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9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김호동) : 좀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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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읽은 책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김호동)

새나

2016. 3. 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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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작가김호동
출판돌베개
발매201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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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격찬하는 책이 내게 별로였던 것은 지금 여기에 대한 함의가 없어서일까.


그렇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고 좀 실망했다. 여러 사람들이 추천했고, 교양 역사서로서는 드물게 7쇄까지 나올 정도로 많이 팔린 책인데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지금 여기에 대한 함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 몽골제국과 현대 한국 사이에 접점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이는 현재 몽골이라는 나라/민족이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축소되었으며 한국의 사회/문화에 몽골의 흔적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일본과는 달리) 몽골과 같은 '제국'을 경영할 의도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


둘째, 놀라움을 주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이 책이 제시한 '새로운' 주장들, 즉 유목민 문화도 농경민 문화 못지 않게 중요하다든가, 몽골이 씨족, 부족 사회가 아니었다든가, 몽골 제국이 칭기즈칸 사후 분열된 것이 아니며 연대감과 일치감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등의 얘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몽골 제국이 '대여행의 시대'를 통해 '세계사'를 탄생시켰다는 이 책의 핵심 주장이 내게는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내가 이미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세계가 오래 전부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주장은 내게는 그리 신선하지 않다. 아니면, 이 새로운 주장들이 별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일까? 이를테면, 나는 아직도 농경민 문화가 유목민 문화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째, '거대담론'이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거대담론은 이제 질렸다'라고 얘기하면서도, 평이한 역사서보다는 뭔가 '거대담론'으로 치장된 역사서를 더 선호한다. 최근 인기를 끄는 '사피엔스'는 아예 종교, 정치, 경제 등의 거대담론을 전면에 등장시킨 역사서이다. 이 책에도 이런 거대담론을 양념으로라도 집어넣었다면 교양서 독자 입장에서 뭔가 더 재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말해 본다.


이제 책의 내용을 요약해 본다.


1장 '실크로드와 유목제국'은 실크로드를 선이 아니라 면, 즉 하나의 역동적인 역사 세계로 파악해야 하며, 실크로드의 메카니즘에서 유목민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목이나 목축이 농경보다 미개한 생산방식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도 등장한다. (여기서, 소위 '농경 혁명'에 유목도 포함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일단 유목도 포함시키는 것 같기는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문명권 중 농경이 아닌 유목을 기원으로 하는 곳이 없어 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농경이 유목보다 우월해 보인다.) 중국의 실크로드 진출이 정치적, 군사적 이유였던 반면 유목 국가들의 진출은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농업 국가인 중국은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했던 반면 유목 국가들은 실크로드를 장악해서 농업 국가에서 나오는 물자를 확보해야 했다는 것이다.)


2장 '세계를 제패한 몽골제국'에서는 칭기스 칸 등장 이전의 몽골 사회, 즉 '울루스'가 씨족, 부족과 같은 '국가에 선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귀족제의 원리가 관철되는 '머리 없는 국가'였다고 주장한다. (나라도 없는 '미개 사회'가 아니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칭기스 칸에 의한 몽골 통일 과정 역시 혈연관계와는 상관 없는, 그 자신의 '정치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몽골 제국의 뼈대를 이루었다는 '천호제'는 그 후 청 제국의 '팔기제'로 이어진 듯하다. 칭기스 칸 사후 몽골 제국이 원, 차가타이 칸국, 킵착 한국, 일 한국의 4개 칸국으로 나누어졌다는 전통적인 해석 대신, 일종의 느슨한 '울루스'의 연맹으로 제국적 연대감을 계속 보존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도 한다. 원나라의 '대칸'이 정치적 우위를 보존하고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3장 '팍스 몽골리카'는 몽골 제국의 기간 네트워크 역할을 한 역참 제도를 자세히 설명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로마 제국에서도 역참 제도는 제국 유지에 큰 역할을 했지만, 몽골 제국의 역참 제도는 무엇보다도 그 규모에 있어서 여타 제국을 압도한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대칸의 직할령(원)에서만 6만 5천 킬로미터의 도로에 1,400개의 역참이 있었다고 한다. 몽골이 역참으로 유지되었지만 또 역참의 과도한 팽창 때문에 쇠퇴했다는 해석도 인상적이다. 러시아의 역참 제도가 몽골에서 유래했음은 물론이다.


몽골인은 기본적으로 그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국 통치를 위해서는 '다원적 세계관'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몽골 제국에서 큰 역할을 했던 '색목인'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눈에 색깔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제색목인'의 준말로서 '몽골인도 중국인도 아닌 제3의 집단'이었다는 것이 나름 인상적이었다. 당시 색목인은 몽골인과 중국인 사이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고려인들이 중국인이 아닌 색목인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몽골이 다민족, 다언어 제국이었기 때문에 번역과 통역이 중요했다는 사실, 은본위제를 기반으로 한 교초라는 지폐의 채택으로 이슬람권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부분이 은본위제에 입각한 거대한 통상권을 이루었다는 사실도 중요해 보인다.


몽골 제국은 또 '대여행의 시대'를 낳았다. 15-16세기 '대항해의 시대'가 바로 몽골 제국 당시인 13-14세기의 '대여행의 시대' 때문에 가능했다는 주장이 나름 신선하다. 결국 몽골 제국이 역참 제도를 시행함은 물론 유라시아 거의 전역에 '몽골의 평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유라시아 대륙을 포괄하는 장거리 여행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마르코 폴로의 중국 여행, 이븐 바투타의 세계 대여행과 함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랍반 사우마의 유럽 여행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4장 '세계사의 탄생' 역시 몽골 제국 아래 '대여행의 시대'가 '대항해의 시대'로 이어졌다는 주장의 연속이다. 쿠빌라이 시대에 만들어졌던 세계 지도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모습이 들어간 조선의 '혼일강리도'는 물론 동방(중국)의 정보가 자세히 나온 유럽의 '카탈루니아 지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라시드 앗 딘이 '최초의 세계사'인 '집사'를 저술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몽골 제국이 성취한 정치적 통합과 이로 인한 세계관의 확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에 비로소 이 책에서 유일하게 '논쟁적'일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한다. 몽골 제국에 의한 세계관의 확대가 서양의 콜럼버스 항해와 중국의 정화 원정을 가져왔지만, 왜 서양에서만 '대항해 시대'가 나타났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유럽은 해양 지향적이었던 반면 아시아 여러 나라는 내륙 지향적이었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된 근본적 이유가 또 몽골 제국이라고 한다. 아시아의 대국들(중국, 페르시아, 투르크)은 내륙에 있는 몽골 등의 유목민들에게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실제로 몽골 제국의 형태로 지배까지 받았기 때문에 해양에 신경쓸 틈이 없었던 반면, 유럽의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의 나라들은 내륙의 유목민에 신경쓸 필요가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유럽의 성공은 몽골 제국이 남긴 정치적, 군사적 부담인 내륙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몽골의 시대가 남긴 '세계사의 탄생'이라는 축복은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저자는 이 책을 끝맺는다.


나름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마음에 그리 들지는 않는 설명이다. 내게는 결국 로마 제국이 몽골 제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로 들린다. 로마 제국의 후신인 유럽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화를 지켜내고 몽골 제국의 침략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결과 내륙에 신경쓸 필요 없이 마음놓고 해양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반면, 몽골 제국은 중국을 완전히 지배하는 데 실패함은 물론 중국의 해양 진출을 방해하여 '동양이 서양에 뒤쳐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역사 해석에는 언제나 문제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내게는 특히 문제점이 더 크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개설서 내지 교양서를 너무 강하게 비판한 것 같기도 하다. 전문적인 학술서였다면 읽기는 훨씬 어려웠겠지만 만족감은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쓴 '좀 더 심각한 책'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 찾아보니 '몽골제국과 고려'라는 책이 눈에 띈다. 아니면 그가 직접 번역한 '집사'를 읽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