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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의 별 ⑪_유동식의 한국신학의 꿈
-심광섭 박사(전 감신대 교수/기독교미학)
한국기독교 초기 선교사들 중에는 한국의 언어와 문화 및 종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종교를 연구한 이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조지 히버 존스 (George Heber Jones, 1867-1919, 한국명 조원시)나 찰스 알렌 클라크 (Charles Allan Clarke, 1878-1961, 한국명 곽안련) 같은 이들이다. 이 들 외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종교와 문화 및 언어를 공부했다. 성서를 한국말로 번역하는 것은 기본이고 한국문화와 역사 및 종교를 통해 전승되고 살아 있는 한국인의 얼과 정신에 공명하고 몸과 마음에 뿌리내려 한국인의 삶을 풍성하게 살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현재 한국 목회자나 신자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 및 종교 전통에 거의 무관심한 태도와 대조적이다.
140년의 한국 교회 안에서 신학적으로 토착화신학이나 민중신학의 이름으로 한국 신학을 말해 왔지만, 어딘가 부족하다. 물론 완벽한 신학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선교 150년을 맞이하게 되면서 나는 소금 유동식(素琴 柳東植, 1922~2022) 선생님에게서 한국 신학의 참모습을 만나게 된다. 훤칠한 풍채에 잘생긴 용모인 소금은 장수하시면서 신학적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60여 년간 한국종교를 연구하면서 신학적, 종교적, 역사적, 예술적 영역으로 확장해 나갔고 그 최종 지점은 풍류적 예술신학이다.
유동식 선생님의 삶과 신학을 평생 지근거리에서 동행한 이계준 목사님은 선생님의 신학에 관해 이렇게 말씀한다. “선생님은 서구신학이 지배적인 한국신학계에서 한국의 문화사와 종교사의 근간(根幹)인 원초적 영성을 포착하고 이를 기독교 복음과 연계하여 한국적 신학을 창안하고 체계화한 유일한 신학자이시다.” 참으로 적중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유동식 선생님은 전쟁 이후 살아가기에도 척박했던 시절인 1950년대에 한국적 신학을 창안했고, 그후 60여 년 초지일관 이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구성했다.
유동식 선생은 한국 땅에서 복음 전도의 문제의식은 복음의 토착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복음은 한국인의 얼을 품고 있는 언어를 통해 번역되고 말해져야 한다. 그래서 유동식 선생이 잡은 개념은 ‘도’(道)이다. ‘도’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며 예수 자신이 생명의 길(道)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종교사상인 유불선(儒佛仙)은 모두 道로 표현된다. 유동식 선생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을 ‘도성인신’(道成人身)으로 쓰고, 1978년에는 『道와 로고스』라는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유동식의 선교적 과제는 복음의 토착화이다. 그에게 토착화와 선교는 나눌 수 없는 관계이다. 그는 경전종교인 유불선에 그치지 않고 한국민족의 시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한국인의 삶•얼의 원형이라고 말하는 샤머니즘 연구를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1975년)로 제시한다. 당시 무교는 무속이라 평가절하되면서 근대화와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 주변으로 내좇기고 있던 시절이었다.
유동식 선생은 한국인 영성의 원형이 삼국시대, 신라, 고려, 조선의 종교역사를 통해 변형, 발전된 양태를 『민속종교와 한국문화』, 『한국종교와 기독교』 『한국종교사상사』 등의 저술을 통해 밝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신라의 최치원이 말한 ‘풍류’(風流)가 한국인의 원형적 영성의 통일 신라적 표현임을 발견한다. 신라의 화랑이란 풍류도인들이다. 유동식 선생은 풍류도를 현대적으로 번안하여 ‘풍류신학’을 창안한다. 풍류신학은 유동식 한국 신학의 대명사이다.
화랑이란 풍류도로 훈련된 청년인데, 그들은 외적인 미모와 장식만으로는 부족하여 세 종류의 교육과정으로 몸과 마음을 수련한다. 첫째는 도의로써 배우고 닦아(相摩以道義)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둘째는 노래와 음악을 즐기며(相悅以歌樂) 감성적 능력을 배양하고, 셋째는 산수를 유람하여 아무리 멀어도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遊娛山水 無遠不至)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호연지기를 기르며 자연적 감수성을 키운다. 화랑은 인생의 도의와 예술과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가운데서 풍류도를 익혀나갔던 것이다.
유동식 선생은 풍류도의 종합적 성격을 현대 말로 번안하여 ‘한’과 ‘삶’과 ‘멋’으로 기술한다. 그래서 화랑이란 ‘한 멋진 삶’을 추구했던 자들이라고 말한다. 소금은 풍류도에서 인간의 본질이 종교-예술적 존재임을 확인한다. 풍류도는 동양미학의 근본개념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구현한 종교•예술적 영성이다. 소금에게 우리의 역사를 빛나게 하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의 역사가 아니라 예술 문화사이다. 풍류도의 멋은 한겨례의 역사를 통해 무교적인 생동감과 불교적인 포월성과 유교적인 조화 속에서 정형화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한국미의 특징은 무교적 신명의 아름다움, 불교적 한의 아름다움, 유교적 조화의 아름다움 그리고 동학적 창의의 아름다움이다.
유동식 선생은 ‘풍류’에서 민족적 영성의 원초 형태를 발견할 뿐 아니라 ‘풍류’를 한민족의 미적 이념이라고 말한다. 이 이념은 역사적으로 무교, 불교, 유교, 천도교 그리고 기독교를 통해 다양하게 매개되고 전개된다. 한국 종교문화사는 전통적인 유불선에 제한되지 않고 “세계 종교들을 차례로 수렴해가는 과정사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동식의 (한)풍류적 예술신학은 서양의 기독교 전통의 한국적 창작일 뿐 아니라 한국 종교문화사적으로 볼 때 한국의 개벽 종교와 더불어 최신의 종교인 기독교를 통해 계승되고 창신되었음을 의미한다.
소금 유동식의 이상적 삶은 유천희해(遊天戱海), 하늘에서 노니며 바다를 희롱하는 ‘하늘 가는 나그네’의 삶, 한국적으로 말하면 신선(神仙)의 삶이다. 공자가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의 삶을 높게 보았다면 소금의 그리스도적 삶의 이상은 한풍류적 ‘미자요풍(美者樂風)’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그네적 삶에는 유오산수(遊娛山水)하는 화랑의 삶이 혈맥(血脈)을 통해 전해오고 제천의식을 지냈던 고래의 ‘천(天)’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있다. 또한 ‘하늘 나그네’란 표현 속에는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실존 이해가 담겨 있다. “아름다움을 알려거든 예술가여/유유하는 나그네 되라/세상을 다스리려거든 정치가여/욕심도 허영도 모르는 나그네 되라.” 무엇보다 소금은 예수의 삶을 통해 ‘나그네’를 새롭게 이해한다. 예수는 나그네적 삶을 사신 분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 예수의 나그네적 삶에는 아름다움의 양 날개인 자유와 사랑이 원형적으로 실현되어 있다.
소금은 ‘하늘 나그네’에서 하늘 ‘天’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하늘 나그네”에서 ‘하늘’은 고단하고 모진 지상의 삶을 예술적으로 변형하는 창조력을 공급하는 우주생명의 원에너지와 같으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이다. 이 기운을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예술이다. 그리고 예술의 힘인 아름다움을 통해 고아, 과부, 나그네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우주적 자유와 사랑의 공동체는 실현된다. 바로 여기에 미를 생산하며(産美), 미를 활성화하고(活美), 미에 노닐며(遊美), 미가 삶 속에서 활성화되는(美活) 소금 유동식의 ‘하늘 나그네’의 삶이 있다. 이 삶이야말로 신성한 미의 세계를 지금 여기 우리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길(美生之道)이다. 바로 이 지점이 풍류적 예술신학이 말하고자 하는 요체이다.
소금 유동식 선생님의 사상 전체는 아름다운 3층 석탑 같다. 기단은 복음과 풍류도이며, 1층은 토착화, 2층은 풍류신학, 3층은 풍류적 예술신학이다. 선교는 복음의 토착화이며, 토착화를 위해선 한국의 종교문화 유산과 대화해야 한다. 한국의 종교문화의 역사속에서 활동하신 하나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한국신학, 곧 풍류신학이다. 토착화 신학의 방법론을 통해 풍류신학이라는 열매를 맺었으며, 예술신학을 통해 그 열매를 빠짐없이 골고루 향유한다.
(두 번째 사진은 2014년, 필자와 함께)
Taechang Kim
새삶길엶의 살음다움을 삶 속에서 체감 체험 체득하는 삶살이에 숨힘 부어주심에 감사하며 열심히 배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