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마음 공부에 관하여 -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초걈 트룽파 (지은이),이현주 (옮긴이)불광출판사2021-04-15
원제 : Cutting Though Spiritual Mat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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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14.37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296쪽, 약 19.7만자, 약 5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88974799168
책소개
마음 공부가 상품이 되는 시대이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사이비(가짜)는 있기 마련이어서, 가짜 영성 전문가와 수련 센터들이 도처에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에고(Ego)가 우리의 생각, 감정, 오감을 이용해 진정한 마음 공부의 길을 교묘하게 방해한다는 데 있다.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고 만족하거나, 스스로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돕는 수단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등, 에고는 너무나 간사해서 스스로를 속이며 잘못된 마음 수행의 길로 이끈다. 이 책은 에고가 만드는 함정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며 근본적인 마음 공부의 본질과 그 수행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모두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질문과 대답’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이들이 한 번은 가졌을 의심과 의문에 대한 답을 풀어준다.
목차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들어가며
영적 물질주의, 에고가 만들어낸 가짜 깨달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텅 빈 그릇이 되어라
나의 구루(Guru)는 ‘상황’이다
마음 공부를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들
깨달음의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에고이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기대로 가득 찬 수행의 어리석음
완전히 열리지 못한 마음 공부는 욕망의 윤회를 되풀이한다
본래 별것 없음을 알면 세상의 가짜들이 다 보인다
에고가 만들어지는 다섯 단계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벽을 받아들여야 한다
에고를 뛰어넘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애쓰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경지, 바라밀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하는 주문
제3의 자비, 무자비한 자비를 보라
에고를 변성시켜 마침내 열반과 하나 되다
초걈 트룽파에 대하여
접기
책속에서
P. 12 마음 수련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주 미묘한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그냥 순진하게 뛰어드는 어떤 게 아니에요. 일그러지고 뒤틀린 자기중심적 마음 공부로 빠지게 하는 곁길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몇 가지 수련 방법을 사용해 결국은 자기중심성을 키웠으면서도 스스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
P. 27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나’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철학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가르침과 하나가 되어 가르침 자체가 되기를 실제로 원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에고를 버리라고 하면 우리는 에고를 버리는 시늉을 합니다. 근사한 행동을 하고 적당한 몸짓은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조금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접기
P. 46 굴복과 열림의 몸짓은 굴복하는 대상과 연결되고 직접 통교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거칠고 조잡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우리의 본질에 대해 당황해하거나 난처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굴복하는 대상에게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굴복하는 행위에는 바깥의 힘에 대한 숭배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감을 받아 일하는 것, 그리하여 지식을 부어 담을 수 있는 텅 빈 그릇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접기
P. 57 나는 이곳 서양에서 구루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그냥 ‘영적 친구’라고 부르는 게 더 낫겠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가르침이란 두 마음의 평등한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고도로 진보된 존재와 비천하고 열등한 존재 사이의 주종 관계라기보다 평등한 상호 통교의 문제입니다.
P. 76 우리는 영성이란 매우 자극적이고 다채로운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이국적이고 색다른 종교 전통에서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보는 거지요. 또는 목소리의 톤을 바꾸고 식습관이나 다른 일반 행동거지를 바꾸는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 양태를 습관으로 만들려고 시도하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그것들은 우리의 천성이 되지 못합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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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초걈 트룽파 (Chogyam Trungpa)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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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지도자이자 예술가. 1940년 티베트에서 태어났으며, 서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불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동티베트 수르망 지역의 총독이었던 트룽파는 1959년, 중국 공산당을 피해 강제로 고국을 떠나야 했다. 300명의 티베트인들을 이끌고 떠났으나 열 달 만에 단 50명만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독한 고난과 두려움에 맞서야만 했던 때 트룽파는 여행 내내 강함과 용기에 기반을 둔 명상적 통찰에 의지했다.
그 뒤 인도의 영라마스쿨Young Lamas School에서 정신적인 지도자로 7년을 보낸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스코틀랜드에 삼예링 명상 센터를 설립했다. 1969년 교통사고로 큰 상처를 입은 뒤 그는 더욱 열린 마음과 용기를 갖게 되었으며, 법복을 벗고 일반인으로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이애나 피버스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서양인들에게 불교의 진리 ‘다르마dharma’를 전하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명상’으로 서양인들의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을 바로잡으려 했다. 시각 예술, 디자인, 시, 연극 등 서양의 문화 예술을 익혀 명상을 통한 ‘알아차림 수행’을 널리 알렸다. 불교 밖의 다른 종교에서도 지혜를 추구한 그는 종교를 초월한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미국 내 수백 개의 명상 센터와 서양 최초의 불교대학인 나로파 대학을 세웠으며, 불교와 명상에 대한 24권 이상의 책을 남겼다. 접기
최근작 : <마음 공부에 관하여>,<명상, 마음 그리고 심리학적 통찰>,<두려움을 넘어 미소 짓기까지> … 총 198종 (모두보기)
이현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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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그리스도의 계시들』 등이 있다.
최근작 :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 (양장)>,<부모 되기, 사람 되기> … 총 26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1970년 미국에서 2021년 대한민국으로
반세기를 넘어 전해진 마음 공부의 고전
1970년, 지난 100년간의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미국 땅에 동양의 낯선 스님 한 명이 찾아왔다. 티베트에서 온 초걈 트룽파(Ch?gyam Trungpa)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영적으로 매우 고양된 상태였다. 고성장에서 저성장 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물질주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정신적 기치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동양의 정신세계에서 더 깊은 삶의 의미와 전망을 찾고자 했다. 이런 시기에 미국에 정착한 초걈 트룽파는 불교의 가르침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성이란 무엇인지를 설파했다. 그는 깨달음마저 상품화하고 소비하려는 미국 사람들의 영적 물질주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명상을 통해 곧장 영성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 책은 1970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카르마 드종(Karma Dzong) 명상 센터에서 열린 초걈 트룽파의 강의를 묶은 것으로, 마음 공부와 영성에 관한 바른길을 찾는 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고전이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더욱 심해진 물질주의 세태와 영성이 유용한 돈벌이 수단 중 하나가 된 이 시대에 전하는 날 선 가르침이다.
영성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에고가 만들어내는 ‘나’라는 신화이다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이 책의 부제처럼, 우리는 영성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왜 그토록 영성이란 것이 성취하기 어려운 것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왜일까? 초걈 트룽파는 ‘에고(Ego)’가 거기에 이르는 길을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행이란 마음의 깨어 있는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연습이다. 깨어 있는 상태가 곧 ‘깨달음’, ‘영성’이며, 그것은 본래 우리 안에 있다는 게 불교의 관점이다. 단지 에고가 만들어내는 미망에 가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내면의 영성을 향한 우리의 눈길을 가리는 에고의 기술은 생각, 감정, 그리고 개념이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에고는 독립적이고 고정된 ‘나’라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생각하는 내가 ‘있고’, 감정을 느끼는 내가 ‘있고’, 세계를 인식하는 내가 ‘있다’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이렇게 에고는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리하고, 나 아닌 것 가운데 좋고 나쁜 것을 가려내 취사선택하게 함으로써 이분법적 태도로 삶을 바라보게 한다. 나와 동떨어진 깨달음과 영성, 세상이라는 관념 또한 이런 식으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나아가 에고는 진실을 보려는 우리의 마음 공부마저 도구로 삼아 우리를 거짓 영성에 빠져들게 한다. 저기 깨달음이 있고 네가 그것을 잡았다고,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너는 특별한 존재라고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에고가 꾸며내는 환상들을 물리치고 진짜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초걈 트룽파는 이 책에서 풍부한 일화와 예리한 비유로 그 답을 알려준다.
특별함이라는 환상,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
우리가 마음 공부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 중에 ‘특별함’에 대한 추구가 있다. 마음 공부를 통해 남들과는 다른,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깨달음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깨달음이나 영성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평범한 깨달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단번에 뒤집어버릴 초인적인 힘을 가진 깨달음을 상정하고 그것을 찾아 나선다. 특별한 깨달음이 생겨나면 뒤이어 그것을 얻기 위한 특별한 행위와 시도가 생겨난다. 세상과 떨어져 깊은 산중에 은거하거나, 엄격한 수행을 지속하거나, 특정한 종교적 도그마에 매달려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특별한 깨달음을 위해, 더 높은 의식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스스로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마음 공부하는 사람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하는 또 하나의 함정은 한번 찾아온 깨달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에서 비롯된다. 명상 수련 중에 깨달음을 맛본 사람은 그것을 특별한 체험으로 여겨 그 순간의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 놀라워라! 마침내 내가 해냈어”라며 자신의 경험을 값진 것으로 평가하고 영영 그것을 간직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움켜잡으려고 하는 순간, 깨달음은 현재에 살아 있는 생생한 체험이 아닌 과거의 기억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기기만의 게임이 시작된다. 더 이상 그것을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고 좋았던 시절, 추억으로 떠올리며 반복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참된 깨달음은 일상적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온전히 깨어 있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티베트 불교와 선불교의 가르침에서 ‘평범한 지혜’, ‘참된 평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마음 공부와 마음 수련이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과정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더 나은 것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일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지금 여기에 뿌리 내리지 않은 것으로 마음을 향할 때, 우리는 삶이 주는 영감(靈感)으로부터 멀어진다. 따라서 마음 공부는 언제나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깨달음과 마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최단 거리다.
무언가를 얻고야 말겠다는
에고의 기대를 비울 때 비로소 열리는 문
마음 공부 과정에서 스승의 존재는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다. 수많은 결길 가운데 바른길을 찾아가는 안목을 길러주고, 수련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헤쳐나갈 용기와 힘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스승을 우리는 구루(Guru)라고 부른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는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스승을 만나 그로부터 자신이 가진 모든 문제의 답을 얻게 되리라 기대한다. 스승을 나보다 높은 존재로 여겨 그의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그처럼 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스승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는 스승의 복제품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참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함께 영적인 길을 걷는 영적 친구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숨김없이 자신을 활짝 열고 서로를 마주할 때, 비로소 두 사람 사이에 통교(通交)가 이뤄지고 가르침의 전수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누군가 명성이 높다거나 많은 제자를 거느렸다고 해서 그를 구루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 그 사람과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스승을 향한 헛된 기대와 바람을 모조리 버리고,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로써 스승을 맞을 때 그가 가진 풍요로운 지혜가 우리의 본성과 연결되어 창조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또한 스승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무작정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검증해 봐야 한다. 스승의 영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기 삶에서 경험해야 한다. 그럴 때 가르침은 살아 있는 것이 된다. 깨달음과 영감이 그러하듯, 가르침 역시 우리 바깥에 있는 낯선 것이 아니다. 스승으로부터 이식받는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 아니다. 단순히 열린 자세로 서로의 본성에 직접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스승이란 활짝 열린 채 세상과 통교하는 자이기에 그런 스승과의 관계 맺음은 곧 곧 세상과 통교하는 일이 된다. 한 명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전체 우주가 우리의 구루로 확장되는 것이다.
개방과 열림은 무언가를 얻고야 말겠다는 에고의 기대를 비워내고 스스로 텅 빈 그릇이 되는 것, 그 빈 공간에서 삶의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그려지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 세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아우르며 그 모든 것에서 진실을 보려는 시도이다.
깨달음의 시작,
내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잘라라!
이 책의 원제는 ‘Cutting Through The Spiritual Materialism’이다. ‘Cutting’의 의미는 내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잘라내고 끊어내라는 것이다. 그러한 완전한 열림과 완벽한 포기에서 깨달음과 영성의 길은 시작된다. 에고가 표현하는 수많은 욕망, 마음 공부를 통해 초월적인 무엇인가를 얻으리라는 꿈과 희망을 전부 버려야만 갈 수 있다. 그런 삶은 어떤 것도 얽매지 않고 세계가 나를 관통해 흐르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불필요한 가치 평가와 판단 없이 세상과 물 흐르는 듯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자비와 사랑의 참 의미를 배우고, 그것을 삶에 녹여낼 수 있다.
진정한 자비와 사랑은 이편에 서서 저편과 맞서 싸우는 투쟁을 멈추는 일이다. 자비로운 사람은 애써 착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공연히 엄숙해지지도 않으며, 모든 때를 현재로 보며 살아간다.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행태의 게임들을 별것 아닌 시시한 말장난으로 본다. 에고의 요구와는 정반대인 이러한 태도가 에고 입장에서는 매우 폭력적이고 무자비해 보이지만,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하는 이유가 에고의 끝없는 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명상 수련의 목적이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누군가 명상을 통해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때, 그것은 현재와 주변 상황에 온전하게 깨어 있다는 말이다. 어느 것 하나 놓치거나 무시하는 일 없이 지금 이 순간을 꽉 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옹글게 사는 사람에게 일상은 흥미진진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선입견 없이 오롯이 현재를 살아가기에 매 순간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펼쳐진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일컬어 불교에서는 보살(菩薩)이라고 말한다. 보살은 용기 있게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들은 작은 돌멩이 하나에서 대지의 든든함을 보고, 꽃 한 송이에서 우주의 에너지를 느낀다. 자신의 본성, 자연, 인생의 모든 상황과 막힘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써 내일을 위한 씨앗을 심지 않는다. 언제나 지금을 산다. 보살처럼,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영성으로 들어서는 열쇠이자 우리가 찾는 영성, 깨달음의 전부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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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성의 길
티베트에 간 적이 있다. 네팔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는데 가는 과정 자체가 고행이다.
겨울에 갔었는데 눈이 엄청 왔다. 하지만 대륙 답게 하룻밤에 눈을 다 치웠다.
야크티를 마시며 고산병을 극복하며 티베트 수도 라싸에 도착했다. 영적인 도시. 하지만 중국의 지배로 뭔가 억압받는 느낌이었다.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인도에 망명 정부를 세운 이후, 티베트에서 더이상 승려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종교적 탄압. 너무나도 평화로운 사람들. 단지 지리학적 위치 때문에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슬픈 나라.
<마음 공부에 관하여>의 저자도 티베트 승려다. 초걈 트퉁파는 1940년 티베트 동부 카암 지방에서 태어났다.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을 때, 초걈 트퉁파는 인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달라이 라마부터 영적 지도자로 임명되어 영라마스쿨에서 젊은 라마승들을 가르쳤다. 1963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스코틀랜드에 삼예링 명상 센터를 설립했다. 1969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인생을 불교를 가르치는 일에 바치기로 한다. 법복을 벗어 던지고 일반인 신분으로 불교의 진리를 전하기 시작했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영적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참된 영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설파했다. 100개 이상 명상 센터를 설립, 샴발라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1974년 나로빠 연구소를 설립 불교대학으로 승인되었다.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1986년 캐나다에서 타계했다.
다양한 예시를 들며 불교 가르침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 공부란 단순히 구루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전수는 영적 친구와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상대하고 그들에게 곧장 가까이 가는 데서 이루어진다.(73쪽) 열린 길을 발견하기 위해, 먼저 자기 기만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위빠사나 명상원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위빠사나는 어떤 행동이 발생하게 되는 분위기를 함께 보는 것이라고 한다. 한 가지 상황을 좁은 폭에서 보면 좀 더 넓은 폭에서도 보게 된다. (203쪽)
책이 쉽지는 않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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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제비 2021-04-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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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불광출판사
초걈 트룽파 지음
이현주 옮김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마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선택했는데 책을 선택한 이유가 너무 웃기다. 스티븐 잡스가
삶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영혼의 책이라는 문구에 시선을 끌려서 두말도 않고 잡았다.
마음 공부라는 것이 남의 이름값으로 공부가 되는 것일까 하는 웃기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일단 시작했다면 미치는 게 좋다.
마음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볼수 있다. 어설프게 시작한 마음 공부는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든다.
읽으면서 이것이 맞나? 실제없는 가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를 믿는 것이 있다면 더욱더 쉽게
다가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고 있어서 인지 마음이 더 흔들흔들하다.
마음 공부가 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시작했다면 미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영 미치는 쪽으로 들어서기보다는 의심으로 마음을 채운다.
- 진정한 전수는 '두 마음의 만남'에서 이루어 지는거예요. 당신과 영적 친구가 피차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전수가 실현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만 전수가 이루어질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식
수술을 받는다든가 자신을 몽땅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은 철저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공부라 하면 힘들고 어렵고 딱딱한 호된 공부의 시간이 지나면 편안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상황이 올것 같지만
그러 상황에서 유머는 필요하다. 유머 감각이란 시도 때도 없이 경박하게 우스운 소리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 공부라는 것이 그러게 힘들고 버거운것이라면 어느 누구 하려고 하는 것인가 유머는 경박한것이아니라 삶의 윤활제
같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존재하는 것들이 본래 별것 아님을 알고 거기에 맞추어 일하면, 만사를 근엄하게 대하며 일마다 거창하게 흥정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웃기고 있는지가 당신 눈에 들어고기 시작할 것입니다.
티베트의 스님으로 존경받는 스님 초감 트롱파 태어난지 13개월 만에 환생한 스승으로 인정받았다는 한다.
믿는것은 자유 하지만 믿었다면 끝까지 간다. 여러곳에서 공부를 많이 하셨고 이 책은 1970년에 미국 카르마
드종 명상 센터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갔네, 갔네, 넘어갔네, 완벽하게 드러났네, 깨어나거라, 깨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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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팅이 2021-05-2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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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마음 공부와 영성에 관한 바른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고전'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공부를 하려고 한다. 욕심으로 뒤덮힌 나를 보며, 덕지덕지 붙어버린 욕망을 털어내버리려고 한다. 벼락거지가 되어 버린 현실에 불안하며, 나의 미래는 대체 어떻게 될까?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다가 이마저도 불행임을 깨닫고 마음공부를 하려 하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이 책은 1970년 가을부터 시작된 마음공부 강의를 묶어둔 것이다. 티베트 스님이자 존경받는 영적 지도가, 예술가로 알려진 초걈 투룽파 스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주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그는 17년간 세계 여러 곳을 오가며 강연을 펼쳤으며, 100개가 넘는 명상센터를 건립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그는 전 세계 불교의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도 불교의 진리를 전파하고 있다.
'영성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에고가 만들어내는 ‘나’라는 신화이다'
스님은 말한다 과연 우리가 그토록 많은 마음 공부를 함에도 왜 이다지 괴롭기만 한건지 말이다. 그것은 자아를 가리키는 '에고(Ego)'라는 것 때문이라 한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개념. 이 세 가지 때문에 '나'라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분법적인 사고가 생기고, 그에 따라 사리사욕이 생기게 된다. 그것이 곧 욕심으로 이어지고, 나를 괴롭게 한다. 그것을 물리치지 않고서 마음 공부나 영적 수행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밥 먹을 때는 밥을 먹고 잠잘 때는 잠을 잡니다.”
그는 말한다. 결국 우리가 찾는 참된 깨달음은 어떤 '특별함'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평범함'이라고 말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경험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찾는 그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나라는 '에고(Ego)'를 버리고 텅 비워내는 것, 그 위에서 다양하게 모든 것이 펼쳐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도 알겠지만 여전히 어렵다. 나는 일개 중생일 따름이고, 세상의 기준에 여전히 흔들린다. 내 주체가 없는 삶인 것 같아 자책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해보아야 겠다. 그가 말했듯, 내 일상에서부터 하나씩 찾아나가겠다. 좀 더 평화로워지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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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dugi 2021-04-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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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마음 공부에 관하여는 “위선과 자기기만으로 교묘하게 무장한 에고의 세계를 잘라내는 칼날 같은 지혜가 숨어 있다.”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티베트 스님이며 존경받는 명상가, 영적 지도자,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초걈 트퉁파가 전하는 마음공부는 1970년 가을에서 1971년 봄까지 콜로라도 볼더에서 계속된 강의 내용을 묶은 것입니다. 이강의에서는 먼저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영적 물질주의에 스스로 빠져들어 가는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자기기만의 여러 모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마음 수련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주 미묘한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그냥 순진하게 뛰어드는 어떤 게 아니에요. 일그러지고 뒤틀린 자기중심적 마음 공부로 빠지게 하는 곁길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몇 가지 수련 방법을 사용해 결국은 자기중심성을 키웠으면서도 스스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p12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나’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철학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가르침과 하나가 되어 가르침 자체가 되기를 실제로 원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에고를 버리라고 하면 우리는 에고를 버리는 시늉을 합니다. 근사한 행동을 하고 적당한 몸짓은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조금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p27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마음 수련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펜데믹이 장기화 되면서 흔들리는 나약한 마음을 독자 스스로가 수련하기에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불광출판사에서 지원해 주신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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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북 2021-04-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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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에 관하여
마음공부에 관하여
현대인들은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고 있다. 비단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만 그러할까?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금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상처보다 스스로에게 가하는 상처가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자동차운전은 서로에게 양보, 배려가 없으면 큰 흉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양보나 배려는 없고 오히려 보복운전이 날로 증가하니 세상이 갈수록 흉폭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마음의 병이 깊어 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불교를 통한 마음공부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초감 트룽파 티벳출신의 영적지도자의 [마음공부에 관하여]는 일상의 삶에서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전통 불교수련뿐만 아니라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해 전통과 현대문화를 두루 섭렵했다.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영적 수련 전파에 공을 들여 서양세계에 불교를 전한 중추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마음공부에 관하여]는 그가 1970년 미국 명상센터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혹자들은 1970년이면 지금과 시간적으로 너무나 먼 과거의 내용이 아닌가? 고도로 발전된 현대사회와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의 마음은 그때보다 더 많이 병들어 있는 지금 상황에 더 어울리는 글이 아닐까 여겨진다. 우리들이 안고 있는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병은 그 근원에서 풀어 내지 않는 한 더욱 깊어질 것임을 우리들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강의의 내용에도 있지만 강의 말미의 질의, 응답에 있다고 여겨진다. 물질적 풍요에 익숙해져 과연 마음공부가 필요할까? 의문을 가진 이들의 질문은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 그 근원을 유추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그 어느 시기보다 풍요로워졌을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마음은 깊이 병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는 요즈음 마음의 평안을 위해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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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14.37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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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296쪽, 약 19.7만자, 약 5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88974799168
책소개
마음 공부가 상품이 되는 시대이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사이비(가짜)는 있기 마련이어서, 가짜 영성 전문가와 수련 센터들이 도처에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에고(Ego)가 우리의 생각, 감정, 오감을 이용해 진정한 마음 공부의 길을 교묘하게 방해한다는 데 있다.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고 만족하거나, 스스로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돕는 수단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등, 에고는 너무나 간사해서 스스로를 속이며 잘못된 마음 수행의 길로 이끈다. 이 책은 에고가 만드는 함정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며 근본적인 마음 공부의 본질과 그 수행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모두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질문과 대답’으로 마음 공부를 하는 이들이 한 번은 가졌을 의심과 의문에 대한 답을 풀어준다.
목차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들어가며
영적 물질주의, 에고가 만들어낸 가짜 깨달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텅 빈 그릇이 되어라
나의 구루(Guru)는 ‘상황’이다
마음 공부를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들
깨달음의 경험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에고이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기대로 가득 찬 수행의 어리석음
완전히 열리지 못한 마음 공부는 욕망의 윤회를 되풀이한다
본래 별것 없음을 알면 세상의 가짜들이 다 보인다
에고가 만들어지는 다섯 단계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벽을 받아들여야 한다
에고를 뛰어넘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애쓰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경지, 바라밀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하는 주문
제3의 자비, 무자비한 자비를 보라
에고를 변성시켜 마침내 열반과 하나 되다
초걈 트룽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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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2 마음 수련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주 미묘한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그냥 순진하게 뛰어드는 어떤 게 아니에요. 일그러지고 뒤틀린 자기중심적 마음 공부로 빠지게 하는 곁길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몇 가지 수련 방법을 사용해 결국은 자기중심성을 키웠으면서도 스스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
P. 27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나’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철학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가르침과 하나가 되어 가르침 자체가 되기를 실제로 원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에고를 버리라고 하면 우리는 에고를 버리는 시늉을 합니다. 근사한 행동을 하고 적당한 몸짓은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조금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접기
P. 46 굴복과 열림의 몸짓은 굴복하는 대상과 연결되고 직접 통교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거칠고 조잡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우리의 본질에 대해 당황해하거나 난처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굴복하는 대상에게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굴복하는 행위에는 바깥의 힘에 대한 숭배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감을 받아 일하는 것, 그리하여 지식을 부어 담을 수 있는 텅 빈 그릇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접기
P. 57 나는 이곳 서양에서 구루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그냥 ‘영적 친구’라고 부르는 게 더 낫겠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가르침이란 두 마음의 평등한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고도로 진보된 존재와 비천하고 열등한 존재 사이의 주종 관계라기보다 평등한 상호 통교의 문제입니다.
P. 76 우리는 영성이란 매우 자극적이고 다채로운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습니다. 이국적이고 색다른 종교 전통에서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보는 거지요. 또는 목소리의 톤을 바꾸고 식습관이나 다른 일반 행동거지를 바꾸는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 양태를 습관으로 만들려고 시도하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그것들은 우리의 천성이 되지 못합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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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초걈 트룽파 (Chogyam Trungpa)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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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지도자이자 예술가. 1940년 티베트에서 태어났으며, 서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불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동티베트 수르망 지역의 총독이었던 트룽파는 1959년, 중국 공산당을 피해 강제로 고국을 떠나야 했다. 300명의 티베트인들을 이끌고 떠났으나 열 달 만에 단 50명만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독한 고난과 두려움에 맞서야만 했던 때 트룽파는 여행 내내 강함과 용기에 기반을 둔 명상적 통찰에 의지했다.
그 뒤 인도의 영라마스쿨Young Lamas School에서 정신적인 지도자로 7년을 보낸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스코틀랜드에 삼예링 명상 센터를 설립했다. 1969년 교통사고로 큰 상처를 입은 뒤 그는 더욱 열린 마음과 용기를 갖게 되었으며, 법복을 벗고 일반인으로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이애나 피버스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서양인들에게 불교의 진리 ‘다르마dharma’를 전하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명상’으로 서양인들의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을 바로잡으려 했다. 시각 예술, 디자인, 시, 연극 등 서양의 문화 예술을 익혀 명상을 통한 ‘알아차림 수행’을 널리 알렸다. 불교 밖의 다른 종교에서도 지혜를 추구한 그는 종교를 초월한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미국 내 수백 개의 명상 센터와 서양 최초의 불교대학인 나로파 대학을 세웠으며, 불교와 명상에 대한 24권 이상의 책을 남겼다. 접기
최근작 : <마음 공부에 관하여>,<명상, 마음 그리고 심리학적 통찰>,<두려움을 넘어 미소 짓기까지> … 총 198종 (모두보기)
이현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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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그리스도의 계시들』 등이 있다.
최근작 :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 (양장)>,<부모 되기, 사람 되기> … 총 26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1970년 미국에서 2021년 대한민국으로
반세기를 넘어 전해진 마음 공부의 고전
1970년, 지난 100년간의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미국 땅에 동양의 낯선 스님 한 명이 찾아왔다. 티베트에서 온 초걈 트룽파(Ch?gyam Trungpa)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영적으로 매우 고양된 상태였다. 고성장에서 저성장 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물질주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정신적 기치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동양의 정신세계에서 더 깊은 삶의 의미와 전망을 찾고자 했다. 이런 시기에 미국에 정착한 초걈 트룽파는 불교의 가르침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성이란 무엇인지를 설파했다. 그는 깨달음마저 상품화하고 소비하려는 미국 사람들의 영적 물질주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명상을 통해 곧장 영성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 책은 1970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카르마 드종(Karma Dzong) 명상 센터에서 열린 초걈 트룽파의 강의를 묶은 것으로, 마음 공부와 영성에 관한 바른길을 찾는 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고전이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더욱 심해진 물질주의 세태와 영성이 유용한 돈벌이 수단 중 하나가 된 이 시대에 전하는 날 선 가르침이다.
영성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에고가 만들어내는 ‘나’라는 신화이다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이 책의 부제처럼, 우리는 영성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왜 그토록 영성이란 것이 성취하기 어려운 것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왜일까? 초걈 트룽파는 ‘에고(Ego)’가 거기에 이르는 길을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행이란 마음의 깨어 있는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연습이다. 깨어 있는 상태가 곧 ‘깨달음’, ‘영성’이며, 그것은 본래 우리 안에 있다는 게 불교의 관점이다. 단지 에고가 만들어내는 미망에 가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내면의 영성을 향한 우리의 눈길을 가리는 에고의 기술은 생각, 감정, 그리고 개념이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에고는 독립적이고 고정된 ‘나’라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생각하는 내가 ‘있고’, 감정을 느끼는 내가 ‘있고’, 세계를 인식하는 내가 ‘있다’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이렇게 에고는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리하고, 나 아닌 것 가운데 좋고 나쁜 것을 가려내 취사선택하게 함으로써 이분법적 태도로 삶을 바라보게 한다. 나와 동떨어진 깨달음과 영성, 세상이라는 관념 또한 이런 식으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나아가 에고는 진실을 보려는 우리의 마음 공부마저 도구로 삼아 우리를 거짓 영성에 빠져들게 한다. 저기 깨달음이 있고 네가 그것을 잡았다고,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너는 특별한 존재라고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에고가 꾸며내는 환상들을 물리치고 진짜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초걈 트룽파는 이 책에서 풍부한 일화와 예리한 비유로 그 답을 알려준다.
특별함이라는 환상,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
우리가 마음 공부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 중에 ‘특별함’에 대한 추구가 있다. 마음 공부를 통해 남들과는 다른,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깨달음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깨달음이나 영성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본성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평범한 깨달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단번에 뒤집어버릴 초인적인 힘을 가진 깨달음을 상정하고 그것을 찾아 나선다. 특별한 깨달음이 생겨나면 뒤이어 그것을 얻기 위한 특별한 행위와 시도가 생겨난다. 세상과 떨어져 깊은 산중에 은거하거나, 엄격한 수행을 지속하거나, 특정한 종교적 도그마에 매달려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특별한 깨달음을 위해, 더 높은 의식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스스로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마음 공부하는 사람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하는 또 하나의 함정은 한번 찾아온 깨달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에서 비롯된다. 명상 수련 중에 깨달음을 맛본 사람은 그것을 특별한 체험으로 여겨 그 순간의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 놀라워라! 마침내 내가 해냈어”라며 자신의 경험을 값진 것으로 평가하고 영영 그것을 간직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움켜잡으려고 하는 순간, 깨달음은 현재에 살아 있는 생생한 체험이 아닌 과거의 기억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기기만의 게임이 시작된다. 더 이상 그것을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고 좋았던 시절, 추억으로 떠올리며 반복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참된 깨달음은 일상적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온전히 깨어 있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티베트 불교와 선불교의 가르침에서 ‘평범한 지혜’, ‘참된 평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마음 공부와 마음 수련이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과정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더 나은 것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일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지금 여기에 뿌리 내리지 않은 것으로 마음을 향할 때, 우리는 삶이 주는 영감(靈感)으로부터 멀어진다. 따라서 마음 공부는 언제나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깨달음과 마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최단 거리다.
무언가를 얻고야 말겠다는
에고의 기대를 비울 때 비로소 열리는 문
마음 공부 과정에서 스승의 존재는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다. 수많은 결길 가운데 바른길을 찾아가는 안목을 길러주고, 수련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헤쳐나갈 용기와 힘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스승을 우리는 구루(Guru)라고 부른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는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스승을 만나 그로부터 자신이 가진 모든 문제의 답을 얻게 되리라 기대한다. 스승을 나보다 높은 존재로 여겨 그의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그처럼 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스승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는 스승의 복제품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참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함께 영적인 길을 걷는 영적 친구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숨김없이 자신을 활짝 열고 서로를 마주할 때, 비로소 두 사람 사이에 통교(通交)가 이뤄지고 가르침의 전수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누군가 명성이 높다거나 많은 제자를 거느렸다고 해서 그를 구루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 그 사람과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스승을 향한 헛된 기대와 바람을 모조리 버리고,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로써 스승을 맞을 때 그가 가진 풍요로운 지혜가 우리의 본성과 연결되어 창조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또한 스승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무작정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검증해 봐야 한다. 스승의 영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기 삶에서 경험해야 한다. 그럴 때 가르침은 살아 있는 것이 된다. 깨달음과 영감이 그러하듯, 가르침 역시 우리 바깥에 있는 낯선 것이 아니다. 스승으로부터 이식받는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 아니다. 단순히 열린 자세로 서로의 본성에 직접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스승이란 활짝 열린 채 세상과 통교하는 자이기에 그런 스승과의 관계 맺음은 곧 곧 세상과 통교하는 일이 된다. 한 명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전체 우주가 우리의 구루로 확장되는 것이다.
개방과 열림은 무언가를 얻고야 말겠다는 에고의 기대를 비워내고 스스로 텅 빈 그릇이 되는 것, 그 빈 공간에서 삶의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그려지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 세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아우르며 그 모든 것에서 진실을 보려는 시도이다.
깨달음의 시작,
내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잘라라!
이 책의 원제는 ‘Cutting Through The Spiritual Materialism’이다. ‘Cutting’의 의미는 내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잘라내고 끊어내라는 것이다. 그러한 완전한 열림과 완벽한 포기에서 깨달음과 영성의 길은 시작된다. 에고가 표현하는 수많은 욕망, 마음 공부를 통해 초월적인 무엇인가를 얻으리라는 꿈과 희망을 전부 버려야만 갈 수 있다. 그런 삶은 어떤 것도 얽매지 않고 세계가 나를 관통해 흐르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불필요한 가치 평가와 판단 없이 세상과 물 흐르는 듯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자비와 사랑의 참 의미를 배우고, 그것을 삶에 녹여낼 수 있다.
진정한 자비와 사랑은 이편에 서서 저편과 맞서 싸우는 투쟁을 멈추는 일이다. 자비로운 사람은 애써 착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공연히 엄숙해지지도 않으며, 모든 때를 현재로 보며 살아간다.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행태의 게임들을 별것 아닌 시시한 말장난으로 본다. 에고의 요구와는 정반대인 이러한 태도가 에고 입장에서는 매우 폭력적이고 무자비해 보이지만,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하는 이유가 에고의 끝없는 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명상 수련의 목적이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누군가 명상을 통해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때, 그것은 현재와 주변 상황에 온전하게 깨어 있다는 말이다. 어느 것 하나 놓치거나 무시하는 일 없이 지금 이 순간을 꽉 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옹글게 사는 사람에게 일상은 흥미진진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선입견 없이 오롯이 현재를 살아가기에 매 순간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펼쳐진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일컬어 불교에서는 보살(菩薩)이라고 말한다. 보살은 용기 있게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들은 작은 돌멩이 하나에서 대지의 든든함을 보고, 꽃 한 송이에서 우주의 에너지를 느낀다. 자신의 본성, 자연, 인생의 모든 상황과 막힘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써 내일을 위한 씨앗을 심지 않는다. 언제나 지금을 산다. 보살처럼,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영성으로 들어서는 열쇠이자 우리가 찾는 영성, 깨달음의 전부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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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성의 길
티베트에 간 적이 있다. 네팔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는데 가는 과정 자체가 고행이다.
겨울에 갔었는데 눈이 엄청 왔다. 하지만 대륙 답게 하룻밤에 눈을 다 치웠다.
야크티를 마시며 고산병을 극복하며 티베트 수도 라싸에 도착했다. 영적인 도시. 하지만 중국의 지배로 뭔가 억압받는 느낌이었다.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인도에 망명 정부를 세운 이후, 티베트에서 더이상 승려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종교적 탄압. 너무나도 평화로운 사람들. 단지 지리학적 위치 때문에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슬픈 나라.
<마음 공부에 관하여>의 저자도 티베트 승려다. 초걈 트퉁파는 1940년 티베트 동부 카암 지방에서 태어났다. 1959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을 때, 초걈 트퉁파는 인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달라이 라마부터 영적 지도자로 임명되어 영라마스쿨에서 젊은 라마승들을 가르쳤다. 1963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스코틀랜드에 삼예링 명상 센터를 설립했다. 1969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인생을 불교를 가르치는 일에 바치기로 한다. 법복을 벗어 던지고 일반인 신분으로 불교의 진리를 전하기 시작했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영적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참된 영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설파했다. 100개 이상 명상 센터를 설립, 샴발라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1974년 나로빠 연구소를 설립 불교대학으로 승인되었다.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1986년 캐나다에서 타계했다.
다양한 예시를 들며 불교 가르침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 공부란 단순히 구루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전수는 영적 친구와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상대하고 그들에게 곧장 가까이 가는 데서 이루어진다.(73쪽) 열린 길을 발견하기 위해, 먼저 자기 기만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위빠사나 명상원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위빠사나는 어떤 행동이 발생하게 되는 분위기를 함께 보는 것이라고 한다. 한 가지 상황을 좁은 폭에서 보면 좀 더 넓은 폭에서도 보게 된다. (203쪽)
책이 쉽지는 않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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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제비 2021-04-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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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불광출판사
초걈 트룽파 지음
이현주 옮김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마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선택했는데 책을 선택한 이유가 너무 웃기다. 스티븐 잡스가
삶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영혼의 책이라는 문구에 시선을 끌려서 두말도 않고 잡았다.
마음 공부라는 것이 남의 이름값으로 공부가 되는 것일까 하는 웃기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일단 시작했다면 미치는 게 좋다.
마음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볼수 있다. 어설프게 시작한 마음 공부는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든다.
읽으면서 이것이 맞나? 실제없는 가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를 믿는 것이 있다면 더욱더 쉽게
다가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읽고 있어서 인지 마음이 더 흔들흔들하다.
마음 공부가 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시작했다면 미치는 게 좋다고 하는데 영 미치는 쪽으로 들어서기보다는 의심으로 마음을 채운다.
- 진정한 전수는 '두 마음의 만남'에서 이루어 지는거예요. 당신과 영적 친구가 피차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전수가 실현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만 전수가 이루어질수 있어요. 왜냐하면 이식
수술을 받는다든가 자신을 몽땅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은 철저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공부라 하면 힘들고 어렵고 딱딱한 호된 공부의 시간이 지나면 편안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상황이 올것 같지만
그러 상황에서 유머는 필요하다. 유머 감각이란 시도 때도 없이 경박하게 우스운 소리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 공부라는 것이 그러게 힘들고 버거운것이라면 어느 누구 하려고 하는 것인가 유머는 경박한것이아니라 삶의 윤활제
같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존재하는 것들이 본래 별것 아님을 알고 거기에 맞추어 일하면, 만사를 근엄하게 대하며 일마다 거창하게 흥정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웃기고 있는지가 당신 눈에 들어고기 시작할 것입니다.
티베트의 스님으로 존경받는 스님 초감 트롱파 태어난지 13개월 만에 환생한 스승으로 인정받았다는 한다.
믿는것은 자유 하지만 믿었다면 끝까지 간다. 여러곳에서 공부를 많이 하셨고 이 책은 1970년에 미국 카르마
드종 명상 센터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갔네, 갔네, 넘어갔네, 완벽하게 드러났네, 깨어나거라, 깨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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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팅이 2021-05-2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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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마음 공부와 영성에 관한 바른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한 살아 있는 고전'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공부를 하려고 한다. 욕심으로 뒤덮힌 나를 보며, 덕지덕지 붙어버린 욕망을 털어내버리려고 한다. 벼락거지가 되어 버린 현실에 불안하며, 나의 미래는 대체 어떻게 될까?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다가 이마저도 불행임을 깨닫고 마음공부를 하려 하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이 책은 1970년 가을부터 시작된 마음공부 강의를 묶어둔 것이다. 티베트 스님이자 존경받는 영적 지도가, 예술가로 알려진 초걈 투룽파 스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주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그는 17년간 세계 여러 곳을 오가며 강연을 펼쳤으며, 100개가 넘는 명상센터를 건립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그는 전 세계 불교의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도 불교의 진리를 전파하고 있다.
'영성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에고가 만들어내는 ‘나’라는 신화이다'
스님은 말한다 과연 우리가 그토록 많은 마음 공부를 함에도 왜 이다지 괴롭기만 한건지 말이다. 그것은 자아를 가리키는 '에고(Ego)'라는 것 때문이라 한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개념. 이 세 가지 때문에 '나'라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분법적인 사고가 생기고, 그에 따라 사리사욕이 생기게 된다. 그것이 곧 욕심으로 이어지고, 나를 괴롭게 한다. 그것을 물리치지 않고서 마음 공부나 영적 수행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밥 먹을 때는 밥을 먹고 잠잘 때는 잠을 잡니다.”
그는 말한다. 결국 우리가 찾는 참된 깨달음은 어떤 '특별함'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평범함'이라고 말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경험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찾는 그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나라는 '에고(Ego)'를 버리고 텅 비워내는 것, 그 위에서 다양하게 모든 것이 펼쳐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도 알겠지만 여전히 어렵다. 나는 일개 중생일 따름이고, 세상의 기준에 여전히 흔들린다. 내 주체가 없는 삶인 것 같아 자책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해보아야 겠다. 그가 말했듯, 내 일상에서부터 하나씩 찾아나가겠다. 좀 더 평화로워지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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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dugi 2021-04-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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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부에 관하여
마음 공부에 관하여는 “위선과 자기기만으로 교묘하게 무장한 에고의 세계를 잘라내는 칼날 같은 지혜가 숨어 있다.” 왜 수많은 마음 공부와 영적수행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인가? 티베트 스님이며 존경받는 명상가, 영적 지도자,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초걈 트퉁파가 전하는 마음공부는 1970년 가을에서 1971년 봄까지 콜로라도 볼더에서 계속된 강의 내용을 묶은 것입니다. 이강의에서는 먼저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영적 물질주의에 스스로 빠져들어 가는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자기기만의 여러 모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마음 수련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주 미묘한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그냥 순진하게 뛰어드는 어떤 게 아니에요. 일그러지고 뒤틀린 자기중심적 마음 공부로 빠지게 하는 곁길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몇 가지 수련 방법을 사용해 결국은 자기중심성을 키웠으면서도 스스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습니다.---p12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나’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철학으로 다룹니다. 그래서 가르침과 하나가 되어 가르침 자체가 되기를 실제로 원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에고를 버리라고 하면 우리는 에고를 버리는 시늉을 합니다. 근사한 행동을 하고 적당한 몸짓은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활 양식을 조금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p27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마음 수련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펜데믹이 장기화 되면서 흔들리는 나약한 마음을 독자 스스로가 수련하기에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불광출판사에서 지원해 주신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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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북 2021-04-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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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에 관하여
마음공부에 관하여
현대인들은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고 있다. 비단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만 그러할까?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금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상처보다 스스로에게 가하는 상처가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자동차운전은 서로에게 양보, 배려가 없으면 큰 흉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양보나 배려는 없고 오히려 보복운전이 날로 증가하니 세상이 갈수록 흉폭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마음의 병이 깊어 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이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불교를 통한 마음공부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초감 트룽파 티벳출신의 영적지도자의 [마음공부에 관하여]는 일상의 삶에서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전통 불교수련뿐만 아니라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해 전통과 현대문화를 두루 섭렵했다.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영적 수련 전파에 공을 들여 서양세계에 불교를 전한 중추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마음공부에 관하여]는 그가 1970년 미국 명상센터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혹자들은 1970년이면 지금과 시간적으로 너무나 먼 과거의 내용이 아닌가? 고도로 발전된 현대사회와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의 마음은 그때보다 더 많이 병들어 있는 지금 상황에 더 어울리는 글이 아닐까 여겨진다. 우리들이 안고 있는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병은 그 근원에서 풀어 내지 않는 한 더욱 깊어질 것임을 우리들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강의의 내용에도 있지만 강의 말미의 질의, 응답에 있다고 여겨진다. 물질적 풍요에 익숙해져 과연 마음공부가 필요할까? 의문을 가진 이들의 질문은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 그 근원을 유추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그 어느 시기보다 풍요로워졌을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마음은 깊이 병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는 요즈음 마음의 평안을 위해 읽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