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4

알라딘: [전자책] 사서삼경을 읽다

알라딘: [전자책] 사서삼경을 읽다



[eBook] 사서삼경을 읽다
김경일 (지은이)바다출판사201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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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정가
7,680원

7.7 100자평(3)리뷰(4)
제공 파일 : ePub(11.16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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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421쪽
책소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쓴 김경일 교수가 유교의 경전인 사서삼경 해석에 도전했다. 기원전 500년에 만들어진 <논어>를 비롯해 약 3000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는 고대 텍스트들을 중국 저잣거리에서 떠돌던 입말식 해석으로 새롭게 빚어냈다.

BC 1111년 주나라가 역사에 정식으로 등장한 이후, 동양인들은 <논어>, <맹자>, 그리고 <주역> 속의 세계를 동경했고, <중용>과 <대학> 속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걸었다. 또, <시경>과 <서경>을 삶의 바탕으로 삼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 날 아시아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이 된 것이다.

김경일 교수는 유교 중심의 사상을 비판하면서도, 고대 중국에서 쓰여진 사서삼경을 '동양의 바이블'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저자의 '삐딱하게 보기'와 '겸허히 인정하기'라는 두 가지 시선으로 드러난다. 또, 각 저서에 대해 의견도 통일되어 있다기 보다는 뚜렷히 의견을 달리하는 것이 많다.

이 책은 1997년에 출간된 <한 권으로 읽는 사서삼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서삼경 중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려는 의도로, 몇몇 부분은 새롭게 집어넣기도 하고, 빼내기도 하는 등 전체를 다시 매만졌다. 또, 한자 원문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글로 독음을 달았고, 어려운 글자들의 해석 역시 실었다.


목차


머리말 - 느긋한 글읽기

논어를 읽다
공자, 자기를 말하다 / 공자의 제자들, 그들은 패러디를 꿈꾸었다 / 골라 먹는 지혜 / 여자를 오해하면 / 아버지의 힘 / 부유한 가난 / 입맞춤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 맞춤 / 우리는 '배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 '仁'이란 다름 아닌 친구를 만드는 법 / 그래도 방법은 있을 텐데 / 공자에게 EQ를 배우다 / 말을 줄이되, 피하지는 말라 / 막힘을 여는 지혜의 열쇠 / 잃어버린 교과서

맹자를 읽다
집을 나서야 여행은 시작되는데 / 신념이 아름다운 건 실패가 있기 때문이고 / 맹자와 마틴 루터 킹 /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지 / 당신은 착한 사람인가요? / 맹자식 외국어 학습법 / 여론조사 할 필요 없지! / 왕도정치 / 교육 없이 발전 없다 / 닭을 훔치면 안 되는 이유 / 인재를 키우는 재미

중용을 읽다
동양의 EQ / 둥근 지혜 / 성공하는 지도자의 아홉 가지 비결 / 사고를 잘 치는 세 가직 유형 / 길 떠나는 이유 / 마음대로 하는 마음 / 강한 자와 약한 자 / 학문의 길 / 판단 중지 / 내가 바로 이상형

대학을 읽다
마음을 찾아가는 길 / 수신제가치국평천하 / 세수와 깨달음 / 작은 관찰의 아름다움 / 자리 인생 / 사람을 읽어라! / 민심은 변심

시경을 읽다
젖은 글씨로 쓴 시 / 뻐꾸기는 뻐꾹뻐꾹 울지 않고요 / 나는 잣나무배, 너는 종이배 / 못 볼 걸 보았으니 / 만날 수 없기에 그려봅니다 / 주나라에도 압구정은 있었고 / 신중현과 박정희, 주자와 신혼부부 / 귀뚜라미와 장구벌레, 그리고 인생 / 누가 더 행복한가요? / 썰렁한 노래 모음 Ⅰ / 썰렁한 노래 모음 Ⅱ

서경을 읽다
임금님, 새털을 세 보셨나요? / 정치는 물 다루기 / 혁명의 씨앗 / 노 젓는 지도자 / 미스터리 인물, 기자 /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누가 처음 말했을까? / 동양 최초의 법 / 술 한 잔이 망친 나라 / 감동으로 이끄는 휴먼 리더 / 법을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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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경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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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 타이완 중국문화대학 중문연구소에서 세계적인 고문자학자 쉬탄훼이 박사로부터 고대문자와 갑골문을 배웠다. 한국인 최초로 갑골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워싱턴대학에서 동양의 고대문자와 문명의 연원에 대한 공부를 계속 이어가는 등 30여 년간 동아시아의 고문자와 동양사상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갑골문 이야기》 《한자의 역사를 따라 걷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등의 저서가 있다.


최근작 : <사서삼경을 읽다>,<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동양사상>,<유교 탄생의 비밀> … 총 30종 (모두보기)

평점
분포

7.7



너무 방대한 문헌을 다루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summit 2010-11-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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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사서삼경을 가장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의 글. 단점을 꼽자면, 번역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너무 덧붙였다는 거.
엉가스터디 2014-05-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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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자넨 안돼. 이건 너무 어렵다고"




이 책의 저자 서문쯤 되는 '느긋한 글읽기'에 보면 [서경]을 박사학위 논논문으로 쓰려고 했는데 지도교수인 쉬탄훼이 박사가 다음과 같이 만류했다고 한다

"김경일, 자넨 안돼. 이건 너무 어렵다고"
김경일 교수는 정말 제대로된 지도교수를 만난 듯 하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봤을 때 저자가 논어는 한번 읽어 봤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논어를 제대로 한번이라도 읽어 봤다면 절대로 그런 책은 쓰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나라를 살리기 위해 공자를 죽여야만 했는 지를 대충 알게 됐다.
김경일 교수는 그가 강조하듯 우리나라 최초의 갑골문 박사일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의 사상에 대해서는 그리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경일 교수는 배타적인 기독교신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김교수의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배타적인 자기 아집만으로 똘똘 뭉친 기독교 신자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기독교신자 모두를 폄하하는 얘기는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삼키기 좋은 것들만 '골라 먹고' '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해 버린 배타적인 기독교신자들이 저지른 실수를 이 책에서는 그대로 범하고 있다.

삼키기 좋은 것들만 '골라 먹고' '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해 버린다고 얘기해 버렸으니 이 책에 비판을 가할 처지는 못된다. 우물에 독뿌리기식 오류를 범하게 되면 비판을 하고싶은 의욕까지 상실하게 된다. 내 맘대로 해석했으니 너희들은 상관 마라는 식의 발언을 책의 첫머리에 버젓이 해놓고 있으니 비판을 해 봐야 소용도 없다.

그래도 한가지만은 지적해 보겠다. 이 부분이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심각한 문제들 중에 비교적 제일 앞쪽에 나오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28페이지에 [主忠信]이란 말이 나온다.
앞뒤 얘기는 무수한 설들이 존재하니 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를 한들 무슨 할말이 있겠냐만은 [忠]을 충성으로, [信]을 무슨 정치가 끼리의 절대 복종 계약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부부유별]을 남여차별적 언사로 이해하는 웃지 못할 오해보다 더욱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 참고로 김경일 교수의 전작에서 말하듯, 유교가 남녀차별을 부추겼다고 하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건 한참 뒤에 삼키기 좋은 것들만 '골라 먹고' '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해 버린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곡해일 뿐이다.

[충성]이란 말은 유교 사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유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곡해해서 근대에나 생겨난 말을 버젓이 [忠]을 해석하는데 써버리는 것을 보면 이건 가장 기본적인 이해도 갖고있지 않다고밖에 볼 수 없다.

[忠]은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마음(心)의 중심(中)을 하나로 하여 절대로 흔들림이 없음을 말한다. 절대로 임금에게 이 한몸 다바쳐가 아니다. 임금이 백성에게 못을 하면 자신의 념에 따라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게 해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忠]이다. 이것은 서양의 사상에 기초를 둔 [충성]의 개념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동양에는 義는 있을 지언정 [충성]은 없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충성]을 찾을 수 있지만 근대 이전의 동양 역사에서는 충성이란 말 자체가 없었다. 관우와 장비도 유비에게 충성을 맹세했는가? 유비에게 의를 지켰을 지언정 충성을 맹세하지는 않았다. [도원 결의]지 [도원 충성]은 결코 아니다.

공자 이후, 천년도 몇번씩이나 넘긴 시절에 나온 말을, 그것도 공자의 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말을 공자의 생각인양 얘기하고 있으니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忠, 忠恕(충서), 仁義禮智信(인의예지신)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學을 책펴놓고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읽은 사서삼경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겠다.

* 學은 책을 펴놓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논어 첫머리의 [학이시습지....]란 구절을 우리는 초등학교때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이라는 식으로 우리의 교육실정에 적합한 해석으로 배웠지만, 제대로 된 해석은 "배우고 그것을 때에 맞춰 몸소 실천하여 내것으로 만들면"이 된다. 공자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의미한 암기를 반복하는게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한 일인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호흡법을 배워 뒀는데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하여 인공호흡으로 죽게된 사람을 살려 냈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실전에서 써먹어 봤으니 제대로 내것으로 익히게 돼 기쁘고, 사람을 살렸으니 좋은일을 해 기쁘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란 말인가. 공자가 즐겁다고 한 말은 후자의 의미이지 전자의 의미는 결코 아니다. 김경일 교수는 오직 전자의 의미로만 學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공자 사후 수백년이 지난 후에, 정치적 목적으로 본질은 빼고 껍데기만 남겨둔 정치사상을 유학으로 착각하는 사람, 그것도 동양의 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 서양의 기독교적인 사관을 철저하게 세뇌된 사람이 읽은 사서삼경일 뿐이다. 삼키기 좋은 것들만 '골라 먹고'자신만의 위액으로 소화해 버렸다고 버젓이 얘기하고 있으니 토를 달기도 민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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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word 2004-04-19 공감(3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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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이 멀었다.






'사서삼경을 읽다'에서 저자는 사서삼경은 인간의 사유가 닿을 수 있는 모든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동시에 이들 책이 동양에 준 영향은 역사의 관성이 되어 그 역사는 그 관성이 파 놓은 정신의 골짜기를 따라 오늘날까지 흘러내려 와 있고 또 내일로 흘러가려 한다고 했다. 또한 고전들이 도덕과 윤리를 담는 그릇만은 아니며 희로애락 등 인생을 그대로 드러내고 담아낸 일기로 볼 수도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난 글머리에 서술된 저자의 생각에 무척 동감하며 이 책을 선택했다.




사서삼경은 동양문화의 큰 줄기로 시대 저편에 서성이는 방관자가 아니라 여전히 문화적 당사자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신랄하게 한문을 푼다.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재기발랄한 시선으로 시원스럽게 글을 전개한다. 그 덕에 글은 술술 읽힌다. 그리고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애드립은 실소(?)를 금치 못 하게 한다.




이 작가, 아무리 봐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흥분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 내용의 반은 공자 비판하기, 공자 파헤쳐 늘어놓고는 좀 잔인하다 싶을난도질하고 비판을 가한다. 사실 글 앞 부분, 공자사상에 대한 비판 - 책 내용의 삼분의 일이상은 혼자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 글자 한 글자 한 글자에 딴지를 건다. 이 부분에서 심한 반감을 느끼며 책을 덮어 버릴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기도 했는데 작가의 반감은 나에게 까지 전해져.. 작가님 작가님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시나 제가 한번 끝까지 지켜보지요 하는 심정으로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책을 읽었다.




물론 우리 문화의 병폐를 유교의 가치체계에서 찾았던 모습과는 다른 인식체계, 이데올로기로서 공자를 버리는 것과 옛 기록으로서의 고전을 가치중립적으로 읽어내는 일은 전혀 별개의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며 더불어 공부는 자유스럽게 하지만 검증은 공개 상태에서 받고 싶다며 ꡐ삐딱하게 보기ꡑ와 ꡐ겸허히 인정하기ꡑ라는 두 종류의 시선을 통해 사서삼경을 설명하려는 그 만의 자유 시선을 모르는 것 아니다.




하지만, 짚고 갈 건 짚고 넘어 가자.




비판, 비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고집 스런 작가는 비판의 의미를 잠시 했는지 공자죽이기의 흥분을 아직 죽이지 못했는지 동양 사회를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적 판가름으로 이끈 것은 공자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굉장히 편파적이다. 그에 비해 맹자에 대한 시선은 너무 심하게 관대하다. 나 역시 행동학자인 맹자의 날카롭게 후벼 파는 강력하고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세상을 비틀어 꼬집은 사람 이라는 거 그 비틀림, 그 왜곡의 시선에서 짚어보는 진정한 의미의 시선에 강력히 동의하지만 작가는 분명 균형을, 중심을 잃었다. 공자를 비판하고 맹자를 살리고 싶었으면 사서삼경을 읽다를 쓸 것이 아니라 공자를 죽이고 맹자를 살리자를 썼어야 했다. 균형을 잃는 건 진정한 비판자의 태도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중용 부분에서 작가는 중용에 대해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아주 맛 배기만 살짝 보여주긴 하지만.....




물론 말 안에 말을 다 담을 수 없고 글 안에 글을 다 담을 수 없다.

혹시 내 글을 작가가 본다면 자신의 참 뜻을 오해하고 있다고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공자도 이 책을 보면 똑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의 글속에 녹아있는 말투와 자신의 이야기를 미루어 보아 그 작가는 자기 자신이 시대의 쾌도난마 맹자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형식과 관념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캐쥬얼 복을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난 누군가에게 박수를 보내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이렇게 외친다. 왜 교수들이 넥타이에 정장을 해야하는가 !! ....하하하

과연 그게 옳고 그른게 있을까 ??

거기에 과연 원칙이라는 게 적용되는 것 일까 ?

거기에서 자유를 운운할 꺼리가 있는 것 일까 ?



내가 볼 때는 없다.



진정한 자유주의는 진정한 원칙주의의 이해로부터 나오고 통통 튀는 엇박자도 정박자로부터 나온다. 뜻대로 말하는 것 도 좋고 뜻대로 행동하는 것도 좋다. 공을 무시하면 사 또한 존재하지 못한다. 그리고 비판도 중용의 도를 지나면 설득력을 잃는다. 더불어 그가 글 속에서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를 작가도 똑같이 저지르고 있다. 다시 말해 작가도 남 욕할 거 하나도 없다.



「대학」「논어」「맹자」「중용」등 사서(四書)와 「시경」「서경」「주역」을 일컫는 삼경(三經)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그의 의도도 좋고 시선도 좋다. 현대적인 뜻풀이와 구어체 강독도 쉬워 좋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 지나쳤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그의 입심에 휘둘려 버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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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10-20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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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산 책




이틀 전에 알베르트 망구엘의 <나의 그림 읽기>(세종서적)과 김경일의 <사서삼경을 읽다>(바다출판사)를 사서 기분내키는 데로 번갈아가며 읽고 있다. 이 책들을 그렇게 읽어도 괜찮은 책들이다. 책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책의 구성상 독립된 부분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두 책 모두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은 인문학적 교양이 풍부한 책이다. 한 쪽마다 새로운 정보와 참신성이 넘쳐난다. 게다가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니 흥미도 만점이다. 이 책은 사실 이번 주 토요일에 있는 나의 <예술 강좌>에 보탬이 될까 해서 산 책인데 굳이 그러한 실용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사야만했던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경일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도발적인 책제목으로 한 때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교수이다. 이번의 <사서삼경을 읽다>는 그의 이전 책과 같이 대중적인 문체로 쓰여진 것인데, 고전의 원문해석 역시 고리타분하지 않고 참신하다. 예를 들어 <논어>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를 평범하게 번역하면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히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가 되겠지만, 저자는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미련을 떨게 되고, 생각만 키운 채 배우지를 않으면 사고 치기 십상이다.”로 번역해 놓는다. 이러한 번역의 문제는 저자가 그저 자신을 튀게하기 위하여 고안해 놓은 수사학이 아니라 당시 문화의 흐름을 중시하는 이른바 ‘추체험적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도처에 이러한 해석이 널려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통쾌함을 느낀다. 게다가 ‘사서삼경’이라는 경서를 현실의 적실성 여부에 맞춰 비판하는 모습에서 신뢰를 보낸다.



오늘날 고전의 문제는 해석의 진위 여부도 중요하겠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자라는 세대 누구도 고전을 읽지 않다는 데 있다. 김경일의 책을 청소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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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뚱 2004-03-10 공감(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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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삼경을 맛보다




우선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머릿속에 남아있던 오래된 질문에 깔끔한 답을 주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사서삼경 중 알맹이부분을 당시 사회배경과 함께 유쾌한 현대어로 바꿔주신 노고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 글은 한번 읽고 쓰지만 앞으로 몇번 더 읽어야겠다. 아직 소화가 안된 부분이 많다. 책을 읽으며 운명적인 몇개의 문장을 만났을 때 참 기분 좋다. 그것들을 삶에 녹여 요리한다면 더 좋구. 필요할 때 답을 주는 책을 만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개인적으로 울림이 있던 부분은 '작은 관찰의 아름다움', '동양 최초의 법', '법을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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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 2004-03-1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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