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9

곤블로비치(1904-69)의 성적 취향에 관해서는

[XII-014]…

여러가지 가슴 소란 Uneasinesses in plural by Nishi Masahiko

그만큼 ·



[XII-014]
곤블로비치(1904-69)의 성적 취향에 관해서는 
『트랜스=아틀란틱』 Trans-Atlantyk(1953; 쿠르투라』 1955년 3월호, 통권 89호)를 읽으신 분에게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이른바 '바이'였다.

 아르헨티나에 와서, 해안의 전쟁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나고, 깨달아 보면 40대, 그리고 50대를 세기에 이르고, 이제 「청2세」를 낳고 있는 것에도 가지 못해진 단계에서의 하나의 깨달음이기도 했겠지만, 다음과 같다―

―《꽃 피는 삶이, 나처럼 완만한 죽음을 선고받고, 날마다, 떠나도 다음부터 다음으로 정력이 솟아나온다 그렇다고 하는 축복으로부터는 풀려난 인간 전원의 조밀한 부러움과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까. 〔중략〕나, 이른바 '노멀'인 인간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하면, 저는 젊음이라는 여신의 빛을 숭배하는데 있어서, 젊은 딸 뿐만이 아니라, 젊은 소년에게도 그것을 찾아내, 그야말로 딸보다 소년이 젊음을 보다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해 버린다는 단지 그 일점에 다한다. >>(pp. 259-260)

남성의 '바이'가 자신의 성적 기호를 언제든지 이렇게 말하기로 결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곤블로비치는 공개적으로 미즈카타를 '바이'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쿠르투라」지상에서의 「일기」의 연재가 개시된 것은, 이 잡지의 1953년 4월호(통권 66호)이었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전편에서도 접한 밖에는 나왔다 '사적 일기'로서의 '크로노스' 크로노스(Wydawnictwo Literackie, 2013)를 쓰기 시작(또한 바르샤바 대학에 입학한 1922년까지 사후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거기에도 'Erot.'의 제목을 붙였다. 성교섭의 기록이 간단히 쓰여져 연말이 되면, 일년의 총괄이 이루어지는 해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51년의 마무리에는 《성교섭은 미미하고, 건강의 부조와 치통이 그것을 방해했다》(p. 142), 1952년은 《올해는 상당히 활발하다. 2월(사르시푸에데스[=코르도바의 피서지])와 12월(로헬리니와 알[=인명?]은 꽤 격려했다>(p. 149)라고 하는 식으로 떠오르는 것은 있었고, 어쨌든 안정된 파트너와의 정기적인 성교섭이라고 하는 형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1955년은《나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온화. 단지 연말은 안드레아.

이 1950년대는, 1953년의 시작에 「트랜스=아틀란틱/결혼」이 간행되어, 그 후, 근무처의 「폴란드 은행」을 퇴직해, 붓 하나로 살려고, 후에 「포르노그래피」Pornografia(1960) 로서 결정하는 작품 집필에 힘쓰고 있던 시기인데, 이 시기에는, 이른바 하드한 성교섭 뿐만이 아니라, 풍속 관찰이나 젊은이의 매력을 눈으로 보고 맛보는, 젊은이를 놀리는 즐거움과 같은, 바로 '포르노그라피아'의 두 명의 중년 남자와 같은 광의의 '성'을 만끽하고 있던 것이 문면에서 또 걸린다.

『터미널 라이프 종말기의 풍경』(작품사, 2011) 속에서 다음과 같이 썼을 때, 아직 『크로노스』에 눈을 뗄 수 없었지만, 거기 당첨은 붙어 있던 것 같다――《『포르노그 라피아의 곤블로비치는 프루스트처럼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의 배타성이나 공범성과 놀면서 이야기를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소년과 소녀의 각각에 욕정하고, 게다가 소년과 소녀가 어떠한 행위 속에서 하나에 합체하는 것에 기쁨을 찾아내려고 하는 숙년 남성의 성을 크게 클로즈업한 것이다. >>(pp. 229-230)

*화상은, 양 야쿠프 코르스키 감독 작품 「포르노그라피아」(2003)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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