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7

알라딘: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알라딘: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 더글러스 러미스의 평화론
C. 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지은이),김경인 (옮긴이)녹색평론사201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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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쪽
128*188mm (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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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슬로우 라이프’를 제창하며 널리 알려진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 교수가 러미스 교수에게 살아온 이력을 묻는 대담형식을 취하고 있다. 경제발전, 전쟁과 평화, 안전보장, 일본국헌법, 환경위기, 민주주의 등 여러 가지 테마를 각각 다루고 있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평화 운동가이며 정치 사상가이다. 이 책에서 그는 오늘을 지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식들에 의혹을 제기하고, 역사적 사실에 바탕하여 일침을 가하는 비범한 통찰을 보여준다. ‘가난’이나 ‘부유함’이라는 개념이,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하는 견해는 곱씹을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주장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상식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실은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며, 21세기에 살아남고 싶다면, 혹은 진실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우리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는 사고방식을 상식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목차


머리말 쓰지 신이치

제1부 일본, 미국에 살면서
1. 미국에서
별개의 문제로 인식되는 환경과 평화
일본인 차별을 세뇌당하다
대자연 속에서 지낸 어린시절
돈과 무관한 일의 즐거움
놀이가 배양하는 변혁의 힘
모자가 멋있어서 해병대에 들어가다
“해병대원인 이상 결혼하지 않겠다”

2. 일본에서
가난이 고통이라니, 정말일까
미국인이라는 함정
마음의 식민지화

3. 다시 미국에서
왜 일본연구자가 되지 않았는가
처음으로 운동에 참가한 것은 대학 하굣길
운동이 배움의 장이었다
베트남 반전운동

4. 다시 일본에서
반전평화운동에 참가하다
《A M P O》를 통해 활동을 발신하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영어회화》는 불평에서 시
작되었다
헌법 9조와의 만남
헌법은 미국 흉내도 뭣도 아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둘러싼 금기

제2부 오키나와로, 인도로, 간디로
1. 오키나와에 살면서
오키나와에 산다는 것의 복잡함
헌법 9조와 안보가 따로따로
2. 인도에서 간디를 만나다
왜 인도는 군대를 보유하는가
알려지지 않은 간디의 헌법안
마키아벨리의 딜레마
간디가 생각한 민주주의란
간디에게서 멀어져가는 인도

제3부 환경과 평화의 교차점
‘위기상태’라는 함정
경제라는 전쟁상태에서 벗어나다
본질적인 결합을 재발견하다
개발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다
S F에 근접해가는 현대사회
‘자연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사고방식
진보사상을 넘어
Pax Economica . 경제에 지배당한‘평화’
우리는 도시에 강제수용되어 있다
‘풍요로움’을 바로 알자
행복이란 뭘까

후기 _ C. 더글러스 러미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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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일 (소설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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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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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C. 더글러스 러미스 (Douglas Lummis)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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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 졸업. 정치사상 전공. 1960년에 미해병대에 입대하여 오키나와에서 근무. 1961년에 제대 후, 버클리로 되돌아가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다시 70년대 초 일본으로 와서 활동을 시작함. 1980년에 도쿄에 있는 쓰다(津田塾)대학 교수가 되어 2000년 3월에 정년퇴임. 현재는 오키나와에 거주하면서 집필과 강연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래디컬 데모크라시》(코넬대학교출판부, 1996년, 영문판), 《래디컬한 일본국 헌법》, 《헌법과 전쟁》, 《이데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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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신이치 (つじ信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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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환경운동가.
한국계 일본인으로 한국 이름은 이규李珪이다. 코넬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메이지가쿠잉대학 국제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슬로’라는 컨셉트를 축으로 전 세계적으로 환경운동과 문화운동을 하는 한편, 환경공생형 비즈니스에도 참여하고 있다. 나무늘보는 그에게 특별한 동물이다. 남미 에콰도르에서 벌인 환경운동에 참가했던 그는 그곳에서 나무블보라는 동물에게 매료되어 1999년 ‘나무늘보 친구들’이라는 NGO를 결성해 슬로 라이프를 되찾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게으르고 둔... 더보기


최근작 : <슬로 라이프>,<생각그림책 1~9권 세트 - 전9권>,<행복은 어떤 맛?> … 총 37종 (모두보기)

김경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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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70만 개 마을이 자급자족! 군대도 없다! 이 나라는? l 2011-03-08

나를 시골로 가게 만든 러미스지금부터 9년 전, 우리나라에 작은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재생지를 쓴 탓도 있지만, 책이 하도 가벼워서 혹 떨어뜨리면 바람에 날릴 만큼 가벼운 책이었다. 이 책은 역자인 김종철의 말처럼 일부 "예민한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다수 대중들에게는 가볍게 간주되고 만 것으로 알고 있다.그렇지만 책의 무게와 책이 담고 ...삼성에 어퍼컷! 월스트리트에 하이킥! 책의 최후통첩! l 2011-03-08

예상은 빗나갔다. '프레시안 books'가 책 좋아하기로 소문난 서른세 명의 서평위원에게 '올해의 책' 추천을 의뢰할 때만 해도 올해의 최고 베스트셀러였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의란 무엇인가> 대신에 다른 책 두 권을 선택했다.'프레시안 b...


출판사 소개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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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녹색평론 통권 169호>,<녹색평론 통권 168호>,<녹색평론 통권 167호>등 총 74종
대표분야 : 환경/생태문제 2위 (브랜드 지수 76,66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풍요로움이 넘치는 사회를 만든다 .
그것은 경제성장이라는 성공담보다‘훨씬 재미있는 역사적 프로젝트’다.

《녹색평론》의 지면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고, 2002년에 발간된《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통해 알려진 C. 더글러스 러미스는 평화운동가이며 정치사상가이다. 그는 경제성장, 민주주의, 전쟁과 평화, 환경위기와 지속가능한 문명 등, 21세기 인류사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마땅한 주제에 대하여 끈질기게, 근원적으로 사색하고 발언해왔다. 러미스 선생은 오늘을 지배하고 있는 여러가지‘상식’들에 의혹을 제기하고, 역사적 사실에 바탕하여 일침을 가하는 비범한 통찰을 보여주며, 그리고 그것을 놀랍도록 명석하고 평이한 언어로 풀어준다. ‘가난’이나‘부유함’이라는 개념이,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치적인(이데올로기적인) 개념이라고 하는 러미스 교수의 견해는 곱씹을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슬로우 라이프’를 제창하며 널리 알려진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 교수가 러미스 교수에게 살아온 이력을 묻는 대담형식을 취하고 있다. 16년간 북미에서 인류학을 연구하고 환경운동가로 정체를 굳힌 쓰지 교수와, 미국인으로서 해병대 복무 시절에 동아시아와 인연을 맺고, 일본(오키나와)에서 사상가, 평화운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러미스 교수 각자의 독특한 전력이 서로의 사상과 경험을 교차시키며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를 만들어내었다.

‘경제성장’논리에는 폭력이 내포되어 있다
이 시대의 모든 어리석음의 근간에는 경제성장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이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경제는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고방식은 경제학에서 나온 객관적인 결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결론에 불과하다. 그리고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거야말로 우리의 눈을 진정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한, 소위‘현실주의’,‘현실에서 유리된 현실주의’의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Pax Economica’라는 한마디로 이것을 표현했는데, 이 절묘한 표현은 우리의 세계가 경제성장이 최고 가치인 경제지배사회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폭력, 경제라는 지상(至上)의 가치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들, 심지어 전쟁도 환경파괴조차도 정당화되고 있다는 가공할 현실을 폭로해주었다.

전쟁상태 또는 위기상태라는 함정
즉 전쟁이나 평화문제와 환경이나 에콜로지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전쟁 중일 때에는 지금은 특별한‘위기상태’라는 이유로 환경파괴 운운하는 목소리는묵살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그 함정에 지구온난화나 피크오일이라는‘자연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가 빠져있다. 식량 위기상태인 지금 유전자조작에 반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주장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고도경제성장사회는 모조리‘전쟁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겠다고 필사적인, 일종의 전쟁상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평화의 문제는 그러므로 정치, 군사, 외교 문제이기 이전에 개발과 경제성장의 논리에 포로가 되어있는 현실과 직결되어 있다. 물리적으로 경제성장을 억제하지 않고서는 생태계 복원(보존)이 물론 가능하지도 않지만, 에콜로지운동은 전쟁준비로서의 경제활동을 무엇보다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지점에서 우리 개개인은 양적으로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작은 행동을 커다란 사회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게 되며, 질적으로 에콜로지와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대항(對抗)발전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주의
공생(共生)보다 경쟁이 더 재미있고, 자연보다 콘크리트 덩이로 된 인공적 풍경이 더 아름답고, 평화보다 전쟁이 더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는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자부하는 고도성장사회일수록 실은 살아있음을 즐길 줄 아는 문화적인 능력은 위축되어 있다. 오늘날‘환경’이나‘평화’가 금욕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오인되고 있는 이유도, 따져보면 소비주의나 시장경쟁의 문화가 번창하고 평화의 문화가 쇠퇴한 탓이다.
그러므로 러미스 선생이 주장하는 지금까지의‘개발’이나‘발전’에 대한‘대항(對抗) 발전’이란 진정한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주의이다. 그것은 경제이외의 가치, 경제활동 이외의 인간활동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늘리고, 그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희망이 있다!
이 책은 경제발전, 전쟁과 평화, 안전보장, 일본국헌법‘(평화헌법’), 환경위기, 민주주의 등 여러가지 테마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주장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상식’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실은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며, 21세기에 살아남고 싶다면, 혹은 진실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우리가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는 사고방식을 상식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러미스 선생은 지금 우리가 결코 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상식’의 대전환, 즉 대다수 사람들이‘비상식’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사고방식이 주류의 상식이 되는, 새로운 상식을 위한 대변혁 직전의 단계에 와있다고 말한다. 이 책이 오늘의‘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상식’들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데 큰 기여를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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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석 장 느낌글 002]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원고지 석 장 느낌글 002]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은 C.더글러스 러미스 님과 쓰지 신이치 님이 나눈 이야기를 그러모읍니다. 두 사람이 따로 글을 쓰기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로 우리 삶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어, 이 이야기를 통째로 책 한 권으로 갈무리합니다. 좋은 넋으로 살아가고픈 꿈을 이야기하고, 저마다 생태와 환경 이야기에 어떻게 처음으로 눈길을 두었는가를 밝히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사람들이 시나브로 ‘삶과 사람을 읽는 눈’을 깨닫도록 돕습니다. 누군가는 “아무리 경제발전이 잘된 사회라도 인간은 먹을 것을 먹어야 살 수 있고, 그 먹을 것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187쪽).” 같은 이야기에 밑줄을 긋겠지요. 내가 흙을 일구어야 내 살림을 꾸리는데, 내가 흙을 일구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내 몫까지 흙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가 배를 타고 물고기를 낚지 않으면 누군가는 내 몫으로 물고기를 잡아야 하고, 내가 짐승을 길러 목을 따지 않으면 누군가는 내 몫으로 뭍고기 목을 따서 살점을 도려야 합니다. 몸소 살림을 꾸리며 밥거리를 얻을 때에 참다이 평화와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이 자리잡습니다. 나 스스로 내 밥그릇을 착하게 마련하지 않으니 전쟁과 경제개발이 불거집니다. (4344.3.20.해.ㅎㄲㅅㄱ)

― C.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 씀/김경인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 201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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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03-2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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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며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정말 좋은 책이다.

신뢰가 가는 녹색평론사에서 더글러스 러미스의 새로운 책이 나왔길래, 정말 '냅다' 샀다.

읽으면서 강아지 귀처럼 접어놓은 페이지를 펴면서 그 부분들만 다시 읽어본다.

(색깔이 다른 글씨는 나의 코멘트.)


- 놀이가 배양하는 변혁의 힘

: 기계적 장난감에 아이들을 금방 질리고 만다. 그럼 아이들은 일부러 장난감을 고장낸다.

고장을 냈을 때 비로소 놀이의 단계로 접어든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 컴퓨터게임은 게임을 마든 사람의 상상력의 범위 안이라는 제한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게임의 시스템 안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만든 사람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놀이 방법을 발견하는 일은 일단 없다.

세상에는 거짓놀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쏙 빠지고, 말초적 자극과 중독적 몰입만 강요하는 놀이들.



- 가난이 고통이라니, 정말일까?



: 가난이 왜 고통스러운가 하면, 가난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고,



관리나 억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아무리 보기 싫어도 이를 악물고 일해야하고, 경멸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니까 그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물질이 풍요롭지 않다는 것, 즉 가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의 문제다.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비루해 졌는가? 이런 젠장.


- 마음의 식민지화

: 1960년에 이케다 수상은 소득 배증론을 주장했다. 일본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정치적인 방향이 아니라 소득이 배로 증가한다는 경제적인 방향으로 돌리도록 교묘하게 유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최근 목표도 GDP 3만불 4만불 그런 거다. 환율변화만으로도 달성가능한 맹목적인...
게다가 GDP라는 지표도 삶의 질을 반영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지표인 것을... 이런 것에 사람들의 삶을 바쳐야 하다니 안타깝다.


- 원자력 발전소가 정말 안전하다면 신주쿠에 세워라, 그럼 장거리 송전으로 전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냉각한 후에 나오는 뜨거운 물도 가정집으로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4대강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후손들을 위해서 좀 남겨두어도 괜찮은 것 아닌가? 임기중에 다 해먹지 말고.


- 위기상태라는 함정

: 토머스 홉스는 전쟁에 대한 정의에서 실제로 전쟁을 하고 있을 때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상태를 모두 전장상태라고 불렀다.



: 전쟁상태는 위기상태를 말하며, 지금은 위기 상태이므로 환경을 지키거나 자연을 보호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다.


전쟁상태가 아닌 것이 평화이고, 이 때야 비로서 올바른 일들(이를 테면 생태학적 삶)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평화와 에콜로지의 교차점.


- 사티쉬쿠마르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과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자연의 일부인데 자연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자연과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이런 중대한 착각은 좀 곤란하다.

- 경제학 개론을 들을 때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생산을 매년 늘리지 않으면 불경기 상태에 빠지고 만다고.

나는 손을 들고 질문했다. 만일 소비자가 이거면 충분하다고 정해두고 매년 같은 양만 소비하면 어떻게 됩니까?



교수는 싱글싱글 웃었다. 이간의 탐욕이라면 걱정 안해도 돼, 그것은 바닥이 없으니까.



그렇구나, 그것이 바위처럼 단단하고 과학적으로 확실한 경제학의 기초였구나.



하지만 기초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바닥이 없는 것은 기초가 될 수 없다.

경제학은 인간의 본성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고민이 더욱더 절실하다.

그것이 바로 경제학의 기초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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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새벽 2010-11-2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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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ichi Nakamura is with シンイチ ツジ.
17 December 2015 ·
츠지 신이치 씨의 신간 「겁쟁이 괜찮아 "를 많은 사람들이 읽었 으면하는 것입니다. 

속도와 효율성이 최우선되어 온 시대에 "슬로우 이즈 뷰티풀」나 「느리지 좋은거야"를 쓰고 "슬로우 라이프"를 주창 한 문화 인류 학자이자 환경 운동가 쓰지 신이치 씨는 최근 '힘'과 '약점'에 대한 사색이 깊어 져 왔습니다. 

그 일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것을 읽고 내가 왜 '테러'가 증가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하지 않고 공습는 "더 큰 폭력 '으로 사물을'해결 '하려고 할의"비정상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의 중요 함 "을 재차 생각했습니다. / 

약점 어려움 /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 "약점"에 대해 생각해 가려고 생각합니다. "약점"의 반대는 '힘'이다 (의미가있는)에서 "약점에 대해 생각 '은'힘에 대해 생각"과 분리 할 수 ​​없다. / 말해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약점」나 「강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쉽지는 않으며, 꽤 귀찮다라는 것. 네가 만약 그 어려움에 이미 눈치 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란이 어려움조차 클리어 해 버리면 더 이상 그냥, 너는 "힘"과 "약점"의 수 반은 알았다고 말할 정도니까. "약점"생각의 어려움의 대부분은 그 입구의 곳에 있다고해도 좋다. 그 어려움으로 중요한 것은 두 들어 두자. / 

어려움의 첫 번째는 아무도 "강한" "약한"라는 말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간단하고 누구나 명쾌한 뻔한 말이라고 생각 넣고있는 것이다. 는 '강약'이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하면, 그것은 "크고 작은"라든지, "장단"라고 알기 쉬운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대소과 장단이 측정 할 수 있도록 어느 쪽이 강하고, 어느 쪽이 약할지도 수치에 의해 객관적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되고있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재미있다. 물론, 악력과 근육의 강도, 바람의 강도 등은 재어 수치로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지의 힘 이라든지, 욕망의 강도를 측정 할 수 없다. 즉, 힘과 약점이라는 것은 단순히 많은지 적은지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의 문제이기도하다. / 그런 건 당연하다고 너는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세상에는 강약을 단지 양적인 것으로 파악 이상한 경향이 지배적 인 것이다. 그래서 "약점"에 대해 더 잘 이해하려고 했더니,이 이상한 경향에 대해 생각도 피할 수 없다. / "강하다"는 좋은 일이야? / 두 번째 문제는 "힘" "약점"라는 당연한 말에 가치 판단이 붙어있는 것. "강하다"는 좋은 일 "약하다"는 나쁜 일이라고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굳게 결심한다. "강하다"고 말해지면 기쁘고, "약한"라고 말하면 기쁘지 않다. / 생각해 보면 이것도 이상한 일이다. 예를 들어, 일방적으로 "크고 작은"하지만 큰 것과 작은 것 중 어느 쪽이 좋을까,라고 성공시킬 리가 없다. 큰 것이 좋은 것으로, 작은 것은 나쁜 등이라고하는 것은 너무 간단한 단정했다. 큰 것이 좋다고는 할 수없고, 작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큰 가방은 작은 것에 비해 많은 것을 넣을 수있어 편리하지만, 장소도 채택하고 운반는 무겁고 불편하다. / 좋은지 나쁜지는 "때와 장소에 따라"것이다. 이 "때와 장소에 따라 '라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상대"라는 생각으로 사물의 가치가 문맥 - 즉, 다른 사람과의 관계 -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한편, 문맥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가치를 지닌라는 것은 '절대적'이다. / 너는 잘 "절대"라는 말을 사용 하잖아 일까. 하지만 여기에는주의하는 것이 좋다.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듯이, 어떤 일이든 문맥은 본래이다. 작은 시계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벽에 거는 데 적합하지 않지만, 팔에 붙이거나 주머니에 넣어 운반하는 데 좋다. / "큰 것이 좋다고는 할 수없고, 작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강한 것이 좋다고는 할 수없고 약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 승자가 옳은 게 정말? / 김에 또 하나 덧붙여두고 싶다. 그것은 "좋은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며 나쁜 일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는 것. 즉, '좋다' '나쁘다'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 인 것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무엇이 "좋은"또는 무엇이 "올바른"하나는 다르다. "선악」나 「정사」라는 윤리적 인 가치조차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 우리들은 매일 상대가 나빠서 자신 이야말로 절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 사람끼리의 충돌을보고있다. 그리고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역시 비는 상대에 정의는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는 공동체끼리, 국가 간의 갈등과 다툼이 반복되어왔다. 싸움도 전쟁도 서로 "정확성"을 주장 가면서 결국 모두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 할 수없이 '강약'에서 결착을 내려고한다. 그리고 우승자, 즉 강한자가 제대로 패자 인 약한 사람이 틀렸다 것 같은 이미지가 생성된다. 참 이상한 이야기다. / 여하튼, 때와 장소에 따라 사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기 바란다. 자신의 안에도, 나이, 계절에 따라 낮에는 "올바른"가 의미하는 것은 있으니까. /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너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더 조용하고 넓은 마음으로 접할 수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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辻信一さんの最新刊『弱虫でいいんだよ』を多くの人に読んでほしいと思います。スピードや効率性が最重視されてきた時代に『スロー・イズ・ビューティフル』や『ゆっくりでいいんだよ』を書き、「スローライフ」を提唱してきた文化人類学者で環境運動家の辻信一さんは、近年「強さ」と「弱さ」についての思索を深めてきました。その一部を紹介したいと思います。これを読んで私は、なぜ「テロ」が増えているのかをよく考えずに、空爆という「より大きな暴力」で物事を「解決」しようとすることの「異常さ」について考えました。そして、ひとり一人が「自分の頭で考えることの大切さ」をあらためて思いました。/


弱さの難しさ/

 これからきみたちと一緒に、「弱さ」について考えていこうと思う。「弱さ」の反対は「強さ」だ(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から、「弱さについて考えること」は「強さについて考えること」と切り離すことができない。/

  言っ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弱さ」や「強さ」について考えるのは易しくはないし、なかなか面倒だ、ということ。きみがもし、その難しさにもう気づいているなら、幸いなことだ。というのは、この難しさのことさえクリアしてしまえば、もうそれだけで、きみは「強さ」や「弱さ」のことが半分はわかったと言えるくらいなのだから。「弱さ」について考えることの難しさの大半は、その入り口のところにある、と言ってもいい。その難しさとして、主なものを二つ挙げておこう。/

 難しさの第一は、だれも「強い」「弱い」という言葉を難しいと思っていないこと、単純で、誰にでも明快な、わかりきった言葉だと思いこんでいることだ。では「強弱」がどんなふうにわかりやすいかと言えば、それは「大小」とか、「長短」とかがわかりやすいのと同 じだ。つまり、大小や長短が計測できるように、どちらが強くて、どちらが弱いかも数値によって客観的に示せる、と考えられている。/
  でも、もちろんそれはおかしい。確かに、握力や腕力の強さ、風の強さなどは計って数値で示すことができるかもしれないが、意志の強さとか、願望の強さを計測することはできない。つまり、強さや弱さというものは単に多いか少ないかという量の問題ではなく、質の問題でもある。/

 そんなのはあたりまえだときみは思うかもしれないが、しかし、世の中には強弱をただ量的なものとしてとらえる変な傾向が支配的なのだ。だから、「弱さ」についてよりよく理解しようと思ったら、この変な傾向について考えることも避けて通れない。/

「強い」のは良いことなの?/

 第二の問題は、「強さ」「弱さ」というあたりまえの言葉に、価値判断がくっついていること。「強い」のは良いこと、「弱い」のは悪いこと、とされていて、ほとんどの人がそう思いこんでいる。「強い」と言われればうれしいし、「弱い」と言われればうれしくない。/

  考えてみれば、これもおかしなことだ。例えば、先にあげた「大小」でも、大きいのと小さいのと、どちらがいいか、なんて決められるわけがない。大きいことが良いことで、小さいのは悪いことなどというのは、あまりに単純な決めつけだ。大きいことが良いとは限らないし、小さいことが悪いとは限らない。大きいカバンは小さいのに比べて、たくさんのものを入れることができて便利だが、場所もとるし、運ぶのには重くて不便だ。/

 良いか 悪いかは、「時と場合による」のだ。この「時と場合による」というのが肝心だ。これは「相対的」と呼ばれる考え方で、ものごとの価値が文脈——つまり、他 との関係——によって異なることを言う。一方、文脈に関わらず、いつでもどこでも、同じ価値をもつ、というのは「絶対的」だ。/

  きみはよく「絶対」という言葉を使うんじゃないかな。でも、これには注意した方がいい。考えてみればすぐわかるように、何ごとにも文脈はつきものだ。小さい時計は近寄らないと時間がわからないので壁にかけるのには向いていないが、腕につけたり、ポケットに入れて運ぶのにはいい。/

 「大きいことが良いとは限らないし、小さいことが悪いとは限らない」と言えるとすれば、同じように、「強いことが良いとは限らないし、弱いことが悪いとは限らない」と言えるはずだ。/

勝者が正しいって本当?/

 ついでに、もうひとつ、つけ加えておきたい。それは、「良いことがいつも良いとは限らないし、悪いことがいつも悪いとは限らない」ということ。つまり、「良い」「悪い」もまた絶対的ではなく、相対的な価値なのだ。時と場合によって、社会的、歴史的な文脈によって、何が「良い」か、何が「正しい」か、は異なる。「善悪」や「正邪」といった倫理的な価値観ですら、絶対ではない、ということだ。/

 ぼくたちは日々、相手が悪くて、自分こそが絶対正しいと主張し合う者同士の衝突を見ている。そして実際の歴史を見てみれば、やはり、非は相手にあり、正義は当方にあると主張する共同体同士、国家同士の対立や争いが繰り返されてきた。けんかも戦争も、互いに「正しさ」を主張し合いながら、結局どちらも自分の「正しさ」を証明することができずに、「強弱」で決着をつけようとする。 そして、勝者、つまり強い者が正しく、敗者である弱い者が間違っていたかのようなイメージがつくり出される。実に変な話だ。/

 ともあれ、時と場合によって、社会によって、時代によって、人によって価値観が異なることもある、ということを心に刻んでおいてほしい。自分自身の内でさえ、年齢によって、季節によって、日によって、「正しい」の意味が変わることはあるのだから。/

そう考えれば、他の人たちがきみとは異なる価値観をもっていることに対しても、もっと穏やかで広い心で接す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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