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4

아둘람 공동체 최요한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생각 1-6]

아둘람온라인공동체 | Facebook: 최요한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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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카톡으로는 글을 남기고, 페이스북에는 글을 남기지 않았네요... 이 글 올리고 곧 2편도 용감하게 올리겠습니다.

<아둘람 가족분들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단순명료하게 나쁜 놈과 착한 분들이 나뉘던 시대가 지나고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하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제 삶의 뿌리였던 기독교 – 심지어 제 이름은 ‘요한’입니다 – 가 심각하게 비판을 받는 시대가 되다 보니 진짜 ‘기독교는 뭐지?’라는 질문이 제 뱃속에서부터 목구멍까지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징글징글했던 기존 기독교회에서 쫓겨나고 나서, 나름 대안교회라는 곳에 출석하기도 하고(거기서도 심각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ㅠㅠ), 이리저리 치여 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목사아들 돼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사역하고 있는 ‘벙커1’교회에 출석을 하기도 했지요. 요즘은 사정이 생겨서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가나안’ 교인이네요.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제가 생각하고 느끼고 정리한 것을 글로 남겨 두지 않으면 그냥 휘발(揮發)되겠구나 하는 겁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5.18이 부정당하듯이 왜곡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대단해서도, 너무나 엄청난 주장이라서가 아니라, 돌들이라도 소리를 칠 것이라고 하셨으니, 그 돌이 던져졌으면 어디에 어떻게 던져졌고, 누굴 맞춰서, 어떤 파괴력이라도 보였나, 하는 것을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몇 주 동안은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저서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를 중심으로 책도 읽고 생각을 깊이 했습니다. 도올 선생의 해석은 탁월했습니다. 제 생각과 맥이 닿는 부분이 있어서 좀 뒤적거려 보았더니 대략 10여 년 전에 썼던 글이 있네요. 지금 맥락에 맞춰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냥 이런 생각하고 사는구나 하고 여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210703 최요한



<생각 톺아보기1 - 20210704>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 문제는 ‘사도바울’이었다는 뼈아픈 깨달음


문제는 바울


1.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디아서1:8~9)
2.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요한14:6)
3.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행전4:2)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누가 읽는지, 언제 어떤 장소에서 반포하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만, 기독교인들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성경’에 분명히 들어가 있는 말씀입니다.
10여 년 전에 한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위험지역이라고 제발 가지 말라고 외교부에서 그렇게 막았었지만, 당시 정말 개념 없는 기독교인들이 정부를 속이고 넘어갔다가 납치되어 2명의 귀한 생명 희생되고 아까운 세금이 협상용으로 사용되는 ‘민폐’를 끼친 적이 있지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오직 예수’라는 단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인용한 성경말씀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온 세계 방방곡곡에 하느님 말씀이 널리 퍼져서 온 민족과 온 열방이 온리 지저스, 온리 하느님만 믿어야 하는 것, 부처니 이슬람이니 모두 다 불태워버리고, 오로지 기독교 지상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의식, 오직 예수님만 믿고 천국가자는 바로 그 핵심논리 말입니다.


슬프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국민적 지탄을 받을 때는, 막상 납치당했을 때는 ‘선교’가 아니라 순수 ‘봉사’라고 하더니 지금 그때 살해된 두 사람의 ‘순교비’가 서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때의 이슬람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 선교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조계사와 봉은사에서 잇따라 개신교인들 10여 명이 소란을 피웠다고 하지요. 바뀌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생각해 보면 조선 땅에 들어온 ‘복음’도 서양 선교사들이 대동강에서 목이 뎅강 떨어져 나가면서 전파된 것이지요. 그냥 분당샘물교회를 욕하거나 “개념 없는 개독교인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화가 나서 욕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순교와 순교자에 대해서 비하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물론 저는 순교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아직도 버젓이 그 유가족들이 남아 있는데 도가 지나쳐서는 안 되지요.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이제 보니까 낯이 뜨겁습니다. 혹시라도 유가족분들이 그때의 제 글을 읽고 맘 상하셨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는 이 부분이 명백하게 ‘순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짚을 것은 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땅밟기(불교나 이슬람 사원 가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데도 그게 의미가 있다고 그런 짓을 한 것입니다. 그쪽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지 않고 공격적인 선교를 진행한 것이죠.
이제 생각해 보니 대동강에서 예수를 전파하다 대원군의 잔인한 명령으로 살해당한 선교사님들의 순수성을 십분 이해하지만, 그분들의 배경에는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했던 제국주의의 시커먼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눈앞의 팩트가 전부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옛날에도 복잡다단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복잡한 인간사입니다. 여기에 정치가 개입되어 있는 ‘종교’가 외피를 두르고 나타나면.... 사건이 커집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습니다만, 전 세계에서 이렇게 사고를 저지르는 기독교인들,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요, 그 이유가 바로 ‘바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올쌤은 마가복음에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했고, 그것으로 마가복음의 ‘베드로’는 끝났다, 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초대교회 신자들이 떠받들어 교회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이제는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떻게 베드로가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그런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가장 큰 제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반석이라고 칭해서?(마태오 16장 18절)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초대교회에서 베드로를 초대 지도자로 삼아서 처음부터 엇나간 것은 바로 [바울-베드로 동맹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바울과 베드로가 동맹을 맺었고, 나머지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어떻게 기독교가 ‘예수의 하느님 신앙’과는 전혀 다른 ‘예수에 관한 신앙’으로 변질되었고, 어떻게 세계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나,를 제가 공부한 대로, 그리고 한국기독교에 비추어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짬짬이 정리해서 글을 올리는 건데요, 혹시라도 팩트가 틀릴 수 있고 제가 착각했다면 지적해 주세요. 다만 기본적인 시각이 다르면, 맘이 상하실 수 있으니까 그냥 지나가 주세요. 서로에게 이롭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아직 많이 남았네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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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2 - 20210711>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 외전,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


크리스마스가 오면 예전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었지요. 얼굴 발그레 달떠서 ‘그녀’ 혹은 ‘그’에게 정성스레 카드를 만들어 보냅니다. 요즘은 그냥 스마트폰에서 인사를 하지요. 저도 전에 그렇게 지인들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아무래도 ‘바울깨기’ 운운했던 것이 몇몇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아요. 이런 톡을 받았습니다.

“성경 3위1체 하나님 외에 누가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john 요한 기쁜 성탄 되시길 형 *** 드림”

저는 압니다. 왜 최요한이 글을 쓴 것이 ‘왈가왈부’가 되는지,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왜 불편한지,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고 ‘해석’하는 것이 불순해 보이고 ‘타락’으로 느껴지는지....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제가 전에 있던 교회로부터 쫓겨난 이유는 근본적으로 목사의 설교와 그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였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목사가 “다른 교회를 가라”는 결론을 내주어서인데, 사실 다른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지난 글에 썼던 것처럼, 도올 김용옥 쌤의 결론과 같습니다.

2천년 기독교의 역사 전체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느리지만 지금 바뀌고 있으며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방식과 형식으로 아주 혁명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하느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만 결코 교인은 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교회는 줄어들고 쫄딱 망할 것입니다. 성경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은 예수의 직제자인 마태마가누가요한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고, 왜 성경이 66권에 한정되어 배포되었고, 왜 성경에는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디아서 1:8)이라는 살벌한 말씀이 편입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의 가장 근본의 문제는 성경의 문제이고 성경을 해석하는 문제이고 성경에 보이는 숱한 오류와 잘못을 하느님 백성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보통 교회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성경으로 돌아가자”
응? 그래서 어쩌자고?
“내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해석해야 한다”
엥? 성경이 인공지능도 아닌데, 성경책을 읽는 내가 해석하지 않고 성경이 나를 어떻게 해석해? 참 신실한 말장난이네....

실제로 그랬거든요... 어릴 때 성경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면 선생님들 혹은 전도사님들이 명쾌하게 해석을 해 주기보다는 저렇게 이야기 하거나 가끔은 회피해서 이렇게도 이야기 합니다.
“요한아... 우리가 생선을 먹을 때, 가시를 먹지 않는 것처럼 모르는 것은 묵혀 두었다가 어른이 되어서 먹도록 하자”

사실은 어른이 되어서도 생선 가시는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해도 몰라서 그런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전혀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성경에는 너무 많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교회가 딱 기준이 되어 해석해 놓은 그 선을 넘으면 불경스럽거나 뭔가 잘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지키려는 겁니다. 그러니 성경이 나를 해석해야 한다는 식의 ‘신실한 말장난’이 나오는 거죠.

칼 바르트가 조직신학을 정립해서 지금 한국은 바르트로 천하통일 되었지만, 사실 루돌프 불트만(코가 빨간 루돌프 아님)이 성서신학을 정립하면서 서구 신학계에서는 성경 해석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이 많다는 이야기, 도올 쌤 ‘마가복음 강해’ 앞부분에 있으니까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성경을 읽다가 모르고 막히는 부분은 정직하게 해석하자는 겁니다.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교회를 벗어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미친 듯이 혼자 깔깔 대면서 웃었던 부분이 바로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 verbal inspiration)’입니다.

음... 한 마디로 성경의 저자가 로봇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를 뒷받침 한다고 하네요. 성경의 저자가 한 사람도 아닐뿐더러 설사 한 사람이라고 고집한다 하더라도 저자가 하느님하고 접신(接神)합니까? 너는 딱 여기에 앉아서, 붓 들어... 지금부터 나 하나님의 감동을 줄테니 그대로 써! 잘못 쓰면 듀금이야~~ 라고 협박했을까요? 그래서 저자가 땀 삘삘 흘리면서 하느님과 접신한 상태에서 몽롱하게 하느님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했을까요? 그래서 성경이 오류가 없어서 ‘성경 무오류’를 주장하는 건가요? 성경저자가 그렇게 하느님한테 접신한 상태에서 성경을 쓰다가 배가 고파지면, 하느님, 저 밥 먹고 올게요 했을까요? 오줌이 마려우면 하느님 저 소피 좀.... 했을까요? 아니면 워낙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셔서 저자가 하느님과 접신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예 배고프지도 않고 오줌도 마렵지 않게 했을까요?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는 “개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이야기 하세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 쳐들었던 슬로건이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였습니다. 그게 축자영감설이나 성경무오설을 뒷받침하는 슬로건이 아니라 당시 중세 교황과 교회 내 부당한 권력자에 대항하는 강력한 슬로건이었습니다. 진짜 권위는 당신들의 그 허접한 교회정치와 세속적인 야욕에 눈이 멀어 맘대로 면죄부를 만들어 파는 교회행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성경에 있는 내용에 있는 것이다! 라는 차원에서 주장된 것입니다.
성경은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널리, 자유롭게, 빛나는 인간의 이성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니체나 도킨스를 포용할 정도로 성경은 해석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성경이 예전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고, 개판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잠깐 맑시스트가 되었을 때 성경을 바라보았던 그 관점으로, 민중의 착취도구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게 정상이예요. 인정했다가 부정했다가 다시 인정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저는 그랬어요. 다석 류영모를 부정했다가 다시 인정하니까 그가 참 하느님의 사람임을 알아보게 되었어요.

오늘은 ‘바울깨기’의 외전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에 대해서 글 올립니다. 조금 걱정도 됩니다. 예전에도 제가 이런 글을 쓰니까 순복음교회 목사라는 사람이 – 꽤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 협박 메일을 보내고 그랬거든요... 협박죄로 고소할까 하다가 그만 뒀어요. 시간이 아까와서 ㅋㅋㅋ
오늘은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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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이기동
깊이있는 글에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어른이 되어서도 생선 가시는 먹지 않습니다”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 저희 애들에게도 조심스럽게 말 해주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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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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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희
구텐베르그가 괜히 성서를 인쇄 해가지고...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이죠. 그 이전의 일반 신자들은 성서 없이 어떻게 신앙을 잘 유지해서 지금까지 전달해 주었는지 참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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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 Kim
이현희 삼위일체 하느님만 알면 성경이 없어도 ~~~수미산 보다 더 높이 쌓인 신학이론이 정말 삶에 필요한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가톨릭은 성사와 구원을 필수로 엮는데, 프로테스탄 목사님들은 말씀만 갖고도 훌륭히 사시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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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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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쓰는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라는 제목의 글은 10여 년 전부터 다석 류영모 선생님의 제자 박영호 선생님의 책을 참조해서 써온 글인데요,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냥 마구 퍼가고 이상한 곳에서 활용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ㅡ,.ㅡ;;;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생각3 - 20210714>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2)

지난번에 아프가니스탄 납치사건을 말씀드리고 10여 년 전 그때와 지금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단언컨대, 한국교회는 아니,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근본주의적 선교관을 가지고 있는 그 어떤 단체든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겁니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에 남아 있는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또는 대교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예수 비즈니스를 포기할 때까지, 또는 기독교라 포장해서 어린 양들을 그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교리에 가두어 넣는 행태가 중지될 때까지, 납치와 테러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또다시 코미디를 겪을 겁니다. 불행한 거죠.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를 겪고도 이 교회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답니다. 당시 피랍 후 살해당한 배형규 목사와 관련한 책을 출판하고(한솜미디어刊, 아프간의 밀알), 2011년 7월 31일에는 샘물교회 안에 '아프간 순교자 기념관'을 만들고 개관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2012년 9월 5일에는 배형규 목사의 고향인 제주도에 배형규 목사 순교기념비를 세웠다고 하니, 저는 이 망할 놈의 한국 개신교의 예수 비즈니스는 갈 데까지 갔다고 봅니다. 누리꾼들은 ‘아프간의 밀알’을 빗대어 아프간의 불알이나 아프간의 질알 또는 아프간의 니밀알이라고 조롱하고 있다네요 ㅡ,.ㅡ;;;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제로입니다. 자신들의 소명이(라 착각하는) ‘선교’라는 틀에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들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장 8절)
오늘날 문제를 일으키는데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종교적 배타성이니 국제 정치문제니 다 집어치우고 위험하든 말든 무작정 들어가서 땅 밟기하고, 그러면 하느님 말씀이 전파될 거라고 생각하는 단세포 생각이 만들어낸 비극, 그 원인을 저는 ‘바울’로 봅니다. 그래서 바울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바울에 대해서

바울을 올바로 알아야 바울을 깨고 바울 너머를 보게 됩니다. 바울을 깨는 자신을 잘 알아야 바울을 깰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쓰는 거죠.
바울은 랍비입니다. 유대교의 스승이기도 하죠. 소아시아 동쪽에 위치 한 항구도시인 ‘다소’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그는 당시 세계 최강국인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민(流民)이었습니다.
고전 그리스어로 ‘파종’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표현이 바로 유민이라고 하는데요, 보통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로 인하여 중동 전역에 생겨난 유대인 집단을 의미하고, 이것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자 단어가 생기게 된 계기가 됩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이것은 바울의 콤플렉스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가 살아있던 당시에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예루살렘으로 와서 당시의 유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에게 율법을 배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요(사도행전 22:3), 또한 바울이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대단히 과격한 유대교 근본주의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스테판 집사를 잔혹하게 죽이는데 앞장서는 사울로 나타난 것이죠.

또한 나자레언으로 불리던 유대 내 그리스도교인들이 당시 사울이 앞장서서 자행하는 박해를 피해서 사마리아와 팔레스타인, 특히 다마스쿠스(다메섹)과 안티오키아(안디옥)으로 많이 갔는데 바울을 그곳까지 쫓아가서 체포해 처벌하려고 하는, 끔찍한 근본주의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다메섹 길가에서 예수를 만나 회심(回心)의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하려고 성서 기자가 더욱 근본주의적인 사울을 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지만 어찌되었든 사울은 근본주의자에서 예수주의자로 극적인 전환을 이루었으며, 이 ‘바울’로 인해서 유대 내 메시야 사상은 ‘예수’라는 존재를 통해서 전 세계적인 메시야 사상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바울 없이는 우리에게 전해진 기독교도 없었고 또한 예수도 없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논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죠. 그러기에 다석 류영모 선생과 그 제자들은 바울에 대해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의견이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한국의 기독교 아니, 전 세계의 기독교를 설명할 때 바울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고서는 기독교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울에서 사도바울로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다마스쿠스 성 밖에서의 ‘회심사건’입니다. 사실 이 회심사건으로 인한 바울의 등장은 유대교의 한 부류나 마찬가지였던 '예수주의'가 전 세계적인 종교로 급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갑자기 시력을 잃은 바울은 그 이후 아나니아의 안수기도로 실명한 눈의 시력을 다시 찾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의 사흘 동안 그야말로 암흑과 같은 깊은 절망과 혼돈에 있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사람의 질병이 하느님의 노여움에서 오는 것으로 알았는데(요한 9:2), 유대교의 근본주의자였던 바울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다혈질적이고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는 저 못된 예수 추종무리들, 하느님을 모욕하고 그 권위를 깎아 내리는 예수 추종자들을 모조리 싹 잡아다 죽여야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하느님의 저주와 같은 질병이 걸렸으니 바울의 쇼크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하느님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 자신이 박해하는 사람들의 편이었다는 것을 결국 깨달았던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깨달음은 인생의 대반전을 이루는 중요한 순간이자 이 깨달음의 주체인 바울의 다음 언명들이 향후의 기독교의 방향을 설정하게 되는 겁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루어진(?) 바울의 교리가 '대속교리'로 설명됩니다.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사수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 명료한 이념이 다마스커스의 사건으로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질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생각한 바울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이념이 전적으로 잘못되었고 이를 극복해 줄 도우미는 바로 자신이 박해했던 예수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은 간절히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눈이 멀어서 앞도 보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공포에 쌓인 바울로서는 그저 '백기항복' 이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사흘을 그렇게 지내고 나서 생전 처음 만난 아나니아라는, '주께서 보내셨다'라는 사람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고 완전히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은 스테파노 집사를 죽였지만 예수는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 공포와 두려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타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 있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탄식과 바울이 예수에게 매달려 향후 자신의 전 생애를 다 바친 근원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로마서7:24~25)
더군다나 유대인들의 기존 야훼 신앙은 유치신앙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여전히 '무서운' 아버지로서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공포의 대상인 것이죠. 바울도 그런 유치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마스커스의 사건으로 인해 단박에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아버지가 내 속에, 내가 아버지 속에 있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 사랑의 신앙을 이제 바울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왜? 자신이 그렇게 잘못을 했는데도 예수는 자신을 죽이지 않고 질병도 낫게 해 주었으니까요!

자! 결정적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 바로 여기까집니다. 바울이 예수를 다시 바로 알게 되고 하느님의 뜻이 저 유대민족의 신앙에 있지 않고 자신이 탄압했던 나자레언(크리스천)들에게 있다고 느끼는...... 바로 여기까지가 본연의 모습으로서의 바울이었습니다. 바뀐 바울이고 회심한 바울이고 돌아온 탕자로서의 바울이고 우리가 나아 갈 방향으로서의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 엄청난 경험을 나누어야만 했습니다.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려야만 했습니다. 자신이 박해했던 나자레언들에게도 알려야 했고 자신과 함께 나자레언을 탄압했던 유대교인들에게도 알려야 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그 공포의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과 같이 대적을 하던 사람도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그런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려야만 했습니다. 예수에 대한 적의(敵意)에서 진정 예수가 하느님의 사람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선의(善意)를 알려야 했습니다. 바뀐 바울은 그렇게 알려야 했습니다.
무엇으로 알려야 합니까?

예수를 단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했던 바울이 무엇으로 자신의 엄청난 경험과 하느님의 사랑을 알릴 수 있을까요?
바로 그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으로!!!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할아버지가 로마의 용병으로 군에서 복무하면서 시민권이 주어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 혈통이었으나 조부 대부터 로마인이 되었으므로 유대인다운 소양은 물론 그리스어와 고대 그리스의 학문상 소양들을 익힌 것으로 보입니다. 가말리엘 밑에서 공부했다고 하지만, 정통 유대교의 율법학은 물론 당시 진보했던 헬라철학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섭렵한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서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정리해보면
1) 바울은 당시 진보한 헬라 철학은 물론 정통 유대교의 율법학까지 정통했다.
2) 게다가 그는 로마 시민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계급이었다.
3) 당시 예수 따라쟁이들을 박해했고, 스태파노 집사를 죽였다.
4) 다마스쿠스 길에서 결정적인 회심(回心)의 경험을 하게 되면서 눈이 멀었다.
5)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으며 눈이 나았지만, 그의 경험은 그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충격이었다.
6) 그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전파해야만 했다.

자~ 이 정도 되면 바울이 무엇으로 ‘예수’를 전하려고 하는지 결론이 나옵니다. 바울은 예수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다마스쿠스 길에서 만난 예수가 그 전부이지만, 그를 전해야 했습니다. 유치신앙에서 벗어나 돌아온 탕자와 같은 입장에서 예수를 전파합니다. 무엇으로? 바로 그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으로!!’
여기서부터 기독교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하면 오만일까요?
------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요. 이만 총총하고, 다음엔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는 바울과 베드로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합니다.

※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韓國人拉致事件)은 2007년 7월 19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향하던 23명(남자 7명, 여자 16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되었던 사건입니다.
탈레반은 피랍된 23명 중 심성민과 배형규 목사를 살해했으나, 대한민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 결과 다른 한국인 국민 인질 21명은 8월 31일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풀려나 피랍사태는 발생 42일 만에 종료되었고, 9월 2일 생존한 피랍자 19명이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피랍자들과 해외 위험지역에 선교를 하러 다니는 일부 신교도들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향후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사에 남아야 할 정도로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상 근본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기독교가 무너지는데 이 사건이 상당한 이유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면 어떤 사건이 벌어져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회적 비판을 받게 되면,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분당샘물교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여러 사건을 묶어서 예수 비즈니스로 활용합니다. 탈레반에게 살해당한 배형규, 심성민 두 사람이 ‘순교’라는 범주로 묶어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격적 선교관에 꽉 차 있는 근본주의 한국교회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근본주의는 예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 있고요,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겁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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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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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2명의 목숨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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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2명의 목숨이 문제가 아니다.

없이계신이추천 0조회 7307.07.27 18:24댓글 4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글을 시작하기 전에 부디 이 글이 허황되고 허무맹랑하게 과장된 글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지금 기독교가 무자비한 뭇매를 맞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들에게 까지.
세상에 납치되고 욕을 먹는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바로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이 이 정도까지 심할 줄이야!
예수쟁이들(나를 포함해서) 예전엔 진정 몰랐을거다.

요즘 세상에 비밀은 없다.
그동안 선교를 갔던 이들이 숨어서 한 짓들이 만천하에 공개 되고 있다.
샘물교회와 봉사단원들이 무슨 행동을 어떻게 했는지도 인테넷을 통하여 인질범인 탈리반에게 까지 모두 알려지는 세상이다.
내가 무슬림이라도 기독교에 대하여 적개심이 솟구칠 것 같은 장면들이 인테넷을 통하여 동영상으로 유포되고 있다.
과거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실수를 한 일은 있어도 거리에서 아이들에게 빵 조각을 나누어 주면서 영어로 “예수님은 나의 구주 이십니다. 할렐루야! 아멘!”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복창시키지는 않았다.
동영상은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어떻게 가지고 놀았는지 잘 보여준다.
인류사에서 저질러졌던 선교의 야만성이 총체적으로 집결된 한국 교회의 선교 실태가 한꺼번에 폭로되고 있다.
이제 그 후폭풍이 언제 어디거 거세게 불어 올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옛날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모두 신의 뜻으로 해석하던 원시시대 이래 인간은 인지가 발달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세상의 일에서도 점점 상식을 찾아 갔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서 여전히 상식에 맞지 않는 사고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의 상식이다.

혹자는 지금은 분석이나 비판 보다 기도할 때라고 한다.
기도의 근본은 무엇인가? 자기 성찰이 아닌가?
성찰의 출발은 오류에 대한 겸허한 인식과 그 인식에 근거한 존재론적 회의에서 부터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성찰과 분석 없이 무조건 살려달라고 아우성만 치면 그것이 기도인가?
오히려 ‘사탄에 권세에서 풀어 달라는 식’의 기도는 인질들이 모스크에 가서 몰래 찬양을 하는 사진을 이슬람사이트에 올리는 악의 못지않게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
정작 탈리반이 종교적 이유에서 인질을 납치 했다면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을 알고 풀어 줄 것인가?

미몽에 사로잡힌 기도, 현실을 정확히 통찰하지 못한 기도는 하나님을 곤란하게 만들 뿐이다.
때로는 기독교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도, 은혜, 사랑 등등 관념적인 어구들이 구체적 현실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많은 이들이 인질들의 신앙적 열정을 존중한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재판도 신앙적 열정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기억하자.

아프칸은 분쟁지역이다. 전쟁터에서 이성은 없고 오직 효과만 있을 뿐이다.
전쟁 지역에 애매모호하고 어느 편에서도 혼란스러운 방법으로
활동을 하다가 국가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되는 문제를 일으킨 사건을 놓고서
하나님께 해결해 달라고 땡깡 쓰면 하나님인들 어쩌란 말인가?
아프칸에 종교적 이유로 가 놓고도 종교적 이유로 갔다고 비판하면 아니라고 하고 해결은 또 정치적인 방법으로 되기를 바라던 말 안 되는 기독교들의 행동방식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때로는 감상이나 감정이 문제를 직관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 이런 불행하고 어리석은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데 관심을 쏟고 잘못을 인정해서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해야 할 때이다.
김선일 사건 때 충분한 각성이 없었기에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가?
아직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아프칸에 갔던 젊은이들과 같이 혹은 그들을 그곳에 보냈던 교회지도자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학의 문제이다. ‘천하 보다 귀중한 한 영혼’이라는 영혼에 대한 산술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 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교는 계속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는 기독교의 선교방법에 대한 질문을 넘어서 오히려 여기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 기독교의 존재론적 위기이다.
나는 이번 사건이 그동안 숱한 문제를 안고 진행되어 왔던 해외선교를 되돌아보는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반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아프칸 인질 사태를 이야기 할 때 인질의 무사귀환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전제 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전국민들의 가슴을 졸이던 사태의 추이는 안타깝게도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귀결이 나고 있다.
이번 사태가 한국 교회사의 큰 전환점이 되는 것만이 진정 배형규 목사의 고귀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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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smallGarden첫댓글 07.07.28 08:46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권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선교/전도에서만은 예외로 두는 경향이 있어 왔지요. 내 신앙이 중요하면 남의 신앙도 중요한 줄 알아야 할 터인데, 하느님 이름으로 정복하듯이 선교/전도를 하려고 했으니.. 신앙이란 것이 워낙 미묘해서, 섬기는 자세로 해도 말썽들이 있어나는데, 그 참..; 지난날 기독교가 저지른 과오들을 타산지석으로라도 삼아야 할 터인데.. 그 참.. 아무튼,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다비아에 올렸으면, 또 대판 사고 났것네요~)

 없이계신이07.07.28 06:14
지금 다비아에는 긴급조치(?)가 내려졌지요. 그 곳 분위기를 존중해야 하니까 다비아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제임스강07.07.28 17:42
속이 시원한 소리 ....

===
<생각4 - 20210718>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3)

지난번에는 바울이 예수를 전할 때, 세상 잘난 바울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축적된 경험과 지식으로!!’ 전했다고 말씀 드렸어요.

여기서 ‘세상 잘난’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주세요. 이 잘났다는 것은 사실 바울 스스로 이야기 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22장 후반부와 23장 상반부에 바울이 얼마나 신분상 엄청난 사람인지 드러납니다. 바울은 로마시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파견 나온 파견대장(백부장)은 엄청난 돈을 주고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만, 바울은 아예 태생이 로마시민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로마의 용병으로 공을 세웠거든요. 그래서 로마시민은 체포하지 못합니다. 바울을 시기하는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인들이 그를 때려죽이려고 했지만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 의회에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두 파가 있는 것을 알고 바울로는 거기에서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내 부모도 바리사이파 사람입니다. 내가 이렇게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믿는 대로 나도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3장 6절)

바울은 공회당에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가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둘 사이의 이간질로 저런 발언을 한 겁니다. 사두가이파는 부활도 천사도 영적 존재도 다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고 바리사이파는 그런 것이 다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이런 배경도 다 이해할 정도로 바울은 당시 사정에 대해 빠삭(?)했고, 두 관계를 이간질 할 정도로 언변이 훌륭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지만 로마시민이었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학을 배우며 수학했고, 그리스(헬라) 철학에도 상당히 능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세상 잘난’ 사람이었죠. 요즘으로 치면 빵빵한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울대 나오고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신분이 보장되는 안정된 ‘세상 잘난’ 사람쯤 됩니다. 신분만 잘 난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도 당시 기준으로 매우 건실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당시 독실한 바리사이파 사울로서 초기 기독교 여러 공동체를 박살냈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살렘에서 각 처로 기독교인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이고요, 그 흩어진 사람들마저 잡아 죽이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회심사건을 만나게 된 거죠. 결국 저런 언변을 가진 바울은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사이를 갈라치기했고, 결국 소란스러운 논쟁이 일어나면서 바울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사도행전 23장 9~10절)
하여튼 이렇게 세상 잘난 바울도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신명을 바쳐서 전도하는 예수를 살아 있을 때 직접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예수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할 때 열두 명의 제자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직제자들이었고 – 물론 예수의 제자가 이 열두 명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마리아나 마르다 같이 강력한 후원그룹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열두 명의 제자도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후일에 첨부되었을 수도 있지요. – 그들은 예수의 직제자였다는 이유로 상당한 권위를 누릴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 직제자들의 직업은 흔히들 아시는 대로 어부라든지 기껏 머리를 좀 쓸 줄 안다면 ‘세리’ 정도입니다. 바리사이파에, 로마시민에, 정통 유대인 혈통에, 당시 진보했던 헬라철학까지 상당 수준으로 섭렵한 ‘바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신분적 갭과 지적 수준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직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직제자와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둡니다. 아니, 직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밥 먹고 잠자고 ×싸고, 볼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지만, 예수 사후에야 예수를 다마스쿠스에서 만난 바울로서는 예수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물론 나중에 전해 들었을 수는 있지요. 예수는 (엄청난 사투리가 심한) 아람어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바울은 그런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예수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도올쌤은 그의 저서에서 바울이 전한 예수와 직제자들이 전한 예수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바울이 예수와 기독교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을 제대로 전했는가 하는 부분은 솔직히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면 기존의, 특히 보수적인 전통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해 격렬하게 이단이라고 비판할 것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언사를 동원해 반발할 것입니다. 

저 역시 다석 류영모 선생의 첫 책을 접하면서 가졌던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거든요. 에둘러 가지 않고 다석 선생은 바로 바울을 지적했습니다. 바울이 바울교를 만든 것이라고... 사실 저는 그렇게 읽던 책을 접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책이라고 욕을 하면서 책을 접었지요. 하지만 결국 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석 쌤의 지적이 정확했다고 결/국/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바울은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노여움이든 아니면 사막에서의 급성 결막염이든 어떤 것이든 계기가 되어서 자신이 박해하고 있는 나자레언에게 진리가 있으며 자신은 '허위'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보통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잘못을 계속 하지 않지요? 바울도 마찬가지고 박해하는 것을 곧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울이 그 예수를 직접 만나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과 함께 했느냐?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고백합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삼 년 뒤에 나는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그때 주님의 동생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는 만나지 않았습니다."(갈라디아서1:17~19)
어?
이게 뭐죠?
세상 잘 난 바울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예수의 직제자들을 만나 배우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출신성분이 아무리 높다 해도, 바울이 아무리 당시의 ‘엄친아’라고 해도 당시에는 신약성서조차 기록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바울이 아는 예수는 그저 살기등등하게 나자레언을 탄압할 때 알던 왜곡된 상태의 ‘예수’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예수의 제자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자세히 보면 뉘앙스가 조금 이상한데,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이라고 칭하고 있지요? 그 누구도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도로 칭하고 있습니다. 헐...
"그리스도 예수의 종 나 바울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사명을 띤 사람입니다" (로마서.1:1)
Paul, a servant of Jesus Christ, called to be an apostle, separated unto the gospel of God,(Romans. 1:1. KJV)

로마서의 시작에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특별한 사명을 띤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대단한 자신감이자 용기입니다. 그 누구도 사도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사도'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설명은 D 후릇사르 著 『유대인이 본 그리스도교』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바울로는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교회와는 어느 면에서 대립 관계 속에 있었다. 바울로는 자기 자신의 특별한 가르침을 펼쳤다. 그것은 자신의 복음이었다. 바울로는 예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메시아인 예수에 의한 구원 곧 예수의 대속이 기독교의 중심문제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바울로는 그리스도교의 제2의 개조(開祖)로 생각되었다. 남아있는 유대국 내 그리스도교도의 자료에는 바울로가 대악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메시아적 그리스도교관은 유대 내 그리스도교는 바울로의 개인적인 의지의 산물로 보았다. 유대 내 그리스도교도는 10세기경까지 존재하였다는 것을 아라비아에서 발견된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다."

사도권에 집착하는 바울

성경을 잘 살펴보면 곳곳에 바울이 바로 이 ‘사도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바울이 사도권에 집착을? 그냥 믿으라고, 의심하지 말라는 교회의 일방적인 세뇌에 젖어 있으면 그게 보이지 않는데,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그게 명확하게 보입니다.
이참에 ‘사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야겠네요.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사도라고 자칭한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말로 번역된 ‘사도’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apostle’라고 씁니다. 발음은 ‘어빠~쓸’처럼 들립니다. 발음기호는 [əˈpɑːsl] 이렇습니다.

헬라어로 가봅시다. 예수님의 열두 명의 제자를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의 의미는 아포(~로 부터)와 동사 스텔로(내가 보낸다)가 결합해 파생한 “~로 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의 명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 전체에 이 아포스톨로스라는 단어는 79번 나오는데, 마태와 마가, 요한복음에는 각각 한 번씩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서신에서는 29번, 바울의 전도로 그의 제자가 되어 전도 여행을 함께 한 누가는 그의 저서 사도행전에 34번 사용했습니다.

헬라어 구약성경에는 단 한 번 사용된 이 용어는, 셉투아진트(70인 역·LXX)의 번역자에 따르면, 샬루아흐ַ(=being sent, Qal 동사 שָׁלַח 수동태 분사)를 명사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로 번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받고 보냄을 받은 말씀을 전달하는 자(messenger)로 표현합니다. 아히야 선지자가 여로보암 왕의 아내에게 자신을 하느님의 메신저로 이야기하지요.(왕상 14:6)
그래서 이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라는 단어 ‘사도’는 하느님 메시지의 전달자인 천사와도 다르고, 배우고 따른다는 제자의 의미인 ‘마테테스’(Maqhthj")와도 구분이 되는 독특한 용어라고 합니다. 그레코 로만 세계에서 바다 항해를 하는 군사적 목적의 함대나 함대장, 혹은 외교적 목적을 지닌 사절단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지만, 이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바울 혹은 다른 제자들에게 특정되어 기독교인들만이 쓰고 있는 기독교적 용어가 되었다고 합니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messnger Paul! 멋있잖아요!!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사도로서 권위를 부여한 바울은 서신 곳곳에 자신의 ‘사도권’ 방어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남겨놓았습니다.

나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 할 것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고후 11:5)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지도해 줄 교사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아버지는 여럿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교인으로 태어나게 한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고전 4:15)
비록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주님을 믿는 여러분이야말로 내가 사도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확실한 표입니다. (고전9:2)

특히 갈라디아서 2장 1절~10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사도권에 대해서 간절하게 인정받기를 원했는지 구구절절하게 나와 있습니다. 특히 9절은 압권입니다.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파(베드로)와 요한’이 인정해 주었고, 더군다나 그들이 ‘친교의 악수’까지 청했다고 깨알 같은 자랑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은총을 인정하고,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친교의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갈 2:9)

물론 바울이 구구절절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사도라는 권위가 절대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부터 13장을 잘 읽어보시면 당시 초대교회 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는 것에 대해 바울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토로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와는 달리 고린도 교회나 갈라디아에서는 이런 갈등이 상당히 심각했고,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파송 받아 고린도에 온 자들을 ‘위대한 사도’니 ‘초특급 사도’니 라며 냉소적으로 그린 것 같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시면 되게 이해가 잘 됩니다. 꼭 권유드립니다.
갈라디아서의 고백처럼 바울은 다마스쿠스 사건 이후 곧장 복음 전도에 뛰어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라비아와 다마스쿠스 그리고 삼 년이 지난 후에야 베드로를 만나러 예루살렘에 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같이 지낸 시간도 겨우 '보름' 뿐이었고 야고보를 제외하고는 다른 제자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추리인데, 바울의 '대속교리' 즉, 바울의 특별한 가르침은 바로 이 시기, 삼 년 동안 고민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겁니다. 다마스쿠스와 아라비아와 각지에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만들어낸 케리그마(신념체계)의 시간이 삼 년 필요했던 것이고 이후에 베드로를 찾아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바울이 3년간 있었다는 ‘아라비아’라는 지역은 회심 사건을 겪은 다메섹 부근의 나바테아 왕국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 왕은 고린도후서 11:32에서 ‘아레다 왕’으로 간단하게 언급되는데, 사료에서 발견되는 대로 ‘아레타스 4세’(9BC~40AD)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 3년이라는 숨은 시간(hidden time)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합치된 견해는 없습니다. 선교를 했다, 준비기간을 가졌다는 등 크게 4가지 의견들이 있는데, 그것이 어떤 의견이든 제 개인적인 생각대로 ‘어떤 식으로든 치열하게 고민했다.’라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제자들 중 가장 맏형 뻘인 베드로를 만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식하고 멍청해서 도저히 자신과는 격이 맞지 않는 예수 제자들을 바울이 만난 이유는 혹시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사도'로 인정해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보름을 베드로와 함께 지내면서 자신의 대속교리를 이야기하고 또 자신을 사도로 인정해 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예수께서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신뢰를 보낼 정도로 '정통성'을 가진 베드로에게 사도로 인정받게 된다면 이후 바울의 복음전도 사역이 평탄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그런데 그리 좋은 관계로 끝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야고보 이외에는 다른 제자를 만나지 않은 것을 보니 별 영양가가 없는 만남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바울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복음 전도사역에 나서게 됩니다. 베드로하고는 어느 정도 쇼부(?)를 치지 않았을까 합니다. 동맹을 맺자! 어차피 예수 직제자들의 헤게모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나도 지분있다! 라는 거죠.

 [바울-베드로 동맹]이 맺어지고 서로 침범하지 않되, 대신 3년의 시기 동안 정리해 낸 ‘대속교리’ 받아라! 그러면 당신네(직제자)들도 해피하고 자신도 해피하고...
결과적으로 바울의 상당한 지위와 지식은 전도여행을 통해 상당 부분 실현이 되고, 베드로는 예수의 직제자로서 초대교회의 리더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베드로와 맺은 ‘동맹’외의 다른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대해서는 방어막을 칩니다. 바로 이 말씀이지요.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1:8~9)
결국 초반부터 이견이 있던 ‘나자레언’을 이기고 크리스찬들이 득세하게 됩니다. 다음 4편에서 이 부분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하지요. 이만 총총.

4 comments
Hum Kim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바울의 본격적인 복음 선포 준비 기간을 10년으로 보는 설도 있더라고요. 그 연표를 제가 보관해 뒀는데,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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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5 - 20210728>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4)

이미 말씀드렸던 것을 다시 강조하면서 부연설명을 해야겠습니다.
‘사도가 된’ 바울이 예수로부터 받은 가르침이라며 전달한, 그가 강조한 복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공동번역,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0:9~10)
외국어가 더 편하신 분도 있으시니 킹제임스 버전으로도 올립니다.
That if thou shalt confess with thy mouth the Lord Jesus, and shalt believe in thine heart that God hath raised him from the dead, thou shalt be saved.
For with the heart man believeth unto righteousness; and with the mouth confession is made unto salvation. (KJV)

바로 이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고백의 언어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사람들에게 전한 이 말씀으로 인해 지난 2천 년 동안의 기독교가 오도된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고린도전서1:2) 것 만으로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은 만족하였고 예수의 삶, 그의 생애, 그가 전하려고 한 하느님의 사랑은 가려진 것입니다. 교리에 갇혀버린 예수가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이 워낙 중요해서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릴게요. 바울이 전했다고 전해지는 복음의 핵심이 잘못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바울 그 스스로의 말에 의해 나타납니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전한 복음과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이 이미 받은 복음과 다른 것을 전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공동번역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8~9)
오늘날에는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바울의 기독교만 남아있지 예수의 기독교는 멸종한 상태라고 보입니다. 바울의 활동 당시 예수의 직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예수의 기독교는 히브리 그리스도교라 하였고 바울의 기독교를 헬라 그리스도교라 나누어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 내 예수의 기독교를 [나자레언]이라 불리었고, 유대 밖의 바울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를 [크리스찬]이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리고 왔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만 일 년 동안 그 곳 교회 신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때부터 안티오키아에 있는 신도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공동번역 사도행전 11장 26절)
“And when he had found him, he brought him unto Antioch. And it came to pass, that a whole year they assembled themselves with the church, and taught much people. And the disciples were called Christians first in Antioch.”(King James Version)
위 말씀은 신실한 신자 바르나바가 다르소에 가서 사울(후에 바울)을 만나 그를 안디옥으로 데려가서, 거기서 일 년 동안 포교 활동을 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친 두 사람의 제자들(공동번역에서는 ‘안티오키아에 있는 신도들’이라고 표현됨)이 비로소 그리스도인, 크리스챤이라는 호칭을 듣게 된다는 겁니다. 아래 영문 성경은 킹제임스 버전입니다. Christians이라고 되어 있네요.

갈라디아서에서의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운운한 것은 바울의 기독교와는 반대편에 서 있는 유대 내 예수의 직제자를 중심으로 한 나자레언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더 해석해 보면
“(베드로든 요한이든 야고보든 간에)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나 바울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는 말이 되는 겁니다.

예수의 말과 바울의 말을 비교해서 이야기 해 볼까요?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요한14:10)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14:12)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지극히 겸손한 말씀이며 모든 이에게 가능성을 열어주시는 정말 복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중심은 배타성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남을 저주하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격려하고 추켜세우고 독려하는 말씀입니다. 흔히들 유태인들의 치명적인 결점이라 일컬어지는 ‘배타성’과는 정말 거리가 먼 말씀입니다.
이에 비해 바울의 말은 달라도 정말 다릅니다. 신앙의 내용이 다르다고 저주를 퍼붓는 자가 어찌 예수의 복된 말씀을 전한다고 말씀할 수 있습니까? 예수의 가르침이 그렇게 협량하고 배타적인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은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에게 계시해 준 것입니다 (공동번역 갈라디아서1:11~12)
이야~ 이제는 자신이 직접 예수께 받았다고(갑자기, 축자영감설이 떠오른다능...ㅋ) 이야기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일 겁니다. 자! 이렇게 공격적인 언사를 내뱉고 (당시로서는) 전 세계적인 포교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친 바울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고 결국은 나자레언을 이기고 크리스천이 득세하게 되었습니다.
“바울로는 사도행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태동하는 그리스도교 운동의 영웅으로 등장한다. 신약전서에서 바울로에게 할당된 분량을 살펴보면 바울로가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바울로는 신약전서 본문에서도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확실히 바울로는 신약성서의 주목할 만한 필자로서 그의 이름으로 된 편지는 신약성경에서 대개 4분의1을 차지한다. 바울로는 예수의 제자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보다 월등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제롬프리뵈르『예수 후 예수』)

“아주 최근의 신약학 동향을 따라 필자는 헬레니즘 세계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바울로의 그리스도교와는 무관하게 그러나 대략 그와 동시대에 예수의 육성과 행동을 직접으로 계승한 바로 그 공동체를 가리켜 「예수운동」이라 부른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갈릴레이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존재하였던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원류(源流)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예수에 대한 역사적인 관심을 버린 바울로(헬레니즘적 기독교)와는 달리 예수 이후 마르코복음이 출현하기까지 예수의 전승을 간직하여 온 공동체들이다.”(조태연 『예수 운동』)
우리가 접하고 있는 신약성경의 앞부분, 그러니까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온통 바울서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신약성서를 편집할 때, 그 헤게모니가 예수의 직제자인 나자레언에서 이미 바울의 제자들인 크리스찬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전승하여 노력했던 예수의 직제자들이 유대교 랍비 바울에 의해서 박해를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가 결국에는 그 예수의 교(敎)에 들어온 바울에 의해서 다시 도전받고 결국에는 지리멸렬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슬픈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겁니다.
도대체 이 아이러니한 현상에 대해 알고 나서 저는 한동안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어쩔 줄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니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들어왔던 수많은 성경 예화와 말씀들,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공관복음 4복음서조차도 바울을 추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많이 변개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 저는 이런 류의 글을 쓰는 의욕조차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신약성서의 본문이 종종 교리적인 이유 때문에 변개되었다는 것이다. 필사자가 본문을 베끼다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본문으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고 싶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 즉 필사자가 자신의 생각을 본문에 집어넣음으로써 본문을 변경시킨 것이다. 이런 일은 필사자가 활동하던 당시 교리적인 논쟁 때문에 종종 일어났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변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기독교의 초기 몇 세기 동안 벌어진 교리적인 논쟁을 이해해야 한다. 신약성서의 거의 모든 이문(異文)들 직업 필사자들이 폭 넓게 활동하기 이전단계인 바로 이 시기 즉 기독교 초기 몇 세기사이에 모두 발생하였다”(바트어만『성경왜곡의 역사』)
그런데 이렇게 실망을 많이 한 제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믿다가, 안 믿다가, 더 깊이 믿게 되는, 정말 희한한 경험입니다. 이른바 A-B-A’ 의 경험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만, 간략하게 정리해볼게요.

A : 진짜 엄마 뱃속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스폰지처럼 쭉쭉 빨아들이면서 믿었다. 매일 아침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성경완독 만 해도 몇 독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심령부흥회는 물론이고, 오산리 기도원이니 관상기도니 산 기도니 다니면서 방언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을 가지고 종교행위를 했다. 주변으로부터 ‘요한’이라는 이름값을 한다고 칭찬받았고, 그게 당연한 줄로 알았다. 의심 따위는 들지 않았다.

B : 대학을 가서 뒤집어졌다.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실제는 너무나 달랐다. 현실은 폭압적인 군사정권이 민중을 탄압하고 있는데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 위선적으로 보였다. 그나마 민중신학이니 해방신학이니 하는 몇 가지 가르침이 위안을 주긴 했다. 결국 내 머릿속 많은 방(room) 한켠에 ‘예수’를 감금하고, 내 맘 중심에 칼 맑스선생과 레닌선생을 모셨다.

A’ : 학교를 졸업하고 치열하게 살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정치 컨설턴트)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함석헌의 스승이었다는 다석 쌤을 만났다. 비록 책으로 만났지만, 만나긴 만났다. 충격이었다. 다시 뒤집어졌다. 다석을 만나고 나니 다른 선배들도 만나고 싶어졌다. 내 전공도 아닌데(학부는 행정학, 석사는 정치정책학, 박사는 북한학이다) 종교 관련된, 책을 사모으고 밑줄쳐가면서 혼자 공부했다. 결국 알게 된 것은 내 행로는 A-B-A’였던 거다. 바울이 예수를 자신의 식으로 전도하듯 전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고 쓴다. 이거, 하느님 은혜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도 글을 쓰는 거예요. 다음 글은 ‘교리’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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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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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6 - 20210802>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5)

지금까지 썼던 글을 찬찬히 살펴보니까 대략 바울로 인해 기독교가 변질되었다, 라는 요지의 글을 전개했네요. 오늘은 그 변질의 원인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이런 질문이 가능하지요.
“바울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원래 엄친아였고, 집안도 빵빵하고,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바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리한 조건은 내팽개치고 그 고생고생하면서, 심지어는 목숨까지 걸고 세계선교를 떠나게 된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요? 바울이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이 신약성서의 어마어마한 분량을 차지하게 되었잖아요? 그런데 도대체 왜 그랬냐? 왜,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예수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었냐는 겁니다. 더 나아가 어째서 예수의 복음이 아닌 자기 자신이 정립한 바울의 복음을 만들었나? 라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누군가 갈라디아서 1장 11절~12절을 턱 들이대면서 ”봐라! 성경에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셨다고 하잖냐?“ 라고 이야기하면 진짜 힘 빠지는 일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뻔뻔하면 자기가 하는 주장의 근거를 자기주장에 두냐는 겁니다.(이런 것을 ‘순환논증의 오류’라고 하지요.) 이런 건 과감하게 스킵해야 합니다.
위의 이 질문은 사실 풀어질 수 없는, 아니 각자가 믿음의 분량대로 해석할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석 류영모 선생은 바울에 대해서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하고자 합니다.
비록 바울이든 누구로 인해서든 ‘하느님의 말씀에 오류(誤謬)와 변개(變改), 오염(汚染)과 변질(變質)이 생기더라도 진리는 바뀔 수 없다’는 하느님의 뜻을 더 널리, 더 확고히, 더 폭넓게 세우시기 위한 하느님의 깊은 뜻‘ 때문은 아닌가 하는 겁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해석입니다. 인간은 실패를 통해 성장합니다. 잘못된 상황에 빠져서 이를 통해 경험으로 배우고 난 다음에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지요.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상황을 통제하고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바울이라는 존재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어쩌면 바울이라는 가시를 통해 온 인류가 ’약한 데서 온전’(고린도후서 12장 9절) 해지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가 생겨나고 나서 털 없는 원숭이가 나타난 것이 2백만 년 전의 일이고, 50만 년 전부터 불을 쓰게 되었으며, 1만 년 전부터 원시적인 농업을 겨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털 없는 원숭이가 제단을 마련하고 희생제물을 바치면서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아프리카 밀림에서 침팬지 무리가 제단을 쌓아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면 기절초풍할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정말 경이로운 일이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에 털 없는 원숭이들에게 일어난 것이지요. 이 털 없는 원숭이들이 자신들의 이성을 초월한 존재에 대한 숭배를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2천 년 전에 일어난 것입니다. 다석 쌤의 말씀에 의하면 “몸나에서 얼나로 깨어난 참사람이 나와서 얼나로 하느님과 하나 되는 기도를 올린”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예수의 역사적인 등장입니다. 또한 이 비슷한 시기에 털 없는 원숭이가 비로소 사람이 되어서 제대로 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이 있었고요, 이 와중에 빛나는 지성들이 인류에게 제대로 깨달음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바로 공자, 맹자, 석가모니, 마호멧 등등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사람이 늘 직선으로만 곧추세워 걸어갈 수 없듯이, 꼬불꼬불 돌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왔던 길이 긴가민가해서 왔다가 다시 가는 등의 인생길을 가듯이, 진리를 탐구하는 길은 무수한 오류와 변개와 오염과 변질을 거치면서 끝내 ‘빛나는 진리’를 향해 가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제 앞의 선배들이 그렇게 길을 걸어갔고 저도 지금 걷고 있습니다. 그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인도하신다고 저는 봐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고 그것이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만, 이렇게 되면 바울은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한 것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가 만든 교리(예수는 교리를 만든 적도 없고 설파한 적도 없어요)는 어디까지나 바울신학입니다. 그것이 깨져나가야 진짜 얼 생명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가 만든 5가지 교리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지요.
다석 류영모 선생뿐만 아니라 예수와 바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계속 고민해 온 것은 ‘예수와 바울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나 요한처럼 3년의 예수 공생애를 통해서 그의 가르침을 받거나 직접 보필하지 않았지만, 예수의 유대 기독교에서 세계 기독교로 급진적 발전을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을 올바로 이해하지 않으면 도저히 기독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5가지 교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고, 또 왜 신앙으로 고백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사도행전 17장의 저 유명한 「아레오바고」 설교를 사례로 들고 싶습니다.
바울로는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테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그 도시가 온통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였다. 그래서 바울로는 회당에서 유다인들과 또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방인 유다 교도들과 토론을 벌였고 날마다 광장에 나가서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도 토론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몇몇 철학자들은 바울로와 토론을 해보고는 "이 떠버리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 하기도 하고 또 바울로가 예수와 그의 부활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을 보고는 "다른 나라의 신들을 선전하는 모양이다.”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바울로를 아레오파고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가르치는 그 새로운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줄 수 없겠소? 우리가 듣기에 당신은 생소한 말을 하는데 어디 그 설명을 들어봅시다.”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에 살고 있던 외국인들은 새것이라면 무엇이나 듣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바울로는 아레오파고 법정에 서서 이렇게 연설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여러 모로 강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아테네 시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예배해 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공동번역 사도행전 17장 16절~23절)
바울의 사명은 선교였습니다. 비록 자신은 예수의 열두 명의 직제자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자신은 다마스쿠스(다메섹) 길 위에서 겪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 신비한 경험으로 인해 완전히 ‘예수’에게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하는 그 예수를 전하기 위해 온 인생을 바칩니다. 그런데 자신이 이해하는 예수는 그냥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혜의 샘물’을 마시고 확 깨달아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너 이거 마시면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지듯이) 확 깨달아 알게 될거야!”하고 깨달음의 열매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바울은 랍비였고 가말리엘(Gamaliel)의 제자였습니다. 가말리엘은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율법학자였습니다. 또 희랍문학을 연구한 바리새파 자유당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랍비 중에서도 최고 명칭인 ‘랍오니’(Rabboni, 요20:16)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큰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말리엘의 제자가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행22:3) 바울이 가말리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당연하지요. 더군다나 바울이 태어난 고향 다소는 번성한 역사적 도시였으며 특별히 교육의 도시였습니다. (행9:11, 21:39, 22:3) 또 바울은 대표적인 바리새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유대 법에 따르면 다섯 살이 되면 성경 공부를 시작하고, 열 살이 되면 율법 전승들을 공부해야 한다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바울도 이러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학식과 그의 열정은 자신의 말에 의해 아주 자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절에는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또한 바울은 당시 최강대국 로마의 「시민권자」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전도여행을 하면서 반대자들에 의해서 옥중에 투옥되었을 때, 스스로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혀서 즉시 석방되기도 했습니다. (행 22:24-30) 이러한 바울이 다마스쿠스의 회심이라는 어마어마한 경험을 한 후에 열렬한 기독인이 되어 아테네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첫 마디를 이렇게 꺼냅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여러 모로 강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이것을 바울의 테크닉으로 봅니다. 아이스브레이크입니다.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의 성향과 그 심리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에 격분하면서도 그들을 칭찬하면서 접근하는 세련된 언변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헬라인들은 대단히 지적이며 탐구적이고 우주의 원리와 만물의 이치를 찾아 연구하는 지적 선진국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연을 연구했고 인간의 속성을 탐구하면서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제단을 세울 정도의 진지성과 정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과 말이 통하는 사람은 이들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 소위 ‘말짱’들이었던 이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 설득해야 합니다. 이에 최적임자가 바로 바울이지요.

바울의 설교는 매우 세련되고 도시적이었습니다. 투박한 농촌을 배경으로 비유로 표현한 예수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의 설교 : ① 도시건축 (고전3:11) ② 군대의 행진 (고후10:3-5, 고전14:8) ③ 노예 시장 광경 (고전6:20, 7:23) ④ 체육장의 형편(고전9:24-25)
예수의 설교 : ① 포도나무의 비유(요15:1-5) ②씨 뿌리는 비유(마13:18-23) ③무화과나무의 비유 (마24:32-33) ④ 목자와 양의 비유(요10:14-1527-28)

바울은 아테네 시민들이 - 나아가 세계의 시민들이 - 어떻게 하면 ‘예수를 믿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가 이런 고민을 한 것은 이때가 아니고 다마스쿠스의 회심 사건 이후 아라비아와 다마스쿠스에서 삼년 동안 머무르고 고민하면서였다고 예상이 됩니다. 그 이후에야 예수님의 직제자인 베드로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갔거든요. 물론 이 3년의 시기를 저처럼 그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으로 차분하게 ‘교리화’ 했다고 보지 않고 곧장 복음 전도에 뛰어들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의 분량으로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예수 탄생과 공생애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이후 재림한다는 개념만큼은 오랜 묵상과 연구를 통해 정식화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어디까지나 제 해석입니다.
어찌 되었든 바울은 가말리엘로부터 전수받은 희랍의 철학과 문학을 비롯한 자신의 학식을 총동원해서 ‘세계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전달하기 쉬운 메시지를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적어도 저는 선교의 사명감을 가진 바울이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립한 이론이 바로 이신칭의(以信稱義) –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일컬음을 받음 – 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개역한글 로마서 1장 17절)
예수를 전도하는데 좀 더 효율적이고 좀 더 사람들의 맘에 와 닿으며 또 쉽게 믿고 따를 수 있는 이론체계...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바울의 발명품 ‘다섯 가지’ 교리인 것입니다.
물론, 이에는 반론도 있습니다.

한일장신대 신약학 교수이신 차정식 목사님 같은 분은 이런 이야기에 반론을 폅니다. 차 목사님은 다석 쌤의 ‘마침보람’ 제자 박영호 선생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바울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책임은 바울보다는 바울의 후대 해석자들, 바울의 계승자들에게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고생한 사람이었어요. 그리스도와 만난 사건이 전혀 새로운 삶의 기점이 되어 율법의 폐쇄적이고 족쇄로부터 과감하게 단절하고, 뛰쳐나가 예수님의 포용적인 정신을 헬레니즘이라는 문화와 옷을 빌려 참신하게 정립한, 예수를 세계화시킨 면에서 공이 있다고 봅니다.(중략)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사도신경이 만들어지고, 예수님의 역사적 생애와 전통이 많이 탈락되고, 기독교가 기득권화되고 제도화되고 좀 더 배타적인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바울이 원했던 방향과 정반대로 왜곡되고, 어그러진 부분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바울에게 돌리는 것은 굉장한 판단 착오가 아닌가 싶어요. 바울을 보면 굉장히 죄의식에서 불안한 서구적인 실존의 자아랄까요. 실상은 그게 아닌데 어거스틴의 시각으로 서구적인 자아의 상을 바울에 투과시켜 제조해냈다는 거죠. 바울이 책임질 것이 있다면 그 책임을 지울 수가 있고 그렇지 않고 바울 후계자, 콕 집어 말하자면 20세기, 21세기 한국의 소위 보수 정통을 자부하는 크리스천과 지도자들, 또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 지도자들, 한국에 큰 영향을 준 그런 분들이 성경을 너무 이렇게 좁게, 옹색하게 해석한 결과로 바울에게 책임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공동선 통권 79호】『 예수와 바울- 복음의 원형 찾기 』중에서

차정식 목사님의 말씀대로 백번 양보해서, 바울은 원래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후대의 바울 해석자들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부분은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되었다고 용기를 내서 고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면 바울 이후 정립된 기독교 신학 자체는 이미 ‘신학’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하나의 거대한 ‘기득권’으로 변모했기 때문이죠. ‘신학’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정치권력’과 싸워야 하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것은 굳이 제가 언급하지 않더라도 콘티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얼마나 많은 기독교의 ‘죄악사’가 펼쳐졌는지에 대해서는 영국의 역사학자 폴 죤스의 「기독교 죄악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일부 신학자는 이를 극적으로 표현해서 “사탄은 마침내 기독교를 선택했습니다.”라는 선언이 있을 정도입니다.
너무 길어졌네요. 오늘은 이만, 하지만 연결되는, 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6)’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이만 총총.




14이영재 and 1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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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Min Jung

요한 형제님의 내공은 왠만한 목사나 먹사들을 벌벌 떨게 만들 지경입니다!!
(나도 지금 떨고 있니??)
북한학말고 신학을 전공하시라 말씀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가지 드릴 말씀은 지난 글들에서 이 때까지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살아나신다는 대명제의 한문장으로 된 Thesis Statement 를 자꾸 아끼셔서 미괄식으로 맨 나중에 공개하려 하시는 듯 합니다. 그래서 자꾸 궁금해서 총총 사라지시는 요한 형제님의 글을 읽게 만드시는 군요...!
미쿡에 오래 살아와서 서구식 사고에 익숙한 전 성급하게 자꾸 Thesis Statement 를 찾습니다. 제발 저희들에게 먼저 대명제를 선언해 주시고 증명해 주시면 아니 되겠사옵니까? ㅎㅎ

최요한 replied
·최요한
정영민 능력이 있으면 한 문장으로 된 Thesis Statement 로 정리하고 싶지만, 제가 그럴 능력이 못 됩니다. ㅡ,.ㅡ;;;; 전에도 말씀 드렸던 것 처럼 10여년 전에 이와 비슷한 글들을 써놔서 지금 읽으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됩니다.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수정하고, 수정하면서 생각이 다시 명료해지는 거죠.
크로산 쌤의 역사적 예수, 역사적 바울 강의를 보면서, 이 쌤이 언명 하지는 않았지만, '정교한 외과수술'을 이야기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던데요... 크쌤은 ‘급진적 바울 – 보수적 바울 – 반동적 바울’로 구분해서 자신의 주장을 더 풍부하게 하더라고요. 그건 더 공부해봐야 알겠고, 여튼 잘못 된 것은 잘못된 걸로 정리하고, 예수의 뜻에 맞는 더 급진적이고 더 현실적인 바울을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인가봐요... 뭐, 그런 생각에 공부하고 글쓰고... 그럽니다.
한 가지, 북한학을 공부하면서 주체사상이 기독교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는 것만은 틀림없이 알게 되었다, 라는 거.... 포도나무가지 비유가 북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과 무지무지 닮았다...는 새로운 앎의 기쁨이 생겼다나요... 뭐라나요.... ㅋㅋㅋ 늘 격려 감사드려요...
2 replies


Hum Kim

한 해 동안 책 한권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는 저는 '기독교 죄악사' 만은 꼭 읽고 싶습니다. 고통스럽지만요. 댓글 쓰고 바로 책을 구입할 수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요한 형제님의 글을 읽으면서 페북에서 만난 여러분들이 성서로 인해 고통 을 당하심을 알고 많이 놀라고 귀를 열어 경청했지만, 저는 입이 붙어 버린 경우가 되었습니다. 무식해서 행복한 경우더군요. 성서 혹은 성경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무관하고, 신약에서 바울을 쏙 빼 버린다면? 상상만 해도 절래절래고, 바울이 주님처럼 친환경생태삶적 설교를 했다면 매력 없지 싶고요.
강,바다,산,나무,바위,사람등 삼라만상이 속이 있고 겉이 있습니다. 바울이 없다면 예수님이 성부의 아들 성자인가? 하고 눈을 꿈벅꿈벅 하겠지만, 바울이 합쳐지니 성부의 아들 성자로 다가 옵니다.
저는 형제님께 딴지 거는게 절대 아니고 그런 주제도 못되지만 많은 분들이 신학을 바로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거시는 것 같아서 존경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백퍼 완성된 신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고 해도 교회가 바로 선다는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능하신 아버지로 부터 창조의 능력을 일부 받아 왔기에 어떤 경우라도 내 입맛대로 왜곡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님의 글 읽고, 소감이 아닌 그냥 수다를 떨었습니다. 언짢으셔도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 흥미진진한 다음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Hum Kim

기독교 죄악사
책이 상하로 있는데 저자가 조찬선이네요.

최요한

Hum Kim 맞습니다. <기독교 죄악사> 저자가 조찬선 목사님입니다. 이 책을 쓰셨을 때 연세가 80이 넘으셨던 분입니다.
바울에 대해서는 그냥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저도 제 믿음의 분량대로 쓰는 거예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제가 무슨 신학을 새로 세우는 것도 아니고, 혼자 공부한 대로 정리하는 겁니다. 그냥 제 생각이 맞으니 꼭 따라오시라! 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이렇게 봅니다~ 하고 이야기 하는 건데요.... 불편하시면 스킵하셔도 됩니다. 정영민 목사님께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 글을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더 명료해지는 상황이라서요^^
그리고 기분 나쁘거나 속상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순복음교단의 조용기 아래쯤에 있는 유럽 담당 목사로 보이는 사람이 저한테 이메일로 협박하고... 막 그랬거든요... 웃겨서 ㅎㅎㅎㅎ 네 생각은 그러니? 내 생각은 이래! 이러면 되는 걸 가지고..... 격려 감사합니다.^^

Hum Kim

최요한 감사합니다. 조찬선 목사님의 책을 구입하겠습니다.

Hae-Yong Park

잘 읽었습니다. 다음이 기대됩니다


오영숙

저도 사탄이 기독교를 선택했다는 그분의 견해에 오히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지역의 성자를 숭배하는 이론으로 팽창적 교리를 설파하고 세계를 지배함으로 기독교의 죄악사가 진행되어 온 것은 사탄이든 천사든 상관없고 인간의 욕망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시킨 덕분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신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신의 관점을 좁디좁은 제가 상상하는 무례를 용서 바랍니다.) "이놈의 강도들이 내 이름으로 전쟁과 살상으로 지구를 초토화 시켰겠다?" 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무력한 신은 이미 신이 아니겠죠)...그냥 주저리주저리 제 생각의 편린들을 읊어봅니다.

단테가 지옥 밑바닥에서 본 기독교 업자들이 다른 죄인들보다 더 나쁜것은 모든 사악한 짓들을 "신을 독차지하고" 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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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덕충부(德充符)에 나오는 애태타(哀駘它) 이야기

함께하는 열린 공간

장자 덕충부(德充符)에 나오는 애태타(哀駘它) 이야기 | 열린 생각
재진 2018. 1. 4. 16:40
http://blog.daum.net/paramita00/4117115

옛날 중국의 위나라에 지독히도 못생긴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자의 이름이 바로 ‘애태타’다. 그러니까 ‘슬플 정도로 등이 낙타처럼 구부러진 어리석은 사내’라는 뜻이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이름이 애태타일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이 놀랄 만큼 절세추남(!)인 이 애태타를 한 번 만나기만 하면 헤어지지를 못한단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그를 떠나려 하질 않는다는 거다. 오죽하면 그를 본 여자들이 딴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그의 첩이라도 되겠다며 부모를 졸랐다고 했을 정도다. 어디 한군데 잘생기길 했나, 독특한 자기 생각이 있어 그걸 강하게 펼쳐나가기를 했나 그렇다고 무슨 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돈이 많아 펑펑 퍼준 것도 아니고, 아는 게 많지도 않았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인기가 있을 턱이 없는데, 애태타를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그의 곁에 있으려 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왜 애태타를 만났던 남자나 여자나 모두 내 스타일이라며 같이 있고 싶어 했던 걸까?

애태타는 ‘나서서 주창하는 일이 없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동조할 뿐’이었단다. ‘화이불창’(和而不唱)이었다는 거다. ‘나’라는 자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 예컨대 물 같은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밥그릇에 담기면 밥그릇모양, 접시에 담기면 접시모양, 추우면 얼음이 되고 더우면 증발해 수증기가 되는 그런 사람이었단다.

그리고 태도가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다’고도 했다. 박력도 없고 결단력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바로 제물론(齊物論)에서 말하는 ‘양행’(兩行), 즉 양쪽을 한꺼번에 보는 사람이었다는 것. 딱 부러지게 이거다 저거다 하는 게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다 포용해 감싸 안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우물쭈물한 듯 글쎄요…하면서 머뭇거렸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하게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무슨 일에나 능수능란한데다 빈틈없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능력 있는 사람이라 여긴다. 그렇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지는 않다. 어쩐지 향기로운 차를 앞에 놓고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음미하는 게 아니라 냉수처럼 벌컥벌컥 마시고는 후딱 일어서야 할 것만 같아서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애태타가 언제나 주춤거리기만 했던 건 아니다. 노(魯)나라의 군주였던 애공(哀公)이 애태타의 사람됨을 알아보고는 재상 자리를 떠맡겼더니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곧장 떠나 버렸단다. 무언가를 분명히 해야 할 때는, 가차 없이 실행에 옮기는 인물이기도 했던 거다.

애태타는 ‘자신의 재질을 온전히 하면서도 그 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자연스레 드러났을 뿐!! 외부 조건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여유롭고 느긋했던 사람. 안팎으로 시원하게 트여 조화로우면서도 언제나 평정을 지켰던 사람. 그러면서 늘 즐겁고 봄날 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사람. 마음이 아주 고요해서 가볍게 찰랑거리지 않았던 사람. 그러나 결코 고여 있지는 않았던 사람, 너무 깊고 넓어서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었던 사람.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 같았던 사람 애태타.

이러니 애태타를 만난 사람이면 남자건 여자건 모두 자기 스타일이라며 그와 함께 하려할 수밖에.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얼마나 평화롭고 상쾌할까.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겠다. 그러고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도 역시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됨됨이다. 물론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 먼저 눈길이 가는 건 인지상정일 게다. 그렇지만 오래도록 먼 길을 같이 가고 싶은 사람, 길 위의 친구, 도반(道伴)을 꼽으라면 역시 애태타 같은 사람이다. 나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런 사람, 어디 없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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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talgi21.khan.kr/2078

12.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위衛나라에 못생긴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은 애태타라 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 남자들은 그 사람 생각에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 사람을 본 여자들은 부모에게 딴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오히려 그 사람의 첩이 되게 해달라고 조르는데 그 수가 열 몇 명으로 아직도 계속 늘어간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나서서 주창하는 일이 없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동조할 뿐입니다. 임금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해 준 일도 없고 곡식을 쌓아 두고 사람들의 배를 채워 준 일도 없습니다. 거기다가 몹시 추하게 생겨서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입니다. 동조할 뿐 주창하는 일도 없고 아는 것이라고는 자기 주변의 일상사를 넘지 못합니다. 그런데 도 남자 여자가 그 앞에 몰려드는 것은 그에게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3. 그래서 저도 그 사람을 불러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추하기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달이 채 못 되어 그 사람됨에 반했고 한 돌이 채 못 되어 그 사람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침 나라에 재상이 없어서 제가 나라 살림을 맡기려 했더니 모호한 응답을 하는데 분명하지는 않지만 사양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라 살림을 떠맡겼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저를 떠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뭔가 잃어버린 듯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아무와도 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쁨을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14.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초 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마침 새끼 돼지들이 죽은 어미의 젖을 빠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새끼 돼지들은 조금 있다가 순식간에 죽은 어미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어미 돼지에게서 저희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이제 저희와 전혀 다른종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미를 사랑한 것은 그몸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몸을 움직이는 무엇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는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장식이 필요 없고 발이 잘린 사람은 신 같은 것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소용없기 때문입니다
왕의 후궁들은 손톱을 깎지 않고 귀에 귀고리 구멍을 내지 않습니다 새로 장가든 사람은 제 집에 자고 숙직을 하지 않습니다 몸을 온전히 하는 일도 이렇게 하는데 덕을 온전케 하는 일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지금 애태타는 말을 안 하고도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아무런 공적 없이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나라 살림을 맡아 달라고 하면서 맡아 주지 않을까봐 염려마저 하게 합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재질을 온전히 하면서도 그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15 애공이 물었습니다 그의 재질을 온전히 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죽음과 삶 생존과 파멸 성공과 살패 가난과 부유함 현명함과 어리석음 비방과 칭찬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이것이 모두 사물의 변화요 명命의 운행으로서 우리 앞에 밤낮으로 번갈아 나타나지만 우리의 앎으로는 그 시원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 마음의 조화를 어지럽히거나 마음속 깊은 곳
으로 들어오게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조화롭고 즐겁도록 하고 시원히 트여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밤낮으로 틈이 없도록 하고 만물과 더불어 화기 어린 봄을 맞습니다 이것이 사물에 접해서 마음에 봄이 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일러 인간에게 주어진 재질을 온전하게 한다고 합니다
16 그러면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평평한 것은 불이 완전히 고요해진 상태입니다 이것이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은 안에 고요를 간직하고 밖으로는 출렁거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덕을 이룬 사람은 조화를 이룬 사람으로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 떠나지 못합니다
17 애공이 훗날 민자閔子에게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처음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면서 백성이 법을 지키게 하고 그들이 죽지 않도록 염려하는 것으로 나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소 이제 지인至人의 말을 들으니 내겐 임금다운 바탕도 없으면서 몸을 가볍게 놀려 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두렵소 나와 공자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라 덕으로 맺어진 벗이오

서구적 평등은 사기이자 위선, 기독교 이기는 정신혁명 일으켜야... 동학 동경대전의 개벽 사상 | 도올 김용옥 동경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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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1 day ago
1.  중화사상의 몰락을 순망치한의 관점(정치적 역학관계)에서 보지 말고, 
그 사상적 근원을 들여다 보자
2.  그 근원에 기독교가 있다.
3.  서구적 평등은 사기이자 위선
4.  신과의 평등을 이루었을 때라야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진다
5.  기독교를 이기는 정신혁명을 일으켜야 하며 그 정신혁명의 바이블이 수운 최제우의 <동경대전>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하며 무릎을 쳤다.
과연 수운이고 확실히 도올이다. 두 사상가의 만남은 내게 예수와 바울의 만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이 도올의 통찰은 언제나 예외없이 탁월하다. 도올이 아니었다면 동학을 이렇게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도올 선생은 수운이란 사상가를 만나게 된 것을 운명이라 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도올이라는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같은 값이면 복짓는 마음을 쓰자 | 마음을 제대로 쓰는 방법 | 원불교 좌산상사 마음수업


조현

좌산 이광정 상사는 현존하는 원불교 최고 어른이다. 좌산 상사는 1916년 대각해 원불교를 개창한 교조 소태산 박중빈, 2대 정산 송규, 3대 대산 김대거에 이어 1994년 58살 나이에 종법사가 되어 원불교를 12년간 이끌었다. 그는 70살에 종법사에서 퇴임해 미륵산 아래 머물고 있다. 상사란 종법사를 지낸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좌산은 이 시대 마음공부의 스승이다. 그가 낸 '마음수업' '믿음수업'(휴 펴냄)은 마음의 원리를 알고 이를 삶과 사업에 구현하려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을 초탈한 탈속파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산골에 살지만 교단의 일과 사회·정치·통일 문제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고 있다. 그를 만나본 이들은 그의 구체적인 조언에 혀를 내두른다. 따라서 그는 진리가 관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삶과 사업에서 구현되게 하는 현실주의자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외할머니인 고 김혜성 종사와 그의 자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의 멘토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19년말 쓰러져 심장수술을 받고, 연이어 암수술까지 받았는데도 좌선과 운동을 통해 90이 다된 노구에도 회복해 주위를 놀라게 하고있다. 

평생 수행 수도하며 원불교 신자들을 지도해온 좌산 상사는 대담에서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길인지, 어떻게 해야 일처리를 잘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까지 상세히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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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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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경과 역경

"잘나갈 때(순경) 오만해질까 경계하고, 도리어 시련을 겪을 때(역경)를 단련의 계기로 삼아라!"
ㅡ좌산상사 어르신의 법문 중ㅡ

개인적으로 잘나갈 때 깝죽대다 두어 번 아주 낭패를 본 적이 있는 제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어르신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습니다. 섬뜩합니다.

조현 기자의 휴심정에서 경청한 어르신의 법문을 통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님의 도력의 높이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선각자 그 이상의 위의가 느껴집니다. 

2.  마음보다 마음의 원리를 배워야

"인류의 역사를 보세요. 종교, 철학, 과학 등등 모두 마음이 만든 겁니다."

왜 마음의 원리를 알아야 하는지 이 말씀 한 마디로 깔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그 동안 내 자신이 알게모르게 유물론에 빠져 있었음을 자각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 홍석현 씨가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드는 일에 힘썼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그랬던 양반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기 힘듬. 윤 총장이 만나자고 하더라도 일언지하에 거절해야 인성교육진흥법의 입법정신에 부합하거니와 사사로이 비밀리에 검찰총장과 독대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패공화국으로 망가뜨린 정경유착으로써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위법행위임).

어르신!
홍석현 이 양반, 혼구녕을 좀 내주십시오. 인성교육법을 만드는 데 일조한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3.  결론

"논어를 읽기 전이나 논어를 읽은 후나 똑같다면 논어를 읽은 것이 아니다."  
ㅡ 정자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아갑니다만, 사실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헌데 오늘 어르신의 법문을 듣고 구체적인 공부법을 배웠습니다.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대로 해보겠습니다.

어르신께 큰절 올리고 갑니다.
그리고 조현 기자님!
감사하다는 말 말고는 할말이 없네요.

“이성보다 감정과 정서가 행복에 중요한 열쇠다”

“이성보다 감정과 정서가 행복에 중요한 열쇠다”

“이성보다 감정과 정서가 행복에 중요한 열쇠다”
입력2021.08.04. 

조현 기자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①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노는 것과 휴식 구분하는 게 좋아
놀기=창조·연결 위한 에너지 쓰기
휴식=에너지를 저축하는 것

너무 심하게 불안하면 정신적 장애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은 되레 좋아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행복의 척도 바꾸면 즐거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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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의 지혜를 전해준 멘토 김경일 교수. 조현 기자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첫번째 인생멘토는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51)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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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는 고려대 심리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 해결, 창의성을 연구했다. 김 교수의 인지심리학 강의는 아주대에서 여러 차례 ‘최우수 강의’로 선정된 바 있다. 아주대 창의력연구센터장과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거쳐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에 이어 최근 출간한 <적정한 삶>(진성북스 펴냄)을 통해 불안을 건너는 인지심리학적 통찰을 전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인사동 플라톤아카데미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방송과 강사로 불려 다니느라 무더위에도 연일 강행군인데도 그는 미소년 같은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적정한 삶’이란 그 유연함에서 샘솟는 듯했다.

그의 장점은 상식적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해주는 데 있다. ‘너 왜 그렇게 감정적이냐’며 ‘감정적’인 것을 죄악시하는 고정관념에 대한 역발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감정과 정서야말로 행복을 좌우하는 열쇠”라며 ‘적정한 삶’을 위한 ‘적정한 감정’을 강조했다. 세계 어느 곳보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는 이기적 사람보다 이타적이고 협조적인 인간이 더욱 오래 살고, 더욱 창의적이라는 점을 심리학 연구 결과를 통해 강조한다.

그는 한국인들의 불안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우려가 큰 한국인들의 갈등과 다툼에 대해서도 “오히려 역동적으로 싸우며, 관계를 중시하는 관계주의 문화를 지닌 한국인들이 다변화한 사회에 더욱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고무찬양해준 것도 그다운 독려다. 그는 ‘생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히는’ 인지학자답게 팬데믹의 족쇄를 풀고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비법을 유쾌하게 전했다. 일문일답이다.

-한국인들은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돈 벌고, 뛰는 걸 잘 그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 행복 연구자들에 따르면 ‘아난다마이드’라는 신경전달물질이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데 한국인들에게 이게 적게 나온다. 동아시아권이 대부분 그렇다. 한국인들이 열심히 사는 것은 일차적으로 뇌 자체가 쉽게 행복해지지 않아서다. 통계치를 보면 한국인은 세계에서 노동시간도 1등, 노는 시간도 1등이다. ‘너 뭐해’ 물으면 ‘집에서 논다’고 하지만, 뭔가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노는 것과 휴식을 구분하는 게 좋다. 휴식은 에너지를 저축하는 것이고, 노는 것은 창조와 연결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놀 때 노는 3분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인은 노는 것을 욕하는 경향이 있다. ‘자알 논다’, ‘놀고 자빠졌네’라고 말이다. 세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행복해진다.”

-한국인들이 유독 남들과 비교 경쟁하는 소유욕이 강하지 않나?

“최진석 (전 서강대)교수의 말처럼 이제 선진국 개념이 아니라 선도국 개념으로 가야 할 때다. 선진국은 많이 가진 나라다. ‘한국의 아이들처럼 놀고 싶고, 저들처럼 하고 싶고, 되고 싶고, 닮고 싶다’는 이들의 모델이 선도국이다. 한국이 아무리 가져봤자 큰 나라들보다 많이 가지기 어렵다. 물리적인 자원으로 국가의 부를 따질 때는 선진국이 유리하지만 이체 초현실, 메타버스가 일상화되는 시대다. 이제 그런 나라, 그런 사람들이 ‘한국인을 따라 하고 싶다.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선도인이 되는 게 좋다.”

-한국인들은 유달리 불안이 크다는데, 그것도 심리적으로 문제가 되나?

“만약 내일이 시험이라면 불안해하는 게 맞다. 그래서 하던 놀이나 게임 중단하고, 티브이도 그만 보고 시험공부를 하는 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실제로 학점이 좋고, 일을 잘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을 보면 평균보다 약간 더 불안하다. 너무 심하게 불안하면 정신적인 장애지만, 어느 정도 불안한 것은 문제가 될 게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성보다 감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너 나한테 감정 있냐’, ‘감정 조절이 안 돼?’라고 하는데, 감정이 부정적인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다. 만약 감정 영역이 망가지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악수를 두고 만다. 이성만 발달하고, 감정이 망가진 유형이 소시오패스다. 감정이 없고 이성만 남으면 자녀도 죽일 수 있다. 계산해보니 ‘내가 왜 애를 돌보느라 이 고생을 해야 하지’ 한다. 그러나 지적장애인은 계산하는 데는 문제가 있어도, 감정적으로 자녀를 안아주고 보살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적으로도 지적장애인보다 계산과 이성만 발달한 소시오패스가 훨씬 위험하다. 결국 히틀러 같은 소시오패스는 가장 빨리 강자의 위치에 도달하지만, 가장 빨리 내려오게 된다. 오래 생존하는 이들은 감정이 발달한 이들이다. 따라서 내 자녀가 오래 생존하기를 바란다면 얼마나 구구단을 빨리 외고, 영어를 빨리 읽느냐보다 감정이 제대로 발달했느냐를 중시해야 한다. 오직 지적능력만 갖춘 사람으로 키우면, 결국 가장 빠르게 도태된다. 적절한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적절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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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의 텔레비전 강연 모습. <티브이엔>의 <어쩌다 어른> 화면 갈무리


-그렇다면 지적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이들보다 이성과 계산만 발달한 사람을 장애인으로 불러야 하지 않나?

“그렇다. 과연 우리가 지적장애인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 반인륜범죄자들은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이 아니라 감정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인류가 수십만년 동안 누구를 오래 살려뒀나. 능력 있고 못된 인간, 감정에 문제가 있는 인간 즉 그런 독재자들이 힘이 셀 때는 숨죽이고 있지만, 힘이 약해지면 거세게 그들을 제거해왔다.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긴 것도 감수성이 더 발달해서다.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기본적인 지적능력은 필요하지만, 감정과 정서야말로 필수적인 요소다.”

-감정과 정서, 어떨 때가 문제인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아파야 할 때 아프지 않은 게 가장 문제다. 감정적으로 처리한다고 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은 우린 감정적이다. (기자의 옷을 만지며) 이 옷은 왜 샀는가. 뭔가 감정과 정서가 반응해서 구매라는 판단에 이른 것 아닌가. 이성만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니다. 자기감정을 모르면 답답하다. 20대가 ‘내가 저 차를 정말 좋아할까, 살까 말까’ ‘ 내가 저 여자를, 저 남자를 사랑하는 걸까 아닐까’, 자기감정을 몰라서 답답하다. 자기감정을 아는 능력이 ‘메타 인지’다. 심리학이 다음에 갈 영역이다. 자기가 짜장면을 좋아하는지 짬뽕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중국집에서 짬짜면을 내놓고, 탕수육까지 삼등분한 메뉴를 내놓겠는가.”

-‘오늘 점심때 뭘 먹지’ ‘오늘 누구를 만나지’ ‘주말에 뭐하지’, ‘어떤 영화를 볼까’ 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며 결정을 못 내리는 것도 이성과 논리 탓이 아니라 정서나 감정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건가?

“결정을 내릴 때는 느낌이 동반되어야 한다. ‘점심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는 ‘무엇을 먹고 나서 더 만족할까’가 명확해질 때 판단할 수 있다. 그런 게 명확하면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도 쉽고, 스트레스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저녁에 시원하게 ‘치맥’을 할 생각을 하며 행복해지면 스트레스받는 일도 좀 더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행복은 목표가 아닌 도구다. 오늘 행복감을 느끼면 내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행복감을 좌우하는 게 정서다. 오늘도 무덥고 일이 많아 지쳤는데 아내에게 ‘돼지고기 고추장에 볶으면 맛있겠다. 소주도 차갑게 얼려줘’라고 하고 나니 저녁에 그것을 먹을 생각에 없던 힘이 생겼다.”

-한국인들은 나보다는 ‘우리 집’, ‘우리 와이프’, ‘우리 아이들’이라고 ‘우리’를 앞세우니 나 자신의 감정을 더 모르는 것은 아닌가?

“일본은 집단주의라면 한국은 관계주의 문화다. 자기소개서 쓸 때도 자기 이야기보다 ‘나는 자상하신 부모 아래서 몇남몇녀 중 몇째로 태어났다’며 부모님과 자라온 환경 등 ‘관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역사 연구자들에 따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백년의 환란의 위기를 거치며 나보다 ‘우리’가 강해졌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미국 유학 중이었는데, 미국 방송들이 한국이 4강에 든 건 전혀 관심이 없고, 어떻게 5천만이 같은 색 옷을 입고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지에 충격을 받고 보도를 했다. 또 ‘너희들 구제금융 때 온 국민이 금을 모았다며?’라고 희귀동물 보듯 묻곤 했다. 함께 국난 극복하는 게 취미인 나라다. 집단주의인 일본은 세대 차이로 말이 안 통하면 아예 상대 안 하고 서로 다른 층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한국기업에 가면 임원들이 ‘어떻게 하면 저 젊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느냐’고 계속 물으며 관계에 고민한다. 관계주의에서는 관계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일본의 집단주의는 일렬종대로 세우니 문제나 잡음이 적다. 관계주의는 이 관계, 저 관계 때문에 역동적이며 시끄럽다. ‘코로나 시대’임에도 여야가 쉬지 않고 싸우는 놀라운 나라가 우리나라다. 산업사회에서는 집단주의가 성장의 원동력이 됐지만, 다변화된 사회에선 역동적인 한국이 훨씬 잘 적응해간다.”

-한국의 갈등과 다툼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은데 어떻게 보나?

“싸움을 외면하면 안 되고, 잘 싸워야 한다. 부부끼리도 싸움을 회피하는 경향이 짙은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맨날 싸우는 거 보고 무서워서 ‘냄비근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싸움을 외면하면 끝난 관계다. 안 싸우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잘 싸우고, 싸움에서 잘 빠져나오는 게 좋다. 일본인들은 뜨겁게 타오른 적이 없어서 ‘냄비’라는 안 좋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업하는 분들은 일본이 갈라파고스섬처럼 고립되어간다고 본다. 다행히 한국은 관계주의 문화여서 다양한 관계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관계주의라고 해도 젊은이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한 관계주의이고, 어른세대는 집단주의 성향이 더 강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조직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애들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잘한다. 군기가 센 게 좋은가?

“자율성과 타율성 중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군기가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타율적인 환경에서는 굳이 창조성을 발휘하지 않고,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해도 잘했다는 긍정적 착각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는 상관에 대해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을 군기가 잘 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미군이 제정신을 차리고 싸움에 임한 뒤엔 일본군은 제대로 싸운 적이 없다. 소대장이 죽으면 40명이 몰살당하고, 중대장이 죽으면 중대 120명이 다 죽고 말았다. 가치에 충성하지 않고 사람에게 충성하면 그 사람이 사라지면 와르르 붕괴된다. 자기 상관에게만 충성해서 다른 지휘관의 지휘를 못 받아 병종 병과 간 협조가 엉망진창이었다. 전쟁은 바보처럼 하면서 식민지 약자를 괴롭히는 데만 발휘되는 창의적인 문화는 대단한 문화로 봐줄 수 없다. 반면 미군 중 누구도 루스벨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은 없었지만, 다른 부대와는 능동적으로 협조해 전쟁에 승리했다. 사람이 아니라 가치다. 천재라는 것도 한국에서 구글 검색하면 아인슈타인이 나오는데, 미국에서 구글을 치면 전구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천재로 보는 것이다.”

-<적정한 삶>에서 심리적 아픔도 몸을 다친 것과 같아서 사별, 이혼이나 갈등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 때도 진통제가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인가?

“2011년부터 심리학 연구에서 관찰된다. 사람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면 그가 휘두른 칼에 맞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럴 때 정신력으로만 이기려고 하는 건 오만이다. 몸을 다친 것처럼 맛있는 것도 먹고, 맺힌 것을 풀어 주면서 보살피라는 이야기다. 한국인들은 워낙 머리도 좋고 열심히 살아서 정신력에 대한 환상이 많다. 그 결정판이 스포츠 중계 때 나온다. 한국 선수들이 후반전에 지쳤을 때 ‘이제 정신력으로 싸우라’고 한다. 대부분 정신력과 체력은 거의 같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의 바둑 스승이 ‘네가 막판에 대국을 왜 망치는 줄 알아. 체력이 떨어져서 그래’라고 하지 않은가. 막판에 순간적으로 뽑아내는 의지력이 있긴 하지만. 매일 한일전처럼 싸우다간 죽는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 사이엔 애착이 필요하다. 애정보다 더 위가 애착이다. 교사가 애정을 가지고 지도하겠다는 것은 실은 애착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애정은 이성 간의 성적인 측면이자 흥분성이라면 애착은 인간 대 인간으로 가지는, 가까이 묶이고 싶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면서 숭고한 욕구다. 애착이 만들어진 관계는 서로 싸우지 않고, 많은 것을 거저 줄 수 있다. 누군가 ‘부부간에 애정이 변했다’고 하면. ‘이젠 애착을 가지고 살아라’고 권한다. 부부는 2년간의 애정에 속아 50년의 애착으로 살아간다. 한국인은 애착 형성이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잘 돼 있다. 서양선교사들이 150년 전 한국에 들어와 놀란 것이 부모도 아닌 조부모까지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늘 안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린 안아주고 업어주는 애착문화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자식 간, 어느 나라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게 한국인들 아닌가?

“너무 애착이 잘 형성돼 있어서다. 사춘기 아이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부모는 애착의 훈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사춘기는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이니, 잘 붙은 애착을 떼어 내려면 얼마나 난리를 쳐야겠나.”

-이기적이고 힘센 종이 멸종하는 반면 오래 살아남은 생물종과 공동체의 특성을 이타성으로 보았는데, 실제 그런가?

“전쟁에서 이긴 쪽은 적군의 왕과 대장부터 죽인다. 서로 보듬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친 사람을 돌보고, 타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민초들의 자손들이 더 오래 살아 남았다. 이타적인 사람들은 ‘너 죽고 나 죽자’ 식이 아니라, 적정하게 경쟁하고, 적정하게 취하고, 적정하게 나눠준다. 내 아이가 자기 것을 다 퍼주고 다른 아이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안된다. 그건 이타주의가 아니다. 이타주의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도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최상위권 아이들은 꼴찌들을 가르쳐 주면서 막연했던 지식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제 이타주의는 역량이다. 기업들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요시한다.”

-창의성도 버릇없고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더 있다고 한 이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순간적으로 우연히 나올 수 있지만, 저 혼자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훈수도 필요하고 협동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부적응적이거나 이기적인 인간은 단 한 두번의 ‘창의’는 가능하지만 더 이상은 어렵다. 심리실험에서도 같은 문제를 내주고, ‘창조적으로 해결하라’고 했을 때보다 ‘친한 친구를 도와주라’고 했을 때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태안 앞바다가 기름으로 덮였을 때도 봉사에 나선 국민이 모두 과학자가 된 듯 창의적으로 기름을 걷어내지 않았나.”

-부모들은 시험을 앞둔 아이를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극하곤 하는데, 그게 효과가 있나?

“그런 비교는 ‘옆집 아이도 낙제에서 빠져나오는데 넌 못 빠져나오냐’처럼 나쁜 상황을 피하도록 회피 동기를 자극할 때만 힘을 발휘한다. 한일전을 할 때 하루나 이틀 전에 하면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런 비교로 압박감을 가중시키는 것은 오히려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게 심리실험 결과다.”

-해리 프랭크퍼트가 쓴 <개소리에 대하여>를 자주 언급하며, ‘대중을 현혹시키는 허튼소리’인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들이 ‘개소리’에 잘 현혹되는가?

“종교적 신념이 비뚤어지게 강한 자. 이상향에 대한 강박 관념이 강한 자가 그렇다. 사람들은 맞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믿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믿는다. 개소리는 진심으로 하는 헛소리다. 거짓말과는 다르다.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개소리장이는 진심으로 말한다. 독일인들도 히틀러의 개소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선거의 허점은 진심으로 이야기한 것은 옳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데 있다. 히틀러 이후에도 진심으로 개소리하는 이들이 지지를 받아 많이 당선됐다. 고학력자라도 지적 수준이 낮으면 본질이 아닌 진심만 보려 한다. 그러니 팩트 체크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게 진심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소리장이는 욕구를 감추기에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기에 그들은 파괴적이다. 그들이 결국 개소리장이인지 아닌지는, 파괴적인지 공존하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떻게 해야 개소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가?

“자기 욕구는 솔직히 이야기하기 싫은데, 자기 느낌은 정당화 하고 싶은 사람들이 개소리를 많이 한다. 미국 심리학자들이 ‘귀여운 개소리장이’로 거론하는 트럼프도 ‘이거 나를 위한 거라고’ 자기 욕구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다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임원이 사장과 만남을 앞두고 회의를 소집해 ‘이 회의는 다 여러분들 잘되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그건 개소리다. 대신 ‘나를 위한 회의야. 여러분들 아이디어를 다 뽑아내고 싶어’라고 자기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면서 ‘나 사장님한테 인정받고 싶어. 내 이기심을 채워줘’라고 허심탄회하게 말하면 직원들도 진심으로 돕게 마련이다. 히틀러는 자기 욕구를 감춘다. ‘게르만족을 위한 전쟁’이라고 하고, ‘내가 죽으면 독일도 죽는다’고 한다. 개소리다. 개소리장이들에게 가장 쉽게 현혹되는 사람들도 자기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뭔가를 쉽게 얻으려는 이들이다.”

-대부분이 ‘돈이면 행복할 수 있다’며 ‘돈돈돈’ 하는데, 심리연구에선 어떤가?

“무일푼이었다가 연 소득이 만불이 되면 당연히 행복감이 상승한다. 행복감은 수입이 늘수록 상승하는데, 그 분기점이 7만~8만달러 정도다. 그때부터는 수익이 늘어난다고 행복감도 그만큼 늘지는 않는다. 연봉 8천만원에 이르면 이제 돈이 아닌 다른 요인이 얹어져야 행복감이 상승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의 상한선은 연봉 8천만원쯤이다.”.

-같이 로또에 당첨되고도 불행해지는 사람과 행복해지는 사람의 차이는?

“돈을 버는 것만 목표로 삼고, 돈을 벌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적이 없으면 큰돈이 생겨도 행복해지기 어렵다. 그 돈으로 뭔가 하고 싶은 게 없이 돈만 모은 사람은 이 돈을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해져 돈이 형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부자가 아닌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살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지만 부잣집 자식들은 ‘남을 믿어선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 남을 믿을 수 없으니 얼마나 힘들 것인가. 자기가 돈을 얼마를 벌면 무엇을 할 것인가 ‘위시리스트’(소원 목록)을 작성해두는 게 좋다. 목적이 없으면 돈이 생기고 건물주가 되어도 갈수록 삶이 허망해진다. 돈은 소원을 풀기 위한 도구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적정한삶>에서 행복의 척도를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바꾸라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다른가?

“‘원트’와 ‘라이크’가 거의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를 앞세운 관계주의 문화에서는 둘이 다른 경우가 많다. 너무 원했지만 실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게 부러워서 비싼 값을 주고 산 옷과 신발, 가방은 사놓고 보면 정작 좋아한 게 아니어서 흥미를 잃을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남들이 가진 것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

-칭찬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고, ‘정확한 칭찬’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정확한 칭찬’이란?

“바둑으로 치면 질 좋은 복기다. 첫째 재능보다는 과정과 노력을 칭찬해야 한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 조금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면, 진짜 조금만 한다. 재능만 칭찬받는 경우, 노력의 성과가 안 나오면 바로 그만둬버린다. 재능에 칭찬받은 아이들이 부정행위도 더 많이 한다. 두번째는 방법을 칭찬하라는 것이다. 친구가 금연하고 있다면,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의지를 칭찬하기보다는 ‘방법이 뭐야’라고 물으며 자신의 전략을 스스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칭찬해주는 게 좋다. 의지만 칭찬받으면 결국 의지가 바닥날 때 금연도 끝나버리지만, 방법을 칭찬받으면, 의지가 바닥을 쳐도 다른 방법을 만들어 금연을 성공시켜간다.

조현(cho@hani.co.kr)

서윤애: 파니카의 우주신인론과 수운의 시천주 사상 비교

DSpace at EWHA: 파니카의 우주신인론과 수운의 시천주 사상 비교

파니카의 우주신인론과 수운의 시천주 사상 비교
Title파니카의 우주신인론과 수운의 시천주 사상 비교
Other Titles(A) Comparison Between R. Panikka's Cosmotheandrism And Soowun's Idea of Shichun-Joo

Authors서윤애

Issue Date1998Department/Major대학원 기독교학과

Publisher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DegreeMasterAbstract

필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동양인들의 영성, 그 중에서도 우리 민족에게 공통된 하느님 이해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여러 시대를 두고 맥맥히 이어져 왔던 동일한 하느님 이해가 있었으며 그것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섬겨 온 하느님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은 동학이라 할 수 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체험한 '시천주'의 하느님은 온 세상에 편만히 살아 계시며 인간 속으로 화육한 우주의 원리이자 실재(reality)였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설명을 하는 현대 기독교 신학의 한 사상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레이몬드 파니카가 강조하는 '우주신인론'이다. 파니카와 최제우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고 있는데, 그러한 공통의 하느님 이해야말로 21세기를 살아내야 할 동서양의 현대인들에게 바른 통찰력과 프락시스를 제공해 주는 단서가 될 수 있으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는 우선 첫 장에서 파니카의 생애와 사상을 개괄하겠다. 

그리고 2장에서는 그의 우주신인론을 집중 정리하면서, 특히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로 현현되었는가를 말하는 그의 신관, 즉 로고스 화육론을 중심으로 하여 내용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3장에서는 파니카의 우주신인론이 수운의 시천주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임을 밝히기 위하여 수운의 생애 및 그 사상의 특징을 소개한 후, 
4장에서는 시천주 사상이 해월 최시형에 이르러 '양천'과 '체천'으 로 더욱 뚜렷하게 정리되었음을 보일 것이다. 
5장에서는 기독교와 동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위하여 먼저 두 사상가의 신 체험 방식을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수운과 해월의 시천-양천-체천으로 정리된 '하늘님' 사상이야말로 파니카가 말하는 우주신인론의 한국적 선언(파니카보다 반 세기도 더 이전에 선포된)임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드디어 현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결국은 동학의 '하늘님', 즉 한국적 '하느님'이라고 설명할 단초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며, 기독교와 동학이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지 짐작하게 될 것이다.;


What the author of this study concerns about is the Orientals' spirituality, especially the understanding of God common to our countrymen. The Korean race has had one unified understanding of God throughout history which still manifests itself i us living at present, here. Our race's veneration of God is revealed best in Dong-hak thoughts. God in Shichun-joo idea, experienced by Choi Je-woo, the founder of Dong-hak is pervasively living all over the world and a reality as well as a cosmic principle incarnated into human being. Meanwhile, there is the same explanation of God in the contemporary Christian theology, that is, the cosmotheandrism emphasized by Raymond Panikka. Basically, many' parts of Panikka's idea coincides with that of Choi Je-woo, and the author of this study thinks that this common understanding of God could be a clue for providing insights and praxes to the people in the East and West who have to live through the 21 st century. First of all, in the 1st chapter, the author summed up R. Panikka's life and ideas. And in the 2nd chapter, intensively arranging Panikka's cosmothearndrism, in particular mainly around his view of God, i.e., the logos doctrine of Incarnation, the author developed the details. In the 3rd chapter, to clarify that Panikka's cosmotheandrism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Soowun's idea of Shichun-joo, the latter's life and the characteristics of his idea were introduced: and in the 4th chapter, the author showed that the idea of Shichun-joo became more clearly identified into the idea of 'Yandchun' and 'Chechun' by Haewol Choi Shi-hyound. In the 5th chapter, under the theme of the meeting of Christianity and Dong-hak, the two thinkers' ways of experiencing God were compared at first. And then, the author made it clear that the very idea of 'Haneulnim' consolidated through Soowun and Haewol's idea of 'Shichun-Yangchun-Chechun' is exactly what Panikka tried to say by his cosmotheandrism (the lather was half a century behind the farmers in proclaiming his view). Consequently speaking, we can get a clue from this study to explain that 'God' in the corntemporary Christianity in the same with. 'Haneulnim' in Dong-hak, i. e., Korean God and presume at what point Christianity and Dong-hak meet each other.FulltextShow the fulltextShow the fulltextAppears in Collections:일반대학원 > 기독교학과 > Theses_MasterFiles in This Item:

Anthropocosmic-theism : towards a theistic re-orientation of Raimon Panikkar's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 The University of Adelaide

Anthropocosmic-theism : towards a theistic re-orientation of Raimon Panikkar's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 The University of Adelaide

Anthropocosmic-theism : towards a theistic re-orientation of Raimon Panikkar's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Author
Francis, Xavier
Creation Date
2018

Description
Although Raimon Panikkar represents a different genre within the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his response to the pluralistic question does not fit in with the faith traditions because the religious meaning is blanketed through a constant disengagement with theism. It means to say that theism should be the benchmark for the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In this sense, the direction of Panikkar’s dialogical engagement highlights disengagement with theism. While every approach has positive and negative dimensions, the limitation of non-theistic frame is that it cannot reach the theistic possibilities. Therefore, the present study differs from the previous researches on Panikkar since the other interpreters of Panikkar take things in a more pluralistic direction by tapping on his non-theistic method but I prefer to retrieve a more theistic approach in his pluralistic method. Accordingly, the basic problem this thesis both seeks to address and discuss is the non-theistic orientation of Panikkar’s pluralistic approach. The first chapter argues that his non-theistic method emerged from his cross-cultural context and engagement. The second chapter argues that Panikkar’s non-theistic categories blanket the theistic meaning of his pluralistic approach. The chapter on Pneumatology contends that his concept of the Spirit does not possess theistic meaning but holds non-theistic implications. The fourth chapter on Panikkar’s non-theistic Christology argues that his approach reduces Christ to a non-theistic concept. The fifth chapter maintains that his manner of multiple belonging overlooks the unique faith experiences because Panikkar’s non-theistic approach does not subscribe to a particular faith tradition. Thus, in the six chapter, I propose a theistic correction called anthropocosmic-theism to re-orient Panikkar’s non-theistic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I argue that the anthropocosmic-theism upholds theism as the prerequisite and foundation for the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The final chapter provides a broad-brush view of the theistic dialogue of deeds within the present Indian pluralistic context.
Publisher
ProQuest Dissertations Publishing
Language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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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Hernandez Martinez
5.0 out of 5 stars opening new paths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4 Januar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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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llection of illuminating essays on a fundamental issue of our time. it builds bridges of communication among peoples of different faiths and cul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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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out of 5 stars Difficult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26 Decem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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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ck prose obscures this delicate subject matter. A book reserved for the devoted scho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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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out of 5 stars Five Stars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0 Februar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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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it.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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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2005 Peter Phan received a notification from the Congregation of the Doctrine of the Faith identifying errors and ambiguities in his book, Being Religious Interreligiously: Asian Perspectives on Interfaith Dialogue (Orbis, 2004). This set in motion a long train of correspondence, requiring Phan to answer various questions about the salvific role of Christ and the Church, among other matters. Here at last, is his response—a spirited affirmation of the methods of Asian Theology, which differ in many respects from the assumptions and categories of traditional European theology, though rooted in the gospel and the deposit of faith. Apart from his introduction to Asian theology, Phan addresses the specific topic of religious pluralism (a source not simply of challenge to Christian self-understanding and mission, but a potential source of “joy”). An appendix includes his correspondence with church author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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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gth: 240 pages Word Wise: Enabled Enhanced Typesetting: Enab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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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In this exceptionally fine work, Peter Phan answers his critics clearly, concisely and persuasively. He also provides one of the best descriptions of the amazing strength of Asian Christian theology-- especially in its attention to the triple dialogue-- with the poor, with other cultures, and with other religions." --David W. Tracy, University of Chicago

"Peter Phan here narrates his pilgrimage into worlds of religious pluralism, chronicles his struggles with 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and the U.S. Bishops' Committee on Doctrine, and offers his faithful witness and theological defense of his convictions, all with wit, joy, insight, and honesty. It is very important that we have his testimony for future generations, and for our own." --Bradford E. Hinze, Fordham University

"The book is erudite, serious, profound, exhaustive, fascinating, and humorous. It will stand as a fine exposition of the contemporary effort to articulate a theology that respects the salvific role of Jesus Christ, the Christian tradition, and the work of the Eternal Spirit among all the peoples of the world.... A short review cannot possibly do justice to this fine book. Urgently recommended for academic libraries and missionaries of all stripes, it should stimulate new levels of interreligious dialogue and, one hopes, more fruitful communication between bishops and theologians, missionary personnel, and laity." --Anthony J. Gittins, CSSp, in Catholic Library World --This text refers to the paperback edition.

About the Author
Peter C. Phan, a native of Vietnam, immigrated to the U.S. in 1975. He obtained three doctorates from the Universitas Pontifica Salesiana in Rome and the University of London. He is currently Ignacio Ellacuría Professor of Catholic Social Thought at Georgetown University. A former president of the Catholic Theological Society of America, he is also a recipient of the Society's John Courtney Murray Award. --This text refers to the paperback edition.

2021/08/03

Raimon Panikkar: A Companion to his Life and Thought - Kindle edition by Phan, Peter C, Ro, Young-chan. Religion & Spirituality Kindle eBooks @ Amaz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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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mon Panikkar: A Companion to his Life and Thought Kindle Edition
by Peter C Phan (Editor), Young-chan Ro (Editor) Format: Kindle Edition

Raimon Panikkar: A Companion to his Life and Thought is a guide to the life, work and thought of Raimon Panikkar, a self-professed Buddhist-Christian-Hindu philosopher and theologian. 

A man of deep and wide learning and an extremely prolific author, Panikkar is equally at home in various religious and cultural traditions and embodies in himself the ideals of intercultural, intrareligious, and interreligious dialogues. 

This book explicates Panikkar's basic vision of life as the harmonious rhythm of divinity, humanity, and the cosmos, which he terms cosmotheandrism, and shows how it permeates and illumines his articulations of the central Christian doctrines. Given the complexity and difficulty of Panikkar's thought this book is a welcome companion for a course on Panikkar and for a general reader who wishes to understand one of the most profound and orginal thinkers of our time.

4.6 out of 5 stars 3 ra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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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t length319 pages

Editorial Reviews

Review
"This book is a magnificent set of insider looks at the life of Raimon Panikkar. It is not written to replace comprehensive study of him . . . but to aid in understanding the 'Invisible Harmony' that Panikkar himself embodied." --Yong, Aizaiah, Religious Studies Review, Volume 45, Number 3, Septemer 2019

 "I would readily recommend this volume to anyone interested in acquainting themselves with Panikkar's work, or for those who wish to deepen their understanding of his 'mutationism' and mysticism." --Allison, John, Reading Religion, 2020

 "This is a really important study." --Gill, Robin, Editor, Theology, 122(5) 
--This text refers to an out of print or unavailable edition of this title.

Product details

ASIN ‏ : ‎ B0846747VZ
Publisher ‏ : ‎ James Clarke & Co; 1st edition (October 25, 2018)
Print length ‏ : ‎ 3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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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xann Hopkins

4.0 out of 5 stars Writers and non-writers alike were once associated with this genius.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August 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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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ought of writing on Dr. Panikkar, having been associated with his works for over ten years and having been a student of his at U.C.S.B. That is why I liked hearing from his Doctoral students and acquaintances. There are several people like me that revered him and respected him. Those that are not fortunate enough to have become Professors or writers themselves. It is on behalf of these, that I recommend this text. Sincerely Roxann Hop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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