘을 머리에 인 사람이 하늘과 땅과 사람의 합일을 이루는 사명이 있음을 강조한다. 다석이 직립인간을 강조한 것은 생명진화와 직결된다. 사람은 수 십 억 년 생명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땅에서 하늘을 향해 곧게 선 존재가 되었다. 수 십 억 년 생명진화 끝에 사람은 비로소 하늘을 향해 ‘얼나’로 솟구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솟아올라 앞으로 나감’(솟남)을 강조한 다석의 철학은 생명의 진화와 역사의 진보를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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