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지구화 시대의 인문학 : 경계를 넘는 지구학의 모색 프로그람 +박맹수+박치완

 지구화 시대의 인문학 : 경계를 넘는 지구학의 모색

Globalogy: The Humanities in the Age of Globalization

구분 시간 발 표  및  내 용 진행

개회

기조강연 09:00~09:10 등록/접수 원영상 

09:10~09:20 【개 회 사】 박맹수(원불교사상연구원 원장/ 원광대학교 총장)

09:20~09:40 【기조강연】 철학을 장소화하기, 장소를 철학화하기!?    박치완(한국외국어대학교)

제1부 해외의 지구인문학

09:40~10:00 【1. 지구재난학】 지구살림의 영성학      가타오카 류(片岡龍, 토호쿠대학) 조성환

10:00~10:20 【2. 지구예술학】 꿈꾸는 사과, 지구예술학은 가능한가?   오쿠와키 다카히로(奥脇嵩大,아오모리현립미술관)

10:20~10:40 휴 식

10:40~11:00 【3. 지구종교학】 지구근대성 시대의 종교 연구         조규훈(토론토대학)

11:00~11:20 【4. 지구기학】 지구운화 내 공존재(共存在)로서의 인간 야규 마코토(柳生 眞, 원광대학교)

11:20~12:00 제1부 섹션토론

12:00~13:00                                  점심식사

제2부 지구인문학 의 이론과 상상력

13:00~13:20 【5. 지구형이상학】 두 사건에서 보는 지구적 전환(two geological turn)                    : 우리는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이원진(연세대학교) 이주연

13:20~13:40 【6. 지구인류학】 지구위험 시대의 인류학적 사고       차은정(서울대학교)

13:40~14:00 【7. 지구정치학】 지구정치학을 향하여: 개인·국가·세계 너머의 시선과 사유 

                                                  김석근(역사정치학자)

14:00~14:20 【8. 지구유학】 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 통(通)과 균(均)을 중심으로 김봉곤(원광대학교)

14:20~14:40 【9. 지구살림학】 인류세시대의 한국철학              조성환(원광대학교)

14:40~15:20 제2부 섹션토론

15:20~15:40 휴 식

제3부 지구인문학 의 실천과 연대

15:40~16:00 【10. 지구수양학】 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원광대학교) 김봉곤

16:00~16:20 【11. 지구교육학】 세계시민에서 지구시민으로  

                                               이우진(공주교육대학교)

16:20~16:40 【12. 지구윤리학】 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     

                                                   허남진(원광대학교)

16:40~17:00 【13. 지구평화학】 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원광대학교)

17:00~17:30                            제3부 섹션토론 

종합토론 17:30~18:00                                종합토론 허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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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사】지구위험시대의 학문의 전환과 대학의 역할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번 학술대회를 빛내주기 위해 캐나다와 일본, 그리고 한국의 각지에서 참석해 주신 모든 선생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지구위험시대에 요청되는 학문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의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원불교사상연구원은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2020년 4월부터 매 주 <지구인문학 연구모임>을 진행해 왔고, 그 과정 속에서 경계를 넘어선

다는 것, 시대가 요구하는 학문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1년 넘게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지구라는 단 하나의 공동체에서 서로 공생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학의 사명은 학문적⋅사상적 토대를 확고하게 정 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구’는 전 인류의 삶의 바탕입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구성원들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지구공동체에 대해 무지해 왔고, 무관심하 게 여겼으며, 번거로워했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함께 사는 이곳 지구, 그리고 지구에 사는 모든 가 족들을 위해 겸허히 마음의 자리를 내줄 때가 왔습니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지구가 아닌 지구 가 있어 인간이 산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이룰 때가 되었습니다. 그 지구적 전환을 위해 준비한 자 리가 오늘의 ‘지구학 학술대회’입니다.

오늘 학술대회에서는 박치완 교수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가타오카 류 교수님의 지구재난학, 오쿠와키 다카히로 교수님의 지구예술학, 조규훈 교수님의 지구종교학, 야규 마코토 교수님의 지구 기학, 이원진 교수님의 지구형이상학, 차은정 교수님의 지구인류학, 김석근 교수님의 지구정치학, 김봉곤 교수님의 지구유학, 조성환 교수님의 지구살림학, 이주연 교수님의 지구수양학, 이우진 교 수님의 지구교육학, 허남진 교수님의 지구윤리학, 원영상 교수님의 지구평화학 등, 다양한 영역에 서 경계를 넘나드는 지구학 발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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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고정 관념과 낡은 방식을 과감하게 바꾼다 는 것을 뜻합니다. 부디 오늘 진행되는 학술대회가 종래의 인간중심주의를 다시 돌아보고 당면한 지구위기상황을 깊게 고뇌하는 성찰과 사유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오늘 첫걸음을 뗀 ‘지구학’이 장차 21세기에 한국학이 나아가야 할 학문적 지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선생님들이 앞으로도 끈끈한 학문공동체로서 진지한 학술교류를 이어 나가 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이것으로 개회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2021년 3월 19일 

원광대학교 총장 박맹수

 


 

   

 

  차 례

개회사····························································································· 박맹수  4

□ 철학을 장소화하기, 장소를 철학화하기!?········································· 박치완……  9

□ 지구살림의 영성학····························································· 가타오카 류…… 33

□ 꿈꾸는 사과, 지구예술학은 가능한가?··············· 오쿠와키 다카히로(奥脇嵩大)…… 47

□ 지구근대성 시대의 종교 연구······················································· 조규훈…… 59

□ 지구운화 내 공존재(共存在)로서의 인간·························· 야규 마코토(柳生眞)…… 69

□ 두 사건에서 보는 지구적 전환(two geological turn)····················이원진…… 83

□ 지구위험 시대의 인류학적 사고················································차은정…… 107

□ 지구정치학을 향하여····························································· 김석근……119

□ 조선유학에서 지구유학으로······················································· 김봉곤……137

□ 인류세시대의 한국철학···························································· 조성환……151

□ 개인의 완성과 지구적 연대의 통합적 실천·································· 이주연……161

□ 세계시민주의에서 지구시민주의로·············································· 이우진……177

□ 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한 지구윤리············································ 허남진……189

□ 종교평화론을 통한 지구평화의 모색············································· 원영상……201

 


 

【기조강연】철학을 장소화하기, 장소를 철학화하기!? : 지구(인문)학의 연구방법론을 제안하며 박치완(朴治玩)*

요약문   

삶의 공간, 즉 주거지는 그것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위치하건 인간이‘장소-세계(place-world) 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거한다. 그런데 현대인의 생활공간이 점점 도시화, 상업화, 디지 털화되면서 장소-세계를 잃은, 빼앗긴 실향민들의 수가 매년 늘고 있다. 오직 경제-성장만을 목표로 하는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삶의 진원지인 장소-세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장 소가 자본화되고, 비인간화된 곳에는 예외 없이 무한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공간들이 들어선다. E. 렐프의 표현대로, 현대인은‘장소 상실’이 보편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우리가‘장소’개 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인간 = 장소-내-존재(Being-in-place)>라는 의미를 되새 겨보기 위해서다. E. S. 캐이시에 따르면,“장소는 곧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이에 비춰보면,‘철학을 한 다’는 것은 곧 우리가 사는‘장소를 철학화한다(philosophizing Place)’는 말이다. 실존의 장소를 주체, 의 식의 직접적 대상으로 연구한다는 뜻이다.‘장소의 현상학(phenomenology of place)’은 장소에서 발원하고 전개되는 개인과 집단(공동체)의 문제를 응용현상학적 관점에서 다룬다. 한마디로‘철학을 장소화한다(placin g Philosophy)’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동안 철학은‘어느 곳’에서나‘언제나’ 적용 가능한 일종의‘기하 학적 공간 보편주의’에 함몰돼 있었다. 제3세계의 철학이 재지성(territoriality)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도 여 기에 있다. 재지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보니 제3세계의 철학은 운명적으로 구미 중심의 세계지배적·식민 적 지식체계에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0년대를 전후해 이를 자각한 제3세계에서 탈식민적 운동의 일환으로 새롭게 제안한 철학의 디자인이 바로‘지역-로컬 기반의 세계철학(locals-based global philo sophy)’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에서 이제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지구학’을 지역-로컬 기반의 세계 철학 운동과 연대해 어떻게 한국철학을 세계화할 수 있을지 그 방법론에 관한 제안을 하는데 연구 목표가 있다. 주제어 : 장소, 장소 상실, 장소의 현상학, 철학의 장소화, 장소의 철학화, 지역-로컬 기반의 세계철학, 지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차 례 

I. 머리말 : 어디에서 철학을 하는가?

II. 제3세계가 중심이 된 지구학의 구성과 그 방법론 

  1.‘지구학’, 용어 선택 또는 번역어의 문제

2. 제3세계적 관점에서의 방법론 모색의 필요성

3. 로컬과 글로벌, 서구와 비서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E. 두셀의 해법

III. 맺음말 : 제3세계 지식인들의 연대와‘장소감’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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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는“우리가 어디에 있는가?” 또는“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철 학에 대한 권리에 대한 질문은 어디에서 생기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여기서 ‘어디’는 곧 어디가 철학의 권리를 갖는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철 학의 가장 적합한 장소는 어디인가?” 

- Derrida, cited by B. Janz, In“Philosophy as if Place Mattered”

“존재한다는 것은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 E. S. Casey, Getting Back Into Place.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종속된 장소 안에 존재하며, 우리가 장소의 지배를 받는 것은 장소가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장소는 우리 안에 있고, 진정으로 우리 자신이다.” 

- E. S. Casey,“Between Geography and Philosophy: What Does It Mean to Be in the Place-World?”

I. 머리말 :‘어디’에서 철학을 하는가?

철학도 과학도 실제“세계에 대해 더 완전한 그림(a more complete picture of the world)” )을 그리기 위해 끝없이 도전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인간’을 잊는 경우가 허다하다.‘인간’이 철학 과 과학에서 잊혀지고 있다는 것은 인본(인문)주의가 꼬리를 감추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철 학과 과학이 추구하는‘더 완전한 그림’에서 어떻게‘인간’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는가? 철학 자나 과학자마저‘이해관계’에 따라 마치‘비즈니스’나‘사업’을 하듯 행동하는 것을 더는 지 켜보고 있어야 할까?‘인간’과 무관한,‘인간의 삶’과 거리가 있는 철학과 과학은“우리의 지성 사가 정당한(right)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반증이라 아니 할 수 없다.2) 

M.  맥베스가 철학과 과학에 필요한 것은“인간적 관점(human perspective)”,“인본주의적 규율 (humanistic discipline)”이라 강조하며 인간의 지성 활동이“인간의 삶, 우리의 삶, 그것들의 다양 한 측면”을 탐구하는 것이 21세기의 과제라고 역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주어진 현실을‘객관 적으로’,‘과학적으로’,‘절대적으로’ 사고한다고 빙자하며,‘인간’과‘삶’을 망각한 것이 철 학과 과학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 맥베스의 주장인즉, 철학과 과학이 추구해야 할‘더 완전한 그 림’에는 기술-경제의 지배 시대일수록 인간과 인간의 삶을 위한 배려에‘더 많은 고민’을 투자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과 인간의 삶을 배려하고 고민하는 학문은“우리가 사고하고 이해하는 모든 것과 함께 우리가 어디에 존재하는가(where we are)로 부터 시작된다.” ) 

요인즉 철학과 과학은 각자가 존재하는 곳, 즉 삶의 장소에 대한 사고의 촉각을 계발할 때 기술 과 경제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잊혀진‘인간’을 삶의 본래 자리, 하이데거의 표현대로,‘세계-내존재(Being in the world)’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이 세계-내-존재라는 것은 개 인과 사회공동체, 로컬과 글로벌 간에 자유와 평화, 정의와 분배, 인권과 민주주의가 일상의 삶에 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요구와 괘를 같이 한다. 철학과 과학이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것 과 새롭게 등장한 것, 현실의 작은 조각에 대한 연구와 현실 전체를 통찰하는 연구, 한 지역-로컬 문화에서만 통용되는 지식과 전 지구촌에 이롭고 유용한 지식을 종합하는 노력에 더 많은 공을 들 여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학자는 단지 과거의 개념들, 과거의 담론들과 장단을 맞추는 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임무를 다한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자는 당대에 제기된 물음들과 씨름하는 것이 일차적 임무다. 자신과 씨름하며 자신의 철학을 그가 사는 시대와 장소 위에 새로 운 담론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 곧 철학자의 역할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 부합해‘창조된’철학적 결과물이라고 해도 5대양 6대주의 독자를 만족시킨 적은 드물거나 거의 없다. 이는 철학에도 기본적으로‘지리-문화적 색깔’이 배태돼 있다는 방증 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이성-진리-보편학인 철학도 지리(더 정확하게는‘장소’)의 제한을 받는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우리가 종종 놓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철학은 그 것이 탄생한‘장소’에서 자양분을 얻는다는 점일 것이다. ) E. S. 캐이시가 장소로 되돌아감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히 말하지만, 재 지성(在地性, territoriality)이 없는 철학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의 재지성은 마 치 개인의 신분증명서와도 같다. 인도에서 출발한 원시·근본불교가 치열한 자기 응시와 직관을 중시하는 한국의 선불교, 염불 수행법을 위주로 하는 일본의 정토 불교, 자비와 이타행(利他行)을 강조하는 티벳 불교와 다른 것도 바로 그것이 탄생한‘장소’의 영향 때문이다. 로컬 지식의 저 자 C. 기어츠의 방식으로 이를 바꿔서 표현하면, 모든 철학은‘로컬 철학’이란 뜻풀이가 가능할 것이다. ) 단적으로 말해, 지리적 환경이 철학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미 숙지하고 있는 바지만, 아테네는 국가의 탄생지이고, 쾨니히스베르크는 순수이성 

비판 등 3대 비판서를 탄생시킨 칸트의 고향이다. 보편성을 추구한다고 믿었던 철학에 이렇게 재 지성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대개는“그럴 리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하 지만 분명한 사실은 다른 장소(지역, 국가)’에서는‘다른 철학’이 탄생한다는 점이다. 단지 하나 의 가정일 뿐이지만, 플라톤이 만일 곡부(曲阜, 취푸)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는 제2의 공자가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데카르트가 강원도 평창의 판관대(判官垈)에서 태어났으 면 그는 분명 성찰이나 철학의 원리 대신 성학집요나 인심도심설을 남겼을 것이다. 철학 에는 이렇게 개인과 마찬가지로 장소, 번지수가 따라 붙는다.

철학의 재지성 및 본토성은 거듭 강조하지만 철학이‘장소’를 기반으로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증거이고 ), 철학의 적지(適地)가, 데리다가 믿고 있는 것처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와 같이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즉 철학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세계는 다양한 장소다(C. Geertz)” )라는 말과 같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이런 이유 때문에‘하나의 보편적 대답’을 기대할 수 없으 며, 이를 기대하거나 염두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허황된 꿈인지 모른다. 감히 말하지만, 철학은 모든 사람, 모든 공간에 적용되는‘진리(episteme)의 학’이 아니라 개별 장소에서 각기 자신의 ‘의견들(opinions)’을 자유롭게 제시한 학문이었다고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자기 반성, 자기수련이 미족(未足)한 철학자들(philodox)은 여전히 마치‘야곱처럼’, 모두가 동일한 방식, 동일한 목표로 철학을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 

본고의 논제인 <철학을 장소화하기, 장소를 철학화하기>를 통해 필자가 근원적으로 역문(逆問)하

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은 기하학적 공간 보편주의자들의 믿음처럼 결코 장소와 무관한 학문이 아니다. 우리는 아테네에서, 슈투트가르트에서, 파리에서, 런던에서, 서울에서, 동경

에서 철학을 한다. 철학은 재지적 세계관〔placial(geographic) worldview〕에 기초한 지적 구성이자 동시에 재지적 창조다. 그 때문에 재지성은“철학이란 무엇인가?”,“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골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결과물이 보편적인가 아니면 특수한(지역-로컬적인) 것인 가를 궁추(窮追)하는 것은 어느 정도 결과물이 축적되었을 때, 즉 추후에 논의할 문제다. 재지적 철 학이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철학을 실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보편성/특수성의 문제가 선머리가 되어 논쟁의 화근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뜻이다. 

감히 말하지만, 한국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만일 탈장소적/초시대적“‘보편(성)’의 망

상”에 사로잡혀 있다면, 대한민국과 같은 제3세계에서는 철학이 뿌리내릴 수도 시발될 수도 없다. 따라서‘비유럽적 개념화’를 시도해 철학을‘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재건해야 하는 것보다 더 큰 과제가 있을 수 없다. ) 데리다가 역설한 것처럼, 오로지‘그리스-서부 유럽’만이 철학의 적지인 것인가? ) 데리다 등 서부 유럽의 철학자들이 장소를 강조하면‘보편적’인 것이고, 비구미권의 학자들 또는 한국의 철학자들이 장소를 언급하면‘상대적인’ 것인가? 

이상에서 필자가 제기한 문제의식과 물음들을 본 연구에서 일일이 해명하거나 소화할 수는 없 다. 따라서 초점을 좀 더 좁혀 아래에서는 <철학 ≒ 장소(화)>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제3세계가 중 심이 된 지구학 구성에 대해 논의를 집중시켜볼까 하며, 이는 곧 지역-로컬 철학의 장소화를 의미 하는 것이자‘지구촌’이라는‘장소’를 새롭게 철학화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II. 제3세계가 중심이 된 지구학의 구성과 그 방법론 

제3세계의 지역-로컬 철학이 궁극적으로 보편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 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D. 슈내퍼도 정확히 지적하고 있듯, 구미에서 보물단지처럼 여겨온‘보 편주의’는 철학을 또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염원일 뿐 그것이 완성된 경우를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참된 보편주의’,‘진정한 보편주의’,‘이상적 보편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한 사람 이 없다는 뜻이다. N. 스코어의 언급대로, 하지만‘거짓 보편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거짓 보편주의’를 타파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제3세계의 지역로컬 철학의 탄생이 사고의 다양성이란 지평 위에서 존재 이유(raison d’être), 정당성을 얻는 이 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미에서는 보편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해 타자, 타문화에 대한 배제를 감행했고, 억압을 정당화했

으며, 불평등을 은폐했다. 구미의‘거짓 보편주의’가 그 명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15) 

“ 오늘날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all-inclusive) 보편주의의 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 

스코어의 위 언급은 지역-로컬의 장소를 철학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서론에서 우리는 장소를 철학화하는 것은 철학을 장소화하는 것이라 했다. 철학 이 장소화될 때, 철학은‘독일의 관념론’,‘미국의 실용주의’처럼 개별화된다. 현실적으로 철학 은 이렇게 장소를 중심으로 개별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보편’의 휘장을 둘러 스스로를 ‘보편적인 것’이라 속이고 또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많은 지역-로컬의 학자들이 이에 속는다. 

‘코로나19와도 같은’ 서구 유럽의 보편주의는 서구 유럽을 절대화함으로써 ) 타자 및‘다르게 세계를 보는 것(seeing the world differently)’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고의 다양성을 자체를 인정하 지 않고 획일화, 단순화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이 한 지역-로컬 철학(서부 유럽 철 학)이 철학 자체를 획일화, 단순화시킴으로서 다른 지역-로컬 철학이 개별화되는 길이 가로막혔다 는 점이다. 서구 유럽 밖에서 지역-로컬을 중심으로 새로운 철학적 운동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이 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맥베스가 철학은“역사적으로 특징지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특징지어진 것이라는 점 때문에 진정으로 세계적인 철학”이다,“어느 장소에도 속하지 않은 철학은 분석철학이 유일하 다”,“장소를 가졌을 때만이 진정으로 세계적인 철학이다”고 강조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 철학은 결국 재지성을 띄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은 없으며, 지역-로컬 철학이 세계화되는 길 도 재지성의 개별화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역설 같지만, 구미의 보편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역-로컬 철학의 탄생에 불을 지폈다.‘기 존의 세계철학’의 지형도가 서구 유럽 중심에서 지구촌 전체로 중심이 이동되고 있는 원인 제공 자가 서구 유럽이라는 것이다.“세계화는 철학을 변화시켰고, 계속 변화시키고 있다.” ) C. 타운 레이의 언급대로‘새로운 세계철학(global philosophy)’은 이런 와중에 탄생한 것이며, 그는‘새로 운 세계철학(지구철학, 지구학)’의 탄생과 관련해 다음 4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i) 비서구적 철학공 동체의 활동이 세계적인 철학적 대화에 있어 두드러진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점; ii) 비서구 철학자 들이‘기존의 세계철학(world philosophy)’에서 노정하고 있는 지적 폭력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 기하고 그 해결책을 새롭게 제안하면서 철학의 중심 무대로 진입하고 있는 점; iii) 새로운 전문학 술지들이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고, 철학적 공동체들 간에 건설적이고 비판적인 교류가 활발해지면 서 철학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변신을 요구하고 있는 점; iv) 환경 문제를 필두로 어느 사회, 국가나 할 것 없이 만연해 있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 등 세계적인 이슈와 관련해 초국가적 

보상적 정의(transnational compensatory justice)와 차이를 부인하지 않은 공정한 포용과 인정과 같 은 논제를 제기하고 공유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점.

타운레이가 주목한 이 4가지 변화는 그 근저에“유럽 중심적 관점”은 이제 더 이상 전 지구촌 

시민들에게“타당하지 않으며, 부분적이고, 잘못 인도된(irrelevant, partial, or misguided)” 것이라 는 함의가 숨어 있다. )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오늘날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세계철학, 즉‘새 로운 세계철학’을 향한 변화는“유럽으로부터 물려받은 철학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의 심대한 도 전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한마디로,“철학을 서구적 전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천해온 (different ways of practicing philosophy)” 제3세계철학자들에 의해 그간의 유럽 중심의 철학의 지 형도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1990년을‘워싱턴 컨센서스’와 더불어 본격화된 세계화는 이런 점에서“우리에게 철학의 본질 을 재고하도록 요구”했다는 점에서 분명‘역설’에 해당하며 ), 이를 서구 유럽 철학계가 새로운 소통과 대화의 기회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전통을 계속해서 고수할 것인지는 그들의 선택 문제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서구 철학계가 전통을 고수하며‘기존의 세 계철학’을 지켜낼 수 있을까? 봇물은 이미 터졌고,‘기존의 세계철학’은‘새로운 세계철학’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 바뀔 것이다. ) 

한국철학의 세계화란 기치로‘지구학(global studies)’,‘지구인문학(global humanities)’을 주창 하는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도 바로 이러한 세계철학계의 혁신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연 구의 목표와 방향을 좀 더 분명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며, 철학 대중에게 이 참신한 논의를 확산시 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학국철학의 고유성, 독립성을 재지성(장소성)을 견지하면서 전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겠지만, 서구적 사고틀을 넘어서는‘지구 학’,‘지구인문학’이라는 이념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출발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 게 중요한 것은 새롭게 제기한 이념에 걸맞는 방법론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지구학’,‘지구인문 학’의 목표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유영토에만 국한된 물음이 아니라 전 지구촌이 그 대상인 물음이 기 때문에 그렇다. 나아가 지구공동체(global community)에 거주하는 인류가 바로‘지구학’,‘지구 인문학’의‘주인(주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필자의 문제의식을 아래에서는‘지구학’,‘지구인문학’이란 창의적 아이디어가 어떻게 

보강해야 해야 할지를 중심으로 본 논의를 전개해볼 계획이다.

1.‘지구학’, 용어 선택 또는 번역어의 문제

제1세계에서 지구학(global studies, 글로벌 연구: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및 사회적 상황에 관한 연 구 ))에 대해 논의하는 것과 대한민국과 같은 제3세계에서 지구학(지구유학, 지구개벽학, 지구종교 학, 지구재난학 등)에 대해 화제를 삼는 것 간의 차이는 없을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정확히 무 엇일까? 제1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중심으로, 즉 세계의 중심부에서 바깥 세계를 관찰하며 어떻게 계속해서 바깥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배력을 존속시킬 것인지를 고심한다. 반면 중후진국가나 저개발국가가 대부분인 제3세계에서는 지구학에 대한 본연적 연구보다 제1세계 로부터 주어지는 공적 개발원조(ODA)나 지원 정책들에 동참하고 협력해서 어떻게 하면 경제적 수 혜를 입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만일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나아가 상반되기까지 하는 논리와 방식으로 지구학이 연구된다면, 양 자 간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제3세계에서 단지 제3세계적 방식으로 지구학을 연구한다 는 것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그 접점을, 앞서 언급한,‘전 지구적 관점(global perspec tive)’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염두하고 있는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지구학은 제3세계가 제1세계와 당당히 맞서 연구 주체로 설 때 비로소 본연적 지구학에 대한 지형도가 그려질 수 있다. 제3세계에서 지구학을 연구하려면 따라서 지역-로컬의 기반학(underlying studies of locals)이 무 엇인지부터 선결(先決)해야 한다. 제1세계와의 문화적 대화나 지적 교류 과정에서 제3세계가 진정 으로 주체나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면, 지역-로컬의 기반학을 갖추는 것은 일차적 요건이다. 지역 -로컬 기반학이 없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제1세계의 영향력만이 강화될 뿐 기존의 학문적 지배-종속의 관계는 호전될 수 없다. 냉정한 국제 현실은 정치적·경제적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인 문학, 철학과 같은 순수연구 분야에서도 어김없이 지배-종속의 관계가 적용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제1세계와 비자발적·강압적으로 묶인 학문적 식민성의 매듭을 푸는 주체는 제3세계여야 한다. 제3세계가 주체가 되어야 제3세계의‘지식들(knowledges)’을 제1세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어떤 것이 더 유용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지역-로컬의 기반학을 선결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기반학을 기점으로 1단계에서 는 제1세계에 의해 전개·전파되었거나 오늘날에도 전개·전파되고 있는 지구학, 즉‘세계지배 학’과 비교문화적·비교철학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25) 제1세계와 제3세계 간의 지식/철학의 비 교 작업이 필수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제국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제1세계에서는 늘 <global studie s>를 실행해왔고, 현재에도 여전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26) 

2000년대를 전후해 나타난 새로운 변화라면, 예전의 국가 간의 교류, 양자 간 또는 다자 간 합의 등을 단일 국가가 중심이 되어 연구했다면, 오늘날에는 글로벌과 로컬들의 관계를 이슈별로 협력 하며 공동으로 연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글로벌과 로컬들 간의 상호연결성(interconnectedness)이 중요한 시대적 화두가 되었고, 제1세계에서의 지구학은 이에 부응 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철학 등의 학제 간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국을 대표하는 글 로벌 문제 전문가를 양성을 목표로 미국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이를 고등교육프로그램으로 운영 중이다. 특히 2008년부터 <global studies>는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까지 결성해 매년 기획 컨퍼런스 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27) 연구 분야를 특정 <그림1>: 제1세계(유럽→미국) 주도의 세계지배학 모형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 시기, 연구이론, 공동연 구 주제까지 연구자들 간에 공유하면서 지구학에 대한 관심은 제1세계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28) 

 

25)‘세계지배학’은 필자가 다음 논문을 참조해‘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 이후 제1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세 계를 지배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순수하게 조어한 것이다: M. Thomas & A. 

Thompson,“Empire and Globalisation: from‘High Imperialism’ to Decolonisation”, The International History 

Review, Vol. 36, No. 1, 2014. 19세기의 세계화(globalization)가 <Civilization, Westernization, Europeanization, 

Industrialization, Modernization, Colonization>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면 20세기-21세기의 세계화는 

<Americanization, Dollarization, McDonaldization, Virtualization, New Colonization, Digitalization, Hybridization, Planetization>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돌려 말해 후자는 전자의 21세기적 번역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세계의 중심은 이렇게 지배 형태만 바뀌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6) <global studies>는 2008년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1차 컨퍼런스를 개최했으며〔2009년 2차 대회: 두바 이의 전망 – 걸프와 세계화(두바이), 2010년 3차 대회: 글로벌 재조정 – 동아시아와 세계화(부산), 2011년 4차 대회: 신흥 사회와 해방(리오 데 자네이루), 2012년 5차 대회: 유라시아와 세계화 – 복잡성과 글로벌 연구(모스크바), 2013년 6차 대회: 남아시아의 사회 발전(뉴델리) 등이 개최되었음〕, 2021년 제15차 대회 는“팬데믹 이후의 삶: 새로운 글로벌 생명정치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캐나다의 몬트리얼(Concordia 

University)에서 6월 5-6일에 개최되며(원래는 2020년 개최예정이었으나 COVID-19로 순연된 것임), 2022년 에는 그리스의 국립아테네대학교에서 7월 22~23일 개최하기로 예정돼 있다(https://onglobalization.com/).

27) <global studies>를 학제로 운영 중인 대학으로는 미국의 피츠버그대학교, 미네소타대학교, 캘리포니아대 학교 등 49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고, 유럽에는 영국의 런던경제대학,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스페인의 살라망카대학교 등 18개 대학, 캐나다의 경우는 턴대학교 등 6개 대학, 일본의 아키타국제대학, 도시샤대학 등 8개 대학, 홍콩은 홍콩대와 홍콩중문대 2개 대학, 중국은 중국정법대와 상하이대 2개 대학, 그리고 한국은 유일하게 부산대학교만이 연구 네트워크(Research Network)에 참여하고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Global_studies).

28) 학제간 연구를 기초로 하는 <global studies>에서는 정치, 경제, 역사, 지리, 인류학, 사회학, 종교, 기술, 철학, 건강, 환경, 인종 등을 포괄하는 연구를 시도하며, 연구 시기는 그리스/로마 제국의 초국적 활동에

이러한 상황인식은 2020년부터 지구학, 지구인문학, 지구주의을 주창하며 공동(집단)연구를 시작 한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직시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29) 제3세계에서 연구자 몇 명이 모 여‘지구학’을 외친다고 해서 <global studies>가 비약적으로 새로워질 것이라 예측되지 않기 때문 이다. <global studies>를 단지 한글로‘지구학’이라 번역해 사용하는 것만으로 제1세계의 세계지 배학이 제3세계를 위한‘지구생명보호·배려학’으로 일신될 수 있을까?‘지구학’이 만일 제1세 계가 지적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지배학과 연구목표나 연구 대상에 있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서부터 유럽의 식민주의 시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기 등 다양하다. 연구이론은 포스트 식민주의론, 포 스트 비판이론, 다문화주의 등이 주로 활용되고 있으며, 주요 연구 키워드는 상호의존성, 상호연결성, 교 차문화적 지식, 인권, 사회정의, 로컬/글로벌의 관계 및 작용, 글로벌 인지, 정치적 참여, 글로벌 교육, 글로벌 경쟁력, 참여적 민주주의, 세계시민, 효과적 시민의식, 국제테러, 국가안보, 기후변화 및 환경 파괴 등이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Global_studies). 

29) 주지하듯,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는 근년 들어‘개벽학’을‘지구학’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시도로‘지구인문학’이란 신개념을 만들어 다양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도 그 일환이 라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다소 우려스러운 것은 <globalization>을‘지구화’로 <global studies>를 ‘지구학’으로, <global humanities>를‘지구인문학’으로, <globalism>을‘지구주의’로 번역하며 한나 아 렌트, 데이비드 하비, 맨프레드 스테거, 울리히 벡 등의 이론을 전거(典據)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벡이 지구화의 길에서 정확히 언급하고 있듯, 지구화는 정확하게‘위험한 자구화’를 의미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지구화, 즉 세계화는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제1세계의 경제적 세계의 확장, 즉 신자유주의 의 전면화에 그 본의가 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벡이 지구화를‘위험하다’고 했던 것이고, 아렌트나 하비도 전 지구촌이 자본 중심의 세계화의 메커니즘 하에 놓이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세계화(지구화)

는 결국 제1세계가 주도해온 식민지적 세계시스템(colonial world-system)의 강화 논리(I. Wallerstein)에 다름 아니다. 만일‘지구인문학’에서 이러한 세계지배학의 논리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의도와는 상반되게 위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한국학, 한국철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개벽학’에서 찾고, 이 개벽학이‘지구학’으로 확장되는 것에는 필자도 이견이 없다. 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다(이상은 조성환, 「장점마을에서 시작하는 지구인문학」, 文학 史학 哲학  제63호, 2020a, 216~220쪽; 조성환, 「현대적 관점에서 본 천도교의 세계주의: 이돈화의 지구주의와 지구 적 인간관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84호, 2020b, 88-89쪽 참조).‘지구인문학’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조성환이 다른 글에서 정확히 짚고 있듯,“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 존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래의 개념 세계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조성환, 「다시 개벽을 열 며」, 다시 개벽 제1호, 2020c, 25쪽) 정확히 이런 의도로 지구학,‘지구인문학(Earth-centered Humanities)’을 주창한 것이라면, 이미 구미에서 비판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인 <globalization>, 

<globalism> 안에 儒學, 東學, 西學을 포괄하는 새로운 학문을 담아내겠다는 시도 자체가 엇박자라 생각된 다. 본론에서 언급하겠지만, 가능하다면 더 늦기 전에 제3의 개념(이미 연구팀에서 사용하고 있는‘지구개 벽학’이나‘천지공생학’과 같은)을 창안해 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수순(手順)이 아닐까 싶다. 만일 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봉착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일례로,‘지구인문학’은 최근의 다중우주론과 관련해서 보면 자칫‘지구중심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다시 말해,‘지구인문학’은 다중우주론자들 에게는 지동설을 천동설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 여기에다가‘지구학’은 <Earth Science>란 영어 번역도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Earth Science(Geoscience, Geology)>는 주지하듯 지구 행 성(Planet Earth)과 관계된 자연과학의 모든 연구 영역을 포괄한다(https://en.wikipedia.org/wiki/Earth_science). 최근에는 지구(자연)환경 파괴, 빙하 붕락 등과 관련해 세계인들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으며, 네 분야(암석, 물, 공기, 생명)의 주요 연구 영역 중 특히 생명권은‘지구학’과 직결돼 있으며, 환경 통찰력 개발 (development of environmental insight), 지리윤리(geo-ethics)를 포함해 사회적 웰빙(social wellbeing), 자연적 이고 본능적인 동기, 학습 본능의 생물학적 측면, 효과적인 의사결정 등에 이르기까지 연구 영역을 다변화하고 있다 – N. Orion,“The future challenge of Earth science education research”, Disciplinary and Interdisciplinary Science Education Research, Vol. 1, No. 3, 2019, pp. 1~8 참조. 이런 까닭에 필자는 차제에 <global studies>를‘지구학’이라 그 의미를 특별하게 부여해 사용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거듭 제안하는 바이다.

이라면, 이는 결과적으로 제1세계에서의 기존 연구에 편입 또는 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때문에 좀 더 효과적인 연구결과의 도출을 위해서라면, 이미 국제적으로 연대해서 활동 중인 기존 연구 (자) 네트워크와 협력하는 것도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들과 같은 무대 위에서 새 로운 주장을 펼쳐야 독자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그들과 다른 무대 위에서 아무 리 훌륭한 이야기를 한다 해도 만일 독자 대중이나 관객이 없거나 적다면, 이 연구는 빛을 발하기 힘들 것이다. 그들과 같은 무대 위에 다른 내용을 함께 올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그때 더 효과적으로 다른 내용을 전할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인문학의 제3지대인 대한민국의 소장학자들이 의기투합해 세계지식계를 겨냥해 지구학 또 는 지구인문학이라는 나름의‘글로벌 지식 디자인’을 그려보고 또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충 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미 관련 연구가 10여 년 이상 축적 된 데다 전 세계의 많은 대학에서 이미 <global studies>를 학과로 운영하고 있는 상태라는 점을 간 과한 채 외길을 고집하는 것은 소기의 성과를 올리는 데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global studie s>를 굳이‘지구학’ 또는‘지구적 연구(global researches)’라 할 양이면, 제1세계에서의 기존의 연구와 변별점이 무엇인지를 지금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벼리는 작업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안목 은 거시적으로 갖되, 주제는 미시적으로 잡아 연구하는 것이 한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 다. 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마치 과거의 유럽이 그랬고, 현재의 미국이 그러하듯(<그림1> 참조), 제3세계의 연구자가‘새롭다’고 주창한 지구학을 과연 제1세계의 학자들이 거들떠보기나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 제3세계적 관점에서의 방법론 모색의 필요성 앞서 우리는 제3세계에서 지구학을 연구하려면 지역-로컬의 기반학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언급했 다. 같은 논리로 제3세계에서는 제1세계와 비교되는 제3세계의 관점을 방법론적으로 분명히 제시 할 필요가 있다. ) 돌려 말해 제3세계에서 발흥된 지구학은 제1세계의 세계지배학에 대한 정확한 분석-비판-극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제3세계가 요구하는 지구학은 제1세계에서처럼“신의 관점을 가진 지식(God’s eye-view knowle dge)”을 재생산하는 것이 목표일 수 없지 않은가.31) 부언컨대, 모든“관점을 초월하는(the point-z ero perspective)” 방식에서 ) 모든 관점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지구학에 접근해야 한다. 지구촌의 현실을 탑-다운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텀-업 방식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지구학의 기본적 출발 점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바텀-업 방식으로 세계지배학과 변별되는 지역-로컬 기반학을 독립적 관점으로 구성했다면, 2단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세계지배학 내에 결여돼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연구주제들에 대해 새롭게 물음을 제기하고 이에 부합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2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제1세계 내에 결여된 제3세계의 지식/철학을 맞세워 변증법적으로 이 양자를 융합시키는 작업이 관건이 될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부정의 부정’의 과정을 통해‘제3의 지식’을 탄생시키는 것이 가능해야만 비로소 제3세계에서 주창한‘지구학’은 새로운 이론/학문으로 그 가치를 범지구 적 차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서구의 기독교성/ 개인주의/ 성경 기반의 서구지배학을 동양의 유 불선 사상의 종합이론, 집단주의, 유불선의 다양한 경전들을 새롭게 융합해‘글로벌 공공선’에 기 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철학을 제안하는 것도 하나의 연구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2단계에서는 제1세계와의 지적 대결이 필수조건이다. 이를 피한다면, 진정한“지구적 비판의식(planetary critical consciousness)”33)이 발현된 지구학 연구라 할 수 없다. 제1세계와의 지적 대결이 불가피한 것은‘모든 관점을 배려하는 방식의 지구학’의 구축은 기본적으로 제3세계 가 중심이 된 탈식민적 인식론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34) 

탈식민적 인식론은 앞서 언급한 바 있듯,‘같은 무대(세계지식계) 위에서 새로운 주장을 펴는’ 

데 있어 단계적으로 요구되는‘지적 전략’이다. 정치적 투쟁을 낭만적으로 생각해서 안 되는 것 처럼, 지구학을 제1세계의 관객이 없는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욱이 최근 들어 제1세계나 제3세계나 할 것 없이 기존의 사상들에‘새로운(new)’이라는 상표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다 (neo-liberalism, neo-Marxism, neo-Christianism, neo-Islamism, neo-Slavism, neo-Afric anism, neo-Judaism, neo-Eurocentrism, neo-Confucianism, neo-Hinduism 등35)). 따라서 지구학은 단

 

33) W. Mignolo,“DELINKING: The rhetoric of modernity, the logic of coloniality and the grammar of de-coloniality”, Cultural Studies, Vol. 21, No. 2~3, 2007, p. 500.

34) 본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제3세계’라는 표현에 대해 혹자는 불유쾌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대한 민국이 어찌 제3세계 수준이냐?”는 반문도 예상된다. 하지만 필자는 감히 대한민국 국민의‘국학(한국

학)’에 대한 관심은 아프리카나 중남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연구 자체를 꺼리는 경향도 없지 않고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고, 국제적 수준의 담론 생산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지구학’을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서 필자가 이렇게‘제3세계가 중심이 된 탈식민적 인식론’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i) 이들 제3세계의 연구자 네트워크와 연대해 한국 학, 한국철학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것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 며, ii) 무엇보다도 탈식민적 인식론에서는 제1세계(구미)를 겨냥해 엄연히 구미와‘다른 세계들(worlds)’ 이 존재하고, 따라서 구미에서 추구하는 지식과는‘다른 지식들(knowledges otherwise)’이 존재한다는 사 실을 끝없이 전 세계 지식계에게 환기시키며 나름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들과 연대해 한국학, 한국철학의‘다름’, 즉 특수성, 재지성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면 최소한 제1세계의 거부감 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iii) 게다가 아래에서 두셀의‘초-근대성’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야기하겠지만, 탈식민적 인식론은 모든 지역-로컬의 지식/철학의 비위계적(non-hierarchical), 자기-조직적(self-organic)인 ‘헤테라키(heterarchy, 지식체계 내의 이질적 요소들 간의 관계의 다양성 존중)’를 지향한다. 부언컨대 제3세계주의자들이 꿈꾸는 지식/철학은 동일성, 동질성의 위계(hierarchy)에 근간한 제1세계의 지식/철학 체계와 달리 차이와 바로 이 다양성을 실천(practices of difference, diversity)하면서“더 정의롭고 지속가 능한 세계(worlds), 유럽중심적 근대성〔식민성〕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원리를 통해 정의되는 세계

(worlds)”이다 - A. Escobar,“Beyond the Third World: Imperial Globality, Global Coloniality and Anti-Globalisation Social Movements”, Third World Quarterly, Vol. 25, No. 1, 2004, pp. 220~222 참조.  본고

와 관련해 특히 중요한 것은 탈식민적 인식론은 모든 지역-로컬 지식/철학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재건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는 점이며,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점점 미시화되고 있는‘제국적 세계성(imperial globality)’을 비판한다는 점이다. 

35) W. Mignolo(2007), op. cit., p. 500. 이 자리에서 우리는 미뇰로가 왜 자신의 논문의 부제에‘근대성의 수지‘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과거로, 국가·지역중심주의로 회귀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구 분되어야 한다. 지구학은 학문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다시 세우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며, 모든 지역-로컬을 배려하고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제1세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36) 미뇰로가 탈식민적 인식론을 위해서는‘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제1세계의 문법을 따르는 것으로 지구학은 세워질 수 없다. 지구학의 구축을 위해‘제3세계가 중심이 된 탈식민적 인식론’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며, 미뇰 로가 그의‘탈식민적 인식론’을‘지구적 비판의식’과 함께 언급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부언컨대, 지구촌 전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철학에 대한 기존 논의를 다르게(새롭게) 

인식하려면 이를 위한 논리와 문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조성환이 새롭게 밝혀낸 동학 에서의‘자아의 지구성’이나 천도교에서의‘우주적 자아(세계적 자아, 무궁아, 천지아, 한울아) 논 의도, 제1세계에서의 데카르트-훗설 중심의 자아나 주체의 논의와 좀 더 적극적인 대결을 벌였으면 하 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37) 

3단계에서는 이미 탈식민적 연구자들(decolonialist s), 제3세계주의자들(thirdworldists)에 의해‘지방화된 유럽’과‘지방화된 미국’을 포함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최근 새롭게‘정상 지식(n ormal knowledge)’으로 계발·소개되어 전 세계의 지식계에서 널리 수용하고 있는 제3세계의 지식과 의 2차적 결합을 시도해야 한다. 지식/철학의 지역 <그림2>: 지역세계화로서 지구학/철학의 재세계화 개념도 세계화를 목표로 한 이 새로운 밑그림은 <그림2>에서 보듯, 구미(Euro-American)를 포함해 지구촌 의 전 대륙을 포괄하는 지식/철학의‘재-세계화(re-worlding)’가 목표다.38) 

이런 점에서 지구학은 구미 중심의 세계지배학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며 포용적인 철학이라는 점 을 잊어선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윤리적이며 인륜적인, 평등적이며 분배적인, 미시적이고 지역로컬 배려적인 철학이 우리가 제3세계적 관점에서 구상하고자 하는 지구학의 기본적 설계다. 이상의 논의를 다시 한번 더 요약하면, 제1단계에서는 지역-로컬의 고유 지식/철학을 기반학으로 사학’과‘식민성의 논리’에 대응해‘탈식민성의 문법’을 강조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36) A. Escobar, op. cit., p. 219:“제3세계의 이론화는 〔제1세계에 대한, 특히 유럽중심주의〕 비판적 이론이 새로운 지리문화적·인식론적 위치에 포함되고 통합된다는 점에서 제1세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37) 자세한 설명은 조성환(2020b), op. cit., pp. 90-96 참조. 이런 점에서 두셀의“Anti-Cartesian Meditations: 

On the Origin of the Philosophical Anti-Discourse of Modernity”, JCRT, Vol. 13, No. 1, 2014, pp. 11~53 참 조.

38)‘재세계화(re-worlding)’ 개념에 대해서는 Chih-yu Shih and Yih-Jye Hwang,“Re-worlding the‘West’ in post-Western IR: the reception of Sun Zi’s the Art of War in the Anglosphere”,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Asia-Pacific, Vol. 18, 2018, pp. 421~448 참조.

구성(constructioin)하고, 제2단계에서는 다른 지역-로컬 지식들과 융합이 가능한 영역 간의 상호구 성(co-construction)을 시도하며, 마지막 제3단계에서는 제2단계에서 새롭게 연구된 지식들이 지구 촌 차원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제3의 지식으로 재구성(reconstruction)해 내야 한다. 이렇게 재구성 된 지식/철학이라야 비로소 제3세계가 제1세계의 주변부가 아닌 제1세계와 동등한·당당한 주체가 된‘지구학’이 탄생할 수 있다. 

지구학의 3단계적 구성(구성 → 상호구성 → 재구성)에 동의한다면, 지구학을 꿈꾸는 우리 모두 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가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그 명칭이‘지구적 영성학’이건, ‘지구적 윤리학’이건,‘지구적 평화학’이건,‘지구적 개벽학’이건, 목표는 제3단계인‘지식/철 학의 재구성’에 이르는 데 있으며, 그 출발은 1단계인‘지역-로컬의 고유 지식/철학의 구성’ 여 부에 달려 있다. 지구학의 <구성 → 상호구성 → 재구성>에 대한 고민 없이 제3세계에서 단지‘지 구학’이라 목청을 높인다고 제1세계의 지식계가 이에 대해 반응을 하거나 자극을 받을 리는 없 다. 보편주의의 가면을 쓴 제1세계의 패권적 지식/철학의 식민성은 식민주의가 끝났다고 종식된 것 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39)

3. 로컬과 글로벌, 서구와 비서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E. 두셀의 해법 데리다의‘철학의 적지(適地)’,‘철학의 영지(領地)’ 운운이나 하버마스의‘미완의 근대성’이나 할 것 없이 서부 유럽 밖에서의 서부 유럽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을 수용할 염사(念思)가 전혀 없다는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즉 제3세계에서의‘지구학’ 주창은 명민하면서도 꾀바른 전술이 필요하며, 단독으로‘지구학’을 창안해 전 세계의 지식계에 오랜 시일을 두고 알릴 것인지 아니면 CSG(Center for Global Studies on Culture and Society (CGS) 나 AAGS(Asia Association for Global Studies) 등과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40) 좀 더 빠른 시일 안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글로벌 식민성은 갈수록 진화해가면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기에 선택은 빠를수록 좋을 것 같다. 

감히 필자는 이 자리에서 국제적 연대가 상책이라 제안하며, 준비 중인 지구학의 인식론적 구성 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서구 유럽으로부터의“‘철학’의 해방”을 통해 탈식민 철학을 완성한 E. 두셀(E. Dussel, 1934~ )의‘초-근대성(trans-modernity)’ 개념을 소개해볼까 한다. 두셀은  

39) 식민주의(colonialism)는 분명 끝났다. 하지만 J. R. 리안도 강조하듯, 과거에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와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 간의 관계에서 식민적(지배/종속의) 관계(colonial relation)는 오늘날에도‘재현’,‘재 생산’,‘변형’의 형태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식민주의‘이후’를 의미하는‘포스트식민주의

(postcolonialism)’라는 용어의 등장과 사용이 무색할 정도로‘신식민적(neocolonial), 신제국적(neoimperial) 통치 형태로 변신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식민지배 형태를 과거의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심지어 는“다중식민주의, 준식민주의, 내부적 식민주의(multiple colonialisms, quasi-colonialism, internal colonialism)”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상태며, 이는“미국에 의해 가장 극적으로 대표되는”“제국주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다 - J. R. Ryan,“Postcolonial Geographies”, A Companion to Cultural Geography, Blackwell Publishing Ltd, 2004, p. 472. 

40) 본 협회(https://www.asianstudies.org/)는 2005년 결성되었으며, 연 2회 정기간행물, Asia Journal of Global Studies를 출간하고 있음.

자신의‘초-근대성’ 개념을 구미 학계에 근대성과 탈근대성을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했으며,“세계현실(world reality)”, 즉“지구 전체(the whole earth)”를 그의 해방 철학의 적 지로 삼고 있다. ) 

두셀에게 철학은“지구 위의 비참한 사람들에게도 또한 현실”인 이 세계현실을 구제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의 탈식민 해방철학 관련 글들은 스페인어권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영어권에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필자가 굳이 두셀의 초근대성 개념을 소개하는 이유는 초-근대성 개념이 갖는 로컬/글로벌, 서구/비서구를 아우르는 탁월 한 방법론적 해법 때문이다. 

3-1) 서부 유럽은 주지하듯 지난 5세기 동안 서부 유럽 밖에서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기독교-계 몽(이성)-과학(기술)을 앞장세워 자신들의 폭력 행사를 정당화했다. 자세히 논할 공간은 없지만, 19 세기 중후반 서학(西學, 천주교)도 유럽의 식민지 확장 과정에 조선에 들어와 조선의 전통사상을 뿌리 체 뒤흔들며, 조선에‘천학(天學, 天主學)’으로 정착했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정신을 지배 하고 있었던 유학을 서학이 일정 부분 대체한 것이다. 그런데 두셀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기초교육시스템의 정착 및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역사도, 철 학도, 세계사도 제1세계의 세계지배학의 관점이 지배적인 현실이라는 점에 대해 개탄한다. 그에게 ‘해방’은 모든 구미적 관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두셀의‘해방’은 미뇰로의 용어로 바꾸어 보완하면 구미와의‘연계의 고리 자체를 끊는 것’로 부터 시작된다. ) 두셀의 3대 해방서(신학의 해방, 철학의 해방, 윤리학의 해방)는 이렇게 구 미와 연결고리를 끊고‘독립적인 라틴아메리카학’을 탈식민적으로 구축하는 데 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제3세계는 두셀이 자신이 소속된 지역-로컬이기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라틴아메리카와 거 의 같은 상황이고, 거의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각 국가가 일반 교육을 실시한 기간이 70-80에서 100년 가까이 되었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 전 세계 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게 되자, 이 과정에서 세계지배학에 의 해 무엇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왜곡되고 불공평하게 기술되었는지를 자각하는 기회가 지역-로컬 민에게 자각의 기회가 된다. 자신이 소속한 문화, 국가에 대한 위상을 글로벌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안목, 즉 글로벌 비전에 따라 특히 제3세계에서는 지역-로컬의 식민적 현실에 대한 각성이 일게 되고, 그결과로 이 자리에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세계지배학에 대한 비판의 물결이 고개를 들게 된다.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도 이런 배경과 문맥에서 탄생한‘반세계지배학’의 전형이 라 할 수 있다. 앞서 <그림2>을 통해 간략히 필자가 구상하고 있는 지구학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 했듯, 유럽이 지방화되었다는 것은“유럽은 유럽이다”라는 명제로 요약되며 ), 이는 유럽이 세계 철학의 적지가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미국(물론 러시아, 호주를 포함해)과 함께 지식/철학의 미래, 즉 모든 지역-로컬이 상호적 구성을 통해 (새로운) 세계철학의 재구성에 동참해 야 한다는 말과 같다. 역설적으로 이야기해, 서부 유럽 철학만이 보편주의, 민주주의, 휴머니즘, 평 화의 상징이라는 편견, 착각일랑 이제 접으라는 것이다.

3-2) 이렇게 전 세계의 지식/철학을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로 통제하던 유럽이 지방화됨으로써 이 제 각 지역-로컬은 자신의 고유 지식/철학을 자긍심을 살려 기반학(토대학, 지역-로컬 고유의 인문 학)으로 창설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서부 유럽 철학의 특수성과 유일신론적 편견을 보완할 수 있 는 대안이 모색된다.‘새로운 지구철학’을 위한 아젠다에 지역-로컬의 기반학을 포함시키려면 무

엇보다도 신개념, 신방법론(‘de-coloniality’,‘divesality’,‘pluriversality’나‘東學’과 같은)으로 

기반학을 세워 세계학계에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부 유럽 철학을 겨냥해“소리만 지르고 규 탄만 할 게 아니고 새로운 사유 질서를 만들겠다면 어떤 질서를 잡을 건지 구상을 해야 한다”44) 는 뜻이다. 

새로운 사유 질서(New order of philosophy)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개념에 담아내야 한다. 새로운 개념은 새로운 세계를 담아 타자에게 전달하는데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은 100여 개국 이상의 철학자들이 참여하는 세계철학자대회(World Congress of Philosophy) 등에서 발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참을 독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45) 철학의 중심 이동이나 새로운 중 심에 대한 고민을 세3세계의 학자들이 공동의 노력을 통해 준비할 때가 된 것이다.

3-3) <그림2>에서와 같이 각 대륙이 고유한 기반학으로 제안한 지식/철학이‘새로운 세계철학’ 으로 재구성될 수 있기 위해서는, 앞서‘제3세계적 관점에서의 방법론 모색’을 논하며 강조한 바 있듯, <구성 → 상호구성 → 재구성>이라는 단계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아래에서 두셀의 초-근대성 개념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그림3>은 두셀이 자신의 초-근대성(trans-modernity) 개념을 구미 중심의 세계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46) 이 그림의 핵심은‘전체성(식민지배의 주범인 구미의 중심성, 근대성)’과‘외재성(라틴아메리카를 대표로 하는 비구미, 탈근대성)’ 개념의 이해가 관건이다. <그림3>에서 근대성(A)은 본 연구와 연관해 구미가 과거에(또는 현재에도 여전히) 전 세계를 상대 로 전개·전파했고, 오늘날에도  전개·전파하고 있는 지식/철학의 영역이다. 그런데 <그림3>을 자 세히 들여다보면, A 밖에 B, C, E, F가 있고, D는 A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D는 결국 지역-로컬 

 

84집, 2020, 109-144쪽 참조.

44) 백낙청,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박윤철 엮음,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16, 318쪽 – 이는 백낙청 교수가 2016년 데이비드 하비와 창비에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하비의 글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읽은 것이라 밝힌 내용을 간접 인용한 것임. 

45) 대한민국은 2008년 <동서문명의 향연>이란 주제로 아시아 최초로 제22차 서울세계철학자대회를 개최했 으며, 제1차는 프랑스 파리 대회였다. 

46) 그림에 대한 설명은 E. Dussel,“World-system and“trans”-Modernity”, Nepantia(View from South), Vol. 3, No. 2, 2002, pp. 234~236 참조. 두셀은 자신의 이 논문이 1960년대 이후부터 고민해온 것들이 집적된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고유의 지식/철학이면서 지속적으로 A와 상호 교류가 가능한, 최소한 A 와 교류경험이나 접점이 있는 지식/ 철학이다. D는 A와 최소한 상호성이 확보된 지식/철학인 셈이다. 반면 B 는 A에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는 비구미적 지식/철학이다. 이를 타운레이의 표현으로 바꾸면,‘새로 운 세계철학’을 지향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A가 어쩔 수 없이 수 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런데 D, B의 작용이 점점 확대되면 <그림3>: E. 두셀의‘외재성’,‘초-근대성’ 개념도 언젠가 A의 테두리 선이 해체될 것이다. 구미에서 오랫동안‘그 밖의 세계(the Rest, the Third wor ld)’의 것으로 명명한 채 방치한 지역-로컬들의 지식/철학이 A 안으로 들어가 A를 구성하는 결정 적 요소가 되고 A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결국 A는 그동안 자신을 구성하기 위해 배타적으로 경계를 강화하는 데만 공을 들였던 모든 것들이 덧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바로 이 D와 B의 역량으로 결국 A의 경계선, 즉 세계지배라는 폭력의 경계선이 와해되고 나면, 두셀이 꿈꾸는, 기존의 지배하고 종속하는 A와 B, C, D, E, F와의 관계, 즉 한쪽에서는 지식/철학의 표준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를 추종하기만 해야 하는 관계가 해체되어 모든 지 역-로컬의 지식/철학이 중심이 되는 초-근대성이 실현된다. 

두셀의“초-근대성 프로젝트”는,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서구가 그것들을 채택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것들을‘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으로 경멸하기까지 했던 지식/철학의 외재성에 해당 하는데, 바로 이 외재성이 보유하고 있던 잠재성이 전체성에 변화를 가해 21세기에 이르러 중요한 의미의 창조적 기능을 갖게 된 것”이다.  ) 두셀의 초-근대성 프로젝트는“지구촌의 다수 문화들(p lanet’s multiple cultures)”이 동참해 세계사(world history), 보편사(universal history)의 영원한 중심 이 서부 유럽에 있다는“구미적 근대성을 넘어서는(beyond Western modernity)” 데 있다. ) 두셀

에 따르면, 근대성은“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부터 5세기 동안이나 유지된 세계-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데, 그에게 이는“실패한 제국주의적 세계(관)”일 뿐이다. 따라서“근대성에 의해 제거 된 문화들”,“근대성의 밖(‘outside’ of modernity)”에서 여전히“살아 꿈틀대고, 저항하며, 성 장한 다른 문화들, 즉 외재성”이“21세기를 위한 새로운 문명”의 개발에 앞장설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49) 

두셀의 초-근대성 프로젝트는 구미의 전체성의 외재성으로 배치되는 데 그쳤던 것들이 전체성의 

폭력을 단지 비판(부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슬기롭게 극복(종합)해 21세기적 전망을 제3세계 적 관점에서 제시한다는 데 있다. 두셀의 프로젝트는 그의 학문적 자긍심과 비전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언급대로“유럽이나 미국 밖에는 수천의 문화들이 존재한다.” ) 이 수천의 문화 들이 존재하기에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문화와 다른 문화들에 대 한 존경과 이질적 정체성에 대한 배려는 두셀이 그의 해방의 철학에서 강조한‘세계현실’에 대 한 반영이자‘지구 전체’에 대한 고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대다수의 인류는 그들의 일상에서, 계몽된 지평에서 각기 문화들을 유지하고, 세계성(globality)의 요소들을 쇄신하고 포함할 수 있도록 재조직하며, 창조적으로 발전시킨다.” ) 

두셀의 이 주장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두셀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A를 향

한 B, C, D, E, F의 활동력을 높이는 데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감히 말하지만, 보편적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역사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문화, 보편적 역사에 대한 환원적 요구는 각 지역-로컬이 역사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창조적 능력에 대한 철저한 부정에 기초한다. 모든 지역-로컬(유럽과 미국도 마찬가지지만)은 각기 독특한 문화와 특정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 되살리고 심화시켜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상 식에 기초한 문화관, 역사관, 세계관, 지구관이다. 

지역-로컬의 고유 지식/철학을 기반학으로 구성함에 있어 우리가 굳이 두셀의 초-근대성 개념을 소개한 것은 그의 철학적 주장과 방법론이 본 연구의 화두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제3세계가 중심이 된 지구학 구상은 결국 두셀과 같은 방식으로 중심/주변, 동양(동학)/서양(서학)으 로 지식의 경계를 분할하는 전통의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로컬의 지식이 중심이 되는 방식으 로 재구성해야 한다. 모든 지역-로컬이 중심이 된 대안적 세계화, 즉‘지역세계화(localobalizatio

n)’에 대한 자각이 시급한 시점이란 뜻이다. ) 그렇지 않으면 이미 중심을 전유한 <global>이 더욱 강화되고 비대해져 결과적으로 <grobal>이 되는 불행을 자초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 

III. 맺음말: 제3세계 지식인들의 연대와‘장소감’이 필요한 이유

오늘날 세계화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국가도 거부할 수 없는“후퇴할 수 없는 삶의 사실”(A. Gi ddens)이다.54)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구학에 대한 관심은 역으로 세계화의 강화로 인해 세계 화의 피해 지역-로컬인 제3세계권에서‘불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여전히 경계 심을 늦추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제1세계에서는 세계지배학의 꿈을 과거에 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포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는 세계지배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3세계의 연대가 필요하고, 국제적 연대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 리한다면 지역-로컬의‘불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요인즉 단지 세계화에 맞서 지구학이라는 닻을 올린 것만으로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세계화, 세

계지배학의 피해, 불행이 사라질 것이라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점이다. W. 미뇰로는 우리에게“식민적 권력 매트릭스는 밖(outside)이 없기에 밖에서 관찰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고 경고한다.55) 즉“우리〔모두는, 구미인이나 비구미인이나 할 것 없이〕는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56) 미뇰로는 이런 이유 때문에 구미와의‘연결고리를 끊지 않고서 는’ 탈식민적 사유가 불가능하다고 역설할 정도로 식민성은 자체적으로 계속해 진화를 거듭하며 지배의 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E. 두셀이“탈근대성도 유럽중심주의만은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미뇰로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57) 미뇰로의 목표도 결국 두셀과 마찬가지로 구미를 감싸 안고 포용하는 것 이지만, 바로 이 목표를 위해 현 단계에서는“인식적 불복종, 독립적 사고, 탈식민적 자유”가 불 가피하다는 것이며, 그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구미가 비구미에 제안한〕 신세계는 세계 속에 존재하며 알고, 감각하고, 믿고, 살아가는 방법들과 공존하는 것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부인하며, 파괴하고, 악마화했다.”58) 

미뇰로가 이렇게까지 유럽중심주의, 근대성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운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이는 세계화, 세계지배학의 위세에 대항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일종의 절망감의 토로가 아닐까? 그에게 세계화, 세계지배학은“제국주의적·식민적 정치학”에 다름 아니 다. 지식/철학에도 그가‘제국주의적/식민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 이 유가 여기에 있다.59) 이는 제3세계에서 일고 있는 비판적·대안적 세계화 연구가 지역-로컬 지식

 

참조.

54) 재인용: https://en.wikipedia.org/wiki/Global_studies.

55) W. Mignolo,“Interview”, E-International Relations, Jan. 21, 2017, p. 5.

56) Ibid.

57) E. Dussel(2002), op. cit., p. 233. 58) W. Mignolo(2017), op. cit., p. 4.

의  재건 운동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말과 같다. ) 제1세계의 세계지배학 에 맞서 제3세계의 지구학이 지식/철학적‘담론의 복수화와 다원화’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구미로부터의 지식/철학의 독립은 어쩌면 정치적·경제적 독립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 정치나 경제적 저항에 비해 지식/철학의 저항이 약한 것은 물리적 폭력이 정신적 폭력보다 더 직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후자보다 전자에 대해 즉각적 반응을 보인 결과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학에 대한‘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지구학은 인류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당면과제이기 때문이다. 

제3세계에서 외치는‘기존의 세계철학’을 극복한‘새로운 세계철학’, 지구철학에 대한 목소리 가 5대양 6대주를 관통하게 되면, 바텀-업의 방식으로 지식/철학의 재-세계화가 완성되면, <그림3> 에서처럼 비구미의 외재성이 구미의 전체성을 포용하고 감싸는 날이 오면, 타운레이가 제안한‘새 로운 세계철학’으로 중심 이동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면, 두셀의 해방철학은 분명 멀지 않은 장 래에‘지구 전체’에 감로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제3세계권의 실천적 철학자들 덕분에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고 배제된 다수의 목소리를 제1세계 권에서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 음에도,“이성의 지리학이 〔구미에서 비구미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 우리가 긴장의 끈을 놓 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제3세계권 학자들이 중심이 된 신철학 운동이 아직은 엘리트들의 운동 차 원에서 제기되는 수준이고,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regionalization, localization)를 둘러싼 힘 겨루기는 상당 기간 더 지속될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세(戰勢)는 세계화의 힘이 훨 씬 세기 때문에 지역-로컬이 중심 잡기를 마무리짓기도 전에 <grobal>이 COVID-19처럼 전 세계에 먹구름을 들씌울 확률이 높기에 제3세계의 지식인들이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 

제3세계가 중심이 된 지구학의 구성은 제3세계의‘권리 회복’의 문제이다. 제3세계는‘장소의 

현상학’을 통해 구성해야 한다. 실존의 장소는‘저기 있는 추상적 세계(world-there)’가 아니라 ‘여기 내 앞에 있는(I-here) 구체적 장소’다. ) 바로 이 구체적 장소, 즉 지역-로컬은 인간의 욕 망, 믿음, 사물들, 사람들이 포함된‘특수하고 특별한’ 장소다. 인간의 모든 현상학적 경험은 이렇 게 구체적 장소에서 실행된다. 구체적 장소에서, 그곳이 어디이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데, 이는 곧 장소, 장소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말과 같다. 캐이시가 자아와 장소를 신체로 성찰한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캐이시에 따르면 우리는 결국“로컬 장소에서 체화된 몸”으로 세계를 경험하며, 소위‘철학’

이란 걸 실천한다. 그런즉“지리적 동물(homo geographicus)” )인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염려를 로컬화하는” ) 것은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사항일 수밖에 없다. 이를 D. 모리스의 표현으로 바꾸 면, 인간은“장소에 뿌리를 둔 존재이기에 장소를 위해 염려를 로컬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렇게 자신의 실존적 염려를 로컬화한‘장소-내-존재’에게 장소는 무엇보다도‘장소감(sense of pl ace, 장소 의식)’을 제공한다.‘장소-내-존재’가 장소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장소가 더 이상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서적·실존적 공간, 사회적·문화적 공간으로 장소의 성격이 존재에게 내밀화·내면화되고 복합적 의미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화론자나 신자유주의자들이 기획하는 글로벌-가상 공간은, 캐이시에 따르면, 전 지구촌을 하나로 병합하려는 자들의“획책된 일반론”에 불과하다. 이는“〔지역-로컬의〕 생활세계가 확장된 순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근대성의 신화”를 연장하려는 속셈에 다름 아니다. ) 글로벌-가 상 공간의 제산자(制産者)인 제1세계권에서는 이렇게 모든 지역-로컬을 자신들이 기획하고 있는 글 로벌 공간의 지배하에 두려고 한다.‘내’가 사고하고 노동하고 상상하는 곳이‘구체적 장소’라 는 인식 전환이 수반되지 않으면‘장소감의 결여’로 인해 종국에 우리 모두는‘장소 상실’을 경 험하게 될 것이다. )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제1세계의 공간병합론자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 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아야 하는 종속적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취미도 욕망도 가치관도 세계관도 오직 그들이 제공하는 상품들이 결정할 것이다. 자기결정권이 없는 제3세계국가들은 제1 세계로부터 밀려드는 상품과 자본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상품과 자본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제1세계의 자본력·경제력은“공간과 장소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결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 우리가 어떻게 공간을 경험하는지도 결정한다.” ) D. 매시가“필연적 반동”으로서“지역-로컬의 장소감(sense of local place)과 그 특수성” )에 대한 인식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장소-정체성은 문화적 정체성, 집단-공동체 의 정체성과 구분되지 않는다. 지구학, 지구인문학이 구체적 장소에 천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제1세계의 세계지배학과 독립적이면서 포용적인 지구학, 지구인문학을 구성해낼 수 있다.“내가 생각하는 곳에 내가 존재한다” )는 사실을 망각할 때 기존의 관념론적 철학이 그랬 고, 현대의 데이터 과학이 그러하듯,‘인간’이 잊혀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그렇게 장소에 서 사람들(people)이 잊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각기 자신이 속한 장소를 지켜내 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장소를 철학화하는 우리의 과제, 철학을 지역-로컬화는 책무는 장 소-내-존재의 역할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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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재난학】


원불교사상연구원 주제 지구화시대의 인문학; 경계를 넘는 지구학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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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지구화시대의 인문학; 경계를 넘는 지구학모색
시간: 2021년 3월 19일 08:00 오전
원불교사상연구원 유튜브 채널 링크:
유튜브 댓글로 의견 및 질문 참여가 가능합니다.
-학술대회 발표 요지-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원장 박맹수 총장)이 오는 3월 19일에 “지구화시대의 인문학 : 경계를 넘는 지구학의 모색”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국내에는 아직 낯선 개념인 ‘지구학’은 “지구자연과학, 지구사회과학, 지구인문과학”을 통칭하는 새로운 학문 범주로, 20세기 후반에 서양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Global Studies를 확장시킨 개념이다.
<2020년도 한국연구재단 학술대회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으로 개최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기조강연(박치완)을 포함하여 지구형이상학(이원진), 지구정치학(김석근), 지구평화학(원영상), 지구인류학(차은정), 지구종교학(조규훈), 지구재난학(가타오카 류), 지구예술학(오쿠와키 다카히로), 지구수양학(이주연), 지구교육학(이우진), 지구윤리학(허남진), 지구유학(김봉곤), 지구기학(야규 마코토), 지구살림학(조성환) 등 총 14개의 지구학 관련 논문들이 발표될 예정이다. 국내에서 지구학을 주제로 이 정도로 방대한 규모로 학술대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불교사상연구원은 2016년에 “근대문명 수용과정에 나타난 한국종교의 ‘공공성’ 재구축 연구”를 주제로 6년 동안 대학중점연구소로 선정되었는데 이번 학술대회는 그 다음 단계의 연구를 준비하기 위한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원불교사상연구원은 지구인문학 학술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2020년 4월부터 1년 동안 매주 3시간씩 ‘지구인문학 스터디’를 개최하고 울리히 벡의 <지구화의 길>을 비롯하여 조지형 등의 <지구사의 도전>, 토마스 베리의 <지구의 꿈>,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 클라이브 해밀턴의 <인류세>, 제인 베넷의 <신유물론>, 사이토 코헤이의 <생태사회주의>, 김지하의 <생명학>, 혜강 최한기의 <지구전요>와 <기학(氣學)> 등 지구인문학 관련 서적들을 읽고 토론하였다.
이번 학술대회가 종래의 인간과 국가 중심의 학문에서 벗어나서 지구와 만물과도 공생할 수 있는 자생적 인문학을 탄생시키는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리라 기대된다.



The Karma as a film is unredeemable. And Paramita could do better

The Karma as a film is unredeemable. And Paramita could do better

The Karma as a film is unredeemable. And Paramita could do better

The Post’s film critic writes an open letter to actress Paramita RL Rana after watching her latest film ‘The Karma’. The Karma as a film is unredeemable. And Paramita could do better
A scene from the movie The Karma. Screengrab via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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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himanyu Dixit
Published at : February 8, 2020
Updated at : February 8, 2020 21:05

Indian Buddhist Attitudes toward Outcastes Rhetoric around caṇḍālas

silk_2020b_candalas.pdf

Indian Buddhist Attitudes toward Outcastes Rhetoric around caṇḍālas 
Jonathan A. Silk Leiden University, Leiden, The Netherlands 
J.A.Silk@hum.leidenuniv.nl 

Indo-Iranian Journal 63 (2020) 128–187 content in the following to understand all claims made about “the Buddha” to refer to the statements found in Indian Buddhist literature (of all periods), and in this respect, despite the wide chronological and doubtless also geographical range of their composition, we find there a largely consistent rejection of the validity (though not the social reality) of the caste system. The present study, being devoted to ideology and rhetoric, will therefore largely set aside questions about how and indeed even if such rhetoric was actualized in the daily life of Indian Buddhists or Indian Buddhist communities (a question concerning which, on the whole, we lack good e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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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Indian Buddhist literary sources contain both systematic and casual rejections of, broadly speaking, the caste system and caste discrimination. However, they also provide ample evidence for, possibly subconscious, discriminatory attitudes toward outcastes, prototypically caṇḍālas. The rhetoric found inIndian Buddhist literature regarding caṇḍālas is examined in this paper. Keywords caṇḍāla – caste – Buddhism – prejudice – ancient India – discrimination 1 General Issues Much attention has been devoted both from scholarly and other points of view to the proposition that the Buddha (and implicitlyIndian Buddhismtout court) propounded an anti-caste ideology.1 Since I believe that we know precisely nothing about the Buddha as an individual, and moreover since serious questions may be raised about the earliest situation of Buddhism in India,2 I am 1 There is no point to offer a bibliography here, but see for instance Chalmers 1894; Law 1937: 11–26; Barua 1959; Fujita 1953; Ellis 2019. The topic of caṇḍālas in Indian Buddhism has also not been ignored; see for instance esp. Miyasaka 1991, 1992, 1993, 1994, 1995a; Ujike 1985. 2 I refer particularly to the questions raised by Johannes Bronkhorst (for a brief summary see Bronkhorst Forthcoming) about the unlikelihood of actual contact at the time of the Buddha between brahmanical communities and the region where the Buddha is held to have lived. Bronkhorst argues that there was, at the time of the Buddha, a cultural divide between the indian buddhist attitudes toward outcastes 129 

Where we do have ample evidence is in regard to textual expressions, through which, I maintain, we can detect reflections of the attitudes of their authors. These then, rather than any actual socially embedded situation, form the central focus of this study. However, in the conclusion I will dare to offer some speculations about what relation there might be between attitudes and a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