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나 자신 아는 게 세상 이해하는 길
중앙선데이
입력 2013.07.28
몽테스키외는 키가 작아 자신의 영지를 돌아볼 때 말에서 내려오는 것을 꺼렸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정해진 답이 없는(open-ended)’ 질문이다. 철학·종교·사상·전통·관습은 이 질문에 다양한 답을 체계적으로 내놓는다.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질문도 답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프랑스 사상가 미셸 에켐 드 몽테뉴(1533~1592)가 제시하는 ‘답’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크세주)”이다.
몽테뉴는 어떤 인물인가. 전문가들이 최고의 영화로 손꼽는 ‘시민 케인’(1941)의 감독인 오슨 웰스(1915~1985)는 몽테뉴가 “역사상 최고의 작가”라고 평했다. 영국 문인 레너드 울프(1880~1969)는 몽테뉴를 ‘최초의 완벽한 근대인’이라고 주장했다.
예수 언급할 때마다 소크라테스 거론
마키아벨리가 종교와 정치를 분리했다면, 몽테뉴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종교와 윤리의 영역을 분리했다. 몽테뉴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에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켰다. 몽테뉴는 자신의 저작에서 예수를 언급할 때마다 소크라테스를 거론했다.
실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 속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 이미 담겨 있다. ‘진리에 대해 알아가는 삶을 사는 게 진정한 삶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확신은 소크라테스급의 인물과 5분만 이야기하면 판판이 깨질 수도 있는 착각이다. 세상의 오만 가지 지식과 지혜 중에서 무엇부터 알아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기에 나는 우선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게 몽테뉴의 생각이다.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나에 대해서만은 확실히 알자는 것이다.
『수상록』의 한글판(왼쪽)과 1588년 프랑스어판 표지.
몽테뉴의 『수상록(essais)』은 몽테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쓴 책이다. 몽테뉴는 『수상록』에 대해 “이 책은 세계에서 유일한 종류의 책이다”라며 “나 자신이 이 책의 주제다”라고 말했다.
『수상록』으로 번역됐지만 원제는 ‘시도들(trials, attempts)’이라는 뜻이다. 『수상록』은 나를 알기 위한 여러 시도의 결과물이다. 시도를 통해 몽테뉴는 나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게 곧 남을 이해하는 것이요, 세상을 이해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식이나 지혜는 이미 나 안에 다 있다는 것이다.
몽테뉴의 사상적 기반은 회의주의다.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에 걱정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극락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다.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사후세계 문제를 두고 지옥에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가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다. 제일 중요한 죽음 이후의 문제조차도 불확실하니, 인생에서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확실한 것은 없으니 ‘모든 판단을 유보하라’고 회의주의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몽테뉴나 회의주의자들이 외치는 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는 아니다. 인생을 마음대로 막 살자는 것도 아니다. 몽테뉴는 모럴리스트(모랄리스트·moralist)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모럴리스트는 ‘16세기부터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법을 탐구하여 이것을 수필이나 단편적인 글로 표현한 문필가’를 의미한다. 몽테뉴가 모럴리스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몽테뉴는 또한 에세이, 즉 수필의 원조이기도 하다. 시도라는 뜻의 에세·에세이(essai, essay)가 수필을 의미하게 된 것은 몽테뉴 때문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수필(隨筆)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수필의 시원이면서 동시에 수필의 완성을 제시한 작품이다. 『수상록』이 제시한 수필이라는 문학 양식은 영국으로 건너가 프랑스 못지않게 18세기에 개화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몽테뉴를 본받아 『수상록(Essays)』을 집필한 것이다.
“사는 게 내 일이요 내 재주다”
몽테스키외는 모든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수상록』은 공포, 경험, 고독, 관습, 상상력의 힘, 식인종, 수면, 우정, 자유, 절제, 토론하는 법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순서와 상관없이 관심 있는 주제가 눈에 띄면 곧바로 읽으면 된다.
『수상록』은 ‘고백록’이기도 하다. 몽테뉴는 솔직했다. 『수상록』에서 자신의 남근이 작다는 것, 기억력이 너무 나빠 어제 읽은 것조차 잊어버린다는 것도 고백했다. 서구의 근대적 ‘고백록’의 원조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는지 장 자크 루소는 몽테뉴의 『수상록』이 솔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3권으로 된 『수상록』은 몽테뉴가 47세였을 때인 1580년 1, 2권이 나왔다. 3권은 1588년에 나왔는데 몽테뉴는 죽기 전까지 『수상록』을 계속 수정했다. 2007년 프랑스어로 된 갈리마르판 『수상록』은 1975쪽(800페이지 해석·색인·주석 포함) 분량이며 1991년에 나온 펭귄판은 1283쪽이다.
몽테뉴는 법복 귀족(法服貴族·noblesse de robe)에 속했다. 돈으로 고위 관직에 오른 부르주아 출신 귀족 그룹이다. 법복 귀족은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몽테뉴는 프랑스 왕실과 가까운 사이였다. 앙리 3세, 앙리 4세와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 사이의 콩피당(confident)이었다. 보르도 고등법원 심사관(1557~70), 보르도 시장(1581~85)을 역임했다. 『수상록』은 1676~1854년 바티칸 금서 목록에 올랐으나 몽테뉴는 평생 온건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그는 집에서 미사 참례 도중에 사망했다.
혹자는 몽테뉴가 남긴 말들이 존 바틀릿(1820~1905)이 남긴 기념비적 경구 사전인 『정다운 인용구(Familiar Quotations)』의 반을 채우고도 남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음미해보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스릴 수 없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다스린다.”
“나는 키케로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전문가가 되겠다.”
“딱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게 없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사는 게 내 일이요 내 재주다.”
“우리는 가장 모르는 것일수록 가장 확고하게 믿는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2188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