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0

알라딘: 넌제로 - 하나된 세계를 향한 인간 운명의 논리

알라딘: 넌제로 - 하나된 세계를 향한 인간 운명의 논리

넌제로 - 하나된 세계를 향한 인간 운명의 논리
로버트 라이트 (지은이),임지원 (옮긴이)말글빛냄2009-12-02원제 : Nonzero


정가 25,000원
판매가 22,500원 (10%, 2,50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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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zero: The Logic of Human Destiny (Paperback) Paperback



책소개
전작 <도덕적 동물>로 찬사를 받은 저자가 넌제로섬 원리라는 렌즈를 통하여 역사를 들여다본다. 모든 역사와 현상은 한쪽이 이기면 한쪽은 지는 '제로섬'이 아닌, 모두가 이길 수 있는 '넌제로섬'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기본적인 방향을 이 '넌제로섬'으로 설명하며, 인류가 그 기본 방향 속에서는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되어간다고 말하는 책.
이는 문화의 진화에서나 생물의 진화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 저자는 한 무리의 유전자든 한 무리의 밈(문화 요소)이든, 일단 한 배에 타게 되면 생산적인 조화와 협동에 이바지하지 않을 경우 결국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넌제로섬의 논리'로 인류의 문화적 진화 과정에서 봉건주의, 자본시장, 환경문제 등의 역사 진화와 인간 협동을 설명하고 있다. 주요 견해는 역사의 방향성이 결국 예정된 '하나된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며, 그 실례로 UN, EU, IMF, WTO 등 초국가적 형태의 집단의 등장과 형성과정, 그 미래를 진단한다.


목차


서론 폭풍전야

Part ONE 인류의 역사

Chapter 01 문화 진화의 사다리
경향을 부정하는 경향 | 문화의 진화

Chapter 02 그 옛날 우리의 모습
최소 중의 최소 | 유전자의 뿌리 | 넌제로섬 원리의 문제 | 사회적 지위 | 자연의 비밀 계획

Chapter 03 5천 년 동안의 기술 진보
두 부류의 에스키모 | 북서해안의 인디언들 | 시장에 간 대인(大人, Big Man) | 자연의 변종? | 독특한 쿵족 | 진화의 거울

Chapter 04 보이지 않는 뇌
초과근무 | 수정된 ‘보이지 않는 손’ | 대륙의 분할

Chapter 05 전쟁,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전우애 | 밀고 당기기 | 평화의 도모

Chapter 06 농업의 필연성
좋은 시절 | 평형 상태에 대한 신화 | 농부가 아내를 데려오고 | 여가 시간 | 투쟁, 투쟁, 투쟁……

Chapter 07 추장사회 시대
폴리네시아의 추장사회 | 추장을 위한 변명 | 밈meme에 대한 몇 가지 밈들 | 넌제로섬 원리 다시 승리하다 | 영혼의 구원자로서의 추장

Chapter 08 두 번째 정보 혁명
운명 예측 | 문자의 진화 | 문자와 신뢰 | 관료적 뇌 | 시체 더미 | 너의 넌제로섬은 나의 제로섬

Chapter 09 문명의 탄생
세 개의 시험접시 | 문명의 요람 | 또 다른 문명의 요람 | 아메리카 문명 | 역사에 대한 반론

Chapter 10 우리의 친구 미개인들
미개인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들 | 역사의 평결

Chapter 11 암흑기
밈을 주목하라 | 봉건제도에 나타난 프랙탈의 아름다움 | 세계는 백업 카피를 만들어 놓는다 | 에너지 혁명 | 세계를 안전하게 만든 자본주의 | 자유와 그 밖의 효율적인 기술들

Chapter 12 불가사의한 동양
열광적인 이슬람교도 | 중국의 자본주의 도구들 | 위대성의 가장자리 | 새롭고 향상된 미개인 | 한 발 물러선 중국 | 만남의 광장 | 선(禪, Zen)과 상업적 착취의 기술 | 이슬람의 선물

Chapter 13 현대사회
항의의 기술 | 귀족들의 득세 | 민족주의의 원동력 | 역설의 논리 | 인쇄와 다원주의 | 다원주의와 무임승차 | 중국과 역사의 법칙 | 산업혁명 | 하나의 세계?

Chapter 14 지금 우리 여기에
넌제로섬 원리의 성장 | 진보의 도래

Chapter 15 새로운 세계 질서
통일성의 논리 | 한 곳으로 끌어당기기 | 한 곳으로 밀어붙이기 | 부족주의 | 악(惡)한 부족주의가 선(善)을 낳다 | 운명의 확산

Chapter 16 자유도(自由度)
세포의 삶 | 낙관주의 | 뒤섞인 감정


Part TWO 생명의 역사

Chapter 17 우주적 배경
열역학 제2법칙의 정신 | 에너지와 문화 | 에너지와 정보 | 기적의 접착제

Chapter 18 생물학적 넌제로섬 원리의 출현
원시 수프 속의 연합 | 세포는 어떻게 복잡해졌을까? |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 | 모두에게 내재된 점균세포적 속성

Chapter 19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되는대로 걷기 | 되는대로가 아닌 걷기 | 좋은 유전자에 나쁜 일이 일어날 때 |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 체험을 통한 학습

Chapter 20 최후의 적응
에스컬레이터의 엔진 | 도구 사용 | 의사소통 | 사회적 사다리 올라가기 | 판다의 엄지 | 진화론적 서사시

Chapter 21 인류는 거대한 전지구적인 ‘뇌’
우리는 하나의 생물일까? | 거대한 전지구적 뇌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 진화의 목적 | 자연선택이 낳은 자연선택

Chapter 22 신의 진화
의미의 원천 | 의미의 성장 | 선의 기원 | 선의 성장 | 선의 미래 | 신의 미래 | 오늘날의 설교 | 태초의 말씀

부록 1 _ 넌제로섬 원리에 대해서
부록 2 _ 사회적 복잡도란 무엇인가?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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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32
역사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의 문화 진화주의나 19세기 진보주의 역사관의 모든 교의와 신조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모든 면에서 자유와 평등이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기쁨에 찬 예측을 내놓을 수 없다. 실제로 나는 어떤 면에서는 역사가 인간의 자유를 향해 나간다고 보지만 또 다른 면에서 자유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출현하고 있는 사회 구조에는 멋지고 훌륭한 측면이 있는가하면 두려운 측면도 있다. 다행히 이러한 구조는 장기적으로는 대체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세부적인 면까지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역사의 기본적 방향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것인지 오히려 더 구속할 것인지, 우리의 삶을 지금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줄지 지금보다 못한 것으로 만들어줄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고자 한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역사의 기본적인 방향이 인간을 도덕적으로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세상사의 혼탁한 표면을 걷어내고 그 아래를 들여다보면 특정 세력의 번영과 몰락을 넘어서는, 역사의 무대에 거들먹거리며 등장했다 사라졌던 “위대한 인물”들의 일화를 뛰어넘는, 수만 년 전에 출발해 긴 역사를 관통해 오늘날에 이르는 화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앞을 바라보면 그 화살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1장 문화 진화의 사다리) 접기


P.38~39
산토끼들을 잡기 위해서 쇼숀 인디언들이 사용한 도구는 한 가족이 다루기에는 너무 컸다. 그들은 토끼를 길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그물로 몰아넣은 뒤에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이와 같이 토끼 사냥을 할 때에는 사회 조직에 대한 요건이 충족되었다. 평상시에는 독립적으로 살아가던 여남은 가족들이 잠시 동안 한데 모여서 ‘토끼 대장’의 지휘 하에 서로 협동한다. 쇼숀 인디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최소한”의 조직 형태로 살아가지만 갑자기 넌제로섬 원리가 출현하는 순간에는 잠재되어 있던 사회적 기술이 전면으로 나오고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게 된다.
넌제로섬 이익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사회의 복잡성을 높여준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중언부언이나 마찬가지이다. 넌제로섬 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다 보면 대개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게 된다. 게임 참가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다른 이들과 조화롭게 맞추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궤도대로 돌아가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태양계를 형성해서 더 큰 규모의 동조하는 전체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집단 안에서 노동의 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어떤 이는 그물을 만들고 또 어떤 이들은 그물을 치고 또 다른 이들은 토끼를 몰아대는 식으로 말이다. 조금 전까지 독립적인 채집인이었던 사람이 이제 통합된 토끼 사냥팀의 일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 팀의 각 구성원들 간에는 분화가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 모두 일체가 되어 함께 움직인다. 복잡한 결합이 실현되었다.
(2장 그 옛날 우리의 모습) 접기




P.89
인구 증가가 기술적·경제적·정치적 발전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그와 같은 발전이 인구 증가를 촉진한다. 이러한 공생적 성장에는 거역할 수 없는 문화적 복잡화의 힘이 놓여 있다. 인구 성장의 ‘부정적(문제점)’ 측면을 강조하든 ‘긍정적(기회)’ 측면을 강조하든 인구 성장과 문화 진화는 상호적 양의 되먹임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많아지면 문화가 발전하고, 문화가 발전하면 인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인구 증가의 ‘부정적’ 측면(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의 압력)은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이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서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쌓여가는 물건 중 상당수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심지어 지금으로부터 50,000년도 더 전인 중기 구석기 시대에도 사람들은 물감의 원료로 쓰인 황토나 황철광 결정 등에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중석기 시대에는 보석과 같은 ‘사치품’이 총생산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4장 보이지 않는 뇌) 접기
P.97~98
그러나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제로섬 원리로 일관된 것은 아니다. 그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비록 전쟁이 두 집단 사이에 제로섬 동력을 끼워 넣는 것이 사실이지만 각 집단 안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만일 도끼를 휘두르는 살기등등한 자들이 당신의 촌락을 둘러싸게 된다면 당신과 이웃 주민들의 관계는 즉각 넌제로섬 원리를 향해 선회하게 된다. 서로 힘을 합쳐 조화롭게 움직인다면 공격을 막아낼 수도 있겠지만 촌락 사람들이 사분오열된다면 촌락은 함락될 것이다.
도끼를 휘두르는 공격자들 사이에서도 이와 동일한 상호의존성이 존재하게 된다. 승리에 대한 최선의 희망은 역시 조화로운 협동에 놓여 있다. 따라서 당신이 어느 편에 속하든 간에 당신과 같은 촌락 사람들은 한 배를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촌락 사람들은 각자의 운명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나 서로 운명을 공유하고 있느냐, 그것은 사실상 넌제로섬 원리를 나타내주는 간단하지만 훌륭한 지표이다. 전쟁은 각 집단 내부 사람들 사이의 운명의 공유 정도를 높임으로써 넌제로섬 원리를 빚어내고 그것은 문화의 진화를 더욱 심원하고 광대한 사회적 복잡성을 향해 나가도록 촉진한다.
(5장 전쟁,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접기
P.130~131
이 모든 사실을 살펴볼 때 농업의 출현은 대대적인 혁명이라기보다는 점진적인 진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수렵·채집사회의 사람들은 식량의 획득을 증강하고 한정된 땅에서 더 많은 양의 식량을 얻기 위해 땀 흘려 노력해왔다. 자연의 ‘평형 상태’ 개념에 대해 의심을 표명한 최초의 인류학자인 마크 네이단 코헨의 말을 빌자면 농업은 “기존의 생계를 위한 생활양식 패턴과 아무런 개념적 단절을 보이지 않는다.”
농업은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구조를 뒤바꾼 혁명적인 기술로 판명되었다. 실제로 농업이 출현한 이후의 사회 변화 속도는 농업 이전 사회의 느린 변화에 비하여 너무나 획기적으로 빠른 것이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평형equilibrium’ 상태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혼란 상태가 가뭄이라든지 빙하의 감소와 같은 외부적이고 변덕스러운 힘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노력이나 인구 증가와 같은 내부적이고 내재되어 있는 힘에 의해 빚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6장 농업의 필연성) 접기
P.163
‘문자 = 문명화’라는 공식에 대한 대략적이나마 정당성을 찾아보자면(실제로 어느 정도 정당화의 여지가 있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좀 더 기술적인 의미에서 ‘문명화’는 종종 국가 수준의 조직화에 도달한 사회를 일컫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문자가 국가의 성립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국가의 진화에 도움을 주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문자는 완전히 새로운 넌제로섬 영역을 열어젖히며 추장사회에서 국가로 넘어가는 전이 과정을 매끄럽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전 세계에 걸쳐서 국가 수준의 사회들은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가 국가 수준으로, 기술적 의미에서 문명화 수준으로 진보해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문명화, 즉 문명화된 행동의 장으로서의 문명화로 나아가는 길을 닦아준다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우리는 엄밀한 의미라기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문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문자는 궁극적으로 독재자의 권력을 침식해 들어가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우리는 데이터 처리 과정의 발달에서 나타난 다른 문턱들, 이를테면 인쇄기나 인터넷의 출현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우리는 문자가 애초에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쇄기나 인터넷 역시 ─어떤 의미에서─ 데이터 저장 및 전달 방식에 일어난 이 태고의 혁명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7장 두번째 정보혁명) 접기
P.183~184
고대 국가에서 진화되었던 기본적인 정보 기술에는 문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돈(표준화된 통화) 역시 일종의 정보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은 개인이 과거에 수행한 노동과 그 노동에 대해 사회가 평가하는 가치를 기록한다. 한편 우리가 돈을 쓸 때 그 행위는 일종의 신호가 된다.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혹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해주고 비록 간접적이긴 하나 그 정보를 당신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돈은 더욱 큰 보이지 않는 손의 신경계를 흘러 다니면서 공급자에게 수요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돈에 대해 많은 불평이 쏟아져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사람들을 짓밟고 억누르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돈은 오히려 억압에 대한 해법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돈은 읽고 쓸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지배받는 중앙통제경제에 대한 대안을 제공해준 셈이다. 만일 어떤 경제적 정보 기술을 당신에게 유리하도록 하려면 대개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 자신이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7장 두 번째 정보혁명) 접기
P.235
자, 고맙다, 미개인들이여! 우세한 문명이 정체되고 쇠퇴하여 넌제로섬의 행진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게 되면 ─문화진화론자의 시각으로 볼 때─그 문명에는 골칫거리가 생겨 마땅하다. 그런 다음 그 시스템을 산산조각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다. 게다가 미개인들이 문명화된 밈들을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드러난 이상, 아예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문화의 재건이 얼마나 자주 필요한지를 생각해볼 때 문화 해체반이라는 미개인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게 부각된다.233p
어떤 의미에서 미개인들은 문화의 진화에서 일반적이고 효과적인 제로섬 동력의 한 특수한 사례, 즉 이웃한 사회들 사이의 냉혹한 경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쟁은 경직된 사회를 크든 작든 재건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동요하도록 만든다. 그와 같은 사회는 주변의 거대한 문명에 흡수되어 동화될 수도 있다. 혹은 그들은 미개인의 침입을 받아서 미개인의 손에 의해 해체된 후에 나중에 다시 집결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사회는 재생하여 다시 주도권을 잡게 될 수도 있다. 아놀드 토인비가 강조한 ‘도전과 응전’의 동력에 따라서. 어떤 경우든 요점은 항상 동일하다. 착취, 독재, 자기 권력의 확대의 성향이 아무리 뿌리 깊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성향에 굴복해버리는 사회는 이 세상에 오래 발붙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10장 우리의 친구 미개인들) 접기
P.277
중국의 수력 방적기에 경탄한 마크 엘빈은 “만일 당시 중국이 보였던 발전 양상이 그 뒤를 이어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갔더라면 중세 중국은 향후 서양보다 400년이나 앞서서 직물 생산 분야에서 진정한 산업혁명을 일구어냈을 것이다.”
중세 말기 세계적 우위를 점유한 중국의 휘황찬란한 모습을 마주하고서 끈질긴 유럽중심주의자들은 그 사실을 자기네 입맛에 맞게 요리했다. 중국이 스스로 산업혁명을 이루어낼 기회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섰는지를 우리 모두 알게 된 이상 실제로 그 기회를 실현시키지 못한 것은 훨씬 더 용서받지 못할 못난 짓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때 성실하지만 아둔한 학생으로 평가받던 중국은 이제 머리는 좋은데 성적이 안 좋은 학생으로 재분류되었다. 어쨌거나 여전히 낙제점인 것은 변함없다. “불가사의한 점은 중국이 그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랜즈는 못 박았다.
(12장 불가사의한 동양) 접기
P.288~301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만일 ‘유럽의 기적’의 핵심이 지리적 상황에 있다면, 유럽과 중국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상대적 근접성이라는 지리적 상황의 차이가 아니라 유럽과 중국의 정치적 지형이라는 지리적 상황의 차이에 있다. 유럽은 밈들을 시험할 수많은 독립적인 실험실들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중국은 정치적 단일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단일성은 일상적 거래에 있어서는 좋은 자산이지만 기술적 우위를 놓고 벌이는 장기적 경주에서는 장애가 될 수 있다.
인쇄기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 혁명을 가져온 정보 기술을 위해 길을 닦아준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쇄기는 그러한 혁명의 전조가 되었다. 독특하고 어떤 면에서 역설적인 결과에 의해 인쇄기의 혁명은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microelectronics 혁명의 최종 국면과 유사하다. 실제로 인터넷이 우리의 정치적·사회적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데 있어서, 과거에 인쇄기가 사람들의 정치적·사회적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역사적 통찰이 아닐 수 없다. 현대(오늘날)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근대 초기를 닮았다. 그 정도가 더 클 뿐이다.
(12장 불가사의한 동양)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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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놀랍고 경이로운 책’이라고 극찬했던『도덕적 동물』의 저자 로버트 라이트의 최고의 걸작! 로버트 라이트의 전작『도덕적 동물』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재미있고 친절한 개요를 제공해주었다. 이책 『넌제로』에서 라이트는 그보다 훨씬 더 야심찬 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인류 문화의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류는 전 지구적 규모로 한층 더 높은 협력의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진화론의 지평을 그 앞과 뒤로 확장했다. 또 라이트는 놀라울 만큼 설득력 있게 역사에서 방향성을 찾아냈다. 단지 지난 몇 천 년 동안의 역사가 아니라 거의 40억년에 이르는, 지구상에서 생명이시작된 순간부터의 역사에서 말이다. 라이트는 비범한 통찰이 넘치고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썼다. 역사에 방향성과 목적이 있다는 주장은 예전에도 떠올랐다가 수그러지곤 했다. 이제 라이트의 우아하고 정교한 통합에 의해 다시 한 번 그 개념이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역사, 신학, 경제학, 게임이론, 진화생물학의 눈부신 혼합체이다. - 포춘지
-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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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로버트 라이트 (Robert Wright)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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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대학에서 공공문제와 국제관계, 그리고 진화심리학의 전신인 사회생물학을 공부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진화심리학, 역사, 종교, 전쟁, 기술 등의 주제로 대중과 소통하는 저널리스트의 경력을 쌓아왔다. <뉴요커> <애틀랜틱> <타임> <뉴리퍼블릭> 등 주요 잡지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사이언스> 기자로 근무하며 쓴 과학, 기술, 철학에 대한 칼럼으로 ‘미국 잡지상’을 수상했다. 첫 번째 저서인 『세 과학자와 그들의 신』(1989)이 ‘전미 도서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저술가로 부상했다. 그의 두 번째 책 『도덕적 동...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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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원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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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식품 영양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인문 과학서를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는 《공기》, 《에덴의 용》, 《진화란 무엇인가》, 《섹스의 진화》, 《스피노자의 뇌》, 《넌제로》, 《슬로우데스》, 《루시퍼 이펙트》, 《급진적 진화》, 《사랑의 발견》, 《세계를 바꾼 지도》, 《꿈》, 《빵의 역사》(공역) 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4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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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전작 <도덕적 동물>로 찬사를 받은 로버트 라이트가 넌제로섬 원리라는 렌즈를 통하여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역사에 방향성이 있다는 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다. 그는 인류의 문화적 진화라는 독창적이고 광활한 여행지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본적인 도구와 기술의 발달과 농업의 발견, 추장사회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확대되는 사회 집단, 역사에서 전쟁의 역할, 문자와 인쇄의 의의, 그리고 돈과 거래와 통신의 놀라운 위력 등을 마주하게 된다. 또 봉건주의, 자본시장, 환경문제, 초국가적 조직 등을 차례로 방문하게 되며 이러한 역사의 진화와 인간의 협동을 ‘넌제로섬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역사의 방향성은 결국 예정되어 있는 ‘하나 된 세계’로 향해 나아갈 것으로 보았으며, 그 실례로 UN, EU, IMF, WTO 등 초국가적인 형태의 집단의 등장과 형성과정, 그 미래를 진단한다. 실제로 EU는 2009년 11월 19일 EU대통령과 외무장관을 선출할 예정이고 2009년 12월 1일 정식으로 리스본 조약이 발효된다.

생물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점점 더 그 수가 늘어나고,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정교해지는 넌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넌제로섬 원리는 일종의 잠재력이다. 어떻게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서 전체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넌제로섬 원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생명이 나아가는 기본적인 방향에 일종의 추진력을 제공한다. 이 원리는 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질 경우 생물의 진화가 고도로 지능이 발달한 생명체, 즉 기술과 문화의 다른 측면들을 생성해낼 수 있을 만큼 영리한 존재를 창조해낼 가능성이 높은지 설명해준다. 이 원리는 또한 생물학적 진화의 뒤를 이어 일어나는 기술, 좀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문화의 진화가 그 지능을 가진 종의 사회 구조를 더 풍부하게 하고 확장시켜 궁극적으로 행성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 조직을 형성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지 설명해준다. 저자는 세계화가 증기선이나 전신 장치가 발명된 시점보다도, 아니 심지어 우리가 문자나 바퀴를 발명한 시점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생명의 탄생 순간부터 미리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었으며, 그 이후 전 역사에 걸쳐서 넌제로섬 원리의 가차 없는 논리는 해가 갈수록 국가들 간의 관계가 점점 더 많은 넌제로섬을 만들어내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를 지향해왔다고 강조한다.

▣ 자연의 비밀 계획

18세기 칸트는 「세계주의적 목적을 가진 보편적인 역사학에 대한 관념Idea for a Universal History with a Cosmopolitan Purpose」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쳐놓았다. 이 에세이는 인간의 역사가 ‘자연의 숨겨진 계획’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서 우리는 “인류가 궁극적으로 자연에 의해 심어진 씨앗이 완전히 만개하고 이 지상에서의 인간의 운명이 완전하게 실현된 사태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칸트가 상상한 완성된 인간의 운명은 국가들 간에 평화가 지속되고 일종의 세계 정부에 의해 그 평화가 유지되는 상황을 포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수천 년 간의 반목과 ‘비사회적’(비사회적 사회성)다툼에 대한 궁극적인 보상인 셈이다.


▣ 논점

넌제로에서 논의 되는 중점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계 속에서 상호 협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자연 도태를 증명하는 것이다. 라이트는 자연 도태가 발생하는 것이 서로간의 의사소통이나, 상호협력의 정도 또는 신뢰의 정도가 증가하는 것과는 독립적이라고 쓰고 있다. 이 독립적인 특성은 지능을 말하는데, 인류의 지능은 유기체의 진화과정에서 얻은 최고의 정보들만을 가지고 정점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생물의 역사에서도 정보 처리과정을 통해 생물의 자연 도태가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증거들이 나타난다. 공격하는 이에게 매서운 화학 물질을 뿌리는 능력을 가진 곤충인 폭격수 딱정벌레를 예를 들어보자. 이것은 다시 말해서, 이 스프레이 공격을 피하는 능력을 가진 약탈자만이 자연 도태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라이트가 말하고 있듯이, “복잡함은 복잡함을 만들어 낸다.” 이런 상황은 종종 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군비 경쟁’의 대재앙으로 묘사되곤 한다. 유기체들이 다른 종과의 경쟁을 통해 얻은 것을 쌓아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증가하는 세계의 복잡함 때문에 지능은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되어있고 심지어 필연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와 생물의 역사의 전체를 보았을 때, 라이트는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관점과 전형적으로 대립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굴드는 그의 책에서“인간은 단지 제비뽑기의 행운으로 여기까지 왔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라이트는 진화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다섯 개의 손가락, 발가락처럼 필연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도구를 개발하고 발달된 기술을 사용하는 고지능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는 유기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또 라이트는 인간의 역사와 생물의 진화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것, 즉 단일성이라고 주장했다.
첫째, 두과정이 동일한 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는 단순히 문화적 변화에 대한 그럴듯한 메타포가 아니고, 몇몇 기본적인 수준에서 문화의 진화와 생물의 진화는 동일한 기작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 문화의 진화와 생물의 진화는 동일한 연료를 이용하는데 이것은 제로섬의 힘과 넌제로섬의 힘 사이의 활기찬 상호작용이 이 두 종류의 진화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며



셋째, 두 과정은 평행을 이루고 있어서 같은 방향, 즉 장기적으로 넌제로섬 원리가 증대되고 그 결과로 복잡성의 정도가 더 깊고 넓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실제로 생물의 진화는 충분히 긴 시간이 주어지면 문화의 진화를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복잡하고 지적인 생물을 낳을 것이라고 보았고, 문화의 진화는 본질적으로 진화의 총괄적인 경향을 더 심원하고 더 광대한 복잡성을 향해 이끈다고 말한다.


▣ 인간 사회의 복잡함과 넌제로섬 해결

라이트는 인간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넌제로섬의 이익”을 수확할 가능성도 증가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전자통신을 통한 의사소통은 세계적인 수준의 무역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생산할 수 없거나 자국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무역이라는 것을 통해 다양한 사회 간에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괜찮은 방법’은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 유사하게, 세계 정부는 공통의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외계인이 침략한다거나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거나 하는 문제에서 세계는 그들의 통신 기술을 사용하여 사회를 하나로 묶어 방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보는 관점은 가이아 이론과도 유사하다. 물론 사회가 결합해서 싸워야할 공공의 적은 항상 북극의 빙하는 아니다. 때로는 다른 인류일 수도 있다. 라이트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다루었다. 국가 간의 전쟁이 종종 기술과 문화의 진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2차 세계 대전은 맨해튼프로젝트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넓게 보았을 때, 궁극적으로 혜택을 줄 수도 있을 원자 에너지를 개발하고, 그와 관련된 기술 개발에 이바지 했다. 더 나아가, 진보된 사회의 국가는 전쟁에서 더 승리할 확률이 많고, 국가 정부 시스템을 하나의 기술로써 전파 할 수도 있다고 역설한다. 접기






밈의 진화로서의 역사


이책의 주장은 ‘진화에는 방향이 있다’ 단 한줄로 정리할 수 잇다. 생물이든 사회이든 문화이든 진화는 모두 방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진화에 방향이 있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많은 상관이 잇다.

원시, 야만, 미개.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면서도 그 의미 그대로를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바르지 못한 것이(politically incorrect) 되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어떤 사회는 높고 어떤 사회는 낮다고 서열을 매기는 것은 점점 불쾌하고 불미스럽게 여겨지게 되었다.”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기준이 잇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그 기준이 옳은 것인가? “인간의 문화가 특정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옳을 수 있는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문화상대론의 입장이다.

문화상대론이 대세가 된 것은 19세기 유럽인들이 진화란 말을 오용해 자신들의 우월감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부당한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당한 오용은 나치의 인종청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600만 유대인의 시체 앞에서 문화상대론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되었고 20세기 중반이 되면 문화의 진화라는 개념은 “거의 멸종 지경에 이른 생물의 신세가 되엇다.” 그러나 문화 또는 사회가 진화 또는 진보한다고 말하는 것이 학문적으로도 옳지 않은 것인가? 저자는 묻는다.

“마크 트웨인은 북미 서부에 살던 쇼숀 인디언을 가리켜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목격한 인종 가운데 가장 형편없는 인종’이라고 말햇다. 그들은 ‘촌락도 없고 엄밀한 의미에서 부족사회라고 할 만한 조직마저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형편없는 인종”이란 말은 정확한 말이엇다.

“미국 인디언 문화를 다룬 어떤 책은 쇼숀 인디언을 다룬 부분의 소제목을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최소한의 사회’라 달았다. 쇼숀 인디언들에게 사회조직의 안정적인 최대 단위는 가족이었다. 그리고 가족의 남성 가장은 ‘유일한 정치 조직이며 사법체계 전체’였다. 쇼숀 인디언들은 가족 단위로 수개월씩 가방 하나 짊어지고 땅 파는 막대 하나 손에 들고 나무뿌리나 씨앗을 찾아 사막을 헤매고 다녓다.”

쇼숀 인디언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다른가? 저자의 질문이다. 저자의 답은 이책의 제목에 나와있다. “역사가 진보함에 따라 인간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넌제로섬 게임을 하게 된다. 상호의존은 점점 확대되고 사회의 복잡성 역시 더 큰 폭으로 더 깊이 증대되어 간다.” 저자가 이책에서 하려는 말의 전부이다.

사회는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변하며 그 복잡성은 더 많은 사람과 협력(넌제로섬 게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하는 결과이다. 저자가 말하는 진화의 방향이란 복잡성의 증가를 의미한다. 역사를 볼 때 이는 법칙처럼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복잡성의 증가가 법칙처럼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의 유전자에 뿌리를 두고 잇다.

“자연선택은 ‘호혜적 이타주의’의 진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양한 종류의 충동을 심어놓았다. 관대함과 감사,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의무감, 보답하는 사람(친구)에 대한 신뢰와 공감. 그 충동은 언뜻 보기에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감상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상 상호이익을 도모하고려는 냉정하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설계되엇다.” 따뜻한 충동의 이유는 차가운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주면 돌려받지 못한다면 즉 호혜적이지(또는 공정하지) 못하다면 따뜻함은 차가움으로 돌변한다.

“이러한 사실은 일부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실망스러운 것일 수도 잇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복잡한 사회구조를 짖한다면 이러한 특질은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 보답에 대한 인간 본성의 레이저처럼 정확한 초점은 문화 진화의 원동력이다. 본능적으로 깨우쳐진 이기심은 현대사회의 씨앗이라 할 수 잇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와 수렵채집 경제 간의 차이는 게임에 참여하는 손의 수, 그리고 그 손들의 상호의존성의 복잡하게 얽혀진 정도에 있다.”

물론 인간은 협력만 하지 않는다. 협력자도 얼마든지 경쟁자로 돌변한다. 협력은 공동체를 만든다. 그러나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공동체에는 누구에게나 돌아갈 수 없는 희소한 자원이 있다. ‘사회적 지위’이다. 사회적 지위는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얻는 방법 중 하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채택되고 칭송받을 만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성은 넌제로섬 게임이 아닌 제로섬 게임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천재라 불리던 사람들이 가장 창조적이엇을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라. 모두 결혼적령기인 20대 내지는 30대였다. 예술적, 지적 창조성이 꽃피는 이유는 성적 매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저자는 사회적 지위를 위한 경쟁 역시 마찬가지라 말한다.

모순적이다.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것은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위에 대한 경쟁에서 성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새로운 넌제로섬 게임을 창조하는 기술을 발명하는 것이다. 이는 문화의 진화, 사회의 복잡성 증가의 이면에 인간 본성의 역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넌제로섬 게임과 제로섬 게임을 모두 벌인다. 이 두 힘 사이의 긴장은 많은 고통의 원천이 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엄청난 창조력을 낳았다.”


저자는 이런 모순을 칸트의 말을 빌려 ‘비사회적 사회성(unsocial sociability)’라 말한다. “명예, 권력, 부에 대한 욕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동료들 사이에서 지위를 추구하도록 몰아댄다. 그 동료들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존재이지만 또한 그들을 떠나는 것 역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러한 지위에 대한 추구를 통해서 미개 상태에서 문화에 이르는 첫걸음을 내딛으며 이는 인간의 사회적 가치에 내재되어 있다.” 칸트의 말이다.

“문화의 진화를 일으키는 추진력에는 바로 권력의 추구, 남들 앞에 뽑내고 으쓱대는 즐거움, 생존을 위한 핵심적인 도구에서부터 별로 쓸데없는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물질적 대상에 대한 갈망 등도 포함된다.” 전통적 이론은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고도화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과 협력이 가능해진다는 말이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이 모여도 될만큼 ‘잉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잉여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960년 인류학자인 로버트 카네이로는 아마존 정글에 사는 쿠이쿠루족에 대한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햇다. 그들은 아마존 정글에 살면서 주식이자 타피오카 전분의 원료인 마니오크를 재배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생산량을 두배나 세배쯤 증가시킬 수잇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여가 시간을 선택햇다. 그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대성당을 설계한다든지 그밖의 일반적으로 그들이 사는 사는 터를 개선하는데 쓰는 법이 거의 없엇다.”

잉여를 만들 수 잇는 환경이 주어진다해도 잉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잉여는 어디서 온것인가? 저자는 인구밀도라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려면 두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값싼 운송수단과 값싼 통신수단이다. 정보와 유통비용이 작을수록 보이지 않는 손은 매끄럽고 활발하게 작동한다. “이러한 비용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넌제로섬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얻는 파이는 더 커진다. 또한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수록 인구대비 교환망의 생산성은 더 높아진다. “ 비용을 낮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객과 공급자를 모두 곁에 두도록 가깝게 밀집해” 사는 것이다. “천하태평하게 보였던 마니오크 재배자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야심이 아니라 인구밀도엿을지도 모른다. 그 지역에 국한된 것과 다른 수공예품이나 자연자원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면 마니오크 농부들은 그와 같은 물건과 바꾸기 위해 마니오크 생산량을 늘렸을 rrejt이. 나중에 유럽인들이 멋지고 신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들어와 거래를 시도하자 그들의 마니오크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햇다”

“인구규모가 더 크고 밀도가 더 높을수록 더욱 진보한 기술과 더욱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게 되리라고 즉 인구규모 및 밀도와 기술 및 사회의 복잡성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숭 있다.” 전통적으로 가정했던 것처럼 잉여가 먼저 있고 그 잉여를 교환하는 시장이 있고 잉여가 부양하는 사회가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시장이 먼저 있고 사회가 먼저 있은 후 잉여가 만들어졋다는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잉여를 사람들이 어떻게 거래했는가이다. 시장에서 거래된, 사람들이 원한 물건” 중 상당수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심지어 5만년도 더 전인 중기 구석기 시대에도 사람들은 물감의 원료인 쓰인황토나 황철광 결정 등에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중석기 시대에는 보석과 같은 ‘사치품’ 총생산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햇다. 이와 같은 지위 상징물을 얻는데 엄청난 노력이 투입되었다. 이러한 물건들은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넘어 거래되었다.” 시장이 만들어지고 복잡한 사회가 만들어지게 한 “원동력은 바로 지위 경쟁이 부추긴 인간의 허영심이엇다.”

생각을 자극하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는 협력과 (이기적인) 경쟁의 긴장이라 말한다. 역사는 단순한 수렵채집 사회에서 조직화된 마을로 그리고 국가와 초국적기업으로 사회의 복잡성을 높여왔다. 그것은 점점 더 큰 규모로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더 복잡하고 수익성 잇는 넌제로섬 게임을 하는 방법을 찾아낸 결과라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그 넌제로섬 게임은 제로섬 게임과의 긴장에서만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잇기에 경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그 경쟁에서 이기려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을 위해 협력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혁신을 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협력하게 만드는 경쟁이다.

그런 긴장은 집단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 집단간에도 있다고 그리고 그 집단간 긴장은 집단내 긴장보다 더 강력한 진화의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 촌락의 남자들이 다른 촌락을 습격해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납치한다면 대기는 온통 제로섬 원리로 가득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란 제로섬 게임은 넌제로섬 게임을 낳는다. “도끼를 휘두르는 살기등등한 자들이 당신의 촌락을 포위하면 당신과 이웃의 관계는 즉각 넌제로섬 원리를 향해 선회하게 된다. 전쟁은 각 집단 내부 사람들 사이의 운명의 공유 정도를 높임으로써 넌제로섬 원리를 빚어내고 그것은 문화의 진화를 더욱 심원하고 광대한 사회적 복잡성을 향해 나가도록 촉진한다.” 더나아가 전쟁이란 제로섬 게임은 집단의 경계를 넘어 넌제로섬 게임이 확장되도록 한다. “공격을 막아내거나 공격을 도모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촌락과 동맹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어느 한쪽에서 이러한 동맹을 맺게 되면 그 적 역시 동맹을 찾아나설 동기가 충분해진다. 이런 식으로 경쟁적으로 동맹의 수를 늘리다 보면 사회적 그물망이 밖으로 확산되면서 점점 더 많은 촌락들을 그 망안으로 엮어들이는 조직화의 ‘군비경쟁’이 벌어진다.”

전쟁은 집단의 합병과 더 큰 규모의 정치적 조직화의 방향을 설정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강렬하고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전쟁이 넌제로섬 게임을 창조한 것이다.”

협력을 위해 집단을 만들지만 그 집단 안의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은 협력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집단간의 전쟁이란 경쟁은 집단간의 협력을 강화한다. “이러한 작용은 문화의 진화 사다리의 위쪽으로 점점 올라가게 된다. 사회조직의 균열(가족이나 촌락이나 추장사회나 국가들 사이의 마찰이 일어나는 제로섬 영역)은 점점 넌제로선 원리라는 시멘트로 채워진다. 제로섬 원리는 아래서부터 차오르는 시멘트에 의해 점점 더 조직화되어 사다리의 위쪽으로 물러난다. 그리고 낮은 수준에서는 여전히 역설적이게도 사회를 통합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칸트가 강조한 ‘비사회적 사회성’으로 귀결된다. ‘사회성’의 영역(평화가 지배하는 지리적 범위)은 수렵채집사회 이후로 엄청나게 증가해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정도의 비사회성을 굴복시켜왔다. 그러나 이러한 비사회성의 굴복을 촉진한 것은 얄굿게도 대다수의 경우가 더 높은 수준의 비사회성에 의한 것이엇다. 이러한 문화진화의 동력을 다윈의 말로 하자면 ‘선택되는’ 것은 점점 확산되는 넌제로섬 원리이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주체는 대개 전쟁의 제로섬 속성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결국 전쟁을 도모하는 것은 평화를 도모하는 일이다.”

농업 역시 저자는 그런 협력과 경쟁의 상호작용에서 태어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농업은 야생에서자란 것을 주어모으는 것보다 비용대비이익이 부족하다. 수렵채집으로 1주일 먹거리를 마련하는데는 몇시간의 노동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왜 농업이 태어난 것일까? 우선 사회적 지위 추구를 말할 수 잇다고 저자는 말한다. “원시농업사회에 진입한 수렵채집사회에서 경작된 야생 식물들은 대개 공동체 전체의 소유가 아니었다. 특정집안이나 한 가문이 그 식물들을 소유하고 있었고 거기서 얻어지는 산물을 이웃에게 나누어주었다.’ 당연히 그 집안 또는 가문의 지위는 높아진다. 오늘날에도 “교외 주택가나 작은 촌락에서 열성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이웃들에게 신선한 토마토나 꽃을 나누어줌으로써 동네에서 신망을 얻게된다.” 그리고 재배한 작물은 ‘진귀한 구리 방패와 교환될 수도 있었다. 농사는 가족 수준의 집단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사적 사업이다. 갓 결혼한 젊은 야노마모족 남성이 작품을 심기 위해 밭을 갈고 잇다면 그는 촌락 전체의 이익을 위해 땀을 흘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종의 무리라고 할 수 있는 식량을 둘러싸고 벌어진 군비경쟁이 농업 발달을 일궈낸 것이다.”

그리고 농업은 비유적으로 뿐 아니라 말 그대로 군비경쟁의 일부였다 “원시 시대의 전쟁에서 순수한 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농업은 수렵채집보다 훨씬 큰 규모의 거주지를 지탱해줄 수 있었다. 두 촌락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농업이 거부할 수 없을만큼 유혹적인 삶의 방식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는 농업이란 “사회집단 안에서 지위를 놓고 벌어지는 투쟁, 사회집단 사이의 무력 투쟁, 빈곤에 대항한 투쟁” 이 세가지로 설명된다고 말한다.

농업은 잉여를 만들고 그 잉여는 추장이나 왕, 귀족과 같은 무임승차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일부 좌파적 관점에서 말하듯 그런 무임승차가 무임승차만은 아니다. “추장사회의 착취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화폐가 없는 경제체제에서 사회가 돌아가도록 돌보는 다시 말해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는 데 따르는 추장들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추장들의 자원 제한에 있어써 흔히 발견되는 전술은 ‘물에 대한 지배’를 ‘사람에 대한 지배’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교과서는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일부 경에 이 설명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 댐을 건설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에게 댐에 저장한 물을 댈 수잇는 땅을 나눠준 하와이 주창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단 그는 댐이 만들어지도록 할 수 잇었다. 그 다음 그는 넌제로섬 이익을 얻는 길에 도사리는 장애물, 바로 무임승자자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잇었다.” 물론 추장이란 존재 자체가 “어느 정도 착취를 부추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공공복지에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재부분시스템의 살아있는 문맥 안에서 볼 때 (거대한) 무덤 거석, 사원 등은 기능적 요소로 나타나며 농업 생산에 대한 의식의 상화에 따라 증가되는 수확에 비해 그 비용은 미미하다.” 추장사회에서 국가까지 이어진 정치시스템의 진화는 더 큰 규모의 협력이 진화해간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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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자는 밈이란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 사회의 진화는 교역, 농업, 전쟁, 정치 등의 밈을 낳는 진화이며 밈을 통한 진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킨스의 원래 주장과 달리 저자는 넌제로섬 게임이 만든 인간의 뇌보다 인간의 네트웤이 이루어 만드는 더 거대한 뇌(저자는 이것을 보이지 않는 뇌라 말한다), 즉 인간집단을 밈의 운반자로 본다.

“문화의 진화는 단순히 밈들이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저 사람의 머릿속으로 폴짝폭짝 건너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임들은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건너 뛰어다닌다. 추장사회들은 서로 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가장 도움이 도는 문화가 우세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밈은 자연선택에 의해 성공자의 밈으로 교체된다. 이처럼 혹독한 문화적 선택의 시험을 통과하여 살아남고 그 결과 전체 사회의 모습을 형성하는데 기여해온 밈들이 많은 경우에 넌제로섬 사호작용을 촉진한다는 것이 바로 이책의 전제이다.” 그러므로 밈을 바이러스와 비교하는 것은 그리 생산적인 논의가 아니라 저자는 말한다. 나쁜 밈은 집단의 경쟁에 의해 도태되기 때문이다.

문자와 화폐는 그런 밈의 또 다른 예라 저자는 말한다. 문자와 화폐는 정보비용과 교통비용을 확기적으로 낮추어 보이지 않는 손을 더 활발하게 만들었다. 농업과 추장, 국가 등의 밈이 독자적으로 여기저기서 발명되었듯이 문자와 화폐 역시 독자적으로 여러 번 발명된 것을 저자는 진화의 방향성을 증명하는 좋은 예라 말한다.

문자는 정보비용을 낮추어 집단을 더 쉽게 단결하게 하고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을 더 쉽게 뭉치게 한다. 과거 귀족계급이 강력한 힘을 가졌던 것은 그들이 문자를 독점했고 그 문자를 통해 단결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문자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후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민주화가 일어난 것 역시 같은 논리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문자와 돈과 정보기술은 “사회 안의 권력을 재분배한다.”

돈이 왜 정보기술의 혁신인지 집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돈은 개인이 과거에 수행한 노동과 그 노동에 대해 사회가 평가하는 가치를 기록한다. 한편 우리가 돈을 쓸 때 그 행위는 일종의 신호가 된다.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혹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해주고 비록 간접적이긴 하나 그 정보를 당신으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잇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돈은 억압에 대한 해법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돈은 읽고 쓸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지배받는 중앙통제경제에 대한 대안을 제공해준 셈이다. 만일 어떤 경제적 정보기6nf을 당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 자신이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노예제도, 인간의 희생. 적당한 형태의 착취 등은 오랜 시간을 거쳐 차츰 사라져갔다. 오늘날 문명은 고대의 문명보다 더욱 ‘문명화’되었다. 그리고 그 주요원인은 돈과 문자가 오랜 시간 동안 진화되어온 방식과 그 둘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있다.”

밈의 진화에 비하면 어떤 국가, 제국, 문명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케네스 클라크는 1969년 BBC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지침서 ‘문명’의 한 장에서 ‘구사일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책의 전제는 서구 문명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중세 초기를 일컬어 암흑기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는 계속해서 관심을 끌어온 주제이다. 토머스 카힐의 베스트셀러 ‘아일랜드인들이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라는 책에서도 부각되엇다. 카힐은 아일랜드의 필사자들에게 특별한 상찬을 보냈다. 중세 초기는 그 당시로 돌아가보면 희미하고 어두컴컴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질문은 쓸데없는 것이라 말한다. “설사 수도승들이 없었다하더라도 유럽은 결국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으로 다시 도약했을 것이다. 중세 말기 서양문명이 다시 소생한 것이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힌 것임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밈을 주목하라’이다. 문화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펄쩍펄쩍뛰어다니며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를 남기지만 자기 자신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미개인이 로마를 휩쓸어비리기 훨씬 점부터 로마제국의 중심은 공식적으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졋다. 그곳 비잔틴의 동로마제국에서는 고전문화의 상당부분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유럽의 암흑기가 다 지나갈 때까지.”

더군다나 “문화적 자산, 이 귀중한 밈의 축적물은 ‘고전적 유산’과 별 관계가 없다. 밈을 내포한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기술은 소포클레스의 작품들보다 훨씬 지속력이 강하다.(소포클레스의 희곡은 대부분 사라졋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잇다. 문학은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식탁 위에 음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안티고네의 사본은 문맹수준을 넘어선 농부들 사이에서도 별 수요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 쇠 말발굽은 세계 공용의 언어인 유용성으로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아이디어가 더 유용할수록 널리 퍼져나가고 재탄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용한 아이디어의 확산이 세계의 인구를 증가시키고 더 향상된 통신과 교통에 의해 지적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킴에 따라 이러한 가능성이 더 커지고 그 결과 마침내 확실성에 가깝게 된다. 사회는 점점 더 크고 조밀한 뇌를 닮아가고 이 뇌의 뉴런들은 점덤 늘어나는 혁신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산시켜 또 다른 새로운 혁신에 박차를 가한다.

이 거대한 뇌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다문화성이다. 어느 한 문화가 혼자 책임지고 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650년 무렵 이탈리아나 프랑스를 관찰한 사람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전면적 시스템 장애’라 부를만한 상태였다. 마치 전 세계의 하드드라이브에 충돌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관점에서는 긴급 상황이 아니엇다. 세계는 백업 카피를 만들어두기 때문이다. 쓸모 잇는 밈은 스스로를 무더기로 복제해 국지적 충돌에 대비한다.

더 넓은 범위의 문화 진화 즉 사회적 복잡도와 넌제로섬 원리의 정도와 범위가 증대되는 것 역시 멈추기 어렵다. 이와 같은 사회의 진화가 의존하는 것은 문학이나 철학이나 예술의 특정 작품의 우연한 보존이 아니라 기술 진화라 볼 수 잇을 것이다. 전형적으로 서양적인 특징들 이를 테면 수세기에 걸친 농노제도의 뒤를 이어 활짝 핀 개인의 자유와 같은 것도 본질적으로 기술의 부산물이다.”

Lulu 2011-08-2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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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전체 (2)

인간의 삶은 진화론적으로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삶을 더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죽음을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완전히 유의미한 삶을 위해서는 양뿐 아니라 질이 필요하다. 진화의 개념들은 삶이 유의미하다거나 유의미해지는 중이라거나 점점 더 유의미해진다는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을까? 다윈에 따르면 최근의 생물들은 과거의 생물들보다 더 고등할 수밖에 없다. 다른 종들보다 어떤 식으로든 유리했기 때문에 최근의 생물은 생존투쟁에서 살아남은 것이 아닌가.











스티븐 제이 굴드는 생물학적 진보에 대해 격렬히 비판한다. 진화는 무작위적 운동이다. 생물들이 더 복잡해진다고 더 우월해지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보에 대해 긍정적이다. 다윈의 견해는 오히려 중립적이다. 다윈에 따르면 생물들이 복잡해짐에 따라, 생물들은 자신의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새로운 수단들을 개발했다. 그러나, 단순한 동물들이 복잡해지는 필연적 경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적 진화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는 마이클 루즈다. 루즈에 따르면 진화와 진보는 서로 얽혀있고 거의 뗄 수 없는 관계다.



월 듀런트 : 문화적 진보에 대한 한 역사가의 견해



듀런트는 문화적 진보를 옹호한다. 그는 니콜라 드 콩도르세의 예를 든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 최후의 희망으로 버티는 지경에 몰리고, 개인적으로 귀족의 특권과 재산을 모두 허무하게 잃고, 온 유럽의 젊음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을 걸었던 그 대혁명이 무차별적 의심과 공포를 양산하는 상황에서 ? 낙담과 침울의 서사시를 쓰는 대신에 하필이면 진보의 찬가를 썼다는 사실은 나를 늘 새삼 경탄하게 한다. 사람이 인류를 그토록 믿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어쩌면 그 후로 영영 다시는 없을 것이다. ”



장 피아제 : 지식은 진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피아제는 동화와 조절을 ‘평형화’라고 부른다. 평형화란 유기체와 물리적 인지적 환경 사이에서 최적의 평형 상태가 산출되는 과정이다. 생물학적 진화에서 평형화의 결과는 유기체가 물리적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것, 곧 유기체와 물리적 환경 사이의 평형화가 더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지적 진화에서 평형화의 결과는 유기체가 인지적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것, 곧 유기체와 인지적 환경 사이의 평형화가 더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트 : 게임이론, 진화, 삶의 의미





라이트는 생물학적 문화적 진화를 이끌고 좌우하는 주요 원리는 ‘넌제로섬’이라고 주장한다. 넌제로섬이란 게임이론에서 양쪽 참가자가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개체들은 점점 더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서로 더 기꺼이 협력하게 된다.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함에따라 협력을 통해 성과를 거두는 능력도 증가한다. 라이트는 샤르댕과 유사하게 지구적 의식의 출현이 임박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스티븐 핑커 : 라이트의 진보주의에 대한 비판











핑커는 문화적, 도덕적 진보가 일어났다는 라이트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진화에 목적이나 목표, 운명을 가졌다는 의견에 반대한다. 모종의 진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진보가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대니얼 데닛 : 만능 산(酸)으로서의 진화



데닛은 진화를 모든 것을 갉아먹는 만능 산에 비유했다. 세포로부터 의식과 우주까지의 만물은 진화적 관점에서 가장 잘 설명된다는 뜻이다. 형이상학, 인식론, 종교, 삶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데닛은 “위대한 우주적 피라미드”라고 표현한다. 맨 위의 신에서부터 아래로 정신, 설계, 질서, 카오스를 거쳐 무에 이르는 위계. 신은 궁극의 “스카이훅”(아래쪽의 구조물을 위에서 잡아당겨 유지시키는 갈고리)이다. 기적적인 설계의 원천. 반면 진화는 피라미드의 방향을 뒤집어서 설계를 상향식으로, 테닛이 “크레인”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의해 설명한다.



진화는 삶의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 신적인 스카이 훅따위는 필요치 않는다. 삶의 의미는 바닥에서부터 창조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생명도 없고, 정신이나 의미도 없었다. 의미는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정신이 발전함에 따라서 의미는 아래로부터 번져 올라온다. 의미는 완성된 의미가 아니지만, 그 의미는 정신이 발전함에 따라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마이클 셔머 : 삶의 의미는 우리 안에 내장되어 있다.



잡지 <스켑틱>의 편집장



셔머는 우리는 이 삶이 유일한 삶인 것처럼 살면서 타인들과 매 순간을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대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스티브 스튜어트 ?윌리엄스 : 다윈과 삶의 의미



생물학에는 목적론적 대답이 없고, 역사적 대답만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삶에 궁극의 목적이 없더라도, 삶을 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더라도 삶은 여전히 좋을 수 있다.삶의 의미가 외부에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어도, 우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자유가 있다. 만일 우리가 목적들을 가진다면 우주의 일부도 목적을 가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우주를 숙고할 때, 우주의 일부는 의식이 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우주가 점차 자기의식을 획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 스튜어트 : 진화하는 우주 안에서 삶의 의미



진화는 협력을 선호한다. 또한 규모가 큰 조직일수록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방해가 없다면, 지구적 조직과 은하적 조직이 발생할 것이다. 더불어 지능도 향상되어 물질과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스튜어트에 따르면 진화는 대체로 자발적으로 진행해왔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우리가 지휘하거나 조정해야만 계속된다. 스튜어트는 이를 ‘의도적 진화’라고 부른다.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참여자로의 이 같은 이행은 진화의 지속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인류가 이 위대한 진화적 이행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산출하는 역할을 떠맡은 셈일 것이다.”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 보편적 진보적 진화



샤르댕에 따르면 진화는 의식의 복잡성을 증가시키고, 의식 없는 지권을 반쯤 의식있는 생물권으로, 결국엔 의식 있는 “정신권noosphere”으로 변모시킨다. 정신권이란 지구를 둘러싼 생각의 층이며 인류의 집단적 의식을 포함한다. (오늘날 몇몇 논평자들은 인터넷을 테야르가 예언한 정신권의 부분적 실현으로 간주한다.)




“진화는 이론일까, 시스템일까, 또는 가설일까? 진화는 이것들을 훨씬 능가한다. 진화는 모든 이론, 모든 가설, 모든 시스템이 존중해야 하는 조건이며 향후 그것들이 생각 가능하고 참되려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다. 진화는 모든 사실들을 비추는 빛이며 모든 선들이 따라야 하는 궤적이다. ”



정신권 또는 정신세계의 힘과 영향이 계속 증가한다면 언젠가 ‘오메가 포인트’에 이를 것이다. 오메가 포인트란 지고의 의식, 곧 신을 의미한다. 오메가 포인트가 진화의 숭고할 만큼 적합한 결과이려면 반드시 사랑의 연합이어야 한다.




“오직 사랑만이 살아있는 존재들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통일할 수 있다. 사랑만이 살아있는 존재들 속의 가장 깊은 것으로 그것들을 사로잡고 연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일 경험하는 사실이다. 연인들이 상대방 안에서 자신을 상실했다고 말할 때가 아니라면, 연인들은 언제 서로를 가장 완벽하게 소유한 상태에 이르겠는가? 실제로 사랑은 매순간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서, 두 사람 사이나 여러 사람 사이에서, 전체화함으로써 개인화하는 마법같은 위업을, 모순적이라고 하는 그 위업을 성취하지 않는가? 사랑이 매일 작은 규모에서 그 위업을 성취할 수 있다면, 언젠가 세계 규모에서 그 위업을 성취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우주의 통일성의 기반은 물질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영 혹은 정신이다. 영과 정신은 진화를 추진하는 힘이다. 테야르는 우주의 진화에 관한 이 같은 포괄적인 서사시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그 서사시에서 모든 진화의 종착점은 최고의 좋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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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모노 : 우주적 의미를 추방하기
샤르댕에 대한 반론을 담은 책은 유명한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이다.


“진화가 이룩한 거대한 체계의 뿌리에 있는, 철저히 자유롭지만 맹목적인 순수 우연, 현대생물학의 이 핵심 개념은 더 이상 가능하거나 심지어 상상 가능한 가설들 중 하나가 아니다. 오늘날 그 개념은 관찰되고 검증된 사실에 부합하는 유일한 가설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언젠가 바뀔 것이라고 추측할 또는 희망할 근거는 없다. ”

모노가 보기에 진화 과정은 명백히 비목적적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다. 우리는 우연한 사건이다. 앎의 윤리는 자기부과적이다. 앎의 윤리는 어쩌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다.


“고대의 약속은 산산조각났다. 마침내 인간은 우주의 으스스한 광활함 속에서 자신이 외톨이임을 안다. 자신이 그저 우연히 발생했음을 안다. 인간의 운명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인간의 의무도 마찬가지다. 위쪽의 왕국, 또는 아래쪽의 어둠.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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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헉슬리 : 진화를 지휘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얻는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헉슬리 가의 일원. 올더스 헉슬리가 형이다.

헉슬리에 따르면 현대 세계에서 의미를 깨닫는 최선의 길을 제공하는 것은 과학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미래가 과거보다 더 좋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가 있다. 진화생물학은 인간의 운명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실현하는 쪽으로 진화를 이끌 수 있는 행위자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다.



진화과정은 무기적/우주적 진화에서 출발하여 유기적/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이제 심리사회적/문화적 진화에 이르렀다.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헉슬리의 삶에 의미를 제공했다.




“진화론적 인본주의 덕분에 나는 우리가 태어난 이 낯선 우주를 외경심과 궁금증을 동반한 살아있는 대상이자 지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나의 경이감과 궁금증이 이 우주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경험하는 세속적 기쁨과 만족, 공포와 비참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실현의 개념과 연결할 수 있었다. 가능성들의 점진적인 실현이라는 진화론적 인본주의의 개념은 개인적 윤리의 발전으로부터 대규모 진화까지 모든 유형의 지향성 과정들을 평가하는 공통의 잣대이며, 긍정적 태도와 신념을 유지하고 음흉한 적과 같은 부정과 절망의 정신에 맞서기 위한 탄탄한 기반을 제공한다.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노력과 창조적 활동과 즐거움의 긍정적 의미를 승인한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인데,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한때 내가 보기에 추상적이며 고립된 구역들에 머물렀던 지적인 사변과 영적인 열망을 구체적 현실 속의 유의미한 자리로 복귀시켰다. 또한 그럼으로써 내가 자연과 하나라는 느낌을 회복시켰다.“





에드워드 윌슨 : 종교로서의 진화





윌슨은 종교적 신화와 관행을 해부한 끝에 “종교적 믿음을 품는 성향은 인간 정신 속의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이며 십중팔구 인간 본성의 근절할 수 없는 한 부분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종교는 과학과 결합할 것이다. 진화는 새롭고 더 나은 종교적 신화의 토대일 수 있다.



저자는 테야르, 헉슬리, 윌슨등의 관점을 받아들여 삶은 진화하기 때문에 유의미하며, 우리는 이 의미의 진화에서 핵심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의미한 삶을 산다는 결론짓는다. 그러나 진화가 야기한 세상의 온갖 고통과 참상 앞에서 마냥 미래를 긍정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이 낙관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영어 유산사전>은 낙관론을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예상하거나 한 상황의 가장 희망적인 측면들에 시선을 고정하는 경향”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희망은? <미국영어 유산사전>은 ‘희망하다’를 이렇게 정의한다. “실현을 기대하면서 무언가를 바라다. 확신 혹은 기대를 품고 미래를 내다보다.” 저자는 희망도 거부한다.



낙관론도 아니고 희망도 아니라면? 삶이 유의미하기를 바라는 것은 삶이 유의미하다고 희망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과 열망은 기대를 함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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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테니슨 : 오디세우스의 몸부림
어쩌면 이것은 몸부림일까.


“나는 내가 만난 모든 것의 한 부분

그러나 모든 경험은 아치이며

여행해보지 못한 세계가 그 아치를 통해 번득이네.

내가 움직이면, 그 세계의 변방은 영원히 영원히 멀어지지

멈춘다는 것은 얼마나 따분한가, 종결한다는 것,

불타오르지 못하고 녹슨다는 것, 쓸모 있게 빛나지 못한다는 것!

삶이란 단지 숨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

한결같던 영웅적 심성들은

시간과 운명에 의해 약해졌지만, 우리는 강하다네.

힘쓰고, 추구하고, 발견하고, 포기하지 않을 의지가 있으므로. “



저자에 따르면, 율리시스에게 의미란 몸부림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 희망을 거부함








카잔차키스는 니체와 베르그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카잔차키스는 보편적인 엔트로피에 맞서 싸움으로써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고 선언하고 이 생각을 신과 연결했다. 그에게 신이란 “기본 물질을 시스템으로 조직하여 점점 더 미묘하고 발전된 형태의 존재들과 의식들을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반엔트로피적 생명력”을 의미했다.



언제가 목표에 도달하거나 닻을 내리거나 집에 도착하리라는 기대나 희망없이 정직하고 용감하게 분투하기. 율리시스와 마찬가지로 카잔차키스의 유일한 안식처는 추구 그 자체에 있었다. 삶의 의미는 추구와 몸부림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희망과 절망을 모두 넘어설 필요가 있다. 낙원에 대한 기대와 지옥에 대한 공포는 모두 우리가 마주한 것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 마음의 참된 고향은 의미 추구 그 자체다. 우리는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의미를 창조하기 위해 용감히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심연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히 응시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는 것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비극앞에서도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삶은 본질적으로 몸부림치는 싸움이다. ”





앙드레 모루아 : 삶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모루아는 삶의 의미란 우리의 생동하는 싸움에서, 삶의 경험과 활동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모루아의 통찰은 카뮈의 원조격이다. 카뮈는 추상적 관념들이 우리를 세계로부터 멀리 떼어놓는다고 본다.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평범한 장소로, 우리 주변으로, 과거에 우리가 일상이라고 불렀던 특별한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하늘과 하늘을 향한 이 얼굴들 사이에는, 신화, 문학, 윤리, 종교를 매달 고리가 없다. 다만 돌들과 살과 별들, 그리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진실들만 있다.”



윌 듀런트 : 모든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듀런트는 우리가 더 큰 삶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묻는다. 만일 우리가 개인들이 아니라 생명체 속 세포들이라면, 생명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는다. 죽음은 쓰레기를 제거하고, 새로운 생명이 창조됨으로써 죽음을 극복한다. 이 같은 생명의 유구화는 삶에 의미를 제공한다. 개체는 죽어도 삶은 끝없이 계속된다.




“요컨대 삶의 가장 단순한 의미는 즐거움이다. 경험 그 자체의 유쾌함, 건강의 유쾌함, 근육과 감각, 혀와 귀와 눈의 순수한 만족이다. 만일 아이가 어른보다 더 행복하다면, 그것은 아이가 몸을 더 많이 가지고 영혼은 더 적게 가졌으며 철학보다 자연이 더 먼저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팔다리를 풍부하게 놀릴 뿐, 팔다리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설령 아름다운 순간들 외에는 삶에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빗속을 터벅터벅 걷거나, 바람에 맞서거나, 순백의 설원에 발자국을 남기거나, 노을이 밤으로 바뀌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삶을 사랑할 이유로 너무나 충분하다.”



사랑은 개인을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와 연결한다.




“나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낙담하지 않는 것을 본다. 많은 동료들과 공놀이를 하는 천한 ”무지렁이“가 삶의 놀이에서 물러나 격리된 채 시들어가는 이 고립된 사상가들보다 더 행복하다.....우리가 자신을 살아있는 집단의 부분으로 여기면, 우리는 삶을 조금 더 충만하게 느낄 것이다.....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당사자 자신보다 더 크고 영속적인 목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물이 더 큰 전체의 부분으로서의 관계를 통해서만 중요성을 가진다면, 비록 모든 삶 일반에 형이상학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어떤 특수한 삶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삶의 의미는 그것이 더 큰 무언가와 맺은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들 딸을 둔 아버지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라.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



듀런트도 사랑, 관계, 활동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최후의 국면에 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을까? - 모든 것에.”



듀런트의 글은 감동적이다. 조르바처럼 웃고, 놀고, 사랑한다면 삶의 의미에 대해 물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웃고 놀고 사랑하고 나면 또 다시 생각은 돌아온다. (조르바는 안 돌아오겠지. 끊임없이 웃고 놀고 사랑하다 죽겠지. 모든 사람이 조르바처럼 살면 어떻게 될까? 천국일까? 아마 지옥이 되지 않을까. 모두가 조르바처럼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한다면 인간들 사이에서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환타지 소설이다. 아, 순진한 카잔차키스!)



작가는 아래와 같은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삶이 제공하는 제한된 즐거움과 의미를 누리면서 인간의 한계들을 제거하기 위해 애쓰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최선을 다해 억눌러야 한다. 러셀은 95세의 나이에 제목이 없는 한 장 짜리 원고를 남겼다. 러셀의 마지막 원고였다.




“내 삶 전체를 돌아보면서 그 삶이 어떤 유용한 목적에 기여했는지 혹은 온통 부질없는 짓에 매달렸는지 물을 때가 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래를 모르는 사람은 대답할 수 없다 ”



답할 수 없다고 했음에도 러셀은 펜을 계속 놀렸다.




“우리의 행성이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라. 현재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고통과 굶주림, 지속적인 위험, 사랑보다 더 많은 증오가 있다. 행복한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 경쟁보다 협동이 더 많이 눈에 띄는 곳, 지루한 일은 기계들이 하는 곳, 하는 일이라고는 죽이는 것밖에 없는 흉측한 기계들이 들어설 자리를 위해 사랑스러운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곳, 시체들의 산더미를 생산하는 것보다 즐거움을 촉진하는 것이 더 존중받는 곳.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마라.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그런 세상은 고문을 가하기를 바라기보다 그런 세상을 더 많이 바라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 각자 안에 갇힌 예술가가 있다. 그를 풀어주어 만방에 즐거움을 퍼뜨리게 하자. “





이 글을 쓰고 하늘을 봤다.

이토록 푸르를 수가.

그 순간 나는 삶의 의미를 감각했다.



삶은 고통의 바다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음을 망각하지 않고,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들을 발견할 때

삶은 무의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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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ral Animal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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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ral Ani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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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ral Animal
Cover of the first edition
Author Robert Wright
Country United States
Language English
Subjects Social evolution, Evolutionary psychology, Morality, Ethics
Publisher Vintage Books

Publication date 1994
Media type Print (Hardcover and Paperback)
Pages 466 pages (paperback)
ISBN 0-679-76399-6 (1st edition, hardcover)
OCLC 33496013


The Moral Animal is a 1994 book by Robert Wright, in which the author explores many aspects of everyday life through evolutionary biology.


Contents
1Summary
2Reception
3See also
4References
5Bibliographical information
6External links
Summary[edit]

Wright explores many aspects of everyday life through evolutionary biology. He provides Darwinian explanations for human behavior and psychology, social dynamics and structures, as well as people's relationships with lovers, friends, and family.

Wright borrows extensively from Charles Darwin's better-known publications, including On the Origin of Species (1859), but also from his chronicles and personal writings, illustrating behavioral principles with Darwin's own biographical examples.
Reception[edit]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chose The Moral Animal as one of the 12 best books of 1994; it was a national bestseller and has been published in 12 languages. The paleontologist Stephen Jay Gould criticized the book in The New York Review of Books.[1] The anthropologist Melvin Konner called the book "delightful".[2]
See also[edit]
Evolutionary ethics
Evolutionary psychology
John Stuart Mill
Kin selection
Reciprocal altruism
Richard Dawkins
Steven Pinker
The Naked Ape
References[edit]

^ Gould, Stephen Jay. Evolution: The Pleasures of Pluralism,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June 26, 1997.
^ Konner, Melvin. The Tangled Wing: Biological Constraints on the Human Spirit. Times Books, 2002, p. 498.
Bibliographical information[edit]
Robert Wright (1995-08-29). The Moral Animal: Why We Are, the Way We Are: The New Science of Evolutionary Psychology. Vintage. ISBN 978-0-679-76399-4.
External links[edit]
Stevin Pinker's New York Times Book Review article on The Moral Animal.
Booknotes interview with Wright on Moral Animal, January 8,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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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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